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

주성하 기자

동아일보 콘텐츠기획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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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관련 사이트 ‘서울에서 쓰는 평양이야기’(http://nambukstory.com)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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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분야

2026-05-26~2026-06-25
남북한 관계57%
칼럼30%
경제일반13%
  • [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 사이]“팽려원이 미제 간첩이라며?”

    지난해 여름, 북한 사람들이 모여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할 때마다 빼놓지 않고 나오는 말이 있었다.“팽려원이 미제 간첩이라면서?”“응. CIA(미국 중앙정보국) 첩자라던데….” 팽려원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부인 펑리위안(彭麗媛) 여사 이름을 한자어 표기 그대로 지칭한 말이다. 북한에선 시 주석도 습근평 주석이라고 공식 표기한다. 팽려원 간첩설은 어떻게 나온 것일까. 북한 내부에서 몰래 유통되는 USB메모리들엔 비단 한국 드라마나 영화만 있는 것이 아니다. 중앙 기관 강사들이 특정 기관에서 하는 비공개 강연 또는 ‘녹음 강연’도 담겨 퍼진다. 세상 소식을 노동신문이나 조선중앙TV에서 몇 줄 또는 몇 초만 접하는 북한 사람들에겐 이런 강연은 매우 귀한 정보로 간주돼 빠르게 퍼진다. 실제로 엄선된 특정 계층 대상으로만 진행되는 비공식 강의에서는 공식 매체를 통해선 알 수 없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공식 매체 보도에 없는 이야기를 섞어 강연해야 청중이 ‘우리는 신임받는 사람들이구나’라는 자부심을 갖게 된다. 지난해 초부터 북한군 총정치국에서 고위 군관들을 대상으로 강연한 것으로 추정되는 내용의 USB가 북한에 쫙 퍼졌다. 유창한 말발을 자랑하는 강사 육성이 녹음된 MP3 파일이 저장된 USB였다. 해당 강연엔 러시아에 파병된 군인들의 ‘전설적인 위훈’, 여러 나라의 정치 정세 등이 담겨 있다. 북한이 러시아 파병군의 존재를 지난해 4월 인정했으니, 강연이 진행된 시기는 그 이후로 추정된다. 강연 중 북한 사람들의 흥미를 끌었던 내용은 중국 관련 내용이었다. 해당 강사는 중국이 공화국(북한)을 우호적으로 대하지 않았다고 비방하다가 급기야 “습근평의 부인 팽려원이 CIA 첩자라는 것이 드러나면서 (팽려원이) 미국으로 도주하는 바람에 습근평의 권위가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모든 권력을 내려놓았다”고 주장했다. 최선희 북한 외무상이 왕이 중국 외교부장을 만나 조중 친선의 역사를 열거하며 중국의 대조선 정책이 그릇됐다고 단죄하자 왕 부장이 진땀을 뺐다는 내용도 있다. 북한 내부에서 유포되는 이 같은 강연 파일들은 다 실제로 했던 강연을 녹음한 것이다. 개인이 몰래 이런 파일을 만들어 퍼뜨릴 수도 없지만, 만에 하나 만들었다가 적발되면 사돈의 팔촌까지 멸족되는 심각한 정치적 범죄로 간주한다. 앞서 중국 관련 내용의 강연도 당국 승인 없이는 할 수 없는 것인지라 사람들은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모여 앉을 때마다 “팽려원이 미국 간첩이라며…”라며 웅성거린 것이다. 그러다가 지난해 8월부터 인민군 보위국(과거 보위사령부)이 나서서 시중에 유포되고 있는 USB를 회수하기 시작했다. 당국이 규정한 불법적인 파일도 아닌 데다, 내놓으라는데 더 이상 퍼뜨렸다간 처벌받을 것 같으니 북한 사람들은 이런 지시는 잘 따른다. 그 한 달 뒤인 지난해 9월 3일 김정은은 중국 항일전쟁승리 70주년 기념식에 참가하기 위해 베이징을 찾았다. 톈안먼(天安門) 망루에 오르기 전 김정은은 시 주석, 펑 여사와 만나 악수를 나누었다. 이 모습을 신문과 방송에서 접한 북한 사람들은 충격을 받았다. “아니, 팽려원이 간첩이 아니었네.” 이달 초 시 주석이 평양을 방문했을 때 펑 여사도 동행했다. 이설주와 다정히 이야기를 나누는 펑 여사의 모습을 지켜보며 북한 사람들은 USB 속 강사 음성을 떠올렸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북한에선 이런 괴이한 강연이 진행된 것일까. 강사가 자기 마음대로 떠벌리는 강연은 당연히 있을 수 없다. 이를 통해 우리는 1년 전 북한 내부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다. 첫째, 대중 관계가 극도로 악화돼 있었다는 것. 둘째, 팽려원을 간첩으로 몰아서라도 중국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 심리를 막으려 했다는 것. 셋째, 중국이 나쁜 놈이어서 북한 경제가 어렵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을 것 등이다. 물론 이 같은 분위기가 조성된 배경에는 러시아에만 붙으면 살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중국 없이는 절대 살 수가 없다. 시 주석 방북 이후 북한 사람들은 어려운 생활이 조만간 해소될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기대를 하고 있을 것이다. 또 미제 간첩인 줄 알았던 팽려원이 평양에서 좋은 인상을 갖고 돌아갔길 간절히 바라고 있을 것이다.주성하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zsh75@donga.com}

    • 2026-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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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0살 넘으면 노처녀, 결혼 못한다”…해외파견 北여성들 불만 고조[주성하의 ‘北토크’]

    분단의 장벽 너머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반세기 동안 북한을 지켜봐온 주성하 기자의 시선으로 풀어봅니다.“러시아로 가면 300달러를 일시금으로 드립니다.”요즘 북한 여성들 사이에 러시아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습니다. 과거엔 북한 여성들이 해외로 나갈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국가가 중국이었지만 이젠 러시아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습니다.북한 소식통은 “요즘 어딜 가나 러시아 근로자로 파견되기 위해 신체검사를 받는 여성들이 떼를 지어 다니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러시아 파견 여성은 40세 이하에서 뽑습니다.이들을 모집하는 곳은 여러 무역회사입니다. 이 회사들은 선발돼 러시아로 파견되는 여성에게 300달러를 선불로 줍니다. 300달러면 북한 4인 가족이 1년을 먹고살 수 있는 옥수수나 밀 같은 잡곡을 살 수 있습니다.미국이 이란을 공격하고 호르무즈 해협이 막힌 지난 3개월 동안 북한 내부 식량 가격은 2배 이상 급상승했습니다. 곳곳에서 아사자가 나온다는 비명이 들리는 가운데, 여성들의 러시아 진출은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는 희망이 되고 있습니다.● 러시아로 몰려가는 노동자들최근 몇 년 동안 러시아에는 이미 많은 북한 여성이 진출했습니다. 지난해 4월 러시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와일드베리스의 모스크바 창고에서 북한 여성 근로자 수백 명이 일하고 있는 사진이 공개됐습니다. 와일드베리스는 당시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는 시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으며 프로젝트 성과에 따라 확대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는 입장을 내놓았습니다.북한 여성 근로자들이 목격된 곳은 모스크바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러시아 곳곳의 봉제 공장, 농장, 물류센터 등에서 일하는 북한 여성 근로자들이 포착됐습니다.대표적으로 블라디보스토크의 한 양돈장에선 돼지를 키우는 북한 여성 근로자 11명이 목격됐고, 인근 우수리스크에서도 북한 여성 15명이 양돈장에서 일하고 있다는 증언이 나왔습니다. 양돈장은 러시아 근로자보다 10~15% 정도 저렴한 월급을 주고 북한 여성들을 고용했는습니다. 이들은 양돈장 내에서 먹고 살며 돼지를 키우고 있었습니다.지난해 9월엔 상트페테르부르크 소재 인력 공급회사가 “봉제 산업, 농업 단지, 마감 및 도장 작업 분야에서 주당 최다 2000명의 북한 여성 노동자를 공급할 수 있다”는 공고를 내기도 했습니다. 이런 규모면 1년에 10만 명 이상의 북한 여성 근로자를 파견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하지만 물류센터나 양돈장에 공급된 인력은 빙산의 일각일 수 있습니다. 미국의 북한 전문 웹사이트 비욘드패럴렐은 올해 3월에 최신 위성사진 분석을 토대로 러시아 타타르스탄공화국 옐라부가 경제 특구 드론 생산 공장에 1만2000명 규모의 북한 인력이 투입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습니다. 이미 공장에는 최다 4만 명의 노동자를 수용할 수 있는 기숙사 시설도 건설됐습니다.위의 보도들을 종합하면 이미 러시아엔 북한 여성 근로자 수만 명이 있다고 추정할 수 있는데, 어쩌면 와일드베리스의 주장대로 시범 프로젝트에 불과할 수도 있습니다.요즘 북한 내부의 러시아 파견 여성 근로자 모집 바람은 지난해에 비해 훨씬 더 거세졌습니다. 신체검사를 받으러 몰려다니는 여성들, 전례 없이 선급 300달러까지 주는 장면은 엄청난 수의 예비 파견 집단이 모집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물론 여성만 모집하는 것이 아닙니다. 북한은 올해 제대군인 모두를 러시아에 인력으로 파견한다는 지침을 하달했는데, 그래도 인력이 모자랐는지 군복무 기간이 2~3년 남은 군인들까지 조기 제대시켜 러시아로 파견하고 있습니다. 남성 여성 할 것 없이 빡빡 긁어 보내는 것입니다. 이런 속도와 분위기라면 올해에만 러시아 파견 인력이 10만 명은 훌쩍 넘을 가능성이 충분합니다.● 탈북 없는 여성 근로자북한의 해외 인력 공급은 2017년 12월 채택된 유엔 안보리 결의 2397호를 위반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러시아는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임에도 이 결의안에 구속받지 않게 된지 오래 됐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100만 명 이상의 젊은이가 노동시장에서 사라진 까닭에 이들의 빈자리를 메울 노동력 보충이 절실합니다.해외에서 노동력을 수입한다면 북한 근로자들이 가장 훌륭한 대안입니다. 이들은 철저한 규율 생활을 하기 때문에 태업이 없고, 24시간 교대로 일을 시켜도 불만이 없습니다. 노동력의 대가도 저렴하고, 작업 숙련도 역시 뛰어납니다.북한 당국에도 남성보단 여성을 해외로 보내는 것을 더 선호할 만한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과거 북한은 벌목공이란 명목으로 수만 명의 남성 근로자를 러시아에 파견했습니다. 그런데 남성은 작업장 이탈에 따른 처벌 위험을 감수하고 러시아 전역으로 흩어져 돈을 버는 데 급급했습니다. 한마디로 통제하기 어려웠던 것입니다.하지만 여성은 다릅니다. 유엔 안보리 결의 2397호가 채택되기 이전에 북한은 중국에 10만 명 이상의 여성 근로자를 파견했습니다. 하지만 이들 가운데 작업장 이탈은 거의 일어나지 않았습니다.러시아 파견 근로자 중엔 탈북해서 한국으로 온 남성은 많지만, 러시아와 중국에서 근로자로 일하다가 한국으로 온 여성은 거의 없습니다. 한마디로 남성보단 여성을 관리하기가 훨씬 쉬운 것입니다.여성이 왜 탈북을 하지 않는지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올 수 있습니다. 모성애 때문에 가족에 대한 애착이 훨씬 더 강해서일 수도 있고, 처벌을 감내하려는 용기가 부족해서일 수도 있습니다. 이유야 어떻든 북한 당국으로선 남성보단 관리가 편하고 도망치지 않는 여성을 해외로 파견하는 것이 더 편할 수밖에 없습니다.● 해외 여성 파견의 리스크하지만 여성이라고 관리 부담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여성은 남성에 비해 오랫동안 집을 떠나 일하기를 어려워합니다.2년 전 중국 지린성 일대 의류 및 수산물 가공업체에서 일어났던 북한 여성 근로자 소요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당시 여성 근로자들은 북한에서 파견된 관리자와 보위부 간부들을 인질로 잡고 밀린 임금 지급을 요구했습니다. 이 과정에 관리자가 사망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당시 소요 사태의 직접적 원인은 임금을 떼먹은 것이지만, 그전까지 쌓인 불만의 근원은 6년 동안 귀국시켜 주지 않은 것이었습니다.20대 여성들은 3년 정도 돈을 벌어 결혼 자금을 마련해 귀국하려 했는데 30세가 넘게 됐습니다. 북한에선 30세 넘은 여성은 노처녀 중의 노처녀로 간주돼 결혼이 어렵습니다. 해외로 온 보람이 없어지게 된 것입니다.아이를 두고 온 여성들은 또 그들대로 고향에 있는 가족들, 특히 자녀들 소식을 알 수 없어 분노했습니다. 여성들의 집단 저항을 처음 겪은 북한 당국도 당황했는지 소요 사태에 참여한 근로자들을 다독이기에 급급했습니다.그런 교훈 때문인지 최근 북한은 해외에 파견된 여성 근로자들 처우를 높여 주고, 임금을 떼먹지 말라는 내부 지시를 내렸다고 합니다. 한편으로 3년이 지나 어느 정도 돈을 번 여성들은 불만이 쌓이기 전에 신속하게 귀국시키는 대책도 세울 것으로 예상됩니다.여성을 포함한 북한 근로자의 러시아 대량 진출은 김정은 체제의 통치 자금을 채워준다는 측면도 있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부정적으로 볼 일만은 아닙니다. 가만히 앉아 굶어 죽기보단 어떻게 해서든 살아남는 것이 인간에겐 무엇보다 중요한 일입니다. 또 해외 문물을 접하면 ‘우물 안 개구리’ 시각에서 벗어날 수도 있습니다. 외국을 체험한 북한 주민이 늘어나는 것은 장기적으로 볼 때 북한 체제 변화를 만드는 힘이 축적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26-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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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의 양다리 외교, 시진핑에겐 먹힐까 [주성하의 ‘北토크’]

    분단의 장벽 너머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반세기 동안 북한을 지켜봐온 주성하 기자의 시선으로 풀어봅니다.무조건 머리를 조아리고, 필요하면 바닥도 기여야 합니다. 8일부터 1박2일 동안 평양을 방문하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맞는 김정은의 속내는 착잡할 것입니다.7년 전인 2019년 6월 시 주석이 방북했을 땐 이 정도로 절박하진 않았을 겁니다. 지금은 중국이 없으면 대량 아사가 발생해 ‘고난의 행군’을 겪게 될 것이 불 보듯 뻔합니다.북한은 최근 2년 동안 러시아에 ‘올인’했지만 돌아온 대가는 기대 이하였습니다. 러시아는 비싼 무기 몇 종과 군사 기술 이전은 해주었지만, 북한이 먹고살 만한 식량과 연료는 주지 않았습니다. 먹고 살려면 다시 중국에 붙어야 합니다.하지만 시 주석도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닙니다. 북한엔 그 어느 때보다 고도의 외교가 필요한 때입니다. 북한은 20세기 후반 중국과 소련 사이에서 양다리 외교를 하며 생존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과거의 양다리 외교는 하고 싶어서 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양다리 외교를 하다가 가랑이가 찢어져 아직도 아물지 않고 있습니다. 이번엔 달라야 하겠지만, 과연 그럴까요.● 양다리 외교의 진실1945년 해방 이후부터 북한은 중국과 소련의 도움으로 연명해 왔습니다. 소련은 북한 체제를 만든 종주국이었고, 중국은 6·25전쟁에서 막대한 희생을 치르면서 북한을 지켜주었습니다. 전후에도 소련과 그의 위성국들인 동유럽 국가들의 막대한 무상 원조가 없었다면 북한 경제는 소생이 불가능했을 겁니다.그런데 1960년대부터 중국과 소련 사이가 급격히 틀어지더니, 급기야 핵전쟁 위기로까지 번졌습니다. 국경에서 벌어진 난투극으로 촉발된 두 나라의 갈등은 수천 명의 전사자를 발생시킨 전쟁으로 이어졌습니다. 특히 1964년부터 1969년 사이 갈등은 최고조에 달했고, 양국은 도합 100만 명 이상의 대군을 국경에 배치해 팽팽하게 대치했습니다.믿어야 할 두 ‘형님’들이 눈 돌아가 총력전으로 싸우고 있으니, 김일성은 간담이 서늘해졌습니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도 제 앞가림이 급한 형님들이 도와줄지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김일성은 혼자서라도 살아남기 위해 국방비를 대거 증액해야 했습니다. 1960년에 북한 전체 예산의 1% 정도에 불과하던 북한의 국방비는 1967년에 이르러 30.4%까지 뛰어올랐다고 합니다. 갑자기 이렇게 국방비를 증액하다 보니 북한 경제는 견디지 못했습니다.1960년대엔 한국보다 잘 살았다고 알려졌던 북한 경제는 1970년대부터 급속히 내리막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내리막이 있으면 오르막이 있다는 것이 우리가 아는 상식이지만, 지금 돌아보면 오르막은 거의 없고, 지금까지 내내 내리막만 걷고 있습니다.형님들의 싸움은 1991년 소련이 붕괴하면서 완전히 끝났습니다. 이후 북한은 소련을 계승한 러시아의 도움을 별로 받지 못했습니다. 러시아는 서방 국가들과의 관계에 공을 기울이면서 정작 북한은 거들떠보지 않았습니다. 핵 문제가 터진 뒤 유엔의 대북 제재에 늘 동참해온 러시아 때문에 북한은 울화통이 터진 적도 많았습니다.● 실패하고 돌아간 푸틴하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상황이 바뀌었죠. 이제 북한은 드디어 ‘러시아 형님’의 관심을 끄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러시아 형님이 전쟁으로 힘을 다 빼버려서 너무나 가난하다는 것입니다.러시아가 등을 돌린 기간, 중국은 그래도 북한에 나름 많은 지원을 해주었습니다. 쌀도 주고, 석유도 보내주고, 미국의 압력에 보호막도 돼주었습니다.하지만 중국의 지원은 항상 인색했습니다. 한 번도 배부르게 준 적이 없고, 딱 굶어 죽지 않을 정도로만 주었습니다. 때로는 미국의 눈치를 보면서 북한을 압박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북한은 늘 뒤돌아선 중국을 욕하기에 바빴습니다.2024년 러시아에 전투 병력을 파병하고, 무기 창고를 탈탈 털어 전쟁 물자로 보내면서 김정은은 “러시아만 잡으면 우리처럼 작은 나라의 식량과 에너지를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다”고 계산했을 겁니다. 하지만 오산이었습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북한까지 챙길 정도의 여유가 없었습니다.반면 중국의 힘은 최근 몇 년 동안 급격히 커졌습니다. 최근 한 달 동안 중국의 힘을 가늠할 수 있었던 사건들이 이어졌습니다.이란을 공격했다가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발목이 묶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5월 13일부터 15일까지 2박3일 동안 중국을 방문해 러시아와 이란에 영향력을 행사해 달라고 요청하고 돌아갔습니다. 곧이어 19일부터 20일 사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베이징을 방문했습니다. 궁해서 바짓가랑이를 잡아야 할 사람은 푸틴 대통령이었죠.돈줄이 막힌 그의 가장 큰 관심사는 유럽 수출이 막힌 천연가스를 중국에 파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헐값에 판다고 해도 시진핑 주석은 확답을 주지 않고 돌려보냈습니다.● 김정은이 매달릴 시간이번엔 김정은이 시 주석의 바짓가랑이를 잡아야 할 시간입니다. 그만큼 북한의 내부 사정은 절박합니다.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됐는지, 북한의 목줄이 봉쇄됐는지 모를 정도로 큰 피해를 보고 있습니다.이란 전쟁 발발 석 달 만에 쌀과 휘발유 등 모든 물가가 두 배로 뛰었습니다. 2년 전에 비하면 6배 이상의 물가 상승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런 살인적 물가를 감당하지 못해 북한 내부에선 아사자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연료가 없어 물류가 중단되고 있습니다. 거기에 비료 수입까지 막혀 올해 농사는 흉작이 예정돼 있습니다. 농사를 망치면 내년엔 더 큰 재앙이 닥쳐옵니다. 원조가 절실한데, 러시아는 식량도 연료도 비료도 주지 않고 있습니다.이제 북한이 기댈 곳은 중국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도 빈손으로 돌려보낸 시 주석이 북한이라고 달라는 대로 원조를 줄 리 만무합니다. 중국은 과거에도 늘 그랬습니다. 뭘 주면 꼭 반대급부를 요구했습니다.더구나 지금은 절박해진 푸틴 대통령과 김정은이 양쪽 가랑이를 잡고 매달리는 형국이니, 시진핑 주석의 파워는 그 어느 때보다 더 강력해졌습니다.지금 시 주석의 최고 관심은 북한도 러시아도 아닐 겁니다. 미국이 이란 전쟁으로 막대한 국력을 탕진한 지금이 경제와 대만 문제에서 미국의 더 큰 양보를 받아낼 수 있는 최적의 시간입니다. 이를 위해선 북한과 러시아는 얼마든지 카드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언론들은 시 주석이 방북해 동해 진출권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란 관측을 내놓고 있습니다. 그게 목표라면 다급해진 북한에 요구할 수 있는 적기임이 분명합니다. 대북 제재에 동참한 중국에 삐져 12년째 열어주지 않고 있는 신압록강대교의 연결을 요구한다면 북한도 거절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북한이 중국에 얼마나 양보하는지는 북중 정상회담이 끝난 뒤에도 쉽게 알긴 어려울 겁니다. 공식 보도는 ‘양국의 관계는 최상’이며 ‘다극 세계 질서를 위해 공동으로 협력’하고 했고 ‘경제협력을 확대시킨다’는 식으로 나오겠죠. 진짜 이야기는 늘 숨어있죠.신압록강대교가 연결되는지, 나선시에 중국이 진출하는지, 단둥을 통해 얼마나 많은 물자가 북한으로 들어가는지, 북한 인력이 중국에 얼마나 나오는지 등의 디테일을 앞으로도 꾸준히 관찰해야 합니다. 과거 재미를 보지 못했던 북한의 ‘양다리 외교’가 이번엔 어떤 결과를 만들지 궁금해집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26-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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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 사이]아, 참으로 슬픈 구성

