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

주성하 기자

동아일보 콘텐츠기획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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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관련 사이트 ‘서울에서 쓰는 평양이야기’(http://nambukstory.com)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zsh75@donga.com

취재분야

2026-02-25~2026-03-27
남북한 관계64%
칼럼23%
경제일반10%
사회일반3%
  • 김정은 ‘적어도 金 5개’ 요구했는데…

    가장 유력한 금메달 후보였던 엄윤철이 은메달에 그치면서 이번 올림픽 성적을 김정은 치적 홍보에 활용하려던 북한의 계획에 차질이 빚어질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역대 올림픽에 체육상급의 인물을 파견하던 관례를 깨고 이번 올림픽엔 권력 서열 3위인 최룡해 노동당 부위원장을 파견했다. 그만큼 기대가 크다는 방증이다. 북한 소식통은 7일 “선수 격려와 대대적 홍보를 위해 이번에 최룡해뿐만 아니라 노동당 고위 간부들도 브라질에 대거 출동했다”고 전했다. 이 소식통은 “노동당 선전선동부 부부장과 조직지도부 과장이 최룡해와 함께 갔고 선수단 임원인 안홍철도 노동당 근로단체부 부부장”이라고 말했다. 이종무 체육상, 신용철 체육성 당위원장 등도 현재 브라질에 있다. 하지만 이날까지 북한 대표팀은 은메달 하나밖에 따지 못했다. 최룡해는 전날에도 유도 여자 48kg급 김솔미를 찾아가 응원했지만 32강에서 탈락했다. 대표팀이 부진하면 국가체육지도위원회 위원장으로 북한 스포츠 업무 전반을 총괄하는 최룡해도 귀국 후 분노한 김정은의 처분을 기다리는 처지가 될 수밖에 없어 그의 속도 함께 타들어 가는 셈이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6-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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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신부 포함 北여성 6명 탈북… 태국 머물러”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군부를 홀대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현직 군인들의 탈북이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탈북자 구출 활동을 벌이고 있는 한 단체의 관계자는 7일 “최근 평양 인근에서 탈북한 군인 한 명을 제3국으로 무사히 보냈다”며 “올해에만 7개월 사이 탈북한 현직 군인 3명을 도왔는데 과거에 비해 숫자가 늘어난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출산이 임박한 30대 임신부를 포함한 20, 30대 북한 여성 6명도 최근 극적으로 탈출해 태국의 난민보호 시설에 머물며 한국행을 기다리고 있다고 국내 한 방송사가 이날 보도했다. 일행 중 20대 여성은 두 살배기 어린이를 안고 탈북한 것으로 알려졌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6-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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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사이]북한 보위부는 탈북 기자가 왜 두려운가

    올해 입국한 대학 후배를 만났다. 통일전선부(통전부)에도 있었다는 그는 북에서 내 이름을 알았다고 했다. 통전부야 매일 한국 언론을 볼 것이니 남쪽 기자 이름을 아는 건 놀랍진 않았다. 궁금한 건 따로 있었다. “통전부에선 주성하가 어떻게 평가되나요. 북한을 배신한 악질반동?” “절대 아닙니다. 거기 사람들도 체제의 문제점을 아니까 사실에 기반한 비판은 수긍할 수 있죠. 통전부는 거의 다 김일성대 출신들인데, 속내는 오히려 동문이 남쪽에 나가 성공했다고 보는 것 같아요.” 물론 후배가 나에게 듣기 좋은 말을 했을 가능성도 있으나 한 가지는 확신한다. 매일 한국 신문을 본다면 김정은에게 진심으로 충성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최근 몇 년 사이 통전부는 탈북자 10여 명의 북한 행적을 폭로한다며 ‘인간 쓰레기’와 같은 험한 용어로 온갖 인신공격을 퍼붓는 글과 동영상을 제작해 유튜브 등에 공개했다. 하지만 남쪽에 오자마자 기자가 돼 14년간 북한 체제를 비판하는 기사를 수없이 써온 나는 공격에서 벗어나 있었다. 그러다 보니 “당신은 봐주는 거 아니냐”는 말도 들을 때가 있었다. “대학 졸업 후 때를 묻힐 사이 없이 오다 보니 욕할 건더기가 없겠죠”라고 대답하면서도 실은 나도 궁금했다. 그런데 지난달 16일 노동신문에 내 이름이 10번이나 오르내렸다. 북한이 5월 27일 체포한 탈북자 고현철 씨의 기자회견을 통해서였다. 고 씨는 “주성하 놈은 ‘동아일보’ 기자의 탈을 쓰고 미국과 괴뢰정보원의 막후조종을 받으며 우리(북) 주민들에 대한 유인납치 만행을 감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폭로’ 중 일부를 소개하면 이렇다. “주성하 놈은 미국과 남조선의 유인납치 단체들 사이에 자금을 중계해주고 연계를 맺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수잰 숄티의 ‘디펜스포럼’은 남조선의 ‘북 인권’ 단체들을 배후조종하고 있는 미국의 대표적인 반공화국 모략단체인데 주성하는 바로 이 단체와 연결돼 있다.” “5월 어느 날 주성하 놈이 나에게 ‘우리는 직업적으로 모든 일을 박근혜 정부의 안정을 보장하는 방향에서 고찰하고 진행하여야 한다’고 했다.” 직접 당하고 보니 황당해서 할 말을 잃었다. 단 한 번도 미국의 자금을 중계한 적도, 수잰 숄티를 만나거나 통화한 적도 없다. 고 씨를 만나 본 적은 있지만 5월엔 만난 일이 없다. 북한 내부 소식을 알 수 있는 선이 있다고 해서 올 3월 28일 회사 근처 낙지 요리전문점에서 그를 처음 만나 저녁을 먹었다. 그 뒤엔 만난 적도 통화한 적도 없다. 그가 고문에 못 이겨 내 이름을 댔을 수는 있지만, 그걸 갖고 현직 언론인을 엮는 수법은 너무 치졸해 헛웃음만 나왔다. 기자회견장에서 고 씨는 나를 언급할 때마다 유난히 책상 위에 있는 종이를 자주 내려다보았다. 써준 각본을 미처 외우지 못한 것 같았다. 보위부가 고 씨의 휴대전화에서 발견한 여러 ‘반동’들의 얼굴이라며 내외신 기자들 앞에서 공개한 사진 중에는 내 얼굴도 있었다. 다른 사진들은 다 배경이 있어서 휴대전화로 촬영했다고 우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 사진은 바로 이 칼럼에 실었던 프로필 사진이었다. 인터넷 검색으로 찾아 끼워 넣을 정도로 나를 함께 엮고 싶었나 보다. 나는 이번 북한에서의 기자회견이 통전부가 아닌 국가안전보위부의 작품이란 점에 주목한다. 북한 식당 종업원 13명이 한국으로 망명한 뒤 북한이 이를 보복하기 위해 눈이 뒤집힌 시점임을 감안하더라도 보위부는 정말 저질스러웠다. 고 씨 기자회견을 북한 매체들이 분노한 인민의 반향이라며 잇달아 내보내는 것을 보니, 경고의 의미로 전 주민에게 기자회견을 보게 한 것 같다. 그 덕분에 내 이름은 모략꾼의 이미지이긴 하지만, 북한 사람들이 다 알게 된 것 같다. 기자회견에서 다른 탈북자들은 ‘죄를 짓고 도주한 쓰레기’니 뭐니 했지만 나에 대해선 탈북자란 사실을 일절 밝히지 않았다. 이를 통해 나는 동아일보에 탈북 기자가 있다는 사실은 북한이 주민들에게 숨겨야 할 비밀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탈북자도 남쪽에서 대표적인 언론사의 기자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성공 신화처럼 받아들일까 봐 두려운 것이다. 북한은 기자회견 며칠 뒤엔 대남방송에 혈육까지 등장시켜 내게 보내는 편지란 것을 읽게 했다. 허나 북한은 내가 왜 남쪽에 와서 언론인이란 직업을 선택했는지 모르는 것 같다. 북한 인민이 자유롭고 풍요롭게 사는 날까지 그들 편에 서 있겠다는 맹세는 내가 북한을 탈출한 동기이자 절대로 버릴 수 없는 신념이다. 날 흔들려는 북한의 비열한 이번 공격은 어떠한 살해 협박과 중상모략 속에서도 내가 이 자리에서 끝까지 버티고 서 있는 것 자체가 북한 독재 정권과 치열하게 싸우는 일이라는 믿음을 보다 굳세게 만들어 주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6-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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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난수방송 前 노래는 받아적으라는 신호”…대남공작부서 출신 탈북자의 분석

    “북한의 이번 난수방송 재개는 대남 심리전 목적보다는 남쪽 공작원에게 실제 지령을 보내는 것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북한 대남 공작기관의 실세였던 탈북자 최성남(가명) 씨는 최근 재개된 북한 난수방송에 대해 29일 이렇게 평가했다. 평양방송은 정규방송을 마친 이날 0시 45분(한국 시간 오전 1시 15분)부터 12분간 여성 아나운서의 목소리로 “지금부터 27호 탐사대원을 위한 원격교육대학 수학 복습과제를 알려드리겠습니다. 459페이지 35번, 913페이지 55번, 135페이지 86번…”과 같은 다섯 자리 숫자를 읽었다. 이날 방송 내용은 앞서 15일 난수방송과 시간과 내용 및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같았다. 방송 직전 경음악 ‘기쁨의 노래 안고 함께 가리라’를 내보낸 것까지도 똑같았다. 최 씨는 “평양방송은 과거 노동당 대남공작 부서인 225국이 대남 공작원에게 지령을 내리는 창구였다”고 말했다. 정보당국은 225국이 최근 문화교류국으로 명칭이 바뀐 것으로 보고 있다. 최 씨는 “225국에서 준비한 녹음을 평양방송사가 방영하는데 이번은 27호 대호(미리 부여받은 숫자) 공작원에게 보내는 지령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특정 번호만 계속 사용하면 위험해서 공작원은 ‘27번, 85번, 300번’ 하는 식으로 대호를 여러 개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459페이지 35번이라고 불러주면 45935란 숫자를 난수표에 대입하면 된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 2011년 적발된 왕재산 간첩단 사건 때는 첨단 디지털 스테가노그래피(은닉) 기법으로 대남 지령문을 하달했지만 다시 난수방송으로 전환한 것에 대해 “난수방송은 보안이 뛰어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스테가노그래피는 e메일이 감시당하거나 해킹되면 지령이 고스란히 노출되지만 난수방송은 누구에게 가는지, 난수표나 해독에 사용되는 책자가 뭔지를 모르니 알아내기 매우 힘들다는 것. 그는 또 “특히 남쪽에 갓 침투한 공작원은 스테가노그래피를 사용하려면 PC방에 가야 하는데 그러면 말투나 거동이 의심받기 쉽고 폐쇄회로(CC)TV에 노출되기 쉽다”며 “난수방송 청취는 용산전자상가에 가서 단파 라디오만 하나 사면 될 만큼 간단하다”고 덧붙였다. 최 씨는 북한이 대남 공작원들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 ‘이름 없는 영웅들’의 주제가를 난수방송에 앞서 방송한 데 대해 “노래는 큰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북한이 마지막으로 난수방송을 했던 1990년대엔 ‘적기가’란 노래가 먼저 나왔는데, 이는 받아 적을 준비를 하고 있으라는 예행 신호일 뿐이라고 설명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6-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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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종업원 집단 귀순 책임자 6명 관련간부-가족 앞에서 공개 처형”

