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 對 노무현]<3>금전관

  • 입력 2002년 12월 5일 18시 29분


▼이회창 후보▼

“최근 한 대기업에서 거액의 정치자금을 제공하겠다고 제의해왔습니다. 다만 이회창(李會昌) 후보도 돈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는 조건을 제시했어요.”

한나라당의 한 당직자는 “이 제의를 받은 핵심측근이 이 후보에게 보고했지만 이 후보는 묵묵부답이었다”면서 “이 후보가 사실상 거부 의사를 밝힌 것이기 때문에 결국 없었던 일로 해 버렸다”고 전했다.

한나라당 당직자들은 당이 돈에 쪼들리는 가장 큰 이유는 이 후보의 ‘정치자금 불개입’ 태도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 후보는 돈 얘기만 나오면 손사래를 친다고 한다. 10월 중앙당 후원회를 앞두고 김영일(金榮馹) 사무총장이 이 후보에게 “주변에 전화라도 해주시면 좋겠다”고 부탁했지만 그는 아무 얘기 없이 어색한 표정만 지었다는 후문이다.

이 후보의 ‘돈 결벽증’은 10월30일 별세한 아버지 홍규(弘圭)옹의 영향과 오래된 법관 생활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게 지인들의 설명이다.

이 후보는 자서전 ‘아름다운 원칙’에서 “70년대 중반 다섯 식구의 생활을 꾸려가기 힘들어 친구 박우동 오성환 법관과 변호사 개업을 하려다 ‘돈 때문에 법관의 길을 버리려느냐’는 아버지의 진노 때문에 포기했다”고 고백했다. 이 후보는 대법관을 거쳐 86년 변호사를 개업했지만 법정 수임료 외에는 받지 않았다.

이 후보는 정치인으로 변신한 뒤에도 돈문제에는 직접 관여하지 않고 있다. 그러다 보니 당직자들의 불만이 터져 나오기도 한다. 한 당직자는 “정당활동이라는 게 모두 돈 들어가는 일인데 정작 큰돈을 끌어올 사람은 꿈쩍도 않는다. 이 후보의 금전관과 현실은 괴리가 있다”고 평했다.

반면 후원금과 당비만으로 당을 꾸리고 선거를 치른다는 이 후보의 엄격한 돈 관리 방식이 정치개혁에 큰 기여를 했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최연희(崔鉛熙) 제1사무부총장은 “이 후보의 돈 선거 추방은 대단한 의미가 있다. 지난 5년간 당원들이 돈 안쓰는 선거에 익숙해져 이제는 돈 없이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이 후보는 평소 돈을 얼마나 갖고 다닐까. 그는 한 TV토론에서 “지갑에 몇 만원 정도 있다. 그러나 최근엔 돈 쓸 일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정병국(鄭柄國) 후보비서실 부실장은 “이 후보는 평소 10만원 정도를 갖고 다니다 유세 중 물건을 구입할 때 등에 사용한다”고 말했다.

이 후보는 평소 개인적인 만남에 드는 비용 등 사적으로 쓰는 돈은 직접 지불하지만 당 활동과 관련된 돈은 수행하는 사람들이 지불, 공사(公私) 구분을 분명히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과 후원회에서 이 후보를 위해 결제하는 돈은 매월 2000만∼3600만원 수준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종훈기자 taylor55@donga.com

▼노무현 후보▼

“나는 돈도 없고 계보도 없다.”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대통령후보가 요즘 거리유세에서 목이 터져라 외쳐대는 단골 메뉴다.

자신은 과거 양김(兩金)식의 ‘돈을 통한 보스’와는 다르다는 주장이다. 실제 노 후보는 참모들과 ‘보스와 부하’가 아닌 ‘동업자’ 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다는 게 ‘노무현 맨’들의 얘기다.

노 후보는 사실 ‘뭉칫돈’을 만들려 해도 그 방면에는 젬병이다. 그는 올 7월 자신을 도울 의향이 있는 한 후원자를 만났으나 먼저 “도와달라”는 말을 입에 올리지도 못했다고 한다. 측근이 나중에 “제가 대신 얘기할까요”라고 했더니 노 후보는 “그만두라”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는 것.

지지자로부터 ‘돕고 싶다’는 연락이 와도 혼자 몰래 만나 후원금을 받아오는 법이 없다고 한다. 노 후보 곁에서 12년 동안 동고동락한 안희정(安熙正) 정무팀장은 “노 후보는 ‘왜 도와주겠다는 것인지’에 대한 납득할 만한 명분이 있고 절차도 정당해야 후원금을 받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정치자금에 대한 이런 원칙 때문에 노 후보는 늘 돈 때문에 시달렸다. 올 4월말 대선 후보로 선출된 뒤 당 안팎에서는 “노 후보가 자기 원칙에만 충실하고 당의 재정 형편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기도 했다.

실제 그는 자신이 데리고 일하는 후보비서실 직원들의 인건비를 한번 준 것 외에는 당의 재정에 ‘한푼’도 보탬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희망돼지’ 분양 및 인터넷 후원 등으로 49억원의 후원금이 들어오면서 이런 얘기가 잦아들고는 있다.

그렇다고 노 후보가 돈을 터부시하는 ‘청빈주의자’의 삶을 살아온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실용주의적 금전관을 갖고 있다는 게 맞을 듯하다. 그는 인권변호사로 제2의 인생을 살기 전까지는 돈버는 데 관심이 많은 ‘잘 나가는 변호사’였다.

96년 서울 종로 선거에서 낙선했을 때, 그는 참모들과 함께 삼성화재 ‘광화문 대리점’을 낸 적도 있다. 주위에서는 “제1야당 부총재까지 한 사람이 쫀쫀하게 보험 대리점을 해서 정치자금을 마련하느냐”고 비웃기도 했으나, 노 후보는 “근거 없이 돈 달라고 할 수 없는 노릇 아니냐. 우리가 벌어서 쓰자”며 뛰어다녔다는 것.

노 후보는 돈에 관한 공사(公私) 개념이 엄격하다는 게 측근들의 얘기다. 그는 평소 지갑에 2개의 카드를 넣고 다니는데, 하나는 이발을 하든지 할 때 쓰는 개인적 용도이고 다른 하나는 공식적인 자리에서 쓰는 카드라는 것.

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피해를 본 경우도 적지 않다. 이 때문에 돈에 대한 개념이 없는 사람 아니냐는 지적이 있는데, 주변 사람들은 “동료 정치인의 부탁을 차마 뿌리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얘기한다.

정용관기자 yong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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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관기자 yong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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