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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 중 모바일 증강현실(AR) 게임인 ‘포켓몬고’를 하다 교통사고를 낸 30대 남성이 경찰에 입건됐다. 포켓몬고로 인해 발생한 국내 첫 교통사고다. 16일 대전 서부경찰서에 따르면 7일 포켓몬고 게임을 하면서 운전을 하던 원모 씨(31)가 횡단보도를 건너던 한모 씨(33)를 차로 친 혐의(교통사고특례법 위반)로 불구속 입건됐다. 경찰에 따르면 원 씨는 이날 포켓몬고 게임을 하며 대전 서구 도안동의 한 공인중개사 앞 사거리 근처를 지나던 중 스마트폰 화면 왼쪽에 포켓몬이 나타난 것을 확인했다. 마음이 급해진 원 씨는 급히 좌회전을 했고, 마침 횡단보도를 건너던 한 씨를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부딪혔다. 한 씨는 타박상 등 전치 2주의 부상을 입었다. 경찰 관계자는 “신호등이 없는 사거리에서 시속 30km 정도로 주행하다 난 사고이기 때문에 사고 자체는 경미했다”면서 “원 씨가 발견한 포켓몬이 어떤 종류인지는 따로 진술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포켓몬고는 지난달 24일 한국 출시 후 큰 인기를 모으고 있다. 그러나 계속 이동하면서 몬스터를 잡는 게임 특성 때문에 안전사고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권기범기자 kaki@donga.com}

“한국에서 ‘스노폴’ ‘파이어스톰’을 만든다고?” 지난해 2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인터랙티브 기획취재 지원 모집공고가 떴을 때 처음 든 생각이었다. ‘2013년 퓰리처상 기획보도’ 부문을 차지해 전 세계 언론에 엄청난 충격을 던진 뉴욕타임스(NYT)의 스노폴의 여파가 가시기도 전에 또 다른 놀라움을 선사한 가디언의 ‘파이어스톰’ 속 화려한 영상들이 스쳤다. 각종 동영상과 인포그래픽이 넘실대며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줬던 그 기사, ‘읽지 않고 시청하는’ 기사의 신기원을 만들어낸 그 기사를 과연 한국 언론이 구현할 수 있을까. 게다가 우리가 그 일에 도전해야 한다고? 오 마이 갓! 그냥 지나치기에는 ‘최대 6000만 원’이라는 지원금의 유혹이 너무 컸다. 또 디지털 부서에서 일하는 이상 무슨 일이라도 시도해봐야 했다. 인터랙티브나 웹 언어를 모르고 개발자와 디자이너와의 협업 경험도 전혀 없는 평범한 신문기자들의 ‘삽질’은 이렇게 시작됐다. ○‘드론’을 선택한 이유 기획취재 주제는 ‘드론’으로 잡았다. 팀원 중 드론을 아는 기자는 아무도 없었다. 드론이 무엇이냐고 묻는 기자도 있었다. 그냥 정보기술(IT)과 관련이 많고 디지털 느낌이 물씬 난다는 막연한 이유에서 ‘드론’을 택했다. 누군가 말했다. “있어 보이잖아.” 서점으로 달려가 드론 관련 책들을 샀다. 책 몇 권 분량에 달하는 드론 관련 기사들도 찾았다. 책 몇 권과 기존 기사를 읽어보니 살짝 감이 오는 듯도 했지만 여전히 막막했다. 그냥 세계 유명 드론업체를 방문해 신문 기사를 쓰는 게 아니라 신문 기사도 쓰고 동시에 인터랙티브 웹페이지도 만들어야 한다니 두통이 몰려왔다. 취재 지원작으로 뽑힐 지 알 수 없으니 기획안이나 써보자는 심정으로 드론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중후장대’를 좋아하는 데스크의 성향을 반영해 프로젝트 제목도 ‘드론이 바꾸는 세상’이라고 거창하게 뽑았다. 10장에 달하는 기획안을 한 땀 한 땀 정성들여 썼다. 고3 때 논술 시험을 이렇게 했으면 지금 다른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론진흥재단에 지원서를 접수했다. 약 3주 후 “축하합니다”라는 회신이 왔다. 회사 통장에는 연봉에 맞먹는 거금까지 들어왔다. 이제 물러설 곳이 없었다. ‘스노폴’은 못 만들어도 화면에 눈송이 하나는 날려줘야 했다. ○섭외하는 데만 6개 월 공들여 2016년 3월부터 중국 DJI와 이항, 프랑스 패럿, 이스라엘 엘빗시스템과 IAI 등 세계 유명 드론업체에 취재 요청 메일을 보냈다. 이중 우리를 가장 힘들게 한 곳은 패럿. 세계에서 가장 먼저 가상현실(VR) 드론을 만든 패럿의 문을 여는 데 무려 6개월이 걸렸다. 한국 언론에 한 번도 프랑스 파리 본사를 공개하지 않았던 패럿은 이메일을 계속 무시했다. 본사 홍보 담당자 ‘바네사’에게만 20통이 넘는 이메일을 보냈다. 3개월 후에야 첫 답변이 왔다. “여름 휴가 때문에 힘들 것 같아.” 온갖 험한 욕이 튀어나오려 했다. 굴하지 않고 계속 메일을 보냈지만 여전히 응답이 없었다. 같은 해 8월이 되니 중국, 미국, 이스라엘, 일본을 방문한 기자들이 속속 취재를 마쳤다. 유럽만 남은 상황에서 패럿만 기다릴 수 없었기에 ‘포기 아닌 포기’를 했다. 독일과 스위스의 VR 비행 및 드론 전문가와 취재 약속을 잡고 9월 말 유럽으로 떠났다. 열심히 취재를 마치고 귀국을 하루 앞둔 날. 독일 본의 아름다운 라인 강변에 앉아 있는데 갑자기 바네사가 메일을 보내왔다. “우리 지금 만나.” “진짜?” “응.” 즉시 서울행 비행기를 파리행으로 바꾸고 숙소와 통역을 구한답시고 난리를 쳤다. ‘눈알이 튀어나올 정도로 바쁘다’는 말을 실감했다. 이런 소동을 겪은 끝에 2016년 10월 3일 파리 10구에 있는 패럿 본사에 당도했다. 본사 2층에서 VR드론 ‘디스코’를 직접 조종해본 경험은 기자 인생에서 가장 짜릿한 순간이었다. 고글 하나를 쓰고 아이들 장난감 같은 드론을 잠시 조종했을 뿐인데 ‘하늘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신’이 된 기분이었다. 이 외 ‘세계 최초의 드론 택시’를 발명한 슝이팡 이항 창업자(28), 한 대에 100억 원을 호가하는 고가 군사용 드론을 생산하는 이스라엘 업체들을 한국 언론 최초로 직접 취재한 것은 정말 값진 경험이었다. 각종 규제 등으로 중저가 드론 시장은 중국에, 고가 드론 시장은 미국과 이스라엘에 내주고 있는 한국의 현실이 안타까웠다. ○“우리 한국어로 대화하고 있죠?” 취재를 완료하고 인터랙티브 웹페이지 제작에 돌입했다. 기획자, 개발자, 디자이너 등 다양한 직군과 협업해야 했지만 제작 쪽 인력도 기자들도 같이 일해 본 경험이 전무했다. 약 10명의 인원이 모인 첫 회의 날. “저희도 인터랙티브는 잘 모르지만 NYT 스노폴 아시죠? 대충 그런 느낌 나게…” “페이지 넘어갈 때 스크롤 다운과 슬라이드 중 어떤 걸로 할까요? 인덱스 기능은? API 코드는?” “네? 뭐라고요?” 서로가 서로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한국어로 얘기하는데 이렇게 외계어처럼 들릴 수 있구나 싶었다. 개발자와 디자이너는 “어떻게 구현해 달라는 건지 전혀 모르겠다”고 가슴을 쳤고, 기자는 “태어나서 처음 이런 일을 해보는데 어쩌란 말이냐”고 한숨을 쉬었다. 원시 부족이 벽화 속 그림으로 대화하듯 떠듬떠듬 그림을 그려 “이렇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회의에 회의를 거듭하면서 어느 정도 서로의 언어를 이해할 수 있었다. 촉박한 일정, 부족한 인력과 자원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도 대충 감이 왔다. 기본 플랫폼은 집으로 말하면 일종의 ‘모듈 주택’인 제로보드를 택했다. 쉽고 빨리 각종 동영상과 콘텐츠를 얹을 수 있는데다 개발자나 디자이너의 손길이 많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취재 기자들이 세계 각국 드론업체에서 찍어온 사진과 동영상, 국내 드론 전문가들이 촬영한 드론 이미지와 동영상, 각종 드론 전문가들이 제작한 드론 관련 콘텐츠가 하나둘씩 쌓이며 서서히 인터랙티브 웹페이지의 위용이 갖춰지기 시작했다. ‘스노폴’과 ‘파이어스톰’에는 미치지 못하더라도 어디 내놓기 크게 부끄럽지 않은 수준은 된다는 확신이 섰다. 천신만고 끝에 역작(?)을 완성했지만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기사 게재 시작 및 인터랙티브 웹페이지 오픈이 한 달 넘게 미뤄졌다. 기다림 끝에 2016년 11월 25일 ‘드론이 바꾸는 세상()’을 세상으로 내보냈다. ○1년 간의 ‘삽질’이 준 교훈 부끄럽지만 디지털 부서에 오기 전에는 디지털 혁신에 관해 “기사를 빨리 써서 온라인으로 송고하고 사진과 표를 좀 많이 붙이면 되는 거 아니냐” “편집과 사진 촬영까지 취재 기자가 곧 하게 되겠네” 정도의 생각만 가지고 있었다. 업무를 시작한 후에는 “그래봐야 젊은 친구들이나 보는 스낵 컬처(snac culture) 아니냐. 깊이가 없다.” “디지털로 돈을 벌 수 있느냐”는 시선이 생각보다 널리 퍼져있음을 알고 당황스럽기도 했다. 이처럼 디지털 콘텐츠 생산과 이를 통한 미디어 혁신에 대한 기자들의 생각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뉘는 듯 하다. 권력 감시라는 저널리즘의 본질에 충실해야 한다는 쪽, ‘종이’가 아니라 ‘모바일과 소셜미디어’라는 신생 플랫폼에 특화된 콘텐츠를 생산해야 한다는 쪽, 둘 다 맞지만 한 쪽으로만 치중하긴 어려우니 둘 다 잘해야 한다는 쪽. 세 가지 주장 모두 옳다. 또 일선 기자에게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에 대한 결정권도 없다. 분명한 점은 세상이 변했고 사회와 독자는 언론인에게 점점 더 많은 역량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널리즘의 본질에 충실한 묵직한 기사도, 톡톡 튀는 감각으로 무장한 다양하고 차별화한 콘텐츠 모두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언론사도, 언론인 개개인도 살아남을 수 없다. 무엇이 더 중요하고 어디에 우선점을 두느냐는 논쟁은 이미 의미가 없어진 것 같다.‘드론이 바꾸는 세상’ 특별취재팀하종대·하정민·이영혜·송충현·권기범 기자}

