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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군 당국이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의 배치 결정 과정에서 비밀주의와 뒷북 대처로 국가적 갈등과 혼란을 자초했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국민적 관심과 지역 이해가 걸린 중대 안보사안을 사전 정책조율과 주민 설득작업 없이 밀어붙이는 바람에 근거 없는 ‘사드 괴담’이 무차별적으로 확산되는 등 큰 후유증을 남겼기 때문이다. 정부와 군은 6월 말 사드를 경북 성주지역에 배치하기로 결정하고도 이를 비공개에 부쳤다. 8일 한미 양국이 사드 배치 결정을 발표한 자리에서도 군은 보고서 작성 등 절차적 이유를 들어 배치 장소를 함구해 의혹과 불신을 키웠다. 하지만 언론이 경북 칠곡 인근의 성주 지역을 사드 최적지로 거론하자 군은 13일 기습적으로 공식 브리핑을 열어 사드 배치 지역을 최종 발표했다. 그 과정에서도 발표와 취소를 번복하는 해프닝을 벌여 스스로 신뢰를 실추시켰다. 박근혜 대통령은 14일 청와대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주재한 자리에서 “사드 배치 과정이 워낙 위중한 국가 안위와 국민 안전이 달린 문제라 공개적으로 논의를 하는 게 쉽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한미 양국이 2월 초 사드 논의에 착수한 뒤 최종 발표 때까지 정부와 군이 단 한 차례도 그 과정을 국민에게 공개하지 않은 것은 ‘정책 불통’으로 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많다. 사드 배치 지역 발표에 앞서 레이더 전자파의 유해성 논란과 사드의 안보적 가치 등에 대해 치밀하고 논리적인 대국민 설득을 통해 국론을 결집시키는 작업이 선행됐어야 했다는 얘기다. 또 사드 배치 지역 주민들의 민심을 달래는 다양한 보상책과 전자파로부터 주민 안전과 환경을 보호하는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정책 대응이 사전에 필요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드 전자파 유해설이 확산되자 군은 언론에 패트리엇(PAC-2) 미사일 부대와 탄도탄 조기경보레이더 기지를 공개하는 등 진화에 나섰지만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비판이 지배적이다. 이선우 한국갈등학회 회장은 “지금부터라도 지역 공론화 과정을 이행하고 전자파 문제 등 갈등 사안은 전문가와 주민이 허심탄회하게 논의하는 자리를 만들어 적극 해소해야 한다”고 말했다.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장택동·주성하 기자}
북한은 미국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을 인권 탄압의 주모자로 지목해 제재 대상자로 올린 데 항의해 북-미 간 뉴욕채널을 완전히 차단했다고 11일 발표했다. 북한 외무성이 8일 성명에서 “제재 철회를 미국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에 대응하는 실제 행동들을 단계별로 취해 나가게 된다”고 선언한 데 따른 첫 번째 조치인 셈이다. 북한은 통보문에서 북-미 관계에서의 모든 문제를 ‘전시법’에 따라 처리한다는 것과 현재 억류된 미국인 문제도 예외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북한은 현재 억류 중인 한국계 미국인 김동철 씨와 대학생 오토 웜비어 씨에게 체제전복 혐의로 징역 10년형과 15년형을 각각 선고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한국이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를 결정하고 중국이 이에 강력히 반발하는 국면이지만 북-중 관계는 급작스럽게 가까워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북한과 중국은 11일 ‘북-중 우호협조 및 상호원조조약(약칭 북-중 조약)’ 체결 55주년을 맞았지만 축전을 교환하는데 그쳤다. 루캉(陸慷)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북-중 조약 체결 55주년을 기념하는 활동이나 북-중 고위층 간의 상호방문 등이 있었느냐”는 질문에 “중-조(북한) 쌍방은 이미 상호축전(발송) 방식으로 (조약체결 55주년을) 기념했다”고 대답했다. 또 ‘양측 지도자 사이에서도 축전 교환이 있었느냐’는 질문에는 축전 교환이 다양한 레벨에서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북-중 조약은 김일성 주석이 수상을 지내던 시절 저우언라이(周恩來) 전 총리와 1961년 7월 11일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체결해 그해 9월 10일 발효시킨 조약이다. ‘전쟁 자동개입’ 조항이 핵심이다. 북한과 중국은 오랜 기간 ‘북중 혈맹’의 상징으로 여겨져 온 이 조약의 체결일을 계기로 ‘ 북-중 혈맹’, ‘북-중 친선’을 부각해왔다. 특히 5년, 10년 단위의 ‘꺾어지는 해’에는 고위급 상호 방문, 대규모 축하 사절단 파견 등을 보내 양측의 혈맹관계를 크게 선전했지만 올해는 유엔의 대북 제재 속에 양국 관계가 소원해졌다. 조약 체결 50주년이던 2011년에는 양형섭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과 장더장(張德江) 중국 부총리 겸 정치국 위원이 각각 중국과 북한에 대표단으로 파견돼 우애를 과시했던 것과는 온도차가 큰 셈이다. 하지만 한국 정부의 사드 배치 결정과 이에 대한 반발로 중국이 대북 제재를 완화하고 북한 끌어안기에 나설 경우 북-중 관계가 다소 진전될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양국 간 고위급 대표단 파견으로 북-중 관계 복원을 시도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중국 홍군 창건 89주년 기념일인 8월 1일, 중국공산당 창건 95주년 기념일인 10월 1일이 향후 주목되는 일정이다. 또 10월 26일은 북한과 중국이 전통적으로 혈맹임을 과시하는 증표로 삼는 중국군의 6·25전쟁 참전 66주년 기념일이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팔각모 얼룩무늬 귀신 잡는 사나이 불타는 적진 향해 우리는 간다 내 겨레 이 평등 함께 지키며 적진을 뚫고 간다 우리는 해병….” 지난달 말, 땡볕이 쏟아지는 경기 김포시 해병대 2사단 병영에 우렁찬 해병대 군가가 울려 퍼졌다. 병영에서 군가를 부르는 것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지만, 이날 해병대 군복을 입고 노래를 부르는 이들은 남달랐다. 바로 북한에서 새로운 삶을 찾아 나선 탈북 대학생들이었다. 이곳에서 산을 하나 넘고 강을 하나 건너면 바로 북한 땅이다. 탈북 대학생들이 단체로 군 병영을 체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통일부 산하 남북하나재단이 김포 해병대 2사단과 공동으로 2박 3일간 남북 대학생들이 함께 어울리는 해병대 극기훈련 체험 프로그램을 만들어 진행한 것이다. 올해 참가자 35명 중 14명이 탈북민이었다. 14명 중 9명이 여성이었고, 9명 중 3명은 중년의 주부였다. 탈북민들이 해병대를 찾은 사연은 다양했다. “한국에 온 지 3년 됐어요. 대학에 다니면서 제가 너무 나태해진 것 같아요. 정신력을 다시 가다듬기 위해 지원했습니다.” 경기 부천시 가톨릭대에 다니는 한영실(가명·22) 씨의 참가 동기는 나태함에서의 탈출이었다. 부산가톨릭대에 다니는 38세 탈북여성 조민옥(가명) 씨는 아들 사랑의 사연을 담았다. “저는 한국에 와서 여기 남자를 만나 결혼했고 아들이 둘입니다. 지금 큰애가 중1인데 꼭 직업군인으로 키우고 싶어요. 둘째는 여섯 살이라 아직 어리지만 둘째에게도 직업군인이 되라고 할 겁니다. 