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재

이호재 기자

동아일보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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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틈틈이 소설을 쓰며 스토리텔링에 천착한다. 숨소리까지 살아 숨쉬는 생생한 내러티브 기사가 넷플릭스 영상보다 가치 있는 컨텐츠라 믿는다.

hoho@donga.com

취재분야

2025-11-17~2025-12-17
문화 일반51%
인사일반20%
문학/출판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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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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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3%
기타3%
  • “을지로 숲으로 가보라”… 추리소설 도전한 문학상 작가

    한 인터넷방송에서 일하는 채유형 PD는 방송에서 다룰 자극적 소재를 찾다 청소년 살인사건을 마주한다. 18세 소년이 흉기를 휘둘러 남녀를 죽인 혐의를 받는 끔찍한 사건이었다. 소년은 처음엔 남성과 연애하던 여성을 사랑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혐의를 부인하기 시작한다. 사건을 좇던 채유형은 비행 청소년들을 만나 “‘을지로의 숲’으로 가보라”는 말을 듣는데…. 동료의 비리를 캐다 조직에서 소외된 형사 진경언이 채유형과 합류한다. 이들은 진실을 찾을 수 있을는지. 도대체 ‘을지로의 숲’은 어떤 곳일까. 최근 출간된 ‘사라진 숲의 아이들’(안온북스·사진)은 손보미 작가(42)가 처음 쓴 추리소설이다. 올해 단편소설 ‘불장난’으로 이상문학상을 받은 그가 장르문학에 발을 들인 것이다.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8일 만난 손 작가는 “단편소설에 추리적 색채를 담은 적은 있지만 본격적인 장편소설로 다룬 건 처음이다. 추리소설 작가 흉내를 내긴 했는데 성공했는지는 모르겠다”며 웃었다. “대학생 때부터 첩보소설의 제왕인 영국 작가 존 러카레이(1931∼2020)나 미국 추리작가협회장을 지낸 로스 맥도널드(1915∼1983) 등 해외 추리소설 작가의 작품을 탐독했어요. 제겐 이런 소설을 쓰는 게 낯설지 않은데, 오히려 주위에서 ‘깜짝 놀랐다’ ‘어떻게 쓴 거야’ 같은 반응이 많더라고요. 이전 소설들과 그렇게 결이 많이 다른가요?” 그가 이 소설을 구상한 건 서울 중구에 있는 한 오래된 건물을 보고 나서였다. 그 건물엔 아무도 살지 않았고, 영업하는 가게도 없었다. 도심 한가운데에서 거대한 건물이 죽은 채 버려져 있단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이 건물에선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상상하다 갈 곳 없는 청소년들을 떠올렸어요. 땅값 비싼 곳이 슬럼화되면 비행 청소년들이 모여 불법적인 일에 손을 대지 않을까 싶었죠.” 손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 장르적 긴장감은 유지하되 사회적 의미도 담으려 애썼다. 베트남전쟁에 참전했던 군인이나 파월 기술자들의 상처를 다뤄 깊이를 더하고자 했다. 문학의 본질에 대한 고민은 장르소설이란 틀에서도 변하지 않은 셈이다. “베트남전쟁을 경험한 이들의 구술이 담긴 역사서 ‘베트남전쟁의 한국 사회사’(푸른역사)를 읽고 오랫동안 빠져 있었어요. 전쟁은 단순히 이분법적으로 선악을 나눌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섞이는 복잡한 진실을 풀어보고 싶었어요.” 그의 추리소설 도전은 단발성으로 끝나지 않을 것 같다. 벌써부터 이번 작품의 주인공이 등장하는 또 다른 소설을 마음에 두고 있다. “형사 진경언을 내세운 또 다른 작품도 구상하고 있어요. 법정소설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도 갖고 있습니다. 재밌게 쓸 수 있다면 어떤 이야기, 어떤 장르든 얽매이고 싶지 않아요.”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2-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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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을지로 숲으로 가보라”…손보미, 추리 소설 첫 도전 이유는

    한 인터넷방송에서 일하는 채유형 PD는 방송에서 다룰만한 자극적인 소재를 찾다 청소년 범죄 사건을 발견한다. 18세 소년이 남녀를 각각 스무 번씩 칼로 찔러 죽인 혐의를 받는 사건이었다. 소년은 처음엔 남성과 연애하던 여성을 사랑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실토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혐의를 부인하기 시작한다. 사건을 쫓던 채유형은 비행청소년들을 만나 “을지로의 숲으로 가보라”는 말을 듣는다. 동료의 비리를 캐다 조직에서 소외된 형사 진경언도 채유형을 돕는다. ‘을지로의 숲’은 대체 어떤 곳이며, 소년은 정말 잔혹한 범죄를 저지른 것일까. 최근 출간된 ‘사라진 숲의 아이들’(안온북스)은 손보미 작가(42)가 처음으로 쓴 추리소설이다. 8일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만난 손 작가는 “단편소설에서 추리적 색채를 담은 적은 있지만 본격적으로 장편 추리소설을 쓴 건 처음”이라며 “추리소설 작가 흉내를 냈는데 성공했는지 모르겠다”고 웃었다. 단편소설 ‘불장난’으로 2022년 이상문학상 대상, 장편소설 ‘디어 랄프 로렌’(문학동네)으로 대산문학상(2017년) 등을 휩쓴 그가 장르문학에 첫발을 들인 셈이다. “대학생 때부터 첩보 소설의 제왕인 영국 작가 존 르 카레(1931~2020)나 미국 추리작가협회장을 지낸 로스 맥도널드(1915~1983) 등 해외 추리소설 작가의 소설을 탐독했어요. 제겐 이런 소설을 쓰는 게 낯설지 않은데, 오히려 주위에서 ‘깜짝 놀랐다’ ‘도대체 어떤 작품을 쓴 거야’ 같은 반응이 많더라고요. 정말 이전에 썼던 다른 소설과 결이 그렇게 다른가요?” 그가 처음 소설을 구상한 건 서울 중구 소공동에 있는 한 오래된 건물을 보고 나서였다. 그 건물엔 아무도 살지 않았고, 영업하는 가게가 하나도 없었다. 도심 한가운데에서 거대한 건물이 죽어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버려진 건물에선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상상하다 갈 곳 없는 청소년들을 떠올렸어요. 땅값 비싼 곳이 슬럼화 되면 비행 청소년들이 모여서 담배를 피우고 불법적인 일에 손을 대지 않을까 싶었죠.” 주목할만한 건 장르문학의 색채에 역사적 고민을 덧붙였다는 점이다. 손 작가는 소설 후반부 베트남전쟁 참전군인, 경제협력 차원에서 베트남에서 일했던 한국 파월 기술자들의 상처를 다뤄 소설에 깊이를 더했다. 그가 단순히 장르문학 ‘흉내’만 내느라 문학의 본질을 버리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베트남전쟁에 참가한 이들의 구술이 담긴 역사서 ‘베트남 전쟁의 한국 사회사’(푸른역사)를 읽고 오랫동안 빠졌어요. 전쟁의 피해자처럼 여겨졌던 한국이 참전국이었고, 전쟁은 가해자와 피해자를 뒤섞는다는 복잡한 진실을 ‘이야기’로 풀고 싶었죠.” 손 작가에게 이번 추리소설이 1회성으로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작품의 주인공을 주인공으로 또 다른 소설을 마음에 두고 있다.“소설 주인공 가운데 하나인 형사 진경언을 내세운 다른 작품도 구상하고 있어요. 법정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재밌게 쓸 수 있으면 어떤 이야기든 쓰고 싶어요.”이호재기자 hoho@donga.com이호재기자 hoho@donga.com}

    • 2022-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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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친코’ 이민진 “글쓰기는 저항과 혁명의 행동”