15일 오후 서울의 한 탈북단체 사무실 앞. 굳게 닫힌 문에는 잠금장치 2개가 달려 있었다. 각각 비밀번호와 지문을 입력하는 방식이다. 옆에 있는 인터폰을 통해 들려온 목소리는 무겁고 조심스러웠다. 이들은 신분을 물은 뒤 1분 가까이 지나서야 문을 열었다. “얼마 전만 해도 중국 정부가 잘 보호하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몇 년을 조심하다가도 잠깐만 방심하면 이렇게 죽어 버리는구나 싶더군요.” 탁자 위에 놓인 신문을 바라보며 A 씨는 허탈한 듯 말했다. 그는 2000년대 초반 북한을 탈출했다. 전날 언론을 통해 김정남 피살 소식을 접했다는 A 씨는 대화 내내 수시로 신문을 내려다봤다. 가끔 김정남 사진에 손가락을 대고 동그라미를 그리기도 했다. 그는 이날 오전 담당 형사와 경호 관련 이야기를 나눴다고 전했다. “그나마 한국에 있어서 안전하긴 해요. 그래도 당분간 몸조심해야죠.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 죽일 수 있는’ 사람들이잖아요.”○ 탈북자들 충격과 공포 소식을 전해들은 국내 탈북자들과 탈북단체 측은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이다. 김정남이 오래전부터 수차례 살해 위협을 받은 것 때문이다. 현인애 남북하나재단 이사(60·여)는 “김정은 입장에서는 중국의 보호를 받는 김정남이 항상 두려웠을 것”이라며 “북한의 김정남 암살 시도가 계속됐기 때문에 탈북자들은 ‘언젠가 일어날 일’로 보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탈북자 B 씨는 “숙청된 장성택이 김정남에게 해외 도피 자금을 제공했다고 들었다”며 “탈북자 사이에서는 장성택 처형 후 ‘김정남은 필연적으로 죽을 목숨’이라는 말이 오갔다”고 설명했다. 탈북자들도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이날 탈북자들이 사용하는 모바일 메신저에는 ‘김정은이 무섭다’는 글이 끊이지 않았다. 김정아 통일맘연합 대표는 “수십 명의 탈북자가 참여하는 대화방에서 ‘친형이나 다를 바 없는 김정남을 죽인 걸 보면 김정은은 정말 무서운 사람’이라는 이야기가 끝도 없이 이어졌다”고 전했다. 무엇보다 김정남이 공공장소인 공항에서 피살되면서 “한국에서도 안심할 수 없다”는 반응이 쏟아지고 있다. 서울 한복판에서 비슷한 일이 발생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는 분위기다. 그동안 공개적으로 활동하며 북한을 비판해온 탈북자들의 활동이 당분간 위축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방송 등에서 김정은 체제를 수차례 비판했던 탈북자 C 씨는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공항에서 대담하게 벌어진 암살에 크게 놀랐다”며 “눈에 잘 띄지도 않는 물건으로 목숨을 순식간에 앗아갈 수 있다니 무서울 뿐”이라고 말했다. 북한인권단체 관계자인 D 씨도 “그간 공개적으로 활동하던 탈북자들이 다른 탈북자와의 만남도 꺼리게 될 것”이라며 “북한인권 관련 활동이 위축될까 걱정”이라고 진단했다.○ 경찰 경호도 초비상 경찰은 “주요 탈북인사 등에 신변보호팀을 추가로 배치했다”고 15일 밝혔다. 특히 경찰 2명이 24시간 밀착 경호하는 ‘가급’ 인사의 경호를 강화했다. ‘가’ ‘나’ 등으로 분류되는 인사 중 가장 높은 단계인 ‘가급’ 인사는 현재 국내에 수십 명으로 추정된다.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 북한 외교관 출신 탈북자인 고영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부원장, 그리고 대북전단 살포 등으로 2011년 독침 암살 대상으로 지목됐던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또 담당하는 탈북 인사에게 해외 출국 자제를 요청하거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상담에 나서기도 했다. 일반 시민들도 불안함을 호소하고 있다. 특히 이번 사건이 북-중 관계에 미칠 영향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주부 서계연 씨(49)는 “미사일을 쏜 지 얼마 되지 않아 김정은이 형제를 죽였다고 하니 나라 안팎이 불안해질 것 같아 걱정스럽다”고 말했다.권기범 kaki@donga.com·김배중 기자}

법원에는 매일 사건이 접수되고, 판사는 선고를 내린다. 판결문 중에는 신문이나 TV에 나오진 않지만 보는 이로 하여금 헛웃음을 짓게 하거나, 어처구니가 없어 인상이 찌푸려지는 이야기가 꽤 있다. 최근 내려진 두 개의 판결에 담긴 이야기는 후자의 경우다. 첫 번째는 올해 스물세 살이 된 여성 A 씨의 이야기다. A 씨는 2015년 12월경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으로 B 씨를 만났다. 올해 서른 살이라는 B 씨와 A 씨는 사귀게 됐다. 하지만 만남이 순탄치 않았던 모양이다. A 씨는 이듬해 4월경 전화로 B 씨에게 헤어지자는 이야기를 꺼냈다. 그 순간 B 씨의 거친 대답이 들려왔다. “X같은 X.” “XX 같은 X.” 섬뜩한 협박도 이어졌다. “네가 벗는 모습을 몰래 찍은 사진을 갖고 있는데 인터넷에 퍼뜨릴 거다.” 그 후 이별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A 씨에 대한 B 씨의 집착은 계속됐다. 그해 7월, 두 사람은 서울의 모처에서 만났다. 승용차 안에서 A 씨는 B 씨에게 또 다시 헤어지자는 이야기를 꺼냈다. 이번에는 주먹이 날아왔다. “나랑 헤어지려면 니가 맞아야 돼. 그래야 헤어질 수 있어.” 협박, 폭행 혐의로 기소된 B 씨는 벌금 300만 원을 선고받았다. 또 다른 이야기의 주인공은 여성 C 씨와 그의 남자친구 D 씨다. 지난해 6월말 두 사람은 서울 송파구의 한 건물 1층에 있는 방에 함께 있었다. 두 사람이 옷을 벗고 잠자리를 하려는 찰나 창문 밖에서 이상한 낌새가 느껴졌다. 남자친구가 밖으로 나갔더니 어느 50대 남성이 있었다. 두 사람을 몰래 훔쳐보려다 들킨 그는 결국 벌금 50만 원을 선고받았다. 만일 이 여성이 혼자 있었다면, 50대 남성이 있는 걸 알았어도 제지할 수 있었을까. 요즘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적어도 자기만의 섬뜩한 경험담을 한두 개 쯤은 가지고 있는 듯하다. “집에 혼자 있을 때면 밖에서 누군가 문을 두드리다 사라진다”, “창문을 열어 놓고 샤워하다 창문 바깥에 있던 ‘눈빛’과 마주쳤다”, “어두운 밤길을 걷는데 뒤에서 발걸음이 들려 뛰어 도망쳤다”는 경험담은 식상할 정도다. 판결문에서는 엿보기 어려운 섬뜩함은 현장에서 느껴진다. 지난달 서울 강남구의 한 빌라 주차장에서 이모 씨(35·여)가 전 남자친구 강모 씨(33)에게 폭행당해 숨진 사건이 그랬다. 현장에서 만난 목격자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집안에 있었는데 어디선가 ‘퍽퍽’하는 소리와 ‘아아악’하는 비명 소리가 함께 들려왔어요. 살펴보니 반바지 차림의 남자가 어슬렁어슬렁 걸어 나오는 게 보였고. 창문 너머로 누군가 거칠게 내뱉는 숨소리가 들렸죠. 잘 살펴보니 웬 여성이 축 늘어진 채로 엎드려 있었습니다….” 머리와 상체 인근에 피가 너무 많이 흘러, 목격자는 처음에 이 씨가 벽돌 같은 둔기에 맞아 쓰러진 줄 알았다고 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강 씨가 이 씨의 머리를 발로 밟아댄 것이었다. 이 씨는 두개골 골절 등으로 사경을 헤매다 결국 숨졌다. 강 씨는 살인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해 데이트 폭력 집중 단속·수사로 8000여 명이 입건됐다고 한다. 신고되지 않는 각종 위협까지 친다면 여성들은 더 많은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위협에 저항하려는 이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서 지속적으로 여성 대상 범죄를 비판한다. 그러면 이내 이들에게 ‘전체 남성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한다’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쏟아진다. 물론 이유 없이 특정 성별을 비난하고 비하한다면 문제다. 하지만 그에 앞서 이렇게 생각해볼 수는 없을까. 트위터 같은 SNS를 중심으로 여성 대상 범죄를 비판하는 강경한 목소리가 계속 나오는 건, 어쩌면 그들이 ‘신체적 정신적으로 안전하다’고 느낄 만한 공간이 오프라인(off-line)에 없다고 느끼고 있는 것이라고. “어두운 길로 퇴근할 때마다 심장이 벌렁댄다”는 여성과 더 공감하는 사회가 되길. 권기범 기자 kaki@donga.com}

