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소재 토종코미디 「오구(惡鬼)」 관객 미어터진다

  • 입력 1997년 6월 6일 09시 43분


『터졌다!』 지난달 31일 연극 「오구(惡鬼)」의 막이 오른 서울 정동극장 앞. 중고생부터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노인관객까지 4백여 객석을 가득 메우자 극단 관계자들의 입이 절로 벌어졌다. 관객 기근이 더이상 뉴스가 되지 않는 요즘, 극장이 「미어 터지는」 보기드문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이윤택 작 연출의 이 작품은 「죽음의 형식」이라는 부제 그대로 죽은 자를 편히 보내는 진오귀굿과 제례의식을 기둥으로 삼고 있다. 조금은 주책없고 넉살스러운 늙은 어머니(강부자 분)가 퉁명스럽지만 그래도 효심 깊은 아들(김학철)에게 굿 한판 벌일 것을 조르는데서 연극은 시작된다. 신명나는 굿판 중에 어머니가 황망하게 죽음을 맞고 무대는 상가로 탈바꿈한다. 죽은 자를 염하는 한쪽에서도 화투판은 펼쳐지고 저승사자가 당도한 가운데서도 유산싸움은 벌어진다. 이승과 저승의 넘나듦, 눈물 속에서도 비어져 나오는 웃음, 그것이 이윤택이 보는 우리네 삶과 죽음이다. 이 「귀신붙은 연극」은 10일까지 이미 표가 매진됐다. 지난 4일까지 객석 점유율 95%, 유료관객 90%의 신기록 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오구」가 이처럼 관객을 사로잡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지극히 한국적이어서 우리 정서에 인절미처럼 달라붙기 때문이다. 빨랫줄에 걸린 옷 속에서 귀신이 나오고 장독대에서 저승사자가 졸고 있는 등 작품속에는 「병풍 뒤에 죽음이 있고」 「어디에서나 조상이 내려다보는」 우리의 생사관이 잘 드러나 있다. 무서울 것만 같았던 죽음이 새롭게 보이더라는 관객도 있을 정도다. 게다가 죽음이라는 묵직한 소재를 해학적으로 채색한 「토종 코미디」라는 점도 이 연극만의 독특한 매력이다. 염습하는 자가 무엄하게도 시신을 퍽퍽 후려쳐 관객을 웃긴다든지 저승사자가 우스꽝스러운 알몸으로 등장하는 것이 한 예다. 연극평론가 최준호씨는 『전통 연희(演戱)의 긴장과 이완 구조가 잘 드러나 있다』고 평한다. 대사도 관형어구와 수식어가 없는 4.4조의 민요적 리듬이어서 배우들은 『혓바닥에 찰싹 붙는다』며 즐거워한다. 여기에 에너지와 열정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배우 강부자―김학철이 연출자 이윤택과 상승작용을 일으켰다. 이밖에도 앉아서 관객을 기다리지 않는 제작진의 「공격적 마케팅」도 큰 몫을 했다. 기획사 컬티즌은 중노년층 관객을 위해 「만수무강 티켓」을 만들어냈고 중고생을 겨냥해서는 「아무개선생님과 함께 하는 연극의 이해」, 대학생에게는 「심포지엄이 있는 연극」을 마련해 1천5백여석을 팔았다. 세상이 아무리 어수선하더라도 연극손님은 얼마든지 불러모을 수 있음을 입증한 셈이다. 30일까지 공연. 02―773―8960 〈김순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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