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언

김태언 기자

동아일보 문화부

구독 104

추천

안녕하세요. 김태언 기자입니다.

beborn@donga.com

취재분야

2026-01-09~2026-02-08
문화 일반73%
인사일반18%
문학/출판9%
  • 108년된 옛 도정공장, 전시공간으로 재탄생… “격변의 세월 얘기 담아”

    전북 익산시 춘포면에는 108년 된 옛 도정공장이 있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 춘포 일대 땅 등을 소유했던 일본인 대지주 호소카와 모리다치(1883∼1970)가 세운 정미소다. 이후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다가 1998년 폐업했다. 그렇게 한동안 방치돼 있던 공장이 전시장으로 변신했다. 전시의 주인공은 ‘기억’을 소재로 사진, 회화 등을 작업해온 조덕현 작가(65)다. 조 작가는 지난해 7월 15일 출사를 나갔다가 공장을 발견했고 소유주인 서문근 씨와 논의해 전시를 열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올해 4월 23일부터 개인전 ‘108 and: 어둠과 빛, 바람과 비의 서사’를 진행하고 있다. 전시 기간은 내년 4월 22일까지 무려 1년이다. 총 54점이 놓인 전시장은 도정시설이 있었던 중앙 공간과 좌우에 각각 놓인 창고 세 칸과 공장 앞에 놓인 정원 등 4307m²(약 1300평) 규모의 공간을 모두 활용했다. 16일 만난 조 작가는 “이 공간은 격변의 세월을 지나며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현대에 들어 잊혀진 공장의 공간성과 이 지역을 거쳐 간 사람들의 인생 등을 주목했다”고 말했다. 전시는 이춘기(1906∼1991)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춘포면에서 태어난 그는 1990년 미국으로 이주하기 전까지 춘포에서 살았다. 작가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 보관돼 있는 이춘기의 30년 치 일기 중 일부를 스캔해 삼각기둥에 붙여 설치물을 완성했다. 일기에는 일찍 세상을 떠난 아내에 대한 그리움, 양육과 노동의 고단함, 아이들에 대한 애정 등 이춘기 개인사를 포함해 춘포 지역의 시대별 모습 등이 녹아 있다. 이춘기라는 무명인의 예술은 동시대 시인의 시로 이어진다. 조 작가는 김용택 시인(74)을 떠올리고 올 1월 연락을 취했다. 시인의 허락하에 작가는 미발표 시집 2권 중 28작을 10월부터 메인 전시장과 정원에 선보였다. 특이한 점은 투명 아크릴 판에 새겨져 가까이 가지 않으면 쉽게 읽히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김 시인은 “지금 시대의 시는 이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적극적으로 보려고 해야 보이고, 애써 찾아야 찾아지는 그런 시”라고 말했다. 시는 정원으로까지 이어진다. 정원 곳곳 풀밭 위에 마치 화분 같아 보이는 그릇 바닥에 시가 새겨져 있는 작품 ‘시분(詩盆)’이 놓여 있다. 작품 안에 고인 빗물 위로는 낙엽, 꽃잎이 떠다니고 그 사이로 시가 보인다. 김 시인은 “여린 시들이 자연에 묻히지 않고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 조마조마했다. 그런데 시 옆 잎 하나, 꽃 하나가 살아있는 것 같다. 역시 예술은 죽어 있는 것들을 살리는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작품 중 약 30점은 전북 완주시 오스갤러리에서도 만날 수 있다. 5000∼1만 원.익산=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11-22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108년 세월 품은 일제시대 정미소, 시와 예술을 품다

    전북 익산시 춘포면에는 108년 된 폐공장이 있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 춘포 일대를 소유했던 일본인 대지주 호소카와 모리다치(1883~1970)가 세운 정미소다. 이후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다 1998년 폐업했다. 그렇게 한동안 방치돼있던 공장이 이제 전시장으로 탈바꿈하고 관객을 맞이한다. 그 주인공은 ‘기억’을 소재로 사진, 회화 등을 작업해온 조덕현 작가(65). 조 작가는 지난해 7월 15일 출사를 나갔다가 차 사고가 나 방황하던 중 공장을 발견했다. 소유주인 서문근 씨와 논의해 전시를 열기로 했다. 올해 4월 열린 개인전이 ‘108 and: 어둠과 빛, 바람과 비의 서사’다. 총 54점이 놓인 전시장은 도정시설이 있었던 중앙 공간과 좌우에 각각 놓인 창고 세 칸, 공장 앞에 놓인 정원 등을 모두 활용했다. 16일 만난 조 작가는 “이 공간은 격변의 세월을 지나오며 막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현대에 들어 잊힌 공장의 공간성과 그에 관한 기억에 주목했다”고 말했다. 전시의 실마리는 이춘기(1906~1991)라는 인물을 찾으면서 풀렸다. 춘포면에서 태어난 그는 1990년 미국으로 가기 전까지 춘포에서 살았다. 이춘기는 춘포교회를 앞에 모인 지역민들의 초상화 ‘&memoir’(2022년)에 등장한다. 조 작가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 보관돼있는 이춘기의 30여년 치 일기 중 일부를 스캔해 삼각기둥에 붙였다. ‘&diary’(2022년) 속 글과 낙서 같은 그림에는 일찍 세상을 떠난 아내에 대한 그리움, 양육과 노동의 고단함, 아이들에 대한 애정이 가득 담겼다. 이춘기라는 무명인의 예술은 동시대 시인의 시로 이어진다. 조 작가는 “그렇게 예술적인 몸부림을 치며 도달하고자 했던 분”으로 김용택 시인(74)을 떠올리고 올해 1월 연락을 취했다. 시인의 허락 하에 작가는 미발표 시집 2권 중 28 작품을 10월부터 메인 전시장과 정원에 선보였다. 특이한 점은 투명 아크릴 판에 새겨져 가까이 가지 않으면 쉽게 읽히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김 시인은 “지금 시대의 시는 이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적극적으로 보려고 해야 보이고, 애써 찾아야 찾아지는 그런 시”라고 말했다. 시는 정원으로까지 이어진다. ‘시분(詩盆)’이라고 불리는 이 작품은 그릇 바닥에 시가 쓰여 있어 낙엽, 꽃잎이 떠다니는 빗물 사이로 글자를 읽을 수 있다. 김 시인은 “여린 시들이 자연에 묻히지 않고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 조마조마했다. 그런데 시 옆 잎 하나, 꽃 하나가 살아있는 것 같다. 역시 예술은 죽어있는 것들을 살리는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전용 전시장이 아니기에 작품과 공간을 관리하는 것도 조 작가 몫이다. 개인전은 내년 4월 22일에 끝나는 장기 전시다. 작가는 “1년간 정원사처럼 전시장 내·외부 작품과 공간을 수시로 손본다. 버려진 창고와 화장실, 돌멩이 하나까지 다 예술로 살아나는 이 공간의 장소성과 시간성을 느끼는 실험적 프로젝트”라고 했다. 그러면서 “다음에 올 때는 이곳의 개망초와 풀, 나무가 어떻게 달라져있을까 궁금하다”고 말한다. 작품 중 약 30점은 전북 완주시 오스갤러리에서도 만날 수 있다. 춘포도정공장 전시 입장료는 5000~1만 원.익산=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11-21
    • 좋아요
    • 코멘트
  • “공원 산책하듯 편안”… 작품처럼 주목받는 ‘전시공간디자인’