기온이 영하 8도까지 떨어진 10일 오전 서울 성동구의 마장축산물시장. 마장풍물회 회원 10여 명이 시장 골목을 누비며 징과 꽹과리를 두드려댔다. 풍물회 단장 이교국 씨(70)는 “정월대보름(11일)을 앞두고 구제역으로 침체된 시장 사람들에게 힘내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손님은 눈에 띄지 않았고 상인들은 시큰둥했다. 한 상인은 “당장 물건 수급도 안 돼서 싱숭생숭한데…”라며 등을 돌렸다. 구제역 위기 경보가 ‘심각’ 단계로 격상되고 살아 있는 가축의 이동이 금지되자 서울에서 유통되는 쇠고기의 50% 이상이 거쳐 가는 육류 전문 유통시장인 마장축산물시장의 분위기는 날씨만큼이나 쌀쌀했다. 상인들은 “설 연휴 뒤 일주일 만에 구제역이 창궐해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하소연했다. 청탁금지법의 여파로 지난해 추석에 비해 설 매출이 40∼50% 줄어든 마당에 구제역이라는 악재까지 겹쳐 타격이 더 커졌다는 것. 실제로 몇몇 상점 앞에는 설 연휴에 팔아치우지 못한 선물세트가 그대로 쌓여 있었다. 축산물품질평가원에 따르면 9일 한우의 경매 낙찰가는 구제역이 시작되기 전인 지난달 29일보다 7∼24% 뛰었다. 구제역으로 쇠고기 공급량이 줄어들자 시장에선 매출이 더 떨어질 것 같다는 우려가 이어졌다. 충북 음성군에서 물량을 공급받는 상인 정삼주 씨(47)는 “들어오는 물량이 평소의 40%로 곤두박질쳤다”며 “도매가도 올라 소 한 마리를 팔 때마다 50만∼60만 원씩 손해를 보게 생겼는데 물량까지 부족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상인들은 다음 주가 이번 사태의 고비가 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박재홍 마장축산물시장 상점가 진흥 사업 협동조합 이사장은 “이번 주말 구제역이 확산된다면 2월 매출에 큰 타격을 입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15년 12월부터 홍콩으로 한우를 수출해온 태우그린푸드는 이날 오후 마장동 본사 사무실에서 조규근 대표 주재하에 대책회의를 열었다. 조 대표는 “며칠 전 홍콩에서 수입 금지 조치는 없다는 공문을 보내와 한숨을 돌렸지만 안심하긴 이르다는 판단에 회의를 열었다”며 “사태가 빨리 마무리돼 홍콩에서 ‘한국소는 다 병들었다’ 같은 유언비어가 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반면 소규모 식당 운영자들이나 일부 시민은 “가격이 뛰기 전에 고기를 사둬야 한다”며 급히 시장을 찾기도 했다. 외국에 있는 아들에게 주기적으로 한우를 사서 보낸다는 김모 씨(56·여)는 양손 가득 고기가 든 봉지를 들고 “가족의 건강이나 가격 인상을 생각하면 오늘 미리 사는 게 맞지 않냐”고 말하기도 했다. 서울 성북구 정릉 인근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유호덕 씨(83)는 식당 직원을 동원해 고기를 사 날랐다. 유 씨는 “가격이 얼마나 오를지 가늠이 안 돼 오늘 새벽같이 주문한 돼지고기를 받으러 왔다”고 했다. 고기가 가득 담긴 비닐봉지 2개와 어른 몸통만 한 아이스박스를 직원과 나눠 든 그는 힘에 겨운 듯 택시를 타고 시장을 떠났다.권기범 기자 kaki@donga.com}
안종범 전 대통령정책조정수석비서관(58·구속 기소)에게 뇌물을 건넸다는 혐의(뇌물공여)를 받고 있는 박채윤 와이제이콥스메디칼 대표(48)가 구속됐다. 서울중앙지법은 범죄 사실이 소명되고, 증거 인멸의 염려가 있다는 이유로 박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고 4일 밝혔다. 박 대표는 최순실 씨(61·구속 기소)의 단골 성형외과 원장인 김영재 씨(57)의 부인이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따르면 박 대표는 수차례에 걸쳐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보테가 베네타' 가방 등에 현금을 수백만 원씩 담아 화장품과 함께 건넨 혐의를 받고 있다. 또 안 전 수석과 부인에게 리프팅 시술 등도 무료로 해준 것으로 알려졌다. 특검팀은 위와 같은 방식으로 안 전 수석에게 명품 가방, 의료 시술 등 수천 만 원 상당의 뇌물을 전달한 혐의로 2일 박 씨에 대한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했었다. 최근 언론 등을 통해 공개된 안 전 수석과 박 대표의 통화 녹취에 따르면 안 전 수석은 박 대표에게 뇌물을 받은 뒤 "덕분에 와이프한테 점수 많이 땄다"고 말한 바 있다. 또 추석 연휴 전 만나자고 요구하는 박 대표와의 만남을 미루자는 취지로 말하며 "(추석이) 지나도 (선물을) 받겠다"고 말하기도 했다.권기범기자 kaki@donga.com}

‘마취 사고! 저의 정신과 몸에 큰 고통을 주었습니다. 제가 끊임없이 몸부림치는 동안에 많은 간호사가 저를 누르고 있었습니다. 마치 고문 같았습니다!” 지난달 서울 서초구 A성형외과 앞에 어설픈 한글 입간판이 등장했다. 옆에는 선글라스를 낀 한 남성이 서 있었다. 이 성형외과에서 의료사고를 당했다며 1인 시위를 벌이는 중국인 관광객 리모 씨(30)다. 리 씨는 지난해 12월 30일 얼굴 주름을 펴는 필러 시술을 받았다. 그러나 시술이 끝나자마자 갑자기 부축하는 간호사들에게 화를 내고 수술실 장비를 마구 부쉈다. 간호사의 어깨를 주먹으로 때리기도 했다. 이 모습은 병원 폐쇄회로(CC)TV에 고스란히 찍혔다. 그는 병원에 수술비 140만 원과 항공료 등 2000만 원을 요구했다. 병원 관계자는 “리 씨는 심지어 간호사에게 ‘내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으니 나와 잠을 자야 한다’고도 했다”고 말했다. 참다못한 병원 측은 리 씨를 고소했다. 서초경찰서는 공갈과 폭행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리 씨를 구속했다고 2일 밝혔다. 리 씨는 다른 병원 3곳에서도 돈을 요구하며 1인 시위와 공갈을 이어온 ‘상습범’이었다.○ 한국 성형업계 노린 ‘블랙컨슈머’ 확산 한국을 찾는 중국인 의료관광객은 크게 늘었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국내에서 진료를 받은 중국인 환자는 2011년 1만9000명에서 2015년 9만9000명으로 늘었다. 2015년 서울 강남구를 찾은 외국인 환자 5만4533명 중 2만2876명(41.9%)이 중국인이다. 의료업계를 노리는 블랙컨슈머(악성 소비자)도 덩달아 늘고 있다. 대부분 성형외과가 타깃이다. 중국 온라인에 게시된 한국 성형관광 후기 중에는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을 경우 수술비 일부나 전부를 돌려받은 내용도 적지 않다. 경찰 등에 신고해 해결했다는 글도 있다. 문제는 일부 중국인이 이를 악용해 의도적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강남의 B성형외과에 한 중국인 여성이 왔다. 이 여성은 “수년 전 받았던 안면윤곽수술이 잘못돼 얼굴이 비대칭이 됐다. 자살해 버리겠다”며 로비에서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보름 가까이 1인 시위를 벌였다. 병원이 경찰에 신고를 하자 이 여성은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다. C성형외과도 지난해 7월 “가슴 성형이 잘못돼 양쪽 가슴이 짝짝이가 됐다”며 행패를 부리는 중국인 여성 탓에 곤욕을 치렀다. 이 병원은 경찰 신고 대신 합의금을 건네는 방법을 택했다. 병원 관계자는 “수술에는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단됐지만 문제를 키우고 싶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중국인 블랙컨슈머를 만났을 때 병원 대부분이 타협을 선택하는 이유는 바로 매출 때문이다. 성형관광에서 중국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인 가운데 관광업계나 중국 온라인에 잘못 소문이 날 경우 매출에 큰 타격을 입기 때문이다. 실제로 “웨이보(중국 최대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올려 너희를 망하게 하겠다”는 협박은 중국인 블랙컨슈머들의 단골 발언이다.○ 바가지 성형관광의 부메랑 중국인 블랙컨슈머의 출현은 한국 성형업계가 자초했다는 시각도 있다. 내국인 비용보다 2, 3배에서 많게는 10배 가까이 바가지를 씌우거나 대리 의사가 집도하는 이른바 ‘유령 수술’이 성행하면서 한국 성형업계의 신뢰를 크게 떨어뜨렸다는 것이다. 상하이(上海)에서 온 팡위안 씨(24)는 “한국 성형외과 의사와 중개인들이 한 팀이 돼 중국인 관광객을 속인다고 들었다”며 “블랙컨슈머가 아닌 진짜 피해자라고 생각하지만 만약 그런 사람이 있어도 한국의 잘못이다”고 말했다. 시술 과정에서 피해를 입어 소송이나 형사 사건으로 번지는 일도 끊이지 않고 있다 2015년 6월 불법 임신중절 수술을 받던 중국인 여성을 뇌사에 빠뜨린 혐의로 서울의 한 의원 원장이 구속됐다. 지난해 9월에는 중국인 여성이 지방흡입시술 부작용을 호소하며 성형외과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1심에서 일부 승소하기도 했다.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따르면 2012년부터 4년간 의료분쟁으로 상담한 중국인은 266명에 달한다. 권영대 대한성형외과의사회 홍보이사는 “실제 피해를 본 외국인 관광객은 투명하게 구제해주고 불법 시술업체는 강하게 처벌하는 등 블랙컨슈머와 실제 피해자를 구별할 수 있는 정책적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권기범 기자 kaki@donga.com}

