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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이 생전에 음악으로 생일파티를 열었다면 어떤 모습일까요. 후원자들이 멋진 궁전에 장소를 제공하지 않았을까요. 친구와 제자들이 모이고, 친했던 선후배들의 음악도 연주되고요. 그런 즐거운 상상 속에서 축제를 기획했습니다.”(첼리스트 양성원) 베토벤과 영향을 주고받은 음악가들의 실내악 작품을 망라한 ‘해피 버스데이 루트비히!’ 시리즈 콘서트가 열린다. 양성원 연세대 음대 교수의 기획으로 다음 달 16∼18일 전남 여수시 GS칼텍스 예울마루에서 네 차례, 이에 앞서 13∼15일 서울 서대문구 금호아트홀 연세에서 세 차례 무대를 갖는다. 예울마루 무대는 양성원이 음악감독으로 5년째 펼치고 있는 ‘예울마루 실내악 페스티벌’ 다섯 번째 행사로 기획됐다. 서울 무대는 금호아트홀이 2017년부터 펼쳐온 베토벤 실내악 시리즈 ‘베토벤의 시간 ‘17’20’을 마감하는 순서로 열린다. “베토벤 탄생 250주년을 기념할 수많은 제안이 2년 전부터 왔는데 ‘너무 베토벤 음악만 연주돼 청중이 질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들었죠. 베토벤은 선배 음악가들의 장점을 본받아 소화했고, 후배 음악가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주었어요. 앞뒤 세대를 통해 보는 베토벤을 소개하고자 했습니다.” 13일 금호아트홀, 16일 예울마루 콘서트는 ‘베토벤의 스승들’이 주제다. 모차르트 목관5중주 K452, 하이든 현악4중주 63번 ‘일출’, 베토벤이 헨델 오라토리오 ‘유다스 마카바이우스’에서 주제를 딴 ‘용사가 돌아온다 변주곡’ 등을 연주한다. 17일 오후 2시 콘서트 주제는 ‘베토벤의 친구들’이다. 베토벤의 애제자 리스와 체르니의 피아노소나타, 베토벤 교향곡 3번 ‘영웅’을 리스가 피아노4중주로 편곡한 버전 등을 연주한다. 같은 날 오후 7시에는 ‘베토벤의 후원자들’ 콘서트가 열린다. 베토벤이 후원자들을 위해 쓴 피아노소나타 21번 ‘발트슈타인’, 현악4중주 ‘라주모프스키 2번’, 피아노3중주 ‘대공’을 연주한다. 14일 금호아트홀 콘서트는 ‘친구들’과 ‘후원자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15, 18일 ‘베토벤의 이상’ 콘서트에서는 동시대 라이벌이던 로시니 ‘세비야의 이발사’ 중 아리아, 슈베르트의 가곡, 베토벤 피아노소나타 30번 등을 선보인다. 베토벤과 교유한 이름들이 엄청나듯, 양성원이 초대한 음악가들 면면도 화려하다. 피아니스트 김영호 임동혁 문지영 이채윤, 아벨콰르텟, 바이올리니스트 크리스텔 리 등이 무대에 선다. 예울마루 전석 3만 원, 금호아트홀 연세 전석 5만 원. (예울마루), (금호아트홀 연세)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유튜브 링크 :추석 연휴가 다음 주로 다가왔군요. 여러 가지로 불안한 가을이지만, 마음만큼은 푸근한 한가위 맞이하시길 기원하며 달을 나타낸 음악 작품들을 살펴보겠습니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4번은 ‘월광’, 달빛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져 있죠. 베토벤이 붙인 제목은 아닙니다. 독일의 시인이자 음악평론가였던 프리드리히 렐슈타프가 이 곡을 듣고 ‘달빛 비치는 스위스의 루체른 호수에서 물결에 흔들리는 작은 배 같다’고 말한 게 제목처럼 불리고 있습니다. 루체른은 오늘날 전 세계 음악팬들에게 한층 더 친숙해졌죠. 매년 여름 이곳에서 루체른 음악 축제가 열립니다. 세계 정상급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불러 모은 ‘오케스트라의 올스타’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가 특히 유명합니다. 비슷한 이름으로 불리는 피아노곡에는 드뷔시의 피아노곡 ‘달빛’도 있습니다. 드뷔시가 불과 스물세 살 때 쓴 피아노 작품집 ‘베르가마스크(베르가모풍) 모음곡’의 세 번째 곡입니다. 베르가모는 이탈리아 북부에 있는 도시입니다. 19세기 중반의 오페라 작곡가 도니체티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죠. 올해 2월 말에 이곳에서 코로나19 감염자가 폭증하면서 뉴스를 탔지만,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풍광이 너무도 아름다운 곳입니다. 이 도시에서 태어난 도니체티에게는 필생의 라이벌이 있었죠. 네 살 아래였던 작곡가 벨리니였습니다. 두 사람의 경쟁은 벨리니가 불과 서른네 살 때 일찍 세상을 떠나면서 막을 내렸습니다. 그 벨리니도 달을 노래한 아름다운 가곡 ‘은빛으로 빛나는 달이여’를 남겼습니다. 달을 노래한 곡으로 사랑받는 노래 중에는 드보르자크의 오페라 ‘루살카’에 나오는 아리아 ‘달에게 바치는 노래’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루살카는 체코 전설에서 물에 사는 요정입니다. 줄거리는 안데르센의 동화 인어공주와 비슷합니다. 물에 사는 요정이 인간을 사랑하는데, 인간이 되면 말을 할 수 없게 되죠. 그래도 루살카는 인간이 되길 택합니다. ‘달에게 바치는 노래’는 오페라 초반에서 요정이 달을 보면서, 자기의 사랑을 임에게 전해달라며 부르는 아리아입니다. 소박하지만 잊히지 않는 아름다운 멜로디를 갖고 있습니다. 가곡의 왕 슈베르트는 달과 관련된 노래를 여러 곡 남겼습니다. ‘달에게’라는 노래만 해도 다섯 곡입니다. 시인 횔티의 시에 곡을 붙인 게 가장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피아노의 반주 음형이 베토벤 월광 소나타와 묘하게 닮았습니다. 차이콥스키 발레 ‘백조의 호수’는 2막의 ‘정경’ 장면이 유명합니다. 여주인공 오데트 공주와 시녀들이 저주를 받아서 백조로 변하는데, 사냥을 나온 지크프리트 왕자가 달빛 아래서 이 백조의 무리를 만나는 장면입니다. 달을 직접 묘사하지는 않았지만, 쇼팽 피아노협주곡들의 느린 악장도 달을 생각나게 합니다. 영화 ‘트루먼 쇼’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인공으로 만든 세트 안의 삶을 살아가던 주인공이 사랑에 눈뜨는 해변 장면에 나왔던 음악이 쇼팽의 피아노협주곡 1번 2악장입니다. 쇼팽은 피아노협주곡을 두 곡 썼죠. 두 곡 모두 쇼팽이 스무 살 때인 1830년 세상에 나왔습니다. 이 두 곡은 쇼팽이 바르샤바 음악원 동기생 콘스탄차를 짝사랑하는 마음이 들어 있다고 합니다. 제 느낌에는 2번 협주곡의 2악장이 더 달빛 같습니다. 달빛을 떠올리게 하는 아름다운 곡들은 유튜브 채널 ‘유윤종튜브’에서 들어보실 수 있습니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바이올린 둘, 비올라 하나, 첼로 하나. 현악4중주는 가장 건축적인 음악 장르로 꼽힌다. 지적인 네 사람의 대담에 비유되기도 한다. 만년의 베토벤이 가장 힘을 쏟으며 내면의 불꽃을 투사한 장르다. 타카치 4중주단은 1975년 헝가리에서 창단됐다. 11년 뒤 놀랍게도 공산국가였던 헝가리 당국의 승인 아래 미국 콜로라도주로 활동 무대를 옮긴다. 7년 뒤엔 이 4중주단의 이름이었던 제1바이올린 주자 가보르 타카치너지가 팀을 떠난다. 남은 세 멤버는 바이올리니스트 세 사람을 초대해 합(合)을 맞춰본 뒤 새 제1바이올린 주자를 결정한다. 선택된 인물은 1993년 당시 24세에 불과했던 영국 출신의 줄리아드음악원 졸업생 듀슨베리였다. 제1바이올린 주자가 가장 많은 선율(멜로디)을 떠맡는 만큼 이는 놀라운 선택이었다. 현재 최장기 멤버가 된 저자 듀슨베리는 자신의 영입 과정에서부터 이 4중주단이 연주해온 베토벤 현악4중주의 역사를 회고한다. 현악4중주 연습은 긴장의 연속이다. 템포와 강약부터, 작곡가의 내면에 대한 해석까지 토론이 끊이지 않는다. 때로는 일치된 의견 없이 연주에 임해서 더 멋진 결과를 낳는다. 인간적인 친밀함이 네 음악가를 떠받치지만 ‘늘 묶여 있음’이 부담스럽다는 고백도 따른다. 비올라 연주자 가보르 오르마이를 1994년 암으로 잃을 때의 상실감도 토로한다. “상실의 아픔 덕에 (음악적으로) 더 겁먹지 않게 됐다. 슬퍼하면서 이를 딛고 일어서는 방법을 보았다.” 베토벤은 네 멤버보다 중요한 주인공이다. 커리어 초반에서 말기까지 베토벤의 4중주에 대한 설명과 해석, 아마추어로 4중주를 연주한 베토벤의 친구들, 후원자들의 내면과 일화는 책의 또 다른 기둥이다. 타카치 4중주단은 지난해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을 멤버로 영입했다. 