마침 저 같은 아줌마 대학생도 해병대를 체험하게 해준다고 해서 왔습니다. 아들을 군대에 보내기 전에 제가 먼저 체험해 봐야겠어요.” 캠프에서 가장 열의를 불태우는 사람들도 바로 탈북 주부 대학생들이었다. “평안북도의 한 탄광마을에서 살았는데, 북한에선 20∼30kg 배낭을 메고 달리는 차에 매달렸어요. 이 정도야….” 최고령인 영동대 안선영(가명·41) 씨는 해병대 훈련에 대해 자신감을 나타냈다. “전 탈북하다가 북송돼 감옥에 두 번이나 갔었어요. 아무리 해병대라고 해도 북한 교화소보다 더할까요.”(조민옥 씨) 이들은 도착하자마자 운동장에서 진땀을 흠뻑 흘리며 해병대 PT체조를 했다. 해병대 캠프 입소 신고식을 호되게 치른 이들에게 진짜 고비는 둘째 날이었다. 아침 일찍 래펠 훈련과정을 끝낸 이들은 곧바로 산에 올라 유격훈련을 시작했다. 절벽 사이에 걸린 외줄, 두 줄, 세 줄 밧줄을 잡고 차례로 건너가야 했다. 점심을 먹은 뒤엔 군용차에 탑승해 해병대 체험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고무보트훈련(IBS)에 나섰다. 6명씩 조를 나누어 120kg짜리 고무보트를 수십 차례 들어올렸다 내렸다를 반복했다. 다시 갯벌을 포복으로 한참을 기어 다닌 끝에야 간신히 보트를 탈 수 있었다. 해병대 체험을 하는 누구라도 겪는 과정이다. 하루 종일 해병대 남녀 교관들의 불호령 속에 온 힘을 다 쏟아낸 탈북 대학생들은 기진맥진한 상태로 병영에 돌아왔다. 어둠이 깔리자 캠프파이어 시간이 다가왔다. 이깟 해병대쯤이야 하던 탈북 대학생들의 마음이 어떻게 변했을까. “저는 차라리 50kg을 메고 가라면 더 쉽겠어요. 갯벌을 기려고 하니 뻘이 나를 그러안고 놓지 않아요. 뻘이 제일 무서웠어요.”(조민옥 씨) “저도 북에서 비 오는 날 전기 철조망 밑을 쌀 배낭 메고 기어 건넌 적이 있어요. 이거 못 가면 네가 총에 맞아 죽는다, 이러면 할 수 있겠는데 지금은 안 되네요.”(안선영 씨) “제가 북에서 이래 봬도 100kg 마대를 메고 날랐던 여자예요. 못 믿겠다고요. 정말이에요. 요령을 알면 해요. 그런데 해병대 PT체조는 정말 힘들어요. 이것만 없다면 또 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한영실 씨) 이날 교육을 지켜봤던 해병대 2사단 8연대장 이재욱 대령은 “남쪽 학생들보다 탈북 대학생들이 더 적극적으로 임했고, 훈련을 받을수록 참가자들의 표정이 많이 긍정적으로 바뀌고 있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캠프파이어 시간에 조재현 유격교육대 교관이 “오늘 하루 종일 엄마를 그렇게 찾은 교육생”이라고 호출하자 참가자들은 하나같이 미소를 지으며 명지전문대 뮤지컬학과에 재학 중인 강나라 씨(19)를 지목했다. 북한에서 예술전문학교를 다니며 성악을 전공하던 그는 2년 전 엄마를 찾아 북한을 떠나 한 달도 안 돼 한국에 왔다. 채널A 인기 프로그램인 ‘이제 만나러 갑니다’(이만갑)를 통해 방송 출연도 했다. 그의 어머니 역시 평양음악무용대학을 졸업한 정통 무용수이고 한국에 와서 탈북 무용단을 만들었다. 강 씨는 “작년에 대안학교에 있을 때 특전사 체험 캠프도 갔었는데, 그땐 한 코스도 제대로 못했지만 올해는 래펠과 유격훈련을 제대로 받았다”며 “죽도록 힘들었지만 나도 할 수 있다는 정신을 느꼈다”고 말했다. 모두가 힘들어했던 것은 아니다. 건국대에 재학 중인 이청송(가명·27) 씨는 모든 훈련 과정을 유난히 어렵지 않게 소화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심지어 이 대령으로부터 “PT체조 자세를 보면 프로급”이라는 칭찬까지 받았다. 알고 보니 그는 북한군 포병부대에서 통신병으로 2년 반을 복무하고 탈북한 청년이었다. 북한군 출신에게 한국 해병대 훈련은 어떻게 느껴졌을까. 저녁 식사 시간에 물었더니 그가 씩 웃으며 대답한다. “쉽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그런데 한국 군대는 아무리 어려운 훈련을 해도 일단 밥은 먹여주지 않습니까. 북한군은 먹여 주지도 않고 내모니까 죽을 맛인 겁니다.” 이 씨는 한국에 온 뒤 직업군인이 되고 싶었다고 했다. 그래서 여기저기 알아봤지만 나이 때문에 끝내 꿈을 이루지 못했다. 27세가 넘은 나이로는 직업군인으로 시작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간접적으로나마 군 생활을 체험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 이번 캠프에서 탈북 대학생들과 함께 참가한 한국 대학생들은 20세 전후로 대개 대학 군사 관련 학과에 재학하고 있다. 한국관광대 군사과 2학년인 백현정 씨는 “처음에 올 때 북한 사람들과 어떻게 친해질지 걱정했는데 와서 군복을 입고 보니 누가 북한 사람인지 구분조차 되지 않았다”며 “그래도 힘든 훈련을 같이 하며 여러 북한 친구를 사귀어 좋았다”고 말했다. 남북하나재단은 “이번 프로그램의 목표는 한반도 통일 과정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수행할 남북 대학생들이 극한 상황 체험과 민주시민 교육을 통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어려운 상황을 함께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기르고 소통, 화합하게 하려는 데 있다”고 밝혔다. 둘째 날 격려차 현장을 찾은 손광주 남북하나재단 이사장은 “군 체험은 국가 안보를 현장에서 체험하는 데 가장 효과적이며 이런 훈련을 마치면 국가 안보관이 관념에서 현실로 옮겨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군에 입대하는 탈북 청년은 거의 없다는 점이 아쉬운 대목이다. 20세가 넘어 입국한 남성은 탈북자라는 게 쉽게 드러나기 때문에, 이를 꺼려 군에 가려고 하지 않는다. 통일부에 따르면 3월 현재 한국에 입국한 전체 탈북민은 2만9137명이고 20세 미만 남성 탈북자는 2155명이다. 이 중 올해 2월에야 공군 병장으로 만기 제대한 탈북자 1호 군 복무자가 나왔다. 탈북 청년들이 군에 입대하지 않는 이유는 뭘까. 과거엔 군인으로 전투에 나섰을 때 가족과 친구가 있는 북한군을 향해 총을 겨눌 수 있을까 하는 의문과 보안 문제 등으로 탈북민의 입대가 차단됐다. 하지만 2010년 1월에 개정된 병역법 64조 1항 2호는 ‘군사분계선 이북 지역에서 이주하여 온 사람은 원할 경우 병역을 면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탈북민도 입대를 원한다면 언제든지 입대가 가능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탈북 청년들이 군에 가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남쪽에서 태어나도 적응하기 힘든데 전혀 다른 문화 속에서 살다 온 탈북민이 편견 없이 군대 문화에 적응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다. 올해 전역한 1호 군 복무 탈북민은 부대 직속 상관만 유일하게 그가 탈북민인 것을 알고 있었다. 10세부터 한국에서 학교를 다녀 동료들조차 전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완벽하게 정착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군에 가고 싶어도 못 가는 탈북 청년들도 있다. 남북하나재단 관계자는 “탈북 청년들은 입국 직후 하나원에서 정착교육을 받을 때 병역 면제 신청서를 받고 별다른 생각 없이 사인을 하는데, 이후엔 이를 되돌릴 수 없다”고 말했다. 대량 탈북이 시작된 지 20년이 넘었다. 탈북민들은 이미 한국 사회의 다양한 직종에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넘기 힘든 벽도 있다. 경찰이 된 탈북민은 한 명도 없다. 정규 대학을 나와 정식 교사가 된 탈북자는 올해 처음 나왔다. 학부모들이 탈북민에겐 자녀를 맡기려 하지 않아 그는 극도로 신분 노출을 꺼린다. 군도 여전히 탈북민이 넘기 어려운 높은 장벽의 하나로 보인다.