지난해 11월 경북 구미시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 입구. 40대 여성 A 씨는 ‘박근혜 퇴진’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하다 봉변을 당했다. 갑자기 한 남성이 A 씨의 멱살을 잡고 흔든 뒤 피켓을 부수었다. 이 남성은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 회원이었다. A 씨는 “나는 시민단체 회원도 아니고 그저 평범한 구미시민일 뿐”이라며 황당해했다. 퇴진 반대 시위도 공격 대상이다. 새해 첫날인 지난달 1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앞 도로에서 보수단체 회장 장모 씨를 폭행하고 그의 트럭을 부순 B 씨(24)가 경찰에 붙잡혔다. 장 씨의 트럭에는 ‘대통령님 힘내세요. 탄핵 무효’라는 문구가 커다랗게 적혀 있었다. 지난달 28일 조모 씨(61)는 ‘탄핵 가결 헌재 무효’라고 쓰인 태극기를 들고 아파트에서 투신해 숨졌다. 11차 촛불집회가 열린 지난달 7일 정원 스님(64)은 “박근혜는 내란 사범”이라고 적은 유서를 남긴 채 분신했다. ‘탄핵 시계’가 빨라지면서 정치적 견해차로 인한 갈등이 곳곳에서 불거지고 있다. 특히 갈등 표출이 분신과 투신 등 극단적 양상으로 번지자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평화 뒤에 숨은 ‘혐오의 전투’ 탄핵 찬반을 둘러싼 구호의 수위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지난달 30일 오후 8시 반경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서울시 직원들과 박사모 회원들 사이에 몸싸움이 벌어졌다. 박사모는 투신해 숨진 조 씨를 기리는 분향소를 광장에 설치해줄 것을 요구하며 서울시와 대치하고 있다. 이날 몸싸움 도중 누군가가 “폭력은 안 되겠지만 위협적인 모습을 보여줄 필요는 있다. ‘린치’를 가할 필요가 있다”란 말도 터져 나왔다. 반대의 목소리 중에도 섬뜩한 표현이 많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에는 “늙었으면 민폐 끼치지 말고 곱게 뒤져라 틀딱(틀니를 딱딱거리는 사람)들” 등 극단적인 표현과 이를 부추기는 댓글이 매일 수백 건씩 판박이처럼 올라온다. 경기지역의 한 기초의원 지지자 커뮤니티에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반대 결사대 모집, 노인들이 애국하는 길은 입수(入水) 신청입니다”라며 고령층을 비꼬는 내용의 글이 게시돼 논란이 일고 있다. 해당 의원은 “누군가 분열을 조장하며 이런 글을 올린 것 같다. 강력한 법적 대응을 할 것”이라고 분을 감추지 못했다.○ 극단과 배제의 정치는 공멸의 길 탄핵 정국과 맞물려 특정 단체와 관련 없는 일반인 중에도 극단적 행동을 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경제적 어려움 등 자신의 처지를 현 상황 탓으로 돌리는 경우다. 지난해 12월 김모 씨(73·엿장수)가 “나도 음주운전으로 처벌받았는데 최순실 사태는 제대로 처리되지 않아 화가 난다”며 국회 담장에 불을 질렀다가 31일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지난해 11월에는 굴착기 임대업자 정모 씨(45)가 대검찰청 정문으로 굴착기를 끌고 돌진했다. 탄핵 정국이 길어지면서 자신의 의견을 가족 친구 등에게 강요하거나 반대로 강요받는 상황도 자주 마주한다. 대학생 김하민 씨(27)는 촛불집회에 나갔다는 이유로 설 연휴 때 예상치 못한 비난을 들었다. 김 씨는 “어떤 친척들은 ‘군중심리 때문에 간 것’ ‘계엄령으로 좌파를 모두 잡아들여야 하는 것 아니냐’ 등 도가 지나치게 나무랐다”며 “건강한 논쟁이 될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아예 대화를 중단하고 자리를 피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상황을 두고 ‘극단과 배제의 정치가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백승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자신의 이념적 가치를 잃지 않고 지키려는 심리가 특정 사람을 광적으로 지지하는 행태로 이어지는 것”이라며 “내가 지지하는 사람만이 세상의 전부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형준 명지대 정치학과 교수는 “최근 정치 상황을 보면 지지층의 극단적 행동을 자제시키기보다 방치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며 “개헌과 경제민주화 등 편협한 주제를 벗어나 포용과 통합의 리더십이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최지연 lima@donga.com·김동혁·권기범 기자}

모바일 증강현실(AR) 게임 ‘포켓몬고’ 열풍이 대한민국 설 풍경을 바꿨다. 귀성길, 귀경길 차 안에서, 할아버지 할머니 집이나 동네에서 스마트폰을 들고 ‘헤매는’ 사람들이 폭증한 것이다. 애플리케이션(앱) 분석기관 와이즈앱에 따르면 24일 국내 공식 출시된 포켓몬고는 당일 283만 건의 다운로드를 기록했다. 23∼29일 실제 앱 이용자 통계인 주간활성이용자 수도 698만4000명을 넘었다. 차양명 와이즈앱 대표는 “게임 앱의 주간활성이용자 수는 많아야 200만 명 안팎”이라며 “보기 드문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설 풍경도 바꿔버린 포켓몬고 포켓몬고 게임은 설날 28일 하루에만 국민 10명 중 1명꼴인 524만 명이 이용했다. 보통 차례를 지내고 세배, 성묘를 한 뒤에는 각자 일상으로 돌아가거나 윷놀이, 고스톱이 고작이었던 가족, 친척들을 의기투합하게 만들었다. 이날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내 조각공원에는 많은 사람들이 포켓몬고를 하며 배회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공원의 주 산책로에서 벗어난 곳에 있는 조각공원 산책로는 겨울에는 인적이 드물다. 오전 영하 7도까지 기온이 떨어졌지만 평소와 달리 손에 든 스마트폰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사람이 많이 모인 것이다. 아이를 따라온 아버지도 적지 않게 눈에 띄었다. 게임 출시와 함께 이곳은 캐릭터 사냥에 필요한 ‘몬스터볼’ 같은 아이템을 충전할 수 있는 ‘포켓스톱’이 조각공원의 작품마다 설정돼 캐릭터 성지(聖地)로 입소문이 났다. 캐릭터 사냥을 왔다는 직장인 정모 씨(45)는 “인적이 드문 곳으로 알고 찾았는데 인파가 넘쳐 놀랐다”며 “사람들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조금 민망했다”고 말했다. 설 연휴 서울 광화문광장, 강남 일대 카페에도 커플, 친구, 가족 및 친지 단위의 캐릭터 사냥꾼들이 몰렸다. 한파와 폭설을 피해 앉은 자리에서도 캐릭터 사냥이 가능한 곳을 찾았기 때문이다. 이들은 한자리에서 모바일 기기를 만지며 캐릭터 관련 정보를 나눴다.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일하는 직원 이모 씨(22·여)는 30일 “한번 자리를 잡으면 너무 오래 자리를 뜨지 않아 난감하다”고 말했다. 캐릭터 등장 관련 정보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공유되면서 포켓몬과 역세권을 합쳐 캐릭터가 자주 등장하는 명당이라는 뜻을 가진 ‘포세권’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포켓몬고 150여 캐릭터는 특성에 따라 공원, 물가, 숲 등 특정 장소마다 등장하는 종류와 빈도가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게임 이용자들은 귀성, 귀경 도중 캐릭터가 있을 만한 제3의 행선지를 찾아다니기도 했다. 10대 자녀 둘을 둔 직장인 김모 씨(47)는 “부산에서 서울로 올 때 경부고속도로 대신 해안 국도를 이용해 애들과 ‘불가사리’ ‘쏘드라’ 등 물 관련 캐릭터를 사냥했다”고 말했다.○ 몬스터 잡느라 안전사고 우려도 포켓몬고 열풍과 더불어 안전사고 우려도 커졌다. 경찰에 따르면 걸으며 스마트폰을 사용할 때 주변을 인지하는 거리는 평소보다 40∼50% 감소한다. 시야 폭과 전방 주시율도 각각 56%, 15% 정도 줄어든다. 포켓몬고가 출시된 24일부터 30일까지 동아일보 취재진은 서울, 경남 통영시, 충북 청주시 일대에서 게임을 하며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김상옥 수석연구원에게 자문해 안전문제를 진단했다. 대로변, 물가, 산악지대를 가리지 않고 등장하는 캐릭터가 특히 위험했다. 서울 세종대로, 강남대로, 통영시 중앙로같이 사람과 차량이 많이 모이는 8차로 이상 대로변에도 포켓몬 캐릭터가 다수 등장했다. 한 취재진은 캐릭터를 사냥할 때 쓰는 몬스터볼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캐릭터에 한발 다가서려다 차도로 뛰어들 뻔했다. 게임을 하며 발생할 수 있는 위험 상황을 막을 방법도 없다. 게임 시작 전 ‘주변을 살필 것’ ‘위험 장소에 가지 말 것’ 등 다양한 경고가 공지되지만 ‘OK’ 터치 한 번이면 지나갈 수 있다. 차량 주행 중 ‘이동속도가 빨라진다’는 경고창이 뜨지만 ‘운전자가 아니다’라는 버튼만 누르면 게임을 진행할 수 있다. 김 수석연구원은 “캐릭터가 등장하는 시점에 특히 사용자의 주의력이 떨어지며 차도에 발을 내딛는 등 돌발행동을 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며 “대로변이나 혹은 주행 중에는 게임 사용을 중지하는 캠페인을 벌이는 일 외에 위험 상황을 기술적으로 차단하는 조치를 마련할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했다.김배중 wanted@donga.com·김재희·권기범 기자}

