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월급 예나 지금이나 쌀 4가마값”

  • 입력 2001년 12월 24일 17시 36분


“비록 적은 돈이지만 나라에서 주는 ‘녹봉’을 어떻게 함부로 쓸 수 있겠어요. 아껴 쓰다 보니 월급이 부족하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어요.”

조교환(曺校煥·58) 서울 영등포수도사업소장은 1967년 2월 공무원 생활을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월급봉투를 모아 보관 중이다. 그는 올 7월 서울시가 발표한 ‘최장기간 월급봉투 보관자’다. 조 소장은 “소중한 월급이 담긴 봉투라서 버리지 못했다”고 말했다.

24세의 나이로 서대문구 녹신2동사무소(현 응암4동사무소)에서 5급을(현재 9급) 조건부 지방행정 서기보로 시작한 공무원 생활은 35년째로 이제 정년에서 2년 정도만 남았다.

모은 월급봉투도 두께를 더해 벌써 400장이 넘었다. 초기 두 달치 월급봉투는 아쉽게 잃어버렸다. 그가 갖고 있는 누런색의 1967년 4월치 월급봉투의 명세는 이렇다.

‘본봉 4180원, 근무수당 1000원, 직책수당 2810원, 세무수당 1846원.’ 여기서 소득세 615원, 기여금 170원, 상조회비 20원 등을 공제하고 그가 당시 손에 쥔 월급은 8319원. 쌀 4가마를 사고 돈이 조금 남는 정도였다.

68년 4월 월급이 1만원대로 올랐고, 5만원대가 된 것은 7급 주사보 시절인 75년 5월. 월급봉투나 지급 방식에도 변화가 많았다.

71년 10월부터는 월급봉투 위쪽에 ‘매달 25일은 저축의 날’이라고 인쇄돼 있었다. 60, 70년대에는 손으로 명세를 쓴 노란 봉투에 돈을 담아줬다. 이 때문에 일부 동료는 돈을 떼고 가짜 월급봉투를 만들어 집에 갖다주기도 했다는 것.

특히 95년 1월부터는 명세서만 주고 돈은 은행계좌로 직접 입금돼 월급봉투의 의미는 사실상 사라졌다. 조 소장은 “집사람에게 월급을 ‘진상’하면서부터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누가 챙긴다’는 속담이 그렇게 실감날 수 없었다”고 말했다.

4급 28호봉이 된 지금 월급은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과분한 수준’. 올 10월치 월급명세서를 보니 본봉 194만원 등 270만원가량이 실제 수령액이다. 그는 월 평균 100만원 정도인 상여금을 보태면 부친(89세)과 부인, 미혼인 세 자녀 등 여섯 식구가 먹고사는 데 아무런 불편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현재 서울시 9급 초임(1호봉) 공무원의 본봉은 48만5100원. 수당과 상여금을 다 합치고 초과근무를 해도 수령액은 90만원 안팎이다.

조 소장의 초봉보다 100배 올랐지만 덩달아 물가도 뜀박질해 지금도 80㎏짜리 쌀(상품) 4가마를 사면 조금 남는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나 조 소장은 “아무리 박봉이라 해도 공직을 천직(天職)으로 생각하고 아껴 쓰면 부정을 저지르지 않고도 살 만하다”고 밝혔다.

<정경준기자>news9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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