    전시에서 가장 중요한 건 당연히 전시작품이다. 더불어 공간을 어떻게 꾸미느냐에 따라 작품에 대한 이해도나 만족도는 크게 달라진다. 최근 미술계에선 벽과 조명, 음향 등 전시공간디자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동아일보는 전시공간 전문가 5명에게 올해 국공립 미술관과 박물관에서 열린 전시 중 공간디자인이 인상적인 전시를 선정해 달라고 했다. 전시 규모와 관람객 수를 고려해 공공 전시를 대상으로 했다. 김용주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운영디자인기획관, 김성태 리움미술관 수석디자이너, 이대형 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예술감독, 전시디자인회사 ‘시공테크’의 오서현 선임디자이너, 공간디자인스튜디오 ‘논스탠다드’의 이세영 대표가 공간디자인이 빼어난 전시를 각각 3개씩 꼽았다. ‘문신: 우주를 향하여’(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내년 1월 29일까지)가 3명으로부터 호평을 받아 공간디자인이 뛰어난 전시로 꼽혔다. ‘대지의 시간’(국립현대비술관 과천)과 ‘사유의 방’(국립중앙박물관), ‘권진규 탄생 100주년 기념―노실의 천사’(서울시립미술관)도 각각 2표씩 받았다. 올해 탄생 100주년인 조각가 문신(1922∼1995)의 개인전은 “공원을 산책하듯 작품을 여러 방향에서 감상할 수 있는 편안한 디자인”(김용주 기획관)인 데다 작품과 작가를 고루 조명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성태 디자이너는 “작품과 진열장 재질을 적절하게 맞춰 문신 조각의 특징인 물성을 잘 강조했다”고 말했다. 오서현 디자이너는 “곡선형 디자인을 통해 작품이 우주에서 피어난 강인한 생명처럼 보이게 했다”며 “평생 우주를 탐구한 작가의 세계관을 함께 사유하도록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올해 3월까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열린 단체기획전 ‘대지의 시간’은 생태라는 주제를 잘 살린 독창적인 기획이었다는 의견이 많았다. 이대형 전 감독은 “공간디자인을 통해 생태학적 가치를 말할 수 있다는 걸 일깨워줬다”며 “폐기물을 최소화하기 위해 가벽을 없앴고, 작품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연출이 돋보였다”고 했다. 다만 가벽 대신 놓은 구형의 반사체에 대해선 호불호가 엇갈렸다. 오서현 디자이너는 “공간과 작품, 관람객을 한데 비춰 관람객 또한 생태담론의 주체란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평가했다. 반면 이세영 대표는 “조형물이 작품보다 압도적으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게 옳은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국보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2점의 상설전시관을 재개편한 ‘사유의 방’은 작품과 공간디자인의 일체감이 뛰어난 사례로 꼽혔다. 김용주 기획관은 “긴 진입로와 흙을 사용한 벽의 재질과 색감, 미세하게 기울어진 바닥을 통해 관람객이 작품과 자연스레 마주할 수 있도록 섬세하게 디자인했다”고 말했다. 지난달 끝난 서울시립미술관의 ‘권진규 탄생 100주년 기념―노실의 천사’도 주목받았다. 조각가 권진규(1922∼1973)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한 회고전으로 “과거로 돌아간 듯한 상상을 펼치게 만들었다. 권진규라는 인물에 대한 내러티브가 돋보였다”(김성태 디자이너)는 평을 받았다. 국립중앙박물관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내년 3월 1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 ‘오늘 본 것’, 국립고궁박물관 ‘조선의 이상을 걸다, 궁중 현판’,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가면무도회’, 부산시립미술관 ‘크리스티앙 볼탕스키: 4.4’도 좋은 전시디자인으로 언급됐다. 전문가들은 “전시디자인은 관람객의 눈길을 사로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획 의도를 입체적, 철학적으로 잘 전달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입을 모았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11-2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작가의 철학과 기획 의도 담겨…전문가가 꼽은 올해의 ‘전시 공간 디자인’은 어디?

    같은 작가의 작품을 다뤘더라도 어떤 전시는 깊게 작품을 이해했다는 느낌을 주고, 어떤 전시는 눈이 즐겁다는 감각에서 그치고 만다. 이 차이를 만들어내는 데에는 큐레이팅 등 여러 요소들이 있지만, ‘전시 공간 디자인’도 큰 역할을 한다. 전시 공간 디자인이란 전시장 구도와 벽, 조명, 음향 등 모든 실내 구성 요소를 통칭한다. 동아일보는 전문가 5명에게 올해 국공립 미술관과 박물관에서 진행된 전시 가운데 공간 디자인의 기능과 의미 측면에서 인상 깊었던 전시 3개를 꼽아달라고 요청했다. 참여자는 김용주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운영디자인기획관과 김성태 리움미술관 수석디자이너, 이대형 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예술감독, 전시디자인회사 시공테크의 오서현 선임디자이너, 공간디자인 스튜디오 Nonstandard의 이세영 대표. 전문가들은 좋은 전시 공간 디자인이란 “전시의 기획 의도를 관람객에게 입체적·철학적으로 전달하는 것“이라고 했다. 설문 결과, ‘문신: 우주를 향하여’(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가 3명에게 표를 받아 가장 많이 거론됐다. ‘대지의 시간’(국립현대미술관 과천)과 ‘사유의 방’(국립중앙박물관), ‘권진규 탄생 100주년 기념-노실의 천사’(서울시립미술관)도 각각 2표씩 받았다.●작품 질감과 작가 세계관 강조한 ‘문신: 우주를 향하여’▽김성태=문신 조각은 물성이 특징이다. 목조 작품의 좌대는 따로 디자인되지 않은 자연스러운 혼합재 보드를, 브론즈 작품의 좌대는 철재를 사용하는 등 작품과 진열장의 재질이 비슷해 조각의 물성이 강조된 연출이었다.▽오서현=문신 작품은 대칭미와 매끈한 질감만 돋보이기 쉽다. 하지만 이 전시장은 곡선을 그리는 벽체와 좌대, 그 위에 조각을 올려놓음으로써 작품들이 우주의 거대한 흐름 위에 피어난 강인한 생명처럼 보인다. 관람객들이 작가가 천착했던 우주에 대한 사유를 함께 탐구하도록 유도했다.●평가 갈렸던 ‘대지의 시간’▽이대형=내용뿐 아니라 공간 디자인을 통해서도 생태학적 가치를 말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 전시. 폐기물을 최소화하기 위해 가벽을 없앴으며, 그 결과 작품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된 듯 연출됐다.▽오서현=공간 설계부터 폐기까지 생태담론이란 취지를 생각한 전시. 특히 구형의 반사체는 전시 공간, 작품, 관람객을 한데 비춤으로써 관람객 또한 생태담론 주체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세영=아쉬웠다. 구체들의 정체를 한참 고민했다. 디자인의 요소가 특정한 조형성을 갖고 작품보다 압도적으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장면이 과연 옳은 것인지 생각해봐야 한다.●작품과의 만남이 기다려지는 ‘사유의 방’▽김용주=작품을 만나는 과정을 섬세하게 계획한 우수 사례. 긴 진입로와 흙을 사용한 전시장 벽의 재질과 색감, 아주 미세하게 기울어진 바닥 등을 통해 결국 작품과 자연스럽게 시선을 마주하게 했다. 공간이 작품 감상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생각하게 했다.▽이대형=오감을 전부 자극하는 공간이다. 미디어아트 작품의 소리, 천장과 벽의 색감과 질감, 공기 등 분위기를 만드는 디테일한 디자인을 통해 적합한 명상 공간을 만들어냈다. 공간 전체가 작품으로 인식되는 전시.●작가 삶이 녹아있는 ‘권진규-노실의 천사’▽김성태=권진규라는 인물의 내러티브가 돋보인 전시. 좌대 밑을 삼공블록과 벽돌이 받치고 있는데, 작가가 첫 개인전에서 선보였던 전시공간을 차용한 것이라 그의 삶을 상기시킨다.▽김용주=좌대에 사용된 삼공블록이 전시 이후 버려지지 않고 산업 현장으로 돌아가 제 기능을 다시 할 수 있다는 측면도 인상 깊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11-20
    • 좋아요
    • 코멘트
  • [책의 향기]시대 앞서나간 그녀들, 붓을 들다

    1899년 서울 경복궁 인근 북촌에 거주하는 여성들의 모임 ‘찬양회’가 상소를 올렸다. 이들은 ‘한 지아비가 두 아내를 거느리는 것은 윤리를 거스르는 일이며, 덕의를 잃는 행위’라고 먹으로 쓴 흰 헝겊을 장대에 매단 뒤 덕수궁 인근에 세웠다. 그 옆에서는 30, 40대 여성 50여 명이 앉아 “상감(고종 황제)께서 먼저 후궁을 물리치라”고 외쳤다. 조선사회에는 처첩제도가 있었다. 당시 여성들은 직접 불만을 표할 수 없었다. 때문에 첩을 두는 것이 윤리에 어긋난 일이라며 공개 시위를 벌인 건 가부장 사회에 정면으로 도전한 것이었다. 이 시위는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일주일 이상 이어졌다. 이화여대 이화인문과학원 교수인 저자는 조선시대 상언(上言·백성이 글로 임금에게 직접 억울함을 호소)과 근대 계몽기 신문 독자투고를 분석해 적극적으로 사회에 정론을 외쳐온 여성들의 목소리를 조명한다. 이는 ‘유교 가부장제 사회 속 수동적인 여성상’이라는 고정관념을 깨뜨린다. 책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역사적으로 유명하진 않지만 자신의 처지에 주눅 들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글을 썼다. 국정을 기록한 ‘일성록’에 따르면 정조 재위 기간(1776∼1800)에 상언과 격쟁(擊錚·하소연할 사안이 있을 때 임금이 지나는 길가에서 꽹과리를 쳐서 하문을 기다리던 일)은 총 4427건에 달했다. 이 중 405건은 여성들이 제기했다. 이들의 출신은 양반, 평민, 기녀, 여종 등으로 다양했다. 내용도 재산, 가족, 후계 등 일상 속 문제가 대부분이었다. 근대 계몽기에는 신문이 여성들의 목소리에 공적인 의미를 부여했다. 1898년 ‘북촌의 여중군자’라고 밝힌 이들이 쓴 ‘여학교 설시 통문’이 대표적이다. 여학교의 필요성과 여성 권리를 주장한 글은 같은 해 황성신문 별보와 독립신문에 게재됐다. 1899년에는 과부라 밝힌 한 여성이 재혼을 막는 관습을 비판하는 글을 제국신문에 투고하기도 했다. 저자는 “침묵했던 목소리가 분출한 것이다. 하지만 그전까지 드러나지 않았다고 해서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들의 말을 되살리고 역사적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고 말한다.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11-1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성스러운 것과 기괴한 것은… 한끗 차이죠

