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언

김태언 기자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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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태언 기자입니다.

beborn@donga.com

취재분야

2026-02-25~2026-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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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포일러 주의’ 전시회

    (※아래 기사에는 전시 ‘마틴 마르지엘라’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영화만 ‘스포일러’가 있는 게 아니다. 전시도 미리 내용을 알면 재미가 반감될 수 있다. 서울 송파구 롯데뮤지엄에서 24일 개막한 ‘마틴 마르지엘라’는 반전 요소가 강해 웬만하면 사전정보를 모른 채 감상하길 권한다. 마틴 마르지엘라(65)는 프랑스 유명 브랜드 ‘메종 마르지엘라’의 창립자인 세계적인 패션디자이너. 2008년 돌연 은퇴를 선언하더니 지난해부터 순수미술에 전념하며 전시 활동을 이어왔다. 조각과 회화 등 50점으로 구성된 이번 전시는 한국에서 처음 열리는 개인전이다. 미술 전시에 스포일러란 표현을 쓴 건 마지막에 배치된 작품을 볼 때까지 전시가 난해하기 때문이다. 신체의 일부를 확대한 듯한 조각이나 회화 등이 여럿인데, 쉽게 의미를 파악하기 힘들다. 그런데 마지막 작품 ‘라이트 테스트’(2021∼2022년)를 마주하고 나면 의문이 확 해소되는 기분이 든다. 이 때문에 ‘라이트 테스트’를 본 뒤 다시 한번 감상해보는 것도 괜찮은 선택이다. ‘라이트 테스트’는 금발의 여성을 촬영한 짧은 화면이 반복 재생되는 영상작품. 카메라를 등졌던 여성이 서서히 몸을 돌려 얼굴을 드러낸다. 한데 이목구비가 있어야 할 자리에 수북한 머리카락만 가득할 뿐 얼굴이 없다. 그리고 정면을 마주한 여성은 기괴한 소리의 웃음을 터뜨린다. 마치 “아름다운 얼굴을 기대했니? 그런 건 없어”라며 조소하는 것 같다. ‘라이트 테스트’를 보고 나면 마르지엘라가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가 선명하게 다가온다. “아름다움이란 게 도대체 뭐냐”고 묻는 것이다. 예를 들어 ‘레드 네일스’(2019년)와 ‘레드 네일스 모델’(2021년)은 둘 다 붉은 매니큐어를 칠한 손톱을 형상화했다. 그런데 매력적인 레드 네일스 모델과 달리, 높이 197cm로 대략 5배쯤 큰 레드 네일스는 불편하게 느껴진다. 롯데뮤지엄은 “똑같은 생김새라도 모양과 크기에 따라 아름다움은 달라질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며 “마르지엘라는 인체와 시간 등 다양한 요소를 통해 질문을 던지고 있다”고 했다. 내년 3월 26일까지. 9000∼1만9000원.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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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만 스포일러 주의해야 하나요? 스포일러 주의 ‘전시’도 있습니다

    ※아래 기사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이 문구를 영화 기사만 쓰는 게 아니었다. 전시에도 스포일러가 있다. 24일 서울 송파구 롯데뮤지엄에서 개막한 전시 ‘마틴 마르지엘라’가 그렇다. 프랑스의 명품 브랜드 ‘메종 마르지엘라‘의 창립자인 마르지엘라(65)는 2008년 돌연 패션계를 은퇴한 뒤 지난해부터 예술가로 전시 활동을 해왔다. 이번 전시는 그의 설치, 조각, 페인팅 등 작품 50점을 선보이는 국내 첫 개인전이다. 마지막 장면을 봐야만 이전 신(Scene)들이 이해되는 어느 영화나 드라마처럼, 이 전시에도 나름의 반전이 있다. 전시장에는 신체 일부를 확대한 조각과 회화, 머리카락 등을 사용한 작품들이 놓여있다. 쉽게 파악할 수 없는 의미를 가진 작품이라 머릿속에는 물음표가 둥둥 떠다닌다. 마지막에 전시된 작품 ‘라이트 테스트’(2021~2022년)를 보기 전까지 말이다.‘라이트 테스트’는 금발머리를 한 여성을 촬영한 짧은 영상이 반복 재생되는 작품이다. 여성은 카메라를 등진 채 서있다. 서서히 몸을 돌려 빛에 얼굴을 드러내 보인다. 그런데 사람의 얼굴은 온데간데없다. 이목구비가 있어야할 자리엔 수북한 모발이 가득할 뿐. 그리고 카메라가 정면을 조준한 순간, 여성은 기괴한 소리를 내며 웃는다. 관람객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한 깔깔대는 소리. 마치 “아름다운 얼굴을 기대했니? 그런 건 없어”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리고 이를 마주한 때, 앞서 지나온 작품들이 모두 ‘아름다움의 진정한 의미’를 묻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일례로 붉은 손톱을 형상화한 두 작품 ‘레드 네일즈’(2019년)와 ‘레드 네일즈 모델’(2021년)은 같은 형태지만 크기가 다르다. 5배나 더 큰 ‘레드 네일즈’는 매력적으로 느껴지기보다는 반감이 앞선다. 모양과 크기 등 여러 요소에 따라 미(美)에 대한 생각이 쉽게 달라진다는 것을 시각화한 셈이다. 마르지엘라가 미디어 노출을 극도로 꺼린 것도 무엇이든 쉽게 평가하는 세상에 대한 반항이었던 걸까. 그는 성분표가 지워진 데오도란트 사진을 크게 인화해 설치한 작품 ‘데오도란트’(2020~2022년)를 통해 자연스러운 체취를 은폐하는 현대 사회를 고발한다. 밝은 색 모발을 가진 두상부터 회색빛 모발을 가진 두상까지 5점을 일렬로 놓은 ‘바니타스’(2019년)를 통해서는 인생을 표현해냈다. 뮤지엄 측은 “사람들은 대개 인위적인 방법으로 자연스러움을 가리려 하지만 종국에는 패배한다. 마르지엘라는 인체와 시간에 대한 개념을 다시 환기시킨다”고 말했다. 전시는 내년 3월 26일까지. 9000~1만9000원.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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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나쁜 사람 변화시키는 할머니 역할 있나요?”

    “내 나이를 쓰려거든 ‘수천 살’이라고 해줘요.” 배우 김혜자가 기자들을 만날 때 하는 말이다. 배역을 맡으면 온전히 ‘그 사람’이 되어야 했던 그는 정말로 그 삶을 다 살아낸 듯 연기해 왔다. 1961년 KBS 공채 1기 탤런트로 데뷔해 ‘전원일기’(1980∼2002년), ‘엄마가 뿔났다’(2008년), ‘마더’(2009년) 등 60여 년간 드라마와 영화에서 활동한 배우 김혜자. 책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2004년) 이후 18년 만에 내놓은 이 책은 연기 인생에 대한 그의 고백을 담았다. 책은 편집자가 저자와 인터뷰하고 저자의 일기, 인터뷰 기사 등을 토대로 초고를 만든 뒤 저자가 다시 수정하는 방식으로 완성됐다. 저자가 기억하는 최초의 무대는 여섯 살 때였다. 당시 연세대 의과대 학생들이 공연한 연극 ‘생의 제단’에서 그는 개에게 물려 죽는 아이 역을 맡았다. 이름은 혜자. 이후에도 드라마 ‘청담동 살아요’ ‘눈이 부시게’에서 저자가 맡은 배역의 이름은 모두 본명 혜자였다. 저자는 이 이야기를 하며 “연기는 곧 나였다”고 말한다. 베테랑 연기자의 작품 선택 기준은 뭘까. ‘배역이 아무리 인생의 속박에서 고통받는 역이라 해도 그 속에 바늘귀만 한 희망이 보이는가’이다. 그는 “삶의 밑바닥을 헤매도 그곳에 희망이 있는지, 희망을 연기할 구석이 있는지를 살핀다. 내일의 이야기를 찾고 그것을 연기하려 노력했다”고 말한다. 실제 그는 살면서 힘든 일이 닥칠 때마다 작품에 뛰어드는 것으로 어려움을 이겨낸다고 한다. “나는 신이 모든 인간 각자에게 한 가지씩의 재능은 꼭 심어준다고 생각한다. 그것으로 힘들고 고통스러운 인생을 헤쳐가라고.” 그가 죽기 전 하고 싶은 역할은 ‘나쁜 사람을 변화하게 해주는 할머니’라고 한다. 사람과 세상과 사랑의 힘을 믿는 저자이기에 할 수 있는 말 아닐까.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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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영웅 혹은 인간… 그 삶의 궤적서 마주한 시대의 얼굴

