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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드로잉인가 회화인가.’ 서울 종로구 토포하우스에서 다음 달 13일까지 열리는 ‘긴 호흡: 다섯 작가의 드로잉’ 전시는 드로잉을 ‘대상의 윤곽을 채색 없이 선으로 그리는 것’이라고 여겼던 관람객의 생각을 흔들어 놓는다. 드로잉을 기본으로 하되 채색을 곁들였다. 원로 작가 윤동천(65), 정현(66), 곽남신(69), 오원배(69), 서용선(71)의 드로잉 총 25점을 선보이는 전시를 통해 변화하는 드로잉의 개념을 확인할 수 있다. 전시장 초입에 놓인 조각가 정현의 드로잉 6점은 비교적 익숙하다. 종이에 오일바 등으로 나무와 인간을 그렸는데, 거친 느낌을 풍긴다. 그는 서문에서 “내 감정이 가장 첫 번째로 표현되는 것이 드로잉”이라고 설명했다. 전시장에서 28일 만난 오 작가는 “더 이상 드로잉을 ‘작품의 밑바탕’ 혹은 ‘연습용’으로만 정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실제 오 작가의 작품 ‘무제’(2022년)는 로봇 형상을 구체적으로 그리고 채색을 곁들였다. 오 작가는 “드로잉이 회화보다는 단순하고 즉흥적인 요소를 갖고 있지만, 그 자체로도 작품으로 인정받는 추세”라고 했다. 곽 작가의 작품은 일반적인 ‘드로잉’ 개념과 거리가 더 멀다. 종이에 수채색연필로 작업한 ‘실루엣 놀이’(2019년)는 그림자까지 그려 멀리서 볼 땐 입체 작품처럼 보인다. 곽 작가는 “최근 물감을 쌓아가면서 화면을 구성하는 전통적 회화보다는 가볍고 단순한 회화를 추구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드로잉적인 회화’가 탄생했다. 이 작업은 기존 회화보다 더 자유롭다”고 했다.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한국에서 핼러윈은 문화·상업적으로 ‘만들어진 문화’다. 전문가들은 MZ세대(밀레니얼+Z세대)가 유년 시절을 보낸 2000년대 초 영어 유치원과 학원에 원어민 강사 채용이 일반화되고 수업의 일환으로 핼러윈 파티가 정착되면서 핼러윈 문화가 확산됐다고 분석한다. 어릴 때부터 핼러윈 파티를 접한 MZ세대에게 핼러윈은 더 이상 미국 문화가 아니라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처럼 익숙한 문화가 됐다는 것이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30일 “지금 10, 20대는 어린이집을 다니던 미취학 아동 때부터 원어민 강사와 함께 코스튬 플레이를 즐기며 핼러윈에 익숙해진 세대”라며 “성인이 된 지금도 이들에게 핼러윈은 자연스러운 문화가 됐다”고 말했다. 한국의 핼러윈 문화는 MZ세대를 대상으로 한 마케팅과 맞물리며 규모가 커졌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2000년대 초 국내 테마파크에서 핼러윈 축제를 기획하며 학원가에서 소규모 집단이 즐기던 파티에서 대규모 축제로 몸집을 키웠다”고 했다. 회사원 이하영 씨(28)는 “초등학생 때부터 가족과 놀이동산에 가서 핼러윈 퍼레이드를 접했다”며 “10월이 되면 음식점과 상점이 각종 핼러윈 이벤트를 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핼러윈을 즐기게 됐다”고 말했다. 실제 핼러윈 문화에 익숙해진 MZ세대가 성인이 되면서 서울 용산구 이태원과 마포구 홍대입구역 일대 클럽에서 핼러윈을 마케팅에 활용하기 시작했다. 어린이가 있는 가족과 이웃들이 소규모로 즐기는 미국 핼러윈과 달리 한국의 핼러윈이 테마파크와 클럽을 중심으로 대규모 인파가 몰리는 축제로 자리 잡은 배경이다. 소셜미디어도 핼러윈 문화가 폭발적으로 확산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독특한 복장을 한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리면 뜨거운 관심을 받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한국의 핼러윈 문화는 코스튬 플레이를 한 사진을 SNS에 올리는 ‘인증샷’ 문화와 만나며 핼러윈 축제가 열리는 클럽 일대에 폭발적인 인파를 끌어들였다”고 말했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이것은 드로잉인가 회화인가.’서울 종로구 토포하우스에서 다음달 13일까지 진행되는 ‘긴 호흡: 다섯 작가의 드로잉’ 전시의 첫 인상이다. 이곳에는 다섯 명의 국내 원로 작가 윤동천(65), 정현(66), 곽남신(69), 오원배(69), 서용선(71)의 드로잉 총 25점이 전시되고 있다.드로잉을 ‘대상의 윤곽을 채색 없이 선으로 그려내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면, 이번 전시를 통해 변화하고 있는 드로잉의 개념을 살펴볼 수 있다. 전시장 초입에 놓인 조각가 정현의 드로잉 6점은 비교적 익숙하다. 종이에 오일바 등으로 나무와 인간의 형상을 그렸는데, 거친 느낌을 풍긴다. 그는 서문에서 “내 감정들이 가장 첫 번째로 표현되는 것이 드로잉”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돌리면, 드로잉이라기에는 생경한 작품들이 놓여있다.28일 전시장에서 만난 오 작가는 “더 이상 드로잉을 ‘작품의 밑바탕’ 혹은 ‘연습용’으로만 정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실제 오 작가의 작품 ‘무제’(2022년)는 종이 위에 작업했다는 점을 제외하면, 구체적인 로봇의 형상을 그려 넣고 채색까지 곁들여 ‘드로잉’에 대한 고정된 이미지와는 결이 다르다. 오 작가는 “드로잉이 회화보다는 단순하고 즉흥적인 요소를 갖고 있지만, 그 자체로도 작품으로 인정받는 추세”라고 했다.곽 작가의 작품은 더욱 보편적인 ‘드로잉’ 개념과 멀다. 작품 ‘실루엣 놀이’(2019년)는 종이 위에 수채색 연필로 작업했는데, 그림자까지 그려 넣어 멀리서 볼 땐 입체 작품처럼 보이기도 한다. 같은 날 만난 곽 작가는 “최근 물감을 쌓아가면서 화면을 구성하는 전통적 회화보다는 가볍고 단순한 회화를 추구했다. 