    14일 서울 종로구 ‘보안1942’. 폐관한 여관을 활용한 전시공간답게 스산한 분위기였다. 전시작은 높이 2m 넘는 종이에 그린 지렁이, 돈벌레 형상을 한 불화 위주다. 음습함을 돋우는 작품 12점은 20일까지 열리는 전시 ‘귀불’의 출품작. 서울시립미술관의 ‘2022년 신진미술인 전시지원 프로그램’에 선정된 박웅규 작가(35)의 작품이다. 박 작가는 2016년 첫 개인전을 연 신진 작가지만 아트선재센터, 일민미술관 등 주요 미술관 단체전에 참여하며 주목받고 있다. 그의 작품은 한 번 보면 쉽게 잊히지 않는다. 벌레 등 통상 불쾌하게 여겨지는 것을 소재로 하기 때문이다. 이날 전시장에서 만난 그는 의외의 말을 했다. “저는 예쁘다고 생각해서 그려요. 언젠가 나방을 관찰한 적이 있어요. 엄숙해 보이더라고요. 늘 보던 벌레의 징그러움과는 달랐습니다. 반복적인 마디의 구조에서, 촘촘하게 솟아있는 잔털에서 완전한 균형미를 느꼈어요.” 올해 박 작가가 불화를 전면 차용한 것도 “불화의 대칭적인 조형미 때문”이다. 그가 그린 불화의 일부 보살은 벌레의 형태를 띠고 있다. 불화와 벌레의 공통점인 규칙적 장식들은 때론 강박적으로 다가오지만 묘하게 아름다워 보인다. 그는 “벌레를 보고 부정적인 감정을 느꼈다고 해도 이는 벌레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 벌레를 대하는 태도와 시선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결국 작가는 ‘성스러운 것과 기괴한 것은 한 끗 차이’라고 말한다. 이 생각의 뿌리에는 유년 시절의 경험이 있다.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난 그의 옛집에는 십자가와 마리아상만 100여 개가 있었다. 그는 “가끔 성스러운 그 물건들이 마치 절 감시하는 공포스러운 존재처럼 느껴졌다”며 “부정과 긍정이 극단을 향하다 보면 어느 지점에서 만난다. 둘은 큰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스스로가 혐오스럽다고 생각하는 무언가를 생각을 달리하면 포용의 시선으로도 바라볼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무료.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11-18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성스러운 것과 기괴한 것은 한끝 차이”…그로테스크의 미학

    14일 서울 종로구 보안1942. 폐관한 여관을 활용한 전시공간답게 스산한 분위기가 풍겼다. 전시작들은 높이 2m 넘는 종이에 그려진 지렁이나 돈벌레 형상을 띤 불화들이다. 음습함을 한층 돋우는 이들 작품은 20일까지 진행되는 전시 ‘귀불’의 출품작. 서울시립미술관의 ‘2022년 신진미술인 전시지원 프로그램’에 선정된 박웅규 작가(35)의 것들이었다.박 작가는 2016년 첫 개인전을 진행한 신진 작가지만, 그의 작품은 한 번 보면 쉽게 잊히지 않는다. 활용하는 소재가 통상 더럽고 불쾌하게 여겨지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날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의외의 답을 했다. “저는 예쁘다고 생각해서 그려요.” 본인이 담대한 성격은 아니란다. 작가 또한 “벌레를 아주 무서워한다”고 했다. 두렵지만 그리게 되는 이 소재들의 매력은 무엇일까.“언젠가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나방을 관찰한 적이 있어요. 엄숙해 보이더라고요. 늘 보던 벌레의 징그러움과 달랐습니다. 벌레의 반복적인 마디의 구조에서, 촘촘하게 솟아있는 잔털에서 완전한 균형미를 느꼈어요.”올해 박 작가가 불화를 전면 차용한 것도 “불화의 대칭적인 조형미 때문”이다. 그가 그린 불화의 일부 보살은 벌레의 형태를 띠고 있다. 불화와 벌레의 공통점인 규칙적인 장식들은 때로는 강박적으로 다가와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묘하게 아름다워 보인다. 그는 “벌레를 보고 부정적인 감정을 느꼈다고 한들, 그 감정은 벌레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벌레를 대하는 제 태도와 시선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결국 작가는 ‘성스러운 것과 기괴한 것은 한끝 차이’라는 사실을 말한다. 이 생각의 뿌리에는 유년 시절의 경험이 있다.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난 박 작가의 옛집에는 십자가와 마리아상만 100여 개가 보관돼있었다. “밤에 집을 돌아다니면 그 성스러운 물건들이 마치 저를 감시하는 공포스러운 존재처럼 느껴졌다”던 작가는 “부정과 긍정이 서로 극단을 향하다보면 어느 지점에서 만난다. 둘은 큰 차이가 없다”고 말한다.이 철학은 인간이라는 존재에도 통용된다. 박 작가가 초기부터 그려온 ‘가래 드로잉’을 보면, 스스로가 혐오스럽다고 생각하는 내 안의 무언가를 조금은 포용할 수 있을 듯하다. “가래를 보고 ‘내 몸 안에 더러운 것들이 축적되어 있을지 모른다’는 일종의 자기혐오에서 드로잉을 시작했어요. 웃긴 건 어릴 적 가래를 보고 사리(舍利)라고 착각했던 적이 있었다는 거죠.”그는 불쾌감을 극복하거나 해소하기 위해서 벌레나 성상을 그리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괴로운 작업이지만 이제는 조금 유희적으로 받아들일 수는 있게 된 것 같다. 나쁘다고 생각됐던 것들을 제 방식으로 소화해낸 것”이라는 말이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11-17
    • 좋아요
    • 코멘트
  • 달이 뜬 갤러리, 그림은 하늘과 땅 연결하는 ‘안테나’

    갤러리 1층 벽에 내걸린 ‘달항아리’(2018∼2022년).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달처럼 떠오른 달항아리의 반쪽에는 그늘이 드리워 있다. 18년 전부터 달항아리를 그려 온 강익중 작가(62)의 신작 ‘달이 뜬다’는 회화 작품이지만 매끄러운 표면이 도자기 같다.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강 작가가 12년 만에 국내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다. 다음 달 11일까지 서울 종로구 갤러리현대 신관과 갤러리현대 두가헌에서 개인전 ‘달이 뜬다’가 동시에 진행된다. 20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이는 이번 개인전은 유쾌함과 진지함의 향연이다. 특히 설치작 ‘내가 아는 것’ 연작(2003∼2022년)에선 그의 삶에 대한 지혜가 엿보인다. 색색의 알파벳, 한글, 달항아리가 그려진 수백 개의 3인치 나무 패널이 전시장 두 벽면을 촘촘히 채웠다. 멀리서 이를 보면 패널에 쓴 글자들이 단어를 만들고 뜻을 이루는 문장이 된다. 이 문장들은 “너와 나는 다르지 않다. 우리가 모여 세계를 이룬다”는 그의 세계관인 ‘연결’과 맞닿아 있다. 이번 전시는 자연과 섭리에 대한 강 작가의 철학이 특히 돋보인다. 전시장 1층에 놓인 신작 회화 ‘달이 뜬다’ 연작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지러지는 달과 달 무지개를 형상화했다. 강 작가는 달 무지개를 본 순간을 회상하며 “달 무지개를 기록하고 싶어 잠깐 한눈판 사이 금세 사라졌다. 가장 중요한 순간은 그냥 바라보고 느끼면 될 것을. 그걸 담으려고, 잡으려고 했다”며 아쉬워했다. ‘달이 뜬다’ 드로잉 연작은 화면 여백과 획의 비중을 6 대 4로 채우는 동양화의 기본 법칙을 따르면서 달항아리 그림 안에 먹과 오일스틱으로 산과 들, 사람, 동물을 그려 넣었다. 강 작가는 “다른 존재와의 연결을 추구하는 예술관을 ‘달이 뜬다’ 연작에 담았다”며 “달항아리 안에 자연과 동물, 인간 등을 한데 어울러 놓은 것처럼 작품을 통해 세상을 잇는 안테나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만물을 하나로 연결하고 응집하려는 예술가의 다음 꿈은 무엇일까. 그는 “임진강에 남북한 어린이들과 실향민의 그림을 모아 남과 북을 잇는 꿈의 다리를 만들고 싶다”고 오랜 소원을 밝혔다. 1994년 미국 뉴욕 휘트니미술관에서 그를 아꼈던 백남준과 ‘멀티플 다이얼로그’전을 열고 1997년 베니스 비엔날레 특별상을 수상한 그는 최근 전시보다는 공공미술 프로젝트에 주력해왔다. 2020년 23개국 어린이 1만2000명과 함께 종로구 광화문광장에 한글과 도자기 형상을 활용한 설치작품 ‘광화문 아리랑’을 작업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번 전시에선 강 작가가 12년간 세계 곳곳에서 공개한 대형 공공프로젝트의 스케치와 아카이브, 자작시도 볼 수 있다. 두 전시 모두 무료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11-15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너와 나는 다르지 않다” 유쾌하고도 진지하게…‘연결’ 이야기하는 강익중