    《어느 해라고 힘들지 않았겠습니까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이태원 핼러윈 참사 등 국내외에서 충격적이고 가슴 아픈 일이 많은 한 해였습니다. 책에서 삶에 대한 위로와 공동체의 나아갈 길을 찾고픈 열망 때문일까요. 출판인, 학자 등 30명이 뽑은 ‘2022년 동아일보 올해의 책’은 소설과 시, 과학서, 평론집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이 고루 뽑혔습니다. 그리고 유독 ‘애도’를 다룬 책이 여럿 눈에 띕니다. 선정위원마다 3권씩 추천을 받아 그 가운데 상위 10권을 추려 소개합니다. 동아일보 문화부 출판학술팀》각계 전문가들이 선정한 2022년 ‘최고의 책’은 김훈 작가(74)의 장편소설 ‘하얼빈’과 미국 과학전문기자 룰루 밀러의 교양과학서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가 뽑혔다. 각각 6표를 얻었다. 독자에게 익숙한 한국 대표 작가와 생경한 해외 작가의 책이 동시에 선택됐다는 게 한국 출판시장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척도로 읽힌다. ‘하얼빈’은 안중근 의사(1879∼1910)가 중국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1841∼1909)를 저격하는 운명적인 역사를 다룬 작품이다. 안 의사가 거사를 실행하기 약 일주일 전인 1909년 10월 19일 무렵부터 이토를 저격한 26일 전후까지로 초점을 맞췄다. 안 의사와 이토가 각자 하얼빈으로 가는 행로와 과정을 3인칭으로 풀어내, 이순신 장군의 1인칭 시점으로 썼던 장편소설 ‘칼의 노래’(2001년·문학동네)보다 더욱 절제된 화법이 돋보인다. 출판인과 학자들은 고루 ‘하얼빈’을 역작이라 꼽았다. 안병현 교보문고 대표는 “위인 안중근에 대해서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지만, 한 인간으로서의 안중근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신선하다”고 했다. 안대회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는 “안중근이 살아있는 인간으로 다가오고, 그래서 오히려 진정한 영웅으로 느껴진다”고 평했다. “2022년에 안중근의 삶을 김훈의 소설로 읽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를 생각하게 한다. 오늘의 한국 사회와 겹쳐 마음을 괴롭게 했다”(김형보 어크로스 대표)는 의견도 있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밀러가 미국 어류학자인 데이비드 스타 조던(1851∼1931)의 생애를 따라가면서 자신의 인생을 풀어나간 책이다. 교양과학서지만 인간 자체를 사유한다는 점에서 인문에세이로도 볼 수 있다. 밀러는 ‘미 방송계의 퓰리처상’으로 불리는 피보디상을 수상한 유명 작가지만 국내에선 비교적 낯선 편. 중소 출판사가 별다른 마케팅 없이 출간한 책이 입소문만으로 베스트셀러가 됐다는 점도 주목받았다. 주연선 은행나무 대표는 “베스트셀러의 상식을 뒤엎는 책이다. 우리가 자연에 선을 긋고 종(種), 과(科)로 나누고 가르는 행위가 얼마나 위험하며 편견일 수 있는지 생각해보게 한다”고 말했다. 정지혜 블러썸크리에이티브 IP사업팀장은 “관념은 뒤집힐 수도 있다는 발칙한 상상을 하게 만드는 책”이라고 했다. “잔인한 혐오에 대한 명철한 질책,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자연의 질서에 대한 뭉클한 탐사”(박상준 민음사 대표)라는 평가처럼 책이란 존재가 가질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준 작품이다.■H마트에서 울다미셸 자우너 지음·정혜윤 옮김·408쪽·1만6000원·문학동네“엄마와 딸, 음식과 정체성, 사랑과 애도에 대해 담담하고 섬세하게 풀어낸 멋진 에세이.”(권은희 까치글방 편집팀장) 미국 팝 밴드의 보컬로 활동 중인 한국계 미국인 저자가 쓴 자전적 에세이로 버락 오바마 전 미 대통령의 추천 도서로도 화제를 모았다. 다른 친구들의 엄마와 다른 자신의 한국인 엄마를 이해하기 힘들었던 저자는 엄마가 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난 뒤 한국마트를 드나들며 추억을 되짚는다. “올해 본 책 가운데 가장 많이 울었던 책”(박성열 사이드웨이 대표)이란 평처럼 섬세하고 감동적인 글이 마음을 울컥하게 만든다. ■아버지의 해방일지정지아 지음·268쪽·1만5000원·창비“2022년 한국 문학의 최대 수확. 우리도 이제 ‘남쪽으로 튀어’(오쿠다 히데오)에 버금가는 작품을 갖게 됐다.”(주연선 은행나무 대표) ‘빨치산의 딸’(1990년)을 쓴 소설가가 32년 만에 발표한 장편소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사흘 동안 장례식장에서 벌어진 이야기를 놀랍도록 흥미롭게 엮어냈다. 묵직한 현대사의 질곡을 짚어내면서도 시종일관 유쾌한 흐름을 잃지 않아 “오랜만에 만난 모든 것을 갖춘 소설”(김기중 더숲 대표)이란 극찬도 나왔다. MZ세대에게는 생경한 작가가 묵직한 시대적 배경을 다룬 소설임에도 소셜미디어에서 큰 화제를 모은 점도 눈길을 끌었다. ■녹스앤 카슨 지음·윤경희 옮김·192쪽·5만5000원·봄날의책캐나다 시인이자 번역가, 고전학자인 저자가 22년 동안 얼굴도 보지 못하고 헤어져 지내던 오빠가 세상을 떠나자 그를 애도하기 위해 만든 책. 고대 로마 시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오빠의 부재에 대한 상념을 자신의 수첩에 쓰고 그리고 오리고 붙인 것을 책으로 완성했다. 국내판 역시 “원본의 고유성을 잘 유지한 물성의 예술품”(정은숙 마음산책 대표)으로서 소장 가치가 높다는 평을 받았다. 무엇보다 “한 사람의 흔적을 어루만지고 그의 손때와 온기, 사라짐까지 남기는 애잔한 틀로서의 비망록”(박상준 민음사 대표)이 이만한 결과물로 남을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놀랍다. 인간은 결국 홀로 떠나지만, 결코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는 걸 일깨운다. ■인생의 역사신형철 지음·328쪽·1만8000원·난다문학평론집이 이례적으로 올해의 책에 선정됐다. 서울대 영어영문학과 교수이자 문학평론가인 저자가 동서고금을 아우르는 시 25편과 이에 얽힌 작품을 에세이 형식으로 풀어낸 평론집. 10월 출간 일주일 만에 2만 부가 넘게 판매되며 저력을 과시했다. 문학평론집 ‘몰락의 에티카’(문학동네)와 에세이 ‘느낌의 공동체’(문학동네) ‘정확한 사랑의 실험’(마음산책) 등을 통해 탄탄한 독자층을 구축한 저자는 이번에도 “전통 시화를 21세기 문학 형식으로 되살린 ‘법고창신(法古創新·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만들다)’의 표본”(안대희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을 선보였다.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진은영 지음·140쪽·1만2000원·문학과지성사“시집은 천천히 읽어야 좋겠지만 그의 시집은 하룻밤 새 다 읽어버렸다.”(강성민 글항아리 대표) 문제의식을 철학적 사유로 풀어낸다는 평가를 받아왔던 시인이 10년 만에 선보인 시집이다. 작품 활동의 공백기가 “시가 지녀야 할 사회적 역할을 돌아본 시간”이었다는 저자의 신작은 시집으로는 드물게 한 온라인 서점 종합순위 상위권에 오를 정도로 화제를 모았다. 어쩌면 “아무도 끝낼 수 없을 것 같은 미움의 시대에 비춰준 가느다란 빛”(황서현 휴머니스트 편집주간)처럼 와닿았기 때문일까. 2014년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고 유예은 양(단원고 2년)을 위한 시 ‘그날 이후’도 함께 실렸다.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이나다 도요시 지음·황미숙 옮김·232쪽·1만5500원·현대지성일본 영화전문지에서 일했던 독립 칼럼니스트가 영화를 영화관이 아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통해 관람하는 현 상황을 고찰했다. 저자는 특별한 공간에서 수동적으로 감상하던 영화를 이제 안방이나 카페에서 자유롭게 건너뛰며 보는 현상에 대해 “길고 어려운 콘텐츠 대신 짧고 이해하기 쉬운 것을 선호하는 시대”(김홍민 북스피어 대표)라고 짚어낸다. 저자가 볼 때 이 같은 효율성의 극단은 결코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이런 현상의 이면에 숨겨진 콘텐츠의 공급 과잉과 ‘가성비’ 지상주의가 만연한 시대상을 날카롭게 파고든다. “이러한 변화가 우리 사회의 트렌드를 어떻게 변화시켜 나갈지 알고 싶은 이들에게 훌륭한 통찰력을 제공”(안병현 교보문고 대표)한다. ■정상은 없다로이 리처드 그린커 지음·정해영 옮김·600쪽·3만3000원·메멘토미국 조지워싱턴대 인류학과 교수인 저자가 역사적으로 정상이란 허구에서 비켜난 이들에게 인류사회가 어떻게 낙인을 찍어 왔는지를 짚었다. “올해 큰 화제를 모은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신드롬을 제대로 들여다보고 싶은 이들”(박성열 사이드웨이 대표)에게 추천한다는 평이 나왔다. 자본주의와 전쟁, 의료화라는 세 가지 측면에서 정신질환과 장애에 대한 낙인의 역학을 탐구한 책은 문화인류학적 고찰을 통해 낙인이란 한계를 극복하려는 진정성이 묻어난다. “정상과 비정상의 개념에 대한 상식을 뒤엎는, 성숙한 한국 사회를 위한 모두의 필독서.”(주연선 은행나무 대표) ■차이나 쇼크, 한국의 선택한청훤 지음·304쪽·1만7000원·사이드웨이패권적인 ‘제국의 길’을 선택한 중국이 왜 세계 여러 나라와 마찰을 거듭하는지 심층적으로 분석했다. 10년 넘게 중국 산업현장에서 일한 저자는 중국과 관련된 다양한 현안을 다뤘다. “학문적 중국 전문가는 적지 않으나 중국 관련 비즈니스에 종사하며 중국의 겉과 속을 정확하게 풀어낸”(표정훈 출판평론가) 글이기에 더욱 시사하는 바가 컸다. 산업 굴기와 첨단산업 및 반도체 기술, 미국과의 패권 경쟁, 농촌 문제와 정치 리스크 등 중국이 당면한 주요 현안을 여러 각도에서 분석한다. 진지한 통찰력이 돋보이면서도 “쉽고 설득력 있으며, 경험을 밑천으로 필력까지 갖춰”(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더 흥미롭게 읽힌다. 다양한 장르 사랑받은 한 해… 애도 속 ‘그리움’ 담은 시집 눈길 그 외 눈여겨볼 책들12위는 없었다. 올해는 1표씩을 받은 책 51권이 함께 ‘공동 11위’를 차지했다. 소설과 에세이, 교양서뿐 아니라 시집과 각본까지…. 올해의 책에는 오르지 못했지만 두루 사랑받은 ‘거의 올해의 책’이 유난히 많았다. 특히 유난히 누군가를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시집들이 눈길을 끌었다. 올해의 책에 포함된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진은영 지음·문학과지성사) 외에도 ‘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고명재 지음·문학동네) ‘파울 첼란 전집 1∼5’(문학동네) ‘슬픔이 택배로 왔다’(정호승 지음·창비) 등 시집의 약진이 눈부셨다. 시집이 올해의 책에 든 것도 최근 10년 만에 처음이다. 이태원 핼러윈 참사로 멍든 가슴이 여전히 시퍼렇게 남아 있어서일까. 루마니아 시인 ‘파울 첼란 전집’을 추천한 김민정 난다 대표는 “참사의 충격이 가시지 않은 채 ‘눈물자국의 가장자리에서 배우렴/ 사는 것을’이란 구절이 눈에 밟혔다. 이 시대를 함께 사는 사람으로서 우리는 뭘 어떻게 할 수 있는가. 눈물과 자국과 가장자리와 삶이란 단어를 읽고 또 읽었다”고 했다. 고세규 김영사 대표도 정호승 시인의 ‘슬픔이…’를 추천하며 “그저 허무에 머무르지 않고 구원의 길을 찾아 우리를 위로해주는 시인의 맑은 마음”을 주목했다. 과학책은 5권이 공동 11위에 이름을 올렸다. 그 가운데 해리 클리프 영국 케임브리지대 물리학과 교수가 펴낸 ‘다정한 물리학’(다산사이언스)에 대해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는 “이야기를 쫓아가다 보면 어려운 이론물리학의 흐름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며 추천했다. ‘자연은 어떻게 발명하는가’(닐 슈빈 지음·부키)와 ‘과학은 어떻게 세상을 구했는가’(그레고리 주커만 지음·브론스테인) ‘빙하여 안녕’(제마 워덤 지음·문학수첩) ‘내 생의 중력에 맞서’(정인경 지음·한겨레출판사)도 비슷한 공통점을 지녔다. 과학정보는 물론이고 인문학적 사색도 담아 ‘과포자’(과학포기자)도 쉽게 다가갈 수 있다. “이런 책들 덕분에 우리는 과학이라는 일상을 더욱 다채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다”(신지혜 한국천문연구원 선임연구원)는 평처럼 진입장벽을 낮추고 편안하게 다가온 교양과학서가 내년에도 많아지길 기대해본다.올해의 책 선정위원(30명·가나다순) 강성민(글항아리 대표) 강인욱(경희대 사학과 교수) 고세규(김영사 대표) 권은희(까치글방 편집팀장) 김기중(더숲 대표) 김민정(난다 대표) 김영민(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김형보(어크로스 대표) 김홍민(북스피어 대표) 김효형(눌와 대표) 박상준(민음사 대표) 박성열(사이드웨이 대표) 박윤우(부키 대표) 박정재(서울대 지리학과 교수) 백지숙(서울시립미술관장) 신지혜(한국천문연구원 선임연구원) 안대회(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 안병현(교보문고 대표) 안지미(알마 대표) 윤범모(국립현대미술관장) 이구용(KL매니지먼트 대표) 이기진(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이병훈(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장은수(출판평론가) 정은숙(마음산책 대표) 정지혜(블러썸크리에이티브 IP사업팀장) 조성웅(유유출판사 대표) 주연선(은행나무 대표) 표정훈(출판평론가) 황서현(휴머니스트 편집주간)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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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림 속 ‘숨은 이야기’ 찾기