그는 “개인적인 화법으로 말을 걸며 유용하게 정보를 제공하는 이 책은 독자에게 4중주단의 단원이 된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할 것”이라고 전했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17일 막을 내린 제36회 동아국악콩쿠르에서 고한돌 씨(19·중앙대 2년)가 판소리 부문 일반부 금상을 받았다. 동아일보사가 주최하고 서울교육대, 재단법인 정효문화재단과 동아꿈나무재단 후원, 롯데그룹 협찬으로 지난달 17일부터 정효아트센터에서 열린 올해 동아국악콩쿠르는 본선 진출자 56명 가운데 일반부 7명, 학생부 2명의 금상 수상자를 포함해 40명의 입상자가 나왔다. 올해 동아국악콩쿠르는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관객 없이 진행됐다. 민속국악사(대표 조대석)가 악기를 부상으로 주는 ‘민속국악사상’은 거문고 일반부 금상 수상자인 황혜영 씨(26·한예종 전문사 과정)와 가야금 일반부 금상 수상자인 하병훈 씨(20·한예종 2년)에게 돌아갔다. 민속국악사는 지난해까지 거문고 부문에 시상하던 민속국악사상을 올해에는 가야금 부문에도 시상했다. 거문고와 가야금 학생부는 금상 수상자가 없어 민속국악사상 수상자를 내지 못했다. 작곡 부문 수석에게 주는 전인평 국악작곡상은 은상을 수상한 최민준 씨(20·서울대 1년)가 받았다. 심사 결과와 심사평은 28일 이후 확인할 수 있다. 본선 실황 영상은 이달 중 동아국악콩쿠르 홈페이지(www.donga.com/concours/classical)에서 유료로 서비스한다. ▼부문별 수상자▼ ◇작곡 ▽일반부 △은상 최민준 △동상 전우림(21·한예종 4년) ◇판소리 ▽일반부 △금상 고한돌 △은상 박상훈(20·한예종 3년) △동상 소장(22·한예종 4년) ▽학생부 △금상 김희정(19·전통예고 3년) △은상 강경민(17·전통예고 2년) △동상 박도을(17·전통예고 2년) ◇정가 ▽일반부 △은상 조윤영(21·이화여대 4년) ▽학생부 △은상 신윤솔(17·전통예고 2년) △동상 노하연(17·전통예고 2년) ◇가야금 ▽일반부 △금상 하병훈 △은상 김호준(19·한양대 2년) △동상 유소은(20·서울대 2년) ▽학생부 △은상 임하랑(18·충남예술고 3년) △동상 조윤미(16·가운고 2년) ◇거문고 ▽일반부 △금상 황혜영 △은상 제갈설(23·서울대 4년) △동상 김수민(20·한예종 3년) 이지수(20·서울대 3년) 이연진(26·서울대 대학원) ▽학생부 △은상 이강원(18·한국전통문화고 3년) ◇피리 ▽일반부 △금상 이정민(21·서울대 4년) △은상 이찬우(28·한예종 졸업) ▽학생부 △은상 한정재(18·전통예고 3년) △동상 남궁설(16·전통예고 2년) ◇대금 ▽일반부 △금상 고수연(20·한예종 2년) △은상 송누리영(24·한양대 4년) △동상 이성재(20·추계예대 1년) ▽학생부 △은상 이건준(17·전통예고 3년) △동상 김예빈(19·전통예고 3년) ◇해금 ▽일반부 △금상 강서연(20·한예종 3년) △은상 원유빈(22·서울대 4년) △동상 한단비내린(22·서울대 4년) ▽학생부 △금상 박효린(18·전통예고 3년) △은상 이예원(17·전통예고 2년) △동상 신현지(16·전통예고 2년) ◇아쟁 ▽일반부 △금상 김다인(25·서울대 졸업) △은상 송민주(19·한국전통문화고 졸업) △동상 윤겸(21·한예종 3년)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복도에 놓인 긴 의자. 가야금 연주자들이 차례로 누웠다 떠난 의자 위에 검은 연주복 차림의 작곡가가 눕는다. 뭔가 떠오른 듯 벌떡 일어난 그는 긴 악보를 펼쳐 읽는다. 이윽고 연주자들이 악기를 들고 복도를 지나 계단 아래 숲에 다다르고, 깜깜한 밤을 배경으로 연주가 시작된다…. 서울대 현대음악 플랫폼 ‘스튜디오 2021’이 제작한 12분짜리 뮤직비디오 ‘고다 Simmering’의 내용이다. 영상 내내 들려오는 세 대의 가야금 연주는 학생 작곡가 황재인(서울대 작곡과 4학년)의 작품. 연출은 페르마그누스 린드보리 전 서울대 작곡과 교수가 맡았고 국악과 석사과정 학생들로 구성된 ‘서울가야금앙상블’이 연주했다. 황재인의 가야금 곡과 제목이 같은 이 영상은 8월 칸 단편영화제(칸 영화제와는 다른 영화제)에서 ‘오피셜 실렉션’(공식 초청 작품)에 선정되었다. 5월 싱가포르 세계 필름 카니발에서는 뮤직비디오상과 데뷔영화상을 수상했고 7월 인디X 영화제에서 최고 뮤직비디오상에 노미네이트되는 등 여러 영화제에서 주목을 받았다. 곡을 쓰고 영상 속의 ‘작곡가’를 연기한 황재인은 “당초 영상화를 염두에 두고 작곡한 곡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는 “영상에 나오는 신경질적인 작곡가와 크게 닮지는 않았지만, 작곡 전공자로서 창작의 고통을 영상화한 내용이 마음에 와닿았다”고 밝혔다. 곡 제목인 ‘고다’는 ‘고기나 뼈 따위를 푹 삶다’는 뜻. 황재인은 “고요에서 복잡으로 진행하며 재료는 껍데기만 남는 ‘고는’ 과정을 음악적으로 표현한 곡”이라고 설명했다. 이 작품은 영상에 함께 출연한 서울가야금앙상블을 위해 열흘 만에 썼다. 기자가 “귀에 어렵지 않게 와닿는다”고 했더니 “한국 음악이라는 특성을 강조하기보다는 가야금이라는 악기가 가진 특징을 여러 가지로 활용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답했다. 그는 예원학교와 서울예고에서 서양음악 작곡을 전공하면서 한국예술종합학교영재원에서는 해금을 전공했다. 서울대에서도 해금을 복수전공으로 공부하고 있다. 이번 영상의 음악으로 쓰인 ‘고다 Simmering’은 스튜디오 2021이 제작 중인 음반 ‘새로운 음악 공동체를 위하여’에 다른 작품들과 함께 수록될 예정이다. 이 영상의 총감독을 맡은 이신우 서울대 작곡과 교수(스튜디오 2021 예술감독)는 “최근 창작음악계는 뮤직비디오 등 대중에게 다가가는 새로운 소통의 채널들로 접근하고 있다. 학생들과 교수진이 협업한 결과 이런 채널을 통해 인정받은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피아니스트 랑랑(38). 현란한 기교와 압도적 볼륨으로 라흐마니노프의 협주곡이나 리스트의 기교적 난곡을 부수듯 두들기는 모습이 먼저 떠오른다. 얼마간 과장되게 느껴지는 표정과 동작, 무대 매너도 함께. 그가 대(大)바흐의 90분짜리 대곡 ‘골드베르크 변주곡’ 음반을 DG(도이체 그라모폰) 레이블로 발매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랑랑은 진지한 예술가이며, 이 음반으로 이를 증명했다”고 평했다. 그의 골드베르크에서 과장이나 허식은 느껴지지 않는다. 장식음의 처리가 표준적이고, 느린 변주들은 더 느려지지만 템포 처리도 큰 틀에서는 오히려 중용적이다. 그럼에도 이 음반은 낭만적이다. 무엇 때문일까. 그는 프레이징(분절법)을 통상의 연주보다 큰 단위로 이어간다. 적절한 페달링이 화음의 아름다움을 연속해서 짙게 드러낸다. 그래서 ‘노래’가 두드러진다. 각 성부(聲部) 간의 대비는 충분히 아름답지만, 노래와 조형성이 겨루는 부분에서는 어떤 성부를 살짝 숨기고 노래를 앞세운다. 변칙인가? 아니다. 모든 개성이 정교한 설득력 안에서 표현된다. 그의 강한 손가락은 바흐의 이 조형적 대곡에서도 힘을 발휘한다. 음표마다 또랑또랑 이가 고르니 소리가 윤택하다. 바흐는 불면증에 시달리던 카이절링크 백작의 의뢰로 이 곡을 썼다. 편하고 아름다운 꿈을 꿀 수 있을 것 같다. 랑랑은 열일곱 살 때, 한국 나이로 ‘낭랑 18세’ 때 피아니스트 크리스토프 에셴바흐 앞에서 이 곡을 처음 연주했다. 영상 인터뷰에서 그는 “20년 넘게 지난 지금 이 곡에 대한 음악적 연구가 정점에 이르러 앨범을 냈다”고 밝혔다. 3년 전부터는 옛 건반악기 연주자인 안드레아스 슈타이어와 함께 이 곡을 공부했다고 했다. 두 장짜리 앨범 외에 음반 넉 장을 담은 ‘디럭스 버전’도 냈다. 바흐가 활동했던 라이프치히 성(聖) 토마스 교회에서의 연주 실황 녹음을 함께 담았다. 그는 “성 토마스 교회에서 바흐의 정신을 느끼며 집중할 수 있었다. 스튜디오 녹음처럼 엄밀하지는 않지만 거기서 느낀 ‘불꽃’ 덕에 즉흥적이고 아름다운 부분들이 나왔다. 그래서 같이 발매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결혼하면서 한국과 한발 가까워졌다. 장인은 독일인, 장모가 한국인이다. “장모님께서 항상 맛있는 불고기를 만들어 주시죠. 남자에게는 결혼이 더 성숙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같아요. 여성들은 원래 성숙하지 않나요? 그러니 남자에게는 결혼이 더 이득이죠. 하하.” 