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광영

신광영 논설위원

논설위원실

구독 62

추천

안녕하세요. 신광영 논설위원입니다.

neo@donga.com

취재분야

2026-04-10~2026-05-10
칼럼100%
  • [오늘과 내일/신광영]김건희 2심 재판이 들춰낸 檢의 ‘봐줄 결심’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이 28일 2심에서 유죄 판결이 났다. 검찰이 김 여사를 무혐의 처분한 지 1년 반 만이다. 통상 피의자를 처벌해 달라고 하는 게 검찰이고, 정말 죄가 되는지 따지는 게 법원이다. 이 사건은 달랐다. 검찰에서 덮으려 한 사건이 재판에서 들춰졌다. 그사이 많은 일들이 있었다. 특검이 검찰 수사를 뒤집어 지난해 김 여사를 기소했고, 석 달 전 1심의 무죄 판단을 2심이 뒤집었다.檢이 외면한 녹취가 주가조작 핵심 증거 2심 재판부가 주목한 증거는 김 여사가 증권사 직원의 사무실로 전화해 통화하면서 남긴 육성 녹취다. 김 여사는 20억 원이 든 자신의 증권 계좌를 주가조작 일당에게 맡기면서 “수익을 그쪽과 6 대 4로 나눠야 한다”고 했다. 아무런 손실 보장 약속도 없이 도이치모터스 주식 한 건에 투자하라고 20억 원을 몰아주고 수익이 나면 40%나 떼준다는 것이었다. 김 여사는 그 직원에게 “(지금 쓰는) 사무실 전화는 녹음되니 통화는 휴대전화로 하자”란 말도 했다. 재판부는 김 여사가 주가조작으로 큰돈을 벌 것으로 기대했을 가능성이 크고, 그런 거래의 흔적을 감추려 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전화로 주식 거래를 할 때 고객과 증권사 직원의 통화는 모두 녹음된다. 주가조작 수사에선 기본적으로 살펴보는 자료다. 하지만 검찰은 4년 반이나 수사하면서 이 녹취 파일을 확보하지 못했다. 주가조작에 쓰인 김 여사의 3개 계좌 중 이 계좌에 대해서만 통화 기록이 누락됐다고 한다. 불기소 처분 이후 재수사에 나선 서울고검이 두 달도 안 돼 찾아낸 걸 보면 못 했다기보다 안 한 것에 가깝다. 고검의 뒷북 수사 역시 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되고 특검 출범이 임박했던 지난해 4월에야 시작됐다. 김 여사는 2024년 5월 박성재 당시 법무부 장관에게 “내 수사가 어떻게 되고 있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도이치 사건 수사 지휘부가 이창수 전 서울중앙지검장 등 ‘찐윤’ 검사들로 모두 물갈이되던 때였다. 수사팀에서 김 여사의 예상 진술과 함께 증거 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한다는 취지의 내부 문건을 만든 것도 그즈음이라고 한다. 그 후 두 달 뒤, 김 여사를 소환 조사하라는 검찰총장의 지시도 어긴 채 검사들이 대통령경호처 부속건물로 찾아가 김 여사를 조사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러곤 앞서 작성했던 문건대로 김 여사를 불기소 처분했다.“봐주기 수사”란 비판이 끊이지 않았지만 올 1월 1심 판결은 달랐다. 김 여사의 주가조작 혐의에 대해 의심은 가지만 공범으로 가담하진 않았다며 무죄 판결했다. 이 판결로 검찰에선 도이치 사건 수사가 억울하게 매도당했다는 목소리도 일부 나왔다고 한다. 하지만 이번 2심 재판부는 1심의 오류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시세조종 세력과 김 여사 간에 갈등이 있었던 점에 대해서도 1심은 무죄 정황으로 봤지만 2심에선 주가조작 범행 특성상 공범들끼리 이익 배분을 두고 흔히 다툼이 벌어진다면서 유죄 판단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했다.상식과 법, 다르지 않다는 점 보여준 2심 이번 판결은 법의 관점이 일반 국민의 상식과 다르지 않다는 점을 보여 준다. 주가조작 유죄 판결로 검찰이 김 여사에 대해 ‘봐줄 결심’을 했었다는 점도 자연스레 드러났다. 재판부는 김 여사가 통일교로부터 받은 802만 원짜리 샤넬 백이 의례적 선물에 불과하다고 본 1심의 판단도 바로잡았다. 취임을 앞둔 대통령의 부인에게 아무 대가도 안 바라고 비싼 명품 백을 건네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며 묵시적 청탁이 이뤄진 것으로 보고 유죄로 뒤집었다. 1심에서 1년 8개월이던 형량은 4년으로 늘어났다. 김 여사는 이에 불복해 상고하겠다고 한다. 대법원은 어떻게 판단할지 지켜볼 일이다. 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

    • 2026-04-2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횡설수설/신광영]1시간59분30초

    마라톤 풀코스를 2시간에 주파하려면 100m당 17초 속도로 달려야 한다. 보통의 성인 남성이 거의 전력 질주해야 하는 속도다. 이런 페이스로 단 한 번의 흐트러짐 없이 100m 달리기를 422회 반복해야 한다. 실제 경기에선 여러 변수가 있다. 바람, 날씨와 싸워야 하고 주변 선수들과 신경전도 치러야 한다. 그래서 2시간 내 완주는 인간 한계를 넘는 ‘마의 벽’이었다. ▷케냐 출신 사바스티안 사웨 선수(31)가 26일 영국 런던 마라톤에서 1시간59분30초의 기록으로 그 벽을 처음 깼다. ‘마라톤 황제’ 엘리우드 킵초게가 2018년 2시간 1분대를 기록했고, 5년 후 켈빈 킵툼이 2시간 35초로 바짝 다가섰는데 대기록은 사웨의 차지가 됐다. ▷‘서브 2(2시간 내 완주)’ 마라토너가 나올 수 있었던 건 선수들의 에너지 소모를 최소화해 달리기의 ‘연비’를 높이는 기술이 발달한 게 한 요인으로 꼽힌다. 2시간 장벽이 곧 깨질 수 있다는 전망에 나이키 아디다스 등 스포츠 회사들은 초경량 탄소 섬유 개발 등 성능 경쟁에 나섰다. 사웨가 신었던 97g 러닝화는 200g 안팎이던 신발 무게를 절반으로 줄이고 탄성을 높였다고 한다. 또한 런던 마라톤은 적당한 온도에 코스도 평탄해 베를린·시카고 마라톤과 함께 선수들이 기록 경신을 기대하는 대회 중 하나로 꼽힌다. ▷하지만 장비나 경기 환경이 선수들의 정신력보다 중요할 순 없다. 누구와 함께 뛰느냐도 경기력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번 런던 마라톤에선 2등 선수도 1시간59분41초의 기록을 세웠다. 3위 선수 역시 종전 세계기록을 뛰어넘는 2시간28초였다. 한 대회에서 상위 3명이 모두 세계기록을 넘어선 건 처음 있는 일이다. 선의의 경쟁은 이처럼 위력적이다. 전반부보다 후반부에 더 빨리 달렸던 사웨는 준우승 선수에게 고맙다면서 “우리는 서로를 도왔다. 그가 아니었다면 2시간 내 완주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했다. ▷선수들은 내 옆의 선수들뿐 아니라 나보다 앞서 경기했던 선수와도 겨룬다. 선배 선수가 불가능해 보였던 기록을 깨서 먼저 길을 내면, 그 뒤의 선수들은 새 기록을 넘어서기 위해 달린다. 피겨스케이팅에서 4회전(쿼드러플) 점프는 한때 꿈의 기술이었지만 1988년 최초 성공 사례가 나온 뒤 정상급 선수들에겐 필수 기술이 됐다. 육상 100m 경기에서도 ‘10초 장벽’이 1968년 깨진 이후 기록 경신이 이어져 2009년 9초58(우사인 볼트)까지 단축됐다. 이제 사웨가 ‘서브2’ 시대를 열어젖힌 이상 예상을 뛰어넘는 마라톤 기록들이 줄지어 나올 것이다. 인간에게 한계란 없다는 사실을 선수들이 몸으로 보여주고 있다.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

    • 2026-04-27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횡설수설/신광영]증인 선서 거부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불거진 2016년 말 국회는 ‘숨은 우병우 찾기’로 떠들썩했다. 국회 국정조사특위가 우병우 전 민정수석에게 출석요구서를 전하려 자택을 찾았을 때 그는 가족과 함께 사라진 상태였다. 정당한 사유 없이 청문회에 불참하면 처벌하는 법이 있었지만 우 전 수석이 ‘송달 불능’ 상황을 만들어 처벌을 피한다는 비판이 잇따랐다. 우 전 수석을 국회 증인석에 앉히기까지 한 달 가까이 숨바꼭질이 이어졌다. 이 사달을 계기로 국회 출석요구서를 일부러 피하면 전달된 것으로 간주하는 ‘우병우 소환법’이 2018년 통과됐다. ▷이후 국회 출석 요구를 회피하는 사례는 줄었지만 증인으로 나와 선서를 거부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2024년 채 상병 사건 청문회에서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과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은 공수처 수사 중이란 이유로 선서를 거부했다. 형사소송법에 본인이나 친족이 형사소추나 공소 제기를 당할 염려가 있는 증언은 거부할 수 있게 돼 있고, 국회 증언·감정법에도 이런 경우 선서나 증언을 거부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다. 이완규 전 법제처장도 계엄 직후 안가 회동 관련 증인으로 국회에 나와 “수사 중”이라면서 선서를 거부했다. ▷쌍방울 대북송금 사건에서 진술 회유 의혹을 받고 있는 박상용 검사는 최근 국회 국정조사에서 증인 선서를 연이어 거부했다. 박 검사 역시 조작 기소 혐의로 서울고검의 수사를 받아 왔다. 그는 사유서에서 위법한 국정조사에 협조할 수 없어 선서는 거부하지만 위원들 질의에 성실히 증언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선서는 안 하되 할 말은 하겠다는 취지다. ▷증인 선서는 하는 순간 위증죄로 처벌받을 위험이 생긴다. 한덕수 전 총리도 국회와 헌법재판소에서 선서를 한 뒤 “계엄 문건을 받은 적이 없다”고 거짓 증언한 혐의로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증인 선서는 법정이나 국회에서 이뤄지는데, 법원에 비해 실체 규명 수단이 부족한 국회에서의 위증이 더 센 처벌을 받는다. 법정에선 증언을 거부하더라도 선서 자체를 거부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최근 윤석열 전 대통령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김건희 여사나 부인 정경심 교수 재판에 출석했던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도 증인 선서 후 증언을 거부했다. ▷박 검사는 증인 선서는 하지 않고 국회 밖에서 적극 해명하는 전략을 펴고 있다. 여당이 공소 취소 명분을 쌓기 위해 만든 정치적 무대에 설 수는 없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하지만 현직 검사가 국회 절차를 거부한 채 언론과 유튜브를 확성기로 활용하는 게 공직자로서 적절한지에 대해선 논란이 있다. 증인 선서는 위증을 막기 위한 절차인 동시에, 증인에겐 발언의 신뢰도를 높이는 장치이기도 하다. 법적 책임은 피하면서 내 할 말은 하겠다는 태도로는 말에 무게가 실리기 어렵다. 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

