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箱 60주기]적막한 문단…『열기 시들』

  • 입력 1997년 4월 17일 08시 23분


창백하고 지적인 얼굴, 흰 구두에 흩날리는 머리칼…. 30년대 경성 거리를 배회했던 천재작가 李箱(이상·본명 김해경). 이상 문학의 울타리에 갇혀 열병을 앓지 않은 이는 누구인가. 17일은 이상이 스물일곱의 나이로 짧은 생을 마감한 60주기일. 그러나 문단은 이상하리만치 적막하다. 아직 추모행사 하나, 논문 하나 없다. 다만 김윤식 서울대교수가 기념논문 「봉별기 속의 날개」(「문학사상」5월호 게재 예정)를 준비하고 있을 뿐이다. 한 중진평론가는 『문예지 젊은 편집위원들의 문학사적 안목 부족』을 개탄한다. 그동안의 이상 연구는 문단내외의 상황과 맞물려 전개돼왔다. 적지않은 작가들이 월북해버린 전후(戰後)50년대, 한국문학의 뿌리를 찾던 당시 남쪽 문인들에게 이상은 자신들의 문학적 연속성을 확인시켜주는 존재였다. 김윤식교수는 『그들은 이상문학 앞을 통과함으로써 비로소 50년대 문학을 할 수 있었다』고 「이상 연구」(문학사상사 발행)서문에 적고 있다. 자료발굴과 심미주의 정신분석학적 연구가 진행됐던 70년대를 거쳐 80년대말 리얼리즘에 대한 역풍으로 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이 열병처럼 문단을 휩쓸면서 이상은 또다시 주된 관심사로 떠올랐다. 도시, 근대성, 자본주의의 모순(막다른 골목)에 대한 대응방식으로서의 글쓰기라는 차원이었다. 이상문학에 대한 문단의 이같은 열기는 시간이 흐를수록 시들해졌다. 김교수는 이상문학의 낙조를 아쉬워한다. 그는 『운명 공포 자살충동 극복의 유일한 방식으로 택했던 이상의 「글쓰기」를 다시한번 음미해보는 것은 이 나라 근대문학사에 대한 작은 의무』라고 말했다. 다른 의견도 많다. 그동안 신비주의적 접근으로 이상문학이 과대평가된 부분이 없지 않았고 따라서 그같은 거품이 스러져가는 현상의 한 단면이라는 것이다. 그의 천재성 초현실주의적 특성 등도 빛을 잃은지 이미 오래라는 얘기도 나온다. 유종호 연세대교수는 『다재다능한 인물이지만 특히 난해하고 편차가 심한 시에 관해 과대평가된 면이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오랜 기간 계속된 연구로 새로운 해석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 역시 반론의 한 축이다. 〈이광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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