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당선자 TV토론]총선후 프랑스式 이원집정제 추진

  • 입력 2003년 1월 19일 18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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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당선자가 18일 KBS 1TV가 단독 생방송한 ‘노무현 대통령당선자와 함께’에 출연해 북한 핵문제 등 현안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강병기기자
노무현 대통령당선자가 18일 KBS 1TV가 단독 생방송한 ‘노무현 대통령당선자와 함께’에 출연해 북한 핵문제 등 현안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강병기기자
《노무현(盧武鉉) 대통령당선자는 18일 밤 KBS1 TV가 생중계한 ‘노무현 대통령당선자와 함께’에 출연해 1시간50여분에 걸쳐 새 정부의 국정 운영기조에 관한 자신의 구상을 소상하게 설명했다.

노 당선자는 정당의 지역구도 극복을 위한 제도적 장치로 중대선거구제 도입과 비례대표제 확대를 제안했고, 2004년 17대 총선 이후에는 이를 전제로 해 프랑스식 이원집정부제 형태의 국정 운영을 약속했다. 그는 또 ‘개혁 대통령-안정(安定) 총리’ 기조에 맞춘 새 정부의 첫 국무총리 인선 방침과 대통령비서실 개편 방안, 북한 핵 해법과 한미관계, 대기업 규제 및 빈부격차문제 등에 대한 생각도 밝혔다.

KBS측은 “이날 토론은 정치개혁, 경제문제, 북핵 해법, 인수위 관련문제 등 크게 4가지 분야로 나눠 질문하겠다는 요지만 노 당선자측에 전달했을 뿐 사전에 구체적인 질문 요지는 알려주지 않았다”고 밝혔다.》

▼2단계 분권▼

노무현(盧武鉉) 대통령당선자는 내년 4월 총선을 전후로 한 ‘2단계 분권(分權)론’을 제시했다.

총선까지는 당정분리 원칙에 따라 대통령이 정당을 지배하지 않는 1단계 분권체제로 가고 총선 후에는 다수당에 총리지명권을 주는 2단계 분권형으로 발전시키겠다는 것이다.

현행 순수 대통령제를 총선 후에는 과반수 의석을 확보한 다수당에서 총리를 지명토록 함으로써 책임총리제도를 실시하겠다는 구상이다. 프랑스식 분권형인 이원집정제가 노 당선자가 총선 이후에 구상하는 정당과 정치개혁 방안인 셈이다.

그는 대선 후 열렸던 민주당선대위 연찬회에서 ‘지역구도 극복’ 필요성을 제기한 데 이어 이번 TV 토론에서는 “어느 한 정당도 특정지역에서 70∼80% 이상을 석권하지 못하도록 하는 제도를 갖춰야 한다”며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했다. 특정지역 ‘싹쓸이’를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 중대선거구제 도입과 함께 비례대표 의석 확대 방안을 제시한 것이다.

그러나 노 당선자의 이런 구상은 국회 논의과정에서 ‘현실의 벽’에 부딪힐 공산이 크다. 98년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추진하려 했지만 국회에서 특정지역 출신이 다수를 차지하는 한나라당과 민주당 의원들의 반대에 부딪혀 입법이 좌절된 바 있다.

노 당선자는 대선 과정에서 국민통합21 정몽준(鄭夢準) 대표와 논란을 빚었던 권력분산형 개헌 문제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노 당선자는 “정치수준이 낮으면 내각제도, 대통령제도 실패하고 정치수준이 높으면 내각제든 대통령제든 다 성공한다”면서 개헌에 굳이 집착하지 않겠다는 뜻을 비쳤다.

최영해기자 yhchoi65@donga.com

▼총리 인선기준▼

새 정부의 첫 국무총리 인선에 대해 노무현(盧武鉉) 당선자는 대선 승리 직후 자신이 밝힌 대로 “안정 총리로 가야 할 것 같다”고 못박았다.

최근 노 당선자측 내부에서 “개혁성도 고려해야 한다”거나 “국회 청문회와 임명동의안 통과가 최우선이다”는 목소리가 나온 데 대해 ‘안정 총리’ 기조에 변함이 없음을 분명히 한 셈이다.

그는 “선박이 항해를 하면서 계속 내부수리를 하는 것처럼 대통령은 수리를 맡고, 항해는 안정된 항해사가 맡아서 국정이 기존의 흐름대로 안정되게 가야 한다”고 비유하면서 ‘개혁 대통령-안정 총리’론을 다시 거론했다.

