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인들 해외여행 『붐』…『소재찾기 체험쌓기』

  • 입력 1997년 7월 17일 08시 35분


소설가 윤대녕씨는 8월초 파리행 비행기를 탄다. 대학기숙사의 빈방을 빌려 몇달간 체류할 계획이다. 해외여행이 적잖은 그는 여장을 꾸릴 때마다 『내가 한국에 너무 오래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한다. 소설가 신경숙씨는 이달초 북경을 거쳐 내몽고지역의 초원과 사막을 보고 왔다. 그는 아무렇게나 부러져 있는 탑 나무 같은 것도 1, 2천년의 나이를 갖고 있는 중국을 여행한 뒤 『시간에 대한 관념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소설가 박완서 이경자 김형경씨는 열흘 일정의 유럽여행 중이다. 지난 6월에는 소설가 박범신 김영현, 평론가 도정일 이성욱 방민호씨가 베트남을 다녀왔다. 해외여행이 자유화된 뒤 작가들의 바다밖 나들이도 폭증했다. 바캉스철인 여름에는 뜻맞는 문우들끼리 삼삼오오 여행팀을 꾸린다. 작가들의 바깥출입이 잦아지자 아예 그 유형을 「체류형」과 「배낭형」으로 분류할 정도가 됐다. 허수경(독일) 장정일 고종석 송대방(프랑스) 김이태(일본)는 대표적인 체류형. 「배낭형」작가로는 김영하와 채영주가 꼽힌다. 아프리카 동남아 등을 수차례 떠돈 채영주는 장편 「웃음」에서 동남아를 무대로 삼았다. 두 차례 유럽배낭여행을 한 김영하는 장편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에서 유럽의 미술관을 순례하며 이야기를 펼쳐나갔다. 최근에는 인도네시아 발리를 두차례 여행했다. 작가들의 분주한 해외행에 대한 문단의 시선은 어떨까. 계간 「한국문학」이 가을호에 체류작가들을 본격 검토하는 특집 「바깥에서 사유하기」를 준비중일 뿐 아직껏 이렇다 할 분석은 없었다. 평론가 박혜경씨는 『90년대 문학의 특징인 내면지향성 일상성은 단조로움을 피할 수 없다. 이를 극복하는데 외국체험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같다』고 풀이했다. 반면 소설가 서해성씨는 『해외여행이 작품의 지평을 수평확장한다는 의미는 있지만 한국에서의 치열한 삶과 접목되지 않아 공허하다』고 우려했다. 일찍이 유럽의 낭만주의시대 작가들이 식민지를 신비화해서 묘사했듯이 우리 작가들도 동남아나 남미를 보는데 「아류 제국주의적」인 시선을 갖고 있지 않은가 반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젊은 작가 김영하는 『문학도 국제경쟁을 해야 하는 시대에 작가의 외국행은 이제 필연적인 선택』이라고 주장한다. 『쿤데라, 에코 등의 작품이 유럽 본토와 동시번역돼 우리 작가들과 경쟁하고 있어요. 국경과 민족을 넘어 문학이 다루는 현실의 범주를 확장해야 합니다』 〈정은령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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