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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이 앞으로 차례상을 간소화해 음식은 최대 아홉 가지만 올리고, 전도 부치지 않아도 된다는 방안을 내놓았다. 성균관의례정립위원회는 5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차례상 표준안’을 발표했다. 성균관 표준안에 따르면 추석 차례상의 기본 음식은 송편과 나물, 구이(적·炙), 김치(백김치 류), 과일, 술 등 6가지다. 여기에 조금 더 올린다면 육류와 생선, 떡 정도를 추가할 수 있다. 밥과 국도 따로 올리지 않아도 된다. 위원회는 “기름에 튀기거나 지진 음식도 차례상에 꼭 올릴 필요가 없다”며 “이런 상차림도 가족이 합의해 (더 줄이는 것으로) 결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홍동백서(紅東白西)’처럼 차례상에 음식 놓는 예법도 따를 필요가 없다. 실제로 붉은 과일은 동쪽에 놓고 흰 과일은 서쪽에 놓으라는 홍동백서나 대추 밤 배 감의 순서를 뜻하는 조율이시(棗栗梨柿) 등은 옛 문헌에 존재하지 않았다고 한다. 사당이 없는 일반 가정은 보통 지방(紙榜·종이에 써서 모신 신위)을 올리고 기제사나 차례를 지냈으나 이 역시 바꿀 수 있다. 모시는 분의 사진을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위원회는 “집안마다 차례가 먼저인지 성묘가 먼저인지를 따지기도 하는데, 이 역시 가족끼리 의논해 정해도 된다”고 덧붙였다. 최영갑 성균관의례정립위원회 위원장은 “잘못된 의례문화가 명절증후군이나 명절 뒤 이혼율 증가 같은 문제를 일으킨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관행처럼 내려오던 예법을 바꾸지 못했다”며 “이번 차례상 표준안이 가정의 경제적 부담을 줄이고 성별 및 세대 갈등을 해결하는 출발점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잠시도 쉴 수가 없네요. ‘국보급 명작’들이 워낙 많아 앉지도 못하고 내내 돌아다녔습니다.”(컬렉터 이영상 씨) “너무 도떼기시장처럼 미어터지는 건 ‘옥에 티’네요. 프랜시스 베이컨(1909∼1992) 작품은 사진을 찍기는커녕 제대로 보지도 못했어요.”(관람객 김모 씨) 소문난 잔치엔 역시 먹을 게 많았다. 다만 먹기가 너무 힘들었다. 2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개막한 아트페어 ‘프리즈 서울’과 ‘한국국제아트페어(KIAF·키아프)’는 올 하반기 국내 미술계의 최대 이슈다운 면모를 선보였다. 세계적인 박물관급 작품들이 즐비해 구매자가 아니어도 눈 호강을 멈출 수 없었다. 2일 VIP 오픈 때도 성황이었지만 일반 관람객이 입장한 3, 4일엔 수만 명이 몰려들어 발 디딜 틈이 없을 지경이었다. 이름만으로도 가슴이 두근대는 거장들의 작품이 쏟아진 ‘프리즈 마스터스’ 섹션은 최고의 하이라이트. 파블로 피카소(1881∼1973), 앙리 마티스(1869∼1954), 에곤 실레(1890∼1918)…. 미국 애쿼벨라 갤러리스나 영국 리처드 내기 갤러리 부스는 그림 앞에 다가서기도 힘들 정도였다. 3일 현장에서 만난 한 40대 관람객은 “모마(MoMA·뉴욕현대미술관)에 온 듯한 기분”이라며 감탄했다. 단체 관람객들은 해외여행을 온 것처럼 동선을 미리 짜서 움직이기도 했다. 세계 최정상으로 꼽히는 거고지언(미국)과 하우저앤드워스(스위스), 리슨 갤러리(영국)도 프리즈에서 처음 국내에 진출했다. 하우저앤드워스는 2일 미국 화가 조지 콘도(65)의 2022년 작 ‘Red Portrait Composition’이 280만 달러(약 38억 원)에 팔리는 등 15점이 오픈 1시간 만에 다 팔렸다. 15∼19세기 고지도와 고서를 선보인 영국 대니얼 크라우치 레어북스와 이집트 특집 섹션을 마련한 영국 데이비드 에런 갤러리도 많은 관심을 모았다. 에런 갤러리 관계자는 “한국 컬렉터들도 꽤 많은 작품을 구매했다”고 귀띔했다. 프리즈를 통해 한국 작가들을 ‘큰 무대’에 소개하려는 국내 갤러리의 노력도 눈에 띄었다. 국제갤러리는 김환기(1913∼1974) 작품을 전면에 내세웠고, 현대갤러리는 국내 비디오아트의 선구자인 박현기(1942∼2000)를 부각시켰다. 학고재갤러리도 류경채(1920∼1995) 등 한국 미술사에 굵직한 족적을 남긴 거장들을 선보였다. 2일 현장에서 만난 강정하 금호미술관 큐레이터는 “국내 메이저 화랑들 역시 전속계약을 맺은 해외 작가들이 적지 않은데도, 한국적 색깔이 분명한 작품들이 나와 큰 의의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개최 전부터 우려했던 대로 스포트라이트가 프리즈에 집중되며 키아프는 ‘상대적 박탈감’에 휩싸일 수밖에 없는 처지가 돼버렸다. 키아프에 작품을 출품한 한 중견 작가는 “전체적으로 함께 들썩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키아프 쪽은 민망할 정도로 한산하다”며 입맛을 다셨다. 국제적인 행사치고는 운영이 다소 미숙하다는 반응도 나왔다. 부스별로 한국인 스태프가 부족한 데다 안내지도 등도 금방 동이 나 불편해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관람객 김효경 씨(27)는 “모바일 입장권은 현장 스태프들도 혼란스러워하며 입장에 불편을 겪었다”며 아쉬워했다. 주최 측은 “관람객이 예상보다 훨씬 많아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 좀 더 원활한 진행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프리즈는 5일까지, 키아프는 6일까지 열린다. 한편 프리즈 서울과 키아프가 내년에 서울 종로구 송현동 ‘이건희 미술관’(가칭) 부지에서 열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미술계에 따르면 3일 저녁 오세훈 서울시장은 프리즈 서울 관계자 및 주요 VIP 만찬에서 최근 프리즈 측이 요청한 송현동 부지 행사 대여와 관련해 “내년 프리즈 서울과 키아프 개최지로 송현동 부지를 빌려줄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안녕하세요. 9월 2일부터 6일까지 열리는 아트페어 '프리즈 서울'을 맞아 미술계가 시끌벅적한 한 주 였습니다. 이번 주말까지 페어를 찾는 발길들로 서울이 분주할 것 같은데요. '영감한스푼'은 오늘 개막한 프리즈 서울을 찾아 현장 분위기를 담아왔습니다. 방문객들은 '해외를 가야만 볼 수 있는 작품을 서울에서 보니 기분이 좋다'며 들뜬 분위기였지만, 이 흥분이 가라앉았을 때 누가 웃고 울게 될 지를 생각하면 냉정해지는 하루였습니다. 저희는 '프리즈 서울'에 앞서 해외 미술계 인사들이 한국 작가의 작업실을 방문하는 프로그램 'Dive into Korean Art' 프로그램에도 다녀왔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아트페어에서는 볼 수 없는 한국 작가들의 예술을, 작품이 전시된 미술관이 아니라 작가가 작업하고 호흡하는 스튜디오를 직접 보여주자는 취지로 기획되었습니다. 현장 분위기 오늘 함께 전해드릴게요. ○ 프리즈 서울, 현장은 들떴지만 실속은 누구에게..?:프리즈 서울 현장에서 만난 컬렉터를 비롯한 예술계 인사들은 해외를 가야만 볼 수 있는 작품을 직접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아트페어 개최에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현장을 떠나 냉정히 돌아보면 보이는 것들이 몇 가지 있었는데요. 장기적으로는 외국 갤러리와 아시아 컬렉터의 접점만 강화되는 것은 아닌지, 여기서 한국 작가들이 더욱 소외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우려가 나왔습니다. ○ 해외 미술계 인사들이 찾은 한국 작가의 작업실프리즈 서울 개최를 맞아 한국을 찾는 해외 미술계 인사들을 대상으로 작업실을 방문하는 프로그램, 'Dive into Korean Art'가 8월 29일부터 31일까지 서울과 경기 양평을 오가며 진행되었습니다. 현장에서 미술계 인사들은 이미 한국 작가에 대해 자신이 알고 있던 바를 토대로 진지하게 질문하거나 적극적으로 쌓여 있는 작품을 꺼내 보기도 했습니다. ○ 프리즈 서울, 현장은 들떴지만 실속은 누구에게? 피카소, 에곤 실레부터 리히터까지 서울에서 보다니! 우선 현장에서 만난 컬렉터, 관람객, 큐레이터 등 사람들의 반응은 들떠있었습니다. 특히 '프리즈 마스터스' 섹션을 인상 깊었던 공간으로 꼽은 의견이 많았습니다. 이 공간에서는 피카소와 에곤 실레처럼 누구나 잘 아는 근대 미술 거장들의 작품을 볼 수 있었기 때문에 '관람'으로서 의미를 부여하는 측면이 보였습니다. "프리즈 마스터스 섹션에서 피카소 같은 고전 작품은 물론 고대 유물까지 볼 수 있어서 신기했어요. 데이미언 허스트 나비 작품이 있는 로빌란트 보에나 갤러리도 기억에 남습니다. 