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재

이호재 기자

동아일보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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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틈틈이 소설을 쓰며 스토리텔링에 천착한다. 숨소리까지 살아 숨쉬는 생생한 내러티브 기사가 넷플릭스 영상보다 가치 있는 컨텐츠라 믿는다.

hoho@donga.com

취재분야

2025-11-17~2025-12-17
문화 일반51%
인사일반20%
문학/출판10%
기획7%
무용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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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3%
기타3%
  • 중앙학교 동문 역사를 한눈에… ‘중앙교우회 110년사’ 출간

    중앙중·고교 동문 모임인 중앙교우회가 모임의 110년 역사를 담은 ‘중앙교우회 110년사’(사진)를 출간했다고 28일 밝혔다. 지난해 5월 편찬 작업을 시작한 지 1년 1개월 만이다. 책에는 1910년 제1회 졸업생을 배출한 중앙교우회의 역사가 담겨 있다. 한국 현대사에서 여러 역할을 한 동문들의 발자취도 엿볼 수 있다. 중등학교 학제·입시제도와 교복 변천사를 화보로 보여준다. 360페이지 컬러 양장으로 만들었다. 중앙교우회장으로는 작고한 고재욱 전 동아일보 사장, 이희승 국어학자, 김용식 전 외무부 장관, 채문식 전 국회의장, 김각중 전 전국경제인연합회장이 있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정몽준 아산사회복지재단 이사장, 서정호 앰배서더호텔그룹 회장도 교우회장을 지냈다. 현 교우회장인 채정석 법무법인 웅빈 대표변호사는 발간사를 통해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본산이며 인재 양성의 중심임을 자임해 온 중앙학교의 전통과 정신을 계승하는 증거이자 한국 교육 성장사를 가늠케 하는 기록”이라고 밝혔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2-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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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간을 이해한다는 건 눈물을 이해하는 것”

    시간이 지날수록 원고는 악필이 됐다. 2019년 11월 6일 원고는 정돈된 글씨로 썼다. 직접 그림을 그리고 색칠도 했다. 이에 비해 2022년 1월 23일 쓴 글은 읽기 힘들 정도로 뒤틀렸다. 검은 펜으로 삐뚤빼뚤 써내려간 글씨에선 육신의 고통이 느껴졌다. 고인은 “죽음이 죽는 순간 알게 될 것이다”라는 문장으로 마지막 원고를 끝맺었다. 30일 출간되는 고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 에세이 ‘눈물 한 방울’(김영사)의 육필 원고엔 죽음의 순간까지 성찰했던 고인의 혼이 담겨 있었다. 서울 중구의 한 카페에서 28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 전 장관의 부인 강인숙 영인문학관장은 “선생은 이른 나이부터 컴퓨터로 글을 썼기 때문에 육필원고가 많지 않다”며 “이 책은 선생이 마지막으로 쓴 육필원고를 그대로 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인은 2월 26일 서울 종로구 자택에서 암 투병 끝에 별세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장남 이승무 한국예술종합학교 영화과 교수, 차남 이강무 백석대 애니메이션과 교수가 참석했다. “육필원고에는 건강 상태 등 그 사람의 전부가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기에 귀중합니다. 선생은 (마우스) 더블 클릭이 안 되고 (컴퓨터) 전자파 때문에 할 수 없이 노트를 썼어요. 노트를 읽다 보면 혼자 저승으로 가야 하는 인간의 외로움이 배어 있죠.”(강 관장) 신간엔 고인이 2019년 10월부터 2022년 1월까지 쓴 수필과 시 110편이 담겨 있다. 고인이 군청색 양장본 대학노트에 쓴 147편의 글 중에 의미 있는 작품을 골라 담았다. 고세규 김영사 대표는 “올 1월 3일 선생이 영인문학관(서울 종로구)으로 불러 ‘원한다면 이 노트를 책으로 만들어보라. 염치 챙기지 말고 작업해 달라’고 당부하셨다”고 말했다. 항암치료를 거부한 고인은 밤이 되면 자신의 약한 마음을 써 내려갔다. 고인은 2021년 7월 30일 글에서 어머니의 영정 앞에서 울며 “엄마 나 어떻게 해”라고 말했다고 고백한다. 자신처럼 항암치료를 거부하다 세상을 먼저 떠난 딸 이민아 목사(1959∼2012)를 향해 “내 아직 살아 있는 것이 미안하다”고 속삭인다. “살고 싶어서 내 마음은 흔들린다” “한밤에 눈뜨고 죽음과 팔뚝 씨름을 한다”고 두려움을 털어놓는다. 고인은 짐승과 달리 인간은 정서적 눈물을 흘릴 수 있기 때문에 남을 위해 흘리는 눈물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자신을 위한 눈물은 무력하고 부끄러운 것이지만 나와 남을 위해 흘리는 눈물은 지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힘 있는 것”이라며 “인간을 이해한다는 건 인간이 흘리는 눈물을 이해한다는 것”이라고 썼다. 이승무 교수는 “아버님은 죽음 직전까지 남을 위해 흘리는 눈물을 강조했다”며 “남겨진 그림을 보니 아버님이 어린아이로 돌아가서 동화책을 쓴 듯하다”고 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2-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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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벨라오페라단, ‘그랜드 갈라 콘서트’ 다음달 개최

    라벨라오페라단(단장 이강호)의 2022 라벨라 시그니처 시리즈 ‘그랜드 갈라 콘서트’가 다음달 11일과 13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다. 11일 공연되는 ‘GRAND GALA CONCERT I : 3막의 비극’은 베르디의 대표작 ‘라트리비아타’, ‘리골레토’와 푸치니의 ‘라보엠’, ‘토스카’의 3막만을 모았다. 네 작품은 모두 비극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13일 열리는 ‘GRAND GALA CONCERT II : 베르디&베리즈모’는 베르디와 푸치니, 레온카발로, 마스카니, 조르다노의 곡으로 구성했다. 라벨라오페라단은 “낭만주의에서 사실주의로 넘어가는 시대의 흐름을 한 자리에서 즐길 수 있다”며 “새롭고 흥미로운 공연을 통해 오페라의 다채로운 재미를 맛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두 공연 모두 인터미션 20분을 포함해 120분 간 공연된다. 롯데콘서트홀과 인터파크티켓 사이트에서 예매가능하다. R석 12만원 S석 8만원 A석 5만원 B석 3만원.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2-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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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싹한 이야기 드라마 보는듯… 한국 추리소설, 오디오북 시장서 각광

