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야의 세상읽기]제대로 튀어라

  • 입력 1996년 11월 22일 18시 44분


『여기가 한국판 할리우드 거리인가요』 며칠전 한국에 처음 온 외국인 친구와 함께 시내에 갔을때 찻집에서 창밖을 한참 내다보던 그 친구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보이는 여자마다 하나같이 예쁘고 아름다우니 예사 거리는 아니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런데 한 30분 쯤 지나니 그 친구, 더욱 놀랍다는 듯이 이렇게 물었다. 『이 근처에 토털 미용학원이 있나보지요』 하나 하나보면 멋진 아가씨들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아주 비슷한 복사판이라는거다. 원래 여행하는 사람에게는 다니는 곳의 특징이 그 곳에 사는 사람보다 훨씬 잘 보이는 법이라 나도 잠시 눈여겨 보니 그의 그런 반응이 무리가 아니었다. 염색한 생머리에 검은색 립스틱, 딱 붙는 상의에 부츠나 끝이 뭉퉁한 검은 신발일색이었다. 내가 이런 차림이 지금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이라고 대답하니까 그 친구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마치 유니폼을 입은 것같아요. 저렇게 똑같이 차려입은 사람끼리 마주치면 서로가 창피하다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그러나 나는 저 젊은이들은 오히려 저렇게 비슷하게 차려입고 다니지 못하는 것을 더 창피하게 느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우리가 20대일 때도 따라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거기에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다. 우리는 「외모의 획일화」를 강요받았다. 머리모양은 단발머리에 귀밑 1㎝, 옷은 교복한가지였다. 그 유일한 외출복인 교복조차 아무리 날씨가 덥거나 추워도 한날 한시에 입고 벗어야만 했다. 한마디로 개성이 없어야 착한 학생이었다. 그래서 졸업후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늘 남들과 비슷하게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강박관념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요즘 신세대들은 우리와는 확실히 다르다. 남과 다른 「튀는」 생각을 하며 기성세대에 자기들의 독특한 개성을 이해는 못해도 존중해 달라고 요구하는 젊은이들이 아닌가. 이런 그들이 유행이라는 올가미에 씌워 마치 공장에서 찍어낸 것 같은 「무차별 베끼기식」차림을 하고 다니니 도무지 아구가 맞지 않는다. 이걸 보면 이들의 자존심을 지켜준다는 「독창적인 사고방식과 표현의 다양함」이라는 것도 그저 말뿐이고 실제로는 점점 더 몰개성시대로 치닫고 있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든다. 개성이야말로 자기만의 멋으로 당당하게 살 수 있는, 나아가 사회를 이끄는 건강한 원동력이라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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