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음악은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주죠. 이런 음악의 역할을 탐구하는 데 전염병이 계기가 될 줄은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첼리스트 요요마(65)가 피아니스트 캐스린 스토트(62)와 함께 음반 ‘Songs of Comfort’(위로의 노래)를 내놓았다. 그리그 ‘솔베이그의 노래’에서 영국 민요 ‘대니 보이’, 영화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오버 더 레인보’까지. 클래식과 대중적으로 널리 퍼진 민속음악을 한데 묶었다. 음반은 미국의 코로나19 봉쇄령으로 시작됐다. 요요마는 올해 이른 봄 거의 모든 연주활동이 중단된 뒤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 자택에서 셀프 비디오를 찍기 시작했다. 음반과 같은 ‘Songs of comfort’가 시리즈 제목이 됐고, 세계에서 1800만 명 이상이 시청했다. 이 영상들과 같은 레퍼토리를 담은 음반은 한국에서 11일 발매된다. 요요마를 e메일로 인터뷰했다. “나는 언제나 경계 너머를 보고자 노력합니다. 나라 사이의 국경뿐만 아니라 여러 장르와 전통의 경계를 뛰어넘으려 하죠. 열린 마음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본다면 어디에서나 접점을 발견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서로를 이해하고 이해받으며, 함께 추억을 만들고, 서로에게 위로와 희망을 전해주면 인류는 협력과 이해의 새 시대를 세워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앨범에 실린 곡 가운데 특히 개인적인 추억이나 경험과 관련된 곡을 물었다. “추억이라기보다 드보르자크 신세계 교향곡 2악장의 선율을 딴 ‘Goin′ Home’은 저희 집과 관련이 있습니다. 제 장인은 훌륭한 바리톤 싱어이신데, 90세나 되셨지만 아직도 멋진 목소리로 노래하십니다. 이분의 스승이 유명한 성악가 롤런드 헤이스이고, 그의 스승은 드보르자크의 미국 체재 시절 제자였던 해리 벌리죠.” 드보르자크는 이 선율을 쓸 때 벌리의 목소리를 상상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반주자 캐스린 스토트와 그는 오랜 시간 동안 음악적 동반자로서 함께 호흡을 맞춰 왔다. “함께 연주하기 전부터 오랫동안 좋은 친구 사이였고, 그래서 이번 프로젝트가 더 친밀한 분위기를 띠게 되었습니다. 이번 앨범에 실은 음악들을 캐스린이 주로 골랐다는 사실도 얘기하고 싶군요. 캐스린은 ‘노래는 감정을 담은 작은 캡슐’이라고 말하는데, 이 캡슐들을 가지고 서로 다른 경험을 가진 여러 대륙의 여러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질 수 있는 탁월한 앨범을 구성해냈습니다.” 그는 다시 한국을 방문할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한국은 언제나 제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음악적 고향 중 한 곳입니다. 그때까지, 여러분이 멀리서나마 이 새로운 프로젝트를 통해 위로와 희망을 발견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인간이 다른 개체에 가하는 폭력은 다른 동물 종(種)에 비하면 적다. 아프리카에 사는 유인원 친척들에 비해서도 1%에 못 미치는 정도다. 그러나 인간은 전쟁과 숙청 등을 통해 같은 종을 무참히 살육해 왔다. 이런 이중성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야생 영장류를 연구해왔고 하버드대 인류학과 교수로 재직한 저자는 진화심리학적 관점에서 이 문제를 풀어나간다. 풍부한 예시와 해설이 들어있지만 줄거리는 간명하다. 반응적 공격과 주도적 공격, 길들이기, 사형(死刑) 가설 같은 몇 개의 핵심 개념을 머리에 넣은 뒤에는 책의 전체 구도가 어렵지 않게 다가온다. 반응적 공격이란 ‘화가 나서’ 하는 공격이다. 누군가 내게 욕을 할 때 내 주먹이 나간다면 반응적 공격이다. 주도적 공격은 사전에 계획해서 하는 공격이다. 높은 인지 능력이 필요하며, 막상 공격 시점에서는 침착한 상태일 때가 많다. 길들이기라는 말에서는 가축이 연상된다. 늑대와 개를 비교하면 알 수 있듯이, ‘길들이기 된’ 모든 종은 야생보다 몸이 작고 얼굴이 짧으며 놀랍게도 뇌도 약간 작아진다. 암수 차이는 야생에서보다 줄어든다. 여러 세대에 걸친 인위적 선택의 결과다. 현생 인류는 길들이기 된 종의 이런 특징들에 딱 들어맞는다. 경쟁 종이었던 네안데르탈인과 비교하면 더욱 명백해진다. 진화 과정에서 스스로를 ‘길들인’ 것이다. 길들여진 종은 유순해진다. 즉, 반응적 공격이 줄어든다. 그 이유를 탐구하는 데서 이 책의 논지는 새롭다. 가축을 길들일 때는 공격적인 개체를 배제하거나 죽이고 ‘더’ 유순한 암수를 교배시킨다. 저자에 따르면 인간의 경우도 다를 바 없다. 이 과정에 등장하는 것이 사형 가설이다. 오랜 시간에 걸쳐 인간들은 규범을 파괴하거나 공격적인 자들을 제거해 왔다. 그 결과 유순하고 반응적 공격을 자제하는 오늘날의 인류가 남게 됐다는 설명이다. 이전에는 2년 전 타계한 미국 생물학자 리처드 알렉산더의 ‘평판 가설’이 있었다. 평판 좋은 사람은 사회적으로 성공할 가능성이 높고, 유전자를 후손에 남길 가능성도 높으므로 인류는 덜 공격적으로 진화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저자도 이 설명을 배제하지 않는다. 이 분석에 자신의 사형 가설을 더해 상황을 더 정교하게 설명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반응적 공격은 적은데 어떻게 인간이 높은 레벨의 주도적 공격 수준을 갖게 되었을까. 이 점 역시 ‘공격적이고 규범을 파괴하는 자들에 대한 처벌’과 관계된다. 공격적인 자들을 처단하기 위해 인간은 언어로 모의했고, 연합을 꾀했다. ‘주도적인 연합 공격’은 처형과 전쟁, 학살, 노예제, 약탈, 숙청을 낳았고 사회적 처벌로서 시민사회의 기반이 됐다. 나아가 자신이 처단될 수 있다는 두려움은 집단의 규범에 대한 순응, 즉 도덕성을 강하고 정교하게 진화시켰다는 설명이다. 저자는 이 책이 ‘사형존치론’에 대한 근거로 사용될 것을 염려하며 현대에는 사형제가 폐지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명백히 한다. 그럼에도 ‘우리가 난폭했던 과거를 소중히 한다면, 우리를 인간으로 만든 잔인한 조상들에게 감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최근 들어 진화심리학은 인간 행동과 사회 양태를 설명하는 데 깊은 통찰을 주면서 기존의 설명 도구들을 대체하거나 보완하고 있다. 한편으로 논지에 대한 면밀한 검증이 어렵다는 한계도 있다. 