김포=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한국과 미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한반도 배치 결정에 중국이 강력하게 반발하면서 한중관계는 당분간 시련과 도전의 시기를 맞게 됐다. 중국 외교부가 8일 한미 양국의 결정에 강력히 반대한다고 밝히자 관영 환추(環球)시보는 기다렸다는 듯 중국이 취할 수 있는 보복 조치를 예시하고 나섰다. 환추시보는 이날 오후 ‘사드에 반대해 행동이 있어야 한다’는 제목의 사설에서 사실상 한국에 정치·경제적 제재를 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문은 “사드가 배치되는 행정구역이나 배치에 참여하는 기업 그리고 서비스 기관과 다시는 경제 관계 및 교류를 하지 말고 그들의 제품이 중국 시장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사드 배치를 적극 지지하는 한국 정계 인사의 중국 진입을 막고 가족의 기업도 제재해야 한다”고 위협했다. 신문은 이어 “북한을 제재하는 것이 동북아에 미치는 영향을 다시 평가해 북한 제재와 사드 배치 후의 지역 균형을 다시 고려해야 한다”고 중국 정부에 제안했다. 한미의 사드 배치를 빌미로 북한에 대한 중국의 재재를 완화시켜야 한다고 주문한 것이다. 특히 “앞으로 한국의 외교 및 전략적 독립성은 크게 줄어들어 ‘일본화’가 진행될 것이고 이는 완전히 중국이 바라지 않는 것”이라며 “이런 추세에 중국은 어쩔 수 없이 실사구시(實事求是)에 따라 대응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밀월 관계를 바탕으로 순항했던 한중관계의 악화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다. 신문은 사설 머리에 “한미가 이날 사드 배치 결정을 발표한 것은 남중국해 관련 헤이그 상설중재재판소의 판결을 앞두고 중국 외교력이 남중국해에 쏠려 있는 것을 이용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중국과 러시아가 공동으로 사드가 미칠 영향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민해방군은 사드에 대해 미사일을 조준할 준비를 해야 한다고까지 했다. 이에 앞서 중국 외교부는 이날 오전 11시 한국 국방부가 사드의 한반도 배치를 공식 발표하자마자 미리 준비한 성명을 홈페이지에 올리는 등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움직였다. 훙레이(洪磊) 외교부 대변인은 “중국의 안전과 전략적 이익에 손해를 주고 지역 정세를 복잡하게 만드는 사드 배치 절차를 즉시 중단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말했다. 이어 “사드 배치에 대응해 앞으로 대사 초치 이외에 한국에 대한 추가 조치가 있느냐”는 질문을 받자 “사드 배치 절차 진행을 중단할 것을 강력히 요청했다”고만 대답했다. 어떤 조치를 취하겠다고 대답하지는 않았지만 ‘추가 조치가 없을 것’이라고도 말하지 않은 것이다. 중국 당국은 일단 관영 매체를 통해 첫 단계의 ‘구두 협박’에 나선 뒤 한국 측의 반응을 떠보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중국 역시 정치·경제적으로 한국과의 관계 유지가 전략적으로 중요한 데다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을 막는 방어용 무기인 사드 배치에 마냥 반대할 수 없다는 주장이 중화권 학자들 사이에서 나오는 것도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하지만 중국이 대중(對中) 수출 의존도가 26%에 달하는 한국의 경제적 취약성을 약점으로 삼아 한국 수출품의 통관 및 검역을 강화하는 등 경제 제재에 나설 가능성은 충분하다. 중국은 2000년 중국산 마늘 수입을 제한하자 한국산 휴대전화와 폴리에틸렌 수입을 전면 중단했다. 대만에서 민진당 출신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이 집권한 뒤 본토 관광객이 30%가량 줄어든 것처럼 한국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遊客·유커)을 줄이려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러시아 외교부는 이날 홈페이지에 성명을 올려 “심각한 우려와 반대를 표명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일본 하기우다 고이치(萩生田光一) 관방 부장관은 “사드 배치로 양국 간 협력이 진전되는 것은 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기여하는 것이기 때문에 적극 환영한다”고 밝혔다. 박형중 통일연구원 부원장은 “사드 배치와 한미동맹 강화는 북한에 위협이지만 단기적으로 미중 갈등이 심해지면서 중국이 북한을 감싸 안을 수밖에 없고, 또 한국 내 찬반 논란도 커지는 상황은 북한에 크게 나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베이징=구자룡 bonhong@donga.com /도쿄=서영아 특파원 /주성하 기자}

이 글은 북한의 가장 어두침침한 곳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방인들의 접근이 허용되지 않고 오직 현지인들만 알 수 있는 북한의 그 어두운 곳에선 매춘과 마약이 일상화돼 있다. 북한에 대한 이미지가 평양에만 한정된 사람들에겐 어쩌면 충격적일 수도 있다. 지난해 여름 북한 제2의 도시 함북 청진을 떠나 탈북한 A 씨는 그곳의 매춘 실태에 대해 이렇게 증언했다. “오후 10시가 넘어 수남시장에서 도립극장까지 중심도로 옆 작은 2차로를 걸어오다 보면 어둠 속에 여성들이 쭉 늘어서 있습니다. 모두 몸 팔러 나온 여성들이죠. 10리(약 4km) 넘는 구간에 이런 여성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셀 수 없이 많아요. 가격은 인물과 나이에 따라 결정됩니다. 일반적으로 중국돈 50위안(약 8700원)인데 40대 이상이면 30위안, 고운 처녀는 100위안을 받기도 합니다. 흥정이 이뤄지면 인근 가정집에 들어갑니다. 장소를 빌려주고 세를 받는 집도 많습니다. 남자가 기분 내키면 술과 안주를 사와 함께 먹기도 합니다. 콘돔 그런 건 없습니다. 북한 남자들 아직 그걸 모릅니다. 여성이 피임수술을 할 뿐이죠. 검사를 잘 안 하니까 매독 같은 성병이 정말 많이 퍼져 있습니다.” 중국돈 50위안이면 한 명이 한 달 먹고살 식량을 구입할 수 있는 꽤 큰돈이다. 여성들은 이 돈을 받아 집세를 내고, 수시로 단속한다며 접근하는 보안원(경찰)에게 뇌물도 준다. 매춘은 거리에서만 벌어지지 않는다. 요즘 북한엔 ‘카라오케이’라고 불리는 노래방이 많아지고 있다. 2000년대 중반 번창하다가 단속 때문에 위축됐는데 요즘 다시 인기를 얻고 있다. 이곳에서 노래만 부르면 1시간에 중국돈 3위안이다. 그런데 ‘가수’라고 불리는 여성을 부르면 시간당 4위안이 추가된다. 노래방 도우미인 셈이다. “매춘하는 여자들은 대개 마약을 하고 나옵니다. 얼음이라고 부르는 마약(필로폰)은 1g에 50위안 정도인데 이 정도면 10번 넘게 흡입할 수 있습니다. 마약을 해야 밤에 자지 않고 버틸 수 있을 뿐 아니라 낯선 남자 앞에서도 부끄러움을 잊는다고 하더군요.” 북한에서 필로폰(히로뽕)은 과거 함흥 지역에서 만들어졌지만 제조기술이 이젠 청진 등 다른 도시들에도 퍼졌다. 아주 작은 필로폰 덩이를 은박지에 올려놓고 아래에 불을 붙이면 수은과 흡사한 액체로 변해 돌돌 구르면서 연기를 내뿜는데, 이걸 빨대로 흡입한다. 김일성 얼굴이 들어간 빳빳한 북한 지폐를 돌돌 말면 빨대로는 제격이라고 한다. 가격이 비싸기 때문에 마약은 보통 중산층 이상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그런데 얼음의 중독성은 생각보다 낮은 것 같다. A 씨도 북에선 오랫동안 필로폰을 흡입했지만 한국에 오니 그게 없어도 아무 영향이 없다고 했다. 그는 담배보다 훨씬 끊기 쉽다고 말했다. 실제로 내가 만난 최근 탈북자 중에 북에서 얼음을 해봤다는 사람이 꽤 있지만 이들 중 중독 때문에 남쪽에서 고생하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얼음은 의외로 여성들이 더 많이 합니다. 