    • 2026-04-16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횡설수설/신광영]얌체 환자

    서울에 사는 60대 이모 씨는 보건복지부의 ‘의료쇼핑 의심자’ 리스트에 올라 있다. 지난해 1∼10월 열 달간 받은 물리치료 횟수가 547회에 달한다. 월 55회꼴이다. 하루에 병원 6곳을 돌며 목, 허리, 어깨, 발목 치료를 받은 날도 있다. 이것도 한 해 전인 2024년(1159회)과 비교하면 절반으로 줄어든 것이다. 정부는 그해 하반기부터 진료비 본인부담률을 높였다. 매일 출근하듯 병원에 가는 ‘연간 365회 이상’ 이용자에 대해 366회 차 방문부터는 진료비의 90%를 내도록 한 것이다. 그 전엔 횟수 제한 없이 진료비의 20∼30%만 내면 됐다. ▷본인 부담이 커지자 병원 가는 횟수를 줄인 건 이 씨뿐만이 아니다. 연 365회 초과 이용자는 2024년 2285명이던 게 지난해 102명(9월 누적 인원)으로 뚝 떨어졌다. 내 돈 내고는 안 받을 치료를 거의 공짜로 누리는 도덕적 해이가 그만큼 심각했던 것이다. 실손보험이 이런 풍조를 부추겼다. 병원 가는 데 금전적 부담이 없다 보니 건강보험 재정에서 나가는 급여 진료와 실손보험에서 메워주는 비급여 진료가 함께 늘어 왔다. ▷‘연 365회’ 기준선은 없는 것보단 낫지만 큰 효과를 내진 못하고 있다. 그보다 살짝 아래인 1년에 300회 넘게 외래 진료를 받은 환자는 2024년 8400여 명에 달했다. ‘200회 초과’는 6만 명, ‘150회 초과’는 20만 명이 넘는다. 이들의 진료비를 대느라 건보 재정이 줄줄 새고 있다. 결국 정부는 내년 1월부터 기준을 한층 강화하기로 했다. 앞으론 1년에 300번 넘게 병원에 가면 301번째부턴 진료비 90%를 본인이 내야 한다. ▷의료 쇼핑객들이 건보 재정을 축내면 피해자가 생긴다. 정작 써야 할 곳에 돈을 쓰지 못하기 때문이다. 고령화로 ‘간병 파산’ ‘간병 살인’ 같은 비극이 늘고 있는데 이런 가족들의 고통을 덜어줄 간병비 급여화는 계속 밀리게 된다. 중증 희귀질환 치료나 필수 의료 확충에 쓸 재정 여력도 부족해진다. 더구나 청년 인구 감소로 이들이 짊어질 보험료 부담은 커지고 있다. 지금처럼 일부가 혜택을 독식하면 건강보험제도에 대한 젊은 세대의 불신이 깊어질 수 있다. ▷이참에 기준을 더 강화해 진료 횟수가 연 200회나 100회만 넘어도 본인이 병원비를 부담하게 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소수가 건보 재정을 갉아먹으며 다수의 성실 납부자들에게 박탈감을 주는 상황을 바로잡자는 것이다. 다만 신장병, 당뇨 등 만성질환자들은 병원에 자주 가야만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들의 치료받을 권리가 침해되지 않도록 적정선을 찾을 필요는 있다. 건강보험은 여러 세대가 십시일반으로 채워온 공동의 저수지다. 몰래 물줄기를 빼내거나 물을 오염시키는 얌체 환자들을 골라내야 ‘저수지’가 제 기능을 할 수 있다. 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

    • 2026-04-05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횡설수설/신광영]상담 꺼리는 대전 화재 생존자들

    지난달 대전 안전공업에서 불이 난 건 점심시간 때였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휴게실 등에서 쪽잠을 자며 쉬고 있던 직원이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폭발음과 함께 불이 번지면서 익숙한 일상의 공간은 절규로 가득 찼다. 2, 3층의 직원들은 유독 가스와 고열을 견디지 못하고 에어매트가 깔리기도 전에 창문 밖으로 뛰어내렸다. 온몸에 재를 뒤집어쓴 채 바닥에 쓰러진 이들도 많았다. 직원 364명 중 사망자가 14명, 부상자가 60명에 달한다. 나머지 직원들 역시 그날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생존자들이다. ▷불구덩이에서 살아남은 직원들은 여러 감정에 시달리고 있다. 친한 동료가 숨지거나 다친 모습을 목격한 충격, 지켜주지 못했다는 자책감, 계속 일할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감이 교차한다고 한다.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 징후들이다. 정부는 산업재해를 겪은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트라우마 치료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지만 대전 화재 생존자들 중 심리 치료를 받은 사람은 많지 않다. 상담받은 직원이 18%에 불과하다. ▷트라우마 치료를 위해선 다신 그런 위험을 겪지 않을 것이란 안정감이 필수라고 한다. 그런데 일터에서 끔찍한 사고를 겪은 노동자들은 다시 그 현장으로 돌아가야 하는 사람들이다. 아비규환의 기억이 되살아날 수밖에 없다. 지난해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하청업체 직원이 기계에 끼여 사망한 사건에선 동료들이 숨진 피해자의 시신을 그대로 목격했다. 그런 작업장에서 다시 기계를 돌려야 하는 노동자들은 이번엔 나일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떨치기 어렵다. 이들에 대한 심리 치료가 더없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공장이 통째로 불탄 대전 화재는 거의 전 직원이 트라우마를 안게 된 사건이다. 하지만 직원들은 나약한 사람으로 보일까 봐 상담을 망설이는 사례가 많다고 한다. 아직 우리 사회엔 심리적 불안을 개인의 약점으로 낙인찍는 왜곡된 인식이 남아 있다. 정신과 치료를 받는 게 알려지면 인사상 불이익을 받을 수 있고, 이곳 직장을 잃을 경우 다른 일자리를 찾기 쉽지 않다는 것도 부담이라고 한다. 대전 화재 생존자들을 여전히 움츠리게 만든 요인들이다. ▷트라우마 치료는 사고 발생 후 7일에서 4주가 골든타임이다. 보통 이 시기는 사고 조사와 책임자 규명에 관심이 쏠려 생존자 마음 건강은 뒷전으로 밀리기 일쑤다. 이번 화재 사고처럼 감당하기 힘든 일을 겪은 사람은 다시 떠올리는 게 고통스러워 회피하는 것이 정상 반응이라고 한다. 동료들끼리 심리 상담 경험을 공유하며 권하는 문화도 미처 형성되지 않았다. 경영진이 주도적으로 상담을 통한 극복을 독려하지도 않은 듯하다. 산재 사고 후엔 마음 치료를 받는 것이 당연한 절차이자 권리라고 여긴다면 이들이 상담실로 향하는 발길이 한결 가벼워질 것이다.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

    • 2026-04-02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오늘과 내일/신광영]검경은 놓치고 판사가 수사한 돌려차기 사건

    부산 돌려차기 사건은 검경 수사의 뼈아픈 실패 사례다. 부실 수사로 피해자에게 씻을 수 없는 고통을 줘 최근 국가배상 판결까지 났다. 검경이 놓친 건 범인의 성폭행 혐의였다. 범인은 자신의 온 체중을 실은 돌려차기로 피해자를 쓰러뜨린 뒤 그를 들쳐 업고 CCTV 사각지대로 가 7분간 머물렀다. 그 직후 피해자는 바지 지퍼가 열린 채로 발견됐다. 범인은 도주하면서 휴대전화로 ‘강간 폭행’ ‘강간 치상’을 검색했다. 경찰도 성폭행 가능성을 배제하진 않았다. 하지만 범인이 극구 부인하자 증거를 찾아보지도 않고 ‘묻지 마 범행’으로 결론지었다. 검찰 역시 성폭력 관련 수사를 보완하라고 요구하지도, 직접 하지도 않았다. 그러곤 형량이 높은 강간 살인미수 대신 살인미수로만 기소했다.성폭행 수사 부실… 법정 와서야 드러나 검경이 비워둔 빈칸은 결국 판사가 채워야 했다. 성폭행 혐의를 조사해 달라는 피해자의 반복된 요청을 2심 재판부가 받아들였다. 재판장은 피해자의 청바지와 속옷 등 의복 일체를 전면 재감정하라고 지시했다. 그 결과 청바지 여러 곳에서 범인의 DNA가 검출됐다. 당초 경찰이 했던 감정은 범인이 만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일부 부위만 대상으로 이뤄져 나오지 않았던 증거였다. 용의자 특정에 집중하느라 성폭행을 밝히는 데는 소극적이었던 것이다. “피해자 청바지가 몸이 보일 정도로 내려가 있었다”는 최초 목격자 진술, “동생 속옷이 한쪽 다리에만 걸쳐 있었다”는 피해자 언니의 진술도 2심에 와서야 나왔다. 재판부는 성폭행 시도 사실을 인정해 범인에게 1심보다 8년 무거운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다만 성폭행 여부에 대해선 사건 후 1년이 지나서야 재감정이 이뤄져 증거가 충분치 않다고 판단했다. 범인은 동료 재소자들에게 피해자 주소를 읊어대며 “출소하면 살해하겠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하는데 초동수사 실패가 그의 출소를 앞당겨준 셈이 됐다. 물론 수사는 쉽지 않은 작업이다. 한정된 시간과 인력을 어디에 집중할지 매 순간 선택해야 한다. 확증 편향, 종결 욕구 같은 인지적 함정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선의를 갖고 최선을 다해도 수사는 실패할 수 있다. 사회적 공분이 큰 사건일수록 압박도 커 함정에 더 취약하다. 그래서 보완수사가 중요하다. 유동적, 잠정적일 수밖에 없는 1차 수사를 보완하지 못하면 추가 증거 수집 기회를 날리고 범인이 다른 사람일 가능성도 닫아버려 피해자와 피의자 모두에게 인권 침해다. 지금의 검찰개혁 논의에선 검사에게 보완수사권을 줄지 여부가 쟁점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보완수사를 가장 제대로 할 수 있는 제도를 갖추는 것이다. 검사가 보완수사를 할 수 있는 현 제도에서도 돌려차기 사건처럼 스크리닝에 실패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그렇다고 검사에게 보완수사 요구만 할 수 있게 하면 수사 통제는 더 허술해질 가능성이 높다. 경찰이 보내온 수사 기록은 1차 수사팀의 결론을 뒷받침하는 내용 위주로 편집된 정보일 수밖에 없다. 검찰이 이를 검증하고 다른 가설을 확인할 수단이 없다면 오류를 잡아내기가 쉽지 않다. 돌려차기 사건만 보더라도 검찰이 보완수사권을 적절히 활용해 최초 목격자와 피해자 언니의 진술을 확보했다면 그런 부실 기소가 이뤄지진 않았을 것이다.보완수사 ‘누가’보다 ‘제대로’가 중요 국가가 사적 보복을 용인하지 않고 형벌권을 독점하는 건 책임지고 실체를 규명해 합당한 처벌을 하겠다는 국민과의 약속을 전제로 한 것이다. 부실 수사는 이 계약을 정면으로 위반한 위법 행위다. 검찰권 남용을 막는 개혁은 필요하지만 수사의 완결성은 어떤 이유로도 후퇴해선 안 되는 원칙이다. 보완수사가 부실해 판사가 법정에서 ‘수사’하고, 피해자에게 국가배상까지 하는 상황이 재발하지 않도록 막는 것도 놓쳐선 안 될 개혁 과제다.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