    “폭풍 직전의 하늘은 연한 청록색이다.”강익중 작가(62)의 시 ‘내가 아는 것’의 첫 문장이다. 그는 서울 종로구 갤러리현대에서 진행 중인 개인전 ‘달이 뜬다’ 전시장 벽에 손수 이 시를 새겼다. 말 그대로 작가가 아는 것들을 나열한 시다. 뜬금없는 구절은 이렇게 이어진다.“만두 속의 부추와 돼지고기 비율은 2대 1이다”라든지 “밤하늘의 별들은 크리스마스 장식이 아니다”라든지. 싱거운 말 속에 불현듯 격언이 튀어나온다. “기회는 다시 온다”든지 “정말 필요한 것은 별로 없다” 따위의 말이다.12년 만에 열리는 강 작가의 국내 개인전은 유쾌함과 진지함의 향연이었다. 설치작 ‘내가 아는 것’ 연작(2003~2022)은 그의 삶의 지혜가 엿보이는 작품이다. 색색의 알파벳, 한글, 달 항아리가 그려진 3인치 나무패널이 전시장 두 벽면을 꽉 채웠다. 가만 살펴보면 글자는 단어를 만들고 뜻을 이루는 문장이 된다. “너와 나는 다르지 않다. 우리가 모여 세계를 이룬다”는 작가의 핵심 주제 ‘연결’과 맞닿아 있는 작품이다.최근 그는 전시보다는 공공미술 프로젝트에 주력하고 있었다. 개인전이 오랜만인 이유다. 기본 방향은 ‘내가 아는 것’ 작업에 전 세계 어린이들을 참여시키는 것이다. 국내에서는 2020년 23개국 어린이 1만2000명과 함께 서울 광화문 광장에 ‘광화문 아리랑’을 설치한 것이 대표적이다. 강 작가는 “‘당신, 무엇을 아느냐’고 물으면 어른보다 아이들이 더 잘 대답한다. 우리가 세상을 살며 많이 굴절된 것”이라고 했다.이번 전시에서는 특히 자연과 섭리에 대한 철학이 돋보인다. 전시장 1층에 놓인 신작 ‘달이 뜬다’ 연작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지러지는 달과 달 무지개를 형상화한 회화다. 강 작가는 달 무지개를 본 순간을 회상하며 “달 무지개를 기록하고 싶어 잠깐 한눈판 사이 금세 사라졌다. 가장 중요한 순간은 그냥 바라보고 느끼면 될 것을. 그걸 담으려고, 잡으려고 했다”며 아쉬워했다.그런 그가 자처한 것은 ‘안테나’다. “지금 사는 세상에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고 아래로는 땅을 보며 그 사이를 연결하는 안테나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다른 존재와의 연결을 추구하는 그의 예술관은 32점의 신작 드로잉 ‘달이 뜬다’에서도 드러난다. 종이에 먹과 오일 스틱으로 산과 달, 사람, 동물 등 인간과 자연 등을 아이의 그림처럼 표현한 작품이다. 단순한 가운데 특이점은 여백에 있다. 강 작가는 “화면의 여백과 획의 비율을 6대4로 채우는 동양화의 기본 법칙을 따랐다”고 말했다.그는 “인생도 여백을 6에 두고 살아야 한다. 그림에 너무 빠지지 말자, 4정도만 그리자”며 장난스레 웃다가도 “사람이 만들어낸 인연이 4라면 자연은 6이다. 헤어질 수도, 다시 만날 수도 있다. 우리는 그렇게 이어져있다”며 현자 같은 말을 하곤 했다. 만물을 하나로 연결하고 응집하려는 예술가의 다음 꿈은 무엇일까. 그는 “임진강에 남북한 어린이들과 실향민의 그림을 모아 남과 북을 잇는 꿈의 다리를 만들고 싶다”며 오랜 소원을 밝혔다.전시는 다음달 11일까지.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11-14
    • 좋아요
    • 코멘트
  • 빛, 사물의 존재성을 담다

    낮게 기울어진 해. 어스레하게 거실로 들어온 햇빛을 반려견이 쬐고 있다. 차창 너머 푸르른 나무들은 나른함을 더한다. 고즈넉한 연출 덕일까. 계속 바라보면 해가 움직일 것만 같은 착각이 든다. 황선태 작가(50)의 연작 ‘빛이 드는 공간’(2022년) 이야기다. 빛을 소재로 유리 드로잉 작업을 해온 황 작가가 30일까지 서울 강남구 갤러리 나우에서 개인전 ‘빛―시간을 담다’를 연다. 이번 전시는 ‘빛이 드는 공간’ 연작 11점, ‘빛이 있는 공간’ 연작 3점 등 유리 드로잉 신작 14점으로 구성됐다. 황 작가는 강화유리 뒷면에 창문, 침대, 테이블 등 드로잉과 풍경 사진을 붙이고, 빛이 들어오는 공간은 잘라낸 필름을 순서대로 붙인 뒤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을 뒤에서 비추는 방식으로 작업한다. 이번 전시에서 눈에 띄는 점은 야외 풍경을 다룬 작품들이다. 황 작가는 책상이나 소파가 놓인 실내 공간에 유리창을 통과한 햇빛이 내리쬐는 모습을 주로 작업해왔다. 이번에는 가로등 불빛이 비치는 골목길, 도시 야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언덕 위 벤치 등 야외 풍경을 다룬 작품 3점을 선보였다. 실내 작업과 실외 작업은 작품 제목으로 구분할 수 있다. 실내는 ‘빛이 드는 공간’으로, 실외는 ‘빛이 있는 공간’으로 제목을 붙였다. 황 작가는 색이나 질감 표현은 과감하게 생략하고 빛과 선에 집중했다. 화룡점정은 빛이다. 빛을 각각 달리해 작품별로 이른 아침, 느지막한 오후, 흐린 날, 맑은 날을 알 수 있다. 최근 전시장에서 만난 황 작가는 “시간, 날씨에 따라 빛이 드는 풍경을 여러 차례 시뮬레이션해 작품별로 가장 적합한 빛을 찾아냈다”고 말했다. 작품의 LED 조명을 끄면 실내 조감도 같은 선만 남아 완전히 다른 느낌이 든다. 황 작가는 빛에 주목한 이유에 대해 “빛은 사물의 존재를 보여주는 가장 근원적인 요소”라고 말했다. 찬 바람이 부는 요즘, 은은한 빛을 뿜어내는 작품들은 따스함과 아늑함을 선사한다. 14개 작품 중 사람이 등장하는 작품은 없다. 황 작가는 “소파 위 쿠션, 탁자 위의 커피잔만 봐도 그곳에 어떤 사람이 머물렀는지 짐작할 수 있다. 사람에 대한 복잡한 정보를 빼고 최소한의 요소로 작업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무료.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11-14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차창 너머로 들어오는 낮게 기운 햇빛… 빛과 공간을 담은 그림