    북한이 중국 식당 파견 종업원 13명의 4월 집단 귀순 사건의 책임을 물어 관련자 6명을 공개 처형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최성룡 납북자가족모임 대표는 29일 “북한이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지시로 5월 5일 평양 강건종합군관학교에서 안전교사(국가안전보위부 요원) 등 관련 책임자 6명을 공개 처형했다는 얘기를 정통한 대북 소식통으로부터 들었다”고 말했다. 최 대표는 “처형은 보위부, 정찰총국, 외무성, 인민보안성 간부 80여 명과 해외 파견 근무자들의 가족 등 100여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진행됐다”고 전했다. 북한은 5월 3일 탈북 종업원들의 가족 및 동료들을 동원해 기자회견을 열고 종업원들이 한국 정부에 의해 유인, 납치당했다고 주장했다. 최 대표의 말이 사실이라면 북한은 종업원이 납치됐다고 기자회견에서 대대적으로 비난해 놓곤 이틀 뒤 내부적으로 관계자 6명을 처형해 종업원들이 사실상 귀순했음을 시인한 셈이다. 또 최 대표는 북한이 귀순한 종업원들의 가족을 묘향산 교육시설에 집단 구금한 뒤 강습교육(사상교육)을 벌였다고 전했다. 다만 그는 “탈출한 여종업원들과 함께 생활하다 북으로 돌아간 동료 여종업원 7명의 소식은 알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이런 가운데 북한 당국의 강압적인 외화 상납 요구가 잇단 탈북으로 이어지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북 소식통은 최근 탈북해 제3국 망명을 요청한 북한군 장성급 인사와 관련해 그가 인민무력부 소속 소장(한국군 준장에 해당)으로 가족 2명과 함께 외화 4000만 달러(약 446억4000만 원)의 거액을 들고 탈북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이 소식통은 북한군 장성급 인사가 10일 제3국에 망명을 신청했고 현재는 중국을 벗어났을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이 장성급 인사는 동남아와 중국 남부지역의 북한 식당 및 건설현장 등에서 벌어들인 외화를 김정은 위원장의 금고인 39호실로 보내는 임무를 맡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중국 랴오닝(遼寧) 성 둥강(東港)의 한 수산물 가공 공장에서 일하던 북한 여성 근로자 8명이 지난달 집단 탈출했다고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29일 보도했다. 북한은 동료 직원과 감시 요원 등 약 100명을 본국으로 긴급 소환한 것으로 알려졌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도쿄 서영아 특파원}

    • 2016-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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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남한의 美 무력자산 과녁 될수도”

    ‘11(한국) 대 5(북한).’ 라오스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교장관회의에서 남북한 외교 수장이 가진 양자회담 횟수에서 한국은 북한에 약 ‘2 대 1’ 압승을 거뒀다. 하지만 한국은 북한과의 대결 외교에 집중하면서도 정작 미중 사이에 낀 한국 외교의 구조적 어려움을 타개하는 데에선 뚜렷한 진척을 이루지 못했다. 그런 가운데 이용호 북한 외무상은 미디어의 대북 관심을 활용하기도 했다. 이 외무상은 ARF 회의 직후 인터뷰를 자청한 자리에서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를 거론하며 “미국의 핵전략 자산 또 하나가 조선(한)반도 남부에 들어오게 된다”며 “핵보유국 미국의 무력이 있거나 이런 경우에 아무래도 그런 대상은 과녁이 될 수 있다”고 위협했다. 사드가 배치되면 이를 타격하겠다는 무력 도발 위협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이다. 또 비핵화 노력은 미국의 적대시 정책 때문에, 남북대화는 한국의 거절 때문에 무산됐다고 말해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사태 악화의 책임을 모두 한미에 돌렸다. 그가 24일 라오스에 도착한 뒤 북핵 등 현안에 대해 공개적인 의사를 밝힌 것은 처음이다. 그런 자리에서 북한이 핵보유국이라고 주장하며 미국의 태도에 따라 5차 핵실험까지 할 수 있다고 위협하는 등 구태를 벗지 못한 셈이다. 그는 한반도 주변의 정세 악화 원인으로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을 꼽은 뒤 “최근 인권 문제를 걸고 우리 최고 존엄(김정은)까지 모독함으로써 최대의 적대 행위를 감행하기에 이르렀다”며 “이는 선전포고와 같다”고 주장했다. 북한뿐 아니라 중국도 이번 회의 기간에 적나라한 표현으로 한국에 공격을 퍼부었다.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은 24일 윤병세 외교부 장관을 만나 “최근 한국 행위는 쌍방(양국)의 호상(상호) 신뢰 기초에 해를 끼쳤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반면 왕 부장은 25일 이용호 외무상과 가진 북-중 회담 때는 웃으며 문 앞에까지 나가 악수로 맞이한 뒤 “중국과 북한은 전통적 우호 관계이며 소통 강화, 협력 확대를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기류 속에서 한국이 뾰족한 해법을 만들지 못하면 중국의 대남 압박 외교가 상당 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남성욱 고려대 교수는 “중국은 한반도에서 사드 배치로 한미의 힘이 북-중을 압도하자 북한에 힘을 실어 균형을 맞추는 관리외교를 작동시킨 것”이라며 “동북아에서도 북핵보다 세력 균형을 중시하는 중국에 있어 (한국 등) 주변국은 협상의 대상이 아니라 관리 대상”이라고 진단했다. 러시아도 이런 기류에 가세한 형국이다. 러시아는 8일 중국과 사드 체계의 한반도 배치에 반대하는 공동성명을 유엔에 제출하고 이를 유엔 총회, 안전보장이사회에서 회람해 달라고 요청한 사실이 26일 확인됐다. 한국이 대북 압박에 몰두하면서 경직된 외교행태가 되풀이되고 있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외교 교섭의 초점을 대북 압박에 맞추다 보니 상대국의 협조를 구할 수밖에 없는데 그마저도 결과물이 뜻대로 나오지 않는 장면이 반복되는 것이다. 한국 정부는 북한이 참가하는 유일한 지역안보 회의인 ARF에서 북한 외무상 면전에서 ‘도발에 대한 응징’ 메시지를 발신하려고 총력 외교전을 폈다. 하지만 개최국인 라오스는 의장성명 초안에 ‘사드 배치에 우려를 표한다’는 대목까지 넣어 당혹하게 만들었다. 한편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이번 ARF 회의에서 한반도 문제가 핵심 이슈였다고 밝혔다. 케리 장관은 이날 기자들을 만나 “북한의 이러한(핵·미사일 실험) 행동들에 실질적인 결과가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깨닫게 한다는 것이 우리의 단호한 태도”라고 말했다.비엔티안=조숭호 기자 shcho@donga.com / 주성하 기자}

    • 2016-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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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토요판 커버스토리]한국 온 탈북자 3만명… 함께 살 준비 됐나요