    • 2026-04-0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반성도 사과도 없이 숨진 ‘고문 기술자’[횡설수설/신광영]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 기술자’ 이근안 씨를 만났던 피해자들은 이 씨의 손이 솥뚜껑처럼 컸다고 기억한다. 그런 손으로 팔을 확 잡아당겨 관절을 뽑았다가 다시 쭉 밀어서 집어넣었다고 한다. 이 씨의 주특기였던 이른바 ‘관절 뽑기’다. ‘날개 꺾기’ ‘통닭구이’도 그가 개발한 고문 기법이었다. 간첩으로 몰렸던 납북어부 김성학 씨는 “이 씨가 상대의 신체 반응을 봐가며 고문 강도를 세밀하게 조절해 고통을 극대화시켰다”고 했다. 이런 식으로 거짓 자백을 받아냈던 이 씨는 훗날 “심문도 하나의 예술”이라는 궤변까지 늘어놨다. ▷전국으로 ‘출장 고문’을 다니며 특진을 거듭했던 이 씨는 1987년 민주화 이후 잠적했다. 11년간 숨어 살았던 그는 1999년 검찰에 돌연 자수했다. 함께 고문을 했던 동료 형사들이 비교적 가벼운 형량을 받은 걸 보고 심경의 변화를 느꼈다고 했다. 고문죄 공소시효도 대부분 지난 상태였다. 이 씨는 납북어부 사건으로만 기소돼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이 씨에게 고문을 당했던 김근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2005년 복역 중이던 이 씨를 찾아갔다. 당시 김 전 장관이 “어디 개인의 잘못입니까. 시대가 만든 죄악이지”라면서 용서를 해줬다는 게 이 씨의 주장이다. 김 전 장관은 그날 만남에 대해 “나의 용서가 진실인지 반문하곤 한다”고 회고록에 썼다. “고문당했던 기억이 떠오를 게 분명해 면회 가던 날 오전까지 망설였다. 해마다 고문을 받은 시즌이 되면 몸서리치게 몸살을 앓곤 했다.” 머리로는 용서했지만 몸에 새겨진 상처를 지우진 못했던 것 같다. ▷이 씨는 2012년 ‘고문기술자 이근안의 고백’이란 책을 내며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그 자리에서 기자와 만난 이 씨는 “피해자들에게 사과한다”고 했다. 정확히 무엇에 대해 사과하느냐고 묻자 “쥐어박으면 안 되는데 그게 내 잘못”이라고 했다. 김 전 장관은 “온몸이 발가벗겨진 채 전기 고문을 당하는 동안 죽음의 그림자가 코앞에 다가왔다”고 했고, 이 씨에게 고문을 받은 뒤 옥사한 피해자도 있다. 이런데도 이 씨는 자신의 행위를 ‘쥐어박는다’는 정도로 표현했다. ▷이 씨는 25일 서울의 한 요양병원에서 사망했다. 그는 88세까지 살았다. 고문 후유증으로 고통받았던 김 전 장관은 파킨슨병을 앓다가 64세에 눈을 감았다. 이 씨의 고문에 못 이겨 허위 자백을 한 뒤 옥살이를 했던 피해자들은 30, 40년 뒤에야 누명을 벗었지만 당사자가 이미 세상을 뜬 경우도 적지 않다. 이 씨는 출소 후 사망하기까지 20년 동안 피해자와 가족들에게 제대로 된 사과를 한 적이 없다. 피해자가 힘들게 내민 용서의 손길에도 제대로 된 반성과 사과 한마디 없이 떠난 그에겐 고문 기술자란 낙인이 역사의 형벌처럼 남게 됐다. 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

    • 2026-03-27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횡설수설/신광영]김건희 조사 두 달 전 ‘불기소’ 문건

    2024년 5월은 검찰이 김건희 여사 사건으로 격변에 휩싸인 한 달이었다. 5월 2일 이원석 당시 검찰총장이 디올백 의혹 전담수사팀 구성을 지시하며 수사 의지를 드러낸 게 발단이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4일과 12일 박성재 당시 법무부 장관과 각각 75분, 42분간 통화하며 긴박하게 움직였고, 13일 검찰 고위직 인사가 단행됐다. 이 전 총장은 패싱한 채 이뤄진 그 인사로 ‘찐윤’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이 기용되고 김 여사 수사팀 지휘부가 몽땅 물갈이됐다. 김 여사가 박 전 장관에게 “내 수사 어떻게 돼 가고 있느냐”고 물은 게 그로부터 이틀 뒤다. ▷그 5월 말 김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을 수사한 서울중앙지검 반부패2부에서 작성했던 문건이 최근 논란이 되고 있다. 민중기 특검은 이 문건이 검찰의 봐주기 수사를 뒷받침하는 단서라고 보고 2차 종합특검에 넘겼다. ‘불기소처분서’라는 폴더에서 발견된 한글파일에 김 여사의 예상 진술과 함께 증거 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한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고 한다. 문건이 마지막으로 수정된 게 그해 5월 24일로 이 전 지검장 부임 9일째 되는 날이었다. ▷그것만으로 검찰이 김 여사에 대해 ‘봐줄 결심’을 했다고 볼 수는 없다. 기소와 불기소로 나눠 수사 상황을 정리한 문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시는 김 여사 조사조차 이뤄지지 않아 기소 여부를 검토할 단계가 아니었다. 김 여사 대면조사는 두 달 뒤에야 이뤄졌는데 벌써부터 ‘불기소’ 표현이 수사팀 문건에 등장한 것이다. 김 여사 조사 역시 “검찰청사로 불러 조사하라”는 총장 지시까지 어기고 수사팀이 대통령경호처 부속 건물로 찾아가 ‘황제 조사’ 논란을 빚었다. ▷이창수 전 지검장이 수사 검사에게 “유사 사건의 무죄 판례를 참고하라”는 메시지를 보냈다는 보도도 나왔다. 보도에 따르면 이 지시는 수사팀이 김 여사 기소 여부를 저울질하던 9월에 이뤄졌다. 사실상의 무혐의 처분 가이드라인일 수 있다고 특검이 의심하는 이유다. 이 전 지검장은 “판례 검토는 사건 처분 전 거쳐야 하는 절차”라고 해명했다고 한다. 그 말이 맞을 수도 있지만 지검장이 지휘 계통인 차장검사와 부장검사를 건너뛰고 일선 검사에게 직접 지시하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서울중앙지검은 2024년 10월 김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혐의에 대해 불기소 처분했다. 공교롭게도 5개월 전 작성했던 문건과 같은 결론이다. 특검이 확보한 문건 중에는 수사팀의 수사보고서도 있는데 수사 결과 발표 후에도 수정된 흔적이 있다고 한다. 보고서 작성 날짜를 최초 작성일로 바꿀지 검사들끼리 대화한 내역이 발견됐다는 보도도 있다. 수사 과정이 정상적이고 떳떳했다면 이렇게까지 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밝혀내야 할 의혹이 아직 많다.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

    • 2026-03-25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횡설수설/신광영]모사드의 오판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의 정보력은 지난달 28일 이란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 암살 때도 유감없이 발휘됐다. 하메네이 경호원들의 차량 번호와 출퇴근 경로를 꿰고 있던 모사드는 수도 테헤란의 교통 카메라를 해킹해 이들이 비밀 관저로 향한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또 외부에서 경호원들에게 위험 징후를 알리지 못하도록 주변 기지국을 교란시켜 전화를 걸어도 ‘통화 중’ 신호가 뜨게 했다. 결국 관저 지하 벙커에 모인 하메네이와 주요 수뇌부는 이날 오전 9시 45분 일거에 제거됐다. ▷모사드의 정보력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마음도 움직였다. “이란을 침공하면 며칠 내에 반대 세력을 규합해 정권을 붕괴시킬 수 있다”는 모사드의 보고가 트럼프의 공습 결정에 영향을 줬다는 미 언론의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트럼프는 지난달 28일 이란 공격 직후 이란 국민들에게 “우리가 작전을 끝내면 정부를 장악하라. 이란 정부는 여러분의 것이 될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는 반정부 시위로 이란 정권이 흔들리는 지금이 핵을 폐기시킬 적기로 본 것 같다. ▷하지만 수뇌부가 사라지면 정권이 무너질 것이란 정보는 오판으로 드러나고 있다. 전쟁 한 달이 다 되도록 이란 정권은 건재한 상태다. 핵심 세력인 혁명수비대는 무력 집단인 동시에 석유 등 국가 기간산업까지 장악하고 있다. 이런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백업 시스템을 촘촘히 갖춰 수뇌부가 제거되면 곧바로 후계자가 채워지는 구조다. 하메네이보다 더 강경한 차남이 뒤를 잇게 된 가운데 반대 진영은 구심점 없이 무력한 상태다. 국민들 역시 “변화를 원하지만 전쟁을 원했던 건 아니다”라면서 봉기의 동력도 낮아졌다. ▷정보기관의 오판은 적을 과소평가하고 스스로는 과대평가할 때 종종 벌어진다. 모사드 역시 그런 오류에 빠져 2023년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을 막지 못했다. 당시 모사드는 하마스가 가자지구 국경 일대에서 공격 예행연습을 하는 징후를 포착하고도 이스라엘군 수뇌부를 교란하려는 수작인 것으로 폄하했다. 또 아이언돔 같은 최첨단 방공망을 과신해 하마스가 픽업트럭과 패러글라이딩으로 뚫고 들어올 줄은 예상치 못했다. ▷이번 이란 전쟁에선 모사드가 미국을 끌어들이기 위해 ‘의도된 오판’을 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모사드를 제외한 이스라엘의 다른 정보기관들은 체제 붕괴가 어려울 것이라고 평가했지만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모사드의 정보를 앞세워 트럼프를 설득했다고 한다. 네타냐후는 며칠 전 “이란 국민들이 정권을 무너뜨릴지 확실히 말할 순 없다. 무너지진 않아도 약해지긴 할 것”이라며 한발 빼는 태도를 보였다. “이스라엘이 왜곡된 정보로 전쟁을 유도했다”면서 사임한 미국 대테러 수장의 말대로 가장 큰 오판을 한 건 모사드의 정보를 덥석 문 트럼프일 수 있다.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