    “동생분은 발견 당시 이미 상당량의 피를 흘린 상태로, 구급대원이 도착해서 사망을 확인했습니다.” 남자 형사가 굵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젊은 여성 주인공 ‘나’의 여동생이 사망 상태로 발견됐다는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구슬픈 가락의 배경음악과 함께 형사는 “사망 당시 모습이 등에 칼이 꽂힌 상태였다”고 전했다. 그러나 ‘나’의 반응은 의외다. 모든 것을 예견한 듯 담담한 목소리로 답한다. “칼이 열 개던가요?”라고. ‘나’는 동생의 살인 사건을 차근차근 해결해 나간다. 이달 16일 오디오북 플랫폼 윌라에 공개된 이수아 작가의 추리 장편소설 ‘마담 타로’(책과나무)의 내용이다. 이 작품은 공개 직후 윌라 종합 베스트순위 1위를 차지했다. 윌라 이용자들 사이에선 “소설이 아니라 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 “영화로 만들어도 좋겠다”는 평가가 나왔다. 최근 한국 추리소설이 오디오북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다. ‘마담 타로’(1위)를 비롯해 사랑과 관련된 범죄가 벌어지는 작품을 모은 단편소설집 ‘러브 앤 크라프트, 풍요실버타운의 사랑’(5위), 학교를 배경으로 각종 사건이 벌어지는 단편소설집 ‘주관식 문제’(10위)처럼 윌라의 종합 베스트 순위 10위 중 3개가 한국 추리소설이다. 오디오북 플랫폼 스토리텔에서도 한국 추리소설이 소설 분야 10위 중 5개를 차지하고 있다. ‘암흑 검사2’(1위), ‘한성 프리메이슨’(2위) ‘지옥 인형’(5위) ‘시프트’(7위) ‘삼개주막 기담회2’(8위)다. 한국 추리소설이 오디오북 플랫폼에서 인기를 끄는 건 대사가 오디오북 이용자들에게 적합하기 때문이다. 일본, 영미권 추리작품을 번역한 대사보다 요즘 한국에서 쓰이는 어투가 묻어나 성우들이 맛깔 나게 읽을 때 효과가 커지는 오디오북의 특성과 맞닿은 것이다. 이화진 윌라 오디오북 콘텐츠팀 이사는 “오디오북 이용자들은 생동감 넘치고 몰입도가 높은 추리 작품들을 선호한다”며 “종이책 시장에서 덜 알려진 작품임에도 오디오북 플랫폼에선 순위권에 오르는 일도 자주 일어난다”고 했다. 익숙한 소재 덕에 이용자가 쉽게 오디오북을 들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추리 장편소설 ‘신 전래특급’은 흥부와 놀부, 혹부리 영감 등 한국 전래동화에서 모티프를 따왔다. 추리 장편소설 ‘한성 프리메이슨’은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살인 사건을 다룬다. 김재희 한국추리작가 부회장은 “오디오북 업계에서 추리소설은 아직 작품성이 고르지 않은 웹소설보다 완결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전개가 빠른 한국 드라마를 선호하는 독자들이 한국 추리소설을 선호하는 경향이 짙다”고 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2-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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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功이 9라면 過는 1… 타는 목마름을 넘어 죽음의 굿판 뒤엎자”

    “칼날이여! 음험한 시절의 생명의 소리….” 서울 종로구 천도교 중앙대교당에서 25일 열린 김지하 시인 추모문화제. 둥둥 북소리 너머로 추모시 ‘칼날이여!’가 울려 퍼졌다. 김 시인의 ‘마지막 비서실장’이라 불릴 만큼 말년의 고인과 가까웠던 이청산 전 한국민족예술단체총연합 이사장은 통탄하며 시를 읽어갔다. 이 전 이사장은 추모시에서 “타는 목마름을 넘어, 죽음의 굿판을 뒤엎은” 곳으로 가자고 강조했다. 고인이 1975년 발표한 저항시 ‘타는 목마름으로’와 1991년 명지대생 강경대 씨가 경찰에 맞아 숨진 사건에 항의하는 분신자살이 잇따르자 한 일간지에 기고한 칼럼 ‘죽음의 굿판 당장 걷어치워라’를 모두 넘어설 때가 됐다는 것이다. 이 전 이사장이 고인의 회고록 ‘흰 그늘의 길’(2008년·학고재)을 빗대며 고인을 향해 “흰 그늘의 땅에서 연꽃이 되라!”고 외치자 박수가 쏟아졌다. 지난달 8일 세상을 떠난 고인의 49재에 맞춰 열린 이날 행사엔 600여 명이 몰렸다.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 손학규 전 바른미래당 대표, 배우 최불암, 시인 문정희 등 고인과 인연을 맺은 옛 친구들이 참석했다. 예상 인원인 300명을 훌쩍 뛰어넘은 참석자가 몰린 탓에 의자가 부족해 땅바닥에 앉거나 서서 고인을 추모하는 이들도 있었다. 오후 3시 시작된 추모문화제는 오후 8시에 끝났다. 이날 강조된 건 화해였다. 사회를 맡은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김 시인의 공이 9라면 과는 1에 불과하다. 그 과오라는 것도 국가 폭력에 대항에서 얻은 상처임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황석영 작가는 고인이 박근혜 전 대통령 지지 선언을 한 뒤 진보진영에서 전향이라는 비판을 받았던 것에 대해 “그 나름대로 해원의 뜻이 있었으리라 짐작된다”며 “그의 말과 현실(시대 상황)은 어긋나고는 했다”고 했다. ‘죽음의 굿판 당장 걷어치워라’에 대한 반박문을 작성했던 김형수 시인은 “지금 생각하면 굉장히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고인의 미발표 시 8편도 공개됐다. “내가 멀리서/너를 부르면/너/청산이어라”(‘교감’ 중), “살아라/너도, 그들/내 속에/모두 살아”(‘살아라’ 중), “열리리 열리리/꽃 같은”(‘열리리’ 중)엔 고인이 말년에 강조한 생명사상이 드러난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2-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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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꽃 보러 호주 가서 사람 보고 온 얘기[이호재의 띠지 풀고 책 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엔데믹 국면으로 접어들었지만 해외여행을 떠나기엔 조금 부담스럽다. 비행기와 숙소 값은 치솟고, 해외여행 중 코로나19에 걸리면 어쩌나 걱정된다. 전 세계에서 유행 중인 원숭이두창이 국내에도 유입됐다는 소식엔 다시 공항 문이 닫힐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슬슬 생긴다. 해외여행에 대한 로망은 가득하지만 쉽게 떠나진 못할 때라 그런지 여행 에세이가 눈에 들어왔다. 이 책은 2019년 두 여자의 동거 생활을 다룬 에세이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위즈덤하우스)로 유명한 두 작가가 쓴 여행 에세이다.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호주 퀸즐랜드를 여행한 이야기지만 지난달에 출간됐다. 엔데믹 시대 해외여행을 꿈꾸는 이들을 겨냥해 시기를 조율해 출간한 것일까. “일상의 많은 것들을 포기하거나 연기하는 시간”을 퇴고에 쏟은 만큼 여행에 대한 생각이 깊어진 점이 매력적이다. 책은 호주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에 주목한다. 저자들은 해변을 거닐며 한국과 호주 사람들의 몸이 다르다는 점을 발견한다. 한국 해변엔 이른바 ‘몸짱’들이 가득하다. 헬스장에서 잘 가꿔진 몸이다. 반면 호주 해변엔 사람들이 관리되지 않은 몸을 드러내는 데 거리낌이 없다. 배가 나와도 살이 처져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저자들은 동네 축제를 방문해선 사람들의 자유로움에 놀란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자신들이 기른 농작물을 든 채로 퍼레이드에 참가한다. 휠체어를 타고 나온 장애인도 많았다. 오와 열을 맞춰 행진하는 군무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들은 거리를 어슬렁거리며 웃고 떠들었다. 젊고 아름다운 존재만이 무대에 오르는 한국과 자연스러움을 받아들이는 호주의 차이를 실감한다. 저자들은 호주에 “꽃을 보러 왔다가 사람들을 봤다”고 고백한다. 가장 인상 깊은 건 저자들이 호주 브리즈번 공항을 떠나기 전 본 한 문구다. 출국장엔 ‘Keep the sunshine’(햇살을 간직해)이라는 문장이 적혀 있었다. 자연과 어울려 살아가는 호주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잘 반영한 작별인사였다. 코로나19로 힘들었던 2년을 버티게 한 건 이 문구였다는 저자들의 말이 이해간다. 요즘 서점을 가보면 코로나19 이후 달라진 현지 모습을 반영해 낸 여행 가이드북 개정판이 눈에 많이 띈다. 정책과 상황이 급변할 때 여행 정보처럼 중요한 게 없는 만큼 가이드북은 중요한 준비물이다. 하지만 여행을 떠날 때 그 나라에 대한 여행 에세이도 하나씩 들고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내가 못 보고 놓칠 법한 시각을 여행자에게 선사해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일단 나부터 호주행 비행기 표 가격을 알아봐야겠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2-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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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老시인의 ‘코로나시대 위로법’… “눈으로 말하는 버릇 생겨”