    평양에서 지난해 8월 러시아 파병 군인들에 대한 국가 표창 수여식이 열린 직후 평안북도 도당과 교육 부문에 김정은의 구두 감사가 전달됐다고 한다. 내용은 러시아에 파병돼 공을 세운 군인의 90%가 평북 출신이라는 것, 도내 학교들이 평상시 학생 사상 교양 사업을 잘했다는 것이었다. 얼핏 각 지역 출신이 골고루 섞인 부대에서 평북 출신들만 특출하게 용맹했다는 것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애초에 파병 군인 중 평북 출신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았기 때문이다. 기자는 지난해 9월 2일 자 본보 칼럼 ‘하층민 자식만 골라 파병한 북한’에서 그 이유를 설명했다. 러시아 파병군에 지원한 북한군 고참 병사의 증언을 인용해 “군인 선발 순서는 군수공장 지역 자녀들이 최우선이었고 그 밖에는 탄광 농촌 지역 출신이었다”고 밝혔다. 군수공장 지역 자녀들이 선발 최우선 순위가 된 이유는 첫째로 군수공장 지역은 엄격한 군율이 적용되고 외부 이동도 통제되기 때문에 소위 ‘반동사상’에 오염됐을 가능성이 적기 때문이다. 둘째 역시 환경 때문인데, 전사자 소문이 바깥으로 퍼지기 어렵고 자녀를 잃은 부모들의 반발을 군율로 누를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군수공장은 평북과 자강도에 밀집돼 있는데, 평북 인구가 자강도보다 2배 이상 많다. 북한이 정한 파병 선발 기준은 나름 일리는 있다. 솔직히 어려서부터 한국 드라마를 보고 자란 평양이나 함경도, 양강도 출신 군인들이라면 그리 쉽게 전장에서 자폭했을까 싶다. 평북이나 자강도는 북한에서도 가장 ‘깨지 못한 지역’으로 꼽힌다. 깨지 못했다는 의미는 세뇌가 잘 먹혀 당국이 하라는 대로 한다는 의미다. 그래서인지 탈북민 중에서도 두 지역 출신은 다 합쳐서 3% 정도에 그친다. 물론 평북에서도 신의주처럼 중국을 마주 보는 곳은 바깥세상을 잘 알지만, 같은 도라고 해도 산악 지역은 교통이 불편한 데다 그곳에 갈 이유도 거의 없어 전혀 다른 세상처럼 살고 있다. 올해 4월 평양에서 준공된 ‘해외군사작전 전투위훈기념관’ 추모벽에는 2300여 명의 전사자 이름이 적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사자가 이 정도면 부상자는 6000명 정도 나왔을 것이다. 북한이 평양시 화성구역에 만든 러시아 파병군 유족 거주 단지 ‘새별거리’에는 전사자 가족만 들어갈 수 있는 것인지, 부상자 가족도 들어갈 수 있는 것인지 아직 알려지진 않았다. 분명한 것은 새별거리에선 평북 사투리를 압도적으로 많이 듣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평북 출신 중에서도 아마 구성(龜城)시 출신이 제일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왜냐하면 평북에서 군수공장이 가장 많이 밀집돼 있고 인구도 많은 지역이 구성이기 때문이다. 구성은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올해 3월 ‘제3의 북한 우라늄 농축시설 소재지’로 지목하면서 벌어진 ‘정보 유출 파문’ 때문에 한국 언론 기사에도 많이 오르내리는 곳이다. 그런데 핵 시설뿐만 아니라 최근 한국 안보에 가장 심각한 위협으로 부상하고 있는 무인기 생산 공장도 구성에 크게 건설되고 있다는 정보도 있다. 구성 방현비행장은 북한이 무인기를 제일 먼저 운영한 곳이다. 핵과 무인기만도 위협적인데, 구성에는 그 외에도 북한 군수공업의 핵심인 구성공작기계공장과 유일한 탄약공장인 95호공장, 전자전연구소, 군복 생산의 중추인 구성방직공장 등이 있다. 전쟁이 나면 맨 먼저 공격을 받게 되는 지역이기도 하다. 이처럼 구성이 중요해서인지 김정은은 지난해 12월 현대적 지방 병원의 본보기라며 강동군병원과 함께 구성시병원을 준공했다. 얼마 전엔 왕야쥔 북한 주재 중국대사도 구성시병원을 방문했는데, 아마도 최신 의료기기들을 보내 달라는 부탁을 받았을 것 같다. 기자는 ‘고난의 행군’이란 단어를 접하면 구성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1994년 12월 말 원산 기차역에서 만난 구성 출신 여인은 “군수공장 로동자구(區)에선 여름부터 소나무 껍질을 벗겨 먹기 시작했고 가을부터 대량 아사가 시작됐다”고 했다. 평양에서 불과 100km 떨어진 곳에서 그런 참사가 벌어지는 줄 몰랐던 나는 경악했다. 지도자를 잘못 만난 ‘덕’에 살수대첩으로 외적을 전멸시킨 자랑스러운 땅의 후손들이 1990년대에 무리로 굶어 죽고, 30년 뒤 그들의 아들들은 타국에서 ‘외적’이 돼 피를 뿌리며 죽어 갔으니 참으로 슬픈 구성(構成)이다.주성하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zsh75@donga.com}

    • 2026-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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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군 간호사에서 세계 누비는 사업가 되기까지[주성하의 북에서 온 이웃]