돈을 버는 사람이 주로 여성이다 보니 가정 경제권이 여성에게 완전히 넘어갔기 때문이죠. 청진에는 여자를 도와 밥을 해주고 애를 보는 남자들이 절반은 될 겁니다. 일할 수 있는 직장이 사라졌는데 장마당에서 장사를 하려면 아줌마들이 더 잘하지…. 남자들이 낄 곳이 없습니다. 남자들은 아내가 장사할 때 짐을 날라 주고, 보호해 주고 그런 역할만 있어도 다행인 거죠.” 20년 전에 비해 완전히 달라진 풍경이다. 북한에는 가부장적 사고방식이 오랫동안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었다. 6·25전쟁을 겪은 뒤 남자가 귀해지면서 여자가 절대복종하게 됐다는 설도 있다. 청진이 있는 함경도 지역은 남성우월주의가 특히 강한 곳이다.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시기에만 해도 남자들은 돈도 못 벌면서 아내에게 큰소리를 치고 살았다. 하지만 지금은 가정에서 큰소리치는 남성이 크게 줄었다고 한다. 이 글은 A 씨의 증언에 기초해 쓰는 것이지만, 다른 탈북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신의주나 원산 등 북한의 다른 주요 도시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남쪽 사람들에게 북한의 이미지가 대개 평양에 한정돼 있는 것은 이방인들이 가서 사진 찍을 수 있는 곳은 주로 그곳뿐이고 방문 시기조차 대개 특별행사 기간으로 한정됐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평양 시민들은 태어나서부터 거대한 세트장에서 사는 것이 적합하도록 군인처럼 질서정연하게 훈련돼 있다는 사실은 안다. 그러나 그런 평양도 가로등이 꺼지고, 도시가 어둠에 묻히면 많은 집에서 마약 연기가 솔솔 피어오르고, 매춘하는 여성들이 거리를 유령처럼 떠돈다는 것은 잘 모른다. 오늘밤도 그럴 것이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김정은이 체제를 공고화하는 과정에서 군부의 색채를 걷어내고 주민을 위하는 지도자 이미지를 강조하고 나섰다. 이 과정에서 북한 군부의 위상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지난달 29일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3기 4차 회의에서 북한 인민무력부는 인민무력성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이 사실은 북한 조선중앙TV가 2일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김정은 국무위원장 추대 평양시 군민경축대회’를 녹화 중계하는 과정에 박영식 인민무력부장을 ‘인민무력상’으로 호칭하면서 알려졌다. 북한에서 ‘부(部)’는 ‘성(省)’보다 위상이 더 높다. 체제 수호의 핵심기관인 인민무력부, 국가안전보위부, 인민보안부는 부로 불리며 최고기관인 국방위원회에 소속돼 있었고, ‘성’으로 불리는 나머지 정부 기관들은 내각 산하에 소속돼 있다. 통일부는 4일 “인민무력성이 내각 소속으로 변경됐는지, 명칭만 변경되고 국방위원회에서 이름이 바뀐 국무위원회 소속으로 남아 있는지에 대해선 추가 확인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북한은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의 국가 기관 승격은 신문을 통해 공지했지만 인민무력부의 명칭 변경에 대해선 공고하지 않았다. 야전 군인들도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 국무위원회 부위원장에 선출된 황병서 총정치국장은 노동당 조직지도부 군 담당 부부장을 오랫동안 지낸 사실상 당 소속원이다. 인민무력상인 박영식도 총정치국 조직부국장 출신으로 황병서의 심복인 정치군인이다. 반면 야전군인은 수시로 숙청되고 있다. 김정은 집권 직후 2인자로 꼽혔던 이영호 총참모장(숙청), 현영철 총참모장(처형), 이영길 총참모장(강등) 등이 대표적이다. 김정은 집권 이후 인민무력부장은 6번, 총참모장은 5번 교체했다. 야전군 출신 북한군 실세의 재임 기간이 평균 10개월에 불과한 것이다. 김갑식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김정일 시대 선군정치 과정에 거대한 정치 및 이권 권력이 된 군부의 힘을 빼고 당 중심의 통치 질서를 회복하는 과정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권력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김정은이 군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불거진 현상일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도 제기된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북한이 우리의 국방장관에 해당하는 ‘인민무력부장’ 직함을 ‘인민무력상’으로 바꾼 것으로 드러났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2일 평양에서 열린 ‘군민 경축대회’ 행사 소식을 전하면서 참석자인 박영식을 ‘인민무력상 육군대장’이라는 직함으로 소개했다. 이 같은 변화는 북한이 지난달 29일 개최한 최고인민회의에서 국방위원회를 국무위원회로 개칭하면서 김정은 제1국방위원장을 국무위원장으로 추대한 것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박영식을 인민무력상으로 부른 점에서 인민무력부가 인민무력성으로 이름이 바뀌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정부 당국자는 3일 “추가 확인이 필요하겠지만 과거 내각이 아닌 별도의 체제수호 첨병 기관으로 우대하던 인민무력부를 국방위원회 산하 기관에서 내각의 하나로 위상을 축소시켰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말했다. 북한은 1998년 최고인민회의 10기 1차 회의에서 헌법 개정을 통해 정무원을 내각으로 바꾸면서 외교부를 외무성 등으로 명칭을 바꾼 바 있다.주성하기자 zsh75@donga.com}

북한이 4차 핵실험에 따른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 이후 중국으로부터 3000만 달러(약 344억 원)를 받고 어업 조업권을 판매하는 등 각종 편법을 동원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가정보원이 1일 국회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같이 보고했다고 정보위원장인 새누리당 이철우 의원이 전했다.○ 무기 수출 급감으로 줄어든 달러 주머니 국정원에 따르면 북한은 최근 달러를 확보하기 위해 평년의 3배에 이르는 1500여 척이 북한 서해에서 조업할 수 있는 어업 조업권을 팔아 수익을 올렸다고 한다. 중국 어선 1500여 척에 조업권을 팔아 3000만 달러를 챙긴 것은 척당 2만 달러 정도에 해당한다. 북한이 2012년 중국원양어업협회에 동해 조업권 대가로 척당 25만 위안(약 4만 달러)을 받은 것의 절반으로 하락한 셈이다. 이 때문에 현지 어획량이 줄면서 북한 주민의 불만이 늘고 있다고 한다. 국정원은 또 대북제재의 영향으로 북한의 무기 수출이 88%나 급감했고, 전체 수출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는 석탄 수출도 지난해보다 40% 감소했다고 보고했다. 해외에서 외화벌이에 종사했던 한 고위 탈북자는 “북한의 무기 수출 규모는 생각보다 크지 않다. AK-47 소총이나 대전차 미사일이 베스트 상품이고 가끔 잠수함을 팔 때도 있지만 1년에 보통 수천만 달러 수준”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대북제재로 북한 선박들이 비밀 운송을 하지 못해 판로가 막혔을 것”이라고 배경을 분석했다.