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고진화의원 “국회를 배회하는 일곱가지 유령들”

  • 입력 2004년 11월 1일 16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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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감사가 끝나고 이제 지난 1년간 정부의 정책집행을 총체적으로 점검하고 2005년도 국가예산안 심사와 국정의 방향을 결정하는 국회가 본격 시작되었다. 그러나 국회는 시작부터 파행을 거듭하며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국정감사 초기의 정쟁과 무분별한 폭로전에 신물 난 국민들은 그나마 국정감사 후반기의 변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이번 국감을 성과와 한계를 지닌 국감으로 나름대로 후한점수를 주었다.

그러나 대정부질문 초입부터 시작된 여야의 대결과 상쟁을 지켜보는 국민들은 과연 어떠한 심정으로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을까? 또 “지긋지긋한 싸움국회” “제 버릇 남 못주는 국회”라는 자조석인 탄식과 “민생은 또 실종되고 마는가” “제발 국민들 좀 생각하라”는 조롱과 분노 그 자체이다.

여의도를 배회하는 구태정치의 유령들이 존재하는 한 대한민국의 국회는 국민들의 분노와 조롱의 대상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17대 국회가 또다시 코미디의 산실이 되지 않으려면 초선의원들은 국회를 배회하는 구태정치의 유령들의 실체를 파악하고 초심과 정의의 정신으로 이 유령들과의 전면적인 싸움에 나서야 할 것이다.

국회를 배회하는 일곱가지 유령들

첫 번째로 등장하는 구태정치의 유령은 여야는 싸워야 한다는 상쟁유령이다. 윈-윈, 포지티브 섬게임의 새로운 발상과 비전과 정책경쟁이라는 선진정치의 실체는 보이지 않고 구호와 깃발만이 난무하더니, 이제는 구호도 깃발도 보이지 않고 희미한 메아리만 귓전에 맴돈다. “싸우면서 키 큰다”는 초등학생들의 유치한 논리가 정치권의 중심부에 확고히 자리 잡고 있다니 참으로 어이가 없고 기가 막힐 노릇이다.

두 번째로 등장한 구태정치의 유령은 집권당의 오만유령이다. 이번에는 야당의 콧대를 꺽어 놓고 기 싸움에서 확실히 이겨야 한다는 집권당의 오만은 자신들의 지난1년의 국정운영을 겸허히 되돌아보고 국민의 평가에 기초한 자성과 성찰을 통해 또 다른 1년을 준비한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국민정서를 여지없이 무너뜨렸다. 훌륭한 리더일수록 정책수행을 잘한 모범생 일수록 여유가 있고 포용력이 있어야 마땅하지만 국민들에게 자신들의 치부를 드러내고 싶지 않은 정부는 항시 오기를 부리고 선제공격을 통해 국민들의 비판적 시각을 차단하고 자신들의 정당성을 획득하려 한다.

세 번째로 등장한 유령은 색깔론 유령이다. 조목조목 따지고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것을 통해 국민의 신임을 되 찾아와야 하는 것이 야당 본연의 자세이지만 이는 말뿐이고 실상은 실체도 없는 좌파정권, 주사파, 386애들정권, 친북반미정권 등의 해묵은 색깔론 재탕이다. 상대를 이토록 추상적이고 원색적인 몇 마디 단어로 비난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야당의 모습 속에는 “우리는 준비되어 있지 않다. 우리는 당신들의 실체를 정확히 파악하고 정책을 하나하나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할 준비가 안 되어 있어 선험적인 이념논쟁을 전개할테니 당신들은 그에 걸 맞는 수준의 답변을 해다오”하는 자기고백이 담겨져 있다. 또한 이 사고 속에는 자기반성과 전략적 관점은 온데간데없는 심정적 감상적인 낡은 이념집착증 환자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네 번째로 등장한 유령은 반사이익만능 유령이다. 상대방의 약점을 공격하는 것을 통해서 고정지지자들에 대한 한풀이와 카타르시스를 이루고 이를 자신의 지지로 결집시킨다는 한국정치의 오랜 관행으로 자리잡은 반사이익만능 유령은 대안정치 정책경쟁의 기본정신을 송두리째 부정해 버렸다. 남의 것을 배우고 격려하고 남의 비판을 겸허히 수렴하여 자신의 발전을 위한 밑 걸음으로 삼는다는 “3인행이면 필유아사”(三人行이면 必有我事)라는 중등학교 교과서 수준의 교훈도 체득하지 못한 국회의 모습은 이 반사이익만능 유령의 산물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다섯 번째 유령은 지역주의 유령이다. 깨질 듯 깨질 듯 그러나 아직도 건재한 지역주의 유령은 표를 먹고 사는 국회의원들에게 가장 무겁게 다가오는 유령이다. 소신껏 한 발언이 지역구에 가면 배신자가 되고 훌륭한 의정활동도 지역이익에 부합하지 않으면 반주민적으로 내모는 지역주의 망령은 국회가 지역이기주의와 기득권 유지의 방향으로 흐르게 하는 결정적인 유령이다. 국익보다는 특정지역의 기득권세력을 옹호해야만 선량으로 취급해주는 지역주의 망령은 낡은 구태의 대표적인 망령이다. 국회회기 중에도 지역구 행사를 챙기지 않으면 훌륭한 국회의원이 될 수 없고, 국토전반의 이해나 균형발전을 도모함이 없이 지역구민의 이해를 철저히 챙겨야 또다시 당선될 수 있다는 풍토가 만연하다. 지역주의 유령의 위력은 특정지역의 기득권 수호와 결합하여 패거리정치를 형성하면서 국회의원들의 자유로운 국회활동의 족쇄로써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다.

