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언

김태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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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태언 기자입니다.

beborn@donga.com

취재분야

2025-11-06~2025-12-06
문화 일반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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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일반12%
만화10%
사회일반5%
사건·범죄2%
연극2%
미술2%
  • 이쾌대 ‘군상’ 등 한반도 격동기 작품 앞에 인파

    “자랑스럽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네요.”(나혜석의 손자 스탠 김) 미국 로스앤젤레스카운티뮤지엄(LACMA)에서 국립현대미술관과 공동 주최로 열리고 있는 기획전 ‘사이의 공간: 한국 미술의 근대’가 화제를 모으고 있다. 8일(현지 시간) 열린 개막식 전후 뉴욕타임스(NYT) 등 미국 언론이 비중 있게 소개하며 많은 인파가 몰렸고, 지금도 관람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근대 여성 화가이자 시인인 나혜석(1896∼1948)의 손자인 스탠 김은 개막식에 참석해 할머니의 ‘자화상’(1928년경) 앞에서 한참을 머물렀다고 한다. 해외에서 한국 근대미술 전시를 접하기는 쉽지 않아 반갑다는 반응이 많다. 이번 전시에는 한반도의 격동기였던 1897∼1965년에 나온 회화와 조각, 사진을 엄선해 128점을 출품했다. 13일까지 전시장에 머문 김인혜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관은 “관람객들이 굴곡을 겪었던 한국 근대 예술가들에게서 큰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며 “해외 한국전은 전통 혹은 현대에 초점을 맞춰 왔지만, 이번 전시를 계기로 근대미술로도 지평이 넓어지길 바란다”고 했다. 현지에선 사실주의 화가 이쾌대(1913∼1965)에 대한 관심이 특히 높다. 전시장 입구에 걸린 대표작 ‘군상Ⅳ’(1948년경) 주위엔 항상 많은 이가 몰리고 있다. 사진작가 한영수(1933∼1999), 임응식(1912∼2001) 등의 사진 30점도 인기다. LACMA의 버지니아 문 큐레이터는 “다양한 형식을 지닌 근대작의 유기적 관계를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했다. 이번 전시는 방탄소년단(BTS)의 RM이 재능 기부로 오디오가이드 목소리를 녹음해 눈길을 끌었다. RM은 조선 왕실의 어진화사(御眞畵師) 채용신(1850∼1941)의 ‘고종황제 어진’ 등 열 개 작품을 우리말과 영어로 설명했다. 내년 2월 19일까지.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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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빛의 화가’ 방혜자, 하늘의 빛이 되어 떠나다

    “수도승처럼 평생 작품 활동에만 헌신하셨어요. ‘빛의 화가’라는 별명이 잘 어울리는 분이셨습니다.”(박선주 영은미술관장)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자 프랑스가 자랑하는 샤르트르대성당에 해외작가 최초로 스테인드글라스 작품 4점을 설치하는 등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쳤던 방혜자 화백이 15일(현지 시간) 파리에서 세상을 떠났다. 향년 85세. 고인은 한국 근현대 미술사에서 빠뜨릴 수 없는 화가다. 1956년 서울대 미대 서양화과에 입학한 방 화백은 1세대 서양화가 장욱진(1917∼1990)을 스승으로 모시고 ‘단색화의 거장’ 이우환(86), 우현 송영방(1936∼2021)과 함께 그림을 배웠다. 1961년 국내 첫 프랑스 국비유학생으로 선정돼 파리국립미술학교에서 수학했다. 고인의 작품 세계는 ‘빛의 화가’로 두루 일컬어진다. 평생 빛의 표현에 천착한 그는 한 인터뷰에서 “어릴 적 개울가에서 반짝이는 조약돌을 보고 ‘이 빛을 어떻게 그릴 수 있을까’에 사로잡혔다”고 회고했다. 한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활동했던 고인은 국내에서 영은미술관이 운영하는 영은레지던시에 주로 머물렀다. 박 관장은 “항상 물감이 많이 묻은 같은 작업복을 입고 작업했는데, 예술을 대하는 태도가 언제나 진지하셨다”고 회고했다. 방 화백의 작품은 한국적 색채가 짙어 더 사랑받았다. 대표작 ‘우주의 노래’(1976년)는 한지와 황토를 섞어 빛의 번짐을 자연스럽게 살린 걸작. 올해 ‘이건희 컬렉션’에서 공개된 ‘하늘과 땅’(2010년)도 오묘한 전통적 색감으로 관심을 모았다. 샤르트르대성당 종교 참사 회의실에 걸린 작품이 마지막 유작으로 남았는데, 2018년 선정 뒤 지난해 완성했으나 팬데믹으로 아직 일반에 공개하지 않고 있다. 대한민국문화예술상(2010년)과 한불문화상(2012년), 올해의 미술인상(2008년) 등을 수상했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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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아버지가 말한 ‘그 형’의 정체는

    두 시간 전 급성폐렴으로 입원한 아버지의 병실에서 나온 나. 간병인에게서 아버지가 임종 직전이란 다급한 연락을 받았다. 다시 병원으로 되돌아간 나에게 아버지는 대뜸 “형은?”이라고 물어온다. 장남인 나는 잠시 혼란스러웠지만, 40년 전 잠시 집에 머물렀던 한 형을 떠올린다. 결국 세상을 떠난 아버지. 장례식장에 나타난 한 사내를 보며 ‘그 형’일 거라 짐작한다. 나는 남은 가족에게 형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물어보지만, 알게 되는 건 이전까지 몰랐던 아버지의 새로운 면모들. 진실은 여전히 오리무중이지만, 나는 타인의 인생을 판단하는 걸 그만 멈추기로 한다. 올해 데뷔 29년을 맞은 저자의 아홉 번째 소설집. ‘소년은 늙지 않는다’(문학과지성사) 이후 8년 만이다. ‘바그다드 카페에는 커피가 없다’(1996년) ‘누가 커트 코베인을 죽였는가’(2003년) ‘장국영이 죽었다고?’(2005년) 등으로 탄탄한 팬층을 구축해 온 그의 문장은 여전히 위력적이다. 위에서 소개한 단편 ‘타인의 삶’은 지난해 이효석문학상 우수상을 받았다. 단편소설 9편에는 다양한 인물들이 나온다. 은둔형 외톨이인 주인공의 3인칭 시점이 독특하게 전개되는 ‘누군가 나에 대해 말할 때’를 비롯해 성경학교의 성추행 사건을 배경으로 여러 인물의 진술을 다룬 ‘가브리엘의 속삭임’, 바다에서 아들을 잃은 뒤 아들의 죽음을 망각하기에 이른 아버지를 다룬 ‘튜브’도 인상적이다. 각기 다른 이야기지만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 소설들은 읽는 내내 타인을 상대로, 더 나아가면 자기 스스로를 상대로 ‘가면’을 쓰고 있는 누군가를 직면하게 된다. 그건 내면에 상존한 또 다른 나일지도 모른다. 순간 동떨어져 바라보게 되는 나란 존재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각자의 몫이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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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산의 골목골목 누비니 보물섬 탐험하는 기분”

    14일 부산 동구 초량동 부산비엔날레 전시장. 입구에서 만난 외국인 2명은 탐험이라도 나선 듯 신난 표정이었다. 오스트리아에서 왔다는 이들은 “산동네 골목에서 이리저리 표지판을 따라오니 전시장에 다다랐다. 도심에서 신기한 체험”이라며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소개를 보고 부산에 왔는데, 숨겨진 보물섬을 마주한 기분”이라며 즐거워했다. 2002년 시작돼 올해로 20년을 맞은 부산비엔날레가 3일 개막해 관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한때 “차별성이 없고 진부하다”는 지적을 받았던 부산비엔날레는 지역적 독특함과 참신한 아이디어로 승부를 걸었다. ‘물결 위 우리’라는 주제 아래 여성과 이주, 노동, 자연을 키워드로 내세워 관객에게서 공감을 이끌어내려 노력했다. 일단 비엔날레가 열리는 장소 4곳부터 남다르다. 부산 산복도로(산 중턱을 지나는 도로)를 내려다보는 초량동과 태종대가 있고 해녀들의 일터였던 영도, 일제강점기부터 굴곡진 역사를 머금은 부산항 제1부두, 철새들의 터전으로 생태공원화한 을숙도다. 장소에 맞춰 도시의 역사를 조명하면서도 그 이면에 깔린 그림자를 들여다보는 다양한 작품들을 전시했다. 배에 붙은 따개비를 제거하는 ‘깡깡이’를 재현한 김도희 작가의 설치미술이나 부산 노동자 파업을 담은 최호철 작가의 회화가 눈길을 끈다. 지역성에 너무 강조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려는 노력도 돋보였다. 인도계 호주미술가인 산신티아 모히니 심슨은 남아프리카에서 노역했던 여성 인도인의 삶을 15점의 회화 연작으로 소개했다. 국가무형문화재인 ‘불화장(佛畵匠)’ 이수자인 법인 스님과 콜롬비아 작가 프란시스코 카마초 에레라가 협업해 세계에 산재한 노동현장을 탱화 형식으로 표현한 작품들도 인상적이다. 김해주 부산비엔날레 전시감독(42)은 “부산 뒷골목에 밴 삶의 이야기를 우리 모두가 공감할 보편적인 주제로 확장해 나가는 과정을 발견할 수 있길 바랐다”며 “이번 전시가 서로 다른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함께할 방법을 모색할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11월 6일까지.부산=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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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남준 1003대 모니터탑 ‘다다익선’ 재가동

