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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한국해양대의 해양금융대학원이 국내를 넘어 글로벌 해양금융 인재양성의 허브로 자리 잡고 있다. 2011년 비전일제(Part-time) 석사과정을 시작으로 2018년 전일제(Full-time) 석사과정을 도입하면서 해운과 금융을 아우르는 전문 교육을 통해 매년 30명의 인재를 배출하고 있다. ‘해운을 이해하는 금융전문가’와 ‘금융을 이해하는 해운전문가’를 양성하면서 해양과 금융 분야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 전문성을 갖춘 인재 배출의 요람 해양금융대학원은 대졸자에게 해양금융에 특화된 전문교육을 제공한다. 재직자들에게는 실무와 이론을 융합한 심화교육 기회를 제공한다. 대학원 졸업생들은 해양금융기관, 대형 해운사, 조선업체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면서 해양과 금융산업 동반성장에 기여하고 있다. 특히 전일제 과정 1기부터 5기까지 졸업생들은 한국무역보험공사, 한국자산관리공사, 한국해양진흥공사, BNK부산은행 등 해양금융 관련기관과 HMM, 팬오션, 현대중공업, 한화오션 등 다양한 분야에 진출해 두각을 나타내며 대학원의 교육 성과를 증명하고 있다. ● 특화된 교육과 풍부한 혜택 해양금융대학원은 충분한 실무 경험을 갖춘 전문 교수진이 다수 참여해 해양금융에 특화된 교육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실무 중심 교육이 이뤄지고 있고 해외 학점 취득 프로그램 등도 있다. 특히 그리스 아테네경영경제대학(AUEB)과의 협력을 통해 전일제 과정 재학생들은 겨울 계절학기 동안 약 한 달간 그리스 현지에서 수업을 듣는다. 또 유수의 해운기업 및 금융기관을 탐방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 과정은 해운 선진국의 시스템을 직접 경험할 수 있어 큰 호응을 얻고 있다. 해양금융대학원 전일제 과정은 3학기 동안 총 45학점을 이수하고 무논문으로 졸업이 가능하도록 설계돼 있다. 조기에 산업 현장 진출을 목표로 하는 재학생들에게 적합하다. 이 과정에 필요한 등록금과 기숙사비 등은 ‘부산해양금융인력양성사업’ 지원을 통해 제공해 경제적 부담을 줄여주고 있다. 해양금융대학원은 미래를 바라보며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인재 양성에 매진하고 있다. 대졸자들은 새로운 도전의 기회를 얻을 수 있고, 재직자들은 전문성을 더 다질 수 있다. 국내외 해운 및 금융 산업 환경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해양금융대학원은 해양금융 전문인력양성을 통해 해양과 금융 산업의 고도화에 기여하고 있다. 앞으로 해양금융대학원을 거친 전문가들이 세계 해양금융 분야의 미래를 이끌어나갈 것으로 기대한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고려대 세종캠퍼스(부총장 김영)가 21세기 약학 및 헬스케어 분야의 선두주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려대 세종캠퍼스 약학대학은 2011년 설립 이래 10년간 439건의 연구과제를 수행하며 약 398억 원의 연구비를 확보해 왔다. 2019년에는 교육부가 주관하는 ‘이공분야 대학중점연구소 지원사업’에 선정돼 2028년까지 총 67억 원의 연구비를 지원받는다.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약학대학은 2023년 QS 세계대학평가 약학 분야에서 79위를 차지했다. 약학 산업이 급성장하는 상황에서 돋보이는 성과를 내고 있다. 2025년에는 첨단융합신약학과가 신설돼 전통적인 신약 개발 방식과 AI(인공지능) 기반의 첨단 접근법을 아우르는 폭넓은 지식을 겸비한 융복합 혁신 인재를 양성할 예정이다. 최신 과학 기술과 생명과학·화학·약리학 등 다양한 학문을 통합하여 혁신적인 신약을 개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를 통해 의약품의 미래를 선도하고 의료 혁신에 기여하고자 한다. 한편 2025년에는 디지털헬스케어공학과도 신설된다.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의료와 건강 시스템을 혁신하고 개선하며, 디지털헬스케어 신기술과 신산업의 발전을 주도하는 학과로 자리 잡을 예정이다. 이 학과는 바이오헬스 분야에 특화된 교육을 통해 타 학문과의 융합을 강화하고 융복합 특성화 캠퍼스로의 도약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특히 고려대 세종캠퍼스는 오송바이오 국가 산업단지와 인접해 있어 산학협력과 연구 교류의 중심지로 주목받고 있다. 인근의 대덕연구개발특구, 오송생명과학단지, 오창과학산업단지 등과의 협력은 신약 발굴, 임상, 산업, 보건사회약학 등 약학 전 분야에 걸친 전문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교육과 연구를 가능하게 한다. 또한 임상약학 교육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고려대 의료원 소속 3개 병원과 공동으로 전문적인 임상약학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운영하고 있다. 박성규 약학대학장은 “고려대 세종캠퍼스는 빠르게 발전하는 AI와 다양한 과학기술의 혁신 속에서 급속히 고도화되는 신약 개발 및 헬스케어 분야 연구의 최신 동향을 선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첨단 연구 인프라를 적극 활용하여 우수 인재를 양성하고 배출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전했다. 고려대 세종캠퍼스는 교육과정 최신화, 미래지향적 교육 및 연구 시스템 구축을 통해 약학 및 헬스케어 분야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쌓아가고 있다. 앞으로도 미래 헬스케어와 약학 분야에서 탁월한 인재를 양성하고 글로벌 약학 산업을 선도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것이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그래 이거야! 풀리지 않는 과제, 극복하기 어려운 고난, 끝이 보이지 않는 역경을 맞닥뜨렸을 때 갑자기 솟아나는 상쾌한 아이디어. 답답한 마음을 달래줄 한 모금 청량음료 같은 ‘유레카 모멘트’를 소개합니다.커피 2스푼, 설탕 1스푼 반, 프림(커피 크리머) 2스푼. 사람마다 다르긴 하지만 대략 이 정도였다. 1970년대, 다방 탁자에는 설탕 통과 프림 통이 놓여 있었다. 주문한 커피가 나오면 원하는 만큼 설탕과 프림을 넣으면 됐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커피 세트가 귀한 선물이던 시대. 설탕과 프림을 각각 용기에 담아 내놓으면 손님이 취향대로 커피에 넣고 저어 마셨다.어차피 커피와 설탕과 프림을 섞어 마시는 거라면 아예 처음부터 이 세 가지를 한데 섞어 놓으면 좋지 않을까. 병(甁)도 세 개가 아니라 하나만 있으면 되니 보관도 편리하지 않겠는가. 1976년 동서식품에서 국내 최초로 커피믹스를 출시할 때 생각은 이랬다. 시장에 첫선을 보인 커피믹스는 유리병 포장이었다.● 독자 브랜드 ‘프리마’를 내놨지만…커피믹스를 고안해낸 데는 다른 이유가 더 컸다. 세계적인 식품회사인 미국 제너럴푸드와 50 대 50 조인트벤처로 만들어진 동서식품이 1970년 처음 내놓은 인스턴트커피 맥스웰하우스는 그럭저럭 팔리고 있었다. 문제는 1974년 ‘신제품 개발반’이라는 조직까지 신설해 만든 커피 크리머 ‘프리마’ 판매가 부진하다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연유나 우유를 농축한 수입 액상 크리머를 쓰기도 했지만 보존기한이 짧고 보관하기도 불편했고, 우유 향을 싫어하는 사람도 많았다. 이에 물엿과 야자유(油)를 주원료로 한 분말 크리머를 제너럴푸드 기술이 아닌 동서식품 독자 기술로 제조한 것이다. 고소한 야자유 향이 커피 쓴맛을 잡았고, 싼 데다 보관도 쉬웠다. 하지만 남대문시장 등에서 암암리에 팔리는 네슬레 ‘카네이션’ 같은 외제 커피 크리머에 밀려 힘을 쓰지 못하던 상황이었다.야심 차게 내놓은 커피믹스였지만 약점이 있었다. 흡습(吸濕·습기를 빨아들임)이었다. 뚜껑을 열고 떠낼 때 스푼에 묻은 물기를 빨아들여 커피믹스가 떡처럼 굳거나, 커피가 설탕 속 수분을 흡수해 덩어리지는 일이 빈번했다. 또 커피와 프리마, 설탕의 배합 비율이 모든 소비자 취향을 만족시키지는 못했다. 손님을 대접할 때 설탕은 몇 스푼, 프림은 몇 스푼 식으로 물어보지 않고 커피믹스만 덜렁 내놓으면 성의 없이 보인다는 거부감도 있었다. 대책이 필요했다.● 아웃도어용 커피를 목표로흡습 문제를 해결하려면 유리병 뚜껑을 열었다 닫았다 하는 일을 줄이고 오래 보관하지 말아야 했다. 1회용 개별 포장이 방법으로 떠올랐다. 여기에 더해 판매 목표를 변경했다. 유리병 커피믹스의 목표는 가정이었다. 손쉽게 커피와 설탕 프리마를 타 먹을 수 있도록 하자는 것. 하지만 개별 포장의 목표는 야외 음용(飮用)이었다. 밖에서 물을 끓일 수 있는 도구가 있을 때 커피를 마시고 싶어 하는 사람이 타깃이었다.1977년 수출 100억 달러를 최초로 달성하는 등 1970년대 후반 한국 경제는 이른바 개발도상국이 됐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경제 성장과 더불어 여가에 쓸 시간이 생기면서 등산 낚시 같은 야외 활동 인구가 늘고 있었다. 산에서, 강이나 호수에서 커피를 마시고 싶어도 커피, 설탕, 프리마 병을 각각 들고 다니기는 어려웠다. 따로 비닐봉지 등에 나눠서 담아 가기도 번거로웠다. 이 같은 휴대 문제를 개별 포장이 해결할 수 있다고 봤다. 1회용 커피믹스 포장 형태는 현재와 같은 긴 스틱형이 아니었다. 티백을 담는 사각 포장과 흡사한 가로 5cm, 세로 7cm 정도의 비닐 재질 직사각형 파우치 형태였다. 문제는 이 파우치 제작이 자동화가 아니었다는 것. 일일이 손으로 커피믹스를 넣고 밀봉해야 했다. 인두질로 밀봉하던 때도 있었다. 포장 자동화는 1980년대 들어서 이뤄졌다.‘전국 주요 등산로에는 어김없이 1봉지 45원 하는 커피믹스를 파는 노점상이 등장했다’는 기사가 나오기도 했지만 판매는 저조했다. 수작업 포장에 따른 낮은 생산성을 그다지 염려하지 않아도 될 수준의 매출이었다. 그래도 접을 생각은 하지 않았다. 들고 다니기 편하게 만든 커피믹스가 언젠가 팔릴 것이라는 기대가 없지 않았다. 1980년대 중후반까지 커피믹스 광고는 여전히 야외에서 마시는 것에 집중했다. 그런데 그것만으로 충분할까?● 커피믹스 가로막는 ‘삼각파도’커피를 마시려면 뜨거운 물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1980년대까지만 해도 기업이나 관공서 같은 곳에서 직장인들이 끓인 물을 구할 데는 없었다. 일본말이긴 하지만, 물을 끓일 수 있는 시설이 돼 있는 탕비실(湯沸室)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기업 임원에게 손님이 오면 중역실(重役室)에 딸린 비서실에서 전기 포트로 물을 끓여 잔에 커피를 내놓는 시절이었다. 일반 직원들은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커피를 대접하려면 회사 건물 지하나 밖에 있는 다방을 찾아야 했다. 이렇다 보니 커피는 누군가가 타 주는 것이라는 의식이 지배적이었다.더욱이 1980년대는 커피 1.5g, 프림 2g, 설탕 8g, 물 110cc로 간편하게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커피 자동판매기 전성시대였다. 1984년 현재 “사원 300명 이상 회사는 거의 커피 자판기를 갖추고 있다”는 기사가 나올 만큼 열풍이었다. 1987년 민주화운동과 대규모 노동운동을 통해 근로조건 개선 요구가 커지자 대기업들은 커피 자판기 등을 갖춘 휴게실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1988년 기준 전국 자판기는 6만5000여 대로 당시 인구 700명당 1대꼴이었다. 이 중 커피 자판기가 약 80%를 차지했다. 커피 회사인 동서식품 건물에도 층마다 엘리베이터 옆에 커피 자판기가 서 있을 정도였다.집에서는 가스레인지에 물 끓여 설탕과 프림 양을 조절해 병에 든 커피를 타 먹고, 회사에서는 커피 자판기를 이용하고, 일반인은 다방을 애용했다. 이 같은 ‘삼각파도’ 앞에서 1회용 커피믹스에 대한 관심이 커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커피믹스 매출은 병 커피 매출에 비해 미미했다. 이런 현상은 1990년대 중반까지 계속됐다. 이 삼각파도의 축이 깨지지 않는다면 커피믹스의 활로는 찾기 어려웠다.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기존 맥스웰하우스에 이어 1987년 더 비싼 맥심 브랜드를 출시하면서 고급 커피 이미지라는 마케팅 포인트를 잡았다. 커피 병 모양도 기존 맥스웰하우스 것보다 각을 더 많이 생기게 제작했다. 커피믹스 포장도 직사각형 파우치를 탈피해 막대기(스틱) 형태로 하는 차별화 전략을 택했다. 디자인 조사를 통해 스틱 형태가 더 고급스러워 보인다는 마케팅팀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1회용 포장은 천편일률적으로 직사각형이라는 고정관념을 깨는 시도였다. 나중에는 커피 프리마 설탕 순으로 층층이 담겨 설탕의 양을 조절할 수 있어 건강에도 이롭다는 마케팅까지 펼 수 있었다.커피와 프리마, 설탕의 배합 비율을 최적화하기 위한 소비자 조사도 진행했다. 가정주부들을 대상으로 실제 가정에서 커피를 탈 때 커피와 프리마, 설탕 비율을 어떻게 하는지 파악하는 것이었다. “커피 한번 타보세요”라고 주문한 다음 커피, 프리마, 설탕이 얼마나 되는지 그 양을 일일이 기록했다. 다방에서도 이와 비슷한 조사를 했다. 그렇게 해서 모인 데이터가 수천 개였다. 이를 토대로 훗날 ‘황금비율’이라고 불리는 맛의 비율을 만들어냈다.● 도둑처럼 찾아든 냉온수기커피믹스를 가로막고 있던 삼각파도의 균열은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사태를 전후해 도둑처럼 찾아들었다. 먼저 뜨거운 물이었다. 커피를 타 마시기 위해 꼭 있어야 하는 뜨거운 물을 구하기가 쉬워졌다. 