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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천동 탈북 모자’처럼 월세가 밀려도 정부에 통보되지 않고 있는 임대주택 주민 24만 가구가 복지 안전망 안으로 들어온다. 보건복지부는 15일 ‘복지 사각지대 발굴 관리 시스템’으로 월세 체납 정보를 수집하는 대상에 재개발 임대주택을 포함하는 방안을 국토교통부와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탈북 모자가 살았던 곳과 같은 재개발 임대주택이 관리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다는 지적(본보 8월 14일자 A3면, 15일자 10면 참고)에 따른 것이다. 복지부는 50년 공공 임대주택과 일부 민간 임대주택의 월세 체납 정보까지 추가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탈북 모자는 숨진 지 두 달가량 지난 것으로 추정되는 상태에서 지난달 31일 발견됐다. 정부는 탈북 모자가 월 10만 원의 양육수당 말고는 아무런 지원을 받지 못한 점을 고려해 ‘복지멤버십’(가칭) 도입을 2021년 9월로 앞당기기로 하고 이를 내년 예산안에 반영할 예정이다. 한 번만 멤버십에 가입하면 일일이 신청하지 않아도 대상자에게 복지서비스를 자동 안내하거나 공무원이 직권으로 혜택을 주는 제도로, 2022년 4월 도입을 목표로 준비해 왔다.▼ 복지 칸막이 걷어내고… ‘신청 안해도 맞춤서비스’ 앞당긴다 ▼정부, 탈북母子사건 계기로 복지 강화 지난달 31일 서울 관악구 봉천동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숨진 채 발견된 한모 씨(42·여)는 지난해 10월 관할 주민센터를 찾아가 아들 김모 군(6) 몫으로 아동수당(월 10만 원)을 신청했다. 올 4월부턴 아동수당을 줄 때 소득을 따지지 않지만 지난해만 해도 소득기준(하위 90%)을 확인했다. 한 씨가 주민센터에 낸 금융자료엔 임대아파트 보증금(1074만 원)을 뺀 전 재산이 300만 원밖에 되지 않은 것으로 나와 있었다. 기초생활 생계급여(월 87만 원)뿐 아니라 긴급복지 생계급여(월 75만 원)까지 받을 수 있는 어려운 형편이었다. 하지만 ‘복지 칸막이’가 도움의 손길을 가로막았다. 담당 공무원은 한 씨에게 아동수당 지급을 결정했지만 기초생활 수급 등 다른 복지 서비스를 안내하진 않았다. 올 4월 서울시 ‘육아교육 서비스’를 안내하기 위해 한 씨의 집을 방문했던 다른 공무원도 마찬가지였다. 이 공무원에겐 한 씨의 형편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는 자료조차 전달되지 않았다. 곽순헌 보건복지부 지역복지과장은 “복지사업 지침엔 대상자가 신청하지 않은 서비스도 담당 공무원이 적극적으로 찾아내 종합 안내하도록 돼 있는데 주민센터 내에도 칸막이가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복지부는 16일 관악구청을 방문해 한 씨 모자에게 서비스가 연계되지 않은 원인을 조사할 계획이다. 정부는 이처럼 복지서비스를 ‘몰라서 못 받는’ 사례를 줄이기 위해 2022년 4월로 계획했던 ‘복지멤버십’(가칭) 도입을 2021년 9월로 앞당기기로 했다. 복지서비스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를 합해 모두 6740개에 달한다. 자격과 신청 절차도 각기 달라 전문가도 헛갈려 한다. 복지멤버십 제도가 완비되면 멤버십에 들어온 사람에게 임신과 출산, 실직 등 상황 변화가 생길 때마다 인공지능(AI)으로 서비스 대상인지를 판정해 수급 방법을 자동으로 안내한다. 굶어 숨진 것으로 추정되는 한 씨 모자처럼 긴급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면 서비스 신청 자체를 담당 공무원이 대신 해주는 방안도 거론된다. 배병준 복지부 사회복지정책실장은 “멤버십 가입과 포괄적 신청을 통해 이미 동의 의사를 밝힌 것으로 보고 먼저 혜택을 준 뒤 당사자가 정 원치 않으면 서비스를 중단하는 네거티브 방식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1963년 11월 사회보장법(현 사회보장기본법)이 제정된 이래 이어온 복지 서비스의 ‘신청주의(본인이나 가족이 신청해야만 혜택을 주는 것)’ 원칙을 사실상 깨뜨리는 것이다. ‘복지 사각지대 발굴 관리 시스템’에 월세 체납 내용을 입력할 임대주택의 범위는 영구임대와 국민임대, 기존주택 매입임대 등 84만4598가구(2017년 기준)이지만 여기에 한 씨 모자가 살았던 곳과 같은 재개발 임대주택(6만4161가구)을 더할 방침이다. 50년 공공 임대(4만9301가구)와 준공공 임대(5만7264가구), 기업형 임대(7만8116가구) 등까지 더하면 관리 대상은 109만3440가구로 늘어난다. 다만 정부가 많은 개인정보를 수집하는 데 대한 우려를 없애야 하는 게 과제다. 지난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은 “정부의 복지 사각지대 발굴 시스템과 복지멤버십은 과도한 정보 집중을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는 의견을 담은 보고서를 조지프 카나타치 유엔 프라이버시 특별보좌관에게 전달했다. 