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승연

조승연 기자

동아일보 사회부

구독 20

추천

안녕하세요. 사회부 조승연 기자입니다.

cho@donga.com

취재분야

2026-05-24~2026-06-23
사회일반48%
사건·범죄33%
사고7%
경제일반3%
교육3%
산업3%
검찰-법원판결3%
  • 한적한 시골 단위농협… 알고보니 ‘대포통장 발급 전국 2위’[히어로콘텐츠/히든②-下]

    “저희 지점이 대포통장 발급 전국 2등이라고요?”지난달 12일 경남 거창군 가조면에 있는 거창축협 가조지점. 사정을 들은 관계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인구 3394명의 농촌 마을, 직원 6명뿐인 작은 단위농협이다. 오전 11시부터 2시간 동안 지켜봤더니 창구를 찾은 고객은 12명이 전부였다. 대부분 노년층으로 단순 송금이나 보험 문의였다. 회사 명의로 통장을 만들러 온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그런데 이 한적한 단위농협이 최근 5년 동안 12번 범죄 기록에 이름을 올렸다. 금융감독원은 보이스피싱에 쓰인 대포통장을 모아 ‘채권소멸 사실 공고’라는 이름으로 공개한다. 잔액을 피해자에게 돈을 돌려주기 전에 소명받는 절차인데, 가조지점에서 발급한 회사 명의 통장 12개가 2021년 이후 이 목록에 올랐다. 전국 4800여 개 단위농협 지점 가운데 대구축산농협 대명역지점(13개)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수다.가조지점 관계자는 “전국 순위권인 줄 전혀 몰랐다”며 “지난해부터는 바깥 지역에 주소를 둔 회사의 통장 개설은 막고 있다”고 해명했다.● 범죄가 옮겨간 곳, 작은 단위농협최근 몇 년 새 대포통장 조직이 통장을 발급받는 은행이 급격히 제2금융권으로 바뀐 것으로 나타났다. 대포통장 조직이 통장을 받아내는 은행은 최근 들어 바뀌고 있다. 2021년만 해도 보이스피싱에 쓰인 회사 대포통장 중 80.9%인 4584개는 시중은행 등 제1금융권에서 발급됐다. 은행별로는 IBK기업은행이 1354개로 가장 많았고, 우리은행과 KB국민은행이 다음이었다. 상위 5개 은행 가운데 제2금융권은 단 한 곳도 없었다.하지만 지난해엔 제2금융권의 비중이 46.8%로 치솟았다. 통장 수로는 4년 만에 2.5배가 된 것. 지난해 말 기준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자산은 모두 합쳐 2684조 원으로, 단위농협과 새마을금고의 자산 합계(844조 원)의 3배가 넘었다. 그런데도 지난해 보이스피싱에 쓰인 회사 대포통장은 5대 시중은행(2095개)과 단위농협·새마을금고(1969개)가 엇비슷했다. 덩치는 3분의 1인데 범죄에 동원된 통장 수는 맞먹은 셈이다.특히 단위농협의 증가세가 심상치 않다. 단위농협에서 내준 회사 대포통장이 보이스피싱에 쓰인 규모는 2021년엔 금융권 6위(8.9%)였지만 2024년엔 1위(18.9%)가 됐다. 지난해엔 비율이 21.3%로 더 높아졌다.5년간 단위농협의 개별 조합 가운데선 대구축산농협(44건)에서 만들어진 회사 대포통장이 가장 많았다. 그중에서도 대명역지점에서만 13개가 쏟아졌다. 농협중앙회는 “문제가 된 시기엔 서류 등 요건만 맞으면 통장 개설을 거절하기 어려운 환경이었다”면서 “최근에는 통장 개설 시 실사를 나가는 등 통제를 강화했다”고 했다.● 허술한 통제… AI 탐지망 참여도 늦어단위농협과 새마을금고의 구조는 닮았다. 단위농협은 농협중앙회로부터 전반적인 관리와 감독을 받지만 전국 1110여 개의 개별 조합 하나하나가 각 지역 조합원의 출자금으로 세워져 독자적으로 조합장을 선출한다. 여기서 운영하는 4800여 개 지점의 인사도 조합이 책임진다. 새마을금고 역시 유사하게 운영된다. 반면 제2금융권 중에서도 본사의 감시가 강한 증권사나 저축은행은 회사 명의 대포통장 발급이 연간 수십 개 수준이었다.이 때문에 두 상호금융회사의 내부통제는 제1금융권에 비해 약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제1금융권의 시중은행은 본점이 이상 거래를 감시하고 일괄적으로 방어막을 친다. 반면 단위농협과 새마을금고는 조합 하나하나가 독립된 회사다. 중앙회의 통제력은 상대적으로 약해 감시망이 느슨하다.단위농협과 새마을금고에도 유령 회사를 걸러낼 장치는 있다. 통장을 만든 회사가 실제로 존재하고 영업하는지 직원이 현장에 나가 두 눈으로 확인하는 ‘실사’다. 하지만 한 단위농협 지점의 관계자는 “실사는 나가지 않고 통장을 개설할 때 제출받은 회사 등기부등본 등 서류로 대체한다”고 했다. 대구 지역 새마을금고에서 지난해 퇴직한 전직 전무(60)는 “대출 전엔 실사를 나가기도 하지만 통장을 만들 땐 그러지 않았다”면서 “실제로 영업하는지 일일이 조사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라고 했다. 대출해 준 돈을 떼이면 은행에 손실이지만, 통장 개설은 고객의 돈을 추가로 맡아두는 일이라 까다로운 확인 절차를 거치지 않는다는 취지다.제2금융권은 정부의 보이스피싱 대책 참여에도 소극적이다. 금융위원회 등은 지난해 10월 수많은 통장 가운데 보이스피싱 의심 통장을 인공지능(AI)으로 탐지하는 시스템 ‘ASAP’를 가동했다. 올 1월까지 약 130개 금융회사가 참여해 ASAP로 잡아낸 통장은 총 2705개다. 그런데 그중 단위농협과 새마을금고가 적발한 건 3개에 그쳐, 그 비율이 0.001%였다. 제2금융권 중에서는 그나마 중앙집권적 시스템을 갖춘 증권사는 실적 비중(11.7%)이 컸다.금융당국은 이달까지 제2금융권의 시스템 참여를 끌어내 반(反)보이스피싱 방어벽을 높이겠다는 방침이다. 금감원은 “단위농협의 대포통장 문제를 인지하고 개선 작업을 벌여 최근에는 감소했다”고 했다.하지만 쫓는 자보다 쫓기는 자가 한발 빨랐다. 당국이 방어벽을 한 겹 올리는 사이, 범죄 조직은 신고로 묶인 통장마저 되살리는 우회로를 이미 뚫어 놓은 뒤였다. 대포통장 조직이 법정을 어떻게 유린했는지는 3회에서 이어진다.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아 2020년부터 히어로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히어로콘텐츠팀의 ‘히든: 검은돈의 혈관, 대포통장’은 각종 범죄의 핵심 도구인 대포통장 문제를 조명했습니다.〈히어로콘텐츠팀〉▽팀장: 황성호 기자 hsh0330@donga.com▽취재: 임재혁 손준영 조승연 기자▽사진: 박형기 기자▽편집: 하승희 봉주연 기자▽그래픽: 김충민 기자▽인터랙티브 기획: 김재희 기자▽인터랙티브 개발: 임희래 ND▽인터랙티브 디자인 및 영상: 정시은 CDQR코드를 스캔하거나 ‘히어로콘텐츠’()에 접속하면 디지털 플랫폼에 특화된 인터랙티브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황성호 기자 hsh0330@donga.com임재혁 기자 heok@donga.com손준영 기자 hand@donga.com조승연 기자 cho@donga.com}

    • 11시간 전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믿고가던 동네금고 전무, 대포통장 조직 한패였다 [히어로콘텐츠/히든②-上]

