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국제마라톤/특별기고]한수산/오!경주

  • 입력 1997년 3월 12일 20시 10분


어느 새 4년인가. 아이를 길러보면 안다. 4년의 시간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를. 기저귀를 갈아주던 아이가 어느 새 아파트 계단을 내려가 제 몸 만한 스케치 북을 들고 미술학원으로 가는 세월, 그것이 우리들 생활에서의 4년이다. 동아국제마라톤이 그 나이가 되었다. 원년부터 이 대회를 지켜본 나로서 가지는 감격의 하나는 우리가 만들어온 어떤 국제대회가 이처럼 굳게 자리잡은 것이 있었던가 하는 자랑스러움이다. 「세계의 축제」 4주년우리는 국제화를 이야기한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이 대회만큼 안팎으로 국제화를 이룬 것이 또 무엇이 있나 묻게 된다. 지난해의 기록이 말해준다. 세계의 기록을 만들어 냈고 세계의 선수들이 뛰었다. 그렇게 해서 이제는 명실공히 세계의 건각들이 이 대회를 노리게 되었다. 그림을 그리던 옛 사람들은 어떤 곳을 이야기할 때 흔히 세 가지로 나누었다. 가고 싶은 곳, 그리고 싶은 곳, 그리고 살고 싶은 곳이 그곳이었다. 경주를 생각할 때마다 떠오르는 말이다. 경주는 이 가운데 무엇일까. 경주는 어쩌면 가고 싶은 곳, 그리고 싶은 곳, 살고 싶은 곳 그 모두를 가지고 있는 우리의 자랑스러움이다. 그곳의 봄빛에 푸르름을 더하듯 동아국제마라톤이 자리잡아 보문호반을 설레게한 지 4년이 되었다. 그날이 다가오고 있다. 동아국제마라톤 그 원년대회에서 보여주었던 저 파란이 지금도 눈앞에 떠오른다. 질주의 마지막, 경주 시민운동장 스타디움 앞에서 우리의 김완기와 마르틴 피스가 벌였던 역전의 드라마를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때 이루어 낸 것이 한국 최고기록이었다. 그렇게 해서 동아국제마라톤은 인간승리로 얼룩진 장절함을 우리에게 감격으로 안겨주어 왔다. 황영조가 중도에 다리를 절름거리면서 우리 모두를 안타깝게 했던 지난 대회. 어디 그것만인가. 다들 기억하는 이봉주의 역주도 지난해 동아국제마라톤에서 꽃으로 피어나지 않았던가. 달리는 종합병원이라는 사랑스런 애칭과 그 턱수염을 경주의 봄바람에 나부끼며 이봉주가 보여준 자랑스러움. 그는 결국 애틀랜타와 후쿠오카대회로 우리에게 이 대회를 더욱 빛나게 하지 않았던가. 그것은 바로 스포츠영웅이 우리에게 준 감격의 진수였다. 사는 재미였으며, 사는 일의 엄숙함이었다. 동아마라톤은 단순한 「뜀뛰기」가 아니다. 민족의 혼을 생각하던 어른들이 이제 자라나는 젊은이들에게 바치는 절절함이 어려 있는 대회다. 일제의 암흑속에서 우리들 젊은이의 기개를 살릴 길을 생각하던 어른들이 마음을 모아 만들어 시작한 대회가 아니었나. 겨우내 피와 땀으로 담금질한 세계의 사나이들이 이제 경주에 선다. 그날이 오고 있다. 그리고 마스터스에 참가하는 싱싱한 사람들이 또 있다. 신기록의 그날을 위해지난해 경주 시민운동장에서 나는 그런 몇 가족들을 만났었다. 운동화 차림의 엄마와 함께 나왔던 아이들의 그 맑던 눈빛. 그라운드의 출발선으로 나가는 남편의 등을 어루만지던 아내의 그 손길. 마스터스 대회는 바라보기만 해도 코끝이 시큰해지는 감동을 안고 있었다. 그런 감동은 피니시라인이 아니라 출발선에서부터 이루어지고 있었다. 국가의 위기로, 이래서는 나라가 거덜나는 게아닌가를 걱정하는어제오늘이다. 누구나가 그런 어려움속에 내일을 걱정하고 있는 우리들이다. 이 우울한 마음을 털고, 그대들이여 달려다오. 세계가 이 대회를 보고 있지 않은가. 세계 최고기록의 건각들이 모여들어 또다른 세계최고에 도전한다. 그 중심에 우리의 마라토너가 있다. 이 얼마나 자랑스러운가. 97세계최고기록이 기대되는 경주로 이미 마음은 달려간다. 우리의 마라토너들이여, 세계의 건각들이여. 천년 고도 경주, 그 숨쉬는 박물관 속을 그대들은 달리리라. 그리고 우리는 마음으로 그대들의 옆을 뛰고 있을 것이다. 세계최고기록의 탄성이 「세계의 뉴스」로 퍼져나갈 것을 믿으면서. 한수산<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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