    비디오아트의 세계적 거장인 백남준(1932∼2006)의 작품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다다익선’(사진)이 3년에 걸친 복원 작업을 마치고 돌아왔다. 국립현대미술관은 “2018년 가동을 중단한 뒤 2019년부터 보존 및 복원 작업을 진행한 다다익선을 재가동하고 관객에게 선보인다”고 15일 밝혔다. 경기 과천시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 있는 다다익선은 6∼25인치 브라운관 모니터 1003대를 쌓아올려 높이만 18m에 이르는 초대형 작품. 세월이 흐르며 모니터 등이 노후화돼 수리를 거듭했지만, 화재를 비롯해 각종 위험이 커지며 2018년 2월 가동을 멈췄다. 다다익선은 이듬해 9월 시작된 보존·복원을 통해 모니터 737대가 수리되거나 교체됐다. 더 이상 사용하기 어려운 모니터 266대는 외형만 유지하고 액정표시장치(LCD) 패널로 바꿨다. 국립현대미술관은 “백남준 탄생 90주년과 다다익선의 제막식 날짜에 맞춰 다시 선보였다”며 “다다익선의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 주 4일, 하루 2시간만 잠정 가동할 예정”이라고 했다.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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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을 문턱, 비엔날레 투어 떠나볼까…공존-공생의 미술축제

    14일, 부산 동구 초량의 한 언덕 위에 마련한 전시장에는 오스트리아에서 온 두 명의 관람객이 있었다. 이들의 동선은 부산비엔날레가 열리는 장소. 부산의 산복도로를 내다볼 수 있는 초량부터 출항 해녀들의 일터였던 영도, 일제 식민시기부터 물자와 피란민 수송을 담당하던 부산항 제1부두, 새들의 터전이었던 을숙도의 부산현대미술관까지. 이들은 “부산의 숨어있는 곳들을 찾아다니는 기분이다. ‘자연’ ‘이동’ 같은 현대사회 키워드를 대변하는 공간을 부산에서 만나볼 수 있었다”고 했다. 올 가을 전국에서 동시대 미술의 방향성을 보여주는 비엔날레가 잇달아 열리고 있다. 2년마다 열리는 비엔날레는 장르와 국적을 넘나드는 작품을 한 번에 볼 수 있는 국제미술제다. 각 비엔날레가 고심한 주제는 제각기 다르지만, 최근 현대미술이 일제히 가리키는 것은 ‘공존’이다. 각 비엔날레가 다루는 작품들을 보며 공존의 대상을 고민해보는 재미가 있을 것이다. 올해 부산비엔날레는 이주, 여성, 노동 등을 소주제 삼아 공존을 환기한다. 다소 기시감이 있는 주제지만 차별점은 지역성에 있다. 김도희는 부산 깡깡이(배에 붙은 따개비를 제거하는 행위)를 재현한 설치 작품을, 최호철은 부산에서 진행됐던 한진중공업 고공 농성 장면을 그린 작품을 내놨다. 도시의 급성장 속에서 중요시 여겨지지 않았던 존재들을 부산의 구체적인 사건들을 통해 재확인시키는 식이다. 전시는 부산의 특수한 이야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법인 스님과 콜롬비아 출신 프란시스코 카마초 에레라는 협업을 통해 남미,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한국을 관통하는 고무산업을 소재로 노동자와 환경 파괴의 역사를 탱화로 표현했다. 그렇게 보면, 남아프리카에서 노역하던 여성 인도인들의 삶과 학살 등을 그린 산신티아 모히니 심슨의 회화도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게 느껴진다. 김해주 감독은 “부산의 뒷골목 이야기가 보편적인 이야기가 돼가는 과정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며 “서로 다른 현재를 사는 우리가 함께 살아갈 방법을 모색했으면 한다”고 했다. 11월 6일까지. 지난달 2일 개막한 대전과학예술비엔날레는 ‘미래 도시’라는 주제 하에 디지털 시대 속 인간이 공생해야 할 삶의 방식을 고민하게 한다. 영국의 알렉산더 웜슬리가 도시개발로 사라져가는 알바니아의 수도 티라나 3개 지역을 3차원 가상환경으로 꾸며낸 ‘티라나 타임캡슐’ 등은 가상현실이 개입되는 새로운 도시 모습의 탄생을 마주하게 한다. 과학도시를 지향하는 대전답게 예술과 과학기술을 접목시켜 대전시립미술관과 대구 도심 내 상징적인 4개 공간에서 다음달 30일까지 진행한다. 자연과 생태계는 많은 비엔날레에서 특히나 자주 논의되는 공존의 대상이다. 지난달 27일 개막해 11월 30일까지 진행하는 공주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는 ‘또, 다시야생’을 주제로 충남 공주 연미산자연미술공원 일대에 작품을 내놨다. 거대한 말이 관람객을 감싸는 형상으로 인간과 동물의 영적인 연결을 꾀하는 몽골 작가 그룹의 설치작 ‘자연과의 상관관계’ 등이 대표적이다. 11월 열릴 제주비엔날레 또한 지구 공생을 위한 자연의 순리에 주목한다. 강이연 작가는 제주의 자연을 소재로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미디어아트로 풀고, 캐나다 출신 자디에 사는 제주 자연물을 이용한 조각, 회화 등을 선보인다.부산=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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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佛 ‘누벨바그 대부’ 고다르 감독 별세

    “우리는 프랑스의 보물을 잃었다.”(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1960년대 유럽을 강타한 영화 사조 ‘누벨바그(새로운 물결)’를 이끌며 세계 영화계 판도를 뒤바꾼 장뤼크 고다르 감독(사진)이 13일(현지 시간) 별세했다. 향년 92세. 로이터통신은 “프랑스 뉴웨이브 영화의 상징인 고다르 감독이 13일 타계했다”며 “그는 기존 영화의 문법을 거부하고 지평을 넓혀 세계의 수많은 감독에게 영감을 줬다”고 보도했다. 파리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소르본대 인류학과를 중퇴한 고다르 감독은 독학으로 영화를 공부했다. 고다르 감독의 데뷔 작품인 ‘네 멋대로 해라’(1960년)는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1932∼1984)의 영화 ‘400번의 구타’와 함께 “누벨바그의 신호탄”이라 불리는 기념비적인 걸작이다. ‘네 멋대로 해라’는 현장에서 쓴 ‘쪽대본’으로 진행되는 줄거리와 비논리적으로 흐르는 등장인물의 행동, 장면과 장면을 급전환하는 점프 컷 등 파격적인 연출로 “영화의 역사를 새로 썼다”는 극찬을 받았다. 고인은 ‘여자는 여자다’(1961년), ‘비브르 사 비’(1962년), ‘미치광이 피에로’(1965년) 등 센세이션을 일으킨 수작을 잇달아 내놓으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특히 공상과학(SF) 영화 ‘알파빌’(1965년)은 제15회 베를린 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1960년대 말 고다르 감독은 전통적인 극영화 서술 방식에서 벗어나 다큐멘터리 혹은 에세이풍의 영화를 선보였고, 1970년대엔 당시로선 새로운 매체인 비디오를 이용해 작업하기도 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날 소셜미디어를 통해 “고다르는 누벨바그 영화인 가운데 가장 뛰어난 우상 파괴자이자 천재였다”며 고인을 추모했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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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땅에 천착”… 화이트큐브 안으로 들여온 돌과 흙, 나무