    2024년 9월 4일, 대구 달서구에 있는 MG새마을금고 이곡금고에 돌연 검찰의 압수수색 영장이 날아왔다. 이 금고에서 내준 통장 수십 개가 보이스피싱 등 범죄에 쓰였다는 내용이었다. 남의 명의를 빌리거나 가짜 회사를 세워 만든 대포통장이었다. 직원이 10명 남짓한 작은 금고는 발칵 뒤집혔다.이튿날 금고의 실무를 총괄하는 이영환(가명·52) 전무는 조용히 움직였다. 몰래 휴대전화를 꺼내 압수수색 영장을 사진으로 찍었다. 사진은 곧장 ‘구사장’에게 전송됐다. 구사장은 대포통장 유통 조직의 총책 구태영(가명·48)이었다. 며칠 뒤 구사장을 밖에서 만난 이 전무는 경고했다. “‘우리’가 만든 대포통장이 수사받고 있어.” 수사망이 좁혀 오는 순간까지 금고 간부는 범죄 조직과 한 몸이었다.이곡금고와 구사장 조직이 3년 8개월 동안 함께 만들어 낸 대포통장은 총 126개. 불법 도박 사이트를 포함한 온갖 범죄에 쓰였다. 보이스피싱 신고로 통장이 잠기면 이 전무는 신고자 연락처를 구사장에게 넘겼다. 구사장은 신고자를 겁박해 신고를 취하시켰다. ‘어떤 상황에도 정지되지 않는 통장’이라는 명성을 달고 통장은 날개 돋친 듯 팔렸다. 추후 검찰에 붙잡힌 구사장은 “대포통장을 사려는 곳이 너무 많아서 수요를 도저히 못 따라갔다”고 진술했다.이곡금고는 빙산의 일각일 가능성이 있다. 최근 5년간(2021~2025년) 전국에서 보이스피싱에 사용돼 금융감독원에 등록된 회사 명의 대포통장 2만4259개를 전수 분석한 결과, 제2금융권에서 발급된 비중은 2021년 19.1%에서 지난해 46.8%로 치솟았다. 반면 시중은행 등 제1금융권의 비중은 줄었다.제2금융권 중에서도 특히 단위농협과 새마을금고에서 발급된 대포통장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두 곳은 지역 주민이 출자해 세운 독립된 협동조합 형태로, 중앙회의 통제 권한이 약하다. 시중은행이 통장을 내줄 때 회사가 실제로 영업하는지 현장에 나가 확인하는 ‘실사’ 등 절차를 강화하자, 검증이 느슨한 상호금융을 범죄 조직이 파고든 것이다.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은 이곡금고 사건의 판결문과 내부자 증언을 토대로 컨트롤타워 없는 제2금융권이 범죄의 숙주가 된 과정을 추적했다.금고 전무 “통장 풀었다 ㅎㅎ” 피싱 신고자 신상 508번 조직에 넘겨마을금고 전무와 짠 대포통장 사장 통장 거래 묶이면 신고자 정보 받아 “너 모를것 같아?” 신고 취소 협박금고 전무 “통장 발급이 왜 문제냐” 불법 의심한 직원 업무 바꾸기도은행원과 대포통장 조직. 두 집단의 거래는 2021년 4월 시작됐다. 당시 대포통장 업계에는 “통장 장사가 예전보다 어려워졌다”는 말이 돌았다. 대형 은행들이 통장을 내줄 때 그 회사 사무실을 불시에 찾아가 실제로 영업하는지 확인하는 등 감시를 강화했기 때문이다. 조직들은 통장을 내줄 만한 새 구멍을 애타게 찾고 있었다.그 무렵 구사장은 이 전무를 만났다. 대출 서류를 조작해 주는 ‘작업 대출’ 브로커가 인맥을 넘겼다. 몇 번의 만남으로 친분을 쌓은 구사장은 금고 인근의 한 유흥주점에서 본론을 꺼냈다. “저희가 도박 사이트를 운영하거든요. 판돈을 받을 통장을 좀 만들어 주십쇼.” 이 전무는 수락했다. 3년 8개월간 이어질 공생의 시작이었다.● “통장 다 풀었다 ㅎㅎ”… 은행원과 조직의 핫라인구사장 일당은 가짜 건설사를 차리고 이곡금고를 찾아가 회사 명의로 대포통장을 찍어냈다. 굳이 유령 회사를 세운 건, 회사 명의 통장은 한 번에 수십억 원도 옮길 수 있어서다. 범죄 조직은 새로 개설하면 하루 송금 한도가 1000만 원도 안 되는 개인 명의 통장보다 회사 통장을 선호한다. 보통 새 통장은 한동안 거래 실적이 쌓여야 한도가 풀리는데, 이 전무는 구사장 통장의 한도도 곧바로 풀어줬다.이 전무의 도움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보이스피싱 피해자가 은행이나 경찰에 신고하면 해당 통장은 동결된다. 그런데 구사장의 통장이 동결되면, 이 전무는 금고 전산망을 뒤져 신고자의 이름과 연락처를 찾아냈다. 그리고 이를 구사장 일당에게 넘겼다. 검찰이 확인한 것만 508차례. 이때부터 이 전무는 더 이상 은행원이 아니었다. 범죄 조직의 정보원이었다.구사장 일당은 신고자에게 전화를 걸어 혼을 빼놨다. “내가 너 누군지 모를 거 같아, XX야?” 정체 모를 겁박을 받은 이들은 신고를 거둬들였다. 몇몇 신고자에겐 피해액 일부를 돌려주고 합의했다. 신고가 취소되면 동결됐던 통장은 되살아났다. 그 과정에서 이 전무가 직접 신고자에게 전화해 동결을 푼 뒤 이를 구사장 측에 알린 적도 있다.“통장 2개 동결 다 풀었다. 사용해라. ㅎㅎ”(이 전무)“네, 감사합니다. 형님.”(구사장 조직원)이런 뒷배 덕분에 구사장 일당의 통장은 특별해졌다. 어떤 상황에서도 정지되지 않는 ‘명품’ 대포통장, 업계 은어로 ‘메이커장(帳)’이 된 것이다. 일반 회사 대포통장의 한 달 대여료는 500만 원 안팎인데 구사장의 통장은 그 두 배인 1000만 원을 호가했다. 오른 몸값 덕에 아무에게나 팔지도 않았다. 낯선 이가 통장을 사고 싶다고 텔레그램 메시지를 보내면, 아는 조직폭력배에게 ‘이 사람 믿을 만하냐’며 뒷조사를 시킨 뒤에야 통장을 내줬다.2023년 무렵엔 통장을 만들어 주던 ‘갑(甲)’인 금고가 구사장에게 돈을 구걸하는 ‘을(乙)’이 됐다. 앞서 이곡금고가 제대로 심사도 않고 내준 부동산 대출에서 이자가 끊기며 40억 원대 적자가 난 것이다. 부실이 감사에 걸릴까 두려웠던 금고 간부들은 구사장에게 손을 벌렸다. 구사장은 여자 친구 명의 통장으로 3억8400만 원을 이자 없이 빌려줬다. 이 돈으로 당장 급한 연체 이자를 막아 부실을 숨겼다. 범죄 조직을 신고해야 할 금고가 그 조직의 돈으로 연명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무용지물이 된 ‘이중 감시망’이곡금고의 내부 통제 시스템은 허물어져 갔다. 금고의 실무 전반을 쥐고 흔드는 사람이 바로 이 전무였기 때문이다. 부하인 정모 상무와 박모 부장도 범행에 가담했다.금고 안에서 의심을 품은 직원이 없었던 건 아니다. 한 직원은 매일같이 금고를 드나들며 회사 통장을 새로 개설하는 구사장 일당을 수상하게 여겼다. “더는 통장을 못 내주겠다”며 업무를 거부하자 이 전무는 아예 직원의 담당 업무를 바꿔 버렸다. 해당 직원은 “대포통장을 도대체 누구에게 줬고, 밖에서 어떻게 사용했는지는 나도, 다른 직원도 전혀 알지 못했다”고 했다.금고에는 두 겹의 감시망이 있다. 내부 감사와 새마을금고중앙회의 감사다. 하지만 분기마다 하는 내부 감사는 금융 전문가가 아니라 지역 유지 출신 감사 2명이 형식적으로 진행했다. 범행이 시작되기 전 이곡금고 이사장을 지낸 이모 씨(81)조차 “통상 감사들이 이틀 정도 나와 서류를 보는데, 전문 지식이라곤 중앙회에 가서 일주일 교육받는 게 전부”라고 털어놨다. 2024년 5, 6월 진행된 중앙회 감사에서도 대포통장 발급 사실은 드러나지 않았다.● 수사 중에도 “통장 사고 싶다” 연락 쇄도영원할 것 같았던 이들의 범죄 행각은 결국 꼬리를 밟혔다. 대포통장 조직 내분으로 시작된 투서가 단서였다. 검찰이 이를 단서로 약 410개의 통장과 120건의 관련 사건을 추적해 보니 구사장 일당은 유령 회사 설립과 통장 개설, 판매까지 역할이 세분된 기업형 조직이었다. 검찰이 확보한 휴대전화에는 구사장의 대포통장 리스트와 대여료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었다. 통장이 워낙 많다 보니 장부를 꼼꼼하게 만들지 않고서는 관리가 안 됐던 것이다.검찰 수사 중에도 구사장의 텔레그램은 “대포통장을 당장 사고 싶다”는 메시지로 가득 찼다. 구사장은 검찰 조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 통장을 사려는 곳이 너무 많아서 하루에도 수십 곳씩 연락이 왔습니다.”수사 결과 구사장이 유령 회사 15개를 세워 이곡금고에서 발급받은 대포통장은 총 126개. 법원이 인정한 통장 장사 수익만 29억 원이었다. 이 대포통장을 사들인 다른 범죄 조직들이 얼마나 많은 피해자의 고혈을 빨았는지는 파악조차 되지 않는다.그렇게 검은돈의 혈관을 열어 준 대가로 이 전무 등 금고 임직원이 챙긴 돈은 1509만 원만 법정에서 인정됐다. 구사장에게 갚았어야 할 대출 이자 1358만 원이 그중 대부분이었다. 구사장이 유흥주점 술값을 대거나 현금을 찔러주는 등 총 7500만 원 넘게 준 정황은 있지만 입증할 증거가 부족했다. 부패와 부실이 겹친 이곡금고는 지난해 3월 인근 새마을금고로 합병됐다. 1980년 설립한 이래 45년 만이었다.당시 대구지검에서 이 사건을 수사한 박형철 서울동부지검 검사는 이 전무가 구사장 조직의 규모를 몰랐던 것 같다고 했다. “이 전무는 수사 과정에서 ‘통장 발급해 달래서 해준 게 왜 문제냐’고 항변했다. 구사장 일당이 얻은 수익을 알려주자 그제야 눈빛이 흔들렸다”는 것이다. 검찰 일각에선 이 사건을 빙산의 일각으로 본다. 구사장 일당처럼 체계적으로 대포통장을 찍어내는 기업형 조직은 전국에서 최소 20곳 이상이 활개 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이 전무와 구사장은 금융실명법 위반죄 등으로 각각 징역 4년형이 확정돼 복역 중이다. 둘 다 변호인을 통한 해명 요청에 답하지 않았다. 가담자 중 유일하게 집행유예로 풀려난 박 부장은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라며 답을 거부했다. 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아 2020년부터 히어로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히어로콘텐츠팀의 ‘히든: 검은돈의 혈관, 대포통장’은 각종 범죄의 핵심 도구인 대포통장 문제를 조명했습니다.〈히어로콘텐츠팀〉▽팀장: 황성호 기자 hsh0330@donga.com▽취재: 임재혁 손준영 조승연 기자▽사진: 박형기 기자▽편집: 하승희 봉주연 기자▽그래픽: 김충민 기자▽인터랙티브 기획: 김재희 기자▽인터랙티브 개발: 임희래 ND▽인터랙티브 디자인 및 영상: 정시은 CDQR코드를 스캔하거나 ‘히어로콘텐츠’()에 접속하면 디지털 플랫폼에 특화된 인터랙티브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황성호 기자 hsh0330@donga.com임재혁 기자 heok@donga.com손준영 기자 hand@donga.com조승연 기자 cho@donga.com}

    • 11시간 전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팔순 노인 전세금까지 빨아먹은 ‘악마의 통장’[히어로콘텐츠/히든①-上]