    “한국 독자들에게서 ‘엄마와 아빠를 이해하게 됐다’, ‘한국인이라는 게 자랑스럽다’는 말을 듣고 보람을 느꼈습니다. 한국 젊은이들이 북클럽을 만들어 할머니와 삼촌, 이모와 대화를 많이 하게 된 것도 참 다행입니다.” 드라마 ‘파친코’의 동명 원작 장편소설을 쓴 이민진 작가(54·사진)는 8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파친코’ 한국어판 출판사가 문학사상에서 인플루엔셜로 바뀌면서 번역도 새로 했다. 1권은 지난달 27일 나왔고, 2권은 25일 출간된다. 개정판에는 그의 사인과 ‘우리는 강한 가족입니다(We are a Powerful family)’라는 문구가 담겼다. 그는 한국인에게 교육이 어떤 의미인지를 다룬 장편소설 ‘아메리칸 학원(American Hagwon)’을 쓰고 있다.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 ‘파친코’에 이은 ‘이산문학(디아스포라 문학)’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이다. 학원을 ‘아카데미(academy)’가 아니라 ‘학원(Hagwon)’으로 쓴 데 대해 “한국인을 이해하려면 학원의 개념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작가로 일하는 건 굉장히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어떻게 보면 글쓰기는 저항과 혁명의 행동이기 때문입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2-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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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상 커진 K아동문학… ‘국제아동도서전’ 2024년 부산서 열린다

    《이르면 2024년 부산에서 한국 첫 국제아동도서전이 열린다. 출판계 대표 단체인 대한출판문화협회(출협)가 부산시와 ‘부산 국제아동도서전’을 열기 위해 협의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에서 국제아동도서전이 열리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윤철호 출협 회장과 주일우 서울국제도서전 대표는 9일 부산에서 부산시 관계자들과 국제아동도서전 개최를 논의한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국제아동도서전 개최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윤 회장은 “유럽의 경우 성인도서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아동도서는 이탈리아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에서 다룬다”며 “한국에선 1947년 시작해 올해 65회를 맞은 서울국제도서전이 성인도서, 새로 열리는 부산 국제아동도서전이 아동도서의 축제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이번 협의는 부산국제영화제 사무국 관계자들이 조율했다. 10월 열리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올해 처음 마련한 지식재산권(IP) 거래 시장인 ‘부산스토리마켓’에 서울국제도서전이 참가하게 되면서 인연을 맺었다. 국제아동도서전은 서울국제도서전처럼 출협이 주최하고 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하는 형식으로 열릴 가능성이 높다. 서울국제도서전이 해외 출판사들을 초대해 국내 작품의 해외 수출을 독려하고 있는 만큼 국제아동도서전이 아동문학 수출에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새 국제아동도서전에서는 그림책, 어린이 교육서, 만화 등 다양한 아동도서 IP 수출을 장려할 예정이다. 출판계에선 새 국제아동도서전이 1964년부터 시작된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처럼 세계적인 행사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아시아에선 2013년부터 열리고 있는 중국 상하이 국제아동도서전이 가장 규모가 크다. 하지만 상하이 국제아동도서전은 볼로냐 아동도서전과 협업해 운영되는 탓에 상대적으로 권위가 낮다. 팬데믹으로 2020년부터 현재까지 열리지 않고 있다. 주 대표는 “현재 아시아에서 열리는 국제아동도서전 중 두각을 나타내는 곳이 없다”고 말했다. 출협이 국제아동도서전을 만드는 건 세계에서 한국 아동문학의 위상이 높아진 것이 큰 영향을 미쳤다. 이수지 작가는 한국인 최초로 ‘아동문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 일러스트레이터 부문을 올해 3월 수상했다. 그림책 ‘구름빵’(2004년·한솔교육)으로 유명한 백희나 작가는 2020년 세계적인 아동문학상인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을 받았다. 최덕규 작가는 그림책 ‘커다란 손’(2020년·윤에디션)으로 올해 볼로냐 라가치상 논픽션 부문에 뽑혔다. 이지은 작가는 ‘이파라파 냐무냐무’(2020년·사계절)로 지난해 볼로냐 라가치상 코믹스-유아 그림책 부문을 수상하는 등 많은 한국 작가가 해외에서 주목받고 있다. 새 국제아동도서전에 맞춰 권위 있는 아동문학상이 만들어질 가능성도 높다.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이 운영하는 볼로냐 라가치상은 세계적인 아동문학상으로 꼽힌다. 심향분 전 국제아동청소년도서협의회 한국지부(KBBY) 회장은 “안데르센상을 주관하는 국제아동청소년도서협의회(IBBY)에 이수지 작가를 소개할 때 한국 아동문학상 수상 이력이 적어 어려움을 겪었다. 새 상이 신설되면 이런 문제가 해소될 수 있다”며 “각국 아동문학 작가들이 한국에 와 한국 작가 및 독자들과 활발하게 교류하면 한국 아동문학을 더 널리 알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2-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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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 작가 이름이 없네… 출판사 ‘블라인드 가제본’ 붐

    지난달 중순, 기자 앞으로 한 권의 책이 배송됐다. 흰색 표지의 가제본이었다. 표지엔 제목 ‘딜리터: 사라지게 해드립니다’와 출판사 ‘자이언트북스’만 써 있었다. 책날개를 펼쳐도 누가 저자인지, 어떤 작품인지 설명조차 없었다. 누가 쓴 책일까. 궁금증이 치밀었다. 추리를 시작했다. 먼저 자이언트북스가 작가 매니지먼트 업체 블러썸크리에이티브가 운영하는 출판사라는 점이 눈에 들어왔다. 김영하 김중혁 박상영 김금희 배명훈 편혜영 등 블러썸크리에이티브 소속 작가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짜임새 있는 구조, 흡인력 높은 문장을 보면 신인 작가는 아닌 듯했다. 황예인 자이언트북스 편집장에게 물었더니 “작가 이름은 절대 알려줄 수 없다”는 단호한 답이 돌아왔다. 가제본은 주요 출판사 문학 편집자, 문학 담당 기자, 사전 신청한 독자 200명에게 배포했다. 황 편집장은 “작가가 기존에 쓰던 작품과 결이 다른 소설을 쓴 점에 착안해 이름을 가리고 ‘블라인드 테스트’처럼 가제본을 만들었다”고 했다. 출판사들이 잇달아 ‘블라인드 가제본’을 활용한 마케팅을 벌이고 있다. 책 출간 전 작가의 이름을 가린 블라인드 가제본을 펴낸 뒤 사전 신청한 독자들에게 배포하는 방식이다. 창비는 올해 1월 이현 작가의 장편소설 ‘호수의 일’, 올 5월 단요 작가의 장편소설 ‘다이브’를 블라인드 가제본으로 배포했다. 독자들이 작가의 이름을 궁금해하는 글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 덕에 입소문이 절로 났다. 두 책 모두 출간 직후 소설 부문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표정훈 출판평론가는 “출판사는 ‘블라인드 가제본’을 통해 인지도가 낮거나 신인인 작가의 작품을 알릴 수 있다”며 “독자도 편견 없이 작품을 음미할 수 있다”고 했다. 출판사 쌤앤파커스는 지난달 20일 신인 작가 김남윤의 장편소설 ‘철수 삼촌’을 출간하기 전 작가의 이름을 알리지 않고 독자 서평단을 선정했다. 블라인드 가제본을 만들진 않더라도 미리 책을 읽으려는 이들에게 선입견을 주지 않도록 한 것. 김명래 쌤앤파커스 디지털콘텐츠팀장은 “특정 작가의 팬보다는 재밌는 콘텐츠면 어떤 것이든 맛보려는 2030세대 독자의 반응이 좋다”고 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2-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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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체 누가 쓴 소설일까?” 작가 이름을 가린 채 소설을 읽다

