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줄리안 반즈 장편 「내말 좀…」 출간

  • 입력 1997년 7월 31일 07시 45분


우리가 아는 현대 영국작가의 명단에는 서머싯 몸, D H 로렌스, 그레이엄 그린 등이 있다. 그러나 문학애호가라면 이 이름들 뒤에 최근 국내에 작품들이 연이어 소개되고 있는 줄리안 반즈(51)를 알아둘 만하다. 그는 장편만 9권을 썼다. 레종 도뇌르 훈장과 메디치상 등 미국 프랑스 독일에서 작품 수 만큼이나 굵직한 상들을 받았다. 국제적으로 고른 평가를 받은 이유는 재기발랄한 실험성과 문학적 흥미 때문이다. 국내에 처음 소개됐던 「10과 1/2장으로 쓴 세계역사」는 방주에 숨어든 좀벌레의 눈으로 노아의 탐욕과 무지를 폭로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성서 패러디, 종교재판 기록, 노이로제 환자의 독백 등으로 역사가 꾸며진 허구일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두번째 나온 「플로베르의 앵무새」도 기발한 가정과 형식을 통해 작가 플로베르의 일생을 알려진 바와 판이하게 재구성한다. 이번주 나온 「내 말 좀 들어봐」(동연) 또한 실험성에 있어 막상막하다. 고지식한 스튜어트와 그의 아내 질리언, 그녀를 유혹해 결혼하는 올리버가 나온다. 묘사나 대화가 없다. 셋이 차례로 나와 독자를 당신이라 부르며 모놀로그 연극배우처럼 그간의 사연을 들려준다. 자기 입장에서만 얘기하므로 일의 진상은 독자가 알아내야 한다. 이런 식이다. 『결혼은 사랑의 독점이야. 난 그게 싫어. 두 사람은 나 하나를 원하지만 난 둘 다 원해. 난 제도의 피해자야』(질리언) 『남편은 제일 먼저 의심하지만, 가장 늦게 알지. 결국 나 혼자 상처를 입게 됐어』(스튜어트) 『왜 나만 비난 받는 거지. 결혼 파괴자라고. 난 감정에 충실했을 뿐이야. 날 그만 괴롭혀』(올리버) 여러 작품에 담긴 작가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하나뿐인 진리는 없다. 모든 것이 상대적일 뿐」. 바로 포스트모더니즘의 세계관이다. 〈권기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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