벨기에에서 온 귀여운 컬렉터 부부도 보고 저처럼 소규모로 컬렉팅하는 사람에게는 서울에서 이런 것을 볼 수 있다니 너무 즐거운 기회였어요! 저는 작품은 키아프에서 구매할 생각입니다. 젊은 작가인 장종환에 관심이 있어요." (홍진희, 컬렉터) "해외에서 본 프리즈 아트페어는 실험적 느낌이 있어서 전시를 보는 것 같았는데 상대적으로 프리즈 서울은 상업적 느낌이 강했어요. 그럼에도 프리즈 마스터스 홀은 전시장처럼 느껴졌고, 함께 온 큐레이터들 모두 이 공간을 베스트로 꼽았습니다." (강정하, 금호미술관 큐레이터) "게르하르트 리히터와 게오르그 바젤리츠 같은 작품을 집에 두고 보기는 쉽지 않으니, 여기서 지금 샴페인을 들고 앉아서 감상하고 있었어요. 인상 깊었던 부스를 꼽는다면 단연 가고시안 이죠. 애콰벨라 갤러리도 오늘 보니 재밌었어요. 저는 원래 현장보다 pdf나 이메일로 구매를 하는 편이에요. 전체적인 분위기를 보고 또 내가 몰랐던 좋은 가격의 작품이 있나 알아볼 계획입니다. 지금은 글래드스톤 갤러리의 빅토르 만에 관심이 가네요." (익명 요청, 컬렉터) 1시간 만에 15점 판매한 하우저&워스 유명 작가들이 대거 포진해있는 '메가 갤러리' 하우저&워스는 첫 날 판매 리포트를 발표했는데, 오픈 1시간 만에 15점을 팔았다고 합니다. 공개된 내용에 따르면 팔린 작품들 대부분은 한국의 컬렉터나 사립 미술관, 그리고 일부 아시아 컬렉터가 구매한 것으로 보입니다. 주요 판매 작품을 보면...조지 콘도의 'Red Portrait Composition'(2022), 한국의 사립 미술관, 280만 달러니콜라스 파티, 'Clouds'(2022), 아시아 컬렉터, 32만5000달러안젤 오테로, Organic Summer(2022), 한국 사립 컬렉션, 17만5000달러에이버리 싱어, JUUL(2021), 한국 사립 컬렉션, 15만 달러 근데...다 외국 작가에요 현장 취재를 마치고 든 생각은, 프리즈 주최측이 오래 전부터 강조해왔던 '한국 미술과의 연결성' 부분입니다. 사실 어떤 것을 강조한다는 것은 역으로 그 부분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맹점일 수도 있잖아요? 프리즈 서울을 보면서 해외에서만 볼 수 있는 작품을 본다니 즐거웠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판매'가 되는 것은 외국 작가라는 점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즉, 프리즈 서울의 본질이 외국 갤러리가 한국에 와서 작품을 파는 것이라면, 그게 어떻게 한국 미술과 연결이 되고 도움이 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남는다는 거죠. 현장에서 외국 작가에 관심이 간다는 이야기를 해 주신 컬렉터도 많았습니다. "저는 김창열과 마이클 스코긴스 등의 작품을 컬렉팅해왔어요. 제가 기존 소장한 것과 결은 다르지만 뉴욕 기반의 Skarstedt 갤러리가 눈에 띄었습니다. 이 부스 앞에 KAWS 작품이 있었는데 코로나로 오랫동안 보지 못한 작품들을 직접 봐서 좋았어요. 미국 작가들이 좋았습니다."(우정우, 컬렉터) 다만 이러한 큰 미술 행사가 서울에서 열리는 것만으로 여러 가지 부대 효과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휠체어를 타고 '프리즈 서울' 현장에 온 김구림 작가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요. "갤러리들은 아무래도 경쟁을 생각할 수밖에 없으니 프리즈 아트페어가 달갑지 않을 수 있겠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이렇게 나와서 작품을 보니 좋아요. 특히 젊은 작가들이 해외에 가지 않고 가까운 곳에서 작품을 보고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면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김구림, 작가) "제가 알고 있던 대만이나 홍콩의 아시아 컬렉터 외에도 못 보던 컬렉터들이 서울을 방문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유럽에서 현장을 취재하러 온 에디터들도 많았어요. 이들이 프리즈만 보지 않고 키아프도 보고 갈테니, 전반적인 붐업이 이뤄지지 않을까요?"(이장욱, 스페이스K 큐레이터) 제작진은 이번주 프리즈 서울을 비롯해 여러 행사들을 취재하며 서울을 찾은 해외 미술인들이 한국 미술 '시장'의 성장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만, '한국 미술'은 잘 모른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오히려 미술보다는 K팝과 K컬처 이야기 하는 경우가 더 많기도 했고요. 그래서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었지만... 결국에는 메가 갤러리들을 '메기'로 삼아 한국 미술이 더 긴장하고 성장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의 의견도 들려주세요! ○ 해외 미술계 인사들이 찾은 한국 작가의 작업실 이런 가운데 프리즈 서울 개막을 앞둔 8월 31일, 경기도 양평에 해외에서 활동하는 큐레이터, 마케터, 기획자, 작품 판매 플랫폼 운영자 등 다양한 인사들이 모였습니다. 8월 29일부터 2박 3일간 진행된 'Dive into Korean Art'에 참가한 것인데요. 예술경영지원센터가 한국 작가를 알리기 위해 마련한 프로그램이었습니다. 프로그램 기획자인 김주원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실장, 윤혜정 국제갤러리 이사, 정일주 퍼블릭아트 편집장의 이야기와 함께 현장 분위기를 소개드리겠습니다. "프리즈에 가면 이미 보던 것들이 또 나올 거에요" 31일 양평 작업실 방문에는 카린 카람 아트시(Artsy) 글로벌 영업&파트너십 부사장, 지아지아 페이 전 유대인미술관 디지털 디렉터&구겐하임 디지털마케팅 부국장, 크리스찬 루이텐 'Avant Art-online' 창립자, 아론 세자르 영국 델피나 파운데이션 창립이사 등 다양한 분야의 구성원이 참가했습니다. 그런데 미국 뉴욕에서 활동하고 있는 지아지아 페이가 프로그램 참여 소감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을 하더군요. "'프리즈 서울'은 어차피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메가 갤러리들이 올 것이고, 그러면 거기서 보게 될 풍경도 미국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에요. 이미 봤던 것들보다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을 경험하고 싶은데, 작업실 방문이 그런 점에서 좋은 기회죠." (지아지아 페이, 미술관 디지털마케팅 전문가) 이 프로그램이 기획된 것도 같은 의도에서였습니다. 정일주 편집장은 이런 이야기를 들려 주었습니다. "현대미술을 주도하는 작가 중엔 아트페어와 전혀 무관한 사람도 짐작보다 많아요. 예를 들어 첫날 작업실을 공개했던 최우람이나 이예승, 김아영, 전준호&문경원의 작품이 프리즈나 키아프에 자주 걸리진 않으니까요. 페어에 맞춰 방문한 인사에게 시장과는 상대적으로 거리가 있더라도 역량있는 작가를 다양하게 소개하고 싶었습니다."(정일주, 퍼블릭아트 편집장) 작업실이라서 할 수 있는 이야기 특히 이들이 미술관이 아니라 작품이 쌓여 있는 작업실을 찾았다는 것도 새로운 포인트였습니다. 참가자들이 자유롭게 작업실을 돌아다니다가 작품을 꺼내어 보기도 하고, 또 작가에게 질문을 던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한 작가의 작품을 두고 미술관 큐레이터는 "우리 미술관 천고가 높아 디스플레이가 가능하다"고 묻고, 온라인 플랫폼 관계자는 "당신 작품을 온라인으로 소개할 때 유의할 점이 무엇인가"를 물었습니다. 레지던시를 운영하는 재단 이사는 "이렇게 조용한 곳에서 작업을 하면 기분이 어떠냐"고 묻기도 하더라구요. 현장에서는 '한국 미술을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으니 온라인으로도 이런 정보를 많이 공유해달라'거나, '해외 미술계와 한국 미술계의 교류가 더욱 많아지기를 바란다'는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관심은 충분하니, 재밌는 걸 어서 던져달라는 분위기였다고 해야할까요? 그런 점에서 오늘 레터는 한국에서 열심히 작업하고 계신 작가나 큐레이터분들에게 동기 부여가 되는 내용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영감 한 스푼’은 국내 미술관 전시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아래 링크로 구독 신청을 하시면 매주 금요일 아침 7시에 뉴스레터를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영감 한 스푼 뉴스레터 구독 신청 링크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151199김민 기자 kimmin@donga.com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올해 2월 영국 소더비 경매에는 웬만한 예술 작품보다 훨씬 주목받은 출품 목록이 있었다. 