    인천 연수구 송도의 한 대형 오피스빌딩 1810호 앞. 굳게 닫힌 검은 철문에는 태국 출장 마사지 명함이 조잡하게 꽂혀 있었다. 지난달 4일, 왼눈에 하얀 안대를 찬 유종수(가명·80) 씨가 떨리는 손으로 문을 밀어 열었다.“휑하잖어. 아무것도 없잖여, 아무것도….”먼지 냄새가 훅 끼쳐오는 18m²(약 5평) 남짓한 공간을 마주한 유 씨가 허탈한 듯 읊조렸다. 텅 빈 사무실 한가운데는 플라스틱 책상 두 개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의 손에는 2023년 10월 18일 4500만 원을 이체한 기록이 선명한 휴대전화가 들려 있었다. 아내의 투병 때문에 월세방으로 이사한 뒤 남겨둔 피 같은 전세보증금이었다.유 씨는 가짜 투자 사이트에 속아 돈을 넣었다. 높은 수익을 보장한다는 광고를 믿고 안내받은 통장으로 4500만 원을 보냈다. 그 돈은 곧바로 ‘대한퍼스트’라는 회사의 통장으로 옮겨졌고, 몇 분 만에 현금으로 인출돼 사라졌다. 통장 주인과 실제 사용하는 사람이 다른 범죄용 통장, 대포통장이었다.정부에 배달 대행업체로 등록된 대한퍼스트는 실은 대포통장을 만들어 범죄 조직에 파는 유령 회사였다. 유 씨의 돈을 가로챈 투자 사기 조직은 따로 있었고, 대한퍼스트는 그 돈을 받아 숨겨주는 통로 역할을 했다.문제의 대한퍼스트를 설립한 김철민(가명·47)은 2024년 10월 붙잡혔다. 법원은 김철민을 사기 공범으로 보고 유 씨에게 투자금을 전액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유 씨는 한 푼도 받지 못했다. 김철민이 돈이 없다고 버텼기 때문이다. 더 기가 막힌 건 유 씨가 돈을 넣었을 때 대한퍼스트는 이미 폐업 상태였다는 점이다. 사망한 회사의 통장이 범죄 수익을 실어 나르는 동안 국세청도, 은행도 경고하지 않았다. 보이스피싱, 투자 사기, 온라인 도박…. 형태는 다양했지만 돈이 오간 통로는 하나, 대한퍼스트의 대포통장이었다. 확인된 것만 30개의 통장에 유 씨를 포함해 최소 189명이 돈을 뜯겼다.한 해 새로 만들어지는 대포통장은 32만 개로 추산된다. 검은돈이 오가는 혈관이다. 범죄 조직은 대포통장이 없으면 돈을 받을 수도, 숨길 수도 없다.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은 최근 5년(2021~2025년)간 금융감독원에 등록된 보이스피싱 통장 12만6866개를 분석하고 올 1월부터 5개월간 대포통장 공급 조직 관계자 4명과 피해자 10명, 수사기관 관계자 9명 등 총 58명을 접촉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법망의 틈새에서 범죄의 핵심 부품인 대포통장은 쉴 새 없이 찍혀 나오고 있다.아내 병원비-딸 결혼자금까지… 대포통장 1개社, 189명에 39억 뜯어피해자 신고보다 빠르게 하루 876개꼴 생겨나개인 아닌 회사 명의는 사실상 송금 한도 없어사기-도박-피싱에 5000만원-4500만원 줄송금대표 잡고보니 무일푼… 배후는 3년째 도피중폐업후에도 차단 안된채 피해자 돈 실어날라대포통장은 사기든 도박이든 마약이든, 돈이 오가는 거의 모든 범죄에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범죄 조직은 피해자에게서 뜯어낸 돈을 대포통장을 거쳐 현금으로 빼낸다. 대포통장이 없으면 돈을 받을 수도, 숨길 수도 없다. 거꾸로 말하면 이 통장의 흐름만 틀어막아도 범죄 조직은 괴사한다. 검은돈이 흐르는 혈관을 조이는 셈이다.그런데 이 혈관은 사실상 방치돼 있다. 한 해 새로 만들어지는 대포통장만 32만 개, 하루 876개꼴로 추산된다. 금융감독원의 보이스피싱 통장 데이터를 토대로 황석진 동국대 국제정보보호대학원 교수의 디지털금융범죄대응연구소가 분석한 결과다. 연구소는 “이마저도 적게 잡은 수치일 수 있다”고 했다. 보이스피싱을 뺀 도박, 마약, 투자 사기에 쓰인 대포통장은 공식 통계에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단 하나의 대포통장 조직이 12조 원을 세탁하다 적발된 적도 있다.이 지하 혈관을 만드는 비용은 생각보다 훨씬 적었다. 신용불량자 한 명과 6일이면 충분했다.● 같은 통장으로 흘러든 189명의 돈대한퍼스트의 통장을 통해 돈을 잃은 피해자는 최소 189명. 그중엔 배관공 양재호(가명·52) 씨도 있었다. 그는 2023년 9월 유튜브 광고에서 해외 대학교수가 인공지능(AI) 투자 플랫폼을 소개하는 영상을 봤다. 반신반의했지만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는 수익 인증이 끊임없이 올라왔다. 그는 두 달 후 3년 동안 모은 5000만 원을 넣었다.그런데 석 달 후인 12월 19일, 투자 사이트는 먹통이 됐다. 수익률은 가짜였다. 광고 속 교수는 대역료 30만 원을 받은 배우였다. 그가 보낸 돈은 추적할 수 없는 곳으로 사라진 상태였다. 피해 이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지금은 치매를 앓는 어머니와 단둘이 산다. 경찰 조사에서 그는 “지금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고 살아 있는 게 다행일 정도”라고 했다.남옥순(가명·68) 씨는 빵과 옷을 팔아 모은 노후 자금 900만 원을 잃었다. 김진영(가명·59) 씨는 딸의 결혼식 자금 1500만 원을 날렸다. 이들이 처음 돈을 보낸 곳은 평범한 개인 명의 통장이었다. 여기에 돈을 넣으면 조직이 곧바로 대한퍼스트의 회사 통장으로 옮겨 인출했다. 피해자로서는 대포통장인지 알아볼 방법이 없었다. 해외에서는 돈을 보낼 때 범죄에 연루된 의심 통장이라고 알려주기도 하지만, 한국에는 아직 그런 장치가 없다. 남 씨는 주 6일 요양보호사로 일하며 생계를 잇는다. 김 씨는 딸에게조차 아직 피해 사실을 말하지 못했다.대한퍼스트의 통장은 투자 사기에만 쓰이지 않았다. 보이스피싱 조직도, 온라인 도박 조직도 이 통장을 거쳐 돈을 받았다. 확인된 범죄 조직만 5개다. 도박 사이트 이용자 중에는 고등학생도 있었다. 보이스피싱 피해 30건도 이 통장을 거쳤다. 그렇게 끌어모은 피해액만 39억 원이었다.대포통장에도 등급이 있다. 대한퍼스트의 회사 통장은 개당 500만 원 선에 거래돼 개인 명의 통장보다 2배 이상 비쌌다고 한다. ‘빠른 현금화’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새로 만든 개인 통장은 하루 송금 한도가 300만 원에 불과하다. 피해자가 신고하기 전에 거액을 빼내기 어렵다. 가상자산(코인) 지갑으로 빼돌리는 방법도 있지만, 주요 거래소는 이상 거래를 잡아내는 시스템을 갖춰 꼬리를 밟힐 위험이 크다. 반면 회사 통장은 사실상 한도가 없어 수십억 원도 한꺼번에 현금으로 뽑을 수 있다. 회사 통장도 개설할 땐 개인 통장처럼 한도 제한이 있지만 돈이 몇 차례 오가면 정상적인 사업장인 척 허위로 증빙하면 한도를 수십억 원까지 높일 수 있는 것이다.대포통장을 구하는 방식도 달라졌다. 과거엔 보이스피싱 조직이 직접 노숙인이나 불법 체류자를 꼬드겨 통장을 사들였다. 그런데 통장이 워낙 중요해지자, 이제는 대포통장만 전문으로 공급하는 조직이 따로 생겨 사기 조직과 분업한다. 통장과 OTP, 명의자 신분증까지 한 묶음으로 넘기고 한 달 단위로 빌려주는 ‘구독’ 방식이다. 범죄 세계에서는 대포통장 조직이 ‘갑(甲)’이다. 대한퍼스트가 바로 그런 조직이었다.또 다른 무기는 ‘일회용 통장’으로 불리는 가상계좌다. 대한퍼스트는 결제 대행사와 e메일, 우편만으로 가맹점 계약을 맺고 회사 통장을 기반으로 가상계좌를 발급받았다. 거래마다 새 번호가 붙기 때문에 사실상 동결되지 않고, 원래 통장도 무사했다. 피해자가 신고하는 속도보다 새 통장이 생기는 속도가 빨랐다.● 마담이 빌려준 돈으로 6일 만에 회사 세워범죄 조직들은 자취를 감췄지만, 대한퍼스트를 세운 김철민의 이름은 수사망에 포착됐다. 경찰은 추적 끝에 2024년 10월 그를 체포했다. 법원은 김철민에게 징역 3년을 선고하며 “유령 회사를 세운 뒤 그 통장을 범죄 수익 세탁에 제공한 죄책이 무겁다”고 꾸짖었다.유종수 씨는 김철민에게 주목했다. 아내의 병원비를 대려면 대한퍼스트의 통장을 거쳐 사라진 4500만 원 중 일부라도 되찾아야 했다. 그는 변호사에게 수임료 620만 원을 주고 김철민에게 손해배상 소송을 걸었다.하지만 법원에서 드러난 김철민의 실체는 초라했다. 그는 55만 원짜리 월세방에 사는 신용불량자였다. 범행 전에는 물류센터나 갈빗집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었다. 그러다 텔레그램에서 ‘김수현’을 만났다. 김수현은 “회사를 만들어 주면 3억 원을 대출해 주겠다”고 했다. 룸살롱 마담에게서 빌린 1000만 원을 자본금인 척하고 잔액 증명서를 내니 사업자등록증이 나왔다. 회사 명의로 통장을 받기까지 6일이면 됐다.유 씨는 소송에서 이겼지만 김철민은 빈털터리였다. 그에게 배상을 요구한 사람만 19명이 더 있었다. 배후의 김수현은 3년이 지난 지금껏 잡히지 않고 있다.● 폐업한 회사, 닫히지 않은 통장대한퍼스트가 폐업한 뒤에도 그 통장은 금융망에서 차단되지 않고 살아 움직이며 피해자의 돈을 실어 날랐다. 국세청은 2023년 10월 12일 대한퍼스트를 폐업 처리했다. 유 씨는 그로부터 6일 뒤 대한퍼스트의 통장을 거쳐 돈을 뜯겼다. 통장이 온라인 도박에 쓰인 건 폐업한 이후인 2023년 12월부터였다. 보이스피싱 피해액 30건 중 9건도 폐업 이후 통장을 거쳐 갔다.국세청은 “회사 통장 개설과 폐쇄는 금융위원회 소관”이라고 했다. 금융위는 “통장 주인이 스스로 신고하지 않으면 폐쇄가 어려운 구조라 개선책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경찰도 통장을 강제로 닫을 권한은 없다.유 씨는 이제 남아 있던 전세보증금 5000만 원도 거의 다 쓴 상태다. 피해를 당한 뒤 한쪽 눈이 급격히 나빠져 종종 병원 신세를 진다. 4월 1일 서울 노원구 그의 자택 서랍장 위에는 베트남전쟁 참전으로 받은 유공 증서만 비스듬히 놓여 있었다. 몇 번이고 들여다봐 너덜너덜해진 판결문을 손에 든 그의 목소리엔 힘이 없었다. “이제 판결문 글씨가 잘 보이지도 않습니다….”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아 2020년부터 히어로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히어로콘텐츠팀의 ‘히든: 검은돈의 혈관, 대포통장’은 각종 범죄의 핵심 도구인 대포통장 문제를 조명했습니다.〈히어로콘텐츠팀〉▽팀장: 황성호 기자 hsh0330@donga.com▽취재: 임재혁 손준영 조승연 기자▽사진: 박형기 기자▽편집: 하승희 봉주연 기자▽그래픽: 김충민 기자▽인터랙티브 기획: 김재희 기자▽인터랙티브 개발: 임희래 ND▽인터랙티브 디자인 및 영상: 정시은 CDQR코드를 스캔하거나 ‘히어로콘텐츠’()에 접속하면 디지털 플랫폼에 특화된 인터랙티브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황성호 기자 hsh0330@donga.com임재혁 기자 heok@donga.com손준영 기자 hand@donga.com조승연 기자 cho@donga.com}

    • 1일 전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이름-주소 다 다른 유령회사들, 31세 男 한명이 굴리고 있었다[히어로콘텐츠/히든①-下]