○ 김정은 건강 괜찮나 이 의원은 “김정은의 몸무게가 4년 사이에 40kg 가까이 증가했고 폭음과 폭식으로 성인병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국정원 보고에 따르면 김정은의 몸무게는 2012년 처음 권력을 잡은 직후엔 90kg이었지만 2014년 120kg, 최근 130kg으로 늘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자신에 대한 우발적인 신변 위협 때문에 많은 고민을 하다 보니 불면증에 걸려 잠을 잘 자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여기에 폭음과 폭식까지 하고 있어 성인병 발생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북한은 또 특권층 전용 병원인 봉화진료소를 재건축하고 기존 장비를 독일산 자기공명영상(MRI)이나 미국산 방사선 장치 등 서방의 첨단 장비로 모두 교체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봉화진료소는 김정은을 포함한 북한 최고위층이 치료받는 병원이다. 봉화진료소 재건축과 첨단화는 김정은이 병원에 가는 일이 많을 뿐만 아니라 북한 지도부가 점점 고령화되고 있다는 방증일 수 있다.○ 골치 아픈 고모와 이모 국정원은 김정은의 고모인 김경희 전 노동당 비서가 평양 외곽의 병원에서 특별 관리를 받으며 요양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동안 사망설, 특히 김정은의 독살설까지 떠돌았던 김경희가 여전히 살아 있는 것으로 확인된 것이다. 김경희는 남편인 장성택 전 노동당 행정부장이 처형된 직후 알코올의존증에 빠졌고 심리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취약하지만 심각한 수준은 아니라고 한다. 김정은에겐 이모인 고용숙도 골칫거리다. 스위스 베른에서 김정은을 돌보다가 1998년 미국으로 망명한 고용숙은 올해 5월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김정은의 어린 시절에 대해 “성미가 급하고 성질이 불같았으며 공부하라고 혼내면 단식으로 반항했다”고 증언했다. 북한은 이 보도 이후 김정은의 가계인 이른바 백두혈통의 허구성이 폭로되는 것을 우려해 이런 자료가 절대 북한에 유입되지 못하게 하라고 해외 주재 대사들에게 지시했다고 한다. 한편 한 정보위원은 국군기무사령부가 지난해 5월 군사자료를 북에 제공한 간첩 혐의자 4명을 처벌했고 군 장병 포섭을 기도한 간첩 용의자 4명을 수사 중이라고 전했다. 이에 대해 기무사 측은 “지난해 5월 사건은 마약 사범이었고 현재 간첩 용의자들을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강경석 coolup@donga.com·주성하 기자}

7차 노동당 대회와 최고인민회의로 명실상부한 북한의 1인자 지위를 굳힌 김정은이지만 졸음까지 맘대로 통제할 순 없었나 보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29일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3기 4차 회의 진행 중 주석단에서 조는 듯한 장면이 포착됐다. 북한이 이날 오후 10시 17분경 조선중앙TV로 방영한 약 25분 분량의 최고인민회의 요약 녹화중계에서 책상 위에 있는 자료를 넘긴 직후 눈을 감고 약 5초간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김정은의 모습이 나왔다. 사색한다기보다는 조는 장면에 가까워 보인다. 촬영 카메라가 황급히 참가자들을 향해 앵글을 돌리는 것으로 볼 때 이 장면은 영상 편집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못한 채 실수로 전파를 탄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김정은이 과거 자신이 참석한 회의에서 조는 사람들에 대해 격노하고 숙청까지 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국가정보원은 지난해 4월 김정은이 자신이 주재하는 회의석상에서 현영철 당시 인민무력부장이 졸았다며 불만을 표출한 뒤 지시 불이행과 태만 등의 이유로 엮어 불경·불충죄로 공개처형했다고 밝혔다. 2013년 10월 23일 평양에서 열린 북한군 중대장 및 중대정치지도원 대회에 참가했던 또 다른 소식통도 “김정은이 회의장에서 조는 군 간부 10여 명을 주석단 앞에 불러낸 뒤 그 자리에서 별을 뜯어 체포했다”고 말했다. 소식통은 그 이후 주요 간부들이 김정은 참석 회의 때 졸지 않기 위해 각성제(필로폰)가 든 알약을 먹기도 한다고 전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북한은 지난달 29일 최고인민회의 13기 4차 회의를 통해 국무위원회를 신설하면서 ‘김정은표’ 통치 체제의 마지막 퍼즐을 완성했다. 5월에 열린 노동당 7차 대회가 김정은을 당의 수장으로 선출하는 의식이었다면 이번 최고인민회의에서는 김정은에게 국가 최고지도자의 지위를 법적으로 부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북한 헌법에 노동당이 정부의 상위 영도기관이라고 명시돼 있기 때문에 김정은의 호칭은 ‘조선노동당 위원장,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장,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순으로 나열될 것으로 보인다. ‘국가 주권의 최고정책적 지도기관’으로 만들어진 국무위원회는 기존 ‘선군정치’의 상징적 존재였던 국방위원회의 기능보다 확대된 것으로 추정된다. 박봉주 총리가 국무위원회 부위원장이 된 데다, 새 헌법에 국무위원회는 ‘최고정책적 지도기관’, 내각은 ‘행정적 집행기관’으로 명시해 상하관계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런 점에서 내각 42개 부처까지 모두 흡수했을 가능성도 있다. 통일부 당국자는 30일 “이번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당에 이어 국가기구에서도 김정은 시대의 권력구조를 형성했다”며 “국무위원회는 종합적 정책결정기관의 면모를 갖췄고 ‘정상 국가화’를 시도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북한은 수정헌법에서 국무위원장의 권한과 역할을 7가지로 새로 규정했다. 기존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갖고 있던 ‘국방 부문의 중요 간부를 임명 또는 해임한다’는 권한은 ‘국가의 중요 간부를 임명 또는 해임한다’로 변경했다. 국방 부문에만 한정됐던 인사권 행사 범위를 전 영역으로 확대한 것이다. 또 국가사업 전반을 지도하고, 다른 나라와의 중요 조약을 비준 또는 폐기할 수 있으며 국가 비상사태와 전시상태를 선포할 권한도 있다고 밝혔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실장은 “국무위원장은 1972년 김일성이 사회주의헌법 제정을 통해 선출된 국가주석직과 명칭은 다르지만 사실상 거의 유사한 직책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무위원장은 최고인민회의에서 선출하는데 이 역시 기존 주석제와 동일하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를 국가 공식기구로 격상시킨 것도 눈길을 끈다.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은 “북한의 정령에 따르면 조평통은 공화국 조평통이라고 규정돼 있어 인민무력부나 국가안전부와 맞먹는 급의 독립기관으로 크게 지위가 상승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기존 노동당 통전부 산하 외곽기구로 대남창구 역할을 해왔던 조평통 서기국은 폐지됐다. 통일부 당국자는 “김정은이 당 대회를 통해 제시했던 통일 과업 관철에 조평통을 활용하려는 것이며, 통일전선(통전) 차원의 대남 유화 공세를 강화하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조평통이 국가기구가 되면 과거 남북회담 때마다 논란이 되던 수석대표의 격(格) 문제도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30일자 노동신문 2면에 실린 최고인민회의 제13기 4차 회의 공식행사 사진에는 김여정 선전선동부 부부장이 머리를 뒤로 묶고 검은색 정장 차림으로 앉아 있는 모습이 포착됐다. 