    설치미술가 차기율 씨(61·사진)가 제7회 박수근미술상 수상자로 6일 선정됐다. 동아일보와 강원 양구군, 박수근미술관, 강원일보가 공동 주최하는 이 상은 박수근 화백(1914∼1965)을 기리는 뜻에서 2016년 제정됐다. 차 작가는 돌이나 나무 같은 자연물을 이용해 설치와 회화 여러 분야에서 자연이 지니는 원초적인 힘을 실험해 왔다. 심사단은 “차 작가는 동양의 전통철학에 바탕을 두고 박수근의 치열한 예술정신을 잘 계승하고 있다”고 평했다. 시상식은 10월 25일 양구군 박수근미술관에서 열린다.‘박수근미술상’ 차기율 작가야생 그대로의 재료들 사용해 “땅에 대한 애정이 내 본연의 모습”‘도시시굴…’ ‘순환의…’ 작업 승화“자연이 만든 대범함 이길 수 없어… 자연과 협업한다는 생각으로 작업이번 수상 계기로 다시 한번 도약”“한참 나무를 깎고 있는 중에 전화가 걸려왔어요. 작업 중에 무심코 받았는데 ‘박수근미술상 수상자로 선정됐다’고 하더군요. 아, 드디어 나에게도 뭔가 ‘계기’가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차기율 작가가 제일 먼저 떠올렸다는 계기란 뭘 뜻하는 걸까. 1일 인천 연수구 인천대에서 만난 그는 이를 “전력을 다해 작업할 동력”이라고 설명했다. 2013년부터 조형학부에서 제자를 가르치고 있는 그는 꽤 오랫동안 뭔가 창작에 집중하질 못하며 생긴 ‘공백’에 매우 고통스러웠다고 한다. 그런데 박수근미술상이 “다시 한번 삶을 도약시킬 힘을 주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1985년 인천대를 졸업한 차 작가는 이후 약 10년 동안 여러 그룹전 등에 참가하며 활동 반경을 넓혀 갔다. 하지만 1995년 두 번째 개인전을 마치고 난 뒤 무작정 유럽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귀국 뒤엔 1년 동안 작업을 멈췄다. “그때까지 제 작가로서의 인생은 한마디로 ‘깍두기’였습니다. 마흔 살 즈음까지 뭘 해도 잘 안 됐어요.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해 제 작품을 ‘설득하느라’ 몸부림쳤죠. 하지만 임기응변처럼 떠밀리듯 하는 전시는 관두고 싶었습니다. 여행에서 ‘나를 버려야겠다’는 결심을 하고선 무작정 산천을 떠돌았어요.” 그 결과로 내놓은, 1999년 서울 종로구 토탈미술관에서 개최한 개인전 ‘땅의 기억’은 차 작가의 예술 활동에 커다란 변곡점이 됐다. 이제는 그의 시그니처로 여겨지는 돌과 흙, 나무 등 야생 그대로의 재료들을 본격적으로 ‘화이트큐브’(전시장) 안으로 들여오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땅에 천착하기 시작했어요. 땅에 대한 애정이 제 본연의 모습이란 걸 깨달은 겁니다. 전 경기 화성의 갯벌과 평야가 맞붙은 시골집에서 태어났어요. 어릴 때 학교가 끝나면 산에서 식물과 새를 보는 게 일상이었죠. 지금도 눈을 감으면 끝없는 갯벌과 아지랑이, 풀, 온갖 철새들이 떠오릅니다. 그게 제 놀이터이자 저만의 색깔이 된 거죠.” 이런 기억은 이후 그의 작업세계를 관통하는 자양분으로 자리 잡았다. 차 작가는 현재도 ‘도시 시굴―삶의 고고학’과 ‘순환의 여행―방주와 강목 사이’라는 프로젝트를 이어오고 있다. 도시 시굴은 집 뒷마당 같은 평범한 공간의 땅을 발굴해 삶의 흔적이 담긴 옹기 조각 등을 수집해 전시한다. 순환의 여행은 자연물과 문명을 결합시켜 보는 작업이다. 차 작가는 “자연이 만든 대범함은 이길 수 없다”며 “무에서 유를 만드는 게 아니라, 자연의 산물과 협업한다는 생각으로 작업한다”고 설명했다. 설치미술을 주로 하다 보니 전시가 끝나면 작품을 해체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하지만 차 작가는 크게 개의치 않는다. 그는 “예술은 시각적 산물에 그치지 않고 정신이 바탕이 된 영적 산물”이라며 “의미 없이 소멸되는 게 아니라 예술에 대한 신념과 삶에 대한 열렬한 긍정이 남기 때문”이라고 했다. 차 작가가 이런 확신을 가지게 된 건 어머니의 힘이 컸다. 2014년 세상을 떠나시며 어머니는 단 한마디, “정직하게 살아라”라고 말씀하셨다. 그는 이 말을 되뇌며 강화도 작업실 앞마당 매화나무 아래 어머니를 모셨다. “지난해 그 매화나무가 고사했어요. 안타깝지만, 이 나무를 활용해 10월 수원국제예술제 ‘온새미로 프로젝트’에서 작품으로 발표할 예정입니다. 일평생 아들의 삶이 녹록지 않은 것을 걱정하면서도 응원했던 어머니에게 이렇게라도 뭔가 갚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는 오늘도 그렇게 나무를 다듬고 자른다. 인천=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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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균관 “명절에 전 부치지 않아도 돼요”

    성균관이 앞으로 차례상을 간소화해 음식은 최대 아홉 가지만 올리고, 전도 부치지 않아도 된다는 방안을 내놓았다. 성균관의례정립위원회는 5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차례상 표준안’을 발표했다. 성균관 표준안에 따르면 추석 차례상의 기본 음식은 송편과 나물, 구이(적·炙), 김치(백김치류), 과일, 술 등 6가지다. 여기에 조금 더 올린다면 육류와 생선, 떡 정도를 추가할 수 있다. 밥과 국도 따로 올리지 않아도 된다. 위원회는 “기름에 튀기거나 지진 음식도 차례상에 꼭 올릴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 ‘홍동백서(紅東白西)’처럼 차례상에 음식 놓는 예법도 따를 필요가 없다. 실제로 붉은 과일은 동쪽에 놓고 흰 과일은 서쪽에 놓으라는 홍동백서나 대추 밤 배 감의 순서를 뜻하는 조율이시(棗栗梨枾) 등은 옛 문헌에 존재하지 않았다고 한다. 사당이 없는 일반 가정은 보통 지방(紙榜·종이에 써서 모신 신위)을 올리고 기제사나 차례를 지냈으나 이 역시 바꿀 수 있다. 모시는 분의 사진을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위원회는 “집안마다 차례가 먼저인지 성묘가 먼저인지를 따지기도 하는데 가족끼리 의논해 정해도 된다”고 덧붙였다. 최영갑 성균관의례정립위원회 위원장은 “잘못된 의례문화가 명절증후군이나 명절 뒤 이혼율 증가 같은 문제를 일으킨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관행처럼 내려오던 예법을 바꾸지 못했다”며 “이번 차례상 표준안이 가정의 경제적 부담을 줄이고 성별 및 세대 갈등을 해결하는 출발점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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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심위, 제2의 n번방 ‘엘’관련 피해자 성착취물 접속 차단

    ‘제2의 n번방’ 주범으로 사회적 논란을 일으켰던 성착취 범죄자 ‘엘’(가칭)과 관련된 불법촬영 성착취물이 대거 접속 차단됐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는 “엘 관련 성착취물 523건을 긴급 심의해 8월 31일부터 접속 차단 조치했다”고 5일 밝혔다. 해외 불법사이트에서 유통되는 미성년 피해자의 성착취물에 대해서는 국내 이용자의 접근을 제한하고, 해외 사업자에게는 해당 자료의 삭제를 요청했다. 아울러 경찰청이 ‘공공 DNA DB’로 등록해 달라는 요청에 따라 엘 관련 성착취물 429건을 ‘불법촬영 영상물 확인’으로 의결했다. 공공 DNA DB란 불법촬영물의 특징을 추출해 편집·변형된 파일도 적극 차단할 수 있도록 구축한 데이터베이스다. 해당 착취물들은 향후 이용자 접근 제한 등 필터링 조치를 통해 국내 인터넷사이트에서 유통이 차단된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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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균관 “차례상 음식, 최대 9가지만…전 부칠 필요 없어”