    2023년 11월 22일 자 지역 신문 ‘영등포투데이’에는 ‘저소득 취약 계층 지원을 위한 4110만원 상당 올리브유 후원’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떴다. 구청장과 기부자 여인이 찍은 사진도 같이 게재됐다. 그 여인이 10년 전까지 북한군 병사였던 탈북민이라는 사실은 누구도 몰랐다.한국에 와서 5년 만에 무역회사를 창업하고 지금은 1년의 절반을 해외에서 시장을 개척하는 채수향 씨(36)다.그의 길지 않은 삶은 시련을 넘고 넘은 도전으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다. 굶주렸던 어린 시절을 지난 15세에 집을 강제로 빼앗겼고, 군에 입대해 21세에 노동당원이 됐지만 24세에 탈북 길에 올랐다.먹고 살기 위해 군인 신분에도 장사를 했고, 제대한 뒤에도 짐꾼 10명을 거느린 처녀 밀수꾼이었고, 한국에서도 세계 시장을 두드리고 있다. 그의 일생을 들어보면 ‘돌 꼭대기에 올려놓아도 굶어 죽지 않는다’는 속담이 맨 먼저 생각날 수밖에 없다.● 굶주렸던 어린 시절채 씨가 나서 자란 곳은 양강도 혜산시 장안리. 그곳은 지금 사라졌다. 거대한 댐이 건설되면서 수몰된 것이다.1990년 그는 지질탐사대 노동자의 둘째 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최전방 5군단에서 군 복무를 한 뒤 ‘방침 제대’ 대상이 돼 혜산으로 차출돼 왔다. 방침 제대란 김 씨 일가의 특별 지시에 따라 만기 제대 군인들을 탄광, 광산, 농장 같은 힘든 생산 현장에 집단 배치하는 제도이다. 강제적인 노동력 배치의 일환이다.혜산에 온 아버지는 양강도 출신 여성과 중매로 결혼해 채 씨를 낳았다. 채 씨의 어린 시절은 ‘배고픔’으로 기억돼 있다. 5세 때인 1995년경부터 북한에선 ‘고난의 행군’이 시작돼 수많은 아사자가 발생했다.그의 집도 다를 바가 없었다. 이른 봄부터 산나물을 따서 낟알에 버무려 먹었다. 쓰다고 내뱉는 어린 채 씨를 꼭 껴안고 어머니가 “밥이라고 생각 말고 약이라 생각하고 먹어라”라고 했던 말은 지금도 생생하게 머릿속에 남아 있다. 어린 나이에 산에 올라 화전을 일구는 부모를 도왔고 땔나무도 해 왔다. 그 와중에 7월이면 김일성 사망일에 동상에 놓을 꽃을 꺾느라 산속을 헤맸다.어느 정도 살던 그의 집은 이때부터 돈 되는 것을 하나하나 팔기 시작했다. 마지막 남은 재봉틀을 팔고 나서 어머니는 온밤을 울었다. 하지만 그의 부모는 강한 사람들이었다.“아버지는 혜산에서 개인 신분으로 금을 제일 먼저 제련한 사람입니다. 탐사대에서 익힌 기술을 활용해 가족을 먹여 살리기 시작했어요.”그가 살던 마을을 지나 좀 더 올라가면 금광이 있었는데, 고난의 행군 때 노동자들에게 배급을 주지 못해 거의 가동을 못하고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금광석(금돌)에 눈을 돌렸다. 탐사대 출신이라 버력(광산이나 탄광에서 나오는 광물 성분이 섞이지 않은 잡돌)만 봐도 금 함유량을 추정할 수 있었다. 북한에선 금과 송이는 김 씨 일가 통치자금으로 간주해 개인이 매매하면 중범죄로 처벌된다. 그렇지만 굶주리는 자식을 보면서 초연할 아버지는 없는 법이다.아버지는 동네에서 마광기(摩鑛機·광석을 잘게 부수는 기계)를 직접 만들어 멀리 떨어진 개울가에 숨겨 놓았다. 마광기로 금돌을 가루로 만든 뒤 수은을 넣고 돌려 사금을 뽑아냈다. 사금을 중국에 몰래 팔기 시작하니 집안 형편이 갑자기 좋아졌다.비밀은 오래가지 못했지만, 마을 사람 누구도 신고하지 않았다. 2~3년 후 온 동네가 사금을 뽑아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가난한 동네를 맡았다고 한탄하던 보위원이나 안전원도 눈을 감아주고 한몫씩 챙겼다.● 물속에 잠긴 고향 마을좋은 시절은 오래 가지 못했다. 2005년 갑자기 동네에 소개(疏開) 명령이 떨어졌다. 삼수발전소 댐 건설을 위해 동네가 수몰지가 됐으니 어느 날짜까지 집을 비우라는 것이었다.그렇다고 옮겨갈 집을 주거나, 집값을 보상해 주는 것도 아니었다. 보상 한 푼 받지 못한 마을 사람들은 능력껏 탈출했다. 탈출이 쉬운 것도 아니었다. 집은 뺏었는데, 직장은 계속 다녀야 한다고 강요했다. 다른 곳으로 직장을 옮기려면 또 뇌물이 필요했다. 돈도 없고 갈 곳도 없는 사람들은 산에 올라가 움막을 쳤다.채 씨 부모도 어디로 갈지 머리를 맞댔다. 첫 번째 후보지는 부친 고향인 함남 마양도. 동해 최대 잠수함 기지가 있는 섬이다. 산밖에 없는 혜산보단 바닷가에 정착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다른 도로 이주하는 것은 쉽지 않았기에, 일단은 모친 고향 삼지연으로 가서 있다가 마양도로 옮겨 가기로 했다.다만 곧 학교를 졸업하는 딸은 미리 마양도에 가서 자리 잡는 것이 나쁘지 않다고 판단한 부모는 채 씨를 마양도 셋째 큰아버지 집으로 보냈다. 학생은 어른보다 이주가 훨씬 쉬웠다. 마침 그해 채 씨의 두 살 위 언니도 군에 입대해 마양도 해군부대에서 복무하게 됐다.마양도 아이들은 혜산 산골 아이들보다 공부를 훨씬 잘했다. 학교를 1년 다니니 졸업반이 됐다. 진로를 결정해야 했다. 그는 언니처럼 입대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지 않으면 노동자로 발령될 터인데 노동자로 사는 아버지의 가난을 많이 목격했기에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군에 가서 노동당에 입당하고 돌아오면 다른 직업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하지만 당시 여성이 군에 입대하기도 쉽지 않았다. 여성을 많이 뽑는 해도, 적게 뽑는 해도 있었다. 그는 담임선생과 군사동원부 지도원을 찾아가 뇌물을 주며 군에 보내 달라고 호소했다. 뇌물은 통했다.함흥에서 최종 신체검사를 마치고 입대했다. 어느 부대에 가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해군이나 좋은 부대에 가려면 뇌물이 훨씬 많이 필요했지만 돈이 없었다.● 여군 연락병이 처음 받은 혁명 과업2007년 5월, 17세 수향은 초모생(신병 입대자) 300여 명과 함께 기차에 올랐다. 군복은 육군이었지만 어디로 가는지는 알려주지 않았다. 기차는 3일을 달려 동막이라는 역에 섰다. 내리고 나서야 황해북도 신계군이란 것을 알았다.초모생들은 곧바로 신병훈련소인 518훈련소로 갔다. 훈련생들은 남성 2개 중대와 여성 1개 중대로 갈라져 3개월간 훈련소 생활을 시작했다.518훈련소는 방사포와 장사정포 등으로 구성된 포병 군단 예하였다. 신계읍에서 군사분계선까진 50km 정도 떨어져 있는데, 전쟁이 나면 제일 먼저 전방으로 진출해 포사격을 해야 하는 부대였다.3개월 뒤, 채 씨는 훈련소 직속 무선대대 무전수로 임명됐다. 무선대대는 군단 본부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다. 무선결속소(무선 통신원과 기재가 있는 곳)에서 무전수 전문 훈련을 다시 받았다. 하루 종일 모스부호 송신기를 두드리는 훈련을 받았는데 정작 무전기는 한 번도 써 보지 못했다.3개월쯤 지난 11월경 중대장이 그를 불렀다. 종합훈련장 연락병으로 가라는 것이었다. 부대 주둔지에는 포사격을 할 수 있는 대규모 훈련장이 있었는데, 북한군은 12월경부터 3개월 동안 이곳에서 동계 훈련을 했다.연락병의 공식 임무는 훈련장 포사격 지휘부에서 각 부대 간부 사이 연락을 담당하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고위 장교들의 시녀나 다름없었다.훈련 나온 소장(준장급), 대령급 군관 20여 명이 기상하기 전에 양치질용 소금물을 준비하는 것으로 하루가 시작됐다. 식사 준비를 돕고 신발을 닦고, 그들의 발싸개까지 온갖 의복 세탁을 도맡았다. 군관들이 취침하면 연락병은 등잔 아래서 이들의 군복 목달개(흰 칼라)를 다느라 바느질을 해야 했다. 낮에는 낮대로 잡다한 심부름을 하느라 눈코 뜰 새가 없었다. 하루에 기껏 서너 시간밖에 잘 수 없었다. 17세 신병을 훈련소 지휘부에 보낸 데엔 다 이유가 있었다.지휘부에서 근무하다 보니 북한군 포사격 실력을 알게 됐다. 정확도가 너무 낮아서, 어쩌다 목표에 맞으면 자기들끼리 어리둥절해 할 정도였다. 명중률은 문제도 아니었다. 기동 명령이 떨어져도 포들이 고장 나 제대로 출동시키지도 못했고, 통신이 연결되지 않아 연락병이 열심히 발로 뛰어다녀야 했다.연락병 생활 3개월을 마치니 눈이 잘 보이지 않았다. 군의소에서는 눈 결핵과 결막염이 동시에 왔다며 실명하기 전에 입원해야 한다고 했다. 밤에 눈을 혹사한 결과였다. 입대 6개월 만에 입원해 3개월을 지내야 했다. 하지만 이것이 고난의 시작인 줄 전혀 몰랐다. 제대할 때까지 6년 동안 그는 많은 부대를 옮겨 다녀야 했다.● 덕천탄광에서 만난 한국 쌀2008년 5월 군의소를 퇴원해 무선대대에 복귀한 지 3일 만에 중대장이 불렀다. 부대가 동원된 예성강발전소 건설 지휘부로 가라는 것이었다. 종합훈련장 시절 성실하게 수발을 들었더니 군 간부들이 만족해서 다시 요구한 것이다. 하는 일은 똑같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군관숫자가 적어 일의 강도가 줄었다는 것이다.예성강발전소 건설 과제가 마무리된 그해 11월까지 연락병으로 지내다가 자대 복귀하니, 다시 덕천탄광으로 가라고 했다. 평양에 전기를 공급하는 북창화력발전소가 제대로 가동을 못 해 실태를 파악한 결과 덕천탄광에서 석탄을 잘 공급하지 못한다는 보고가 김정일에게 올라갔다.전군에서 군인을 차출해 덕천탄광에 보내라는 김정일의 지시가 하달됐고 채 씨 군단에서도 두 개 대대가 차출됐다. 그는 탄광 지휘부 상무조라는 지휘소에서 연락병 임무를 맡았다. 남성 군인들은 깊은 갱에 들어가 원시적 도구로 석탄을 캐야 했는데, 갱이 무너져 죽는 일도 종종 발생했다.이때가 그나마 연락병 생활 중에선 제일 잘 먹을 때였다. 덕천탄광이 중요했던지 김정일 지시로 각종 공급 물자들이 우선적으로 보급됐다. 가끔 유엔이 지원했다는 육류나 약도 들어왔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쌀이었는데, 한국에서 지원한 쌀이었다. 북한 쌀로 밥을 하면 몇 번씩 돌을 씹어야 했는데, 한국 쌀엔 돌이 전혀 없었다. 지휘관들은 밥을 먹으면서 “유엔 쌀이 정말 좋다”고 입이 마르게 칭찬했다. 남조선 쌀이라고 할 순 없으니 유엔 쌀이라고 부르는 것이 안전했다.이때부터 채 씨는 취사도 담당했다. 사회에서 차출한 여성 요리사가 있었는데, 군관들이 채 씨가 만든 요리보다 맛이 없다며 내쫓았다. 오전 5~6시부터 식사 준비를 했는데, 생활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쌀을 적당히 빼돌려 다른 필요한 물품과 바꿀 수도 있었다.2009년 4월 덕천탄광 파견이 끝났다. 입대해 2년 동안 간부 심부름만 하니 마음이 조급했다. 뭔가 안정적인 곳에 자리 잡아야 노동당에 입당도 하고 심리적으로 안정도 될 것 같았다. 모든 여성 병사가 그렇듯 그도 간호사가 되고 싶었다. 군단 간호사 학교는 3년에 한 번 신입생을 뽑아 6개월 교육을 시키는데, 마침 그해에 신규 입학생 모집이 있었다.간호사 학교에 간다는 것은 절대 쉽지 않았다. 고위 간부 자제라면 어떤 연줄을 타고서든 학교로 가는데, ‘빽’이 없는 채 씨는 밀어줄 사람도, 뇌물 줄 돈도 없었다. 그나마 2년간 연락병으로 있으며 군 고위 간부들과 안면이 생긴 것이 다행이었다. 그는 중장이자 군단 ‘넘버 2’ 정치위원에게 간호사 학교에 추천을 해 달라고 당돌하게 요청했다. 그의 성실함을 인정한 군단 정치위원의 전화 한 통으로 입학이 결정됐다.● 군 간호사 꿈을 이루다그해 간호사 학교엔 모두 40명이 입학해 2009년 11월 졸업했지만 채 씨에게는 갈 곳이 없었다.간호사 학교 졸업생 지망 1순위는 군단 지휘부 간부들을 치료하는 군단 직속 참모진료소였는다. 그러나 정원이 군의관 1명에 간호사 네댓 명뿐이라 자리가 나지 않았다. 부모 ‘빽’으로 들어온 학생을 ‘부탁자’라고 하는데, 가장 힘이 있는 부탁자 한 명 정도에만 차례지는 자리였다.지망 2순위는 군단급 병원 ‘호병원’이었다. 북한군은 군단급 병원에 숫자를 붙였는데, 그의 군단 병원은 95호 병원이었다. 여기도 자리가 잘 나지 않았다. 자리가 나도 부탁자들이 우선적으로 갔다. 3순위는 여단 병원이고 마지막 4순위는 중대 위생지도원이었다. 남성 중대는 남성 병사가 위생지도원을 맡았다. 여성 중대는 많지 않았기에 채 씨가 졸업할 당시엔 중대 위생지도원 자리조차 나지 않았다.어쩔 수 없이 채 씨는 여단 후방부 여성 경비분대에서 일반 병사로 복무하기 시작했다. 2010년 2월 경비분대 부분대장이 됐다. 이쯤 되니 굳이 간호사를 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방부 경비부대여서 물자에 접근하기도 용이했다.더 좋았던 것은 여단 후방부에 간호 자격을 가진 병사가 없어서 군관 가족들은 주사를 놔 달라고 그를 불렀다는 점이다. 군 병원에도 약이 없어 군관 가족들은 장마당에서 약을 구입했는데, 주사를 놓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군관 부인들이 남편에게 부탁하면 입당도 어렵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좋은 시절은 얼마 가지 않았다. 그해 5월 12일에 김정일 방침이 하달됐는데, 군부대 경비는 사회에서 담당하라는 것이었다. 고난의 행군 여파가 그때까지 이어져 병력 자원이 급감하던 시기인지라 어쩔 수 없이 내놓은 대책이었다.방침에 따라 졸지에 채 씨의 경비분대는 해산되고 여성 고사포 중대에 배속됐다. 채 씨는 간호사 자격이 있었기에 고사포 중대 위생지도원이 될 수 있었다.북한에서 고사포 중대 여군은 가장 힘 없는 집안 자식들이 간다. 여성으로서 최소한의 존엄조차 지켜지지 않는 환경이었다. 힘은 들었어도 그나마 조건이 좀 나은 곳에서 그동안 복무했던 채 씨에게 고사포 중대 상황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 거기에 ‘피부 좋고 피복 좋은’ 경비분대 전입생들은 온 중대의 시기와 질투를 한 몸에 받았다. 중대를 벗어나기 위해 채 씨는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 반년 만에 그는 여단 군의소 내과 부간호장이 제대한 자리로 옮겨갈 수 있었다. 군단 지휘관들과의 인맥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그동안 간호사로서의 실력을 쌓을 새도 없이 불쑥 부간호장이라는 중책을 맡게 되니 스트레스가 컸다. 몇 달 동안 이를 악물고 외우고 연습하고를 반복해 마침내 부하들의 인정을 받게 됐다.여단에서 간호사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우선 군의소에 약이 없었다. 제일 많은 환자는 결핵환자였는데, 결핵약은 유엔에서 들여왔다는 이소(아니아지드) 한 가지밖에 없었다. 유엔에서 보낸 다른 약이 몇 종류 더 있긴 했지만, 과장 이하는 유엔 약 처방 권한이 없었다.집안이 잘사는 병사들은 집에서 부쳐 온 돈으로 장마당에서 약을 사서 치료했다. 장마당에 가면 각종 귀한 약이 다 있었다. 포도당만 봐도 장마당에서 한국제 파우치 포도당이 제일 비쌌고 그다음으로 독일제 포도당, 그리고 유리병에 든 중국제 포도당도 있었다.돈이 없으면 군단에서 자체 제조했다는 포도당을 맞아야 했는데, 정제가 제대로 되지 않아 병 안에 부유물이 떠다녔다. 그마저도 급한 환자에게만 처방됐다. 병은 민간에서 각종 병을 거둬들여 씻은 것이라 모양이나 색상이 제각각이었다. 진한 색깔 병이면 병사들은 얼마나 더러운 링거를 맞는지도 몰랐다. 같은 병실에서 링거를 맞는 모습만 봐도 병사들 집안 수준이 다 파악됐는데, 한국산 파우치 포도당을 맞으면 매우 잘사는 집 아들이 분명했다.● 장사에 뛰어든 여군 간호사채 씨는 여단 군의소에서 2013년 4월 제대될 때까지 근무했다. 2011년 12월 김정일이 사망했을 때 고생했던 기억은 생생하다. 그 추운 겨울, 간호사들에게까지 야간 경계근무를 서게 해 동상을 입었다. 김정은이 지도자가 되고 위대성 교양 사업이 시작됐다. 충성의 노래라며 외우게 하는 노래가 많아졌다.새로 올라선 젊은 지도자는 7세에 출전한 보트 경기에서 세계 최고 수준 외국 조종사를 이겼다고 했고 말도 잘 타고 운전도 잘했다고 선전했다. 7세에 보트나 경주용 차를 운전하는 모습이 상상되지 않았고 믿어지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토를 달 수도 없어 그러려니 했다. 그즈음 그의 관심사는 온통 돈벌이에 가 있었다. 우선 군의소 안에서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서였고, 다음으론 입당하기 위해 뇌물이 많이 필요했기 때문이다.여단 군의소는 군의관 몇 명과 간호사 11, 12명으로 구성됐는데, 간호사라 해도 알고 보면 부모들이 꽤 높은 간부였다. 이들은 외출할 때 장마당에서 파는 비싼 사복을 입고, ‘매직 약’으로 머리를 펴며 향수를 뿌리고 다녔다. 북한군 피복으로 공급되는 차마 입기 힘든 속옷은 버리고 장마당에서 산 외제 속옷만 입고 다녔다. 집안의 후원이 없는 그는 이들과 생활 수준을 맞추려니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돈을 벌어야 했다. 눈을 뜨니 길이 보였다. 당시 신계군 접경 평산군 시장엔 한국 물품이 엄청나게 쏟아져 들어왔다. 모두 평산군과 인접한 개성공단에서 흘러나왔는데, 개성 시장은 단속이 심하니 이웃 평산 시장에 주로 넘겼던 것이다.외출 허락을 받은 날이면 차를 타고 1시간 거리 평산에 갔다. 여단 병원 간호사인 그는 아는 군인들이 많아 어렵잖게 군용차를 얻어 탈 수 있었다. 이곳에서 한국 초코파이나 라면 등을 사서 혜산 집에 보냈다. 꽤 많은 차액을 남기고 주변에 팔았다. 번 돈은 뇌물로 써서 남은 복무 기간에 한 달짜리 휴가를 두 번 따냈다. 이때 학교를 다녔던 마양도에서 말린 멸치나 까나리 같은 건어물을 사서 혜산에 들어가 팔았다. 돈이 많이 남았다. 군에서 발급한 증명서가 있었기에 열차 안전원들에게 단속되지 않았다.이렇게 마련한 종잣돈으로 평산 시장을 왕래하며 장사를 했다. 차익으로 초코파이나 라면을 사서 군관 아내들에게 가지고 가면 무척 좋아했다. 군관들이 사 먹기엔 너무 비싼 데다 뇌물용으로도 인기가 높았다.군 간부 아내들을 구워삶으니 입당도 수월했다. 2013년 4월 중사 채수향은 6년 복무를 마치고 제대증을 받았다. 원래는 7년이었지만 운도 따라 조기 제대할 수 있었다. 당원이란 목표를 이뤘는데 굳이 1년을 더 군에서 낭비할 이유도 없었다. ● “2년 만에 사람이 이렇게 변할까.”제대된 그는 양강도 삼지연시 포태노동자구에 있는 집으로 돌아왔다. 마양도로 가려던 부모님 계획은 끝내 실패했다. 그해 시름시름 앓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병명도 잘 몰랐지만 돌아보면 금을 제련하느라 독한 질산이나 수은에 많이 노출됐던 때문인 듯했다. 결과적으로는 군 기지여서 다른 지역 외출도 쉽지 않던 마양도로 가지 않은 것이 다행스러운 일이었지만, 당시엔 그걸 알지 못했다.채 씨는 간호사 경력을 인정받아 포태병원 간호사로 발령받았다. 병원에 가보니 열악한 군 병원보다 훨씬 더 상황이 좋지 않았다. 약이 하나도 없었다. 의사들은 진단을 내리고 처방을 써준 뒤 환자들이 장마당에서 약을 구입해 오면 그걸로 치료를 했을 뿐이었다. 장마당에 가짜 약도 유통되기 때문에 환자들은 의사들에게 약을 사 달라고 맡기는 경우가 많았다. 의사는 단골 약장수에게서 약을 사 오곤 수고비를 챙겼다. 가끔 수술 환자들이 생기면 의사들은 당당하게 얼마를 준비하라고 요구했다. 병실 난방이나 식사도 환자들이 직접 돈으로 사서 해결했다.제대할 때 채 씨의 목표는 대학에 가는 것이었다. 이것도 엄청난 뇌물이 드는 일이었다. 무직으로 장사를 하면 처벌을 받으니, 1년 정도 간호사로 이름을 올려 두고 장사를 해서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했다.직장에 돈을 내면 출근을 인정해 줄 때였다. 직장에 다니며 월급과 배급을 받는 것이 아니라 돈을 내야 출근을 인정받는 기이한 시스템이 일반적이엇다.직장에 나가지 않는 대신 낸 돈은 간부들이 먼저 삼키고, 나머지 어느 정도는 출근한 사람들에게 식량을 사서 주는 것으로 정리했다. 그래야 뒤탈이 없기 때문이다.포태병원은 간호사들이 한 달 동안 출근하지 않는 대가로 쌀 60kg에 해당하는 돈을 내야 했다. 그 이상 돈을 벌 자신 있으면 출근하지 않아도 됐다. 장사할 능력이나 밑천이 없으면 출근하는 식이었다. 직장에서는 일만 하지 않고 각종 노력 동원에 차출돼 출근하지 않은 사람들 몫까지 감당했다.채 씨는 병원에 다닌 지 두 달째부터 장사에 뛰어들었다. 마침 자신보다 2년 먼저 해군 복무를 마치고 고향에 돌아온 언니가 중국 쪽과 밀무역을 하고 있었다. 당시 국경에 사는 사람들에게 밀수는 더 이상 불법 활동이 아니었다.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하는 장사였다. 국가가 하달한 각종 통제 지침에 따르면 북한에선 숨 쉬는 것 외엔 다 불법이었다.그는 언니에게서 속성으로 밀수 과외를 받았다. 어떤 밀수품이 돈이 되는지, 어떻게 물건을 확보해야 하는지, 밀수를 위해선 누구를 구워삶아야 하는지, 단속을 책임진 지역 보위부 보안원 국경경비대 등 주요 인물 성향과 약점이 무엇인지, 중국 대방(밀수 거간꾼)과의 접선 방법 및 돈 받는 방법 등을 파악해야 했다.첫 실전 거래 물품은 약초였다. 밤 10시. 언니가 모집한 짐꾼들과 짐을 나눠 메고 집에서 걸어서 40분 정도 떨어진 압록강 변으로 갔다. 강물에 발을 들여놓기 전 몹시 떨렸다.“이러다가 잡히면 군에서 힘들게 얻은 당증(黨證)이 날아가는 것이 아닐까.”(채 씨)“야, 당증이 밥을 먹여주니?”그 말을 하는 언니 얼굴이 낯설어 보였다.‘자기도 제대군인 당원인데 2년 만에 어쩌면 사람이 이렇게도 변할까.’그땐 몰랐다. 1년 뒤 자신이 밀수가 아닌, 영영 북한을 떠나는 탈북을 선택할 줄을….● 짐꾼 열 명을 거느린 처녀 밀수꾼군복을 입고도 장사를 한 그에게는 처음이 어려웠지 다음부터 점점 더 쉬워졌다. 가슴까지 오는 고무로 된 바지를 입고 허리까지 빠지는 압록강에 뛰어드는 횟수가 많아질수록 손에 쥐는 돈뭉치도 두툼해졌다. 피가 다시 끓었다. 두 달 뒤엔 언니 없이 혼자 다닐 수 있었다.취급하는 물건도 다양해졌고 짐꾼 숫자도 늘어났다. 동네 건장한 남성은 다 짐꾼이라고 보면 됐다. 밑천이 없거나, 조직 생활에 매여 잡히면 크게 고초를 겪을 남성들이 짐꾼을 자처했다.이들은 40~50kg 되는 배낭을 메고 압록강을 건너가 지정된 곳에 물건을 놓고 다시 왔다. 저녁 서너 시간 짐꾼 역할이면 옥수수 10kg은 살 수 있는 10위안 정도를 벌었다. 일주일에 한 번만 짐을 날라 줘도 먹고사는 것이 해결됐다.중국 대방들도 각자 독점 구역이 있어 상대하기 편했다. 지정된 위치에 짐을 놓으면 차가 와서 실어 갔는데 큰 다툼도 없었다.그도 일주일에 한두 번씩 강을 넘었다. 나중엔 짐꾼을 열 명까지 인솔하고 다녔다. 한 번 다녀오면 수백 위안이 남았다. 1년 동안 2만 위안을 벌었는데, 대학 입학은 물론 혜산 시내에 큰 집도 살 수 있었다.밀수가 거듭될수록 마음은 더 불안해졌다. 그가 밤중에 짐꾼들을 데리고 강을 넘나드는 것을 보위부나 안전부, 경비대 사람들이 모를 리가 없었다. 다만 뇌물을 받고 모르는 척했을 뿐이었다. 가끔 뇌물이 적다고 생각하면 사람을 시켜 길목에 잠복하고 있다가 단속하는데, 그런 식으로 1년 동안 두 번이나 물건을 빼았겼다. 다 ‘짜고 치는 고스톱’인 줄은 알지만 어디 가서 복수를 할 수도 없어 혼자 분을 삼킬 뿐이었다.그가 돈을 좀 벌었다는 소문이 나면서 상대하는 간부들 급도 올라갔다. 그전에는 마을 보위원을 상대하다 1년 뒤엔 보위부장이 그를 찾았다. 어떤 보안서 간부는 차량으로 물건을 싣고 와서 중국에 팔아달라고 요구했다. 단속으로 뺏은 물건이라면 뺏긴 사람이 가만있을 리 없었다.2014년 여름 혜산 시내에서 황당한 일을 겪었다. 2박 3일 머무를 숙박업소 역할을 하는 개인 집에 돈을 내고 투숙했는데 밤중에 보안원들이 숙박 검열을 한다며 들이닥쳤다. 신분증을 제시했지만, 다짜고짜 신분 확인을 해야 한다며 보안서에 끌고 갔다.다른 지역 출신이라면 숙박검열 단속 대상이었겠지만, 그가 사는 삼지연 포태와 혜산은 차로 한 시간밖에 걸리지 않아 한 동네나 마찬가지여서 여행증도 필요 없었다. 게다가 혜산에서 자랐기 때문에 아는 사람도 많았다. 무슨 잘못을 했냐고 항의해도 보안원은 요지부동이었다.그날 밤 숙박검열로 잡혀 온 사람이 100명은 넘었는데, 이튿날 강제노동수용소로 끌려갔다. 수용소 첫날, 혜산역에서 화차에 든 시멘트를 하역하는 일을 했다. 한여름에 땀범벅 된 몸에 시멘트 가루까지 묻어 사람 몰골이 아니었다. 오는 길에 보안원은 압록강 옆에 사람들을 세우더니 강에 들어가 몸을 씻으라고 지시했다. 24세 처녀가 남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씻을 수는 없었다. 입은 옷 그대로 강에 들어갔다 나올 때 그의 가슴은 분노로 터질 것만 같았다.잘못한 것도 없이 끌려와 인간 이하의 모멸감을 강요당하는 더러운 나라에서 더는 살고 싶지 않았다. 이튿날 보안원이 그를 부르더니 휘발유 20kg을 내면 석방하겠다고 제안했다. 그는 고민도 없이 거절했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뇌물까지 바치며 나가고 싶지 않았다.혜산에 가서 실종된 그를 가족들이 연줄을 총동원해 찾은 뒤 며칠 만에 풀려날 수 있었다. 수용소 문을 나서며 그는 결심했다.“한국에 가야겠다.”그동안 밀수를 하며 중국과 한국에 대해 눈을 떴다. 중국 대방들은 직업이 없었는데, 북한에선 남자가 직업이 없으면 처벌을 받았다. 직업 선택의 자유가 있는 중국이 참 신기했다. 중국 사람들은 최고 지도자를 향해서도 욕을 했는데, 그런 표현의 자유가 좋았다. 나중엔 중국 사람들이 김정은을 비난할 때도 그는 반박하지 않고 가만히 듣고 있었다. 군에서 당원이 되기까지 6년 동안 세뇌된 사상은 바깥 세계를 경험하면서 금방 희미해졌다.장백에도 몇 번 가 봤는데 밤에도 불 밝은 세상이 신기했다. 대학 선택의 자유가 있고 심지어 돈이 있으면 유학까지 갈 수 있는 중국이 그렇게 놀라울 수 없었다. 그런 중국 사람들이 침이 마르게 한국이 좋다며 칭찬했다. 장백에서 한국 영화와 드라마를 보면서 저도 모르게 한국을 동경하기 시작했다.● 가족을 데리고 탈북길에 오르다한국행을 결심하니 길도 보였다. 먼저 탈북한 5촌 외숙이 있었는데, 작정하고 달라붙으니 연락처를 얻을 수 있었다. 5촌 외숙은 어서 오라며 한국행을 도와주는 브로커를 연결해 주겠다고 했다.조용히 한국으로 떠날 준비를 했다. 어머니와 언니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한국에 간다고 하면 재산을 정리해야 하는데 그러다가는 주변의 의심을 받을 것 같아서였다.2014년 11월 24일. 떠나기로 정한 날짜가 왔다. 저녁밥을 먹고 그제야 어머니에게 말했다.“엄마, 나 한국에 갈 거야. 준비 다 끝났어. 엄마와 동생도 함께 갔으면 좋겠어.”놀란 것은 오히려 채 씨였다. 딸의 폭탄선언을 들은 어머니는 놀란 기색도 없이 기다렸다는 듯이 화답했다.“그래. 가야지. 조금만 기다려.”모녀는 부친의 사진과 약간의 돈만 챙겼다. 12세 늦둥이 남동생에겐 연길 구경을 간다고 했다. 가면 맛있는 것 많이 사준다고 하니 동생도 순순히 따라가기로 했다. 그가 속내를 터놓은 지 한 시간도 안 돼 세 식구는 집을 나섰다.근처에 살던 언니에겐 뒷정리를 맡겼다. 온 가족이 탈북하다가 체포돼 북송되더라도 북에 남아 있는 혈육이 있어야 뇌물을 쓰거나 뒷바라지를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채 씨 가족은 예정된 밀수 거래인 양 짐꾼들과 함께 길을 나섰다. 체포돼도 밀수하러 간다고 변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돈을 많이 챙기지 않았던 이유도 그래서였다. 체포됐을 때 거액이 나오면 탈북이라고 의심받기 때문이다.각오했던 만약의 사태는 다행히 벌어지지 않았다. 압록강을 건너 짐을 내려놓고 짐꾼들이 돌아가자 채 씨 가족은 중국 대방 차를 타고 장백으로 갔다. 5촌 외숙이 알려준 루트대로 연길과 쿤밍 등을 거쳐 동남아로 넘어갔다. 그곳에서 며칠 대기한 뒤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2015년 1월 15일 마침내 채 씨는 한국 땅을 밟았다. 군에서 제대한 지 2년도 채 안 됐다. 만약을 위해 남았던 언니도 1년 뒤 한국에 와서 서울에 정착했다. 군사분계선과 멀지 않은 포병 군단에 있었고 군 간부들을 두루 알아서였는지 채 씨에 대한 조사 기간은 남들보다 길었다. 한 달 만에 끝날 조사를 3개월이나 받았다.하나원을 거쳐 사회에 나온 것은 그해 6월. 첫 정착지는 5촌 외숙이 사는 울산으로 정했다. 외숙은 울산에 일자리도 많으니 여기서 함께 살자고 했다.하지만 울산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25세였던 그는 일자리보단 숙원이던 대학 생활을 하고 싶었다. 몇 달 지내며 파악해 보니 가고 싶은 대학은 다 서울에 있었다. 서울로 가야 했다. 그해 9월 채 씨는 별다른 준비도 없이 상경했다. 외국인들이 숙소로 쓰는 허름한 곳에 짐을 풀었다.● 돌 위에도 뿌리 내리는 씨앗그로부터 10년이 흘렀다. 그가 스스로 북에서 왔다고 말해도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 유창한 영어로 무역 거래를 성사시키고 세계를 누비며 사는 이 젊은 사장이 불과 10여 년 전엔 북한군 간호사였다니 믿기지 않는 것이다.성공이 쉽게 찾아오진 않았다. 서울에서 1년간 대입 준비를 한 끝에 한국외국어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경영학을 선택한 이유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려면 경영, 특히 회계부터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막상 대학에 다녀 보니 교실에서 이론을 공부하는 것만으론 성이 차지 않았다. 시장경제를 몸으로 배우고 싶어 일반 회사에 취직해 월급 120만 원을 받으며 다녔다.대학을 졸업하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물어봤다. 외국계 회사에 취직해 세계를 다니고 싶은 꿈이 가장 컸다. 그러자면 무엇이 부족한지 곰곰히 생각해 보니영어가 제일 걸림돌이었다. 열심히 영어를 공부한 뒤 2017년 12월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상품 전시회에 무작정 찾아갔다. 그곳에 가면 취직자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였다. 전시회 참가 기업들에 명함도 많이 돌렸다.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한국 진출을 원하는 식품 회사를 만나게 됐다. 그 회사가 한국에 진출했을 때 서울 본부 직원으로 채용될 수 있었다.즐거운 분위기에서 경험도 많이 쌓을 수 있었다. 회사 생활을 하며 다시 대학도 다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터지지 않았다면 여전히 그 회사 직원으로 일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코로나19가 그의 삶을 바꾸어 놓았다. 그의 회사도 한국 비중을 대폭 줄이게 됐다.2020년 8월 그가 식품을 수출하는 회사를 창업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동안 익힌 것을 창업으로 써먹으려 했다. 한국 회사가 아닌 미국 회사에서 일한 경험은 또 다른 선택을 가능하게 했다. 일반적으로 식품 수출이라고 하면 한국 식품을 해외에 파는 것으로 생각하겠지만, 그는 미국 기업의 시각으로 세계 시장을 개척하는 방식을 배웠다.한국이 아닌 동남아로 갔다. 태국이나 인도네시아에서 식품을 제조해 미국 시장에 파는 역발상을 한 것이다. 지금은 대만 식품을 미국에 파는 사업이 주력이다. 사업은 점점 커졌고 매출액도 해마다 커지고 있다. 규모가 커지니 다른 시장도 보여 한국 화장품을 동남아와 중동에 파는 사업도 새로 시작했다.제대한 지 1년도 안 돼 큰 집을 살 돈을 벌었던 그였다. 한국에 와서 10년도 안 돼 서울 강남 인근에 좋은 아파트도 장만했다. 사업을 통해 얻은 자신감으로 야심도 점점 커질 것 같은데 그의 꿈은 너무나 소박했다.“예전에는 큰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돈도 많이 벌어 큰 부자가 되고 싶었고요. 그런데 이젠 소원이 더 작아졌습니다. 고생을 많이 해서 그런지 온 가족이 건강하고 큰 문제 없이 잘 살면 만족할 것 같습니다. 좀 더 여유가 있으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가 되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요.”이 바람이 현재의 진정한 소원일 수는 있다. 하지만 그가 넘어온 거친 삶의 굴곡들이 갑자기 사라지진 않을 것이다. 그의 나이 36세. 앞으로 걸어갈 먼 인생길 어느 언덕에서 채수향은 분명히 더 큰 꿈을 새로이 만나게 될 것이다.동아일보·남북하나재단 공동기획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26-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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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위성의 브랜드 ‘내고향’, 내고향여자축구단의 미스터리[주성하의 ‘北토크’]