    《경기 광주시의 한 미술관.토끼장에 있던 토끼가 무더기로 실종된다.이 일은 미미한 재산 피해 사건으로 종결됐지만 담당 형사는 찝찝함을 떨칠 수 없다.형사는 경찰서에 휴직계를 낸 뒤 소설가로 가장한 미술관 입주 작가가 된다.잠입 수사를 진행하던 형사는 미술관에서 계속 사라지는 다른 존재들을 발견하는데….》 어느 소설의 줄거리가 아니다. 한국화를 그리는 정해나 작가(37)의 작업일지에 담긴 내용이다. 토끼장을 그린 ‘의문의 방문객’(2020년)을 시작으로 한 그의 2020년 작품들은 형사의 눈에 비친 사람들과 장면을 기승전결에 따라 화폭에 담은 것이다. 정 작가는 개인전을 열 때마다 한 편의 가상 이야기를 구상해 글로 적고 관람객에게 공개한다. 최근 ‘화가는 그림으로 말한다’는 암묵적인 철칙에 틈이 생기고 있다. 그림에 스토리텔링이 더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움직임은 꽤 활발하다. 작품에 별도의 설명이 없는 경우 해석의 여지를 열어둔다는 장점이 있지만 어렵게 느껴질 때도 많다. 대중과의 적극적 소통을 위해 작가들은 작품에 이야기나 세계관을 넣는다. 최수진 작가(36)는 자신의 작업을 도와주는 제작자들을 그린다. 흥미로운 건 이들이 실존 인물이 아니란 것. 2015년부터 이어온 ‘제작소 사람들’ 시리즈는 열매에서 색을 추출하거나 종류별로 분류하는 가상의 존재들이 작품에 등장한다. 작가는 이들을 본인 대신 색을 주워 모아주는 ‘동료’라고 말한다. 그는 “화가는 대개 혼자 모든 것을 판단한다. ‘의지할 동료가 있으면 어떨까’ 고민하다 생각해냈다”고 말했다. 간판 캐릭터를 만든 뒤 이를 활용해 작품의 세계관을 설정하는 경우도 있다. 도파민최 작가(36)가 대표적이다. 2015년부터 그의 작품에는 분홍색 몸통을 가진 괴생명체가 빠짐없이 등장한다.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을 의인화한 캐릭터다. 도파민들이 아이스크림을 공중에 힘껏 던지거나, 울부짖는 공룡 앞에서 달리는 모습 등을 작품에 담았다. 작가는 “뇌 안에서 벌어지는 엉뚱한 상상과 그 안에서 바삐 움직이는 도파민들을 그린 것”이라고 했다. 미술 작품에 이야기를 입히는 작업을 계기로 본격 글을 쓰는 작가도 있다. 박민준 작가(51)는 장편소설 2권을 집필했다. 그는 소설과 소설 속 등장인물 및 사건을 재현한 회화 작품을 함께 발표해 왔다. 천재 곡예사인 형 라포와 평범한 동생 라푸의 이야기를 그린 그의 첫 번째 소설 ‘라포르 서커스’(2018년)는 작가의 회화 작품 속 캐릭터에 대한 설명글이 토대가 됐다. 한 미술사학자가 600년 전 활동한 화가의 최후 작품을 추적한 두 번째 소설 ‘두 개의 깃발’(2020년)은 소설을 먼저 쓴 뒤 관련 회화 작품을 완성했다. 내년 2월 5일까지 서울 종로구 갤러리현대에서 열리는 박 작가의 개인전 ‘Ⅹ’는 이전 전시보다 서사를 생략하고 즉흥적으로 그린 작품도 많지만 이야기가 아예 없진 않다. 동물 가면을 쓴 9명의 초상회화 ‘콤메디아 델라르테’ 연작(2022년)이 대표적이다. 그는 “각 캐릭터만의 복식과 성격을 고려해 그들이 할 법한 대사를 작성해 전시장 초입에 리플릿 형식으로 배치했다”며 “글쓰기는 제 작품을 말로 설명하기가 어려워 시작한 작업이다. 글과 그림의 관계를 살펴 감상하면 좋겠다”고 했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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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림에 ‘서사’ 한 스푼을 더하다…세계관으로 대중과 소통 꾀하는 미술작가들

