米壽맞은 피천득선생,「기념문학전집」5권 발간

  • 입력 1997년 5월 29일 08시 42분


지금도 첫 대목만 시작하면 뒷구절을 노랫가락처럼 외우는 사람들이 있으리라. 「수필은 청자 연적이다. 수필은 난이요, 학이요, 청초하고 몸맵시 날렵한 여인이다…」. 극성스런 국어선생님들이 『좋은 글은 외워서라도 모범으로 삼아야한다』며 회초리로 닦달을 해댔던 글, 「수필」. 그 저자 琴兒 皮千得(금아 피천득)선생이 29일 미수(米壽)를 맞았다. 겉치레 호사를 마다하고 평생 검소하게 살아온 금아지만 미수에는 스스로에게 작은 선물을 허락했다. 과거에 출간했지만 절판된 시집과 수필들을 묶어 다섯권짜리 「미수기념문학전집」(샘터 간)을 발간한 것이다. 지난해 출간한 수필집 「인연」 자작시집 「생명」 번역시집 「내가 사랑하는 시」 「셰익스피어 소네트 시집」과 손바닥안에 들어가는 작은 시집 「꽃씨와 도둑」. 수필가로만 알려져 있는 금아가 영어의 「우리말다운」 번역에 골몰한 영문학자였으며 수필만큼이나 시도 사랑했던 문인임을 확인할 수 있는 편집이다. 수필집 「인연」에 실린 작품수는 82편. 수필문학의 「살아 있는 교과서」로 존경받는데 비하면 과작이다.그 이유는 금아 스스로 정한 기준 때문일것이다. 『뭐든지 정말로 잘된 것이어야 보는 사람이 기쁘기도 하고 마음의 평화도 얻을 수 있어요.하지만 잘된 것이 많을 수야 없잖아요』 그의 수필이 수많은 「잡문」과 구별되는 이유도 이런 엄격함에 있을 것이다. 자식들에게 부담주지 않으려고 팔순이 넘은 아내와 둘이 「분에 넘치게도」 32평짜리 기름보일러 아파트에 산다는 금아. 그의 일과는 자신이 쓴 수필 「만년」처럼 충만하다. 『…젊어서 읽었던 「좁은 문」같은 소설을 다시 읽어도 보고 오래된 전축으로 쇼팽을 듣기도 한다. 그리고 그 기쁨을 누릴 수 있는 마음의 평온을 송구스럽게 여기지도 않는다. …신기한 것, 아름다운 것을 볼 때 살아 있다는 사실을 다행으로 생각해본다. 그리고 훗날 내 글을 읽는 사람이 있어 「사랑을 하고 갔구나」하고 한숨지어 주기를 바라기도 한다. 나는 참 염치없는 사람이다』 〈정은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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