    분단의 장벽 너머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반세기 동안 북한을 지켜봐 온 주성하 기자의 시선으로 풀어봅니다.‘내고향여자축구단’은 여러모로 미스터리한 팀입니다. 북한의 스포츠 시스템에서 어떻게 유일하게 기업 후원형의 외피를 쓴 구단으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인지부터 북한 전문가들을 갸우뚱하게 만듭니다.기업 후원 구단임에도, 4.25체육단이나 압록강체육단 등 명문 체육단을 제치고 최고의 선수들을 스카우트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는 것도 놀랍습니다.북한에서 여자 축구팀은 남자 축구팀과 함께 유지되는데, 왜 내고향여자축구단의 스폰서 기업인 ‘내고향무역회사’만은 남자팀은 없고, 여자팀만 키우는 것일까요.국가보위성 소속인 내고향무역회사는 김정은 체제 출범 이후 담배를 만들던 회사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주류, 스포츠용품, 위생용품 제작에 이어 전자제품에까지 손을 대고, 해외에도 적극 진출하고 있습니다.아시아축구연맹 여자챔피언스리그(AWCL) 대회 우승상금이 100만 달러(15억 원)임을 감안하면, 이제 내고향무역회사는 프로구단 운영을 통한 외화벌이에도 눈을 뜬 것은 아닐까요.이 정도면 독점으로 간주돼 견제를 받을 만도 하건만, 김정은은 공식 외부 행사에서 내고향담배공장 담배를 피우며 대놓고 밀어주고 있습니다. 내고향의 진짜 소유주는 누구일까요.● 에이스들만 모아놓은 축구단한국에 온 내고향여자축구단의 구성은 아주 쟁쟁합니다. 리유일 감독은 2년 전까지만 해도 북한 여자축구 대표팀 감독을 지냈습니다. 그러니 내고향여자축구단에 국제축구연맹(FIFA) 17세·20세 이하 연령별 월드컵 우승 경험이 있는 국가대표급 선수들이 대거 포함된 것도 놀랍진 않습니다. 감독이 누구보다 북한에서 활동하는 선수들의 기량을 잘 알 수 있는 위치에 있었기에 자기가 원하는 선수들을 데리고 와 축구팀을 구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느 나라에서든 특정 감독에게 “나라의 최고 에이스들을 모아 클럽팀을 만들어보라”고 하면, 당연히 그 나라의 최강팀이 만들어질 것이 뻔하겠죠.미스터리한 것은 어떻게 이유일은 내고향여자축구단 감독이 됐을까 하는 점입니다. 자본의 논리에 따라 감독과 선수들을 스카우트하는 다른 나라의 클럽팀이라면, 최고의 감독을 선임하기 위해 연봉을 많이 주면 됩니다. 하지만 북한은 이런 자본의 논리가 통하지 않는 곳으로, 감독이나 선수가 연봉에 따라 이적하는 일은 없습니다.북한에서 최고의 선수단은 국방성 산하 체육단인 4·25체육단입니다. 그 뒤로 보안성 소속의 압록강체육단, 평양시 소속의 평양체육단 등이 위치합니다. 감독이나 선수는 당연히 이런 체육단부터 가는 것이 순서입니다. 4·25체육단에서 불렀는데, 안 간다고 할 선수는 없습니다. 아니, 가기 싫어도 당에서 찾는데 가야 하는 것이 지금까지 북한 사람들이 아는 상식입니다.그런데 내고향여자축구단은 도대체 어떤 미스터리한 힘을 써서 명문팀보다 더 나은 선수를 선발한 것일까요.● 장성택이 만든 내고향여자축구단내고향여자축구단은 하루아침에 불쑥 튀어나온 팀은 아닙니다. 2012년 창단돼 2021~2022 시즌 북한 여자축구 1부 리그에 우승하면서 신흥 강자로 떠올랐다고 알려져 있습니다.창단 시점부터 눈길이 갑니다. 김정은 체제가 막 시작된 2012년, 북한은 전반적인 체육 사업을 통일적으로 지도하는 ‘국가체육지도위원회’를 출범시킨다는 정치국 결정서를 채택했습니다. 초대 국가체육지도위원회 위원장은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 맡았습니다.장성택은 국가체육지도위원회 수장이 된 뒤 중국과의 합작으로 체육용품을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내고향합작회사’를 설립했습니다. 북한 스포츠용품 생산 독점 권한을 이 기업에 밀어주면서 산하에 여자축구단까지 창설해 후원 시스템을 정착시킨 것입니다.이듬해 장성택이 처형되면서 기업 후원형 클럽 제도는 유명무실해진 듯합니다. 어찌 됐든 내고향여자축구단은 장성택 덕분에 출범된 클럽이라 할 수 있습니다.문제는 장성택 처형 이후 입니다. 이후 장성택 잔재 숙청 바람이 거세게 불었습니다. 2000여명의 간부가 처형되고, 2만 여명의 간부들이 처벌받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내고향여자축구단은 장성택 잔재 숙청에서 비껴갔습니다. 미스터리한 일입니다.장성택 숙청은 비단 북한에서 엄청난 위세를 떨치던 거대 정치 세력의 몰락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장성택 가문이 틀어쥐고 있던 막대한 이권 역시 김정은의 손에 넘어갔습니다.대표적으로 장성택의 조카사위가 운영하던 평양의 택시사업소는 이설주 처가의 몫으로 넘어갔다고 합니다. 이 택시사업소는 지금도 평양에서 돈을 쓸어 담고 있고, 평양 사람들은 이를 ‘이설주 택시’라고 부릅니다. 어쩌면 내고향합작회사도 이런 경우는 아닐까요. 김 씨 패밀리와 연관되지 않고선 내고향합작회사의 승승장구와 현재의 파워를 쉽게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내고향합작회사는 이후 내고향무역회사로 이름을 바꾼 듯 보이고, 산하에 담배, 스포츠용품, 식품 등의 자회사들을 거느리기 시작했습니다.● 보위부 소속의 ‘내고향’ 브랜드북한엔 담배회사가 많아도 너무 많습니다. 한국엔 담배회사가 3개만 있는데, 북한엔 담배회사가 40개가 넘고, 상표만도 200여 개에 이릅니다. 북한의 흡연율은 세계적입니다. 여성은 담배를 피우지 않지만, 남성은 거의 다 피운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흡연율 때문에 담배공장이 많은 것은 아닙니다. 정작 많은 북한 주민은 필터가 달린 고급 담배를 피우기 어렵습니다. 서민들은 말린 담뱃잎을 썰어 노동신문과 같은 종이에 말아 피웁니다. 북한 담배 공장에서 만든 담배는 대개 수출용으로 소비됩니다. 최대 수출국은 중국으로, 합법적으로 또는 밀수로 많이 건너갑니다. 이중 내고향담배공장의 해외 진출이 가장 독보적인데, 이 회사는 중국을 넘어 중앙아시아, 중동과 몽골·러시아에도 담배를 수출합니다. 담배 생산량을 넘어설 정도로 수출이 잘 된 것인지, 북한 내부 담뱃잎 가격은 최근 2년 동안 10배 이상 상승해 애연가들이 비명을 지릅니다.스위스 유학 시절이던 10대 중반부터 담배를 피운 것으로 알려진 김정은은 유치원, 탁아소 현지 시찰 도중에도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자주 보였습니다. 그는 집권 이후 꽤 오랫동안 내고향담배공장에서 만든 ‘7·27’ 브랜드의 담배를 피웠습니다. 2018년부터 2년 정도 대성담배공장에서 만든 ‘건설’이란 담배를 피우기도 했지만, 2020년부터 다시 내고향담배공장에서 만든 ‘아침’ 브랜드의 담배로 옮겨갔습니다.김정은이 이렇게 대놓고 밀어주다 보니 내고향도 몸집을 거침없이 키우고 있습니다. 2010년대 중반부터 스포츠용품 생산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습니다. 북한의 대외 선전용 매체 ‘조선의 오늘’은 2016년 ‘내고향’이 아디다스, 푸마 등 글로벌 스포츠용품업체와 경쟁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2024년엔 ‘내고향’이란 이름으로 러시아에 담배, 주류, 빵, 김치에 대한 상표 등록도 했습니다.내고향은 취급하는 품목에 있어 북한의 다른 수출회사와 비교 불가할 정도입니다. 돈 되는 것들만 독점적으로 취급하는 것도 놀라운 일입니다. 당연히 벌어들이는 돈의 규모도 많을 것입니다.내고향합작회사의 모태 기업인 내고향담배공장은 2003~2004년경 국가보위부 소속 외화벌이 기업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초대 사장은 김금산이란 인물입니다. 그는 노동당 국제부 부부장과 주중 북한 대사를 지냈던 지재룡의 사위입니다. 고위 간부들이 돈 될만한 일을 일가에게 맡기는 일은 북한에선 일반적입니다.김금산은 많은 돈을 당에 상납해 영웅 칭호도 받았습니다. 하지만 장성택 숙청 이후 돈을 상납해 영웅 칭호를 받았던 인물들도 여럿이 처형된 것을 감안하면, 영웅이라서 숙청되지 않은 것은 아닌 듯합니다. 또 김금산이 사장이긴 하지만, 내고향합작회사가 번 돈이 그나 또는 보위성에 모두 들어가지 않으리라는 것은 누구나 압니다. 김정은의 말 한마디면 김금산도 죽은 목숨인데, 어떻게 자기 배만 채우겠습니까. 당연히 김정은에게 벌어들인 액수를 보고하고, 처분을 기다리겠죠. 이번 대회에서 내고향여자축구단이 받는 상금은 누구의 주머니에 얼마나 배분될까요.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26-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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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증질환 치료-재생의료로 외국인 환자 잡는다

    의료관광 전문 브랜드 한올 헬스케어는 19일 중증 질환 및 첨단 재생의료(줄기세포)를 중심으로 글로벌 의료관광 시장 개척에 힘쓰고 있다고 밝혔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환자는 201만 명으로, 집계를 시작한 2009년 이후 처음으로 200만 명을 돌파했다. 지속적인 증가세이지만 피부과(62.9%)와 성형외과(11.2%)를 찾은 외국인이 70%를 넘었다. 외국인 의료관광이 ‘미용 의료’에 쏠리는 기형적인 구조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올 헬스케어는 이를 극복하고 부가가치 높은 중증 질환 외국인 환자 수요를 창출하고 감당하기 위해 국내 암 치료 톱5 대형 병원들과 파트너십을 구축했다고 밝혔다. 외국인 암 환자들이 최대한 빨리 진료받고 회복할 수 있도록 담당 전문의와의 출국 전 원격 화상 상담부터 공항 의전, 전문 의료 통역, 환자 상태에 맞춘 호텔 및 암 전문 요양병원 소개까지 일대일로 밀착 관리한다는 것.● 암 치료, 한국에서 답을 찾다 한올 헬스케어가 주목하는 곳은 미국이다. 매년 약 190만 명의 암 환자가 발생하는 미국의 의학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하지만 중산층에게도 너무 비싼 의료비, 생명을 다투는 질환임에도 과도하게 긴 대기 시간, 그리고 복잡하고 까다로운 보험이라는 고질적 문제가 있다. 이에 대한 완벽한 대안이 한국 의료라고 한올 헬스케어는 믿는다. 미국의 30∼50%의 의료 비용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진료를 받을 수 있으며, 대기 시간도 평균 두 달 안팎으로 단축한 패스트트랙 예약이 가능하다. 치료 골든타임이 아까운 북미 중증 환자들을 적극 유치할 수 있는 토대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 첨단 재생의료 분야 집중 차세대 고부가가치 의료 분야로 꼽히는 첨단 재생의료도 핵심 동력으로 키운다고 한올 헬스케어는 밝혔다. 암 환자 치료 효과를 높이기 위한 NK 면역세포 요법을 병행하며, 경제력이 있는 노년층과 VIP를 타깃으로 관절 및 연골 재생, 미용 및 항노화, 당뇨를 비롯한 각종 질환 치료에 맞춤형 줄기세포 시술을 제공한다. 당뇨 환자가 1억4000만 명에 달하는 중국과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높고 비만율 세계 10위권에 8개국이 포함된 중동, 그리고 북미 VIP층을 집중 공략해 맞춤형 치유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한올 헬스케어를 운영하는 심재붕 올리버스 대표는 “미국 같은 선진국 의료 시장의 구조적 한계를 한국의 신속하고 합리적인 중증 의료 서비스가 완벽히 대체할 수 있다”며 “단순 미용에 치중된 한국 의료관광 체질을 개선해 고부가가치 중증 의료 중심으로 재편하겠다”고 말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26-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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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 사이]북한에서 벌어지는 기이한 일들

    사람이 굶어 죽는 곳이라면 뭔 짓을 봐도 이상할 게 없지만 그럼에도 기이한 것은 기이하다고 기록할 필요는 있겠다. 요즘 북한에선 머리카락 색깔 단속 소동이 벌어지고 있다. 자본주의풍을 막는다고 염색을 차단하라는 지시가 하달된 뒤 벌어지는 일이다. 머리를 염색한 사람은 물론 염색해 준 미용사까지 잡아가는 것이야 놀랍지 않다. 하지만 이 소동이 도가 넘어 선천적으로 머리카락이 커피색인 사람까지 거리를 다닐 수 없게 됐다. 무작정 잡혀가서 태어날 때부터 머리카락 색깔이 이렇다고 설명해 봐야 ‘착각하지 않게 검은색으로 염색하라’는 답이 돌아온다. 주린 배를 부여잡고 다니는 상황에서 도대체 무슨 소동인지 어안이 벙벙하다. 이란에선 몇 년 전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며 한 여성을 붙잡아 고문해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는데, 듣도 보도 못한 머리카락 색깔 단속에 열을 올리는 북한은 도대체 무슨 종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예전에 이설주도 갈색으로 머리를 염색하고 다닌 적이 있다. 그때 김정은이 머리카락 색깔을 놓고 부부싸움하다가 홧김에 지시를 내린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히잡을 쓰라고 강제한 이란에서는 정작 그 지시를 내린 정부 고위층의 자녀들은 히잡 없이 사진을 찍혀도 아무 문제가 없듯이 북한도 마찬가지다. 복장에 머리카락까지 단속하느라 분주하지만, 13세 김주애는 아무리 ‘자본주의 날라리 옷’을 입고 나타나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두 번째는 로또 열풍이다. 한쪽에선 굶어 죽어도 한쪽에선 휴대전화로 로또를 사느라 정신이 없다. 로또는 북한 기준으로 암만 따져 봐도 성실한 노동의 대가가 아닌 요행수를 노리는 ‘썩고 병든 자본주의 문화’ 같은데도 열풍이다. 복권이라 불리는 여러 형태의 로또가 존재하는 북한에서 요즘 최고 인기는 달러로 구매하는 ‘달러 복권’이다. 가격은 2달러. 다섯 자리 숫자로 구성돼 있기에 최다 판매 수량은 99999개다. 10만 개를 판매한다고 치면 20만 달러가 들어온다. 게다가 ‘삼흥전자지갑’이라는 스마트폰 앱으로 살 수 있어 자본주의보다 훨씬 더 자본주의적이다. 1등 상품은 3만9000달러짜리 승용차이고 이어서 2만 달러, 1만 달러, 5000달러, 1000달러 순으로 상품이 있다. 20만 달러어치가 다 팔릴 경우 당첨금 지급 총액은 12만 달러라고 한다. 10만 장이 팔리면 즉시 추첨을 시작한다. 추첨 한 번에 당국이 8만 달러를 남긴다. 현재 평양 시내 전체 택시 수입금이 하루 평균 7만 달러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상당한 액수다. 진짜 웃긴 점은 추첨 과정이 비공개라는 것이다. 내막을 잘 아는 북한 소식통에 따르면 1등은 복권을 많이 구입한 사람 중에서 한 명을 선택한다고 한다. 대신 1등은 돈이 많은 사람 가운데서는 뽑지 않는다. 가난한 동네에서 당첨자들이 나와야 사람들이 공정하다고 믿고 열심히 복권을 사기 때문이다. 앱을 개설할 때 신원 정보를 다 제공하기 때문에 복권 구매자가 돈이 많은지 아닌지 알 수 있다. 이 같은 사실은 북한 내부에서는 알려진 것이 아니다. 많이 사면 당첨 확률이 올라갈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 태반이다. 1등 상품이 달러로 지급하는 돈이 아닌 승용차인 것도 이유가 있다. 지난해 북한이 자가용 승용차 보유를 전격 허용하자, 큰 기회라고 생각한 무역회사들이 중국에서 경쟁적으로 승용차를 사 왔다. 그런데 북한 사회 구매력이 한도가 있으니 승용차는 1만 대쯤 팔리고 더 이상 팔리지 않아 재고가 엄청나게 쌓였다. ‘달러 복권’ 아이디어는 차를 팔기 위해 수입업자들이 내놓은 것인데, 당국은 장롱 속 달러를 거둬들이기 위한 좋은 아이디어라고 판단했는지 전격 허용했다. 비공개 추첨 로또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다른 나라에서라면 폭동이 일어날 테지만, 북한은 하도 이상한 곳이라 이상한 것이 당연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 당국은 올해 모든 매장에 전자결제 리더기를 갖추라고 지시했다. 전기도 제대로 보내주지 않으면서 전자결제를 하라고 하니 어리둥절할 뿐이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나가면 조만간 북한에선 지폐가 사라질지 모르겠다. 주민들 돈을 모두 휴대전화에 넣게 한 다음 의무적으로 로또를 사라고 할지 모른다. 로또를 많이 살수록 사회주의 혁명가로 추앙받는 세상이 오지 말란 법도 없다.주성하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zsh75@donga.com}

    • 2026-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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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여자축구, 한국팀 만나면 펄펄 날아…우승땐 ‘공화국 영웅’[주성하의 ‘北토크’]