그러다보니 ‘드로잉적인 회화’가 탄생했고, 이 작업은 기존 회화보다 더 자유스러움이 있다”고 말했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중세 유럽의 여러 사료나 도상에 나오는 악마들은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머리에 뿔이 달렸고, 몸에 반점이나 줄이 가로로 그어져 있다. 이 때문인지 12, 13세기에 줄무늬 옷은 비하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당시에 줄무늬 옷을 입는 이들은 집시나 죄수처럼 사회에서 배척받는 사람들이었다. 줄무늬 옷이 기본 아이템으로 여겨지는 현대사회에서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당시엔 줄무늬 자체가 혼란을 야기하는 존재로 여겨졌다. 스위스 로잔대와 제네바대에서 초빙교수를 지내며 ‘중세 문장학의 대가’로 꼽히는 저자는 “중세인은 자연에서 줄무늬를 발견하는 게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기에 공포감과 혐오감을 느꼈다”고 설명한다. 무질서의 상징이던 줄무늬는 근대 유럽에서 새로운 지위를 얻는다. 가로 줄무늬가 아니라 세로 줄무늬가 등장하면서 신성로마제국을 중심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게 된다. 장 클루에(1486∼1540)의 그림 ‘프랑수아 1세의 초상’에서 보듯, 군주들마저 세로 줄무늬 옷을 입고 초상화 모델로 설 정도였다. 세로 줄무늬가 귀족적인 이미지를 보여주는 상징물이 됐다. 하지만 여전히 일부 계층의 상징이나 이국적인 이미지가 강했던 줄무늬는 미국으로 건너가 또 한번 변화를 맞는다. 직물이나 실내 장식으로 퍼지던 줄무늬는 독립혁명이 시작된 1775년을 기점으로 정치적 아이콘으로 떠오른다. 당시 미국인은 영국에 맞서며 13개의 식민지를 뜻하는 빨간색과 하얀색으로 이뤄진 가로 줄무늬 깃발을 만든 것이다. 이때부터 줄무늬는 자유주의 독립사상에 대한 지지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등극했다. 전위적인 예술가들에겐 줄무늬가 도발적이면서도 불량스러운 이미지로 애용됐다. 괴짜였던 파블로 피카소(1881∼1973)는 위아래로 줄무늬 옷을 입은 모습을 자주 드러냈다. 프랑스 설치미술가 다니엘 뷔렌(84)도 줄무늬를 주제로 50년 가까이 활동하고 있다. 줄무늬라는 하나의 소재를 따라 천변만화하는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줄을 긋는다는 하나의 행위가 어쩌면 가장 파격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올해의 작가상’ 10년을 기념하는 전시 ‘올해의 작가상 10년 기록’이 28일부터 열린다. 이번 전시는 도록과 영상 아카이브 자료 등으로 이뤄진다. 2~3 전시실에서는 작가 선정과 심사 과정, 작가의 작업실 모습, 신작 제작 과정, 작가의 개별 인터뷰 등 10년간 축적된 영상 기록 자료를 펼쳐놨다. 4 전시실에서는 역대 발간된 ‘올해의 작가상’ 도록과 전시 자료들로 구성됐다. 올해의 경우 미술관은 ‘올해의 작가상’ 작가를 선정하지 않기로 했다. 내년에는 2월 ‘올해의 작가상’ 수상자를 발표하면서 그동안 지적된 문제점 등을 반영한 개선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이제껏 후보작가 경쟁 체제로 진행되는 선정 방식에 대한 지적과 특정 장르에 선정 작가가 치우친다는 비판 등이 있었다. 전시는 내년 3월 26일까지. 올해의 작가상은 국립현대미술관이 1995년부터 2010년까지 개최한 ‘올해의 작가’ 전시에서 출발했다. 2012년부터는 SBS문화재단과 장기 후원협약을 맺고 4명의 후보작가 중 한 명을 최종 수상자로 선정하는 형태로 운영하고 있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중세 유럽의 여러 사료나 도상에 나오는 악마들은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머리에 뿔이 달렸고, 몸에 반점이나 줄이 가로로 그어져 있다. 이 때문인지 12, 13세기에 줄무늬 옷은 비하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당시에 줄무늬 옷을 입는 이들은 집시나 죄수처럼 사회에서 배척받는 사람들이었다. 줄무늬 옷이 기본 아이템으로 여겨지는 현대사회에서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당시엔 줄무늬 자체가 혼란을 야기하는 존재로 여겨졌다. 스위스 로잔대와 제네바대에서 초빙교수를 지내며 ‘중세 문장학의 대가’로 꼽히는 저자는 “중세인은 자연에서 줄무늬를 발견하는 게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기에 공포감과 혐오감을 느꼈다”고 설명한다. 무질서의 상징이던 줄무늬는 근대 유럽에서 새로운 지위를 얻는다. 가로 줄무늬가 아니라 세로 줄무늬가 등장하면서 신성로마제국을 중심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게 된다. 장 클루에(1486~1540)의 그림 ‘프랑수아 1세의 초상’에서 보듯, 군주들마저 세로 줄무늬 옷을 입고 초상화 모델로 설 정도였다. 세로 줄무늬가 귀족적인 이미지를 보여주는 상징물이 됐다. 하지만 여전히 일부계층의 상징이나 이국적인 이미지가 강했던 줄무늬는 미국으로 건너가 또 한번 변화를 맞는다. 직물이나 실내장식으로 퍼지던 줄무늬는 독립혁명이 시작된 1775년을 기점으로 정치적 아이콘으로 떠오른다. 당시 미국인은 영국에 맞서며 13개의 식민지를 뜻하는 빨간색과 하얀색으로 이뤄진 가로 줄무늬 깃발을 만든 것이다. 이때부터 줄무늬는 자유주의 독립사상에 대한 지지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등극했다. 전위적인 예술가들에겐 줄무늬가 도발적이면서도 불량스러운 이미지로 애용됐다. 괴짜였던 파블로 피카소(1881~1973)는 위아래로 줄무늬 옷을 입은 모습을 자주 드러냈다. 프랑스 설치미술가 다니엘 뷔렌(84)도 줄무늬를 주제로 50년 가까이 활동하고 있다. 