    “주민배제 탈북시설! 밀실야합 결사반대!” 새 아파트 입주가 한창인 서울 강서구 마곡지구 곳곳에는 이런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통일부의 ‘남북통합문화센터’ 건립을 반대한다는 것이다. 마곡지구 입주자대표연합회 명의로 뿌려진 호소문에는 “우리의 보금자리가 처참히 짓밟히고 있다”며 “북한이탈주민 편익시설 건립 결사반대 탄원을 추진하니 마곡 입주민의 적극적인 참여와 동참을 호소한다”고 적혀 있었다. 1990년대 중반 북한에서 ‘고난의 행군’이라 불리는 대기근이 벌어져 대량 탈북 사태가 시작된 지 20년이 넘었다. 그동안 남쪽에는 3만 명의 탈북자가 입국해 지역마다 정착해 살고 있다. 하지만 탈북민을 보는 우리 사회의 시각은 여전히 싸늘하다. 정부는 ‘통일 대박’을 이야기하지만 우리 사회는 북한 체제가 싫어서 탈북한 3만 명을 보듬어 안기도 버거운 듯하다. 탈북민 정착 시설은 혐오시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지난달 영국 국민이 유럽연합(EU) 탈퇴를 선택한 이유 중 하나는 난민 유입 반대였다. 오늘날 한반도의 난민은 탈북민이다. 우리는 지금 탈북민과 한 동네에서 서로 얼굴을 맞대고 함께 살 준비가 돼 있는 것일까. 해답을 찾기 위해 동아일보와 통일부 산하 남북하나재단은 5, 6월 두 달간 대표적인 탈북민 밀집 지역인 서울 강서구 가양동, 노원구 중계동, 양천구 신정동, 인천 남동구 논현동 남북 출신 주민 404명을 대상으로 남북 주민 통합 실태를 조사했다. 지역별로 남북 출신 주민 50명씩(논현동은 52명씩) 설문 조사했다. 탈북민 밀집 지역에서 남북 출신 주민을 상대로 통합 현실을 조사한 것은 처음이다. 조사 결과 남북 출신 주민 간 대화 경험이 있는 주민 가운데 북한 출신 주민(탈북민)의 69.1%, 남한 출신 주민의 62.7%가 소통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응답했다. 남측 주민이 탈북민을 ‘나와 같은 국민’으로 보는 데 훨씬 인색했다. 그동안 정부의 탈북민 정착 정책 초점이 경제적 지원에 맞춰졌지만 이제는 주민 통합으로 근본적인 변화를 해야 할 때임을 보여준다.▼ “빨갱이가 그렇지” “색안경 쓰고 쳐다봐”… 동네안 ‘38선’ ▼이달 중순 어느 날 오후 4시경 탈북민 1400여 명이 거주하는 인천 남동구 논현동의 한 아파트단지 어린이집 앞. 아이들을 데리러 온 30대 전후의 학부모들이 속속 모여 들었다. 어느 동네에서나 볼 수 있는 익숙한 광경이다. 탈북민 집단 거주지인 만큼 이색적인 북한 억양도 들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과 달리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학부모 가운데 북한 말씨를 쓰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어린이집에 남한, 북한 출신 부모를 둔 애들이 모두 다니긴 하지만 등·하원할 때 어머니들은 끼리끼리 나뉘어요. 탈북 엄마들은 경계심이 있는지, 아니면 자존심이 강해서 그런지 몰라도 쉽게 친해지기 어려워요. 내가 북한 출신 엄마에게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하면 피해버리거나 그냥 가버려요. 애들은 또래라 같이 노는데….” 이 동네에 이사 온 지 1년 4개월이 됐다는 신새롬 씨(30)는 탈북민 엄마들의 인상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주변에 있던 다른 엄마들도 고개를 끄덕였다.“탈북민 동네엔 가지 마” 어린이집 풍경만 놓고 보면 이 동네에선 남한 주민과 탈북민이 여전히 다른 공간에 사는 것 같다. 과연 탈북민이 다른 사람을 경계하거나 자존심이 강해서일까. 이 동네에 이사 온 지 1년 반이 됐다는 한 30대 엄마의 얘기는 다소 충격적이었다. “저는 새터민에 대해 생각이 그렇게 좋지가 않아요. 저 앞의 일반 아파트 엄마들이 여기는 발도 붙이지 말라고 애들에게 말해요. 그래서 나도 여기 온 지 이제 1년 반 됐는데 다른 아파트 애기 엄마들과 친구하기가 힘들었어요. 유독 여기가 인식이 그래서…. 애들도 놀이터에서 놀 때 발음이 어눌하면 아예 배제하고 놀아요. 엄마들도 그런 애들에게 ‘새터민이야, 아니야’ 하고 확인해요.” 신 씨도 거들었다. “애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편이 갈려 있어요. 노인정에서도 새터민 어르신들이 남한 어르신들과 어울리기 어려우니까 아예 따로 노인정을 만들기도 했어요.” 서로 어울리지 못하니 남한 주민과 탈북민 사이엔 감정의 골만 더욱 깊어졌다. “아침에 어린이 놀이터를 지나가는데 누가 아파트에서 쓰레기봉투를 던져 냄새가 너무 심했어요. 꼭 탈북민이 했다고 단정할 순 없지만 유독 다른 아파트에 비해 몰상식한 사람이 많으니 의심이 가는 거죠.” 익명을 요구한 30대 주부의 말이다. 그렇다면 탈북민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논현동 아파트에서 6년째 살고 있는 한국 입국 16년 차인 장성근 씨(35)는 쓰레기 문제에 대해 이렇게 반박했다. “탈북민 중에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부인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곳 임대아파트엔 장애인, 치매 노인도 많이 사는데 그런 분들이 쓰레기 던지는 것도 제가 여러 번 봤어요. 남한 사람들도 쓰레기 불법 투기를 하는데 항상 탈북민만 손가락질을 받아요.” 슈퍼에서 일하는 50대 탈북 여성 최진옥(가명) 씨는 이렇게 말했다. “여기 사람들은 우릴 세금 안 내고 자기들 세금이나 축내는 사람처럼 봐요. 우리도 세금 내면서 사는데 말이죠. 똑같은 상황이라도 우릴 대하는 게 달라요. 열심히 일하면 ‘쫓겨나지 않으려고 악을 쓴다’고 말하고, 무거운 걸 나르다 ‘아이고, 힘들어’ 하면 ‘이럴 거면 북한에 있지 여기 왜 왔느냐’고 말해요. 그럴 때면 정말 상처를 받습니다.” 최 씨는 한국에 온 지 10년이나 됐지만 여전히 한국 사람을 깊이 사귀기가 무섭다고 했다. 그와 함께 일하는 40대 탈북 여성 김영란(가명) 씨도 “본토(남한) 사람들이 못사는 것은 ‘그럴 수 있지’ 하면서도 탈북민이 못살면 꼭 게으른 사람 보듯이 한다”며 거들었다. 이런 감정의 골은 비단 논현동만의 일은 아니었다. 이번 공동조사에서 탈북민 밀집 지역에 사는 데 대한 만족도가 낮은 이유로 남한 출신 주민이 가장 많이 꼽은 점 역시 남북 주민 간 생활 방식 차이로 인한 갈등(42.5%)이었다. 탈북민은 탈북민 밀집 지역에 산다는 주변의 부정적 인식(41.5%)을 가장 많이 꼽았다. “북한 여성들은 지금까지 꾸며보지 못했으니 여기 와선 옷차림에 신경을 많이 써요. 그러다 보니 밤에 동네 가까운 곳에 나갈 때에도 치마를 입고 하이힐을 신는 경우가 많죠. 같은 탈북민은 그냥 편하게 왔구나 이렇게 생각하는데, 여기 사람들은 북한 여자들은 밤에도 치장하고 나간다고 이상한 소문을 퍼뜨려요.” 한 탈북민의 하소연이다.남한 주민이 먼저 마음을 열어야 이번 조사 결과에 따르면 남북 주민들이 어울리는 과정에서 서로에게 무시당했다고 생각한 비율은 북한 출신 주민(24%)이 남한 출신 주민(6.8%)보다 훨씬 높았다. 탈북민은 4명 가운데 1명꼴로 남한 주민에게 무시당하고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무시당한다고 느끼니 탈북민은 먼저 선뜻 다가가지 못하고, 남한 출신 주민은 굳이 탈북민과 교류할 필요를 느끼지 못해 다가가지 않는 것이다. 탈북민은 편견과 차별을 넘어 증오의 시선까지 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양천구 신월동에 사는 한국 입국 13년 차인 마순희 씨(60대)는 2010년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직후의 일을 잊지 못한다. “집에서 TV 뉴스로 사건을 보고 단골 미용실에 갔는데, 안에 있던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다가 입을 다 닫더군요. 내가 앉아서 머리 하는데 할머니들, 젊은 여성들이 들어와서 ‘연평도 봤냐. 빨갱이들은 변하지 않는다. 탈북자들이 그렇게 많이 오는데 그 속을 어떻게 알겠어’라고 하는 겁니다. 그 일이 있은 뒤에 다시 그 미용실을 가려니 도저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미용실을 바꿨어요.” 함북 청진에서 온 30대 탈북 여성 역시 당시 비슷한 일을 겪었다. “회사에 나갔더니 나이 든 아줌마들이 ‘너희 북한 빨갱이들은 다 죽여야 돼’ 하고 면전에서 말했던 기억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아요.” 남한 주민들이 탈북민을 ‘나와 같은 국민’으로 보는 데 훨씬 인색하고 불신한다는 점은 이번 조사 결과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남한 주민들은 북한 출신 주민을 친구로 두는 데는 82.4%가 찬성했지만 배우자로 삼는 것에는 반대가 57.6%나 됐고, 찬성은 절반 수준인 42.4%로 줄었다. 자신의 자녀가 북한 출신 주민을 친구로 두는 것에는 81.9%가 찬성했지만 배우자로 삼는 것에는 찬성이 절반 수준인 44%로 줄고 반대가 56%로 크게 증가했다. 북한 출신 주민은 양상이 완전히 다르다. 90.5%가 남한 출신 주민을 친구로 두는 데에 찬성했고, 배우자로 삼는 것에도 74%가 찬성했다. 자신의 자녀가 남한 출신 주민을 친구로 삼는 데에 98%가 찬성했고 배우자로 삼는 것에도 90.2%가 찬성했다. 동아일보와 통일부 산하 남북하나재단의 공동 조사 결과는 남북 출신 주민들이 서로 얼굴을 맞대고 교류하는 탈북민 밀집 지역에서 나온 것이어서 더 주목된다. 그리고 남북 출신 주민 간 진정한 통합은 아직 갈 길이 멀고, 탈북민보다는 남한 주민이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이번 공동기획을 담당한 남북하나재단 한윤석 차장은 “조사 결과 탈북민들이 보여주는 통합 노력에 비해 한국 사회의 포용력이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며 “탈북민에 대한 포용력은 통일 이후 북한 주민과의 통합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우리 사회가 탈북민에 대해 마음을 더 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남북엄마 공동 육아… 땀 흘리며 공동작업… 허물어진 ‘38선’ ▼함께 만들어가는 공동체 이번 취재 과정에선 갈등만 목격된 것이 아니다. 한국 주민과 탈북민이 함께 어울려 화합을 만들어내는 현장도 곳곳에 있었다. 서로 의식적으로 다가가고 노력하면 두 집단 사이의 간극은 결코 넘지 못할 것은 아니었다. 서울 양천구 신월6동의 한 주택가 20평대 빌라엔 일주일에 몇 차례씩 남한과 북한 출신 엄마들이 함께 모인다. 이 집의 이름은 ‘친정집’이다. 이곳에선 남북한 엄마들이 서로 마음을 합쳐 만들어가는 공동육아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오후가 되면 서너 살 아이에서부터 초등학생들까지 엄마를 따라 이곳에 모여 형, 동생, 언니, 누나, 친구가 된다. 엄마들은 엄마들대로 글쓰기 모임, 발표 모임 등을 진행한다. 이곳에서 만난 회령 출신의 40대 탈북 여성은 “제가 사투리를 써도 이곳 엄마들은 잘 들어주니 마음이 편하다”며 “한국에 와서 홀로 너무 힘들었는데 이곳에선 친정집처럼 푸념도 할 수 있어 행복해진다”고 말했다. 공동육아 프로그램을 계획한 윤은정 사무처장은 “이 사회에서 남한 사람과 탈북자들이 물과 기름처럼 따로 놀지 않고 어울려 살면 어떨까 싶어 지난해 5월 모임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공동체 운영비용은 남북하나재단의 후원을 받는다. 물론 처음부터 쉽게 어울렸던 것은 아니다. “탈북한 지 얼마 안 된 한 아이가 북한 사투리가 심하니 애들이 자꾸 그 아이를 따돌리는 거예요. 애들이어도 참 밉더라고요. 왜 따돌리냐고 물었더니 ‘쟤는 전쟁을 하는 나쁜 나라에서 왔잖아요’라고 답하는 거예요. 그래서 아이들을 모아 놓고 엄마 아빠의 고향을 다 말하게 했어요. 중국도 있고, 강원도도 있고 다 달랐어요. 아이들에게 부모들은 다 다른 고향을 갖고 있다고 차근차근 설명했더니 이후 애들이 달라졌어요.” 모임에 참가한 주부 김하나 씨(37)는 “내가 여기 다닌다고 하니 주변에서 ‘북한 사람들은 어때’라고 물어요. 애들은 간식 주는 어른이 남한 사람인지 탈북민인지 가리지 않는데 어른들이 참 부끄러워요”라고 말했다. ‘친정집’과 유사한 프로그램은 곳곳에 있다. 인천 남동구와 서울 노원구 중계동엔 남북 출신들이 어울리는 체육모임이 주말마다 열린다. 논현역 인근 탁구장에 매주 일요일 오후 3시에 모이는 ‘하나코리아핑퐁클럽’도 그중 하나다. 4년째 탁구 모임에 참가하는 김진수 씨(50)는 “처음엔 탈북민을 대하기가 어색했지만 지금은 별 차이를 느끼지 못하고 이웃으로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논현동엔 남북 주부들이 함께 모여 의상 디자인과 옷 수선을 함께 해내는 작업 공간도 있고, 남북 노인들이 함께 어울리는 ‘하나경로대학’도 운영되고 있다.먼저 노력하는 탈북민들 남북 주민들의 통합은 서로 한 공간에 어울려 지낸다고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탈북민 중에는 먼저 열심히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이면 남쪽 주민들도 자연히 우리에게 마음을 열 것이라고 믿는 사람도 많다. 서울 강서구 화곡4동에 문을 연 카페 ‘더치숲’도 그런 곳 중 하나다. 이 카페는 지난해 4월 탈북민 4명이 함께 문을 열었다. 카페에서 만난 김인실 씨(58)는 “서비스직이라 어떻게 하면 손님의 요구를 잘 들어줄 수 있을까 고민도 하고 매일 인사하는 법을 익히게 되니 남한식으로 사람을 대하는 법을 알게 됐고, 그러다 보니 손님도 늘고 단골도 생겨났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엔 탈북자들이 나랏돈을 받고 산다고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우리가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이니 어느새 그런 사람들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지역사회에 대한 봉사활동에 적극 참여해 탈북민에 대한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바꾸는 사례도 많다. 서울 양천구과 구로구 등지에서 지역 봉사에 열심인 탈북민 봉사단체 ‘소망두레봉사단’도 그중 하나다. 2010년 2월 탈북 여성 6명이 모여 활동을 시작한 모임은 지금은 참가자가 20명이 넘는다. 하는 일도 노인 목욕 봉사, 홀몸노인 가구 도배, 도서관에서 아이들에게 책 읽어 주기, 신규 전입 탈북자의 집 청소해주기 등 다양하다. 지난해 12월엔 지역 노인 200여 명을 초청해 동지 팥죽을 대접하는 봉사도 했다. 이 단체는 2011년 남북하나재단 우수자원봉사단 우수상, 2014년 10월 서울시 봉사상 단체 부문 우수상 등을 받았다. 탈북민이 동네에서 주민에게 먼저 인사하고 이웃처럼 다가가는 모습만 보여도 인식은 많이 달라진다. 양천구 신정동 학마을아파트에서 16년째 살고 있는 60대 주부는 “나를 보면 탈북민 이웃들이 먼저 인사하고 지나가고 이야기도 걸어주고 하니 아주 친해졌다. 초등학생인 손녀딸도 새터민 또래 아이들하고 어울려 논다”고 말했다. 그는 “자녀가 한 학교에 다니는 30, 40대 학부모들은 출신을 가리지 않고 서로 친해져서 모임도 하고 있다”며 “지내 보니 새터민도 우리와 똑같더라”라고 평가했다.윤완준 zeitung@donga.com·주성하 기자변수연 인턴기자 연세대 중어중문학과 4학년}