지난달 방한한 카나타치 특보는 복지부 관계자를 만나 해당 제도들과 관련해 “이익 침해(개인정보 유출 우려)와 수익(사각지대 발굴)이 상충하니 신중히 다뤄 달라”고 당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정부의 복지 안전망이 제대로 설계됐다면 서울 관악구 봉천동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굶어 숨진 것으로 추정되는 한모 씨(42·여)와 김모 군(6) 모자를 구할 기회가 최소한 다섯 차례는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숨진 지 두 달가량 지난 것으로 추정되는 상태에서 지난달 31일 발견된 한 씨 모자의 통장 속 잔액은 올 2월 1만4108원에서 3858원으로 줄어들었다가 5월 마침내 바닥이 났다. 하지만 그 사이 한 씨 모자의 집 현관문을 두드린 사회복지 담당 공무원은 한 명도 없었다.① 아파트 월세 체납, 1년 넘게 ‘깜깜’ 정부는 2014년 2월 생활고를 겪다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송파 세 모녀’의 사건 이후인 2015년 12월 ‘복지 사각지대 발굴 관리 시스템’을 도입했다. 복지제도가 워낙 다양하고 자격 기준과 신청 절차도 제각각이어서 여기서 소외된 가정을 ‘위기가구’로 선정하고 직접 찾아가 수급 방법을 안내하겠다는 취지였다. 대표적인 게 공공임대주택 월세가 3개월 이상 밀린 경우다. 이러면 지역개발공사 등은 연체자 정보를 보건복지부에 공문으로 알리고, 복지부는 관할 주민센터로 전달해 상담과 조사를 벌이도록 해야 한다. 한 씨는 2009년 12월 탈북민 교육기관인 하나원을 수료하고 같은 달 서울주택도시공사(SH)로부터 아파트를 임차했다. 이후 월세가 여러 차례 밀려 2017년 1월부터 임차 계약이 해지됐지만 퇴거 조치를 당하진 않았다. 숨진 채 발견됐을 당시엔 월세(16만4000원)가 16개월 치나 밀린 상태였다. 그런데도 한 씨가 위기가구로 분류되지 않은 이유는 그의 아파트가 ‘재개발임대’ 유형이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정보 수집 대상 아파트의 유형을 영구임대와 국민임대, 매입임대 등 세 가지로 한정했다. 이들 아파트에 취약계층이 상대적으로 더 많이 산다는 이유였다. 이 때문에 한 씨처럼 재개발임대 아파트에 사는 주민은 월세가 아무리 밀려도 복지부에 통보되지 않는다. 현실과 맞지 않는 기준이다.② 관리비 체납 통보, 뒤늦게 추진 한 씨는 전기요금도 16개월간 내지 못했다. 전기료를 3개월 이상 체납한 사람의 정보는 한국전력공사가 복지부에 통보해야 한다. 한 씨는 여기서도 제외됐다. 한 씨의 임대아파트에선 전기료를 가구마다 따로 내지 않고 관리비에 포함시켜 관리사무소가 한꺼번에 걷어서 낸다. 한전이 개별 가구의 체납 여부를 확인할 수 없으니 위기가구 발굴 정보에서도 누락되는 구조다. 이는 지난해 4월 ‘증평 모녀 자살’ 사건 때 이미 지적됐던 허점이다. 복지부는 당시 아파트 관리사무소로부터 직접 관리비 체납 정보를 수집하는 대책을 내놓았지만 아직 시행되지 않고 있다. ③ 기초생활 수급 탈락, 조사 대상서 제외 한 씨는 탈북 직후 기초생활 생계급여를 받다가 아르바이트 등으로 벌이가 생기면서 2013년 9월 수급이 끊겼다. 정부는 기초생활 수급에서 탈락한 사람들도 위기가구로 보고 관리하고 있지만 한 씨에게는 해당되지 않았다. 복지부가 ‘최근 1년 내에’ 기초생활 수급 자격을 잃은 사람들만 관리 대상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한 씨는 남편과 함께 중국으로 갔다가 현지에서 이혼하고 지난해 10월 김 군과 함께 한국으로 돌아온 후로는 이렇다 할 고정 수입이 없었다. 이처럼 기초생활 수급 자격을 잃고 수 년 뒤 형편이 어려워진 경우는 현행 제도로 찾아낼 수 없다는 뜻이다.④ 고용보험 자격 상실, 처음부터 가입 안 해 고용노동부는 고용보험 가입자 자격을 잃은 뒤 이를 다시 취득하지 않고 실업급여도 받지 않는 실업자의 정보를 복지부에 보내고 있다. 한 씨는 이 과정에서도 제외됐다. 한국에서 비정규직 일자리를 얻었던 2013년 당시에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용보험조차 가입하지 못한 비정규직 근로자는 오히려 안전망 사이로 빠져나간다는 얘기다.⑤ 영양 공급 지원, 몰라서 신청 못 해 저체중 등 위험 요인을 지닌 만 6세 미만 아동에게 보충식품을 제공하는 ‘영양플러스’ 지원 사업에서 탈락한 적이 있으면 위기가구로 분류된다. 하지만 한 씨는 이런 혜택이 있다는 사실조차 안내받지 못했다. 관할 보건소가 홈페이지 등을 통해 홍보하고 있지만 저소득층을 방문하며 권유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웃 A 씨는 “한 씨는 항상 베이지색 모자를 눌러쓰고 다니며 이웃과 말도 섞지 않았다. 복지 혜택을 스스로 찾아다닐 만한 기운도 없어 보였다”고 말했다.조건희 becom@donga.com·김은지·서형석 기자}