한 방청객이 “과거 총리를 지낸 인물은 재기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의견을 낸 데 대해서도 “똑같은 물건이라도 짝을 어떻게 짓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나와 짝을 맞췄을 때에 어떤 총리가 가장 알맞느냐를 따져야 한다. 내가 ‘몽돌’처럼 생긴 돌이라면 총리는 그 돌을 잘 받쳐주는 나무받침대 역할을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노 당선자는 이어 “가혹한 언론의 검증을 받거나 청문회에서 곤란한 지경이 되더라도 그런 점에 대해서는 사전에 각오하면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같은 총리 인선 기준에 대한 언급을 두고 노 당선자측 내부에서는 사실상 노 당선자가 고건(高建) 전 총리 쪽으로 마음을 굳힌 것 같다는 해석이 주류를 이뤘다. 고 전 총리가 국정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오랜 행정경험을 갖춘 데다, 과거 총리직을 지낸 적이 있더라도 개혁성이 강한 자신과의 조합에 따라 다르게 평가될 수 있다는 점을 언급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 일각에서 고 전 총리의 몇 가지 단점을 집중적으로 거론하면서 김원기(金元基) 고문을 강력히 천거하고 나섰지만, 노 당선자가 “가혹한 검증도 각오하겠다”고 말한 것은 고 전 총리를 둘러싼 ‘단점’까지도 분명하게 검증을 받겠다는 취지라는 해석이 많았다.

노 당선자의 한 측근은 “노 당선자는 여러 가지를 고려한 끝에 한번 마음을 정하면 결심을 잘 바꾸지 않는 스타일이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노 당선자 주변에서는 “2, 3명의 후보를 놓고 막바지 검증 작업을 벌이고 있다”는 말도 여전히 흘러나왔다.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청와대 운영▼

노무현 당선자는 청와대 운영에 대해 언급하면서 ‘열린 청와대’ ‘토론하는 청와대’를 강조했다.

그는 대통령에게 정확한 정보가 전달되지 못하는 현상을 청와대 운용의 가장 큰 문제로 꼽았다.

노 당선자는 “장관 위에 대통령 수석비서관이 있는 것 같은, 또는 대통령과 장관 사이에 수석비서관이 끼어 있는 것 같은 구조 때문에 장관이 두 사람인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수석의 뜻이 대통령의 뜻인양 혼선이 빚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지시는 장관에게 직접 하겠다”며 장관 위에 수석이 있는 피라미드 구조를 배제할 방침을 분명히 했다.

또 노 당선자는 청와대 비서진을 철저히 ‘참모형’으로 꾸려 대통령과 토론하면서 보좌토록 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대통령과 참모들 사이에 거리가 너무 멀어 대통령이 고립돼 있다”면서 “비서실 구조부터 개편해 출근해서 복도를 지나가면서 이 방, 저 방, 비서방에 들어가서 토론도 하고 의심스러운 것이 있으면 즉시 부르고 비서들도 대통령의 지시에 대해 토론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비서실장의 국정개입을 막기 위해 비서실장 역할은 철저히 정무기능에 국한하고 정보는 대통령이 직접 전달받는 직보 체제를 통해 정보 전달과정이 왜곡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민정수석과 정무수석 상황실 등이 중간에 하나로 통합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의지도 내비쳤다.

한편 대통령비서실 인선과 관련, 민정수석에는 한때 법무부장관으로 거론되던 문재인(文在寅) 변호사가 발탁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해진다.

정책기획수석에는 김진표(金振杓) 인수위 부위원장과 김병준(金秉準) 인수위 정무분과 간사, 박세일(朴世逸) 서울대 교수 등이 거론되며 신설될 홍보수석에는 이병완(李炳浣) 인수위 기획조정분과 간사와 정순균(鄭順均) 인수위 대변인이 후보로 올라있다. ‘대통령의 입’ 역할을 할 대변인에는 여성 배려 차원에서 김현미(金賢美) 당선자부대변인이 거론되는 가운데 당선자의 의중을 잘 아는 윤태영(尹太瀛) 비서실 공보팀장도 물망에 올라 있다.

또 노 당선자의 386 핵심참모인 이광재(李光宰) 비서실 기획팀장이 국정상황실장에 기용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최영해기자 yhchoi65@donga.com

▼프랑스식 이원집정부제▼

대통령과 국무총리가 권한을 분담하는 ‘분권형 대통령제’의 대표적인 유형이다. 대통령은 국가원수로서 통일 외교 국방 안보 등 외치(外治)만 맡고 평시에는 총리가 경제 치안 복지 등 내정을 통치한다. 총리에게 각부 통할권, 국무위원 제청 및 해임건의권 등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총리는 대통령의 지명과 국회 인준으로 임명된다. 그러나 대통령은 국가 비상사태시 조건 없는 국회해산권 및 긴급명령권 계엄선포권 등 ‘비상 대권’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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