    지난달 중순 기자 앞으로 한 권의 책이 배송됐다. 흰색 표지의 가제본이었다. 표지엔 제목 ‘딜리터: 사라지게 해드립니다’와 출판사 ‘자이언트북스’만 써 있었다. 책날개를 펼쳐도 누가 저자인지, 어떤 작품인지 설명조차 없었다. 책을 열었다가 홀린 듯 빠져 읽기 시작했다. 누가 쓴 책일까 궁금증이 치밀었다. 추리를 시작했다. 먼저 자이언트북스가 작가 매니지먼트 업체 블러썸크리에이티브가 운영하는 출판사라는 점이 눈에 들어왔다. 김영하, 김중혁, 박상영, 김금희, 배명훈, 편혜영 등 블러썸크리에이티브 소속 작가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짜임새 있는 구조, 흡인력 높은 문장을 보면 신인 작가는 아닌 듯했다. 문득 최근 장편소설을 완성했다던 한 중견 작가가 생각났다. 황예인 자이언트북스 편집장에게 물었더니 “작가 이름은 절대 알려줄 수 없다”는 단호한 답이 돌아왔다. 가제본은 주요 출판사 문학 편집자, 문학 담당 기자, 사전 신청한 독자 200명에게 배포했는데 작가 이름을 맞추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한다. 황 편집장은 “사람이나 물건을 사라지게 만드는 흑마술사 ‘딜리터’가 소설 주인공이라는 이유로 ‘저자가 마술사 아니냐’고 묻는 이들도 있었다”며 “작가가 기존에 쓰던 작품과 결이 다른 소설을 쓴 점에 착안해 이름을 가리고 ‘블라인드 테스트’처럼 가제본을 만들었다”고 했다. 최근 출판사들이 책을 출간하기 전 작가의 이름을 가린 ‘블라인드 가제본’을 펴낸 뒤 사전 신청한 독자들에게 배포하는 마케팅을 벌이고 있다. 독자들에게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고, 작가에 대한 선입견을 없애기 위한 노력이다. 창비는 올 1월 이현 작가의 장편소설 ‘호수의 일’, 올 5월 단요 작가의 장편소설 ‘다이브’를 블라인드 가제본으로 배포했다. 독자들이 작가의 이름을 궁금해 하는 글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자발적으로 올린 덕에 ‘바이럴 마케팅’이 됐다. 두 책 모두 출간 직후 소설 부문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표정훈 출판평론가는 “출판사는 ‘블라인드 가제본’을 통해 인지도가 낮거나 신인 작가의 작품을 알릴 수 있다”며 “독자도 편견 없이 작품을 음미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했다. 출판사 쌤앤파커스는 지난달 20일 신인 작가 김남윤의 장편소설 ‘철수 삼촌’을 출간하기 전 작가의 이름을 알리지 않고 독자 서평단을 선정했다. 책 자체를 블라인드 가제본으로 만들지 않더라도 미리 책을 읽어보려는 이들에게 선입견을 심어주지 않기 위한 것. 김명래 쌤앤파커스 디지털콘텐츠팀장은 “특정 작가의 충성 독자보단 재밌는 콘텐츠면 어떤 것이든 소비하려는 2030세대 독자의 반응이 좋다”고 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2-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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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린이 책]꼬마 다람쥐야 나 좀 도와줄래?

    상쾌한 어느 날 아침, 꼬마 다람쥐 앞으로 편지 한 통이 배달된다. 꼬마 다람쥐는 편지를 읽자마자 다급하게 집 밖으로 뛰어나간다. 바쁜 이 와중에 친구들의 도움 요청이 쏟아진다. 뿔 장식을 해 달라는 사슴, 뜨개질을 함께 하자는 거북이, 꿀 채취를 도와 달라는 곰, 등에 박힌 복숭아를 없애 달라는 고슴도치를 만나는데…. 과연 꼬마 다람쥐는 친구들을 모두 도와줄까. 또 목적지엔 무사히 도착할 수 있을까. 꼬마 다람쥐는 왜 편지를 읽고 뛰어나간 것일까. 선행을 베푸는 건 언뜻 쉬워 보이지만 막상 마주했을 땐 그렇지 않다. 남을 돕기 위해선 내 시간과 에너지를 써야 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남을 돕는 마음은 언젠가 내게로 돌아온다고 말한다. 친구들의 행복한 하루를 만들어주는 노력은 꼬마 다람쥐의 ‘완벽한 하루’로 완성된다. 숲속 풍경과 갖가지 동물들을 귀엽게 그린 삽화가 매력적이다. 따뜻하고 잔잔한 문체도 마음을 적신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2-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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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극적인 실화의 재탄생 우영우 ‘소덕동 이야기’[이호재의 띠지 풀고 책 수다]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매 에피소드를 구성하는 법정 사건들이 탄탄하고 현실적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우영우’의 법정 에피소드가 매력적인 건 드라마 대본을 쓴 문지원 작가가 법조인들이 출간한 에세이에 기반을 뒀기 때문이다. 제작진은 실제 각 사건을 맡았던 변호사들이 낸 책들을 에피소드 원작으로 삼고 각 변호사, 출판사와 저작권 이용허락 계약을 맺었다. 신주영 변호사가 쓴 이 책은 지난달 20, 21일 방영된 ‘소덕동 이야기’ 에피소드의 원작이 된 에세이다. 에세이는 2008년에 제기된 제2자유로 도로구역 결정처분 취소 청구 소송을 다뤘다. 드라마로 만드는 과정에서 지명을 비롯해 사건의 구체적인 내용은 바뀌었지만 마을을 두 동강 내는 자동차전용도로 건설을 막기 위해 주민들이 고군분투한 건 실제 있었던 일이다. 사건은 당시 경기 고양시 현천동 주민 4명이 경기도지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면서 공론화됐다. 주민들은 “제2자유로가 마을을 양분해 주민들이 피해를 보게 됐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일단 공사를 중지시키는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은 받아들였다. 하지만 본안 소송에선 주민들이 졌다. 당시 법원은 “경기도의 환경영향평가가 적법한 절차에 따라 이뤄졌기 때문에 도로구역 결정 처분을 취소할 근거가 없다”고 했다. 신 변호사는 우영우와 달리 자폐스펙트럼장애를 앓고 있지 않다. 하지만 마을을 지키고 싶다는 주민들의 마음에 흔들려 사건을 맡고, 사건을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가 만나고, 재판에서 이기기 위해 해외 판례까지 뒤지는 열혈 신입 변호사의 모습은 우영우와 쏙 빼닮았다. 짧은 판결문에 담기지 않았던 감동적인 뒷이야기도 드라마 곳곳에 녹아들었다. 소송에서 진 주민 대표는 신 변호사에게 “재판하면서 많은 위로를 받았다. 그동안 당했던 설움을 다 보상받았다”며 고마워했다. 그런 모습이 재판 당사자를 진심으로 위하는 우영우의 따뜻한 모습으로 되살아났다. 주민들이 어려운 법적 용어를 제대로 떠올리지 못한 건 드라마 속 소덕동 이장이 “그… 뭐더라?”는 말을 반복하는 장면으로 다시 태어났다. 법과 동떨어져 살아가는 평범한 소시민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진 것. 제2자유로가 도시 발전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건축학과 교수의 주장은 드라마가 도시와 도로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바탕이 됐다. 겉만 보면 지역이기주의라는 비판을 받기 쉬운 주민들의 주장이 일부 납득되는 이유다. 신민영 변호사의 ‘왜 나는 그들을 변호하는가’(한겨레출판사), 조우성 변호사의 ‘한 개의 기쁨이 천 개의 슬픔을 이긴다’(서삼독)도 드라마 에피소드의 원작이 된 에세이다. 드라마가 큰 인기를 끌면서 이들 에세이의 판매량도 늘었다. 잘 설계된 소설, 맛깔나는 웹툰을 드라마로 만드는 것도 지식재산권(IP) 활용법이겠지만 생생한 경험이 담긴 에세이를 드라마에 녹이는 것도 IP 다각화가 아닐까. 결국 독자나 시청자나 원하는 건 감동적인 사연이니 말이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2-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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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식만 보고 있진 않아… 홀로 선 중년여성의 삶