하얀 저고리를 입은 단발머리 소녀와 노랑나비, 보라색 난꽃…. 12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에서 만난 일본인 수화(手話) 통역가 기타무라 메구미 씨(47·여)의 가방엔 배지 20여 개가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상징하는 것들이었다. 기타무라 씨는 서툰 한국어로 “배지를 보면 ‘귀엽다’며 말을 거는 사람이 많아요. 그러면 저는 ‘이게 바로 위안부 피해자를 상징하는 겁니다’라고 설명해줘요. 그런 식으로 위안부 문제를 알리기 위해 늘 (배지를) 가지고 다녀요”라고 말했다. 기타무라 씨는 13일 서울대 여성연구소 주최로 서울시청에서 열리는 위안부 피해자 국제 심포지엄에 참석하기 위해 12일 한국에 왔다. 14일엔 종로구 옛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1400회 수요집회와 위안부 기림일 행사에 참석할 예정이다. 그의 이번 방한 일정은 위안부 관련 행사로 가득 차 있다. 기타무라 씨가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2004년경 한 한국인 청각장애인과의 만남이다. 이 청각장애인이 일본 수화 언어를 능숙하게 쓰는 건 식민지배를 겪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고, 한국사에 관심을 갖게 됐다. 한국어를 독학으로 익히며 역사 강연회 등 관련 행사를 찾아다니다가 위안부 문제에 집중하게 된 것이다.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91)가 히로시마를 방문했을 땐 함께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기타무라 씨는 “당시 이 할머니가 건강해 보이기는 했지만 이전에 다른 문헌에서 본 할머니의 피해 경험이 떠올라 가슴이 아팠다”고 말했다. 기타무라 씨는 여성가족부 산하 ‘일본군 위안부 문제 연구소’가 찾으려고 애써왔던 ‘이름 모를 일본인’이기도 하다. 연구소는 올해 3월 발간한 위안부 웹진 ‘결’을 연내에 영어와 중국어, 일본어 등으로 옮기기로 하고 해외 커뮤니티를 모니터링하는 과정에서 위안부 관련 기사를 직접 번역해 게재하는 일본인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바로 기타무라 씨가 번역한 것이었다. 그는 “위안부는 전쟁 성폭력이지만 (보편적인) 여성인권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에 우리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번역 작업의 배경을 설명했다. 기타무라 씨는 최근 한일 관계가 나빠진 것을 걱정했다. 위안부 문제 등에 대해 소신 발언을 한 기사에 ‘악플’을 다는 누리꾼은 물론이고, 매달 히로시마에서 열리는 위안부 관련 강연회에 나타나 ‘위안부는 거짓말’이라고 외치는 일본인도 생겼다는 것이다. 기타무라 씨는 “진실을 모르는 불쌍한 사람들이라는 기분이 든다”며 “일본 정부가 식민역사를 인정하고 사죄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한국어 단어를 꼽아달라고 부탁하자 기타무라 씨는 한 손을 들어 관자놀이 근처에서 주먹을 쥐었다가 폈다. ‘기억’을 의미하는 수화 언어다. 이 수화 언어는 한국과 일본이 똑같다고 한다. 기타무라 씨가 덧붙였다. “역사를 기억해야 해요. 기억하지 않으면 반복돼요.”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지난달 3일 수도권의 한 경찰서 상담실에서 마주 앉은 안모 씨(20)와 고모 씨(40·여)는 눈을 맞추지 않았다. 같은 아파트 아래위층 이웃으로 만난 안 씨와 고 씨는 2년 가까이 이어진 ‘층간소음 갈등’으로 심신이 피폐해져 있었다. 소음을 참다못한 아래층 안 씨가 6월 7일 위층 고 씨의 현관문에 킥보드를 집어던지자 고 씨는 안 씨를 재물손괴 혐의로 신고했다. 그간 인터폰으로 험한 말만 주고받았던 양측이 지난달 3일 처음으로 마주 앉은 것이다. 이 자리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대질신문이 아니라 양측의 갈등 해소를 위한 ‘대화 모임’이었다. 층간소음으로 인한 다툼을 여러 차례 수사해본 경찰은 안 씨를 처벌해도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고 오히려 감정의 골이 더 깊어져 다른 물리적 충돌이 재발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안 씨와 고 씨를 설득해 자리를 만들고 대화 전문기관 ‘비폭력평화물결’에 중재를 맡긴 것이다. 안 씨의 어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어릴 적부터 소리에 민감했던 안 씨가 층간소음에 얼마나 괴로워했는지 털어놓았다. 고 씨가 눈물을 흘리며 말을 받았다. 안 씨를 신고한 후 여섯 살 난 딸이 보복의 불안에 떨어 폐쇄회로(CC)TV까지 설치했다는 얘기였다. 안 씨의 눈에도 물기가 돌았다. 안 씨는 “폭력적인 행동으로 불안을 드려 죄송하다”며 다시는 협박이나 욕설을 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오랜 갈등이 봉합되는 순간이었다. 안 씨와 고 씨의 만남은 경찰청이 4월 말부터 서울 경기 지역의 15개 경찰서에서 시범 도입한 ‘회복적 경찰 활동’으로 성사됐다. 가해자를 엄벌에 처하는 것만큼 피해자의 상처를 회복하고 당사자들의 화해를 돕는 게 중요하다는 ‘회복적 사법’을 처음으로 경찰 단계에 도입한 것이다. 지난달 말까지 54건의 만남 요청이 접수돼 이 중 32건에서 화해나 변상 등의 형태로 조정이 완료됐다. 