    성균관이 앞으로 차례상을 간소화해 음식은 최대 아홉 가지만 올리고, 전도 부치지 않아도 된다는 방안을 내놓았다. 성균관의례정립위원회는 5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차례상 표준안’을 발표했다. 성균관 표준안에 따르면 추석 차례상의 기본 음식은 송편과 나물, 구이(적·炙), 김치(백김치 류), 과일, 술 등 6가지다. 여기에 조금 더 올린다면 육류와 생선, 떡 정도를 추가할 수 있다. 밥과 국도 따로 올리지 않아도 된다. 위원회는 “기름에 튀기거나 지진 음식도 차례상에 꼭 올릴 필요가 없다”며 “이런 상차림도 가족이 합의해 (더 줄이는 것으로) 결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홍동백서(紅東白西)’처럼 차례상에 음식 놓는 예법도 따를 필요가 없다. 실제로 붉은 과일은 동쪽에 놓고 흰 과일은 서쪽에 놓으라는 홍동백서나 대추 밤 배 감의 순서를 뜻하는 조율이시(棗栗梨柿) 등은 옛 문헌에 존재하지 않았다고 한다. 사당이 없는 일반 가정은 보통 지방(紙榜·종이에 써서 모신 신위)을 올리고 기제사나 차례를 지냈으나 이 역시 바꿀 수 있다. 모시는 분의 사진을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위원회는 “집안마다 차례가 먼저인지 성묘가 먼저인지를 따지기도 하는데, 이 역시 가족끼리 의논해 정해도 된다”고 덧붙였다. 최영갑 성균관의례정립위원회 위원장은 “잘못된 의례문화가 명절증후군이나 명절 뒤 이혼율 증가 같은 문제를 일으킨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관행처럼 내려오던 예법을 바꾸지 못했다”며 “이번 차례상 표준안이 가정의 경제적 부담을 줄이고 성별 및 세대 갈등을 해결하는 출발점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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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눈앞에 펼쳐진 피카소-실레… “뉴욕 모마에 온 기분”

    “잠시도 쉴 수가 없네요. ‘국보급 명작’들이 워낙 많아 앉지도 못하고 내내 돌아다녔습니다.”(컬렉터 이영상 씨) “너무 도떼기시장처럼 미어터지는 건 ‘옥에 티’네요. 프랜시스 베이컨(1909∼1992) 작품은 사진을 찍기는커녕 제대로 보지도 못했어요.”(관람객 김모 씨) 소문난 잔치엔 역시 먹을 게 많았다. 다만 먹기가 너무 힘들었다. 2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개막한 아트페어 ‘프리즈 서울’과 ‘한국국제아트페어(KIAF·키아프)’는 올 하반기 국내 미술계의 최대 이슈다운 면모를 선보였다. 세계적인 박물관급 작품들이 즐비해 구매자가 아니어도 눈 호강을 멈출 수 없었다. 2일 VIP 오픈 때도 성황이었지만 일반 관람객이 입장한 3, 4일엔 수만 명이 몰려들어 발 디딜 틈이 없을 지경이었다. 이름만으로도 가슴이 두근대는 거장들의 작품이 쏟아진 ‘프리즈 마스터스’ 섹션은 최고의 하이라이트. 파블로 피카소(1881∼1973), 앙리 마티스(1869∼1954), 에곤 실레(1890∼1918)…. 미국 애쿼벨라 갤러리스나 영국 리처드 내기 갤러리 부스는 그림 앞에 다가서기도 힘들 정도였다. 3일 현장에서 만난 한 40대 관람객은 “모마(MoMA·뉴욕현대미술관)에 온 듯한 기분”이라며 감탄했다. 단체 관람객들은 해외여행을 온 것처럼 동선을 미리 짜서 움직이기도 했다. 세계 최정상으로 꼽히는 거고지언(미국)과 하우저앤드워스(스위스), 리슨 갤러리(영국)도 프리즈에서 처음 국내에 진출했다. 하우저앤드워스는 2일 미국 화가 조지 콘도(65)의 2022년 작 ‘Red Portrait Composition’이 280만 달러(약 38억 원)에 팔리는 등 15점이 오픈 1시간 만에 다 팔렸다. 15∼19세기 고지도와 고서를 선보인 영국 대니얼 크라우치 레어북스와 이집트 특집 섹션을 마련한 영국 데이비드 에런 갤러리도 많은 관심을 모았다. 에런 갤러리 관계자는 “한국 컬렉터들도 꽤 많은 작품을 구매했다”고 귀띔했다. 프리즈를 통해 한국 작가들을 ‘큰 무대’에 소개하려는 국내 갤러리의 노력도 눈에 띄었다. 국제갤러리는 김환기(1913∼1974) 작품을 전면에 내세웠고, 현대갤러리는 국내 비디오아트의 선구자인 박현기(1942∼2000)를 부각시켰다. 학고재갤러리도 류경채(1920∼1995) 등 한국 미술사에 굵직한 족적을 남긴 거장들을 선보였다. 2일 현장에서 만난 강정하 금호미술관 큐레이터는 “국내 메이저 화랑들 역시 전속계약을 맺은 해외 작가들이 적지 않은데도, 한국적 색깔이 분명한 작품들이 나와 큰 의의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개최 전부터 우려했던 대로 스포트라이트가 프리즈에 집중되며 키아프는 ‘상대적 박탈감’에 휩싸일 수밖에 없는 처지가 돼버렸다. 키아프에 작품을 출품한 한 중견 작가는 “전체적으로 함께 들썩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키아프 쪽은 민망할 정도로 한산하다”며 입맛을 다셨다. 국제적인 행사치고는 운영이 다소 미숙하다는 반응도 나왔다. 부스별로 한국인 스태프가 부족한 데다 안내지도 등도 금방 동이 나 불편해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관람객 김효경 씨(27)는 “모바일 입장권은 현장 스태프들도 혼란스러워하며 입장에 불편을 겪었다”며 아쉬워했다. 주최 측은 “관람객이 예상보다 훨씬 많아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 좀 더 원활한 진행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프리즈는 5일까지, 키아프는 6일까지 열린다. 한편 프리즈 서울과 키아프가 내년에 서울 종로구 송현동 ‘이건희 미술관’(가칭) 부지에서 열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미술계에 따르면 3일 저녁 오세훈 서울시장은 프리즈 서울 관계자 및 주요 VIP 만찬에서 최근 프리즈 측이 요청한 송현동 부지 행사 대여와 관련해 “내년 프리즈 서울과 키아프 개최지로 송현동 부지를 빌려줄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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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리즈 서울 현장은 북적였지만, 실속은 누구에게? [영감 한 스푼]