이 책은 이런 미덕과 한계를 함께 보여준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3월 이후 프로그램과 출연진이 대거 교체되는 등 코로나19의 풍랑을 힘들게 헤쳐 온 서울시립교향악단과 KBS교향악단이 2021년 프로그램을 밝혔다. KBS교향악단은 1년 전체 프로그램을, 서울시향은 예년과 달리 ‘유연하고 기민하게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4월까지의 프로그램을 우선 공개했다. 서울시향의 1∼4월 정기공연은 모두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다. 1월 21, 22일 성시연 지휘 모차르트 레퀴엠(진혼미사곡)으로 시작해 여섯 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오스모 벤스케 음악감독은 4월 15, 16일 자신의 장기 프로그램인 시벨리우스의 교향곡 1번을 메인곡으로 선보인다. 4월 21, 22일에는 베토벤 교향곡 1번 등을 지휘한다. 윌슨 응 부지휘자는 2월 18, 19일 힌데미트 교향곡 ‘화가 마티스’ 등을 지휘하고 임동혁이 스크랴빈의 피아노협주곡을 협연한다. 3월 25, 26일에는 최수열 전 서울시향 부지휘자와 소프라노 임선혜가 브리튼 ‘일뤼미나시옹’ 등을 연주하는 무대가 마련된다. KBS교향악단은 2월 4일 안토니오 멘데스가 지휘하는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을 시작으로 12회의 콘서트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연다. 올해 2월 방한했다가 코로나19 확산으로 무대에 오르지 못했던 본 베토벤 오케스트라 음악감독 디르크 카프탄을 비롯해 여성 지휘자 타니아 밀러(5월 28일), 김선욱(7월 29일), 정명훈(8월 26일), 전 음악감독 요엘 레비(9월 17일),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음악감독 얍 판 츠베덴(10월 29일)이 무대에 선다. 지난해 다발성 근경화증에 걸렸다고 밝혀 팬들을 안타깝게 했던 독일 피아니스트 알리스 사라 오트도 11월 19일(지휘자 연주곡 미정) 협연 무대에 오를 예정이어서 눈길을 끈다. 그는 “다발성 근경화증에 대한 치료가 진전된 덕에 계속 무대 활동이 가능하다”고 밝혀왔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원로 성악가 안형일 서울대 명예교수(94·사진)가 7일 이탈리아 정부의 친선공로훈장(Commendatore Ordine della Stella d‘Italia)을 받았다. 친선공로훈장은 이탈리아 정부가 이탈리아와의 협력에 공헌한 외국인에게 수여하는 훈장이다. 안 교수는 1955년 비제 ‘카르멘’ 단카이로 역으로 오페라 무대에 데뷔해 30여 년 동안 한국을 대표하는 오페라 테너로 활동했다. 서울대 교수와 국립오페라단 단장을 지냈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이응광이 부른 캐럴은 따스하다. 뜨겁게 앞으로 쏟아내기보다는 세피아 색조로 유연하게 빛나며 무대 뒤쪽을 돌아 나오는 음색의 매력이 발휘된다. 스위스 바젤 오페라극장 전속 가수인 그가 디지털 캐럴 음반 ‘The Gift’(선물·사진)를 냈다. ‘저 들 밖에 한밤중에’ ‘그 어린 주 예수’ ‘천사들의 노래가’ 등 여덟 곡을 실었다. 피아니스트 다움의 반주가 독특한 색깔을 낸다. 대중음악에서 쓰이는 화음으로 곳곳에 특유의 향을 입혔지만 상의 단추를 딱 하나만 푼 듯, 되바라지지 않은 ‘정돈된’ 재즈풍이다. 다움은 프랑스 보비니 국립음악원에서 하프시코드(피아노의 전신)와 재즈 피아노를 공부했다. 이응광은 이 앨범에 자신이 자란 경북 김천 시골마을의 성탄 새벽송(頌) 분위기가 녹아있다고 말했다. “그 새벽 공기는 지금도 설렘으로 남아 있습니다. 스위스의 크리스마스 시장 저 멀리서 들리던 곡도 선곡했습니다. 언젠가부터 캐럴이 길거리에서 사라졌지만, 우리 모두의 마음에 남아 그때를 추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올 2월 코로나19 위기 초반부터 랜선 콘서트로 팬들과 소통을 이어갔던 그는 9월 스위스 루체른 오페라극장 시즌 개막 공연 ‘세비야의 이발사’ 타이틀 롤인 피가로 역을 맡아 전석 매진의 성황을 이룬 뒤 10월 귀국했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장편 하나를 내놓을 때마다 자국 안팎에서 자신만의 시즌을 만들어온 작가. 1990년대 즈음에는 장편 외 그의 단편집에서 ‘인생의 문장’을 구하는 이도 많았다. 그 시절과 다름없다. 주인공은 착오로 잘못된 약속을 하고, 그렇게 마주친 어색한 환경에서 실마리 없는 인연과 만난다. 전화번호를 적은 쪽지를 잃어버리며 연락이 끊어지는 설정도 낯설지 않다. 찾아 헤매던 것의 자취는 다시 찾아간 곳에서 백일몽처럼 지워진다. 유행음악이나 야구기록, 역사적 사건으로 오래된 시절을 환기하는 습관도 그대로다. 동물이 인격체로 등장하기, ‘중심이 여러 개 있는 원(圓)’ 같은 모호한 관념이 등장하는 점이나, 내러티브를 소진시킨 뒤 특정의 관념들을 머릿속에서 굴려내듯, 후기(後記)처럼 소환하는 방식도 여전하다. 한산한 야구장의 외야석 같은 고적한 공간에 자신을 놓고 시점을 먼 곳으로 보낼 때, 오랜 독자는 항구에서 멀어져가는 중국행 화물선을 바라보던 한 세대 전의 작가를 떠올리게 된다. 한때 자아에 함몰된 심리주의적 일본 소설들이 사소설(私小說)로 불렸다. 본래 의미에서의 일본 사소설은 작가의 경험을 허구화하지 않고 직접 노출시킨다는 점에서 이 작가의 본질과 차이가 있다. 이 책에서 작가가 직접 드러나는 부분은 장편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와 ‘양을 쫓는 모험’이 직접 언급되는 ‘야쿠르트 스왈로스 시집’ 단 한 편이다. 그럼에도 ‘일인칭 단수’라는 제목은 ‘나(私)’라는 대명사를 환기한다. 그의 근작 장편들이 화제를 불러올 때마다 코웃음을 쳐온 사람에게도, 알려진 음악작품을 작가가 언급할 때마다 신랄한 반응을 보여온 이에게도 이 책이 품은 수많은 문장들은 핥아먹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이다. 한 세대 전 그의 단편집에서 인생의 문장을 구했던 사람은 새 책을 이 지면에 소개하는 일인칭 단수(I·私)였던가. 이 작가의 단편들이 그렇듯, 기억은 흔히 모호하거나 삭제된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1. 지휘자로 공식 데뷔한다. 2. 베토벤 후기 3대 피아노 소나타를 연주한다. 3.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와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을 협연한다. 이달 안에 세 개의 공연 무대에 서는 사람이 있다. 바로 피아니스트 김선욱이다. 우선순위를 가릴 수 없는, ‘12월 김선욱 페스티벌’이라 할 만한 무대들이다. 김선욱은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0, 31, 32번 등 후기 세 소나타 연주를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올해 3월, 9월 두 차례 연기했다. 