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책]김용택 시인 「사람들은 왜 모를까」

  • 입력 1997년 4월 29일 09시 03분


「이별은 손 끝에 있고/서러움은 먼데서 온다/…/마른 풀잎들은 더 깊이 숨을 쉬고/아침 산그늘 속에/산벚꽃은 피어서 희다/…/돌아앉은 산들은 외롭고/마주 보는 산은 힌 이마가 서럽다/아픈 데서 피지 않은 꽃이 어디 있으랴/슬픔은 손 끝에 닿지만/고통은 천천히 꽃처럼 피어난다/…/그리운 것들은 다 산 뒤에 있다/사람들은 왜 모를까 봄이 되면/손에 닿지 않는 것들이 꽃이 된다는 것을」(「사람들은 왜 모를까」 일부) 이별의 순간이 지나간 뒤에도 슬픔은 멀리서 밀려오고 고통은 시간이 흐를수록 「천천히 꽃처럼 피어난다」. 모든 꽃은 아픔에서 피어나기에 「그리운 것들을 다 산 뒤에」 둔 시인의 고통도 꽃처럼 피어난다. 「섬진강 시인」 김용택(49). 그가 소월시문학상을 받았다. 「찔레꽃이 그렇게나 많이도 피었다가 지고」 「이팝나무 이팝꽃이 소복소복 피었다가 지는」 섬진강변을 한번도 떠나본 적이 없는 그. 그의 최근 시는 마른 풀잎 위에 내려앉은 아침이슬처럼 한을 머금은 아름다움이랄까, 절망을 품에 안은 희망을 노래하고 있다. 그가 마음을 비운 섬진강변의 삶으로 모든 것을 뚜렷이 보는 경지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는 『인간의 길과 문학의 길이 다르지않다』며 『혹 풀들이 상할까봐 앞마당에 뜨거운 물조차 함부로 버리지 못하게 한 어머니의 마음을 항상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문학이론이나 경향을 따지기 전에 가슴에 와닿지 않는 시는 쓰고 싶지않다고 말한다. 지난69년 순창농고를 졸업한뒤 엉겁결에 교편생활을 시작했다. 지금 전교생이 15명밖에 안되는 섬진강변 마암분교에서 초등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점수관리」를 못해 아직 평교사다. 『시를 쓸 수 있고, 담배값 책값 걱정이 없는 지금 더 바랄 게 없어요』 그의 말은 그의 시만큼이나 담백하다. 「내 가난함으로/세상의 어딘가에서/누군가가 배부릅니다/내 야윔으로/세상의 어딘가에서/누군가가 살이 찝니다/내 서러운 눈물로/적시는 세상의 어느 길가에서/새벽밥같이 하얀/풀꽃들이 피어납니다」(「세상의 길가」) 김용택<시인> 〈이기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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