    대포통장만 전문적으로 만들어 유통시키는 유령 회사라면 어딘가에 흔적을 남기지 않을까. 그 단서는 뜻밖에도 정부의 공개 데이터 안에 있었다.금융감독원 홈페이지에는 보이스피싱에 쓰인 것으로 지목돼 소명 절차까지 거친 뒤 동결된 통장 목록(채권소멸 사실공고)이 매주 공개된다. 2021년부터 지난해까지 총 12만6866개가 등재됐다. 이조차 실제 범죄에 사용되는 전체 대포통장의 규모와 비교하면 빙산의 일각일 것으로 추정된다.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은 올 1월 1일부터 지난달 14일까지 금감원 목록에 새로 올라온 통장 1만6854개의 명의를 추가로 전수 분석했다. 최소 189명의 피해금을 착취한 대한퍼스트처럼, 최근 암시장에서 활동하는 다른 대포통장 조직을 역추적하기 위해서였다. 그중 송금 한도가 커서 범죄 조직이 선호하는 회사 통장은 2053개였다. 가장 많이 적발된 회사를 줄 세웠다. 1위부터 5위까지 회사 등기부등본을 발급받아 나란히 펼쳤다. 회사 이름도, 주소도 달랐다. 그런데 대표나 이사 자리에 빠짐없이 나타나는 이름이 있었다.31세 안준호(가명)였다.● 월 1만 원에 차린 대포통장 공장추적 반경을 넓혀 보니 안준호와 연결된 회사는 8개로 늘었다. 그는 대표 3곳, 이사와 감사 등 모두 11개의 직함을 갖고 있었다. 이 회사들의 흔적을 따라가 보니 일종의 매뉴얼처럼 정형화된 행동 수칙이 보였다.제1원칙: 회사 주소는 비상주 사무실로 해결한다. 사업자등록을 하려면 주소가 필요하다. 안준호 일당은 월 1만 원 안팎에 주소를 빌려주는 서비스를 이용했다. 지난달 7일 찾아간 전남 나주시의 한 비상주 사무실. 좁은 복도에 놓인 우편함 하나를 63개 업체가 공유하고 있었다. 안준호 일당의 회사는 그중 29번째 칸에 이름만 걸어두고 있었다. 사무실 관리자는 “계약은 주로 전화로 한다. 500개 업체를 관리해서 기억이 잘 안 난다”고 했다. 일부 비상주 사무실은 아예 “은행 실사가 나오면 알아서 대응해 준다”고 광고했다.제2원칙: 은행 통과 프리패스, ‘통신판매업’을 노린다. 회사를 세운 뒤 통장을 만들려면 은행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안준호 일당은 주 업종으로 온라인 쇼핑몰을 내세웠다. 온라인 거래 특성상 초기엔 실물 사무실이나 재고가 없어도 통장을 파기 쉬운 업종이라는 점을 노린 것이다. 범죄 수익을 현금화하기 쉬운 상품권 판매업을 추가한 경우도 있었다.제3원칙: 은행 실사를 피할 ‘위장 쇼윈도’를 꾸민다. 서류만으로는 최근 들어 깐깐해진 은행의 눈을 속일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안준호 일당은 아예 가짜 가구 쇼핑몰을 인터넷에 띄웠다. 홈페이지에는 ‘모던 소파 89만 원’, ‘원목 다이닝 테이블 45만 원’ 등 그럴싸한 사진과 가격표가 붙었다. 회원 가입 버튼은 작동하지 않았다. 은행이나 수사당국의 눈을 피하기 위한 전시용이었다.이렇게 찍어낸 대포통장은 추적이 어려운 텔레그램을 타고 각종 범죄 조직으로 팔려 나갔다. 이들 회사의 통장이 올해 보이스피싱에 동원돼 적발된 횟수는 60건에 달했다.● 등기부등본에 올라온 전과자들안준호의 등기상 주소인 광주 북구 두암동의 한 다세대주택 문을 두드렸다. 60대 여성 집주인이 당황한 표정으로 나왔다. “그런 사람을 왜 우리 집에 와서 찾아요. 남편하고 나하고 둘이 살아요. 월세방도 비어 있어요.”인터넷에서도 안준호는 지워져 있었다. 그가 쓰던 연락처로 카카오톡과 페이스북을 뒤졌지만 얼굴 사진이 한 장도 나오지 않았다. 흔적은 2018년 서울에서 중고 게임을, 2022년 제주에서 노트북을 판 기록 두 건이 전부였다. 별다른 범죄 전력도 없었다.그런데 그의 등기부등본에 함께 이름을 올린 공범들은 달랐다. 조민기(가명·30)가 대표를 맡은 회사 통장은 또 다른 온라인 도박 조직의 자금을 세탁하는 데 동원됐다. 한 남성이 회삿돈 4억5000만 원을 횡령해 90차례 판돈을 입금하다가 적발됐는데, 그 판결문에 조민기의 회사 통장이 등장한 것. 조민기도 2020년 불법 도박 사이트를 운영하다가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전력이 있었다. 도박장 전과자가 만든 회사 통장이 도박 자금 세탁에 쓰인 것이다.안준호 일당의 회사 두 곳에 이사로 이름을 올린 60대 중반 남성 박동현(가명)은 법무사 사무소 사무장 출신이었다. 그는 2002년 허위 공증과 공정증서 위조 혐의로 처벌받은 전력이 있다. 그는 안준호 일당의 유령 회사 3개가 잇달아 설립될 무렵 한 법무사 사무소에 취업했다. 회사를 법원에 등기하려면 본인이 직접 하거나 법무사나 변호사가 신청서를 대리 제출해야 한다.● “30대 초반 혼자 짠 판이 아니다”경찰은 히어로콘텐츠팀의 데이터 분석 결과를 넘겨받아 안준호 일당을 ‘전문 대포통장 유통 조직’으로 규정하고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기존에 전국 각지에서 개별 보이스피싱 사건으로 흩어져 수사되던 사건들이 데이터를 통해 하나의 조직으로 묶였다. 결정적 단서는 통장을 개설한 장소였다. 광주 일대를 근거지로 한 일당이 연고도 없는 경남 진주시의 특정 신협 지점에서 집중적으로 회사 통장을 개설한 사실이 확인됐다.경찰은 안준호가 ‘바지사장’일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전과 없는 30대 초반을 주축으로 한 조직이 국내에서 가장 활발하게 가동된 대포통장 공장을 굴리기는 쉽지 않았을 거란 판단이다. 정교한 흐름의 배후엔 자금을 대고 판을 짠 실질적인 몸통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금감원 데이터에서 안준호 일당의 이름이 마지막으로 포착된 건 지난달 중순이다. 대포통장 조직이 왜 하필 제2금융권을 노리는지, 그 이유는 2회에서 이어진다.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아 2020년부터 히어로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히어로콘텐츠팀의 ‘히든: 검은돈의 혈관, 대포통장’은 각종 범죄의 핵심 도구인 대포통장 문제를 조명했습니다.〈히어로콘텐츠팀〉▽팀장: 황성호 기자 hsh0330@donga.com▽취재: 임재혁 손준영 조승연 기자▽사진: 박형기 기자▽편집: 하승희 봉주연 기자▽그래픽: 김충민 기자▽인터랙티브 기획: 김재희 기자▽인터랙티브 개발: 임희래 ND▽인터랙티브 디자인 및 영상: 정시은 CDQR코드를 스캔하거나 ‘히어로콘텐츠’()에 접속하면 디지털 플랫폼에 특화된 인터랙티브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황성호 기자 hsh0330@donga.com임재혁 기자 heok@donga.com손준영 기자 hand@donga.com조승연 기자 cho@donga.com}

    • 1일 전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젤꾸’ ‘볼꾸’ ‘폰꾸’… 지갑 얇아진 청년들 ‘가성비 취미’로 몰려

    “한 달 전부터 유행하기 시작하더니, 작년보다 10배 정도는 많이 팔려요.” 16일 서울 종로구 동대문종합시장에서 ‘젤리슈즈’와 꾸미기용 부자재를 판매하는 ‘성도스포츠’ 사장 김종보 씨(63)가 매대를 가리키며 말했다. 김 씨는 “손님은 10대부터 30대까지 다양하다”며 “젤리슈즈는 자기 스타일대로 마음껏 꾸밀 수 있어 젊은 세대가 많이 찾는 것 같다”고 했다. 최근 동대문종합시장 곳곳에서는 투명한 젤리 재질의 샌들과 리본, 비즈 등 각종 액세서리를 찾는 젊은 손님들이 부쩍 늘어난 모습이다. 아무런 장식이 안 달린 기본 신발을 산 뒤 액세서리를 붙여 자신만의 신발로 꾸미는 이른바 ‘젤꾸’(젤리슈즈 꾸미기)가 청년층 사이에서 유행하면서다. ● 젤꾸·볼꾸… 꾸미기형 취미 뜬다이날 낮 12시경 동대문종합시장에선 많은 상점들이 매대 앞쪽에 다양한 색상과 디자인의 젤리슈즈를 늘어놓고 있었다. 이곳을 찾은 손님 10여 명이 매장을 옮겨 다니며 가격과 디자인을 비교했다. 이승은 씨(24)는 “지난달까진 취미로 성인 발레를 다녔는데 지갑 사정을 고려해 최근 그만뒀다”며 “그 대신 1만 원에 산 젤리슈즈에 리본과 진주를 가득 달아 꾸밀 생각”이라고 했다. 4, 5년 전만 해도 골프나 위스키 수집, 일식 오마카세 즐기기 등 고비용 여가가 청년층의 ‘취향 소비’로 주목받았다면 최근에는 소소한 꾸미기형 취미가 인기를 끌고 있다. 1만 원 안팎에 꾸밀 거리를 직접 고르고, 만들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공유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꼽힌다. 이날 동대문종합시장에서는 젤리슈즈뿐 아니라 ‘볼꾸’(볼펜 꾸미기), ‘가꾸’(가방 꾸미기), ‘폰꾸’(휴대전화 케이스 꾸미기) 등 다양한 꾸밈용 액세서리를 판매하는 매장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이지수 씨(25)는 4000원으로 다양한 액세서리를 구입해 ‘나만의 볼펜’을 만들었다. 이 씨는 “세상에 하나뿐인 물건을 만들 수 있어서 만족스럽다”고 했다.저비용 취미 확산은 최근 팍팍해진 청년층의 경제 사정과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해 한국경제인협회가 공개한 ‘세대별 월평균 실질소득 증가율 추이’에 따르면 20대의 월평균 실질소득은 2024년 기준 212만 원으로 10년 전과 비교해 1.9% 증가하는 데 그쳤다. 같은 기간 다른 세대의 실질소득 증가율이 2∼5%대였던 것과 비교하면 가장 낮은 수준이다. 11일 한국은행이 공개한 ‘경제 가계 양극화 실태와 파급 영향’에 따르면 2030세대 중 순자산과 소득이 모두 하위 20%(1분위)에 속한 가구는 2020년 7.9%에서 2025년 15.2%로 2배 가까이로 늘었다. 전체 연령대 가운데 이 비중이 늘어난 것은 2030세대가 유일했다.● 자기계발·취향 확립도 저비용으로 공공기관이 운영하는 시설을 활용해 무료로 취미생활을 이어가는 이들도 있다. 류으뜸 씨(35)는 지난해 캘리그래피 등 취미 활동에 월 10만 원가량을 썼지만 최근에는 모두 그만두고 다른 취미를 찾았다. 류 씨는 “요즘은 지인들과 글쓰기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 팟캐스트를 운영하고 있다”며 “종합사회복지관 무료 시설에서 녹음해 비용 부담도 없다”고 했다. 앞서 이란 전쟁의 여파로 물가가 치솟자 한 끼에 1만 원 이하의 식당 정보만 등록하는 이른바 ‘거지맵’ 사이트에 2030세대 직장인 수십만 명이 몰리며 식비를 아끼려는 움직임을 보인 데 이어 자기계발이나 취향까지 허리띠를 졸라매는 양상이 확산되고 있는 것. 전문가들은 이 같은 흐름이 비용 부담을 낮추면서 취향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청년층의 소비 성향이 반영됐다고 분석했다. 최철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고물가·고비용 시대에 청년층은 적은 비용으로도 만족감을 얻을 수 있는 소비를 찾고 있다”며 “‘젤꾸’ 같은 취미는 비용 절감과 동시에 자기표현 욕구도 충족할 수 있다는 점에서 청년 세대의 호응을 받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고진영 기자 goreal@donga.com조승연 기자 cho@donga.com}

    • 2026-06-18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오마카세 가던 MZ, 이젠 ‘젤꾸·볼꾸’…얇아진 지갑에 ‘가성비 취미’

    “한 달 전부터 유행하기 시작하더니, 작년보다 10배 정도는 많이 팔려요.”16일 서울 종로구 동대문종합시장에서 ‘젤리슈즈’와 꾸미기용 부자재를 판매하는 ‘성도스포츠’ 사장 김종보 씨(63)가 매대를 가리키며 말했다. 김 씨는 “손님은 10대부터 30대까지 다양하다”며 “젤리슈즈는 자기 스타일대로 마음껏 꾸밀 수 있어 젊은 세대가 많이 찾는 것 같다”고 했다.최근 동대문종합시장 곳곳에서는 투명한 젤리 재질의 샌들과 리본, 비즈 등 각종 악세사리를 찾는 젊은 손님들이 부쩍 늘어난 모습이다. 아무런 장식이 안 달린 기본 신발을 산 뒤 액세서리를 붙여 자신만의 신발로 꾸미는 이른바 ‘젤꾸’(젤리슈즈 꾸미기)가 청년층 사이에서 유행하면서다. ● 젤꾸·볼꾸…꾸미기형 취미 뜬다이날 오후 12시경 동대문종합시장에선 많은 상점들이 매대 앞쪽에 다양한 색상과 디자인의 젤리슈즈를 늘어놓고 있었다. 이곳을 찾은 손님 10여 명이 매장을 옮겨 다니며 가격과 디자인을 비교했다. 이승은 씨(24)는 “지난 달까진 취미로 성인 발레를 다녔는데 지갑 사정을 고려해 최근 그만뒀다”며 “대신 1만 원에 산 젤리슈즈에 리본과 진주를 가득 달아 꾸밀 생각”이라고 했다.4, 5년전 만해도 골프나 위스키 수집, 일식 오마카세 즐기기 등 고비용 여가가 청년층의 ‘취향 소비’로 주목받았다면 최근에는 소소한 꾸미기형 취미가 인기를 끌고 있다. 1만 원 안팎에 꾸밀거리를 직접 고르고, 만들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공유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꼽힌다.이날 동대문종합시장에서는 젤리슈즈뿐 아니라 ‘볼꾸’(볼펜 꾸미기), ‘가꾸’(가방 꾸미기), ‘폰꾸’(휴대전화 케이스 꾸미기) 등 다양한 꾸밈용 악세사리를 판매하는 매장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이지수 씨(25)는 4000원으로 다양한 악세사리를 구입해 ‘나만의 볼펜’을 만들었다. 이 씨는 “세상에 하나뿐인 물건을 만들 수 있어서 만족스럽다”고 했다.저비용 취미 확산은 최근 팍팍해진 청년층의 경제 사정과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해 한국경제인협회가 공개한 ‘세대별 월평균 실질소득 증가율 추이’에 따르면 20대의 월평균 실질소득은 2024년 기준 212만 원으로 10년 전과 비교해 1.9% 증가하는 데 그쳤다. 같은 기간 다른 세대의 실질소득 증가율이 2~5%대였던 것과 비교하면 가장 낮은 수준이다. 11일 한국은행이 공개한 ‘경제 가계 양극화 실태와 파급 영향’에 따르면 2030세대 중 순자산과 소득이 모두 하위 20%(1분위)에 속한 가구는 2020년 7.9%에서 2025년 15.2%로 2배 가까이 늘었다. 전체 연령대 가운데 이 비중이 늘어난 것은 2030세대가 유일했다.● 자기계발·취향 확립도 저비용으로비용이 드는 운동이나 전시 관람 대신 다른 취미를 택하는 청년들도 있다. 송은미 씨(26)는 최근 크로스핏을 관두고 대안으로 공유자전거 따릉이 타기를 택했다. 송 씨는 “취미나 자기계발에 비용을 투자하면 좋겠지만 항상 큰돈을 쓰기엔 부담이 된다”며 “따릉이는 매일 퇴근길마다 이용해도 부담없고 재미도 있어서 ‘1000원의 행복’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공공기관이 운영하는 시설을 활용해 무료로 취미생활을 이어가는 이들도 있다. 류으뜸 씨(35)는 지난해 캘리그라피 등 취미 활동에 월 10만 원가량을 썼지만 최근에는 모두 그만두고 다른 취미를 찾았다. 류 씨는 “요즘은 지인들과 글쓰기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 팟캐스트를 운영하고 있다”며 “종합사회복지관 무료 시설에서 녹음해 비용 부담도 없다”고 했다.전문가들은 이 같은 흐름이 비용 부담을 낮추면서 취향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청년층의 소비 성향이 반영됐다고 분석했다. 최철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고물가·고비용 시대에 청년층은 적은 비용으로도 만족감을 얻을 수 있는 소비를 찾고 있다”며 “‘젤꾸’ 같은 취미는 비용 절감과 동시에 자기표현 욕구도 충족할 수 있다는 점에서 청년 세대의 호응을 받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고진영 기자 goreal@donga.com조승연 기자 cho@donga.com}