다름 아닌 운동화다. 지난해 숨진 미국 패션디자이너 버질 아블로가 만든 ‘루이비통×나이키 에어포스1’ 200켤레가 나왔는데, 총 낙찰가가 2500만 달러(당시 기준 약 329억 원)였다. 한 켤레의 평균 가격이 1억6000만 원쯤 된다. 사실 이런 얘기 별로 놀랍지 않다. 낡아빠진 콘셉트의 스니커즈가 100만 원 가까이 하는 세상. 이젠 ‘스니커테크(스니커즈+재테크)’란 용어도 꽤나 익숙해졌다. 한정판 운동화를 힘겹게 구한 뒤 되팔아 수익을 거뒀다는 얘기도 심심찮게 들린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 등에 기고해온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저자는 오랫동안 의류와 제화 취재를 이어왔다고 한다. 관련 TV 다큐멘터리도 제작하는 그는 갈수록 거대화되는 신발 산업의 이면에 숨겨진 현실을 파헤친다. 이 정도 말하면 누구나 짐작하듯, 다국적 기업의 횡포나 열악한 노동 환경 같은 이슈들이다. 왜 하필이면 신발에 주목했을까. 저자는 “세계화의 추동력인 동시에 그 결과물”이 신발이라고 봤다. 신발은 제품 가운데서도 “생산의 세계화를 최초로 경험한 물품 가운데 하나”다. 통신과 운송 기술이 발달하고 제3세계로 저임금 노동시장이 퍼지면서, 신발을 만드는 건 세계적으로 이뤄지는 ‘지구적 공정’이 됐다. 미국에서 디자인하면 아시아에서 제조한 뒤 호주에서 팔리는 식이다. 2019년 기준으로 1년 동안 243억 켤레(하루 약 6600만 켤레)나 생산된다니 양도 어마어마하다. 저자는 휘황찬란한 세계화에도 불구하고 신발을 만드는 작업장은 너무나 열악하다는 점을 고발한다. 익명을 요구한 여성 노동자 셰브넴(가명)의 하루를 따라가 보자(그는 나라도 밝히길 꺼렸다). 1주일에 6일을 일하는 그는 오전 7시에 출근한다. 끝나는 시간은 ‘늦은 밤’. 계약서에는 근무시간이나 여건도 명확하지 않다. (근무일인) 토요일에 쉬면 안 되냐고 했다가 해고당한 동료도 있다. 점심시간은 딱 25분. 일하던 작업대에 그대로 앉아 집에서 싸온 도시락을 먹는다. 그가 만든 부츠는 유럽에서 200유로(약 27만 원)에 팔리지만, 셰브넴에겐 몇 달은 꼬박 일해야 모을까 말까 한 거액이다. 신발공장은 또 다른 위험도 상존한다. 독성 화학물질이다. 학자와 학생들로 구성된 한 비정부기구는 2016년 중국 광둥성에 있는 몇몇 공장에 비밀 감시팀을 보낸 적이 있다. 이들에 따르면 접착제나 세척용 화학물질을 다루는 직원들에게 회사는 너무나 엉성해서 보호 기능이 전혀 없는 장갑과 마스크를 지급했다. 그마저도 주지 않는 공장도 여럿이었다. 당시 자주 코피를 흘리는 등 몸에 이상 증세를 호소하는 현지 직원이 적지 않았다. 신발은 소모품이다. 해마다 200억 켤레 넘게 만든 신발은 언젠가 쓰레기가 되고 생태계를 해치는 요인도 된다. 물론 신발에 열광하는 이들도 이런 사실을 모를 리 없다. 굳이 깊게 신경 쓰지 않았을 뿐. 하지만 만약 이 책을 마주한다면 한 번쯤 떠올려 보자. 신발 수선법과 관련 시민단체를 지원하는 방법까지 세세하게 소개하는 저자의 진심을. 소비재의 문제가 신발뿐만은 아니지만, 진짜 신발을 사랑하는 법을 고민해 보게 한다.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프랑스 남부 바카라스 바닷가에는 높이 13m의 나무 조각품 하나가 우뚝 서 있다고 한다. 한국 근대 예술가 문신(1922∼1995)의 ‘태양의 인간’이란 작품으로, 1970년 바카라스에서 열린 국제조각심포지엄에서 처음 공개됐다. 현지에서는 올해 문신 탄생 100주년을 맞아 관련 페스티벌이 열리고 있다고 한다. 서울 중구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1일부터 선보인 기획전 ‘문신(文信): 우주를 향하여’는 머나먼 타국에서 왜 문신이란 예술가를 재조명하는지 엿볼 수 있는 기회다. 회화와 조각 등 232점과 아카이브 100여 점을 통해 그의 인생과 예술 활동 전반을 소개한다. 문신은 일제강점기 일본 규슈 탄광촌에서 한국인 이주노동자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다섯 살 무렵 귀국해 아버지 고향인 경남 마산에서 유년기를 보냈고 16세에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회화를 공부했다. 문신의 회화는 대담하고 역동적이다. 1945년 귀국해 주로 그린 마산 풍경은 특히나 인상적이다. 1전시장 입구 쪽에 조각 작품 ‘어부’(1946년)가 있고, 이를 화폭으로 옮긴 게 바로 옆 ‘고기잡이’(1948년)다. 어민들의 거친 삶이 살아 숨쉬는 듯 다가온다. 1961년 프랑스로 건너간 문신은 조각가로서 제2의 인생을 맞는다. 도불화가 김흥수 화백(1919∼2014)의 소개로 파리 서북쪽 ‘라브넬’ 고성 공사장에서 일하며 돌과 모래의 질감에 매료됐다. 미술관 측은 “조형의 기본 단위인 원과 선을 다양한 방식으로 결합해 형태 그 자체에서 리듬감과 음률을 느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관람객이 조각 작품을 보고 “개미를 닮았다”고 해 그대로 제목이 됐다는 ‘개미’(1970년)나 전시 부제로 달기도 한 조각 시리즈 ‘우주를 향하여’는 문신의 심오하고 도전적인 작품 세계를 잘 보여준다. 내년 1월 29일까지. 2000원.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회화 같은 순수예술도 해봤고, 픽사에서 상업영화도 경험해 봤죠. 이렇게 경계를 왔다 갔다 하며 노는 게 재밌습니다. 작가나 감독 같은 호칭에도 구애받고 싶지 않네요. 그냥 ‘스토리텔러’라고 불러주세요.” 땅거미가 내려앉으며 어둑해질 무렵. 서울 강서구에 있는 미술관 ‘스페이스K’ 외벽에선 뭔지 모를 동영상 하나가 상영됐다. 높이가 11m인 벽에선 유리를 깨고 나온 동그란 물체 사이로 작은 멍 자국 같은 것들이 피어난다. 그리고 눈물처럼 흐르다가 굳어버리는 검은색 액체. 그 속에서 갑작스레 빛이 퍼지며 꽃과 같은 형상이 깨어난다. 섬뜩했다가 아름다웠다가. 가만히 마주하다 보면 문득 세상 모든 게 덧없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몽환적인 반복이 눈길을 사로잡는 이 작품은 애니메이터이자 미디어아트 작가인 에릭 오(38)의 신작 애니메이션 ‘오리진(Origin)’. 서울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오 작가는 세계적인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인 미국 ‘픽사’에서 7년간 활동했다. 애니메이션 영화 ‘몬스터 대학교’(2013년) ‘인사이드 아웃’(2015년) ‘도리를 찾아서’(2016년) 등에 제작진으로 참여했다. 하지만 세상에 에릭 오란 이름을 제대로 각인시킨 건 “나만의 작업을 하고 싶어서” 픽사에서 나온 뒤 4년 동안 공들인 단편 애니메이션 ‘오페라’를 통해서였다. 독특한 피라미드 모형을 통해 인류의 역사를 묘사한 작품은 지난해 미 아카데미 단편영화상 후보에까지 올랐다. 오 작가에 따르면 ‘오리진’은 오페라의 “프리퀄 연작”으로, 이번 전시에서 처음으로 공개했다. 그는 “사실 둘 다 2016년에 함께 구상했던 작품”이라며 “오페라가 역사화라면, 오리진은 추상화에 가깝다”고 말했다. “두 작품은 같은 질문에서 시작됩니다. ‘우리는 어디에서 오고 어디로 가나’ 하는 거죠. 오페라가 인류사에 대한 탐구라면, 오리진은 그 너머에 있는 것을 영적으로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삶과 죽음’이란 주제에 관심이 많았어요. 삶의 흐름을 생각하면 원이란 이미지가 떠올라요. 그게 제가 세상을 바라보는 세계관이랄까요.” 작가의 말처럼 원을 닮아서인지 오리진은 딱히 ‘전형성’이란 게 없다. 캐릭터도 스토리도 분명하지 않으며, 영상도 그리 길지 않다. 오리진은 5분 정도 되는 분량이지만 시작과 끝이 애매모호하다. 오 작가는 이를 “회화적”이라고 설명했다. “하나의 그림을 감상한다고 떠올려 보세요. 감상 시간은 1초가 될 수도 있고, 2시간이 넘어도 상관없잖아요. 영화는 감독의 의도대로 화면을 구상하지만 제 작품은 ‘회화로서’ 관객에게 자유를 줍니다. 무수히 많은 뭔가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 관객이 생각과 시선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느끼고 얻는 게 모두 달라지는 거죠.” 신작을 영화관이 아니라 미술관 외벽에서 발표한 것도 이 때문이라고 한다. 지나가는 행인들을 대상으로 무작위로 상영한다. 누군가는 진지하게 관람할 것이고, 아니면 무심코 곁눈질하며 스쳐 지나갈 수도 있다. 이장욱 스페이스K 수석큐레이터는 “미술관 주변을 산책하는 시민들과 예술의 접점을 늘리자는 의도로 기획한 공공미술 프로젝트”라며 “현대미술의 다양성을 선보일 기회”라고 밝혔다. 