    • 2016-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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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광주 남북하나재단 이사장 인터뷰 “탈북민 안착, 지자체 역할 중요”

    “통일은 어느 순간에 이룰 수 있지만 통합은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영토와 제도를 합치는 통일과 민심을 합치는 통합이 함께 이뤄져야 진정한 의미의 통일이 된다고 봅니다.” 손광주 남북하나재단 이사장(59·사진)은 남북한 주민 간 갈등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동아일보와 남북하나재단의 공동 조사 결과에 대해 “독일도 통일된 지 30년이 가까워지고 있지만 동서독 주민끼리 갈등과 반목이 사라졌다고 보긴 어렵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번 조사 결과에 대해 그는 “상대적으로 탈북민은 남한에 통합되려는 노력을 많이 하고 있는데 이젠 남쪽 주민들도 좀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며 “탈북민은 북한의 수직적 복종 체제에서 살아와서 의식이 다르다”고 했다. 손 이사장은 탈북민이 한국 사회에 잘 정착하느냐의 문제가 통일 이후 남북 주민이 얼마나 잘 어울려 지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가 될 것이라고 했다. 북한에 민주적 정권이 들어서면 역으로 많은 남측 주민이 북으로 가서 재건 사업을 하며 정착해야 하는 만큼 역지사지의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손 이사장은 탈북민의 정착을 과학화하기 위해 남북하나재단에서 현재 북한이탈주민정착지수를 개발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탈북민 실태 조사를 정기적으로 해서 자립역량, 경제역량, 심리역량, 신체역량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남북 주민 화합 수준을 가늠해 보려고 한다는 것이다. 손 이사장은 탈북민이 우리 사회에 통합되려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언론시민단체라는 세 영역이 다 함께 노력해야 하지만, 이 중 지자체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정부는 제도를 만들고 지원할 수 있지만 탈북민이 해당 지역에 안착하는 데는 지자체의 역할이 결정적이라는 얘기다. 손 이사장은 우리 사회에서 탈북자들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은 데 대해 안타까워했다. “제가 지켜본 탈북민들은 대개 정직, 근면, 소박한 성품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부 탈북민의 사례가 과대 포장돼 인식을 부정적으로 만들고 있지만 이번 조사에 따르면 한국 사회에 만족한다는 탈북민은 응답자의 63.1%였고 불만족은 3.4%에 그쳤습니다.” 그는 최근엔 봉사활동을 하는 탈북민도 크게 늘고 있다고 했다. 봉사를 통해 남한에도 자신보다 더 어려운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자신이 남한 사회에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느끼면서 동질성도 형성되고, 정착의 용기도 갖게 된다고 했다. 동아일보 기자 출신인 손 이사장은 1999년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의 연구비서가 됐으며 2010년 그가 사망할 때까지 옆을 지킨, 국내에서 손꼽히는 북한 전문가다. 지난해 남북하나재단 이사장에 임명됐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6-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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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철책선 100km… 통일의 그날까지 걷고 싶어요”

    45년간 민간인 출입이 엄격히 금지됐던 경기 파주시 임진강변 철책 순찰로. 21일 노란 조끼를 입은 청년들이 태극기를 배낭에 꽂고 씩씩하게 걷고 있었다. ‘제3회 대학생 비무장지대(DMZ) 통일 발걸음’ 행사에 참가한 탈북 대학생 31명을 비롯해 외국 유학생 등 80명의 청년들이다. 이들은 7박 8일간 파주 연천 철원 지역 중부전선 최북단을 따라 걷는 100km 행진 여정을 시작했다. 첫날부터 32도가 넘는 찜통더위와 싸우며 9km 넘게 걸었다. 전직 해병대 교육단장 출신인 차동길 예비역 장군은 대열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맨 앞에서 학생들을 이끌었다. 2014년 시작돼 올해로 3회째를 맞는 이번 행사는 사단법인 물망초(이사장 박선영 전 국회의원)와 6·25공원건립국민운동본부(이사장 한상대 전 검찰총장), 역사의 조난자(대표 윤동욱 변호사)가 공동주최하고 동아일보가 후원했다. 탈북 대학생 정진혁 군(25·고려대 정외과 3)은 “혼자라면 엄두도 내지 못했을 길이지만 친구들과 서로 격려하며 걸으니 힘든 줄을 몰랐다”라며 “이번에 만난 친구들과 통일이 되는 날까지 함께 걸어가고 싶다”라고 말했다. 북한군 군의장교 출신인 박도현 씨(33·동국대 불교학과 2)는 “같은 고향에서 온 어린 친구들과 함께 북한이 바라보이는 이 길을 걷는다는 것 자체만 해도 너무 좋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조현준 씨(23·숭실대 사회복지학과 2)와 김원일 씨(23·동국대 경찰행정학과 2)는 “북에서 내려온 관계로 친구들 사귀기가 어려웠는데 이런 기회를 통해 많은 친구를 깊이 사귈 수 있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참가했다”라고 말했다. 박 이사장은 “서로 다른 체제와 환경에서 자란 대학생들이 분단 현실을 직접 체험하면서 통일을 준비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참가자들은 행군 과정에 거치는 전적비마다 낡은 태극기를 교체하고 2000개의 태극기를 접경지역 주민들에게 나눠 주는 행사를 연다. 유격훈련 등 병영 체험도 할 예정이다. 저녁마다 6·25전쟁 때 압록강 물을 떠 온, 전쟁의 산증인인 93세 이대용 장군과 김영우 국회 국방위원장, 김태영 전 국방장관 등과 대화의 시간도 갖는다. 이들은 정전협정 기념일인 27일 강원 철원군 고석정에서 대장정을 마친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6-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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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알보르센 대표 “北에 드론 날려 한국드라마 담은 USB 살포”