랑랑은 12월 13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골드베르크 변주곡 전곡을 연주할 예정이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이 산이 아닌가봐”가 국경을 넘는 지휘관의 외침만은 아니다. “모든 것이 헛되다”는 것이 권력과 재물을 쥔 솔로몬의 탄식만은 아니다. 뉴욕타임스의 시사 칼럼니스트로 친숙한 저자는 인생의 어느 단계에서 ‘목표 리셋’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삶은 두 개의 산을 보여주지만 두 번째 산이 더 위대하고 오를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첫 번째 산은 ‘개인적 성공’이다. 이 단계에서 사람은 명예와 영향력, 큰 집에 탐닉한다. 어떤 사람은 문제없이 꼭대기에 오르지만 더 많은 사람은 원하던 곳에 오르지 못한다. 어느 쪽이든 어느 순간엔 고개가 갸웃해진다. ‘이것이 나의 참모습일까? 더 심오한 삶의 목적이 있는 것 아닐까?’ 이럴 때 어떤 사람은 자기를 넘어 타인을 보살피고자 하는 열망을 깨닫는다. 헌신하는 삶을 만나는 것이다. 헌신은 정체성과 목적의식, 더 높은 차원의 자유, 도덕적 인격을 만들어준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과도한 이상론(理想論)일까. 우리 주위에는 공동체를 위해 자기를 버리고 헌신하는 사람이 왜 그다지 많지 않은가. 그것은 오늘날의 시대정신과도 많은 부분이 연관된다는 설명이다. 저자는 현 시대를 ‘개인 과잉의 시대’로 진단한다. 20세기 중반 서구 사회는 대공황과 세계대전을 겪었다. 개인보다 공동체가 중요했고, 아이를 잃어버린 부모가 종일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마을을 돌아다니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그 시대도 한계가 뚜렷했다. 인종차별과 성차별, 획일주의가 만연했다. 이에 대한 반발이 1960년대에 68혁명이라는 문화변혁을 불러왔다. 권위를 거부하거나 자신을 있는 힘껏 표현하는 것이 그 시대의 미덕이었다. 이 개인주의적 문화는 여성과 소수자에 대한 억압을 깨뜨렸고, 개인의 창의를 격려해 오늘날 정보화 세계의 바탕을 마련했다. 그러나 자기에 대한 몰두가 사회 구성원 간의 분리와 고립을 가져왔으며 ‘더 큰 자아’를 인식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제 ‘두 번째 산’, 헌신이라는 개인의 내면적 요구를 다시 돌아볼 때가 온 것이다. 나를 버리고 집단의 이익을 우선시하라는 얘기일까.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전체주의의 폐해를 겪은 현대인에게는 경계심도 드는 얘기다. 저자는 ‘부족주의’와 ‘관계주의’를 구분함으로써 공동체주의에 깃든 독을 빼고자 한다. 부족주의는 증오와 ‘적’의 존재를 토대로 한다. 그것은 당파성으로 공허를 채우는, ‘자아도취자를 위한 공동체주의’다. 이와 달리 관계주의는 증오와 적이 필요 없다. 그것은 타인을 돌보는 능력을 갖고 헌신하는 것이며, 사랑이라는 형태로 찾아오는 소명을 발견하는 것이다. 책을 덮기 전 19세기 독일 이상주의 사상가와 예술가들이 떠올랐다. 괴테 ‘파우스트’의 주인공은 청춘의 회복이라는 개인의 욕망을 위해 악마에게 영혼을 판다. 그러나 그가 최고의 행복에 싸여 “멈추어라, 순간이여”를 외친 것은 육욕(肉慾)을 충족한 순간도, 재물과 권력을 손에 넣은 순간도 아니었다. 자신이 설계한 행복한 공동체가 수립되는 것을 보는 순간 파우스트는 행복의 정점에 도달한다. 베토벤은 ‘합창환상곡’에서 행복한 개인의 모습을 묘사하고 16년 뒤 ‘합창교향곡’에서 한데 손잡은 인류의 모습을 그린 뒤 만족했다. 오늘의 미국 사회에 대한 인식이 책의 바탕을 이루지만, 한국 사회가 거쳐온 시대의식과 비교하며 읽으면 한층 생생하게 다가온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피아니스트 임동혁(사진)은 7월에 서른여섯 번째 생일을 지났다. 그의 36년 삶 중 3분의 1을 갓 지난 1996년 10월, 그의 이름이 처음 신문에 등장했다. 동아일보가 단독 보도한 모스크바 국제 청소년 쇼팽콩쿠르 2위 입상 소식이었다. 우승은 16세의 형 동민 씨(현 계명대 교수)가 차지했다. 당시 기사에서 그는 “러시아 음악교육은 학생이 혼자 음악을 찾아나가도록 도와준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마치 형이 한 얘기 같은데요. 그때 일이 별로 기억나지 않아요.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2003년)만 해도 엊그제 같은데.” 기자를 만난 그는 “까마득한 얘기”라며 웃었다. 그 기사를 시작으로 임동혁이란 이름은 줄곧 동아일보 지면을 수놓았다. 2001년 12월, 17세였던 그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롱 티보 콩쿠르에 참가해 20대 연주자들과 겨룬 끝에 대상, 솔로 리사이틀 상, 오케스트라 협연상 등 5개 부문 상을 휩쓸었다. 동아일보는 파리에 있는 그와 통화해 상세한 승전보를 전했다. 그는 “어리지만 내면이 우러나는 연주로 승부하려 했는데 통했다”고 소감을 전했다. 2003년 6월 10일, 음악 팬들을 놀라게 한 소식이 동아일보 단독 보도로 전해졌다. 임동혁이 벨기에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3위에 올랐지만 주최 측에 심사 결과에 대한 불만을 알리고 수상을 거부한 것. “상황을 마음속으로 정리한 순간 동아일보에서 전화가 왔죠. 그 뒤로도 당시 결정과 관련해 수없이 질문을 받았어요. 제게 꼬리표처럼 붙어 다닌 셈이죠.” 그 일로 세계 음악계에서 미움을 샀을 것이라는 얘기도 뒤따랐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다’는 생각도 들어요. 목소리를 낸다고 바뀌지는 않을 일이었고요.” 국내 음악 관계자와 팬들은 늘 원군(援軍)이었다. 2005년 12월 동아일보는 그해 가장 훌륭한 활동을 펼친 ‘우리 분야 최고’를 선정 보도했다. 가장 두드러진 활약을 보인 연주자로 뽑힌 주인공 역시 임동혁이었다. 그해 그는 바르샤바 쇼팽 콩쿠르에 참가해 형 동민 씨와 함께 공동 3위에 올랐다. 2006년 12월엔 그의 글이 동아일보 지면에 실렸다. 각계 인사가 ‘자신이 사랑하는 대중문화 스타’에 대해 쓰는 릴레이 연재 ‘내 마음속의 별’ 기획이었다. 임동혁은 마음속의 별로 연기자 이영애를 선택했다. 이영애의 청순한 이미지에 어울리는 곡으로는 모차르트의 피아노협주곡 21번 2악장을 추천했다. 지금도 ‘팬심’을 유지하고 있을까. 그는 “좋아하는 연예인의 폭이 더 넓어졌다”고 말했다. “최근엔 제천국제음악영화제 홍보대사로 함께 위촉돼 활동하게 된 배우 박보영 씨를 만났어요. 예쁘시던데요(웃음).” 그는 “음악에만 집중하느라 최근 특별한 우상이 없었다. 매일 자신을 이겨내는 게 쉽지 않다”고도 했다. 11월 6일에는 롯데콘서트홀에서 슈만 ‘어린이 정경’, 베토벤 소나타 14번 ‘월광’, 23번 ‘열정’ 등을 연주한다. ‘피아노 팬들에게 친숙한 레퍼토리’라고 했더니 “그래서 쉽지 않다”고 말했다. “2014년 월광을 국내에서 연주했는데 평이 매우 좋았어요. 최소한 그것보다는 잘 쳐야 하지 않을까요?” 그가 ‘매일 자신을 이겨나가는 싸움’이라고 한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됐다. “동아일보가 기록해온 제 지난날을 돌아보니 흥미롭고, 어떤 부분은 아쉬움도 드네요. 좋은 소식들로 기록되도록 할 테니 지켜봐 주세요.”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기관차를 내가 발명할 수 있었다면 내가 쓴 교향곡 전부를 포기해도 좋을 텐데.” 교향곡 9번 ‘신세계에서’까지 아홉 곡이나 되는 교향곡을 작곡한 체코 음악 거장 안토닌 드보르자크(1841∼1904)의 말입니다. 어쩌다 기차가 작곡가의 사랑이 되었을까요. 드보르자크가 아홉 살 때, 그가 살던 프라하 교외 마을에 철도가 놓였습니다. 영국에서 처음 지역 간 철도 노선이 탄생하고 20년 뒤의 일이었죠. 드보르자크는 증기를 뿜으며 달려가는 이 새로운 문명의 산물에 매혹됐습니다. 열여섯 살 때 프라하의 음악학교에 입학한 뒤엔 매일 아침 터널 위에 올라가서 프라하역으로 들고 나는 열차의 번호와 모습을 수첩에 메모했습니다. 그러고는 역에 가서 기관사나 열차 점검원들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곤 했습니다. 말하자면 ‘1세대 철도 마니아’였던 것입니다. 그의 작품 중 실제로 기차를 묘사했다고 여겨지는 작품도 있습니다. 