오 작가는 앞으로도 이런 ‘경계 없는’ 작품 활동을 이어간다. 올해 10월 그가 연출로 참여한 4부작 애니메이션 ‘오니: 천둥 신의 전설’이 넷플릭스에서 선보인다. 지난해부터 미국에서 애니메이션 장편영화도 준비하고 있다. ‘스토리텔러’의 활동 반경은 멈추지 않고 갈수록 커지고 있다. 8월 24일부터 시작된 전시는 12월 2일까지 이어진다. 매일 오후 7시 반부터 11시까지 반복 상영된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감성과 진심을 담은 작품과 예술철학으로 학생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싶어요. 그들이 좀더 풍요로운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제 바람이자 기도입니다.” ‘빛의 화가’로 불리는 세계적인 스테인드글라스 예술의 거장 김인중 신부(82)가 KAIST에 둥지를 틀었다. KAIST는 “김 신부는 1일부터 산업디자인학과 초빙 석학교수로 임명됐다”며 “국제적인 명성과 독창성을 지닌 김 신부의 삶과 정신, 예술 역량을 구성원들과 나누기 위해 영입했다”고 30일 밝혔다. 프랑스 도미니크수도회 소속인 김 신부는 임기인 2024년 7월까지 KAIST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창작 작업도 병행한다. 작업실은 중앙도서관인 학술문화관에 마련됐으며, 현재 내년 3월 완공 목표인 학술문화관 3층 천창(天窓)에 스테인드글라스 작업을 하고 있다. 주로 프랑스에서 활동해온 김 신부는 2019년 중부도시인 앙베르에 ‘김인중 미술관’이 세워질 정도로 유럽에서 영향력이 크다. 서울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1965년 한국미술대상을 받은 전도유망한 화가였던 김 신부는 1974년 도미니크수도회에 입회하며 종교와 예술의 길을 함께 걸어왔다. 프랑스 샤르트르대성당과 생쥘리앵성당, 경기 용인시 신봉동성당 등 세계 50여 개 성당을 장식한 그의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은 “천사가 그림을 그리면 이와 같을 것”(미술평론가 웬디 베킷·1930∼2018)이란 극찬을 받아왔다. 스위스 언론이 뽑은 역대 스테인드글라스 작가 10인에 앙리 마티스(1869∼1954), 마르크 샤갈(1887∼1985)과 함께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김 신부는 자신의 작품을 “동양화도 서양화도 아닌 세계화(畵)로, 하늘을 보기 위해 무한히 앞으로 나아갈 뿐”이라고 설명한다. 2010년 프랑스 문화예술 공로훈장도 받았다. KAIST는 10월 4일 열리는 세미나 ‘서치 더 퓨처(Search the Future)’에서 김 신부의 특강을 준비할 계획이다. 김 신부가 추구해온 예술이 디자인과 어떤 연계성을 지니는지 살펴본다. KAIST 관계자는 “산업디자인학과 중점 교육 부문인 조명색채와 공간에 대해 지도할 예정”이라며 “대학 전반에 새로운 영감을 불어넣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김 신부 역시 “뛰어난 과학도들이 자리한 KAIST에 오게 돼 무척 기쁘다”고 화답했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예전보다 많이 대중화됐지만 아직도 ‘혼자 미술갤러리에 들어가는 건 불편하다’는 분들이 적지 않더라고요. 그런 분들은 단체로 함께 전시도 보고 해설을 들으면 부담도 작고 만족도가 매우 높습니다.” 지난해 ‘미술주간’의 대표 프로그램인 ‘미술여행’에서 활동했던 송은교 전시해설사(28)는 올해 미술주간에 대한 기대도 무척 크다. ‘미술의 대중화’라는 측면에서 전시 해설을 찾는 시민들의 반응이 워낙 좋아 관계자들도 큰 힘을 얻는다고 한다. 올해 8회째를 맞는 ‘2022 미술주간’의 슬로건은 ‘미술에 빠진 대한민국’. 해당 미술관이나 아트페어, 비엔날레, 비영리 전시공간에서 무료 혹은 할인받은 입장료로 관람할 수 있다. 다음 달 1일부터 11일까지 전국 223개 전시기관에서 동시에 열린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주관한다. 특히 올해 미술주간은 안팎에서 기대가 크다. 다음 달 2일부터 한국국제아트페어(KIAF·키아프)와 프리즈 서울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리기 때문이다. 문체부 관계자는 “키아프와 프리즈 공동 개최는 미술시장 성장이란 측면에서도 중요하지만 대중의 관심이 커져 미술 저변이 확대된다는 면에서 더 고무적”이라고 말했다. 시민들의 눈길이 가장 많이 쏠리는 프로그램은 올해 역시 미술여행이다. 서울과 경기 충청 전라 경상 강원 제주 등 전국 7개 권역에서 20개 코스를 마련했으며, 모두 60회 동안 운영할 계획이다. 전문해설사와 함께 전시 2∼4개를 묶어서 보는데 해마다 신청이 늘고 있다. 올해도 18일부터 진행한 예약이 30일 기준 벌써 정원(800명)의 90%가 찼을 정도다. 갈수록 중장년층과 가족 단위 참여율이 높아지는 게 특징. 송 해설사는 “젊은 관람객들도 꾸준하지만 부부나 가족이 함께 찾는 경우도 갈수록 늘고 있다”며 “지방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의 예약률이 상당히 높아진 점도 눈에 띈다”고 전했다. 전국 전시관 11곳에서 ‘예술과 기술’이란 주제로 개최하는 다양한 전시 연계 프로그램도 눈여겨볼 만하다. 대전시립미술관과 아트선재센터, 코리아나미술관 등이 참여하는데 가상현실(VR) 체험 등을 마련했다. 다음 달 1, 2일 서울 중구 페럼타워와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리는 ‘한국 미술 시장 학술대회’도 미술 교양을 쌓는 데 도움이 될 프로그램. 충북 충주와 경남 창원, 전남 순천, 광주에서는 청년 작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작가 미술장터’가 열린다. 김현진 예술경영지원센터 시각예술유통팀장은 “최근 3년 동안 포털사이트에서 미술주간이 열리는 시기에 ‘미술’에 대한 언급이 폭발적으로 늘어날 정도로 관심이 크다”며 “시민들이 일상에서 미술에 흠뻑 빠지는 행사가 되도록 열심히 준비하겠다”고 소개했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누군가는 현대인들의 최대 고민이 ‘점심 메뉴 선정’이라고 한다. 일리가 있다.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머리를 싸매는 이유는 음미하는 순간 주어지는 행복 때문이 아닐까. 그럼 옛날 옛적 우리 조상들은 어땠을까. 구석기시대 채집으로 먹고산 인류에게도 ‘최애’ 열매가 있었을까. 먹거리가 풍부한 시대에 음식은 쾌락의 영역에 속한다. 반면 구석기시대 사람들에겐 즐거움보단 생존의 문제였다. 이로 인해 과학계는 과거 음식을 연구할 때 ‘맛’이란 측면은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미식(美食)은 오직 요리사나 주방장이 등장해야 가능한 것으로 여겼다. 하지만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 응용생태학과 교수와 의료인류학자인 저자들은 이런 단정이 잘못됐다고 반박한다. 음식을 즐기는 행위는 인류의 진화에서 중요한 원동력이었다고 본다. 학계에서 간과했던 ‘맛’을 진화생물학적 관점에서 재정립한 것이다. 책에 따르면 ‘하나의 종이 어떤 먹이에 끌릴까’는 “쾌락”과 연관성이 높다. 먹이가 지닌 영양분과 포식자의 육체가 요구하는 영양분이 궁극적으로 일치할 때 쾌락이 발생한다는 설명이다. 살점이나 내장을 먹는 육식 동물들은 “허기를 채우는 것만으로도” 이런 쾌락을 얻을 수 있다. 반면 초식 동물이나 잡식 동물은 단지 배부른 걸로는 부족하다고 한다. 이들은 “향미(香味)”를 근거로 뭘 먹을지 결정한다. 여기서 향미란 향이나 식감 등을 총체적으로 일컫는 개념이다. 저자들은 잡식 동물인 인류는 이런 향미를 추구하는 본능이 진화를 이끌었다고 봤다. 향미를 의식하면서 이와 관련된 새로운 도구를 발명하기도 했다. 인류와 가장 비슷한 미각을 지닌 침팬지는 막대기로 꿀을 떠먹고, 돌로 견과류를 부숴 먹는다. 인류가 불을 사용한 것 역시 날것보다 익힌 음식이 더 맛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도구로 음식을 가공하면서 점차 턱 근육이 축소되고 치아 크기가 줄었으며 대장은 짧아졌다. 향미에서도 ‘향’은 특히 인류의 뇌 진화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진화 과정에서 단순한 한 가지 향보다 여러 복합적 향이 나는 화합물이 좋다는 걸 알게 됐다. 때문에 일부러 음식을 ‘변질시키는’ 고기 굽기나 치즈 발효를 발명했다. 향은 뇌의 학습 능력을 늘리는 데도 도움을 줬다. 향을 통해 관련 기억을 뇌에 저장할 수 있었다. 또 어떤 향이 포함된 음식을 자주 맛볼수록 그에 대한 판단이 더욱 정교해지기도 한다. 