줄무늬라는 하나의 소재를 따라 천변만화하는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줄을 긋는다는 하나의 행위가 어쩌면 가장 파격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스트라이프, 혐오와 매혹 사이 / 미셸 파스투로 지음·고봉만 옮김 / 238쪽·2만2000원·미술문화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1. 18일 서울 강동구 강동성심병원. 진료를 기다리던 어린이 환자들 사이로 일러스트화가인 구지민 작가(30)가 나타났다. 구 작가가 “중력 없는 방이 있다면 뭘 하고 놀까”라는 질문을 던지자, 아이들은 종이에 그림을 그리고 잘라 구 작가가 미리 준비한 그림에 붙이기 시작했다. 현직 작가와의 만남에 아이들은 아픈 것도 잊은 채 빠져들었다. #2. 2018년 영국 런던 테이트모던미술관. 광장 앞에 낯선 전시물들이 채워지며 지나가던 시민들이 웅성거리며 모여들었다. 그린란드 피오르에서 옮겨온 어른 키보다 살짝 큰 빙산 조각 30개가 예술품으로 배치된 것. 온난화를 경고하기 위해 덴마크 설치미술가 올라퍼 엘리아슨(55)이 주도한 ‘아이스 워치’라는 야외 전시였다. 얼핏 닮은 점이 없어 보이는 두 프로젝트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예술가와 후원자를 연결해주는 ‘아트 펀드레이저’가 성사시켰다는 것. 국내에선 ‘문화예술후원매개전문가’라고도 부르는 아트 펀드레이저는 해외에선 이미 낯설지 않은 개념. 미국은 약 1만 명에 가까운 아트 펀드레이저가 활동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에선 최근 공연 기획을 중심으로 미술 전시나 예술프로젝트 등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2019년 유엔의 세계기후변화 회의를 앞두고 열린 ‘아이스 워치’는 미 블룸버그재단의 아트 펀드레이저가 기획을 주도했다. 재단이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널리 알리고 싶어 하자 적절한 예술가를 찾아 연결시켰다. 당시 현지에서도 “예술과 후원이 만난 모범 사례”라며 반향이 컸다고 한다. 구 작가의 미술치유 워크숍도 마찬가지다. 국내 미술계 아트 펀드레이저 스타트업인 ‘블루버드씨’가 기획했다. 김상미 블루버드씨 대표는 “병원을 찾은 아동을 위한 예술이란 콘셉트를 갖고 후원자인 병원과 미술가인 구 작가를 섭외했다”며 “예술은 감정 회복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만큼 다양한 기획을 선보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리그 오브 레전드(LoL) 라이브: 디 오케스트라’도 일종의 아트 펀드레이저가 내놓은 결과물이다. 세종문화회관이 아트 펀드레이저 역할을 맡아 “젊은 남성들이 좋아할 만한 클래식 공연을 해보자”는 취지로, 젊은층이 좋아하는 게임인 ‘LoL’ 배경음악을 연주하는 콘서트를 기획했다. ‘LoL’ 제작사인 라이엇게임즈가 후원하고 KBS교향악단이 연주를 맡았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여성 관람객 위주였던 기존 클래식 공연과 달리, 남성 관람객이 50% 이상이었다. 조휘영 세종문화회관 공연제작마케팅팀 PD는 “객석 점유율이 95%에 이를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다. 특히 20대 예매가 63.9%를 차지해 기획 의도와 잘 맞아떨어졌다”고 했다. 아트 펀드레이저는 국내에선 초기 단계이지만 성장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미래 유망 14개 신 직업’ 가운데 하나로 꼽기도 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2020년부터 아트 펀드레이저 양성을 위한 ‘아트너스 클럽’을 운영하고 있다. 민세정 예술위원회 예술확산본부 차장은 “2020년엔 지원자가 50명이었지만 지난해 71명, 올해는 120명으로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김성규 전 세종문화회관 사장은 “한국은 문화예술에 대한 모금이나 후원이 활발하지 않은 실정이라 아트 펀드레이저 같은 관련 전문가 양성이 시급하다”며 “문화예술에 대한 후원은 이를 즐기는 저변이 확대된다는 뜻이기에 문화계가 더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바람이 그린 ‘그림’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까?” 전업 화가 10년 차인 김수연 작가(36)는 최근 자신이 지속한 ‘바람 채집’이 벽에 가로막힌 기분이 들었다. 그는 “자연이 만든 의도하지 않은 미의 세계”를 찾기 위해 야외에서 붓을 줄에 매달아 바람에 흔들리는 대로 그림이 그려지게 했다. 나름대로 성과를 냈지만, 뭔가 본질적인 해답은 저 멀리 안개에 가려진 듯 답답했다고 한다. 최근 김 작가는 12일부터 열린 전시 ‘Dialogue(대화)’에서 진행한 ‘일대일 프라이빗 멘토링’에서 빛을 발견한 기분이 들었다. 전시 기획자인 이대형 예술감독, 임근준 미술평론가와의 대화에서 “국내외 여러 문학에는 바람이 가진 상징이나 의미가 자주 등장한다. 이를 공부하며 자신의 답을 찾아보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미술의 길은 어렵고 지난하다. 특히 청년 작가들은 혼란에 빠져 길을 잃거나 포기하는 경우가 잦다. 미술계에선 고민에 빠진 MZ세대 작가들이나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하는 지역 작가들이 선배 화가나 현직 큐레이터 등과 상담하는 ‘일대일 매칭 프로그램’이 최근 늘어나고 있다. 이 예술감독도 “상업성과 예술성 사이에서 갈피를 잡기 힘든 작가들에겐 약간의 조언도 방향 설정에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대표적인 경우가 지난해부터 시작된 국립현대미술관의 기획 사업인 ‘공립미술관 추천작가-전문가 매칭 지원’이다. 지역 공립미술관이 지역 작가들을 추천하면 분야별 전문가가 ‘맞춤형 멘토링’을 진행한다. 지난해는 5개 기관에서 추천한 15명의 작가가 대상이었고 올해는 7개 기관에서 추천한 12명에게 지원을 해주고 있다. 