    • 2026-03-24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횡설수설/신광영]“빌렸다” “모조품”… 이제야 “받긴 받았다”

    김건희 여사는 2022년 6월 나토(NATO) 순방 때 착용했던 반클리프아펠 목걸이의 출처에 대해 계속 말을 바꿔왔다. 순방 직후 논란을 빚자 “지인에게 빌린 것”이라더니 지난해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이후엔 “2010년경 모친 선물용으로 모조품을 구입한 것”이라고 했다. 특검이 김 여사 오빠의 처가에서 목걸이를 찾아냈을 땐 “오빠에게 선물한 모조품”이라고 또 말을 뒤집었다. 그 와중에 해당 모델이 2015년 처음 출시됐다는 제조사 측 설명도 나왔다. ▷김 여사의 주장대로라면 원본이 나오기 전에 만든 짝퉁을 모친에게 선물했고, 12년 뒤 영부인 신분으로 빌려서 착용했으며, 이를 다시 오빠에게 ‘선물’했다는 말이 된다. 서희건설 이봉관 회장이 “내가 목걸이를 줬다”고 자수하면서 김 여사의 해명은 더 들어볼 것도 없는 수준이 됐다. 이후에도 수수 혐의를 줄곧 부인하던 김 여사는 17일 매관매직 혐의 사건 첫 공판에서 반클리프 목걸이를 받았다고 결국 인정했다. 김 여사 오빠의 처가에서 나온 모조품은 심어놓은 조작 증거란 사실까지 자백한 셈이 된다. ▷김 여사는 이 회장에게서 받은 반클리프 목걸이에 대가성은 없었다고 부인하고 있다. 6000만 원대 목걸이가 윤 전 대통령 당선 축하 선물에 불과하다는 주장이다. 이 회장은 당선 직후인 2022년 3월 김 여사에게 목걸이를 줬다. 그 후 석 달 뒤 이 회장의 맏사위인 박성근 전 검사가 한덕수 당시 국무총리 비서실장에 임명됐다. 이 회장은 김 여사에게 사위의 관직을 부탁했다고 한다. 김 여사가 목걸이를 받고 얼마 뒤 “목걸이가 아주 예쁘다. 도와드릴 게 없느냐”고 하자 이 회장이 인사 청탁을 했다는 게 특검의 수사 결과다. ▷김 여사는 통일교 금품 수수 사건 재판에서도 샤넬 백 2개를 받았다고 뒤늦게 시인한 적이 있다. 이때도 받은 건 맞지만 대가성은 없었다고 했다. 이런 ‘일부 시인’ 전략은 실제 효과를 발휘했다. 재판부가 샤넬 백 중 1개를 대가성 없는 단순 선물로 판단해 유죄 리스트에서 빼준 것이다. 가방이 전달됐던 바로 그 시점에 청탁이 이뤄진 건 아니라는 이유에서였다. ▷통일교 사건 1심 판결은 ‘매관매직 재판’에 임하는 김 여사에게 힌트가 됐을 수 있다. 서희건설로부터 받은 반클리프 목걸이는 우겨봐야 소용이 없다는 판단 아래 받은 사실을 인정하되, 목걸이를 받던 그 자리에서 청탁이 있었던 건 아니니 대가성을 부인해 무죄를 받겠다는 전략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이번에도 통일교 1심 판결 때와 같은 결과가 나올지는 미지수다. 한 전 총리는 비서실장 인사에 대해 “윤 전 대통령이 우리 박 전 검사님을 딱”이라며 ‘윤심(尹心) 인사’였다는 걸 밝힌 바 있다. 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

    • 2026-03-18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3개월 단위로 허락되는 삶… 이제야 달콤한 오늘을 삽니다”[데스크가 만난 사람]