    • 2026-06-17
    • 좋아요
    • 코멘트
  • 해외 피싱 번호 ‘010’ 둔갑…11억 챙긴 불법중계소 일당 구속

    해외 보이스피싱 조직이 건 전화번호를 국내 휴대전화 번호인 ‘010’으로 변조해 준 사설 중계소 운영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경기 파주경찰서는 전기통신사업법 위반 및 사기 혐의 등으로 총책인 30대 남성 등 일당 5명을 구속했다고 17일 밝혔다. 이들은 지난해 9월 초부터 올해 2월 28일 검거 당시까지 경기 파주시와 인천 등 수도권 일대 아파트와 오피스텔에 거점을 마련하고 사설 중계소를 운영한 혐의를 받는다. 경찰 조사 결과 이들은 해외에 근거지를 둔 보이스피싱 조직과 10억 원이 넘는 돈을 받고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현재까지 경찰이 피해금이 입금된 계좌를 추적해 특정한 범죄 수익은 11억8200여만 원이다. 경찰은 법원으로부터 기소 전 몰수 추징보전 인용 결정을 받았다. 또 일당의 은신처에서 발견된 휴대전화 700여 대와 노트북, 와이파이 공유기, 현금 7000만 원을 압수했다.이들은 해외 보이스피싱 조직이 국내로 전화를 걸면 시민들에게 익숙한 ‘010’으로 시작하는 번호로 표시되도록 발신 번호를 변조해 줬다. 이들은 수사기관의 추적을 따돌리기 위해 다량의 대포폰과 통신장비를 설치하고 거점을 수시로 옮겨 다닌 것으로 조사됐다.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조승연 기자 cho@donga.com}

    • 2026-06-17
    • 좋아요
    • 코멘트
  • 반도체 호황의 그늘… ‘고용 없는 성장’ 현실로

    중동 전쟁이 장기화되며 지난달 취업자 수가 비상계엄 사태 이후 처음으로 줄어들었다. 유례없는 반도체 호황을 맞아 수출을 중심으로 가파른 성장세가 나타나고 있지만, 제조업 취업자 수는 7년 3개월 만에 가장 많이 줄어들며 ‘고용 없는 성장(Jobless Growth)’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11일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고용동향에 따르면 5월 취업자 수는 2912만 명으로 1년 전보다 4만 명 줄었다. 취업자 수가 감소한 것은 2024년 12월(―5만2000명) 이후 처음이다. 당시는 비상계엄 여파로 내수가 얼어붙고 연말 정부 일자리 사업이 종료된 영향을 받던 때다.올해 2, 3월까지만 해도 취업자 수는 20만 명대 증가 폭을 보였지만, 4월 7만4000명으로 줄어든 데 이어 지난달에는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고용률(63.3%)은 전년 대비 0.5%포인트 떨어지며 2개월 연속 하락했다. 고용률 하락 폭도 2021년 2월(―1.4%포인트) 이후 5년 3개월 만에 가장 컸다.일자리가 감소한 건 고용 시장 전반에 중동 전쟁의 영향이 미치기 시작하면서다. 경기 변화는 시차를 두고 고용에 반영된다. 국내 고용 핵심 축인 제조업 취업자 수는 지난달 14만 명 줄어 2019년 2월(―15만1000명) 이후 최대 감소 폭을 보였다. 제조업 취업자 수는 23개월 연속 줄었는데 지난달에는 감소 폭이 4월(―5만5000명)의 2배 이상으로 커졌다.수출액은 매달 역대 최대를 경신하고 있지만, 고용시장은 여전히 위축된 상태다. 수출 증가세를 주도하는 반도체 산업은 수익성은 높지만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효과는 상대적으로 낮다. 빈현준 데이터처 사회통계국장은 “제조업 취업자 가운데 반도체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4% 정도로 크지 않다”며 “식료품, 자동차 등의 취업자 감소 폭도 확대됐다”고 말했다.건설업 취업자는 전년 대비 4만3000명 줄면서 25개월 연속 감소세를 이어 갔다. 중동 전쟁 이후 원자재 가격 상승 등이 누적되며 4월(―8000명)에 비해 취업자 감소 폭이 크게 확대됐다.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중동 전쟁으로 고용 여건의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있는 가운데 청년층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제조·건설·농어업 등 업종별 부진이 심화하고 있다”며 “모든 부처가 각별한 경계심을 갖고 총력 대응해 달라”고 당부했다.고용 효과 큰 車-석화 침체 길어져… 제조업 일자리 14만개 증발[겉은 반도체 호황, 속은 취업난]취업유발 반도체 1.86-제조업 4.85명… 韓경제구조 ‘쏠림 현상’ 갈수록 심화청년취업 25만명 뚝, 코로나後 최악경력직 우선 엎친데 ‘AI 도입’ 덮쳐… “산업-기업간 재분배 논의 필요시점”경기도 4년제 대학 경영학과 졸업을 앞둔 김모 씨(26)는 두 달 전 한 중소기업의 총무 직무 신입 채용에 지원했다 깜짝 놀랐다. 단 1명을 뽑는 채용 절차에 약 2000명의 지원자가 몰린 탓이다. 연봉은 약 4000만 원. 별도의 복리 후생이나 상여금과 같은 조건이 없는 직무인데도 수천 대 1의 경쟁률을 뚫어야 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김 씨는 “서류 접수 가능 대상은 따로 없었지만, 동종 경력자 및 자격자를 우대하겠다는 조건이 붙은 공고였다”며 “사회 경험이 없는 대학 졸업 예정자에게 지금 취업 시장은 너무 가혹하다”고 토로했다.‘고용 없는 성장(Jobless Growth)’의 직격탄을 맞은 건 김 씨 같은 청년층이다. 지난달 20대 취업자는 전년 대비 25만 명 넘게 줄며 5년 4개월 만에 감소 폭이 가장 컸다.상대적으로 고용 창출 여력이 적은 반도체의 ‘나 홀로 호황’과 인공지능(AI)의 일자리 대체로 청년층의 고용 시장 진입이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중동 전쟁이 본격적으로 고용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고용 회복을 위해서는 새로운 성장 동력을 적시에 육성해 반도체 쏠림으로 인한 양극화를 해소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청년 고용, 코로나19 이후 최악11일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20대 취업자 수는 1년 전보다 25만1000명 줄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시기였던 2021년 1월(―25만5000명) 이후 가장 큰 감소 폭이다.20대 고용률(59.4%)도 전년 대비 2.3%포인트 하락하며 2021년 1월(―4.2%포인트) 이후 가장 큰 폭으로 떨어졌다. 20대를 포함한 청년층(15∼29세) 고용률(43.8%)은 2024년 5월부터 25개월째 줄고 있다.중동 전쟁이 3개월 넘게 이어지자 유가 상승, 원자재 수급 불안 등 부담이 커진 기업들이 가장 먼저 청년 고용을 줄인 영향이다. 한국외대 경영학과에 재학 중인 이모 씨(25)는 이날 교내 구인 게시판을 보며 “개인 형편으로 취업이 급한 상황인데 인턴이나 경력직 모집 공고가 대부분”이라며 아쉬워했다.빈현준 국가데이터처 사회통계국장은 “다른 연령대와 달리 청년층은 새로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세대”라며 “중동 전쟁 같은 외부 요인으로 기업이 채용을 미룰 때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김태웅 재정경제부 인력정책과장은 “청년층은 산업·인구구조 변화, 기업의 경력·수시 채용 현상, 중동 전쟁 등 경기적 요인이 더해져 삼중고를 겪고 있다”며 “중동 전쟁의 영향으로 회복 시기와 속도를 예단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반도체에 집중된 성장, 재분배 필요”중동 전쟁이라는 외부 요인도 있지만 경제 구조의 변화로 고용 없는 성장이 심화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분기(1∼3월) 명목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50년 만에 최대치를 달성하는 등 경제가 성장하고 있는데도 고용은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반도체는 수출 호황의 핵심 동력이지만 고용을 창출하는 효과는 크지 않다. 2022년 기준 반도체 취업유발계수는 생산 10억 원당 1.86명으로, 제조업 평균(4.85명)에 크게 못 미친다. 반면 자동차(5.41명)와 고무(6.22명), 플라스틱(5.44명) 등 제조업 중에서도 비교적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내는 업종은 생산과 고용이 줄고 있다. 충남 서산시 대산석유화학단지에서 7㎞가량 떨어진 곳에서 용역 사무실을 운영하는 최미숙 씨(44)는 “일을 달라는 사람은 많은데 정작 소개할 일거리가 없다”며 “이런 상황이 1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석유화학 경기 침체가 길어지자 식당, 광고·인쇄 업체 등 상권도 함께 쪼그라들고 있다.여기에 AI 도입 등으로 기업들의 신규 채용이 줄면서 청년층의 어려움은 더욱 커지고 있다. 동국대 컴퓨터공학과에 재학 중인 권모 씨(27)는 “웹페이지를 생성하거나 점검하는 일자리는 AI가 다 차지했다”며 “신규 채용 규모가 줄면서 전체적으로 취업 스펙 기준이 훌쩍 높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실제로 지난달 전문, 과학 및 기술서비스업 취업자는 8만9000명 줄었다. 6개월 연속 감소세다. AI가 법률, 회계 등 전문직이나 연구개발(R&D) 채용 수요를 대체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업종이다.우석진 명지대 경상통계학부 교수는 “기업들이 비용을 들여 청년층의 숙련도를 높이는 대신 AI를 활용하고 있다”며 “소득 격차가 더욱 벌어질 수 있는 만큼 산업·기업 간 재분배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했다.세종=김수연 기자 syeon@donga.com세종=정순구 기자 soon9@donga.com조승연 기자 cho@donga.com서산=이정훈 기자 jh89@donga.com천종현 기자 punch@donga.com}

    • 2026-06-12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고려대-한국장애인고용공단, ‘2026 장애인 공직설명회’ 개최

    고려대학교가 한국장애인고용공단과 함께 22일 장애 대학생들의 공공부문 취업 지원과 교내 편의시설 개선을 위한 ‘2026 장애인 공직설명회’를 개최했다.이번 설명회는 공공기관 취업을 희망하는 장애 학생과 구직자들에게 채용 정보와 진로 탐색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마련됐다. 행사에는 인사혁신처, 국민체육진흥공단, 인천국제공항공사, 해양환경공단 등이 참여해 기관별 채용 상담과 현직 공무원 토크콘서트 등을 진행했다.고려대는 이날 장애학생 이동권과 학습 환경 개선을 위한 교내 편의시설 정비 계획도 공개했다. 현재 인문계 건물을 중심으로 시각장애 학생의 이동 동선을 반영한 점자블록 설치 공사가 진행 중이다. 또 계단 핸드레일과 강의실, 화장실 등에 점자 라벨을 부착하는 작업도 순차적으로 이뤄질 예정이다.김동원 고려대 총장은 “장애학생들이 학업과 진로 준비 과정에서 실질적인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지원 체계와 교육 환경 개선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가겠다”고 말했다.조승연 기자 cho@donga.com}