서울시립미술관이 공모로 선정한 작가들을 상대로 멘토링과 전시를 진행하는 ‘신진미술인 전시 지원 프로그램’도 비슷한 경우다. 미술관은 “최근 대상을 확대해 공모 선정 작가가 아니더라도 작업관이 확립되지 않은 젊은 작가에게 도움을 주려 하고 있다”고 밝혔다. 강원 양구에서 주로 활동하는 김형곤 작가(52)도 지난해 국립현대미술관 프로그램을 통해 김주원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실장과 만난 뒤 “이런 기회가 더 늘어나야 한다”며 반색했다고 한다. 김 실장은 “지역 미술계는 작가가 대중과 소통할 기회나 창구가 많지 않아 고립되기 쉽다”며 “비평가를 비롯한 미술계 인사들과 만나 작업관을 확장해 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올해로 10년차에 접어든 김수연 작가(36)는 최근 자신의 작업 방향에 고민이 생겼다. 김 작가는 줄에 매달아 놓은 붓이 바람에 흔들리며 남긴 흔적을 바탕으로 작업해왔는데, “단순히 월별로 그 흔적을 채집하는 데에 의미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그의 고민은 이달 12일부터 서울 양천구 현대백화점 목동점에서 진행하는 단체전 ‘Dialogue’의 부속 프로그램인 ‘일대일 프라이빗 멘토링’에서 일견 해소됐다. 이는 전시 기획을 맡은 이대형 예술감독이 “상업성과 예술성 사이에서 방향을 찾기 어려워하는 작가들에게 뼈아픈 조언이 필요한 때”라며 시니어 큐레이터 2명과 함께 기획한 것이다. 김 작가는 “약 한 시간의 대화를 통해 ‘국내외 문학 속 바람이라는 소재의 의미를 작품에 반영해보라’는 조언을 받았고, 새 작업의 물꼬를 텄다”고 말했다. 큐레이터나 비평가와의 일대일 매칭 프로그램을 통해 작업 활로를 찾는 작가들이 늘고 있다. 이제껏 일대일 매칭 프로그램은 레지던시를 운영하는 재단이나 미술관에서 종종 진행되어 왔다. 2008년부터 서울시립미술관이 공모 선정 작가를 상대로 멘토링과 전시를 진행한 ‘신진미술인 전시지원 프로그램’ 등이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프로그램 대상이 확대되면서 작업관이 확립되지 않은 젊은 작가들이나 비평과 멀어진 지역 작가들에게 특히 도움이 된다는 평이다. 지난해부터 시작되고 있는 국립현대미술관 기획 사업인 ‘공립미술관 추천작가-전문가 매칭 지원’이 한 사례다. 지역 공립미술관이 지역 작가들을 추천하면 분야별 전문가가 붙어 맞춤형 멘토링을 진행한 후 자료집을 발간하는 식이다. 지난해에는 5개 기관 14명을, 올해는 7개 기관 12명을 진행했다. 지난해 강원 양구군에서 활동하고 있는 서양화가 김형곤(52)의 경우, 매칭 상대인 김주원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실장이 작가 작업실에 방문해 심층 토론을 진행했다. 김 실장은 “미술 신은 대중과 언어로 소통이 잦지 않고 창구가 많지 않아 작가가 고립되기 쉽다. 그동안 눈에 띄지 않던 작가들이 타 지역과 중앙에서 활동하는 비평가들을 만나며 작업관을 확장해 나가는 것은 중요하다”고 말했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박수근(1914∼1965)이란 이름 앞에서 예술가로서의 삶의 태도를 다시 점검하게 됩니다. 박수근미술상 수상은 ‘질문하기를 멈추지 말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강원 양구군 박수근미술관에서 25일 열린 제7회 박수근미술상 시상식 및 미술관 개관 20주년 기념 특별전 개막식에서 올해 박수근미술상을 받은 차기율 작가(61·인천대 조형예술학부 교수)가 말했다. “38세에 혼자가 돼 6남매를 키우신 어머니에게 감사드린다”며 잠시 울음을 삼킨 그는 “부족한 제게 또다시 전진할 기회를 줘 감사하다”고 했다. 박 화백의 예술혼을 기리는 뜻에서 제정된 박수근미술상은 동아일보와 양구군, 강원일보, 박수근미술관이 공동 주최한다. 이인범 박수근미술상 운영위원장은 “차 작가는 자연, 장소의 기억, 노마드 등을 기본 개념으로 집요하게 탐구하며 다양한 소재로 설치미술 작업을 해 왔다”고 말했다. 이어 “예술을 자신과 겸허하게 마주하는 방법으로 받아들여 온 작가로, 이는 박 화백이 치열하게 추구했던 길과 다르지 않다”고 했다. 박 화백의 장녀인 박인숙 박수근미술관 명예관장은 “선함과 진실함을 전해주는 아버지와 맥이 통하는 면이 많은 차 작가가 앞으로도 멋진 작품을 만들 것이라 믿는다”고 했다. 서흥원 양구군수는 “차 작가는 수십 년간 자연, 인간, 우주에 천착하며 작품세계를 구축해 왔다”고 말했다. 차 작가는 이날 박 화백의 작품 ‘아기 업은 소녀’(1963년)를 조각으로 만든 상패와 창작지원금 3000만 원을 받았다. 내년 5월 박수근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개최한다. 박수근미술관 개관 20주년 기념 특별전 ‘박수근의 시간·미석(美石)의 공간’에서는 ‘철쭉’(1933년)과 ‘절구질하는 여인’(1952년)을 비롯해 판화, 탁본, 드로잉 등을 만날 수 있다. 내년 3월 26일까지 열린다. 양구=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자기 복제처럼 똑같은 그림을 그리는 것 같아 부담스러울 때도 있지만, 그래도 보리밭을 그리고 싶은 걸 어쩌겠어요.” ‘보리밭 화가’ 이숙자 화백(80)이 6년 만에 개인전으로 돌아왔다. 서울 종로구 선화랑에서 19일 열린 선화랑 45주년 기념전 ‘이숙자’에서 만난 그는 수줍은 미소로 작품을 소개했다. 40점을 출품한 이번 전시에는 2022년 작품도 3점 포함됐다. 역시 모두 보리밭이다. ‘분홍밭 장다리꽃이 있는 보리밭’과 ‘청보리―초록빛 안개’는 각각 1981년, 2012년에 그렸지만 마음에 들지 않아 전면 개작했다. 이 화백은 “파기할까 고민도 했지만 내 자식이 부족하다고 버릴 순 없지 않으냐”며 “과거의 저와 현재의 제가 합작했다고 여겨 달라”고 했다. 천경자 화백(1924∼2015)의 제자인 그는 이번 전시에 1980년대부터 쌓아온 자신의 화업(畵業) 50년을 두루 조망할 작품을 많이 선보였다. 그 가운데 ‘이브의 보리밭 90-6’(1990년)은 빼놓을 수 없는 대표작. 