    《자궁암 3기 판정을 받던 때 나이가 38세. 그전까진 크게 배신당한 적 없는 삶이었다. 연세대 경영학과와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졸업 후 JP모건을 거쳐 글로벌 빅테크 메타에서 커리어의 정점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메타에서 실적 꼴찌 부서를 맡아 1년 만에 1등으로 끌어올렸고, 임원 승진이 눈앞에 보였다. 당시 일하던 싱가포르 본부에서 미국 본사가 있는 실리콘밸리로 옮길까도 계획하던 때였다. 바쁜 와중에 주 3회 필라테스, 건강식도 꾸준히 챙겼다. 그런 그에게 3기 암이라니. 죽음은 노크하고 들어오지 않았다. 갑자기 벽을 부수고 들어와 멱살을 틀어잡았다.》최지은 메타 아시아태평양본부 전무(42)는 2022년 2월 ‘생존율 50%’란 말과 함께 암 진단을 받았다. 그 후 6개월간 독한 항암 치료를 견뎠건만 암은 오히려 폐까지 번져 있었다. 자궁암 4기, 9개월 시한부 선고가 내려졌다. 다행히 그는 살아남아 말기 암 4년 차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최 씨는 죽음에 가까워지고 나서야 보이는 것들이 많다고 증언한다. 생사의 경계에서 목격한 것들을 ‘그렇게 나는 다시 삶을 선택했다’란 책으로 냈다. 현재 싱가포르에 살고 있는 최 씨를 11일 화상 인터뷰로 만났다.―삶의 전성기로 가던 때에 암이 찾아왔다.“세상에 사기당했다는 분노, ‘뭐 하러 열심히 살았나’ 하는 허무함이 정말 컸다. 매사에 최선을 다하면 보답이 온다는 게 세상 이치라고 믿고 노력하며 살아왔는데 나를 지탱해 온 세계관이 산산조각 나버렸다. 내가 잘못한 게 뭐라도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쥐 잡듯이 원인을 찾으려 했다. 직장에서 내게 스트레스를 줬던 누군가 때문에 암에 걸렸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기도 했다.”―항암 치료는 어떤 마음으로 견뎠나.“치료를 잘 받아서 내가 있던 자리로 되돌아가겠다는 회귀 본능이 강했다. 조금도 뒤처지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별별 노력을 다했다. 6시간 동안 독한 주사를 맞는 와중에도 10개 넘는 국내외 신문을 구독해 읽었고, 업계 소식도 계속 업데이트했다. 한국의 젊은 암 환자들과 얘기해 보면 다들 비슷하다. 치료받는 동안에도 자신을 몰아붙인다.”―6개월간 독한 항암치료를 견뎌냈지만 결국 시한부 9개월 선고를 받았다.“삶의 의욕을 완전히 잃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커튼 걷을 힘도, 이 닦을 힘도 없었다. 어차피 죽을 텐데 이가 몇 개 썩는 게 대수인가. 밥 먹어서 뭐 하나, 씻어서 뭐 하나 이런 생각뿐이었다. 그런 무기력한 마음으론 1분 1초가 너무 고통스럽다. 암은 저를 한 번 죽이지만 이런 고통이 저를 수천 번 죽이는 것 같았다.”극한의 절망에서도 선택지는 있었다최 씨는 지인들로부터 암 환자들 투병 수기 등 100권이 넘는 책 선물을 받았다. 그중 가장 큰 위로를 받은 게 ‘죽음의 수용소에서’란 책이었다. 아우슈비츠 생존자이자 정신의학자인 빅터 프랭클이 나치 수용소에서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기록한 책이다. 극한의 절망에서도 어떤 태도로 대응할지는 나의 선택에 달려있다는 게 책의 핵심 내용이다.―책의 어떤 점에 위로를 받았나.“종일 우울해하며 침대에 누워만 있는 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조차 제 선택이란 걸 알게 됐다. 통화 한 번 하자는 친구, 바람 쐬러 가자는 가족들을 다 거부하고 가만히 죽음을 기다리는 선택을 나도 모르게 했던 거다. 책을 읽고 나서 선택지가 항상 있을 거란 생각을 하게 됐다. 사소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을 하나씩 해나갔다.”―그럼에도 ‘현타’가 올 때도 있었을 거 같다.“물론 그렇다. 싱가포르 병원의 제 주치의는 막연한 희망을 품게 만드는 의사가 아니었다. 절대 상황을 포장해서 좋게 말하지 않는다. 다만 안 좋은 소식을 전할 땐 쓰고 있는 마스크를 내리고 말했다. 그 순간만큼은 마스크 뒤에 숨지 않고 인간 대 인간으로 대하는 것에 따뜻함을 느꼈다. 주치의는 결말이 정해져 있다고 하더라도 결말로 가기까진 다양한 이야기와 서사들이 있다고 했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라도 암과 죽음 사이에 여러 선택지가 있다는 걸 깨닫게 해주는 말이었다.”―암 환자에게 힘이 되는 말이란 어떤 걸까.“다 잘될 거야” “암과 잘 싸워보자” 같은 말들은 고맙지만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저 역시 항암 치료란 걸 받기 전까진 열심히 ‘투병’을 하겠다고 생각했는데 6시간 동안 앉아서 몸에 독이 들어가는 걸 바라보면서 암은 싸우고 자시고 할 게 아니란 걸 깨달았다. 제가 가장 크게 위로를 받은 건 ‘버텨보자’는 말이었다. ‘어렵겠지만 우리 버텨보자. 끝까지 네 옆에 있을게’라고 했던 친구의 말이 큰 힘이 됐다.”최 씨는 항암 치료로 체중이 10kg이나 늘었고, 얼굴은 여드름투성이에 조기 폐경까지 왔다. 차마 거울을 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하지만 오히려 암 말기가 되자 자신을 마주할 용기가 생겼다고 했다. 미래를 빼앗기고 나서야 현재를 살게 되는 아이러니였다.―3기보다 4기 치료가 더 즐겁다고 책에 썼다.“3기 때만 해도 빨리 나아서 살도 빼고 예전 모습이 돌아오면 거울을 다시 보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4기가 되면서 그때로 돌아갈 여지가 없어지니까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거울 보는 것도 ‘지금 아니면 언제?’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폐 부위 수술을 하면서 옆구리에 큰 흉터가 생겼는데 그 흉터도 비로소 만질 수 있게 됐다. 병원 갈 때도 예전엔 추리닝만 입다가 좋아하는 옷과 모자를 여러 벌 사놓고 매번 바꿔 입었다. 그런 뒤부턴 병원 가는 게 기다려지기까지 했다. ‘어차피 죽을 텐데 뭐 하러 하나’가 아니고 ‘어차피 죽을 테니 마음대로 해보자’라고 생각하니 삶의 주도권을 조금씩 되찾게 됐다.”―삶의 우선순위도 달라지게 되나.“죽음에 가까이 갈수록 우리가 중시하는 정답, 경쟁, 결과 같은 것들은 아무 힘이 없다는 걸 알게 됐다. 얼마나 빨리 승진했고, 돈을 얼마나 벌었는지는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대신 시행착오로 헤매던 순간, 사람들이랑 티격태격하고 ‘으쌰으쌰’ 하던 과정들이 생각난다. 내 인생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만한 ‘톱 10’의 순간들을 필름처럼 떠올린 적이 있다. 남편하고 여행 갔다가 기차를 놓쳐서 함께 벙쪘던 장면, 회사에서 사고 수습하느라 팀원들하고 밤새우고 배달 음식 시켜 먹으면서 떠들던 장면 같은 것들이다. 그 10개의 공통점이 있다면 현재에 온전히 머물렀던 순간들이다.”―현재를 살아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실천이 참 어렵다.“사회에서 가르쳐주지 않지만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게 현재를 살 수 있는 능력인 거 같다. 특히나 성취 지향적인 한국에선 극소수만, 그것도 엄청난 일을 겪지 않고선 갖기 어려운 초능력이다. 미국 투자회사나 빅테크에서 일하면서 성공한 사람들을 자주 봐왔다. 그런 사람일수록 현재를 살지 못하는 것 같고, 불행한 모습도 많이 본다.”모두가 만류했던 복직… 원래의 나를 찾고 싶었다1년간 치료를 받아온 최 씨는 2022년 말, 폐에 전이됐던 암이 사라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생사의 고비에서 삶 쪽으로 무게 추가 일단 기운 것이다. 물론 항암 치료는 계속해야 하고 3개월마다 암 검사를 받은 뒤 의사를 만나 다음 3개월이 허락되는지 통보받는 삶이긴 하다. 그렇게 주어진 ‘인생 2회차’에 그는 메타로의 복직을 선택했다.―주변에서 많이들 복직을 만류했을 텐데….“거의 모두가 반대했다. ‘그 몸으로 미친 거 아니냐’, ‘세계여행이라도 가지 그러냐’는 의견이 많았다. 게다가 회사에 구조조정도 있었고 제가 일했던 부서까지 없어진 상태였다. 복직하지 말라는 신의 계시인가도 싶었다. 하지만 생존만을 목표로 1년을 살다 보니 내가 원래 어떤 사람이었는지 다시 찾고 싶었다.”―삶에서 일이란 어떤 의미인가.“일을 하면서 키웠던 근육이 암 치료에 큰 힘이 됐다. 일하면서 배운 게 딱 하나 있다면 불확실성 속에서 의사결정을 하는 방법이다. 암이야말로 그것만큼 불안정한 게 없다. 아무리 최악의 상황이 오더라도 최선의 의사결정을 할 것이란 자신감을 일에서 배웠다고 생각하니 다시 일해보고 싶었다. 또 휴직하는 동안 큰 힘이 돼준 게 회사 동료들이어서 다시 돌아온 모습을 보여주고도 싶었다.”―일을 대하는 마음이 예전과 다른가.“예전엔 평가, 승진, 연봉 이런 것들이 중요했다면 이젠 아무 의미가 없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재미있고, 의미가 있는지가 중요하다. 그게 아니라면 내일 당장 그만둬도 상관없다. 또 이력서에 넣을 만한 커리어보다 내 부고에 쓸 만한 커리어를 쌓으려고 한다. 동료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지를 생각한다. 예전 팀원 중에 대중 앞에서 말하는 걸 힘들어하던 친구가 있었는데 제가 기회를 주고 북돋아 줬더니 나중에 큰 무대에서도 잘하게 됐다. 그 친구가 ‘제 인생의 전환점을 함께해 줘 고맙다’고 했는데 그런 교감이 죽기 전에 생각나는 소중한 기억이다.”3개월마다 새로 얻는 삶… 하루하루가 생생하다최 씨는 복직 1년 반 만에 전무로 승진했다.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일하다 보니 성과가 자연스레 따라왔다고 한다. 예전엔 한 달이, 1년이 훌쩍 흘러갔지만 지금은 기억할 만한 하루를 만들자는 마음으로 지낸다. 하루하루가 생생하고 삶의 감각이 훨씬 풍요로워졌다고 한다. 그렇게 3개월 단위로 연장되는 삶을 3년 넘게 살고 있다.―의사를 만나러 가는 날은 기분이 어떤가.“여전히 불안하고 무섭다. 전날에는 잠도 잘 못 잔다. 하지만 3개월을 공포 속에 허비하면 너무 허망할 것 같아서 불안감과도 친하게 지내려 한다. 의사를 만나기 전날엔 지난 3개월을 복기해본다. 후회 없이 살았다는 생각이 들면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게 조금은 쉬워진다. 3개월마다 삶을 정리하고, 새로운 3개월을 부여받는 삶…. 저주받은 삶인 것 같지만 좋은 것도 많다. 가끔 아쉬운 3개월을 보냈다면 ‘이번 생은 망했으니 다음 생엔 재밌게 살아보자’라며 게임처럼 생각하기도 한다.”―결국 삶에서 가장 중요한 건 뭘까.“지금 내 눈앞에 있는 사람인 것 같다. 사람과의 교감만큼 기억될 만한 순간이 있을까. 가족이든, 친구든, 오늘 처음 만난 사람이든 함께하고 있는 시간을 온전히 즐기려고 한다. 아마 다음 달에 의사를 만나러 갈 땐 인터뷰로 했던 오늘 대화가 생각날 것 같다. ‘맞아, 그때 그런 얘기를 나눴지’ 하면서. 제 이야기로 누군가가 용기를 얻는다면 저에게도 큰 의미가 있다.”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

    • 2026-03-12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횡설수설/신광영]쫓겨난 ‘아이스 바비’… 스포트라이트 뺏은 죄?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을 지휘하는 크리스티 놈 국토안보장관은 ‘아이스 바비’란 별명을 갖고 있다. 바비 인형처럼 ‘풀 메이크업’을 하고 화려한 복장으로 ICE의 불법 이민자 단속 현장에 나타나 사진 찍히는 걸 즐기기 때문이다. 지난해 엘살바도르에 있는 테러범 수용소까지 방문해선 문신 가득한 죄수들을 배경 삼아 영상을 찍기도 했다. 영상에서 놈은 불법 이민자들도 이런 신세가 될 거라고 경고했는데 더 주목을 끈 건 반짝이던 그의 7500만 원짜리 롤렉스 손목시계였다. ▷놈은 장관 임명 전부터 구설에 자주 올랐다. “두 살 손녀도 엽총을 갖고 있다”고 말할 정도로 총기 옹호론자인 그는 반려견이 거칠다는 이유로, 기르던 염소가 냄새를 풍긴다는 이유로 총으로 쏴 죽였다고 밝혀 논란이 됐다. 불법 이민에는 누구보다 강경해서 사우스다코타 주지사 시절 텍사스 국경 봉쇄를 위해 주 방위군을 5차례 파견했다. ▷놈은 ‘반(反)이민’ 선봉에 섰지만 선을 넘는 일이 잦았다. ICE가 조지아주 현대차 공장을 급습해 한국인 근로자 다수를 구금했을 때도 놈은 “법대로 추방할 것”이라며 사태를 키웠다.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비즈니스도 생각해야지, 머리를 쓰라”며 놈에게 한마디했다고 한다. 놈이 악명 높은 국경순찰대 간부를 발탁해 이민 단속 작전을 맡긴 것도 실책이었다. 작전이 벌어질 때마다 유혈 진압이 자행됐고 급기야 미니애폴리스에서 시민 2명이 ICE 총에 맞아 사망했다. 놈은 그 두 사람이 테러리스트라면서 여론에 불을 질러 트럼프를 곤혹스럽게 했다. ▷트럼프는 5일 놈을 경질했다. 이란에 대한 군사 공격으로 보복 테러 우려가 고조되는 가운데 국토안보부 장관을 해임한 배경을 두고 해석이 다양하다. 전쟁으로 지지도가 떨어지는 상황에서 무차별적인 이민자 단속을 지속하는 게 부담스러웠을 수 있다. 하지만 놈 못지않게 불법 이민에 강경한 종합격투기 선수 출신 상원의원을 후임으로 지명한 걸 보면 그걸론 설명이 충분치 않다. ▷놈이 보좌관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으며 공금으로 호화 전용기를 타고 다니고, 직원들에게 갑질을 했다는 것도 공(公)과 사(私)의 경계가 흐린 트럼프의 윤리 기준을 고려할 때 해임 사유가 되긴 어려워 보인다. 놈이 이민 정책을 홍보한다면서 TV 광고에 3300억 원의 예산을 쓴 게 유력한 원인으로 거론된다. 정책보단 말을 탄 자신을 주인공으로 부각시켜 “셀프 홍보용”이란 비판이 거세다. 놈은 3일 의회 청문회에서 그런 광고에 왜 막대한 예산을 썼느냐고 추궁을 받자 트럼프가 승인했다고 해명했다. 트럼프는 “전혀 몰랐다”며 펄쩍 뛰었다. 트럼프로선 놈의 책임 떠넘기기가 괘씸하기도 했겠지만, 자기 홍보에 열을 올리는 행태가 자신이 가장 싫어하는 ‘보스의 스포트라이트를 가로챈 죄’에 해당했을 수도 있다.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