    나태주 시인(77)은 주변 사람들에게 “아프다” “힘들다”는 말을 거의 하지 않는다. 희수(喜壽)에 접어든 그의 몸은 성치 않지만 나이가 들수록 밝은 면을 노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앙이 닥쳤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코로나19가 생긴 뒤로는 서로가 눈을 들여다보면서 눈으로 말하는 버릇이 새로 생겼어요’(시 ‘코로나 이후’ 중)라며 희망을 이야기한다. 7일 시집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마라’(열림원·사진)를 펴낸 그는 9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인간은 가족이 죽더라도 다시 밥을 먹고 힘을 내야 하는 희망적 존재다. 재앙 속에서 피어나는 것들을 찾고 싶었다”며 웃었다. 신작에는 그가 2020년 2월부터 올 2월까지 쓴 시 176편이 담겨 있다. ‘마스크 쓰고/눈과 눈썹과/이마만 남겼으니/다 예쁘다/그냥 예쁘다’(‘코로나 시대’) ‘코로나19가 우리를/새롭게 철들게/하는 것이었다’(‘다시 포스트코로나’) “우리가 어떻게 서로를 위로하고 소통했는지 말하고 싶었습니다. 독자들이 읽으면서 ‘유명한 시인도 나랑 똑같네’라고 생각하도록 쉬운 언어로 썼어요.” 올 2월 별세한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을 생전에 만난 그는 고인에 대한 시 2편도 시집에 담았다. 그는 ‘민달팽이’에서 ‘민달팽이 집이 없는 민달팽이/아프게 힘들게 맨몸으로 기어서/하늘나라로 돌아갔습니다’라고 고인을 추모했다. ‘정말 모른다고’에서는 ‘죽음과 사랑에 대해서만은//모른다고 정말 모른다고/어린아이처럼 고백했다’고 썼다. 그는 “내가 변하지 않는 가치를 모아 온 골동품 가게 주인이라면 고인은 늘 새로운 것을 찾아다녔던 가전제품 가게 주인이다. 평생 모른다는 말을 모르고 산 고인은 딸에 대한 사랑과 자신에게 다가온 죽음을 모르겠다고 고백했다”고 말했다. 그는 올 1월 방탄소년단(BTS)의 노랫말에 산문을 붙인 에세이 ‘작은 것들을 위한 시’(열림원)를 펴냈다. 이번 신작에서도 BTS에 대해 ‘세계인의 가슴에 노래를 심고/세계인의 가슴에 사랑을/심어 가꾸는 마음의 정원사들’(‘사람의 별’)이라고 예찬한다. “노랫말을 읽다 보면 한글에 대한 애정이 느껴져 BTS를 좋아한다”는 시인. 20, 30대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를 알 것 같다고 하니 이렇게 답했다. “평소 친구처럼 지내는 20, 30대 청년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냉혹한 세상에 던져진 미생(未生)이라고, 젊어도 고달프다고 토로해요.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들이 좋아하는 시가 제게 옵니다. 저는 그걸 받아 적을 뿐이에요.”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2-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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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린이 책]편지봉투를 타고서… 할머니, 제가 가요!

    “지금 할머니가 보고 싶어요. 딱, 바로 지금요.” 손주는 먼 곳에 떨어져 살기에 자주 보지 못하는 할머니에게 애틋함을 전한다. 아이는 당장 만날 수 없는 할머니에게 자신만의 방법으로 다양한 소통을 시도한다. 편지를 쓰고, 그림을 그린다. 아이 특유의 재치 있는 발상과 상상도 펼친다. 아이가 스스로 편지봉투 속에 들어간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시대에 대한 은유로 느껴진다. 이 작품은 한국인 최초로 ‘어린이책의 노벨문학상’으로 불리는 안데르센상 일러스트레이터 부문을 올해 수상한 이수지 그림책 작가의 신작이다. 종이책의 물성을 적극 활용하는 그의 특성이 두드러진다. 그림책 표지부터 페이지 곳곳에 아기자기한 구멍이 뚫려 있다. 왼쪽 페이지에 그려진 아이는 컴퓨터 모니터 속 구멍을 통해 오른쪽 페이지의 할머니 모습을 본다. 할머니도 모니터를 통해 훌쩍 자란 손주를 흐뭇하게 바라보는 모습이 정겹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2-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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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호재의 띠지 풀고 책 수다]태평양 건너편의 시인들 사랑과 평화를 노래하다