현악4중주 12번 ‘아메리카’ 마지막 4악장의 빠르고 흥겨운 시작 부분은 기차여행의 흥겨움을 그렸다는 해석이 있습니다. 유명한 신세계에서 4악장의 경우 ‘잔짠 잔짠’ 하는 단2도 음형이 영화 ‘조스’(1975년) 주제음악과 비슷하다는 평이 있지만, 이 부분도 기차를 연상시키는 육중함과 점점 에너지를 쌓아나가는 느낌이 기차 출발과 비슷합니다. 이 두 작품의 경우는 드보르자크가 직접 기차와의 연관성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가 44세 때 쓴 교향곡 1악장의 시작 부분에 대해서는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에서 체코인들을 싣고 국경절 축제에 오는 기차가 역에 닿는 순간 이 주제를 떠올렸다”고 말했습니다. 기차의 어떤 점이 대작곡가를 사로잡았을까요. 그는 제자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양한 부품이 수많은 부분을 구성하는데 그 모두가 제각기 중요하잖아. 부품들 모두가 각기 있어야 할 위치에 있지. 작은 레버를 움직이면 큰 지렛대가 움직이기 시작해. 크고 육중한데도 토끼처럼 재빠르게 움직이잖아.” 낭만주의 황금기의 음악가가 기차 같은 첨단의 물품에 매혹되었다는 사실은 당시의 예술을 해석하는 데 새로운 빛을 던져줍니다. 기차가 상징하는 힘과 현대성은 이어 20세기에 불어닥치는 모더니즘의 가치와 많은 것을 공유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드보르자크가 한 세대 늦게 태어나 새로운 현대적 예술 사조들이 마구 분출했던 1910년대에 활동했다면, 그는 당대 유럽을 이끄는 선구적인 예술가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평생의 사랑이었던 기차는 드보르자크의 수명을 단축시켰습니다. 1904년 4월, 예순두 살이었던 그는 아직 바람이 찬데도 다른 날처럼 프라하 기차역에 기차를 보러 나갔다가 그만 독감에 걸렸고, 다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드보르자크 이후에도 기차가 가진 힘과 현대성을 표현한 작곡가들이 있었습니다. 프랑스 작곡가 오네게르가 1923년에 작곡한 ‘퍼시픽 231’이 그 하나입니다. 오네게르는 드보르자크처럼 기차 마니아였고, “나는 여성이나 말보다 기차가 좋다”는 말도 남겼다고 합니다. 1993년에는 영국 작곡가 마이클 나이먼이 ‘MGV’라는 관현악곡을 발표했죠. 프랑스 고속열차 TGV의 파리∼릴 노선 개통을 기념해 만든 음악입니다. 유튜브 채널 ‘유윤종튜브’에서 그가 쓴 기차를 연상시키는 작품들과 오네게르, 나이먼의 작품들을 들어보실 수 있습니다. 오늘(8일)은 드보르자크의 179번째 생일입니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기관차를 내가 발명할 수 있었다면 내가 쓴 교향곡 전부를 포기해도 좋을 텐데.” 교향곡 9번 ‘신세계에서’까지 아홉 곡이나 되는 교향곡을 작곡한 체코 음악 거장 안토닌 드보르자크(1841~1904)의 말입니다. 어쩌다 기차가 작곡가의 사랑이 되었을까요. 드보르자크가 아홉 살 때, 그가 살던 프라하 교외 마을에 철도가 놓였습니다. 영국에서 처음 지역간 철도 노선이 탄생하고 20년 뒤의 일이었죠. 드보르자크는 증기를 뿜으며 달려가는 이 새로운 문명의 산물에 매혹됐습니다. 열여섯 살 때 프라하의 음악학교에 입학한 뒤엔 매일 아침 터널 위에 올라가서 프라하역으로 들고 나는 열차의 번호와 모습을 수첩에 메모했습니다. 그리고는 역에 가서 기관사나 열차 점검원들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곤 했습니다. 말하자면 ‘1세대 철도 마니아’였던 것입니다. 그의 작품 중 실제로 기차를 묘사했다고 여겨지는 작품도 있습니다. 현악4중주 12번 ‘아메리카’ 마지막 4악장의 빠르고 흥겨운 시작 부분은 기차여행의 흥겨움을 그렸다는 해석이 있습니다. 유명한 신세계에서 4악장의 경우 ‘잔짠 잔짠’하는 단2도 음형이 영화 ‘조스’(1975) 주제음악과 비슷하다는 평이 있지만, 이 부분도 기차를 연상시키는 육중함과 점점 에너지를 쌓아나가는 느낌이 기차 출발과 비슷합니다. 이 두 작품의 경우는 드보르자크가 직접 기차와의 연관성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가 44세 때 쓴 교향곡 1악장의 시작부분에 대해서는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에서 체코인들을 싣고 국경절 축제에 오는 기차가 역에 닿는 순간 이 주제를 떠올렸다”고 말했습니다. 기차의 어떤 점이 대작곡가를 사로잡았을까요. 그는 제자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양한 부품이 수많은 부분을 구성하는데 그 모두가 제각기 중요하잖아. 부품들 모두가 각기 있어야 할 위치에 있지. 작은 레버를 움직이면 큰 지렛대가 움직이기 시작해. 크고 육중한데도 토끼처럼 재빠르게 움직이잖아.” 낭만주의 황금기의 음악가가 기차 같은 첨단의 물품에 매혹되었다는 사실은 당시의 예술을 해석하는 데 새로운 빛을 던져줍니다. 기차가 상징하는 힘과 현대성은 이어 20세기에 불어 닥치는 모더니즘의 가치와 많은 것을 공유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드보르자크가 한 세대 늦게 태어나 새로운 현대적 예술 사조들이 마구 분출했던 1910년대에 활동했다면, 그는 당대 유럽을 이끄는 선구적인 예술가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평생의 사랑이었던 기차는 드보르자크의 수명을 단축시켰습니다. 1904년 4월, 예순 두 살이었던 그는 아직 바람이 찬데도 다른 날처럼 프라하 기차역에 기차를 보러 나갔다가 그만 독감에 걸렸고, 다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드보르자크 이후에도 기차가 가진 힘과 현대성을 표현한 작곡가들이 있었습니다. 프랑스 작곡가 오네거가 1923년에 작곡한 ‘퍼시픽 231’이 그 하나입니다. 오네거는 드보르자크처럼 기차 마니아였고, “나는 여성이나 말보다 기차가 좋다”라는 말도 남겼다고 합니다. 1993년에는 영국 작곡가 마이클 나이먼이 ‘MGV’라는 관현악곡을 발표했죠. 프랑스 고속열차 TGV의 파리-릴 노선 개통을 기념해 만든 음악입니다. 유튜브 채널 ‘유윤종튜브’에서 그가 쓴 기차를 연상시키는 작품들과 오네거, 나이먼의 작품들을 들어보실 수 있습니다. 오늘(8일)은 드보르자크의 179번째 생일입니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태풍 마이삭이 지나가고 높은 하늘이 펼쳐진 4일 오후 서울 상암동 난지천공원. 넓은 잔디밭 한가운데 마치 초현실주의 회화 작품처럼 콘서트 그랜드 피아노가 놓여 있었다. 피아노를 둘러싼 카메라만 다섯 대. 마포문화재단이 제5회 ‘마포 M 클래식 축제’의 일부로 마련한 ‘마포 6경 클래식’ 중 ‘정다운 트리오’의 녹화 현장이었다. 햇살을 온몸으로 맞고 있던 첼리스트 송민제가 피아니스트 박영성에게 말을 건넸다. “선블록 해도 (햇살이) 따가운데.” ‘자 시작합니다. 큐!’ 촬영감독의 신호와 함께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베토벤 ‘사랑을 느끼는 사람들 변주곡’의 감미로운 선율이 공원에 울려 퍼졌다. 드론이 날아올랐다. 공원에 놀러온 아이들이 잠자리채를 든 채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두 연주자의 뒤쪽 잔디 위를 뛰어다녔다. 한 시간 뒤 근처 상암동 하늘공원. 분홍 드레스를 입은 피아니스트 문지영이 억새밭 한가운데에 피아노와 함께 앉았다. 산들바람에 억새들이 춤을 추었다. 풀밭에서는 또록또록 풀벌레들의 소리가 부드럽게 리듬을 탔다. 큐 사인과 함께 슈만 ‘꽃노래(블루멘슈튀크)’의 구르는 듯한 첫마디가 완만하게 펼쳐진 지평선을 감쌌다. 촬영은 두 군데 모두 연주자들을 붉은 노을이 물들이고 어두운 하늘에 달이 둥실 떠오른 한밤까지 계속됐다. 슈만 환상곡 C단조 등 세 곡을 영상으로 담은 문지영은 “연주자들에겐 산이나 숲에서 연습하는 게 로망의 하나인데, 꿈을 이룬 것 같다”며 만족해했다. “새소리와 풀벌레 같은 자연의 즉흥연주와 함께하는 건 상상도 못했어요. 콘서트홀의 자연스러운 음향은 없지만, 더 좋은 추억을 갖게 됐습니다.” 올해 5회째를 맞은 마포 M 클래식 축제는 코로나19 확산이 가져온 사회적 거리 두기에 따라 축제 대부분 일정을 비대면 디지털 콘텐츠로 전환했다. ‘마포 6경 클래식’은 마포구 내 광흥당, 홍대 거리 등에서 촬영한 6개 영상을 10월 6∼8일, 13∼15일 차례로 매일 마포문화재단 유튜브와 네이버TV를 통해 공개한다. 