    3월의 어느 날, 지방 도시에 사는 중년 여성 순례는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온다. 직장 생활하는 딸의 집에 하룻밤 머물기 위해서다. 그는 자신과 달리 결혼도, 아이 생각도 없다는 딸을 묵묵히 바라본다. 일을 많이 시키는 직장은 다니지 않겠다며 자신이 원하는 길을 단호하게 걸어가는 딸의 태도를 존중한다. 그렇다고 순례가 남편과 결혼했다 이혼한 자기 삶을 부정하는 건 아니다. 순례는 지금 연인과 현실적인 이유로 동거를 망설이지만, 연인과 미래를 꿈꿀 수 있는지도 담담하게 고민한다. 단편소설 ‘승객’의 이야기다. 최근 5번째 소설집 ‘굿바이 R’(문학동네)을 펴낸 전경린 작가(60·사진)는 드라마에서 볼 법한 중년 여성의 전형과는 정반대의 모습을 그린다. 소설 속 중년 여성들은 저녁마다 가족을 위해 과일을 깎아주며 행복해하는 가정주부도, 기업에서 인정받는 커리어우먼도 아니지만 자신의 인생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전 작가는 2일 전화 인터뷰에서 “전형적인 삶을 답습하는 중년 여성들보단 홀로 자기 길을 가며 삶의 현재를 생성해가는 이들의 이야기가 궁금했다”고 했다. “미혼, 이혼, 비혼 등 다양한 이유로 혼자 사는 여성 인구가 늘고 있어요. 비주류였던 1인 가구가 주류가 되고 있죠. 이혼하거나 가족을 떠나보낸 중년 여성의 모습을 그린 것도 이 때문입니다. 중년 여성들이 자식 잘되는 것만으로 진짜 만족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지 궁금했죠.” 199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중편소설 부문에 당선돼 등단한 전경린은 사랑이라는 감정을 섬세하고 정확하게 포착한 작가로 불려왔다. 하지만 이번 소설집에 담긴 7편의 중·단편소설에 등장하는 중년 여성들에게 사랑은 우선순위가 아니다. 이별은 가방을 들고 건너편 플랫폼으로 가서 환승하듯 익숙해졌고(단편 ‘붓꽃’), 여행지에서 삶의 목적을 찾는 일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중편 ‘굿바이 R’). 그는 “이번 소설집에선 사랑의 순위가 뒤로 밀렸다. 독립적이고 개인적인 여성의 모습을 그리려 했다”고 말했다. 소설 속 등장인물들이 겪는 현실은 만만치 않다. 잡지사에서 근무하는 탓에 인터뷰하기 위해 지방을 떠돌아야 하고(단편 ‘사구미 해변’), 좀처럼 일자리를 얻지 못하는 기간제 교사의 삶은 불안하다(단편 ‘합’). 소설은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은 이들이, 현실과는 다른 환상이 돼야 하는 것이 아닐까. “저는 평생 글을 써서 돈을 벌며 살아왔습니다. 그것이 제가 진 짐이고 현실이었죠. 일이라는 짐을 감당하며 사는 건 저뿐만이 아니죠. 그래서 소설 주인공도 짐을 지고 움직이는 것일 뿐입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2-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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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년 여성들, 자식 잘되면 행복할까?”…5번째 소설집 펴낸 전경린 작가

    3월의 어느 날, 지방 도시에 사는 중년 여성 순례는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온다. 직장 생활하는 딸의 집에 하룻밤 머물기 위해서다. 그는 자신과 달리 결혼도, 아이 생각도 없다는 딸을 묵묵히 바라본다. 일을 많이 시키는 직장은 다니지 않겠다며 단호하게 자신이 원하는 삶을 걸어가는 딸의 태도를 존중한다. 그렇다고 순례가 남편과 결혼했다 이혼한 자기 삶을 부정하는 건 아니다. 순례는 지금 연인과 현실적인 이유로 동거를 망설이지만, 연인과 미래를 꿈꿀 수 있는지도 담담하게 고민한다. 단편소설 ‘승객’의 이야기다. 최근 5번째 소설집 ‘굿바이 R’(문학동네) 펴낸 전경린 작가(60)는 TV 드라마에서 볼 법한 중년 여성의 전형과는 정반대의 모습을 그린다. 소설 속 중년 여성들은 저녁마다 가족을 위해 과일을 깎아주며 행복해하는 가정주부도, 기업에서 인정받는 커리어우먼도 아니지만 자신을 인생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전 작가는 2일 전화 인터뷰에서 “전형적인 삶을 답습하는 중년 여성들보단 홀로 자기 길을 가며 삶의 현재를 생성해가는 이들의 이야기가 궁금했다”고 했다. “미혼, 이혼, 비혼 등 다양한 이유로 혼자 살아가는 여성 인구가 늘어나고 있어요. 비주류였던 1인 가구가 주류가 되고 있죠. 이혼하거나 가족을 떠나보낸 중년 여성의 모습을 그린 것도 이 때문입니다. 중년 여성들이 자식 잘되는 것만으로 진짜 만족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지 궁금했죠.”199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중편소설 부문에 당선돼 등단한 전경린은 사랑이라는 감정을 섬세하고 정확하게 포착한 작가로 불려왔다. 하지만 이번 소설집에 담긴 7편의 중·단편소설에 등장하는 중년 여성들에게 사랑은 우선순위가 아니다. 이별은 가방을 들고 건너편 플랫폼으로 가서 환승하듯 익숙해졌고(단편 ‘붓꽃’), 여행지에서 삶의 목적을 찾는 일이 그 무엇보다 사랑보다 중요하다(중편 ‘굿바이 R’). 그는 “이번 소설집에선 사랑의 순위가 뒤로 밀렸다. 독립적이고 개인적인 여성의 모습을 그리려 했다”고 했다. 소설 속 등장인물들이 겪는 현실은 만만치 않다. 잡지사에서 근무하는 탓에 인터뷰하기 위해 지방을 떠돌아야 하고(단편 ‘사구미 해변’), 좀처럼 일자리를 얻지 못하는 기간제 교사의 삶은 불안하다(단편 ‘합’). 소설은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은 이들이, 현실과는 다른 환상이 돼야하는 것이 아닐까. “저는 평생 글을 써서 돈을 벌며 살아왔습니다. 그것이 제가 진 짐이고 현실이었죠. 하지만 일이라는 짐을 감당하며 사는 건 저 뿐만이 아니죠. 그래서 소설 주인공도 짐을 지고 움직이는 것일 뿐입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2-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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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젊었을 때 읽은 ‘안중근 조서’… ‘난중일기’처럼 인생 뒤흔들어”

    “안중근 의사(1879∼1910)를 논할 때 민족주의적 열정과 영웅적인 면모를 빼놓을 순 없죠. 하지만 저는 그의 청춘과 영혼, 생명력을 묘사해보길 소원했습니다. 안 의사와 이토 히로부미(1841∼1909)가 운명적으로 중국 하얼빈에서 만나 파국을 이루는 비극성과 그 안에 든 희망도요.” 젊은 시절, 소설가 김훈(74)을 뒤흔든 건 단 두 개의 글이었다고 한다. 하나는 짐작하듯 충무공 이순신 장군(1545∼1598)의 ‘난중일기’다. 전쟁과 국가에 대한 고뇌가 담긴 글을 여러 차례 탐독했고, 그 결과는 2001년 장편소설 ‘칼의 노래’로 탄생했다. 또 다른 하나는 일제가 안 의사를 취조한 뒤 남긴 조서 기록이다. 을사늑약 체결을 주도한 이토를 저격한 안 의사의 뜻이 명료하게 담긴 글은 오랫동안 작가의 마음에 새겨져 있었다. 3일 출간한 장편소설 ‘하얼빈’(문학동네)은 청년 김훈이 오래도록 꿈꿨던 소망을 이룬 셈이다. 김 작가는 이날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밥벌이 하느라 바빴고, (안 의사를) 감당할 자신이 없어 이 소설 쓰는 일을 미뤄 왔었다”고 털어놓았다. “지난해 몸이 아팠고 올봄에야 건강을 회복해 집필을 마무리했다”는 그의 얼굴은 다소 지쳐 보이면서도 홀가분함이 묻어났다. “제 생애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이야기다 보니 소설로 쓰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필생의 과업까진 아니고, ‘필생 동안 방치한’ 소설이라 보는 게 맞겠죠. 젊었을 때부터 쓰고 싶었던 소설을 이제야 발표하려니 식은땀도 나네요.” ‘하얼빈’은 안 의사가 거사를 실행하기 약 일주일 전인 1909년 10월 19일 무렵부터 이토를 저격한 26일 전후에 초점을 맞췄다. 안 의사와 이토가 각자 하얼빈으로 가는 행로와 과정을 3인칭으로 풀어냈다. 이순신 장군의 1인칭 시점으로 쓴 ‘칼의 노래’보다 더욱 절제된 화법이다. 김 작가 특유의 단문은 여전히 묵직하고 강력하다. “올해 하얼빈에 가서 안 의사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려 했으나 여러 사정으로 무산됐습니다. 그 대신에 안 의사와 관련된 자료를 계속해서 읽었어요. 현장을 답사했다면 훨씬 장악력을 갖고 자신 있게 글을 써낼 수 있었을 텐데 아쉽습니다.” 소설에서 김 작가가 “쓰면서 가장 신바람 났다”는 대목은 안 의사와 독립운동가 우덕순(1880∼1950)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의 한 허름한 술집에서 이토 저격에 대해 논의하는 장면이다. 두 사람은 거사의 대의명분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나누지 않는다. 그저 일상적인 대화를 하듯 앞으로의 계획만 건조하게 주고받을 뿐이다. “시대에 대한 고뇌는 무겁지만 젊은이들의 처신은 바람처럼 가볍습니다. 청춘은 나이를 먹고 완성되는 세월을 기다리지 않습니다. 그 순간 폭발적인 에너지를 지녀 아름다운 거죠. 쓰면서 가장 힘들었던 대목은 안 의사의 가족을 다룰 때였어요. 안 의사는 면회 온 동생에게 ‘처에게 못 할 일을 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는데, 끔찍하고 거대한 고통을 뭉개고 갈 수밖에 없는 심정이 드러나죠.” 김 작가는 안 의사를 신화화된 영웅이 아니라 신념과 살인행위를 두고 고민하는 보편적인 인간으로 그린다. 이토 역시 우리에겐 악인이지만 자기만의 대의와 야만성을 함께 지닌 복합적인 인물로 묘사한다. ‘작가의 말’에는 “안 의사를 그의 시대 안에 가둬놓을 수는 없다”는 문장이 실렸다. 김 작가는 한참을 망설이더니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초야에서 뒹구는 글쟁이가 할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현재의 동양은 안 의사가 살았던 시대보다 더 절망적인 면도 있습니다. 미국과 대립하는 중국, 핵무기를 지닌 북한, 군사대국을 지향하는 일본…. (안 의사가 옥중에서 쓴) ‘동양평화론’의 명분이 지금도 유효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2-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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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폐, 드라마와 현실은 얼마나 같고 다를까