그 주역은 냉온수기였다. 끓이지 않고도 꼭지만 누르면 뜨거운 물이 나오는 냉온수기의 등장으로 커피를 마시기 위한 필요조건이 해결됐다. 이제 커피믹스만 있으면 끝이었다.사무실 안에 설치된 냉온수기는 또한 ‘커피는 남이 타 주는 것’이라는 인식도 바꿔 놨다. 뜨거운 물을 받아 커피믹스를 넣고 스스로 저어 마시면 그만이었다. 여성 직원이 사무실 밖 커피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오던 관례가 깨지고 커피는 셀프서비스라는 새로운 문화가 생겼다. IMF 사태 이후 누구든 언제라도 회사를 떠날 수 있다는 위기의식 아래서 다른 직원에게 커피 심부름을 시키는 일이 부담스러워진 것도 작용했다는 분석도 있다.1990년대 중반 이후 커피 자판기의 쇠퇴도 영향을 미쳤다. 당시 바람이 불기 시작한 원두커피에 대한 선호가 높아진 데다, 시민들의 환경 의식이 높아져 수돗물에 대한 불신까지 겹쳐 커피 자판기는 서서히 입지를 잃어갔다. 여기에 중소기업 위주이던 냉온정수기 시장에 코웨이나 청호 같은 대기업이 진출하면서 기술은 발전하고 설치 가격은 내려가며 수요가 더 커진 것도 한몫했다.커피믹스 맛이 좋아졌다는 것을 알게 된 일도 중요한 요인이었다. 자판기 커피 대신 커피믹스를 타 마셔 보니 맛이 있었다. 번거롭게 커피 설탕 프림을 각각 타서 먹지 않아도 맛이 괜찮았다. 커피믹스가 ‘다방 커피’로 불릴 수 있을 만큼 맛을 느낄 수 있게 됐다. 맛이 좋지 않았다면 아무리 타 먹기 편하게 됐어도 마시지 않았을 것이다.IMF 사태 이후부터 시장 규모가 1조2000억 원대 안팎을 기록한 2012, 2013년까지를 ‘커피믹스 시대’라고 부를 정도로 커피믹스는 엄청난 성장을 기록했다. 커피믹스가 한국의 커피 소비를 대중화하고 커피 문화를 바꿨다는 평가를 받게 된 데에는 냉온수기라는 예상 밖의 조력자 덕이 컸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Just close your eyes, breathe in and visualize(눈 감고 숨을 깊이 들이마셔, 그리고 상상해 봐)”(위플래시(Whiplash), 에스파)걸그룹 에스파의 ‘위플래시(Whiplash)’를 듣고 영어 위플래시에 ‘채찍질’ 말고 다른 뜻이 있는 걸 알았다. 의학용어로 편타성(鞭打性) 손상, 즉 채찍으로 맞은 것 같은 부상이다. 챗GPT는 “교통사고나 급격한 충돌로 인한 목과 척추 부상. 특히, 차가 뒤에서 충돌했을 때 머리와 목이 빠르게 앞뒤로 흔들리면서 발생하는 손상”이라고 했다. 왜 이 노래 안무에 윈터 카리나 지젤 닝닝이 목뒤를 한 손으로 잡고 팔을 치켜드는 반복 동작이 있는지 알겠다.이 단어를 더 쉽게 이해하려면 19세기 미국 남부 흑인 노예들 삶을 다룬 TV 드라마 ‘뿌리’(1977년)나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2012년 영화 ‘장고: 분노의 추적자’를 보면 된다. 농장주가 나뭇가지에 양팔이 묶인 흑인 노예 등에 채찍질을 가한다. 극심한 고통과 충격에 노예 머리가 뒤로 세게 젖혀졌다가 앞으로 푹 숙여진다.여기서 파생된 듯한데, 위플래시는 ‘갑작스러운 변화나 충격을 받았을 때의 강렬한 느낌’이라는 비유적 의미로도 쓸 수 있다. 이 노래 도입부 ‘One look give’em whiplash’는 ‘한 번 보면 엄청난 충격을 받지’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좀 더 들어가면 경제적, 사회적인 큰 충격이나 급격한 변화로 감정이 강렬하게 반응하는 상황을 표현할 수도 있다고 한다.위플래시 얘기를 장황하게 한 것은 에스파를 좋아해서만은 아니다. 우리나라 정치에 위플래시가 필요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국민이 정치인을 채찍으로 내려치자는 뜻이 아니다. 국민이 정치에서 위플래시를 느끼게 해 줬으면 좋겠다는 얘기다. 이미 한 번 대통령을 탄핵해 봤는데 두 번째 탄핵이 큰 충격으로 다가올 리 만무하다. 솔직히 배부르고 등 따스한 정치인들 응석받이 노릇을 하는 것이 지금의 탄핵 놀음이라고 생각한다.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는 산업화와 민주화 이후 사명(使命)을 잃어버린 것 같다. 상실한 사명을 새롭게 제시하는 것은 정치(가)의 몫이다. 미국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30여 년 전 쓴 책 ‘역사의 종말’의 주제는 ‘자본주의적 자유민주주의가 공산주의에 마침내 승리했다’가 아니다. 후쿠야마가 강조하는 바는 이 책의 부제 ‘역사의 종점에 선 최후의 인간’에 있다고 본다.후쿠야마가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의 용어를 빌린 ‘최후의 인간’은 “육체적 안전과 물질적 풍요”에 젖은 삶을 산다. 행복한 스스로에 만족해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려고 힘쓰지 않는다. 이른바 거대 담론도, ‘신성한’ 목표도 사라지고 세세한 욕망의 충족만 남는다. 지금 정치도 마찬가지다. 공동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나 가치는 온데간데없고, 시야는 내부로만 고정돼 알량한 권력 잡기에 매달린다.선방(禪房)을 쩌렁쩌렁 울리는 할(喝) 같은 위플래시를 기다린다. 지도자를 꿈꾸는 정치인들에게 묻고 싶다. “Just close your eyes, breathe in and visualize.” 자신의 욕망이 아니라 공동체의 구체적인 비전이, 사명이 떠오르는가. 그럼 당신이 “오직 이 판을 바꿀 changer”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그래 이거야! 풀리지 않는 과제, 극복하기 어려운 고난, 끝이 보이지 않는 역경을 맞닥뜨렸을 때 갑자기 솟아나는 상쾌한 아이디어. 답답한 마음을 달래줄 한 모금 청량음료 같은 ‘유레카 모멘트’를 소개합니다.2021년 9월 인천국제공항. 김성태 한화시스템 팀장(항공레이다체계팀) 짐 속에는 누룽지를 가득 담은 커다란 봉지 2개가 있었다. 김 팀장이 3개월간 출장을 가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아프리카에서 가장 유행했다. 델타 변이 바이러스가 퍼지면서 하루 확진자 수가 3만 명을 훌쩍 넘었다. 델타 변이 백신은 나오지 않았다. ‘호텔 방과 시험장 말고는 밖에 나가지 않을 거니까…. 전기 포트로 물 끓여서 말린 누룽지 풀어 먹으면서 버틸 거야.’한화시스템과 같이 남아공 요하네스버그로 직원들을 보내야 하는 국방과학연구소(ADD)에서도 고민이 적지 않았다. 코로나19가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는 시국에 연구원들을 험지(險地)에 보내는 게 맞는지 갈등이 적지 않았다. 이렇게까지 이걸 해야 하는가.국가기관과 민간 방위산업체 연구진이 목숨을 걸다시피 하면서까지 이뤄내야 하는 이것은 무엇이었을까.● 전화위복2015년 9월, 한국형 전투기(KFX) 사업은 첫발을 떼기도 전에 난관을 맞았다. 2020년 무렵부터 공군 F-4, F-5 전투기 100여 대가 퇴역한다. 2025년까지 약 18조6000억 원을 들여 KF-16급 이상 4.5세대 전투기를 독자 개발해 이들을 대체하는 것이 KFX 사업 목표였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제작을 맡는데 스텔스 전투기 F-35A를 만드는 미국 록히드마틴의 기술 이전이 긴요했다. 에이사(AESA·능동위상배열) 레이더를 비롯한 4개 기술이 핵심이었다.특히 AESA 레이더는 미래형 전투기의 최첨단 핵심 장비다. 기존 레이더가 쇠 판때기 같은 안테나를 고개 돌리듯 움직여 작동한다면 AESA 레이더는 안테나 전면에 잠자리 홑눈같이 꽂은 1000여 개의 작은 송수신 모듈(TRM)이 대신했다. 기계식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전자적 통제를 받는 TRM이 매우 빠르게 전방위로 빔(전파)을 방사하고 조향(操向)해 육해공 표적을 탐지, 추적하고 영상을 만든다. 거칠게 비유하자면 드라마 ‘오징어게임’ 속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놀이의 술래 영희가 눈동자만 상하좌우로 재빨리 움직이는 것을 연상하면 된다. 하지만 미국이 외국에는 알려주지 않는 이 기술 이전을 록히드마틴이 거부한 것이다.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고 했던가. ‘우리가 만들면 되지.’ ADD 레이더 연구진은 나름대로 오기가 생겼다. 김지헌 ADD 항공기레이다체계단 3팀장은 “아주 맨땅에 헤딩은 아니었다. 개발 초기에도 AESA 레이더는 신호처리를 비롯해 주요 기술은 체계 개발에 진입할 수 있는 수준이 됐다”고 말했다. 70~80% 기술 개발이 끝나 TRM 제작이 가능한 여건이었다. 하지만 함정이나 지상에서 쓰이던 AESA 레이더를 전투기에 집어넣어 작동하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였다.ASEA 레이더 체계 개발은 ADD 주관 사업으로 심사 끝에 한화시스템이 시제 업체로 선정됐다. ADD는 전체 사업 관리와 최상위 수준 기술 개발, AESA 레이더 기능의 이론적인 알고리즘 설계를 맡았다. 한화시스템은 설계 결과를 받아 하드웨어를 만들고 소프트웨어를 구현해 시험 단계를 지원하는 역할을 했다.미래 군수(軍需) 시장에서 상징성이 큰 사업이었기에 한화시스템 경영진은 흐뭇했다. 하지만 엔지니어들 사이에서는 “저기(AESA 레이더 개발팀) 가면 죽는다” 소리가 나올 정도로 어렵고 리스크가 큰 사업이었다. 회사는 핵심 연구원을 많이 배치하는 등 다른 대형 과제의 서너 배 인력을 투입했다. 상시 50명 정도가 AESA 레이더에 매달렸다. 많을 때는 100명이 넘었다.● 작고 가볍게 그리고 열나지 않게AESA 레이더 개발의 핵심 요소는 두 가지다. 레이더 자체 성능과 항공기 다른 전자장비와 제대로 작동하게 하는 항전(航電) 연동(통합) 기술이다.전투기용 AESA 레이더는 날아다니면서 공중 표적, 지상 차량, 해상 선박을 찾아야 하고 영상 그림도 그려야 하며 미사일 유도도 해야 하는 등 다중 표적에 대해 다중 임무를 수행한다. 고(高)기동하는 전투기에서 고기동 표적을 잡으려면 추적 필터가 좋아야 하고, 계속 따라가야 한다. 기능도 다양하고 성능도 뛰어나야 하는 것. 음속으로 나는 전투기에서 상상하기 힘든 진동과 충격을 비롯해 가혹한 공중 환경도 견뎌야 함은 물론이다.AESA 레이더를 전투기에 탑재할 때 가장 어려운 것은 스왑(SWaP·Size Weight and Power · 크기, 중량, 에너지 소비) 최소화다. 기능은 많은데 작고 가볍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큰 부담이다. 안테나와 두뇌 역할인 데이터 처리장치, 그리고 전원 보급장치로 이뤄진 AESA 레이더를 지름 1m 정도 원뿔형 공간에 탑재해야 한다.따라서 부품 무게를 몇백 g 줄이는 것도 연구진 내부에서 치열한 싸움을 불렀다. “이거 3mm 줄여 줘.” “못 줄여.” “왜?” “강성(剛性·외부 압력에 모양이나 부피가 변하지 않는 단단한 성질)이 떨어져.” 이런 논쟁이 다반사였다.연구원들을 몇 개월 동안 고민하게 만든 것은 열(熱)이었다. AESA 레이더 TRM은 열이 나는 반도체 소자(素子)로 구성돼 있다. 안테나 앞면에 이런 소자 1000여 개가 촘촘히 박혀 있다. 냉각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개별 소자가 작동을 멈추거나 장비 자체가 아예 꺼질 수 있다.강우(降雨)나 혹한(酷寒), 진동, 정전기 같은 혹독한 환경에도 잘 버티는지 시험하다 예기치 않게 몇몇 소자가 깨지거나 안테나 안에서 타 버리는 경우도 생겼다. 밤새며 고민한 끝에 소자에 최대한 무리가 가지 않도록 전원(電源) 타이밍 등을 다시 계산하기도 했다.이 같은 일들이 와전돼 “안테나를 태워 먹었다” “불꽃 쇼를 했다” 같은 악의적인 소문이 돌았다. 국회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이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개발이 한창일 때도 바깥의 시각은 여전한 의구심이었다. KAI에서 ADD와 한화시스템이 실패하면 다른 나라에서 AESA 레이더를 사 오는 플랜B를 생각한다는 얘기도 돌았다.그래도 항전 연동(통합)을 위해서는 KFX 기체를 만드는 KAI와 협력해야 했다. 개발 시작과 함께 ADD 한화시스템 KAI가 항전 연동 협의체를 만들어 한 달에 한 번 회의했다. 처음에는 많이 싸웠다. KAI와 한화시스템, ADD가 서로 동의하지 않는 사안이 빈번했다. 매달 만나 기술적 근거를 토대로 설명하고 설득하고 논쟁하면서 이해의 폭은 넓어져 갔다. 사용자인 공군 조종사들을 불러 인터페이스 운용 등에 대한 의견을 듣고 개발에 반영했다.개발은 착착 진행됐다. 그러나 연구진의 자신감과 밖에서 보는 시각 사이의 거리는 쉽게 좁혀지지 않았다.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었다. 전투기 체계를 만드는 처지에서는 불확실성 제거를 위해 해외에서 검증된 기술을 쓰고 싶어 했을 것이다. 30년 동안 쌓인 레이더 기술을 자신하던 연구진에게도 전투기에 싣기는 처음이었다. 실제 전투기에 넣고 시험해 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뭔가가 있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다. 밖에서 위험하다고 보는 것은 당연했다.2020년 8월 ADD와 한화시스템은 AESA 레이더 시제품을 KAI에 납품했다. 세계에서 12번째 개발국이 됐다. 외부 의구심을 지우려면 항공기에 실어 운용해 봐야 했다.● “시험항공기 좀 날게 해 주세요”AESA 레이더의 플랫폼은 KFX 시제기였다. 하지만 KFX 시제기는 개발 중이었다. AESA 레이더를 검증, 평가할 적합한 비행시험 수단이 없었다. 루프 랩(roof lab)이라는 지상시험 수단은 있지만 공중 플랫폼이 없었다. 시험항공기(FTB·Flying Test Bed)를 찾아야 했다.FTB를 어떻게 할 것인가는 사업 초기부터 고민이었다. FTB는 AESA 레이더의 기능과 성능을 테스트할 수 있도록 대대적인 개조가 필요하기 때문에 공군 수송기는 사용할 수 없었다. 민간 항공기가 필요했다. 문제는 시험비행을 위해 개조한 항공기가 안전하게 비행할 수 있는 성능이 있다는 증명, 즉 감항(堪航·airworthness) 인증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국내에서 감항 인증 받기는 하늘의 별 따기였다. 