첼리스트 양성원, 앙상블 오푸스 등 6개 팀 또는 연주자가 참여했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온라인 공연은 무대와 관객, 또 관객 서로의 관계성에 대해 고민할 때 활로를 찾을 수 있습니다.”(지혜원 경희대 경영대학원 교수·문화예술경영학)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으로 어려움에 처한 공연계의 현재와 미래를 모색하는 포럼이 열렸다. 경기아트센터(사장 이우종)는 ‘위드(with) 코로나’ 시대 공연예술계 현안과 그 해답을 구하는 ‘코로나19 특별 포럼’을 지난달 27, 28일 개최했다. 대면 형식에서 사회적 거리 두기 2단계 실시에 따라 관객 없이 촬영하는 형태로 변경됐다. 포럼 영상은 이달 중순 경기아트센터 유튜브 채널에서 공개한다. 지혜원 교수는 지난달 28일 ‘디지털 시대, 공연의 확장’ 발제에서 코로나19 확산으로 트렌드가 된 온라인 스트리밍 공연을 ‘라이브캐스트 시네마 시어터(LCT)’와 비교했다. LCT란 영국 국립극장의 ‘NT라이브’,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의 ‘더메트라이브HD’처럼 공연을 실시간으로 영화관에서 상영하는 형식을 말한다. 지 교수는 “공연의 시간성(동시성) 공간성 관계성 가운데 LCT는 다른 공간에서 공연을 관람하지만 시간성이 살아 있고, 배우가 다른 공간의 관객 반응을 느낄 수는 없지만 관객끼리는 교감하는 관계성이 있다”면서 “반면 온라인 스트리밍은 관람객끼리의 상호 반응이 사라지므로 이를 보완하기 위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공연의 고유한 속성이 사라진다면 온라인 스트리밍 공연 콘텐츠가 웹 예능이나 웹 드라마 등과 차별화되지 않는다. 온라인 환경 속에서도 공연의 정체성을 유지, 확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연극의 영상화, 제작과 유통을 고민하다’를 주제로 지 교수와 대담한 김정 경기도극단 상임연출가는 “무대 공연의 느린 속도를 웹드라마 등에 길들여진 온라인 관객이 호응할 수 있을지, 또 영화적 기법을 어떻게 무대에 구현할 수 있을지 등을 숙고하겠다”고 말했다. 이 포럼은 첫날 ‘전염병이 음악사에 미친 영향’(조은아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의료 전문가가 생각하는 안전한 공연장’(임승관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장), ‘위드 코로나 시대, 관객의 공포를 이해하다’(박한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이튿날 ‘극장의 레퍼토리 시즌 운영’(안호상 홍익대 공연예술대학원장, 이용관 부산문화회관 대표), ‘공연예술 무대의 시공간적 확장’(이대형 아트디렉터, 원일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 예술감독), ‘디지털 시대, 공연의 확장’ 순서로 진행됐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서울시립교향악단 단원들의 실내악 음반 ‘콜라주’(사진)가 나왔다. 현악4중주부터 플루트와 하프 듀오, 클라리넷 솔로, 관악 앙상블 등 여덟 가지 편성으로 바흐부터 오늘날 음악까지 담아냈다. 국내 오케스트라가 실내악 음반을 낸 것은 처음이다. 음반은 서울시향 후원회 ‘SPO Patrons’(회장 박진원) 후원으로 제작됐다. 대중적으로 친숙한 차이콥스키 현악4중주 1번 2악장 ‘안단테 칸타빌레’를 웨인 린 부악장 등 현악 주자 네 명이 연주하면서 음반을 시작한다. 플루트 박지은과 하프 박라나는 ‘천상의 어울림’으로 알려진 두 악기의 조합으로 프랑스의 에스프리(드뷔시 ‘아마빛 머리의 소녀’)와 켈트 음악의 고적함(‘대니 보이’)을 풀어낸다. 2014년 ‘SPO Day’ 실내악 경연에서 우승한 비올라 4중주단 ‘발티카 콰르텟’은 2012년 작인 라우리의 민요풍 ‘로만자’를 선보였다. 역시 민속풍 작품으로 플루트와 마림바가 어울리는 호자우루의 두 곡, 클라리넷 임상욱이 솔로 연주하는 코바치 ‘바흐에 대한 헌정’에 이어 호른4중주가 바흐의 코랄(찬송가풍 합창곡) 프렐류드 세 곡을 연주한다. 중저음역 금관이 연주하는 코랄은 중세부터 영성(靈性)을 깊이 끌어내는 연주 형태로 알려졌다. 해학과 감각이 넘치는 아게의 1956년 목관5중주곡 ‘다섯 개의 쉬운 춤’에 이어 목관3중주가 연주하는 베토벤의 ‘그대 손잡고 변주곡’으로 음반을 마친다. 20세기 이후의 곡이 절반 이상이지만 익숙한 조성(調性)을 넘어서지 않으면서 리듬의 생생함을 부각하는 작품들이어서 부담 없이 들을 수 있다. 현과 목관, 금관을 쉴 새 없이 오가며 새로운 음색으로 귀를 씻어주니 카페나 매장에서 ‘생활공간 음악’으로 틀어두기에도 적당하다. 녹음은 2017, 2019년 서울시향 리허설룸에서 이뤄졌다. 소리의 윤곽이 뚜렷하고 실내악에 맞춤한 잔향을 적절히 살려내 귀에 편하게 다가온다. 서울시향은 2005년 재단법인화 이후 본격적으로 실내악 앙상블 활동을 하면서 관현악 콘서트 외 ‘실내악 시리즈’를 마련해왔다. 베를린 필, 네덜란드의 로열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 등 세계 정상급 악단은 앙상블 수준과 단원들 소속감을 높이기 위해 실내악 활동을 장려한다. ‘베를린 필 12 첼리스트’ 등 악단 내 앙상블이 악단 ‘제2, 제3의 얼굴’로 인지도를 높이고 있다. 린 부악장은 “실내악은 다른 환경에서 시도할 수 없는 방식으로 소통하고 느낄 수 있는 기회”라며 “어려운 시기에 희망과 위안이 되는 앨범이 되기 바란다”고 밝혔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1970, 80년대 학교를 다닌 세대는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로 시작하는 국민교육헌장을 암기했다. 그러나 오늘날 대화나 글에 민족을 내세웠다가는 ‘근대 서양에서 만들어진 허구의 개념에 집착한다’는 반박을 받기도 한다. 민족이란 실제 인위적으로 수립된 개념인가. 이 책은 그런 ‘근대주의적’인 민족 관념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말하자면 ‘민족은 있다’. 근대주의적 이론은 민족이란 관념이 19세기 유럽에서 프랑스혁명 및 산업혁명과 더불어, 또는 그보다 약간 일찍 출현했다고 설명한다. 민족 관념은 국가가 대중 동원을 위해 적극적으로 유도한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이에 반해 저자는 민족국가가 전근대 시기에도, 유럽 밖에도 보편적으로 존재했다고 강조한다. 1000년 이상 통일국가를 이루고 산 한반도는 잠시 잊자(저자도 인용하듯 우리의 경우는 보편화하기 힘든, 일종의 극단적 사례다). 세계 어디서나 종족적으로 가까운 집단들에선 통일이 촉진됐고 이는 국가로 성장 확대됐다. 국가는 의식적인 노력으로 통합을 강화했다. 종교와 언어는 근대 이전에도 민족의식의 촉진제였다. 국경을 넘은 거대 종교가 있었지만 그 안에서 각각의 민족이 속한 종교집단은 애국의 대의를 선전하고 옹호했다. 정치적으로 분열됐던 이탈리아는 르네상스기 피렌체어(語)가 표준 문어(文語)로 인정받으면서 문화적 통일을 강화했다. 통일 이탈리아가 성립되기 전에도 국경 밖 사람들은 이 반도에서 온 사람을 ‘이탈리아인’으로 불렀다. ‘종족적 민족’, 혈통을 기반으로 한 민족과 ‘시민적 민족’, 국가 정치적으로 조직된 민족이 꼭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점도 ‘민족은 없다’는 증거가 될 수는 없다. 역사적으로 혈통을 공유하지 않았던 국가도 문화적 통합과 통혼(通婚)에 의해 새로 친족 감정을 만들어 나갔다. 그렇다면 왜 ‘국가는 만들어진 관념’이라는 시각이 출현했을까. 저자는 세 가지 이유를 꼽는다. 첫째, 유럽 근대의 경험이 과장돼 보편적인 것으로 해석됐다. 옛 유럽의 국가들은 중세 봉건주의를 통해 영주들의 자립이 확대되면서 와해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근대에 진입하면서 독일과 이탈리아의 통일을 포함해 새로운 민족국가의 성립을 보게 되었고, 이런 역사가 ‘민족은 근대의 산물’이라는 왜곡된 시각을 낳았다. 둘째, 20세기에 널리 선전된 마르크스주의와 자유주의에는 민족주의와 관련된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다. 역사를 움직이는 동인으로 계급과 자유만 강조한 결과 민족이 보이지 않았다. 