    • 2026-03-06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오늘과 내일/신광영]스위스행 제지당한 그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그가 스위스행 비행기를 탔던 지난달 9일은 오랫동안 준비해온 디데이였을 것이다. 조력자살을 도와줄 현지 기관에 이미 수많은 의료기록을 영어로 번역해 보내고, 화상 인터뷰도 여러 번 했을 것이다. 회복 가능성이 없고, 자발적 선택임을 확인받는 절차는 까다롭고, 비용도 수천만 원이 들었을 것이다. 60대인 그는 중증 폐섬유증 환자라고 한다. 폐가 점점 굳어 숨을 쉴 수 없게 되는 불치병이다. 그런 고통을 안고 홀로 스위스까지 가서 눈을 감겠다는 건 보통 결심이 아니다.조력사 찬성 82%에도 멀기만 한 공론화 다만 가족의 지지를 얻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의 유서를 본 자녀들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은 출국 15분 전 그를 기내에서 내리게 했다. 경찰은 그를 설득해 돌려보냈다고 한다. 하지만 스위스행 비행기에 오르기 위해 삶의 마지막 힘을 쥐어짰을 그를 무슨 수로 설득할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말기 암 엄마의 스위스행에 동행했던 남유하 작가의 책 제목 ‘오늘이 내일이면 좋겠다’는 엄마가 조력사 전날 실제로 했던 말이다. 하루라도 빨리 고통에서 해방되고 싶은 마음의 표현이었다. “칼로 콱콱 찌르는 통증”에 시달려온 엄마는 스위스에 간다는 희망이 생기면서 삶의 활력을 찾았다고 한다. 스위스에 가려면 걸을 수 있어야 한다며 허리 수술을 받았고 장시간의 비행을 견디기 위해 구토를 참아가며 링거를 맞았다. 통증을 끝낼 방법이 죽음밖에 없는 환자들에겐 조력사가 그만큼 절실하다. 그들은 자신을 만류하는 가족들에게 “날 포기하지 말아 달라”고 애원한다고 한다. 고통 속에서 죽어가도록 놔두지 말라는 것이다. 의료적 도움을 받아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조력사에 대한 한국인들의 찬성 여론은 생각보다 높다. 지난해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온라인 설문조사 결과 82%가 찬성했다. 하지만 조력사에 대한 사회적 논의로는 나아가지 못하는 사이 스위스로의 탈출구가 열려 있다 보니 일부 형편이 되는 환자들만 통과할 수 있는 좁은 문이 돼 가고 있다. 또 그들마저도 가족이 동행하다 자살방조죄로 처벌될까 봐 혼자 타국에서 잠드는 경우가 많고, 비행기를 못 탈 정도로 건강이 악화될 것을 우려해 ‘디데이’를 몇 달 앞당기는 상황도 생긴다. 조력사를 당장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려는 건 아니다. 스위스, 네덜란드, 캐나다 등 합법화된 나라들을 보면 신중히 따져야 할 문제가 적지 않다. 처음엔 말기 암 환자 등으로만 제한했다가 정신질환자 등으로 대상이 조금씩 확대되는 현상이 일부 나타나고 있다. 조력사 허용 범위가 넓어지면 자칫 중증 질환 노인들이 치료비가 없거나 자식들에게 부담을 줄까봐 존엄사를 택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호스피스 등 완화의료 시스템을 개선하기보단 쉬운 선택지로 존엄사를 남용하는 부작용도 생길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우려 때문에 조력사가 시기상조라고 선을 긋고 논의를 미룰 일은 아니다. 조력사 허용 국가들은 대부분 도입 논의가 시작된 후 20∼30년간의 사회적 숙의와 판례 축적 과정을 거쳤다. 조력사법이 지난해 하원을 통과한 프랑스는 정부 주도로 184명의 시민 토론단을 구성해 이들이 도출해낸 합의가 입법의 토대가 됐다. 그런 과정을 거치고도 하원에서 찬반이 3 대 2로 갈렸을 정도로 논쟁이 치열했다. 지금 시작해도 도입까진 한 세대 걸려 고령화 속도가 빠른 우리는 존엄사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미뤄질수록 고통받는 사람이 많아질 수 있다. 조력사 허용 법안이 국회에 계류돼 있고 헌법재판소도 관련 소원을 심리 중이지만 사회 전반의 공론화 없이는 전향적인 단계로 나아가기 힘들다. 존엄사를 허용할지 말지, 허용한다면 어떤 기준을 둘지 지금부터 논의를 시작해도 제도화까진 한 세대가 걸릴 수도 있는 사안이다. 더는 미룰 여유가 없다. 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

    • 2026-03-04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횡설수설/신광영]샤넬백 건넨 건진은 유죄, 받은 김건희는 무죄

    김건희 여사의 통일교 금품 수수 사건은 받은 사람(김 여사)과 심부름한 사람(건진법사 전성배 씨) 재판이 따로 열렸다. 두 재판부는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이 전 씨를 통해 김 여사에게 세 번에 걸쳐 8000여만 원어치 금품을 건넸다는 사실을 똑같이 인정했다. 그런데 김 여사에게 가장 먼저 전달됐던 802만 원짜리 샤넬 백의 불법성을 두고 판결이 엇갈렸다. 심부름한 전 씨는 유죄, 받은 김 여사는 무죄로 나온 것이다. ▷그 샤넬 백은 윤석열 전 대통령 취임 한 달 전인 2022년 4월 7일 김 여사에게 건네졌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7부(재판장 우인성)는 당시 김 여사와 윤 전 본부장 사이에 당선 축하 인사가 오갔을 뿐 별다른 청탁을 하진 않아 김 여사에게 알선수재죄 적용이 안 된다고 봤다. 반면 24일 전 씨에게 중형을 선고한 같은 법원 형사33부(재판장 이진관)는 가방이 전달될 때 윤 전 본부장의 묵시적 청탁이 있었다면서 유죄로 판단했다. ▷우인성 재판부는 샤넬 백이 의례적 선물일 뿐이라고 봤지만 당시 윤 전 본부장의 행보는 예사롭지 않았다. 가방 전달 보름 전인 그해 3월 22일 당선자 신분이던 윤 전 대통령과 1시간가량 독대해 통일교 추진 사업을 설명했다. 가방 전달 1주일 전에는 김 여사가 윤 전 본부장과 통화하며 “제가 (한학자) 총재님을 비밀리에 뵙고 인사드리겠다”면서 “전 씨와 의견 나눠달라”고 소통 창구를 정해줬다. 실제로 가방 전달 며칠 뒤 윤 전 본부장은 전 씨에게 “큰일을 도모할 게 있다”며 김 여사와의 만남을 요구했고, 유엔 제5사무국 유치 관련 청탁을 전달했다. 가방을 건넨 당일에는 청탁이 없었을지 몰라도 전후 상황을 보면 샤넬 백이 단순 호의 표시였을지 의문이다. ▷형사 법정에선 ‘의심스러울 땐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하는 게 원칙이다. 김 여사와 전 씨가 받는 알선수재 혐의는 일반인이 공무원 업무를 알선하면서 뒷돈 받는 행위를 벌하는 죄이다. 이때 대가성은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게 대법원 판례다. 금품 수수 경위와 시기 등 전후 사정을 두루 살펴야 하고, 알선과 금품 사이에 포괄적 대가관계가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는 것이다. ▷김 여사 재판부의 논리대로라면 이권 청탁에 앞서 ‘빌드업’ 목적으로 고가 선물을 하는 걸 용인하는 꼴이 된다. 일각에선 금품부터 먼저 바치고, 청탁할 땐 빈손으로 가라는 법원 가이드라인이 나온 것이란 비아냥도 나온다. 김 여사가 샤넬 백 받은 사실을 재판 막바지까지 부인하고 관련자들에게 허위 진술을 지시한 것만 봐도 당사자들끼린 이심전심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걸 알았다는 얘기가 아닐까. 이해관계로 얽힌 사람들 사이에서 802만 원짜리 공짜 선물이 있을 리 없다는 걸 판사들만 모르는 건지 궁금하다. 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

    • 2026-02-25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오늘과 내일/신광영]좋은 판결은 과거도 보고 미래도 본다

