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민주절차 무시한 '민주공원' 추진

  • 입력 2002년 5월 21일 18시 06분


정부가 비밀리에 민주열사묘역(민주공원)을 북한산국립공원에 만들기로 결정한 것은 그 의도와 과정에서 국민적 지지를 받기 어렵다. 민주공원 조성처럼 우리 현대사에서 역사성과 상징성을 지닌 중요한 사업일수록 행정절차가 투명하고 민의를 수렴해 이뤄질 때 더 가치를 갖게 된다. 공청회 한번 없이 청와대가 비공개로 관계부처 회의를 한 후 전격적으로 설치를 결정한 것은 옳지 않다.

민주공원 조성은 1999년 제정된 ‘민주화운동 명예회복 및 보상에 관한 법률’에 따라 추진되어 왔다. 민주화운동을 하다 숨진 300여명이 안장될 공원은 고인들의 고귀한 넋을 기리고 민주정신을 후대에 계승하는 교육장으로 의미가 있다는 점에 이론이 없다.

문제는 정부의 일 처리 방식이다. 무엇보다 공원부지를 비공개로 밀어붙이듯 결정한 것이 유감스럽다. 행정자치부 환경부 등 몇몇 부처와 지방자치단체 관계자들만 불러 4·19국립묘지 근처 북한산국립공원 안으로 부지를 잡고, 그로부터 한 달이 채 안 돼 그 지역을 국립공원에서 전격 해제한 것은 누가 보아도 올바른 행정이 아니다.

정부는 민주공원 조성이 대통령 공약사항이기 때문에 집권 중 서둘러 추진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공약사항이라고 해서 여론을 무시해도 좋은 것은 아니다. 그럴수록 관련사항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공청회 등을 거쳐 국민의 공감 속에 진행하는 것이 순서다. 그러나 민주공원이 들어설 지역의 주민에게조차 사전에 알리지 않았다. 이 바람에 지역주민들이 반대운동을 벌이기로 했다니 정부의 밀실행정은 결과적으로 민주열사를 추모한다는 취지까지 훼손시킨 격이다.

굳이 북한산국립공원 안을 부지로 잡은 것도 문제다. 당초 후보지로 검토했던 지역이 이런저런 반대에 부닥치는 바람에 주민 반발이 덜한 국유지로 결정한 것으로 보이나 이 또한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에 지나지 않는다. 북한산국립공원은 각종 위락시설이 난립하고 관통터널 공사 등으로 가뜩이나 훼손 우려가 끊이지 않고 있는 곳이다. 그런 터에 정부가 앞장서 8300여평을 국립공원에서 해제해 묘역을 만들겠다는 것은 환경보호에도 역행하는 처사다.

서두를 일이 아니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여론 수렴 절차를 밟아야 한다. 유가족들까지 반대하는 지금의 장소를 고집할 게 아니라 공청회 등 민주적 절차에 따라 국민의 합의를 도출해 새로 민주공원 부지를 선정해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민주공원을 조성하는 참뜻에도 부합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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