셋째, 20세기 중반 나치즘의 만행과 인종차별의 해악이 강조된 결과 지식계는 너무 급격히 그 반대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국가와 민족을 악의 근원으로 보면서 민족이 가진 실질적인 의미까지 지워버리려 한 것이다. 저자는 20세기 이전의 다민족국가였던 오스트리아 제국, 여러 민족이 결속한 스위스, 두 민족으로 이뤄진 벨기에, 하나의 종교적 언어적 단일체가 여러 국가로 분기된 남미 등 여러 사례를 정밀하게 분석해 설득력을 높인다. 유럽이라는 지역적 특수성에서 비롯된 철 지난 생각을 빌려 ‘민족은 허구’라고 목소리를 높여온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물론 오늘날 민족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차별과 범죄들을 용인하는 게 맞는지, 인류와 개인이 추구할 가치 중 얼마를 민족에 바쳐야 하는지와는 전혀 별개의 문제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베토벤의 교향곡 6번 ‘전원’ 2악장의 끝부분에는 새들의 소리가 묘사됩니다. 클라리넷의 뻐꾸기 소리는 누가 들어도 알아차릴 수 있죠. 플루트는 나이팅게일, 오보에는 메추리 소리를 노래합니다. 사람들은 옛날부터 새소리를 사랑했고, 음악 속에 녹여 넣었습니다. 우리 국악에도 남도 잡가 ‘새타령’을 비롯해 새소리가 많이 인용됩니다. 1784년 봄, 모차르트는 신혼 3년 차 신랑이었습니다. 이해에 큰아들이 태어났습니다. 5월에 모차르트는 용돈 장부에 악보 한 줄을 그리고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찌르레기, 34크로이처(동전 이름), 예쁘다.’ 집에 새를 사 갔던 겁니다. 모차르트는 오페라 ‘마술피리’에서 피리로 새소리를 흉내 내 새를 잡는 새잡이 파파게노를 등장시키기도 했죠. 그가 용돈 장부에 적었던 악보는 피아노협주곡 17번 3악장의 주선율이 되었습니다. 3년 뒤 모차르트는 친구들을 초대해서 이 찌르레기의 장례식을 성대히 치렀다는 일화가 전해집니다. 하이든의 현악4중주 53번 ‘종달새’는 제1바이올린으로 나오는 선율에 붙은 장식음이 어린 종달새가 지저귀는 소리를 연상하게 하죠. 종달새 하면 영국 작곡가 본 윌리엄스의 ‘종달새의 비상’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부연 봄의 정경 위로 어린 종달새가 지저귀며 날아오르는 모습을 묘사했습니다. 이 곡은 특히 우리한테 더 친근합니다. 피겨스케이팅 김연아 선수가 주니어에서 시니어 무대에 출전하게 된 첫 시즌인 2006년 프리스케이팅 주제곡으로 이 ‘종달새의 비상’을 택했습니다. 당시 열여섯 살이었죠. 나이 어린 선수가 어른들의 넓은 세상을 향해 날아오르는 이미지로 세계 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종달새도 멋진 노래를 부르지만 ‘새들의 성악계’에서 톱스타들은 아무래도 ‘전원 교향곡’에 나온 나이팅게일과 뻐꾸기죠. 이탈리아의 근대 작곡가 레스피기는 아예 나이팅게일 소리를 녹음해서 자기 작품 속에 들려주도록 했습니다. 구스타프 말러는 교향곡 1번 첫 악장에 여러 새소리를 담아냈습니다. 클라리넷이 표현하는 뻐꾸기 소리는 특히 알아듣기 쉽습니다. 그런데 여러 작곡가들이 묘사한 뻐꾸기 소리가 조금씩 음정이 다릅니다. 요한 슈트라우스의 폴카 ‘크라펜 숲에서’에선 ‘솔-미’, 단3도고, 베토벤의 전원 교향곡은 ‘미-도’, 장3도입니다. 남도잡가 ‘새타령’은 슈트라우스처럼 단3도죠. 말러 교향곡 1번은 주로 ‘도-솔’ 완전4도입니다. 뭐가 맞을까요. 유튜브 채널 ‘유윤종튜브’에서 뻐꾸기가 노래하는 영상을 들어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종달새 등 다른 새들을 묘사한 음악들과 실제 새의 노래도 비교해 보실 수 있습니다. 이번 주에 공연장에서 여러 새소리를 들을 예정이었습니다. 26일은 롯데콘서트홀이 주최한 ‘클래식 레볼루션’ 축제에서 제임스 저드 지휘 대전시립교향악단이 베토벤 교향곡 6번 ‘전원’을, 27일엔 서울시립교향악단이 오스모 벤스케 음악감독 지휘와 바이올리니스트 에스더 유 협연으로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연주하는 본윌리엄스 ‘종달새의 비상’을 들으려 했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이 이 기대들을 빼앗아 갔습니다. 새로운 전염병의 잦은 발생이나 최근 동아시아를 휩쓴 홍수 모두 자연과 인간의 관계가 파괴된 때문이라는 진단이 나옵니다. 인류가 자연과 화해해 위기를 극복하고 주변에서 멀어져가는 새소리를 되찾길 바랍니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베토벤의 교향곡 6번 ‘전원’ 2악장의 끝부분에는 새들의 소리가 묘사됩니다. 클라리넷의 뻐꾸기 소리는 누가 들어도 알아차릴 수 있죠. 플루트는 나이팅게일, 오보에는 메추리 소리를 노래합니다. 사람들은 옛날부터 새소리를 사랑했고, 음악 속에 녹여 넣었습니다. 우리 국악에도 남도 잡가 ‘새타령’을 비롯해 새소리가 많이 인용됩니다. 1784년 봄, 모차르트는 신혼 3년차 신랑이었습니다. 이 해에 큰아들이 태어났습니다. 5월에 모차르트는 용돈 장부에 악보 한 줄을 그리고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찌르레기, 34크로이처(동전 이름), 예쁘다.’ 집에 새를 사갔던 겁니다. 모차르트는 오페라 ‘마술피리’에서 피리로 새소리를 흉내 내 새를 잡는 새잡이 파파게노를 등장시키기도 했죠. 그가 용돈 장부에 적었던 악보는 피아노협주곡 17번 3악장의 주선율이 되었습니다. 3년 뒤 모차르트는 친구들을 초대해서 이 찌르레기의 장례식을 성대히 치렀다는 일화가 전해집니다. 하이든의 현악4중주 53번 ‘종달새’는 제1바이올린으로 나오는 선율에 붙은 장식음이 어린 종달새가 지저귀는 소리를 연상하게 하죠. 종달새 하면 영국 작곡가 본 윌리엄스의 ‘종달새의 비상’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부연 봄의 정경 위로 어린 종달새가 지저귀며 날아오르는 모습을 묘사했습니다. 이 곡은 특히 우리한테 더 친근합니다. 피겨스케이팅 김연아 선수가 주니어에서 시니어 무대에 출전하게 된 첫 시즌인 2006년 프리스케이팅 주제곡으로 이 ‘종달새의 비상’을 택했습니다. 당시 열여섯 살이었죠. 나이 어린 선수가 어른들의 넓은 세상을 향해 날아오르는 이미지로 세계 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종달새도 멋진 노래를 부르지만 ‘새들의 성악계’에서 톱스타들은 아무래도 ‘전원 교향곡’에 나온 나이팅게일과 뻐꾸기죠. 이탈리아의 근대 작곡가 레스피기는 아예 나이팅게일 소리를 녹음해서 자기 작품 속에 들려주도록 했습니다. 구스타프 말러는 교향곡 1번 첫 악장에 여러 새소리를 담아냈습니다. 클라리넷이 표현하는 뻐꾸기 소리는 특히 알아듣기 쉽습니다. 그런데 여러 작곡가들이 묘사한 뻐꾸기 소리가 조금씩 음정이 다릅니다. 요한 슈트라우스의 폴카 ‘크라펜 숲에서’에선 ‘솔-미’, 단3도고, 베토벤의 전원 교향곡은 ‘미-도’, 장3도입니다. 남도잡가 ‘새타령’은 슈트라우스처럼 단3도죠. 말러 교향곡 1번은 주로 ‘도-솔’ 완전4도입니다. 뭐가 맞을까요. 유튜브 채널 ‘유윤종튜브’에서 뻐꾸기가 노래하는 영상을 들어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종달새 등 다른 새들을 묘사한 음악들과 실제 새의 노래도 비교해보실 수 있습니다. 이번 주에 공연장에서 여러 새소리를 들을 예정이었습니다. 26일은 롯데콘서트홀이 주최한 ‘클래식 레볼루션’ 축제에서 제임스 저드 지휘 대전시립교향악단이 베토벤 교향곡 6번 ‘전원’을, 27일은 서울시립교향악단이 오스모 벤스케 음악감독 지휘와 바이올리니스트 에스더 유 협연으로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연주하는 본윌리엄스 ‘종달새의 비상’을 들으려 했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이 이 기대들을 빼앗아갔습니다. 새로운 전염병의 잦은 발생이나 최근 동아시아를 휩쓴 홍수 모두 자연과 인간의 관계가 파괴된 때문이라는 진단이 나옵니다. 인류가 자연과 화해해 위기를 극복하고 주변에서 멀어져가는 새소리를 되찾을 수 있기 바랍니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gustav@donga.com}