    • 2026-05-22
    • 좋아요
    • 코멘트
  • [단독]조부 살해 20대女 “피 엄청 많이…빨리 와주세요” 119 신고

    함께 살던 80대 조부를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20대 여성 N 씨가 범행 직후 직접 119에 신고해 “할아버지가 쓰러졌다”며 구조를 요청한 것으로 파악됐다.22일 소방청이 더불어민주당 이해식 의원실에 제출한 사건 당시 신고 녹취록에 따르면, N 씨는 18일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동 자택에서 조부를 흉기로 찌른 뒤 오전 11시 51분경 119에 신고했다.N 씨는 신고 당시 “할아버지가 지금 쓰러져 있거든요”라며 “숨은 쉬어요. 빨리 와주세요”라고 말했다. 이어 소방대원이 조부의 상태를 묻자 “지금 피가 엄청 많이 생기고 있어요”라며 “등이랑 어깨 쪽에”라고 설명했다.또 의식이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는 “아니요. 없어요. 빨리 와주세요”라고 답했다. 소방대원이 다시 한 번 호흡 여부를 확인하자 N 씨는 “모르겠어요. 빨리 와주세요”라고 말했다. 녹취록에는 소방대원이 “구급차 출동했으니까 진정하시고”라며 여러 차례 안정을 유도하는 내용도 담겼다.N 씨는 18일 오전 자택에서 함께 살던 80대 조부를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혐의(존속살인)로 경찰에 긴급체포됐다. 당시 집 안에는 두 사람만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조부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숨졌다.N 씨는 초기 조사에서 범행을 부인했지만, 이후 조부와 말다툼을 벌이다 우발적으로 흉기를 휘둘렀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서울북부지법 형사10단독(부장판사 박사랑)은 20일 N 씨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진행한 뒤 “도망할 염려와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서울 동대문경찰서 는 사건 경위를 추가 조사한 뒤 N 씨를 검찰에 송치할 방침이다.조승연 기자 cho@donga.com고진영 기자 goreal@donga.com}

    • 2026-05-22
    • 좋아요
    • 코멘트
  • “승진보다 성과급 챙겨야 승자”… ‘로또 성과급’에 임원되기 기피

    “임원요? 파리 목숨에 스트레스만 엄청난데 뭣 하러 합니까. 잘릴 걱정 없이 부장으로 오래 남아서 성과급 챙기는 게 진짜 승자죠.” 최근 국내 대기업 직장인들 사이에서 번지고 있는 이른바 ‘만년 부장 예찬론’이다. 초유의 인공지능(AI)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빚어낸 천문학적 ‘로또 성과급’이 ‘승진=성공’으로 통하던 직장인들의 오랜 성공 공식을 뿌리째 뒤흔들고 있다. 기계적인 이익 공유로 직급이나 개별 기여도와 무관하게 일괄 배분되는 성과급이 일반적인 예상 금액을 훌쩍 뛰어넘으면서, 굳이 무거운 책임을 짊어지는 어려운 자리를 피하려는 ‘보상의 역설’이 사회 현상으로 대두되고 있다.● 성과급으로 임원만큼 버는 평사원 속출 18일 에프앤가이드 등에 따르면 올해 SK하이닉스의 영업이익 전망치는 약 252조7042억 원이다. 영업이익의 10%를 성과급으로 지급한다는 노사 합의를 전체 직원(3만4549명)에게 적용하면 1인당 평균 7억3000만 원가량을 쥐게 된다. 노사 협상 중인 삼성전자 반도체(DS)부문 역시 로또 당첨금에 맞먹는 파격적인 현금 보상이 점쳐진다. 이러한 ‘잭팟’은 직장인들의 오랜 목표였던 승진 동기를 단숨에 꺾었다. 지난해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미등기 임원의 평균 보수는 각각 9억200만 원, 7억4400만 원이었다. 올해 일반 직원이 7억 원대 성과급을 받게 되면 평사원이나 부장급이 과거 임원 연봉을 훌쩍 뛰어넘는 기현상이 벌어진다. 고용 불안과 법적 책임을 짊어지는 임원이라는 ‘독이 든 성배’를 마시느니, 든든한 고용 안정을 누리며 만년 부장으로 성과급을 챙기는 게 낫다는 인식이 팽배한 것이다. 당장 돈이 되는 부서로 쏠리는 현상도 심각하다. 삼성전자의 경우 수익 창출의 핵심인 메모리 사업부 잔류 희망이 압도적인 반면에, 미래 핵심 먹거리인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나 시스템LSI 사업부는 외면받고 있다. 사내 엘리트 코스로 꼽히던 해외 주재원 역시 소속이 해외 사업부로 변경돼 ‘로또 성과급’을 받지 못한다는 이유로 ‘기피 대상 1호’로 전락했다. 삼성전자 DS 소속의 10년 차 직원은 “성과급은 받을 수 있을 때 받아야 하니 지금 주재원은 ‘폭탄 돌리기’가 됐다”고 했다. ● “근로의욕 떨어져”… 노동시장 이중구조 확산 대기업의 ‘로또 성과급’ 확산에 ‘일할 맛이 안 난다’며 근로의욕 저하를 호소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대기업과 처우 격차가 커지고 있는 공무원이나 공공기관 종사자들이 대표적이다. 경제부처의 한 4급 공무원은 “가뜩이나 처우가 벌어져 민간 기업 이직이 늘고 있는데, 앞으로 더 심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파격적 성과급이 이공계 기피 현상을 완화해 줄 것이란 주장도 있지만 실제 학교에선 ‘박사를 하며 시간을 보내느니 반도체 호황일 때 하루빨리 기업으로 가 성과급을 받겠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 동국대 시스템반도체학부에 재학 중인 권모 씨(21)는 “대기업을 준비하는 친구들은 나를 포함해 최대 석사까지만 진학하려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격차가 커져 국내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더욱 심화시킬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1, 2차 협력사들에선 핵심 인력들이 대기업 신입 공채로 재지원하는 현상이 비일비재해지고 있다. 한 반도체 장비업체 임원은 “사내에 대기업 이직을 위한 스터디가 암암리에 운영되고, 대기업 채용 전형일에는 연차를 내는 직원이 속출한다”고 토로했다. 취업 준비를 하고 있는 최모 씨(31)도 최근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인공지능(AI) 관련 공부를 하고 있다. 최 씨는 “성과급을 많이 주는 SK하이닉스 등에 가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예상치 못한 대규모 이익으로 인해 국내 기업의 보상 체계와 사회적 인식까지 흔들리고 있다”며 “장기적 관점에서 기업이나 사회에 필요한 게 무엇일지 고민해볼 시기”라고 말했다.이동훈 기자 dhlee@donga.com조승연 기자 cho@donga.com}

    • 2026-05-1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스쿨존서 킥보드 질주-우회전 위반… 어린이 교통사고 76% 급증

    12일 오후 2시 반경 서울 동대문구 장평초등학교 앞. 하교 시간이 되자 학생들이 정문 밖으로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한 남학생이 건널목을 뛰어서 건너다가 노란 장우산을 떨어뜨렸고, 이를 주우려 다시 도로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때 승용차가 건널목으로 진입했다. 교통 단속 중이던 경찰이 지시봉으로 차량을 막아 세우지 않았다면 사고로 이어질 뻔한 아찔한 순간이었다. 임성민 동대문경찰서 교통과장은 “스쿨존에서 아이들은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전제하에 운전해야 하지만, 많은 운전자가 ‘제한 속도만 지키면 괜찮겠지’라는 생각으로 운전한다”고 말했다.● 스쿨존 사고 1년 새 1.8배로이날 서울경찰청은 서울 내 어린이 보호구역(스쿨존) 49곳에서 교통 법규 위반을 집중 단속하고 계도를 벌였다. 지난해 전국 스쿨존에서 발생한 어린이 교통사고가 927건으로 전년(526건)의 1.8배로 늘어나는 등 어린이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같은 기간 스쿨존 사고로 인한 부상자는 556명에서 1013명으로 배 가까이로 증가했다. 경찰은 전동 킥보드 등 개인형이동장치(PM) 증가와 우회전 일시 정지 위반 등이 사고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 있다. 실제로 이날 오후 1시 45분경부터 약 1시간 동안 진행된 단속에서만 총 171건(단속 85건, 계도 86건)이 적발됐다. 신호 위반(49건)이 가장 많았고, 이륜차·PM의 보행로 통행(18건)이 뒤를 이었다. 여기에 지난해부터 스쿨존 경계에서 발생한 사고도 정확히 집계할 수 있게 된 영향도 있다. 실제로 스쿨존 단속 현장에서는 교통 법규를 어기는 도로 이용자의 모습이 쉽게 눈에 띄었다. 이날 오후 2시경 서울 노원구의 한 스쿨존에서는 자전거를 타고 하교하던 학생이 건널목을 건너려는 순간 한 전동 킥보드가 속도를 줄이지 않고 우회전하다가 급히 멈춰 섰다. 건널목에 사람이 있을 때 무조건 일시 정지해야 하는 수칙을 어긴 것이다. 지난해 3월 대전 서구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8세 초등학생이 달려오던 전동 킥보드에 치여 전치 12주의 중상을 입었다. 인근의 신호 없는 교차로에서도 좌회전 차량이 건널목을 건너는 초등학교 저학년 남학생을 뒤늦게 발견하고 급정차하는 모습이 목격됐다. 매일 초등학생 2학년 자녀를 하굣길에 데리러 온다는 최은희 씨(38)는 “학교 정문 앞에서 과속과 꼬리물기를 일삼는 차들을 보며 가슴을 쓸어내릴 때가 많다”고 했다.● 보행로 구분 없고 ‘가변 속도’ 혼란도사고가 빈발하는 스쿨존과 인근 지역은 도로 구조를 손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날 노원구의 한 초등학교 인근 스쿨존에 가보니, 차로와 보행로가 제대로 구분돼 있지 않거나 보행로가 도로 한쪽에만 설치돼 있는 이면도로가 많았다. 이 일대에선 2024년 한 해에만 어린이 교통사고 6건이 발생했다. 한 초등학생은 보호자 없이 차로 한가운데를 걷다가 뒤에서 차가 달려오자 황급히 길가로 물러서기도 했다. 이곳에서 만난 노모 씨(65)는 “이 길은 초등학생뿐만 아니라 인근 유치원생도 많이 오가는 곳”이라며 “차량 사이로 아이들이 지나다니는 경우가 많아 항상 위험하다고 느낀다”고 했다. 스쿨존에서 제한 속도를 시간대별로 달리 적용하는 ‘가변형 속도제한’이 운전자의 혼란을 키운다는 지적도 나온다. 등하교 시간엔 시속 30km로 제한하되 통행량이 적은 심야엔 시속 40∼50km로 상향하는 방식인데, 차들의 편의를 위해 2023년 서울과 인천 등 8곳에 시범 도입된 뒤 현재 전국 약 70곳으로 확대됐다. 하지만 시간대마다 달라지는 제한 속도를 운전자가 충분히 숙지하지 못해 어린이가 다니는 시간대에도 과속을 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서울경찰청은 당분간 사고 위험이 큰 스쿨존에서 교통 법규 단속을 집중적으로 벌일 방침이다. 김의수 국립한국교통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단기적으로는 과속이나 보행자 보호 의무 위반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고, 나아가 운전자가 스쿨존에 진입했다는 사실을 멀리서부터 인식할 수 있도록 색상과 디자인 등 도로 환경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조승연 기자 cho@donga.com고진영 기자 goreal@donga.com이다겸 기자 gyeom@donga.com}

    • 2026-05-13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단독]꾸벅꾸벅 고속도 운전… 넉달간 사망 73% 급증

