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만들기 외길 권영팔옹 『代이을 사람 없나요』

  • 입력 1997년 2월 16일 16시 00분


[예천〓김진구 기자] 『붓에는 우리 고유의 고매한 선비정신이 그대로 녹아 있습니다. 하지만 요즘에는 붓을 사용하는 사람도, 만들겠다는 후학도 없어 아쉽습니다』 한평생 붓을 만드는 외길을 걸어온 필장(筆匠) 權寧八(권영팔·73·경북 예천군 예천읍 상동)옹. 부인과 함께 기거하는 그의 안방에는 온갖 짐승의 털과 붓대 칼 등이 어지럽게 널려 있어 발디딜 틈조차 없다. 「붓을 예술품의 경지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권옹은 세살때 소아마비를 앓아 양다리를 못쓰게 된 중증 장애인으로 학교라곤 초등학교 문턱도 제대로 밟지 못했다. 그는 18세 되던 해 마을 근처에서 붓을 만들면서 필장으로 소문난 金星太(김성태·90년대초 작고)씨의 문하생으로 들어가 그 집에서 숙식을 하며 어깨너머로 기술을 배웠다. 권옹은 『몸이 불편한 사람이 먹고 살기 위해서는 앉아서 할 수 있는 일 외에는 다른 것을 선택할 여지가 없었다』며 『스승님이 손재주가 워낙 뛰어나 붓 만드는 과정을 정통으로 배울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편리한 현대식 필기도구가 일반화되기 전까지만 해도 한달에 2백∼3백여개의 붓을 만들었으나 요즘에는 한달에 50개도 채 만들지 못한다』는 그는 『그러나 평생을 쌓은 업(業)인 만큼 죽을 때까지 붓제조를 중단할 수 없다』고 말했다. 권옹이 만든 붓은 이같은 자존심과 애착만큼이나 비싼 값에 팔리면서 좋은 것은 20만원을 호가하는 것도 있다. 예전에는 살쾡이 노루 말 족제비 개털 등 다양한 소재의 재료를 이용해 붓을 만들어 왔으나 요즘은 재료 구하기가 어려워지면서 주로 양털로 붓을 만들고 있으며 그나마 국산보다는 중국산이 많다며 아쉬워했다. 고희(古稀)를 넘긴 나이에 두꺼운 돋보기안경을 끼고 미세한 털을 하나하나 간추리는 작업이 무엇보다 어렵다는 권옹은 붓 만드는 일을 배우려는 문하생이 없다는 사실을 몹시 안타까워했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