국토교통부와 서울지방항공청을 오가며 민간 항공기 개조 목적과 방법 등을 설명하면서 감항인증을 요청했다. 엔지니어들이 관련 서류 뭉텅이를 가방에 넣고 보따리장사처럼 뛰어다녔다. 허가는 쉽게 나오지 않았다. 레이더 운용을 위한 FTB 운항 자체가 국내 최초였기에 관련 지식과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안전과 직결된 인증을 섣불리 내줄 수는 없을 것이라고 이해했다. 인증해 줄 수는 있는데 몇 년이 걸릴지 장담하지 못한다는 최종 답변을 들었다. 국가사업이어서였을까, 그나마 외국에서 인증을 받아온다면 인정해 주겠다고 했다.전문 용역기관에 의뢰한 결과도 국내 감항 인증은 불가능하니 국외 전문업체 위탁 운용을 추천했다. 해외 업체들의 제안서를 심사해 이탈리아 방위산업체 레오나르도가 선정됐다. 남아공 현지 협력업체로는 PAS를 택했다. FTB는 전장(全長) 31m인 보잉 737-500으로 결정됐다. 요하네스버그에서 개조하는 데 약 4개월이 걸릴 것이었다. 기체 값과 조종사 및 현지 작업자 등 외국인 인건비까지 포함해 개조 비용만 100억 원 이상 들것으로 추산했다.●하늘에서 움직이다… ‘신의 한 수’김성태 팀장을 비롯해 ADD와 한화시스템 기술진이 요하네스버그에 도착한 후 공항 격납고에서 본 FTB는 기내에 배선만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상태였다. 바로 개조 작업에 돌입했다. 많을 때는 15명, 평균 10명의 ADD와 한화시스템 엔지니어들은 마스크 두 장을 겹쳐 쓰고 일했다. 나중에는 마스크 줄 자국으로 귓등이 벗겨져 피딱지가 생겼다. 한국인 성에 차지 않게 일하는 속도가 느린 현지 스태프들을 독려해 싸움하듯 진행했다.FTB 맨 앞 노즈(nose)에 들어 있는 기상 레이더와 이것을 보호하는 바람막이 레이돔을 떼어 냈다. 노즈에는 AESA 레이더를 넣고 한국형 전투기 KF-21 레이돔을 부착했다. 지느러미 형태 일반 항공기와 달리 KF-21 레이돔은 앞이 각지고 뾰족하다. 기내는 좌석을 모두 들어내고 AESA 레이더 기능과 성능을 테스트하는 역할을 할 콘솔을 9개 만들었다. 다양한 레이더 모드 관련 엔지니어가 앉을 좌석도 기내 뒤쪽에 붙였다. 개조한 FTB 감항 인증을 우여곡절 끝에 남아공 당국으로부터 받았다. 이제 시험비행 차례였다.남아공 시험비행은 AESA 레이더 기능 테스트에 주력했다. 실제 표적을 띄우고 공대공(空對空), 공대지(空對地)로 레이더를 실제 방사하고 데이터를 분석했다. 2021년 11월 말부터 13일간 10소티(sortie·비행)를 치렀다. 소티 한 번에 3시간 반~4시간이 소요됐다. 일정이 촉박해 새벽 4시에 공항에 나와 밤 10시까지 하루 2소티를 하는 강행군이었다.어차피 돌아다닐 데도 없었지만, 바깥 활동이라는 것이 없었다. 오로지 호텔과 시험장을 오갔다. 기능 테스트 결과 ADD가 설계한 알고리즘이, 한화시스템이 만든 하드웨어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기능과 성능도 뛰어나다는 것을 확인했다. 마침 남아공에서 델타에 이어 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가 발생해 심각한 상황이었다. 현지 협력사 직원 두어 명은 확진 판정을 받았다. ADD와 한화시스템 기술진은 백신도 맞지 않았는데 한 명도 걸리지 않았다. 기적이었다.2022년 3월 16일 인천국제공항에서 첫 FTB 시험비행을 했다. FTB를 가지고 한국에 올 때는 감항 때문에 AESA 레이더와 KF-21 레이돔을 떼고 본래대로 기상 레이더를 붙여 왔다. 그리고 시험비행에 앞서 다시 AESA 레이더와 레이돔을 붙였다. 남아공 감항인증을 서울지방항공청에서 승인해 준 덕이었다.국내 시험비행은 최대 탐지 추적 거리와 동시 표적 탐지 추적(동시 운용 모드) 같은 성능 테스트에 주안점을 뒀다. 인천공항에서 FTB를 띄우고, 남아공에서도 사용했던 가상 표적기 CJ1 비즈니스 제트기를 제주공항에서 띄웠다. 시험비행은 서해안 공역(空域)을 사용했다.1소티에 대략 4시간을 시험비행하는데 예정된 착륙시간을 지키지 않으면 공항 측에 소명해야 했다. 다음에는 꼭 지키겠다는 반성문 격이었다. 비행기가 쉬지 않고 계속 뜨는 인천공항이기에 어쩔 도리가 없었다. 하지만 연구원들은 시험비행하는 동안 이것저것 시험을 해보고 싶었고 그러면 시간을 어기기 일쑤였다. 다른 지방공항에서는 비행하고 돌아온 FTB를 정비, 유지할 수가 없어 인천공항 밖에 쓸 수 없었다.공역(空域) 또한 애로사항이었다. 특정 시간에 해당 공역 비행을 허락받기 어려웠다. 군 공역을 쓰려 해도 작전이 많다 보니 남은 시간은 주말밖에 없었다. 게다가 주 52시간 근무제를 지켜야 하기에 마음대로 연구하기도 쉽지 않았다. 코로나19 덕은 좀 봤다. 코로나19 때문에 국제선 국내선 모두 운항 편수가 줄어 인천공항이 붐비지 않자 시험비행 시간을 넘겨도 크게 혼이 나지 않았다.FTB로 충분히 검증한 결과 본 게임이라 할 수 있는 시험평가에서 한 번에 표적기를 잡아내고, 뛰어난 최대 탐지 거리 성능을 보였다. 공군 파일럿들이 박수하며 격려해 줬다. 전우애가 생겼다. 지난해 3월 한 달간의 시험평가를 통과했고 그해 5월 잠정 전투 적합 판정을 받았다. 간절함이 통했다. 김지헌 팀장은 “FTB는 거창하게 말하자면 신의 한 수였다”고 했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고도의 집중력과 미개발된 뇌의 능력을 깨워주는 학습법이 있어 눈길을 끈다. 세계 전뇌학습아카데미 김용진 박사가 개발한 ‘초고속 전뇌학습법’이다. 인간의 잠자고 있는 뇌세포를 깨워 전뇌(全腦 좌뇌, 우뇌, 간뇌)를 개발시켜 학습 능력을 10배 이상 향상시키는 자기 주도학습법이다. 이 학습법은 교육심리학, 인지심리학, 대뇌 생리학, 안과 의학 뇌 과학 측면의 연구 결과로 완성됐다. 특허청에 등록됐을 뿐 아니라 세계 대백과 사전에도 등재됐다. 국내는 물론 세계 218개 나라의 언어와 문자에도 적용할 수 있다. 세계 최초로 개발하여 ‘장영실 과학문화상’금상도 받았다. 초고속 전뇌학습법은 3단계로 이루어진다. 1단계는 초고속 정독을 위한 과정으로 집중력, 기억력, 사고력, 판단력, 논리력, 어휘력, 문해력 등을 길러줘 독서 능력을 10∼100배 이상 향상된다. 2단계는 영어 단어, 한자, 교과서 및 전공 서적 암기 7,5,3 원칙 등 암기법이며, 3단계는 응용 단계로서 교과서 및 전공 서적 요점정리 7원칙, 전뇌 이미지기억법 7원칙 등이 있다. 보통 5일에서 10일에 전체 과정을 마치면 10시간 공부를 2시간에 끝낼 수 있다. 또 ‘공부 방법 면허증(특허청 등록)’을 발급한다. 김 박사는 초고속 전뇌학습법을 활용한 ‘노벨상 100명 만들기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그 일환으로 전 국민 독서 운동을 위한 1년간 365권 독후감을 쓰면 100만∼1000만 원을 지급하는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노성복 씨(78세)는 고령에도 1년간 책 1800권을 읽고 독후감 1015권을 작성해 독후감 대상과 상금 300만 원을 받아 자서전 ‘상금 300만원’이라는 책을 펴냈다. 또 2022년 세계기록인증원으로부터 ‘세계최고기록 인증서’를 받았다. 김 박사는 노벨상 100명 만들기 프로젝트를 자신에게 부여된 소명으로 여기고 있다. 초고속 전뇌학습법을 제도권으로 도입하면 과학 분야의 노벨상 수상자도 배출할 수 있을 것으로 자신한다. 또 공교육을 살리고 사교육비를 줄일 수 있어 출생률도 높일 수 있고 국가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본다. 초고령화 사회에 접어들면서 사회 문제로 대두될 노인성 치매에도 대응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뇌 계발 훈련을 통해 어르신들의 집중력, 기억력, 암기력 증진으로 치매 치유에도 획기적인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다. 본 학습법은 매일 수업이 있으며, 매주 토요일 오전 10∼12시 30분에 서울 송파구 삼전동의 세계 전뇌학습아카데미에서 무료 공개특강도 열린다. 보다 자세한 사항은 세계전뇌학습아카데미로 연락하면 된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한양대(총장 이기정)는 자율전공 대학 ‘한양인터칼리지’를 신설하고 2025학년도 신입생을 모집 중이다. 한양인터칼리지는 대학 내 최대 규모인 250명 정원의 단일 학부로 구성된 단과대학으로, 새로운 융합 교육을 실현하는 교육과정을 담고 있다. 이는 교육부의 대학혁신 정책에 부응함과 동시에 이 총장이 취임할 때부터 강조한, 경계를 흐리게 만드는 융합 교육, 즉 ‘스푸마토’ 교육을 구체화하는 사례다. 한양인터칼리지는 운영 방식에 있어 주요 대학의 자율전공이나 무전공과 차별점을 갖는다. 입학생들이 의예, 사범, 간호, 예체능을 제외한 모든 학과 단위를 주전공으로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받는다는 점은 다른 대학과 유사하지만, 주전공을 선택한 이후에도 한양인터칼리지 학생으로서 12학점의 졸업 프로젝트 등 고유한 졸업 요건을 충족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한양인터칼리지는 반도체, 의과학, 기후변화 등 융합이 필수적인 분야를 중심으로 ‘융합 전공 프로그램’들을 새롭게 구성하여 제공한다. 융합 전공 프로그램은 기존 교과목들의 단순 재배치 수준이 아닌 신소재공학, 융합전자공학, 기계공학, 물리학, 의학, 생체공학, 자원환경공학, 경제금융학, 국제학 등 다양한 분야의 교수진이 협력해 개발하는 교육과정이다. 한양인터칼리지 입학생들은 한양인터칼리지 내 신설될 다양한 형태의 융합 전공 프로그램들을 주전공 또는 다전공으로 선택할 수 있다. 다른 전공으로 입학한 재학생들도 이 융합 전공 프로그램들을 다전공의 하나로 선택할 수 있다. 한양대는 융합 전공 프로그램을 교육혁신과 융합 교육의 지렛대로 삼아 전교생이 융합 교육을 경험할 수 있도록 확대 운영할 계획이다. 한양인터칼리지는 1학년 교육과정에도 변화를 시도했다. 기존의 1학년 교양 및 전공별 기초필수 교육과정 대신 7개의 ‘서로 엮여 있는(interlocked) 교과목’을 신규 개발하고 파편적 지식 수업에서 벗어나 현상 중심의 다양한 통합적 사고를 할 수 있도록 가르친다. 1학년 겨울방학 중 호주 대학 파견 프로그램도 제공해 세계 시민으로서 사고를 확대하고 국제적 문제 해결에 도전해 봄으로써 보다 넓은 시야를 갖고 전공을 탐색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뿐만 아니라 한양인터칼리지는 교육성과 평가 방법을 학습일지(learning journal) 중심으로 재편하고, 모두 함께 성장하는 교육철학을 실현하기 위해 어디서든 그룹 학습이 가능한 독자적인 교육 플랫폼(Learning Experience Platform)까지 개발하고 있다. 한양대의 혁신적 교육 모델은 입시와 취업에 편중된 학부모의 관점을 변화시키고, 학생 스스로 삶을 개척하는 변화의 주체로 성장하게 도울 것이다. 한양인터칼리지는 2025학년도 수시 신입학 전형에서 주요 대학 중 가장 높은 경쟁률(62:1)을 기록했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경복대는 이달 8일 경기 남양주캠퍼스 우당관에서 AI(인공지능) 위원회 출범 회의를 개최했다. AI 위원회는 AI기술이 학문과 교육에서 신뢰성 있게 사용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통해 기술 사용의 공정성 및 투명성을 보장하기 위해 만든 조직이다. 경복대 측은 AI위원회 출범이 경복대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중요한 초석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또 경기도, 남양주시, 경복대학교의 노력이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RISE)와 지역발전 생태계 구축에 큰 도움을 줄 것이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전지용 총장은 “경복대는 경기도 남양주시의 유일한 고등교육기관으로서, 지역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연구와 교육을 지원하며 남양주의 AI 분야 인재 양성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협력 의지를 밝혔다. 이에 표강선 남양주시 전략사업과장은 ”가장 큰 화두는 인재 양성”이라며 “인력 공급에 있어 대학교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박종영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 AI신산업본부장은 ”지방정부, 학계 및 산업계가 협업하여 AI 관련 산업과 스타트업 회사의 리스킬링과 업스킬링을 추진하고, 학계와 지방자치단체가 협력하여 정부 클러스터 운영에 힘써야 한다”고 밝혔다. 교육부 발표자료에 따르면 경복대는 2017∼2022년 6년 연속 수도권 대학(졸업생 2000명 이상) 중 취업률 1위, 3년 연속 전국 취업률 1위를 차지했다. 2025학년도 1학기부터 디자인융합자유전공학과와 뷰티자유전공학과가 신설돼 운영될 예정이다. 또한 7개 학과에서 108개의 실습공간을 운영하며 현장형 인재 양성에 힘 쏟고 있는 경복대는 올 1월엔 637명을 수용할 수 있는 제2기숙사(숭례원)를 완공했다. 경복대의 2025학년도 수시 2차 모집은 11월 8일∼22일까지다. AI기반XR시뮬레이션콘텐츠 전문기술석사과정은 11월 4일부터 12월 6일까지 모집한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천안지안인자안(天安地安人自安). 하늘이 편안하고 땅이 편안하니 인간 또한 편안하다. 충남 천안이 그만큼 살기 편안하다고 자부하는 표현이다. 한갓진 곳이냐 하면 그건 아니다. 유관순의 아우내장터와 독립운동가 이동녕 이범석 생가에 독립기념관까지 근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소가 있다. 다만 마냥 엄숙하지만은 않다. 자주 듣고 보던 곳을 살짝 다른 눈으로 살피면 상흔의 치유와 생명의 역동을 느낄 수 있다.● 일락서산(日落西山) 높이 519m 흑성산 남동쪽 자락 독립기념관에서는 몸가짐이 바르게 된다. 일제(日帝)가 강요한 굴종과 예속에 대한 저항의 기록 앞에서 당연하다. 전시관을 거치며 숙연해진 몸과 마음을 가볍게 해보자. 동양 최대 기와집 ‘겨레의 집’에서 남서쪽으로 걸어간다. 야트막한 언덕으로 올라가는 화강암 계단이 보인다. 