김여정이 최고인민회의 회의에 등장한 것은 처음이지만 대의원으로 선출된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29일 평양에서 열린 최고인민회의 13기 4차 회의에서 북한 국가수반격인 국무위원장으로 선출됐다. 김정은은 5월 열린 노동당 제7차 대회에서 당 위원장에 오른 데 이어 정부의 직책에 해당하는 국무위원장에 선출되면서 당과 국가를 모두 대표하는 명실상부한 1인 지배체제를 구축했다. 북한 조선중앙방송은 오후 10시 17분경 보도를 통해 최고인민회의에서 김정은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위원장으로 공화국의 최고 수위에 높이 모셨다”고 발표했다. 기존 국방위원회를 대체한 것으로 보이는 국무위원회는 김일성 시절의 국가 최고 조직이었던 중앙인민위원회를 부활시키면서 명칭을 바꾼 조직으로 보인다. 북한은 국무위원회 부위원장으로 황병서 군총정치국장, 최룡해 노동당 부위원장, 박봉주 총리를 임명했다. 위원에는 김기남 노동당 부위원장, 이만건 군수공업부장, 김영철 정찰총국장, 김원홍 국가안전부장 등 핵심 간부들이 포진됐다. 기존의 북한 국가수반격이던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국무위원회 명단에서 빠졌다. 최고인민회의는 또 이날 헌법 개정과 국가경제발전 5개년(2016∼2020년) 전략 이행,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관련 안건, 조직 개편 등 6개 안건을 토의한 뒤 폐막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29일 열린 북한 최고인민회의 결정은 김정은 시대의 본격 개막을 알리는 신호탄이라고 볼 수 있다. 김정은은 2012년 4월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으로 선출된 이후 지난 4년 동안 치적 쌓기와 잔혹한 측근 숙청으로 권력 기반을 다져왔다. 그러곤 마침내 당과 국가 최고 권력의 수위에 공식적으로 취임해 ‘유일 영도체계’로 지칭되는 1인 독재 지배구조를 완성했다. 다만 당과 국가의 명실상부한 1인자가 되면 권력은 커지지만 통치 실정에 대한 책임도 직접 떠안아야 하는 부담을 질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이번에 국가 최고 통치조직인 국무위원회를 신설했지만 그동안 이어져 온 비정상적인 국가통치운영 방식까지 정상화했는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은 1998년 주석제를 폐지하고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대외적 국가수반으로 만들었다. 이후 자신은 법제위원회 예산위원회와 함께 최고인민회의 일개 소속 위원회에 불과한 국방위원회를 비정상적으로 키워 국가 통치기구로 내세웠다. 한국으로 보면 국회 상임위인 국방위 위원장이 당을 장악하고 국가를 운영하는 식의 매우 기형적인 방식이었다. 북한의 이날 선택은 김정일 시절의 국방위원회 대신 국무위원회를 정부 조직의 최고위 기구로 만들어 국가 운영에 나서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국무위원회를 위원장과 부위원장 중심의 체제로 만들었다. 기존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가운데 이용무, 오극렬이 빠지고 최룡해와 박봉주가 새로 포함됐다. 그리고 김기남 이만건 김영철 이수용 이용호 박영식 김원홍 최부일 등 당정군의 핵심 측근들을 국무위원회 위원으로 포진시켰다. 이날 회의에서는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 목표를 제시하며 “내각은 당의 병진노선을 틀어쥐고,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면서 인민 경제의 선행 부문, 기초공업 부문을 정상궤도에 올려 세워 인민생활을 향상시키겠다”고 밝혔다. 이는 북한이 핵·경제 병진 노선을 유지함으로써 핵개발을 포기할 뜻이 없음을 재확인한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은 이번 최고인민회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통상적인 회기 일정까지 바꿨다. 최고인민회의는 매년 4월에 열리며 9월에 추가 회의를 열기도 한다. 김정은 집권 이후 6차례 열린 최고인민회의 모두 4, 9월 개최 공식을 벗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올해는 노동당 7차 대회 이후인 6월로 날짜를 변경했다. 7차 당 대회에서 김정은을 노동당 위원장으로 선출한 데 이어 국가수반으로 만들기 위해 정교한 사전 계획하에 일정을 짰다는 것으로 해석된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 결정으로 전 세계가 충격에 빠졌지만 만면에 희색이 가득한 러시아는 표정 관리에 바쁘다. 러시아는 지금까지 정치 경제 외교 안보 등 다양한 이슈를 놓고 EU와 대립각을 세워 왔다.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크림 반도를 합병하자 EU는 대(對)러 제재를 시작했다. 하지만 유럽 내 군사강국인 영국이 EU 탈퇴의 길을 선택함에 따라 유럽 집단안보 체제에 ‘힘의 공백’이 불가피해졌다. 영국의 탈퇴는 러시아에 대한 EU의 압박이 약해지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더글러스 팔 미국 카네기국제평화연구원 부회장은 “영국의 탈퇴로 약해지고 분열된 유럽은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게 뜻하지 않은 선물”이라며 “러시아가 시리아를 지지하고 우크라이나를 장악하기가 훨씬 쉬워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주러 미국대사를 지낸 외교전문가 마이클 맥폴도 24일 트위터를 통해 “오늘 사건은 푸틴 대외정책의 큰 승리다. 그가 브렉시트의 원인을 제공한 것은 아니지만 이로부터 이득을 얻었다”고 논평했다. 어부지리를 얻은 푸틴 대통령은 기쁜 내색을 감췄다. 리아노보스티 통신 등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이날 우즈베키스탄 수도 타슈켄트에서 열린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브렉시트가 EU의 러시아 제재 정책에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러시아는 영국의 국민투표 과정에 일절 개입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미국 메인 주 주지사의 부인이 남편의 ‘박봉’으로 수입이 부족하다며 식당종업원으로 취업해 화제다. 주인공은 폴 르페이지 주지사(68)의 부인 앤 르페이지 여사(58). 메인 주의 ‘퍼스트레이디’인 앤 여사는 23일부터 해산물 레스토랑인 부스베이 하버에서 일을 시작했다고 미국 NBC방송 등이 25일 보도했다. 주문을 받아 음식을 손님에게 가져다주는 웨이트리스 업무가 그의 여름철 부업이다. 앤 여사는 한 지역방송 인터뷰에서 “돈 때문에 시작했고 꼭 해보고 싶은 일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손님들이 주는 팁을 모아 도요타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신형 라브4를 사고 싶다”고 말했다. 앤 여사는 일부 손님들이 헐렁한 티셔츠와 청바지에 앞치마를 두른 채 일하는 자신을 알아보고 놀라곤 한다며 “주지사 부인이라 손님들이 뭔가 다른 것을 기대한 것 같다”며 웃었다. 남편인 르페이지 주지사도 TV에 출연해 “지난해 딸이 식당종업원으로 일을 잘해 시간당 28달러를 받았는데 이번 여름엔 아내가 그 뒤를 잇는다”고 말했다. 미국 주지사의 평균 연봉은 13만 달러(약 1억5250만 원). 