    이달 1∼5일 열린 서울국제도서전을 지켜보며 아쉬운 점이 있었다. ‘국제’ 도서전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국내 작품이나 작가 위주로 주목받았다는 것이다. 작가 김영하의 강연엔 300여 명의 청중이 몰렸지만 주빈국인 콜롬비아 전시관엔 관람객이 붐비지 않았다. 콜롬비아 작가 30여 명이 온·오프라인으로 강연과 전시를 선보인 것에 비하면 섭섭한 반응이다. 스페인어권 나라가 서울국제도서전에 주빈국으로 참여하는 건 처음이고, 남미 문학이 한국 독자들에게 낯선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올해 4월 콜롬비아 보고타 국제도서전에서 열린 작가 은희경의 강연에 독자 200여 명이 몰렸던 상황을 생각하면 씁쓸하다. 이 책은 콜롬비아 유명 시인 12명의 대표작을 모은 시선집이다. 콜롬비아 시선집이 우리나라에서 출간되는 건 처음이다. ‘시인의 나라’로 불리는 콜롬비아의 시를 읽어 보자. “초록색의 순수한 눈, 경치를 바라보았다./달 뜬 밤에 엎어져 있는 커다란 얼룩이/가득한 암소 한 마리, 달이 비스듬히 기울 때면, 나뭇가지 위의 꼬리 붉은 검은 새, ‘작은 불꽃’, ‘꿀사과’ 같다.”(아우렐리오 아르투로 ‘남쪽의 집’ 중) 시인은 콜롬비아 남부의 비옥한 풍경을 아름답게 그린다. 시어엔 조국의 자연에 대한 애정이 묻어난다. 시인은 과거에서 아름다움의 기원을 찾기도 한다. “이 사랑은 지금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아니다./그것은 저 멀리서 온다./수백 년의 침묵에서,/우리가 또 다른 이름을 가졌고, 또 다른/덧없는 피가 우리 혈관에서 넘쳐흐르는/순간에서 비롯된다.”(메이라 델마르 ‘오래된 뿌리’ 중) 콜롬비아의 역사는 핍박과 혼란의 연속이다. 콜롬비아는 16∼18세기 스페인의 지배를 받았다. 독립 후에도 정치 상황이 불안해 독재, 테러에 시달렸다. 현재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인플레이션, 양극화로 국민 불만이 가득하다. 그래서일까. 투쟁과 저항의 기운이 느껴지기도 한다. “내 손바닥에는 아무것도 없다./그러자 손을 쥐어 주먹을 만들고서 싸우기로 했다,/다른 사람에게 빼앗긴 것을 되찾기 위해.”(프렌디 치칸가나 ‘한 줌의 흙’ 중) 최근 콜롬비아 문학 작품이 국내에 연달아 소개되고 있다. 폭력이 만연했던 콜롬비아의 현실을 밀림에 빗댄 장편소설 ‘소용돌이’(문학과지성사), 정치인이 총에 맞아 살해된 이야기를 그린 장편소설 ‘폐허의 형상’(문학동네), 붕괴된 사법 체계를 풍자한 장편소설 ‘청부 살인자의 성모’(민음사)…. 콜롬비아에선 드라마와 음악의 인기에 힘입어 한국 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서울국제도서전을 계기로 출판계가 콜롬비아 문학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면 좋겠다. 우리 작품을 해외에 소개하는 일뿐 아니라 해외 작품을 국내에서 다양하게 접하는 데서 진정한 문화강국이 시작될 것이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2-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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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리도 싫었던 엄마, 이젠 내 딸이 됐구나

    엄마는 딸의 발이 커지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딸에게 한 사이즈가 작은 신발을 신겼다. 옷차림을 확인하기 위해 외출 전이면 눈으로 딸의 모습을 위아래로 훑었다. 딸이 뛰어난 사람이 되길 요구했지만 아들보단 더 잘나면 안 된다고 했다. 그래서 딸은 항상 엄마 곁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엄마를 오래 싫어했다. 그러나 딸은 엄마를 싫어하는 일을 끝낼 수밖에 없었다. 2017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엄마는 알츠하이머에 걸렸다. 엄마는 현금인출기에서 돈을 찾는 법을 까먹을 정도로 삶이 망가졌다. 엄마는 딸에게 짐이 되기 싫다며 스스로 요양원에 들어갔다. 엄마를 모시기 버거워하는 자신의 마음을 알고서 먼저 말을 꺼낸 것일지도 모른다. 5일 펴낸 에세이 ‘어금니 깨물기’(마음산책)에서 엄마에 대한 애증을 고백한 김소연 시인(55·사진)은 3일 전화 인터뷰에서 “1932년생인 엄마는 일제강점기, 6·25전쟁을 겪으며 억척스럽게 살아온 한국의 전형적인 여성”이라며 “다정함을 못 배운 사람이었기 때문에 나를 착취하고 내게 무엇인가를 강요하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엄마 앞에만 있어도 울음이 터질 것 같았어요. 내 생각을 엄마가 다 알까, 내가 엄마를 얼마나 싫어하는지 들킬까 싫었죠. 한국 사회의 많은 딸들처럼 엄마를 보며 난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세상을 떠나기 전 엄마는 딸 앞에서 울었다. 약해진 엄마를 보며 그는 깨달았다. 엄마가 엄마의 역할을 끝내고 이젠 내 자식이 됐다고. 엄마가 억척스러웠던 건 자식을 지키기 위해서였을 뿐이라고. 그는 “올 2월 엄마는 심정지로 세상을 떠났다”며 “엄마를 용서한 것도, 엄마와 화해한 것도 아니지만 엄마를 싫어할 수 없게 됐다”고 했다. 김 시인은 엄마를 인천 앞바다에서 해양장(海洋葬)으로 떠나보냈다. “죽기 전에 제주도 한번 여행하고 싶다”던 엄마의 유해가 바다를 타고 인천에서 제주로 흘러가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인터뷰 말미 “엄마가 보고 싶다”고 하던 김 시인. 그는 인터뷰가 끝난 뒤 자신이 쓴 시를 보내왔다. “싸가지가 없다고 어린 딸을 때리던/그때의 엄마 나이가 되어 있었고/딸에게 의지하여 딸이 된 엄마는 그러나/싸가지가 없을수록 눈물겨웠다”(‘십일월의 여자들’ 중)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2-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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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성공으로 둔갑한 거짓들… 프로이트 ‘팩트체크’

    오스트리아 심리학자 지크문트 프로이트(1856∼1939)는 1893년 알프스를 여행하던 중 18세 소녀 카타리나를 만났다. 카타리나는 프로이트에게 자신이 요즘 불안과 발작에 시달리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카타리나는 2년 전 이모부가 딸인 사촌언니와 한 침대에 있는 부적절한 장면을 목격한 뒤 충격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또 4년 전엔 이모부가 자신에게 성적으로 접근했다고 했다. 프로이트는 카타리나의 사연이 당시 그가 연구하던 ‘처녀 불안’에 해당하는 사례라고 판단했다. ‘처녀 불안’은 처녀가 처음으로 성욕을 느꼈을 때 공포에 압도당해 발작이 일어나는 것을 말한다. 프로이트는 또 이모부가 카타리나에게 접근했을 때 생긴 불안감이 이모부와 사촌언니가 함께 있는 사건을 겪고 나서야 발작이라는 ‘지연된 외상’으로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프로이트는 1895년 발표한 논문에서 이 사례를 상세히 설명하며 자신의 이론을 펼쳤다. 프로이트는 1924년 카타리나를 유혹한 건 사실 이모부가 아닌 아버지라고 정정했다. 그러면서 카타리나가 아버지로부터 시작된 성적 유혹으로 인해 몸이 아팠을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소녀의 내면에 억압된 ‘근친상간 욕구’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후대 프로이트 연구자들이 찾아낸 사실은 사뭇 다르다. 카타리나의 실제 이름은 아우렐리아 크로니히(1875∼1929)다. 당시 이모부와 사촌언니가 한 침대에 있었던 사건은 동네에 소문이 다 난 상태였다. 소녀가 홀로 간직한 비밀이 아니기 때문에 ‘지연된 외상’이 일어날 가능성이 작았다. 크로니히의 후손들은 연구자들과의 인터뷰에서 크로니히와 그녀의 아버지 사이에 불미스러운 일은 없었다고 반박했다. 프로이트는 정말 진실만을 적었을까. 프랑스 철학자이자 정신분석학자인 저자는 정신분석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프로이트의 진실을 파헤친다. 프로이트가 논문을 통해 치료했다고 주장한 환자들 중 38명을 추려 행적을 추적한다. 차분히 근거를 제시하며 조목조목 사실관계를 확인해 나간다. 프로이트는 자신이 세르게이 판케예프(1887∼1979)의 심각한 불안증과 우울증을 치료했다고 썼다. 그러나 판케예프는 후대 연구자들과 만나 “프로이트가 나를 치료했다는 건 다 거짓이다”라고 했다. 프로이트는 자신의 동료가 치료한 베르타 파펜하임(1859∼1936)도 훌륭한 치료 성공 사례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파펜하임은 신경통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프로이트는 히스테리에 시달리던 아나 폰 리벤(1847∼1900)을 치료하면서 적정량 이상의 모르핀을 주입하는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프로이트가 쌓아올린 성과를 무시할 순 없지만 그의 허실 역시 알려져야만 한다. 욕심 때문에 버린 연구자의 양심은 언제든 부메랑이 돼 돌아오는 법이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2-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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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춘의 고뇌… 죽음의 의미… “이제 ‘나’ 아닌 ‘우리’가 보여”

