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동화작가 채인선/『조상숨결배인 동화쓰고 싶어』

  • 입력 1997년 9월 13일 08시 22분


「내짝궁 최영대」는 작가 채인선씨(35)의 큰 딸 해빈이 이야기다. 초등학교 4학년에 다니는 딸애가 3학년 때 겪은 일을 동화에 담은, 「현재 진행형」의 실화. 시골에서 전학온 최영대는 헐렁한 웃옷에 다 해진 운동화를 신은 꾀죄죄한 아이. 조용조용하고 동작이 굼떠 「굼벵이 바보」라는 별명을 얻었다. 「아이들이 그러는데 영대는 엄마가 돌아가시고 난 다음부터 거의 말을 안하고 지낸대요. 그래서 지금은 할 수 있는 말이 몇 안된대요. 다른 식구도 없이 아버지와 단 둘이 산다는데…. 불쌍한 아이지만 친구들은 모두 영대를 따돌려요」. 그러다 마침내 큰 일이 터졌다. 영대를 벽에다 세워놓고 남자 아이들이 돌아가면서 한대씩 때린 것. 한국판 「이지메」. 코피가 터지고 눈 주위에 시퍼런 멍이 들었다. 「그래도 영대는 울지 않았어요. 노려보기만 했어요. 나는 무서웠어요. 남자아이들도 무서웠고 영대도 무서웠어요」. 채씨는 딸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너무 가슴이 아파 이 동화를 쓰게됐다고 한다. 『책에서는 영대가 반 아이들과 함께 단체여행을 가서 화해를 해요. 잠자리에서 「방귀 뀐 놈」으로 놀림을 당하다가 마침내, 울음보를 터뜨리게 되고…. 「엄마 엄마」를 부르며 멈추지 않는 그 울음에 한방에 있던 아이들도, 옆방의 아이들도, 선생님도 모두 함께 눈물바다를 이루게 되지요』 하지만 「현실속의 영대」, 딸애의 짝꿍은 아직 그렇지 못하다고 안타까워한다. 채씨의 동화에는 구김이 없다. 밥상을 차려놓고 아이들에게 떠먹이려는 억지가 보이지 않는다.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두 딸애를 키우면서 보고 느낀 생활속 이야기가 알알이 배어나온다. 『어른들이 보기에 한없이 유치한 일도 아이들에겐 심각한 현실이지요. 어른들이 「몰랐으면」 「제발 그러지않았으면」 하는데 아이들은 꼭 그런데만 관심을 쏟아요』 동화를 쓰게 된 동기가 재미있다. 틈만 나면 이야기를 해달라고 졸라대는 아이들. 이것저것 책을 읽어주다 왠지 성에 차지 않아 직접 이야기를 짓게 됐다고 한다. 귀를 쫑긋하고 이야기 속에 빠져들던 아이들이 어느덧 스르르 꿈나라에 들면, 혼자 남은 말똥말똥한 밤에 그 이야기들을 그대로 컴퓨터에 옮겼다고. 『처음에 지어낸게 도깨비 얘기예요. 감나무에 매달린 대롱대롱 도깨비, 다락에 숨어 살던 달그락달그락 도깨비, 빗자루를 닮은 쓱싹쓱싹 도깨비, 부엌 아궁이에 살던 따끈따끈 도깨비…. 이사를 자주 다녀서 그런지 지금도 도깨비 몇마리를 키우며 함께 사는 기분이지요』 도깨비 이야기는 95년 장편동화로 묶여졌다. 「산골집에 도깨비가 와글와글」(웅진출판). 채씨가 마음먹고 동화를 쓰게 된 것은 작년 봄 창작과비평사가 주최한 제1회 「좋은 어린이 책 원고 공모」에 당선되면서. 그의 당선작들을 모은 「전봇대 아저씨」는 극찬을 받았다. 「전통적인 익살과 서구적인 세련미, 상상력을 자유자재로 구사한 환상적인 기법과 사실성이 그럴 수 없이 잘 어우러졌다」(소설가 박완서). 어린이책으로는 드물게 2만권 이상이 팔렸다. 그는 요즘 우리 고유의 정서가 배어 있는, 조상들의 숨결과 체취가 물씬 묻어나는 그런 동화에 관심이 많다. 『전통가옥의 툇마루처럼 바깥으로 열려 있는, 더불어 함께 사는 동화, 그런 글을 쓰고 싶어요. 마치 「전원일기」의 김회장이 할머니에게 들려주는 장화홍련전처럼, 듣는 사람의 귀를 열어주는, 「가족문화」 속에 녹아 있는 그 어떤 것을…』 〈이기우기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