    《경기 광주의 한 미술관, 토끼장에 있던 토끼가 무더기로 실종된다. 사건은 미미한 재산 피해로 종결되지만 찝찝함이 남은 형사. 그는 경찰서에 휴직계를 낸 뒤 소설가로 분장해 미술관 입주작가가 된다. 1월부터 7월까지 잠입수사를 진행하던 형사는 미술관에서 계속 사라지는 다른 존재들을 발견하는데….》 어느 소설의 줄거리가 아니다. 한국화를 그리는 정해나 작가(37)의 작업일지다. ‘의문의 방문객’(2020년)을 시작으로 한 그의 2020년 작품들은 형사의 눈에 비친 사람들과 장면을 기승전결에 따라 화폭에 담은 것이다. 정 작가는 개인전을 열 때마다 한편의 가상 이야기를 구상해 글로 적고 관람객들에게 공개한다. 최근 만난 그는 “결국 글은 사라지고 그림만 남을 것이라는 우려 섞인 조언을 많이 듣는다. 하지만 제 작품에 깊게 공감해주는 소수의 관람객만 있어도 살 수 있는 게 작가라고 생각한다”고 했다.‘화가는 그림으로 말한다’는 암묵적인 철칙에 틈이 생기고 있다. 그림에 스토리텔링이 입혀지면서부터다. 젊은 작가들을 중심으로 한 이 움직임은 꽤나 흥미롭다. 작품에 별도의 설명이 없는 경우 해석의 여지를 넓게 열어둔다는 장점이 있지만 되레 어렵게 느껴질 때도 많다. 그래서 젊은 작가들은 작품에 ‘이야기’나 ‘세계관’을 삽입한다. 이들의 작업 향방을 살펴보면 대중과의 적극적 소통 가능성을 기대해볼 수 있다. 최수진 작가(36)는 자신의 작업을 도와주는 제작자들을 그린다. 그런데 실존 인물은 아니다. 2015년부터 이어온 ‘제작소 사람들’ 시리즈를 보면, 화폭 속에는 열매에서 색을 추출하거나 종류별로 분류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작가는 이들이 본인 대신 색을 주워 모아주는 ‘동료‘라고 말한다. 이 설정은 최 작가의 고독함에서 비롯됐다. 그는 “화가는 대개 혼자 모든 것을 판단한다. 이 과정에서 막연함을 느꼈다. 그때 ‘같이 작업을 꾸리고 의지할 동료가 있다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올해 그는 ‘제작소 사람들’로부터 한 단계 도약을 목표하고 있다. “제작소 사람들은 이상적인 회화를 만드는 데 필요한 친구들이다. 이제는 그 ‘이상적인 회화’가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만들 때”라며 말이다. 좀 더 직접적인 세계관 설정법이 있다면, 간판 캐릭터를 활용하는 것이다. 도파민최 작가(36)가 대표적이다. 2015년부터 그의 작품에는 분홍색 몸통을 가진 괴생명체가 항시 등장한다. 도파민을 의인화한 캐릭터다. 도파민들은 아이스크림을 공중에 힘껏 던지거나, 울부짖는 공룡 앞에서 달리고 있다. 작가는 “뇌 안에서 벌어지는 엉뚱한 상상과 그 안에서 바삐 움직이는 도파민들을 장면화한 것”이라고 했다. 세계관이라는 관념에 글이 더해지면 내용은 풍성해진다. 박민준 작가(51)는 집필한 장편 소설만 벌써 2권이다. 그는 본인 소설 속 인물과 사건을 회화로 재현한 작품들을 소설과 함께 발표해왔다. 천재 곡예사인 형 라포와 평범한 동생 라푸의 이야기인 ‘라포르 서커스’(2018년)는 캐릭터 설명글을 쓰다 소설로 발전했으며, 한 미술사학자가 600년 전 활동한 화가의 최후 작품을 추적하는 ‘두 개의 깃발’(2020년)은 처음부터 소설을 염두에 둔 작업이었다. 본인이 만든 세계에 관심이 많다고 말하는 박 작가. 올해엔 조금 힘을 뺐다. 서울 종로구 갤러리현대에서 진행되는 그의 개인전 ‘Ⅹ’(12월 21일~내년 2월 5일)에 신작 소설은 없다. 출품작 40여 점 중에는 서사 없이 즉흥적으로 그려진 작품도 있다. 하지만 이야기가 포함된 작품도 여지없이 등장한다. 동물 가면을 쓴 9명의 초상회화 ‘콤메디아 델라르테’ 연작(2022년)이 대표적이다. 작가는 “각 캐릭터만의 복식과 성격을 고려해 그들이 할 법한 대사를 작성해 전시장 초입에 리플렛 형식으로 배치했다”며 “제 작품을 말로 설명하는 것이 어려워 시작한 글쓰기다. 글과 그림의 관계를 다각도로 살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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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멜로 퀸’ 송혜교, 인생 건 복수… 김은숙 작가 첫 ‘19금 장르물’

    ‘로맨스물의 귀재’로 불리는 김은숙 작가가 처음 선보이는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의 장르물은 어떨까. 넷플릭스에서 30일 공개되는 드라마 ‘더 글로리’는 ‘도깨비’(2016∼2017년), ‘미스터 션샤인’(2018년), ‘태양의 후예’(2016년) 등을 쓴 ‘히트 메이커’ 김은숙 작가(사진)가 내놓은 복수극이다. 고등학교 시절 지독한 학교폭력을 당한 문동은(송혜교)이 일생을 걸고 준비한 복수를 펼치는 이야기다. 송혜교의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데뷔작으로, 드라마 ‘비밀의 숲’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을 만든 안길호 감독이 연출했다. 총 16부작으로, 1부와 2부로 나눠 선보인다. 2부는 내년 3월 공개할 예정이다. 서울 동대문구의 한 호텔에서 20일 열린 ‘더 글로리’ 제작발표회에서 김 작가는 “고등학생 딸을 둔 제게 학교폭력이라는 소재는 가까운 화두였다”며 “어느 날 딸이 ‘엄마는 내가 누군가를 죽도록 때리는 것과 누군가에게 죽도록 맞는 것 중에 뭐가 더 가슴 아플 것 같아’라고 질문했다. 그 짧은 순간에 많은 이야기들이 펼쳐졌고, 그렇게 시작된 이야기”라고 말했다. 이날 제작발표회에는 안 감독과 배우 송혜교 이도현 염혜란 정성일이 참석했다. 끔찍한 학교폭력에 대한 기억을 안고 사는 피해자 동은 역을 맡은 송혜교는 “어린 동은은 무방비 상태로 큰 상처를 받은 인물이지만, 그 후 오랜 시간 복수를 계획하는 인물이기에 불쌍하기보다는 단단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멜로 퀸’이라 불리는 송혜교 역시 이 작품을 통해 처음 장르물에 도전한다. 그는 “항상 이런 장르와 캐릭터에 배고팠는데 드디어 만났다”고 했다. 안 감독도 “처음부터 송혜교를 염두에 뒀다”며 “강하고 연약한 느낌을 모두 갖고 있는 흔치 않은 배우”라고 말했다. 극은 동은을 중심으로 흘러가지만 그의 복수극에 휘말리는 캐릭터에도 이입하게 만든다. 그 중심에 선 인물이 주여정(이도현)이다. 온실 속 화초처럼 자란 성형외과 의사 여정은 동은의 복수극에 동참하면서 스스로 상처를 이겨낸다. 이도현은 “여정은 소탈해 보이지만 이면을 지닌 인물이다. 그 불분명함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고 했다. 드라마는 19세 이상 관람가다. 김 작가는 “19금을 단 이유는 욕설도 등장하고 학교폭력 내용도 굉장하지만 사법체계 안에서의 복수가 아니라 사적 복수를 선택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안 감독 역시 “가해자가 폭력을 휘두르는 장면에서는 최대한 사실적으로 보이도록 했다. 판단은 시청자의 몫이니 객관적으로 보여주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자료 조사를 해보니 피해자들은 현실적인 보상보다 가해자의 진심 어린 사과를 원했어요. 저는 ‘사과로 얻어지는 게 뭘까’ 고민했는데, 얻는 게 아니라 되찾고자 하는 거였어요. 학교폭력은 인간의 존엄, 명예, 영광을 잃게 해요. ‘그걸 되찾는 게 시작이구나, 원점이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이 드라마가 피해자들에게 위로가 됐으면 합니다.”(김 작가)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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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거주 아프리카인들의 문화, 렌즈에 담았죠”

    ‘같은 땅을 밟고 있어도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들.’ 사진작가 최원준(43)의 눈에 비친 한국에 거주하는 아프리카 출신 흑인들의 모습이다. 최 작가는 2020년부터 2년간 경기 동두천, 파주 일대를 돌며 그들의 일상을 카메라에 담았다. 서울 종로구 학고재갤러리에서 31일까지 열리는 사진전 ‘캐피탈 블랙’을 통해 그 결과물을 선보이고 있다. 전시장을 둘러보다 보면 ‘이 사진의 배경이 한국이 맞나’란 의문이 든다. 총 24점의 사진에는 우리에겐 생소한 아프리카 문화가 짙게 녹아있기 때문이다. ‘파티들, 동두천’(2022년)은 나이지리아 이보족의 다양한 파티 현장을 포착한 사진이다. 돈을 하늘에 뿌리거나 얼굴에 붙이는 등 서아프리카 지역의 전통 축하 의식이 담겼다. 평범한 가족사진인 듯한 ‘나이지리아에서 온 이구웨(왕) 찰스와 호프 그리고 한국에서 자녀들, 동두천’(2021년)도 가만 보면 왕관, 낯선 문양의 옷이 보인다. 아프리카의 왕족 문화가 한국에서도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최 작가는 “아프리카인은 미군이 줄어 월세가 비교적 싼 편인 미군부대 인근, 근무지인 제조업 공장지대 주변에 머물며 마을을 형성한다. 한국 제도권으로 들어갈 수 없는 그들은 그곳에서 자신들만의 문화와 공동체를 만들어 간다”고 했다. 작가는 동두천으로 작업실을 옮기면서 이 공동체에 몸담았다. 대표적인 협업물이 음악이다. 전시장에는 영상 작품 2점이 있다. 두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에는 모두 가나인 래퍼나 나이지리아인 가수 등 아프리카인이 참여했다. 그중 뮤직비디오 ‘저의 장례식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2022년)는 한 아프리카인이 세상을 떠나자 다양한 피부색을 가진 다국적 인물들이 모여 함께 신발 모양 관을 들고 곳곳을 다니며 애도하는 내용을 담았다. 최 작가는 “가나에서는 고인이 좋아한 물품으로 관을 짜는데, 그 전통을 차용했다”며 “아프리카인의 사진을 외국인 노동자가 아닌 민중의 초상으로 그리고 싶었다”고 했다.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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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두천 아프리카 타운엔 ‘왕’이 산다