보리밭에 맨몸으로 누운 여성을 그린 작품은 당시에도 적나라한 묘사로 파장을 일으켰는데, 32년이 지난 지금도 당당한 기세가 느껴진다. “발가벗은 여성의 몸도 사람 얼굴 보듯 낯익었으면 좋겠어요. 낮은 여성 인권에 대한 저항과 인습에 대한 반항이 의식 속에 있지 않았나 싶어요.” 이 화백은 최근 자화상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매일 맨몸으로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몸과 얼굴을 캔버스에 담는다고 한다. 그는 “이번에 처음 공개한 ‘푸른 모자를 쓴 작가의 초상’(2019년)은 날 너무 곱게 그린 것 같다”며 “‘볼 테면 보라지’라는 마음으로 자화상을 그리고 있다”고 했다. 다음 달 19일까지.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보리밭 화가’라고 하면 금세 떠오르는 작가가 있다. 50년 화업을 이어온 이숙자(80) 화백이다. 이 화백은 서울 종로구 선화랑에서 6년 만에 개인전을 열고 있다. 19일 전시장에서 만난 그는 “자기 복제처럼 똑같은 그림을 그리는 것 같아 부담스러웠지만, 그럼에도 보리밭을 그리고 싶은 걸 어쩌냐”며 웃었다.출품작 40점 중 신작 3점도 모두 보리밭 그림이다. 이중 ‘분홍빛 장다리꽃이 있는 보리밭’(1981년)과 ‘청보리-초록빛 안개’(2012년)는 마음에 들지 않아 올해 개작한 작품이다. 그는 “파기할까 생각했지만 내 자식이 부족하다고 버릴 순 없다”며 “과거의 저와 현재의 제가 합작한 작품”이라고 했다. 천경자 화백(1924~2015)의 제자였던 그는 “무슨 그림을 그려도 천 선생님을 흉내 낸다고 했는데, 보리밭을 그리면서 그 소리가 들어가더라”라며 보리밭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이번 개인전에는 1980년대 작품부터 출품돼 이 화백의 작품 세계를 두루 조망할 수 있다. 그중 단연은 ‘이브의 보리밭’(1990년)이다. 보리밭에 맨몸으로 누워있는 여성과 세밀하게 표현된 음모는 당시 매우 큰 파장을 일으켰는데, 32년이 지난 지금도 여성의 당당한 기세가 느껴진다.“발가벗은 여성의 몸도 사람 얼굴 보듯 낯익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낮은 여성인권에 대한 저항, 인습에 대한 반항이 내 의식 속에 있지 않았나 싶어요.”최근 이 화백은 자신의 적나라한 자화상을 그리는 데에 몰두하고 있다. 맨몸으로 거울 앞에 서서 매일 자신의 몸과 얼굴을 캔버스에 담는다. 이번에 처음 발표한 ‘푸른 모자를 쓴 작가의 초상’(2019년)이 “너무 날 곱게 그린 것 같다”면서, “볼 테면 보라지”하는 마음으로.전시는 다음달 19일까지.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서양화가 서용선(71)은 약 2년 전부터 자신의 회화작업을 스스로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을 품었다. 서울대 미대 교수였던 그는 본격적인 전업 작가로 활동한 2008년부터 각 작품의 도판과 전시이력, 비평 등을 한데 모았다. 올해 7월 출간된 ‘서용선 2008-2011’(연립서가·사진)이 그 결과물. 서 작가는 “‘전작도록’의 중간 단계로 보면 된다”며 “앞으로도 3, 4년 치씩 묶어 책으로 내놓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전작도록이란 작가의 작품이력과 출품기록을 담은 자료로, 향후 미술품 감정의 기초로 활용돼 중요성이 크다. 일반적으로 작가가 활동을 중단한 뒤, 즉 세상을 떠났을 때 만든다. 하지만 최근 미술계에선 서 작가처럼 생존 작가들이 전작도록을 미리 준비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그간 사후 전작도록은 혼란이 빚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작품을 선정하는 데 연구학자마다 의견이 달라 제작에 차질을 빚는 일이 잦았다. 수록작의 진위를 놓고 논란이 생긴 사례도 있다. 서 작가도 “작품에 대한 기억은 1차적으로 작가가 제일 확실한 게 당연하지 않나”라며 “작가가 직접 참여하면 제작도 원활하고 내용도 훨씬 풍부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해외에선 생존 작가의 전작도록 작업이 상당히 보편화된 추세다. 독일의 거장 게르하르트 리히터(90)는 2011년 ‘1962∼1968년 도록’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6권을 내놓았다. 이인범 전 상명대 교수는 “생존 작가의 전작도록은 제작 과정에서 자기 작품에 대한 자가 비평이 가능하다는 장점을 지녔다”며 “작가가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뿌리를 굳건히 만드는 역할도 한다”고 말했다.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전작도록의 사전 단계라 할 수 있는 ‘원로작가 디지털 아카이빙 자료수집 연구지원’ 사업을 진행하는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2015년부터 이승택(90)과 박서보(91), 김순기(76), 김영원(75) 등 작가 30명을 대상으로 했다. 일반적으로 한 작가당 연구진 3∼6명을 투입해 1, 2년씩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심지언 예술경영지원센터 시각사업본부장은 “작가들이 생전에 연구자들과 작품에 대한 정보를 객관적으로 정리하면 향후 연구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두 해 전, 서양화가 서용선(71)은 자신의 회화 작업을 총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서울대 미대 교직을 떠나 전업 작가가 된 2008년부터 시작했다. 올 7월 출간된 ‘서용선 2008-2011’(연립서가)은 그 결과물이다. 이 책에는 각 작품 도판과 전시 이력, 작품에 대한 비평 등이 포함됐다. 최근 동아일보와의 화상통화에서 서 작가는 “이 책은 전작도록(전체 작품 이력과 출품 기록을 담은 것으로, 미술품 감정의 기초 자료로 활용되는 책)의 중간단계 작업”이라고 말했다. 최근 국내 생존 작가들이 전작도록을 미리 준비하는 경우들이 늘고 있다. 