    “한 방울씩 떨어지는 물도 언젠가는 컵을 가득 채우고 밖으로 넘칩니다. 북한에 외부 정보를 주입하는 노력이 계속 이어진다면 폐쇄된 북한 체제도 변화되는 분기점을 맞을 겁니다.” 미국 뉴욕에 본부를 둔 비영리단체인 ‘인권재단(HRF)’ 토르 알보르센 대표(40)는 20일 동아일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외부 정보를 담은 휴대용 저장장치(USB메모리)가 북한에 자유를 가져다줄 것”이라고 말했다. 알보르센 대표는 2년 전부터 올해 5월까지 드론을 이용해 최고 존엄 모독이라며 북한이 강하게 반발한 할리우드 영화 ‘인터뷰’와 한국 드라마, 위키피디아 등을 담은 USB메모리 1000여 개를 북한 땅에 뿌렸다. 첨단 과학기술의 산물인 드론은 목표한 지점에 정확히 USB메모리를 살포하고 다시 돌아오기 때문에 흔적도 남지 않는다. 알보르센 대표가 한국을 방문한 건 탈북단체들과 드론의 활용도를 더욱 높일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서다. 그는 “지금까지 제3국에서 드론을 날렸다”며 “한국은 군사분계선(MDL)의 통제가 엄격하기 때문에 드론을 날릴 수 없었다”고 했다. 알보르센 대표가 말하는 제3국은 중국이었다. 그는 어떻게 중국에서 드론을 날릴 수 있었을까. 그는 “함께 활동하는 탈북단체가 대신해 주고 있다”며 “드론의 정확한 기술적 제원과 날리는 위치, 낙하지점 등은 보안상 말할 수 없다”고 답했다. 이와 관련해 한 탈북단체 대표는 “현재 중국에서 무게 2kg 정도의 물체를 매달고 20km 정도 날아갔다 돌아오는 드론이 600만 원 정도에 거래된다”고 전했다. 알보르센 대표는 드론과 USB메모리 구입 비용을 지원하고 있다. 알보르센 대표는 베네수엘라 출신이다. 그는 “북한 체제 수호의 첨병인 국가안전보위부가 베네수엘라 남성이 북한을 비판하는 자료를 뿌릴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2000년 우연한 기회에 요덕수용소 출신인 강철환 씨가 쓴 ‘평양의 어항’이란 책을 읽게 됐다. 그때 ‘북한을 변화시키는 일’을 필생의 과제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북한 인권이 열악하다는 이야기는 13세 때 아버지에게서 처음 들었습니다. ‘피델 카스트로가 통치하는 쿠바보다 더 열악하다’고 말이죠. 직접 탈북자들을 만나 들어본 북한 인권의 열악함은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알보르센 대표는 개인적인 아픔도 갖고 있다. 13세 때 어머니가 반정부 시위에 나섰다가 총에 맞아 쓰러지는 모습을 목격한 것이다. 그러나 당시 베네수엘라엔 어느 인권단체도 도움을 주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그는 영국과 미국에서 역사학을 전공하며 공산주의 이념을 공부했고 2005년 직접 인권단체를 만들었다. 현재 HRF는 뉴욕 본부와 3개의 지역 지부를 두고 20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다. 알보르센 대표는 “지구상에서 가장 억압적인 삶을 사는 북한 주민의 인권 개선에 개인적으로 제일 많은 시간을 투자하며 단체 예산의 10%를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지난해 단체 예산이 350만 달러(약 40억 원) 정도였으니 드론 프로젝트 등에만 4억 원 정도를 사용한 셈이다. 그는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드론 프로젝트를 이어갈 것”이라며 “한국 정부와 국민들도 북한 체제를 변화시키는 데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6-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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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은, 남한지도 펼쳐놓고 공항-항구 선제核타격 위협

    북한이 최근 황해북도 황주에서 동해상으로 발사한 3기의 탄도미사일은 미 증원전력의 핵심 통로인 한국 내 주요 항구와 공항에 대한 선제 타격 훈련이었다고 20일 밝혔다. 군은 이날 노동신문에 게재된 관련 사진을 분석한 결과 북한이 황주 비행장 인근 평양∼개성 고속도로에서 이동식 발사차량(TEL)을 활용해 미사일을 쏴 올린 것으로 보고 있다.○ 미 증원전력 들어오는 항구와 비행장 핵 타격 조선중앙통신과 조선중앙방송은 이번 발사훈련은 “미제의 핵 전쟁 장비들이 투입되는 남조선 작전지대 안의 항구, 비행장들을 선제 타격하는 것을 모의하여(목표로) 사거리를 제한하고 진행했다”고 보도했다. 또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전략군 화성포병부대들의 발사 훈련을 지도했다고 전했다. 스커드-C와 노동은 북한에서 ‘화성 6호’(사거리 500km) ‘화성 7호’(사거리 1300km)로 불린다. 재래식 탄두와 핵 탄두를 모두 장착할 수 있다. 북한은 19일 스커드-C와 노동 미사일을 85도 이상의 고각(高角)이나 연료를 줄여 쏴 올려 부산항과 울산항을 비롯해 김해공항과 대구공항 등 남한의 주요 항만과 미 공군기지가 배치된 공항을 핵으로 선제 타격하는 훈련을 진행한 것으로 군은 보고 있다. 두 미사일이 날아간 비행거리(500∼600km)를 남쪽에 적용하면 제주도를 포함한 한국 전역이 포함된다. 이날 노동신문에 게재된 김정은의 훈련지도 사진 속에 나오는 ‘전략군타격계획’이라는 대형 지도에도 동해상 미사일 탄착 지점에서 부산과 울산 지역까지 타격 범위를 나타내는 곡선과 주요 타격 지점이 표시돼 있다.○ 김정은 3월에 이어 대남 핵공격 훈련지도 앞서 김정은은 올 3월에도 황해북도 삭간몰에서 스커드-C 미사일로 한국의 주요 항구를 핵 공격하는 훈련을 지도했다. 당시 북한 매체들은 ‘동해상으로 발사된 미사일은 해외 침략무력’이 투입되는 적의 항구를 ‘핵 타격’하는 내용으로 진행했다고 보도했다. 군 당국은 김정은의 핵 개발 최종 목표가 개전 초기 미 증원전력의 저지라는 점을 재확인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 내 주요 항구와 비행장이 핵 공격으로 폐허가 되고 방사능 오염이 되면 주일미군은 물론 미 본토의 증원전력의 한반도 투입이 불가능하다. 그 틈을 노려 장사정포와 특수전 부대 등 막대한 재래식 전력을 활용해 최단 시일 안에 서울 함락을 노리고 있다는 것이다. 군 고위 관계자는 “북한이 미 증원전력의 차단을 위한 핵우선사용 교리(Nuclear first-use doctrine)’를 실제 핵군사전략으로 확정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핵탄두 소형화에 근접한 북한의 핵 선제 타격 위협을 더는 엄포나 협박으로 봐선 안 된다는 것이다. 군 당국자는 “북한이 3월에 이어 이번 미사일 발사 때도 핵기폭장치를 1km 고도 안팎에서 작동시키는 절차를 점검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북한 매체들이 ‘핵탄두폭발조종장치(기폭장치)’의 동작 특성을 다시 한번 검열했다’고 밝힌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통상 핵탄두는 지상 약 1km 안팎의 상공에서 폭발해야 최대 위력을 발휘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폭도 1km 이하 고도에서 터졌다.○ 사드 남남갈등 노린 고강도 무력시위 예상 북한은 내년에 경북 성주지역에 배치되는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의 무력화와 ‘사드 남남갈등’을 노리고 무력 시위의 수위를 높여갈 것으로 예상된다. 군은 이날 이순진 합참의장 주관으로 긴급 작전지휘관회의를 열어 핵실험과 군사분계선(MDL)의 기습 포격 등 북한의 다양한 도발 상황에 대한 대비책을 점검했다. 또 북한의 동시다발적인 핵공격 위협이 현실화될수록 기존 방어대책의 보강론이 부상할 것으로 보인다. 군 관계자는 “사드 1개 포대와 신형 패트리엇(PAC-3) 미사일 몇 개 포대로는 1000여 기의 북한 미사일을 저지하기 힘들다”며 “한국형미사일방어(KAMD) 체계의 대폭 보강 등 추가 대책이 강구돼야 한다”고 말했다.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주성하 기자}

    • 2016-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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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사이]‘죽음의 땅’에 건설되는 어린이 야영소

    북한이 함경남도 문천시에 건설 중인 문천소년단 야영소가 착공 2년 만에 완공을 앞두고 있다. 머지않아 요란한 준공식이 열리고 김정은 시찰 소식이 노동신문에 대문짝만 하게 실릴 것이다. 문천야영소는 원산 송도원국제소년단 야영소에서 북쪽으로 불과 4km 남짓한 곳에 있다. 그 두 야영소 가운데에 김정은의 생가이자 지금도 매우 애용하는 602초대소(별장)가 있다. 다시 말하면 김정은 별장은 양쪽에 소년단 야영소를 끼고 있는 셈이다. 송도원야영소가 1959년부터 있었는데도 별장 다른 쪽에 굳이 소년단 야영소를 또 건설하는 이유도 궁금하다. 김정은이 아이를 유별나게 사랑해서일까, 아니면 어른을 주변에 두는 게 위험하다고 생각해서일까. 문천에 소년단 야영소가 건설된다는 소식은 나를 몹시 놀라게 했다. 야영소와 문천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기 때문이다. 문천은 북한에서 가장 심각하게 오염된 지역으로 꼽힌다. 최근 바로 옆 원산에서 온 한 탈북자는 “문천은 땅 색깔이 다르다. 그곳에선 염소와 같은 풀 먹는 동물은 살지 못한다”라고 증언했다. 문천에선 카드뮴과 같은 중금속 만성 중독으로 나타나는 이타이이타이병 환자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그곳에 자리 잡고 있는 문평제련소 때문이다. 문천은 제련소의 도시다. 이 작은 도시의 주민 중 7300명이 제련소 종업원이고 공장 터만 220만 m²에 이른다. 북한 사람 누구나 문천이라는 지명을 들으면 제련소를 제일 먼저 떠올린다. 북한의 3대 제련소인 문평제련소는 일제강점기인 1938년 스미토모 원산제련소라는 이름으로 건설됐다. 광복 후 이름을 바꾸어 지금에 이르렀다. 통일부 북한정보포털에 따르면 문평제련소의 생산 능력은 납 3만5000t, 조연 5만9000t, 아연 11만 t, 황산 9만 t이며 금, 은, 안티몬, 주석, 카드뮴이 부산물로 나온다. 이 가운데 카드뮴이 이타이이타이병의 원인이다. 이 병은 일본 미쓰이 그룹이 20세기 초반 운영하던 납, 아연 제련소 주변 사람들이 극심한 통증을 호소하면서 알려졌다. ‘이타이’는 일본어로 ‘아프다’는 뜻이다. 1961년부터 7년간 조사를 진행한 일본 정부는 제련소 폐수에 섞여 있는 카드뮴에 중독된 것이 이 병의 원인임을 밝혀냈다. 약 100년이 지난 지금 북한이 그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물론 광복 후에도 생산 성과만 강조했지 환경오염에 대해선 거의 신경을 쓰지 않은 결과물이다. 더구나 39호실에서 관장해 생산하는 금과 아연 등은 김씨 일가의 핵심 돈줄이어서 문평제련소는 오직 생산제일주의로만 내몰렸다. 문천에 사는 노동자나 주민은 거주 이전의 자유가 없어 타지로 이사할 수도 없다. 또 다른 유명 제련소인 남포제련소는 2000년 환경오염 때문에 해체했지만, 문평제련소는 여전히 운영 중이다. 공장 역사가 80년 가까이 되면서 그 주변에는 아연 등을 뽑아낸 찌꺼기(슬래그)가 산더미처럼 쌓였다. 그런데 1990년대 말 북한에 각종 외화벌이 기관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기면서 이 슬래그 더미가 다시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재가공하면 옛날 정제 기술 부족으로 미처 뽑아내지 못했던 금과 아연이 다시 쏠쏠하게 수거됐기 때문이다. 외화벌이 기관들은 뇌물까지 들여 가며 슬래그 더미를 나눠 가졌다. 수십 년 세월 굳어 가던 슬래그 더미는 다시 무질서하게 파헤쳐졌다. 구글 어스로 문천을 확대해 보면 벌겋게 파헤쳐진 땅과 물웅덩이가 곳곳에 보인다. 이 물은 아무런 정제 과정 없이 바다와 인근 강으로 마구 흘러 들어가고 있다. 바로 그 강 입구가 지금 북한이 건설한다는 야영소에서 불과 3km 거리에 있다. 이런 곳에 소년단 야영소를 세운다니 놀라울 뿐이다. 게다가 이 강이 흘러 들어가는 원산만은 육지 깊숙이 오목하게 들어간 지형 때문에 바닷물이 잘 순환되지 않는다. 5∼8월이면 원산의 앞바다에 적조 현상이 나타나 어패류와 해조류가 멸종하는 것도 우연은 아니다. 물론 이것이 모두 제련소 탓만은 아니다. 원산항 바로 옆의,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화학공장도 환경오염이 심각하다. 그렇지만 하부 구조를 몰라 선뜻 해체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요즘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레이더의 전자파 문제로 난리가 난 남쪽을 보면서, 나는 이런 엄격한 기준으로 문천을 평가하면 어떤 수식어가 필요할지 궁금하다. 죽음의 땅? 북한은 죽음의 땅이라면 김정은 별장이 있겠느냐고 반박할지 모른다. 물론 김정은이야 먹는 것은 특별히 공수해 올 것이니 바다에 들어가는 것만 신경을 쓰면 될 것이다. 그래도 김정은의 별장은 부럽지 않다. 나는 중금속 범벅이 된 그 바닷물엔 도무지 뛰어들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6-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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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드 괴담 뒷북 진화… 기밀까지 공개한 軍