일본군 위안부 강제 동원 문제를 다룬 책 ‘제국의 위안부’를 써서 피해 할머니들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박유하 세종대 교수(60·사진)가 1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서울동부지법 형사합의11부(부장판사 이상윤)는 25일 “전체적인 내용이 ‘한일 신뢰 구축을 통한 화해’라는 공공 이익을 위한 것에 가까워 위안부 피해자들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하려는 목적이 있다고 볼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기소 당시 박 교수가 책을 통해 △위안부 피해자의 본질이 매춘이라고 함축적으로 주장하고 △위안부 피해자는 일본군과 동지적 관계이며 △일본 또는 일본군에 의한 강제 동원 또는 연행이 없었다는 허위 사실을 적시했다고 주장했다. 이로 인해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가 훼손됐다며 징역 3년을 구형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문제가 된 문구 35개 중 대부분(30곳)을 “구체적 사실의 적시로 볼 수 없다”는 이유로, 3곳은 “사실을 적시했으나 명예훼손으로 보긴 어렵다”는 이유를 들어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봤다. 박 교수에게 무죄가 선고되자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즉각 반발했다. 이용수 할머니는 재판이 끝나자마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박 교수를 향해 “친일파다, 친일파. 유죄로 해야 되는데 이건 안 된다”고 소리쳤다. 박 교수는 취재진의 질문에 아무 말 없이 법원을 빠져나갔다.권기범 기자 kaki@donga.com}

일본군 위안부 강제 동원을 '매춘'으로 표현한 책 '제국의 위안부'를 써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박유하 세종대 교수(60·여)가 1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서울동부지법 형사합의11부(부장판사 이상윤)는 25일 "박 교수가 명시적, 묵시적으로 위안부가 자발적이었다고 적시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박 교수가 책을 통해 위안부의 본질을 '매춘'으로 적시했다는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 박 교수가 책에서 '조선인 위안부 역시 일본제국 위안부와 기본적 관계가 같다'고 표현한 부분에 대해 "자발적으로 위안부가 됐다고 암시하는 표현으로 보기 어려운 의견 표명"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책에 나오는 '강제 연행은 개인의 범죄로 국가 범죄로 볼 수 없다'는 표현에 대해서도 "피해자를 특정하기 어려워 유죄로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날 재판부가 무죄 선고 주문을 읽는 동안 재판정에 나온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이 나라는) 법도 없습니까. 친일파입니까" "저 X의 죄를 유죄로 해야 하는데 이건 안됩니다"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박 교수가 2013년 출간한 책 '제국의 위안부'는 '위안부는 일본군과 동지적 관계였다' 등의 표현 때문에 위안부 역사 왜곡 논란에 휘말렸다. 피해 할머니들은 2014년 9월 이 책의 출판 판매 등을 금지해달라는 가처분 신청과 함께 1인당 손해배상 3000만 원을 청구하는 민사 소송을 제기했다. 1심 재판부는 "박 교수는 피해 할머니들에게 1000만 원씩을 배상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고, 박 교수가 항소를 한 상태다. 현재 시중에는 책의 내용 중 문제가 된 34곳이 삭제된 책이 판매되고 있다.권기범 기자 kaki@donga.com}

새벽 시간대 서울 지하철 전동차에서 불이 나 승객 100여 명이 긴급 대피했다.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서울메트로의 사고 대응을 놓고 논란이 일었다. 22일 소방당국과 서울메트로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6시 28분 서울메트로 소속 2036호 열차가 2호선 잠실역을 출발해 잠실새내역(옛 신천역) 플랫폼으로 진입하던 도중 멈춰 섰다. 10량 열차의 9번째 객차까지 들어선 직후였다. 2분 뒤 차량을 제 위치에 세우고 열차 밖을 내다본 기관사는 앞에서 2번째 차량 아래쪽에서 불꽃과 함께 연기가 나는 것을 발견했고, 부역장이 소방당국에 신고했다. 불은 소방관 등에 의해 약 30분 뒤 꺼졌다. 전동차 일부와 스크린도어가 탔고, 역 근무 직원 1명이 “속이 메스껍고 머리가 아프다”며 병원을 찾았다. 지하철은 1시간 10분가량 운행이 중단됐다. 열차가 멈춘 직후 기관사의 지시를 받은 차장이 “전동차 안에서 기다리라”는 안내 방송을 반복한 것을 두고 “불이 났는데 차 안에 승객들을 붙잡아 놓은 게 부적절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사고 직후 불꽃과 연기를 발견한 탑승객 6, 7명이 대피 방송 전 이미 수동 레버를 이용해 전동차 문을 열고 대피하기도 했다. “해당 열차에 타고 있었다”는 한 누리꾼은 “열차 안으로 연기가 들어오는데도 아무 조치가 없어 비상문을 열고 나왔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이 열차 차장이 10번째 객차의 승객들을 대피시킨 뒤 열차를 살폈을 때 이미 다른 객차의 승객 대부분은 몸을 피한 뒤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메트로 관계자는 “연기가 나는 것을 본 뒤 바로 대피 방송을 하는 등 매뉴얼을 따랐다. 초기 대응에는 문제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해당 열차 차장은 이날 6시 29분 “차량 고장으로 비상 정차해 조치 중이니 코크(비상 손잡이) 및 출입문을 열지 말고 안전한 차내에서 잠시 기다려 달라”고 3차례 안내 방송을 했다. 이후 화재가 확인되자 6시 31분경 바로 “출입문을 열고 즉각 대피하라”고 방송했다는 것이다. 이에 앞서 사고 15분 전 이 열차가 강변역 인근에서 전기 공급 중단으로 몇 분간 멈췄지만 제대로 정비하지 않은 것은 문제라는 지적도 나왔다. 당시 기관사는 상황만 살핀 뒤 다시 열차를 출발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메트로 관계자는 “통상적인 상황”이라며 “잠실새내역 사고와의 관련 여부는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메트로는 이번 사고가 열차 아래 단류기(과전류를 차단하는 장비)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고 정확한 사고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권기범 기자 kaki@donga.com}
‘사용자 제작 콘텐츠(UGC)를 인용하려면 철저한 사실 검증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세계 최대 디지털 언론단체인 온라인뉴스협회(ONA)가 지난해 발표한 ‘소셜 뉴스 수집에 관한 윤리 규약’의 첫 번째 조항이다. 확인되지 않은 루머와 가짜 뉴스로 인한 피해가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됐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세계 최대 언론단체인 세계신문협회(WAN-IFRA)는 ‘뉴스룸의 10대 흐름’ 보고서(2014년)를 통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내용 검증법’을 다뤘다. SNS 루머의 신빙성 검증에서 첫 번째 단계로 꼽은 것은 ‘출처’다. 루머를 퍼뜨리는 계정이 개설된 시기가 지나치게 최근이거나, SNS ‘친구’가 지나치게 적다면 계정의 신뢰성을 의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루머를 퍼뜨리는 사용자의 ‘위치 데이터’ 확인도 권장했다. 정보가 ‘한국’ ‘서울’ 등으로 지나치게 모호하거나 엉뚱한 장소로 돼 있다면 의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루머의 내용은 ‘육하원칙’에 맞춰 검증해야 한다. 사건 발생 장소 또는 지명이 실재하는지, 루머에 등장하는 날짜나 날씨가 실제와 일치하는지 등을 검색해 대조할 수 있다. 최근 미국에서는 푸에르토리코에 세워진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동상과 백악관 전경을 합성한 뒤 “오바마가 퇴임 직전 자기 동상을 만들어 백악관에 세워놨다”고 주장하는 가짜 뉴스가 퍼졌다. 이처럼 루머에 사진이 첨부돼 있다면 옛날 사진을 재활용했거나 합성한 건 아닌지 살펴봐야 한다. 사진의 등록정보 격인 교환이미지파일형식(EXIF) 조회를 통해 촬영 일자 등이 루머와 일치하는지 확인하는 방법도 있다. 루머에 등장하는 인물이 가짜가 아닌지도 검증해야 한다. 엉뚱한 인물을 ‘해외의 유명 석학’으로 돌변시키는 수법의 가짜 뉴스도 있기 때문이다. 한 정보기술(IT) 업체 관계자는 20일 “해외 권위자의 주장이라고 포장해 허위 내용을 사실인 양 퍼뜨리는 사례가 최근 늘고 있다”며 “전문가의 실존 여부는 인터넷 검색으로 비교적 쉽게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권기범 기자 kaki@donga.com}