    같은 땅을 밟고 있어도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들이 있다.사진작가 최원준(43)의 눈에는 한국에 거주하는 아프리카 출신 흑인들이 그랬다. 2020년부터 2년간 동두천, 파주 등을 돌며 그들의 일상을 좇았던 최 작가의 결과물이 서울 종로구 학고재에서 진행 중인 전시 ‘캐피탈 블랙’에서 선보여진다.전시장을 둘러보다보면 ‘이 사진의 배경이 한국이 맞나’ 의문이 들 정도다. 사진 24점에는 우리에게 생소한 아프리카 문화가 깊숙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파티들, 동두천’(2022년)은 나이지리아 이보족의 다양한 파티 현장을 포착한 사진이다. 공통적으로 보이는 장면은 이들이 돈을 하늘에 뿌리고 얼굴에 붙이는 것인데, 이는 서아프리카 지역의 축하 의식이라고 한다.평범한 가족사진인 듯한 ‘나이지리아에서 온 이구웨(왕) 찰스와 호프 그리고 한국에서 자녀들, 동두천’(2021년)도 가만 보면 특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꽃무늬 벽지와 갈색 가죽 소파가 전형적인 한국 가정집을 유추하게 하지만, 가장인 찰스의 머리에는 왕관이 씌워져있다. 낯선 문양의 옷을 입고 있는 그는 동두천 아프리카 타운 주민들이 추대한 왕이다. 아프리카의 왕족 문화가 한국에서도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최 작가의 작품 속 아프리카인들은 ‘외국인 노동자’보다는 ‘민중’으로 등장한다. 최근 전시장에서 만난 최 작가는 “이 프로젝트를 위해 동두천으로 작업실까지 옮겼다”고 했다. 그는 “아프리카인들은 미군이 감소하며 자연스레 월세가 값싸진 미군부대 인근, 혹은 본인들의 근무지인 제조업 공장지대 인근에 머물며 타운을 만든다. 한국 제도권으로 들어갈 수 없는 그들은 그곳에서 자신들만의 문화와 공동체를 결속해간다”고 했다.작가가 아프리카인들의 문화적 고립을 막기 위해 협업한 것이 음악이다. 전시장에는 2점의 영상작품이 있는데, 모두 가나인 래퍼나 나이지리아인 가수 등 아프리카인들이 제작에 참여했다. 그중 안쪽 방에서 상영되는 뮤직비디오 ‘저의 장례식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2022년)는 거대 기념비 형태의 신발 모양 설치물과 전시돼 눈길을 끈다. 한 아프리카인이 죽자 다양한 피부색을 가진 다국적 인물들이 모여 함께 신발 모양 관을 들고 고인의 발이 닿았던 곳들을 돌아다니며 애도하는 내용이다.최 작가는 “작년과 올해 아프리카인 사망자의 시신 2구를 본국으로 송환하는 데 도움을 줄 기회가 있었다. 가나에서는 고인이 생전 좋아했던 물품으로 관을 짜는데, 그 전통을 차용해 만들었다”고 했다. 그는 “이번 전시가 국내 아프리카 이주민에 연구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며 판매금 절반을 이주민센터 등에 기부할 예정이다.전시는 이달 31일까지.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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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파 한미사진미술관, 삼청동 ‘뮤지엄한미’로 재탄생

    서울 종로구 삼청동 거리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서서히 눈에 들어오는 베이지색 건물이 있다. 2000m² 규모의 ‘뮤지엄한미 삼청’(사진). 한국의 첫 사진전문 미술관인 한미사진미술관이 개관 20주년을 맞아 새로 지은 건물로, 건축계 거장 김수근(1931∼1986)의 제자인 민현식 건축가가 설계했다. 서울 송파구에 있던 한미사진미술관은 사진 관련 도서관으로 활용하고, 전시는 뮤지엄한미 삼청에서 진행한다. 개관을 맞아 미술관은 21일부터 내년 4월 16일까지 한국사진사를 조명한 전시 ‘한국사진사 인사이드 아웃, 1929-1982’를 연다. 1929년은 한국인 첫 개인 사진전인 정해창의 ‘예술사진 개인전람회’가 열렸던 해다. 1982년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임응식 회고전’이 개최돼 사진이 순수미술의 한 분야로 인정받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번 전시는 주명덕, 현일영, 이해선, 임응식 등 유명 한국 사진가 42명의 빈티지 프린트, 디지털 프린트 작품 207점으로 구성했다. 대개 작가별로 전시돼 있지만 20세기 한국을 살펴보는 전시로 여겨도 무방하다. 학도병을 담은 임인식 작가의 ‘6·25전쟁―군번 없는 학도병’(1950년), 구직이라는 팻말을 허리에 걸고 일자리를 구하는 청년을 찍은 임응식의 ‘구직’(1953년)이 대표적이다. 저온 수장고에 보관된 작품 중 일부는 ‘보이는 수장고’ 형식으로 관람객에게 공개한다. 국내에 사진을 최초로 도입한 황철 작가의 ‘원각사지 10층 석탑’ 원본(1880년대)은 이번 전시에서 처음 공개된다. 고종의 초상(1884년경)과 흥선대원군의 초상(1890년대) 원본도 10년 만에 전시된다. 5000∼6000원.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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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내 최초 사진 전문 미술관, ‘뮤지엄한미’로 재탄생

    서울 종로구 삼청동 거리를 죽 따라 올라가다보면 서서히 눈에 들어서는 건물이 있다. 2000㎡ 크기에 달하는 이곳은 ‘뮤지엄한미’. 건물 한가운데에는 ‘물의 정원’이란 이름의 인공 연못이 있고, 이를 가운데로 3개 동이 교차한다. 뮤지엄한미는 한국 최초의 사진전문 미술관인 한미사진미술관이 개관 20주년을 맞아 마련한 곳이다. 국내 건축계의 거장 김수근(1931~1986)의 제자인 민헌식 건축가가 설계를 담당했다. 본래 서울 송파구에 위치했던 한미사진미술관은 사진 관련 도서관으로 활용하고, 전시는 접근성 등을 고려해 뮤지엄한미 삼청에서 진행한다. 가장 달라진 것은 수장고다. 수장고 크기만 317.4㎡로, 이곳에는 약 2만 여점의 소장품이 보존된다. 최봉림 부관장은 “이전에는 전문적인 항온·항습이 갖춰지지 않은 창고에 보관됐다. 뮤지엄한미를 개관하며 5도에 달하는 국내 최저온 수준의 냉장 수장고를 구축했다”고 말했다. 미술관에 따르면 이 같은 항온, 항습 시스템은 소장품 수명 500년을 보장한다고 한다. 개관을 맞이해 미술관은 이달 21일부터 내년 4월 16일까지 한국사진사의 주요 연보를 재구성한 전시 ‘한국사진사 인사이드 아웃, 1929-1982’를 연다. 1929년은 한국인 최초로 연 개인 사진 전람회인 정해창의 ‘예술사진 개인전람회’가 열렸던 때다. 1982년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임응식 회고전’이 진행된 해로, 사진이 순수미술의 한 분야로 미술계에서 인정받았다는 의의가 있다. 전시에는 주명덕, 현일영, 이해선, 임응식 등 내로라하는 한국 사진가 42명의 빈티지 프린트, 디지털 프린트 작품 207점이 전시됐다. 저온 수장고에 보관된 작품중 일부는 ‘보이는 수장고’ 형식으로 관람객에게 공개한다. 주목할만한 건 국내 최초로 사진을 도입한 황철 작가의 ‘원각사지 10층 석탑’ 원본(1880년대)이 처음으로 선보여진다는 점이다. 또한 고종의 초상(1884년경)과 흥선대원군의 초상(1890년대) 원본도 10년 만에 전시된다. 미술관 측은 “한국사진사를 정립하는 것이 사진전문미술관으로 우선적 책무라고 생각해 이렇게 개관전을 마련했다”며 “앞으로는 국내외 사진은 물론 미디어아트까지 확대해 동시대미술을 아우를 예정”이라고 밝혔다. 개관전이 끝나는 내년 5월에는 올 9월 작고한 미국 태생의 프랑스 사진작가 윌리엄 클라인의 개인전이 예정돼있다. 그는 흔들리는 초점 등 정통 사진 기법을 거부하는 등 영상사진의 길을 개척한 인물이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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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당신이 있는 곳 창밖엔 어떤 풍경이 있나요?