세 번째로 잡힌 연주는 12월 8일 서울 롯데콘서트홀. 격정을 통해 명상으로 이어지는 베토벤의 심오한 후기 소나타 세계를 ‘김선욱표’로 맛볼 기회다. 세 소나타에 앞서 베토벤 중기의 단악장 곡 ‘안단테 파보리’로 콘서트의 문을 연다. 엿새 뒤인 12월 14일에는 김선욱이 롯데콘서트홀에서 KBS교향악단을 지휘한다. 베토벤 에그몬트 서곡과 브람스 교향곡 2번을 지휘하고,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2번에서는 솔로와 지휘를 겸한다. 김선욱은 10년 전인 2010년 영국 왕립음악원 지휘 석사과정에 입학해 음악 팬들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올해 4월 영국 본머스 교향악단을 지휘해 지휘자로 공식 데뷔할 예정이었지만 취소돼 지휘 데뷔 무대를 서울에서 갖게 됐다. 그는 “내게 지휘는 취미가 아니라 장기적으로 갈 길”이라고 밝혀 왔다. 나흘 뒤인 12월 18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는 바이올린 여제(女帝) 정경화와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3곡 전곡으로 호흡을 맞춘다. 20일 경기 성남아트센터 콘서트홀에서도 같은 프로그램으로 공연이 열린다. 김선욱은 1988년생, 정경화는 1948년생으로 마흔 살 차이다. 정경화는 1997년 피아니스트 피터 프랭클과 협연한 브람스 소나타 전집으로 디아파종 황금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지난해에도 피아니스트 케빈 케너와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을 인천, 춘천, 구미에서 연주했다. 2006년 영국 리즈 콩쿠르에서 18세 나이로 최연소 우승하면서 세계무대에 이름을 알린 김선욱은 내년 6월 3∼5일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협연자로 데뷔할 예정이다. 세 차례에 걸쳐 진은숙의 피아노 협주곡을 협연한다.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을 거쳐 북독일 엘필하르모니 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를 맡고 있는 앨런 길버트가 지휘한다. 8일 공연 3만∼10만 원, 14·18일 5만∼12만 원, 20일 4만∼8만 원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유튜브 링크: 12월은 푸치니 오페라 ‘라보엠’의 계절. 4막 중 앞의 두 막이 크리스마스이브를 배경으로 하기에 매년 연말이면 세계 곳곳에서 라보엠이 공연됩니다. 국립오페라단도 1일 광주문화예술회관, 11·12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23·24일 안동문화예술의전당 무대에 라보엠을 올립니다. 라보엠 1막을 들은 청중에게는 4막의 음악도 낯이 익습니다. 여주인공 미미가 아픈 몸으로 연인 로돌포의 하숙방에 돌아오고 친구들은 자리를 피해줍니다. 이때 관현악에 1막의 선율이 차례로 흘러갑니다. 1막에서 하숙생들이 떠들썩하게 장난치던 장면의 음악이 나지막하게 나온 뒤 로돌포와 미미가 사랑에 빠지는 1막 2중창 주요 선율들이 처연하게 흐릅니다. 왜 1막 음악이 다시 등장할까요. 이 장면 직전에 친구들이 나가면서 방이 조용해집니다. 의식이 혼미했던 미미도 정신이 돌아오면서 주위가 눈에 들어옵니다. 떠나 있었지만 낯익은 곳. 연인의 친구들이 법석을 떨며 온갖 유쾌한 분위기를 자아내던 곳이 기억되고 느껴집니다. 연인과의 첫 만남도 떠올랐겠죠. 그렇게 한 여인의 가슴에 흘렀을 장면들을, 푸치니는 1막의 선율을 회상함으로써 애달프게 표현했을 것입니다. 푸치니에게 이렇게 첫 부분의 선율들을 끝막에 소환하는 일은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첫 오페라 ‘빌리’부터 그렇습니다. 앞부분에서 여행의 평안을 기원하는 기도 선율이 후반부에서는 남주인공이 후회 속에 절규하는 선율로 쓰입니다. 작곡가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요. 푸치니는 젊은 시절 독일 작곡가 바그너를 좋아했습니다. 바그너의 ‘유도동기(誘導動機·Leitmotiv)’ 기법에도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유도동기란 특정 인물이나 사건을 묘사하는 짧은 선율적 특징을 말합니다. 지크프리트라는 인물이 등장할 때 나왔던 선율이나 음악적 동기가 다시 나오면 ‘지크프리트가 또 나오겠구나’라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푸치니도 여기서 영향을 받았지만 반드시 어떤 선율이 인물이나 사건에 일대일로 대응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단지 앞에 나온 선율을 다시 등장시키는 것만으로도 앞 장면에 나왔던 사건이나 분위기를 다시 불러내는 데 효과적이었습니다. 이는 푸치니가 사랑한 극의 줄거리와도 관계가 있습니다. 빌리, 라보엠, ‘나비부인’ 등 그의 대표작은 ‘푸치니 공식’이라 부를 만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①1막에서 주인공 남녀가 사랑에 빠진다. ②사랑에 위기가 닥치고 남자는 무책임하거나 무능력하다. ③긴 이별의 시간이 지난다. ④남녀는 (대부분 1막과 같은 장소에서) 다시 만나지만 여주인공은 병이나 배신의 상처로 삶을 마감한다. 푸치니는 이런 줄거리를 펼쳐낼 때 가슴 아픈 후반부에서 1막에 나왔던 행복한 장면들의 음악을 다시 불러내 그사이 흐른 시간과 아픈 현실을 실감시키며 눈물을 이끌어냅니다. 이 때문에 푸치니는 ‘단테의 충실한 후배’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에서 푸치니보다 여섯 세기 앞서 살았던 단테는 ‘신곡’ 지옥 편 등장인물 프란체스카의 입을 빌려 “괴로운 현재 속에서 행복했던 과거를 회상하는 것만큼 슬픈 것은 없습니다”라고 말합니다. 푸치니가 마지막 막에서 첫 막의 동기들을 회상하며 과거의 행복을 대조시키는 기법은 이 프란체스카의 독백을 상기시킵니다. 라보엠은 푸치니의 이런 공식이 효과적으로 발휘된 작품이었습니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방사성 물질은 반감기(半減期)가 있다. 초기의 강력한 영향은 점차 지표와 대기에 흩어지고 옅어진다. 그러나 그 장기적인 영향도 위험하기는 다를 바 없다. 이 책의 구성도 그렇다. 앞 장은 1986년 8월 일어난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의 치명적인 폭발 현장으로 바로 진입한다. 이어 현장에 남아 삶을 이어간 사람들, 현장 부근의 자연과 생태, 사태를 축소하기 급급했던 소비에트의 관료들과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추한 모습을 차례로 비추며 ‘저준위’ 충격으로 독자를 인도한다. 양모 공장이 있는 체르니고프(체르니히우)는 사건 발생지에서 멀었다. 