현대의 소믈리에는 연습을 통해 이런 “범주화”가 가능해진 향미 전문가라 볼 수 있다. ‘카테고리’는 기억력을 높이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다. 맛의 쾌락은 인류를 둘러싼 생태계도 바꿔 놓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매머드의 멸종이다. 석기시대 북아메리카 원주민의 ‘클로비스’ 유적에는 길이가 긴 창촉이 자주 등장한다. 매머드 등 덩치 큰 대형 동물을 사냥하기 좋은 무기다. 한마디로 고기가 너무 입에 맞다 보니 지나치게 과잉 소비한 것. 클로비스 인류가 북아메리카로 건너온 시점과 매머드와 같은 동물의 멸종 시기가 일치하는 건 우연이 아니다. 현생 인류가 호모 사피엔스라는 건 주지의 사실. 흔히 ‘슬기로운 사람’이란 뜻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사피엔스는 본디 “맛보다”란 의미를 지녔다고 한다. 진지한 과학책이지만, 괜히 주변에 있는 음식에 눈이 가게 만든다. 가만히 향기를 맡다 보면 수천 년 인류의 역사가 스며든 기분이 든다. 물론 ‘당연히’ 배도 고파진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연기를 한다기보다 영우란 인물의 생각과 진심을 이해하고 (시청자들에게 이를)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면 자폐인과 그 가족분들도 받아들여 주시지 않을까 했거든요. 김밥은…, 촬영 때 하도 먹어서 이젠 별로 생각나지 않아요. 하하.” 18일 종영한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누가 뭐래도 우영우를 연기한 배우 박은빈(30)이 없었다면 성공을 보장하기 어려웠다. 제작진 역시 “(출연을) 1년 동안 기다렸다”고 할 정도였다. 서울 강남구의 한 카페에서 22일 만난 그는 “들뜨지도 않고 신나하지도 않으려 한다. 관찰자 같은 입장에서 현재를 바라고자 노력하고 있다”며 진중한 모습을 보였다. 박은빈은 아역으로 시작해 벌써 27년 차 배우지만, 알려진 대로 우영우 역할을 여러 차례 고사했다. 그는 “과연 잘해낼 수 있을까 확신이 없었다”며 “어떤 말투와 행동으로 영우를 보여줄 수 있을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아 두려웠다”고 했다. “촬영 때마다 심사숙고했어요. 영우는 특별함과 사랑스러움이 공존하는 캐릭터예요. 영우가 가진 가능성과 잠재력을 놓치지 않기 위해 장애를 지녔다고 해서 방어적으로 접근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이상하다는 인상을 주면서도 동시에 ‘이상하지 않게’ 일 잘하는 모습도 보여드려야 하니까요.” 이날 인터뷰 내내 박은빈은 고래가 그려진 보라색 노트를 지니고 있었다. 그는 “드라마를 준비하며 작품과 캐릭터에 대한 심경을 적은 ‘생각 노트’”라며 “영우를 연기하는 게 옳은 일인지, 혹시 누군가에게 불쾌감을 주진 않을지 고민했던 흔적이 남아 있다”고 털어놨다. 박은빈은 드라마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3회 때 변호사를 관두려 했던 장면을 꼽았다. 그는 “영우가 좋은 변호사란 뭔가를 고민하다가, 그렇게 원했던 변호사란 직업을 내려놓는 걸 보면서 용감하고 철학이 뚜렷하다고 느꼈다”며 “이런 성정이기에 드라마에서 보여주지 못했던 세월도 잘 헤치고 나온 거구나 하며 공감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가장 ‘애정하는’ 대사도 있습니다. 마지막 회에서 길 잃은 외뿔고래를 얘기하며 ‘모두가 저와 다르니 적응하기 쉽지 않고, 저를 싫어하는 고래들도 많다. 그래도 괜찮다. 이게 제 삶이다. 제 삶은 이상하고 별나지만 가치 있고 아름답다’라고 말하죠. 영우가 그간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았어요.” 최종회 시청률 17.5%를 기록하며 사회적 신드롬을 일으킨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이미 시즌2에 대한 기대가 쏟아졌다. 하지만 박은빈은 성원에 감사하다면서도 조심스럽다고 밝혔다. “마지막에 ‘뿌듯함’으로 끝난 영우의 모습을 사진 찍듯 남겨 각자의 보물 상자에 넣어두시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요. 저도 정말 뿌듯한 마음으로 영우를 보내주고 싶거든요. 만약에라도 그 보물 상자를 다시 열어보자고 한다면…, 처음에 영우를 마주하기로 맘먹었을 때보다 훨씬 더 큰 결심이 필요할 것 같아요.”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한국인에게 친숙한 그림 중 하나인 장욱진 화가(1917∼1990)의 ‘마을’(1956년). 적갈색 바탕 위에 어우러진 나무와 집, 사람들이 따뜻한 이 작품을 24일 개막하는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 기획전 ‘전시 배달부’에서 가장 앞세워 배치한 이유는 뭘까. 바로 이 미술관 소장품 가운데 가장 많은 대여와 이동(총 14회)을 했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는 콘셉트가 독특하다. ‘배달’이란 관점에서 회화와 영상, 설치 작품 51점과 아카이브 자료 82점을 고르고 분류했다. 1990년부터 2009년까지 전국 각지에서 게릴라식으로 열었던 이동 전시 ‘움직이는 미술관’의 당시 사진과 영상을 소개하는 식이다. 안규철 작가의 영상작품 ‘하늘 자전거’(2011년)도 비슷한 맥락이다. 하늘을 담은 그림을 자전거에 실은 채 달리는 내용을 통해 현대미술과 배달의 접점을 찾으려 했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배달과 관련성이 높은 편지가 자주 등장한다는 점이다. ‘삼청로 30, 미술관 앞’은 모두 250여 통의 편지를 선보인 공공 프로젝트. 2020년 코로나19가 창궐한 뒤 미술관이 관람객들에게 요청해 받은 편지를 모았다. 조소희 작가가 선보인 ‘편지-인생 작업’은 2003년부터 자신이 매일 써온 편지를 전시했다. 1950년대 팝아트 초기의 주요 작가로 꼽히는 레이 존슨(1927∼1995)의 ‘무제’(1971년)도 눈여겨볼 만하다. ‘메일 아트’의 창시자로도 불리는 존슨은 자신이 밑 스케치를 그린 우편을 다수에게 보내 이미지를 덧대는 식으로 작품을 완성했다. 미술관 측은 “편지 자체가 이동성과 가변성을 상징하는 하나의 작품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미술이라는 배달’ 섹션 역시 작가와 다수가 참여한 작품들이 많다. 천경우 작가의 ‘다바왈라의 점심’(2017년)은 50개의 4단 도시락 통으로 만든 설치예술. 인도 뭄바이 지역에서 도시락 배달원들을 섭외해 그들이 배달받아 먹고 싶은 도시락을 함께 먹는 퍼포먼스를 한 결과물이다. 설원지 학예연구사는 “배달은 관람객과 상호 작용하고 생동하는 문화를 만드는 흐름을 의미한다. 관객이야말로 미술을 배달하는 주체이자 매개”라고 했다. 내년 1월 29일까지. 무료. 청주=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안녕하세요. 동아일보 김태언 기자입니다.미니멀 라이프가 유행이던 몇 해 전, 저도 집 정리를 시도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저는 제가 의외로 미련이 많은 편이라는 걸 짐작했습니다. 중학생 때 샀던 캡 모자, 쓸모를 다한 피처폰, 공책 귀퉁이를 잘라 끄적였던 친구와의 쪽지까지. 무엇 하나 버리질 못하겠더라고요.함께 한 시간이 오래였기에 더 소중했고, 낡았기에 더욱 간직하고 싶었습니다. 결국 제 숙명(?)이라 생각하고 옷장에 모셔놓기로 했죠. 잃어버리는 게 아닌 이상 집안 어딘가에 영영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여러분도 남다른 애정을 느끼는 물건이 있으시지요? 매 순간 그 물건에 담긴 기억을 곱씹으며 사는 건 아니지만, 뜬금없이 떠오르는 기억들은 각자의 인생에 애틋함을 더하곤 합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작가 시오타 치하루는 누군가의 기억의 잔상을 보관합니다. 그 기억 보관소를 함께 둘러볼까요?당신의 기억을 보관합니다시오타 치하루1. 시오타 치하루는 몇 번의 죽음을 목도하면서 신체의 유한함을 느꼈다. 대신 몸은 죽어 없어지더라도 인간의 기억은 영원히 우주 안에 존재할 것이라 믿게 됐다.2. 그는 망자의 기억이 깃든 유품을 작품으로 만들면서 그 물건과 추억에 영원성을 부여한다. 그 유품 겉을 실로 둘러싸는 행위는 그 사물의 역사를 함께 써온 한 인간과의 관계를 가시화한 것이다. 3. ‘인연’을 의미하는 빨간색 실을 주로 사용해왔던 시오타는 이번 전시에서 흰색 실을 주로 썼다. 이는 한강의 소설 ‘흰’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 삶을 구성하는 것, 기억.시오타 치하루의 작품 세계는 그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시작됩니다. 