50개 주 중에서 면적 순위 39번째인 메인 주는 주지사 연봉이 전체 주지사 중 가장 적은 7만 달러(약 8211만 원)에 불과하다. 르페이지 지사는 공직자로 살아와 모아둔 돈이 많지 않다. 그는 2003년부터 2011년까지 메인 주 산하 워터빌 시장을 지냈으며 2011년부터 주지사로 일하고 있다. 32년 전 앤 여사와 결혼해 슬하에 자녀를 4명 두고 있다. 주지사에 선출된 직후 스물두 살 된 딸을 연봉 4만1000달러의 지사보좌관에 임명하고 처남을 연봉 6만8577달러짜리 국장직에 임명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브레이크가 고장 나 폭주하는 기관차 앞에 두 갈래 철로가 있다. 한 곳엔 5명이 일하고 다른 곳엔 1명이 일한다. 당신의 선택은?” 2010년 히트작인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에 나오는 질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5명을 살리려 1명의 희생을 선택하는 것은 어쩌면 본능적 행동일지 모른다. 남북 간에도 이런 딜레마는 자주 생긴다. 한 사례로 지금 남쪽엔 북한을 계속 찬양해도 잡혀가지 않는 여성이 있다. 북한 미사일 발사 때도 “위대한 우리 당에 감사의 인사, 경축의 인사를 드린다. 조선로동당 만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만세”라고 페이스북에 올려도 아무렇지 않다. 그의 이름은 김련희. 평양에서 가정주부로 살던 그는 2011년 한국에 왔다. 그는 중국에 여행 왔다가 한국 가면 돈도 벌고 병도 치료할 수 있단 말을 듣고 남쪽에 왔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온 뒤엔 자신은 실수로 왔으니 평양으로 보내 달라고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다. 올해도 정부청사에서 시위도 하고, 주한 베트남대사관에 들어가 북으로 망명 신청을 하기도 했다. 그를 돕겠다고 ‘김련희 송환 촉구모임’이란 것도 여기저기에서 만들어졌다. 나 역시 김련희 씨가 남편, 딸과 다시 살게 되길 희망한다. 다만 이런 인도주의적 호의를 베푸는 대가가 너무 혹독해 누구도 감당할 수 없을 뿐이다. 그가 북에 가면 한국 비난과 북한 체제 선전에 동원되고 탈북자 심문 기법 등 많은 정보도 함께 보위부에 전달할 것임은 뻔하다. 그러나 단지 이것뿐이라면 감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진짜로 용인할 수 없는 일은 그가 하나원과 사회에서 알았을 최소 100명이 넘는 다른 탈북자들의 신상 정보를 보위부에 제공하는 것이다. 그럼 북한에 사는 탈북자 가족은 위험에 처하게 된다. 우연히 그와 엮이게 된 탈북자들에게 무슨 죄가 있단 말인가. 그를 한국까지 데려다줬던 중국 브로커도 북한에 납치될지 모른다. 이래도 과연 그를 돌려보낼 수 있을까. 한 명의 인권과 수백 명의 인권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문제다. 어떤 선택을 해야 하겠는가. 김 씨 송환에 앞장서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과 진보연대는 그가 돌아가면 수많은 탈북자 가족이 수용소에 끌려갈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은 말하지 않는다. 왜 그들의 눈엔 김련희만 보이고 죽을지도 모를 탈북자 가족은 보이지 않는 것일까. 김 씨는 남쪽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공민으로 살겠다”며 보란 듯이 북한을 찬양한다. 그는 전화번호 끝자리 4150이 ‘수령님(김일성) 생일’을 땄다고 밝혔다. 평양의 딸에겐 “엄마는 여기서 굴함 없이 꿋꿋이 놈들과 싸우고 있어. 엄마를 믿어”라는 메시지도 보냈다. 정작 싸운다는 그는 올해도 제주도 2박 3일 관광을 다녀오는 등 남쪽 여기저기 여행을 자주 다닌다. 물론 그의 찬양은 북한 당국에 보여주기 위한 쇼일지도 모른다. “내가 남쪽에서 이렇게 열심히 투쟁하니 우리 가족 잡아가지 말아주세요”라는…. 그러나 누군 북한 여행기를 말했다가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어놓고, 누군 대놓고 김정은을 찬양해도 아무렇지도 않은 이 현실은 어떻게 봐야 할까. 당국은 귀찮은 문제가 생길까 봐 그런지 뭔 짓을 하더라도 그저 두고만 본다. 김 씨의 선례를 용인하면 앞으로 어떤 문제가 생길까. 한반도엔 김 씨보다 억울한 사람이 부지기수다. 김 씨가 한국행 길에 오른 것은 자신의 선택이었다. 찰나의 선택 때문에 가족과 이별한 실향민만 수백만 명이고, 지금도 북한에선 한순간의 말실수로 처형되는 사람도 많다. 김 씨 역시 불행히도 되돌릴 수 없는 선택을 했을 뿐이다. 개인적으론 남쪽에서 치료받고 돈 벌고 평양에 돌아가려 했다는 그의 사고를 전혀 이해할 수 없다. 이번에 민변의 개입으로 논란을 빚고 있는 탈북 종업원 13명 사건도 북에 있는 가족들의 목숨이 걸린 문제라는 점에서 김련희 씨 사례와 공통점이 있다. 종업원 입국 사진이 공개됐을 때 그들의 걸음새를 보고 나는 자진 입국임을 직감했다. 상식적으로도 성인인 그들이 한국행 비행기를 모르고 탔을 리 만무하다. 전세기를 보냈을 가능성도 희박한데 비행기 안에서 저들이 소동을 부렸다는 것을 목격한 사람도 없다. 민변이 북한 가족의 위임장을 받아온다 했을 즈음 민변 간부에게 나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그랬다간 어떤 경우에도 민변은 진퇴양난의 큰 역풍을 맞을 겁니다.” 이후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는 더 설명이 필요 없다. 남북 간엔 앞장만 보지 말고 뒷장까지 넘겨 봐야 하는 사안이 부지기수다. 그걸 볼 능력, 혹은 의지가 없다면 반드시 역풍을 부르는 무리수를 두게 된다. 마침 국민이 요즘 제일 하고 싶어 근질거리던 말을 지난달 영화 ‘곡성’이 대신 해줬다. “뭣이 중헌디. 뭣이 중허냐고. 뭣이 중헌지도 모름서!”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주최국 브라질팀의 마스코트 ‘징가(Ginga)’의 실제 모델인 재규어 한 마리가 성화 봉송 행사에 참여했다가 군인의 총에 사살됐다. ‘주마’라는 이름의 17세 암컷 재규어는 20일 아마존 인근인 브라질 북동부 마나우스 시 정글 전투훈련센터에서 도망치다가 변을 당했다고 로이터통신 등이 21일 보도했다. 행사 관계자들에 따르면 주마는 센터 인근 동물원에서 자라 사람에게 익숙하고 온순했으나 성화 봉송 행사장에서 낯선 사람들에게 둘러싸이자 흥분하기 시작했다. 행사 말미에 목줄까지 풀리자 주마는 자기가 살던 동물원으로 도망쳤다. 사육사가 마취 총을 쏘아 진정시키려 했지만 주마는 사육사까지 공격했고 결국 군인이 권총을 쐈다. 사건이 알려지자 동물보호단체들의 비난이 쏟아졌다. 리우 시에서 활동하는 ‘동물자유연맹’은 “야생 동물을 억지로 길들여 행사장에 끌고 나가는 행위를 더는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번 사건은 최근 미국 신시내티 동물원의 고릴라 하람베와 올랜도 디즈니월드의 악어 사살 사건 등으로 본능에 충실한 야생동물을 인간이 사살하는 것이 정당한지에 대한 논란이 거센 가운데 불거졌다. 특히 미주 대륙에 주로 서식하는 고양잇과 동물인 재규어는 1980년대 중반 이후 개체 수가 30%까지 줄어들었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지정한 아메리카 대륙 멸종 위기종이기도 하다. 파문이 커지자 브라질 당국은 즉각 사과하며 진화에 나섰다. 올림픽위원회는 “평화와 단결을 상징하는 올림픽 성화 봉송 행사에 재규어를 동원한 것은 명백한 실수였다”면서 “리우 올림픽 기간에 유사한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브라질 육군도 대변인을 통해 “‘주마’의 죽음에 아픔을 느낀다”면서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났다”고 사과했다. 