여섯 번째 유령은 당론우선유령이다. 헌법에는 분명히 국회의원은 국익우선의 원칙과 양심에 따른 활동을 우선해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지만 이를 지키려 했다간 정치권의 이지메를 당하기가 십상이다. 당에서 정한 당론( 많은 경우는 당 지도부의 일방적 의견)의 옳고 그름을 따져볼 여유도 없이 사안이 발생하면 일종의 지침적 성격의 당론이 내려온다. 국민의 생활과 직결된 사안은 대도록 늦게 그러나 논란의 소지가 있는 이데올로기적 사안은 신속하게 내려오는 것이 보통이다. 여든 야든 초선의원들은 이 당론우선의 유령 때문에 속 알이 한번 안 해본 사람이 없다. 헌법에 따른 양심과 소신은 당론 앞에서 한없이 작아져야 만 하는 당론우선 유령은 다선중심의 기득권 유지를 위한 기재로써 훌륭히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여의도의 유령 중 가장 고약한 유령은 바로 일곱 번째로 등장한 잘못된 다선의원 따라 배우기의 관습법유령이다. 17대 국회가 시작할 때만 해도 변화와 개혁을 말하지 않으면 못난 의원 소리를 들을 까봐 초선들은 하나같이 변화와 개혁을 주창했다. 그러나 요즈음은 어떤가? 어느덧 지도부나 다선의원들이 보이던 과거의 관습을 그대로 닮아가고 있다. 국회에서 상대방에 대해 고함치기(안치면 배신자), 여당의원은 정부 봐주고 야당의원은 정부조지고, 약한 상대는 마음껏 두들기고 쌘 상대는 살살 조심스럽게, 그리고 당의 입장을 가장한 대결주의와 선동적 구호의 선봉장으로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그러나 확실하게 관습법유령의 망령에 물들어 가고 있다

초선의원들이여 국회를 배회하는 유령들과의 전면전을 준비하자

이제 17대의 초선의원들은 국회를 배회하는 유령들과의 전면전을 준비해야 한다. 국민의 뜻에 따라 헌법에 충실한 국회의원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 낡은 정치적 유령들과의 투쟁에 나서야 한다. 또 다시 과거와 다를 바 없는 국회라는 평가와 국민들의 분노에 직면하여 덤으로 낡은 정치의 희생물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관습법 유령을 비롯한 국회주변의 낡은 유령들과 당당하면서도 근본적인 투쟁을 하여야 한다. 국회가 중단되는 일은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 할 수 없다. 또한 예산안과 연계투쟁, 장외투쟁, 파행, 정쟁 등등의 낡은 정치를 이번만은 반드시 극복해야 한다. 17대 국회는 국민들의 변화와 개혁의 열망의 결과물이다. 상쟁의 국회를 상생의 국회로, 오만과 오기의 국회를 자성과 화합의 국회로, 색깔론과 반사이익 추구의 국회를 대안과 정책경쟁의 국회로, 지역주의와 당론우선의 국회를 국민우선과 헌법정신에 충실한 국회로 전면적으로 바꾸어내야 한다. 과거의 낡은 유령들에 맞서 권력의 원천인 국민의 바램과 뜻을 따르는 길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17대 국회의 초선의원들이 과거의 구태정치 유령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하지 못한다면 우리 국민들은 정치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고야 말 것이다.

대한민국 국회의원 고 진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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