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책 年1백억어치 휴지된다…유통개선 시급

  • 입력 1997년 6월 25일 20시 30분


한 출판사는 지난해부터 지금까지 세차례에 걸쳐 12만권의 책을 파쇄(破碎)공장에 넘겼다. 모두 7억원어치. 그러나 출판사가 공장으로부터 받은 돈은 1백80만원이었다. 권당 15원꼴. 팔리지 않는 신간서적들이 파쇄공장에서 사라지고 있다. 파쇄공장에서는 비싼 새 책들이 톱밥처럼 부서진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출판계에서는 이처럼 사라지는 책이 연 1백억원대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 중견 출판인은 『신간 파쇄는 출판계에서 매일 일어나는 현실』이라며 『문화체육부도 출판협회도 실상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지만 매년 적어도 1백억원은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규모 파쇄는 「한탕치기 반짝 출판사」에서 가장 극심하며 대형출판사건 명망있는 문학출판사건 예외없이 이뤄지고 있다. 출판계는 이를 전근대적 출판 유통구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대형도매상들은 베스트셀러 조짐이 보이면 앞다투어 구입하고 팔리지 않으면 전량 출판사에 반품한다는 것이다. 구미에서는 판매량의 10∼20%만을 반품으로 받는다. 보다 근본적 원인은 출판계의 전근대성에 있다. 출판인 가운데는 신간의 예상 판매량을 과학적으로 산출해내려는 이가 드물다. 시장조사 없이 초판으로 수만권을 찍어낸 후 광고와 언론의 힘으로 소화되리라고 기대하는 경우가 비일비재다. 구미의 경우 초판 발행전 수요량을 주문받는 출판예고제를 실시하고 있다. 일단 반품된 서적에는 높은 창고료와 법인세가 따라붙는다. 한 출판인은 『대부분 저자 몰래 파쇄하고 있다』고 털어 놓았다. 출판사가 신간들을 중고서점에 넘길 경우 유통을 장악하고 있는 도소매상은 즉각 불매위협을 가한다. 출간일로부터 1년 이상 지난 책들을 싼값에 유통시키는 일본과는 대조적이다. 대책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권기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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