    정부와 군 당국이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의 배치 결정 과정에서 비밀주의와 뒷북 대처로 국가적 갈등과 혼란을 자초했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국민적 관심과 지역 이해가 걸린 중대 안보사안을 사전 정책조율과 주민 설득작업 없이 밀어붙이는 바람에 근거 없는 ‘사드 괴담’이 무차별적으로 확산되는 등 큰 후유증을 남겼기 때문이다. 정부와 군은 6월 말 사드를 경북 성주지역에 배치하기로 결정하고도 이를 비공개에 부쳤다. 8일 한미 양국이 사드 배치 결정을 발표한 자리에서도 군은 보고서 작성 등 절차적 이유를 들어 배치 장소를 함구해 의혹과 불신을 키웠다. 하지만 언론이 경북 칠곡 인근의 성주 지역을 사드 최적지로 거론하자 군은 13일 기습적으로 공식 브리핑을 열어 사드 배치 지역을 최종 발표했다. 그 과정에서도 발표와 취소를 번복하는 해프닝을 벌여 스스로 신뢰를 실추시켰다. 박근혜 대통령은 14일 청와대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주재한 자리에서 “사드 배치 과정이 워낙 위중한 국가 안위와 국민 안전이 달린 문제라 공개적으로 논의를 하는 게 쉽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한미 양국이 2월 초 사드 논의에 착수한 뒤 최종 발표 때까지 정부와 군이 단 한 차례도 그 과정을 국민에게 공개하지 않은 것은 ‘정책 불통’으로 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많다. 사드 배치 지역 발표에 앞서 레이더 전자파의 유해성 논란과 사드의 안보적 가치 등에 대해 치밀하고 논리적인 대국민 설득을 통해 국론을 결집시키는 작업이 선행됐어야 했다는 얘기다. 또 사드 배치 지역 주민들의 민심을 달래는 다양한 보상책과 전자파로부터 주민 안전과 환경을 보호하는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정책 대응이 사전에 필요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드 전자파 유해설이 확산되자 군은 언론에 패트리엇(PAC-2) 미사일 부대와 탄도탄 조기경보레이더 기지를 공개하는 등 진화에 나섰지만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비판이 지배적이다. 이선우 한국갈등학회 회장은 “지금부터라도 지역 공론화 과정을 이행하고 전자파 문제 등 갈등 사안은 전문가와 주민이 허심탄회하게 논의하는 자리를 만들어 적극 해소해야 한다”고 말했다.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장택동·주성하 기자}

    • 2016-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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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美와의 뉴욕채널 차단”

    북한은 미국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을 인권 탄압의 주모자로 지목해 제재 대상자로 올린 데 항의해 북-미 간 뉴욕채널을 완전히 차단했다고 11일 발표했다. 북한 외무성이 8일 성명에서 “제재 철회를 미국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에 대응하는 실제 행동들을 단계별로 취해 나가게 된다”고 선언한 데 따른 첫 번째 조치인 셈이다. 북한은 통보문에서 북-미 관계에서의 모든 문제를 ‘전시법’에 따라 처리한다는 것과 현재 억류된 미국인 문제도 예외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북한은 현재 억류 중인 한국계 미국인 김동철 씨와 대학생 오토 웜비어 씨에게 체제전복 혐의로 징역 10년형과 15년형을 각각 선고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6-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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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中 조약 체결 55주년 맞아 축전 교환…‘사드 배치’ 영향 없나

    한국이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를 결정하고 중국이 이에 강력히 반발하는 국면이지만 북-중 관계는 급작스럽게 가까워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북한과 중국은 11일 ‘북-중 우호협조 및 상호원조조약(약칭 북-중 조약)’ 체결 55주년을 맞았지만 축전을 교환하는데 그쳤다. 루캉(陸慷)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북-중 조약 체결 55주년을 기념하는 활동이나 북-중 고위층 간의 상호방문 등이 있었느냐”는 질문에 “중-조(북한) 쌍방은 이미 상호축전(발송) 방식으로 (조약체결 55주년을) 기념했다”고 대답했다. 또 ‘양측 지도자 사이에서도 축전 교환이 있었느냐’는 질문에는 축전 교환이 다양한 레벨에서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북-중 조약은 김일성 주석이 수상을 지내던 시절 저우언라이(周恩來) 전 총리와 1961년 7월 11일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체결해 그해 9월 10일 발효시킨 조약이다. ‘전쟁 자동개입’ 조항이 핵심이다. 북한과 중국은 오랜 기간 ‘북중 혈맹’의 상징으로 여겨져 온 이 조약의 체결일을 계기로 ‘ 북-중 혈맹’, ‘북-중 친선’을 부각해왔다. 특히 5년, 10년 단위의 ‘꺾어지는 해’에는 고위급 상호 방문, 대규모 축하 사절단 파견 등을 보내 양측의 혈맹관계를 크게 선전했지만 올해는 유엔의 대북 제재 속에 양국 관계가 소원해졌다. 조약 체결 50주년이던 2011년에는 양형섭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과 장더장(張德江) 중국 부총리 겸 정치국 위원이 각각 중국과 북한에 대표단으로 파견돼 우애를 과시했던 것과는 온도차가 큰 셈이다. 하지만 한국 정부의 사드 배치 결정과 이에 대한 반발로 중국이 대북 제재를 완화하고 북한 끌어안기에 나설 경우 북-중 관계가 다소 진전될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양국 간 고위급 대표단 파견으로 북-중 관계 복원을 시도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중국 홍군 창건 89주년 기념일인 8월 1일, 중국공산당 창건 95주년 기념일인 10월 1일이 향후 주목되는 일정이다. 또 10월 26일은 북한과 중국이 전통적으로 혈맹임을 과시하는 증표로 삼는 중국군의 6·25전쟁 참전 66주년 기념일이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6-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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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토요기획]“해병대 훈련도 맵네요… 北은 굶기면서 내모니까 더 죽을 맛”

