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동아신춘문예/시조부문]당선소감 및 심사평

  • 입력 1996년 12월 31일 18시 15분


▼ 당선소감/김가영 ▼ 그 애가 생각날 때마다 망해사에 갔다. 죽음이란 깊은 이별을 절감하면서 다시는 볼 수 없다는 비애를 느껴야 했다. 살아있으면서의 이별이란 슬픔이지만 죽음은 캄캄한 절망이었다. 그러나 빈 폐허에서 주워 온 몇개의 돌과 나는 대화를 나누면서 생(生)도 사(死)도 어쩌면 하나라는 생각을 했다. 천년 전의 만남이 천년 후에 다시 만나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 그리고 지금의 나는 천년 전에 어떤 모습이었을까 하고 거울을 보았다. 갑자기 몹시 나의 얼굴이 낯설어 보였다. 어쩌면 망해사에서 환상으로 본 그 서라벌 여인이 나는 아닐까? 하는. 오늘과 내일, 그리고 과거의 구분은 어떻게 지어지는 것일까. 그리고 어디로 사라지는 것일까. 시간을 탑으로 쌓아올린 신라의 탑앞에서 나는 생의 영원을 꿈꾸곤 했다. 사랑하는 그애. 그애의 명복을 비는 마음으로 울적할 때마다 그곳을 갔다. 아마 지상에서 내가 그애의 숨결을 들을 수 있었던 유일한 공간이 아니었을까. 흰눈이라도 내렸으면 좋겠다. 어쨌든 너무 늦게 온 시의 답(?)이지만 나는 지금 이 순간 기쁘다. 그애와 이 기쁨을 나누고 싶다. △58년 서울출생 △방송통신대학 국문과 재학중 △출판사 재직 ▼ 심사평/이근배 ▼ 시조는 모국어를 가장 아름답게 담아내는 시형식이다. 여기서 아름답다는 것은 시대의 아름다움이고 시대의 새로움이다. 시조의 형식은 닫혀있는 것이 아니라 열려있는 것이며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그 가능성을 새롭게 캐내는 힘은 작은 노력으로는 얻어질 수 없다. 올해의 응모작품을 읽으면서 안타깝게 생각한 것은 시조에 대한 의욕은 앞서 있으나 정작 모국어를 어떻게 새롭게 가꿀 것인가에 대한 천착(穿鑿)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당선작 「대패질을 하다가」(김가영)는 언어를 깎고 다듬는 대패질이 고루 섬세하게 이뤄진 작품은 아니었다. 그러나 대패에 깎이고 있는 나무를 통해서 들려주는 삶의 증언이 호소력을 지니고 있었다. 다루기 어려운 대상을 큰 무리없이 형상화시킨 힘을 사지 않을 수 없었다. 전체적 구성과 각 장의 이음새에 틈이 보였으나 앞으로 한 몫을 해낼 재목이라고 생각되어 당선작으로 올려 놓았다. 이 밖에도 「고사목(枯死木)」(박정애) 「환원」(인현후) 「어떤 배역」(정우열) 「그숲의 이미지, 자음과 모음에 대하여」(이국희) 등이 개성있는 기량과 힘든 주제를 들고 나왔으나 상대평가에서 뒤로 밀리고 말았다. 걸음을 멈추지 말고 정진하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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