    “졸음이 쏟아져 한 달에 대여섯 번은 사고가 날 뻔합니다.” 25t 화물차 기사 박모 씨(51)는 지난달 30일 오후 11시경 경기 안성휴게소 ‘화물차 라운지’ 앞에서 졸음을 떨치려는 듯 눈을 비비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전날부터 차에서 쪽잠만 자면서 23시간 넘게 운전하다가 졸음을 참지 못하고 이곳을 들른 참이었다. 박 씨는 “지난주엔 경부고속도로 안성 분기점(JC) 인근에서 순간적으로 졸다가 길을 잘못 들었다는 사실도 뒤늦게 알아차렸다”며 “그때 잠결에 운전대를 급히 꺾었다면 어떻게 됐을지 지금도 아찔하다”고 했다.● 고속도로 사망 1.7배로… 원인은 졸음운전올 들어 고속도로 교통사고 사망자가 급증한 것으로 6일 확인됐다. 한국도로공사에 따르면 1월 1일부터 지난달 27일까지 고속도로 교통사고 사망자는 71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41명의 1.7배로 늘었다. 73% 늘어난 것으로 2023∼2025년 이 기간 평균 사망자 45명과 비교해도 급증한 수준이다.올해 사망자 중 69.0%에 해당하는 49명은 졸음운전이나 전방 주시 태만으로 인한 사고에서 발생했다. 과속(5명)이나 차량 결함(3명), 역주행(2명) 등에 따른 사고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사고를 낸 차종별로는 화물차 사고 사망자가 39명(54.9%)으로 가장 많았다. 화물차 사고 사망자 가운데 졸음운전과 전방 주시 태만으로 인해 숨진 사람은 총 28명이었다. 화물차 졸음운전 사고는 야간에만 일어나지는 않았다. 6일 경기 용인시 삼가터널 안에서 1t 화물차가 사고를 내 운전자 1명이 숨졌는데, 사고 발생 시간이 오전 11시 17분이었다. 경찰은 운전자가 터널 내 정체로 멈춰 선 다른 화물차를 들이받았다고 보고 전방 주시 태만 여부를 조사 중이다. 1월 12일 오전 9시 10분엔 부산외곽순환고속도로에서 25t 화물차 기사가 졸음운전을 하다가 앞선 차를 들이받아 숨졌다. 현장에서 만난 화물차 기사들은 “실적 압박 때문에 장시간·심야 운행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20년 차 화물차 기사 홍모 씨(64)는 “기름값은 오르고 납품 시간은 촉박해 규정대로 휴게 시간을 지키기 어렵다”라며 “하루 최대 14시간, 길게는 약 850km를 운전하다 보니 매분 매초 졸음운전 위험을 느낀다”고 했다. 30년 경력인 이모 씨(61)는 “지난해부터 물동량이 줄면서 운임도 체감상 20%가량 줄었다”며 “한 건이라도 소화하려고 몸 상태를 고려하지 않고 운전하다 보니 사고 위험이 커지는 것 같다”고 했다.● 효력 없는 운행기록장치 점검 이처럼 무리한 운행을 줄이기 위해 화물자동차법에서는 화물차 기사가 2시간 연속 운전 시 15분 이상 쉬도록 규정한다. 불가피한 경우에도 최대 3시간만 운전할 수 있고, 이후에는 30분 이상 휴식해야 한다. 연속 운행 기록은 1t 이상 사업용 화물차에 의무 장착하는 운행기록장치(DTG)로 감시한다. 문제는 DTG 기록을 한국교통안전공단에 제출하는 비율이 낮아 휴게시간 감독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DTG 장착 의무 대상 차량 중 운행기록을 제출한 비율은 약 26.8%에 그쳤다. 의무 제출 대상인 25t 이상 화물차도 제출률은 약 59%였다. DTG 기록 미제출 시 소관 지방자치단체는 위반 횟수에 따라 50만∼150만 원의 과태료를, 휴게시간 미준수 시 5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 부과는 소극적으로 이뤄진다. 화물차 기사 입장에선 ‘운 나쁘게’ 과태료를 물어도 영업 비용 정도로 여길 수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화물차 DTG 운행 기록의 관리 강화 필요성을 제언했다. 오영태 아주대 교통시스템공학과 명예교수는 “화물차의 DTG 의무 제출 대상을 확대하는 한편으로, 휴게소 등에서 기록을 점검하는 등 감독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안성=조승연 기자 cho@donga.com용인=이경진 기자 lkj@donga.com}

    • 2026-05-07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기저귀에 소변봐서”…3살 아이 숨지게 한 20대父, 구속 기소

    경기 양주시에서 3세 자녀를 학대해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친부가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졌다.의정부지검 형사3부(부장검사 이주현)는 6일 아동학대처벌법상 아동학대치사와 아동복지법 위반, 상해 등 혐의로 양주 피해 아동의 친부(27)를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겼다고 밝혔다. 친부는 지난달 9일 3세 자녀가 기저귀에 소변을 봤다는 이유로 화가 나 아이를 돌침대에 세게 부딪치게 해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다. 검찰에 따르면 피해 아동은 머리와 턱을 돌침대 바닥 및 모서리 등에 부딪혀 외상성 경막하출혈 등으로 뇌수술을 받고 중환자실에서 치료받았지만 지난달 14일 뇌부종으로 숨졌다.검찰은 친부가 지난해 12월에도 피해 아동을 학대한 혐의가 있다고 보고 관련 혐의도 함께 적용했다. 당시 친부는 피해 아동이 거짓말을 했다는 이유로 효자손으로 엉덩이를 때리고 머리를 벽에 부딪히게 하여 머리에 부종 상해를 입힌 혐의를 받는다. 검찰은 과거 불기소 처분됐던 이 사건을 재검토한 결과 친부의 아동학대 혐의가 인정된다고 판단해 이번 사건과 함께 기소했다.한편 경기남부경찰청은 지난달 14일 경기 시흥시에서 8개월 남아가 폭행으로 숨진 사건과 관련해 친모인 30대 여성의 혐의를 아동학대치사에서 아동학대 살해로 변경했다고 6일 밝혔다.경찰은 추가 조사를 통해 친모의 신체적 학대와 방임 혐의를 추가로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또 친부에 대해서도 친모의 아동학대 범죄를 알고도 방임하고, 의료진의 입원 치료 권유를 거부한 뒤 아이를 퇴원시킨 행위가 있다고 보고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로 입건했다.조승연 기자 cho@donga.com}

    • 2026-05-06
    • 좋아요
    • 코멘트
  • 어린이날 선물 ‘짠테크’ 또는 ‘재테크’

    “인터넷보다 시장이 몇천 원 더 저렴해서 직접 사러 나왔어요.”어린이날을 하루 앞둔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창신동 동대문 문구완구 거리. 9세 자녀와 함께 이곳을 찾은 강현선 씨(45)가 요즘 어린이 사이에서 유행하는 ‘키캡’(키보드 자판 덮개)을 살펴보며 이같이 말했다. 강 씨는 “아이가 평소 갖고 싶어 하던 제품이 온라인 쇼핑몰에서는 보통 7000원인데 여기선 4000원이라서 조금이라도 아끼려고 발품을 팔고 있다”고 했다.● 10년 새 선물비 2배 껑충, 발품 파는 부모들고물가로 생계 부담이 커지면서 어린이날을 앞두고 ‘가성비’ 선물을 찾는 부모가 늘고 있다. 4일 영어교육기업 윤선생이 학부모 622명을 설문한 결과에 따르면 올해 어린이날 선물 구입 예상 비용은 평균 9만5000원으로 집계됐다. 2016년 조사(4만9000원) 대비 10년 만에 1.9배로 뛴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백화점 대신 도매시장이나 중고 거래 등으로 눈을 돌리는 이들이 많아졌다.실제로 이날 서울 중구 남대문시장 아동복 상가는 어린이날 선물을 사려는 이들로 붐볐다. 백화점에선 정가가 10만 원이 넘을 인기 캐릭터 장난감이나 공주 의상 등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인기를 끌었다. 6세 딸을 위해 아동복 상점에서 3만 원짜리 자홍색 공주 드레스를 산 김민석 씨(35)는 “시장에 오니 저렴하게 고를 수 있어 마음이 가볍다”고 했다. 초등학생 자녀와 쇼핑을 나온 이재진 씨(34)도 “아이 1명당 5만 원 이하 선물을 고르게 했다”며 “옷도 여러 벌 사 갈 생각”이라고 했다.중고 장터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공동 구매를 통해 비용을 아끼는 경우도 있었다. 조미연 씨(41)는 “SNS 공동 구매로 놀이공원 티켓을 정가보다 50% 저렴하게 샀다”고 했다. 중고 거래 플랫폼에서 ‘어린이날 선물’을 검색해 보니 2만 원대 이하 어린이용품을 판매하는 최근 게시글이 다수 올라와 있었다. 한 판매자의 중고 슬라임 장난감은 게시하자마자 ‘판매 완료’가 떴다.● ‘삼성전자 0.1주’-미니 골드바도 인기4일 코스피가 처음으로 6,900 선을 돌파하는 등 국내 주식시장이 활황을 이어가면서 자녀에게 재테크 교육을 겸해 자산을 선물하려는 부모도 적지 않았다. 주식 관련 카페에는 “올해부터는 장난감 대신 0.1주 등 소수점으로 주식을 거래할 수 있는 증권사에서 삼성전자를 사주기로 했다”, “아이 어릴 때 미리 시작하지 못한 게 후회된다”는 글이 속속 올라왔다. 중학교 1학년과 초등학교 5학년 자녀를 둔 박모 씨(40)는 “장난감은 한 달만 지나도 구석에 방치되기 일쑤지만, 주식은 시간이 흐를수록 자산이 된다는 확신이 있다”며 “올해는 아이와 함께 직접 종목을 고르며 경제관념을 심어주는 시간을 가질 계획”이라고 말했다.중동 불안 등의 여파로 금값이 크게 오르면서 2만∼10만 원 선인 0.1∼0.5g 단위 미니 골드바 등 소액으로 살 수 있는 귀금속도 인기를 얻고 있다. 경기 김포시에서 귀금속 가게를 운영하는 강경원 씨(42)는 “어린이날을 맞아 판촉한 미아 방지 목걸이도 여러 개 팔렸다”며 “미래에 금과 은 가격이 더 오를 거라고 기대하고 투자를 겸해 사는 것 같다”고 했다. 최철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고물가에 부모들이 저렴한 선물이나 자산 가치가 있는 선물로 몰리고 있다”며 “한동안 이런 움직임이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조승연 기자 cho@donga.com김다인 기자 daout@donga.com}

    • 2026-05-05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중고 장난감서 삼전 0.1주-미니 골드바까지…어린이날 선물 신풍속