사건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예전에 없던 규모의 양털이 밀려들어 오기 시작했다. 양털 가공 노동자들은 이상한 증상에 시달렸다. 원전 폭발 이후 오염 지역의 양들을 살(殺)처분하면서 양털을 이곳으로 보낸 것이다. 소련 당국은 죽인 동물의 털과 가죽은 물론이고 고기까지 갈아 오염되지 않은 고기와 섞은 뒤 소시지를 만들었다. 소련 정치국은 그들의 명예와 전력 손실을 우선 걱정했다. 피폭된 사람들에 대한 고려는 그 뒤였다. 모스크바가 파견한 기상 전문가 유리 이즈라엘은 오염된 땅으로 사람들이 빨리 돌아오도록 독려했다. 그는 이후 러시아 푸틴 정부에서 기후변화를 부인하는 일을 맡고 있다. 피해는 우크라이나와 인접한 북쪽의 벨라루스(당시 벨로루시)에서 심각했다. 체르노빌은 두 나라의 접경지역에 가까웠지만 벨라루스는 사건 수습의 결정 과정에서 제외됐고 모든 조치가 늦어버렸다. 지난해 제작된 미영 합작 드라마 ‘체르노빌’이 지구 곳곳에서 시청자를 끌어모았다. 드라마의 주역인 발레리 레가소프는 이 책에 딱 한 번 등장한다. 소련이 위험한 RBMK 원자로를 계속 지어댄 이유가 ‘플루토늄 확보’인 점을 정치국 회의에서 언급하는 역할이다. 미국 역사학자인 저자는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 러시아를 거듭 찾아 방대한 자료를 추적했다. 기밀 문건 파기를 막기 위해 분투한 선배 추적자들에 대한 감사도 잊지 않는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세계에서 한국 성악도는 평판이 높죠. 그래도 이 정도까지 뛰어날 줄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1990년대 이후 미국을 대표하는 메조소프라노 제니퍼 라모어(62)가 올 2학기부터 서울대 음대 성악과 교수로 임용돼 강의하고 있다. 라모어는 1992년 헨델 오페라 ‘줄리오 체사레’ 시저 역으로 그래머폰상을, 2007년 훔퍼딩크 오페라 ‘헨젤과 그레텔’의 헨젤 역으로 그래미상을 받았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폐막식에서는 올림픽 찬가를 불렀다. 세계적 무대에서 활동한 라모어 같은 중량급 성악가가 서울대 교단에 선 것은 주요 콩쿠르 등 약진하는 클래식 한류의 파워를 입증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지난해 이탈리아 페루자 음악축제에서 마스터클래스를 열었는데 서울대 서혜연 교수(소프라노)가 제자를 데려와 친해졌죠. 서울대에 오라고 제안하셔서 놀랐습니다. 30여 년간 레슨을 했지만 ‘직장 상사’가 있는 곳에 매일 출근하는 건 생각해 보지 않았기 때문이죠.”(웃음) 더블베이스 연주가인 남편 다비데 비토네가 ‘당신은 교습에 열정이 크다. 언젠가는 무대 활동을 끝내고 가르치는 일에 전념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결정한 뒤엔 지루한 서류 작업의 연속이었죠. 올 초 코로나19 사태가 일어나 무대 활동이 중단됐는데 서울로 오는 준비를 하기엔 좋았습니다.” 서울에서 그는 매일 행복하게 눈을 뜬다고 했다. “동료 교수님들이 정이 많아요. 늘 함께 식사하고 얘기꽃을 피우며 지냅니다.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도 기본적인 자질이 훌륭한 데다 모든 일에 열심입니다. 왜 세계가 한국 성악계에 주목하는지 알겠어요.” 그는 1999년 소프라노 홍혜경과 듀오 음반 ‘Bellezza Vocale(목소리의 아름다움)’을 발매하며 “홍혜경은 나와 가장 잘 어울리는 목소리”라고 밝혔다. 2000년 LG아트센터에서 홍혜경과 듀오 콘서트를 가졌다. 2001년 내한 독창회를 열 계획이었지만 9·11테러로 취소됐다. 2004년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홍혜경과 친구들’ 콘서트에도 출연했다. “14년 전 파리로 이주한 뒤 혜경과 연락한 지 오래되어서… 서울에 온다고 미처 알리지 못했네요.” 한국 팬들의 따뜻함과 열정은 늘 머리에 남아 있었다고 했다. “2000년 공연이 끝난 뒤 사인을 기다리는 팬들의 긴 줄을 보면서 혜경과 얘기했죠. ‘늘 이런 식이면 노래를 더 열심히 즐겁게 잘할 수 있겠네’라고.” 그는 남편이 참여하는 현악5중주단 ‘오퍼스 파이브’와 자주 연주를 펼쳐 왔다. 내년 남편이 오면 한국인 연주자들과 함께 한국판 ‘오퍼스 파이브’ 콘서트를 열 예정이라고 밝혔다. 2015년 오페라 무대의 일화들을 엮은 저서 ‘목소리(Una Voce)’도 한국어 번역이 진행 중이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불꽃놀이처럼 휘황한 기교가 난무하는 리스트의 연습곡보다, 깃털에서 강철을 오가는 강약 변화에 ‘커다란 손’까지 필요한 라흐마니노프의 협주곡보다 어려운 피아노곡이 모차르트의 소나타들이다. 이 말은 피아니스트들에게 전설이자 정설이다. 모차르트의 피아노곡은 타건(打鍵)과 분절법(프레이징)의 정교함을 낱낱이 드러내며, 천진함의 표면 아래 숨은 기쁨과 비애까지 표현해야 한다. 피아니스트 선우예권(31)이 2017년 밴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 이후 처음으로 스튜디오 녹음 앨범(사진)을 내놓았다. ‘모차르트’라는 간명한 타이틀에 모차르트의 소나타 8, 10, 11, 13, 16번과 환상곡 두 곡, 론도 K 511 등을 담았다. 두 장으로 이루어진 앨범은 ‘하얀’ 1번 CD가 비교적 밝고 명징한 작품을, ‘검은’ 2번 CD가 (‘쉬운 소나타’ K 545를 제외하면) 한층 내면적이고 심각한 세계를 담았다. 단조 환상곡 두 곡과 유난히 심각한 소나타 8번, 론도 a단조다. 선우예권은 “모차르트 음악은 단순하고 깔끔한 캐릭터뿐 아니라 굉장한 드라마가 가득하다”고 말한다. 앞 CD에서 뒤로 진행되면서 그 드라마들이 모습을 드러내는 셈이다. 모차르트의 드라마를 19세기 낭만주의적으로 해석하는 흔한 오류에서 선우예권은 살며시 벗어난다. 강약의 다이내믹을 절제했고, 특이한 표정으로 경탄을 자아내려 하지 않는다. 분절법은 비교적 긴 호흡으로 이어가지만 낭만주의 작품처럼 길어지지 않는다. 안쪽 성부의 균형을 잘 잡아 속을 잘 채우면서 선율과 베이스의 ‘놀이’를 방해하지 않는다. 이 앨범에는 부록이 있다. 끝 곡인 론도 K 511 악보에 연주자 자신이 연필로 메모한 ‘특별한’ 악보다. 연필 선의 느낌을 살려 인쇄했다. 앞부분 일곱째 마디의 장식음에 선우예권은 ‘노래하듯이, 그러나 지나치게 낭만(주의)적이지 않게’, 중간부 앞쪽 악상이 고조되는 부분의 포르테(f) 기호에는 ‘기호를 글자 그대로만 해석하지 말자, 포르테(강하게)나 피아노(여리게)는 수많은 의미와 소리의 층을 담고 있다’고 메모했다. 작품 해석을 넘어 이 앨범에 담은 여러 특징에 대한 힌트를 주는 셈이다. 녹음은 8월 독일에서 진행됐다. 마이크를 악기에서 다소 떨어뜨린 것 같다. 느리고 고요한 악구에선 미세한 저역의 마찰음이 들려 종종 집중을 떨어뜨린다. 최근 소속 기획사를 마스트미디어로 옮긴 선우예권은 12월 30일 광주문화예술회관을 시작으로 대전 부산 대구 서울 서귀포에서 모차르트 앨범 발매 기념 공연을 연다. 