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증이 마구 팔린다…26만원 주면 하루만에 OK

  • 입력 1997년 4월 14일 20시 12분


지난 8일 오후5시반경. 서울 종로 세운상가 3층. 계단에 올라서자 건물내 점포 맞은편 노천에 판자로 칸막이를 치고 장사를 하는 20대 중반의 건장한 청년들이 에워쌌다. 『비디오 테이프를 사러 왔다』고 말을 건네자 그중 한명이 2평 남짓한 어두컴컴한 방으로 데려갔다. 탁자와 의자 두개가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비디오테이프의 가격흥정 끝에 주민등록증이 필요하다는 말을 꺼냈다. 청년은 망설임도 없이 『몇년생 것이 필요한가. 사진은 붙어있는 것과 없는 것중 선택하라』고 말했다. 「73년생 사진이 있는 것」을 요구하자 청년은 방밖으로 나갔다. 잠시후 들어오더니 『현재 73년생 주민등록증은 없다. 내일 이 시간에 다시 오면 준비해 놓겠다』고 말했다. 다음날 오후 5시경 같은 장소. 청년이 전날 요구한대로 「사진이 붙어있는 73년생 주민등록증」을 건네줬다. 가격은 26만원.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동에 사는 황모씨의 주민등록증이었다. 수수료 1만원과 사진 2장이면 발급받을 수 있는 주민등록증을 26배나 비싸게 주고 산 셈이다. 청년은 주민등록증의 사진을 바꾸는 방법도 상세히 알려줬다. 청년은 헤어지며 『주민등록증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구해다 줄테니 찾아오라』며 『10장 이상을 한꺼번에 살 때는 할인가격으로 장당 15만원에 주겠다』고도 했다. 그는 『이 주민등록증은 황씨가 직접 가져와 10만원에 팔고 갔다』며 『황씨와 말을 맞춰 놨으니 사용하다 문제가 생기면 종로2가 지하철역 공중전화 박스에서 주운 것으로 하자』고 말했다. 황씨는 기자가 직접 만나 주민등록증에 대해 묻자 『한달전에 주민등록증을 분실했다』고 말했다. 주민등록증이 밀거래를 통해 타인의 손에 넘어가게 되는 과정은 세가지. 분실된 주민등록증을 주인에게 되돌려 주지 않고 불법거래하는 경우와 돈이 필요한 사람이 자기 것을 중간 거래책에게 파는 경우, 소매치기 등이 훔친 것이 판매책에게 넘어오는 경우다. 분실된 주민등록증은 거주지 구청에 주소지별로 각 동사무소에 전달된다. 이 과정에서 주민등록증 분실업무를 담당하는 직원 등이 빼돌리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 청년의 설명이었다. 〈이명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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