    “우영우처럼? 그런 대단한 능력 바라지 않아” ‘특별한 아이에서 평범한 아이로’권현정씨 “평범한 일상, 부모들의 소망… 모두와 잘 어울리는 무난한 사람 됐으면”“우영우처럼 암기력이 천재적인 아이는 극히 일부일 뿐이에요. 운동화 끈도 못 묶고, 티셔츠 단추조차 못 채우는 아이가 더 많습니다.” 권현정 씨(42)는 2014년 아들 이유원 군과 병원을 찾았던 기억을 잊지 못한다. 당시 세 살이던 아들은 자폐스펙트럼장애 진단을 받았다. 권 씨는 하늘이 무너진다는 심정을 그때 처음 느꼈다. 돌아오는 길에도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권 씨는 사형선고를 받은 기분이었다. 뛰지도, 말도 제대로 못하는 아이를 보며 어쩔 줄 몰라 두려움에 떨었다. 하지만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유원이의 현실을 받아들이고 조금씩이라도 나아지도록 최선을 다하겠노라 다짐했다. 그 경험을 최근 에세이 ‘특별한 아이에서 평범한 아이로’(캥거루북스·사진)에 담았다. 권 씨는 지난달 28일 전화 인터뷰에서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조심스레 언급했다. 그는 “대중매체는 특정 분야에서 재능을 발휘하는 ‘고기능 자폐증’을 주로 다룬다. 하지만 자폐스펙트럼장애인의 부모들이 바라는 건 그런 대단한 능력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이라고 강조했다. 유원이도 처음엔 혼자 아무것도 할 줄 몰랐다. 1초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아이에게 권 씨는 ‘응용행동분석’이란 자폐 치료를 이어갔다. 장난감을 쥐여주며 가만히 기다리게 하고, “이리 와”라고 하면 이 의자에서 저 의자로 옮겨가는 연습을 했다. 절제력을 기르려고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쉬는 학습도 반복했다. 길고 고된 시간이었지만 유원이는 몰라보게 나아졌다. 올해 11세인 유원이는 혼자 양치질은 물론이고 목욕도 할 수 있다. 밥을 먹고 수저를 개수대에 가져다둔다. 혼자 책을 읽고 유튜브도 본다. 놀러가고 싶은 장소를 인터넷에서 찾기도 한다. “발달 속도는 또래 아이들만큼은 아니지만 눈에 띄게 뒤처지진 않아요. 유원이가 우영우 같은 특별한 사람이 되길 바라는 게 아닙니다. 그저 모두와 잘 어울리는 무난한 사람이 되길 꿈꿉니다.”“드라마가 뜨자 ‘아이는 뭐 잘해’ 자꾸 물어봐” ‘아들의 답장을 기다리며’채영숙씨 “올라가야 할 길 여전히 멀지만 언젠가 ‘야호’하고 소리칠 날 오겠죠”“요즘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인기를 끄니까 주변에서 쏟아지는 질문이 한결같아요. ‘호민이는 뭐 잘해?’ 자폐장애를 가진 모든 이들이 우영우가 될 순 없는데….” 자폐스펙트럼장애가 있는 아이를 키운 경험을 담은 에세이 ‘아들의 답장을 기다리며’(꿈꿀자유·사진)를 쓴 채영숙 씨(56)는 이런 분위기가 “이젠 익숙하다”며 웃어넘겼다. 2005년 영화 ‘말아톤’이 흥행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아이가 뭘 잘하는지 부모가 찾아줘야 하는 거 아니냐며 질책하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폐 아동의 가족이 어떤 시간을 보내는지는 관심이 없다. 채 씨는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1993년 잠깐 극단적인 선택을 생각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아들 변호민 씨(32)가 세 살 때 자폐스펙트럼장애 진단을 받은 뒤 삶을 지속할 의미를 찾지 못했다. “누군가 ‘그래도 아이는 축복의 선물’이라고 위로했을 때, ‘그럼 당신이 똑같이 짐을 지어보라’며 역정을 냈어요. 또 ‘위를 보지 말고 아래를 보라’는 말엔 ‘남의 팔 하나 잘리든 말든 내 손톱 밑에 든 가시가 아픈 것’이라며 소리쳤죠. 아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과정이 제겐 뼈를 깎는 것처럼 힘들었어요.” 채 씨가 아들을 키우던 시절엔 장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지금보다 훨씬 낮았다. 교사가 말을 듣지 않는다고 아이 뺨을 때리기도 했고, 버스를 탔다가 승객들의 눈초리에 중간에 내린 적도 많았다. 혼자만의 세계에 갇혀 있는 아이가 ‘조금 다른 아이’란 걸 납득시키긴 어려웠다. “그랬던 아이가 어느새 청년이 됐어요. 호민이는 일반 성인들처럼 일을 하진 못하지만 그래도 많이 좋아졌어요. 이젠 싫으면 싫다 똑 부러지게 거부하고 자기 의견도 생겼죠. 올라가야 할 길이 여전히 멀지만, 언젠간 정상에 도착해 ‘야호!’ 소리칠 수 있지 않을까요. 우영우 같은 능력이 없더라도,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세상이 되면 좋겠습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2-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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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목숨 여러 개… 복제된 인간에게 ‘살아남을 권리’란