층층대를 이룬 돌들이 서로 다르다. 평평한 언덕마루에 올라 열 걸음 정도 내딛는다. 아하! 지름 약 40m, 깊이 5m의 3층 계단식 원형 구덩이다. 고대 로마 콜로세움 같다. 중앙에는 첨탑이 서 있다. 높이 8.5m, 직경 3.5m, 무게 35t. 구리판이 덮인 원형 기단(基壇) 위로 돌기둥 12개가 꼬챙이 달린 투구 모양 상단을 받치고 있다. 1995년 8월 15일 철거된 옛 조선총독부 건물 첨탑이다. 구덩이 안팎에는 밑동이나 윗동아리만 남은 돌기둥이 여기저기 서 있거나 누워 있다. 그 건물 잔해다. 연면적 3만1309㎡(약 9471평), 반지하 1층, 지상 5층, 구리판 붙인 중앙 콘크리트 돔으로 이뤄진 거대한 건물이 경복궁 근정전 앞을 가로막고 서 있었다. 착공 10년 만인 1926년 완공된 뒤 19년간 일제 지배의 총본산이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1982년까지 중앙청이라는 이름으로 정부종합청사 노릇을 하다 철거될 때까지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쓰였다.그 건물의 기둥, 발코니, 모서리 탑, 계단 난간을 비롯해 17가지 부재(部材)로 쓰인 총중량 1000t가량 돌들이 약 5000㎡(약 1500평)의 폐허가 된 무덤 같은 땅에 흩어져 있다. ‘조선총독부 철거 부재 전시 공원’이라는 이름 아래. 공원은 독립기념관 서쪽에 뒀다. 해가 지는 곳이다. 침략의 덧없음과 석양의 쓸쓸함이다. 땅을 5m 판 것은 총독부 건물의 상징인 첨탑을 내려다보게 하려 함이다. 또 5m는 일제가 광화문을 치우고 경복궁 안 홍례문(흥례문)을 없앤 뒤 기초공사를 하기 위해 판 땅의 깊이다. 일제는 압록강 주변 낙엽송 말뚝 9388개를 박아 터를 다졌다. 하지만 해는 서쪽으로 진다. 이제 첨탑이 우리를 올려다본다. 이 장소는 누군가에게는 해원(解冤)이다. 깊은 상처의 치유다. 그것은 분풀이를 넘어선다. ‘죽음’이라는 주제를 천착해온 영국 현대 미술의 총아(寵兒) 데이미언 허스트는 해골에 다이아몬드 8601개를 박아 넣은 작품 ‘For the Love of God’(2007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죽음과 마주할 때 해골을 장식하는 것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장식을 일종의 죽음에 대한 헌사, 찬사라고 생각했다.” 아이들은 “그리스 신전 같다”고 하는 이 공원은 일제의 죽음에 대한 ‘장식’이다. 35년간 한국인이 받은 억압의 종말에 대한 헌사다. 누군가에게는 잔잔한 감동이다.● 생명과 치유 이것은 문화예술진흥법 건축물미술작품 제도에 대한 통렬한 야유다. ‘연면적 1만 m² 이상 건물을 지을 때 사업비 최고 0.7%를 미술품 설치 비용으로 써야 한다’는 규정이 구색 맞추기용 작품을 양산하는 현실에 대한 고급스러운 풍자다. 아라리오 조각광장 이야기다.천안시 동남구 만남로에 있는 이 광장에는 허스트의 에나멜 도색 청동상 ‘찬가(Hymn)’를 비롯해 아르망 페르낭데즈, 키스 해링, 수보드 굽타, 나와 고헤이, 씨킴, 성동훈 등의 조각품 28점이 놓여 있다. 거대한 유리 상자 안에 들어 있는 작품 ‘찬가’는 높이 6m, 무게 6t. 그 앞에 서 있는 높이 20m 아르망의 작품 ‘수백만 마일―머나먼 여정’은 못 쓰는 차축 999개를 쌓아 올렸다. 굽타의 작품 ‘통제선’은 쇠로 된 헌 냄비와 그릇, 컵 같은 요리 도구 수천 개를 붙여 커다란 버섯구름을 만들었다. 나와의 작품 ‘매니폴드’는 높이 13m, 가로 16m, 세로 12m에 27t이나 나간다. 작품들이 놓인 공간은 낯설다. 광장과 거리에 조각품들이 서 있지 않고, 이 작품들이 건물과 광장과 거리와 사람을 규정하는 듯하다. 이들이 사라진다면 그저 어느 도시 번화가 풍경일 뿐일 터다. 허스트는 말했다. “나사(미국항공우주국·NASA)가 찍은 달 사진을 보면 거기에 깃발이 있다. 미지의 땅인데 깃발을 꽂는 순간 사람들은 그 땅을 안다고 믿기 시작한다. 그런데 깃발을 치워버리면 그건 그냥 어떤 미친 풍경일 뿐이다.” 낯섦은 두려움과 함께 미래에 대한 희망을 내포한다. 허스트가 아들의 2만7000원짜리 장난감 ‘어린 과학자의 해부학 세트’ 인체 해부 인형을 확대해 만든 ‘찬가’는 죽음과 치유를 되새기게 한다. 미술에도 의학처럼 치유 능력이 존재한다고 믿는 허스트는 “예술은 당신에게 무언가를 더 줄 수 있는데 그건 선물과도 같다”고 했다. 치유는 희망과 연결된다. 이 광장을 만든 김창일 아라리오그룹 회장도 “미술은 소수의 전유물이 아니라 느티나무 그늘처럼 누구에게나 휴식이 됨을 깨달았으면 좋겠다”고 했다.지난달 27일 ‘도전과 창조 정신이 어우러진 춤’이라는 주제로 55개국 무용수 4000여 명이 참가한 천안흥타령춤축제 2024 댄스 퍼레이드가 만남로에서 열렸다. 차량 통행을 막은 찻길 중앙선에서 바라본 광장의 작품들은 또 다른 풍경을 제시했다. 하루 몇 분이라도 사람들이 이 길에서 조각품들을 바라보면 좋겠다.● 약동치유돼 희망을 품은 생명은 살아 움직인다. 목천읍 이동녕 선생 생가에서 약동하는 기운을 느낄 수 있다. 30㎡(약 9평) 남짓한 마당에 앉아 장구와 꽹과리 징 북의 풍물을 듣는다. 그릇을 돌리며 태조산 매 잡는 시늉을 하는 버나놀이와 소고 치며 상모를 돌리는 채상소고놀이, 긴 상모를 돌리는 열두 발 상모놀이를 바로 앞에서 보니 심장이 벌렁벌렁한다. 천안시립흥타령풍물단이 매주 목요일 오전 11시 20분에 공연한다. 아쉽게도 31일이 올해 마지막 순서다.아쉬운 마음은 태조산 산림레포츠단지에서 달랠 수 있다. 숲속 공중에 설치된 레일에 줄 하나 걸고 활강하는 집코스터다. 여러 지방자치단체에서 운영하는 집코스터 가운데 레일 길이가 510m로 가장 길다. 이리저리 흔들리면서 나무에 부딪칠 것만 같은 스릴과 2분 만에 주파하는 속도감이 내 몸을 느끼게 한다.천안 호두과자를 ‘잉태한’ 나무를 만나러 갈 시간이다. 광덕리 광덕사 호두나무다. 높이 약 20m, 수령(樹齡) 약 400년의 호두나무가 무성한 가지를 쫙 벌려 맞아준다. 고려 말 역관 유청신이 가져와 심은 호두나무 묘목의 증손 격이란다. 그러니까 호두과자의 중시조(中始祖)다. 이렇게 생명은 이어지고 있다. ※허스트의 말은 ‘내가 만난 데미언 허스트―현대 미술계 악동과의 대면 인터뷰’(마로니에북스)를 참고했다.천안=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김수영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중에서, 1965)학원가 보도(步道)에서 음식이 든 비닐봉지를 들고 스쿠터를 세워 놓은 큰길가로 총총히 걸어가는 배달라이더에게 감사하다. 주문 몰리는 점심 무렵 오토바이를 손으로 끌면서 대각선 횡단보도를 건너는 배달노동자에게 감사하다. 보행자 푸른 신호등 켜진 횡단보도 앞 정지선에 스쿠터를 세우고 기다리는 배달원에게 감사하다.편도 2차로 일방통행 길, 황색 신호등 깜빡이는 횡단보도를 건널 때 차를 멈춰 주는 운전자에게 감사하다. 유치원에서 배운 대로 팔을 번쩍 치켜들고 주택가 왕복 2차로 횡단보도를 건너는 어린이 앞에서 차를 세우는 운전자에게 감사하다. 스쿨존에서 시속 30km 이하로 서행(徐行)하는 운전자에게 감사하다. 서행은 차량을 즉시 제동할 수 있는 운행을 말한다.여러 사람이 뒤섞여 움직이는 보도에서 비켜 달라고 따르릉거리지 않는 자전거 운전자에게 감사하다. 자전거에서 내려 끌고 가는 사람에게는 더욱 감사하다. 한강공원 나들목 어귀 ‘자전거 끌고 가세요’라고 적힌 가로 2m, 세로 1m 표지판과 장애물 3개를 보고서 타고 오던 자전거에서 내리는 사람에게 감사하다. 차도로 달리는 전동킥보드 운전자에게 감사하다.출근길 지하철역 승강장에서 계단을 오를 때 유튜브 채널을, OTT 프로그램을, 해외 축구 경기를 스마트폰으로 보지 않고 묵묵히 발걸음을 옮기는 앞사람에게 감사하다. ‘에스컬레이터에서는 걷거나 뛰지 말고 반드시 손잡이를 잡고 이용해 주세요’라는 안내방송을 들으면서 뛰어 내려가지만 그래도 스마트폰은 보지 않는 사람에게 감사하다.집으로 가는 길, 시내버스 교통약자석에 피곤한 몸을 내맡겼어도 목주름 깊은 노인에게, 아기를 안은 여성에게 선뜻 자리를 양보하는 젊은이에게 감사하다. 만원 버스에서 내릴 사람들이 모두 하차한 다음, 내리는 문으로 올라타는 승객에게 감사하다.‘범사(凡事)에 감사하라’는 개신교 하나님의 뜻이 완벽하게 실현되는 사회가 아닌 한 당연한 일에 감사하는 것은 짜증스러운 일이다. 시인 김수영(1921~1968)이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를 썼을 당시는 언로(言路)가 트이지 않았을 때다. 거대한 사회 부조리(不條理)에 대해 옳지 않다고 자유롭게 밝히기 쉽지 않았다. 공개적으로 분노를 터뜨리는 것은 언감생심(焉敢生心)이었을 터다. 그래서 시인은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라고 자조(自嘲)할 수밖에 없었다.이 시를 지금 읽으며 고개를 끄덕인다면 우스운 일이 되고 만다. 언론의 자유와 ‘만인의 만인에 대한 미디어’가 존재하는 오늘날 이른바 ‘거대 악(惡)’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것에 대한 울분의 표출은 차라리 습관적이다. 위정자를, 자본을, 사회구조를 손가락질하며 목청을 높이는 것은 간편한 일이 됐다.‘방 한구석에 앉아 쉽게’ 분노하는 동안 당연한 일이 당연하지 않게 돼 버리는 것을 우리는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사소한 일이라고 치부하며 무뎌지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소소한’ 일에는 더 이상 분개하지 않게 된 것은 아닐까.배달라이더의 스쿠터가 보도로 달리지 않게 할 수 있는 방책을 내놓는 정치인에게 다음 대통령선거에서 한 표를 던지겠다. 누가 될지 모를 그 정치인에게 다음 문장을 선물한다. “그런데 분노는 고칠 수 있다고 믿는 것에 대해서만 터지는 거예요.”(‘스텔라 마리스’, 코맥 매카시, 2023)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동반치악(東蟠雉岳) 서주섬강(西走蟾江).’ 동쪽으로 치악산(雉岳山)이 둘러 있고 서쪽으로 섬강이 내달린다. 조선 초기 인문지리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은 강원 원주를 이렇게 묘사했다. 치악산은 원래 적악산(赤岳山)이었다. 가을 단풍에 빨개진 산이 절경일 터다. 치악산의 치(雉)는 꿩이다. 뱀에게서 자신을 구해준 선비의 목숨을 살리려고 꿩이 치악산 상원사 범종(梵鐘)을 머리로 받아 세 번 울리고 죽었다고 한다. 그래서 치악산이 됐다는 설화다. 해발 1100m 상원사로 가려면 원주시 신림면 성남리 성남탐방지원센터에서 출발해 계곡을 오르면 된다. 그런데 또 다른 길이 있다. ● 원시림에서 나를 생각하다성남리 성황림(城隍林)이다. 마을과 땅을 지켜준다는 서낭신을 모시는 당집이 있는 숲이다. 이 숲길을 따라가도 상원사에 이를 수 있다. 다만 숲 전체가 천연기념물 제93호 보호림이어서 마음대로 드나들 수는 없다. 6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이 숲에서 화전(火田)을 일구며 사는 민가가 70채 남짓 있었다. 하지만 성황림을 관통하는 마을 진입로가 1984년 폐쇄됐고 1989년부터 일반인 출입을 통제했다. 1861년 고산자 김정호가 제작한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에도 나와 있는 성황림은 가을이나 겨울에 잎을 떨구고 봄에 새잎이 나는, 납작하고 넓은 잎의 낙엽활엽수 90여 종으로 이뤄져 있다. 넓이는 약 30만 ㎡(약 9만 평). 대충 둘러봐도 소나무 전나무 참나무 느릅나무 칭칭(층층)나무 피나무 물푸레나무 고로쇠나무 벚나무 밤나무 살구나무 상수리나무 팥배나무 느티나무 버드나무 포플러 아카시아 귀룽나무 쪽동백 들메나무 졸참나무 등이 사람 손길 타지 않고 자유분방하게 군집을 이룬다. 사람들을 밀어내는 것만은 아니다. 매년 당제(堂祭)를 치르는 4월 초파일과 9월 9일에는 곁을 내준다. 당집은 장대한 당목(堂木) 두 그루를 거느리고 있다. 왼쪽에는 음나무, 오른쪽에는 젓나무다. 높이는 20m가 넘고 성인 두어 명이 감싸안아야 할 만큼 아름드리나무다. 젓나무 앞에는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있는데 서낭신을 지켜주는 수비 역할이다. 옛날에는 그해 가족이 세상을 떠나거나 병에 시달리지 않는 등 ‘부정(不淨)하지 않은’ 가구를 도가(都家)로 삼아 그 집에서 금(禁)줄을 치고 제물을 장만했다. 당집에 묻어둔 단지에 옥수수로 술을 빚어 제주(祭酒)로 썼다. 마을 연장자가 바가지에 담은 숯 띄운 맑은 물을 당집 안 곳곳에 뿌리며 축원(祝願)한다.원시림에 가까운 숲속에서 제 마음대로 뻗은 줄기와 가지들 아래로 발걸음을 옮긴다. 30년 넘게 인적도 드물어 길인 듯 풀밭인 듯 희미한 자취를 따라 걷는다. 내가 숲에 녹아든다.● 기하학적 공간에서 나를 찾다 ‘여행이란 단지 신체적 이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자립한 자아의 발견 과정이었다.’일본을 대표하는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여행관(觀)이다. 그는 저서 ‘연전연패’(2004년)에서 ‘현실에 얽매여 살아가다 보면 좀처럼 얻을 수 없는 내성(內省)의 시간을 준다’고도 했다. 그가 스스로를 성찰해 자신을 찾아가는 시간을 원주에도 마련해뒀다. 지정면에 있는 미술관 ‘뮤지엄 산(Museum SAN)’이다. 해발 275m 산 정상에 있어 이름도 산이다.뮤지엄 산은 그의 다른 건축물과 마찬가지로 ‘자연과 응답한 끝에 관계를 맺고’ 있다. 자연 자체의 이데아가 있을까 싶지만, ‘철 유리 콘크리트라는 소재의 사용과 구성에서 기하학을 준수하는 특징’은 여전히 살아 있다. 선 면 도형의 기하학은 뮤지엄 산 명상관에서 극적으로 대면할 수 있다. 노출 콘크리트 건물 삼각형 입구로 들어간다. 정사각형 공간이 나온다. 천장 중앙을 가로세로로 오가는 긴 틈이 있다. 십자가다. 비가 오면 비가, 해가 뜨면 빛이 들어온다. 사람은 자연과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음을 느낀다. 대지 7만1172m²(약 2만1530평), 건평 5445m²(약 1648평) 규모지만 전체 구조가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공간으로 들어가면 다른 공간으로 나아가는 선과 면과 도형이 있다. 발견의 연속이다. 그렇게 안팎을 돌고 나면 카페 테라스가 있다. 이곳에서 바라다보는 전경(全景)은 그냥 산 정상에서 보는 것과 다르다. 