대화 모임이 특히 빛나는 건 가해자가 10∼13세 촉법소년이라서 형사 책임을 물을 수 없을 때다. 지난달 8일 서울 중부경찰서에선 빌라 현관문 벨을 누르고 도망가는 일을 반복했던 A 군(14) 등 중학생 5명과 피해자 B 씨(63)가 마주 앉았다. 사소한 장난이라고만 생각했던 A 군은 와병 중인 B 씨의 아내가 얼마나 큰 고통을 겪었는지 듣고 눈물로 잘못을 뉘우쳤다. 오랜 기간 친분을 맺은 이웃 사이의 사건에서도 효과가 나타났다. 서울 성동구의 한 편의점에서 팩 소주를 훔쳐 가곤 했던 이웃 장모 씨(49)를 고민 끝에 신고한 점주 신모 씨(51·여)가 그랬다. 대화 모임을 통해 장 씨로부터 진심 어린 사과를 받은 신 씨는 “관계가 껄끄러워질까 봐 걱정했는데 다행”이라며 안도했다. 경찰청은 이 제도를 10월 말까지 시범 실시한 뒤 내년에 전국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조건희 becom@donga.com·김은지 기자}
경찰이 2015년 열린 민중총궐기 집회 주도자들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이 양측이 법원의 화해 권고 결정을 받아들이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4부(부장판사 김정곤)는 7일 경찰이 민중총궐기투쟁본부와 민노총, 한상균 전 민노총 위원장 등 8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내린 화해 권고 결정을 확정했다. 경찰 측이 소송을 제기한 지 3년 6개월 만이다. 경찰은 2015년 11월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민중총궐기 집회에서 다친 경찰관 치료비와 파손된 경찰 버스 수리비 등으로 3억8667만 원을 물어내라며 이듬해 2월 집회 주최 측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양측이 법원의 조정에도 합의점을 찾지 못하자 법원은 지난달 15일 화해 권고 결정을 내렸다. 집회 주도자 측이 경찰 청구 금액의 50.1%에 해당하는 1억9300여만 원을 배상하라는 취지였다. 이후 원고와 피고 양측 모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아 그대로 확정됐다. 경찰 관계자는 “법원의 권고를 수용한 것은 순전히 법리적인 판단”이라고 밝혔다. 최근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가 경찰에 손배소 취하를 권고한 것 등 외부적인 요인은 고려하지 않았다는 뜻이다.김예지 yeji@donga.com·조건희 기자}

지난달 3일 인천 계양경찰서 상담실에서 마주앉은 안모 씨(20)와 고모 씨(40·여)는 눈을 맞추지 않았다. 안 씨는 주먹을 꽉 쥐고 있었고, 고 씨는 충혈된 눈으로 천장을 쳐다봤다. 인천의 한 아파트에서 아래위층 이웃으로 만난 안 씨와 고 씨는 2년 가까이 이어진 ‘층간소음 갈등’으로 심신이 피폐해져 있었다. 소음을 참다못한 아래층 안 씨가 6월 7일 위층 고 씨의 현관문에 킥보드를 집어던지자 고 씨는 안 씨를 재물손괴 혐의로 신고했다. 그간 인터폰으로 험한 말만 주고받았던 양측이 지난달 3일 처음으로 마주앉은 것이다. 이 자리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대질신문이 아니라 양측의 갈등 해소를 위한 ‘대화 모임’이었다. 층간소음으로 인한 다툼을 여러 차례 수사해본 경찰은 안 씨를 처벌해도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고 오히려 감정의 골이 더 깊어져 다른 물리적 충돌이 재발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안 씨와 고 씨를 설득해 자리를 만들고 대화 전문기관 ‘비폭력평화물결’에 중재를 맡긴 것이다. 안 씨의 어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어릴 적부터 소리에 민감했던 안 씨가 층간소음에 얼마나 괴로워했는지 털어놓았다. 고 씨가 눈물을 흘리며 말을 받았다. 안 씨를 신고한 후 여섯 살 난 딸이 보복의 불안에 떨어 폐쇄회로(CC)TV까지 설치했다는 얘기였다. 안 씨의 눈에도 물기가 돌았다. 안 씨는 “폭력적인 행동으로 불안을 드려 죄송하다”며 다시는 협박이나 욕설을 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오랜 갈등이 봉합되는 순간이었다. 안 씨와 고 씨의 만남은 경찰청이 4월 말부터 서울 경기 지역의 15개 경찰서에서 시범 도입한 ‘회복적 경찰 활동’으로 성사됐다. 가해자를 엄벌에 처하는 것만큼 피해자의 상처를 회복하고 당사자들의 화해를 돕는 게 중요하다는 ‘회복적 사법’을 처음으로 경찰 단계에 도입한 것이다. 지난달 말까지 54건의 만남 요청이 접수돼 이 중 32건에서 화해나 변상 등의 형태로 조정이 완료됐다. 대화 모임이 특히 빛나는 건 가해자가 10~13세 촉법소년이라서 형사 책임을 물을 수 없을 때다. 지난달 8일 서울 중부경찰서에선 빌라 현관문 벨을 누르고 도망가는 일을 반복했던 A 군(14) 등 중학생 5명과 피해자 B 씨(63)가 마주앉았다. 사소한 장난이라고만 생각했던 A 군은 와병 중인 B 씨의 아내가 얼마나 큰 고통을 겪었는지 듣고 잘못을 눈물로 뉘우쳤다. 경기 동두천시에선 사회봉사 등 처분도 내릴 수 없는 9세 어린이 사이의 폭행 사건을 경찰이 나서서 중재한 사례도 있다. 