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득헌의 스포츠 세상]"역시 뛰길 잘했다"

  • 입력 2001년 3월 19일 18시 57분


“다음주에 만날 수 있을까. 나이도 생각해야지.” “달리다 힘들면 포기하도록 해. 무리하지 마.” “마라톤하는 날 비가 오면 진행에 어려움이 있겠지만 자네를 생각하면 비가 오는 것도 괜찮을 텐데. 출전하지 않을 것 아냐.”

엊그제 열린 동아마라톤 풀 코스 도전 소식을 들은 친구들의 농담이 지난주 내내 귓가를 맴돌았다. 말하자면 스트레스였다. 하지만 ‘그래 한번 보여주지’란 생각도 떠나지 않았다. 내심 믿는 구석도 있었다. 지난해 하프코스를 달린 경험도 있고 달포간 나름대로 대비했기 때문이다.

과연 어떨까. 끝까지 달리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을까. 아니면 주저앉는 일이 생길까. 마라톤 풀 코스는 내게는 호기심과 불안감을 함께 안겨주는 미지의 세계였다. 연습 때도 풀 코스 거리를 달려본 적은 없었다. 25∼30km를 몇 차례 달려 보았지만 사실 30km 이후 어떤 경험을 하게 될지는 알 수 없었다.

마라톤에서는 30km 이후를 생각해야 한다는 말을 되새기며 달리기에 나섰다. 등에 풍선과 4시간30분의 표시를 단 페이스메이커의 뒤에서 달리다 마음을 바꾸었다. 완주가 목표이긴 했지만 그래도 마음에 둔 시간은 4시간10분이기 때문이었다. 절반 넘은 곳에 응원을 나온 가족을 만날 때까지는 기분 좋게 달렸다.

그러나 철저한 준비에 따른 계획이나 예상도 늘 차질이 있기 마련. 하물며 30km 이후의 세계는 ‘되겠지’라는 막연한 기대에 따른 예상이었으니. 결국 33km 지점부터는 걷다가 달리기를 되풀이할 밖에 없었다. 달리기가 즐거움인가. 나보다 훨씬 잘 뛰면서도 하프코스에만 출전하는 헬스클럽 회원의 생각이 맞을지도 몰라. 줄기차게 달리는 저 사람들은 어떻게 연습했을까. 마라톤 선수의 고통도 이럴까. 올해도 나란히 달리기로 했던 분이 갑자기 출전할 수 없게 되지 않았다면 쉬지 않고 달릴 수 있었을까. 어차피 마라톤은 혼자 달리는 것 아닌가.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결승선이 있는 잠실경기장이 보이는 38km 지점. “이젠 달리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어요”라며 추월하는 출전자의 말에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래, 자신을 알지 못한 결과이다. 30km 이후에 대해 조금도 모르면서 그냥 기대를 하다니. 아무튼 물구나무를 서더라도 제한시간 내에 완주는 해야겠지.’

마음먹었던 시간보다 30분이나 더 걸려 골인. “완주하셨어요”라는 황영조씨의 인사는 ‘신체적 강인함 이상이 필요한 게 마라톤’이라는 말로 다가왔다. 세상에 홀로 서는 법도 생각게 하는 마라톤. 다시 뛴다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역시 도전해보길 잘했다.

<논설위원·체육학박사>dhy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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