서울에서는 내년 1월 26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연주한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에스메 콰르텟의 소리는 ‘여성 4중주단’이라는 통념을 깰 만큼 매우 파워풀해요. 저희의 힘을 감당할 수 있는 홀에서 계속 연주하게 돼 기쁩니다.”(배원희·에스메 콰르텟 리더) 코리안챔버오케스트라(KCO·리더 김민)와 현악4중주단 에스메 콰르텟이 서울 롯데콘서트홀과 숨결을 맞춘다. 두 악단은 롯데콘서트홀의 인하우스 아티스트(in-house artist)로 지정돼 이번 주를 시작으로 내년까지 각각 세 차례의 콘서트를 펼쳐 나갈 예정이다. KCO는 1965년 ‘서울 바로크 합주단’으로 창단돼 55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국내 대표 실내악단이다. 에스메 콰르텟은 권위 있는 음악축제로 꼽히는 스위스 루체른 페스티벌에 지난해 데뷔한, 세계에서 가장 활동적인 현악4중주단이다. 인하우스 아티스트는 연주단체가 일정 기간 특정 연주회장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상주(常駐)음악가를 뜻한다. 롯데콘서트홀은 2022년부터 1년 단위로 매년 인하우스 아티스트를 선정해 함께 활동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에스메 콰르텟은 28일 하이든 현악4중주 29번과 드보르자크 현악4중주 13번, 베토벤 현악4중주 8번 ‘라주몹스키 2번’으로 시리즈 첫 회를 맞이한다. 23일 오전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들은 ‘라주몹스키 2번’의 활달한 행진곡풍 마지막 악장을 연주하며 분위기를 띄워 올렸다. 리더인 바이올리니스트 배원희는 “라주몹스키 2번은 에스메 콰르텟 활동의 도약을 이룬 2018년 위그모어 콩쿠르 우승 당시 베토벤상을 안겨준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KCO는 이틀 앞선 26일 비발디 ‘사계’(바이올린 신지아)와 버르토크 ‘루마니아 춤곡’ ‘현을 위한 디베르티멘토’로 첫 무대를 마련한다. KCO는 내년 3월 11일과 7월 2일, 에스메 콰르텟은 5월 11일과 16일에 두 차례의 무대를 더 갖는다. 롯데콘서트홀 사업기획파트 이미란 책임은 “롯데콘서트홀은 대규모 관현악을 소화할 수 있는 크기이지만 개관 초기 노부스 콰르텟, 암스테르담 바로크 오케스트라 콘서트 등을 통해 ‘풍부한 울림으로 실내악의 정수를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인정받아 왔다”고 말했다. 배원희는 “무대 위에서 서로의 소리를 민감하게 들을 수 있어 연주하기 매우 편한 공간”이라고 덧붙였다. 에스메 콰르텟은 롯데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는 장미셸 바스키아 회고전에서 24일 오후 8시 시닛케의 현악4중주 3번 2악장 등을 연주한다. 26일 KCO 콘서트 5만∼9만 원, 28일 에스메 콰르텟 콘서트 4만∼7만 원.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1931년 4월, ‘여명(黎明)’으로 불리던 중국 공산당 고위급 스파이 구순장이 국민당 군에 체포된다. 그는 잡히자마자 바로 전향을 선언하고 공산당 지도자들의 은신처를 비롯한 모든 정보를 제공하기로 약속한다. 그 직후 상하이에 있던 공산당 주요 인사 대부분이 모습을 감춘다. 난징의 국민당 정보기관에 타전된 암호를 가장 먼저 해독한 인물은 바로 공산당의 이중 스파이 첸좡페이였던 것이다. 중국 공산당이 궤멸될 뻔했던 역사는 오랜 시간 정체를 숨긴 스파이에 의해 이렇게 뒤바뀐다. 며칠 뒤, 상하이의 구순장 집에 ‘아는 청년들’이 찾아온다. 구순장의 가족들은 반가워했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청년들은 집 주인 가족과 이웃 등 아홉 명을 순식간에 밧줄로 처치했다. 끔찍한 이 참극을 지휘한 인물은 중국 공산당 정보조직의 초기 설계자이자 훗날 총리가 되어 세계에 ‘온화한 지도자’로 각인된 저우언라이였다. 오늘의 ‘신(新)중국’은 바야흐로 스파이 이야기에 빠져 있다. ‘위장자(僞裝者)’ ‘마작’ 등 중일전쟁기의 첩보물이 영화와 드라마로 제작되어 대륙을 매료시킨다. 2017년에는 베이징의 한 호텔에서 ‘스파이전선 90주년 기념대회’가 열려 비밀 요원들의 후손들이 집안에서 전해져온 영웅담을 나눴다. 중국의 달라진 위상과 자부심이 과거의 은밀했던 이야기를 양지로 끌어내는 것이다. 책은 3부로 구성됐다. 1부에서는 국민당, 공산당, 중국의 친일 괴뢰정권 등 3자가 긴박한 첩보전을 펼친 20여 년의 역사를 조감한다. 국민당에선 정식 기구인 ‘중통’과 군 첩보조직인 ‘군통’이 두 갈래로 첩보 업무를 펼쳤다. 1934년 국민당이 공산당을 토벌하면서 군통의 역할이 중통을 누르기 시작한다. 1940년대 군통과 중통의 대립은 국민당 첩보 활동의 약화를 가져온다. 2부에서는 스파이들의 천국과 지옥이었던 도시, 상하이에 초점을 맞춘다. 왜 유독 상하이에서 첩보 활동이 치열하게 전개됐을까. 상하이는 열강이 조계지(租界地)를 둔 ‘중국 속의 세계’였다. 조계지마다 행정권과 재판권이 있었다. 숨어야 하는 자는 누구나 상하이로 숨어들었다. 3부는 첸좡페이를 비롯해 중국의 역사를 바꾼 전설적 스파이 7명을 소개한다. 1947년 3월 국민당 군의 옌안 폭격으로 홍군(紅軍)은 위기를 겪는다. 그러나 국민당 군이 옌안에 진입했을 때 도시는 텅 비어 있었고 마오쩌둥이 남겨둔 조롱의 시 한 수만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국민당군의 총지휘관인 후쭝난의 부관 슝샹후이가 홍군의 스파이였던 것이다. 슝샹후이는 미국 유학까지 마친 뒤 1949년 공산화된 중국으로 귀국하고, 1972년 미국 닉슨 대통령의 중국 방문에 큰 역할을 했다. 13년 동안 장제스의 속기사로 일하며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마오쩌둥에게 전달한 선안나의 일화도 사뭇 흥미진진하다. 저자는 대만 국립정치대학 동아연구소에서 중국 공산당 정치엘리트에 관한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책에 등장하는 지명과 인명은 대부분 처음 등장할 때만 중국어 발음을 병기하고 이후 우리말 한자 발음으로 표기했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유튜브 링크: 연말이면 곳곳에서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이 울려 퍼집니다. 올해도 19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리는 함신익 지휘 심포니송의 콘서트를 포함해 여러 ‘합창교향곡’ 콘서트가 열릴 예정입니다. 이 곡을 작곡한 루트비히 판 베토벤(사진)을 상상 속의 인터뷰로 만나 보았습니다. ―안녕하십니까. 한 달 앞으로(12월 17일) 다가온 탄생 250주년을 미리 축하드립니다. ‘환희의 송가’에는 ‘기쁨의 마법은 관습이 굳게 갈라놓았던 것을 다시 묶어주어 모든 인간은 형제가 된다’는 유명한 구절이 있습니다. 19세기 초 당시 어떤 배경에서 이런 곡을 쓰셨습니까. “당시는 유럽이 나폴레옹 전쟁의 악몽에서 벗어나 치유를 모색하던 시기였습니다. 