보통 전작도록은 작가가 작품 활동을 중단했을 때, 즉 일반적으로 사후에 제작한다. 하지만 이럴 경우 전작도록에 수록할 작품에 대해 학자 간 이견이 생겨 작업이 중단되기도 하고, 수록작에 대한 진위에 대해 다른 의견이 나올 가능성이 많았다. 이 때문에 작가들이 생전부터 자신의 전작도록 작업에 힘써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서 작가는 “작품 소유나 기증 이력들을 작가 개인이 추적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며 책에 대한 아쉬움을 표했지만, 국내에서 미미한 연도별 도록 제작에 돌입했다는 것으로도 의의는 크다. 그는 “작품에 대한 기억은 1차적으로 작가에게 있으니 작가의 참여가 중요하다. 이러한 중간 단계 노력이 있다면 사후 전작도록 제작이 원활함은 물론 내용도 풍부해질 것”이라며 “앞으로도 작품 3, 4년 치씩 묶어 꾸준히 책으로 내놓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예술경영지원센터도 전작도록의 사전 단계인 ‘원로작가 디지털 아카이빙 자료수집 연구지원’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한 작가의 현재까지 작품 활동을 정리해 온라인에 공개하는 식이다. 2015년부터 박서보(91), 김순기(76), 김영원(75) 등 30명을 대상으로, 한 작가 당 3~6명의 연구진이 1~2년간 진행한다. 심지언 예술경영지원센터 시각사업본부장은 “원로 작가 중 아카이브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높지 않으신 분들이 있다. 생전에 연구자들과 함께 객관적인 작품 정보를 정리해야 추후 연구, 유통 등에 원활하다”고 말했다. 해외에서는 이미 여러 생존 작가가 전작도록 작업에 뛰어들고 있다. 독일 대표화가인 게르하르트 리히터(90)는 2011년에 1962~1968년 도록을 시작으로 현재 6권까지 내놓았다. 이인범 전 상명대 교수는 “생존 작가가 전작도록을 만들게 되면, 그 과정에서 자기 작품에 대한 자가 비평이 가능해진다. 전작도록이 단지 진위 여부 기준이 되는 걸 넘어서서 작가에게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뿌리를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설렁탕 사다 놓았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왜 먹지를 못하니…. 괴상하게도 오늘은 운수가 좋더니만.” 현진건이 쓴 소설 ‘운수 좋은 날’(1924년)의 안타까운 결말은 오래도록 한국인의 마음속에 깊이 각인된 대목. 주인공 김 첨지는 퇴근길에 부인이 원하던 설렁탕을 사왔지만 부인은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다. 그런데 부인은 왜 하필 ‘설렁탕’을 사달라고 한 걸까. 배탈이 난 환자가 먹기엔 좀 부담스러울 수도 있을 텐데. 소설 배경인 1920년대에 설렁탕은 대표적인 외식 메뉴였다. 당시 신문 기사들을 보면 1920년까지 경성 안팎에 설렁탕 가게는 25개뿐이었으나 1924년엔 100군데가 넘는다. 당시 설렁탕은 한 그릇에 13∼15전. 요즘 시세로 치면 3900∼4500원으로, 서민도 크게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었다. 게다가 소머리고기로 육수를 내 몸보신에 좋다는 인식도 강했다. 어쩌면 심성 고운 부인은 남편의 가벼운 주머니 사정을 고려해 설렁탕을 고른 게 아닐까. 국문학 전공자로 성균관대 학부대학 대우교수인 저자는 근대소설 10편을 중심으로 일제강점기 유행했던 음식과 그를 둘러싼 문화를 다뤘다. 선정 작품은 염상섭의 ‘만세전’(1924년)과 이상의 ‘날개’(1936년), 심훈의 ‘상록수’(1936년) 등 우리에게 친숙한 소설들이다. 저자는 “먹는다는 행위는 사회 문화적 취향과 연결되며 제도에 지배되기도 한다”며 “안타까운 것은 한국에서 그 시기가 식민지라는 역사와 맞물려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광수의 ‘무정’(1917년)에선 좀 더 이채로운 음식이 등장한다. 주인공 영채는 극단적 선택을 하기로 맘먹고 탄 평양행 기차에서 일본 도쿄 유학생인 병욱을 만난다. 병욱은 상처가 깊던 영채에게 위로를 건네며 어떤 음식을 건넨다. 영채는 “구멍이 숭숭한 떡 두 조각 사이에 엷은 날고기가 끼인 것”을 맛본 뒤 “특별한 맛은 없으면서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운치 있는 맛이 있다”고 느낀다. 이 음식은 바로 샌드위치였다. 일본 회사 ‘오후나켄’이 1898년부터 일본 기차역에서 팔며 ‘서구 음식’으로 큰 인기를 끌었고, 이후 조선에도 들어왔다고 한다. ‘무정’에는 또 다른 음식도 등장한다. 영채와 정혼한 형식은 하숙집에서 끓인 된장찌개를 “지극히 졸렬한 음식”이라고 비난한다. 일제강점기 지식인들이 한국 전통 문화와 서구 문명을 어떻게 바라봤는지를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당시 경성에서 크게 유행했던 ‘카페’의 분위기도 맛볼 수 있다.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1934년)에는 구보 씨가 즐겨 찾은 ‘낙랑파라’라는 카페가 나온다. 당대 문인들은 카페에 모여 피로하고 우울한 대화를 나누곤 했다. 여기선 커피도 팔았다. 채만식은 1939년 잡지 ‘조광’에 기고한 글에서 커피를 “힝기레 밍기레한 게 맹물 쇰직한 맛”이라고 표현했다. 저자는 문학과 역사를 무게감 있게 다뤘지만,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추억 여행을 떠나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이상의 ‘날개’에 등장하는 두부장수나 심훈의 ‘상록수’에 나오는 카레를 마주하다 보면, 그 시대를 살진 않았는데도 왠지 ‘찡한’ 옛 앨범을 들추는 기분이랄까. 오늘 저녁엔 학창 시절 읽었던 그 소설들을 다시금 들춰 보고 싶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설렁탕 사다 놓았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왜 먹지를 못하니…. 