    “팔각모 얼룩무늬 귀신 잡는 사나이 불타는 적진 향해 우리는 간다 내 겨레 이 평등 함께 지키며 적진을 뚫고 간다 우리는 해병….” 지난달 말, 땡볕이 쏟아지는 경기 김포시 해병대 2사단 병영에 우렁찬 해병대 군가가 울려 퍼졌다. 병영에서 군가를 부르는 것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지만, 이날 해병대 군복을 입고 노래를 부르는 이들은 남달랐다. 바로 북한에서 새로운 삶을 찾아 나선 탈북 대학생들이었다. 이곳에서 산을 하나 넘고 강을 하나 건너면 바로 북한 땅이다. 탈북 대학생들이 단체로 군 병영을 체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통일부 산하 남북하나재단이 김포 해병대 2사단과 공동으로 2박 3일간 남북 대학생들이 함께 어울리는 해병대 극기훈련 체험 프로그램을 만들어 진행한 것이다. 올해 참가자 35명 중 14명이 탈북민이었다. 14명 중 9명이 여성이었고, 9명 중 3명은 중년의 주부였다. 탈북민들이 해병대를 찾은 사연은 다양했다. “한국에 온 지 3년 됐어요. 대학에 다니면서 제가 너무 나태해진 것 같아요. 정신력을 다시 가다듬기 위해 지원했습니다.” 경기 부천시 가톨릭대에 다니는 한영실(가명·22) 씨의 참가 동기는 나태함에서의 탈출이었다. 부산가톨릭대에 다니는 38세 탈북여성 조민옥(가명) 씨는 아들 사랑의 사연을 담았다. “저는 한국에 와서 여기 남자를 만나 결혼했고 아들이 둘입니다. 지금 큰애가 중1인데 꼭 직업군인으로 키우고 싶어요. 둘째는 여섯 살이라 아직 어리지만 둘째에게도 직업군인이 되라고 할 겁니다. 마침 저 같은 아줌마 대학생도 해병대를 체험하게 해준다고 해서 왔습니다. 아들을 군대에 보내기 전에 제가 먼저 체험해 봐야겠어요.” 캠프에서 가장 열의를 불태우는 사람들도 바로 탈북 주부 대학생들이었다. “평안북도의 한 탄광마을에서 살았는데, 북한에선 20∼30kg 배낭을 메고 달리는 차에 매달렸어요. 이 정도야….” 최고령인 영동대 안선영(가명·41) 씨는 해병대 훈련에 대해 자신감을 나타냈다. “전 탈북하다가 북송돼 감옥에 두 번이나 갔었어요. 아무리 해병대라고 해도 북한 교화소보다 더할까요.”(조민옥 씨) 이들은 도착하자마자 운동장에서 진땀을 흠뻑 흘리며 해병대 PT체조를 했다. 해병대 캠프 입소 신고식을 호되게 치른 이들에게 진짜 고비는 둘째 날이었다. 아침 일찍 래펠 훈련과정을 끝낸 이들은 곧바로 산에 올라 유격훈련을 시작했다. 절벽 사이에 걸린 외줄, 두 줄, 세 줄 밧줄을 잡고 차례로 건너가야 했다. 점심을 먹은 뒤엔 군용차에 탑승해 해병대 체험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고무보트훈련(IBS)에 나섰다. 6명씩 조를 나누어 120kg짜리 고무보트를 수십 차례 들어올렸다 내렸다를 반복했다. 다시 갯벌을 포복으로 한참을 기어 다닌 끝에야 간신히 보트를 탈 수 있었다. 해병대 체험을 하는 누구라도 겪는 과정이다. 하루 종일 해병대 남녀 교관들의 불호령 속에 온 힘을 다 쏟아낸 탈북 대학생들은 기진맥진한 상태로 병영에 돌아왔다. 어둠이 깔리자 캠프파이어 시간이 다가왔다. 이깟 해병대쯤이야 하던 탈북 대학생들의 마음이 어떻게 변했을까. “저는 차라리 50kg을 메고 가라면 더 쉽겠어요. 갯벌을 기려고 하니 뻘이 나를 그러안고 놓지 않아요. 뻘이 제일 무서웠어요.”(조민옥 씨) “저도 북에서 비 오는 날 전기 철조망 밑을 쌀 배낭 메고 기어 건넌 적이 있어요. 이거 못 가면 네가 총에 맞아 죽는다, 이러면 할 수 있겠는데 지금은 안 되네요.”(안선영 씨) “제가 북에서 이래 봬도 100kg 마대를 메고 날랐던 여자예요. 못 믿겠다고요. 정말이에요. 요령을 알면 해요. 그런데 해병대 PT체조는 정말 힘들어요. 이것만 없다면 또 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한영실 씨) 이날 교육을 지켜봤던 해병대 2사단 8연대장 이재욱 대령은 “남쪽 학생들보다 탈북 대학생들이 더 적극적으로 임했고, 훈련을 받을수록 참가자들의 표정이 많이 긍정적으로 바뀌고 있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캠프파이어 시간에 조재현 유격교육대 교관이 “오늘 하루 종일 엄마를 그렇게 찾은 교육생”이라고 호출하자 참가자들은 하나같이 미소를 지으며 명지전문대 뮤지컬학과에 재학 중인 강나라 씨(19)를 지목했다. 북한에서 예술전문학교를 다니며 성악을 전공하던 그는 2년 전 엄마를 찾아 북한을 떠나 한 달도 안 돼 한국에 왔다. 채널A 인기 프로그램인 ‘이제 만나러 갑니다’(이만갑)를 통해 방송 출연도 했다. 그의 어머니 역시 평양음악무용대학을 졸업한 정통 무용수이고 한국에 와서 탈북 무용단을 만들었다. 강 씨는 “작년에 대안학교에 있을 때 특전사 체험 캠프도 갔었는데, 그땐 한 코스도 제대로 못했지만 올해는 래펠과 유격훈련을 제대로 받았다”며 “죽도록 힘들었지만 나도 할 수 있다는 정신을 느꼈다”고 말했다. 모두가 힘들어했던 것은 아니다. 건국대에 재학 중인 이청송(가명·27) 씨는 모든 훈련 과정을 유난히 어렵지 않게 소화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심지어 이 대령으로부터 “PT체조 자세를 보면 프로급”이라는 칭찬까지 받았다. 알고 보니 그는 북한군 포병부대에서 통신병으로 2년 반을 복무하고 탈북한 청년이었다. 북한군 출신에게 한국 해병대 훈련은 어떻게 느껴졌을까. 저녁 식사 시간에 물었더니 그가 씩 웃으며 대답한다. “쉽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그런데 한국 군대는 아무리 어려운 훈련을 해도 일단 밥은 먹여주지 않습니까. 북한군은 먹여 주지도 않고 내모니까 죽을 맛인 겁니다.” 이 씨는 한국에 온 뒤 직업군인이 되고 싶었다고 했다. 그래서 여기저기 알아봤지만 나이 때문에 끝내 꿈을 이루지 못했다. 27세가 넘은 나이로는 직업군인으로 시작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간접적으로나마 군 생활을 체험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 이번 캠프에서 탈북 대학생들과 함께 참가한 한국 대학생들은 20세 전후로 대개 대학 군사 관련 학과에 재학하고 있다. 한국관광대 군사과 2학년인 백현정 씨는 “처음에 올 때 북한 사람들과 어떻게 친해질지 걱정했는데 와서 군복을 입고 보니 누가 북한 사람인지 구분조차 되지 않았다”며 “그래도 힘든 훈련을 같이 하며 여러 북한 친구를 사귀어 좋았다”고 말했다. 남북하나재단은 “이번 프로그램의 목표는 한반도 통일 과정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수행할 남북 대학생들이 극한 상황 체험과 민주시민 교육을 통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어려운 상황을 함께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기르고 소통, 화합하게 하려는 데 있다”고 밝혔다. 둘째 날 격려차 현장을 찾은 손광주 남북하나재단 이사장은 “군 체험은 국가 안보를 현장에서 체험하는 데 가장 효과적이며 이런 훈련을 마치면 국가 안보관이 관념에서 현실로 옮겨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군에 입대하는 탈북 청년은 거의 없다는 점이 아쉬운 대목이다. 20세가 넘어 입국한 남성은 탈북자라는 게 쉽게 드러나기 때문에, 이를 꺼려 군에 가려고 하지 않는다. 통일부에 따르면 3월 현재 한국에 입국한 전체 탈북민은 2만9137명이고 20세 미만 남성 탈북자는 2155명이다. 이 중 올해 2월에야 공군 병장으로 만기 제대한 탈북자 1호 군 복무자가 나왔다. 탈북 청년들이 군에 입대하지 않는 이유는 뭘까. 과거엔 군인으로 전투에 나섰을 때 가족과 친구가 있는 북한군을 향해 총을 겨눌 수 있을까 하는 의문과 보안 문제 등으로 탈북민의 입대가 차단됐다. 하지만 2010년 1월에 개정된 병역법 64조 1항 2호는 ‘군사분계선 이북 지역에서 이주하여 온 사람은 원할 경우 병역을 면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탈북민도 입대를 원한다면 언제든지 입대가 가능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탈북 청년들이 군에 가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남쪽에서 태어나도 적응하기 힘든데 전혀 다른 문화 속에서 살다 온 탈북민이 편견 없이 군대 문화에 적응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다. 올해 전역한 1호 군 복무 탈북민은 부대 직속 상관만 유일하게 그가 탈북민인 것을 알고 있었다. 10세부터 한국에서 학교를 다녀 동료들조차 전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완벽하게 정착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군에 가고 싶어도 못 가는 탈북 청년들도 있다. 남북하나재단 관계자는 “탈북 청년들은 입국 직후 하나원에서 정착교육을 받을 때 병역 면제 신청서를 받고 별다른 생각 없이 사인을 하는데, 이후엔 이를 되돌릴 수 없다”고 말했다. 대량 탈북이 시작된 지 20년이 넘었다. 탈북민들은 이미 한국 사회의 다양한 직종에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넘기 힘든 벽도 있다. 경찰이 된 탈북민은 한 명도 없다. 정규 대학을 나와 정식 교사가 된 탈북자는 올해 처음 나왔다. 학부모들이 탈북민에겐 자녀를 맡기려 하지 않아 그는 극도로 신분 노출을 꺼린다. 군도 여전히 탈북민이 넘기 어려운 높은 장벽의 하나로 보인다.김포=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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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中관영매체 “한국에 정치-경제적 제재해야”

    한국과 미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한반도 배치 결정에 중국이 강력하게 반발하면서 한중관계는 당분간 시련과 도전의 시기를 맞게 됐다. 중국 외교부가 8일 한미 양국의 결정에 강력히 반대한다고 밝히자 관영 환추(環球)시보는 기다렸다는 듯 중국이 취할 수 있는 보복 조치를 예시하고 나섰다. 환추시보는 이날 오후 ‘사드에 반대해 행동이 있어야 한다’는 제목의 사설에서 사실상 한국에 정치·경제적 제재를 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문은 “사드가 배치되는 행정구역이나 배치에 참여하는 기업 그리고 서비스 기관과 다시는 경제 관계 및 교류를 하지 말고 그들의 제품이 중국 시장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사드 배치를 적극 지지하는 한국 정계 인사의 중국 진입을 막고 가족의 기업도 제재해야 한다”고 위협했다. 신문은 이어 “북한을 제재하는 것이 동북아에 미치는 영향을 다시 평가해 북한 제재와 사드 배치 후의 지역 균형을 다시 고려해야 한다”고 중국 정부에 제안했다. 한미의 사드 배치를 빌미로 북한에 대한 중국의 재재를 완화시켜야 한다고 주문한 것이다. 특히 “앞으로 한국의 외교 및 전략적 독립성은 크게 줄어들어 ‘일본화’가 진행될 것이고 이는 완전히 중국이 바라지 않는 것”이라며 “이런 추세에 중국은 어쩔 수 없이 실사구시(實事求是)에 따라 대응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밀월 관계를 바탕으로 순항했던 한중관계의 악화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다. 신문은 사설 머리에 “한미가 이날 사드 배치 결정을 발표한 것은 남중국해 관련 헤이그 상설중재재판소의 판결을 앞두고 중국 외교력이 남중국해에 쏠려 있는 것을 이용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중국과 러시아가 공동으로 사드가 미칠 영향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민해방군은 사드에 대해 미사일을 조준할 준비를 해야 한다고까지 했다. 이에 앞서 중국 외교부는 이날 오전 11시 한국 국방부가 사드의 한반도 배치를 공식 발표하자마자 미리 준비한 성명을 홈페이지에 올리는 등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움직였다. 훙레이(洪磊) 외교부 대변인은 “중국의 안전과 전략적 이익에 손해를 주고 지역 정세를 복잡하게 만드는 사드 배치 절차를 즉시 중단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말했다. 이어 “사드 배치에 대응해 앞으로 대사 초치 이외에 한국에 대한 추가 조치가 있느냐”는 질문을 받자 “사드 배치 절차 진행을 중단할 것을 강력히 요청했다”고만 대답했다. 어떤 조치를 취하겠다고 대답하지는 않았지만 ‘추가 조치가 없을 것’이라고도 말하지 않은 것이다. 중국 당국은 일단 관영 매체를 통해 첫 단계의 ‘구두 협박’에 나선 뒤 한국 측의 반응을 떠보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중국 역시 정치·경제적으로 한국과의 관계 유지가 전략적으로 중요한 데다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을 막는 방어용 무기인 사드 배치에 마냥 반대할 수 없다는 주장이 중화권 학자들 사이에서 나오는 것도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하지만 중국이 대중(對中) 수출 의존도가 26%에 달하는 한국의 경제적 취약성을 약점으로 삼아 한국 수출품의 통관 및 검역을 강화하는 등 경제 제재에 나설 가능성은 충분하다. 중국은 2000년 중국산 마늘 수입을 제한하자 한국산 휴대전화와 폴리에틸렌 수입을 전면 중단했다. 대만에서 민진당 출신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이 집권한 뒤 본토 관광객이 30%가량 줄어든 것처럼 한국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遊客·유커)을 줄이려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러시아 외교부는 이날 홈페이지에 성명을 올려 “심각한 우려와 반대를 표명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일본 하기우다 고이치(萩生田光一) 관방 부장관은 “사드 배치로 양국 간 협력이 진전되는 것은 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기여하는 것이기 때문에 적극 환영한다”고 밝혔다. 박형중 통일연구원 부원장은 “사드 배치와 한미동맹 강화는 북한에 위협이지만 단기적으로 미중 갈등이 심해지면서 중국이 북한을 감싸 안을 수밖에 없고, 또 한국 내 찬반 논란도 커지는 상황은 북한에 크게 나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베이징=구자룡 bonhong@donga.com /도쿄=서영아 특파원 /주성하 기자}