    분단의 장벽 너머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반세기 동안 북한을 지켜봐 온 주성하 기자의 시선으로 풀어봅니다.북한 내고향여자축구단이 아시아축구연맹(AFC) 여자 챔피언스리그 시합을 위해 17일 한국에 온다. 종목을 막론하고 북한 선수단의 방한은 2018년 이후 8년 만이다.내고향여자축구단은 20일 수원종합운동장에서 열리는 AFC 여자 챔피언스리그 4강전에서 수원FC 위민과 맞붙는다. 이기면 23일 오후 2시, 호주 멜버른시티FC와 일본 도쿄 베르디 벨라자 전 승자와 같은 경기장에서 맞붙는다.연령별 월드컵에서 우승한 경험이 있는 국가대표급 선수가 대거 포진한 내고향여자축구단은 지난해 11월 이번 대회 조별리그에서 수원FC 위민과 대결해 3대0 완승을 거둔 바 있다.내고향여자축구단은 결승에 진출해 우승팀과 준우승팀에 각각 내건 상금 100만 달러(14억6860만 원) 또는 50만 달러(7억3430만 원)를 받고 평양으로 돌아갈 확률이 높다. 북한 여자축구는 그동안 대한민국과의 대결에서 20전 16승 3무 1패로 절대 우세이다.북한은 국제 스포츠 무대에서 별다른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여자 축구만은 전혀 다른 세상에 존재하듯 예외다. 북한은 AFC 여자 아시안컵과 아시안게임에서 우승을 3번이나 한 강팀이다. 올해엔 순위가 11위로 처지긴 했지만 지난해엔 국제축구연맹(FIFA) 여자 랭킹 9위에 오른 여자 축구 강국이다. 한국은 19위다.그렇다면 북한 여자 축구는 왜 강할까. 그렇게 강한데도 월드컵에만 나가면 힘을 쓰지 못한다. 딱 한 번 8강에 진출(2007년)한 것이 전부다. 이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북한 선수가 세계 무대에서 힘을 쓰지 못하는 이유내고향여자축구단 방한이 확정된 직후인 5일, 북한 입장을 대변하는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는 ‘세계 패권을 향한 조선 여자축구의 힘, 강팀의 밑천은 정연한 후비(후진) 육성 체계’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이에 따르면 북한 여자 축구가 ‘강호’ 지위를 유지하는 비결은 체계적인 선수 육성 체계에 있다.기사에 따르면 2013년 개교한 평양국제축구학교가 북한 선수 육성 시스템의 핵심이다. 북한 각지에 있는 ‘축구학교’ ‘과외체육학교’ 등에서 두각을 드러낸 유망주를 평양국제축구학교로 보내 전문적인 교육을 받게 하는 방식이라고 한다. 조선신보는 “전국적 규모의 피라미드식 육성 체계가 세워져 있는 것”이라고 표현했다.조선신보 분석이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핵심은 아니다. 다른 스포츠 종목은 피라미드식 육성 체계가 없어서 죽을 쑤는 것인가. 북한의 다른 종목도 피라미드식 육성 체계로 운영된다.그럼에도 여자 축구만 선전하는 이유를 알려면 북한 선수 육성 시스템의 문제점을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다. 가령 남자 축구는 왜 성적이 나오지 않는 것일까.한 전직 북한 축구 대표팀 감독은 흥미로운 분석을 내놓았다. 선수들 기초 체력이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대부분 스포츠 종목은 키와 몸무게 같은 체격이 중요하다. 북한은 사춘기쯤에 체격과 힘을 주로 보고 후보군을 뽑아 그때부터 육류와 기름 등을 먹이며 훈련시킨다.하지만 사람의 어린 시절 영양 상태는 매우 중요하고 이후 오랫동안 영향을 미친다. 탁아소, 유치원, 소학교(초등학교) 때엔 우리 아이가 선수로 클 자질이 있는지, 키가 어느 정도 클지 알 수가 없다. 그러니 일반 가정에서 섭취하는 영양 이상을 보장받기 어렵다. 한마디로 말하면 옥수수죽만 먹고 큰 아이를 10대 후반부터 잘 먹여 뛰게 해 봤자 한계가 있다는 의미이다.국민의 전반적인 체격이 국제 수준을 따라가야 그중에서 스포츠 인재가 나올 수 있는데, 북한은 체격이 왜소해 선수 재목을 찾기도 어렵다. 물론 영양이 전부는 아니다. 성적이 떨어지는 이유로는 선진국과 거리가 있는 폐쇄적인 훈련 방법이나 지도자 능력, 운동 환경, 장비를 비롯한 다양한 요소가 작용한다.● 북한에서 여자축구만 발전한 이유여자 축구는 왜 예외일까. 여자 축구 선수 선발 메커니즘이 다른 종목과 다르기 때문이다.북한 부모 중 딸이 태어나면 “축구나 시켜 볼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축구는 북한이란 환경 속에서 여자가 성공할 수 있는 극소수 가능성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국가대표로 선발되면 엄청난 포상이 차례진다.국제 대회에서 우승하면 선수 개인은 공훈체육인, 인민체육인 같은 개인적인 영광과 ‘화선 입당’이라는 정치적 영예도 얻을 수 있다. 화선 입당은 엄청난 공을 세운 사람을 현장에서 바로 노동당원으로 만드는 ‘특별 입당 과정’을 의미한다. 또 지방 사람들은 상상도 할 수 없던 평양 시민으로 바로 도약할 수 있다. 눈에 띄게 맹활약하면 가족까지 평양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 평생 가 보기 어려운 외국 구경은 덤이다.국제 대회에 나가 우승하는 딸. 이것은 북한 가정의 꿈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 여자아이들은 5세쯤 되면 모두가 운동선수, 더 구체적으로 여자 축구선수 상비군이라고 할 수 있다. 딸에게서 운동 재능이 엿보이면 공부도 제대로 시키지 않는다.영양 공급 문제도 어느 정도 해결된다. 굳이 국가가 공급하지 않아도 가능성이 보인다면 각 가정에서 알아서 딸에게 영양 공급을 집중하기 때문이다.이렇게 전국 여자아이들이 축구에 매달리니 당연히 인재를 선발할 확률이 훨씬 높다. 만약 세계 다른 나라가 이런 환경이라면 그 국가는 여자 축구 최강국이 됐을 것이다. 다만 한국도 마찬가지일 테지만, 선진국 여성은 사회에서 성공할 다른 기회가 많기 때문에 굳이 축구에 올인하는 가정은 거의 없다. 축구를 하는 여성 인재 풀(pool)이 협소하니 세계적인 선수가 나올 확률도 떨어진다.반면 북한은 공부 잘하는 여자가 성공할 확률보다 축구 잘하는 여자가 성공할 확률이 더 높다. 평양이 아닌 지방의 가난한 가정 여자아이는 대학에 갈 확률도 희박하고, 대학을 졸업해도 국가가 직업을 정해 주기 때문에 좋은 직장을 잡기 어렵다. 한국이라면 의대에 가서 의사를 할 정도의 머리를 가진 여성이라도 북한에서는 출신성분이 나쁘고 가난하다면 대학에도 가지 못하고 농민이나 노동자가 될 수밖에 없다.여자 축구는 북한 여성에게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것이다. 이렇게 목적의식이 철저한 여자아이들이 혀를 깨물며 훈련하니 여자 축구가 발전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 여자 축구가 월드컵에선 죽을 쑤는 이유북한 남자아이들도 같은 목표를 가지지 못할 이유는 없지만, 불행하게도 남자 축구는 국제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내지 못한다. 한국이나 일본을 비롯한 다른 나라 남자아이들에게도 축구는 매력적인 보상과 뚜렷한 동기 부여가 있는 종목이기 때문이다.반면 북한에서는 국제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둬 성공할 확률이 거의 없으니 남자 축구는 기회비용 차원에서 여자 축구에 비해 인생을 다 걸 이유가 떨어진다.그렇다면 17세 이하(U-17)나 U-20은 세계 최강국 반열에 드는 북한 여자 축구는 왜 성인 무대인 월드컵에서는 힘을 쓰지 못할까. 월드컵에 4번 나가 8강에 한 번 든 것이 최고 성적이다.가장 중요한 이유는 상대가 강하기 때문이다. 17세나 20세 때 만나는 상대와 월드컵에서 만나는 상대는 전혀 다르다. 10대 중반에 축구에 인생을 걸겠다고 마음먹는 축구 강국(대부분 선진국이다) 여성은 많지 않다. 축구를 몇 년 해 보다가 적성에 맞고 역량이 되니 프로 선수가 되는 것이다.20세 이하 북한 여자 축구선수들이 세계 무대에서 만나는 상대는 축구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훈련이 많이 필요한 선수가 대부분이다. 5~6세부터 전문적으로 육성된 데다 오랫동안 다져진 조직력까지 더해진 북한 선수들이라면 얼마든지 이길 수 있다.반면 선진국 월드컵 국가대표 여성은 축구에 인생을 건 선수다. 동시에 축구 경력도 꽤 많다. 체격과 힘이 좋은 선진국 여성이 축구에 올인해 6~7년 정도만 훈련하면 북한 수준을 뛰어넘는 것이다.선진국 여자 프로축구 선수들은 상대적으로 좋은 훈련 환경에서 선진적인 기술과 전술을 연마한다. 성적이 좋으면 보상도 따른다. 똑같이 ‘밥줄’이 걸린 조건이라면 북한 선수의 힘과 체력, 정신력은 한계가 분명해진다. 현저한 신체 조건 차이를 극복하기 어렵듯 선진국과 후진국 사이 장벽이 명백해지는 것이다.● 여자 선수 최고의 성공 신화수원FC 위민과 맞붙을 내고향여자축구단 선수들은 그 어느 경기보다 치열하게 싸울 것이다. 우승 상금 100만 달러도 큰돈이지만 다른 이유도 있다.한국과의 경기에서 넣는 골은 ‘값’이 달라진다. 가령 19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 여자 축구 첫 남북 대결에서 첫 골을 넣은 이홍실 선수는 곧바로 화선 입당했고 이후 국제 심판 등으로 승승장구하며 함경북도 농촌에서 올라와 평양의 좋은 아파트에서 산다.다른 나라와의 경기에서 골을 넣으면 이런 표창은 없다. 한국 팀과의 경기는 김정은이 지켜볼 가능성도 높아 그가 기분이 좋아지면 어떤 상을 하사할지 모른다. 반면 이길 것이라 믿었는데 지면, 선수들은 평양에 돌아가 강제노동을 비롯한 엄청난 고초를 당하게 된다. 처벌 강도도 다른 것이다.북한 체육 선수들은 성적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지도자가 어떤 상을 하사하는가이다. 대회 우승 상금을 얼마 받든 선수들 것이 아니기에 상관없다. 김정은 기분에 따라 하사하라고 지시하는 것이 진짜 선수 몫이다.지도자 기분을 만족시켜 최고의 상을 하사받은 선수는 단연 1999년 스페인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여자 마라톤에서 우승한 정성옥이다. 그는 우승 소감을 묻자 “결승 지점에서 장군님이 ‘어서 오라’ 불러 주는 모습이 떠올라 끝까지 힘을 냈다”고 대답했다.이 말에 감동한 김정일은 정성옥에게 공화국영웅 칭호와 고급 승용차 벤츠 500, 평양 고급 주택을 하사했고 우승 상금 6만 달러도 모두 갖게 했다고 한다. 북한에선 국제 대회 우승 선수에겐 공화국영웅보다 한 등급 낮은 노력영웅 칭호와 우승 상금 일부만 준다. 올림픽을 비롯해 국제 대회에서 금메달을 5개나 딴 유도 스타 계순희도 노력영웅에 불과하다.단연 선군 시대 영웅이자 정신적 풍모의 귀감으로 떠오른 정성옥이었지만, 몇 년 뒤 조선신보와의 인터뷰에서 “애인이 직접 채워 준 손목시계를 보며 힘을 내 우승했다”는 ‘말실수’를 했다. 이 말은 사실이기도 했다.1990년대 중반은 ‘고난의 행군’ 시절이라 체력 소모가 심한 마라톤 선수들도 ‘국수죽’을 먹으며 훈련했다. 옥수수 국수를 물에 몇 시간 담그면 면발이 퉁퉁 불어나고 뚝뚝 끊어지는데, 여기에 배추 시래기를 넣고 휘휘 저으면 국수죽이 된다.정성옥은 1996년에 국가대표팀에서 만난 남자 마라톤 간판 김중원과 연애 중이었다. 김중원은 중국의 성(省)급 마라톤 대회에서 우승해 상금 8000달러를 받았는데, 자기 몫으로 주어진 상금 중 300달러를 떼서 애인에게 개엿(푹 고아 뼈를 제거한 개고기에 옥수수엿을 넣고 졸인 것)과 개소주를 만들어 먹였다. 그렇다고 체력이 하루아침에 생겼을 리 만무한 일이다.정성옥이 우승해야 하는 다른 이유는 아버지를 살려야 했기 때문이다. 황해도 해주 지방공장에서 18년간 화물차 운전사로 일하던 그의 아버지는 대회 직전 차로 사람을 치어 숨지게 해 재판을 받게 됐다. 감옥에 가게 된 아버지를 살리려면 대회에서 무조건 1등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 정성옥은 임신중절수술까지 받고 대회에 나섰다.딸이 우승과 함께 아부성 발언으로 공화국영웅과 인민체육인 칭호를 받게 되자 정성옥의 부친은 누구도 건드리지 못하는 영웅의 아버지가 돼 각종 매체에 출연했다.“(정성옥이) 유명해졌으니 나 같은 건 거들떠보지도 않을 것”이라며 한숨을 쉬던 김중원도 버리지 않고 1년 반 뒤 결혼했다. 이런 정성옥의 성공 스토리는 북한 스포츠의 신화가 됐다. 수원FC 위민이 만나게 될 내고향여자축구단 선수들은 제2의 정성옥을 꿈꾸며 이를 악문 북한 여인들인 것이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26-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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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스크바 공항에 나타난 북한 청년들[주성하의 ‘北토크’]

    분단의 장벽 너머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반세기 동안 북한을 지켜봐온 주성하 기자의 시선으로 풀어봅니다.이달 17일 러시아 모스크바 외곽 셰레메티예보 국제공항에서 한 무리의 북한 청년들이 목격됐습니다.우크라이나 인터넷 매체 ‘유로마이단 익스프레스’가 공개한 짧은 영상에는 셰레메티예보 국제공항을 빠져나온 북한 청년들이 기다리던 대형 버스에 올라타는 모습이 담겨 있었습니다.● 셰레메티예보 국제공항의 용도셰레메티예보 국제공항은 모스크바 최대 규모 공항입니다. 지난해 7월 셰레메티예보 국제공항을 출발한 노드윈드 항공사의 첫 직항 여객기가 8시간 비행 끝에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여객기 기종은 보잉 777-200 ER로 최다 440명이 탑승합니다.북한은 사람들을 공항에 보내 열렬한 환영 행사까지 열었습니다. 하지만 운항 초기의 기대와 달리 직항 여객기는 극도로 낮은 탑승률 때문에 예정된 운항 횟수를 채우지 못하고 있습니다.러시아 정부는 북한 관광 활성화를 위해 이 항공사에 1회 비행에 약 1억5000만 원이라는 보조금까지 지급했습니다. 하지만 원래대로라면 월 2회씩 운항해야 할 직항 여객기는 지난 9개월 동안 월평균 1회만 운영됐습니다. 그마저도 비행기 좌석이 대부분 빈 상태로 운항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모스크바에서 북한으로 관광을 가겠다는 사람들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여객기가 평양에서 모스크바로 돌아올 때는 상황이 다른 것 같습니다. 17일처럼 북한 노동력을 싣고 오면 10회에 최다 4400명을 모스크바까지 이송할 수 있습니다. 물론 북한이 러시아 항공사에 제값을 지급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이날 셰레메티예보 국제공항에 도착한 북한 청년들이 평양에서 출발했다고 단정하긴 어렵습니다. 북한에서 선박을 타고 블라디보스토크로 이동한 뒤, 여기서 러시아 국내선을 타고 셰레메티예보 국제공항에 도착하면 비용을 훨씬 절감할 수 있습니다.셰레메티예보 국제공항에 도착한 북한 청년들은 똑같은 카키색 동복을 입고, 배낭과 가방까지 단체로 들고 나타났습니다.“3조 조장 오라우. 야야야”라는 북한 억양 말소리도 들렸습니다.짧은 머리와 군기가 바짝 든 행동, 상대적으로 건장한 체구 등을 통해 볼 때 북한군 출신들로 추정됩니다. 하지만 이들이 현역인지, 막 제대한 군인들인지는 불분명합니다. 이들은 누구이며, 왜 러시아로 왔을까요.● 군인들 제대시켜 러시아 파견저는 올해 1월 27일 ‘러시아로 끌려가는 북한 제대군인들’이라는 칼럼을 동아일보에 실었습니다. 당시 북한 소식통은 “올해 제대 대상인 군인 전체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점령지에 파견된다”고 제보했습니다.그 칼럼을 통해 저는 북한이 올해 제대군인 중 남성만 골라 보낸다고 해도 4만 명은 될 것이지만, 그 인원이 다 선발될 가능성은 낮다고 썼습니다. 간부나 잘 사는 집 자식들은 돈을 뿌려가며 이래저래 빠질 테니, 선발되는 사람은 일반 백성의 자녀들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김정은이 러시아 파병 전사자들을 추모하는 행사를 대대적으로 열고, 이들을 위한 기념관까지 평양에 성대하게 준공하는 바람에 주민들은 러시아로 가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도 알게 됐습니다.실제로 상황이 그렇게 흘러가는 것 같습니다. 최근 북한에선 올해 제대한 청년뿐만 아니라 제대를 2~3년 앞둔 군인들까지 조기 제대시켜 러시아로 파견했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러시아와 근로자 몇 명을 파견하기로 계약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인원수를 채우기 힘드니 조기 제대란 카드까지 꺼낸 것이 아니겠습니까.이 정도의 파견 붐이라면 올해 러시아로 가는 청년은 몇만 명은 될 것입니다. 이미 해외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 러시아에 많은 북한 여성이 파견돼 일하고 있는 모습이 공개됐습니다. 지금까지는 남성 파견은 많지 않았는데, 올해 부쩍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러시아에 간 북한 근로자들 처지는 잘 알려져 있습니다. 여러 인터뷰를 통해 앞서 파견된 북한 근로자들은 하루 16시간 이상 중노동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 공개됐습니다.그럼에도 러시아로 간 청년들은 행운아일지도 모릅니다. 요즘 북한 내부에서는 식량 가격이 석 달 만에 두 배 이상으로 상승하는 등 민생이 급격히 악화하고 있습니다. 북한에서 가만히 앉아 굶어 죽기를 기다릴 바에야 러시아에 가서 일하면 적어도 굶어 죽지는 않겠으니 말입니다.● 헤르손의 미래가 북한 손에?젊고 건장한 북한 청년들은 러시아 어디로 갈까요. 북한 여성 근로자들처럼 물류센터에서 상품 분류하는 일이나 하진 않을 겁니다.북한 청년들의 예상 파견지와 관련해 요즘 주목되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습니다. 러시아가 점령 중인 우크라이나 헤르손 지역이 최근 언론에 자주 오르내립니다.대표적으로 14일 블라디미르 살도 헤르손주 러시아 점령지역 지사가 모스크바 주재 북한 대사관에 찾아와 신홍철 북한 대사와 회동한 것을 들 수 있습니다.살도 주지사는 “북한 측은 식량이 필요하며 우리는 식물성 기름, 밀가루, 가공식품 등에서의 협력을 기대한다. 이 분야들에서 양국의 이해관계가 일치한다”고 설명했습니다.살도 주지사는 앞으로 북한과의 농산물 공급 관련 접촉을 확대하고 시범 사업을 통해 상호 이해를 구축하며 문화, 스포츠, 교육 분야에서도 인도주의적 교류를 시작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이어 헤르손 지역 농장 등을 둘러볼 수 있도록 신 북한 대사를 초청했습니다.크림반도와 연결된 헤르손주는 우크라이나 영토로, 전체 면적은 2만8461㎢에 이릅니다. 이는 전라남북도 전체 면적(2만935㎢)에 전북 면적(8,075㎢)을 추가한 정도의 크기입니다.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전까지는 ‘우크라이나의 바구니’라고 불릴 정도의 대표적인 곡창지대였습니다.하지만 현재 러시아가 주 면적의 72%를 점령했고, 현지에 살던 우크라이나인들을 대거 다른 곳으로 이주시켰습니다. 전쟁 전 100만 명이던 헤르손주 인구는 절반도 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우크라이나가 장악하고 있는 주도(州都) 헤르손시도 전쟁 전 인구 28만 명에서 현재 6~7만 명으로 줄었습니다.헤르손주는 농경지 70%에 물을 공급하던 카호우카 댐이 붕괴해 관개용수가 부족하고, 농경지 30% 이상이 지뢰와 폭발물이 묻혀 있어 접근하기 힘든 땅이 됐습니다. 매년 밀 수백만t을 생산하던 이 지역은 현재 정상적인 영농이 어려운 곳으로 바뀌었습니다.이렇게 황폐하고 위험한 지역에 가서 일하겠다는 러시아인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러시아가 헤르손주를 살리려면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 사람들, 즉 부서진 건물도 짓고 지뢰도 제거하며 농사도 잘 지을 수 있는 노동력이 필수적입니다. 셰레메티예보 국제공항에 나타난 북한 청년들이 바로 러시아가 찾아낸 해결책 아닐까요.헤르손에 북한 노동력을 보내면 이탈을 방지하기도 매우 쉽습니다. 사방이 러시아 영토 및 점령지와 바다로 둘러싸여서 북한 청년들이 자유세계로 가려면, 치열하게 교전 중인 전선을 통과해 우크라이나로 오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헤르손 지역 전투는 더욱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당국이 20일 밝힌 바에 따르면 지난주 러시아가 헤르손에서 띄운 공격 드론은 약 5500대로 그 전주보다 900대 많아졌다고 합니다.한 치 한 치 우크라이나 영토로 파고드는 러시아군, 그 뒤를 따르며 지뢰를 제거하고 건물을 세우며 농사를 짓는 북한 청년들. 올해 헤르손에서 보게 될 장면일 듯합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26-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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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월 당신은 헝가리 문화에 빠진다

    주한 리스트 헝가리 문화원이 5월 한 달간 헝가리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공연과 문화 행사를 선보인다. 공연, 클래식, 재즈, 어린이 놀이 같은 장르로 구성돼 헝가리 문화의 예술적 깊이와 대중적 매력을 전달한다. 주목되는 프로그램은 공연 ‘메리 고 라운드(회전목마)’. 5월 16, 17일 부산에서 열리는 부산국제연극제(BIPAF) 공식 폐막작으로 헝가리를 대표하는 동명 영화를 무대 공연으로 각색했다. 부다페스트 국립극장과 헝가리 국립무용단 소속 배우와 무용수 수십 명이 연극과 헝가리 전통 음악 및 춤의 향연을 펼친다. 놀이동산을 재현한 무대 디자인이 환상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같은 달 23, 24일 충북 청주시 청남대 일원에서 열리는 재즈토닉 페스티벌에는 세계적인 색소폰 연주자 토니 러커토시가 출연해 헝가리 재즈의 정수를 선보인다. 그달 28일 서울 동대문구 아르코 카멜리아홀에서는 리스트 음악대학 교수이자 저명한 피아니스트 보르베이 라슬로 연주회가 열린다. 가족 프로그램도 준비된다. 4일부터 어린이날인 5일까지 서울 종로구 국립민속박물관에서는 어린이 헝가리 문화 체험 프로그램이 마련된다. 9, 10일 강원 춘천시 남이섬 국제 어린이도서 페스티벌에서도 헝가리 작품들이 소개된다. 공연 및 프로그램 관련 문의는 주한 리스트 헝가리 문화원 전화와 이메일로 할 수 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26-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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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 인민이 굶어죽고 있다[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 사이]