괴상하게도 오늘은 운수가 좋더니만.”현진건이 쓴 소설 ‘운수 좋은 날’(1924년)의 안타까운 결말은 오래도록 한국인의 마음속에 깊이 각인된 대목. 주인공 김 첨지는 퇴근길에 부인이 원하던 설렁탕을 사왔지만 부인은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다. 그런데 부인은 왜 하필 ‘설렁탕’을 사달라고 한 걸까. 배탈이 난 환자가 먹기엔 좀 부담스러울 수도 있을 텐데.소설 배경인 1920년대에 설렁탕은 대표적인 외식 메뉴였다. 당시 신문기사들을 보면 1920년까지 경성 안팎에 설렁탕 가게는 25개뿐이었으나 1924년엔 100군데가 넘는다. 당시 설렁탕은 한 그릇에 13~15전. 요즘 시세로 치면 3900~4500원으로, 서민도 크게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었다. 게다가 소머리고기로 육수를 내 몸보신에 좋다는 인식도 강했다. 어쩌면 심성 고운 부인은 남편의 가벼운 주머니 사정을 고려해 설렁탕을 고른 게 아닐까. 국문학 전공자로 성균관대 학부대학 대우교수인 저자는 신간 ‘식민지의 식탁’에서 근대소설 10편을 중심으로 일제강점기 유행했던 음식과 그를 둘러싼 문화를 다뤘다. 선정 작품은 염상섭의 ‘만세전(1924년)과 이상의 ‘날개’(1936년), 심훈의 ‘상록수’(1936년) 등 우리에게 친숙한 소설들이다. 저자는 “먹는다는 행위는 사회 문화적 취향과 연결되며 제도에 지배되기도 한다”며 “안타까운 것은 한국에서 그 시기가 식민지라는 역사와 맞물려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한다.이광수의 ‘무정’(1917년)에선 좀더 이채로운 음식이 등장한다. 주인공 영채는 극단적 선택을 하기로 맘먹고 탄 평양행 기차에서 일본 도쿄 유학생인 병욱을 만난다. 병욱은 상처가 깊던 영채에게 위로를 건네며 어떤 음식을 건넨다. 영채는 “구멍이 숭숭한 떡 두 조각 사이에 엷은 날고기가 끼인 것”을 맛본 뒤 “특별한 맛은 없으면서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운치 있는 맛이 있다”고 느낀다. 이 음식은 바로 샌드위치였다. 일본회사 ‘오후나켄’이 1898년부터 일본 기차역에서 팔며 ‘서구 음식’으로 큰 인기를 끌었고, 이후 조선에도 들어왔다고 한다. ‘무정’에는 또 다른 음식도 등장한다. 영채와 정혼한 형식은 하숙집에서 끓인 된장찌개를 “지극히 졸렬한 음식”이라고 비난한다. 일제강점기 지식인들이 한국 전통 문화와 서구 문명을 어떻게 바라봤는지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당시 경성에서 크게 유행했던 ‘카페’의 분위기도 맛볼 수 있다.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1934년)에는 구보 씨가 즐겨 찾은 ‘낙랑파라’라는 카페가 나온다. 당대 문인들은 카페에 모여 피로하고 우울한 대화를 나누곤 했다. 여기선 커피도 팔았다. 채만식은 1939년 잡지 ‘조광’에 기고한 글에서 커피를 “힝기레 밍기레한 게 맹물 쇰직한 맛”이라고 표현했다.저자는 문학과 역사를 무게감 있게 다뤘지만,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추억 여행을 떠나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이상의 ‘날개’에 등장하는 두부장수나 심훈의 ‘상록수’에 나오는 카레를 마주하다보면, 그 시대를 살진 않았는데도 왠지 ‘찡한’ 옛 앨범을 들추는 기분이랄까. 오늘 저녁엔 학창 시절 읽었던 그 소설들을 다시금 들춰보고 싶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처음부터 어떤 장르로 만들겠다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다양한 장르의 요소를 끌어와서 적절하게 쓰려고 노력했습니다.” 7일 공개한 넷플릭스 드라마 ‘글리치’ 극본을 집필한 진한새 작가(36·사진)는 드라마에 대해 “주제를 먼저 정해놓고 시작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19일 만난 그는 “어릴 적에 UFO(미확인비행물체)를 본 적 있다는 아내와의 대화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며 “한 장르를 의식하면 너무 얽매이는 것 같다”고 답했다. 드라마는 19일 현재 넷플릭스 국내 드라마 가운데 4위에 오르며 순항 중이다. ‘글리치’는 외계인으로 짐작되는 지효(전여빈)와 그를 추적하는 보라(나나)의 서사가 주된 줄거리이지만 스릴러 등 다양한 얘기들이 버무려져 있다. 특히 두 여주인공은 외계인을 추적하다 사이비 종교와 맞닥뜨리는 등 좌충우돌을 거듭한다. 진 작가는 “둘의 관계를 우정이나 사랑으로 규정하고 싶지 않다. 딱히 대체할 말이 없어 그냥 ‘지효와 보라의 관계’라 부르고 싶다”고 했다. 청소년 범죄를 그린 드라마 ‘인간수업’(2020년)에 이어 범죄물 성격이 강한 작품을 집필해온 그는 “차기작으로는 ‘하이틴 로맨스’를 구상하고 있다”고 했다.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미친 드라마’란 시청자 반응이 무척 마음에 들었어요. 이 작품에서 가장 시도해보고 싶은 게 속도감이었거든요.” 9일 종영한 tvN 드라마 ‘작은 아씨들’의 대본을 쓴 정서경 작가(47)가 말했다. 화상으로 17일 만난 그는 12부작인 드라마를 쓰며 “걷는 것도 뛰는 것도 아닌, ‘날아가는 것처럼’ 진행할 순 없을까”를 항상 염두에 뒀다고 한다. 그는 올해 개봉한 영화 ‘헤어질 결심’ 시나리오를 박찬욱 감독과 공동 집필해 빼어난 작품성으로 화제를 모았고, ‘작은 아씨들’도 최고시청률 11.1%를 기록하며 2연타를 쳤다. ‘작은 아씨들’은 가난하지만 우애 넘치는 세 자매 오인주(김고은) 오인경(남지현) 오인혜(박지후)가 비밀권력단체 ‘정란회’와 대립한다는 줄거리. 매회 예상을 뛰어넘는 사건과 갈등으로 화제를 모았다. 박진감은 넘치지만 개연성이 떨어진다는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정 작가는 “영화적 문법으로 쓴 작품이라 매회 2시간짜리 영화를 압축하다 보니 다소 부족하고 특이한 부분이 있었다”고 말했다. 