    작가 김훈(74)은 2006년 첫 단편소설집 ‘강산무진’(문학동네)을 펴낸 뒤 이를 부끄러워했다. 이 작품은 쓸쓸하고도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그는 ‘나’에 대해서만 썼다며 만족하지 못했다. 그는 당시 “‘우리’에 대해서, ‘너’에 대해서도 쓰지 못하고 ‘나’의 이야기에만 머물고 있다”고 고백했다. 그로부터 16년이 지났다. 그는 스타 소설가를 넘어 거장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이제 우리에 대해 이야기한다. 지난달 31일 출간된 두 번째 단편소설집 ‘저만치 혼자서’(문학동네·사진)는 7개 작품을 엮었다. ‘명태와 고래’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보고서를 바탕으로 국가폭력 피해자들의 아픔을 들여다본다. 9급 공무원 준비생을 다룬 ‘영자’와 최전방경계부대(GOP) 군인이 주인공인 ‘48GOP’는 청춘의 고뇌를 함께 고민한다. 젊은 신부가 늙은 수녀를 돌보는 표제작 ‘저만치 혼자서’와 70대 노인이 등장하는 ‘대장 내시경 검사’를 통해 죽음이란 무엇인가를 묻는다. 그를 2일 서면으로 만났다. ―신간은 2020년 6월 장편소설 ‘달 너머로 달리는 말’(파람북) 이후 2년 만이다. 왜 16년 동안 단편소설집을 안 냈나. “게으름일 뿐이다. 일상 속에서 소설이 될 수 있겠다 싶은 순간들은 수없이 많다. 그러나 그 순간을 모두 붙잡아놓고 거기다 이야기를 입혀 소설을 만들 수는 없었다. 단편소설은 노련한 검객이 칼 한 번 휘두른 단면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단면에 수많은 삶의 무늬와 결이 퍼덕거려야 한다.” ―‘명태와 고래’와 ‘48GOP’는 부조리한 국가폭력을 다뤘다. “두 작품은 짝을 이루는 작품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48GOP’가 ‘명태와 고래’의 후속편인 셈이다. 이 두 작품은 1948년생인 나의 시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전쟁과 분단, 그 후 전개된 남북 간 적대관계가 시대 속에 남긴 흔적을 그렸다.” ―‘영자’에서는 세상에 진입하려고 발버둥치는 젊은이들의 괴로움이 느껴진다. “‘영자’는 시대에서 추방된 존재로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모습이다. 내가 나에 대해서 글 쓰는 동안에도 동시대로부터 벗어날 도리는 없을 것이다. 누구나 그렇다.” ―‘대장 내시경 검사’는 세월의 무상함이 느껴진다. 이상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단편소설 ‘화장’(2003년)이 생각난다. “‘대장 내시경 검사’의 주인공은 ‘화장’의 중년 사내보다 훨씬 더 늙어 있다. 이 늙은 사내는 더 이상 삶에 개입할 수 없고 다만 배웅해서 보낼 뿐이다. 죽음은 인간의 의지로 다룰 수 있는 영역이 아니지만, 마음을 내려놓고 가볍게 죽는 것은 괜찮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딸 김지연 싸이런픽쳐스 대표가 ‘오징어게임’ 제작자로 주목받았다. “‘오징어게임’이 세계인의 공감을 받은 까닭은 국적에 관계없이 다들 약육강식과 불평등의 구조 속에서 신음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불평등 문제를 현실적으로 개선하는 방안은 어떤 게 있는지 생각하게 됐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2-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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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춘의 고뇌-이웃의 죽음…‘우리’에 대해 들여다본 거장

    작가 김훈(74)은 2006년 첫 단편소설집 ‘강산무진’(문학동네)을 펴낸 뒤 심히 부끄러워했다. ‘강산무진’은 쓸쓸하고도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그는 스스로 ‘나’에 대해서만 썼다고 자책했다. 그는 당시 “‘우리’에 대해서, ‘너’에 대해서도 쓰지 못하고 ‘나’의 이야기에만 머물고 있다”고 고백했다. 16년이 지났다. 그는 이제 스타 소설가보단 거장으로 평가받는다. 무게감 때문일까. 그는 이제 ‘우리’에 대해 이야기한다. 지난달 31일 출간된 두 번째 단편소설집 ‘저만치 혼자서’(문학동네)는 7편의 단편소설을 담았다. ‘명태와 고래’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보고서를 바탕으로 국가폭력 피해자들의 아픔을 들여다본다. 9급 공무원 준비생을 다룬 ‘영자’와 최전방경계부대(GOP) 근무 군인이 주인공인 ‘48GOP’는 청춘의 고뇌를 함께 고민한다. 젊은 신부가 늙은 수녀를 돌보는 ‘저만치 혼자서’와 70대 남성 노인이 등장하는 ‘대장 내시경 검사’를 통해 이웃의 죽음이란 무엇인가 묻는다. 그를 서면으로 만났다.―신간은 2020년 6월 장편소설 ‘달 너머로 달리는 말’(파람북) 이후 2년 만이다. 왜 16년 동안 단편소설집을 안 냈나. “게으름일 뿐이다. 일상 속에서, 소설이 될 수 있겠다 싶은 순간들은 수없이 많다. 그러나 그 순간들을 모두 붙잡아놓고, 거기다 이야기를 입혀서 소설을 만들 수는 없었다.”―신간은 ‘우리’에 대해 들여다본다. “나는 ‘나’에 대해서 쓰기가 가장 편안하고, ‘너’에 대해서 쓰기는 어렵고, ‘그’에 대해서 쓰기는 더욱 어렵다. 그러니 ‘우리’에 대해서 쓰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일인칭에서 이인칭을 거쳐서 삼인칭으로 이행하는 단계마다 지옥이 펼쳐진다. 나는 ‘너’와 ‘그’를 통과하지 않고서는 ‘우리’에 도달하기가 어렵다. 우리는 ‘우리’라는 단어를 너무나 자주, 너무나 쉽게, 너무나 무책임하게 사용하고 있다.”―청춘의 고통을 쓴 이유는. “‘영자’는 그 시대에서 추방된 존재로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모습이다. 내가 ‘나’에 대해서 글 쓰는 동안에도 동시대로부터 벗어날 도리는 없을 것이다. 누구나 그렇다.”―‘대장 내시경 검사’는 이상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한 2004년 단편소설 ‘화장’이 떠오른다. “‘대장 내시경 검사’의 주인공은 ‘화장’의 중년 사내보다 훨씬 더 늙어 있다. 이 늙은 사내는 더 이상 삶에 개입할 수 없고 다만 배웅해서 보낼 뿐이다. 죽음은 살아 있는 인간의 언어의 영역을 벗어나는 사태지만, 마음의 하중이 빠져나가서 가볍게 죽는 것은 괜찮은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딸 김지연 싸이런픽처스 대표가 ‘오징어 게임’ 제작자로 주목받았다. “‘오징어 게임’이 세계인의 공감을 받은 까닭은 국적에 관계없이 다들 약육강식과 불평등의 구조 속에서 신음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불평등’의 문제를 현실적으로 개선하는 데 어떤 작용이 있는 것인가를 요즘에 생각하게 됐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2-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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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에 대한 갈증”… 서울국제도서전 첫날 2만여 인파