    당신은 어젯밤 11시 잠자리에 들었다가 오늘 아침 7시 깨어났다. 세수를 하며 어제 잠들기 전까지 무슨 일을 했는지 기억을 떠올려보자. 잠들기 전 당신과 깨어난 후 당신 사이에 놓인 8시간의 ‘빈 시간’은 딱히 고려하지 않는다. 그저 잠을 잤을 뿐이니까. 그리고 당연히 당신은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같은 사람이라 여긴다. 자, 이 평범하기 짝이 없는 일상에 도발적인 가정을 던져보자. 당신은 어젯밤 11시 잠이 들며 그날 하루의 기억을 컴퓨터에 올리고 사망했다고. 어제의 당신은 ‘당신1’이라고. 그리고 오늘 아침 7시에 새로운 ‘당신2’가 그 기억을 내려받은 뒤 새로 태어났다고. 그렇다면 당신1과 당신2는 똑같은 사람인가, 다른 사람인가. 지금 이 순간,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정말 어제의 당신과 같은 이라 확신할 수 있나. 영화 ‘기생충’(2019년)으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과 미국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영화상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도 이런 상상을 해본 적이 있을까. 공상과학(SF)소설 ‘미키7’은 봉 감독이 차기작으로 발표한 영화의 원작이다. 배우 브래드 피트가 설립한 제작사 ‘플랜B’도 참여하고, 로버트 패틴슨과 마크 러펄로, 스티븐 연 등 유명 배우들이 출연한다고 한다. 소설은 이처럼 미래사회에 복제인간으로 끊임없이 되살아나는 한 사내에 대한 이야기다. 다시 제목을 보면 짐작이 되겠지만, ‘미키7’은 일곱 번째 미키라 할 수 있다. 미키7은 새로운 행성을 탐험하는 개척단에 투입돼 임무를 수행하다 깊고 깊은 절벽으로 떨어진다. 겨우 목숨을 건진 미키7은 가까스로 기지로 돌아오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는 건 ‘미키8’. 자신이 죽은 줄 안 동료들이 새로운 복제인간을 깨운 것이다. 그럼 미키7은 용도가 끝나 폐기처분돼야 할 대상일까. 아니면 혼선을 빚고 잘못 생명을 얻은 미키8을 없애야 하나. 그 전에, 미키7과 미키8은 서로에게 아군일까, 적군일까. 소설은 페이지를 넘길수록 왜 봉 감독이 이 작품을 영화의 원작으로 택했는지 고개가 끄덕여진다. 뭔가 블랙코미디적인 설정이 흥미로운데다 알게 모르게 묻어나는 계급 담론이 짙기 때문이다. 사실 미래사회라고 누구나 복제인간의 삶을 선호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이 끔찍한 굴레를 피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빚더미에 깔려 돈이 필요했던 미키는 어쩔 수 없이 힘든 업무를 수행해야 하는 복제인간에 지원했다. 미국 로체스터대에서 양자물리학을 가르치는 과학자이기도 한 저자는 국내 출판사와의 인터뷰에서 “경제시스템에 대한 의구심이나 계급 갈등에 대해 봉 감독과 비슷한 관점과 감정을 공유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시간이 흐르고 세상이 아무리 발전해도 하층민의 삶이 서글프고 고단한 건 바뀌질 않나 보다. 봉 감독은 또 이 독특한 소설을 어떻게 영상으로 풀어낼는지. 요즘 국내 웹툰이나 웹소설에서는 과거로 돌아가 다시 태어나는 ‘회귀물’이 대세인데, 삶이 반복되는 게 정말 행복을 보장할까. 잠깐, 혹시 우리는 지금 ‘n회 차’ 인생을 살고 있나. 괜스레 주변 사람들을 실눈 뜨고 쳐다보다 머리만 긁적거렸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2-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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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드라마 우영우, 웹툰으로 연재… 해외 번역판도

    연일 화제의 중심에 오르고 있는 ENA 수목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웹툰으로 만들어진다. 네이버웹툰은 동명의 드라마를 바탕으로 만든 웹툰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사진)를 27일부터 연재한다. 웹툰은 총 60화 분량이다. 웹툰 제작은 드라마를 만든 에이스토리의 자회사 에이아이엠씨가 맡았다. 글은 유일, 그림은 화음조 작가가 각각 담당한다. 기존 드라마에 등장했던 에피소드는 물론이고 드라마에서 볼 수 없었던 추가 에피소드도 선보인다. 추후 영어, 일본어, 중국어로 번역해 해외에도 연재할 계획이다. 미리 공개된 웹툰 포스터에서 우영우는 드라마 배우 박은빈처럼 동그랗고 짧은 단발머리를 하고 있다. 우영우는 재료가 모두 보인다는 이유로 좋아하는 김밥에 둘러싸여 행복해하고, 소음 차단을 위해 헤드폰을 쓰고 있다. 우영우의 기분과 정체성을 상징하는 고래가 하늘 위를 헤엄친다. 드라마는 천재적인 두뇌와 자폐스펙트럼 장애를 지닌 신입 변호사 우영우의 대형 로펌 성장기를 그린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2-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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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에서 왔소’ 했다가 철창행”… 진짜일까 허구일까

    콜롬비아를 여행하던 소설가 ‘나’는 어처구니없는 일에 휘말린다. 편의점에서 맥주를 사며 신분증을 보여줬는데, 직원이 내 얼굴이 사진과 전혀 다르다고 경찰에 신고한 것. “수면 부족과 섭식장애가 겹쳐 살이 10kg 넘게 빠졌다”고 읍소했지만 경찰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믿지 않았다. “북한에서 왔다”고 농담했다가 철창에 갇힌 신세까지 되는데…. 과연 이 이야기는 실제 경험한 여행기일까, 상상으로 자아낸 허구일까. 최근 에세이 ‘기차와 생맥주’(북스톤·사진)를 펴낸 최민석 소설가(45)는 이에 대해 “글쎄요…”라며 두루뭉술하게 대답했다. 25일 전화 인터뷰에 응한 그는 읽다가 피식피식 웃음이 새어나오는 유머가 가득한 에세이를 쓴 작가답지 않게 꽤나 차분했다. “글을 읽은 독자들은 절 좌충우돌하는 인물로 상상하는데 막상 만나면 진중하다고 놀라는 경우가 많아요. 글쓰기 교양강의를 하며 A4용지로 60장짜리 교재를 줬더니, 생각보다 주도면밀하고 계획적이라고 실망하는 분들도 있더라고요. 제 실제 모습이 다소 우스꽝스러운 에세이와 다르다는 거죠.” ‘기차와 생맥주’는 장르를 명확하게 구분 짓기 어렵다. 전통적인 방식의 여행 에세이가 있는가 하면, 여행지에서 겪은 일에 상상력을 가미한 ‘픽션’도 함께 실렸다. 멕시코에서 우연히 연극에 참여했다가 “화장실에서 볼일을 봤다”는 대사를 주절거려 망신당한 얘기나 이탈리아에서 무전취식을 일삼는 로커와의 동행기는 어디까지가 실제인지 불분명하다. 최 작가는 소설가 중에서도 에세이를 많이 쓰는 편에 속한다. 2016년 독일 베를린 생활을 담은 ‘베를린 일기’(민음사)부터 최근까지 6년 동안 에세이만 7권을 펴냈다. 유독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를 무너뜨린 건 이번이 처음. 과연 어디까지가 실제인지 다시 한번 꼬치꼬치 캐물어봤다. “그걸 밝히지 않는 게 이 책의 매력입니다, 하하. 작품 속 ‘나’가 겪은 일이 제 이야기인지 남의 이야기인지 헷갈리게요. 판단은 독자의 몫이겠죠.”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2-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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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툰 이어 웹소설도 불법공유 ‘검은 손’

    11일 네이버가 제공하는 웹소설 플랫폼 ‘시리즈’엔 인기 웹소설 ‘화산귀환’ 1288화가 올라왔다. 무림 고수가 환생해 몰락한 문파를 되살리려 고군분투하는 내용인 소설은 지난해 초부터 시리즈 전체 랭킹 1위를 이어온 초특급 베스트셀러. 2019년 4월부터 연재해 지금까지 누적 조회수가 3억7000만 회를 넘었고 300억 원 이상 매출을 올렸다. 독자가 이 웹소설 한 편을 보려면 일반적으로 시리즈에서 통용하는 쿠키 1개(120원)를 써야 한다. 하지만 열흘쯤 뒤인 22일 ‘북토끼’라는 이름의 사이트에는 화산귀환 1288화 무료 버전이 버젓이 올라왔다. 단순히 소설 화면을 사진으로 찍어서 올린 게 아니었다. 원작처럼 소설 텍스트를 그대로 올린 일명 ‘텍본’이라 읽기도 편하고 복사도 가능했다. 정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작품을 누구의 허락도 받지 않고 마음대로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달 5일부터 국내에서 웹소설을 불법으로 공유하는 사이트 ‘북토끼’가 등장해 파장이 일고 있다. 그간 웹툰 위주로 기승을 부리던 불법 공유 사이트들이 본격적으로 웹소설로 확대되는 모양새다. 국내에서 웹소설 전용 불법 사이트가 나온 건 처음이다. 북토끼가 생긴 지 겨우 20일 정도 지났지만 이미 불법 콘텐츠는 다수 게재됐다. 26일 기준 약 700개의 작품이 무단으로 올라와 있다. 화산귀환처럼 인기를 끈 지 오래된 작품은 물론이고 비교적 최근에 연재를 시작한 작품도 상당수다. 지난달 23일부터 네이버 시리즈에서 연재를 시작한 웹소설 ‘경찰이 너무 강함’은 현재 123화를 연재 중인데, 북토끼에 벌써 83화까지 불법 복제돼 있다. 다른 웹소설 플랫폼도 예외는 아니다. ‘문피아’에서 연재하는 웹소설 ‘천재 투수가 낭만을 안 숨김’ 역시 47화까지 올라왔다. 웹소설은 정식 플랫폼에서 평균적으로 편당 100∼120원가량 지불해야 작품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북토끼에서는 모든 콘텐츠를 회원 가입도 없이 공짜로 이용할 수 있다. 북토끼 운영진은 해외에 서버를 둔 성인·도박 콘텐츠 광고를 통해 수익을 얻고 있다. 웹소설 작가 A 씨는 “웹툰 불법 공유 사이트로 재미를 본 범죄자들이 웹소설까지 손을 뻗친 것으로 보인다. 마땅한 대응 방법을 찾기 힘들어 고민이다”라고 했다. 국내에서 본격적으로 불법 콘텐츠 공유 사이트에 불을 지핀 건 2018년 운영진이 검거된 ‘밤토끼’다. 당시 밤토끼 일당은 미국과 캄보디아 등에 서버를 두고 약 2년 동안 9억5000여만 원을 벌어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웹툰 플랫폼 관계자는 “경찰에 붙잡혔지만 밤토끼가 막대한 수익을 거뒀다는 사실이 알려져 오히려 범죄자들이 더욱 눈독을 들이고 있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자체 파악한 불법 웹툰 공유 사이트는 2016년 3개 정도였지만 2020년 272개로 크게 늘어났다. 진흥원 관계자는 “2020년 기준 웹툰 시장은 1조538억 원 규모인데, 불법 사이트로 인한 피해가 5488억 원에 이를 만큼 심각하다”고 밝혔다. 웹소설도 심각한 피해가 우려된다. 2020년 기준 국내 웹소설 시장 규모는 약 6000억 원. 현재 불법 공유로 인한 피해는 파악하기조차 어렵다. 이융희 웹소설 평론가는 “네이버나 카카오가 운영하는 대형 플랫폼이 적극 나서야 한다”며 “해외 서버를 이용해 사이트 운영자를 검거하기 쉽지 않아도 경찰과 공조해 끝까지 추적해야 불법 사이트 범람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2-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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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생지 떠나야했던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떠난 사람과 남겨진 사람 모두의 인생 변해”