공간(space)과 예술(art), 그리고 자연(nature)의 융합이다. 그래서 산(SAN)이다.● 섬강 변에서 나를 잊는다 서쪽으로 달려 경기 여주 여강이 되고 남한강으로 합쳐지는 섬강으로 간다. 실학자 이중환은 1751년 펴낸 인문지리서 택리지(擇里志)에서 원주가 ‘산골짜기 사이사이에 들판이 섞여 열려서 명량(明亮·환하게 밝다)하고 수려하며 몹시 험하거나 막히지 않았다’고 서술한다. 2018년 제1야전군사령부가 해체되면서 원주는 군사도시라는 오랜 칭호를 벗었다. 그렇다고 농촌이라니…. 이상하다 싶다가도 이중환의 말대로 산골인 듯한데 들어가면 널찍한 논밭이 펼쳐진다. 호저면 섬강 변이 그렇다. 강변 매화향 짙은 매향골에는 섬강 자작나무숲 둘레길이 있다. 덱(deck·갑판) 형태 길을 따라 언덕으로 10여 분 올라가면 자작나무숲이 나온다. 언덕과 강변을 잇는 산책로는 총연장 4km다. 덱 길 중간쯤에 쉼터 같은 공간이 있는데 여남은 명이 앉을 수 있을 만큼 넓다. 아침에 매트를 깔고 명상에 잠긴다. 번잡한 곳에서 진정한 나를 찾기 어려웠다면, 이곳은 나를 내려놓고 잊기에 적합하다. 바로 길 건너가 칠봉체육공원이다. 잔디 축구장 3개 면이 이어져 있다. 보더콜리나 시베리안허스키같이 왕성한 운동력을 자랑하는 반려견 목줄을 풀어 뛰어놀게 하면 참 좋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다만 마을에서는 관리 문제로 꺼리는 눈치라 아쉽다. 동학운동이 탄압을 받던 때 동학 교도들이 피신처로 많이 찾은 곳이 원주다. 동학 2대 교주 해월(海月) 최시형도 이곳으로 도망왔다. 당시 동학도들이 밖으로 안부를 전할 때 ‘모월산(母月山)에 기거하고 있다’는 말을 암호처럼 썼다고 한다. 원주가 엄마처럼 편하고 따뜻하게 돌봐주고 있다는 뜻이었을 게다. 모월을 브랜드 이름으로, 원주에서 나는 토토미(土土米·삼광 품종)로 술을 빚는 협동조합 모월양조장이 판부면에 있다. 2020년 우리술 품평회 대통령상에 빛난다. 나를 생각하고, 찾고, 잊어버리게 하는 원주를 한꺼번에 즐길 수는 없을까. 이런 고민 끝에 나온 것이 농촌 크리에이투어다. 크리에이티브(Creative·창조적인)와 투어(Tour·관광)의 합성어로 2017년 시작된 농촌관광 활성화 사업의 새 형태다.원주시 농촌체험휴양마을협의회는 사색(思索)이라는 주제 아래 성황림, 뮤지엄 산, 섬강매향골 자작나무 둘레길, 모월양조장, 삼송마을, 소금산 출렁다리, 승안동마을, 치악산 황장목숲길을 비롯해 7개 마을 곳곳을 이리저리 묶어 당일치기 또는 1박 2일 여정의 프로그램으로 제안하고 있다. 성황림 당제 날짜는 지났지만, 프로그램에 신청하면 숲속 당집 앞에서 열리는 작은 연주회에도 참여할 수 있다.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농촌 크리에이투어는 원주 말고도 전국 19개 지역에서 진행되고 있다. 더 자세한 정보는 웰촌에서 확인할 수 있다.원주=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찬란했던 백제 후기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2024 세계유산축전이 27일부터 다음 달 17일까지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충남 공주와 부여, 전북 익산 백제역사유적지구에서 열린다. 세계유산축전은 국내 유네스코 세계유산의 가치와 의미를 되새기는 행사로 올해 5회째다.백제역사유적지구는 2015년 국내 12번째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웅진(현 공주)이 도읍이던 때(475∼538년) 유적인 공주 공산성, 무령왕릉과 왕릉원, 사비(현 부여)로 도읍을 옮기고 최후를 맞을 때까지(538∼660년) 유적인 부여 관북리 유적과 부소산성, 정림사지, 왕릉원, 나성 그리고 익산 왕궁리 유적과 미륵사지로 구성돼 있다. 국가유산청과 백제세계유산센터가 주관하는 ‘2024 세계유산축전―백제역사유적지구’ 행사 주제는 ‘백제 세계유산의 가치를 탐(探)하다’이다. 세계유산 지정 9주년을 맞아 ‘백제가 선사하는 9가지 선물’을 매개로 방문객이 백제 예술과 건축, 종교 등을 탐미하고 탐사하며 탐구할 수 있도록 했다. 27일부터 10월 3일까지 익산을 시작으로 같은 달 4일부터 10일까지는 공주, 11일부터 17일까지는 부여에서 각각 진행된다.27일 익산 첫날 왕궁리 유적에서는 ‘가치 탐미의 날’을 주제로 백제 30대 무왕의 이야기를 다룬 창작 공연 ‘백제의 생동을 탐미하다’가 펼쳐지며 4인 테너 그룹 ‘포르테나’가 축하 공연을 한다. 다음 달 4일 공주 첫날 공산성에서는 ‘유산 탐구의 날’을 주제로 성악가 김동규 씨와 오케스트라가 협연하는 ‘무령왕의 혼’이 무대에 오른다. 11일 부여 첫날 정림사지에서는 ‘문화 탐험의 날’을 주제로 뮤지컬 배우 남경주와 ‘드림 뮤지컬’ 팀이 창작 뮤지컬 ‘성왕의 꿈’을 공연한다. 9가지 선물 프로그램으로는 여행 상품 ‘축전 시간여행’, 축전 기념품 9가지 중 하나가 든 상자를 받을 수 있는 ‘탐9 랜덤박스’, 백제인으로서 자신의 성격유형지표(MBTI)를 확인하는 ‘백제인 MBTI’, 나와 어울리는 색을 찾고 기념품도 받는 ‘백제인 퍼스널 컬러’, 특산물을 활용한 디저트를 맛보는 ‘백제 디저트’, 지역 예술인들과 함께하는 공연 ‘백제 예찬’, 백제 역사 관련 임무를 해결해 보는 ‘백제 디딤 놀이터’, 지인에게 엽서를 쓰는 체험 프로그램 ‘백제에서 보내는 행복엽서’ 등이 있다. 특히 올해 새롭게 선보인 보드게임 ‘백제마블’은 백제 세계유산이 왜 중요하고 귀중한지를 알 수 있도록 했다. 예선을 거친 100여 명이 9월 28일 익산, 10월 5일 공주, 12일 부여에서 각각 본선을 치른다. 현장에서 ‘백제 세계유산 탐험대’ 보드게임을 통해 참여할 수도 있다.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당신은 6세기 중엽 금관가야에 있다. 고구려 사신일 수도 있고 중국 양(梁)나라 인사일 수도 있고 수로왕 아내 허황옥의 나라 인도에서 온 사절(使節)일 수도 있다. 복장도 그럴듯하게 갖췄다. 이제 ‘시간의 문’을 지나면 약 1500년 뒤 경남 김해로 시간여행을 온다. 당신이 있던 금관가야가 어떻게 변했는지 그 시절 유적을 살펴보며 가늠해 볼 수 있다.패총(貝冢·조개더미)을 비롯해 1~4세기 이 지역 생활상을 짐작하게 해주는 유물이 있는 봉황동 유적에서 출발한다. 과거 김해만(灣) 일대였지만 이제는 하천으로 바뀐 해반천을 따라 대성동 고분군으로 향한다.금관가야의 마지막 왕으로 알려진 구형왕의 부인이 저 언덕마루에서 어서 오라고 손짓한다. 길이 약 280m, 높이 20여 m, 폭 50m의 구릉 지대다. 완만한 경사에 지금까지 10차례 발굴을 통해 150호 가까이 옛 무덤을 찾은 곳이다. 이곳에서는 붉은 보자기에 싼 금빛 상자 3개가 있다. 그 안에 든 세 가지 ‘보물’은 무엇일까.보물을 확인했으면 우륵의 고장 가야의 마지막 왕비가 차리는 연회에 참가해 최선희가야무용단과 김해시립가야금연주단의 우아한 춤과 연주를 즐길 일이다. 대접을 잘 받았다면 인근 수로왕릉에서 가야의 마지막 날 이야기를 들으며 시간여행 일정을 모두 마치게 된다.짧은 연극 내용이 아니다. 국가유산청(청장 최응천) 주최, 국가유산진흥원(원장 최영창) 주관 세계유산축전 개막을 축하하는 시민 참여 행사 ‘가야 사절단 납시오!’ 얘기다.이 행사는 올해 5회째를 맞는 세계유산축전을 알리고 가야고분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1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기획됐다. 21일부터 24일까지 시민 20명을 대상으로 매일 오후 2시부터 90분간 김해 대성동 고분군 일대에서 열린다. 행사 내용이 알차고 공연 수준도 높다.이 같은 양질의 프로그램이 일부 시민을 대상으로 나흘 밖에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국가유산진흥원과 해당 지자체가 머리를 맞대 아이디어를 찾는다면 국내외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하는 연중 행사로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국가유산진흥원 관계자는 20일 “축전 유치 지자체 선정 과정 및 예산 제약 등으로 행사 일정과 대상에 제한이 있다”면서도 “참여 대상 폭과 기간을 늘리는 방법을 전향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참가비 2만 원과 김해를 오가는 교통비만 부담하면 실망하지 않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참가 신청은 인터파크 티켓에서 하면 된다. 선착순이며 22일 행사는 21일 오후 5시 현재 매진됐다.세계유산축전은 한국에 있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의 가치와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열린다. 해당 세계유산이 있는 지방자치단체가 정부 지원을 일부 받아 공연, 체험, 전시 같은 프로그램을 마련해 손님 맞을 준비를 마쳤다. 올해 세계유산축전은 23일 경북 고령 지산동 고분군(10월 6일까지)을 시작으로 27일부터 10월 17일까지 충남 공주 부여 익산 백제역사유적지구, 10월 한 달 전남 순천 선암사와 순천갯벌, 같은 달 11일부터 22일까지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에서 각각 열린다.지산동 고분군 축전은 ‘잊혀진 가야 문명, 가야 고분군으로 기억되다’를 주제로 야외 추리 게임, 밤의 경관 빛의 향연 등을 선보인다. 백제역사유적지구 주제는 ‘백제 세계유산의 가치를 탐(探)하다’이다. 순천 선암사에서는 사찰음식을 맛보고 참선의 세계로 빠지는 산사 캠핑이 펼쳐진다. 갯벌에서는 ‘생태 투어’가 마련된다.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에서는 걷기 여행과 동굴 탐험이 시선을 끈다. 한라산과 성산 일출봉에서 열리는 ‘별빛 산행 야간 투어’ 역시 역사를 엿보고 싶은 사람들을 끌어모은다.김해=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그래 이거야! 풀리지 않는 과제, 극복하기 어려운 고난, 끝이 보이지 않는 역경을 맞닥뜨렸을 때 갑자기 솟아나는 상쾌한 아이디어. 답답한 마음을 달래줄 한 모금 청량음료 같은 ‘유레카 모멘트’를 소개합니다.큰 것 하나가 필요한 때였다. 2005년 에버랜드에는 1997년 11월 국제통화기구(IMF) 외환위기 이후 사실상 새로운 것이 없었다. 1996년 개장한 워터파크 ‘캐리비안베이’와 1998년 초 도입한 어트랙션(놀이기구) ‘콜럼버스 대탐험’이 마지막이었다.마스터플랜은 대강 이랬다. ‘손님 대기시간을 최소화할 만큼 수용 능력이 있는 대규모 롤러코스터를 들여오자.’ 마케팅 부서에서는 한국에 없는 최첨단 롤러코스터를 선호했다. 고객이 “와!” 할 수 있는 것을 보여 주자는 욕구가 강했다.기획팀 김환태 과장(당시 33세·현 제주신화월드 상무) 생각은 달랐다. ‘자연과 잘 어울릴 수 있으면서 규모는 웅장하고, 오래 타면서도 잔잔한 재미를 주는데 타고 난 뒤에도 굉장히 즐거울 수 있는 것, 뭐 없을까?’● 놀이기구의 재미란?기획팀은 대규모 고객 조사를 했다. 질문의 핵심은 ‘놀이기구의 재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였다. 가장 많은 답변은 ‘스릴’이었다. 이대로라면 간담이 서늘하고 마음 졸이게 하는 느낌, 즉 스릴 넘치는 4세대 롤러코스터가 제격이었다. 김 과장은 고개를 갸웃했다. 스릴과 재미는 정비례할까?설문 응답지를 한 장, 한 장 처음부터 읽었다. 눈에 확 띄는 대목이 있었다.“‘스릴이 재미다’라고 답한 분들 가운데 ‘내가 탈 수 있는 놀이기구는 회전목마까지’라는 분들이 있는 겁니다.” 유레카!‘스릴은 재미다’를 ‘스릴이 클수록 재미있다’가 아니라 ‘고객이 감당할 만한 수준의 스릴을 제공하면 그게 재미’라고 해석할 수 있겠다. 감당 가능한 스릴 강도가 5인 사람에게 10짜리 놀이기구는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 ‘스릴 만점’이 꼭 100% 재미와 흥행을 보장하지는 않겠구나. 최대한 버틸 수 있는 스릴을 제공하면서 다른 재미들을 부여하면 좀 더 많은 사람이 좀 더 많은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전체 구조가 나무로 된 우든(wooden) 롤러코스터가 떠올랐다. 다른 테마파크에서 따라 할 수 없는 한국 최초 우든 롤러코스터. 남은 것은 마케팅 쪽 설득이었다.● 구닥다리? 뭉근한 만족감! 김 과장은 롤러코스터를 대략 1세대에서 4세대까지로 구분한다. 1세대는 전기나 기계 힘으로 차량을 위로 끌어올려 떨어뜨린다. 위치에너지를 운동에너지로 바꿔 오르락내리락을 반복한다. 2세대는 부재(部材)가 나무에서 쇠로 바뀌고 운동 방식이 상하(上下) 운동에서 360도 회전이나 스크루 모양 회전같이 변화한다. 3세대는 탑승 좌석 혁신이다. 매달리거나 오토바이 타듯 앉거나 서서 간다. 4세대는 항공모함에서 항공기를 새총 쏘듯 날리는 캐터펄트 방식을 도입해 차량을 더 높이 급발진시킨다. 추진 방식 변화다.우든 롤러코스터는 1세대다. 당연히 “얼마 만의 대규모 투자인데 구닥다리를 들여오려 하냐. 게다가 위험하다” “타 봤는데 못이 튀어나올 정도로 덜컹거린다” 같은 반응이 나왔다.잘 절이고 가공한 나무를 고온 고압에서 7겹 압축한 라미네이트 우드로 트랙을 깔겠다고 설득했다. 동일 면적의 강도가 철과 비슷하다. 나무에 못질하지 않고 프리패브리케이티드(prefabricated) 우드를 쓰겠다고 했다. 사전 제작해서 레고 블록 결합하듯 볼트와 너트로 조여서 조립한다. 부드럽고 변형이 덜해 흔들림이나 충격이 작다.운행의 편안함과 안전성만으로는 부족했다.“스릴 효용체감의 법칙이라고 할까요. 최첨단 롤러코스터는 탈수록 만족감이 급감합니다. 스릴 강도 100짜리를 들여놔도 기술은 빠르게 발전해서 곧 120, 150짜리가 등장하겠지요. 그럼 굳이 100짜리를 타려고 에버랜드에 오려고 할까요? 반면 1세대 롤러코스터는 처음 탈 때 기대감이 그다지 크지 않은 데다 낙하에 대한 인간의 기초적인 공포를 자극합니다. 기본적인 것이 오래 갑니다.”우든 롤러코스터로는 국내 최초, 운행 길이 국내 최장, 최초 낙하 각도 최대, 속도 국내 최대 같은 ‘최고’를 강조했다. 치밀한 준비 끝에 2006년 8월 최종 승인이 났다. 설치 장소는 눈썰매장 자리였다. 에버랜드 내부 산악지형인 그곳에 거대한 목재 구조물이 올라가는 광경 자체가 큰 얘깃거리가 될 터였다.● 난관의 연속건축 엔지니어 박명구 과장(당시 37세·현재 프리랜서)은 우든 롤러코스터 설치 장소를 눈썰매장으로 승인받아온 기획팀장을 종종 원망했다. 