    안녕하세요. 9월 2일부터 6일까지 열리는 아트페어 '프리즈 서울'을 맞아 미술계가 시끌벅적한 한 주 였습니다. 이번 주말까지 페어를 찾는 발길들로 서울이 분주할 것 같은데요. '영감한스푼'은 오늘 개막한 프리즈 서울을 찾아 현장 분위기를 담아왔습니다. 방문객들은 '해외를 가야만 볼 수 있는 작품을 서울에서 보니 기분이 좋다'며 들뜬 분위기였지만, 이 흥분이 가라앉았을 때 누가 웃고 울게 될 지를 생각하면 냉정해지는 하루였습니다. 저희는 '프리즈 서울'에 앞서 해외 미술계 인사들이 한국 작가의 작업실을 방문하는 프로그램 'Dive into Korean Art' 프로그램에도 다녀왔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아트페어에서는 볼 수 없는 한국 작가들의 예술을, 작품이 전시된 미술관이 아니라 작가가 작업하고 호흡하는 스튜디오를 직접 보여주자는 취지로 기획되었습니다. 현장 분위기 오늘 함께 전해드릴게요. ○ 프리즈 서울, 현장은 들떴지만 실속은 누구에게..?:프리즈 서울 현장에서 만난 컬렉터를 비롯한 예술계 인사들은 해외를 가야만 볼 수 있는 작품을 직접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아트페어 개최에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현장을 떠나 냉정히 돌아보면 보이는 것들이 몇 가지 있었는데요. 장기적으로는 외국 갤러리와 아시아 컬렉터의 접점만 강화되는 것은 아닌지, 여기서 한국 작가들이 더욱 소외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우려가 나왔습니다. ○ 해외 미술계 인사들이 찾은 한국 작가의 작업실프리즈 서울 개최를 맞아 한국을 찾는 해외 미술계 인사들을 대상으로 작업실을 방문하는 프로그램, 'Dive into Korean Art'가 8월 29일부터 31일까지 서울과 경기 양평을 오가며 진행되었습니다. 현장에서 미술계 인사들은 이미 한국 작가에 대해 자신이 알고 있던 바를 토대로 진지하게 질문하거나 적극적으로 쌓여 있는 작품을 꺼내 보기도 했습니다. ○ 프리즈 서울, 현장은 들떴지만 실속은 누구에게? 피카소, 에곤 실레부터 리히터까지 서울에서 보다니! 우선 현장에서 만난 컬렉터, 관람객, 큐레이터 등 사람들의 반응은 들떠있었습니다. 특히 '프리즈 마스터스' 섹션을 인상 깊었던 공간으로 꼽은 의견이 많았습니다. 이 공간에서는 피카소와 에곤 실레처럼 누구나 잘 아는 근대 미술 거장들의 작품을 볼 수 있었기 때문에 '관람'으로서 의미를 부여하는 측면이 보였습니다. "프리즈 마스터스 섹션에서 피카소 같은 고전 작품은 물론 고대 유물까지 볼 수 있어서 신기했어요. 데이미언 허스트 나비 작품이 있는 로빌란트 보에나 갤러리도 기억에 남습니다. 벨기에에서 온 귀여운 컬렉터 부부도 보고 저처럼 소규모로 컬렉팅하는 사람에게는 서울에서 이런 것을 볼 수 있다니 너무 즐거운 기회였어요! 저는 작품은 키아프에서 구매할 생각입니다. 젊은 작가인 장종환에 관심이 있어요." (홍진희, 컬렉터) "해외에서 본 프리즈 아트페어는 실험적 느낌이 있어서 전시를 보는 것 같았는데 상대적으로 프리즈 서울은 상업적 느낌이 강했어요. 그럼에도 프리즈 마스터스 홀은 전시장처럼 느껴졌고, 함께 온 큐레이터들 모두 이 공간을 베스트로 꼽았습니다." (강정하, 금호미술관 큐레이터) "게르하르트 리히터와 게오르그 바젤리츠 같은 작품을 집에 두고 보기는 쉽지 않으니, 여기서 지금 샴페인을 들고 앉아서 감상하고 있었어요. 인상 깊었던 부스를 꼽는다면 단연 가고시안 이죠. 애콰벨라 갤러리도 오늘 보니 재밌었어요. 저는 원래 현장보다 pdf나 이메일로 구매를 하는 편이에요. 전체적인 분위기를 보고 또 내가 몰랐던 좋은 가격의 작품이 있나 알아볼 계획입니다. 지금은 글래드스톤 갤러리의 빅토르 만에 관심이 가네요." (익명 요청, 컬렉터) 1시간 만에 15점 판매한 하우저&워스 유명 작가들이 대거 포진해있는 '메가 갤러리' 하우저&워스는 첫 날 판매 리포트를 발표했는데, 오픈 1시간 만에 15점을 팔았다고 합니다. 공개된 내용에 따르면 팔린 작품들 대부분은 한국의 컬렉터나 사립 미술관, 그리고 일부 아시아 컬렉터가 구매한 것으로 보입니다. 주요 판매 작품을 보면...조지 콘도의 'Red Portrait Composition'(2022), 한국의 사립 미술관, 280만 달러니콜라스 파티, 'Clouds'(2022), 아시아 컬렉터, 32만5000달러안젤 오테로, Organic Summer(2022), 한국 사립 컬렉션, 17만5000달러에이버리 싱어, JUUL(2021), 한국 사립 컬렉션, 15만 달러 근데...다 외국 작가에요 현장 취재를 마치고 든 생각은, 프리즈 주최측이 오래 전부터 강조해왔던 '한국 미술과의 연결성' 부분입니다. 사실 어떤 것을 강조한다는 것은 역으로 그 부분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맹점일 수도 있잖아요? 프리즈 서울을 보면서 해외에서만 볼 수 있는 작품을 본다니 즐거웠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판매'가 되는 것은 외국 작가라는 점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즉, 프리즈 서울의 본질이 외국 갤러리가 한국에 와서 작품을 파는 것이라면, 그게 어떻게 한국 미술과 연결이 되고 도움이 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남는다는 거죠. 현장에서 외국 작가에 관심이 간다는 이야기를 해 주신 컬렉터도 많았습니다. "저는 김창열과 마이클 스코긴스 등의 작품을 컬렉팅해왔어요. 제가 기존 소장한 것과 결은 다르지만 뉴욕 기반의 Skarstedt 갤러리가 눈에 띄었습니다. 이 부스 앞에 KAWS 작품이 있었는데 코로나로 오랫동안 보지 못한 작품들을 직접 봐서 좋았어요. 미국 작가들이 좋았습니다."(우정우, 컬렉터) 다만 이러한 큰 미술 행사가 서울에서 열리는 것만으로 여러 가지 부대 효과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휠체어를 타고 '프리즈 서울' 현장에 온 김구림 작가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요. "갤러리들은 아무래도 경쟁을 생각할 수밖에 없으니 프리즈 아트페어가 달갑지 않을 수 있겠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이렇게 나와서 작품을 보니 좋아요. 특히 젊은 작가들이 해외에 가지 않고 가까운 곳에서 작품을 보고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면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김구림, 작가) "제가 알고 있던 대만이나 홍콩의 아시아 컬렉터 외에도 못 보던 컬렉터들이 서울을 방문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유럽에서 현장을 취재하러 온 에디터들도 많았어요. 이들이 프리즈만 보지 않고 키아프도 보고 갈테니, 전반적인 붐업이 이뤄지지 않을까요?"(이장욱, 스페이스K 큐레이터) 제작진은 이번주 프리즈 서울을 비롯해 여러 행사들을 취재하며 서울을 찾은 해외 미술인들이 한국 미술 '시장'의 성장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만, '한국 미술'은 잘 모른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오히려 미술보다는 K팝과 K컬처 이야기 하는 경우가 더 많기도 했고요. 그래서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었지만... 결국에는 메가 갤러리들을 '메기'로 삼아 한국 미술이 더 긴장하고 성장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의 의견도 들려주세요! ○ 해외 미술계 인사들이 찾은 한국 작가의 작업실 이런 가운데 프리즈 서울 개막을 앞둔 8월 31일, 경기도 양평에 해외에서 활동하는 큐레이터, 마케터, 기획자, 작품 판매 플랫폼 운영자 등 다양한 인사들이 모였습니다. 8월 29일부터 2박 3일간 진행된 'Dive into Korean Art'에 참가한 것인데요. 예술경영지원센터가 한국 작가를 알리기 위해 마련한 프로그램이었습니다. 프로그램 기획자인 김주원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실장, 윤혜정 국제갤러리 이사, 정일주 퍼블릭아트 편집장의 이야기와 함께 현장 분위기를 소개드리겠습니다. "프리즈에 가면 이미 보던 것들이 또 나올 거에요" 31일 양평 작업실 방문에는 카린 카람 아트시(Artsy) 글로벌 영업&파트너십 부사장, 지아지아 페이 전 유대인미술관 디지털 디렉터&구겐하임 디지털마케팅 부국장, 크리스찬 루이텐 'Avant Art-online' 창립자, 아론 세자르 영국 델피나 파운데이션 창립이사 등 다양한 분야의 구성원이 참가했습니다. 그런데 미국 뉴욕에서 활동하고 있는 지아지아 페이가 프로그램 참여 소감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을 하더군요. "'프리즈 서울'은 어차피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메가 갤러리들이 올 것이고, 그러면 거기서 보게 될 풍경도 미국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에요. 이미 봤던 것들보다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을 경험하고 싶은데, 작업실 방문이 그런 점에서 좋은 기회죠." (지아지아 페이, 미술관 디지털마케팅 전문가) 이 프로그램이 기획된 것도 같은 의도에서였습니다. 정일주 편집장은 이런 이야기를 들려 주었습니다. "현대미술을 주도하는 작가 중엔 아트페어와 전혀 무관한 사람도 짐작보다 많아요. 예를 들어 첫날 작업실을 공개했던 최우람이나 이예승, 김아영, 전준호&문경원의 작품이 프리즈나 키아프에 자주 걸리진 않으니까요. 페어에 맞춰 방문한 인사에게 시장과는 상대적으로 거리가 있더라도 역량있는 작가를 다양하게 소개하고 싶었습니다."(정일주, 퍼블릭아트 편집장) 작업실이라서 할 수 있는 이야기 특히 이들이 미술관이 아니라 작품이 쌓여 있는 작업실을 찾았다는 것도 새로운 포인트였습니다. 참가자들이 자유롭게 작업실을 돌아다니다가 작품을 꺼내어 보기도 하고, 또 작가에게 질문을 던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한 작가의 작품을 두고 미술관 큐레이터는 "우리 미술관 천고가 높아 디스플레이가 가능하다"고 묻고, 온라인 플랫폼 관계자는 "당신 작품을 온라인으로 소개할 때 유의할 점이 무엇인가"를 물었습니다. 레지던시를 운영하는 재단 이사는 "이렇게 조용한 곳에서 작업을 하면 기분이 어떠냐"고 묻기도 하더라구요. 현장에서는 '한국 미술을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으니 온라인으로도 이런 정보를 많이 공유해달라'거나, '해외 미술계와 한국 미술계의 교류가 더욱 많아지기를 바란다'는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관심은 충분하니, 재밌는 걸 어서 던져달라는 분위기였다고 해야할까요? 그런 점에서 오늘 레터는 한국에서 열심히 작업하고 계신 작가나 큐레이터분들에게 동기 부여가 되는 내용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영감 한 스푼’은 국내 미술관 전시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아래 링크로 구독 신청을 하시면 매주 금요일 아침 7시에 뉴스레터를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영감 한 스푼 뉴스레터 구독 신청 링크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151199김민 기자 kimmin@donga.com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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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가 신고 있는 것은 불평등과 환경 파괴의 산물”