    뜨거운 관심을 받은 애플TV플러스 드라마 ‘파친코’. 드라마의 원작 장편소설 ‘파친코’를 쓴 이민진 작가(54·사진)는 소설의 첫 문장을 작품의 주제로 삼는다. 27일 재출간되는 인플루엔셜 출판사의 ‘파친코’ 1권 첫 문장 “역사는 우리를 저버렸지만 그래도 상관없다(History has failed us, but no matter)”가 그렇다. 역사가 삶을 짓밟아도 묵묵히 살아낼 것이라는, 재일 한국인의 파란만장한 사연과 담담한 시선이 이 한 문장 안에 응축돼 있다. 이 작가는 최근 동아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파친코’의 첫 문장은 역사가 대부분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존중하지 않았다는 내 관점을 반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람들은 생존하고자 계속 고군분투했어요. 이 문장엔 억압, 불평등에 대한 저항의 감정이 담겨 있죠. 저는 (역사의) 어마어마한 힘과 마주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저항과 싸움에서 희망을 발견했습니다.” 두 권짜리 소설 ‘파친코’가 국내 독자들에게 돌아온 건 3개월 만이다. 기존에 문학사상이 출간한 ‘파친코’는 올해 3월 드라마 공개 후 주요 서점 종합 베스트셀러 1, 2위를 휩쓸었다. 그러나 4월 문학사상과의 계약 연장이 불발되면서 신간을 살 수 없게 되자 중고 책 1·2권 합본 세트가 10만 원을 넘을 정도로 가격이 치솟았다. 이 작가는 재출간 과정에 대한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다만 “일본에서 고군분투했던 한국인의 경험에 대한 역사적 진실과 명확한 감정을 전달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새로운) 번역자가 이야기가 의도했던 구조나 흐름, 언어까지 모두 잘 살려낼 수 있도록 많은 신경을 써줬다”고 밝혔다. 27일 1권이 재출간되며, 2권은 다음 달 말 선보인다. 이 작가는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드라마 ‘파친코’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는 1968년 서울에서 태어나 1976년 미국 뉴욕으로 부모를 따라 이민을 갔다. 예일대 역사학과 재학 시절 재일 한국인 이야기를 구상한 뒤 2017년 미국에서 ‘파친코’를 출간하기까지 30년 가까이 시간을 들였다. 인터뷰한 이들이 수천 명에 달하고 일제강점기부터 1980년대까지 격동의 한국 근현대사를 샅샅이 훑었다. “미국에 사는 수천 명의 한국인을 만나왔는데 결론은 그들은 엄청나게 복잡하다는 것이었습니다.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사랑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갖지 않는 쪽을 선호하는 사람들도 있었죠.” 그는 현재 한국인의 교육 열풍을 다룬 장편소설 ‘아메리칸 학원’을 쓰고 있다. “세계에 있는 수십 개 학원을 방문했고 많은 사람을 인터뷰했습니다. 한국인은 학원에 대해 복합적인 감정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가 이 작품을 다 쓰면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2007년), ‘파친코’에 이어 ‘이산문학(디아스포라 문학)’ 3부작을 완성하게 된다. 왜 ‘회색인’의 이야기를 쓰는지 물었다. 그는 “어렸을 적 한국을 떠났다. 출생지를 떠나야 했던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떠난 사람과 남겨진 사람 모두의 인생을 변화시킨다”고 돌아봤다. 한편 방탄소년단, 영화 ‘기생충’, 드라마 ‘오징어게임’이 세계인에게 큰 사랑을 받는 이유에 대해 “빼어나기 때문”이라며 “세계적인 수준의 예술을 창조해낸 것은 엄청난 공로”라고 했다. 그는 올해 5월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을 축하하는 미국 행정부 사절단으로 참가하면서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아줌마(Ajumma)가 사절단의 일원이 됐다”고 올려 화제가 됐다. “35시간이 넘는 여정이었지만 한국에서 한 끼 식사도 하지 못했다. 한국 음식을 좋아해서 무척 슬펐다”고 했다. 다음 방한 일정을 물으니 유쾌한 답이 돌아왔다. “다음 달 (시상식 참석을 위해) 한국에 갈 예정입니다. 꼭 맛있는 음식을 먹을 겁니다. 냉면이랑 빙수를 무척 좋아해요. 얼른 가고 싶어요.”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2-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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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수자의 삶, 완전히 보여줄 때까지 글 쓸 겁니다”

    박상영 작가(34)에겐 가식이 없다. 그는 솔직하게 살고, 솔직하게 쓴다. 연작소설 ‘대도시의 사랑법’(창비)으로 올 3월 노벨 문학상, 프랑스 공쿠르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히는 영국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1차 후보에 올랐을 때 그는 이 소식을 빠르게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렸다. 20일 출간된 연작소설 ‘믿음에 대하여’(문학동네)에서도 감정과 소신을 당당히 드러내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에서 그의 특징이 두드러진다. 자신을 괴롭히는 직장 상사를 향해 “선배님, 사무실 밖으로 좀 나와 주시겠어요?”라고 소리치는 인턴사원(‘요즘 애들’)이나, 퀴어 커플이라는 사실이 밝혀질까 전전긍긍하며 자신을 옥죄는 애인을 향해 “내가 라푼젤이야?”라고 외치는 주인공(‘보름 이후의 사랑’)처럼.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21일 만난 그는 “인간 박상영으로도, 작가 박상영으로도 최대한 투명해지고 싶다는 욕망이 있다. 나도 인간이라 가면을 쓰지만 겸손한 것보단 솔직한 게 내 스타일 같다”고 말했다. 그는 2016년 등단 후 3년 만에 젊은작가상 대상을 받고 올해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1차 후보에 오르며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퀴어를 소재로 한 소설을 쓴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폄하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빠른 속도로 빛난 만큼 짙은 어둠을 견뎌야 했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1차 후보에 오르니) ‘퀴어 팔이한다, 일기 쓴다’며 작품을 무시하던 분들을 향해 가치를 증명한 것 같아 기분이 좋았어요. 내가 쓴 소설이 한국뿐 아니라 다른 많은 세계(해외)를 포용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아 행복하기도 했습니다.” 신작에 실린 연작 소설 4편은 모두 30대의 삶을 그린다. 지난해 10월 펴낸 장편소설 ‘1차원이 되고 싶어’(문학동네)가 깨질 듯 연약한 10대의 이야기를 다뤘다면 신작은 지친 삶을 버텨 나가는 30대의 고뇌를 다뤘다. 방송사 앵커, 유튜브 영상 편집자 등 다양한 직업을 다룬 점도 눈에 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문제를 다루기 위해 예방의학과 전문의에게 문의하고 영국 국제학술지인 ‘네이처’도 찾아봤어요. 부동산 정책을 공부하기도 했죠. 그동안 쓰지 않았던 이야기도 잘 쓸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썼습니다. 이 책은 제 작품세계의 ‘시즌2’입니다.” 그의 작품이 다양한 소수자 문제를 품으며 확장하고 있는 것도 눈여겨볼 점이다. 왜 소수자 이야기를 쓰느냐고 묻자 그는 진중하게 답했다. “어둡고 사소하고 하찮은 것에 렌즈를 대고 들여다보는 게 문학이에요. 제게 소수자를 (작품에서 정확히) 재현하는 일은 글쓰기와 동의어입니다. 소수자의 삶을 완전히 보여줄 때까지 계속 글을 쓸 겁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2-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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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캠핑장서 비오면 뭘 할까… “책 읽는 버스로 오세요”[작은 도서관에 날개를]