눈썰매장 터가 좁아 수많은 부재를 부리는 공간을 작업장에서 수백 m 떨어진 주차장에 둬야 했다. 터 파기 중에 발견한 거대한 화강암은 손님들 때문에 폭파하지도 못하고 고스란히 파내야 했다. 외국 설계사는 “너희 땅에 설치하려고 하니 너무 어렵다”는 불평을 쏟아냈다.애초 우든 롤러코스터 시공 총책임을 맡을 일이 아니었다. 놀이기구가 도입되면 박 과장의 기술 부서는 탑승장이나 레스토랑, 상품점을 만들어 주는 역할이었다. 주관은 어트랙션 기술팀 몫이었다. 그런데 나무는 자신들 영역이 아니라고 손사래를 친 것이다.테마파크 같은 장치 산업은 약간 모험이 따른다고는 생각했지만 맡고 나니 도면 용어에서부터 모든 것이 처음이었다. 공사 기간 14개월은 생전 처음 맞는 난관들을 극복하는 시련의 연속이었다.눈썰매장 지형과 고도, 좌표를 세밀하게 측량한 지형도를 토대로 독일 스탱글이라는 전문 설계사가 설계했다. 이에 따른 기둥, 철물 같은 부재 설계는 스위스 엔지니어링사 인타민이 맡았다. 철제 부제는 슬로바키아, 목재는 스웨덴, 차량은 독일이 각각 담당했다. 목재는 독일에서 방부 처리하고 배로 중국을 거쳐 한국에 도착하는 데 40일 걸렸다.도면에 따라 기초를 세우고 나무 기둥을 올려 트러스 구조를 구축하는 일은 한국에서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도면과 안전계획서를 들고 사전 점검을 받으러 간 산업안전공단에서 “전례가 없어 어떻게 지도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할 정도였다.누구를 시켜 일해야 할까부터 문제였다. 목수를 구해 가르치면서 할 수밖에 없었다. 목수 2명과 함께 독일에 가서 기둥 세우는 방법을 배웠다. 될 것 같았다. 가장 높이 세워야 하는 기둥 높이는 33m로 목재 4개를 이어 붙여야 했다. 타워크레인을 2대 설치했다. 번호가 매겨진 기둥들을 도면에 따라 잇고 전봇대 작업하듯 올라가 볼트와 너트로 조립했다. 목수들은 고공 작업을 선호하지 않았다. 건설현장에서 ‘도비공(工)’이라 불리는 사람들을 써서 같이 일하게 했다.● ‘미친개’처음으로 도착한 목재들을 보고 박 과장은 까무러칠 뻔했다. 40일간 배에서 햇볕과 비바람에 시달리며 뒤틀린 것이다. 업체에 연락했더니 비웃듯이 “원래 그런 거야. 알아서 조립해”하며 외국인 경험자들을 소개해 줬다. 이들이 현장에 와서 한 말은 “준비가 하나도 안 됐네. 알맞는 공구가 없잖아”였다. 서울 을지로3가 수입 공구상에 주문해 공구를 10억 원어치 가까이 샀다. 뒤틀린 것을 뒤틀린 대로 조립하는 방법을 사진과 동영상으로 익혔다.2008년 3월 공식 개장 한 달 전 테스트 일정에 맞춰 역순으로 공사 순서를 정했다. 어느 날 세 번째 목재를 실은 배가 중국에서 나오다 접촉사고를 일으켜 발이 묶였다. 그 바람에 나중에 필요한 부재를 실은 배가 먼저 도착했다. 도면에 따라 기둥 번호에 맞게 조립해야 하는데 어긋나게 된 것이다.머리를 싸매다 업체에서 보낸 부재 자료를 엑셀프로그램에 전부 옮겨 놓고 살펴봤다. 유레카! 번호는 다르지만 길이와 굵기 등 값이 같은 부재가 뒤에 온 배에 실려 있었다. 미리 당겨 쓰면 되는 것이었다. 업체 측 실수였기 때문에 부재를 새로 만들어서 보내라고 했다. 나중에 뒤늦게 들어온 세 번째 배에 실린 목재는 잉여 자재로 울타리 제작 등에 톡톡히 쓰였다.계속되는 임기응변이었다. 몇 개를 이어서 세워 놓은 기둥이 부러지기도 했다. 맨 위 것이라면 빼내서 다시 주문해 갈아 끼울 수 있다. 하지만 밑에 있는 것을 빼낸다는 건 프로젝트 절반을 다시 해야 하는 일이나 마찬가지였다. 곰곰이 생각하다 사람 뼈가 부러졌을 때 부목을 대듯 다른 목재로 덧대고 조였다. 나중에 확인했더니 맞는 방법이라고 했다.개장하는 날짜가 정해졌으면 죽었다 깨어나도 맞춰야 했다. 추석이나 설에는 일할 수 없다는 작업자들에게 “여러분 자제나 손주들이 탈 것인데 자랑스럽지 않느냐”며 설득도 하고 노임도 더 주면서 공사를 강행했다. 박 과장은 공사 기간 중 1년에 단 7일을 쉬었다.2007년 12월경 트랙을 깔러 온 미국 작업팀이 크리스마스와 함께 신년 초까지 쉬겠다며 돌아갔다. 트랙을 깔아야 전체 구조를 눌러줘서 안정감이 생긴다. 박 과장은 “얘네 하는 거 봤잖아요. 우리가 깝시다”라며 작업자들을 독촉해 77도 경사로 떨어지는 최초 구간을 제외하고는 다 깔아 버렸다. 나중에 작업자들 사이에서 박 과장은 ‘미친개’로 불렸다.“그렇게 미친 듯이 안 했으면 프로젝트를 제시간에 완벽히 끝낼 수 없었을 겁니다. 저로서는 피할 수도 없는 일이어서 혼자 고민도, 공부도 많이 했습니다. 모든 책임은 저한테 있었으니까요. 혼자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더미, 날다2008년 1월, 첫 번째 시운전을 하는 밤이었다. 공사 기간 자문과 감리를 담당한 30년 경력 미국인 로든이 지휘했다. 차량 각 좌석은 물을 채운 사람 모양 비닐 백, 더미를 앉혔다. 첫 번째 낙하 구간에서 차량이 내려오는데 더미 하나가 달빛을 배경으로 ‘붕’ 날았다. 잘못 묶은 것이었다. 밑에서 지켜보던 사람들 가슴이 철렁했다.테스트하던 차량이 첫 번째 낙하를 한 뒤 다음 오르막을 올라가지 못하고 골짜기에 갇혀 버린 일도 있었다. 추워서 트랙이 충분히 열을 받지 않은 데다 열차 자체 무게도 부족한 것으로 파악됐다.테스트를 하는 동안 차량에 충격 센서를 달아 어느 정도 충격에 적응하도록 한다. 이후 ‘이 정도면 사람이 타도 되겠다’ 싶으면 사람이 탑승한다. 모든 좌석에서 더미를 빼는 것이 아니라 하나씩 순차적으로 뺀다. 그 뺀 자리부터 한 사람씩 앉게 되는 것이다. 제일 먼저 탄 사람은 프로젝트 매니저 김환태 과장이었다. 한국 최초 우든 롤러코스터 T익스프레스 최초 탑승 인간은 바로 그였다.“처음 타 본 소감은 ‘이건 무조건 된다’였습니다. 진짜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나무건 철이건 많이 탔지만 이렇게 재밌는 것은 없었다고 했지요. 그런데 매일 몇 번씩, 공식 개장 전까지 100번 넘게 타다 보니 나중에는 감흥이 무뎌졌는지 ‘정말 손님들이 좋아할까’ 걱정도 생기더군요.”그해 2월, 공식 오픈을 한 달 앞두고 ‘소프트 오픈’을 했다. 목재는 안정화가 필요하다. 볼트와 너트로 조립해 설치한 목재 구조물은 시험 운행하는 동안 진동에 의해 조금씩 변형이 생긴다. 그러면서 자기에 최적인 위치를 잡게 된다. 센서 같은 부착물도 마찬가지다. 소프트 오픈은 임직원이나 초청 인사, 혹은 주변 마을 주민들을 대상으로 하게 된다. 운영도 익숙해질 필요가 있어서다. 그러던 어느 날 중간에서 올라가는 도중에 차량이 멈춰 버렸다. 그날 TV 저녁 메인 뉴스에 ‘에버랜드 놀이기구 사고, 15분 동안 공중에서 매달려’라는 기사가 방송됐다.사실 인공지능(AI) 자율주행 자동차가 사고를 피하기 위해 브레이크를 스스로 밟는 것과 같은 상황이었다. 안전하기 때문에 멈춘 것이었다. 처음에는 악재였지만 나중에는 노이즈 마케팅 효과를 얻었다. 인명피해도 나지 않은 데다 일정 수의 국민이 에버랜드에 저런 웅장한 놀이기구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개장일, 김 과장의 걱정은 기우가 됐다. 안전과 안정화를 위해 36명이 탈 수 있는 차량 3대 가운데 한 달 간은 1대만 운행했다. 대기시간이 4시간을 넘었지만 타려는 사람은 끊이지 않았다. 약 3분의 운행을 마치고 차량이 승강장으로 들어서는 순간이었다. 플랫폼에 서서 기다리던 김 과장의 눈에 박수를 치고 있는 탑승객들이 보였다. 차량에서 내려 김 과장 곁을 지나치던 손님들이 말했다. “이거 한 번 더 타자.”● 또 다른 ‘우든 롤러코스터’를 꿈꾸다김 상무는 우스갯소리로 1860년대 흥선대원군의 경복궁 중건(重建)이래 국내에서 목재를 가장 많이 사용한 공사였을 것이라고 말한다. 사용된 목재 개수는 정확하지 않지만 볼트, 너트 같은 철물은 약 60만 개가 소요됐다. 기존 철제 롤로코스터가 기초를 약 100개 사용한다면 T익스프레스는 수백 개를 만들었다.마스터플랜에서 예산은 200억 원가량 책정돼 있었다. 완공해서 보니 약 330억 원이 들었다. 수백억 예산이 잡힌 큰 프로젝트를 30대 초중반 과장 2명에게 사실상 맡긴 회사도 대단하다.김 상무는 “기획하는 사람들이 말을 신뢰해줬다고 할까요? 의구심이 드는 사안에 대해 숫자와 자료로 잘 설명했고 설득했다. 당시 담당자의 의지를 잘 받아 주신 것 같다”고 말한다. 박 전 과장도 “지금 생각해 보면 말도 안 되는 겁니다. 젊음의 패기라고 할까, 무모함이라고 할까. 당시 임원들한테도 ‘여기 기준은 제가 만들어서 할 테니 ’터치‘하지 마세요’라고 했다”고 말했다.숙박 식사 쇼핑 공연 엔터테인먼트 테마파크 워터파크를 한곳에서 즐길 수 있는 국내 최초, 최대 복합리조트 제주신화월드를 비롯해 국내 테마파크에 T익스프레스 이후 우든 롤러코스터가 도입된 적은 없다. 이미 옛날 것이라는 생각과 ‘에버랜드에 있는데 굳이 또’라는 생각, 그리고 설치할 만한 유휴 부지가 없다는 것에서 이유를 찾아볼 수 있겠다.박 전 과장은 “우리나라에 우든 롤러코스터를 또 만든다고 하면 비용도 절감해서 더 잘 만들 자신이 있는데 기회가 아직 없다”고 아쉬워했다. 어쩌면 우든 롤러코스터는 완벽한 놀이기구에 대한 꿈이자 추억으로 오래 남을 것이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가을은 상반된 것을 한 몸에 품고 있다. 추수(秋收)와 낙엽이다. 결실과 소실(消失)이다. 채움과 비움이다. 풍족하면서도 허전하다. 그래서 여행을 떠나는지도 모른다. 넉넉한 마음으로 아쉬운 상실을 위로하는 길이다. ‘도자(陶磁) 여행’을 권해 본다. 도자는 본디 그릇[器]이다. 쓰임이다. 따라서 익숙하다. 동시에 조형(造形)이다. 예술이다. 그래서 낯설다. 빗살무늬토기에서 보듯 1만 년 가까운 영속성이 있다. 쥐고 있던 손 삐끗하면 산산조각 나는 취약성도 갖는다. 가을과 꽤 어울리지 않는가.● 이것도 도자다 ‘비가 개고 안개가 걷히면 먼 산마루 위 드러나는 담담하고 갓맑은 하늘빛… 때때로 목화 송이같이 따스하고 때로는 백옥같이 갓맑은 살결의 감촉’(최순우,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에서). 우리에게 도자기는 청자와 백자였다. 색과 곡선이었다. 우아함의 극치다. 하지만 그 미(美)를 온전히 느끼기는 쉽지 않다. 왠지 멀어 보이기도 한다. 도자는 물로 잡물을 거른 흙을 빚어 바람에 말리고 불에 구워내 만든다. 인간이 완벽히 통제할 수 없는 지수화풍(地水火風), 자연의 근본 성질이 변화무쌍한 형상을 창조해 낸다. 그림이나 조각과 달리 작가조차 가마에서 어떤 것이 나올지 모른다. 도자에 대한 지평을 조금만 더 넓혀 볼 필요가 있다. 2024 경기도자비엔날레가 좋은 기회다. 경기 이천 경기도자미술관으로 간다. 벽에 가죽점퍼가 걸려 있다. 고동색 여기저기 빛에 바래고 비에 젖은 듯 희끗희끗 황토색이 드러난다. 옷 주인은 거친 일을 하나 보다. 겨드랑이에 굵은 주름 서너 개가 졌고 소맷부리와 팔꿈치가 닳았다. 도예가가 잠시 벗어 놓았나 싶은데, 아니다. 이것은 도자다. 가죽의 질감에 주목했다. 흙으로 만든 일상이다.자리를 옮긴다. 탱크 부대다. 가로 24cm, 세로 85cm, 높이 25cm 전차 10대가 각각 대(臺) 위에서 포신을 겨눈다. 1989년 5월 중국 톈안먼 광장을 피로 물들인 전차들을 떠올린다. 살상 무기에 중국 전통 청화백자 문양을 그려 넣었다. 화려한 이질감이다. 이것도 도자다.근대로 접어들며 도자의 기능성에 이어 예술성이 유럽에서부터 주목을 받게 됐다. 도자도 예술의 흐름을 따라간다. 메시지를 발산한다. 로비에 말괄량이 삐삐와 꼬마 원숭이 닐슨 씨가 손잡고 서 있다. 점박이 백마 말 아저씨는 안 보인다…, 보인다. 삐삐가 오른손에 쥔 고삐 끝에 머리만 달려 바닥에 누워 있다. 자세히 보니 삐삐 얼굴에 주근깨가 없다. 그레타 툰베리와 겹쳐 보인다. 아하. 기후변화에 대한 강력한 저항이다. 환경 보호에 대한 엄중한 호소다. 이것 역시 도자다.● 당신도 ‘만든다’경기 여주 경기생활도자미술관으로 자리를 옮겨 본다. 조룡(鳥龍)이라. 인공지능(AI) 이미지 생성 프로그램으로 설계한 가상의 고대 생물 화석이다. 작가가 AI에 자신이 생각하는 조룡 모양을 지시한다. 100여 차례, 명령어는 점점 더 세밀해지고 AI가 토해내는 그림은 점점 변한다. 최종 이미지가 나왔다. 발굴된 공룡 뼈처럼 점토로 구워 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관람객은 준비된 두루마리 휴지를 찢거나 꼬아서 조룡을 치장할 수 있다. 매일매일 다른 조룡이 복원된다.큰 모래시계다. 다만 채워진 것은 모래가 아니라 구슬이다. 점토로 서로 다르게 빚어낸 200여 개 구슬. 중간에 달린 손잡이를 돌리면 아래위가 바뀌며 구슬이 밑으로 떨어진다. 파열음을 내며 깨진다. 작품 제목은 ‘걱정시계’. 도자 구슬은 ‘걱정구슬’이다. 시간이 지나면 걱정도 깨진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깨진 구슬은 새 걸로 교체한다. 똑같은 걱정시계는 어디에도 없다. 그루터기가 있다. 버섯이, 이끼가, 아주 작은 동물들이 덮고 있다. 속이 빈 그루터기는 물이 차 있다. 그 속에 사는 미생물, 유기물이 그루터기를 서서히 분해한다. 10월 20일 비엔날레가 끝나는 날까지 천천히. 시간마다, 분마다, 어쩌면 초마다 관람객은 다른 작품을 본다. 모든 것은 변화한다. 작품이 소비되는 방식이 사람마다 다른 작품은 또 있다. 2층으로 오르는 층계참에서 3층까지 높게 뚫린 공간에 걸린 종이같이 얇은 점토판 15장. 3장씩 세로로 붙여 줄에 매단 5개 이미지가 흔들린다. 점토 모빌이다. 고정돼 있지 않다. 미세하게 언제나 움직인다. 관람객이 포착하는 이미지는 찰나의 것에 불과하다. 기능과 예술의 영역이 그 길을 달리하는 것만은 아니다. 그릇이라는 근원적 형식에 모두 담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 주둥이가 둥글고 목이 긴 술병 같다. 표면은 경쾌한 원색들의 기하학적 도형으로 덮여 있다. 프리 재즈 스타일이다. 실용적 그릇의 조형적 변용이다. 많은 의미와 창의적인 모양에 흠뻑 젖었다면 소박하고 담담한 도자기의 아취(雅趣)를 즐겨 볼 일이다. 경기 광주 경기도자박물관에서는 아름다운 우리 도자기 공모전 수상작이 전시된다. 비엔날레에 참여한 국내외 작가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듣고 손에 직접 점토를 쥐어 볼 수도 있다. 경기도자미술관과 경기공예창작지원센터 등에서 열리는 워크숍과 아티스트 토크 & 퍼포먼스가 그것이다.● 가을 여행까지… 이천, 여주, 광주는 경계를 나누는 것이 무의미하다. 사실상 하나의 생활권을 이룬다. 도자 여행을 얼추 마무리했다면 곁의 풍광으로 몸과 마음을 움직여 보자. 경내에 보물만 8점이 있는 여주 신륵사(神勒寺)는 입지가 독특하다. 봉미산 기슭에 있으면서도 남한강 여주 구간을 일컫는 여강을 끼고 있어 경치가 빼어나다. 고려 시대부터 ‘벽절’이라 불렸는데 돌이 아니라 벽돌로 쌓은 다층전탑(多層塼塔)이 있어서 그렇단다. 보물 226호로 한국에 남아 있는 유일한 고려 전탑이다. 여강을 내려다보는 언덕에 있는 정자 강월헌(江月軒)은 고려 말 왕사(王師)를 지낸 나옹 선사의 당호를 땄다. 나옹 선사는 신륵사에서 입적했다.신륵사에서 차를 타고 여강을 따라 남동쪽으로 20여 분 가면 파사성이 나온다. 삼국시대 6세기 중엽에 지어진 것으로 추측하는 산성이다. 임진왜란 중이던 1595년 중수(重修)했는데 서애 유성룡의 문집 ‘서애집(西厓集)’에도 관련 기록이 나온다고 한다. 둘레는 약 940m. 산을 즐겨 찾지 않는 일반인이 파사산 정상부까지 걸어 오르기는 만만치 않다. 그러나 정상에서 조망하는 남한강과 일대 풍경은 오를 때까지의 수고를 덜어내기에 충분하다. 전망이 탁 트이고 주변에 특별한 산지가 없어 왜 이곳에 산성을 쌓았는지도 짐작하게 한다. 도자 마을 이천은 쌀밥집이 많다. 처음 가 보는 사람은 ‘왜 이렇게 쌈밥집이 많지’ 하고 잘못 생각할 수 있겠다. 이천 여주 모두 예부터 쌀로 유명한 지역이었다.이천·여주=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경기도자비엔날레 제공}