15일 오전 8시 서울 서초경찰서에 난데없이 20~50대 여성 100여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45인승 관광버스 2대를 나눠 타고 온 이들은 하나 같이 들 뜬 표정이었다. 손에는 일본어로 '소루(ソル)' '미라클(ミラクル·Miracle)'라고 쓰여진 손팻말과 펼침막 꽃다발이 들려 있었다. 이들은 손을 호호 불며 경찰서 본관 출입구를 둘러싸고 섰다. 잠시 후 청록색 제복을 한 청년이 출입구를 통해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계단 위에 서서 인사하자 여성들은 기다렸다는 듯 일제히 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질렀다. 일본인들은 꽃목걸이와 꽃다발을 안겨주며 축하 인사를 건넸다. 팬들이 "축하한다, 잘 돌아왔다", "제복 입은 걸 보니 어른스러워졌다"라고 말하자 청년은 "변치 않고 기다려줘 감사하다"며 인사를 건넸다. 평범한 의경 복장이지만 청년은 일본에서 유명한 아이돌이다. 바로 김솔 씨(30). 그가 속한 '코드브이(V)'는 2012년 일본에서 데뷔해 오리콘 일간 차트에서 최고 3위, 주간 차트에서는 최고 5위의 성적을 거두기도 했다. 이날 경찰서를 찾은 일본인들은 김 씨의 전역을 축하하기 위해 2박 3일 일정으로 한국을 찾은 골수팬이었다. '소루'는 그의 이름 솔을 일본어 식으로 발음한 것이었고, '미라클'은 그의 팬클럽 이름이었다. 이들은 14일 오후 입국해 김 씨가 다니던 교회와 김 씨의 어머니가 운영하는 식당 등을 찾았고 이날은 전역한 김 씨와 함께 한정식을 즐기기도 했다. 김 씨는 2010년 한국에서도 데뷔했었다. 하지만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고 우연한 기회에 일본에서 활동하게 됐다. 그러다 나이가 차 입대시기가 다가왔고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친구들의 조언을 들어 의경을 택했다. 사실 그는 복무를 시작할 때부터 잘생긴 외모로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김 씨는 일부러 연예인 활동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동료들이 편견을 갖거나 불편해하진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 탓에 동료들은 그가 아이돌인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오히려 동료들보다 나이가 많아 '아저씨' 취급을 받기도 했다. 김 씨 앞으로 매일 펜레터와 일본 과자가 도착했을 때도 동료들은 그에게 "솔사마 대단하다"고 말하기만 했다. 하지만 이날 등장한 일본인 팬들 덕분에 그의 인기가 확인되자 동료뿐 아니라 경찰 간부들도 놀라는 눈치였다. 전역 이틀 뒤인 17일 머리까지 염색한 김 씨가 경찰서에 인사를 오자 간부들과 의경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그와 나란히 서 '인증샷'을 찍기도 했다. 한 경찰은 "친하게 지낼 걸 그랬다"며 아쉬워했다. 김 씨는 "처음 복무를 시작한다는 소식을 알렸을 때 일본 팬들이 '전쟁터에 나가는 것이냐'며 슬퍼했던 기억이 난다"며 "2년이 훌쩍 지나 무사히 전역해 기쁘다"고 말했다. 전역 전부터 틈틈이 노래 연습과 일본어 공부를 해온 김 씨는 3월 일본으로 출국해 전국 콘서트를 시작으로 다시 활동을 시작할 계획이다. 김 씨는 "내 인기를 반신반의하시던 부모님이 이번 팬들의 방문을 보시고 매우 기뻐하셔서 뿌듯했다"며 "일본에서의 활동도 지켜봐 달라"고 당부했다.권기범 기자 kaki@donga.com}

17일 오전 1시 서울 송파구의 한 전통시장에서 원인 모를 불이 났다. 다행히 소방당국의 빠른 조치로 10여 분 만에 진화됐다. 짧은 시간인데도 건물 일부와 집기 등을 태워 120만 원가량의 피해가 났다. 불이 시장 전체로 번지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었다. 지난해 11월 대구 서문시장과 15일 전남 여수수산시장의 대형 화재 소식을 알고 있던 상인들과 근처 주민들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경찰이 근처 폐쇄회로(CC)TV를 확인했다. 모자 달린 점퍼를 입은 사람이 라이터(추정)로 상자에 불을 붙이는 장면이 찍혔다. 경찰은 전통시장 대형 화재의 영향을 받은 모방범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16일 본보 취재진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서울 시내 전통시장 8곳을 둘러봤다. 현장 상황은 충격적이었다. 전등과 전선에는 먼지가 뽀얗게 앉았고 뜨거운 전기난로를 종이상자와 신문지로 감싼 경우도 있었다. 약간의 방심이 참사로 이어질 수 있는 환경이었다. 누리꾼들은 “시장의 안전은 상인들 스스로 지켜야 하는 것 아니냐”, “이러다 불나면 누구를 탓할 것인가”라며 상인들을 비판했다. 일부 상인들도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영등포구 전통시장에서 만난 한 50대 상인은 “층마다 물건이 가득해 불나면 죄다 타버릴 것”이라며 “한번 불이 나봐야 정신을 차릴 것 같다”고 걱정했다. 하지만 이렇게 걱정하는 상인은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의 상인은 코앞에 다가온 설 대목에 더 신경 쓰고 있다. 잡화점을 운영하는 김모 씨(68·여)는 “전통시장에서 계속 불이 나 걱정스럽기는 한데 명절이 다가오니 다른 생각을 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그나마 서울은 나은 편이다. 지방의 전통시장 상황은 더 심각하다. 국민안전처는 지난달 전국 전통시장 1256곳에서 합동 안전점검을 펼쳤다. 그 결과 4곳 중 1곳(319곳·25.4%)이 화재에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부산은 전체 119곳 중 절반에 가까운 52곳(43.7%)에서 위험요인이 확인됐다. 전통시장 화재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겨울만 되면 발생하는 ‘계절 행사’다. 그때마다 지방자치단체와 소방당국은 현장점검을 하고 대책을 내놓는 등 부산을 떨었다. 하지만 근본적인 개선 없이 땜질 처방에 그치면서 참사가 반복되고 있다. 2014년부터 2년 동안 전통시장 17곳이 화재안전점검을 실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불이 났다. 여수수산시장도 화재 발생 약 40일 전 안전점검을 받았다. 대형 마트에 빼앗긴 손님을 되찾겠다며 진행 중인 현대화사업도 다시 살펴봐야 한다. 인테리어와 편의시설 개선에 급급해 가장 중요한 방화시설 확충에 소홀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상인들도 스스로 먼지 쌓인 콘센트나 벗겨진 전선 등 주변의 숨은 위험을 찾아보는 습관이 필요하다. 단속 중심의 점검보다 안전의식을 높이는 점검이 필요한 이유다. 그렇지 않으면 서문시장과 여수수산시장의 악몽은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다. 권기범·사회부 kaki@donga.com}

청와대 ‘왕실장’으로 불렸던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78)은 17일 오전 서울 강남구 대치동 박영수 특별검사팀 사무실에 출석하면서 입을 굳게 다물었다. 검찰총장과 법무부 장관을 거쳐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을 지내며 법조계의 실세로 군림했지만 특검의 칼날은 피하지 못했다.○ “김기춘 소환은 ‘공안 통치’ 단죄의 의미” 특검의 김 전 실장 소환 조사는 단순히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을 주도한 혐의(직권남용)를 확인하려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는 인사들을 따로 분류해 불이익을 주는 ‘편 가르기’ ‘공안 통치’의 책임을 묻겠다는 게 특검팀의 생각이다. 공안 검사 출신으로 박정희 정부의 유신헌법 초안을 작성했던 김 전 실장은 자신의 색깔을 박근혜 정부의 정책 기조 전반에 투영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뒤 정부에 비판적인 여론이 확산되자 김 전 실장은 블랙리스트를 이용해 반(反)정부 성향이 강한 문화예술계의 지형을 바꾸려고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김 전 실장은 문화체육관광부 1급 공무원 및 문화예술위원회 심의위원 인사에 개입한 혐의(직권남용)도 받고 있다. 김 전 실장이 블랙리스트 작성과 이를 실행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사람들을 배제하려고 했다는 게 특검의 판단이다.○ “‘블랙리스트’ 최종 책임자는 대통령” 특검 수사로 블랙리스트의 위헌성이 입증될 경우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결정에도 큰 영향이 미칠 것으로 보인다. 특검은 그동안 블랙리스트에 대해 “표현과 언론의 자유를 보장한 우리 헌법의 정신을 위반한 것”이라고 밝혀 왔다. 여기엔 블랙리스트 작성과 실행을 총괄 지휘한 혐의를 받는 김 전 실장을 넘어서 박 대통령이 최종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미가 깔려 있다. 특검이 김 전 실장을 상대로 박 대통령이 블랙리스트 작성과 운용에 어떻게 관여했는지 집중 추궁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박 대통령의 구체적인 개입 정황이 확인될 경우 헌재가 탄핵을 인용하는 사유에 포함될 가능성이 있다. 특검은 김 전 실장뿐 아니라 함께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한 조윤선 문체부 장관에 대해서도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한편 특검은 김경숙 전 이화여대 신산업융합대학장(62)을 업무방해와 위증 등의 혐의로 18일 구속했다고 밝혔다. 김 전 학장은 최순실씨(61)의 딸 정유라 씨(21)의 이화여대 입학과 학사 특혜를 주도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신나리 journari@donga.com·권기범 기자}