자유 평등 박애의 이상을 표방했던 세력이 침략군이 되는 현실을 우리는 목격했습니다. 증오로는 인류가 행복을 향해 다가갈 수 없었죠.” ―이 작품의 핵심 메시지는 ‘인류가 서로 차별하지 말고 화합하자’는 것이겠죠. “당시 지식인과 예술가들은 계몽주의의 강한 영향력 아래 있었습니다. 인간이 어리석음에서 깨어나 이성으로 해방될 수 있다는 믿음, 인류는 발전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죠. 그 결과 ‘이상적인 인간은 무엇인가’가 중요했습니다. ‘환희의 송가’를 쓴 실러도 이상적인 인간을 이렇게 표현했죠. ‘의무와 취향이 하나가 된 사람’이라고.” ―의무와 취향이 하나? “옳은 일을 하면 즐거운 사람, 그런 사람이 바로 이상적인 인간의 단계에 이르렀다는 뜻이었어요. 실러 희곡의 정의로운 주인공, 내 오페라 ‘피델리오’나 괴테의 극에 곡을 붙인 ‘에그몬트’ 주인공도 이런 범주의 사람들이었죠.”―‘환희의 송가’가 주는 메시지는 그런 것과는 다르지 않나요. “당시 ‘이상적인 인간’을 탐구하는 일은 ‘투 트랙’으로 이뤄졌어요. 하나는 ‘이상적인 개인은 어때야 하는가’, 또 하나는 ‘이상적인 인류 전체는 어때야 하는가’라는 거였죠. 그 시대 예술가들은 개인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해 인류와 사회에 대한 관심으로 시선을 확대했죠. 괴테 ‘파우스트’의 주인공도 젊음을 찾겠다며 영혼을 팔았지만 그가 최고의 희열을 느낀 순간은 대규모 간척으로 수많은 사람이 행복하게 사는 것을 봤을 때였어요.” ―베토벤 선생님께서 그린 완성된 개인의 모습은 오페라 ‘피델리오’를 참고하면 되겠죠. “제가 ‘환희의 송가’를 쓰기 전에 이 작품과 대칭되게, ‘완성된 개인’을 그려본 작품이 있습니다. 38세 때 쓴 ‘합창환상곡(코랄판타지)’이죠. 젊어서는 완성된 개인의 이상을 ‘합창환상곡’에 담았고, 이어 완성된 인류는 어떻게 표현할지 모색하다가 ‘합창교향곡’을 썼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그 합창환상곡에 표현하신 이상적인 개인은 어떤 모습입니까. “한 부분만 들자면, ‘행복한 자는 외면적으로는 평온하고 내적으로는 희열이 지배하는 자로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환희의 송가’에 나오는 이상적인 인류와도 비슷하네요. ‘희열’과 ‘환희’를 강조했으니까요. 올해 인류는 코로나19로 위기를 맞았지만 아직도 화합과는 머리가 멉니다. 조언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제가 살던 세상에 비하면 훨씬 자유롭고 권리를 누리게 된 개인이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행복을 마음껏 행사하십시오. 때로 뒷걸음치기도 하고 때로 앞을 못 보기도 하지만, 그래도 저 같은 옛사람의 눈으로 볼 때 인류는 계속 앞으로 나아갈 것입니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유튜브 링크 : 연말이면 곳곳에서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이 울려 퍼집니다. 올해도 19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리는 함신익 지휘 심포니송의 콘서트를 포함해 여러 ‘합창교향곡’ 콘서트가 열릴 예정입니다. 이 곡을 작곡한 루트비히 판 베토벤을 상상 속의 인터뷰로 만나 보았습니다. - 안녕하십니까. 한 달 앞으로(12월 17일) 다가온 탄생 250주년을 미리 축하드립니다. ‘환희에의 송가’에는 ‘기쁨의 마법은 관습이 굳게 갈라놓았던 것을 다시 묶어주어 모든 인간은 형제가 된다’라는 유명한 구절이 있습니다. 19세기 초 당시 어떤 배경에서 이런 곡을 쓰셨습니까? “당시는 유럽이 나폴레옹 전쟁의 악몽에서 벗어나 치유를 모색하던 시기였습니다. 자유 평등 박애의 이상을 표방했던 세력이 침략군이 되는 현실을 우리는 목격했습니다. 증오로는 인류가 행복을 향해 다가갈 수 없었죠.” - 이 작품의 핵심 메시지는 ‘인류가 서로 차별하지 말고 화합하자’는 것이겠죠? “당시 지식인과 예술가들은 계몽주의의 강한 영향력 아래 있었습니다. 인간이 어리석음에서 깨어나 이성으로 해방될 수 있다는 믿음, 인류는 발전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죠. 그 결과 ‘이상적인 인간은 무엇인가’가 중요했습니다. ‘환희에의 송가’를 쓴 실러도 이상적인 인간을 이렇게 표현했죠. ‘의무와 취향이 하나가 된 사람’이라고.” - 의무와 취향이 하나? “옳은 일을 하면 즐거운 사람, 그런 사람이 바로 이상적인 인간의 단계에 이르렀다는 뜻이었어요. 실러 희곡의 정의로운 주인공, 내 오페라 ‘피델리오’나 괴테의 극에 부친 ‘에그몬트’ 주인공들도 이런 범주의 사람들이었죠.” - ‘환희에의 송가’가 주는 메시지는 그런 것과는 다르지 않나요? “당시 ‘이상적인 인간’을 탐구하는 일은 ‘투 트랙’으로 이뤄졌어요. 하나는 이상적인 개인은 어때야 하는가, 또 하나는 이상적인 인류 전체는 어때야 하는가라는 거였죠. 그 시대 예술가들은 개인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해 인류와 사회에 대한 관심으로 시선을 확대했죠. 괴테 ‘파우스트’의 주인공도 젊음을 찾겠다며 영혼을 팔았지만 그가 최고의 희열을 느낀 순간은 대규모 간척으로 수많은 사람이 행복하게 사는 것을 봤을 때였어요.” - 베토벤 선생님께서 그린 완성된 개인의 모습은 오페라 ‘피델리오’를 참고하면 되겠죠? “제가 ‘환희에의 송가’를 쓰기 전에 이 작품과 대칭되게, ‘완성된 개인’을 그려본 작품이 있습니다. 38세 때 쓴 ‘합창환상곡(코랄판타지)’죠. 젊어서는 완성된 개인의 이상을 ‘합창환상곡’에 담았고, 이어 완성된 인류는 어떻게 표현할지 모색하다가 ‘합창교향곡’을 썼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 그 합창환상곡에 표현하신 이상적인 개인은 어떤 모습입니까?“한 부분만 들자면, ‘행복한 자는 외면적으로는 평온하고 내적으로는 희열이 지배하는 자로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 ‘환희에의 송가’에 나오는 이상적인 인류와도 비슷하네요. ‘희열’과 ‘환희’를 강조했으니까요. 올해 인류는 코로나19로 위기를 맞았지만 아직도 화합과는 머리가 멉니다. 조언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제가 살던 세상에 비하면 훨씬 자유롭고 권리를 누리게 된 개인이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행복을 마음껏 행사하십시오. 때로 뒷걸음치기도 하고 때로 앞을 못 보기도 하지만, 그래도 저 같은 옛사람의 눈으로 볼 때 인류는 계속 앞으로 나아갈 것입니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40세기 전, 평생을 힘자랑으로 보낸 메소포타미아 왕은 즉위 37년째 나라 주위에 방벽을 쌓았다. 책은 인류 역사에 수시로 등장하는 수많은 ‘벽’을 다루고 있다. 