    낮게 기울어진 해. 어스레하게 거실로 들어온 햇빛을 반려견이 정면으로 맞고 있다. 차창 너머에 있는 푸르른 나무들은 나른함을 더한다. 고즈넉한 연출 덕일까. 완성된 그림이지만, 계속 바라보다보면 해가 움직일 것만 같은 착각이 든다. 황선태 작가의 신작 ‘빛이 드는 공간‘의 이야기다. 빛을 소재로 작업해온 황 작가의 개인전 ‘빛-시간을 담다’가 30일까지 서울 강남구 갤러리 나우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에선 황 작가의 유리 드로잉 신작 14점을 선보인다. 작업의 시작은 ‘사물을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에서 출발한다. 최근 전시장에서 만난 황 작가는 “인간의 시선으로 볼 때 우리는 ‘죽은 집’, ‘죽은 사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평범한 사물들도 유기적으로 상호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자신의 작업에 굳이 인간을 등장시키지 않는 이유기도 하다.“소파 위 쿠션, 탁자 위의 커피 잔만 봐도 그곳에 어떤 사람이 머물렀는지 짐작할 수 있지 않나요? 사람을 표현하게 되면, 사물의 존재감 그 자체보다는 그 사람으로 인한 많은 이야기가 연상됩니다. 사람에 대한 복잡다단한 정보를 삭제하고 최소한의 요소만 가지고 작업하고 싶었습니다.” 실제 그의 작품에는 색, 무늬, 질감 등 대개의 것이 생략됐다. 오로지 빛과 선을 사용했다. 황 작가는 “내 작품의 선은 크로키할 때처럼 감정을 넣어 그린 선이 아니라, 글자의 선처럼 사물을 지칭하기 위해 기능적으로 존재하는 선”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화룡점정은 빛이다. 그의 작품은 LED 조명을 끄면 실내 조감도 같은 선만 남는다. 황 작가가 “빛은 사물이 있음을 보여주는 가장 근원에 해당한다”며 중요성을 설파한 이유다. 작품은 단순해보이지만, 작업은 그리 간단치 않다. 각 작품마다 약 4개의 레이어로 이뤄져있다. 강화 유리 뒷면을 놓고 그 뒤에 간략한 선으로 묘사한 실내 드로잉과 풍경 사진을 인쇄한 필름, 빛이 투과하는 지점만 잘라낸 필름을 순서대로 전사한 뒤 LED 조명을 비추면 완성이다. 이번 전시에서 눈에 띄는 점은 실외 작업이다. 이제껏 황 작가는 주로 실내를 그려왔다. 책상이나 소파가 놓인 실내 공간에 유리창을 통과한 햇볕이 쬐는 식이었다. 이번에는 가로등 불빛이 비추는 골목길 모습, 한눈에 야경이 보이는 벤치를 그린 작품 3점이 함께 전시됐다. 황 작가는 “실내 작업은 ‘빛이 드는 공간’이라는 이름을, 실외 작업은 ‘빛이 있는 공간’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제목이 작품을 넘어서면 안 되기에 간단하게 구분 지었다”고 했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11-13
    • 좋아요
    • 코멘트
  • [책의 향기]가족에서 가해자로… 그들은 왜 서로를 아프게 하나

    2015년 일본 지바현에서 간호사 출신인 70대 부인이 남편을 살해한 사건이 벌어졌다. 당시 피해자의 몸에는 끔찍한 자상이 서른 군데가 넘었다. 도대체 이 부부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알고 보니 이 사건에는 심각한 ‘노노(老老) 간병’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노노 간병은 환자와 간병인이 모두 65세 이상으로 주로 집에서 이뤄지는 간병을 뜻한다. 2019년 기준 일본에선 재택 간병의 59.7%가 노노 간병이었다. 이 부부도 원래는 금실이 좋기로 유명했다. 하지만 2009년 남편이 뇌출혈로 쓰러지며 시련을 맞았다. 부인은 “남편 간병은 내가 책임진다”며 치료에 헌신했지만, 2014년 남편은 또다시 뇌출혈로 쓰러지며 상황은 악화됐다. 갈수록 심리적으로도 불안한 남편 옆에서 부인도 조금씩 지쳐 갔다. 극심한 우울증에 빠져 자살 충동도 여러 차례 느꼈다. 하지만 부인은 처방약을 먹으면서도 간병을 이어갔다. 사건이 일어난 뒤, 부인을 상담한 적 있던 돌봄 매니저는 “혼자 책임지려 하지 말고 주위에 도움을 요청했다면 이 지경에 이르지 않았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빈곤, 범죄 등 사회 문제를 파헤쳐 온 르포 작가인 저자는 최근 일본에서 늘어나는 ‘가족 살인 사건’을 면밀히 들여다봤다. 2015년부터 벌어진 일곱 가족의 비극을 다뤘다. 아동학대와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 돌봄 포기 등 여러 사연이 얽혀 있다. 2018년 도쿄의 한 주택가에서 벌어진 사건도 허망하고 처참하기 그지없다. 40대 남성이 숨졌는데, 살인 혐의로 체포된 이는 늙은 아버지였다. 중학교에서 30년 이상 교편을 잡았던 부친은 평생 범죄와 무관했던 시민이었다. 한데 남성의 어머니는 남편을 원망하지 않았다. “지금껏 버틸 수 있었던 것도 남편 덕분”이라며 눈물 흘렸다. 숨진 아들은 어려서부터 정신질환을 앓았다. 강박증과 대인기피증에 시달리던 그는 20대에 들어서자 어머니에게 폭력을 행사했다. 공포에 짓눌린 부인을 지키기 위해 남편은 아들을 가족과 분리시켰다. 아들을 원룸으로 독립시키고, 자신이 매일 찾아가 잠들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그렇게 보낸 20년 세월. 하지만 상태는 호전되질 않았고, 잠시 집에 들렀던 아들이 또다시 어머니에게 손찌검을 하자…. 아버지는 평정심을 잃고 말았다. 선뜻 권하긴 쉽지 않은 책이다. ‘어떻게 가족이 이럴 수 있나.’ 세상은 누구나 남의 일엔 쉽게 판정을 내린다. 물론 살인은 용서받지 못할 범죄이며, 존속살인은 더욱 반인륜적이다. 하지만 어떤 일들은 함부로 평가의 잣대를 갖다 대선 안 된다. 저자는 “저출산과 고령화로 가족 문제는 갈수록 더 심각해질 것”이라며 “복잡하고 무거운 현실과 공적 지원의 문제에 더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솔직히 이런 조언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으나, 이웃나라의 현실이 결코 남의 얘기로 들리지 않기에 마음이 무겁고 씁쓸해진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11-12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국제적 명성 상하이 아트페어에도 ‘K아트’

    국내 매거진 그룹 노블레스미디어인터내셔날의 갤러리 ‘노블레스 컬렉션’이 중국 상하이 아트페어 ‘웨스트번드 아트 앤드 디자인’에 참가했다. 2014년부터 열린 이 아트페어는 지난해 미국 거고지언, 스위스 하우저 운트 비르트, 영국 리슨갤러리 등 세계 유명 갤러리들이 참여해 왔다. 10일부터 13일까지 열리는 올해는 19개국 43개 도시에서 온 100여 개 해외 갤러리가 참여한다. 노블레스 컬렉션은 ‘웨스트번드 아트 앤드 디자인’ VIP 라운지에 전시 ‘Contourless’를 마련했다. 김종학(85), 김근태(69), 이배(66), 김택상(64), 이수경(59), 정용국(50), 이소정(43), 손동현(42), 이은실(39), 박형진(36) 등 국내 작가 10명의 회화와 설치 등 19점으로 구성했다. 이들은 한국 전통 미술에 대해 고민하고 다양한 시도를 해 왔다. 현대한국화를 그리는 손 작가가 기획에 참여했다. 김종학 작가는 꽃을 모티브로 한 ‘무제’를 선보였다. 숯의 작가 이배는 숯가루로 만든 먹물을 사용해 그린 드로잉 ‘Brushstroke―L’을 선보였다. 웅덩이에 캔버스 천을 깔고 안료 섞은 물을 부어 만든 김택상 작가의 ‘Breathing light―Red shadow’, 한지에 수묵으로 무한 증식하는 잎을 그린 정용국 작가의 ‘Rootless Tree’, 손 작가의 수묵산수화 ‘3P04’도 소개됐다. 노블레스 컬렉션은 “다채로운 방식으로 작업한 작품들을 통해 한국 미술의 가능성과 새로운 방향성을 세계에 널리 알리고 싶다”고 밝혔다. 노블레스 컬렉션은 11, 12일에는 미술계간지 ‘아트나우 차이나’와 함께 총 5회에 걸쳐 포럼 ‘아트나우 포럼: 예담’을 개최한다.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11-1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다시 열리는 백남준의 세계-그 시대 한국 예술