    “첫날 이렇게 많이 오시지는 않는데 저도 놀랐어요. 여러분들 모두 책과 문화에 대한 갈증이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1일 오후 서울 강남구 코엑스 서울국제도서전 강연장. ‘책은 건축물이다’를 주제로 강연에 나선 소설가 김영하가 연단에 들어서자 독자 300여 명이 환호성을 질렀다. 자리가 부족해 밖에 서서 지켜보는 이도 적지 않았다. 그는 “매년 출판시장이 불황이라는 말이 나왔지만 팬데믹 시기 출판계는 오히려 호황이었다. 넷플릭스, 유튜브 등 영상물 자극에 지친 독자들이 견고하고 굳건하게 책을 읽었다”고 말했다. 이어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책은 우리에게 집 같은 공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우리가 어릴 적부터 읽어온 책은 집처럼 편안하고 안전한 공간처럼 느껴진다. 외부공간이 위험해지자 사람들은 익숙한 공간인 책으로 달아난 것 같다”고 했다. 서울국제도서전은 이날 개막 1시간 전부터 입구에 수십 명의 관람객이 줄을 서서 기다렸다. 전시장 통로는 쏟아지는 인파에 걷기가 힘들 정도였다. 전날 기준 도서전 사전예매 인원만 2만 명.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직전인 2019년 사전예매 인원(1만2000명)보다 껑충 뛰었다. 이날 도서전을 찾은 이들은 현장구매를 포함해 최소 2만5000명으로 추산된다. 대한출판문화협회는 “현장 구매하는 관람객이 더 많다는 것을 고려하면 5일까지 열리는 행사기간에 약 20만 명이 도서전을 찾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관람객이 이처럼 몰린 것은 올해 행사가 3년 만에 대규모로 열린 데 따른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해 2020년에는 온라인으로, 지난해는 행사 규모를 줄여 대면행사로 열렸다.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이날 개막식 축사에서 “도서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줄을 서서 입장해 깜짝 놀랐다. ‘타는 목마름’ 같은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많은 독자가 온 것을 보고 기뻤다”고 밝혔다. 올해 도서전 주빈국인 콜롬비아의 아드리아나 파디야 문화부 차관은 “서울국제도서전에 주빈국으로 참여하는 첫 스페인어권 나라여서 무한한 자긍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 도서전에는 국내외 출판사 195곳이 참여했다. 문학동네, 민음사 등 대형 출판사뿐만 아니라 중소 출판사 부스도 관람객으로 북적였다. 장르문학을 주로 펴내는 출판사 안전가옥, 공상과학(SF) 전문 출판사 허블·아작 부스에도 많은 이가 몰렸다. 출판사들은 이번 도서전에서 처음 공개하는 책과 더불어 표지를 새로 단장한 리커버 도서로 눈길을 끌었다. 출판사 대표들이 직접 판매에 나서기도 했다.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는 “독자와 눈을 맞추고 대화를 나누고 싶어 ‘일일 점원’으로 나섰다. 독자들을 만나고 나니 더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2일 한국인 최초로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을 받은 이수지 작가가 ‘그림으로 그대에게 반 발짝 다가서기’, 3일 은희경 작가가 ‘문학으로 사람을 읽다’, 4일 한강 작가가 ‘작별하지 않는 만남’, 5일 가수 장기하가 ‘상관없는 거 아닌가?’를 주제로 각각 강연을 연다. 전시코너에서는 ‘반걸음’이라는 올해 주제에 어울리는 10개 브랜드, 600권 분량의 북 큐레이션을 접할 수 있다. 최근 3년간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으로 선정된 30종의 책을 선보이는 전시도 볼 수 있다. 만 19세 이하 5000원, 성인 1만 원.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2-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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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문학 놀랍고도 아름다워 소개 나섰다”