오랜 기간 친분을 맺은 이웃 사이의 사건에서도 대화 모임의 효과가 나타났다. 서울 성동구의 한 편의점에서 팩 소주를 훔쳐가곤 했던 이웃 장모 씨(49)를 고민 끝에 신고한 점주 신모 씨(51·여)가 그랬다. 대화 모임을 통해 장 씨로부터 진심어린 사과를 받은 신 씨는 “관계가 껄끄러워질까봐 걱정했는데 다행이다”라며 안도했다. 이 사건을 담당한 성동서 이효정 경장은 “대화 모임은 지역 공동체의 결속을 위해서도 필요한 제도”라고 말했다. 경찰청은 이 제도를 10월 말까지 시범 실시한 뒤 내년에 전국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심보영 경찰청 피해자보호기획계장은 “검찰과 법원에도 비슷한 제도가 있지만 그땐 당사자끼리 갈등이 너무 깊어 회복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라며 “경찰 단계에서 사건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갈등 해결과 조정을 시도하겠다”고 말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김은지 기자 eunji@donga.com}
지난달 31일 서울 양천구 목동 지하 배수터널 사고로 근로자 2명을 잃은 하청업체 H건설처럼 최근 5년 내에 근로자가 숨지거나 크게 다치는 ‘중대재해’가 있었는데도 서울시로부터 일감을 따낸 업체가 최소 6곳이 더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6일 서울시와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H건설은 2017년 5월 경남 창원시에서 근로자 사망 사고가 나 업무상 과실치사죄로 벌금 500만 원을 선고받았다. 서울시는 2016년 6월 예규를 고쳐 H건설처럼 사망이나 중상(2명 이상) 사고가 발생한 ‘중대재해’ 업체에 5년간 하도급 계약을 주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H건설은 지난해 3월 서울시가 발주하고 현대건설이 시공하는 목동 배수터널 공사의 하도급 계약을 따냈다. 그 결과 H건설 소속 구모 씨(65)와 미얀마인 S 씨(23)는 비가 예보됐는데도 터널에 투입됐다가 빗물에 휩쓸려 숨졌다. 이는 서울시가 중대재해 업체를 솎아낼 때 서울 지역에서 일어난 사고 이력만 참고하기 때문이다. 2016, 2017년 발생한 중대재해 1204건 중 서울에서 일어난 건 110건(9.1%)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검증 시스템으로 걸러지지 않는 업체가 태반일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본보 취재팀이 2016, 2017년 중대재해를 일으켜 명단이 공표된 업체와 서울시 발주 공사 명세를 대조해보니 H건설 외에도 6개 업체가 서울시의 검증 시스템을 통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W건설은 2017년 강원 원주시의 한 아파트 공사현장에서 작업자 1명이 추락해 숨지는 사고가 있었지만 지난해 10월 서울시의 한 창업센터 조성 공사에서 철근 콘크리트 일감을 받아냈다. 2016년 경기 김포시에서 땅을 다지는 작업을 하다가 3명이 중상을 입는 사고가 났던 E사는 2017년 1월까지 목동 배수터널 공사에 참여했다. D사는 2017년에 사망 사고가 두 차례나 있었는데도 지난해 2월 서울의 한 도로 공사에 참여했다. 목동 배수터널 사고를 수사하는 경찰은 6일 오후 서울시 도시기반본부와 양천구, 현대건설 등에 수사관을 보내 안전관리계획서와 작업일보 등을 압수했다. 조건희 becom@donga.com·김재희 기자}
붕괴 사고로 27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광주 서구 C클럽처럼 행정당국 몰래 구조물을 불법 증축한 서울 내 클럽을 서울시가 일제 점검하기로 했다. 무작위로 뽑은 복층 클럽 35곳 가운데 25곳에서 무단 증축이 확인됐고, 이 중 15곳은 당국에 적발된 적도 없다는 30일자 본보 보도에 따른 것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30일 “복층 클럽을 대상으로 이르면 다음 달 초 현장 점검을 벌여 건축법 위반 사례를 단속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C클럽처럼 붕괴 시 인명 피해 우려가 큰 무허가 복층 구조물을 우선 점검한 뒤 이용객이 많거나 안전 관련 민원이 발생했던 곳으로 점검 대상을 넓힐 계획이다. 서울시는 특히 철거 명령에 수년간 불응하고 있는 클럽에 대해 관할 구와 협의해 형사 고발을 검토하기로 했다. 이행강제금을 여러 차례 체납한 경우 영업장 자체를 압류해 압박할 방침이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이날 국무회의에서 “광주 클럽 사고와 비슷한 문제가 다른 다중이용시설에도 있을 수 있다”며 “행정안전부와 국토교통부는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불법 용도 변경, 무단 증축을 적발해 형사 고발, 원상회복 등의 조치를 취해 달라”고 말했다.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지하 1층, 316m² 넓이, 대중음식점.’ 