    올해 2월 영국 소더비 경매에는 웬만한 예술 작품보다 훨씬 주목받은 출품 목록이 있었다. 다름 아닌 운동화다. 지난해 숨진 미국 패션디자이너 버질 아블로가 만든 ‘루이비통×나이키 에어포스1’ 200켤레가 나왔는데, 총 낙찰가가 2500만 달러(당시 기준 약 329억 원)였다. 한 켤레의 평균 가격이 1억6000만 원쯤 된다. 사실 이런 얘기 별로 놀랍지 않다. 낡아빠진 콘셉트의 스니커즈가 100만 원 가까이 하는 세상. 이젠 ‘스니커테크(스니커즈+재테크)’란 용어도 꽤나 익숙해졌다. 한정판 운동화를 힘겹게 구한 뒤 되팔아 수익을 거뒀다는 얘기도 심심찮게 들린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 등에 기고해온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저자는 오랫동안 의류와 제화 취재를 이어왔다고 한다. 관련 TV 다큐멘터리도 제작하는 그는 갈수록 거대화되는 신발 산업의 이면에 숨겨진 현실을 파헤친다. 이 정도 말하면 누구나 짐작하듯, 다국적 기업의 횡포나 열악한 노동 환경 같은 이슈들이다. 왜 하필이면 신발에 주목했을까. 저자는 “세계화의 추동력인 동시에 그 결과물”이 신발이라고 봤다. 신발은 제품 가운데서도 “생산의 세계화를 최초로 경험한 물품 가운데 하나”다. 통신과 운송 기술이 발달하고 제3세계로 저임금 노동시장이 퍼지면서, 신발을 만드는 건 세계적으로 이뤄지는 ‘지구적 공정’이 됐다. 미국에서 디자인하면 아시아에서 제조한 뒤 호주에서 팔리는 식이다. 2019년 기준으로 1년 동안 243억 켤레(하루 약 6600만 켤레)나 생산된다니 양도 어마어마하다. 저자는 휘황찬란한 세계화에도 불구하고 신발을 만드는 작업장은 너무나 열악하다는 점을 고발한다. 익명을 요구한 여성 노동자 셰브넴(가명)의 하루를 따라가 보자(그는 나라도 밝히길 꺼렸다). 1주일에 6일을 일하는 그는 오전 7시에 출근한다. 끝나는 시간은 ‘늦은 밤’. 계약서에는 근무시간이나 여건도 명확하지 않다. (근무일인) 토요일에 쉬면 안 되냐고 했다가 해고당한 동료도 있다. 점심시간은 딱 25분. 일하던 작업대에 그대로 앉아 집에서 싸온 도시락을 먹는다. 그가 만든 부츠는 유럽에서 200유로(약 27만 원)에 팔리지만, 셰브넴에겐 몇 달은 꼬박 일해야 모을까 말까 한 거액이다. 신발공장은 또 다른 위험도 상존한다. 독성 화학물질이다. 학자와 학생들로 구성된 한 비정부기구는 2016년 중국 광둥성에 있는 몇몇 공장에 비밀 감시팀을 보낸 적이 있다. 이들에 따르면 접착제나 세척용 화학물질을 다루는 직원들에게 회사는 너무나 엉성해서 보호 기능이 전혀 없는 장갑과 마스크를 지급했다. 그마저도 주지 않는 공장도 여럿이었다. 당시 자주 코피를 흘리는 등 몸에 이상 증세를 호소하는 현지 직원이 적지 않았다. 신발은 소모품이다. 해마다 200억 켤레 넘게 만든 신발은 언젠가 쓰레기가 되고 생태계를 해치는 요인도 된다. 물론 신발에 열광하는 이들도 이런 사실을 모를 리 없다. 굳이 깊게 신경 쓰지 않았을 뿐. 하지만 만약 이 책을 마주한다면 한 번쯤 떠올려 보자. 신발 수선법과 관련 시민단체를 지원하는 방법까지 세세하게 소개하는 저자의 진심을. 소비재의 문제가 신발뿐만은 아니지만, 진짜 신발을 사랑하는 법을 고민해 보게 한다.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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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佛 바닷가에 13m 조각품… 문신 재조명 열기

    프랑스 남부 바카라스 바닷가에는 높이 13m의 나무 조각품 하나가 우뚝 서 있다고 한다. 한국 근대 예술가 문신(1922∼1995)의 ‘태양의 인간’이란 작품으로, 1970년 바카라스에서 열린 국제조각심포지엄에서 처음 공개됐다. 현지에서는 올해 문신 탄생 100주년을 맞아 관련 페스티벌이 열리고 있다고 한다. 서울 중구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1일부터 선보인 기획전 ‘문신(文信): 우주를 향하여’는 머나먼 타국에서 왜 문신이란 예술가를 재조명하는지 엿볼 수 있는 기회다. 회화와 조각 등 232점과 아카이브 100여 점을 통해 그의 인생과 예술 활동 전반을 소개한다. 문신은 일제강점기 일본 규슈 탄광촌에서 한국인 이주노동자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다섯 살 무렵 귀국해 아버지 고향인 경남 마산에서 유년기를 보냈고 16세에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회화를 공부했다. 문신의 회화는 대담하고 역동적이다. 1945년 귀국해 주로 그린 마산 풍경은 특히나 인상적이다. 1전시장 입구 쪽에 조각 작품 ‘어부’(1946년)가 있고, 이를 화폭으로 옮긴 게 바로 옆 ‘고기잡이’(1948년)다. 어민들의 거친 삶이 살아 숨쉬는 듯 다가온다. 1961년 프랑스로 건너간 문신은 조각가로서 제2의 인생을 맞는다. 도불화가 김흥수 화백(1919∼2014)의 소개로 파리 서북쪽 ‘라브넬’ 고성 공사장에서 일하며 돌과 모래의 질감에 매료됐다. 미술관 측은 “조형의 기본 단위인 원과 선을 다양한 방식으로 결합해 형태 그 자체에서 리듬감과 음률을 느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관람객이 조각 작품을 보고 “개미를 닮았다”고 해 그대로 제목이 됐다는 ‘개미’(1970년)나 전시 부제로 달기도 한 조각 시리즈 ‘우주를 향하여’는 문신의 심오하고 도전적인 작품 세계를 잘 보여준다. 내년 1월 29일까지. 2000원.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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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술관 외벽에 애니 상영, 경계를 허무는게 재미”