“가게 안에 스프링클러가 하나도 없네요. 화재경보기도 한 곳밖에 없고요.” 16일 서울 강서구 까치산시장 내 점포들을 살펴보던 양성훈 소방기술사(40·한빛안전기술단 부장)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2200m² 면적에 늘어선 점포 150여 개의 상황은 큰 차이가 없었다. 콘센트 주변은 습기로 차 있었고 절연 테이프를 감은 낡은 전선들이 간판 밖으로 아무렇게나 삐져나와 있었다. 양 기술사가 다시 전선 위를 가리켰다. 시커먼 먼지가 쌓여 있었다. 양 기술사는 “먼지를 우습게 봐서는 안 된다”며 “스티로폼과 옷 이불 비닐천막 등과 함께 가연성이 높은 물질로 꼽힌다”고 지적했다. 불이 났을 때 초기 진압을 위해서는 소방차 진입로 확보가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이날 찾은 시장의 입구 폭은 소방차 진입을 위한 최소 폭(4m)에 미치지 못했다. 양 기술사는 “소방차를 멀리 세워 두고 호스를 끌고 들어가면 시간이 오래 걸려 초기 진압이 어려워진다”며 “아직 많은 전통시장이 비슷한 상황이다”고 말했다.○ 경보기 떼고 전선은 주렁주렁 지난해 11월 말 대구 서문시장에 대형 화재가 발생해 1000억 원 이상(추산)의 피해가 났다. 그로부터 두 달도 되지 않아 15일 전남 여수수산시장에서 큰불이 나 50억 원의 피해가 났다. 전통시장 대형 화재는 겨울에 눈 내리듯 계절마다 반복되는 재난이다. 상인은 물론이고 시민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16일 동아일보 취재진은 소방방재전문가들의 의견을 바탕으로 11개 점검항목(체크리스트)을 마련했다. 그리고 서울 각 지역의 전통시장 8곳을 살펴봤다. 각 항목을 ‘전반적 양호’ ‘일부 미흡’ ‘전반적 미흡’으로 나눠 평가했다. 취재 결과 상당수 시장이 잠재적인 화재 위험 속에서 불안한 영업을 이어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미흡한 분야는 가연성 물질 관리였다. 조사 대상 8곳 중 제대로 관리하는 곳은 한 곳도 없었다. 시장마다 비닐과 천으로 만들어진 천막이 부지기수였다. 이런 천막은 작은 불에도 순식간에 타면서 유독가스를 내뿜는다. 종로구 광장시장의 식당가 인근 곳곳에는 식자재를 담았던 스티로폼과 종이 박스들이 곳곳에 널려 있었다. 여수수산시장 화재의 유력한 원인으로 추정되는 전기시설 관리도 미흡했다. 8곳 중 1곳(송파구 석촌시장)만이 양호한 상태였다. 먼지가 쌓인 전선을 그대로 방치하거나, 피복이 벗겨진 전선을 절연테이프도 아닌 투명테이프로 감싸고 사용하는 점포도 많았다. 마천중앙시장에 있는 한 반찬가게에서는 국이 끓는 커다란 솥 옆의 기둥에 전선들이 덩굴처럼 어지럽게 얽혀 있었다. 전선 몇 개는 아예 피복이 벗겨져 있었다. 주인 이모 씨(59·여)는 “10년째 같은 전선을 썼지만 아직 불이 난 적은 없다”면서도 “그래도 다른 시장에 불이 났다는 뉴스를 볼 때마다 겁이 나곤 한다”고 말했다. 화재경보기는 대부분 설치돼 있었다. 그러나 관리 상태는 불량했다. 8곳 중 4곳이 미흡했다. 일부 시장에서는 ‘오작동’을 이유로 상인들이 아예 제거한 경우도 있었다. 마천중앙시장의 경우 점포 20곳 가운데 17곳이 화재경보기를 작동하지 못하도록 해놓았다. 상인 이모 씨(51·여)는 “얼마 전 자리를 비웠는데 화재경보기가 오작동해 깜짝 놀랐다”며 “겨우 고생해서 건전지를 빼버렸다”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전통시장 특성 반영한 점검 필요 상인들도 불이 났을 때 피해가 크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한 상인은 “불을 쓸 일이 많고 오래된 가게가 많아 화재 위험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은 알고 있다”면서도 “내가 나서서 관심을 갖고 해결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성북구 돈암시장에서 정육점을 운영하는 유민선 씨(33)는 “얼마 전 점포당 9만 원에 화재경보기를 설치하라고 했는데 거의 신청을 안 하더라”며 “경기가 안 좋으니 돈 나가는 일이라면 누구나 꺼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전통시장 화재 예방과 점검이 수박 겉핥기로 이뤄지고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영등포구 영일시장 상인인 박석규 씨(55)는 “공공기관에서 나와 3개월에 한 번씩 점검을 하는데 가게를 지나다니면서 ‘괜찮으세요?’라고 묻는 게 전부”라며 “전선이나 콘센트가 낡았는데도 못 본 척 지나간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윤한홍 의원실에 따르면 2014년 연간 63건이었던 전통시장 화재 건수는 지난해(11월 말 기준) 92건으로 늘었다. 전통시장의 화재 1건당 평균 피해액은 1336만 원(2010∼2014년 기준)으로 전체 평균(779만 원)보다 월등히 높았다. 화재 발생도 늘고 있지만 점포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구조 탓에 피해액도 크다. 전문가들은 여수수산시장 화재를 계기로 전통시장 특성을 감안한 맞춤형 화재 예방 대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최영상 대구보건대 소방안전관리과 교수는 “민간 위탁을 해서라도 연간 2차례 정도 작동 기능 점검과 종합 정밀 점검을 제대로 실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명오 서울시립대 교수는 “전통시장은 비상구나 스프링클러보다는 전기시설이 특히 취약하다. 이 부분에 초점을 맞춘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권기범 kaki@donga.com·최지연·정동연 기자}