    내란 사건과 김건희 여사 사건의 판결이 하나둘 나오고 있다. 법정엔 검사들이 있지만 이들은 국민 한 명 한 명의 대리인일 뿐이다. 만약 12·3 계엄이 성공했다면, 그래서 김 여사가 지금도 매관매직을 일삼고 국정을 주무른다면 최대 피해자는 국민일 수밖에 없다. 재판의 당사자로서 판결을 판단할 권리가 국민 각자에게 있다. 앞으로도 줄줄이 이어질 재판을 우리는 어떻게 관전해야 할까.입법자들이 상상도 못 했던 초유의 사건들 법관은 판결할 때 사후적 관점과 사전적 관점을 함께 고려한다고 한다. 미국의 법학자 워드 판즈워스가 쓴 책 ‘법은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나오는 대목이다. 과거에 벌어진 일을 공정하게 따져 죄에 걸맞은 책임을 지우는 게 사후적 접근이라면, 사전적 접근은 미래에 유사한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판결로써 바람직한 규칙을 선언하는 것을 뜻한다. 두 관점이 균형을 이룰 때 판결은 설득력을 갖는다. 단순 절도범에게 경각심을 주겠다며 이례적 중형을 선고하면 억울한 피고인들이 생기고, 횡령을 저지른 기업인에게 집행유예를 남발하면 횡령해도 남는 장사라는 잘못된 신호를 주게 된다. 그런 점에서 한덕수 전 총리 1심 판결은 어떨까. 재판부는 한 전 총리가 국무회의를 소집해 계엄에 합법적 외관을 씌워주고, 국정 2인자로서 견제의 의무를 저버린 죄를 무겁게 봤다. 23년형이 선고된 것에 대해선 응분의 죗값이란 의견과 함께, 내란 모의에 관여하거나 주도적으로 가담한 것도 아닌데 너무 가혹한 거 아니냐고 보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사전적 관점에서 보면 울림이 큰 판결이 아닐 수 없다. 나라가 위태로워질 걸 알면서도 불의에 동조하는 기회주의적 공직자에게 어떤 후과가 돌아오는지, 고위 공직에 오를 사람은 얼마나 무거운 책임을 각오해야 하는지를 선명히 보여줬다. ‘제2의 한덕수’를 막는 효과가 강력할 것이다. 김 여사 사건 1심 재판장은 선고에 앞서 의심스러울 땐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판단하고, 권력자든 아니든 차별이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떤 경우에도 예외 없이 적용돼야 할 중요한 원칙이다. 재판부가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과 명태균 관련 혐의를 무죄로 본 것도 사건 기록을 다 보고 심사숙고한 법관의 판단이 존중돼야 한다. 불만이 있더라도 2심, 3심까지 지켜보는 게 우리의 사회적 합의다. 다만 김 여사가 통일교로부터 숙원 사업을 도와주는 대가로 그라프 목걸이와 샤넬백 등 7000만 원이 넘는 금품을 받은 사실이 인정됐음에도 형량은 징역 1년 8개월에 그쳤다. 알선수재죄 법정형이 5년 이하 징역이고 통상적인 선고 범위에 있다고 하더라도 이런 판결은 대통령 배우자가 국정을 농단하고 뒷돈을 챙긴 죗값이 고작 1, 2년 감옥살이라는 메시지로 발신된다. 법의 단죄가 이 정도라면 ‘V0’란 존재의 해악에 충분한 경종이 될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제2의 한덕수, 제2의 V0 막는 판결이어야 솜방망이 판결을 탓할 게 아니라 이런 상황에 대비해 미리 법을 고쳐놓지 그랬냐고 할 수도 있다. 사법부는 이미 벌어진 일을 다루고, 입법부는 앞으로 벌어질 일을 다루기로 역할 분담을 한 건 맞지만 그 경계가 늘 명확하진 않다. 국회가 모든 구체적 상황을 상정해 법을 만들 순 없기 때문에 법관이 개별 판결을 통해 공동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기도 한다. 더구나 위로부터의 내란과 영부인의 국정 사유화는 입법자들의 상상력을 훌쩍 뛰어넘는 초유의 사건이다. 참고할 만한 판례도 거의 없다. 그렇다면 지금의 재판은 처음 가보는 길을 통해 질서를 바로 세우는 과정일 수밖에 없다. 입법의 미비와 판례의 부재를 핑계 삼아 법관이 뒤로 숨어선 안 되는 시기인 것이다. 과거를 공정하게 돌아보면서도 미래에 정의로운 선례를 남기는 판결이 나와야 한다.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

    • 2026-02-06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횡설수설/신광영]고소득 전문직부터 대체하는 AI

    “사건 기록을 보고 고소장을 작성해보세요. 챗GPT보다 잘 써야 통과입니다.” 요즘 로펌 채용 면접장에선 신입 변호사들이 인공지능(AI)과 일전을 치러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로스쿨을 갓 나온 변호사보다 AI가 일을 더 잘한다는 평가가 나오면서 벌어지는 현상이다. 판례 분석은 물론이고, 변호인 의견서나 계약서 작성까지 웬만한 건 AI가 척척 해준다는 것이다. 로펌 업무에 특화된 AI 서비스까지 나오고 있어 월 500만 원에 초짜 변호사를 고용하느니 월 10만 원대 구독료로 AI를 쓰는 게 낫다는 얘기도 나온다. ▷최근 미국에서 열린 전미경제학회에선 “앞으로 법조계는 진로로 정하지 말라”는 말이 충격을 안겼다. 다름 아닌 미 노동통계국장의 경고다. 로펌들이 기본 업무를 AI에게 맡기고 있어 더 이상 신입 변호사를 뽑지 않는다는 것이다. ‘앤스로픽’ 같은 AI 기업들도 계약서 검토나 소장 작성 등 변호사 기능을 탑재한 서비스를 속속 내놓고 있다. ▷회계사 업계는 ‘AI 비상사태’가 더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규칙에 따라 데이터를 정리, 분석하는 회계사 업무는 빅테이터에 강한 AI가 특히 위력을 발휘하는 분야다. 예전엔 주니어 회계사 여러 명이 달라붙어 하던 일도 베테랑 회계사 1명과 AI의 조합이면 충분하다고 한다. 전문직도 초임 땐 선배의 손발 역할을 하며 일을 배우는데 그런 조수 업무는 AI로 충분해 신입이 설 자리가 좁아지는 것이다. 그 결과 국내 ‘빅4’ 회계법인에서 지난해 채용한 신입 회계사는 몇 년 새 30% 넘게 줄었다.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하고도 실무교육 받을 곳을 구하지 못한 청년 회계사들은 정부에 선발 인원을 줄이라며 요즘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의사 역시 AI 시대에 안전한 직업이 아니다. 엑스레이 등 영상 판독에선 AI가 의사보다 정확하다는 평가가 많고 빅테크들은 건강 관리를 도와주는 ‘헬스 AI’를 경쟁적으로 출시하고 있다. 미국 유타주에선 AI가 의사 대신 처방할 수 있도록 허용했더니 500건의 응급 사례에서 인간 의사의 처방과 99% 일치했다고 한다. 게다가 환자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AI가 의사보다 공감 능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도 있어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다. ▷AI의 일자리 습격은 의외로 선망받는 고소득 전문직에서 먼저 벌어지고 있다. 기업의 장부, 법원의 판례, 의사의 진료 차트는 수십 년간 정형화된 데이터로 쌓여 있어 AI가 학습하기 쉽기 때문이다. 전문직의 진입 장벽은 사람에겐 높아도 AI에겐 가뿐히 넘을 수 있는 문턱인 것이다. 더구나 인건비가 비싼 전문직일수록 AI로 대체했을 때 비용 절감 효과가 커서 AI 기업들이 더 눈독을 들이고 있다. 공부 열심히 해서 법대 가고, 의대 가야 미래가 보장된다는 말이 유효할 날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

    • 2026-02-04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횡설수설/신광영]“큰 선물이라고 놀라셨지만 별말씀 없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취임 후 첫 해외 일정인 2022년 6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 참석 때 주목을 끈 건 김건희 여사가 착용했던 ‘나토 3종 세트’였다. 목걸이, 귀걸이, 브로치를 합해 1억 원이 넘었는데 특히 6200만 원짜리 반클리프아펠 목걸이를 두고 논란이 컸다. “빌린 것”이란 김 여사의 주장은 윤영호 당시 통일교 세계본부장에겐 김 여사에게 더 가까이 접근할 힌트가 됐다. 건진법사 전성배 씨를 통해 김 여사에게 샤넬 백 등을 제공해 왔던 윤 전 본부장은 전 씨에게 “영부인이 귀금속을 빌리시냐. 그러지 마시라. 우리가 사드리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말은 한 달 뒤 바로 실행에 옮겨졌다. 특검 수사 결과에 따르면 윤 전 본부장은 아내에게 6000만 원대 반클리프아펠 목걸이를 사오도록 했다. 하지만 서울 시내 명품관을 다 돌아봐도 해당 목걸이의 재고가 없었다. 급하게 비슷한 가격대의 다른 제품을 샀는데 그게 그라프 목걸이였다고 한다. 그라프는 김 여사 ‘나토 3종 세트’ 중 귀걸이의 브랜드였다. 만약 윤 전 본부장의 원래 계획이 실현됐다면 김 여사는 반클리프아펠 목걸이만 2개를 받았을 것이다. 이미 넉 달 전 서희건설 측이 반클리프아펠 목걸이를 사서 김 여사에게 선물했다. ▷당시 통일교 2인자로 불렸던 윤 전 본부장은 김 여사 선물을 전 씨에게 건넬 때마다 문자메시지를 보내 꼬박꼬박 흔적을 남겼다. “취임 기념으로 제가 직접 골랐다” “여사님께 지난번과는 다른 고가 선물을 드리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등의 문자를 보내면 전 씨는 “여사님이 아주 좋아하신다” “큰 선물이라고 놀라셨지만 별말씀 없었다. 연락 주실 거다” 같은 답신을 보냈다. ▷윤 전 본부장의 다이어리에서는 ‘K법사(건진법사) 미팅: 한옥집(잔금+선물)’이란 메모가 발견되기도 했다. 그가 전 씨를 만났던 날 직접 적어 놓은 것이다. 그의 다이어리와 문자 내역에는 김 여사 외에 다른 인물들이 언급됐을 가능성도 있다. 윤 전 본부장은 특검에서 전재수 의원 등 여야 정치인들에게도 금품을 건넸다고 진술한 바 있다. 금품을 제공한 입장에선 증거를 남겨놔야 받은 쪽이 민원 사항을 외면하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을 수 있다. ▷전 씨는 윤 전 본부장에게서 받은 금품을 김 여사에게 전달하지 않았고 모두 분실했다고 줄곧 주장해 왔다. 하지만 재판에서 결국 전달 사실을 실토했다. 윤 전 본부장과 주고받은 문자, 통일교 측이 보관해 온 선물 영수증 등 증거 앞에서 더는 잡아떼기 어려웠을 것이다. 금품 수수를 부인해 온 김 여사도 전 씨의 자백에 통일교로부터 샤넬 백을 받은 사실만큼은 인정했다. 김 여사는 전 씨가 전해 오는 호화 명품을 받을 때만 해도 이런 증거들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을 줄은 짐작도 못 했을 것이다.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

    • 2026-01-20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횡설수설/신광영]이용객 당초 예상의 1%, 인천공항 자기부상열차