서문에서 저자는 지금까지의 역사가들이 장벽에 관심이 없었다고 불평한다. 그러나 ‘인류 역사의 모습을 결정하고 그 과정에서 많은 의문을 낳은’ 장벽들을 열거하는 것만이 저자의 목적은 아니다. 그의 목표는 ‘장벽의 놀라운 영향력을 탐구하는 문명사’다. 문명 이래 장벽의 대명사인 중국의 만리장성에서도, 아테네의 성벽이나 로마인들의 장벽에서도 이를 건설한 민족은 생산력이 높은 지역의 ‘문명인’이었다. 중국인들은 북쪽의 삭막한 지역을 정복하려 하지 않았고 로마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장벽 바깥 ‘삭막한’ 땅 부족들은 공포스러운 전사로 자라났다. 일단 만들어진 장벽의 존재는 그 안팎 민족의 성향을 좌우했다. 아테네는 5세기 중반에 건설한 성벽으로 절정을 이뤘고 외부 공격을 받을 때도 연극 상연을 그치지 않았다. 스파르타는 미케네인의 ‘유약한’ 방벽을 비웃고 벽 쌓기를 거부했으며 그 결과 한층 호전적인 성향을 갖게 됐었다. 로마 문인들은 곳곳에 ‘뻗어나가는’ 도구인 다리를 지은 트라야누스 황제를 칭송했고 장벽을 쌓은 하드리아누스 황제를 비웃었다. 그러나 로마에 더 장기적 이득을 가져다준 것은 하드리아누스의 벽이었다. 로마 후기 이민족의 잦은 침입은 도시의 쇠퇴를 불러왔다. 로마인들은 도시의 멀쩡한 건물을 허물어 방벽을 쌓았지만 방어 비용의 증가가 제국 경제의 몰락을 가져왔다. 용병을 얻기 위해 고트족의 이주를 허용했지만 허가받고 들어온 고트족은 득실을 따져본 뒤 ‘문명계’를 짓밟았다. 진(秦)나라 이후 만리장성을 방어선으로 삼았던 중국은 가장 적나라한 ‘벽의 영향’을 보여준다. 몽골족의 침입으로 인구 절반을 잃는 참화를 겪은 뒤 원나라를 몰아내고 중국인 왕조를 복원한 명 태조 주원장은 이후 황제들에게 ‘정복하지 마라, 강력한 수비를 유지하라’고 훈계했다. 하지만 1449년 명 정통제가 친정에 나섰다가 몽골군에 사로잡힌 ‘토목의 변’이 발생했고, 중국은 한층 더 수비적으로 변했다. 대항해 시대에 중국에 온 서양 상인들은 유별나게 방어적인 중국의 국가 정책을 이해할 수 없었다. 저자는 인도-파키스탄 사이에 놓인 장벽, 그리스-터키 사이의 장벽, 4년 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과 함께 세계인의 관심을 받은 미국-멕시코 간 장벽도 언급하지만 역사 속의 장벽과 뚜렷한 연계점을 시사하는 데는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하다. 그래도 변하지 않는 사실이 있다. 문명인이라고 자부하는 집단은 ‘장벽 안’의 세계에서 안전하다고 생각하며 우월감을 확보해 왔다. 그러면서 내심 ‘벽 밖’ 집단의 원시성에도 호기심과 찬미를 그치지 않았다. 원제 ‘Walls: A History of Civilization in Blood and Brick(장벽들: 피와 벽돌의 문명사·2018년)’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올해 꿈의 무대인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메트)에 훔퍼딩크 ‘헨젤과 그레텔’의 그레텔 역으로 주역 데뷔할 예정이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으로 취소되자 ‘그럴 수 있겠군’ 했다. 이어 메트의 모차르트 ‘돈조반니’ 체를리나 역 출연도 취소됐다. “그땐 진심으로 마음 아팠죠.” 도이체 그라모폰(DG) 데뷔 앨범 녹음도 독일에서 오케스트라 모임이 금지되면서 표류했다. 기적적으로 오스트리아로 옮겨 녹음했다. 팬데믹 와중에 DG가 처음 발매한 앨범이었다. 5월에는 DG의 온라인 콘서트 ‘악흥의 순간’에서 나운영 곡 ‘시편 23편’을 불러 ‘아름다운 한국 노래’를 알렸다. 소프라노 박혜상(32)의 2020년이다. 데뷔 앨범 ‘I am Hera’ 발매와 20일 서울 롯데콘서트홀 리사이틀을 앞두고 10일 마련한 기자간담회에서 박혜상은 “할 일을 하면서 곁의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오페라로 따지면 수브레트(Soubrette) 역할이 좋다”고 말했다. 수브레트란 오페라에서 꾀가 많고 기지가 충만한 여성으로 줄거리 진행을 보조하는 역할을 뜻한다. “지난해 영국 글라인드본 오페라 축제에서 로시니 ‘세비야의 이발사’ 여주인공 로지나 역을 맡았어요. 로지나는 부와 명예보다 자기가 진정 원하는 걸 추구하는 여성입니다. 이 공연을 본 DG의 클레멘스 대표께서 ‘지금까지 본 로지나 중 세 손가락 안에 꼽겠다’고 하시더군요.” 그는 간담회에 들어가며 ‘시편 23편’과 ‘세비야의 이발사’ 중 ‘방금 들린 그 목소리’ 등을 노래했다. 공명점이 높고 가벼운 목소리의 전통적 수브레트보다 한층 ‘보디가 탄탄한’ 음성이었다. ‘세비야…’의 최저음도 악보 그대로 소화했다. ‘시편 23편’의 절정에서 지르는 포르티시모는 귀에 울려오는 압도감이 충분했다. 어떤 노래든 잘 소화해낼 음성이다. 그는 “내 목소리는 리릭(서정적) 소프라노이지만 나중에는 더 드라마틱(극적)한 역할도 소화할 수 있다는 말을 듣는다. 지금 즐거운 마음으로 마음에 드는 역할을 하면 훗날 다른 레퍼토리가 열릴 때 지루하지 않게 새로운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예명 ‘헤라(Hera)’는 신화에서 가정과 여성을 관장하는 ‘도움 충만한’ 여신이면서 가장 강력한 여신이기도 하다. 20일 공연에서 그는 앨범에 수록된 퍼셀, 글루크, 로시니 등의 오페라 아리아와 김주원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같이’를 노래한다. 앨범에는 ‘시편 23편’도 수록했다. 그는 “내 자유로운 정신을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는 노래가 한국 가곡이다. 세계에 의욕적으로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3만∼10만 원.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올해 꿈의 무대인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메트)에 훔페르딩크 ‘헨젤과 그레텔’의 그레텔 역으로 주역 데뷔할 예정이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으로 취소되자 ‘그럴 수 있겠군’ 했다. 이어 메트의 모차르트 ‘돈조반니’ 체를리나 역 출연도 취소됐다. “그땐 진심으로 마음 아팠죠.” 도이체 그라모폰(DG) 데뷔 앨범 녹음도 독일에서 오케스트라 모임이 금지되면서 표류했다. 기적적으로 오스트리아로 옮겨 녹음했다. 팬데믹 와중에 DG가 처음 발매한 앨범이었다. 5월에는 DG의 온라인 콘서트 ‘악흥의 순간’에서 나운영 곡 ‘시편 23편’을 불러 ‘아름다운 한국 노래’를 알렸다. 소프라노 박혜상(32)의 2020년이다. 데뷔 앨범 ‘I am Hera’ 발매와 20일 롯데콘서트홀 리사이틀을 앞두고 10일 마련한 기자간담회에서 박혜상은 “할 일을 하면서 곁의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오페라로 따지면 수브레트(Soubrette) 역할이 좋다”고 말했다. 