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책]김정란/「그여자 입구에서 가만히 뒤돌아보네」

  • 입력 1997년 6월 24일 08시 10분


난해한 시. 시이면서 동시에 시론인 시. 차라리 시론이 먼저인 시. 그의 시는 이해와 소통이 아닌,단절과 해체의 문법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에게 시는 읽히고, 해석되는 순간 더이상 언어의 순결성을 담보할 수가 없다. 그래서 작고한 평론가 김현은 그의 시를 내팽개치듯, 이렇게 평했다고 한다. 『심리몽환적 측면에서는 독보적인 시야…』 그러나 「우우우 작게 신음하는/말을 빼앗긴 짐승」「언제나 여기, /〈있음〉의 사슬에 묶여/그 말 밖의 말인 그놈」을 구원하려는, 그의 몸부림은 처절하다. 그래서 그는, 우우우…나지막한 비명소리를 내며, 존재의 극점에서 잔뜩 웅크리고 있는 「지옥의 언어」들을 즐겨 사육한다. 최승자 김혜순씨 등과 더불어 대표적인 중견 여류시인으로 꼽히는 김정란씨(44). 「어느 순간부터인가」 「확실한 맥을 낚아챘다」는, 「그리고 더이상 남자들이 무섭지 않」게 됐다는 그가 세번째 시집을 냈다. 「그 여자, 입구에서 가만히 뒤돌아보네」(세계사). 그의 시는 아예 평론가들도 읽지않기로 유명하다. 아직도 소녀같은 분위기의 시인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항변한다. 『권력자들이 내 시를 사랑하지 않아요』 그에게 비평은, 우리 문단의 문학비평은 거대한 권력행위다. 작가와 시인들 위에 군림하는,또는 너무나 그 밑에 존재하는…. 『나의 시는, 언어에 대한 불편한 심기에서 출발해요. 상징조작과 이데올로기에 오염된 「남성의 언어」를 추방하는 데서…』 그래서 그는 자신을, 자신의 언어를 잔혹하게 고문한다. 「살이 저며지고 있다/…/싱싱하고 선혈이 뚝뚝 떨어지는/신선한 살의 이별/결따라 완벽하게 저며져 뼈를 떠나는 살/…」 그렇게 해서 그가 만나는 것은 「여성의 언어」, 영성(靈性)의 언어다. 「희디흰 뼈 눈부시게 드러나고/바람과 바람의 결 사이에 촘촘히 박혀 있던/잊혀진, 강렬한 말들이/핏줄 위에서 널을 뛰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는 버릇처럼 「중세기에 태어났더라면, …화형대에서 죽었을 것」이라는 강박과, 「나는 나를 죽이고 싶었다. …혀를 뽑아버리고 싶었다」는 충동을 토로한다. 그러나 정작 그는 교수(상지대)로서, 주부로서, 그리고 놀랍게도 「람세스」의 번역가로서 그럴수 없이 단정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이기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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