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은 하나” 유로시대]④“다음은 정치 통합” 부푼꿈

  • 입력 2002년 1월 3일 17시 58분


프랑스 황제였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1807년 5월에 쓴 한 서한에서 “모든 유럽이 같은 돈을 쓰는 체제가 확립되면 역내 무역에 대단히 유리할 것”이라고 썼다. 나폴레옹의 구상은 200년 가까이 흐른 오늘 유럽에서 현실로 다가왔다.

미국보다 좁은 땅덩어리에 수많은 민족과 국가가 모여 사는 서유럽에서는 오래전부터 시장과 경제, 더 나아가 정치까지 통합하려는 움직임이 있어 왔다. 이 같은 통합 추진 과정에서 유로화 출범은 단순한 돈의 통합 이상의 정치적 의미를 갖는다.

▼글 싣는 순서▼

- <1>희망에 부푼 유럽12개국
- <2>유로화 출범 12개국 표정
- <3>12개국 통용 첫날 이모저모
- <4>“다음은 정치 통합” 부푼꿈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지는 “유로화 통용으로 추상적인 그림에 불과했던 유럽연합(EU)이 일반 시민의 호주머니로 미끄러져 들어왔다”고 지적했다. 같은 돈을 사용함으로써 생기는 동질감과 정체성이 유럽 통합이라는 궁극적 목표에 한발 더 다가가게 했다는 것.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구체화되기 시작한 ‘하나의 유럽’에 대한 꿈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구체적인 밑그림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열린 독일과 프랑스의 정상회담에서 양국은 EU가 지금 같은 느슨한 국가연합 형태가 아니라 미국과 같은 연방국가로 발전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이에 앞서 요슈카 피셔 독일 외무장관은 유럽이 단일 헌법과 정부,상하 양원으로 구성된 유럽의회와 대통령 직선제 등을 갖춘 연방국가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근 유럽 정상회의는 유럽 연방국가 헌법의 뼈대가 될 권리장전의 초안을 채택했으며 화폐 통합에 이은 세금 통합 문제도 논의 중이다.

유로화 정착의 성공을 위해서도 정치 통합이 불가피하다는 주장도 있다. 라르스 조눙 스톡홀름 경제학 스쿨 교수는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 등 6개국이 1865년에 실시한 라틴 통화동맹과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의 1874년 스칸디나비안 통화동맹이 실패한 원인은 정치적 결집력이 결여됐기 때문이었다”며 “정치 통합은 단일 통화체제를 붙이는 풀과 같다”고 말한다.

물론 유럽이 ‘유럽 합중국’의 탄생이라는 이상을 실현하기까지 넘어야 할 산은 높고 험난하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보여준 유럽연합의 분열상과 군사력의 한계, 유로화 대열에 동참하지 않은 영국과 덴마크 스웨덴의 독자노선 고수 등 풀어야 할 숙제가 산적해 있다.

하지만 유로화 출범 초기의 들뜬 기운과 유로화 초기 강세에 힘입은 유럽에는 정치 통합까지 낙관하는 분위기가 번져가고 있다. 호르스트 쾰러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유로화 통용이라는 역사적 이정표는 유럽의 정치 통합 노력을 강화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파리〓박제균특파원 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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