시오타는 할머니의 무덤에서 잡초를 뽑던 어린 시절부터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꼈습니다. 그리고 또 한 번 죽음과 마주하는데요. 두 번의 암을 진단받게 된 겁니다. 눈앞으로 다가온 죽음은 그를 하나의 생각으로 이끌었습니다. ‘존재한다는 것이 무엇인가.’그의 답은 기억이었습니다. “나에게 기억이 없다면, 나라는 존재를 설명할 수 있을까? 어떻게 내가 나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기억에 대한 시오타의 애착은 죽음에 대한 생각을 바꿨습니다. 비록 몸은 죽어 없어지더라도 나라는 인간을 구성하는 의식과 기억은 영원히 존재한다는 믿음으로 나아간 것이죠.그 기억을 시오타는 사물에서 찾습니다. 사물의 낡고 닳은 부분은 그 사물과 사람들이 맺었던 관계의 흔적입니다. 시오타는 이들이 버려지면 그에 담겨있는 수많은 기억도 함께 사라진다고 생각했던 듯합니다. 그는 중고 시장에서 망자의 유품을 모아 작업합니다. 한 사물을 작품으로 재탄생시켜 영원히 이 세상에 살아있도록 한 것이죠.그가 거주하는 독일 베를린에는 사람이 죽으면 청소업체가 망자의 물건을 벼룩시장에 파는 문화가 있다고 합니다. 시오타가 가장 좋아하는 중고품은 가족사진. 그 외에도 러브레터나 옷처럼 사람들이 소중하게 여겼던 물건들을 수집합니다. 물건의 주인들은 죽어 존재하지 않지만, 물건을 통해 그들의 존재감을 느끼는 거지요.“우리는 80년이라는 긴 생을 산다고 생각하지만 우주에서 계산해보면 인간의 삶은 1, 2초밖에 되지 않는다고 해요. 그 시간의 차이를 많이 느낍니다. 그래서 그 사람의 소중한 물건을 수집해서 기억을 되살리는 작업을 하고 싶어요.”○ 결코 연약하지 않은 기억의 힘누군가는 기억은 힘이 없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뚜렷한 이유 없이 어른어른해지는 어떤 기억들이 있지요. 그럴 때에는 기억이란 것이 마치 망각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나약해 보이기도 합니다.하지만 시오타의 ‘실’ 작업을 보면 그 생각에 조금 반기를 들게 됩니다. 어떤 물건이나 사람이 더 소중해지는 것은 관계와 그 관계 속 기억 덕분입니다. 사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고, 그래서 그 무게와 크기를 간과하기 쉽지요. 시오타의 실은 그 보이지 않는 영역을 보여줍니다.그가 붉은 실을 작업에 주로 썼던 건 좀 더 직접적인 표현이었습니다. 붉은 실은 동양 문화권에서 인연을 의미합니다. 오래된 인형 놀이 소품을 붉은 실로 엮은 작품을 보면, 잊은 줄 알았던 과거가 번듯이 떠오릅니다. 그 시절을 함께 해준 여러 사람과 물건이 지금 내 삶에도 묵직하게 자리한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귀중해지기도 하고요.물론 실은 엉키기도, 풀리기도, 끊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결코 연약하다고 표현할 수는 없습니다. 시오타는 실질적으로 실이 당기는 악력이 굉장하다고 말합니다. 그가 전시 때마다 오직 실만으로 견고하고 압도적인 설치 공간을 만들 수 있는 이유기도 합니다.○ “오직 흰 것들을 건넬게”그중에서도 이번 전시가 특별한 것은 실의 색에 있습니다. 가나아트센터의 한 전시장을 뒤덮은 실의 색은 ‘흰색’입니다. 시오타는 2020년 한강의 소설 ‘흰’을 읽고 감명받아 흰 실로 작업했다고 밝혔습니다.소설 ‘흰’은 태어난 지 두 시간 만에 숨을 거둔 한강 작가의 친언니 이야기에서 출발합니다. 한강 작가의 어머니가 아이를 위해 준비했던 배내옷, 아이가 살았다면 먹었을 젖과 쌀죽과 같은 세상의 온갖 흰 것들에 대한 글이 수록돼있죠. 시오타는 임신 6개월 차에 양수가 터져 아이를 잃었을 때 이 책을 읽었고, 상당한 위로를 받았다고 합니다.책 ‘흰’을 읽다 보면, 사람들을 애도하기 위해 밝힌 흰 초에 대한 글이 있습니다. 그중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이제 당신에게 내가 흰 것을 줄게. 더럽혀지더라도 흰 것을, 오직 흰 것들을 건넬게. 더 이상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게. 이 삶을 당신에게 건네어도 괜찮을지.”한강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흔들리거나, 금이 가거나, 부서지려는 순간에 당신을, 내가 당신에게 주고 싶었던 흰 것들을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누군가의 넋을 기리고 영영 기억하기 위해 흰 것을 바치는 것. 저는 시오타가 이 공간을 통해 하려는 말도 이와 비슷하다고 보았습니다.당신의 육신은 사라져 없지만, 흰 실로 엮어놓은 옷가지와 엽서들을 보며 기꺼이 당신을 기억하겠다고.아프고 불안한 현재를 사는 당신이 삶을 비관할 때, 당신에게도 분명 소중한 기억과 관계들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여러분들은 기억의 바다를 헤매는 이 배 위에 올라 어떤 시간을 다시 반추하고 싶으신가요? 그 살아있는 기억들을 안고, 당신의 배는 어디로 항해하고 있는 걸까요?전시 정보In Memory가나아트센터(서울 종로구 평창30길 28)2022.07.15~2022.08.21조각 16점, 평면 38점, 설치 1점※‘영감 한 스푼’은 국내 미술관 전시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아래 링크로 구독 신청을 하시면 매주 금요일 아침 7시에 뉴스레터를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영감 한 스푼 뉴스레터 구독 신청 링크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16세기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모나리자’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회화 가운데 하나. 특히 알 듯 말 듯한 미소는 대표적인 감상 포인트다. 그런데 그가 하얀 마스크를 쓰고 있다면? 팬데믹 시대를 바라보는 모나리자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국내 ‘오브제 아트’의 대표 주자인 화가 변종곤 씨(74)는 다음 달 6일까지 서울 강남구 리아 프라이빗 뷰잉룸에서 열리는 개인전 ‘미지의 세계로 접속’을 통해 위트 넘치면서도 사회적 메시지가 가득한 작품 26점을 선보이고 있다. 오브제 아트는 실생활에서 쓰는 물건을 활용하는 장르로, 1960년대부터 유럽과 미국에서 각광받았다. 소변기로 유명한 마르셀 뒤샹(1887∼1968)의 ‘샘’이 대표작. 변 작가의 작품은 직관적이면서도 묘한 아이러니가 담겼다. 모나리자에게 마스크를 씌운 ‘Covid-19’(2022년)가 그렇다. 작품 의도가 뻔한 듯하면서도 자꾸만 다시 쳐다보게 만든다. 2008년작 ‘Ipod-2’ 역시 제목만 봐도 뭔지 알 거 같다. 실제 와인 병 위에 입혀진 혜원 신윤복의 ‘미인도’ 속 미인은 이어폰으로 아이팟의 음악을 듣고 있다. 작가는 이 묘한 부조리를 “이질적인 것의 만남과 충돌에서 창조가 이뤄진다”라고 밝혔다. 1978년 동아미술제에서 대상을 받은 변 작가는 촉망받는 화가였지만 군사독재 시절 억압된 분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1981년 미국으로 떠났다. 이후 그는 40여 년 동안 오브제 아트에 천착했다. 이는 그가 어릴 적 겪은 가난 때문이었다고 한다. 전시 관계자는 “물감 사는 것도 부담이 됐던 예술가는 거리에 버려진 물건에 눈이 갔고, 내팽개쳐진 물건에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작품들도 돋보기와 시계, 열쇠고리 등 친숙한 물건을 이용한 것이 많다. 너무 익숙해 자칫 진부해 보일 수 있는 소재를 새로운 방식으로 마주하게 돼 신선하다. 전시는 갤러리박영과 이탈리아가구브랜드 리아가 마련했다. 무료.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이달 말부터 9월 초까지 서울은 미술 축제의 장이 된다. 세계적 아트페어인 ‘프리즈’가 아시아 최초로 다음 달 2∼5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리는 가운데 이에 맞춰 국내 미술관과 갤러리들이 앞다퉈 심혈을 기울인 전시를 선보이기 때문이다. ‘프리즈 서울’을 앞두고 각국의 ‘큰손’ 컬렉터들이 서울을 찾는 것을 고려한 전략이다. 서울 종로구 아트선재센터는 30일부터 11월 20일까지 문경원 전준호, 태국 현대미술가 코라끄릿 아룬나논차이의 개인전을 연다. 2009년부터 함께 활동해온 듀오 작가 문경원과 전준호는 미지에서 펼쳐지는 기후 이야기를 영상, 사진 등을 활용해 만든 신작 ‘불 피우기’를 선보인다. 제주도4·3사건과 태국 민주화 운동을 다룬 ‘죽음을 위한 노래’로 지난해 광주 비엔날레에서 큰 호평을 받은 영상·퍼포먼스 작가 코라끄릿은 이번 전시에서 후속작 ‘삶을 위한 노래’를 공개한다. 