“가사의 내용을 알고 들으면 피아노 반주가 들려주는 세세한 표정까지 새롭게 들립니다. 독일 가곡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기쁘겠네요.” 77세의 음악애호가가 800곡 넘는 슈베르트의 성악곡을 번역해 국배판 768쪽 분량의 방대한 책으로 내놓았다. 전직 지리 교사 김설지 씨가 옮기고 엮은 ‘슈베르트 가곡전집’(동서문화사). 가곡뿐 아니라 중창곡, 합창곡, 오페라 아리아, 교회음악 등 가사가 붙은 슈베르트의 음악은 거의 모두 번역해 실었다. “고등학교에 갓 입학했을 때 대학생인 오빠가 게르하르트 휘슈가 노래한 슈베르트 가곡집 ‘아름다운 물레방앗간 아가씨’ 전집 축음기 음반을 사오셨죠. 언니와 함께 날마다 들으며 슈베르트와 사랑에 빠지게 됐습니다.” 교사가 되고 결혼해 자녀를 키우면서 음악 사랑에 한층 불이 붙었다. 온 가족이 거실에서 당시 첨단 영상매체였던 LD(레이저디스크)를 틀어놓고 오페라를 감상하곤 했다. “카를로스 클라이버가 지휘한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오페레타 ‘박쥐’를 듣는데, 영어 자막을 읽으려니 자꾸 뜻을 놓치게 되더군요. ‘번역해 보자’고 마음먹었습니다.” 고등학교 때 배운 독일어를 소환해 시작한 작업에 자신이 붙었다. 한 편 두 편 번역한 오페라 대본을 인터넷 음악애호가 클럽에 올렸더니 찬사가 빗발쳤다. 내친김에 ‘첫사랑’ 슈베르트의 가곡을 번역하기 시작한 게 엄청난 작업이 됐다. 이 두꺼운 책에 대충대충은 없다. 가곡집 ‘아름다운 물레방앗간 아가씨’만 예로 들어도 슈베르트가 곡을 붙이지 않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까지 빠짐없이 번역했고, 주인공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인 ‘초급 도제(Geselle)’의 의미 등 상세한 주석을 붙였다. 주인공, 서술자, 시냇물 등 화자(話者)에 따라 적절한 어미를 선택해 물 흐르듯이 읽힌다. ‘겨울 나그네’ 중 ‘얼어붙은 시냇물 위에서’에선 흔히 ‘깨진 반지’로 번역되는 ‘zerbrochner Ring’을 ‘군데군데 끊어 빙 둘러놓은 돌’로 제대로 의미를 파악할 수 있게 번역했다. 김 씨는 은퇴한 뒤 강원 화천군에서 전원생활을 만끽하고 있다. 애호박과 토마토를 돌보면서도 늘 휴대용 라디오로 음악을 듣는다. 그래도 만족은 멀었다. “새로 입수한 해외 슈베르트 전집을 보니 제가 번역한 ‘알프스의 사냥꾼’ 노래에 두 연(聯)이 빠져 있더군요. 빠진 부분을 집어넣고, 슈베르트가 라틴어 가사로 쓴 곡들도 번역해 증보판을 낼 생각입니다. 그 다음? 슈만 가곡들을 번역 중이고, 브람스, 베토벤…. 눈도 어두워지고 체력도 달리는데, 마음이 급합니다(웃음).”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이 책은 워너브러더스가 판권을 사들여 영화화를 추진 중이다. ‘일과 사랑’ 정도의 제목도 가능할 것이다. 20대 여성이 40대 후반의 엄마가 되는 동안 직업과 사랑에 온몸을 불태운, 흔한 관용구를 빌면 ‘불꽃같은 삶’을 한 권에 담았다. 그 직업이 예사롭지 않다. 저자 아다리오는 사진기자다. 종군(從軍)이 특기다.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이라크 침공, 리비아 혁명 등 21세기 가장 피비린내 나는 현장들에 있었다. 두 번 납치됐다가 석방됐고, 취재 중 심각한 차량 사고로 만신창이도 되어봤다. 자신이 고용한 현지 운전기사 두 명과 동료 기자들의 죽음도 목격했다. 생후 18개월 때 주저 없이 수영장에 뛰어들어 가족을 놀라게 했다는 그는 ‘아드레날린 의존증’일까. 같은 일을 하는 여러 기자들이 그렇다고 그는 말한다. “삶을 파국으로 몰아넣고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준다. 이 직업은 사람을 망가뜨리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주저 않고 거듭 사선(射線)으로 달려갔다. 사진 저널리스트 살가두의 전시회에 가서 ‘보도사진과 다큐멘터리 사진에 일생을 바치겠다’고 결심한 이 초짜 사진가는 2000년 5월 처음 탈레반 치하의 아프가니스탄을 카메라에 담았다. ‘뉴욕 타임스에 사진을 싣겠다’는 것이 목표였다. 탈레반의 통치가 특히 여성을 옥죄고 있었지만 그 나름 평화로운 시절이었다. 다음 해 테러리스트가 모는 여객기가 뉴욕 세계무역센터에 충돌하는 장면을 TV로 본 그는 미군의 침공이 시작된 아프가니스탄으로 다시 들어간다. 그 뒤 이라크를 침공한 미군을 따라간 길에서 차량 폭발 공격을 받고 일행이던 TV 카메라맨의 죽음을 목격한다. ‘전쟁 세계’로 가는 베이스캠프이자 안온한 세계였던 이스탄불도 거처 바로 앞이 테러의 불길에 휩싸이면서 일상과 일의 경계가 무너져버린다. 과장이나 허식이 느껴지지 않는 문장 속에서도 두 가지가 시종 탄성을 자아내게 만든다. 하나는 저자의 대담함이다. 바그다드 외곽에서 첫 피랍을 당했을 때, 그는 반군이 미군을 로켓탄으로 공격하는 걸 보고 납치범들에게 ‘사진을 찍게 해달라’고 간청한다. 다음 날 목숨이 붙어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탄성을 부르는 다른 한 가지는 저자의 ‘연애운(運) 없음’이다. 그의 부재를 틈타 바람기를 그치지 않던 남자, 약혼자와 그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던 우유부단한 남자…. 연애담은 책 분량의 10%가 될까 말까이지만 독자의 눈길을 붙드는 또 하나의 효과적인 유인 도구다. 그는 결국 자신의 일을 이해하는 일생의 짝을 만난다. 비록 남자가 ‘너무’ (실제로) 귀족이었고, 결혼식을 7주도 남기지 않았을 때 저자가 파키스탄에서 차량사고로 심각한 부상을 입고, 결혼 직후엔 리비아에서 동료들과 납치돼 매를 맞고 추행까지 당한 뒤에 간신히 풀려나기는 했지만, 저자는 ‘애정전선’에서도 결국 성공했다. 퓰리처상을 수상하고, 맥아더재단 펠로십에도 선정되며 인정받는 종군기자의 꿈을 달성했지만 그는 지금도 언제든 장비를 챙겨들고 뛰어나갈 준비가 되어 있다. “나는 서로 다른 두 현실 속에서 사는 방법을 배웠다. 아이들이 뛰노는 런던의 공원과 전쟁의 현장을 오가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이것이 내가 선택한 길이다. 나는 평화 속에서 사는 동시에 전쟁을 목격하고, 인간의 악랄한 측면을 경험하면서도 아름다움을 기억하는 쪽을 선택했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음악은 ‘오락’을 뛰어넘는 중요한 가치와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해주죠. 어려운 상황이 많지만 열심히 기획했고, 남은 프로그램을 최선을 다해 전하려 합니다.” 롯데콘서트홀이 올해 처음 여는 여름 클래식 축제 ‘클래식 레볼루션’의 음악감독을 맡은 바이올리니스트 겸 지휘자 크리스토프 포펜(독일 뮌헨 국립음대 교수)의 표정은 의외로 시종일관 밝았다. 14일간의 자가 격리 기간을 감수하고 어렵게 한국에 들어왔지만 그가 공들여 ‘올 베토벤’ 프로그램을 짠 클래식 레볼루션은 17일 개막 직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의 직격탄을 맞았다. 대부분 지방자치단체 소속 교향악단이 출연하는 관현악, 교향악 공연들은 취소됐다. 20일 만난 그는 특히 자신이 KBS교향악단을 지휘할 예정이던 19일 베토벤 교향곡 3번 ‘영웅’ 콘서트가 취소돼 아쉽다고 했다. “영웅 교향곡은 빛이 어둠보다 강하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곡이어서, 들려드릴 수 있었다면 이 상황에서 특히 의미가 깊었을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오늘 아침엔 우울한 기분이었지만 아침 햇살을 바라보며 ‘이 상황 또한 흥미롭지 않은가’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행히 관현악 공연 중 두 개는 취소되지 않았고, 제가 서울튜티챔버오케스트라를 지휘할 30일 공연이 떠올랐습니다. 이날 연주될 베토벤 교향곡 8번은 스케르초 악장에 베토벤 특유의 ‘철학적 조크’가 들어있죠. 이 점을 생각하면서 다시 유쾌해졌어요.” 관현악 공연이 대거 불발되면서 23일 열리는 ‘체임버 뮤직 데이’(실내악의 날)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아졌다. 오전 11시, 오후 3시, 저녁 7시 등 이날 세 공연이 펼쳐진다. “첫 콘서트에서는 자부심 있고 야망에 넘치는 초기의 베토벤을 만날 수 있죠. 두 번째 콘서트는 난청을 겪어 우울증에 빠지고 자살까지 생각하지만 노력으로 극복하는 중기의 베토벤을 보여줍니다. 세 번째 콘서트는 제목이 ‘베토벤, 그는 철학자’입니다. 개인적 우울과 아픔을 극복한 후기의 베토벤입니다. 이 시기 그의 음악에는 세상의 비극과 관계없는 우주적 관점, 본질적 아름다움이 드러나죠.” 