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책]평론가 박혜경/「상처와 응시」

  • 입력 1997년 6월 10일 10시 13분


<문학과지성사 펴냄> 『평론을 쓸 때마다 끊임없이 「거리」를 재는 기분이에요. 작품과 나 사이의…. 저에게 문학비평은 작품 뒤에 숨어서 자신을 드러내는 행위라고나 할까. 항상 감춤과 드러냄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져요』 「여류」 부재의 우리 평단에서 돌출처럼 솟아 있는 박혜경씨(37). 여류에게 유독 폐쇄적인 문학과지성사에서 한솥밥(편집위원)을 먹고 있는 그. 여성으로는 드물게 두번째 평론집을 냈다. 「상처와 응시」(문학과지성사). 현재 평단에서 이렇다할 성과를 내고 있는 여성은 그와 정효구씨가 꼽힌다. 최근 여성작가들의 기세에 「가위 눌려온」 문단 사정을 감안하면 기이할 정도다. 그의 비평적 글쓰기는 비슷한 연배인 30대여성작가군,공지영 신경숙 김형경 등의 작품세계와 많이 닮았다. 이들 모두는 90년대, 그 「풍요의 폐허」 속에서 개인의 텅 빈 내면세계를 탐사하는 고독한 여행자를 떠올리게 한다. 그는 한마디로 가르자면 「문지파」. 그러나 그의 비평적 전망은 한동안 문지(문학과 지성)와 창비(창작과 비평) 사이를 서성거릴 수밖에 없었던 스스로의 이력을 느끼게 한다. 민중문학을 엄격하게 밀쳐내면서도 「문학이 문학이기 위해서는, 문학일 수만은 없었던」 80년대의 정서를 쓸어담고 있다. 「문지류」의, 구조와 논리에의 지나친 쏠림이 「사람사는 둥지」를 비켜가는 것을 경계한달까. 그래서 그는 「그시절」 『어느 편이냐』『무슨 주의냐』는 질문을 받으면 『전 기회주의예요』라고 말했다며 웃는다. 요즘 문학의 위기, 비평의 부재를 지적하는 이가 많다고 하자 그 자신 한때 우리시대의 비평행위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했다고 털어놓는다. 『이 끝없이 소모적인 시대에 비평이 과연 무엇을 성취할 수 있을지 회의가 들더군요. 심지어 비평가란 출판 상업주의의 「인력동원」에 불과한 것은 아닌가 하는 자괴감도 들었어요』 동국대 국문과를 나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강사질」로 풀칠을 하고 있다는 그는 비평적 글쓰기에 창작의 욕구를 담는,비평과 창작의 행복한 만남을 꿈꾼다. 『가장 이상적으로는 작고한 평론가 김현선생님이 그랬던 것처럼, 작품 속에서 작품과 함께 노닌다고 할까, 비평가와 작품이 「화간(和姦)」하는 경지가 아닐까요…』 〈이기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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