수브레트란 오페라에서 꾀가 많고 기지가 충만한 여성 역할을 뜻한다. “지난해 영국 글라인드본 오페라 축제에서 로시니 ‘세비야의 이발사’ 여주인공 로지나 역을 맡았죠. 이 공연을 본 DG의 클레멘스 대표께서 ‘지금까지 본 로지나 중 세 손가락 안에 꼽겠다’고 하시더군요. 로지나는 부와 명예보다 자기가 진정 원하는 걸 추구하는 여성입니다.” 그는 간담회에 들어가며 ‘시편 23편’과 ‘세비야의 이발사’ 중 ‘방금 들린 그 목소리’ 등을 노래했다. 공명점이 높고 가벼운 목소리의 전통적 수브레트보다 한층 ‘보디가 탄탄한’ 음성이었다. ‘세비야…’의 최저음도 악보 그대로 소화했다. ‘시편 23편’의 절정에서 지르는 포르티시모는 귀에 울려오는 압도감이 충분했다. 어떤 노래든 잘 소화해낼 음성이다. 그는 “내 목소리는 리릭(서정적) 소프라노이지만 나중에는 더 드라마틱(극적)한 역할도 소화할 수 있다는 충고를 듣는다. 지금 즐거운 마음으로 마음에 드는 역할을 하면 훗날 다른 레퍼토리가 열릴 때 지루하지 않게 새로운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예명 ‘헤라(Hera)’는 신화에서 가정과 여성을 관장하는 ‘도움 충만한’ 여신이지만 가장 강력한 여신이기도 하다. 20일 공연에서 그는 앨범에 수록된 퍼셀, 글룩, 로시니 등의 오페라 아리아와 김주원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같이’를 노래한다. 앨범에는 5월 온라인 콘서트에서 찬사를 받은 ‘시편 23편’도 수록했다. 그는 “내 자유로운 정신을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는 노래가 한국 가곡이다. 세계에 의욕적으로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gustav@donga.com}

제4회 동아주니어음악콩쿠르 본선 경연이 9, 10일 서울 서초구 서울교대 음악관 콘서트홀에서 열렸다. 동아일보사가 주최하고 동아꿈나무재단과 서울교대, 라율아트홀이 후원한 이번 콩쿠르는 초등, 중등, 고등부의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플루트 부문으로 치러졌다. 이번 콩쿠르에는 이달 2∼4일 열린 예선을 거친 47명이 본선에 올랐고 각 부문 1위 11명 등 28명이 수상했다. 고등부 각 부문 최상위 수상자에게는 서울 서초구 라율아트홀이 제공하는 무료 독주회 특전이 제공된다. 초등부 바이올린 1위를 수상한 김가은 양(12·흑석초 6학년)은 “과제곡 해석에 필요한 메모를 꼼꼼히 적어두고 하루 아홉 시간씩 열심히 연습해 좋은 결과를 얻은 것 같다”며 기뻐했다. 이번 콩쿠르 초등부 피아노 부문에서는 출연자 3명이 본선에서 동점을 얻어 규정에 따라 나란히 1위 입상했다. 초등부 플루트 부문에서는 이름과 나이가 같은 두 명의 ‘12세 김채은’ 양이 나란히 1, 2위로 입상해 눈길을 끌었다. 11월 16일 이후 동아주니어음악콩쿠르 홈페이지(www.donga.com/concours/juniormusic)에서 채점표와 심사평을 확인할 수 있다. 본선 연주 동영상은 12월 중순 이후 유료로 서비스한다. 다음은 수상자 명단. ◇고등부 ▽피아노 △2위 박대호(16·홈스쿨링) △3위 박진영(17·홈스쿨링) ▽바이올린 △2위 송예지(17·서울예고 2학년) ▽첼로 △2위 박지희(17·서울예고 2학년) ▽플루트 △2위 윤서영(15·덕원예고 1학년) ◇중등부 ▽피아노 △1위 진호영(15·홈스쿨링) △2위 이도훈(14·예원학교 2학년) △3위 한참희(14·예원학교 2학년) ▽바이올린 △1위 오지유(13·예원학교 2학년) △2위 박서현(14·예원학교 3학년) △3위 이재은(14·예원학교 2학년) ▽첼로 △1위 최아현(14·홈스쿨링) 이새봄(13·예원학교 2학년) △3위 문설윤(14·예원학교 2학년) ▽플루트 △1위 구다은(15·선화예중 3학년) △2위 최예은(14·예원학교 3학년) △3위 김다빛(13·예원학교 2학년) ◇초등부 ▽피아노 △1위 김연수(11·신동초 5학년) 고준성(11·도농초 5학년) 강동휘(12·신용산초 6학년) ▽바이올린 △1위 김가은 △2위 임수린(11·마북초 5학년) 김현서(10·광장초 4학년) ▽첼로 △1위 이재리(11·BC Collegiate학교 5학년) △2위 류도현(11·Sevenoaks학교 7학년) 장주하(11·압구정초 5학년) ▽플루트 △1위 김채은(12·압구정초 6학년) △2위 김채은(12·언북초 6학년)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세계 곳곳에서 한국전쟁에 참전해 목숨을 잃은 군인들, 또 이들의 가족과 친구들에게 이 연주를 바칩니다. 이분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한국이 전쟁의 아픔을 딛고 오늘과 같은 발전을 이루지 못했을 것입니다. 저 또한 군인이었으므로 이런 기회를 갖게 된 것을 큰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바흐의 칸타타 ‘하나님의 시간은 늘 최상의 시간이로다’의 피아노 편곡 연주가 잔잔히 화면에 흘렀다. 9일 오전 경기 오산시 죽미령 평화공원 내 스미스평화관. 세계적인 피아노 교육가 세이모어 번스타인(93)의 온라인 마스터클래스 현장이었다. 오산시가 주최한 이 마스터클래스는 번스타인의 뉴욕 자택과 스미스평화관을 화상으로 연결한 가운데 김경석 군(서울예고 3년), 이우림 양(오산 원일초 3년) 등 예비 피아니스트 네 명이 연주하고 영상으로 레슨을 받는 형태로 진행됐다. 피아니스트 안인모가 사회를 맡아 진행을 도왔다. 번스타인은 23세에 미군에 입대해 1951년 4월 전쟁 중인 한국에 파병됐다. 1년 반 동안 경기 파주 연천 등 최전선에서 100회가 넘는 위문공연을 펼쳤다. 마스터클래스 직전 영상으로 공개된 뉴욕 자택 인터뷰에서 그는 낡은 일기장을 펼치며 “1951년 8월 26일 ‘아베마리아’ 연주 중 지옥이 열렸다. 곡사포 탄환이 주변에 쏟아졌고 피아노 연주는 그 배경으로 물결처럼 울렸다”고 회상했다. 그는 1977년 연주 일선에서 물러나 뉴욕대 교수로 재직하며 ‘쇼팽 연주해석’ 등 연주자들의 필독서를 저술하는 등 피아노 교육에 큰 영향을 끼쳐 왔다. ‘비포 선 라이즈’의 주연 배우 이선 호크가 연출한 다큐멘터리 영화 ‘피아니스트 세이모어의 뉴욕 소네트’(2014년)로 87세 나이에 조명을 받기도 했다. “선생님이라고 부르지 마세요. 세이모어라고 부르세요”라며 마스터클래스의 문을 연 그는 참가자 네 명의 연주를 차례로 들은 뒤 피아노 터치의 기본적인 이해에서 시작해 강약과 빠르기, 페달을 이용한 레가토(음 잇기) 등 두 시간 동안 거침없이 가르침을 이어갔다. 마스터클래스와 헌정연주를 마친 그는 네 예비 피아니스트들에게 마지막으로 “악보에 있는 것을 먼저 지식으로 알고 정서적으로 이해한 뒤에 마지막으로 몸이 익히게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90세가 넘자 세상에 무엇을 남길지 생각이 많아집니다. 주변에 물어봐도 마땅한 대답이 없어요. 결국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에 기여하는 것’이며, 내가 할 수 있는 기여는 음악도들이 자신감을 갖게 하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