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성의 세상읽기]유치원 가는 엄마들

  • 입력 1996년 10월 21일 20시 58분


대낮부터 궂은 가을비가 쏟아졌다. 마침 집에 있던 나는 유치원에 간 아이가 돌아 올 시간이라 우산을 챙겨들고 나섰다. 아이들이 막 나올 시간이라 우산을 들고 온 엄마들이 유치원 앞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늘 그렇듯이 유치원에 가면 주로 엄마들 만 모이는지라 조금 거리를 두고 서서 우리 아이 나오기를 기다리던 나는 가슴이 답 답해졌다. 엄마들은 저마다 우산을 받쳐든 채 고개를 빼고 제 아이가 나오나 보느라 서로 다 투듯 부대끼고 있었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발을 동동 구르며 제 엄마를 찾아 부르 고 난리였다. 그런데 앞쪽에 선 엄마들은 뒤쪽에 선 엄마가 제 아이를 찾아 밀고 들 어오는데도 막무가내로 버티고 섰고 어떤 아이들은 비에 젖은 채 울기 시작했다. 그 렇지만 무리를 이룬 엄마들은 좀처럼 길을 내줄줄 모르고 제 아이 찾느라 정신이 없 었다. 간신히 우리 아이와 만나 집으로 오면서 나는 두 해도 더 지난, 아이가 처음 유치 원 가던 때 생각이 났다. 누구나 그렇듯이 이제 자라 유치원이라도 다니게 된 것만 도 대견하여 기꺼운 마음으로 손을 잡고 유치원에 데려다 주곤 했다. 첫주는 이른바 연습기간이라 유치원 환경에 익숙하라고 한시간 두시간씩만 다니게 되었다. 아이들은 유치원에 들어서서 고사리 손으로 따라온 부모, 대개는 엄마들에게 인사 하고 실내화로 갈아신고 들어가게 되어있다. 하지만 신발 양쪽을 바꿔 신곤 하는 네 살 또래의 아이들이 실내화 갈아신는 일에 익숙할 리가 없다. 아이들은 뒤뚱거리고 어떤 녀석은 제 신발 밟고 쓰러지고 야단이었다. 하기는 그런 시행착오를 통해 세 상살이를 배워가는 것이려니 하면서 역시 어려움을 겪는 우리 아이를 쳐다보며 천천 히 다시 해보라고 손짓을 해보이곤 아이들의 모습이 예쁘기만 해 흐뭇해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보다못한 몇몇 엄마들이 다가가 제 아이의 신발을 갈아 신 겨주고 있었다. 안타깝고 애틋한 마음에 도와주는 것이야 누가 무어랄 수 없다. 하 지만 그들은 제 자식 신발 갈아신기느라 옆에서 안간힘을 다하고 있는 다른 아이들 을 엉덩이로 밀어 쓰러뜨리는 것이 아닌가. 그러고도 제 아이 쓰다듬어 들여보내느 라 그 아이들 쓰러뜨린 것도, 또 다른 녀석이 울먹거리는 것도 전혀 의식하지 못하 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만 그때 생각과 비오는 날 엄마들의 우산다툼이 미워 괜스레 아이에게 신 경질을 부렸다. 의아해서 쳐다보는 녀석에게 또 괜히 미안해서 안아주다가 제자식 귀여우면 남의 자식 귀한 줄 알라던 간단한 옛말이 어찌 이리 실천하기 어려운가 한 숨이 나왔다.〈서강대교수·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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