    비디오아트 선구자인 백남준(1932∼2006)이 1992년 국립현대미술관과 함께 기획한 전시 ‘백남준·비디오때·비디오땅’은 기념비적인 작품이 등장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고딕 성당과 유사한 구조물에 TV 모니터들을 붙이고 첨탑 부분에 주제에 맞는 오브제들을 단 작품인 ‘나의 파우스트 시리즈’(1989∼1991년)가 주인공. 모두 13점으로 이뤄진 작품은 각각 환경과 농업, 예술, 통신, 교통, 민족주의 등 백남준의 세계관을 상징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10일부터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리는 전시 ‘백남준 효과’는 작가가 활발하게 활동했던 시대의 한국 미술을 다시 소환한다. 출품작은 총 103점으로 이중 ‘나의 파우스트 시리즈’는 13점 가운데 6점을 선보인다. ‘비밀이 해제된 가족사진’(1984년) 등 백남준의 1980, 90년대 대표작 43점과 당시 함께 활동했던 구본창, 이불 등 국내 작가 25명의 1990년대 대표작 60점도 전시된다. 이번 전시는 1984년 귀국한 백남준이 1990년대 한국 현대미술 발전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체험적으로 가늠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수연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는 “백남준은 1990년대 국내 현대미술계에 실험적인 키워드들을 던졌던 전략가이자 기획자, 문화번역자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백남준의 주요 메시지라 할 수 있는 △세계화 △과학과 기술의 발전 △믹스트미디어(mixed media·여러 매체를 함께 사용하는 미술 기법) △다원성 등으로 구분됐지만 딱히 얽매일 필요는 없다. 오래 세월이 흐른 작품들이지만 탁월한 재료 선정과 기법 덕에 최신 현대미술을 만나는 듯한 신선함마저 안겨준다. 내년 2월 26일까지. 입장료 2000원.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11-10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佛화가 손에 다시 태어난 ‘정선’… 한국화 구도로 그린 마이클 잭슨

    담백한 꽃과 새, 은은하게 펼쳐진 산과 강, 호젓한 정자에 걸터앉은 선비와 아이…. 여기까지만 보면 여느 한국화 전시 중 하나라 여길지 모르겠다. 익히 알지만 친근하고 좋은 기운에 발걸음이 차분해진다. 그런데 드문드문 뭔가 좀 낯설다. 어진(御眞·임금의 초상)인가 싶어 들여다보니 마이클 잭슨이고, 불화처럼 보여 다가가니 덥수룩한 수염의 성인 남성 천사라니. 도대체 무슨 전시일까. 서울 종로구 일민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기획전 ‘다시 그린 세계: 한국화의 단절과 연속’은 낯익음과 낯섦이 공존하는 독특한 전시다. 기본적으로 일민미술관이 소장한 겸재 정선(1676∼1759)이나 추사 김정희(1786∼1856), 오원 장승업(1843∼1897) 등 조선시대 걸작부터 시대순으로 관람할 수 있는데, 그 사이사이에 ‘이질적인’ 작품들이 포진해 있다. 뭔가 뒤섞인 듯 보이지만 구분은 어렵지 않다. 작품이 전시된 벽지를 보면 안다. 전시의 뼈대를 이루는 고전은 회색 벽지에 배치됐고, 현대 작품은 사이사이에 다른 색깔의 벽지에 자리하고 있다. 장서영 일민미술관 에듀케이터는 “작품들을 섞어 진열함으로써 과거에서 현재를 만나고, 현재에서 과거를 살피는 체험을 통해 한국화의 정의를 다시금 고민해 보길 바랐다”고 설명했다. 모두 43점이 출품된 고전 작품들은 하나하나가 보물급이다. 18세기 한강에 있던 정자를 그렸다는 겸재의 ‘숙몽정’과 서예 필선이 도드라지는 추사의 ‘사시묵죽도사폭병’, 실험적인 구도가 눈길을 사로잡는 오원의 ‘화조도’는 발길을 한참 동안 멈추게 한다. 근현대 고전도 만만찮다. 소나무와 선비 아홉 명을 그린 고희동(1886∼1965)의 ‘송하관류도’(1927년)와 설산 풍경을 담은 박승무(1893∼1980)의 ‘설청계방’도 놓치기 아깝다. 본격적인 채색 한국화가 등장하는 2층 전시도 범상치 않다. 김은호(1892∼1979)의 ‘미인도’부터 서세옥(1929∼2020)의 ‘춤추는 사람들’, 황창배(1947∼2001)의 ‘새로 쓰는 선비론 삽화’ 시리즈에까지 이르면 한국화의 역사를 아우를 수 있다. 고전이 감동이었다면, 현대 한국화는 재미지다. 손동현의 2008년 작 ‘왕의 초상(P.Y.T)’은 마이클 잭슨이 조선 임금의 어진처럼 포즈를 잡고 앉았다. 그의 또 다른 작품 ‘한양’(2022년)은 정선의 산수화를 애니메이션에서의 공간처럼 해석했다. 박그림의 ‘심호도’ 시리즈(2021∼2022년)는 고려·조선 불화의 도상이지만 곳곳에 현대인의 얼굴과 민화적인 호랑이가 등장한다. 한국 작가가 그리지 않은 작품도 있다. 겸재와 오원의 작품 사이에 있는 ‘과거에 대한 고찰’(2021년)은 프랑스 화가 로랑 그랑소(50)의 회화다. 3개 화폭으로 구성된 작품은 왼쪽에 윤두서(1668∼1715), 오른쪽엔 겸재 그림을 재해석한 회화를 그려 넣었다. 가운데 화폭엔 동그라미가 중첩된 광원(光源)이 포진했다. 장 에듀케이터는 “광원은 과거와 현재의 시공간을 아우르는 통로를 상징한다”며 “시대와 국적을 뛰어넘어 ‘가장 한국적인 느낌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담았기에 이번 전시와 잘 어울리는 작품”이라고 했다. 내년 1월 8일까지. 5000∼7000원.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11-08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시대와 국적을 뛰어넘어 발견되는 ‘한국적이라는 느낌’, 그 근원은 무엇일까

    조선 후기, 한강변 압구정 동쪽에는 미상의 정자가 있었다. 1749년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정자의 이름은 ‘숙몽정’. 한국화의 뿌리와도 같은 조선의 화가 겸재 정선(1676~1759)은 정자 뒤로 펼쳐진 기암절벽 풍경과 정자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선비와 어린 아이를 그렸다. 지금은 없어진 이 정자는 정선의 그림 ‘숙몽정’(1700년대)으로 그 흔적을 짐작할 수 있다.서울 종로구 일민미술관은 ‘다시 그린 세계: 한국화의 단절과 연속’ 전시장의 가장 초입에 ‘숙몽정’을 놓았다. ‘한국화의 개념과 한국화의 기반이 되는 전통이 사라지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질문을 은유한 셈이다. 출품작은 크게 소장품과 대여품으로 나뉘어있다. 소장품은 겸재 정선, 추사 김정희(1786~1856), 오원 장승업(1843~1897) 등 ‘고전’이라 칭해지는 예술가 24명의 작품 42점. 대여품은 ‘현대’라 불리는 동시대 작가 13명의 작품 69점이다. 한국적 재료나 소재를 작업에 이어가고 있는 작가들을 추렸다.독특한 점은 전시 구성이다. 한데 섞여 있는 이 작품들을 구분하는 방법은 벽지 색이다. 전시의 주축이 되는 것은 회색 벽지다. 전시장은 툭툭 끊어진 회색 벽지와 그 사이로 다양한 색의 벽지들이 끼어있는 형식이다. ‘고전’ 작품은 회색 벽지에, ‘현대’ 작품이 그 사이사이에 자리하고 있다. 미술관 측은 “소장품과 대여품을 섞어 진열하면서 과거 속에서 현재를, 현재 속에서 과거를 살피며 한국화의 정의를 고민해봤으면 한다”고 말했다.정선의 ‘숙몽정’에서 시작한 고전 작품들은 시대순으로 배치되어 있다. 서예의 필선이 두드러지는 김정희의 ‘사시묵죽도사폭병’(1840년대)과 실험적인 구도와 담채법이 특징인 장승업의 ‘화조도’(1860년대)를 선두로 그들의 영향을 받은 이들의 작품이 펼쳐진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고전도 변화를 겪는다. 소나무와 아홉 명의 선비를 그린 고희동의 ‘송하관류도’(1927년)에서 발견되는 작아진 글씨나 설산 풍경을 그린 박승무의 ‘설청계방’(1940년대)에서 살펴볼 수 있는 장방형 비율이 대표적이다.변화의 속도는 2층 전시장에서부터 더 빨라진다. 김은호(1892~1979)의 ‘미인도’(1940년) 등으로 대표되는 채색화가 등장하면서부터다. 일본 유학을 통해 서양화풍의 일본화에 영향을 받은 작가들은 1936년 ‘후소회’를 설립해 수묵산수화를 주로 그린 이상범(1897~1972)과 그의 제자들과 쌍벽을 이뤄갔다. 이 흐름은 1950년부터 한국화가들이 추상표현주의를 수용하면서 또 한번 큰 변화를 맞이한다. 서세옥(1929~2020)의 ‘춤추는 사람들’(1995년)이나 황창배(1947~2001)의 ‘새로 쓰는 선비론 삽화’ 시리즈(1997~1998년) 등은 단순한 선이 눈에 띈다.사실 시대 흐름에 따른 한국화의 변화 양상을 따라가기 쉬운 전시는 아니다. 분절된 회색 벽지 사이사이에 놓인 화려한 현대 작품들 때문이다. 마이클 잭슨의 모습을 한국화 구도로 그린 손동현의 ‘왕의 초상(P.Y.T)’(2008년), 불교 도상에서 모티브를 얻은 박그림의 ‘심호도’ 시리즈(2021~2022년) 등은 고전 작품처럼 담백함은 덜하지만 어딘지 친숙하다. 또 조선의 화가 윤두서와 정선의 그림을 재해석한 회화 ‘과거에 대한 고찰’(2021년)의 주인은 프랑스 출신 예술가 로랑 그라소(50)다. 시대와 국적을 뛰어넘어 발견되는 ‘한국적이라는 느낌’의 근원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전시는 내년 1월 8일까지. 5000~7000원.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11-07
    • 좋아요
    • 코멘트
  • [책의 향기]우리는 애도한다, 삶이 끝나도 관계는 지속되기에