    “우리는 몇 주가 될지 모를 오랜 시간 동안 단 하나뿐인 풍경이 보이는 집에서 격리될 텐데 지구 반대편에서 보이는 풍경은 어떤 모습일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극심했던 2020년, 벨기에 그래픽디자이너 겸 사진작가인 엮은이는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그는 그해 3월 22일 페이스북에 그룹 ‘나의 창밖 풍경’을 개설하고,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있는 자신의 작업실에서 보이는 저녁 풍경 사진을 올렸다. 약 한 달 뒤, 이 그룹엔 무려 200만 명이 넘게 참여했다. 100여 개 지역에서 올린 약 20만 개의 풍경 사진이 한데 모였다. ‘당신의 창밖은 안녕한가요’는 이들 게시물 가운데 258점을 골라 모은 사진집이다. 언뜻 보면 딱히 특별하지 않은 바깥 풍경을 찍었을 뿐이다. 하지만 코로나19를 함께 겪은 지구인이라면 이 사진들이 마냥 단순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찬찬히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의료진을 응원하기 위해 불빛을 밝혀 놓은 고층빌딩, 인간이 보이지 않자 집 근처까지 찾아온 야생동물처럼 의미심장한 장면들이 가득하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누군가는 사진집을 “역사적인 한 시기에 대한 순간 포착”이라 불렀다. 인류사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 팬데믹은 그간 쉽게 지나쳐 왔던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게 했다. 어떤 이는 창밖으로 보이는 앞집을 찍으며 항암치료를 받은 이웃 아주머니의 건강을 빌었다. 또 다른 이는 언제나 시끌벅적했던 거리가 공허할 정도로 텅 빈 걸 보며 가끔씩 들려오는 짧은 소음이 위안이 됐다고 털어놓았다. 코로나19로 우리의 삶은 변해 버렸다. 하지만 어쩌면 이 사진들처럼 그 변화는 또 다른 의미를 만드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당신의 창밖으로 눈부시게 빛나는 풍경은 우리에게 우리가 지금 갈 수 없는 곳을 보여주고, 같은 것을 아주 다르게 보는 시각을 공유한다”는 엮은이의 말은 참 오랫동안 곱씹게 된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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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팬데믹 시대, 서로의 안위를 묻다…“당신의 창밖은 안녕한가요?”

    “우리는 몇 주가 될지 모를 오랜 시간 동안 단 하나뿐인 풍경이 보이는 집에서 격리될 텐데 지구 반대편에서 보이는 풍경은 어떤 모습일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극심했던 2020년, 벨기에 그래픽디자이너 겸 사진작가인 엮은이는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그는 그해 3월 22일 페이스북에 그룹 ‘나의 창밖 풍경’을 개설하고,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있는 자신의 작업실에서 보이는 저녁 풍경 사진을 올렸다. 약 한 달 뒤, 이 그룹엔 무려 200만 명이 넘게 참여했다. 100여 개 지역에서 올린 약 20만 개의 풍경 사진이 한데 모였다.‘당신의…’는 이들 게시물 가운데 258점을 골라 모은 사진집이다. 언뜻 보면 딱히 특별하지 않은 바깥 풍경을 찍었을 뿐이다. 하지만 코로나19를 함께 겪은 지구인이라면 이 사진들은 마냥 단순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찬찬히 페이지를 넘기다보면 의료진을 응원하기 위해 불빛을 밝혀놓은 고층빌딩, 인간이 보이지 않자 집 근처까지 찾아온 야생동물처럼 의미심장한 장면들이 가득하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누군가는 사진집을 “역사적인 한 시기에 대한 순간포착”이라 불렀다. 인류사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 팬데믹은 그간 쉽게 지나쳐왔던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게 했다. 어떤 이는 창밖으로 보이는 앞집을 찍으며 항암치료를 받은 이웃 아주머니의 건강을 빌었다. 또 다른 이는 언제나 시끌벅적했던 거리가 공허할 정도로 텅 빈 걸 보며 가끔씩 들려오는 짧은 소음이 위안이 됐다고 털어놓았다. 코로나19로 우리의 삶은 변해버렸다. 하지만 어쩌면 이 사진들처럼 그 변화는 또 다른 의미를 만드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당신의 창밖으로 눈부시게 빛나는 풍경은 우리에게 우리가 지금 갈 수 없는 곳을 보여주고, 같은 것을 아주 다르게 보는 시각을 공유한다”는 엮은이의 말은 참 오랫동안 곱씹게 된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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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녀가 손대면, 떨어지는데도 편안해 보인다

    벌거벗은 여성이 몸을 잔뜩 웅크린 채 어딘가로 추락하고 있다. 그러나 긴박함이 없다. 오히려 편안해 보일 뿐. 독일 태생인 미국 작가 키키 스미스(68)의 판화 ‘자유낙하’(1994년)는 보고 있자면 고개가 갸우뚱거려진다. 추락하는데 오히려 ‘깨달음’이 느껴지다니. 미국을 대표하는 여성주의 작가인 스미스의 작품은 대체로 이렇다. 한계를 받아들일 때 더 자유롭다는 주제의식이 강렬하다. 해당 작품명을 부제로 올린 특별전 ‘키키 스미스-자유낙하’가 서울 중구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 15일부터 열린다. 14일 화상 인터뷰에서 작가는 “자유낙하란 제목엔 믿음을 갖고 두려움 없이 살고 싶단 마음이 담겼다”며 “자신을 믿고 오랜 시간 예술 작업을 해온 동료 예술가들을 보며 나 또한 그러고 싶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조각과 판화, 사진 등 140여 점으로 구성된 전시는 그의 작업 세계를 두루 짚는다. 작가가 말한 열망은 그의 생애 전반에 켜켜이 쌓여 왔다. 1985년 신체를 아홉 조각으로 나눠 그린 판화 ‘가진 사람이 임자’부터 실크에 꽃 형상을 찍어낸 2022년 작 ‘천국’까지 40년 가까이 이어온 여정이 담겼다. 전시는 연대별, 주제별로 정리되지 않았다. 이보배 미술관 학예연구사는 “작가는 정규 미술 수업을 받지 않고 조각가와 오페라 가수인 부모 밑에서 자란 영향을 크게 받았다”며 “조각이나 드로잉 등을 넘나들며 얽매이지 않았던 실험 정신을 이번 전시에도 살리려 했다”고 말했다. “예술이란 그런 거죠. 그냥 스스로 선언하면 되는 겁니다. 어느 날 아침에 잠에서 깨었을 때 ‘이제부터 예술가로 살겠다’고 맘먹으면 됩니다. 다만 그 이후의 삶을 감당할 수 있어야겠죠.”(스미스) 다소 산만해 보일 수도 있지만 주제의식은 오롯하다. 스미스의 핵심 소재인 ‘몸’을 따라가면 된다. 주철로 구부려 신체기관을 만든 ‘소화계’(1988년)처럼 그는 신체의 일부를 작품으로 자주 다뤘다. 이는 임신중절 등이 이슈가 됐던 1980년대 미국의 시대상을 반영하면서 동시에 개인사도 투영됐다. 그는 당시 아버지와 여동생이 차례로 세상을 떠나며 “생명의 취약함”을 온몸으로 느꼈다고 한다. 몸에 대한 관심은 여성주의로 자연스레 이어진다. 전시장 입구에서 처음 만나는 조각상 ‘메두사’(2004년)처럼 여성의 신체를 다룬 작품이 많다. 스미스가 직접 웅크리고 누워 테두리를 그린 ‘꿈’(1992년)과 늑대 배를 가르고 나오는 여성 조각 ‘황홀’(2001년)도 마찬가지다. 그런 여성들이 낙하하는 작품이 많은 건 왜일까. 이진숙 미술평론가는 “떨어짐을 받아들인다는 건 상승을 포기하고, 유한하고 취약한 몸을 인정한다는 뜻”이라며 “중력이 작용하는 지구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조건을 그대로 수용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계를 받아들인 스미스의 눈은 자연과 우주로 향하기도 한다. ‘의회’(2014년), ‘하늘’(2012년)에선 여성과 다양한 동식물이 함께 등장한다. 이 학예연구사는 “크고 작은 모든 걸 소재로 삼아 자유롭게 유랑하는 이야기에서 생동하는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고 했다. “한국은 제게 큰 의미가 있는 나라예요. 과거 한국은 종이를 바닥에 깔고 열이 나오는 ‘온돌’로 집을 지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종이의 물성을 이렇게도 다룰 수 있다는 걸 깨달은 게, 제 예술세계에 큰 충격을 줬거든요. 조만간 한국을 찾아 한지와 온돌 문화를 배우길 소망합니다.”(스미스) 내년 3월 12일까지. 무료.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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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약함으로부터 시작된 ‘키키 스미스’의 예술 세계…동식물과 우주로 뻗어나가다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작업이 자신을 어디로 데려가는지 두려움 없이 살고 있구나.’1994년, 독일 출생의 미국 작가 키키 스미스(68)는 어느 날 오랜 활동을 해온 동료 예술가들을 보고 이런 존경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그때 “나 또한 그렇게 살고 싶다”고 생각하며 만든 작품이 ‘자유낙하’.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듯한 여성의 모습을 판화로 찍어낸 작품이다.서울 중구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 15일 개막하는 전시 ‘키키 스미스-자유낙하’는 담대하고 도전적인 작품을 만들어온 스미스의 작업세계를 두루 살핀다. 키키 스미스는 1980~1990년대 여성상과 신체를 다룬 조각으로 주목을 받아왔다. 그가 아시아에서 처음 갖는 미술관 개인전인 이 전시에는 조각과 판화, 사진 등 140여 점이 소개된다. 1985년 신체를 9개의 조각으로 그려낸 판화 ‘가진 사람이 임자’, 해골 조각 작품 ‘무제’부터 실크에 꽃 형상을 찍어낸 올해 작품 ‘천국’까지 약 40년간에 걸친 키키 스미스의 여정을 살핀다. 전시는 연대별, 주제별로 섹션을 나누고 않아, 처음 볼 땐 다소 정리되지 않은 느낌이다. 하지만 키키 스미스의 작업 자체가 한 눈에 봐도 자유롭다. 조각, 드로잉 등 방식에 얽매지 않고 여러 실험적 도전을 해왔기 때문이다. 키키 스미스는 정규 미술수업을 받지 않았고, 미니멀리스트 조각가인 아버지와 오페라 가수 어머니 밑에서 자란 영향을 크게 받았다. 14일 화상인터뷰에 응한 키키 스미스는 “예술은 스스로 선언하는 것이다. 어느 날 아침 일어나 예술가로 살겠다고 하면 된다. 스스로 감당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라고 했다. 키키 스미스의 작품에서 빼놓을 수 없는 소재가 몸이다. 이번 전시에는 신체의 내부 기관을 주철이란 금속을 구부려 만든 ‘소화계’(1988년) 등 인체를 다룬 작품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이런 작업들은 에이즈나 임신중절 등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됐던 1980년대 미국의 시대상을 반영하면서, 작가의 개인사도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아버지의 별세와 에이즈에 걸린 여동생의 사망을 차례로 겪으며 생명의 취약함을 온몸으로 느낀 것이다. 몸에 대한 꾸준한 관심은 여성 전신상으로 자연스레 뻗어갔다. 전시장 입구에 놓인 나체 여성 조각상 ‘메두사(2004년)를 필두로 곳곳에는 여성의 몸을 소재로 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작가 자신이 직접 웅크리고 누운 뒤 테두리를 따라 그린 작품 ’꿈‘(1992년), 늑대 배를 가르고 걸어 나오는 여성 형상의 청동 조각 ‘황홀’(2001년) 등이 대표적이다. 모두 여성의 연약한 신체를 전면에 드러내면서 사실은 이런 연약함이 평범하고 자연스러운 것이란 걸 알려준다. 몇몇 작품에서 여성들은 어딘가로 추락하고 있는 것도 눈에 띈다. 대표적으로 ‘폭포’(2013년)는 머리를 아래로 길게 늘어뜨린 작가의 사진 위에 나무, 폭포수 등을 드로잉했다. 이진숙 미술사가는 “떨어짐을 받아들인다는 것, 상승을 포기한다는 것은 유한하고 취약한 몸을 인정하는 것“이라며 ”낙하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중력의 법칙이 작용하는 지구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조건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키키 스미스는 인간과 신체의 한계를 받아들이며 동물, 식물, 우주 등 다른 존재들과의 관계를 재정립하려 한다. 그의 직물 공예 작품 ‘회합’(2014년), ‘하늘’(2012년) 등에 여성과 함께 사슴, 박쥐, 다람쥐, 새, 나무, 빛, 산 등이 두루 등장하는 이유다. 이보배 서울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는 “자유롭게 유랑하는 듯한 도상과 인간을 넘어 자연과 우주 등 크고 작은 모든 것을 소재로 하는 그의 작품에서 생동하는 에너지를 느끼길 바란다”고 했다. 내년 3월 12일까지. 무료. 김태언기자 beborn@donga.com}