    “회화 같은 순수예술도 해봤고, 픽사에서 상업영화도 경험해 봤죠. 이렇게 경계를 왔다 갔다 하며 노는 게 재밌습니다. 작가나 감독 같은 호칭에도 구애받고 싶지 않네요. 그냥 ‘스토리텔러’라고 불러주세요.” 땅거미가 내려앉으며 어둑해질 무렵. 서울 강서구에 있는 미술관 ‘스페이스K’ 외벽에선 뭔지 모를 동영상 하나가 상영됐다. 높이가 11m인 벽에선 유리를 깨고 나온 동그란 물체 사이로 작은 멍 자국 같은 것들이 피어난다. 그리고 눈물처럼 흐르다가 굳어버리는 검은색 액체. 그 속에서 갑작스레 빛이 퍼지며 꽃과 같은 형상이 깨어난다. 섬뜩했다가 아름다웠다가. 가만히 마주하다 보면 문득 세상 모든 게 덧없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몽환적인 반복이 눈길을 사로잡는 이 작품은 애니메이터이자 미디어아트 작가인 에릭 오(38)의 신작 애니메이션 ‘오리진(Origin)’. 서울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오 작가는 세계적인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인 미국 ‘픽사’에서 7년간 활동했다. 애니메이션 영화 ‘몬스터 대학교’(2013년) ‘인사이드 아웃’(2015년) ‘도리를 찾아서’(2016년) 등에 제작진으로 참여했다. 하지만 세상에 에릭 오란 이름을 제대로 각인시킨 건 “나만의 작업을 하고 싶어서” 픽사에서 나온 뒤 4년 동안 공들인 단편 애니메이션 ‘오페라’를 통해서였다. 독특한 피라미드 모형을 통해 인류의 역사를 묘사한 작품은 지난해 미 아카데미 단편영화상 후보에까지 올랐다. 오 작가에 따르면 ‘오리진’은 오페라의 “프리퀄 연작”으로, 이번 전시에서 처음으로 공개했다. 그는 “사실 둘 다 2016년에 함께 구상했던 작품”이라며 “오페라가 역사화라면, 오리진은 추상화에 가깝다”고 말했다. “두 작품은 같은 질문에서 시작됩니다. ‘우리는 어디에서 오고 어디로 가나’ 하는 거죠. 오페라가 인류사에 대한 탐구라면, 오리진은 그 너머에 있는 것을 영적으로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삶과 죽음’이란 주제에 관심이 많았어요. 삶의 흐름을 생각하면 원이란 이미지가 떠올라요. 그게 제가 세상을 바라보는 세계관이랄까요.” 작가의 말처럼 원을 닮아서인지 오리진은 딱히 ‘전형성’이란 게 없다. 캐릭터도 스토리도 분명하지 않으며, 영상도 그리 길지 않다. 오리진은 5분 정도 되는 분량이지만 시작과 끝이 애매모호하다. 오 작가는 이를 “회화적”이라고 설명했다. “하나의 그림을 감상한다고 떠올려 보세요. 감상 시간은 1초가 될 수도 있고, 2시간이 넘어도 상관없잖아요. 영화는 감독의 의도대로 화면을 구상하지만 제 작품은 ‘회화로서’ 관객에게 자유를 줍니다. 무수히 많은 뭔가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 관객이 생각과 시선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느끼고 얻는 게 모두 달라지는 거죠.” 신작을 영화관이 아니라 미술관 외벽에서 발표한 것도 이 때문이라고 한다. 지나가는 행인들을 대상으로 무작위로 상영한다. 누군가는 진지하게 관람할 것이고, 아니면 무심코 곁눈질하며 스쳐 지나갈 수도 있다. 이장욱 스페이스K 수석큐레이터는 “미술관 주변을 산책하는 시민들과 예술의 접점을 늘리자는 의도로 기획한 공공미술 프로젝트”라며 “현대미술의 다양성을 선보일 기회”라고 밝혔다. 오 작가는 앞으로도 이런 ‘경계 없는’ 작품 활동을 이어간다. 올해 10월 그가 연출로 참여한 4부작 애니메이션 ‘오니: 천둥 신의 전설’이 넷플릭스에서 선보인다. 지난해부터 미국에서 애니메이션 장편영화도 준비하고 있다. ‘스토리텔러’의 활동 반경은 멈추지 않고 갈수록 커지고 있다. 8월 24일부터 시작된 전시는 12월 2일까지 이어진다. 매일 오후 7시 반부터 11시까지 반복 상영된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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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성 담은 작품으로 학생 마음 어루만지고파”

    “감성과 진심을 담은 작품과 예술철학으로 학생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싶어요. 그들이 좀더 풍요로운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제 바람이자 기도입니다.” ‘빛의 화가’로 불리는 세계적인 스테인드글라스 예술의 거장 김인중 신부(82)가 KAIST에 둥지를 틀었다. KAIST는 “김 신부는 1일부터 산업디자인학과 초빙 석학교수로 임명됐다”며 “국제적인 명성과 독창성을 지닌 김 신부의 삶과 정신, 예술 역량을 구성원들과 나누기 위해 영입했다”고 30일 밝혔다. 프랑스 도미니크수도회 소속인 김 신부는 임기인 2024년 7월까지 KAIST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창작 작업도 병행한다. 작업실은 중앙도서관인 학술문화관에 마련됐으며, 현재 내년 3월 완공 목표인 학술문화관 3층 천창(天窓)에 스테인드글라스 작업을 하고 있다. 주로 프랑스에서 활동해온 김 신부는 2019년 중부도시인 앙베르에 ‘김인중 미술관’이 세워질 정도로 유럽에서 영향력이 크다. 서울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1965년 한국미술대상을 받은 전도유망한 화가였던 김 신부는 1974년 도미니크수도회에 입회하며 종교와 예술의 길을 함께 걸어왔다. 프랑스 샤르트르대성당과 생쥘리앵성당, 경기 용인시 신봉동성당 등 세계 50여 개 성당을 장식한 그의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은 “천사가 그림을 그리면 이와 같을 것”(미술평론가 웬디 베킷·1930∼2018)이란 극찬을 받아왔다. 스위스 언론이 뽑은 역대 스테인드글라스 작가 10인에 앙리 마티스(1869∼1954), 마르크 샤갈(1887∼1985)과 함께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김 신부는 자신의 작품을 “동양화도 서양화도 아닌 세계화(畵)로, 하늘을 보기 위해 무한히 앞으로 나아갈 뿐”이라고 설명한다. 2010년 프랑스 문화예술 공로훈장도 받았다. KAIST는 10월 4일 열리는 세미나 ‘서치 더 퓨처(Search the Future)’에서 김 신부의 특강을 준비할 계획이다. 김 신부가 추구해온 예술이 디자인과 어떤 연계성을 지니는지 살펴본다. KAIST 관계자는 “산업디자인학과 중점 교육 부문인 조명색채와 공간에 대해 지도할 예정”이라며 “대학 전반에 새로운 영감을 불어넣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김 신부 역시 “뛰어난 과학도들이 자리한 KAIST에 오게 돼 무척 기쁘다”고 화답했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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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쭈뼛쭈뼛 갤러리, 섞여서 가면 어깨 쭉

    “예전보다 많이 대중화됐지만 아직도 ‘혼자 미술갤러리에 들어가는 건 불편하다’는 분들이 적지 않더라고요. 그런 분들은 단체로 함께 전시도 보고 해설을 들으면 부담도 작고 만족도가 매우 높습니다.” 지난해 ‘미술주간’의 대표 프로그램인 ‘미술여행’에서 활동했던 송은교 전시해설사(28)는 올해 미술주간에 대한 기대도 무척 크다. ‘미술의 대중화’라는 측면에서 전시 해설을 찾는 시민들의 반응이 워낙 좋아 관계자들도 큰 힘을 얻는다고 한다. 올해 8회째를 맞는 ‘2022 미술주간’의 슬로건은 ‘미술에 빠진 대한민국’. 해당 미술관이나 아트페어, 비엔날레, 비영리 전시공간에서 무료 혹은 할인받은 입장료로 관람할 수 있다. 다음 달 1일부터 11일까지 전국 223개 전시기관에서 동시에 열린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주관한다. 특히 올해 미술주간은 안팎에서 기대가 크다. 다음 달 2일부터 한국국제아트페어(KIAF·키아프)와 프리즈 서울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리기 때문이다. 문체부 관계자는 “키아프와 프리즈 공동 개최는 미술시장 성장이란 측면에서도 중요하지만 대중의 관심이 커져 미술 저변이 확대된다는 면에서 더 고무적”이라고 말했다. 시민들의 눈길이 가장 많이 쏠리는 프로그램은 올해 역시 미술여행이다. 서울과 경기 충청 전라 경상 강원 제주 등 전국 7개 권역에서 20개 코스를 마련했으며, 모두 60회 동안 운영할 계획이다. 전문해설사와 함께 전시 2∼4개를 묶어서 보는데 해마다 신청이 늘고 있다. 올해도 18일부터 진행한 예약이 30일 기준 벌써 정원(800명)의 90%가 찼을 정도다. 갈수록 중장년층과 가족 단위 참여율이 높아지는 게 특징. 송 해설사는 “젊은 관람객들도 꾸준하지만 부부나 가족이 함께 찾는 경우도 갈수록 늘고 있다”며 “지방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의 예약률이 상당히 높아진 점도 눈에 띈다”고 전했다. 전국 전시관 11곳에서 ‘예술과 기술’이란 주제로 개최하는 다양한 전시 연계 프로그램도 눈여겨볼 만하다. 대전시립미술관과 아트선재센터, 코리아나미술관 등이 참여하는데 가상현실(VR) 체험 등을 마련했다. 다음 달 1, 2일 서울 중구 페럼타워와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리는 ‘한국 미술 시장 학술대회’도 미술 교양을 쌓는 데 도움이 될 프로그램. 충북 충주와 경남 창원, 전남 순천, 광주에서는 청년 작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작가 미술장터’가 열린다. 김현진 예술경영지원센터 시각예술유통팀장은 “최근 3년 동안 포털사이트에서 미술주간이 열리는 시기에 ‘미술’에 대한 언급이 폭발적으로 늘어날 정도로 관심이 크다”며 “시민들이 일상에서 미술에 흠뻑 빠지는 행사가 되도록 열심히 준비하겠다”고 소개했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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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더 맛있게 먹고 싶은 욕망이 인류의 진화를 도왔다

