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날]교단서 쓰러진 '강의 열정'…제자 발 씻어주는 '헌신'

  • 입력 2001년 5월 14일 18시 48분


전시회에 학생들과 함께한 신교수(사진제공 한양대)
전시회에 학생들과 함께한 신교수(사진제공 한양대)
지난달 30일 오전 2시 경기 과천시 별양동 주공아파트 503동 1402호. 한양대 도시대학원 도시건축설계학과 신기철(申基喆·51) 교수의 서재에는 불이 꺼질 줄 몰랐다.

왼손 만으로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며 이틀 뒤 열릴 전시회 자료를 준비하던 신 교수의 눈앞이 갑자기 캄캄해졌다. 그의 상체가 책상으로 천천히 수그러졌다. 그리곤 일어나지 않았다.

11일 오전 10시25분 경기 평촌 신도시의 한림대 성심병원 중환자실. 의식불명이던 신 교수는 끝내 눈을 감았다.

99년 4월 강의 도중 갑작스러운 뇌출혈로 쓰러져 오른쪽 팔과 다리가 마비되고 정상적으로 말도 할 수 없었던 신 교수. 그 뒤 1년간의 각고 끝에 지팡이에 의지해 강단에 다시 섰지만 두 번째 닥친 뇌출혈에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75년 서울대 건축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명지대를 거쳐 한양대에서 교수로 있는 동안 그는 공부밖에 모르는 사람이었다. 시간이 아까워 외부인들과의 접촉은 물론 운동도 거의 하지 않았다. 지난해 1년 만에 다시 강의를 맡으면서도 주 18시간의 강행군을 스스로 택했다. 왼손으로 빼뚤빼뚤 필기를 해가며 어눌한 말투지만 열정적인 강의를 하는 동안 6시간 짜리 설계수업은 8시간, 10시간을 넘기기 일쑤였다.

이번 학기에는 이런 열정적인 수업의 연속과 도시건축작품전시회 준비에 온 정열을 바친 것이 한달여 이상 계속됐다. 그의 몸은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스승의 날을 하루 앞둔 14일 오전 한양대부속병원에서 열린 신 교수의 영결식에는 동료교수들과 학내·외 제자 100여명이 참석해 고인의 마지막 길을 지켜봤다. 신 교수는 부인 박복림(朴福林·51)씨와 딸 서원씨(22·한양대 도시건축학과 3년) 등 1남2녀를 남겼다.

<민동용기자>mindy@donga.com

▼한빛고 2년째 '세족식' 사제의 정 키워▼

한빛고 학생들이 선생님과 함께 학교 뒷편
텃밭을 가꾸면서 즐거운 한 때를 보내고 있다.

전남 담양군 대전면 행성리 한빛고등학교.

전국에서 유일한 인문계 특성화학교인 이곳에서는 부활절 주간이면 매우 색다른 의식이 치러진다. 학교 뒷산에서 흘러나오는 약수로 선생님들이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는 ‘세족식(洗足式)’ 행사를 갖는 것. 전교생 286명과 교사 22명 등 ‘학교 식구’가 모두 참여하는 이 행사는 올해로 두 번째.

“기성세대에겐 그 옛날 선생님들이 베풀어 주신 사랑이 도시락의 온기처럼 따스한 그리움으로 남아있지요.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면서 체온을 통해 바로 그 사랑을 전해 보자는 게 세족식의 취지입니다.”

정송남(鄭松南·46) 교사는 처음에는 학생들이 발을 내미는 것조차 쑥스러워 하지만 세족식이 끝나고 나면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특별한 유대감을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선생님과 학생들의 사이가 유별난 이 학교에서는 선생님이 아니라 학생들이 선생님 댁을 ‘가정방문’한다.

서호필(徐豪筆·37) 교사는 이 때문에 일주일에 한 번 꼴로 ‘홍역’을 치른다. 수업을 마친 학생들이 무턱대고 찾아오는 바람에 집에 음식이 남아나질 않는다. 집이 학교와 가까워 하룻밤을 묵고 가는 학생들과 함께 출근하는 일도 다반사라고 한다.

사제지간의 정은 해마다 두 차례 떠나는 테마여행을 통해 더욱 끈끈해진다. 1학년 신입생의 경우 5월 말에 3박4일 일정으로 지리산 종주에 나선다.

학생회장 박정범군(19·3년)은 “지리산을 오르다 보면 발이 부르터 고생하는 친구들이 한 둘이 아니다”며 “물집이 심해 걷지 못하는 학생을 업고 지리산을 종주하는 선생님을 보고 숙연한 기분마저 들었다”고 말했다.

<담양〓정승호기자>shju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