    • 2022-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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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굿을 사진 주제로 처음 인식한 작가, 굿에 내재된 민중의 美의식 발굴해”

    제주 출신의 유명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고 김수남(1949∼2006)의 회고전 ‘몰입’이 제주 제주시 산지천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동아일보 사진부 기자였던 고인은 1970년대부터 ‘한국의 굿’과 ‘아시아의 무속’을 주제로 여러 지역을 다니며 각 민족의 삶과 샤머니즘을 카메라에 담았다. 한국 곳곳은 물론 시베리아부터 적도까지 순례하듯 누비며 촬영한 작품은 토속 문화의 진수를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는다. 고인은 2007년 옥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작품을 비롯해 카메라, 메모 수첩 등을 두루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고인의 예술 세계 전반을 짚는다. 작품과 자료는 2017년 유족이 제주도에 기증했다. 정슬기 산지천갤러리 큐레이터는 “김수남 작가는 굿을 사진의 주제로 처음 인식한 작가로, 굿에 내재된 민중의 미의식을 발굴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 갤러리는 고인의 유족에게 작품을 대거 기증받아 개관하게 됐다”며 “올해 개관 5주년을 맞아 기증품 전반을 선보이는 전시를 마련했다”고 덧붙였다. 산지천갤러리는 제주도와 제주문화예술재단이 운영한다. 전시는 크게 3개 소주제로 구성했다. 사진 작품은 47점으로, ‘여정旅程: 여행의 과정이나 일정’ 섹션에서 볼 수 있다. 1983년부터 1993년까지 제작해 총 20권으로 이뤄진 사진집 ‘한국의 굿’에 포함된 ‘수용포 수망굿: 경상북도 영일군 지행면 영암3기’(1981년), ‘제주도 잠수굿: 제주도 제주시 구좌읍 동김녕리’(1985년), ‘청사포 별신굿: 부산시 해운대구 중동 청사포’(1980년)가 대표적이다. 인간문화재와 제주 풍경을 담은 대표작들도 만날 수 있다. ‘의지意志: 어떠한 일을 이루고자 하는 마음’에서는 고인이 작업을 위해 애쓴 흔적을 살필 수 있다. 카메라와 취재 수첩 19점, 라이트박스 등이 전시돼 작품이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을 상상해 볼 수 있다. ‘유산遺産: 앞 세대가 물려준 문화·업적·사물’은 고인이 남긴 책 30점과 기고문 50여 점으로 구성했다. 내년 3월 19일까지. 무료.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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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아름다움, 둘이서 탐하면 기쁨도 두 배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된다는 말이 미술품 컬렉션에도 적용될까. 20여 년간 기업과 개인 컬렉션을 위한 어드바이저로 일한 저자는 수많은 컬렉터 중에서도 부부 컬렉터들이 눈에 띄었다고 한다. 한 팀을 이뤄 활동하는 부부 컬렉터의 경우 작품을 선택할 때 두 사람의 삶과 철학이 녹아 있다 보니 예술이 지닌 아름다움 그 이상의 여운을 갖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란 게 저자의 설명이다. 책은 열한 쌍의 부부 컬렉터를 소개하며 다양한 수집의 기쁨을 전한다. 흥미로운 건 이들 부부가 모두 엄청난 부호가 아니라는 점이다. 첫 사례로 실린 보겔 컬렉션이 대표적이다. 허버트 보겔과 도로시 보겔은 평범한 우체부와 도서관 사서였다. 미술을 독학했던 허버트는 도로시와 관심사를 공유했다. 부부는 결혼하고 두 달 후 처음 작품을 구입하기 시작해 50년간 4782점을 모았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당시 허버트의 연봉은 연간 2만5000달러(약 3000만 원)였다. 이들은 젊은 작가의 작품 혹은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인 드로잉에 집중했다. 다만 작가 작업실을 방문해 작업 배경에 대한 충분한 대화를 즐겼기에 유명 작가들이 이름을 알리기 전부터 교류할 수 있었다. 중요한 원칙도 있었다. 이는 보겔 컬렉션의 특별함을 만들어줬다. ‘지하철이나 택시로 운반할 수 있는 크기일 것’ ‘아파트에 설치가 가능한 작품일 것’ 등 이들이 지켜온 원칙은 평범하지만 보겔 부부만의 색깔을 띤 컬렉션으로 거듭나게 했다. 이들 컬렉션은 현재 미국 워싱턴 국립미술관인 내셔널갤러리와 미국 내 50개 주 미술관에 기증돼 있다. 자연 속에 조각공원을 지은 부부도 있다. 미국 뉴욕 ‘벅혼 조각공원’에 대형 조각 및 설치 작품 70여 점을 놓은 조엘 멀린과 셰리 멀린이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기준 없이 직관에 의존해 컬렉션한다”고 하지만 무용을 공부하며 선의 아름다움에 집중했던 셰리 덕분에 멀린 컬렉션은 조각 비중이 큰 편이다. 부부들의 철학, 컬렉션을 시작한 동기는 예비 컬렉터에게 유용한 정보가 되는 동시에 행복을 나눌 수 있는 ‘인생의 동반자’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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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첫 국제전 초청에 “좋았다”…담담한 양유연 미술가의 호젓한 작품세계