    누군가는 현대인들의 최대 고민이 ‘점심 메뉴 선정’이라고 한다. 일리가 있다.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머리를 싸매는 이유는 음미하는 순간 주어지는 행복 때문이 아닐까. 그럼 옛날 옛적 우리 조상들은 어땠을까. 구석기시대 채집으로 먹고산 인류에게도 ‘최애’ 열매가 있었을까. 먹거리가 풍부한 시대에 음식은 쾌락의 영역에 속한다. 반면 구석기시대 사람들에겐 즐거움보단 생존의 문제였다. 이로 인해 과학계는 과거 음식을 연구할 때 ‘맛’이란 측면은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미식(美食)은 오직 요리사나 주방장이 등장해야 가능한 것으로 여겼다. 하지만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 응용생태학과 교수와 의료인류학자인 저자들은 이런 단정이 잘못됐다고 반박한다. 음식을 즐기는 행위는 인류의 진화에서 중요한 원동력이었다고 본다. 학계에서 간과했던 ‘맛’을 진화생물학적 관점에서 재정립한 것이다. 책에 따르면 ‘하나의 종이 어떤 먹이에 끌릴까’는 “쾌락”과 연관성이 높다. 먹이가 지닌 영양분과 포식자의 육체가 요구하는 영양분이 궁극적으로 일치할 때 쾌락이 발생한다는 설명이다. 살점이나 내장을 먹는 육식 동물들은 “허기를 채우는 것만으로도” 이런 쾌락을 얻을 수 있다. 반면 초식 동물이나 잡식 동물은 단지 배부른 걸로는 부족하다고 한다. 이들은 “향미(香味)”를 근거로 뭘 먹을지 결정한다. 여기서 향미란 향이나 식감 등을 총체적으로 일컫는 개념이다. 저자들은 잡식 동물인 인류는 이런 향미를 추구하는 본능이 진화를 이끌었다고 봤다. 향미를 의식하면서 이와 관련된 새로운 도구를 발명하기도 했다. 인류와 가장 비슷한 미각을 지닌 침팬지는 막대기로 꿀을 떠먹고, 돌로 견과류를 부숴 먹는다. 인류가 불을 사용한 것 역시 날것보다 익힌 음식이 더 맛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도구로 음식을 가공하면서 점차 턱 근육이 축소되고 치아 크기가 줄었으며 대장은 짧아졌다. 향미에서도 ‘향’은 특히 인류의 뇌 진화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진화 과정에서 단순한 한 가지 향보다 여러 복합적 향이 나는 화합물이 좋다는 걸 알게 됐다. 때문에 일부러 음식을 ‘변질시키는’ 고기 굽기나 치즈 발효를 발명했다. 향은 뇌의 학습 능력을 늘리는 데도 도움을 줬다. 향을 통해 관련 기억을 뇌에 저장할 수 있었다. 또 어떤 향이 포함된 음식을 자주 맛볼수록 그에 대한 판단이 더욱 정교해지기도 한다. 현대의 소믈리에는 연습을 통해 이런 “범주화”가 가능해진 향미 전문가라 볼 수 있다. ‘카테고리’는 기억력을 높이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다. 맛의 쾌락은 인류를 둘러싼 생태계도 바꿔 놓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매머드의 멸종이다. 석기시대 북아메리카 원주민의 ‘클로비스’ 유적에는 길이가 긴 창촉이 자주 등장한다. 매머드 등 덩치 큰 대형 동물을 사냥하기 좋은 무기다. 한마디로 고기가 너무 입에 맞다 보니 지나치게 과잉 소비한 것. 클로비스 인류가 북아메리카로 건너온 시점과 매머드와 같은 동물의 멸종 시기가 일치하는 건 우연이 아니다. 현생 인류가 호모 사피엔스라는 건 주지의 사실. 흔히 ‘슬기로운 사람’이란 뜻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사피엔스는 본디 “맛보다”란 의미를 지녔다고 한다. 진지한 과학책이지만, 괜히 주변에 있는 음식에 눈이 가게 만든다. 가만히 향기를 맡다 보면 수천 년 인류의 역사가 스며든 기분이 든다. 물론 ‘당연히’ 배도 고파진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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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영우의 진심, 각자 보물상자에 넣어뒀으면”

    “연기를 한다기보다 영우란 인물의 생각과 진심을 이해하고 (시청자들에게 이를)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면 자폐인과 그 가족분들도 받아들여 주시지 않을까 했거든요. 김밥은…, 촬영 때 하도 먹어서 이젠 별로 생각나지 않아요. 하하.” 18일 종영한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누가 뭐래도 우영우를 연기한 배우 박은빈(30)이 없었다면 성공을 보장하기 어려웠다. 제작진 역시 “(출연을) 1년 동안 기다렸다”고 할 정도였다. 서울 강남구의 한 카페에서 22일 만난 그는 “들뜨지도 않고 신나하지도 않으려 한다. 관찰자 같은 입장에서 현재를 바라고자 노력하고 있다”며 진중한 모습을 보였다. 박은빈은 아역으로 시작해 벌써 27년 차 배우지만, 알려진 대로 우영우 역할을 여러 차례 고사했다. 그는 “과연 잘해낼 수 있을까 확신이 없었다”며 “어떤 말투와 행동으로 영우를 보여줄 수 있을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아 두려웠다”고 했다. “촬영 때마다 심사숙고했어요. 영우는 특별함과 사랑스러움이 공존하는 캐릭터예요. 영우가 가진 가능성과 잠재력을 놓치지 않기 위해 장애를 지녔다고 해서 방어적으로 접근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이상하다는 인상을 주면서도 동시에 ‘이상하지 않게’ 일 잘하는 모습도 보여드려야 하니까요.” 이날 인터뷰 내내 박은빈은 고래가 그려진 보라색 노트를 지니고 있었다. 그는 “드라마를 준비하며 작품과 캐릭터에 대한 심경을 적은 ‘생각 노트’”라며 “영우를 연기하는 게 옳은 일인지, 혹시 누군가에게 불쾌감을 주진 않을지 고민했던 흔적이 남아 있다”고 털어놨다. 박은빈은 드라마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3회 때 변호사를 관두려 했던 장면을 꼽았다. 그는 “영우가 좋은 변호사란 뭔가를 고민하다가, 그렇게 원했던 변호사란 직업을 내려놓는 걸 보면서 용감하고 철학이 뚜렷하다고 느꼈다”며 “이런 성정이기에 드라마에서 보여주지 못했던 세월도 잘 헤치고 나온 거구나 하며 공감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가장 ‘애정하는’ 대사도 있습니다. 마지막 회에서 길 잃은 외뿔고래를 얘기하며 ‘모두가 저와 다르니 적응하기 쉽지 않고, 저를 싫어하는 고래들도 많다. 그래도 괜찮다. 이게 제 삶이다. 제 삶은 이상하고 별나지만 가치 있고 아름답다’라고 말하죠. 영우가 그간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았어요.” 최종회 시청률 17.5%를 기록하며 사회적 신드롬을 일으킨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이미 시즌2에 대한 기대가 쏟아졌다. 하지만 박은빈은 성원에 감사하다면서도 조심스럽다고 밝혔다. “마지막에 ‘뿌듯함’으로 끝난 영우의 모습을 사진 찍듯 남겨 각자의 보물 상자에 넣어두시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요. 저도 정말 뿌듯한 마음으로 영우를 보내주고 싶거든요. 만약에라도 그 보물 상자를 다시 열어보자고 한다면…, 처음에 영우를 마주하기로 맘먹었을 때보다 훨씬 더 큰 결심이 필요할 것 같아요.”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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