    《푸릇푸릇한 산 중턱에 자리한 충북 제천시 스테리움 제천 캠핑장.한참 동안 비가 내리다 그친 23일 오후, 캠핑장 입구에 자리 잡은 노란색 이동식 도서관 ‘책 읽는 버스’에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긴 장마로 야외활동을 즐기지 못했던 이들은 자연 속 캠핑장에서 만난 책 앞에서 쨍하니 해맑아졌다. 어른, 아이 가릴 것 없이 독서 퀴즈를 풀고선 환호했고 깊은 밤을 달래줄 책을 한 권씩 빌려가며 설레는 표정을 지었다.》 45인승 버스를 개조해 만든 ‘책 읽는 버스’는 사단법인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대표 김수연 목사)이 운영하고, KB국민은행이 후원한다. 1987년 설립된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은 이동식 도서관으로 농어촌을 찾거나 지역 축제 현장을 방문해 책 읽기 문화 확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책 대여는 물론이고 구연동화, 심리치료 등 다양한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아이들이 많이 찾기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예방을 위해 하루에 수차례 버스 안팎을 소독하고 있다. 이날 ‘책 읽는 버스’를 가장 먼저 찾은 이는 서울에서 온 남승지 씨(31). 동화책 ‘도깨비가 데려간 세 딸’(길벗어린이)을 읽고 책 내용을 바탕으로 낸 퀴즈 4개를 맞혔다. 신이 난 남 씨는 두 손을 머리 위로 들고 “와아아아∼” 소리를 질렀다. 남 씨는 퀴즈를 푼 뒤 중국 춘추시대 사상가 공자와 그 제자들의 언행을 기록한 유교 경전인 ‘논어’ 포켓북을 가져갔다. 남 씨는 “캠핑을 다니다 보면 무료한 때가 있어 책이 한 권 정도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책 읽는 버스’ 덕에 하루를 알차게 보낼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온 가족이 함께 ‘책 읽는 버스’를 찾기도 했다. 손권휘 씨(40)는 아내와 함께 28개월 된 아기를 안고 왔다. 부부는 칫솔을 플라스틱으로 배출해야 하는지, 된장은 음식물 쓰레기인지 등을 묻는 환경 ○× 퀴즈를 고심하며 풀었다. 그리고 ‘책 읽는 버스’ 안으로 들어가 아기를 위한 동화책을 빌려갔다. ‘책 읽는 버스’에는 책 1000여 권이 비치돼 있고, 긴 의자에 에어컨도 있어 시원하고 편안하게 독서를 할 수 있다. 손 씨는 “잠들기 전 아이에게 동화책을 읽어 주기 위해 평소 캠핑을 할 때 책을 들고 다닌다”며 “‘책 읽는 버스’에 아이를 위한 책이 많아 고심하며 한 권을 골랐다”고 했다. 김지후 군(15)은 엄마와 함께 ‘책 읽는 버스’에 한달음에 달려왔다. 평소 책 읽는 것을 좋아한다는 김 군은 “뭘 할까 고민했는데 오늘 빌리고 내일 반납할 수 있다는 말에 ‘책 읽는 버스’를 찾았다”며 “캠핑장에서 책을 읽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어 신선하다”고 했다. 아이들이 캠핑장에서 책을 읽는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어 부모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고봉성 스테리움 제천 팀장은 “평소 도시에서 바쁘게 살다 보면 가족이 모여 함께 책 읽는 시간이 거의 없지 않느냐”며 “비가 쏟아지면 캠핑장에서 할 일이 없을 수 있는데 책 읽는 프로그램을 통해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민희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 사무국장은 “부모님이 텐트를 치거나 요리하는 시간에도 아이들이 버스에 와 책을 읽고 놀다 간다”며 “한 명이라도 더 책을 즐기게 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책 읽는 버스’는 이곳에서 24일까지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28일부터 8월 4일까지는 전북 부안군 변산오토캠핑장, 8월 11∼15일은 강원 강릉시 연곡해변솔향기캠핑장을 찾는다.제천=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2-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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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믿음에 대하여’ 출간한 박상영 “이 책은 제 작품세계의 ‘시즌2’입니다”

    박상영 작가(34)에겐 가식이 없다. 그는 솔직하게 살고, 솔직하게 쓴다. 연작소설 ‘대도시의 사랑법’(창비)으로 올 3월 노벨문학상, 프랑스 공쿠르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히는 영국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1차 후보에 올랐을 때 그는 이 소식을 빠르게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렸다. 20일 출간된 연작소설 ‘믿음에 대하여’(문학동네)에서도 감정과 소신을 당당히 드러내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에서 그의 특징이 두드러진다. 자신을 괴롭히는 직장 상사를 향해 “선배님, 사무실 밖으로 좀 나와주시겠어요?”라고 소리치는 인턴사원(단편 ‘요즘 애들’)처럼, 퀴어 커플이라는 사실이 밝혀질까 전전긍긍하며 자신을 옥죄는 애인을 향해 “내가 라푼젤이야?”라고 외치는 주인공(단편 ‘보름 이후의 사랑’)처럼. 21일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인간 박상영으로도, 작가 박상영으로도 최대한 투명해지고 싶다는 욕망이 있다. 나도 인간이라 가면을 쓰지만 겸손한 것보단 솔직한 게 내 스타일 같다”고 웃었다. 그는 2016년 등단 후 3년 만에 젊은작가상 대상을 받고 올해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1차 후보에 오르며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퀴어를 소재로 한 소설을 쓴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폄하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빠른 속도로 빛난 만큼 짙은 어둠을 견뎌야 했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퀴어 팔이한다, 일기 쓴다’며 작품을 무시하던 분들을 향해 가치를 증명한 것 같아 기분이 좋았어요. 내가 쓴 소설이 한국 뿐 아니라 다른 많은 세계(해외)를 포용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아 행복하기도 했습니다.” 신작에 실린 연작 소설 4편은 모두 30대의 삶을 그린다. 지난해 10월 펴낸 장편소설 ‘1차원이 되고 싶어’(문학동네)가 깨질 듯 연약한 10대 청소년의 이야기를 다뤘다면 신작은 지친 삶을 버텨나가는 30대의 고뇌를 다뤘다. 방송사 앵커, 유튜브 영상 편집자, 이태원 자영업자 등 다양한 직업을 다룬 점도 눈에 띈다. 친구나 지인들의 이야기를 취재해 다양한 삶의 경험을 녹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문제를 다루기 위해 예방의학과 전문의에게 문의하고 영국 네이처지를 찾아봤어요. 부동산 급등 시기를 배경으로 삼았기 때문에 부동산 정책 흐름을 공부하기도 했죠. 제가 그동안 써왔던 이야기를 잘 쓸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지만, 그동안 쓰지 않았던 이야기도 잘 쓸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썼습니다. 이 책은 제 작품세계의 ‘시즌2’입니다.” 그의 작품이 다양한 소수자 문제를 품으며 확장하고 있는 것도 눈여겨볼 점이다. 왜 소수자 이야기를 쓰냐고 묻자 그는 진중하게 답했다. “어둡고 사소하고 하찮은 것에 렌즈를 대고 들여다보는 게 문학이에요. 제게 소수자를 재현하는 일은 글쓰기와 동의어입니다. 소수자의 삶을 완전히 보여줄 때까지 계속 글을 쓸 겁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2-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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