브라질 일각에서는 올림픽을 코앞에 두고 대표팀 마스코트 동물이 사살된 것은 불길한 징조라는 우려가 나온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이라크 정부군이 수니파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가 장악하고 있던 주요 도시 팔루자 탈환을 17일 선포하면서 이라크 내 IS의 기세는 크게 위축됐다. 하지만 IS가 촉발한 수니파 내 골육상쟁(骨肉相爭)은 이제 비로소 시작이라고 뉴욕타임스(NYT)가 보도했다. 한솥밥을 먹고 자란 형제끼리 IS와 정부군으로 갈라져 서로 죽이며 싸웠던 상처는 오랜 세월이 흘러도 치유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팔루자 탈환작전을 지휘했던 안바르 주 경찰서장이자 경찰여단 총지휘관이었던 하디 라자이지 장군은 남자 형제가 IS 대원으로 자살폭탄 트럭을 몰고 나왔다가 포로가 돼 현재 감옥에 갇혀 있다. 라자이지 장군은 그를 도와주고 싶지만 어찌할 방법이 없다. 자신 뿐 아니라 자기 휘하에 수많은 대원들이 형제를 적으로 만나 싸워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팔루자 이후 정부군이 탈환해야 할 이라크 제2의 도시 모술의 시장 하팔 하마디 역시 형제 가운데 한 명이 IS 간부다. 하마디 시장은 얼마 전 그가 IS에 충성을 맹세하며 자신과의 혈연을 부인하는 장면을 비디오를 통해 봐야 했다. 이처럼 이라크 내 소수 종파인 수니파 사회는 IS의 등장으로 갈기갈기 찢겼다. 2006년부터 2014년까지 집권한 누리 알 말리키 전 총리의 집권 시절 수니파는 박해를 받았고 분노한 이들이 IS에 가담했다. 하지만 IS 역시 수니파의 대안이 될 순 없었다. 얼마 전 IS는 모술의 한 조직원이 자신을 형을 정부군 스파이라고 단죄한 뒤 군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머리에 총을 쏴 죽이는 비디오를 공개했다. 섬뜩한 광기는 일반 수니파들을 각성시켰다. IS가 종파 자체를 갈기갈기 찢어놓을 것이란 생각에 수많은 수니파가 정부군에 합세해 IS를 몰아내는 싸움에 나섰다. 경찰여단 소속으로 팔루자 탈환전에 나선 샬리흐 사모트는 NYT와의 인터뷰에서 “내 손에 잡힌다면 직접 동생을 처단하겠다. 그는 더 이상 형제가 아니라 범죄자”라고 말했다. 농부로 살다가 수십 년 동안 집안에 보관했던 칼라슈니코프 자동소총을 메고 정부군에 합세한 아부 아나스는 입대 직후 IS 조직원인 동생에게서 메시지를 받았다. “형은 지옥길을, 나는 천국길을 택했다”는 내용이었다. 라지이지 장군은 “이라크 내 수니와 시아 파 간 갈등은 봉합됐지만 이젠 수니파 내부의 화해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라크 정부도 IS가 장악했던 지역을 해방하면 누굴 체포하고 누굴 재판할지를 해당 지역 수니파 원로들이 결정하게 하고 있다. IS는 몰아내면 되지만 수니파 사이의 깊은 갈등은 결국 그들이 풀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IS가 장악한 지역이 점점 탈환되며 희생자가 늘수록 수니파의 상처는 더욱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팔루자 탈환을 선포하기 직전 이틀 동안의 전투에서만 IS 대원 500여명과 정부군 300여명이 전사했다. 적이냐 아니냐를 떠나 그들은 누군가의 혈육이자 형제였고 어제까지 한 가족처럼 살았던 같은 수니파였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세계 최정상급 실력을 가진 러시아 정부 소속 해커들이 미국 민주당전국위원회(DNC)의 전산망에 침투해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관련 자료를 탈취해 갔다. 러시아 정부는 해킹 주장을 전면 부인했다. 워싱턴포스트 등 미국 언론들은 14일 코드네임이 각각 ‘코지 베어’와 ‘팬시 베어’인 두 개의 러시아 해킹그룹이 지난해 여름부터 DNC 서버에 침투해 공화당 대선 예비주자들의 각종 파일을 훔쳐갔다고 보도했다. 이 자료들은 DNC가 대선에 대비해 정보 공개 절차에 따라 입수한 것으로 납세·법무 등 민감한 자료도 포함돼 있었다. 러시아 해커들은 백악관과 국무부, 합동참모본부도 노렸으나 트럼프 등 공화당 대선 주자들에 대한 분석 자료들이 저장된 DNC 분석팀 서버 침투에 가장 큰 공을 들였다. 해커들은 DNC 데이터베이스와 온라인 통신 내용 등 비밀 자료도 함께 빼갔으며 정책, 정치 캠페인 전략, 외국인 정책 계획 등에 대한 정보를 집중적으로 엿봤던 것으로 드러났다. CNBC는 트럼프에 대한 DNC의 비판적 분석 자료가 유출됐다고 전했다. 미 언론들은 이 정보들이 대선 본선 국면에서도 공개되기 어려운 민감한 내용을 담고 있지만 앞으로 러시아 측에 의해 이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해킹 조사를 담당했던 보안업체 크라우드스트라이크는 “코지 베어와 팬시 베어는 전 세계에서 가장 능력이 뛰어난 해킹 그룹으로 실력과 보안 능력이 뛰어나다”며 “사실상 러시아 정부의 사이버팀”이라고 말했다. 두 해킹그룹은 과거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 중국, 일본 등지에서 방산업체, 우주항공, 에너지를 포함한 다양한 산업군을 공격해 왔다. 코지 베어는 지난해 미 백악관과 미 국방부 네트워크에 침투한 전례도 있다. 앞서 미국 국가정보국 국장 제임스 클래퍼는 지난달 “사이버 공격자들이 대통령 선거를 표적으로 하고 있으며 사이버 첩보를 목적으로 한 공격은 나날이 심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편 DNC 해킹 보도가 나간 직후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 궁 대변인은 “러시아 정부나 정부 기관이 이번 사건에 연루됐을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잘라 말했다.주성하기자 zsh75@donga.com}
중국 정부가 7일부터 사흘간 실시된 전국 대학수학능력입학시험 ‘가오카오(高考)’에서 부정행위를 막기 위해 사상 최초로 경찰특공대까지 투입했다. 중국 당국은 시험 부정행위가 빈발하자 지난해 11월 부정행위를 저지른 수험생을 최고 징역 7년형에 처할 수 있도록 형법을 개정했다. 올해 시험은 법 개정 이후 처음 실시되는 것이다. 9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중국 교육당국과 공안당국은 올해 전국적으로 940만 명이 응시한 가오카오를 제대로 감독하기 위해 시험장마다 최소 8명 이상의 경찰을 배치했다. 수도 베이징의 경우 시험문제지 호송을 경찰특공대가 처음으로 맡았다. 관영 신화통신은 특히 당국이 무선 기기를 사용한 부정행위를 막고, 대리응시자를 적발하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전국 시험장들에서 공항 보안 검색 수준에 버금가는 검색이 이뤄졌다. 금속탐지기에서 소리가 울리면 시험장 입장이 금지된다. 휴대전화나 시계는 당연히 갖고 들어갈 수 없다. 심지어 금속 소재가 사용된 벨트 착용도 금지됐다. 수술을 받아 몸속에 금속이 박혀 있는 수험생은 병원에서 확인서를 미리 받아 제출해야 한다. 무선 기기에서 나오는 전자파를 감시할 수 있도록 특수 제작된 드론을 띄운 시험장도 있었다. 대학생들이 대입시험에 대리 응시하는 것을 막는 장치도 마련됐다. 과거 재학생이 가오카오에서 대리 시험을 보다가 적발됐던 허베이(河北) 성 우한(武漢)이공대는 1~8일 학생들에게 출입금지령을 내렸다. 가오카오 기간엔 학생들이 기숙사에 있다는 증거를 남기기 위해 매일 밤 11시에 단체 사진을 찍어야 한다. 또 이 기간에 휴가를 낸 학생들은 하루 6번 지도 교수와 전화 통화를 해야 한다. 이런 삼엄한 감시에도 부정행위를 하다가 적발된 사례가 곳곳에서 나왔다. 7일 네이멍구(內蒙古) 자치구에선 허용되지 않은 물건을 휴대하거나 지정된 장소에 물건을 두지 않았다는 이유로 4명이 부정행위자로 적발돼 해당 과목의 성적을 취소당했다. 심지어 시험지를 거둘 때 계속 답안지를 작성했던 학생들도 부정행위로 인정돼 성적이 취소됐다. 중국의 대학입학 정원은 700만 명을 넘지만 성적에 따라 갈 수 있는 명문대는 한정돼 있어 입시 경쟁이 무척 치열하다.주성하기자 zsh7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