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표와 ‘1호 당론 법안’의 운명 [오늘과 내일/김승련]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5월 17일 23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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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련 논설위원
김승련 논설위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반론의 여지 없이 ‘여의도 대통령’이 됐다. 국가 권력 서열 1.5위에 올라선 것 같은 기세다. 그런 이 대표가 1호 당론 법안으로 나눠주겠다는 이른바 ‘민생회복지원금’을 두고 갈지자 행보를 하고 있다. 민주당은 일주일 전만 해도 6월 국회 처리를 장담하다가, 이젠 고소득층을 제외하거나 정부 예산편성권을 침해 않는 쪽으로 선회할 여지를 두기 시작했다. 이 법안은 전 국민에게 1인당 25만 원을 지역화폐로 나눠주도록 정부에 강제한다는 것이다. 그 지역화폐는 연말까지 안 쓰면 소멸되는 만큼 저축할 수 없다.

정부가 쓴 나랏돈의 파급 효과는 연구가 대체로 끝난 상태다. 100원을 현금으로 주면 20원쯤, 도로 항만 등 사회간접자본(SOC)에 쓸 때는 40원쯤 기여한다고 한다. 주류 경제학자들은 금융위기나 코로나 등 극단적 위기가 아니면 현금성 복지에 부정적이다. 하지만 이 대표의 생각은 다르다. “지역 자영업자에게 다 써야 하는 지역화폐는 현금 살포가 아니다. 승수(乘數) 효과가 크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 그래서 궁금해졌다. 공짜 마다할 사람이 많지 않다는 점에서 폭발력 큰 이 정책을 두고 이 대표는 왜 절충안을 찾아나선 걸까.

‘전 국민 25만 원’ 갈지자 선회 이유 궁금


이 대표는 작전상일지라도 후퇴하지 않기를 바란다. 제대로 추진해 거대한 정책 논쟁을 주도했으면 좋겠다. 이 정책에 동의해서가 아니다. 정부와 국회가 국가 정책을 다룰 때 정치와 감정보다 숫자와 논리를 더 중시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전제 조건이 있다. 이 대표는 세금 13조 원을 한번에 투입하는 이 정책이 왜 우리 경제에 좋은지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하고, 그 결과에 책임져야 한다. 경제전문가들이 다들 반대하는데 오랜 시간 굽힘 없이 주장했다면 그 근거가 있을 것이다. 비주류 정치인이 아니라 여의도의 대통령이 된 지금 그 근거를 내놓을 때가 됐다.

때마침 민주연구원은 25만 원씩 지급하면 국내총생산(GDP)을 0.2∼0.4%포인트 증가시킬 것이라는 주장을 이번 주에 발표했다. 지난해 우리 경제성장률은 1.3%였다. 0.2∼0.4%포인트 추가 성장이면 꽤 큰 성장 기여인데 숫자 도출의 근거는 빠졌다. 실망스러운 것은 “연구자 개인 의견”이라면서 민주연구원은 빠져나간 사실이다. 대중의 뇌리에 ‘좋은 정책’이란 이미지는 심으면서도 사후 책임은 안 지겠다는 꼼수 아닌가. 만년 야당 시절엔 이런 게 이해 받았겠지만 이젠 곤란하다.

“성장에 기여”라면서도 민주연구원은 발 빼


이 대표는 민주연구원에 지시해 당 이름을 걸고 GDP 증대 효과가 저렇게 큰 것이 맞는지 명확하게 설명해야 한다. 동시에 금리와 물가를 소폭 상승시켜 경제적 약자의 부담을 키울 것이란 비판에도 구체적 반론을 펴야 한다. 또 취약계층을 두텁게 돕는 게 낫다는 국민의힘의 주장보다 전 국민 지급이 더 낫다는 점도 납득시킨다면 이 대표 지지 여론도 더 커질 것이다. 이 대표는 이를 직접 발표하고, 2∼4년에 걸쳐 사후 검증을 받겠다고 약속하면 좋겠다. 역대 어느 정치 지도자보다 정책에 강한 면모를 보여주고, “이재명은 포퓰리즘 정치인”이란 비판을 뛰어넘을 기회도 된다.

이런 설명의 의무는 이 대표만 질 일은 아니다. 25만 원 지역화폐에 반대하는 정부와 국민의힘 역시 반대 논리를 숫자로 설득해 보길 바란다. 국회 제1당이 낸 정책을 두고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한 것이 아니란 걸 입증시켜 줘야 한다. 재추진한다는 양곡관리법도 마찬가지다. 남는 쌀 매입에 매년 3조 원씩 투입해야 한다는데, 이 큰돈을 투입해야 하는 정책에 여건 야건 정교한 숫자 설명이 없었다.

이 대표에겐 지금 사법 리스크와 대통령 찬스가 모두 어른거린다. 위상이 달라진 그가 나랏돈 13조 원을 쓰자면서 어떤 책무감을 보여줄지 궁금하다.


김승련 논설위원 leon@donga.com
#이재명 대표#1호 당론 법안#책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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