    스위스 정신의학자 루트비히 빈스방거(1881∼1966)는 갓 스무 살이 된 장남을 잃었을 때 그 비통한 마음을 정신분석학 창시자인 지크문트 프로이트(1856∼1939)에게 알렸다고 한다. 프로이트는 빈스방거를 이렇게 위로했다. “사별 뒤 극심한 슬픔은 언제나 끝이 납니다만, 그 후에 무엇으로도 고인을 대신할 수 없는 기나긴 날들이 이어집니다. 다른 무엇으로 대체해보려 해도 역시 고인과는 어딘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걸로 괜찮습니다. 그렇게 해야만 고인에 대한 사랑을 유지해갈 수 있습니다.” 지난달 2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골목에서 안타까운 생명들이 숨을 거뒀다. 그 어이없고 난데없는 희생을 목도하고 수많은 이들이 혼란에 빠졌다. 준비 없는 이별을 맞닥뜨린 유족과 주변인들은 그 비통함을 어떻게 헤쳐 나갈 수 있을까. 한림대 생사학연구소 연구위원인 저자는 3년간 세상을 휩쓸고 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가족을 떠나보낸 유족들을 인터뷰했다. ‘애도 상담 전문가’로 활동하는 그는 이태원 핼러윈 참사와 사인(死因)이나 처지는 다르지만 사별을 마주한 이들의 심정을 가까이에서 들여다본다. 갑작스러운 이별은 남은 이들에게 한꺼번에 많은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그중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자책감이다. 책에 등장하는 유족들은 대부분 고인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사례를 떠올리거나 자기 탓에 일찍 떠난 건 아닌지 고민하는 경우가 많았다. 저자는 “위기 상황 속 극도의 불안이 자기 자신에게 향하는 것이 죄책감”이라며 “이러한 죄의식은 대개 비합리적인 것으로,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일어난 것이라는 현실 검증을 통해 완화될 수 있으나 그렇지 못한 경우는 위험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럴 때 당장은 쉽지 않겠지만 시간을 갖고 ‘상실노트 쓰기’를 해보라고 저자는 추천한다. 글쓰기를 통해 고인과의 지난 시간을 추억하고 자신의 감정을 객관화하려 노력하는 것이다. 저자는 “사별한 이들이 경험하는 죄책감을 고인과의 화해에 대한 소망으로 이해하고 배려해야 한다”고 짚어준다. 이때 중요한 점은 감정이 생생할 때 이런 작업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인과의 추억을 마주하며 관계를 재정립하는 과정은 기나긴 애도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강조한다. 프로이트가 얘기했듯, 애도는 기나긴 날들이 이어지는 여정이다. “삶은 끝나도 관계는 지속되기” 때문이다. 이별의 슬픔은 떠난 이와의 관계를 끝내버린다고 극복되는 것이 아니다. 고인과의 관계가 죽음으로 인해 마무리됐다고 해버리면, 사별 뒤에 오래도록 고인을 잊지 못하는 이들에게 부정적인 편견이 덧씌워질 수 있다. 저자는 “고인과의 심리적 유대감은 제사나 추모 문화 등의 환경에 따라 유지되고 진화할 수 있다”며 “이럴 때일수록 주변의 지지와 위로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사별을 겪은 이들은 그 이전과는 전혀 다른 환경에 놓인다. 어떤 유족들은 세상에 대한 인식이나 가치에 대한 신념 같은 기존의 인식 체계가 붕괴되기도 한다. 특히 외부적 요인으로 인한 헤어짐일 경우 정신적 충격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하루하루 견디는 것조차 힘든 이들이 거기에 얽매이지 않도록, 그 이후의 삶에 적응할 수 있도록 주변과 사회에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저자는 말한다. “슬픔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그 어떤 모멸도 받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그 어느 때보다, 말할 수 있는 것을 말하게 해주고 아픈 목소리를 들어주는 태도가 절실하게 필요한 시간이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11-05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당신은 떠났지만 나는 다 울지 못하였습니다”…준비 없는 사별을 한 이들에게

    스위스 정신의학자 루트비히 빈스방거(1881~1966)는 갓 스무 살이 된 장남을 잃었을 때 그 비통한 마음을 정신분석학 창시자인 지그문트 프로이트(1856~1939)에게 알렸다고 한다. 프로이트는 빈스방거를 이렇게 위로했다.“사별 뒤 극심한 슬픔은 언제나 끝이 납니다만, 그 후에 무엇으로도 고인을 대신할 수 없는 기나긴 날들이 이어집니다. 다른 무엇으로 대체해보려 해도 역시 고인과는 어딘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걸로 괜찮습니다. 그렇게 해야만 고인에 대한 사랑을 유지해갈 수 있습니다.”지난달 2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골목에서 안타까운 생명들이 숨을 거뒀다. 그 어이없고 난데없는 죽음을 목도하고 수많은 이들이 혼란에 빠졌다. 준비 없는 이별을 맞닥뜨린 유족과 주변인들은 그 비통함을 어떻게 헤쳐 나갈 수 있을까.신간 ‘코로나를 애도하다’의 저자인 양준석 한림대 생사학연구소 연구위원은 3년 넘게 세상을 휩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가족을 떠나보낸 유족들을 인터뷰했다. ‘애도 상담 전문가’로 활동하는 그는 이태원 핼러윈 참사와 사인(死因)이나 처지는 다르지만 사별을 마주한 이들의 심정을 가까이에서 들여다본다.갑작스런 이별은 남은 이들에게 한꺼번에 많은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그 중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자책감이다. 책에 등장하는 유족들은 대부분 고인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사례를 떠올리거나 자기 탓에 일찍 떠난 건 아닌지 고민하는 경우가 많았다. 저자는 “위기 상황 속 극도의 불안이 자기 자신에게 향하는 것이 죄책감”이라며 “이러한 죄의식은 대개 비합리적인 것으로,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일어난 것이라는 현실 검증을 통해 완화될 수 있으나 그렇지 못한 경우는 위험할 수 있다”고 말한다.이럴 때 당장은 쉽지 않겠지만 시간을 갖고 ‘상실노트 쓰기’를 해보라고 저자는 추천한다. 글쓰기를 통해 고인과의 지난 시간을 추억하고 자신의 감정을 객관화하려 노력하는 것이다. 저자는 “사별한 이들이 경험하는 죄책감을 고인과의 화해에 대한 소망으로 이해하고 배려해야 한다”고 짚어준다. 이때 중요한 점은 감정이 생생할 때 이런 작업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인과의 추억을 마주하며 관계를 재정립하는 과정은 기나긴 애도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강조한다.프로이트가 얘기했듯, 애도는 기나긴 날들이 이어지는 여정이다. “삶은 끝나도 관계는 지속되기” 때문이다. 이별의 슬픔은 떠난 이와의 관계를 끝내버린다고 극복되는 것이 아니다. 고인과의 관계가 죽음으로 인해 마무리됐다고 해버리면, 사별 뒤에 오래도록 고인을 잊지 못하는 이들에게 부정적인 편견이 덧씌워질 수 있다. 저자는 “고인과의 심리적 유대감은 제사나 추모문화 등의 환경에 따라 유지되고 진화할 수 있다”며 “이럴 때일수록 주변의 지지와 위로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사별을 겪은 이들은 그 이전과는 전혀 다른 환경에 놓인다. 어떤 유족들은 세상에 대한 인식이나 가치에 대한 신념 같은 기존의 인식 체계가 붕괴되기도 한다. 특히 외부적 요인으로 인한 헤어짐일 경우 정신적 충격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하루하루 견디는 것조차 힘든 이들이 거기에 얽매이지 않도록, 그 이후의 삶에 적응할 수 있도록 주변과 사회에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저자는 말한다. “슬픔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그 어떤 모멸도 받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그 어느 때보다, 말할 수 있는 것을 말하게 해주고 아픈 목소리를 들어주는 태도가 절실하게 필요한 시간이다.김태언기자 beborn@donga.com}