서울 소재 한 클럽이 2013년 영업을 시작하면서 관할 구청에 신고한 내용이다. 이 클럽의 ‘건축물 대장’에도 신고 내용대로 적혀 있다. 건축물 대장만 보면 누구도 ‘복층’의 존재를 알 수 없다. 그런데 이 클럽은 사실상 ‘2개 층’으로 운영되고 있다. 지하 1층엔 공연장이 있다. 그리고 이 공연장이 내려다보이는 ‘복층 발코니’가 있다. 철제 기둥 네 개로 떠받친 발코니에 손님 20여 명이 서 있었다. 빠른 리듬의 음악이 흘러나오자 손님들은 발코니 위에서 발을 구르면서 호응했다. 본보 기자가 28일 0시 30분 이 클럽을 방문했을 때의 장면이다. 이 클럽처럼 업주가 구에서 허가받은 사항과 다르게 무단으로 복층을 짓거나 구조를 바꾸는 일이 적지 않다. 본보가 27일부터 28일까지 이틀에 걸쳐 서울 용산구와 서대문구, 마포구 일대 ‘복층 클럽’ 25곳을 직접 돌아보거나 현장 동영상을 통해 확인한 결과다. 업주가 두 개 층에서 영업을 하겠다고 신고한 뒤 무단으로 ‘복층 발코니’ 형태로 구조를 바꾼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서대문구의 한 감성주점도 ‘복층’이었다. 그런데 ‘복층’의 위치와 넓이가 구에 신고된 것과 전혀 달랐다. 지하 1층에 있는 이 주점에 들어서면 왼편에 50m² 넓이의 복층 발코니를 볼 수 있다. 본보 기자가 방문했을 때 20대 남녀 손님 40여 명이 이 발코니 위에서 술을 마시면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구 관계자는 “당초 ‘복층’을 입구 오른쪽에 다른 모양으로 설치하라고 허가했다”며 “행정처분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용산구의 한 감성주점은 무대의 넓이가 허가받은 것보다 19m²(약 5.7평) 가까이 넓었다. 한 남성이 발코니의 철제 난간을 손으로 붙잡고 흔들었지만 아무도 이를 말리지 않았다. 이런 ‘복층형 클럽’은 비상구나 소화기 등 소방시설이 없는 곳들이 대부분이었다. 마포구의 한 ‘복층형 클럽’은 비상구가 자물쇠로 잠겨 있었다. 이 클럽의 ‘복층 발코니’에서 내려와 유일한 비상구인 클럽 출입구까지 가는 데는 5분이 넘게 걸렸다. 업주들이 불법 복층 구조물을 만들더라도 구나 시가 이를 적발하기는 쉽지 않다. 구나 시는 건물을 불법 증개축 했는지 점검하기 위해 통상 건물 항공사진을 찍어 건축물 대장에 적힌 내용과 비교한다. 이렇게 하면 건물을 불법으로 높인 사실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방법으로는 업주가 영업장 안에 불법 ‘복층 구조물’을 만든 것까지 파악할 수는 없다. 연면적 3000m²가 넘는 대형 건축물이나 ‘유흥주점’ 같은 현행법상 다중이용업소라면 건축주가 건축사에 의뢰해 정기 안전점검을 한 뒤 구나 시에 이를 보고해야 한다. 하지만 본보 기자가 둘러본 클럽 대부분은 연면적 3000m² 미만의 건물에 위치해 있었다. ‘유흥주점’이 아닌 ‘일반음식점’으로 신고한 업소가 대부분이었다. 구나 시에 불법 복층 구조물을 만든 사실이 적발되더라도 ‘이행강제금’을 ‘영업비용’처럼 여기면서 버티는 업주들도 있다. 현행 건축법상 이행강제금은 건축물의 구조와 용도, 위치 등을 감안해 ‘시가표준액’의 50%까지만 물릴 수 있다. 실제 건축물 매매가나 임대료보다 훨씬 낮은 액수를 기준으로 이행강제금을 매기는 것이다. 게다가 감가상각 개념이 적용돼 시간이 흐를수록 이행강제금이 줄어든다. 건물주나 클럽 업주 입장에선 버틸수록 이득이다. 용산구의 한 감성주점은 2016년 7월 불법으로 ‘복층 발코니’를 설치했다는 이유 등으로 구에 적발됐다. 하지만 이후 3년 동안 매년 3000만∼4000만 원에 이르는 이행강제금을 내면서 ‘불법 영업’을 계속하고 있다. 결국 안전을 위협하는 불법 복층 구조물 설치를 막으려면 이행강제금 액수를 크게 올려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독일은 이행강제금을 두 번째 부과할 때부터는 액수를 2배로 올린다. 프랑스는 무허가 증축한 업소에 매출액보다 많은 액수를 과태료로 내게 한다.고도예 yea@donga.com·조건희 기자}

27명의 사상자를 낸 27일 광주 서구 C클럽 복층 붕괴 사고는 일차적으로 업주 측의 안전 불감증이 빚은 참사다. 하지만 그 안엔 무단 증축 건축물을 감시해야 할 구청의 부실한 점검, 경찰과 구청 간의 업무 칸막이, 구의회의 특혜성 조례 등 구조적인 문제가 있었다.○ 업주, 무단 증축 구조물 띄엄띄엄 용접 C클럽은 2016년 1월 광주 서구에 영업신고를 하며 영업장 면적을 1층 396.1m², 복층 108m² 등 총 504.1m²로 알렸다. 하지만 이후 세 차례에 걸쳐 복층 면적 중 45.9m²를 무단 철거하고 77.4m²를 몰래 넓혔다. 이번에 무너진 구조물 21m²도 무허가 증축분이다. 무너진 구조물의 뼈대는 철제로 무게가 상당했다. 붕괴 직후 현장에 있던 시민 40여 명이 힘을 합쳤지만 치우지 못했을 정도다. 그런데 이 무게를 견디고 있던 것은 무대(클럽 중앙) 쪽 천장에서 구조물을 붙들어주는 철제 기둥 4개가 전부였다. 무대 반대쪽은 기존 구조물에 용접으로 덧대는 방식으로 고정시켰을 뿐 기둥조차 없었다. 현장 감식에 참여한 한 관계자는 “용접이 끊이지 않고 이뤄졌어도 하중을 견딜까 말까 한데 이음 부위가 2, 3cm 간격으로 띄엄띄엄하게 용접돼 있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C클럽 측이 1층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기둥을 충분히 설치하지 않은 것으로 의심하고 업주 김모 씨(52)를 추궁하고 있다. 