30년 전 오늘(1987년 1월 14일) 서울대 언어학과 3학년생 박종철 씨(당시 22세)가 서울 용산구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현 경찰청 인권센터)에서 숨졌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그의 죽음과 정부의 은폐, 조작이 백일하에 드러나면서 ‘6월 민주항쟁’의 도화선에 불이 붙었다. 많은 사람에게 박 씨는 민주화를 위해 산화한 영웅으로 기억된다. 하지만 학창시절을 함께한 이들은 그를 융통성 없는 원칙주의자로, 한편으로는 일탈을 꿈꿨던 장난꾸러기로 기억한다. 그 시절 누구에게나 한 명쯤 있을 법한 그런 친구가 바로 ‘박종철’이었다.흰 얼굴에 큰 안경 쓴 종철이 1980년 부산 중구 보수동. 언덕길을 한참 올라가야 겨우 교문에 이른다고 해서 ‘언덕 위의 파란 집’으로 불리던 혜광고가 있다. 당시 혜광고는 부산의 신흥 명문고로 떠오르고 있었다. 하얀 얼굴에 커다란 안경. 박종철은 시커먼 얼굴의 또래들 사이에서 쉽게 눈에 띄었다. 하지만 겉모습처럼 순둥이는 아니었다. 종철과 그의 친구들은 참 열심히도 놀았다. “우린 너거들 가르칠 실력이 안 된다. 공부는 인마 니가 알아서 해라”라며 휘두르는 선생님의 몽둥이를 견디면서. 친구였던 종철과 김치하(52·현 철강업체 부사장)는 둘 다 공부 좀 하는 편이었다. 무조건 공부가 첫손가락에 꼽히던 시절. 어른들은 ‘모범생’인 두 사람을 전적으로 믿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자주 일탈을 감행했다. 도서관에 간다고 말한 뒤 친구의 하숙집에 가서 담배도 피우고 소주도 홀짝거렸다. 다대포해수욕장에서 교련 사열이 끝나면 선생님들의 눈을 피해 근처 포장마차에서 라면 안주에 막걸리를 마시기도 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종철은 조금 달랐다. 그는 ‘학생운동’에 눈을 좀 일찍 떴다. 1979년 부마항쟁 당시 중학생이었던 종철은 시위에 참가했다가 최루가스를 흠뻑 뒤집어쓴 채 집에 돌아오기도 했다. 그랬던 종철도 고3이 얼마 남지 않자 여느 친구들처럼 책상 앞에 앉았다. 집 앞 독서실에 종일 틀어박혀 나오지 않은 날도 많았다. 다행히 성적은 좋았다. 그러나 결과는 낙방. 1983년 2월 23일 종철과 치하는 함께 서울의 종로학원에 들어갔다. 재수 시절 종철은 수시로 가족에게 편지를 보내곤 했다. “그저께 서울에는 봄눈이 왔습니다. 봄눈! 정말 생소한 단어지요.” “최악의 점수가 나왔습니다. 너무 신경 쓰지 마십시오.”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종철이 이듬해 종철은 서울대 언어학과에 입학했다. 재수 시절 틈틈이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졌던 그는 대학생활과 함께 학생운동에도 참여했다. 1학년 가을에 동기인 신효필(52·현 서울대 언어학과 교수) 등과 함께 충북 영동군으로 농활을 떠났다. 종철은 “농민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겠다”며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다. 농활 마지막 날. 농민들은 수고했다며 집에서 담근 포도주를 나눠줬다. 막걸리 한 잔을 생각했던 종철과 친구들은 기쁜 마음에 열심히 포도주를 마셨다. 얼마 안 가 곳곳에서 속을 게워내는 소리가 들렸다. 종철은 친구의 등을 두드렸고 친구는 그의 등을 두드렸다. 학생운동을 했지만 그는 과격하게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패거리를 만들지도 않았다. 데모를 하거나 말거나 가리지 않고 친구들과 두루 친하게 지냈다. 엠티(MT)를 가면 직접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1987년 1월 생전 마지막으로 찍힌 사진 속 그는 검은색 외투를 입고 허름한 식탁에 앉아 있었다. 머리는 단정했고 입술은 빨갰다. 열성적이지만 아직 어린 대학생이었다. 종철은 치하와 함께 교내 서클인 대학문화연구회(대문)에 몸을 담았다. ‘집’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지하 운동 서클이었다. 1986년에는 과 학회지에 ‘85학년도 2학기 학생운동을 정리하며’로 시작하는 글을 썼다. 그해 4월에는 청계피복노조 합법화 요구 시위에 참가했다가 구속돼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출소했다. 구속 당시 그는 가족에게 편지를 썼다. “죄송하다는 말밖에는 별로 할 말이 없군요. 돌이킬 수 없는 불효를 저지른 것 같습니다.” “누나야, 지난번에 언쟎게(언짢게) 올라와서 미안하다. (중략) 참, 곧 어버이날이구나. 내 몫까지 니가 좀 해주라.”“하여튼 간다”는 말을 남기고 떠난 종철이 겨울방학이던 1987년 1월 13일 종철의 대학 동기 이윤정(51·여)이 학과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종철이와 친구들과 오랜만에 인사를 하고 새 학기 학생회 운영 방안, 수강신청 계획을 놓고 한창 이야기를 나눴다. 중간에 종철이가 일어섰다. 일본어 수업을 들으러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웬 일본어? 네가 일본어를 배운다니 이상하다.” “하여튼 난 간다.” 그렇게 사무실을 나선 종철은 수업 후 신림9동(지금의 대학동) 하숙집으로 돌아가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곧바로 남영동 대공분실로 끌려간 뒤 이튿날 숨졌다. 종철의 죽음은 친구들에게 엄청난 충격이었다. 삶의 행로까지 바꿨다. 당시 서울대 총학생회에서 활동했던 한 인사는 “종철이가 끌려가기 며칠 전 통화를 했었다”고 기억했다. 30년이나 지난 얘기를 하면서도 그는 미안함에 고개를 떨궜다. 이윤정 씨는 “‘종철이는 왜 죽어야 했고, 나는 왜 살아야 하는가’라는 고민을 아직까지 갖고 있다”며 “그만큼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다시 살아나는 ‘박종철 정신’ 박종철의 죽음은 고문으로 인한 우발적 사건이 아니었다. 전두환 정권의 폭압적 통제 방식의 모순이 총체적으로 드러난 상징이었다. 당시 사건의 주범으로 지목됐던 조한경 씨(당시 경위)는 과거 언론 인터뷰에서 박종철 연행 하루 전 김종호 당시 내무부 장관이 남영동 대공분실을 찾았다고 밝혔다. 김 장관은 “일정이 있으니 3월 전까지 모든 사건을 끝내라”고 지시했다.(이후 치안본부 등이 주도한 은폐·조작 사건으로 밝혀짐.) 경찰은 급한 마음에 무리수를 뒀다. 민주화추진위원회(민추위) 사건으로 수배 중이던 서울대생 박종운 씨(56·전 한나라당 인권위원회 부위원장)의 소재를 파악한다며 박종철을 잡아들였다. 그는 정말 박 씨의 행방을 몰랐지만 경찰은 가혹하게 고문했다. 박종철의 죽음을 둘러싼 논란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사건의 은폐·조작에 검찰과 국가안전기획부 등으로 구성된 관계기관 대책회의가 개입했다는 사실은 2009년에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에 의해 밝혀졌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당시 이 사건을 얼마나 알고 있었는지, 혹시 어떤 지시를 내렸는지 등에 대해서도 속 시원히 밝혀지지 않았다. 김학규 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은 “과거 독재정권의 산물이 청산되지 않는 한 역사는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종철 30주기인 14일 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 등은 경기 남양주시 마석모란공원과 서울 용산구 경찰청 인권센터에서 각각 참배와 추모제를 연다. 모교인 부산 혜광고 동문들은 중구 남포동에서 추모 음악회와 사진전을 연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와 6월민주항쟁30년사업추진위원회도 올 한 해 동안 다양한 기념사업을 진행한다. 2017년 두 번째 촛불집회가 열리는 14일 서울 광화문광장 북쪽 무대에서는 ‘민주열사 박종철 30주기 추모 전시회’가 진행된다. 박종철. 그가 살아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과 촛불집회를 본다면 어떤 말을 할까.홍정수 hong@donga.com·권기범 기자 }
서울에서 박종철 씨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곳은 용산구 옛 남영동 대공분실, 하숙집이 있던 관악구 대학동, 그리고 서울대 교내 기념비 등이다. 박 씨가 1987년 1월 형사들에게 붙잡혀 끌려나왔던 그 하숙집은 서울대생들이 지금도 많이 사는 대학동(당시 신림9동) ‘녹두거리’의 한 골목에 있었다. 주민들에 따르면 박 씨의 하숙집은 주택 2층이었는데, 1996년 이 주택이 헐리고 새 건물이 들어섰다. 박 씨가 이곳에서 짧은 서울 생활을 했다는 사실은 인근에서 30년가량 산 주민들도 잘 몰랐다. 박 씨의 하숙집 주택을 1989년 사들인 뒤 건물을 신축한 김모 씨(58)는 “1, 2층에 작은 방이 서너 개 있었다”며 “박 씨는 2층에서 하숙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7년 전부터 인근에 살았다는 김모 씨(28)는 “박 씨가 이 동네에 살았는지 전혀 몰랐다”며 “역사에 남을 사람인데 작은 표지판이라도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 씨가 물고문을 당하다 숨진 남영동 대공분실은 역설적이게도 지금은 경찰청 인권센터로 변신했다. 박 씨의 유품과 편지, 그리고 물고문이 자행된 5층 취조실은 고스란히 보존돼 있다. 방에는 붉은 벽돌 너머로 욕조와 세면대, 샤워기 등이 그때 그 모습대로 있다. 책상과 침대도 마찬가지다. 세면대 위에는 박 씨의 사진과 꽃 한 송이가 올려져 있다. 한편에는 서울대 언어학과 84학번 동기들이 “방이 너무 쓸쓸해 보인다”며 갖다 놓은 깃발도 있다. 평일에만 문을 여는 이곳엔 별도의 입장료 없이 누구나 찾을 수 있지만 연간 방문객은 3000명 정도라고 한다. ‘민주열사 박종철의 비(碑)’는 관악구 서울대 캠퍼스 중앙도서관 옆 얕은 언덕배기에 자리하고 있다. 박 씨가 세상을 떠난 지 30년이 흐른 지금 기념비에 의미를 부여하는 학생은 많지 않다. 서울대생 김모 씨(27·여)는 “박종철이 누구인지는 알고 있지만 특별한 느낌은 없다”고 말했다.권기범기자 kaki@donga.com}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진상이 세상에 알려지는 데는 동아일보의 잇단 특종 보도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987년 1월 15일 치안본부는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쓰러졌다”는 취지로 박 씨가 숨진 과정을 발표했다. 그러나 동아일보는 16일 고문 가능성을 처음 제기했다. 이어 17일에는 박 씨의 시신을 처음 검안한 의사 오연상 씨(당시 30세)가 “호흡 곤란으로 사망한 것으로 판단됐으며 물을 많이 먹었다는 말을 조사관들로부터 들었다”는 증언을 보도했다. ‘외상의 흔적은 발견할 수 없었고 복부 팽만이 심했으며 폐에서 수포음(거품 소리)이 전체적으로 들렸다’는 검안서 내용도 특종 보도했다. 사실상 물고문에 따른 죽음이었음을 행간에 담은 기사였다. 결국 치안본부(현 경찰청)는 19일 ‘경관 두 명이 물고문을 해 숨지게 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동아일보는 이 발표 속에 은폐된 진실 찾기를 멈추지 않았다. 같은 해 5월 22일 ‘치안본부 고위 간부들이 비밀회의를 열어 범인 축소, 사건 은폐 조작을 모의했다’, 23일에는 ‘축소·은폐 조작을 법무부와 검찰 고위 관계자들이 이미 알고 있었다’는 특종 보도를 잇달아 내보냈다. 이 보도의 여파로 정부는 26일 국무총리, 국가안전기획부장(현 국가정보원장), 내무부 장관(현 행정자치부 장관), 법무부 장관, 검찰총장 등을 모두 바꾸는 개각을 했다. 동아일보의 집요한 추적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박 씨의 1주기가 다가오던 1988년 1월 12일에는 ‘(1년 전) 치안본부장 등 경찰 수뇌부도 고문 치사 사실을 알았지만 은폐했다’ ‘은폐 조작을 알고도 검찰이 상부 지시에 손이 묶였다’고 또 다른 충격적인 특종을 했다. 이 기사로 1987년 당시 강민창 치안본부장은 직무유기 및 직권남용 혐의로 구속돼 처벌을 받았다. 진실을 캐내 정의를 세운 일련의 보도로 동아일보는 1987년, 1988년 한국기자상을 받았다.권기범기자 kak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