    전 세계에서 북한만큼 이란 전쟁의 직격탄을 가혹하게 맞은 국가는 없을 것이다. 식품과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면 가장 가난한 사람들부터 생계 위기를 겪듯이, 나라도 마찬가지다. 충격에 견딜 내구력이 없는 가난한 나라들부터 국가 파산 위기에 몰린다. 이란 전쟁으로 인해 전 세계가 고물가로 아우성친다. 하지만 북한에선 아우성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김정은은 죽어가는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외부로 흘러 나갈까 봐 내부를 꽁꽁 틀어막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북한 상황은 매우 심각하다. 4월 중순 쌀과 휘발유 1kg 가격은 각각 북한 돈 3만 원과 7만6000원이 넘었다. 이는 석 달 전에 비해 두 배 넘게 오른 가격이다. 2년 전 4월에는 쌀 1kg이 5500원, 휘발유는 1만3000원에 불과했다. 가뜩이나 2년 동안 물가가 정신없이 올랐는데, 이란 전쟁 때문에 물가의 고삐가 완전히 풀린 양상이다. 앞으로 얼마나 더 오를지조차 알 수 없다. 한국에서 2년 전에 L당 1500원이던 휘발유 값이 9000원으로 올랐다고 상상하면 북한의 미친 물가 상승을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1990년대 중반의 고난의 행군 시절에도 이 정도로 무섭게 물가가 오르진 않았다. 이미 북한에선 작년 겨울부터 굶어 죽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작년 말에 연초 대비 쌀값이 두 배나 올랐는데, 가계 수입은 그에 맞춰 따라가지 못하니 벌어진 일이다. 그런데 굶어 죽는 와중에 다시 식량 값이 석 달 만에 거의 두 배로 뛰었다. 곳곳에서 아사자들이 나올 것이 뻔한데, 탈북이 불가능할 정도로 국경을 철저히 봉쇄해 내부 소식이 외부에 새어 나오지도 못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는지는 북한 당국도 모를 것이다. 처벌이 두려워 간부들이 굶어 죽은 사람들을 병에 걸려 죽었다고 거짓 보고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김정은도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다고 보긴 어렵다. 과거의 사례로 봤을 때 평북과 자강도 군수공업 지역에서 제일 먼저 아사자들이 나올 것이고, 영양실조 군인들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북한에 이번 위기가 진짜 위험한 이유는 내구력이 전혀 없는 상태인 데다, 대책도 없기 때문이다. 북한의 내구력은 4년 가까이 이어진 코로나 봉쇄로 이미 소진됐다. 3년 치를 쌓아두던 군량미를 다 털어먹은 것이 대표적이다. 미래 역시 암담하다. 연료 가격 상승으로 농기계를 제대로 가동할 수 없으니 올해 농사는 망한 것이나 다름없다. 농기계보다 더 문제인 것은 비료를 확보하지 못한 것이다. 전 세계 비료 교역량의 3분의 1이 지나가던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자 중국이 비료 수출을 금지했다. 중국에서 비료를 수입하지 못하면 북한은 대책이 없다. 북한의 1년 비료 소요량은 150만 t인데, 자체적으로 생산되는 양은 3분의 1에 불과하다. 농번기가 닥쳐왔는데 비료가 없으면 1년 내내 식량난을 극복할 수 없다. 연료 값이 비싸 차가 다니지 못하면 물류 이동이 위축돼 지역별 가격 편차도 상당할 수밖에 없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도 김정은은 너무나 태평하다. 아니, 오히려 김정은의 정책은 인민을 굶겨 죽이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시장 폐쇄 움직임이다. 장마당을 풀어줘도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을지 없을지 알 수 없는 상황인데, 연말까지 개인 영업을 막고, 카드 결제를 의무화해 개인 재산을 국가가 파악하겠다고 한다. 해방 후 지주, 자본가들의 재산을 뺏어 먹더니, 이젠 뺏을 대상이 없어서 자기들끼리 뺏어 먹고 사는 것이다. 잔디를 심어라, 묘지를 파서 화장하라는 식의 황당한 지시도 계속 하달된다. 1990년대 중반엔 굶어 죽을 바엔 중국이라도 갔지만, 지금은 국경에 지뢰까지 매설해 앉은 자리에서 죽을 수밖에 없다. 북한은 강제로 내리먹이는 김정은주의를 학습하다가 사람들이 쓰러져가는 거대한 ‘나치 수용소’가 됐다. 이런 위기 속에서도 김정은은 13세의 어린 딸을 데리고 다니며 미사일이나 대포 등 뭘 쏘는 것에만 집착하는 ‘발사 광인’으로 살고 있다. 남쪽에 손을 내밀어도 모자랄 판에 여동생과 함께 한국 대통령을 조롱하면서 낄낄대고 있다. 언젠가는 김정은 정권이 망하겠지만, 2026년의 김정은의 행태는 더욱 눈을 부릅뜨고 주시해야 한다. 인민이 굶어 죽어가는 와중에 지도자란 인간이 어떤 짓을 하며 살았는지 역사에 똑똑히 기록해야 한다.주성하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zsh75@donga.com}

    • 2026-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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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은 ‘사회주의 승리’ 포기?…北헌법에서 뺐다[주성하의 ‘北토크’]

    분단의 장벽 너머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반세기 동안 북한을 지켜봐 온 주성하 기자의 시선으로 풀어봅니다.북한은 사회주의 체제일까요, 아닐까요? 정답은 ‘아니다’입니다. 과거에도 실질적으론 사회주의 체제가 아니었지만, 지금은 확실하게 아닙니다.북한의 사회주의 체제는 누가 빼앗은 것도, 3자가 부인한 것도 아닙니다. 저들 스스로가 이제부터 북한은 더 이상 사회주의 국가가 아니라고 선언했습니다.북한은 지난달 23일 최고인민회의 제15기 제1차 회의를 마치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헌법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헌법으로’ 개칭했다고 발표했습니다. 북한은 헌법에서 왜 사회주의란 단어를 빼버렸을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사회주의란 말로는 더 이상 현재의 북한을 규정할 수 없기 때문이죠. 새로 제정된 개정 헌법 조항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지만, 2019년 8월 수정 보충된 헌법 기준으로 봐도 최근 몇 년 동안 결정된 북한의 정책들은 사회주의헌법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아무리 북한이 법 따로 현실 따로라고는 하지만, 지금처럼 가다 보면 헌법은 있으나 마나 한 존재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사회주의헌법에서 사회주의적 요소들을 빠르게 제거해버리고 있는 사람은 바로 김정은입니다. 2019년 개정된 북한 사회주의헌법 조항은 모두 172조로 구성됐는데, 이중 국가기구의 임무, 권한, 수도, 국장, 국기 등을 규정한 조항을 빼면, 주민에게 영향을 미치는 조항은 86개뿐입니다.김정은은 헌법에서 사회주의를 어떻게 도려냈을까요. 사례는 많지만, 86개 조항 중 중요한 것만 살펴보겠습니다.● 헌법에 위배되는 김정은의 정책북한 헌법의 1조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전체 조선 인민의 이익을 대표하는 자주적인 사회주의 국가이다’라고 규정돼 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북한은 헌법 1조에 명시된 사회주의란 단어를 헌법 명칭에서 빼버렸습니다.9조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북반부에서 인민정권을 강화하고 사상, 기술, 문화의 3대 혁명을 힘 있게 벌려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를 이룩하며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원칙에서 조국 통일을 실현하기 위하여 투쟁한다’라고 명시돼 있습니다.김정은은 2023년 12월 30일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남북 관계를 ‘동족 관계’가 아닌 ‘적대적 두 국가관계’이자 ‘전쟁 중인 두 교전국’으로 규정하며 민족 및 통일 개념을 폐기했습니다. 한국 언론들은 지난달 최고인민회의 직후 북한이 헌법에 두 개 국가 조항을 신설해 넣었는지, 아닌지에 촉각을 곤두세웠습니다. 해당 조항이 헌법에 들어갔는지 아닌지는 아직 알 수는 없지만, 사실 그에 못지않게 주목해야 할 것은 북한이 사회주의를 헌법에서 빼버렸다는 점입니다.조국 통일 조항 못지않게, 앞에 명시된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도 유명무실한 조항이 됐습니다. 뒤에서 설명하겠지만, 작금의 김정은 정책은 사회주의와 반대로 가기 때문입니다.23조는 농촌에 대한 규정인데, ‘협동단체에 들어있는 전체 성원들의 자원적 의사에 따라 협동단체 소유를 점차 전인민적소유로 전환시킨다’고돼 있습니다. 이는 김정은이 2022년 제시한 ‘새 시대 농촌혁명강령’과 배치되는 내용입니다. 새 시대 농촌혁명강령은 약 20명으로 구성됐던 협동농장의 경작 단위를 3~5명 수준으로 세분화하고, 생산 자율성 및 인센티브 확대해 중국식 포전 담당제와 유사한 방향으로 운영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25조는 ‘세금이 없어진 우리나라에서 늘어나는 사회의 물질적 부는 전적으로 근로자들의 복리 증진에 돌려진다. 국가는 모든 근로자들에게 먹고 입고 쓰고 살 수 있는 온갖 조건을 마련하여 준다’고돼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이미 사용료라는 이름으로 전기세와 물세, 자릿세 등 온갖 세금을 징수하고 있고 배급과 월급도 유명무실해진 지 오랩니다.28조는 ‘국가는 협동농장의 생산시설과 농촌문화주택을 국가 부담으로 건설하여 준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현실은 북한 농촌들에서 최근 건설되는 주택들은 모두 현지 주민의 부담으로 건설됩니다. 30조 ‘근로자들의 하루 노동시간은 8시간이다’라는 조항도 의미 없어진 지 오래된 사문화된 조항입니다.● 사회주의의 핵심 논거 상실위의 조항들보다 더 충격적인 일은 최근 김정은이 헌법에 명시된 사회주의의 핵심 조항들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정책들을 고의로 내놓고 있다는 것입니다.북한 주민에게 “자본주의 제도와 비교해 볼 때 사회주의 제도의 우월성이 무엇입니까”라고 묻는다면 거의 100% 확률로 “우리 사회주의 제도에서는 무상치료, 무료교육을 받습니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실제로 북한은 반세기 넘게 무상치료, 무료교육을 사회주의의 핵심 장점처럼 선전해 왔습니다. 이미 30년 전부터 무상치료는 유명무실한 제도였지만, 적어도 최근까지 선전은 그렇게 해왔습니다. 또 이는 북한 헌법에도 명시돼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헌법 47조는 ‘국가는 모든 학생들을 무료로 공부시키며 대학과 전문학교 학생들에게는 장학금을 준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56조는 ‘국가는 전반적 무상치료제를 공고 발전시키며 의사담당구역제와 예방의학 제도를 강화하여 사람들의 생명을 보호하며 근로자들의 건강을 증진시킨다’고돼 있습니다. 72조에도 ‘공민은 무상으로 치료받을 권리를 가지며 나이 많거나 병 또는 불구로 노동 능력을 잃은 사람, 돌볼 사람이 없는 늙은이와 어린이는 물질적 방조를 받을 권리를 가진다. 이 권리는 무상치료제, 계속 늘어나는 병원, 요양소를 비롯한 의료시설, 국가사회보험과 사회보장제에 의하여 보장된다’고 적시됐습니다.앞서 헌법에 적시된 무상치료나 무료교육, 사회보장제 등은 모두 국가가 부담해야 할 의무입니다. 하지만 김정은은 최근 그 의무를 내팽개쳤습니다.김정은이 최근 밀고 나가고 있는 ‘보건 혁명’은 치료비 도입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 실제로 모든 병원에서 현재 접수비, 진단비, 치료비, 약값, 처방비, 입원비 등의 명목으로 돈을 받고 있습니다. 병원 비용은 일반 주민은 치료받을 엄두를 내지 못할 정도로 고액입니다.교육도 마찬가지입니다. 북한이 2023년 12월 21일 제정한 ‘교육후원법’은 기관·기업소·단체와 공민이 교육 발전을 위해 ‘교육후원기금’을 내는 체계를 의무화하고 처벌 규정까지 마련했습니다. 완전 무료교육이라는 국가의 의무를 벗어던진 것입니다.북한 주민들은 이제 사회주의 제도의 장점을 이야기하라고 하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무상치료, 무료교육이란 단순한 구호를, 세계를 모르는 무지한 상태에서도 앵무새처럼 말할 수 있게 세뇌가 됐었는데, 지금은 그 핵심 논거를 상실한 것이죠.김정은이 지난달 ‘경찰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밝힌 것도 사회주의 색채를 빼버리는 작업의 일환으로 해석됩니다.● 딸을 앞세운 김정은 어디로 가나이렇게 헌법에서 사회주의적 조항을 유명무실화시키면서 김정은이 가고자 하는 방향은 어디일까요. 아직은 그 방향이 보이지 않습니다.한 가지 확실한 것은 김정은이 선대와는 다르게 사회주의 체제의 실패를 인정했다는 것입니다. 헌법에 명시된 기존의 사회주의 시책들이 더 이상 실현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고, 반세기 넘게 공염불로만 존재하던 국가의 약속들을 지워버리는 것입니다.일반적으로 사회주의는 생산 수단의 사회적 소유에 기초하는 경제 및 정치 철학으로, 사유 재산 소유와는 대조적인 개념입니다. 김정은이 사회주의적 약속들을 지웠다면, 그 자리엔 사유 재산을 인정하는 새 약속들이 헌법이란 이름으로 들어설까요. 사유 재산이 인정되면 시장 경제로의 전환은 불가피합니다.그렇지만 현재의 북한은 시장 경제로 전환하기엔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습니다. 김정은은 사회주의는 버렸지만, 세습과 우상 숭배, 강력한 독재는 더욱 단단히 틀어쥐고 있습니다. 강력한 전제군주제라는 정치 형태는 절대 버릴 생각이 없는 것이고, 새로운 4세대 군주로 김주애를 내세우려는 움직임도 최근 더욱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지금의 변화는 단지 사회주의 시책이라는 악성 채무에 대해 지급 불능을 선언했을 뿐입니다. 반면 시장 경제는 체제 불안 때문에 도입을 못 하겠기에, 당분간은 사회주의적 경제 형태와 시장 경제 사이의 갈팡질팡 줄다리기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지구상 어디에서도 존재하지 않았던 기이한 경제 체제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죠.그렇지만, 이런 형태가 장기적으로 유지될 가능성은 높지 않습니다. 배급도, 월급도, 무상치료와 무료교육도 사라진 북한에서, 아무것도 주지 않으면서 오직 절대적 복종만 요구하는 김정은에게 진심으로 충성을 바친 인민은 곧 사라질 것입니다. 오는 것이 없으면 가는 것도 없기 마련입니다. 북한 인민도 조만간 김정은에게 충성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알아버릴 것입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26-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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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격총을 쏘는 13세 김주애의 용도는[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 사이]

    김정은은 딸이 어떤 모습으로 보이길 원할까. 최근 한 달 사이 주애의 이미지 메이킹 전략이 크게 바뀌었다. 조선중앙TV는 지난달 27일 주애가 저격소총을 쏘는 영상을 공개했다. 이달 11일에는 주애가 권총을 쏘는 장면이, 20일엔 심지어 전차를 운전하는 모습까지 공개됐다. 아버지 손을 잡고 다니던 어린 소녀는 어느새 만능 여전사 이미지로 바뀌고 있다. 앞으로 주애가 기관총을 난사하고 수류탄을 던지는 모습이 공개돼도 놀랍진 않다. 하지만 그의 나이 불과 13세. 중량이 수십 t인 전차를 운전하고 저격소총을 쏘는 모습은 경악스럽기까지 하다. 전쟁사를 살펴봐도 13세 소녀 저격병은 본 기억이 없다. 강제로 10대들을 반군에 끌고 가는 아프리카 내전 국가들에서도 저격소총을 든 13세 소녀는 보지 못했다. 김주애의 단독 사진이 북한 매체에 실린 것도 지난달 27일 저격소총을 쏘는 사진이 최초였다. 저격소총이 발사되는 순간 13세 소녀의 어깨는 반동을 감당하지 못해 뒤로 확 밀려났다. 이렇게까지 무리하면서 김정은은 왜 총을 쏘는 딸의 모습을 북한 인민에게 각인시키고 싶었던 것일까. 무슨 메시지를 던지고 싶은 것일까. 일반적으로 총은 권력을 의미하지만 북한은 여기에 좀 더 특별한 의미를 붙인다.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는 말은 마오쩌둥(毛澤東) 전 중국 주석이 1927년에 했다고 알려졌지만, 북한은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총대정신’ ‘총대철학’이란 논리를 개발했다. 총대철학은 “혁명은 총대에 의해 개척되고 전진하며 완성된다”는 게 핵심이다. 북한에서 지도자의 총은 권력을 의미한다. 이를 자식에게 넘겨주는 의식은 권력까지 넘긴다는, 이른바 ‘총대 서사’가 완성되는 과정이다. 김정은은 총을 쥔 딸의 모습을 통해 자신의 후계자가 주애임을 보여주려는 의도였을까. 국가정보원은 지난달 12일 주애가 “후계 내정 단계에 들어간 걸로 판단한다”고 국회에 보고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김정은에게 13세밖에 되지 않는 어린 딸을 후계자로 내세워야 할 절박한 이유라도 있는 것일까. 건강에 자신이 있다면 자식이 좀 더 큰 다음에 가업을 잇게 하는 것이 우리가 아는 일반적인 상식이다. 주애가 후계자라면 김정은에게 아들은 없단 말인가. 국정원은 2017년 2월에 이설주가 출산했다고 밝혔다. 그 아이가 아들인지 딸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주목할 점은 있다. 2018년 2월부터 이설주의 호칭이 갑자기 바뀌었다. 그 이전까지는 북한 매체에 ‘이설주 동지’라고 나왔지만, 이때부터는 ‘이설주 여사’가 등장한다. 북한 역사를 10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도 여사는 단 네 명만 존재한다. 첫 번째 여사는 김일성을 낳은 강반석이다. 강반석은 항일투쟁에 뛰어드는 아들에게 권총 두 자루를 넘겨 주었다고 북한은 선전한다. 낳은 아들에게 총까지 물려준, 총대 서사의 시작이다. 두 번째 여사는 김정일을 낳은 김정숙이다. 김정숙이 사망할 때 김정일의 나이는 7세. 그래서인지 김정일이 어머니에게서 총을 물려받았다는 선전은 없었는데 갑자기 5년 전, 김정숙이 군복 차림의 어린 김정은에게 권총을 물려주는 그림이 등장했다. 총대 서사의 계승을 위한 조작이 진행된 것이다. 세 번째 여사는 김일성의 후처 김성애다. 그는 평일과 영일이란 두 아들을 낳았다. 김성애가 여사로 호칭된 시기는, 그가 권력을 휘두르던 1970년대에 한정된다. 김정일이 권력을 잡은 뒤 그의 존재는 지워졌다. 앞선 세 여사는 김 씨 가문 대를 잇고 ‘혁명 위업을 계승’하게 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렇다면 이설주는? 주애를 낳고서도 5년 동안 동지라고 불렸는데, 2017년 아이를 낳고 1년 뒤에 여사로 호칭이 바뀌었음은 아들을 낳았다는 의미일까. 2018년의 이설주는 김정은을 남편이라 스스럼없이 부르며 그가 담배를 끊지 않는다고 푸념했다. 대를 이은 여성의 당당함처럼 느껴졌다. 이설주가 아들을 낳았다면 그 아이는 올해 9세. 김주애가 처음 등장했을 때 나이다. 김정은에게 아들이 있다면, 총대 서사를 입혀 가는 김주애는 무슨 용도일까. 여전히 정답은 모른다. 다만 총대 서사로 세뇌된 북한 주민들은 가죽코트 입고 총을 쏘는 소녀의 모습에서 차기 ‘여왕’을 떠올릴 것이다. 김주애는 여왕이 될 수 있을까. 물론 누구도 그것까지 목도하고 싶진 않을 것이다.주성하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zsh75@donga.com}

    • 2026-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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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악명 높던 北 ‘게슈타포’ 보위부, 어쩌다 김정은의 애물단지 됐나 [주성하의 ‘北토크’]