또 공사 기간을 줄이려다가 시공이 부실하게 이뤄진 게 아닌지 시공업체 관계자들을 불러 조사할 계획이다.○ 구청, 현장 안 가고 ‘셀프 점검’ 서류만 확인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광주 서구는 무단 증축 사실을 알지도 못했다. 클럽이 문을 연 이후 단 한 번도 무단 증축 점검을 위해 현장에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행 건축법상 사고 클럽이 있는 C빌딩처럼 많은 사람이 드나드는 건물은 2년마다 무단 증축 여부를 점검받아야 한다. C빌딩은 지난해 12월 정기점검을 받았다. 그런데 서구는 건물주가 의뢰해 안전진단업체가 점검한 결과를 제출받는 것으로 절차를 마쳤다. 자체 점검 결과서엔 C클럽의 무단 증축 사실이 적혀 있지 않았다. 올 3월 서울 강남 클럽 ‘버닝썬’ 사건을 계기로 이뤄진 특별점검에선 무단 증축을 단속하지 않고 위생 상태만 봤다. 같은 달 국토교통부의 ‘국가안전대진단’에선 소형 빌딩이라는 이유로 진단 대상에서 빠졌다. 지난해 10월 소방당국이 벌인 안전점검에선 주차장을 몰래 넓힌 점만 적발됐다. 서구 관계자는 “담당 공무원이 5명뿐이라 병원 등 대규모 시설을 점검하기 바쁘고 소형 빌딩은 건축 허가 때만 현장 조사를 한다”고 경찰에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토부는 C클럽 사고를 계기로 전국의 무단 증축 건물을 일제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경찰, 지난해 ‘경고음’ 구청에 안 알려 1년 전 같은 클럽에서 비슷한 붕괴 사고가 일어났는데도 위험 요소가 방치됐다. 지난해 6월 10일 오전 1시 반경 C클럽에선 복층 구조물의 바닥 유리가 깨지며 그 위에 있던 서모 씨(25·여)가 2.5m 아래로 추락해 전치 6주의 중상을 입는 사고가 있었다. 업주 김 씨는 업무상과실치상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벌금 200만 원을 선고받았다. 당시 서 씨가 추락한 장소는 이번에 무너진 복층 구조물의 맞은편이다. 하지만 경찰은 김 씨를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하면서도 부실한 무단 증축 구조물이 있다는 사실을 구청에 알리지 않았다. 따라서 영업정지 등 행정처분이나 시정명령도 이뤄지지 않았다. 결국 C클럽은 지난해 사고 이후 바닥 유리를 아크릴과 합판으로 교체했을 뿐 무단 증축된 부분은 철거하지 않은 채 그대로 뒀다. 경찰 관계자는 “당시 김 씨의 업무상과실치상 혐의를 입증하느라 불법 구조물이 있는 줄 몰랐고, 이 혐의는 경찰이 행정기관에 통보할 의무가 없다”고 말했다.○ 구의회, “춤춰도 된다” 조례 제정 사고 피해가 커진 이유 중 하나는 C클럽에 많은 이용객이 몰려 춤을 추다가 구조물에 평소보다 무거운 하중이 실렸기 때문이다. 일반음식점으로 신고된 C클럽은 음향시설을 갖추고 손님이 춤을 추는 행위가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다. 하지만 광주 서구의회는 2016년 조례를 만들어 면적 150m² 이하 일반음식점의 경우 ‘감성주점’으로 지정되면 춤추는 영업을 할 수 있도록 했다. C클럽은 총면적이 500m²가 넘는데도 조례 제정 일주일 만에 감성주점으로 지정됐다. 이 조례의 혜택을 받은 건 C클럽을 포함해 2곳뿐인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조례엔 영업장 입장 인원을 객석 면적 1m²당 1명으로 제한하고 영업장 면적 100m²마다 안전요원을 1명 이상 배치하도록 하는 조항이 있다. 하지만 구청은 이를 한 번도 점검하지 않았고 객석 면적조차 파악하지 않았다.조건희 becom@donga.com·고도예 / 광주=이형주 기자}

27일 2명의 사망자를 낸 광주 서구 치평동 K 클럽 복층 구조물 붕괴 사고 직후 클럽 측이 음악을 중단하지 않았다는 목격자의 증언이 나왔다. 이날 오전 2시 29분경 무너진 복층 구조물에서 가까운 곳에 있었던 A 씨(35)는 동아일보 취재팀과 만나 “음악소리가 커 클럽에 몰린 손님 370여 명 중 상당수가 사고 사실을 곧장 인지하지 못했다. 크고 둔탁한 소리가 나기에 나도 ‘팡파르’를 터트린 줄로만 알았다”고 전했다. 소리가 난 쪽을 돌아보고서야 피를 흘리며 쓰러진 사람이 여러 명 보였다는 얘기다. A 씨에 따르면 구조물이 2.5m 높이에서 무너진 충격으로 의식을 잃고 쓰러진 사람이 있는 상황에서도 클럽 측은 음악을 약 30초간 중단하지 않았다. A 씨는 “음악이 꺼진 후에도 대피 방송이 들린 기억은 없다”고 말했다. 부상의 정도가 심하지 않거나 멀쩡했던 다른 손님들이 쓰러져있던 부상자를 들쳐 업어 입구로 날랐다고 A 씨는 회상했다. 무너진 구조물은 복층으로 올라가는 계단과 가까운, 원형 바(BAR)가 2개 놓여있는 공간이었다. 한 목격자는 이 곳이 복층에서 사람이 가장 많이 몰리는 공간이었다고 전했다. 소방당국은 사고 당시 K 클럽에 370여 명이 몰린 것으로 파악했다. 사고 현장에 있던 일부 시민은 붕괴된 구조물에 깔린 사람을 구조하기 위해 ‘하나 둘 셋’ 구령과 함께 힘을 합쳐 철제 잔해를 들어올리려 했다. 