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주 경제특구 소식 단동의 표정

  • 입력 2002년 9월 29일 08시 59분


신의주 특별행정구 양빈(楊斌) 장관이 밝힌 신의주 무비자 개방을 이틀 앞둔 28일. 압록강을 사이로 신의주와 마주하고 있는 중국 단동(丹東)은 평상시와 하나도 다를 바가 없었다.

북한과 중국의 합자기업 형태로 운영되는 북한음식 전문식당 옥류관에서 만난 복무원 한명화씨(22)는 신의주 경제특구 소식에 대해 놀란 표정으로 “그렇습네까?”라며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 말했다. 한씨는 평양시 중구역에 살고 있으며 북한 청광산 호텔 복무원으로 일하다가 옥류관 근무 명령을 받고 사흘전 단동에 도착했다.

한국인이 많이 이용하는 호텔인 중련(中聯)대반점에서도 몇몇 북한 사업가들을 만날 수 있었다. 양각도 호텔에서 양빈 장관을 몇 번 만난 적이 있다는 한 사업가는 “오는 10월7일부터야 신의주 무비자 입국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단동에서 만난 또다른 관계자 역시 “중국의 기념일 행사 관계로 10월1일부터 1주일간은 중국측 세관이 폐쇄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단동에서 신의주로 넘어가는 차량과 화물을 검사하는 세관 표정도 한가하기 그지 없었다. 업무시간이 끝나서인지 토요일이라서인지는 알 수 없으나 세관 통관을 위해 기다리는 차량은 한 대도 없었고 압록강 철교를 통해 신의주에서 단동으로 넘어오는 열차 역시 이 곳에 머무르는 3∼4시간동안 1대밖에 목격할 수 없었다. 세관에서 만난 한 여직원은 “신의주 개방 소식을 들은 바 있으며 잘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으나 이내 나타난 중국 공안 관계자는 여직원의 말을 가로막으며 “더이상 묻지 말라”고 입을 닫아 버렸다.

그러나 단동에서 배를 타고 돌아본 압록강변 신의주쪽 표정만큼은 어느 때보다도 활기차 보였다. 신의주 선박 수리공장에서는 선박마다 3∼4명씩 탑승해 용접작업 등 선박 수리 작업에 여념이 없었다. 또 토요일임에도 불구하고 ‘21세기의 태양 김정일 장군 만세’라고 쓰인 공장 간판앞에 수십명씩 모여 작업 배정을 받는 근로자들도 눈에 띄었다.

지난 3월에도 압록강에서 신의주를 돌아본 적이 있는 무역협회 성영화 남북교역팀장은 “당시에 비하면 압록강변에 늘어서있던 폐선박들이 대부분 없어졌다”고 말했다. 성 팀장은 “당시에는 선박 수리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을 볼 수도 없었고 압록강변에 나와있던 아이들에게서도 멍한 표정밖에 읽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압록강변에 나와 쉬고 있는 어린이나 청소년들의 표정은 더욱 밝아보였다. 배에 탄 기자 일행을 통해 먼저 손을 흔들어 보이는 사람들도 여럿 있었다. 기자가 탄 압록강 유람선이 신의주측 강변을 향해 바짝 다가가자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일부 어린이들이 ‘코리아, 코리아’를 외치며 기자 일행을 향해 손을 흔들기 시작한 것이다. 어린이들은 대부분 군복 바지로 보이는 카키색 하의에 티셔츠를 걸치거나 런닝셔츠만을 입고 있었으나 미 프로농구 ‘NBA'마크가 찍힌 티셔츠를 입고 있는 어린이도 눈에 띄었다.

압록강변에 나온 북한 주민들을 향해 기자가 큰 소리로 “안녕하십니까?”하고 외치며 대화를 시도하자 김일성대 교수 출신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조명철 박사가 옆에서 손사래를 쳤다. 그러나 지금까지 압록강을 여러 차례 방문했던 조 박사 역시 “주민들 표정이 어느 때보다 활기차 보인다”고 말했다.

지금 단동에는 양빈 장관이 밝힌 무비자 입국 개시일인 30일을 앞두고 방송사 기자들을 중심으로 한국 기자들도 몰려들기 시작하고 있다. 압록강 철교 부근으로 하나둘 몰려든 기자들은 압록강변 표정과 경제특구 발표 이후 중국인들의 반응을 취재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 기자들의 모습은 눈에 띄지 않았다. 한편 중국 공안당국이 양빈 장관의 신의주 경제특구 발표 이후 단동을 방문 취재했던 한국 언론 특파원들에 대해 취재 제한 조치를 취한 바 있어 이 곳에는 긴장감도 감돌고 있다. 중국 센양(瀋陽)의 한국 영사관 관계자는 “중국 공안당국이 한국 특파원들의 경제특구 관련 취재 소식을 듣고 단동 한인회(韓人會)를 통해 이들의 철수를 요구할 기미가 보여 특파원들이 단동을 떠난 바 있다”고 전했다.

지금 단동에는 긴장과 활기가 묘하게 교차하고 있다. 그러나 양빈 장관의 ‘깜짝쇼’가 남한과 북한 당국에 던져준 충격에 아랑곳없이 압록강변의 아이들은 여전히 물장구를 치며 노느라 여념이 없었다. 신의주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9월28일 오후. 한반도 북쪽 끝의 표정은 이랬다. 한반도 남쪽 끝에서 남과북의 선남선녀들이 전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한반도기(旗)를 들고 함께 입장하기 위해 가슴 설레이고 있을 무렵이었다.

단동(丹東) = 성기영 주간동아 기자 sky320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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