    분단의 장벽 너머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반세기 동안 북한을 지켜봐 온 주성하 기자의 시선으로 풀어봅니다.“안전원이 온다!” “보위원이 온다!”북한에서는 눈을 부지런히 굴려야 무탈하게 살 수 있습니다. 왼쪽만 보고 있으면 어느새 보위원이 오른쪽에서 나타나고, 오른쪽을 보고 있으면 안전원이 왼쪽에서 나타납니다. 북한의 모든 동과 리, 직장과 학교 등에는 안전원과 보위원이 함께 상주하는데, 하나가 아닌 둘이 떽떽거리며 돌아치니 정신이 어지러울 지경입니다.하지만 앞으로 북한 사람들은 한 방향만 보며 살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저기 경찰이 온다!” 이런 말만 하면서요.뒤통수를 감시하는 서늘한 시선은 여전히 존재하겠지만, 적어도 나를 잡으러 나타나는 자는 한쪽에서만 나타날 가능성이 높습니다.김정은이 23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조만간 경찰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밝히면서 북한 공안 시스템이 81년 만에 완전히 탈바꿈하게 됩니다. 사회안전성은 경찰성(省)이나 경찰청이 되고, 국가보위성은 국가정보국으로 바뀌게 됩니다.북한 공안 역사는 1945년 11월 19일 북조선5도행정국 보안국 창설로 시작됐습니다. 보안국은 지금까지 사회안전성, 내무성, 인민보안성 등으로 명칭이 바뀌며 존재했고, 소속 구성원들도 각각 안전원, 내무원, 보안원 등으로 불렸습니다. 즉 북한엔 경찰이 존재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북한 사람들이 이름만 들어도 치를 떠는 국가보위성은 1973년 5월 사회안전부 소속 정치보위국이 분리돼 국가정치보위부로 독립하면서 만들어졌습니다. 지난 반세기 넘는 동안 보위성에 끌려가 죽은 사람은 1백만 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국가보위성은 향후 한국 국가정보원과 비슷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입니다. 사회안전성은 한국 경찰청 같은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북한의 공안 제도 개편에 대해 국내 언론들은 정상국가를 표방하는 움직임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틀린 분석은 아닙니다만, 그렇다고 모든 것을 설명해 주는 분석도 아닙니다.북한이 공안 시스템을 완전히 바꾼 기저에는 체제 유지에 대한 자신감이 깔려 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냥개 두 마리는 필요 없다1973년 북한이 보위부를 만든 시기는 김일성에서 김정일로 후계 세습이 이뤄지던 때였습니다.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건설한다며 밤잠도 제대로 재우지 않고 인민들을 내몰더니, 갑자기 부자 세습으로 왕조가 되겠다니요. 인민에겐 공산주의자가 되라고 하더니, 자기는 왕이 되겠다니요.인민은 정신이 번쩍 들기 시작했습니다. 곳곳에서 공공연한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김 씨 부자는 보위부를 만들어 ‘공포 통치’로 대응했습니다.1970년대 중반은 참 어수선한 시절이었고 끔찍한 공포의 시대이기도 했습니다. 자고 나면 누가 불만을 이야기하다가 가족과 함께 차에 실려 사라졌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그 차가 정치범수용소에 갔는지, 깊은 산골에 갔는지는 누구도 몰랐습니다. 사이좋게 지내던 이웃들이 자고 나면 사라지니 사람들은 무서워 입을 다물게 됐습니다.이때는 북한에 정치범수용소가 엄청나게 생겨나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수용소를 만드는 족족 수감자가 넘쳐났습니다. 이렇게 피해를 본 사람이 100만 명은 훌쩍 넘었다고 합니다. 적수공권으로 맞서 싸울 수 있는 공포가 아니었습니다.정의롭고 용감하며 비판적 사고를 하던 사람들이 먼저 끌려가 사라졌습니다. 남은 사람들은 무서워서 입을 닫았습니다.이렇게 반세기 넘게 공포 통치를 편 결과 북한 인민은 이제 저항할 생각조차 못 하는 ‘바보’가 돼 버렸습니다. 태어나서 보고 배운 것은 순응이었고, 세뇌 기술은 점점 더 정교해졌습니다.3대 세습도 그러려니 받아들이게 됐고, 심지어 13세 주애를 후계자로 내세웠다 해도 감히 불만을 말하지도 못하게 됐습니다. 불만과 의문 제기엔 목숨을 걸 용기가 필요합니다.정치범으로 잡아갈 사람은 점점 주는데 보위성 조직은 여전히 비대했습니다. 조직은 존재 이유를 증명해야 합니다. 정치범이 줄어드니 보위성은 2000년대 들어 탈북자들을 잡는 데 열을 올렸습니다. 그런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이후 국경도 완전히 봉쇄돼 탈북자도 없어졌습니다.보위성은 북한 외부 TV 드라마를 보는 사람들을 잡기 시작했는데, 이는 안전성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거리에서 보위원이나 안전원이나 경쟁적으로 사람들 가방을 뒤집니다.보위성의 방대한 조직은 점점 먹잇감이 없어져 빈둥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반면 이들이 쥔 권력은 여전히 막강했습니다. 보위원과 안전원 중 위세를 따지자면 보위원이 훨씬 높습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 보위원 위상도 예전 같지 않습니다. 북한에서 권력기관 종사자는 뇌물을 받아야 살 수 있습니다. 배급도 제대로 나오지 않고 월급은 있으나 마나이니, 자기에게 주어진 권력을 이용해 어떻게든 주민들을 뜯어먹어야 살 수 있는 것입니다.여기서 보위원과 안전원의 차이가 드러납니다. 경제사범, 경범죄, 절도 등을 담당하는 안전원은 소위 ‘불법적인’ 행위를 적발하면 적발된 사람에게서 뇌물을 받아 잘 살 수 있습니다. 눈감아 주는 일은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고, 설령 걸린다 해도 처벌이 약합니다.하지만 보위원은 뇌물이 잘 들어오지 않습니다. 보위성에 체포된다는 것은 정치범이란 의미인데, 정치범은 아무리 뇌물을 써도 풀려날 수 없습니다. 보위원이 정치범을 눈감아 주려면 자기 목숨도 걸어야 합니다.이런 상황이 이어지면서 가족 배급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보위원은 점점 거지 신세가 됐고, 충성심도 약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도 먹고 살아야 하니 안전원과 마찬가지로 별반 중요하지도 않은 일로 트집을 잡고 사람들을 협박하기 시작했습니다.외부 드라마 보는 사람을 적발하면 소위 ‘대박’입니다. 눈감아 주는 대가는 꽤 큽니다. 어느새 보위원은 드라마 단속반인지, 술자리 단속반인지 구분이 되지 않게 됐습니다. 보위원들까지 뇌물 뜯어내는 데 혈안이 되다 보니, 어느새 보위성이라는 존재는 체제에 대한 불만만 초래하는 대상이 됐습니다.보위성과 안전성은 이 밖에 많은 영역에서 서로 겹칩니다. 두 조직 모두 감시, 수사, 예심 기능은 물론 감옥과 정치범수용소까지 갖고 있습니다. 두 기관 사이 알력은 점점 커졌고, 충성 경쟁 속에 억울하게 정치범으로 몰려 잡혀가는 사람도 많아졌습니다.김정은은 보위성을 없애는 것이 체제 안정을 유지하는 데 더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듯합니다. 한마디로 인민이 순한 양 떼로 바뀐 지금, 굳이 포악한 사냥개를 두 마리나 유지할 필요가 없게 된 것입니다.● 군림하던 마인드까지 바뀔까앞으로 국가정보국은 체포해야 할 목표를 경찰에 찍어 주는 역할을 할 것으로 보입니다. 감시와 방첩, 정보 수집은 계속하겠지만, 그들의 특권이던 초법적인 가택수색이나 영장 없는 체포, 고문, 감옥과 수용소 운영, 사형 집행 같은 기능을 유지할지는 미지수입니다.한국도 국정원 전신인 중앙정보국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때가 있었기 때문에, 북한 국가정보국이 그렇게 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적극적인 행위를 시사하는 보위국과 음지에서 활동하는 분위기를 띠는 정보원은 이름부터 느낌이 다르므로 과거보다 역할이 더 커지긴 어렵다고 봅니다.경찰로 명칭이 바뀌는 안전원도 역할이 달라질 것으로 보입니다. 사회안전성은 ‘수령 옹호 보위, 당과 정권의 옹호 보위, 인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 사회질서 유지’ 순으로 임무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임무는 보위성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하지만 경찰 조직으로 바뀌게 되면 치안 유지에 더 방점이 찍힐 것으로 예상됩니다. 과거처럼 수령 옹호 보위와 당과 정권 옹호 보위가 여전히 최고 임무라고 한다면, 굳이 경찰로 이름을 바꿀 이유는 없어 보입니다.정보국과 경찰의 제복도 이름에 어울리게 바뀔 것 같습니다. 현재 보위원은 군관과 같은 복장을, 안전원은 크고 누런 견장을 어깨에 단 군복을 입습니다. 정보국 요원 복장이 어떻게 바뀔지는 두고 봐야 알겠지만, 경찰은 중국 공안이나 러시아 경찰처럼 군복이 바뀔 가능성이 높습니다.조직 임무가 바뀌면 국가정보국이 과거처럼 위세 있는 기관으로 존재할지도 의문입니다. 과거엔 보위원이 되겠냐, 안전원이 되겠냐 묻는다면 누구나 보위원이 되겠다고 했겠지만, 앞으론 경찰을 더 선호할 수도 있습니다. 정보만 캐서는 뇌물을 받기 어렵기 때문이죠.공안 시스템 개편에 대한 북한 주민들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름부터 치를 떨게 만들던 보위성이 사라지는 것만으로도 공포감은 줄게 됩니다. 또 경찰이란 새로운 조직을 보면서 “우리도 뭔가 선진적으로 바뀌려나”하는 기대도 품게 됩니다. 안전원을 보는 시선과 경찰을 보는 시선은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물론 지금까지 인민의 머리 꼭대기에 군림하며 거들먹거리던 기존 정보국과 경찰 구성원 마인드가 하루아침에 바뀔 리는 없습니다. 여전히 그들은 온갖 트집을 잡아 인민에게서 뭐든 뜯어낼 생각만 하게 될 것입니다. 김정은이 세계 보편적인 공안 시스템을 만들려 한다면 이름만 바꾸어선 안 됩니다. 이 조직들의 체질 개선까지 바란다면 엄청난 노력과 시간을 들여야 합니다. 물론 그게 김정은이 원하는 일인지도 시간이 지나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26-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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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 사이]평북 도당 청사 방화사건의 의미

    지난해 12월 7일 북한 신의주 평북 도당 건물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했다. 압록강 건너편 중국 단둥(丹東)에서도 치솟은 검은 연기가 보였다. 북한은 건물 잔해를 급히 철거했다. 내부 소식통에 따르면 도당 청사 중심부 회의실이 불타 5명이 죽고 대형 초상화와 조각상들도 타 버렸다. 당국은 화재를 합선으로 위장한 방화로 결론 내고 은밀히 수사하고 있다. 아직 범인을 잡지는 못했다. 신의주는 온실 건설을 계기로 최근 김정은이 가장 많이 찾은 도시이다. 화재 열흘 전에도 김정은이 다녀갔다. 그런 신의주에서 가장 상징적인 도당 건물을 태워 버렸다는 것은 북한 역사를 돌아봐도 유례없는 일이다. 김정은은 “감히 어떤 놈이 이런 짓을 했냐”며 펄쩍 뛰었을 것이다. 김정은은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지금 북한 민심은 그가 집권한 이래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가장 큰 원인은 민생 파탄이다. 이번 겨울에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이후 30년 만에 다시금 수많은 아사자와 동사자가 발생했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북한은 지금 완벽히 봉쇄돼 여러 지역에서 아사자가 많이 생겨도 외부에 소식이 전해지기 어렵다. 주민들은 굶어 죽는 이유가 김정은 때문이라는 것을 다 알고 있다. 아무리 노동당 대회에서 자화자찬해 봐야, 주택단지와 온실이나 지방공업공장을 완공했다고 만세를 불러 봐야 대다수 주민에겐 딴 나라 이야기에 불과하다. 김정은은 주민들이 수십 년 동안 의존해 먹고살던 장마당 경제의 핵심 근간을 단 2년 만에 무너뜨렸다. 몇 가지 사례만 들어 보자. 김정은은 2년 동안 초라한 지방산업공장 40개를 겨우 건설해 놓고 무슨 자신감인지 외국에서 수입하던 제품 180종에 대해 수입 금지 조치를 내렸다. 주로 중국에서 들여오던 것으로 민생에 절실한 식품을 비롯한 생필품이다. 김정은의 의도는 지방산업공장 생산품으로 국영 유통망을 강화해 내수 시장을 살리겠다는 것이었을 터다. 그래서 완제품을 사 오지 말고 원료를 사 오라는 지시도 내렸다. 문제는 지방산업공장이 내수 시장을 충족하기엔 턱없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제대로 돌아가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김정은도 지난달 당 대회에서 새로 건설된 공장이 1년도 되지 않아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다고 고백하면서, 이를 간부들 태만과 무책임성 때문이라고 했다. 전기도 원료도 외화도 주지 않으면서 공장을 정상화하라는 지시가 얼마나 황당한지도 모르는 것 같다. 이러는 사이에 수입 금지 조치로 장마당 시스템이 붕괴했다. 장마당에서 물건을 팔던 상인들은 하루아침에 굶어 죽게 생겼다. 어제까지 밥 먹고살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소득을 잃었는데, 내부 식량 가격은 무섭게 오르고 있다. 북한에서 지난달 중순 기준 북한돈 환율은 달러당 4만 원을 넘겼고, 쌀 1kg 가격도 2만 원을 넘었다. 2년 전엔 각각 8000원, 5000원 안팎이었는데 미친 듯이 오른 것이다. 그렇다고 주민 소득이 따라 오른 것도 아니다. 월급도 2년째 제자리다. 그러니 비싼 식량과 땔감을 살 수 없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이다. 여기에 식량 생산도 크게 줄었다. 이것도 김정은 때문이다. 그의 농촌개혁안에 따라 농장 작업반장은 국가 공급 비료를 외상으로 받아 가을에 식량으로 갚아야 한다. 가을 수확량을 알 수 없는 데다 흉작이면 빚더미에 올라앉는 구조라 많은 반장이 지난해 비료 구입을 포기했다. 인민은 아우성치는데 김정은의 건설판은 점점 커진다. 지방산업공장만 지으라더니 이젠 봉사기지도 건설하고 병원도 건설하고 목장도 지어야 한다. 건설 비용은 주민 주머니에서 나온다. 건설 노동자들에게 장갑과 양말을 줘야 한다, 배부르게 먹여야 한다 등등의 구실로 계속 인민반들을 쥐어짠다. 돈독이 오른 김정은은 병원에 가서도 돈을 내야 치료를 받게 했다. 치료비와 약값은 북한 주민 소득에 비해 어마어마하게 비싸다. 이제 가난한 사람은 아프면 죽어야 한다. 이러니 어차피 죽을 바에야 불이라도 확 지르겠다는 사람이 나오는 것이다. 이란처럼 대규모 민중 봉기가 일어난 뒤 미국이 김정은을 제거해 준다는 믿음만 있다면 북한 주민들은 다 거리로 몰려나올지도 모른다. 정작 김정은은 이런 민심을 알고는 있을까. 어린 딸을 데리고 총이나 쏘러 다니는 것을 보면, 전혀 모르는 것 같다.주성하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zsh75@donga.com}

    • 2026-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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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년말 ‘신의주 도당청사 화재’는 성난 주민이 저지른 방화였다[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 사이]

    지난해 12월 7일 북한 신의주 평북 도당 건물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했다. 압록강 건너편 중국 단둥(丹東)에서도 치솟은 검은 연기가 보였다. 북한은 건물 잔해를 급히 철거했다. 내부 소식통에 따르면 도당 청사 중심부 회의실이 불타 5명이 죽고 대형 초상화와 조각상들도 타 버렸다. 당국은 화재를 합선으로 위장한 방화로 결론 내고 은밀히 수사하고 있다. 아직 범인을 잡지는 못했다.신의주는 온실 건설을 계기로 최근 김정은이 가장 많이 찾은 도시이다. 화재 열흘 전에도 김정은이 다녀갔다. 그런 신의주에서 가장 상징적인 도당 건물을 태워 버렸다는 것은 북한 역사를 돌아봐도 유례없는 일이다. 김정은은 “감히 어떤 놈이 이런 짓을 했냐”며 펄쩍 뛰었을 것이다.김정은은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지금 북한 민심은 그가 집권한 이래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가장 큰 원인은 민생 파탄이다. 이번 겨울에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이후 30년 만에 다시금 수많은 아사자와 동사자가 발생했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북한은 지금 완벽히 봉쇄돼 여러 지역에서 아사자가 많이 생겨도 외부에 소식이 전해지기 어렵다.주민들은 굶어 죽는 이유가 김정은 때문이라는 것을 다 알고 있다. 아무리 노동당 대회에서 자화자찬해 봐야, 주택단지와 온실이나 지방공업공장을 완공했다고 만세를 불러 봐야 대다수 주민에겐 딴 나라 이야기에 불과하다.김정은은 주민들이 수십 년 동안 의존해 먹고살던 장마당 경제의 핵심 근간을 단 2년 만에 무너뜨렸다. 몇 가지 사례만 들어 보자.김정은은 2년 동안 초라한 지방산업공장 40개를 겨우 건설해 놓고 무슨 자신감인지 외국에서 수입하던 제품 180종에 대해 수입금지 조치를 내렸다. 주로 중국에서 들여오던 것으로 민생에 절실한 식품을 비롯한 생필품이다. 김정은의 의도는 지방산업공장 생산품으로 국영 유통망을 강화해 내수 시장을 살리겠다는 것이었을 터다. 그래서 완제품을 사 오지 말고 원료를 사 오라는 지시도 내렸다.문제는 지방산업공장이 내수 시장을 충족하기엔 턱없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제대로 돌아가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김정은도 지난달 당 대회에서 새로 건설된 공장이 1년도 되지 않아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다고 고백하면서, 이를 간부들 태만과 무책임성 때문이라고 했다. 전기도 원료도 외화도 주지 않으면서 공장을 정상화하라는 지시가 얼마나 황당한지도 모르는 것 같다. 이러는 사이에 수입금지 조치로 장마당 시스템이 붕괴했다.장마당에서 물건을 팔던 상인들은 하루아침에 굶어 죽게 생겼다. 어제까지 밥 먹고살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소득을 잃었는데, 내부 식량 가격은 무섭게 오르고 있다. 북한에서 지난달 중순 기준 북한돈 환율은 1달러당 4만 원을 넘겼고, 쌀 1kg 가격도 2만 원을 넘었다. 2년 전엔 각각 8000원, 5000원 안팎이었는데 미친 듯이 오른 것이다. 그렇다고 주민 소득이 따라 오른 것도 아니다. 월급도 2년째 제자리다. 그러니 비싼 식량과 땔감을 살 수 없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이다.여기에 식량 생산도 크게 줄었다. 이것도 김정은 때문이다. 그의 농촌개혁안에 따라 농장 작업반장은 국가 공급 비료를 외상으로 받아 가을에 식량으로 갚아야 한다. 가을 수확량을 알 수 없는 데다 흉작이면 빚더미에 올라앉는 구조라 많은 반장이 지난해 비료 구입을 포기했다.인민은 아우성치는데 김정은의 건설판은 점점 커진다. 지방산업공장만 지으라더니 이젠 봉사기지도 건설하고 병원도 건설하고 목장도 지어야 한다. 건설 비용은 주민 주머니에서 나온다. 건설 노동자들에게 장갑과 양말을 줘야 한다, 배부르게 먹여야 한다 등등의 구실로 계속 인민반들을 쥐어짠다.돈독이 오른 김정은은 병원에 가서도 돈을 내야 치료를 받게 했다. 치료비와 약값은 북한 주민 소득에 비해 어마어마하게 비싸다. 이제 가난한 사람은 아프면 죽어야 한다.이러니 어차피 죽을 바에야 불이라도 확 지르겠다는 사람이 나오는 것이다. 이란처럼 대규모 민중 봉기가 일어난 뒤 미국이 김정은을 제거해준다는 믿음만 있다면 북한 주민들은 다 거리로 몰려나올지도 모른다. 정작 김정은은 이런 민심을 알고는 있을까. 어린 딸을 데리고 총이나 쏘러 다니는 것을 보면, 전혀 모르는 것 같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26-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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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화방탕 대명사’ 북한 2인자 최룡해의 퇴장 [주성하의 ‘北토크’]