작품마다 ‘능동적인 여성상’을 그리는 정 작가의 특징은 이번 작품에서도 잘 드러났다. 그가 시나리오를 쓴 영화 ‘친절한 금자씨’ ‘아가씨’ ‘헤어질 결심’에서도 여성 캐릭터는 전체 서사를 이끌어가는 핵심 역할을 한다. 정 작가는 “어린 시절 친구들이 자매처럼 많은 것을 가르쳐 줬다”며 “‘작은 아씨들’에서도 여성의 멋진 우정을 잘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캐릭터를 만들 때 저는 캐릭터의 결함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캐릭터들이 그런 부족한 부분에도 불구하고 사랑받길 원하는 거죠. 가끔씩 이 때문에 호불호가 갈리기도 합니다.” 드라마 방영 중 우여곡절도 있었다. 베트남 정부가 베트남전쟁에 대한 왜곡된 정보가 담겼다며 항의해 넷플릭스가 베트남에서의 방영을 중단했다. 정 작가는 이에 대해 “베트남전쟁에 대한 사실관계를 다루거나 정의하려는 의도가 아니었기에 현지 반응을 크게 예상하지 못했다”며 “이번 시청자 반응을 기억하면서 다음 작품 때 더 세심하게 쓰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나무를 태워 만든 목탄 벽화는 시간이 지나면 없어진다. 영원하지 않은 우리 삶과 같다. 현재의 중요성이 여기에 있다.” 허윤희 작가(54)는 30여 년간 목탄으로 그림 작업을 해왔다. 그는 목탄을 긴 나무 막대기에 묶어 벽면에 그림을 그리고 지우는 퍼포먼스로 유명하다. 왜 사라지는 그림 작업을 이어 나갈까. 서울 마포구 갤러리 A.P.23에서 22일까지 열리는 개인전 ‘9 리터의 먼지와 오두막’을 보면 작가의 예술관이 명확히 이해된다. 전시는 작가의 작품 세계를 짚는 아카이브 자료를 기반으로 하며 회화, 드로잉 등 총 27점으로 구성됐다. 전시장 초입에는 그를 대표하는 목탄 회화와 벽화 영상이 있다. 5개 퍼포먼스를 묶은 영상을 따라 안쪽으로 가면 조금 다른 작업들이 눈에 띈다. ‘관(棺)집’(2001년)은 작가가 프랑스 남서부 시골에서 두 달 동안 자갈과 통나무로 만든 집을 담은 사진 작품이다. 집은 사람 한 명이 겨우 들어가는 관 크기 정도로 비좁다. 허 작가는 “삶을 하루 단위로 쪼개 생각하다 나온 작품”이라며 “저녁에는 관에 들어가 죽음을 맞이하고 아침에는 새 생명을 얻는 것”이라고 했다. ‘생태주의 미술가’로도 불리는 그는 “단지 자연을 좋아하는 작가”라며 웃었지만 그 지향점은 초기작부터 엿보인다. 출품작 중 가장 오래된 ‘윤희 그림’(1996년). 1995년 독일 유학 시절, 그는 헌책방에서 구한 책 ‘NOA NOA’(1901년)의 각 페이지에 외로움을 달래려 그림일기를 그렸다. 책 모퉁이에 ‘피처럼 붉은 해가 움직인다. 젊음과 힘을 품고서 작열한다. 하지만 영원하지 않음을 미리 안다. 달은 이미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적었다. 이에 대해 그는 “자연은 우리에게 생성, 소멸, 순환을 가르쳐 준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기에 자연과 함께하는 삶이야말로 인간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30여 년 전, 예술가를 결심한 허윤희 작가(54)가 선택한 재료는 목탄이었다. 그는 목탄을 긴 나무 막대기에 묶어 벽면에 그림을 그리고 지우는 퍼포먼스를 진행해왔다. 시꺼멓기만 한 것, 어차피 지워 사라지는 것을 그는 왜 그릴까.“목탄은 나무를 태운 것으로 자연 그 자체다. 목탄 벽화는 시간이 지나면 없어진다. 영원하지 않는 우리 삶과 같다. 현재의 중요성이 여기에 있다.” 최근 만난 허 작가의 이러한 설명은 ‘9 리터의 먼지와 오두막’ 展에서 좀 더 명확해진다. 서울 마포구 신생 갤러리인 A.P.23에서 22일까지 진행하는 이 전시는 허 작가의 작품세계를 되짚는 아카이브 자료 기반 전시다. 전시는 생태학적 관점으로 그의 회화, 드로잉 등 총 27점을 구성했다.전시장 초입은 역시 그를 대표하는 목탄 회화와 벽화 영상이 자리한다. 5개의 퍼포먼스를 묶은 영상을 따라 전시장 안쪽으로 나아가다 보면 조금은 다른 작업들이 눈에 띈다. 그중 국내 전시에서 처음 소개되는 ‘관(棺)집’(2001년)은 작가가 프랑스 남서부 시골에서 두 달 동안 자갈과 통나무를 사용해 집을 만들고 사진으로 남긴 것이다. 사람 한 명이 겨우 들어가는 크기다. 허 작가는 “삶을 하루 단위로 쪼개어 생각하면, 저녁에는 관에 들어가 죽음을 맞이하고 아침에는 새 생명을 얻는다”며 “좀 더 살아있는 것을 의식하며 살게 된다”고 했다.작가가 자연을 얼마나 섬세히 관찰하고 있었는지는 ‘돗토리의 기억’ 시리즈(2010년)에서도 드러난다. 이 작품은 작가가 일본에서 레지던시에 머문 시절 구한 쌀 봉투에 곡식을 넣고, 봉투 바깥쪽에 나뭇잎과 꽃 등을 그린 작품이다. 허 작가는 “쌀은 아시아인에게 기본적인 요소다. 그 쌀이 비닐봉지가 아닌 종이에 담겨있다. 그 아날로그적이고 전통적인 것들이 따뜻하게 느껴졌다”고 말했다.그는 “생태주의 미술가라 생각했기 보다는…. 단지 자연을 좋아하는 작가”라며 웃었지만 허 작가의 지향점은 초기작부터 엿보인다. 출품작 중 가장 구작인 ‘윤희 그림’(1996년)를 보면 알 수 있다. 1995년 자유를 꿈꾸며 독일 유학을 갔을 시절, 독일어도 모르던 작가는 헌책방에서 구한 책 ‘NOA NOA’(1901년) 위에 그림일기를 그렸다. 이 책의 모퉁이에 적힌 문구는 “자연은 우리에게 생성, 소멸, 순환을 가르쳐준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기에 자연적인 삶이 자연스럽고 인간적”이라는 지금 작가의 말과 맥을 함께 한다.“해가 움직인다. 피처럼 붉은 해가 움직인다. 젊음과 힘을 품고서 작열한다. 하지만 영원하지 않음을 미리 안다. 달은 이미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박윤조 A.P.23 디렉터는 “한국 생태미술은 장기간 자연과의 관계 속에서 예술과 삶을 성찰해온 작가들이 있다는 특성이 있다. 허윤희의 작업은 자연의 재생력에 대한 희망을 토대로 하고 있다는 면에서 개관전으로 소개하기 적합했다”며 “앞으로도 A.P.23은 생태주의 중견 작가들을 많이 소개할 것”이라고 설명했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