    “인터넷보다 시장이 몇천 원 더 저렴해서 직접 사러 나왔어요.”어린이날을 하루 앞둔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창신동 동대문 문구완구 거리. 9세 자녀와 함께 이곳을 찾은 강현선 씨(45)가 요즘 어린이 사이에서 유행하는 ‘키캡’(키보드 자판 덮개)을 살펴보며 이같이 말했다. 강 씨는 “아이가 평소 갖고 싶어 하던 제품이 온라인 쇼핑몰에서는 보통 7000원인데 여기선 4000원이라서 조금이라도 아끼려고 발품을 팔고 있다”고 했다.● 10년 새 선물비 2배 껑충, 발품 파는 부모들고물가로 생계 부담이 커지면서 어린이날을 앞두고 ‘가성비’ 선물을 찾는 부모가 늘고 있다. 4일 영어교육기업 윤선생이 학부모 622명을 설문한 결과에 따르면 올해 어린이날 선물 구입 예상 비용은 평균 9만5000원으로 집계됐다. 2016년 조사(4만9000원) 대비 10년 만에 1.9배로 뛴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백화점 대신 도매시장이나 중고 거래 등으로 눈을 돌리는 이들이 많아졌다.실제로 이날 서울 중구 남대문시장 아동복 상가는 어린이날 선물을 사려는 이들로 붐볐다. 백화점에선 정가가 10만 원이 넘을 인기 캐릭터 장난감이나 공주 의상 등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인기를 끌었다. 6세 딸을 위해 아동복 상점에서 3만 원짜리 자홍색 공주 드레스를 산 김민석 씨(35)는 “시장에 오니 저렴하게 고를 수 있어 마음이 가볍다”고 했다. 초등학생 자녀와 쇼핑을 나온 이재진 씨(34)도 “아이 1명당 5만 원 이하 선물을 고르게 했다”며 “옷도 여러 벌 사 갈 생각”이라고 했다.중고 장터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공동 구매를 통해 비용을 아끼는 경우도 있었다. 조미연 씨(41)는 “SNS 공동 구매로 놀이공원 티켓을 정가보다 50% 저렴하게 샀다”고 했다. 중고 거래 플랫폼에서 ‘어린이날 선물’을 검색해 보니 2만 원대 이하 어린이용품을 판매하는 최근 게시글이 다수 올라와 있었다. 한 판매자의 중고 슬라임 장난감은 게시하자마자 ‘판매 완료’가 떴다.● ‘삼성전자 0.1주’-미니 골드바도 인기4일 코스피가 처음으로 6,900 선을 돌파하는 등 국내 주식시장이 활황을 이어가면서 자녀에게 재테크 교육을 겸해 자산을 선물하려는 부모도 적지 않았다. 주식 관련 카페에는 “올해부터는 장난감 대신 0.1주 등 소수점으로 주식을 거래할 수 있는 증권사에서 삼성전자를 사주기로 했다”, “아이 어릴 때 미리 시작하지 못한 게 후회된다”는 글이 속속 올라왔다. 중학교 1학년과 초등학교 5학년 자녀를 둔 박모 씨(40)는 “장난감은 한 달만 지나도 구석에 방치되기 일쑤지만, 주식은 시간이 흐를수록 자산이 된다는 확신이 있다”며 “올해는 아이와 함께 직접 종목을 고르며 경제관념을 심어주는 시간을 가질 계획”이라고 말했다.중동 불안 등의 여파로 금값이 크게 오르면서 2만~10만 원 선인 0.1~0.5g 단위 미니 골드바 등 소액으로 살 수 있는 귀금속도 인기를 얻고 있다. 경기 김포시에서 귀금속 가게를 운영하는 강경원 씨(42)는 “어린이날을 맞아 판촉한 미아 방지 목걸이도 여러 개 팔렸다”며 “미래에 금과 은 가격이 더 오를 거라고 기대하고 투자를 겸해 사는 것 같다”고 했다. 최철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고물가에 부모들이 저렴한 선물이나 자산 가치가 있는 선물로 몰리고 있다”며 “한동안 이런 움직임이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조승연 기자 cho@donga.com김다인 기자 daout@donga.com}

    • 2026-05-04
    • 좋아요
    • 코멘트
  • 마약왕 박왕열 뒤에 공급책 ‘청담사장’ 있었다

    일명 ‘텔레그램 마약왕’ 박왕열의 핵심 마약 공급책으로 지목된 50대 남성 최모 씨가 태국에서 붙잡혀 1일 국내로 강제 송환됐다. 경찰청 마약조직범죄수사과는 이날 마약류관리법 위반, 여권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받는 최 씨의 신병을 태국 당국으로부터 인계받아 국내로 송환했다고 밝혔다. 최 씨는 이날 오전 9시 8분 경찰 호송팀과 함께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그는 검은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지 않고 곧장 호송 차량에 올랐다. 경찰에 따르면 최 씨는 2019년부터 텔레그램에서 ‘청담’, ‘청담사장’이라는 별명으로 활동하며 필로폰과 엑스터시 등 시가 100억 원대, 총 22kg 규모의 마약을 국내로 밀반입하거나 유통한 혐의를 받는다. 최 씨 가족은 실제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고가 부동산을 보유하며 호화 생활을 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올 3월 필리핀에서 강제 송환된 박왕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최 씨가 핵심 공급책이라는 단서를 확보하고 경기남부경찰청을 집중수사관서로 지정해 추적 수사를 벌여 왔다. 그 과정에서 최 씨의 공식 출국 기록이 2018년 이후 없는 점을 확인했고, 태국에 체류 중이라는 첩보를 입수했다. 이후 태국 경찰과 공조 수사를 통해 최 씨가 태국 사뭇쁘라깐주의 한 고급 주택단지에 거주 중인 사실을 확인하고 합동 잠복 수사를 벌인 끝에 지난달 10일 최 씨를 불법체류 혐의로 검거했다. 현재 부산교도소에 수감 중인 또 다른 마약 공급책 ‘사라킴’ 김형렬이 박왕열에게 최 씨를 소개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최 씨의 마약 밀반입·유통 혐의와 함께 태국 주거지에서 발견된 타인 명의 여권을 근거로 여권법 위반 등 추가 혐의도 수사할 방침이다. 오창한 경찰청 마약조직범죄수사과장은 “피의자 조사와 증거물 분석을 마치는 대로 신속히 구속영장을 신청할 예정”이라며 “범죄수익은 국세청, 금융위원회 등 관계 기관과 협업해 빠짐없이 환수하겠다”고 말했다.정동진 기자 haedoji@donga.com조승연 기자 cho@donga.com}

    • 2026-05-02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박왕열에 마약 공급 ‘청담사장’ 송환…100억대 마약 밀반입

    일명 ‘텔레그램 마약왕’ 박왕열의 핵심 마약 공급책으로 지목된 50대 남성 최모 씨가 태국에서 붙잡혀 1일 국내로 강제 송환됐다.경찰청 마약조직범죄수사과는 이날 마약류관리법 위반, 여권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받는 최 씨의 신병을 태국 당국으로부터 인계받아 국내로 송환했다고 밝혔다. 최 씨는 이날 오전 9시 8분 경찰 호송팀과 함께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그는 검은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취재진 질문에 답하지 않고 곧장 호송 차량에 올랐다.경찰에 따르면 최 씨는 2019년부터 텔레그램에서 ‘청담’, ‘청담사장’이라는 별명으로 활동하며 필로폰과 엑스터시 등 시가 100억 원대, 총 22kg 규모의 마약을 국내로 밀반입하거나 유통한 혐의를 받는다. 최 씨 가족은 실제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고가 부동산을 보유하며 호화 생활을 해온 것으로 전해졌다.경찰은 지난 3월 필리핀에서 강제 송환된 박왕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최 씨가 핵심 공급책이라는 단서를 확보하고 경기남부경찰청을 집중수사관서로 지정해 추적 수사를 벌여 왔다. 그 과정에서 최 씨의 공식 출국 기록이 2018년 이후 없는 점을 확인했고, 태국에 체류 중이라는 첩보를 입수했다.이후 태국 경찰과 공조 수사를 통해 최 씨가 태국 사뭇쁘라깐주의 한 고급 주택단지에 거주 중인 사실을 확인하고 합동 잠복 수사를 벌인 끝에 지난달 10일 최 씨를 불법체류 혐의로 검거했다. 현재 부산교도소에 수감 중인 또 다른 마약 공급책 ‘사라킴’ 김형렬이 박왕열에게 최 씨를 소개한 것으로 전해졌다.경찰은 최 씨의 마약 밀반입·유통 혐의와 함께 태국 주거지에서 발견된 타인 명의 여권을 근거로 여권법 위반 등 추가 혐의도 수사할 방침이다. 오창한 경찰청 마약조직범죄수사과장은 “피의자 조사와 증거물 분석을 마치는 대로 신속히 구속영장을 신청할 예정”이라며 “범죄수익은 국세청, 금융위원회 등 관계기관과 협업해 빠짐없이 환수하겠다”고 말했다.정동진 기자 haedoji@donga.com조승연 기자 cho@donga.com}

    • 2026-05-01
    • 좋아요
    • 코멘트
  • 8개월 아들 리모컨으로 때려 숨지게한 친모 체포

    경기 시흥시에서 생후 8개월 된 아들을 두개골이 부러질 정도로 폭행해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30대 친모가 긴급체포됐다. 30일 경기남부경찰청은 30대 여성을 아동학대치사 혐의로 전날 긴급체포해 조사 중이다. 이 여성은 지난달 10일 시흥시 자택에서 아들의 머리를 리모컨으로 여러 번 때려 결국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다. 경찰 등에 따르면 친모는 아들을 폭행한 직후인 지난달 10일 부천시의 한 병원을 찾았다. 아동의 진단 결과는 두개골 골절이었다. 당시 병원 측은 “아들을 씻기다가 1m 높이에서 떨어뜨렸다”는 친모의 설명을 믿고 학대 의심 신고를 하지 않았고, 아동은 귀가했다. 그러나 사흘 후인 지난달 13일 오후 아동은 의식을 잃어 다시 병원으로 옮겨졌고 하루 만에 끝내 숨졌다. 병원 측은 이후 경찰에 신고했다. 친모의 진술은 지난달 29일 경찰 조사에서 번복됐다. 경찰이 주택 인근 폐쇄회로(CC)TV 영상을 분석한 결과, 친모는 이전에도 아들을 홀로 둔 채 수차례 외출하며 방임한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이 이를 단서로 추궁하자 친모는 그제야 “아들이 잠을 자지 않고 울어 TV 리모컨으로 머리를 여러 차례 때렸다”며 혐의를 인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아동이 처음 병원을 찾았을 당시 의료진의 조치가 적절했는지도 조사 중이다. 병원 측은 “당시 입원을 권유했지만 부모가 ‘외래 진료를 보겠다’며 귀가했다”고 했다. 하지만 두개골이 부러진 생후 8개월 아동의 입원을 부모가 거부한 것 자체를 아동학대로 의심했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아동학대처벌법상 의료인은 학대가 의심되면 신고할 의무가 있다. 이에 대해 병원 측은 “입원을 거부했다는 이유만으로 학대로 단정할 순 없었다”고 했다. 아동은 학대로 신고된 이력이 없었고, 폭행 당시 친부는 집에 없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친모를 상대로 상습 학대와 방임 혐의를 추궁하고 있다.조승연 기자 cho@donga.com천종현 기자 punch@donga.com}

    • 2026-05-0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잠 안자고 칭얼” 8개월 아들 리모컨으로 때려 숨지게한 엄마

    경기 시흥시에서 생후 8개월 된 아들이 두개골이 부러질 정도로 폭행해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30대 친모가 29일 긴급체포된 가운데, 아들의 사망 나흘 전 병원에선 “씻기다가 떨어뜨렸다”고 거짓 설명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30일 경기남부경찰청 등에 따르면 친모는 아들이 숨지기 나흘 전인 10일 부천시의 한 병원을 찾아 의료진에게 “아들을 씻기다 미끄러져서 1m 높이에서 떨어져 머리를 다쳤다”고 설명했다. 당시 병원 진단 결과 아동은 두개골 골절 소견을 보였다. 하지만 병원 측은 아동의 겉모습과 친모의 설명이 부합한다는 이유로 당시엔 학대 신고를 하지 않았다.하지만 아동은 13일 오후 다시 의식을 잃어 병원으로 옮겨졌고, 14일 오전 끝내 숨졌다. 병원 측은 사망 이후 경찰에 아동학대 의심 신고를 했다.친모의 진술은 29일 경찰 조사에서 번복됐다. 경찰이 주택 인근 폐쇄회로(CC)TV 영상을 분석한 결과, 친모는 이전에도 아들을 홀로 둔 채 여러 차례 외출하며 방임한 정황을 확인한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이를 단서로 추궁하자 친모는 그제야 “아들이 잠을 자지 않고 울어 TV 리모컨으로 머리를 여러 차례 때렸다”며 폭행 사실을 인정한 것으로 전해졌다.아동이 10일 두개골 골절 진단 당시 입원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병원 측은 “의료진은 입원을 권유했지만 부모가 ‘문제가 생기면 외래 진료를 보겠다’며 귀가했다”고 밝혔다. 반면 친모는 경찰 조사에서 “병원에서 입원해도 해줄 수 있는 조치가 없다고 해 돌아왔다”는 취지로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폭행 당시 주거지에 없었던 것으로 알려진 친부는 현재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받고 있다. 경찰은 병원 관계자를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하는 한편, 친모를 상대로 상습 학대 및 방임 혐의를 추궁하고 있다. 해당 아동에 대한 이전 학대 신고 이력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조승연 기자 cho@donga.com천종현 기자 punch@donga.com}

    • 2026-04-30
    • 좋아요
    • 코멘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