    분단의 장벽 너머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반세기 동안 북한을 지켜봐온 주성하 기자의 시선으로 풀어봅니다.25일 끝난 북한 제9차 노동당 대회를 통해 김정은 정권의 ‘공식 의전 서열 2위’이자 빨치산 2세를 상징하는 인물, 최룡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퇴진이 확정됐습니다.최룡해는 ‘백두혈통’을 강조하는 북한에서 김정은의 위상을 돋보이게 하는 보조적인 상징자산이었습니다. 올해 그의 나이 76세. 북한에서 상징자산은 나이와 상관없습니다. 그의 전임자였던 김영남 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91세까지 현역을 지켰습니다.최룡해의 이른 퇴진은 오랜 지병인 당뇨병 때문으로 보입니다. 그는 10여 년 전인 60대 초반부터 한쪽 다리를 절면서 김정은을 수행하는 모습이 종종 포착됐습니다. 당뇨병과 척추질환이 겹쳤다고 합니다. 이를 고려하면 당뇨 합병증이 시작되고도 10년 넘게 자리를 지킨 자체만으로 대단한 일일 수 있습니다. ● ‘체제의 행운아’ 최룡해최룡해의 인생은 전반적으로 운이 매우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룡해는 김일성의 빨치산 동료 최현의 서자(庶子)입니다. 최현은 빨치산 동료 김철호와 결혼해 1942년 최룡택이라는 적자(嫡子)를 낳았습니다. 최현은 38경비여단 여단장 시절에 일본군 간호사 출신인 황해북도 거주 여성과 불륜 관계였는데, 1950년 1월 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최룡해입니다.혈통을 중시하는 북한에서 빨치산 출신이 낳은 적자가 많음에도 최룡해가 빨치산 2세를 대표하는 상징자산이 된 것은 매우 이례적입니다.김일성과 같은 항일연군 2군 출신이던 최현은 북-중 국경 근처에서 전투를 자주 벌여 국내에 많이 알려졌던 인물로 김일성 유일 독재체제를 가장 앞장서 옹호했습니다. 즉 부친의 후광이 빨치산 출신 중 가장 강력했다는 점이 최룡해에겐 첫 번째 행운이었습니다.두 번째 행운은 최현의 적자 최룡택이 높은 벼슬보다는 방탕한 삶을 선택했다는 점입니다. 최룡택은 오랫동안 노동당 3대혁명소조지도부 과장 자리에 있었는데, 김정일이 더 높은 자리를 주겠다고 해도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3대혁명소조지도부 과장은 전국의 20대 초반 여대 졸업생들을 쥐락펴락하는 위치였습니다. 노동당에 입당시켜 준다며 마음에 드는 젊은 엘리트 여성들을 침실로 끌어들일 수 있는 권력이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난봉꾼으로 살던 최룡택은 60세도 채 되지 않은 2000년대 초반 뇌출혈로 쓰러졌습니다. 최룡해의 세 번째 행운은 어렸을 때부터 김정일을 따라다녔다는 점입니다. 김정일과 최룡택은 나이가 같아 어려서부터 같이 자란 사이였는데, 그러다 보니 최룡해도 코흘리개 시절부터 김정일을 알게 됐습니다.이런 인연으로 최룡해는 김정일 시대에 빠르게 출세했습니다. 36세에 벌써 노동당 중앙위 위원에 선출됐고 2년 뒤엔 북한 청년 조직 수장인 조선사회주의로동청년동맹 비서로 발탁됐습니다. 어린 나이에 큰 권력을 움켜쥔 최룡해는 빠르게 부패했습니다. 청년동맹 협주단을 만들고 전국 미녀들을 뽑아 부화방탕(浮華放蕩)한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그가 변태적 성욕 충족을 위해 ‘수청 드는’ 여성들 치아를 하나당 100달러씩 주고 뽑았던 일을 북한 사람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최룡해에 대한 이 같은 정보는 김정일에게 흘러들어갔습니다. 백두혈통만이 차지할 수 있는 최고 미녀들을 감히 빨치산혈통이 빼돌려 ‘기쁨조 파티’까지 흉내를 냈으니 김정일이 격노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최룡해는 이후 6년 동안 ‘혁명화’를 하게 됩니다.청년동맹 부하 간부들은 대거 처형당했고 이가 뽑힌 여성들도 25호 정치범수용소에 끌려가 죽음을 맞았지만, 최룡해는 몇 년간의 노동 단련으로 위기를 넘겼습니다.같은 서자 출신인지라 동병상련이었을까요. 최룡해는 김정은 시대에 더 승승장구했습니다. 2010년 난데없이 인민군 대장이 된 데 이어 2012년 정치국 상무위원 겸 군 총정치국장으로, 그리고 차수로 승진했습니다. 이후 두루두루 요직을 옮겨 다니다가 몸이 더 버틸 수 없을 때쯤 안전하게 은퇴한 것입니다.● 대를 이은 목숨 빚최룡해의 퇴진으로 이제 빨치산 2세는 북한 정치 무대에서 거의 다 사라졌습니다. 최 씨 가문의 빨치산 혈통은 3대까지 계속 이어질 수 있을까요.최룡해에겐 김정은과 동갑인 아들 최현철이 있습니다. 최현철은 29세이던 2013년 큰 교통사고를 당해 다 죽었다가 살아났습니다. 당시 평양시당 조직부 책임부원이던 최현철은 친구와 한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공교롭게도 부친이 수장인 북한군 총정치국 소속 군용 승합차에 치어 소생 불가 판정을 받고 사체실까지 들어갔습니다. 그날 오전 4시 김정은이 봉화진료소에 나타나 “최 씨 가문의 대가 끊기면 안 된다. 무조건 살려 내라”고 지시했습니다.북한 최고 의료진이 총동원됐습니다. 최현철은 42일 만에 눈을 떴습니다. 이후 그는 2년 넘게 재활치료를 했습니다. 김정은은 거액을 들여 그를 싱가포르까지 보내 고막 수술을 받게 했습니다.함께 사고를 당한 친구는 초기 상태가 최현철보다 좋았지만, 별다른 치료를 받지 못하고 죽었다고 합니다. 김정은의 소생 지시는 최현철만 해당했기 때문입니다.뇌를 다쳐 발음도 어눌하고 거동도 불편하던 최현철이 고위 간부로 출세할 정도로 건강을 회복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노동당 9차 대회에서 발표된 250명의 노동당 중앙위 위원 및 후보 위원 명단에 최현철의 이름은 없었습니다. 부친인 최룡해는 36세에 위원이 됐지만, 42세 최현철은 아직 이름을 올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빨치산 3대 혈통의 본격적인 등장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한 것 같습니다. 어쩌면 김정은에겐 빨치산 혈통이라는 상징성이 3대까지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여담이지만 최현철과 비슷한 사례가 또 있습니다.간부 인사권을 모두 틀어쥐고 있어 ‘인간계 권력’ 최고 수장이라고 불리는 조용원 노동당 조직지도부장 아들도 김정은 덕분에 목숨을 건졌습니다.2019년 초 호위국 군관 신분으로 30대 중반이던 조용원의 아들은 평양역 인근의 한 고급 술집에서 친구와 술을 마셨습니다. 최고 핵심 실세의 아들인지라 나름 북한에선 비싼 브랜드인 ‘송악소주’를 마셨는데, 이것이 메탄올로 만든 가짜 술이었습니다. 북한에선 가짜 술이 시중에 공공연하게 도는데, 하필 조용원의 아들이 피해자가 돼 시력을 잃게 됐습니다.이때도 김정은이 나섰습니다. 무조건 시력을 회복시키라는 지시에 조용원의 아들은 치료 시설이 훨씬 좋은 중국으로 이송됐습니다. 중국 의료진은 처음엔 치료할 수 없다고 난색을 보였지만, 결국 오랜 치료 끝에 시력이 돌아왔습니다. 함께 마셨던 친구는 별다른 치료를 받지 못해 시력을 잃었습니다. 이 때문에 북한 내부에서는 “같은 술을 마셨는데 조용원 아들만 해외에서 치료받고, 친구는 힘이 없어 소경이 됐다”는 소문이 쉬쉬하면서도 돌았습니다.김정은의 분노로 메탄올 술을 판매한 식당 지배인은 처형됐고, 그 식당 주변 10여 개의 다른 식당도 몽땅 철거됐다고 합니다.김정은 시대 실세였던 최룡해와 조용원은 공교롭게도 김정은에게 아들 목숨이라는 ‘큰 빚’을 지게 됐습니다. 그러니 ‘주군’에 대한 충성심이 더 높아질 것은 뻔한 일 아닐까요. 실제로 조용원은 김정은에게 “아들에게 광명을 찾아주어 감사하다”며 “대를 이어 충성하겠다”는 편지를 바쳤다고 합니다.숱한 처형을 목도했지만, 정작 자신은 늘 안전지대에 머물던 최룡해는 이제 권력을 내려놓았습니다. 그의 몸 상태를 봤을 때 몇 년 안에 김정은이 최룡해의 운구를 직접 나르며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볼 가능성도 있습니다. 북한 언론은 최룡해를 대를 이은 충신의 귀감이라고 대대적으로 선전할 것입니다.하지만 북한 인민들은 최룡해를 만민 평등을 지향한다는 북한 사회주의의 기만적 사기극을 낱낱이 드러낸 상징이자 부화방탕의 대명사로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26-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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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빵 먹는 조선민족 만들자!” 김정은이 빠다와 치즈에 꽂힌 이유[주성하의 ‘北토크’]

    분단의 장벽 너머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반세기 동안 북한을 지켜봐온 주성하 기자의 시선으로 풀어봅니다.2026년 김정은의 새로운 관심사가 등장했다. 인민들에게 빠다(버터)와 치즈를 먹이겠다는 것이다.김정은은 2일 평북 삼광축산농장 조업식에 참가해 “각 도들에 실리 있는 축산 기지들을 연쇄적으로 일떠세우면서 축산 현대화의 흐름을 고조시키면 나라의 축산업은 비약적으로 발전할 것”이라며 “전체 주민들에게 우유와 빠다, 치즈를 비롯한 각종 젖 가공품과 고기 가공품들이 항상 차례지게 하는 목표를 내세워야 한다”고 말했다.집권 이래 김정은의 관심사는 수시로 변해왔는데, 최근 몇 년 사이엔 지방산업공장, 대규모 온실, 관광단지 등이 대표적인 관심사였다. 하지만 올해 버터와 치즈 생산을 위해 각 도마다 축산 기지를 만들겠다는 새 목표가 제시됐다.2012년 집권 이래 김정은의 행동 패턴을 분석해보면, 어떤 것에 꽂히면 그 목표에는 집요할 만큼 집착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제시한 목표를 완수했다고 공언할 정도의 성과물을 만들어 낼 때까지 집요하게 찾아가고, 닦달질했다.문제는 그 이후였다. 드디어 목표를 달성했다고 만세를 부른 뒤 그의 관심사는 새것으로 옮겨간다. 뒤에 남겨진 과거의 관심사가 숨이 넘어가도 별로 관심이 없었다.북한은 생산에 필요한 원자재나 에너지 등 모든 것이 항상 부족하다. 한정된 자원은 김정은의 최근 관심사가 다 차지한다.인민에게 육류와 버터를 먹이겠다는 꿈은, 지금까지 김정은이 제시했던 목표 중에 그나마 가장 칭찬할 만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북한 인민에겐 먹는 문제가 제일 중요한데, 스키장 만들고, 관광단지 만들고 하는 것보단 먹는 것을 풀겠다고 하니 박수받아 마땅하다.● 빵 먹는 조선 민족의 꿈그렇다면 김정은의 이번 ‘버터와 치즈의 꿈’은 과연 실현 가능한 것일까.우선 김정은이 왜 갑자기 버터와 치즈라는 목표를 들고나왔는지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물론 김정은의 머릿속에 들어갔다가 나올 수는 없지만, 과거를 통해 합리적인 추론은 도출해 낼 수 있다.버터와 치즈는 밥과 어울리는 식품이 아니다. 대신 빵 문화권에서 버터, 치즈는 수천 년 넘게 식탁의 중심을 차지해 온 식품이다. 특히 유럽 농부들에게 빵과 치즈는 수천 년 동안 가장 기본적인 식사였으며, 역사적, 영양학적, 문화적 의미가 있다.빵은 밀 재배와 연결된다. 김정은은 2021년 말 개최된 노동당 제8기 4차 전원회의에서 “인민의 식생활 문화를 흰쌀밥과 밀가루 음식 위주로 바꾸겠다”며 ‘알곡생산구조’ 전환을 선언했다.이후 북한의 밀 경작지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김정은은 선대가 식량 문제 해결의 중점 과제로 내걸었던 옥수수, 감자 농사에서 탈피하려 한다. 최근 밀 생산 강국인 러시아와의 관계가 밀접해지면서, 군수품과 인력 지원에 대한 보상을 밀로 받을 가능성도 높아졌다.대대로 밥을 먹는데 익숙했던 인민의 입맛을 바꾸려면, 빵에 버터와 치즈까지 발라 맛있게 먹게 해야 한다. 그래야 불만을 줄일 수 있다.스위스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빵과 버터, 에멘탈 치즈를 즐겨 먹었던 김정은은, 자신의 경험을 통해 빵과 치즈가 옥수수밥보단 훨씬 맛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김정은이 2일 언급한 각 도의 축산 기지 건설은 낙농업을 키우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낙농업은 젖소 등을 사육하여 원유를 생산하고 이를 활용해 유제품을 생산하는 축산업이다.문제는 낙농업 육성이 북한 실정에서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군인 등 인력을 대량으로 동원해 눈에 보이는 건물을 건설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일이다. 물론 김정은도 그리 생각할 것이다. ● 연설과 현실의 간극삼광축산농장 조업식에서 한 김정은의 연설은 보기 드물게 현실을 정확히 직시하고 있다. 그는 축산업 발전의 5대 고리로 △우량품종의 종자 확보 △충분한 사료 보장 △과학적인 사양관리 △철저한 수의방역 △생산과 경영 관리의 정보화·지능화를 내걸었다. 또 “‘풀 먹는 집짐승’을 기르기 위해 방목지와 도로가 필요하다는 개념에서 대담하게 탈피해야 하며 과학기술을 이용해 축사에서 가축을 키우는 방향으로 축산업의 개념을 바꿔야 한다”고 지시했다. 100% 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말과 현실은 전혀 다르다.예를 들어보자. 3년 전 한국 정부와 민간단체들이 젖소 101마리를 네팔에 지원한 일이 있다. 네팔은 낙농업이 매우 중요한 국가다. 국내총생산(GDP)의 9%를 낙농업이 차지한다.그럼에도 네팔 토착종 젖소의 연간 마리당 산유량은 880㎏에 불과하다. 한국 젖소의 연간 산유량은 1만㎏이 넘는다. 한국 젖소 한 마리가 네팔보다 생산량이 10배 이상 많다. 북한의 젖소 품종은 낙농업으로 먹고 사는 네팔보다 결코 낫다고 할 순 없을 것이다.우량 젖소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한국도 1970년대부터 반세기 넘게 꾸준한 노력을 기울여 우량 젖소를 키워왔다. 1970년대 한국 젖소의 하루 우유생산량은 9리터였지만, 지금은 34리터로 올라섰다.사료는 어떤가. 2024년 한국은 배합사료 생산량이 2000만 톤을 넘겼는데, 원료의 95% 이상을 수입한다. 젖소 사육에서 알팔파, 티모시 등 양질의 조사료(건초)는 필수적인데, 이것들도 해외에서 들여온다.하지만 김정은은 “풀판들을 쓸모 있게 개량하고 영양가 높은 먹이풀들을 재배하라”고 했다. 한국이나 중국이 풀판이 없어 건초를 수입하는 것이 아니다. 북한에 건초까지 수입할 외화가 있을 리는 만무하지만, 북한 풀판에서 사료를 해결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거기에 더해 젖소도 사람과 똑같이 알곡을 먹여야 한다.철저한 수의방역도 말뿐일 가능성이 높다. 수의방역은 한국도 버거운 일이다. 김정은이 수천 명의 인력을 파견해 2013년부터 5년 동안 건설한, 세계 최대 규모의 목장이라고 자랑하던 약 1억5000만 평 규모의 세포등판 축산단지도 수의방역 때문에 망했다. 물론 세포등판도 사료부터 시작해 모든 것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지만, 제일 큰 문제는 병에 걸려 죽는 가축이 많았던 것이다.이 외에도 전기도 부족하고, 컴퓨터 등 첨단 반도체 설비도 귀한 북한에서 과학적인 사양관리와 정보화·지능화를 어떻게 이룩한다는 것인지도 상상이 되지 않는다.● 백날 본보기를 창조해 봐야…김정은은 이날 연설에서 광천닭공장을 가금업의 본보기로 만들었다고 자랑했다. 광천닭공장은 2년 전 김정은이 방문한 공장이다. 하지만 추위와 더위를 막아줄 냉난방시설, 사료 문제 등을 풀지 못해, 이후 제대로 생산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한다.지금까지 김정은이 이룩했다는 성과 중에 인정할 만한 것이 거의 없는데, 빵과 치즈의 꿈이라고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까. 그걸 기대하는 북한 주민은 없을 것이다.공장이든, 목장이든, 김정은이 손대는 것마다 실패하는 진짜 이유는 경제 시스템이 잘못됐기 때문이다.젖소 목장만 봐도 우량종자나 사료, 방역 약품 등은 수입에 의존해야 한다. 하지만 생산품이 나오면 김정은은 평양이나 군, 유치원 등에 생색을 내며 공짜로 풀 것이다. 그렇다고 생산에 필요한 외화를 지속적으로 대주는 것도 아니다. 삼광축산농장 간부들은 이제부터 목숨을 하늘에 맡기고 살아야 한다. 김정은의 관심이 내년에 딴 곳에 쏠리면 젖소 목장은 찬밥 신세가 된다.몇 년 뒤 김정은이 불쑥 찾아와 “당의 영도업적을 망쳤다”며 화를 내며 간부들을 반당반혁명분자라고 단죄할지 누가 아는가. 전기나 원료를 대주지 않으면, 모든 것에 천재라는 김정은을 총경리로 임명해봐야 뾰족한 묘수가 있을 리가 없다.북한 인민이 빠다와 치즈를 먹고 살려면 방법은 하나뿐이다. 시장경제를 인정하고 도입하면 된다. 그러면 김정은이 편히 쉬고 있어도 인민 생활은 빠르게 좋아진다.…하지만 그걸 외면하고 있는 한, 김정은이 죽을 때까지 전국을 홍길동처럼 돌아다니며 격려하고 처벌하고 해봐야 성과가 나올 수가 없다. 어쩌면 인민이 잘살기 전에 간부들이 처벌받아 다 죽는 것이 현실적 가능성이 더 높을 듯싶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26-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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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 사이]러시아로 끌려가는 북한 제대군인들

    김정은이 올해 또 러시아에 수만 명을 파병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 소식통은 “올해 제대 대상 군인 전체가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점령지에 파견된다”고 전했다. 북한은 17세에 군에 입대해 남성은 평균 10년, 여성은 5년 동안 복무한다. 현재 실질적인 북한군 병력은 80만 명 정도로 예상된다. 여기서 군관과 장기 복무 하사관을 빼면 병사는 많아야 60만 명 정도로 추정된다. 이 중 남성은 매년 10분의 1씩, 여성은 5분의 1씩 제대한다. 러시아에 남성 제대군인만 보내는지 여성도 보내는지 아직 확실하지 않지만, 남성만 보낸다고 해도 4만 명은 될 것이다. 뇌물이 보편화한 북한에선 간부나 부자는 돈을 뿌려 가며 자녀들을 이래저래 빼낼 테니 선발되는 사람들은 일반 서민 자녀일 것이다. 러시아에 파병 가는 제대군인들은 파괴된 인프라 복구에 투입된다. 이미 북한은 지난해 6월 러시아에 공병 1000명과 군 건설 노동자 5000명을 파견하기로 했는데, 올해 제대군인까지 합세하면 노동자 파견 규모는 훨씬 더 커질 듯하다. 북한 근로자 해외 파견은 2017년 유엔 대북 제재 결의안 위반이지만, 이 결의안은 무용지물이 된 지 오래다. 북한 제대군인 중엔 복무 기간 집에 한 번도 못 간 사람이 많다. 우크라이나에 포로로 잡힌 고참 군인 이모 씨는 부대에서 100km 정도 떨어진 집에 10년 동안 한 번도 가지 못했다고 했고, 입대 4년 차인 백모 씨도 집에 가지 못했다. 재작년 8월 군사분계선을 통해 귀순한 9년 차 북한 군인도 복무 기간 집에 간 적이 없다. 군인들이 휴가 한번 쓰지 못하고 10년씩 복무하는 이유는 부대에서 보내주지 않아서가 아니다. 집에 갔다 오려면 부대로 복귀할 때 쌀 한 배낭이라도 메고 돌아와 군관들에게 뇌물을 줘야 한다. 가난한 집 자식은 집에 부담을 주기 싫어서 기회가 있어도 가지 않는다. 반면 돈 많은 집 자식은 군관들에게 뇌물을 주고 집에서 몇 달씩 놀기도 한다. 제대 후 집에 돌아가서 결혼하고 싶은 희망으로 10년씩 버텼는데, 그 희망이 물거품이 될 판이다. 연애를 못 해 본 27세 청년 수만 명이 우크라이나에 풀리면 강력 범죄가 빈발할 법도 하지만 현실은 다를 것이다. 현재 러시아가 점령 중인 우크라이나 남동부 지역 면적은 북한 전체 영토와 맞먹는 약 12만 km². 북한 제대군인들이 투입될 지역은 이 중에서도 심하게 파괴된 일부 지역이 될 것이다. 민간인도 이미 다 피란을 떠나 약탈할 것도 변변치 않은, 그야말로 폐허에 불과한 땅이다. 북한이 제대군인들을 러시아로 보내는 까닭은 이들이 통제하기 가장 쉬운 집단이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엔 군에서 10년씩 복무하면 대개 노동당에 입당시켰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10년 복무해도 입당하는 군인은 10% 미만이라고 한다. 당국은 제대군인을 인력이 모자라는 공장이나 농촌, 탄광 등에 일방적으로 보내는 경우가 많은데, 입당한 사람은 현지에서 집으로 도망칠 궁리만 한다. 그래서 파견지에서 2, 3년 정도 지켜보고 입당시키는 시스템으로 바뀌었다. 북한에서 당원 위상이 과거보다 떨어진 것은 사실이다. 돈이 많으면 당원보다 낫지만, 문제는 돈도 없는데 당원도 아니면 인기가 없다는 데 있다. 당원밖에 기댈 것이 없는 가난한 청년들은 10년 허비한 청춘이 아까워서라도 파견지에서 몇 년 더 버틸 수밖에 없다. 러시아에 가는 제대군인들도 현지에서 열심히 일을 잘해야 입당시키겠다는 말을 들을 것이다. 이렇게 20대 청년들을 코를 꿴 부림소처럼 부려먹으면서도 김정은은 정작 “출산율 감소를 막아야 한다”고 엉뚱한 소리를 한다. 지난해 러시아로 파견됐던 북한 근로자들 인터뷰를 보면 이들은 하루 16시간 이상 중노동에 시달렸다. 열심히 일한 만큼 김정은 주머니가 불룩해지니, 올해 파견될 제대군인들 처지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새해 초부터 김정은은 평양에 만드는 ‘해외군사작전 전투위훈기념관’ 건설 현장에 가족을 데리고 나가 지게차를 직접 몰며 나무를 심느라 분주했다. 사진 속 김정은은 신이 난 듯 보였다. 기념관 옆에는 전사자 400여 명의 묘가 들어선다. 현재까지 북한이 공개한 전사자 수는 약 250명. 아직 150명 정도 묫자리가 비었다.주성하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zsh75@donga.com}

    • 2026-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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