강서구 스페이스K 서울은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서 애니메이터로 활동했던 에릭 오의 신작 단편 애니메이션 ‘오리진’을 미술관 외벽에 전시한다. 에릭 오는 2021년 단편 애니메이션 ‘오페라’, 2022년 ‘나무’로 각각 그해에 아카데미 단편영화상 후보에 올랐던 인물이다. 전시 기간은 8월 24일부터 내년 12월 2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은 현재 서울관에서 진행 중인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이중섭’을 비롯해 덕수궁관에서 다음 달 1일부터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은 조각가 문신을 소개한다. 서울시립미술관도 1990년대 한국 현대 미술계 스타작가 정서영의 개인전을 연다. 한편 프리즈 서울 측은 아트페어를 앞두고 사전 행사 성격의 ‘프리즈 위크’를 29일부터 다음 달 5일까지 진행한다. 서울의 각 갤러리에서 진행하는 문화예술 프로그램과 전시를 가이드북 형태로 만들고, 공식 홈페이지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관련 내용을 소개한다. 권민주 프리즈 아시아지역 VIP 총괄은 “프리즈 서울에 참가하는 갤러리의 90%가 해외 갤러리이고 그들의 VIP도 해외 미술관, 갤러리 관계자와 컬렉터가 많다”며 “어디에서 어떤 전시를 하는지 체계적으로 알리겠다”고 밝혔다. 화랑들은 지역별로 하루씩 날짜를 정해 밤 12시 가까이 문을 여는 야간 개장 행사를 진행한다. 1일에는 용산구 한남동을 중심으로 갤러리 바톤, 리만머핀, 타데우스 로팍 등 7개 갤러리가, 2일에는 종로구 삼청동에 있는 갤러리 현대, 국제갤러리, 학고재 등 6개 갤러리가 각각 참여한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이달 말부터 서울은 미술 축제의 장이 된다. 다음달 2~6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리는 프리즈 서울에 맞춰 국내 미술관과 갤러리들이 힘 준 전시들을 내놓기 때문이다. 이 기간을 전후해 해외 미술계 큰손들이 서울을 찾는 만큼 각 예술 공간에서도 주요 전시들을 선보이는 셈이다. 아트선재센터는 문경원&전준호, 태국 현대미술가 코라크릿 아룬나논차이의 개인전(8월30일~11월20일)을 진행한다. 2009년부터 함께 활동해온 듀오 작가 문경원&전준호는 미지에서 펼쳐지는 기후 이야기를 몰입형 설치 작업으로 만든 신작 ‘불 피우기’를 선보인다. 제주 4.3 사건과 태국 민주화 운동을 다룬 ‘죽음을 위한 노래’로 지난해 광주비엔날레에서 큰 호평을 받은 영상·퍼포먼스 작가 코라크릿은 그 후속작 ‘삶을 위한 노래’를 내놓는다. 스페이스K 서울은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서 애니메이터로 활동했던 에릭 오의 신작 단편 애니메이션 ‘오리진’을 미술관 외벽에 전시(8월24일~내년 12월2일)한다. 에릭 오는 2021년 단편 애니메이션 ‘오페라’, 2022년 ‘나무’로 2021, 2022 아카데미 단편영화상 후보에 올랐던 인물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서울관에서 국민작가 이중섭(8월12일~내년 4월23일)을, 덕수궁관에서는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은 조각가 문신(9월1일~내년 1월29일)을 소개한다. 서울시립미술관은 1990년대 한국 현대 미술계 스타작가 정서영의 개인전(9월1일~10월31일)을 내세운다. 2003년 제50회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대표 작가였던 정서영은 추상과 비추상을 넘나들며 조각하는 작가다. 실제 프리즈 서울 측은 사전행사인 ‘프리즈 위크’를 29일부터 다음달 5일까지 진행한다. 프리즈 위크란 서울에 위치한 문화예술 프로그램과 전시를 가이드북 형식의 책자나 공식 홈페이지,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 소개하는 것이다. 권민주 프리즈 아시아 지역 VIP 총괄은 “프리즈 서울에 참가하는 갤러리의 90%가 해외갤러리고, 그들의 VIP 또한 해외 미술관, 갤러리 관계자와 컬렉터들이 많다. 서울이 글로벌 시티이긴 하지만 어디에 어떤 전시가 있는지 체계적으로 알려주는 센터가 필요하다”며 그 배경을 설명했다. 책자는 현재 제작 중이며 프리즈 서울 페어 전시장 등에서 볼 수 있다. 화랑들도 더 많은 관람객을 모으기 위해 박차를 가한다. 화랑들은 지역별로 하루를 정해 자정 가까이 문을 여는 야간 개장 행사를 진행한다. 1일에는 서울 용산구 한남동을 중심으로 갤러리 바톤, 리만머핀, 타데우스 로팍 등 7개 갤러리가, 2일에는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위치한 갤러리 현대, 국제갤러리, 학고재 등 6개 갤러리가 야간개장에 참여한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돌길처럼 만들어놓은 미로. 발걸음을 떼자 어디선가 종소리가 들린다. 옆에 무심히 놓인 헤드폰. 그걸 쓰면 전시관 문 여닫는 소리와 관객들 발자국 소리가 가득하다. ASMR(자율감각 쾌락반응)처럼 잔잔하긴 한데…. 이걸 미술 전시라 부를 수 있을까. 최근 ‘사운드 전시’가 관심을 모으고 있다. 말 그대로 회화나 조형물이 아닌 소리가 전시의 주체다. 이미 미디어아트 등을 통해 영상이나 음악 또한 미술의 주요 요소로 인식되긴 해도, 오롯이 소리로만 전시를 구성한다는 건 여전히 낯설다. 서울 마포구 대안공간루프에서 다음 달 8일까지 열리는 캐나다 출신 ‘사운드아티스트’ 필립 바티카의 개인전 ‘멍 때리기’가 대표적이다. 돌길이 설치돼 있긴 하나, 소리에 집중하길 권한다. 최근 내한한 바티카는 “전시된 소리는 재료에 가까워 성찰을 유도한다. 날것의 소리에 집중해 공간과 현재에 집중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바티카는 한국인이 유튜브에서 ASMR에 열광하는 모습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서울 동대문구 동대문디지털플라자에서 15일까지 열리는 ‘가장 조용한 집’은 마음 편히 볼만하다. 전북 무주에 있는 귀틀집에서 채집한 소리를 담아 풀벌레 소리와 바람에 나뭇잎 부딪히는 소리 등이 귀를 간질였다. 전시를 기획한 아티스트 그룹 ‘녹음’과 ‘수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인간에게 던진 경고를 계기로 자연과 어우러지는 삶을 모색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소리가 미술의 영역인지 아닌지에 너무 얽매이지 말라고 당부한다. 양지윤 대안공간루프 디렉터는 “예술가들이 생산하고 활용한 소리를 들으며 즐거움을 느끼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말했다.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1926∼2016)은 알아주는 아이스크림 애호가였다. 친구였던 콜롬비아 소설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에세이 ‘피델의 사적인 초상’에서 카스트로가 점심을 먹은 뒤 아이스크림을 18스쿱(아이스크림 퍼담는 큰 숟가락)을 먹었다고 회상했을 정도다. 광적일 정도인 아이스크림 사랑은 카스트로의 목숨을 앗아갈 뻔도 했다. 끊임없이 그의 암살을 시도했던 미국은 카스트로가 가장 좋아하는 초콜릿 밀크셰이크에 독약을 넣으려고도 했다. 저자는 그리스 창조 신화부터 영국의 인도 식민지배, 미국의 남북전쟁 등 역사적 사건들을 훑으며 우유와 치즈, 버터, 요구르트, 아이스크림 등 유제품의 굵직한 존재감을 살폈다. 왜 하필이면 우유일까. 미국 저널리스트 겸 작가인 저자는 2014년 국내에 출간돼 화제를 모았던 ‘대구’나 ‘소금-세계사를 바꾸다’(2007년) 등 하나의 아이템을 매개로 역사를 풀어내는 책들로 유명하다. 저자는 “오직 인간만이 다른 동물의 젖을 먹는다. 이 사실에서부터 인류사가 시작된다”고 강조한다. 인도가 영국의 식민 지배에 저항했던 수단 중 하나도 우유였다. 영국이 인도를 통치했던 ‘인도 제국’(1858∼1947) 시절, 낙농으로 먹고사는 아난드 지역 농민들은 영국 유제품 대기업 ‘폴슨’에 모든 걸 독점 공급해야 했다. 이에 지역 소작농들은 분노했고, 인도 독립을 위해 싸우던 변호사 사르다르 발라바이 파텔(1875∼1950)이 이를 조직적인 운동으로 확대시켰다. 독립 뒤 초대 부총리가 되는 파텔은 협동조합을 만들어 농부들이 철도로 우유를 운송할 루트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결국 1947년 영국 정부는 아난드 지역의 독점을 철회했다. 저자는 “이 사건은 영국 정부가 결국엔 인도를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했다”고 짚었다. 