    • 2016-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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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사이]북한 매춘과 마약의 충격 실태

    이 글은 북한의 가장 어두침침한 곳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방인들의 접근이 허용되지 않고 오직 현지인들만 알 수 있는 북한의 그 어두운 곳에선 매춘과 마약이 일상화돼 있다. 북한에 대한 이미지가 평양에만 한정된 사람들에겐 어쩌면 충격적일 수도 있다. 지난해 여름 북한 제2의 도시 함북 청진을 떠나 탈북한 A 씨는 그곳의 매춘 실태에 대해 이렇게 증언했다. “오후 10시가 넘어 수남시장에서 도립극장까지 중심도로 옆 작은 2차로를 걸어오다 보면 어둠 속에 여성들이 쭉 늘어서 있습니다. 모두 몸 팔러 나온 여성들이죠. 10리(약 4km) 넘는 구간에 이런 여성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셀 수 없이 많아요. 가격은 인물과 나이에 따라 결정됩니다. 일반적으로 중국돈 50위안(약 8700원)인데 40대 이상이면 30위안, 고운 처녀는 100위안을 받기도 합니다. 흥정이 이뤄지면 인근 가정집에 들어갑니다. 장소를 빌려주고 세를 받는 집도 많습니다. 남자가 기분 내키면 술과 안주를 사와 함께 먹기도 합니다. 콘돔 그런 건 없습니다. 북한 남자들 아직 그걸 모릅니다. 여성이 피임수술을 할 뿐이죠. 검사를 잘 안 하니까 매독 같은 성병이 정말 많이 퍼져 있습니다.” 중국돈 50위안이면 한 명이 한 달 먹고살 식량을 구입할 수 있는 꽤 큰돈이다. 여성들은 이 돈을 받아 집세를 내고, 수시로 단속한다며 접근하는 보안원(경찰)에게 뇌물도 준다. 매춘은 거리에서만 벌어지지 않는다. 요즘 북한엔 ‘카라오케이’라고 불리는 노래방이 많아지고 있다. 2000년대 중반 번창하다가 단속 때문에 위축됐는데 요즘 다시 인기를 얻고 있다. 이곳에서 노래만 부르면 1시간에 중국돈 3위안이다. 그런데 ‘가수’라고 불리는 여성을 부르면 시간당 4위안이 추가된다. 노래방 도우미인 셈이다. “매춘하는 여자들은 대개 마약을 하고 나옵니다. 얼음이라고 부르는 마약(필로폰)은 1g에 50위안 정도인데 이 정도면 10번 넘게 흡입할 수 있습니다. 마약을 해야 밤에 자지 않고 버틸 수 있을 뿐 아니라 낯선 남자 앞에서도 부끄러움을 잊는다고 하더군요.” 북한에서 필로폰(히로뽕)은 과거 함흥 지역에서 만들어졌지만 제조기술이 이젠 청진 등 다른 도시들에도 퍼졌다. 아주 작은 필로폰 덩이를 은박지에 올려놓고 아래에 불을 붙이면 수은과 흡사한 액체로 변해 돌돌 구르면서 연기를 내뿜는데, 이걸 빨대로 흡입한다. 김일성 얼굴이 들어간 빳빳한 북한 지폐를 돌돌 말면 빨대로는 제격이라고 한다. 가격이 비싸기 때문에 마약은 보통 중산층 이상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그런데 얼음의 중독성은 생각보다 낮은 것 같다. A 씨도 북에선 오랫동안 필로폰을 흡입했지만 한국에 오니 그게 없어도 아무 영향이 없다고 했다. 그는 담배보다 훨씬 끊기 쉽다고 말했다. 실제로 내가 만난 최근 탈북자 중에 북에서 얼음을 해봤다는 사람이 꽤 있지만 이들 중 중독 때문에 남쪽에서 고생하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얼음은 의외로 여성들이 더 많이 합니다. 돈을 버는 사람이 주로 여성이다 보니 가정 경제권이 여성에게 완전히 넘어갔기 때문이죠. 청진에는 여자를 도와 밥을 해주고 애를 보는 남자들이 절반은 될 겁니다. 일할 수 있는 직장이 사라졌는데 장마당에서 장사를 하려면 아줌마들이 더 잘하지…. 남자들이 낄 곳이 없습니다. 남자들은 아내가 장사할 때 짐을 날라 주고, 보호해 주고 그런 역할만 있어도 다행인 거죠.” 20년 전에 비해 완전히 달라진 풍경이다. 북한에는 가부장적 사고방식이 오랫동안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었다. 6·25전쟁을 겪은 뒤 남자가 귀해지면서 여자가 절대복종하게 됐다는 설도 있다. 청진이 있는 함경도 지역은 남성우월주의가 특히 강한 곳이다.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시기에만 해도 남자들은 돈도 못 벌면서 아내에게 큰소리를 치고 살았다. 하지만 지금은 가정에서 큰소리치는 남성이 크게 줄었다고 한다. 이 글은 A 씨의 증언에 기초해 쓰는 것이지만, 다른 탈북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신의주나 원산 등 북한의 다른 주요 도시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남쪽 사람들에게 북한의 이미지가 대개 평양에 한정돼 있는 것은 이방인들이 가서 사진 찍을 수 있는 곳은 주로 그곳뿐이고 방문 시기조차 대개 특별행사 기간으로 한정됐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평양 시민들은 태어나서부터 거대한 세트장에서 사는 것이 적합하도록 군인처럼 질서정연하게 훈련돼 있다는 사실은 안다. 그러나 그런 평양도 가로등이 꺼지고, 도시가 어둠에 묻히면 많은 집에서 마약 연기가 솔솔 피어오르고, 매춘하는 여성들이 거리를 유령처럼 떠돈다는 것은 잘 모른다. 오늘밤도 그럴 것이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6-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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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민무력부→무력성’ 급 낮춘 김정은

    김정은이 체제를 공고화하는 과정에서 군부의 색채를 걷어내고 주민을 위하는 지도자 이미지를 강조하고 나섰다. 이 과정에서 북한 군부의 위상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지난달 29일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3기 4차 회의에서 북한 인민무력부는 인민무력성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이 사실은 북한 조선중앙TV가 2일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김정은 국무위원장 추대 평양시 군민경축대회’를 녹화 중계하는 과정에 박영식 인민무력부장을 ‘인민무력상’으로 호칭하면서 알려졌다. 북한에서 ‘부(部)’는 ‘성(省)’보다 위상이 더 높다. 체제 수호의 핵심기관인 인민무력부, 국가안전보위부, 인민보안부는 부로 불리며 최고기관인 국방위원회에 소속돼 있었고, ‘성’으로 불리는 나머지 정부 기관들은 내각 산하에 소속돼 있다. 통일부는 4일 “인민무력성이 내각 소속으로 변경됐는지, 명칭만 변경되고 국방위원회에서 이름이 바뀐 국무위원회 소속으로 남아 있는지에 대해선 추가 확인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북한은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의 국가 기관 승격은 신문을 통해 공지했지만 인민무력부의 명칭 변경에 대해선 공고하지 않았다. 야전 군인들도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 국무위원회 부위원장에 선출된 황병서 총정치국장은 노동당 조직지도부 군 담당 부부장을 오랫동안 지낸 사실상 당 소속원이다. 인민무력상인 박영식도 총정치국 조직부국장 출신으로 황병서의 심복인 정치군인이다. 반면 야전군인은 수시로 숙청되고 있다. 김정은 집권 직후 2인자로 꼽혔던 이영호 총참모장(숙청), 현영철 총참모장(처형), 이영길 총참모장(강등) 등이 대표적이다. 김정은 집권 이후 인민무력부장은 6번, 총참모장은 5번 교체했다. 야전군 출신 북한군 실세의 재임 기간이 평균 10개월에 불과한 것이다. 김갑식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김정일 시대 선군정치 과정에 거대한 정치 및 이권 권력이 된 군부의 힘을 빼고 당 중심의 통치 질서를 회복하는 과정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권력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김정은이 군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불거진 현상일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도 제기된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6-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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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 인민무력부장→인민무력상으로 개칭”

    북한이 우리의 국방장관에 해당하는 ‘인민무력부장’ 직함을 ‘인민무력상’으로 바꾼 것으로 드러났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2일 평양에서 열린 ‘군민 경축대회’ 행사 소식을 전하면서 참석자인 박영식을 ‘인민무력상 육군대장’이라는 직함으로 소개했다. 이 같은 변화는 북한이 지난달 29일 개최한 최고인민회의에서 국방위원회를 국무위원회로 개칭하면서 김정은 제1국방위원장을 국무위원장으로 추대한 것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박영식을 인민무력상으로 부른 점에서 인민무력부가 인민무력성으로 이름이 바뀌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정부 당국자는 3일 “추가 확인이 필요하겠지만 과거 내각이 아닌 별도의 체제수호 첨병 기관으로 우대하던 인민무력부를 국방위원회 산하 기관에서 내각의 하나로 위상을 축소시켰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말했다. 북한은 1998년 최고인민회의 10기 1차 회의에서 헌법 개정을 통해 정무원을 내각으로 바꾸면서 외교부를 외무성 등으로 명칭을 바꾼 바 있다.주성하기자 zsh75@donga.com}

    • 2016-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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