그는 미국 과학자 존 다이어먼드의 연구를 인용해 “환자들의 근육 테스트를 통해 음악이 주는 영향력을 연구했더니 베토벤의 음악이 가장 높은 영향력을 나타냈고, 특히 후기 실내악작품이 가장 높았다”고 소개했다. 포펜은 지휘자로서 2006¤2011년 도이체 라디오 필하모니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을 지냈고 청년기에 오스카 셤스키, 나탄 밀슈타인 같은 명장에게 바이올린을 배웠으며, 1978년 케루비니 현악4중주단을 창단했다. 독주 실내악 오케스트라를 두루 경험해 클래식 레볼루션 같은 종합적 클래식 축제의 프로그래밍에는 최적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이미 내년도 클래식 레볼루션 프로그램을 설계하고 있다. 내년 축제는 두 가지 주제로 펼쳐진다. 우선 탱고음악의 거장 아스토르 피아졸라 100주기를 맞아 피아졸라와 그에게 영향 준 바흐, 모차르트, 이탈리아 바로크 작곡가들의 음악을 소개한다. 두 번째 주제는 ‘브람스’다. 브람스의 음악은 베토벤의 영향을 받은 논리성을 보여주기에 내년에 집중 조명하기로 했다. 그의 교향곡과 실내악 작품들을 소개할 예정이다. “독일 제 방에는 바로 브람스가 사용하던 테이블이 있어요! 브람스가 딸처럼 아끼던 여성과 우리 부모님이 친하셨던 덕에 제 손에 들어온 거죠. 브람스의 테이블에서 받은 그의 정신을 한국 청중에게 잘 전할 수 있기 바랍니다.”(웃음) 이번 페스티벌 기간에는 ‘바이올리니스트 포펜’도 만날 수 있다. 25일 ‘포펜 & 김태형’ 공연에서 피아니스트 김태형과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1, 5, 7번을 협연한다. 그는 1980년대 초반 대(大)피아니스트 빌헬름 켐프와의 인연을 회상했다. “켐프 선생님은 무대에서 은퇴한 뒤였는데, 저를 초대해 매일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한 곡씩을 함께 연주하셨죠. 그 집의 피아노는 소리가 매우 좋지 않았지만, 소나타 1번 안단테를 연주하실 때 선생님은 정말 놀랍도록 아름답게 선율을 연주하셨습니다. 제 삶을 바꿀 정도의 감동이었죠.” 그는 한국 바이올리니스트를 여럿 가르쳐왔다. 한국 음악도가 최근 전 세계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이유에 대해 그는 “한국인은 노래를 좋아하고 그 노래들은 이탈리아 오페라 아리아처럼 들린다. 그런 ‘노래적 성격’ 때문은 아닐까”라고 말했다. 한국 음악도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라며 “한국 학생들이 ‘왜 음악가가 되고 싶은지’를 스스로 모를 때가 많다. ‘음악으로 성공하고 싶다’만으로는 부족하다. 내면적으로 강해져야 한다. 미술 감상, 책 읽기, 작곡가 연구 등을 통해 풍성한 내면을 기르기를 권한다”고 밝혔다. 그는 30일 서울튜티챔버오케스트라 콘서트 지휘로 페스티벌 전 일정을 마친 뒤 31일 독일로 돌아간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음악은 ‘오락’을 뛰어넘는 중요한 가치와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해주죠. 어려운 상황이 많지만 열심히 기획했고, 남은 프로그램을 최선을 다해 전하려 합니다.” 롯데콘서트홀이 올해 처음 여는 여름 클래식 축제 ‘클래식 레볼루션’의 음악감독을 맡은 바이올리니스트 겸 지휘자 크리스토프 포펜(독일 뮌헨 국립음대 교수)의 표정은 의외로 시종일관 밝았다. 14일간의 자가 격리 기간을 감수하고 어렵게 한국에 들어왔지만 그가 공들여 ‘올 베토벤’ 프로그램을 짠 클래식 레볼루션은 17일 개막 직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의 직격탄을 맞았다. 대부분 지방자치단체 소속 교향악단이 출연하는 관현악, 교향악 공연들은 취소됐다. 20일 만난 그는 특히 자신이 KBS교향악단을 지휘할 예정이던 19일 베토벤 교향곡 3번 ‘영웅’ 콘서트가 취소돼 아쉽다고 했다. “영웅 교향곡은 빛이 어둠보다 강하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곡이어서, 들려드릴 수 있었다면 이 상황에서 특히 의미가 깊었을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오늘 아침엔 우울한 기분이었지만 아침 햇살을 바라보며 ‘이 상황 또한 흥미롭지 않은가’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행히 관현악 공연 중 두 개는 취소되지 않았고, 제가 서울튜티챔버오케스트라를 지휘할 30일 공연이 떠올랐습니다. 이날 연주될 베토벤 교향곡 8번은 스케르초 악장에 베토벤 특유의 ‘철학적 조크’가 들어있죠. 이 점을 생각하면서 다시 유쾌해졌어요.” 관현악 공연이 대거 불발되면서 23일 열리는 ‘체임버 뮤직 데이’(실내악의 날)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아졌다. 오전 11시, 오후 3시, 저녁 7시 등 이날 세 공연이 펼쳐진다. “첫 콘서트에서는 자부심 있고 야망에 넘치는 초기의 베토벤을 만날 수 있죠. 두 번째 콘서트는 난청을 겪어 우울증에 빠지고 자살까지 생각하지만 노력으로 극복하는 중기의 베토벤을 보여줍니다. 세 번째 콘서트는 제목이 ‘베토벤, 그는 철학자’입니다. 개인적 우울과 아픔을 극복한 후기의 베토벤입니다. 이 시기 그의 음악에는 세상의 비극과 관계없는 우주적 관점, 본질적 아름다움이 드러나죠.” 그는 미국 과학자 존 다이어먼드의 연구를 인용해 “환자들의 근육 테스트를 통해 음악이 주는 영향력을 연구했더니 베토벤의 음악이 가장 높은 영향력을 나타냈고, 특히 후기 실내악작품이 가장 높았다”고 소개했다. 포펜은 지휘자로서 2006~2011년 도이체 라디오 필하모니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을 지냈고 청년기에 오스카 셤스키, 나탄 밀슈타인 같은 명장에게 바이올린을 배웠으며, 1978년 케루비니 현악4중주단을 창단했다. 독주 실내악 오케스트라를 두루 경험해 클래식 레볼루션 같은 종합적 클래식 축제의 프로그래밍에는 최적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이미 내년도 클래식 레볼루션 프로그램을 설계하고 있다. 내년 축제는 두 가지 주제로 펼쳐진다. 우선 탱고음악의 거장 아스토르 피아졸라 100주기를 맞아 피아졸라와 그에게 영향 준 바흐, 모차르트, 이탈리아 바로크 작곡가들의 음악을 소개한다. 두 번째 주제는 ‘브람스’다. 브람스의 음악은 베토벤의 영향을 받은 논리성을 보여주기에 내년에 집중 조명하기로 했다. 그의 교향곡과 실내악 작품들을 소개할 예정이다. “독일 제 방에는 바로 브람스가 사용하던 테이블이 있어요! 브람스가 딸처럼 아끼던 여성과 우리 부모님이 친하셨던 덕에 제 손에 들어온 거죠. 브람스의 테이블에서 받은 그의 정신을 한국 청중에게 잘 전할 수 있기 바랍니다.”(웃음) 이번 페스티벌 기간에는 ‘바이올리니스트 포펜’도 만날 수 있다. 25일 ‘포펜 & 김태형’ 공연에서 피아니스트 김태형과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1, 5, 7번을 협연한다. 그는 1980년대 초반 대(大)피아니스트 빌헬름 켐프와의 인연을 회상했다. “켐프 선생님은 무대에서 은퇴한 뒤였는데, 저를 초대해 매일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한 곡씩을 함께 연주하셨죠. 그 집의 피아노는 소리가 매우 좋지 않았지만, 소나타 1번 안단테를 연주하실 때 선생님은 정말 놀랍도록 아름답게 선율을 연주하셨습니다. 제 삶을 바꿀 정도의 감동이었죠.” 그는 한국 바이올리니스트를 여럿 가르쳐왔다. 한국 음악도가 최근 전 세계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이유에 대해 그는 “한국인은 노래를 좋아하고 그 노래들은 이탈리아 오페라 아리아처럼 들린다. 그런 ‘노래적 성격’ 때문은 아닐까”라고 말했다. 한국 음악도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라며 “한국 학생들이 ‘왜 음악가가 되고 싶은지’를 스스로 모를 때가 많다. ‘음악으로 성공하고 싶다’만으로는 부족하다. 내면적으로 강해져야 한다. 미술 감상, 책 읽기, 작곡가 연구 등을 통해 풍성한 내면을 기르기를 권한다”고 밝혔다. 그는 30일 서울튜티챔버오케스트라 콘서트 지휘로 페스티벌 전 일정을 마친 뒤 31일 독일로 돌아간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