아이스크림과 얽힌 미국과 쿠바의 정치적 사건은 또 있다. 1962년 소련이 쿠바에 미사일 기지를 건설하자, 미국은 쿠바에 자국 물품 수출 금지 조치를 내렸다. 쿠바는 경제적으로 큰 위기에 처했는데, 수출 금지 물품에 아이스크림도 있었다고 한다. 이에 카스트로는 아이스크림 관련 산업을 일으키기로 했다. 기술자들을 캐나다로 유학 보내 제조법을 배우게 했고, 스웨덴과 네덜란드에서 관련 기계 설비도 들여왔다. 그렇게 만들어진 결과물 가운데 하나가 현재 수도 아바나 거리의 상징이 된 ‘코펠리아 아이스크림 가게’라고 한다. 저자는 이런 독특한 역사적 사실을 두루두루 짚으면서 우유와 관련된 요리법도 차곡차곡 소개한다. 고대 로마인이 먹었던 생 치즈 ‘무스타셰이’부터 카리브해 지역의 ‘바나나 아이스크림’까지 다양한 레시피가 가득하다. 한때 요리사로도 일한 저자는 “조리법에는 그것을 만든 사회와 그 사회의 질서가 반영돼 있어 그 음식이 식탁에 올랐던 시대의 삶을 말해준다”고 설명한다. 숨겨진 역사적 사실도 배우면서 군침도 삼키게 만드는 책이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이르면 2024년에 이건희 컬렉션을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박물관에서 전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임명된 윤성용 국립중앙박물관장(사진)은 11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가진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이건희 컬렉션을 국내외 전시회에서 적극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박물관이 기증받은 이건희 컬렉션은 모두 2만1613점. 겸재 정선(1676∼1759)의 ‘인왕제색도’ 등 가치를 따질 수 없는 나라의 보물들이 다수다. 박물관은 올해 전체 기증품을 유물관리 전산 시스템에 입력하는 등록 절차를 마친 뒤, 이르면 2024년부터 해외 전시를 추진할 예정이다. 윤상덕 전시과장은 “미국 시카고박물관이나 메트로폴리탄박물관 등과 구체적 전시 내용이나 일정에 대해 협의하고 있다”고 했다. 윤 관장은 “이건희 컬렉션은 내년 1월부터 e뮤지엄 등 온라인에서도 순차적으로 공개할 예정”이라며 “기증품 조사 연구의 첫 단계로 올해 분야별 목록집 9권을 발간하고 2025년까지 20여 권을 내놓을 계획”이라고 덧붙였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일제강점기 동아일보가 주도해 충무공 이순신 장군(1545∼1598)의 묘소와 위토(位土·묘소 관리비용을 조달하기 위한 토지)를 지킨 내용이 담긴 자료들이 국가등록문화재로 등록됐다. 문화재청은 “5월 30일 등록 예고됐던 ‘일제강점기 이충무공 묘소 보존과 현충사 중건민족성금 편지 및 자료’를 국가등록문화재로 등록했다”고 11일 밝혔다. 1931년 충남 아산에 있는 충무공 위토가 경매에 넘어갈 위기에 처하자, 국내외 동포들이 앞다퉈 성금을 보내와 이를 되찾았다. 당시 성금과 함께 보낸 편지 2609점을 포함해 성금결산 및 지출장 등 총 4254점이 기록물로 등록됐다. 충무공의 후손이 충무공 위토를 담보로 돈을 빌린 사실은 1930년 9월 20일 동아일보의 단독 보도로 알려졌다. 동아일보는 1931년 5월 13일자에 위토가 은행 경매로 넘어갈 위기에 처했다고 또다시 단독 보도했다. 당시 모인 성금은 1만6021원30전으로, 현재 가치로 10억 원이 넘는다. 동아일보 주도로 결성된 ‘이충무공 유적 보존위원회’는 1931년 6월 11일 위토를 되찾고, 남은 돈으로는 1932년 충무공 고택 옆 현충사를 중건했다. 1706년 설립된 현충사는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로 1868년 철거된 뒤 60여 년 만에 원래 모습을 되찾았다. 1967년 3월 사적으로 지정됐다. 문화재청은 ‘이육사 친필 편지 및 엽서’와 ‘서울 구 천도교 중앙총부 본관’을 국가등록문화재로 등록 예고했다. 독립운동가인 시인 이육사(1904∼1944)가 1930년대 친구와 친척에게 쓴 편지와 엽서는 당시 생활고를 겪던 시인의 근황과 인간적인 면을 엿볼 수 있는 사료다. 1921년 천도교 중앙대교당과 함께 건립된 ‘서울 구 천도교 중앙총부 본관’에서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과 사회계몽 활동이 활발히 이뤄졌다.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당신이 사랑하는 유일한 사람 이 ‘아고리’는/머리가 점점 맑아지고 눈은 더욱더 밝아져서 … 나는 우리 가족과 선량한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진실로 새로운 표현을/위대한 표현을 계속할 것이라오/내 사랑하는 아내 ‘남덕’ 천사 만세 만세.” 1954년 아고리가 남덕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다. 아고리는 화가 이중섭(1916∼1956), 남덕은 부인 야마모토 마사코(101)다. 이중섭은 도쿄 유학 시절 턱(일본어 ‘아고’)이 길다며 성과 함께 붙인 장난스러운 별명을 얻었다고 한다. 남덕은 야마모토 여사의 한국 이름이다. 이중섭은 6·25전쟁으로 1952년 부인과 두 아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가족과 생이별했다. 그는 부인에게 꾸준히 편지를 보냈다. 한 소절 한 소절마다 부인에 대한 사랑과 미술 작업에 대한 열정이 진득하게 배어난다.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12일 개막하는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이중섭’에서는 인간 이중섭이 예술가로 완성돼 가는 과정을 짚을 수 있다. 이번 전시는 지난해 4월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기증한 작품들을 바탕으로 기획됐다. 지난해 7월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한국미술명작’에 이은 국립현대미술관의 두 번째 전시다. 고인이 기증한 작품 1488점 가운데 이중섭 작품은 104점으로 유영국(1916∼2002·187점), 파블로 피카소(1881∼1973·112점) 다음으로 많다. 이번 전시에서는 87점을 공개하며 미술관이 원래 소장한 11점 가운데 10점도 선보인다. 이번에 빠진 은지화(담배 은박지에 그린 그림) ‘아이들’은 9월 열리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카운티뮤지엄(LACMA)의 한국 근대미술 기획전에 출품됐다. 이번 전시에선 그간 접하기 어려웠던 이중섭의 1940년대 작품을 여럿 만날 수 있다. 화가는 6·25전쟁이 터진 뒤 북한 원산시 작업실에 상당수 작품을 두고 왔다. 전시에 나온 작품은 다수가 엽서화(가로 14cm 세로 9cm)로, 상당수는 1940년대 당시 연인이던 부인에게 보낸 그림들. 뒷면에 주소와 날짜가 남아 있다. 1940년 12월 25일 보낸 ‘상상의 동물과 사람들’은 엽서화 가운데 시기가 가장 빠르다. 엽서의 크기는 작지만 의미는 남다르다. 이중섭이 연필과 유채, 크레용, 먹 등 다양한 재료를 실험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우현정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는 “단순하고 선명한 화풍과 자유로운 공간 구성이 완성 단계로 접어들어, 작가의 전성기인 1950년대로 나아가는 과정을 엿볼 수 있다”고 말했다. 배가 드러난 소와 허공을 응시하는 여인을 그린 ‘소와 여인’(1942년), 무력해 보이는 세 인물을 거친 선을 통해 그려낸 드로잉 ‘세 사람’(1942∼1945년) 등 연필화 4점도 있다. 1956년 세상을 떠난 이중섭은 1950년대 더욱 위대한 예술적 성취를 이뤘지만, 개인적으로는 힘겹고 애달픈 시기였다. 가족을 절절하게 그리워한 그는 일본에서 부인과 두 아들을 한 차례 만난 후 홀로 한국에 돌아왔고 다시는 서로 보지 못했다. 그는 외로이 작업을 이어갔다. 이번에 처음 공개한 ‘물놀이하는 아이들’처럼 이중섭은 아이를 소재로 한 그림을 많이 그렸다. ‘두 아이와 물고기와 게’는 구도가 똑같은 작품이 2점으로, 원색이 진한 이건희컬렉션과 유채로 마무리한 미술관 소장 작품을 비교해 감상할 수 있다. 이중섭이 은지화를 많이 그린 시기도 1952년 가족이 일본으로 떠나고 난 뒤였다. 특히 헤어지기 전 1년 동안 함께 살았던 제주 생활의 기억이 주로 담겼다. 물고기와 게, 가족을 그린 ‘가족을 그리는 화가’가 대표적이다. 작품 속 인물들은 살포시 미소 짓거나 감정이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화가가 어떤 마음으로 그렸을지 떠올려보면 가슴이 시려 온다. 내년 4월 23일까지, 무료.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