    1∼5일 열리는 올해 서울국제도서전에서는 각국 출판인들의 교류가 주목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온라인 혹은 소규모 대면행사로 진행된 2020, 2021년과 달리 올해는 18개 해외 출판사와 12개국 47명의 해외 강연자가 서울국제도서전을 찾는다. 최근 활발해진 한국문학의 세계화를 해외 출판계는 어떻게 보고 있을까. 1일 ‘한국 문학작품이 세계적 스포트라이트를 받기까지’ 콘퍼런스에 참석한 미국, 캐나다, 영국 출판사의 한국문학 담당자 세 명을 만나봤다. 브리트니 데니슨 미국 뉴디렉션 퍼블리싱(1936년 설립) 홍보이사는 김혜순 시인이 미국 루시엔 스트릭 번역상을 받는 데 기여했다. 트레이시 허런 편집자는 캐나다 드론 앤드 쿼털리(1990년 설립)에서 기획편집을 맡고 있다. 크리스틴 알파로 출판담당자는 한강 소설가의 ‘채식주의자’를 번역한 데버라 스미스가 2015년 세운 영국 틸티드 액시스 프레스에서 일하고 있다. ― 한국문학을 처음 접했을 때 어땠나. “너무 신났다. 내가 읽지 않은 종류의 작품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고 할까.”(허런) ― 한국문학을 소개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한국문학은 놀랍고 아름답다. 김혜순 시인의 ‘죽음의 자서전’을 예로 들겠다. 한국에서 일어난 일(세월호 참사 등)을 모티브로 삼았지만 한국인만이 읽을 시라고 단정하기에는 너무도 중요한 시 아닌가.”(데니슨)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일본문학이 많이 소개됐지만 한국문학은 그렇지 않다. 북미권에서 한국문학에 대한 수요는 충분하다.”(허런) ― 이수지 정보라 손원평 등 한국 작가들이 해외에서 주목받고 있다. 의미와 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최근 한국문학을 궁금해하는 북미권 독자가 많아지고 있다. 방탄소년단, ‘오징어게임’, ‘기생충’ 등 한국 대중문화의 성장이 한국문학의 해외 진출을 이끈 건 사실이다. 하지만 대중문화의 후광효과를 넘어 한국문학 자체로 인정받아야 한다.”(허런) “한국문학 작품들이 한 해에 연달아 국제문학상을 수상하거나 후보에 오르는 일은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 국제문학상 후보로 지명되거나 상을 받으면 많은 해외 독자들이 한국문학을 찾을 것이다. 하지만 국제문학상 심사위원들이 (국가별 안배 때문에) 다른 한국문학 작품들에 상을 주기를 주저할 수도 있다.”(데니슨) “한국문학이 해외에서 성공을 거두는 데에는 ‘저주토끼’를 번역한 허정범(안톤 허) 같은 번역가들의 노력이 크다. 최근 여러 한국 번역가와 일하고 있는데 이들은 번역뿐 아니라 작품을 알리는 데도 최선을 다한다. 훌륭한 번역가를 키워야 한국문학이 성공할 수 있다.”(알파로)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2-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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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대 대통령 외교정책과 한미동맹…“평화는 저절로 찾아오지 않는다”

    “평화는 저절로 찾아오지 않는다. 평화는 특정한 조건 아래서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31일 출간된 정치서 ‘대통령과 한미동맹’(바른북스)에서 정재용 연합뉴스 선임기자는 이렇게 주장한다. 저자는 역대 한국 대통령들의 외교·안보 정책을 한미동맹의 시각으로 바라본다. 6·25전쟁 당시 세계 최빈국이던 한국이 세계 10위권 경제 강국으로 도약한 이유를 한미동맹에서 찾는다. 저자는 “평화는 전쟁(war)이라는 비용(cost)을 부담할 능력을 갖춘 국가만 누릴 수 있는 특수한 상태”라며 “윤석열 정부는 문재인 정권의 굴종적이고 비현실적인 대북정책과 단절하고 이완된 한미동맹의 결속력을 복원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먼저 문재인 정권이 북한과 중국에 경도된 외교·안보정책을 펼쳤다고 주장한다. 미·중·일·러에 둘러싸인 열약한 안보환경에서 대한민국의 안보를 보증하고 경제를 발전시킨 원동력은 한미동맹이고, 한미동맹은 과소평가되거나 당파적 논쟁거리가 됐다는 것이다. 저자는 문재인 정권의 ‘이상주의적 외교·안보 행보로 안보가 흔들리고 균열이 일어났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윤석열 정부의 한미동맹 재건 의지와 정책 목표도 탐구한다. 한미동맹을 70년가량 지탱해온 원동력을 규명한다. 한미동맹을 탄생시킨 이승만에서 직전 대통령 문재인까지 역대 대통령 10명의 주요 외교안보정책과 결정요인을 한미동맹라는 프리즘을 통해 비교 분석한다. 한미동맹에서 동맹의 약한 파트너인 한국이 동맹의 강한 파트너인 미국을 대상으로 자율성을 추구했는지를 파고든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2-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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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제문학상 수상은 ‘양날의 검’…번역가 키워야 한국문학이 더욱 성공할 것”

    이달 1~5일 열리는 올해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주목해야할 점은 해외 출판인들과의 교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온라인, 소규모로 열렸던 2020~2021년과 달리 올해 서울국제도서전에 참여한 해외 출판사는 18개, 해외 강연자는 12개국 47명에 이른다. 최근 한국문학이 주목 받고 있는 현상을 해외 출판인들은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서울국제도서전 개막일인 1일 ‘한국 문학작품이 세계적 스포트라이트를 받기까지’라는 주제로 콘퍼런스를 여는 미국, 캐나다, 영국 출판사 한국문학 담당자 3명의 생각을 미리 들어봤다. 브리타니 데니슨은 1936년 설립된 미국 출판사 뉴디렉션 퍼블리싱 홍보이사로 김혜순 시인이 미국 루시엔 스트릭 번역상을 받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인물이다. 트레이시 허런은 1990년 세워진 캐나다의 출판사 드론 앤드 쿼털리의 기획편집자다. 크리스틴 알파로는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번역한 영국 번역가 데버러 스미스가 2015년 설립한 영국 출판사 틸티드 액시스 프레스의 출판 담당자다.―한국 문학을 처음 접했을 때 어땠나. “너무 신났다. 내가 읽지 않은 종류의 작품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고 할까.”(허런) “어떤 나라에서 온 작품들보다 궁금했다.”(데니슨)―왜 한국 문학을 해외에 소개하나. “한국 문학은 놀랍고 아름답다. 김혜순 시인의 ‘죽음의 자서전’을 예로 들겠다. 한국에서 일어났던 일(세월호 참사 등)을 모티브로 삼았지만 한국인들만이 읽을 시라고 단정하기엔 너무도 중요한 시가 아닌가.”(데니슨) “미국과 캐나다엔 일본문학이 많이 소개됐지만 한국문학은 아직 많이 없다. 북미권에서 한국문학에 대한 수요는 충분하다.”(허런)―이수지 그림책 작가의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 수상, 정보라 작가의 영국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 지명, 손원평 작가의 일본 서점대상 번역소설 부문 수상처럼 해외에서의 한국문학 성취가 벌어지고 있다. 의미와 앞으로 극복해야 할 점을 말해 달라. “최근 한국문학에 대해 궁금해 하는 독자들이 많아지고 있다. 방탄소년단(BTS), 오징어게임, 기생충 등 한국 대중문화의 성장이 한국문학의 해외 진출을 이끄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대중문화의 후광효과를 넘어서 한국문학 자체로 인정받아야 한다.”(허런) “한국문학 작품들이 한 해에 연달아 국제문학상을 수상하거나 후보에 오르는 일은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국제문학상 후보로 지명되거나 수상하면 많은 해외 독자들이 한국문학을 찾을 것이다. 반면 앞으로 국제문학상 심사위원들은 상을 신선하게 유지하기 위해 다른 한국문학 작품에 상을 주기를 주저할 수도 있다.”(데니슨) “한국문학이 해외에서 성공을 거두는 데엔 ‘저주토끼’를 번역한 허정범(41·안톤 허) 같은 번역가들의 노력이 크다. 최근 여러 한국 번역가들과 일하고 있는데 이들은 번역뿐 아니라 작품을 알리는 데도 최선을 다한다. 훌륭한 한국문학 번역가를 키워야 한국문학이 성공한다.”(알파로)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2-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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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0쇄 ‘새의 선물’… 제겐 빛이자 그림자”