    • 2022-11-04
    • 좋아요
    • 코멘트
  • 남편 그늘 벗고… ‘온전한 나’로 일어선 女화가들

    “그의 아내가 아닌/나의 이름으로 서 있는 이곳/아직 낯설어/그의 그림이 아닌/나의 그림으로 채워진 이곳/그건 더 새로워….” 올해 9월 처음 선보인 창작뮤지컬 ‘라흐 헤스트’는 여성 화가이자 미술평론가인 김향안(1916∼2004)의 삶을 재조명한 작품. 시인 이상(1910∼1937)과 화가 김환기(1913∼1974)라는 두 천재 거장의 부인으로 많이 알려졌지만, 김향안 역시 자기만의 세계를 공고히 구축한 예술가였다. ‘라흐 헤스트’는 “예술은 남다”라는 프랑스말로, “사람은 가고 예술은 남는다”라는 김향안의 어록에서 따왔다. 과거부터 미술을 포함한 예술무대는 남성 중심으로 흘러갔다. 유명 화가의 부인은 그들을 뒷받침하는 조력자로 여겨졌다. 하지만 상당수는 독립적 정체성을 지닌 미술가들이었다. 최근 미술계에선 이들의 작품을 재조명하며 평가도 다시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서울 종로구 갤러리라온에서 2일 만난 류민자 작가(80)는 “고유한 한 명의 작가로 인정받고 싶고, 인정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국적 추상화의 대표주자였던 하인두(1930∼1989)의 부인인 그는 올해 6, 7월 이곳에서 한국화 등 50여 점을 선보인 개인전 ‘류민자’를 열었다. “한국 근현대 여성 작가들은 가사와 육아, 내조로 1인 3, 4역을 해야 했죠. 전업 작가는 꿈도 못 꿨어요. 물론 그게 당시엔 주어진 삶이었으니 후회는 없어요. 이 나이에도 붓을 들 수 있어 감사할 따름이죠.” 한국화가 안상철(1927∼1993)을 기리며 세운 안상철미술관이 최근 나희균 작가(90)를 소개하는 데 애쓰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안상철의 부인인 그가 살아 있을 때 제대로 조명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나 작가는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인 나혜석(1896∼1948)의 조카다. 나 작가의 큰딸인 안재혜 안상철미술관장은 “어머니는 시간이 많지 않다고 여기시는지 매일 식사하듯 작품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1세대 조각가인 문신(1922∼1995)의 부인이자 창원시립마산문신미술관 명예관장인 최성숙 작가(76)는 요즘 잠잘 시간도 쪼개 쓴다. 동양화를 주로 그려온 최 작가는 “올해가 문신 탄생 100주년인 데다 프랑스에서 열린 한국작가 초대전에 제 작품도 출품해야 해 너무 바빴다. 지난달 31일부터 열린 ‘문신 탄생 100주년 기념 국회특별전’도 기획했다. 예술작업과 외부활동을 함께하는 게 참 힘들긴 하다”고 했다. 뒤늦게 작가의 길로 들어선 이도 있다. 국내 1세대 행위예술가로 꼽히는 이건용 화백(80)의 부인 승연례 작가(73)는 2017년 첫 개인전을 가진 뒤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올해 9월 세 번째 개인전을 열었다. 승 작가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미술을 전공했지만 결혼 뒤 가사에 집중했다. 그림을 그리고 싶은 욕구는 언제나 가득했는데, 갤러리 측에서 작품을 보고 요청해와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정필주 울산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는 “박래현(김기창 부인)과 박인경(이응노 부인) 등 화가의 부인은 한국 사회가 요구한 내조자의 길을 걸으면서도 예술을 고민한 당대의 화가였다”며 “유명 화가의 부인이란 편견 없이 작품만으로 제대로 평가를 받을 기회가 적었다”고 했다. 황규성 갤러리라온 대표도 “여성 원로 작가들은 작품보다 누군가의 부인이나 어머니로 정의되는 일이 많았다”며 “이젠 미술계도 그들을 다룬 전시는 물론이고 학술적인 연구도 본격적으로 진행해 정당한 지위를 찾아줄 때가 됐다”고 말했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11-03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허름-어눌한 듯한 조각속에 철학을 심다

    웅장하거나 매끈하지는 않다. 오히려 어딘가 모르게 허름하고 어눌한 분위기가 묻어난다. 하지만 그 거친 결 사이로 깊은 고민을 담아온 조각가들의 전시가 동시에 열리고 있다. 30년 넘게 조각에 천착한 정현 작가(66)와 박미화 작가(65)가 그들이다. 서울 성북구 성북구립미술관에서 열리는 정 작가의 개인전 ‘시간의 초상: 정현’은 작품마다 철학적 사유가 진득하다. 대표적으로 ‘무제’(2022년)는 시커멓게 타버린 나무들이 서로를 지탱하며 무너지지 않는 형상이 인상적이다. 정 작가는 “2019년 발생한 강원 고성 산불 현장의 잿더미에서 건진 나무들”이라며 “시련을 겪은 것들은 언제나 아름답다”고 했다. 조각 및 설치 87점과 드로잉 등 110점으로 구성된 전시는 정 작가의 1980년대 작품부터 최신작까지를 망라했다. 대부분의 재료가 나무토막이나 아스팔트, 콘크리트, 잡석과 석탄이다. 작가는 “기교는 최소화하고 시간이 만들어놓은 물질의 상처와 아픔을 최대한 끌어내고자 했다”고 말했다. 그간 공개하지 않았던 석고 작품도 인상적이다.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길쭉한 인간의 형상인 ‘무제’(1987년)나 거세게 표현된 인간의 얼굴인 ‘무제’(1998년)를 보면 “브론즈가 화장한 얼굴이라면 석고는 맨 얼굴”이란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정 작가는 “많은 이들이 석고를 ‘과정의 재료’로 여기지만, 석고의 풋풋함이 좋다”고 했다. 다음 달 4일까지. 서울 종로구 아트스페이스3에서 다음 달 3일까지 열리는 박 작가의 개인전 ‘Lesser 더 적게’도 닮은 점이 많다. 박 작가도 버려진 목재 등을 이용해 “보잘것없어 보이는 것들”에 애정 어린 시선을 둬왔다. 전시엔 그의 또 다른 도전이 돋보였다. 조각에서 흙은 주로 굽거나 칠해서 사용하는데, 박 작가는 젖은 흙으로 형상을 빚어 “날것인 상태로” 배치했다. 전시장을 길쭉하고 넓게 장식한 ‘지성소’와 ‘회랑’은 누워 있는 천사와 웅크린 양 등 무기력하면서도 왠지 눈이 가는 자그마한 존재들이 한데 모여 있다. 두 작품 모두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작업했다. 모두 13점을 선보인 이번 전시 작품들은 대부분 긁히고 파인 자국들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고충환 미술평론가는 “박미화의 작업은 권력과 무지에 희생당한 존재들을 기억하고 기록하고 기념하는 일”이라며 “존재를 연민으로 감싸는 애틋한 시선이 인상적이다”라고 평했다. 박 작가는 이번 전시작 대부분을 판매하지 않을 예정이다. 박 작가는 “지구에서 더 적게 자취를 남기고 싶다”며 “흙 조형들은 전시가 끝난 뒤 흙으로 되돌려 보내겠다. 이 역시 새로운 작업으로 재탄생될 것”이라고 말했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11-02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