‘남창(南窓)으로 향한 서탁(書卓)이 차고 투명하고 푸릅니다. 새삼스럽게 눈앞의 가을에 눈을 옮깁니다.’ 창밖으로 여러분이 보입니다. ‘푸른 집’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메밀꽃 피었다 푸른 집은 제 이름을 딴 강원 평창군 봉평면 ‘효석달빛언덕’에 있습니다. 정확히는 평양 푸른 집입니다. 1936년 평양숭실전문학교 교편을 잡으며 살게 된 집을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을 맞아 복원했답니다. 91㎡(약 30평) 규모의 짜임새 있는 일본 가옥 형태입니다. 집이 푸른 이유는 외벽을 가득 메운 담쟁이 덕분입니다. 이곳에서 ‘메밀꽃 필 무렵’ ‘낙엽을 태우면서’를 비롯해 가장 많은 작품을 썼지요. 가을 아침이면 앞뜰에서 낙엽을 모아 태웠습니다. ‘잘 익은 개암 냄새’가 납니다. 개암나무와 유사한 유럽개암나무 열매가 헤이즐넛입니다. ‘향기로운 냄새를 맡고 있노라면 맹렬한 생활의 의욕을 느끼곤’ 했죠. 들어와 보십시오. 침실, 거실, 서재, 부엌까지 제 생애 마지막 6년의 추억이 떠오릅니다. 서랍에는 버터와 커피 내리는 기구가 있고 축음기에서는 쇼팽이 흘러나옵니다. 무릎에 앉힌 큰아이 손을 잡고 풍금을 쳐봅니다. 거실 벽에는 프랑스 배우 다니엘 다리외 사진을 걸었습니다. 미국 배우 비비언 리 아니냐고 하시는 분도 있더군요. 1930년 경성제대 법문학부 문학과를 졸업하자마자 동료 4명과 ‘조선 시나리오 라이터 협회’를 결성할 정도로 영화를 사랑했습니다. 이듬해 동아일보에 시나리오 ‘출범시대(出帆時代)’를 연재했죠. 식탁 꽃병에는 꽃이 꽂혀 있어야 합니다. 꽃을 사서 다방에 있는 여류 시인들에게 건네곤 했습니다. 쑥스러워서 화원 주인에게 “꽃을 신문지로 말아 달라”고 했는데 행인들은 꽃인 줄 다 알더군요. 1942년 5월 죽음의 문턱에 있을 때 병실을 찾은 문우(文友) 유진오에 따르면 ‘핏빛 카네이션과 흰 글라디올러스가 고혹적으로 어우러진 병상’이었답니다. 좁은 복도를 지나 하얀 문을 열면 모던한 전시실입니다. 사랑하는 이에게 고백하면 바깥 커다란 ‘달’(그렇습니다. 달이 빠지면 안 됩니다)에 그 마음이 글자로 나타납니다. 자갈로 채운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근대문학체험관과 복원한 생가가 나옵니다. 저 너머를 보세요. 거대한 금빛 나귀가 보입니다. 맞아요. 허 생원과 이십 년 세월 ‘같은 주막에서 잠자고, 같은 달빛에 젖으면서 함께 늙게’ 된 그 나귀입니다. 다르다면 그 배 속에 들어가서 전망과 책을 함께 볼 수 있다는 겁니다. 나귀 앞 바람개비 동산에 서서 푸른 집 뒤 언덕을 봐주세요. 제 유택(幽宅)입니다. 경기 파주에서 옮겨 왔습니다. 커피 한잔 들고 올라오시죠. 커피는 겨울에 실내 ‘불멍’이 가능한 북카페에 있습니다. 천천히 5분 걸으면 이효석문학관에 닿습니다. 제 육필 원고와 각종 이력 자료, 동시대 문인들 책과 연구서 등이 전시돼 있습니다. 메밀꽃 필 무렵 전문을 벽에 새겨놓기도 했네요. 카페 ‘동(Don)’도 있습니다. 소설 속 ‘동이’는 아닙니다. 1931년 서울을 떠나 함경북도 경성농업학교에 근무할 때 인근 마을 나남(羅南)에 있던 커피집입니다. 그 집 커피 맛에 홀려 일요일마다 10리 길을 걸었습니다. 동 옆 잔디밭에 책상에 앉아 글 쓰는 제 모습을 형상화한 동상이 있습니다. 포토존입니다. 문학관 올라오는 길가에 메밀꽃이 하얗게 피었을 겁니다. 이곳을 비롯해 봉평 일원에서 15일까지 ‘문학과 미식’을 주제로 평창효석문화제가 열립니다. 드넓은 메밀밭 봉평메밀꽃축제도 함께합니다. 달이 슬슬 차오르기 시작합니다.(도움말: 평창군 최일선 해설사)● 단종 ‘애사(愛史)’ 잘 오셨네, 청령포(淸泠浦)에. 300척 남짓(약 100m) 짧은 뱃길, 567년 전 여름 남여(藍輿)에 지친 몸을 실은 과인(寡人)은 거룻배로 건넜다네. 삼면을 서강이 휘몰아 돌고, 뒤는 깎아지른 절벽이니 고립된 땅일세. 춘원(春園)은 ‘단종애사(端宗哀史)’에서 6월 28일 한양을 떠난 영월 유배 행렬이 ‘7월 초승달 빛 두견성(杜鵑聲) 슬피 들릴 때’ 이르렀다 했네. 예까지 한 달 길이었다는 얘기도 있네. 그대도 아마 몇 시간은 족히 걸렸을 걸세. 야트막한 자갈길을 오르면 이내 송림. 그 안에 어소(御所)가 있네. 정면 4칸 기와집으로 2000년에 문화재청에서 복원했지. 논쟁이 있었네. 노산군(魯山君)으로 격이 낮아진 상왕(上王)에게 기와집 지어줄 여유가 없었다는 주장과 땅을 파보니 기와 조각 등이 나왔다는 의견이 맞섰지. 단종애사 등은 ‘나뭇조각 지붕에 판자를 잇댄 집’이었다고 하니 너와집이었을 수도 있겠네. 그전까지는 어소가 있었음을 알리는 비석 ‘端廟在本府時遺址碑(단묘재본부시유지비·1763년 · 영조 39년)’와 정조 때 지은 비각(碑閣)만 있었네. 수령(樹齡) 250년은 돼 보이는 소나무가 어소 쪽으로 깊게 허리를 숙이고 서 있네. 충절을 다하는 신하 같다고 하는군. 어소 뒤로 오륙십 보 걸으면 관음송(觀音松)이 있네. 600년 정도 됐을까. 높이 30m, 가슴 높이 둘레는 5m가 넘네. 내 비참한 모습과 한스러운 신음을 지켜보았다고 붙인 이름이라네. 1.6m 높이에서 줄기가 갈라진 아랫동에 과인이 종종 걸터앉았다고 하네. 관음송을 바라보며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세 번 돌면 기운을 받을 수 있다고도 하지. 믿는 것은 그대 자유일세. 본디 지명은 청랭포(淸冷浦)였네. 1726년 영월부사(府使) 윤양래가 랭(冷)의 부수 ‘두 이(冫)’보다 조화로운 숫자 3(氵·삼 수)이 들어간 ‘령(泠)’이 낫다고 본 것이라지. 여기서 승용차로 4분 정도면 내가 묻힌 영월 장릉(莊陵)에 이르네. 그해 큰비로 어소가 잠기자 관아 관풍헌(觀風軒)으로 거처를 옮겼고 10월 사사(賜死)됐지. 동강에 던져져 아무도 수습할 엄두를 못 내던 시신을 호장(戶長) 엄흥도가 야음에 건져내 암매장했다고 전하네. 1516년 중종 11년에야 이리로 옮겨 묘를 꾸몄고. 장릉으로 불린 건 복위된 1698년 숙종 때일세. 조선 왕릉 44기 가운데 장릉은 다른 능과 사뭇 다르다네. 조성 기준인 도성 10리(약 4km) 밖, 100리(약 40km) 안에 있지 않지. 봉분도 왕릉 중 가장 높은 해발 270m에 있네. 왕릉 입구 홍살문에서 제향(祭享) 올리는 정자각(丁字閣) 그리고 봉분까지 대개 직선상에 있지만, 오른쪽으로 90도 굽었다네. 봉분 주변 병풍석, 난간석도 없으며 돌로 된 호랑이, 양, 말도 4필씩이 아니라 2필씩만 있네. 문관석(文官石)은 있지만 무관석(武官石)은 없어. 무고한 피를 흘린 신하 268위의 절의(節義)를 기리는 배식단(配食壇)이 있네. 내 무덤이 영월 사람에게는 수호신 역할을 한다지.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서나 집에 우환이 있을 때들 와서 사배(四拜)하네. 부임하고도 찾아보지 않은 기관장이 횡액을 만났다는 풍문도 들리네. 정월 초하루에는 참배객으로 인산인해. 6·25전쟁 당시 국군과 인민군이 “장릉 쪽으로 총을 쏘지 않는다”고 합의했다는데, 잘 찾아보면 탄흔이 있다네. 과인을 찾아오는 길은 다크투어(아픈 역사를 기억하는 여행)일지 모르겠네. 재위 기간은 짧았지만, 그네들 아끼는 마음 변치 않음세. 그것만 알아준다면 족하네.(도움말: 김원식 이갑순 문화해설사)● 평창 육백마지기와 영월 요선암 돌개구멍 이효석의 감성과 단종의 애잔함에 푹 젖은 몸을 자연에 의탁해 본다. 평창 청옥산 육백마지기는 1200m대 고원이다. 넓이가 600마지기(약 40만 ㎡)는 아니고 대략 축구장 6면(약 4만3000㎡) 정도다. 6, 7월 하얀 샤스타데이지가 만개했을 때 멋있지만 가을 단풍을 내려다보는 맛도 그 못지않을 터다. 기자가 지난달 22일 올랐을 때는 거센 바람과 비구름에 휩싸였다. 높이 100m, 날개 길이 50m의 풍력발전기가 구름 속에서 빠르게 도는 모습은 장엄했다. 영월 무릉도원면 주천강 요선암(邀仙巖) 돌개구멍은 시간과 자연의 힘을 느끼게 해준다. 중생대 쥐라기 화강암들이 1억 년 넘게 자갈과 모래가 섞인 물살의 소용돌이에 둥글게 움푹 파인 것이다. 쉼표(,) 느낌표(!) 등 팬 모양도 다양하다. 요선암 절벽 위 요선정(邀僊亭)에서 바라보는 주천강 본류 전경은 시원할 따름이다.평창·영월=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2024 제12회 경기도자비엔날레(GCB)가 6일부터 10월 20일까지 이천, 여주, 광주를 중심으로 경기도 일원에서 열린다. 7년 만에 전시와 학술대회, 워크숍으로 온전히 진행되는 GCB는 국내 유일의 격년제 국제 도자예술 행사다. 비엔날레 전체 주제는 ‘투게더: 몽테뉴의 고양이’다. 갈등 속에 고립되고 불안해지는 현대사회 인간이 어떻게 힘을 합쳐 공존할 수 있는가. 나아가 인간이 아닌 생명체와 어떻게 공생할 수 있는가. 이 화두를 실현할 매체이자 계기를 도자에서 찾는다. 세계 곳곳에서 삶과 예술의 네트워크를 만든 도자를 통해 잃어버린 협력 기술을 되짚어 보자는 의미다. 이천 경기도자미술관에서 열리는 주제전(展)은 16세기 프랑스 철학자 몽테뉴가 수상록에서 제시한 물음, “내가 고양이와 놀아주고 있을 때, 실제로는 고양이가 나와 놀아주고 있는 것은 아닌가?”를 바탕으로 한다. 인간인 나와 동물인 고양이가 동등한 ‘주체’라는 것이다. 이 주제를 확장해 사람 대 사람, 사람 대 환경, 사람 대 우주의 관계를 표현한 14개국 작가 26명의 작품 75점을 선보인다. 여주 경기생활도자미술관에서는 제12회 국제공모전 수상작이 전시된다. 73개국 작가 1097명이 출품한 1505개 도예품 중 대상을 비롯한 57점이 관객을 만난다. 대상은 미국 작가 맷 웨델의 ‘결실(結實) 풍경(Fruit Landscape)’이 차지했다. 웨델은 세계적인 영국 작가 데이비드 호크니가 좋아하는 도예가로 알려져 있다. 광주 경기도자박물관에서는 ‘제6회 아름다운 우리 도자기 공모전’이 개최된다. 우리 도자의 전통과 아름다움을 현대적 조형성으로 계승한 작품 36점이 관객을 맞는다. 새로운 협력과 모색을 주제로 한 국제도자학술회의·경기도자박물관 학술 심포지엄 ‘모두의 박물관’과 조선왕실백자 세미나 등 학술 행사와 국내외 도예가들이 시민과 함께하는 워크숍도 열린다. 또 경기 31개 시군 102곳에서는 ‘투게더…흙, 불, 그리고 상상력’을 주제로 도자 및 공예 관련 콘텐츠를 소개하는 ‘찾아가는 비엔날레·느슨한 연대’ 행사가 펼쳐진다. 최문환 한국도자재단 대표이사는 “비엔날레를 통해 서로 다른 생각과 문화 속에서 함께 사는 지혜를 찾길 바란다”고 말했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그래 이거야! 풀리지 않는 과제, 극복하기 어려운 고난, 끝이 보이지 않는 역경을 맞닥뜨렸을 때 갑자기 솟아나는 상쾌한 아이디어. 답답한 마음을 달래줄 한 모금 청량음료 같은 ‘유레카 모멘트’를 소개합니다.“(운전) 초보자도 알 수 있게 대책을 가져오라고!”2011년 3월 어느 날 한국도로공사 수도권본부(현 서울경기본부) 군포지사 상황실. 군포지사 관할 서해안고속도로 안산분기점에서 화물차 운전자가 숨지는 교통사고가 났다. 짧은 구간, 4차로에서 왼쪽 강릉 방향 길을 타려던 화물차와 1차로에서 목포 방향 오른쪽 길로 빠지려던 승용차가 나란히 달리게 됐다. ‘실랑이’ 끝에 승용차가 겨우 추월해 빠져나간 순간 화물차는 콘크리트 벽체에 부딪혔다. 도로 방향 표시가 더 명확했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는 사고였다.폐쇄회로(CC)TV 녹화 영상으로 이 장면을 지켜본 지사장이 도로 담당 윤석덕 과장(현 차장·54)에게 예방책을 주문한 것이다. 건국대 토목공학과를 졸업한 입사 15년차 윤 과장은 내심 황당했다. 물론 숨진 운전자에게 미안한 마음이 제일 컸다. 그렇다고 대뜸 삼척동자도 알만한 방안을 내놓으라는 식의 두루뭉술한 지시라니…. ‘어디 한번 해보자’ 하는 오기와 약간의 반발심으로 “알겠습니다” 하고 큰소리를 쳤다. 그러나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무거웠다.● 화두윤 과장의 터덜터덜한 퇴근길은 2년 가까이 품고 있던 화두(話頭) 때문이기도 했다. 2009년 인천지사에 근무할 때였다. 경기 화성시 동탄에 있는 한국도로공사 인재개발원에서 교육을 받고 인천 계양구에 있는 지사로 복귀하는 길이었다. 운전하던 차가 군포시 둔대분기점을 막 지났다. 잠시 딴생각을 했나 싶었는데 차는 인천 방향이 아니라 목포 방향으로 들어서 버렸다. 화들짝 놀랐다. 베테랑 운전자라고 자부했는데 길을 놓친 것이다. 전방 주시 의무에 태만했나 자책하면서도 도로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자리 잡았다. 머릿속에 넣어 두고 고심하면 언젠가 해결책이 생길 것이라고 믿었다.이듬해 군포지사로 발령이 난 뒤에도 뚜렷한 방안은 떠오르지 않았다.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가 곧 흐지부지해졌다. 대략 이런 것들이다. 분기점 앞에 표지판을 세워서 알린다. 발광다이오드(LED)로 번쩍번쩍하게 만든 큰 화살표로 왼쪽 또는 오른쪽 길을 택하게 한다. 경찰차 지붕에 달린 경광등처럼 깜빡깜빡하는 조명으로 경각심을 준다. 차선에 돌출하는 시설물을 붙여 차가 밟으면 운전자가 주의를 환기할 수 있도록 만든다.“도로에 표지판 같은 것이 높은 데 여러 개 있으면 사람들이 잘 볼 것 같습니다. 그런데 너무 많은 정보 때문에 오히려 운전자가 피곤해서 잘 보지 않는다고 합니다. 