    소설가 은희경(63)은 30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장편소설 ‘새의 선물’(문학동네) 100쇄 기념 개정판 작가의 말을 다시 읽었다. 공을 들여 쓴 글이었지만 그의 눈엔 고치고 싶은 부분이 또 보였다. 그는 농담을 소설에 쓸지 고민하는 자신의 마음을 설명하며 이는 농담과 자신 사이의 ‘눈치 게임’이라고 비유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시소게임’이라는 표현이 더 적합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의미에 가장 적합한 단어를 찾기 위해 27년간 글과 씨름을 해온 중견 작가다운 고민이었다. 은희경은 30일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새의 선물’은 오늘 아침까지 작가의 말을 고치고 싶은 고민이 들 정도로 각별한 의미가 있는 작품”이라며 “1995년 작품이 처음 출간된 후에 전체를 다 읽은 것도, 고친 것도 처음”이라고 했다. 100쇄 기념판은 다음 달 3일 출간된다. 문학동네에서 100쇄 출간된 작품이 나오는 건 2007년 안도현 시인의 우화소설 ‘연어’ 이후 15년 만이다. “마감 전까지 책을 끊임없이 고쳐요. 고치고 싶은 욕망이 강한 만큼 이미 출간된 작품을 읽는 일은 힘든 일이에요. 그런데도 개정판을 낸 건 27년간 절판 없이 100쇄까지 이어진 작품에 대한 애정 때문입니다. 27년 전 나와 지금의 내가 공동작업을 했기 때문에 ‘이제 이 책은 누구에게도 선물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새의 선물’은 12세 소녀 진희가 가족과 이웃들을 관찰하는 성장소설이다. 은희경 특유의 위악적인 시각이 넘치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199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직후 제1회 문학동네소설상을 받은 이 작품으로 일약 스타 작가가 됐다. 하지만 대표작이 첫 작품이라는 굴레를 던져버리기도 힘들었다. 그는 “‘새의 선물’은 제게 멀고도 환한 빛이자 길고도 희미한 그림자”라며 “이 작품이 꾸준히 팔린 덕에 작가로서 생활이 안정적이었지만 발밑에 한계의 동그라미가 그려진 느낌도 있었다”고 고백했다. 개정판은 초판과 내용, 주제 의식이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사회의식이 변화함에 따라 독자들이 불편해할 수 있는 표현을 다듬었다. 예를 들어 장애인을 비하하는 표현을 담은 ‘앉은뱅이책상’은 ‘좌식책상’으로 바꿨다. 애칭으로 썼지만 얼굴에 흉터가 있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곰보 아줌마’는 ‘아줌마’로 손봤다. 그는 “1990년대엔 문제없이 받아들여졌던 특정 단어나 표현이 현재엔 누군가를 비하하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다”며 “다만 당시 시대상을 살리기 위해 남겨둔 부분도 있다”고 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물으니 그는 웃으며 답했다. “지금은 ‘몸’에 대한 장편소설을 준비 중입니다. 몸이라는 건 인간이 가진 조건이자 타인과 관계 맺기를 위한 필수적 요소입니다. 동시에 세상의 평가, 왜곡, 오해의 출발점이에요. 앞으로도 젊었을 때 쓰지 못했던 이야기를 계속 열심히 쓰고 싶어요.”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2-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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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감독에 中배우… 다양성 품은 K콘텐츠, 세계와 통했다

    “제 영화에는 중국인 배우(탕웨이)가 나오고 ‘브로커’는 일본 감독(고레에다 히로카즈)의 화법과 연출로 만들어졌습니다. 아시아의 인적자원과 자본이 교류하는 것은 정말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28일(현지 시간) 칸영화제에서 영화 ‘헤어질 결심’으로 감독상을 수상한 박찬욱 감독은 폐막식 직후 국내 취재진에게 말했다. 한국 영화 2편이 장편 경쟁부문에서 함께 쾌거를 이룬 이유로 ‘다양성을 포용한 K콘텐츠의 힘’을 꼽은 것이다. 박 감독은 “1960, 70년대에 많은 유럽 사람들이 힘을 합쳐 많은 좋은 영화들을 만들어왔다”며 “(아시아 영화인들의) 교류가 활성화돼서 범아시아 영화가 많이 나오길 바란다”고 했다. 박 감독의 ‘헤어질 결심’은 중국 배우 탕웨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한국 영화다. 영화엔 중국어 대사가 나온다. 송강호가 남우주연상을 받은 영화 ‘브로커’는 일본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연출했지만 투자·배급의 주체가 한국이다. 출연 배우도 송강호 배두나 강동원 이지은(아이유) 등 한국 스타들로 채워졌다. 과거엔 한국 스타 감독들이 해외로 진출해 현지 배우들과 현지 영화를 만드는 것이 대세였다. 미국 영화인 박찬욱 감독의 ‘스토커’, 김지운 감독의 ‘라스트 스탠드’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K콘텐츠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흐름이 바뀌었다. 해외 배우나 해외 감독이 한국 영화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콘텐츠의 모호한 국적은 다국적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K콘텐츠의 포용력은 아시아 영화인들을 끌어들이고 관객들을 끄는 호재가 된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지욱 영화평론가는 “한국 영화의 제작 환경과 배우들이 세계 시장에서 고평가를 받으면서 벌어진 새로운 현상”이라며 “K콘텐츠가 다양한 국적의 영화인들을 포용하면서 쾌거가 일어난 것”이라고 분석했다. 외신도 올해 칸영화제에서 활약한 한국 영화의 높아진 위상을 전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한국 영화가 칸영화제에서 주요 상 2개를 휩쓸며 한국 영화산업이 국제적인 연승을 차지한 것”이라고 전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2-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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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칸 감독상, ‘취화선’ 임권택 수상 이후 20년만에 쾌거

    “임권택 감독이 아침에 뉴스를 보고 엄청 축하할 일이라고 좋아하셨다. 경사다.” 임권택 감독(86·사진)의 부인인 채령 씨는 29일 배우 송강호와 박찬욱 감독의 수상 소식을 접한 뒤 임 감독을 대신해 축하 인사를 전했다. 고령인 임 감독은 청력 문제로 전화 통화가 어려운 상황이다. 채령 씨는 “뉴스를 보며 (임 감독이) ‘취화선’으로 칸에서 감독상을 받았을 때가 2002년이니까 벌써 20년이 지났다는 대화를 나눴다. 그때 받은 트로피도 꺼내 봤다. 한국 영화가 두 편이나 큰 상을 같이 받게 돼 너무 기뻐하신다”고 했다. 칸영화제 장편 경쟁부문에서 상을 받은 한국 감독은 박찬욱 감독을 포함해 4명이다. 앞서 임 감독이 2002년 영화 ‘취화선’으로 한국인 최초로 칸영화제 감독상을 받았고, 이창동 감독이 2010년 ‘시’로 각본상을, 봉준호 감독이 2019년 ‘기생충’으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2-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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