    근대미술가 박래현(1920~1976)과 이중섭(1916~1956), 현대미술가 김순기(76)와 이미래(34), 양유연(37). 올 9월부터 내년 4월까지 미국 피츠버그에서 열리는 ‘제58회 카네기 인터내셔널’에 초청된 한국 작가 명단이다. 카네기 인터내셔널은 1896년 설립돼 4년마다 열리는 미국 미술계의 유명 국제전이다. 양유연 작가는 다른 참여 작가들과 달리, 국제전에 초청된 게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 전통 종이인 장지에 그림을 그려온 양 작가는 이번에 자신의 기존 작품 8점과 신작 3점을 내놓았다. 해외 언론에서는 “컬트 영화감독이자 시각 예술가인 데이비드 린치의 분위기를 연상시키는 어둡고 우울한 색의 작품”이라는 호평을 받고 있다. 지난달 29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양 작가는 이번 초청에 대해 “좋았어요”라며 담담하게 말했다. “기대가 크지 않아요. 성향 자체가 그래요. 늘 최악을 생각하죠.”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을 “마이너”라고 말하는 작가 특유의 호젓함. 이런 분위기는 그의 작품에서도 잘 드러난다. 양 작가의 그림은 첫 인상은 일단 ‘어둡다.‘ 대부분 검거나 퍼렇거나 잿빛에 가까운 배경. 불투명하고 탁한 색감 덕에 그림을 보고 있으면 본능적인 두려움과 고독감이 밀려온다. 양 작가는 “순식간에 동요되는 그림보다는 무엇인지 모르겠는 감정을 일게 하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했다. 작품 속 인물들이 전면에 등장하지 않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작품에서 얼굴은 그려지지 않는다. 그려져도 그림자에 일부 가려져 있거나 표정이 없다. 그는 “내 그림은 빛과 어둠에 의해 교묘하게 숨겨지고 가려져 있다. 이러한 불확실한 이미지들이 주는 감정은 뒤돌았을 때 계속 생각이 난다”고 했다. 빛과 어둠이 공존하기에 양 작가의 그림 또한 서늘하고 헛헛하면서도 마냥 싸늘하게는 느껴지지 않는다. 관객에게 느껴지는 이질적인 감정은 양 작가가 사회를 바라보는 불안정한 시선과 맞닿아있다. 그는 “그때그때의 내 삶이 그리기에 영향을 줬다”고 했다. 다만 구체적인 사연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작가의 이야기가 아닌 작품 그 자체로 평가받고 싶다”는 바람 때문이었다.“분명 결핍이 있었죠. 하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특별히 불우한 환경은 아니었어요. 남들이 보기에는 별 거 아닌 작은 생채기일 수도 있죠. 그렇지만 제가 거기서 느끼는 아픔의 감각은 클 수 있는 거거든요.” 이런 예민함은 작가의 외연을 넓히기에 충분했다. 양 작가의 초기작이 자기 상처에 집중했다면, 그는 점차 바깥으로 시선을 돌렸다. 1970년대 후반 동일방직노동자 투쟁이 바탕이 된 ‘얼룩’(2017년)처럼 다소 직접적인 소재를 다루기도 했다. 누군가의 목덜미 뒤에 남겨진 상흔을 그린 ‘자국’(2020년)처럼 타인의 상처를 드러내 보이기도. 모두 지나치기 쉬운 사람과 순간에 작가의 시선이 머물러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래서일까. 양 작가는 “그림 앞에 망설여지는 시간이 더 잦아진다”고 털어놨다. “그림에 대한 일종의 책임감, 죄책감 같은 게 생겨요. ‘내가 함부로 그려도 될까?’ 하는 생각이죠. 그래도 그려요. 그려야 하니까요. 못 그리게 된다고 생각하면 공포감이 엄청나거든요.”김태언기자 beborn@donga.com}

    • 2022-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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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술투자는 장기전… 아트딜러와 컬렉터, 취향-안목-용기 필요”

    “미술은 작가의 고뇌에 의해 만들어진 신화가 아닙니다. 아트딜러, 컬렉터, 작가가 벌이는 긴장감 넘치는 게임이 미술시장에 존재하죠. 미술이 자본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알면 성숙한 미술시장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교수(사진)가 2013년 펴낸 ‘그림값의 비밀’ 개정판(창비)을 지난달 18일 내놨다. 개정판에는 최신 데이터와 ‘미술 투자를 위한 Q&A 섹션’ 등을 새로 담았다. 미술과 자본주의의 관계를 역사적으로 살펴보면서 미술 투자의 원칙을 짚는다. 지난달 28일 전화 인터뷰에서 양 교수는 “미술시장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아 2013년과 확연히 달라졌음을 느낀다”고 했다. 그는 “미술은 장기전”이라고 강조했다. 개정판에 추가된 ‘미술시장의 블루칩, 인상주의’ 섹션에서는 미술계의 조롱을 받던 클로드 모네와 빈센트 반 고흐가 화상과 가족의 도움으로 시장의 주목을 받게 된 과정을 좇는다. 양 교수는 “현대미술은 인상파와 닮아있다. 지금 대개의 현대미술도 괴팍하고 난해한 것으로 평가된다. 인상파가 시장에 안착하기까지의 20∼30년을 따라가다 보면 현대미술을 보는 태도가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재평가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이는 가치 있는 작품을 발굴하고 판매하는 아트딜러다. 양 교수는 이들을 “제2의 창작자”라고 불렀다. 그는 “아트딜러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현재 한국에서 작가를 발굴하는 화랑은 전체의 10%밖에 안 된다. 나머지는 (기존에 거래된) 중고품을 거래할 뿐”이라고 했다. 양 교수는 단적인 장면으로 올해 9월 동시 개최된 ‘프리즈 서울’과 ‘한국국제아트페어(KIAF·키아프)’를 꼽았다. “프리즈는 취향을 팔았죠. 확실히 화랑별로 색이 뚜렷했어요. 그런데 키아프는요? 대동소이했습니다.” 양 교수는 “작가에 대한 평가는 단기간에 끝나지 않는다”며 “10∼20년 후 평가가 어떻게 달라질지 모른다”고 했다. 미술시장에서 필요한 것은 “취향, 안목, 용기”다. 이는 아트딜러뿐만 아니라 컬렉터도 마찬가지다. “국내 컬렉터층이 두껍다거나 이들이 연속성을 갖고 작가들을 후원한다고 말할 순 없습니다. 하지만 밀레니얼세대가 컬렉터층으로 급부상한 건 고무적인 현상입니다. 전문 지식보다는 자신의 취향을 중요시하는 이들이 앞으로 미술시장을 이끌 주역이기 때문입니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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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즘의 화랑, 작가 발굴보다 중고품 거래 치우쳐”

    “미술은 작가의 고뇌에 의해 만들어진 신화가 아니다. 아트딜러, 컬렉터, 작가가 벌이는 긴장감 넘치는 게임이 있다. 미술이 자본과 어떻게 매개되어갔는지를 알면 성숙한 미술시장과 자본주의가 될 것이라 기대한다.”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교수의 책 ‘그림값의 비밀’(창비)이 18일 다시 나온 이유다. 28일 전화로 만난 양 교수는 2013년 처음 출간 때를 회상하며 “미술시장에 대한 관심이 확연히 달라졌음을 느낀다”고 했다. 책은 최신 데이터를 추가하고 ‘미술 투자를 위한 Q&A 섹션’ 등을 넣어 새로이 내놨다. 미술과 자본주의의 관계를 역사적으로 살펴보며 미술 투자에 대한 변치 않는 사실들을 짚어나간다.우선되는 건 “미술은 장기전”이라는 사실이다. 이번 책에 추가된 ‘미술시장의 블루칩, 인상주의’ 섹션에서는 미술계의 조롱을 받던 클로드 모네와 빈센트 반 고흐가 화상과 가족의 도움으로 시장의 주목을 받게 된 과정을 쫓는다. 양 교수는 “현대미술이 인상파와 닮아있다. 지금 대개의 현대미술도 괴팍하고 난해한 것으로 평가된다. 인상파가 시장에 안착하기까지의 20~30년을 따라가다 보면 현대미술을 보는 태도가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재평가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가치 있는 작품을 발굴하고 판매하는 아트딜러다. 양 교수는 이들을 “제2의 창작자”라고 칭한다. 하지만 지금 한국 미술시장에 대입해보면 현실은 막막하다. 양 교수는 “지금 한국의 1차 시장, 즉 작가를 발굴하는 화랑은 전체 화랑 중 10%밖에 안 된다. 나머지는 중고품을 거래할 뿐”이라고 말했다.이런 상태를 보여준 단적인 장면이 올 9월 동시 개최한 ‘프리즈 서울’과 ‘한국국제아트페어(KIAF·키아프)’라고 했다. “프리즈는 취향을 팔았죠. 확실히 화랑별로 색이 뚜렷했어요. 그런데 키아프는요? 대동소이했습니다.”최근 미술계의 우려는 한 발 더 나아간다.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는 이달 ‘2022년 3분기 미술시장 분석보고서’를 내놓으며 “초현대작가군(1975년 이후 출생한 작가들)이 경매에 바로 유입되어 블루칩으로 등극할 때까지의 시간이 단축됐다”고 했다. 이에 양 교수는 “작가에 대한 평가는 결코 단기간에 끝나지 않는다. 10~20년 이후 평가가 어떻게 달라질지 모른다. 하지만 지나치게 시장 친화적이면 시장 맞춤형 작품 그 이상을 뛰어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이처럼 혼잡한 미술시장에서 필요한 것은 “취향, 안목, 용기”다. 이는 아트딜러뿐만 아니라 컬렉터에게도 필요한 요건이다. 양 교수는 “현재 국내 컬렉터층이 두텁다거나 이들이 연속성을 갖고 작가들을 후원한다고 말할 순 없다. 하지만 밀레니얼 세대가 컬렉터층으로 급부상한 것은 긍정적이다. 전문 지식보다는 자기 취향이 앞서가는 이들이 향후 미술시장을 이끌 주역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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