[이혼가정의 아이들]그들은 「사랑」을 원한다

  • 입력 1997년 10월 3일 19시 57분


초등학교 2학년 때 부모가 이혼한 뒤 어머니(45·대학교수)와 살고 있는 S양(12)은 이혼 후 오히려 당당해진 어머니가 좋다. S양은 어머니와 단 둘이 살게 된 이후 한동안 친구들이 부모의 이혼 사실을 눈치챌까봐 불안했지만 이젠 생각이 달라졌다. 『엄마 아빠가 싸우는 소리에 불안해하며 잠못드는 일이 없어 예전보다 낫다는 생각도 들어요. 부모의 이혼이 자랑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부끄럽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S양은 95년 겨울부터 엄마와 함께 몇몇 이혼한 가정의 아이들과 어울리고 있다. 모여서 심각한 고민을 털어놓는 것은 아니지만 그저 함께 노는 게 즐겁다고 한다. 이젠 새로 오는 친구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는 여유까지 생겼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양정자(梁貞子)부소장은 『이혼 자체보다 이혼에 이르기까지의 과정과 이혼의 후유증이 아동에게 미치는 영향이 더 크다』고 말한다. 그는 『이혼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아이를 이혼 과정에 참여시켜 부모가 헤어져 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이해시키고 원할 경우 언제든 다른 한쪽의 부모와 만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고 권유했다. 외국의 경우 부모가 이혼할 때 자녀가 12세 미만이면 정신 질환 등 특별한 결격 사유가 없는 한 어머니에게 아이의 양육권을 주는 게 보통이다. 이는 아버지보다 어머니가 양육하는 것이 아이의 정서에 더 좋다는 여러 연구결과에 따른 것. 서울 배성여상 이은희(李恩姬)교사는 『편부 가정의 아이들은 대부분 집안일 등 어머니의 역할까지 떠맡아야 하는데다 고민을 털어놓을 마땅한 상대가 없어 편모 가정의 아이들보다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그러나 직업이 없는 여성이 아이를 양육할 경우 겪는 가장 큰 문제는 경제적인 어려움. 미국의 경우 아이를 양육하는 측이 주택의 소유 여부에 관계없이 살던 집에서 아이가 성년이 될 때까지 살 수 있는 「주거권」을 인정하고 있다. 부부의 재산분할도 이혼 직후가 아니라 아이가 성년이 된 이후에 하게 함으로써 아이가 받을 경제적 정신적 피해를 최소화하고 있다. 홀부모 아이들이 겪는 또 다른 문제는 고민을 털어놓을 만한 상담시설이 없다는 것. 국내엔 한국가정법률상담소가 운영하는 △기러기 교실(02―782―3601) △새출발교회(02―999―3431) △한국남성의 전화(02―652―0458) △한국여성의 전화(02―269―2963) △가족과 성상담소(02―646―8858)등 이혼부부를 위한 상담단체가 있으나 자녀들을 위한 상담소는 전무한 실정이다. 지난해 난지도철거민 도시빈민들이 단체로 입주한 영구임대아파트에 둘러싸여 있는 서울 N중학교는 전체학생의 14.2%인 2백10명이 부모가 없거나 홀부모 또는 입양가정에서 자라고 있다. 이 학교는 올들어 요리대회 사제동행등산대회 문화유적지탐방 연극관람 등 다채로운 교육 프로그램과 지속적인 상담을 통해 홀부모 아이들의 학교 적응에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처음엔 상담실에 끌려오다시피 한 학생들이 이젠 부르지 않아도 먼저 찾아와 고민을 털어놓는 수준까지 발전했다. 「홀부모의 아이들」은 이제 「소수 이혼남 이혼녀」의 문제가 아닌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차원에서 사회적인 대책이 강구돼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이훈·부형권·이승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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