    인천공항에서 용유역까지 6km를 잇는 인천공항 자기부상열차는 6개 역을 오간다. 그중 한 곳의 이름이 워터파크역인데 막상 내리면 워터파크가 없다. 역사 바깥은 갈대밭이 펼쳐진 허허벌판이다. 2016년 개통할 때만 해도 리조트, 워터파크 등 개발 계획이 무성했지만 대부분 무산되면서 역 이름만 덜렁 남게 됐다. ▷자기부상열차는 2000년대 초만 해도 주목받던 신기술이었다. 열차가 자석의 힘으로 선로 위를 8mm가량 살짝 뜬 채로 주행한다. 이산화탄소 배출도, 분진·소음도 없는 무공해 기술이란 평가도 있다. 인천공항 자기부상열차가 개통된 이듬해 국토교통부는 이 사업을 ‘연구개발(R&D) 우수 사업’으로 선정했다. 지역 상권이 살아나고, 열차 기술 수출까지 하면 3조 원 넘는 경제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 후 10년이 지나도록 해외 진출은커녕 국내 지자체도 도입한 사례가 없다. ▷인천공항 자기부상열차는 R&D 비용까지 합쳐 4500억 원의 사업비가 들었다. 하루 평균 3만5000명이 탈 것으로 보고 이런 큰 예산을 들였는데 결과는 형편없었다. 가장 많았던 2019년에 4000명 정도였고, 해마다 급감해 2021년엔 325명에 불과했다. 예측치의 1%에도 못 미쳤다. 매년 적자만 80억 원이다. 2022년 운행을 멈췄다가 지난해 10월 관광용으로 재개통했지만 이용객이 여전히 하루 1000명 수준이다. ▷사업 당시 인천공항은 “일본 나고야에 이은 세계 두 번째 자기부상열차”라고 홍보했다. 실제 2005년 개통한 나고야 자기부상열차는 성공 사례로 꼽힌다. 우리와 달리 뻥튀기 예측이 없었던 게 큰 차이다. 당시 세계박람회라는 대형 이벤트가 열려 사람들이 몰렸고, 나고야 도심이나 인근 신도시로 연결돼 출퇴근·통학 수요도 확보돼 있었다. 나고야 사례가 교통이 필요한 곳에 신기술을 입힌 것이라면, 인천공항 자기부상열차는 기술 시현을 위해 노선을 만든 것에 가깝다. ▷해외 성공 모델의 겉모습만 베껴 온 대표적 사례가 용인 경전철이다. 지방선거 후보들이 캐나다 밴쿠버 ‘스카이트레인’을 구현하겠다며 너도나도 공약해 결국 2013년 개통됐다. 하지만 하루 평균 이용객은 수요 예측의 17분의 1인 9000여 명에 불과했다. 매년 수백억 원 적자를 보면서도 운영사에 수입 보장 규정까지 둬 혈세 낭비가 1조 원이 넘을 전망이다. 결국 사업을 주도했던 옛 용인시장과 수요를 부풀린 연구기관은 214억 원 배상 책임을 지게 됐다. 인천공항 자기부상열차 역시 용인 경전철의 길을 따라가고 있지만 정부와 인천공항, 인천시의 공동 사업이라 책임 소재도 열차처럼 붕 떠 있다. 수요를 똑바로 안 따지고 보여 주기용으로 의심되는 공공사업에는 책임자 이름표라도 붙여서 예산 낭비의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한다.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

    • 2026-01-1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오늘과 내일/신광영]살벌할 일만 남은 417호 내란 법정

    윤석열 전 대통령 내란 사건 재판장인 지귀연 부장판사는 예능 재판을 한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만담을 하는 듯한 말투와 재판 스타일이 사건의 무게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변호사님들 꼭 배고플 때 되면 이러시더라” “또 슬픈 표정 하지 마시고” “마이크 대시고용∼” 같은 엄숙한 형사재판에선 듣기 힘든 말들이 이어졌다. 오죽하면 방청석의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판사님 귀여우시다”라고 외친 적도 있다. 윤 전 대통령이 피고인석에서 웃음을 애써 참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9일이면 예능 재판도 방청석 응원도 끝 하지만 내란 법정의 웃음기가 사라질 날이 며칠 남지 않았다. 9일 마지막 공판이 열린다. 이날 검찰 구형도 이뤄지는데 내란 우두머리 혐의의 법정형은 사형 아니면 무기징역이다. 검사가 이런 무시무시한 형을 전직 대통령에게 구형하는 살벌한 상황이 예고돼 있다. “가족오락관 MC냐”는 비아냥을 듣는 지 부장판사도 표정이 굳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재판이 열리는 서울중앙지법 417호는 30년 전 전두환 전 대통령이 섰던 법정이다. 12·12, 5·18 사건으로 윤 전 대통령과 같은 혐의를 받았던 그에게 검찰은 사형을 구형했다. 이어진 최후진술에서 전 전 대통령은 국민에게 용서를 구할 기회를 날려버렸다. “국가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최선의 노력이었다. 본의 아니게 국민에게 불편과 피해를 준 점 죄송하다”고 했다. 군사 반란을 일으켰고, 무고한 시민들이 사살됐는데 “위기 해결 노력” “국민 불편”을 운운했다. 윤 전 대통령은 최후진술에서 무슨 말을 할까. 예고편 같은 장면이 2주 전 체포 방해 재판 결심 공판에서 벌어졌다. 그는 검찰 주장이 코미디 같은 얘기라고 했다. 체포영장 집행을 막기 위해 경호원들에게 총기 무장까지 지시했던 그는 이런 걸로 처벌하면 앞으로 대통령의 안전이 위태로워진다고 했다. 59분간의 일장 연설 동안 사과 한마디가 없었다. 계엄 후 1년이 지나도록 그는 자기만의 섬에서 한 발짝도 나오지 않았다. 만나는 사람이라곤 변호인들뿐이고, 법정에 가면 ‘윤 어게인’ 지지자들이 방청석을 메우고 있어 그게 세상의 중심이길 믿고 싶었을 것이다. 며칠 전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증인으로 나와 “계엄은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하기 위한, 대통령의 고뇌에 찬 결심이었다”고 말해 박수갈채를 받았다. 토크쇼 같은 분위기에 응원단까지 와 있는 417호 법정이 그에겐 도피처였을 수 있다. 하지만 재판이 예능 같았다고 판결까지 훈훈하리란 보장은 없다. 윤 전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전 전 대통령 옹호 발언을 한 적이 있다. “군사 쿠데타와 5·18만 빼면 정치는 잘했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다”고 했다. 몰상식한 이 말 속에 윤 전 대통령도 내란죄만큼은 잘못이라고 봤다는 게 눈에 띈다. 그는 12·3 비상계엄은 다르다고 주장하지만 국회에 군경을 투입한 것 자체로 국헌 문란이라는 게 헌법재판소의 결론이다. 계엄으로 민주주의에 심각한 상처를 입히고도 반성이라곤 없는 전 전 대통령의 길을 윤 전 대통령은 고스란히 따라가고 있다.최후진술만이라도 법정 밖 국민 향하길 전직 대통령에겐 유무죄 판결이 끝이 아니다. 사후까지 이어질 역사의 법정이 기다리고 있다. 끝까지 뉘우치지 않고 부하에게 책임을 떠미는 전직 대통령이라면 아무리 중형에 처하더라도 인간적인 안타까움을 느낄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국민의 연민과 용서 없이는 윤 전 대통령이 다시 일상을 되찾을 길도, 최소한의 명예를 회복할 길도 없다. 헛된 기대인 걸 알지만 윤 전 대통령이 최후진술에서라도 한 줌의 지지자들이 아닌, 법정 밖의 보통 사람들을 바라보는 용기를 내길 바란다. 두고두고 미움받는 대통령이 또 생기는 건 국민들에게도 큰 아픔이다.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

    • 2026-01-07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횡설수설/신광영]용산 대통령실 사우나와 비밀통로

    윤석열 전 대통령이 썼던 용산 집무실 귀퉁이엔 비밀의 문이 있다. 3개의 문을 차례로 열면 샤워부스와 대리석 세면대가 나오고 그 옆에 건식 사우나가 있다. 편백나무 마감재에 대형 TV까지 갖춘 고급 사우나다. 그 너머엔 킹사이즈 침대가 놓인 침실이 있고, 더 들어가면 5인용 고급 소파가 있는 응접실이 나온다. 차로 5분 거리의 관저를 놔두고 집무실에 호텔 스위트룸 같은 내실을, 그것도 미로처럼 숨겨 놓았던 사실이 최근 보도로 드러났다. ▷밤낮없이 국정에 매달리느라 그런 시설이 필요했을 리는 없다. 한 언론이 계엄 직전인 2024년 11월 윤 전 대통령의 출근 시간을 추적한 결과 오전 9시 전에 집무실에 도착한 건 주말과 남미 순방을 뺀 18일 중 이틀뿐이었다고 한다. 저녁엔 측근들과 술을 마시는 날이 잦았다고 하니 집무실에 머무는 시간은 길지 않았을 것이다. 그마저도 내실에서 일정 시간을 보냈다면 국정은 도대체 언제 돌봤을까. ▷‘지각 출근’ 논란이 많았던 윤 전 대통령은 출근길 보안에도 신경을 썼다. 대통령실 주차장까지 허물어 집무실과 이어진 비밀통로를 만들었다. 이 길로 다니면 차에서 내린 뒤 출입기자들 눈을 피해 집무실로 직행할 수 있다. 취임 초 몇 달 했던 도어스테핑을 중단한 직후 개통된 걸로 보아 출근 시간대를 노출하지 않으려는 의도로 해석하는 시각이 많다. 실제로 경찰이 윤 전 대통령이 아침에 출근하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경호차량을 비운 채로 먼저 집무실로 출발하도록 하는 ‘위장 출근 쇼’를 한 정황도 드러났다. ▷사우나든 비밀통로든 대통령실이 정식 예산을 집행하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대통령실은 사우나 공사업체에 현금 결제를 제안했다가 거절당한 적이 있다. 정부가, 그것도 대통령실 관련 공사대금을 현금으로 지불한다는 건 일반적 회계처리와 거리가 멀다. 또 비밀통로를 만들 때도 국방부 예산을 끌어다 썼다. 대통령 집무실의 사우나 예산을 국회 등 외부 기관이 알지 못하도록 하려는 의도가 읽힌다. 어쩌면 대통령실에 오래 머물게 될 것으로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계엄 공범 노상원의 수첩에는 “차기 대선 대비, 모든 좌파 세력을 붕괴시킨다” “헌법 개정(재선∼3선)” 같은 내용이 있다. ▷대통령실은 호화시설 논란이 일 때마다 한결같이 부인했다. 정진석 전 비서실장은 국감에서 “아주 검소하고 초라한 대통령 관저라는 말씀을 드린다”는 말도 했다. 감사원은 용산 이전 비리 의혹을 조사하면서 1급 보안시설이란 이유로 현장 확인도 없이 감사를 종결했다. 윤 전 대통령은 계엄 후 관저에 숨어 체포영장 집행을 거부할 때도 “1급 보안시설” 핑계를 댔다. 제왕적 대통령제와 결별하겠다며 용산 이전을 밀어붙인 윤 전 대통령이 완성한 건 국민의 눈으로부터 자신을 가려줄 ‘구중심처’였다. 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

    • 2026-01-04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