높이 있고, 여러 개 있으면 더 안 본다는 얘기입니다.”● 굴레거실에서 초등학교 1학년 딸내미와 유치원생 아들은 바빠 보였다. 평소와는 달리 고개만 들어 “아빠 왔어요?” 하고는 다시 하던 일에 집중했다. 물감과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다. 8세 딸아이는 컬러링북 같은 데에 밑그림 된 인형들 옷을 색색으로 칠하고 있었다. 네 살배기 아들은 누나의 그림 실력을 따라가지 못해 짜증이 난 듯 스케치북에 크레파스로 동그라미를 북북 그려댔다.무슨 생각에서였을까. 윤 과장은 그 자리에 서서 그림에 몰두한 남매를 지긋이 바라봤다. 아빠 오실 때까지 그림을 그리라고 했다는 아내에게는 그가 해탈한 것으로 보일지도 몰랐다. 우연이었을까. 그 순간, 지사장의 “초보자도 알 수 있게”라는 지시가 머릿속에서는 “초등학생도 알 수 있게”로 바뀌었다. 딸은 초등학생, 아들은 유치원생. ‘쟤들이 알 수 있다면….’ 두근거렸다. ‘쟤들이 알 수 있는 것이라면, 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림을 그리자. 그리면 되지 않겠는가.’ 부처 눈에는 부처만 보이고, 돼지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했다. 도로 기술자 윤 과장이 그동안 떠올린 대책은 기존 행태나 기술에 제한돼 있었다. ‘입체적 구조물을 사람들 눈에 띄도록 세워 놓는다’는 틀에 갇혀 있었다. 토목공학 전공자라는 굴레에 속박돼 있었다. 아이들은 그에게 스스로 한계를 벗어날 수 있도록 힌트를 줬다. 운전하면서 사람들은 전방 노면을 자연스럽게 주시할 터였다. 앞뒤 가릴 것 없었다. 이튿날 아침 지사장이 출근하기도 전에 지사장실 문 앞에서 기다렸다. ‘불명확한 지시를 받고도 하룻밤 새 기막힌 대책을 만들어 왔으니 보십시오.’ 벌써 우쭐했다. 도로에 그림을 그리겠다고, 이른바 ‘분기점 방향 유도 컬러 레인(lane)’을 그리겠다고 보고했다. 지사장은 망설임이 없었다. “한번 해볼까? 좋아, 해보자.” 윤 과장이 “자칫하면 곤란해질 수 있으니 신중하게 가야 한다”고 하자 오히려 “지사장이 한다면 하는 거야”라고 힘줘 말했다. 지사장이 사무직이 아니라 토목직 출신이었어도 ‘토목직의 룰(rule)’을 깨면서까지 밀어붙이라고 했을까. 아니었을 터다. 지사장은 유레카의 순간에 첫 번째 문을 열어 준 귀인이었다.● 난관사람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큰일이 날 수 있는 도로를 관리, 규제하는 도로교통법은 ‘센 법’이다. 그만큼 센 법이 규정한 도로에 칠할 수 있는 색깔은 흰색 노란색 빨간색 파란색뿐이었다. 다른 색을 칠하면 불법이다. 오른쪽 유도선(線)은 주황색, 왼쪽은 초록색을 구상한 윤 과장에게 닥친 첫 난관이었다.주변 전문가나 동료들에게 자문을 구하자 “함부로 그렇게 색을 칠하게 되면 혼란을 준다. 정해진 색 외에는 (길에) 칠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이 정도는 점잖은 편이었다. “봐봐. 윤 과장이 칠한 선 따라가다가 사고가 나서 사람이 죽었다면 어떻게 할 거야? 윤 과장이 (배상금) 물어줄 거야? 아니면 보험사에서 (피해자 유족에게) 보험금 주고 너한테 구상권을 청구할 텐데 한두 푼이겠어? 월급으로 되겠어? 나 같으면 절대 안 한다.”불법적인 색깔로 선을 그렸다가는 도로교통법 위반으로 잡혀가거나 적어도 웃음거리가 될 것이라는 걱정이 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어떻게 보면 멍청해 보이는 애들 생각을 전문가들이 관리하는, 생사가 달린 도로에 집어넣었다가 큰 창피를 당할 수도 있다고 느꼈다. 칠하는 비용보다 지우는 비용이 두 배 이상 든다는 것도 압박이었다. 칠한 선에 문제가 생겨서 지우려면 윤 과장 개인 돈으로라도 지워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되면 반반씩 부담하자”고 북돋워 준 지사장이 고맙기만 했다.사실상 불법인 일인 데다 경찰청 협조(승인)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 두 번째 난관이었다. 고속도로 전체가 아니라 군포지사가 안산분기점 부근 총연장 1.5km를 칠하는 한시적인 목적의 시범 설치여서 관할 구역 경찰의 승인을 받아야 했다. 고속도로 유지와 관리는 한국도로공사가 하지만 교통 관리는 고속도로순찰대와 공동으로 한다. 사망사고는 양측 모두 책임을 지고 개선해야 하는 문제다.윤 과장은 ‘교통사고를 줄여 인명피해를 줄이고 싶다’는 심정을 공유하는 경찰이라면 자신의 구상을 이해하고 호응해 줄 것으로 믿었다. 그렇게 찾은 사람이 인천경찰청 11지구대 임용훈 경사(현 경감)였다. 윤 과장이 말했다. “(이건) 불법이다. 그런데 사람을 구할 수 있다. 해보고 싶다. 도와달라.” 임 경사가 ‘쿨하게’ 답했다. “괜찮은데요. 사람 살리는데 뭐 한번 해봅시다.”임 경사는 당시 지구대장에게 승인을 요청하면서 적극행정 면책제도를 염두에 뒀다고 한다. 공무원이 직무를 성실하고 적극적으로 처리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부분적인 절차상 하자 등을 이유로 불이익한 처분을 받지 않도록 하는 제도다. 규정 이외 색깔로 선을 길게 칠하는 것은 불법이지만 인명 보호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다는 명분에 자신이 있었다는 얘기다. 승인은 떨어졌다. 임 경사는 유레카의 순간에 두 번째 문을 열어준 귀인이었다. 지사장의 허락과 응원을 받고 해당 도로 관할 고속도로순찰대 승인이 떨어진 뒤에도 윤 과장은 찜찜했다. 주황색 말고 다른 색으로 칠하고 싶었다. 핑크색이었다. 핑크색으로 하자고 하면 맛이 간 사람 취급을 받을 공산이 컸다. 그래도 핑크였다. 도로에 색을 칠하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색칠 작업을 맡은 고속도로 시설물 유지·보수 업체 소장에게 하소연했다.“소장님, 초록색은 ‘녹색 고속도로’ ‘푸른 고속도로’라고들 호응하니까 칠할 만합니다. 반대가 없어요. 하지만 주황색은 중앙분리선 같이 규제 의미가 강해서 저는 별로예요. 핑크색을 칠하고 싶은데 ‘또라이(괴짜를 뜻하는 비속어)’라고, 미친놈이라고 남들이 생각할 것 같아요.”소장이 말했다. “과장님. 어차피 도로에 색칠한다는 것 자체가 튀는 생각이어서 다들 또라이라고 할 겁니다. 어차피 또라이 소리 들을 거면 ‘상(완벽한)또라이’가 되세요. 그러니까 핑크색으로 갑시다.” 유레카의 순간에 세 번째 문을 열어 준 귀인은 이 소장님이었다. ● 확산2011년 5월 초 안산분기점에 그린 초록색과 핑크색 유도선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그린 후 6개월간 해당 구역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는 3건뿐이었다. 이전 6개월 동안에는 25건이었다. 분석 결과 사고 저감률이 70~80%나 됐다. 고무된 윤 과장은 색깔 유도선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싶었다. 그렇게 하려면 한국도로공사 본사 승인이 필요했다. 먼저 서울경기본부 창안 소그룹(CoP) 혁신 발명 과제 발표회에 출품했다. ‘혁명적인 결과’라는 평가 속에 3등 장려상을 받고 본사 발표회 출품 자격을 얻었다. 본사 발표회에서는 기각됐다. 가장 큰 결격 사유는 법률 위반이었다. 당연한 결과였다. 하지만 교통사고를 줄였다는 성과는 실용적인 측면에서 다른 지사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꿩 잡는 게 매’라고 불법 여부와 상관없이 색깔 유도선을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보였다. 만약 책임을 져야 한다면 먼저 시작한 군포지사 윤 과장에게 있다는 ‘면죄부’까지 있었다.이듬해 정말로 판교분기점에 분당 방향 핑크색 유도선이 그려졌다. 안산분기점보다 교통량이 월등히 많은 판교분기점을 지나면서 이를 본 사람들은 “좋은 아이디어”라고 이구동성이었다. 그렇게 몇몇 지사에서 그리기 시작하더니 2014년쯤에는 열 몇 곳으로 늘었다. 본사는 답답했다. 분명히 불법인데 자꾸 늘고 있으니 대책이 필요했다. 본사 교통처는 그해 고속도로에서만 적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방침을 정했다. 졸음 쉼터로 유도하는 선은 연두색으로 한다는 내용만 추가했다. ‘카더라 통신(소문)’이 돌았다. 경찰청이 펄펄 뛰면서 “도로에 자꾸 칠을 하면 한국도로공사 담당자를 잡아가겠다”고 했다는 얘기였다. 확인되지는 않았다. 더욱 답답해진 쪽은 도로관리청인 국토교통부였다. 결국 2016년 말에 합법화 사전 정지 작업에 들어갔다. 교통공학으로 권위가 있는 아주대에 노면 색깔 유도선 연구용역을 맡겼다. 그 결과를 토대로 2017년 12월 ‘노면 색깔 유도선 설치 매뉴얼’을 발표해 고속도로뿐 아니라 전국 도로 어디든지 설치할 수 있도록 했다. 2021년 4월 도로교통법 시행규칙이 개정되면서 최종적으로 합법이 됐다. 안산분기점 고속도로에 처음 색을 칠한 지 10년 만이었다. 윤 과장조차 이렇게 빨리 퍼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한 성공이었다.● 도전올 3월 윤 차장이 파견 근무 중인 아프리카 모리셔스에 고등학생이 된 아들이 찾아왔다. 현지 기술자들과 함께 수행하는 교통 혼잡 완화 프로젝트의 최종 단계로 마지막 교량을 개통했을 때였다. 아들이 다니는 학교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군포의 자랑스러운 인물로 색깔 유도선을 창안한 윤 차장을 들었다고 한다. 아들 친구들이 “얘네 아빠예요”라고 하자 그 선생님은 “너희 아빠셨구나. 난 그 분을 존경한단다”라고 했다. 아들이 말했다. “선생님이 존경하는 아빠가 있어 자랑스럽다”고. 윤 차장은 뭉클했다.윤 차장은 모리셔스에도 색깔 유도선을 그리고 싶다. 그러나 이곳 경찰도, 도로청도, 교통공단도 모두 거부했다. 거부하는 이유는 이해할 수 있었다. 관련 법이나 규정이 없고, 책임 문제도 따른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는다. 어떻게든지 노면 색깔 유도선 ‘2호 나라’로 만들 수 있게 고군분투할 마음이다.요즘 유행하는 성격유형지표(MBTI)로 윤 차장은 ENTP다. 하고자 하는 것은 일단 해야 직성이 풀린다. 한 인터넷 사이트 해석으로는 ‘별난 사람으로 낙인찍히는 것보다, 순종하며 무릎 꿇는 것을 더 두려워한다.’ 돈키호테일지 모른다. 아프리카 대륙 남동쪽 150km 정도 떨어진 섬나라 모리셔스에서 그는 때때로 읊는다.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이룰 수 없는 사랑을 하고,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우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며, 잡을 수 없는 저 하늘의 별을 잡자!’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인하공전(총장 김성찬)이 다음달부터 2025학년도 신입생 수시모집에 들어간다. 인하공전은 9월 9일부터 10월 2일까지 수시 1차, 11월 8∼22일까지 수시 2차 모집을 진행한다고 28일 밝혔다. 정시모집은 12월 31∼2025년 1월 14일로 예정됐다. 인하공전은 2025학년도 입학정원 2543명 가운데 수시 1차에 1776명(70%), 수시 2차에 644명(25%)을 각각 선발할 방침이다. 수시 1차에선 전형별로 일반고 1377명, 특성화고 374명, 어학 특기자 25명을 각각 선발한다. 어학 특기자는 토익 600점 이상, 토익 스피킹 120점 이상이면 출신 학교나 내신 성적과 상관없이 항공기계공학과나 항공운항과에 지원할 수 있다. 2025학년도 신입생 모집에는 융합적인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자유전공학부가 신설됐다. 공학계열 학과가 대상이며, 전공을 미리 정하지 않고 1학년 1학기 동안 다양한 교과목을 이수한 뒤 본인에게 맞는 전공학과를 선택할 수 있다. 즉 1학기를 마친 뒤 공학 계열 19개 학과 중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하공전은 복수 지원이 불가능하고 수시 1차와 수시 2차 각 1회씩 지원할 수 있다. 전체 모집인원의 95%를 선발하는 수시 모집에 원하는 전공을 정해 지원하는 것이 유리한 셈이다. 인하공전은 전문기술교육을 통해 국가 발전에 기여하고자 1958년 설립됐다. 개교 이후 산업체가 요구하는 전문지식을 갖춘 전문 직업인력 11만 5000명을 배출한 명실상부 대한민국 최고의 전문대학이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경복대 창업보육센터(BI)가 경기도 지정형 창업혁신공간 운영 사업에 12일 선정됐다. 경기도와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 주관하는 창업혁신공간 사업은 2026년까지 도내 스타트업 3000개 이상 육성을 목표로 하는 ‘스타트업 천국, 경기도’ 비전의 핵심이다. 경복대 지정형 창업혁신공간은 대학 창업보육센터 4, 5층 연면적 2995㎡(905평) 규모로 마련됐다. 스타트업 30개사가 입주해 협업할 수 있다. 경복대 캠퍼스가 있는 남양주를 비롯해 구리 포천 가평 같은 경기 북동부 지역 스타트업 육성을 위한 거점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창업보육센터는 창업혁신공간으로서 전(全) 주기 창업 공간 조성, 혁신 및 신산업 분야 기업 발굴, 성장 단계별 맞춤형 지원, 스타트업 대상 맞춤형 코칭, 기술 협업 및 이전 같은 지원 프로그램을 제공할 예정이다. 경복대는 지식서비스 산업, 신재생에너지, 첨단 융합 산업, 생명공학을 비롯해 고부가가치 산업 분야를 중점 육성할 계획이다. 허서윤 창업보육센터장(작업치료학과 교수)은 “기초단체로 분산된 스타트업 지원 정책을 권역 단위로 확대해 집중시킬 수 있을 것”이라며 “경기 북동부 핵심 창업 거점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앞서 창업보육센터는 2024년 중소벤처기업부 BI 경영 평가에서 우수한 성과를 인정받아 BI 운영지원사업 주관 기관으로 선정됐다. 또 지역 기술 스타트업 지적재산권(IP) 역량 강화 교육사업 거점 센터로도 선정돼 창업 지원 측면에서 종합적인 역량을 갖추고 있음을 입증했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