또 일부 시민은 추가 붕괴를 막기 위해 아래에서 구조물을 떠받쳤다. 119는 오전 2시 39분경 사고를 접수했고 7분 만인 오전 2시 46분경 사고 현장에 도착해 구조와 환자 이송을 벌였다. 하지만 최모 씨(38)와 오모 씨(27) 등 2명은 숨졌고 16명은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다. 외국인 부상자 중엔 2019 광주 세계수영선수권대회에 참가한 미국과 네덜란드,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선수들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중 전날 우승한 미국 여자 수구 선수 K 씨(27)는 왼쪽 종아리가 10㎝ 정도 찢어지고 우즈베키스탄 선수 D 씨(23)는 목뼈를 다친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 직후 119구조대를 거치지 않고 스스로 병원을 찾은 부상자도 있는 것으로 전해져, 추가 피해가 확인될 가능성도 있다. 이 클럽에선 지난해 6월 중순에도 비슷한 붕괴사고가 일어나 20대 여성이 다친 것으로 확인됐다. 광주 서부경찰서에 따르면 사고일 오전 2시경 이 클럽 2층 복층 구조물의 유리 바닥 일부가 무너져 아래에 있던 S 씨(25·여)가 부상을 입었고, 경찰은 업주 김모 씨(51)를 업무상 과실치상으로 입건했다. 경찰은 지방자치단체가 이 클럽의 불법 증축을 제대로 관리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인허가 담당 공무원도 소환조사할 계획이다. 세계수영선구권대회 취재차 방한한 중국 신화통신 등 외신 기자들은 이날 오전 K클럽 주변에서 취재를 벌였다. 영국 BBC 등 주요 외신들도 이날 홈페이지에 관련 기사를 게재했다. 광주=이형주 기자peneye09@donga.com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27일 복층 구조물이 무너져 2명의 사망자를 낸 광주 서구 치평동 K 클럽에서 지난해에도 비슷한 붕괴 사고가 일어나 20대 여성이 다쳤던 것으로 확인됐다. 광주시소방본부에 따르면 이날 오전 2시 29분경 광주 서구 치평동의 K 클럽 복층 구조물 중 10㎡가량이 무너져 최모 씨(38)와 오모 씨(27) 등 2명이 숨지고 15명이 다쳤다. 외국인 부상자 중엔 2019 광주 세계수영선수권대회에 참가한 미국과 네덜란드,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선수들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중 전날 우승한 미국 여자 수구 선수 K 씨(27)는 왼쪽 종아리가 10㎝ 정도 찢어지고 우즈베키스탄 선수 D 씨(23)는 목뼈를 다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클럽은 건물 2층 영업장 내부에 ‘ㄷ’자 형태의 복층 구조물을 설치해 영업했다. 광주 서구는 복층 구조물 등 입구 쪽 108㎡은 건축허가를 받았지만 사고 당시 전체 복층 면적이 총 300㎡가 넘었던 점에 미뤄 나머지 200㎡는 불법 증축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경찰은 복층 구조물에 한꺼번에 많은 사람이 몰리면서 내려앉은 것으로 보고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소방당국은 사고 당시 K 클럽에 370여 명이 몰린 것으로 파악했다. 이 클럽에선 지난해 6월 중순에도 비슷한 붕괴사고가 일어나 업주가 입건됐던 것으로 확인됐다. 광주 서부경찰서에 따르면 사고일 오전 2시경 이 클럽 2층 복층 구조물의 유리 바닥 일부가 무너져 아래에 있던 S 씨(25·여)가 부상을 입었고, 경찰은 업주 김모 씨(51)를 업무상 과실치상으로 입건했다. 지난해 사고 이후 불법 구조물에 대한 제재 및 시설 개선이 이뤄졌는지가 향후 경찰 수사의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세계수영선구권대회 취재차 방한한 중국 신화통신 등 외신 기자들은 이날 오전 K클럽 주변에서 취재를 벌였다. 영국 BBC 등 주요 외신들도 이날 홈페이지에 관련 기사를 게재했다. 광주=이형주 기자peneye09@donga.com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25일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유해물질인 포름알데히드 희석액(포르말린)이 담긴 병이 깨져 학생과 교사 1200여 명이 대피했다. 대피와 제거 작업이 신속히 이뤄진 덕에 학생과 교사의 건강 피해는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교육당국은 포르말린을 비롯한 학교 내 유해물질의 규모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어 비슷한 사고의 재발 위험을 관리할 수 있겠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 구로소방서에 따르면 이날 오전 10시 10분경 구로동 구일초등학교 본관 2층 제1과학실에서 학교 직원 1명이 과학실 개조 공사를 위해 약 300mL의 포르말린이 들어있는 1.5L 유리병을 옮기다가 실수로 깨뜨렸다. 과학실 안에는 학교 관계자 4, 5명 외에 학생은 없었다. 학교 관계자들은 즉시 과학실 밖으로 나와 119에 신고했다. 오전 11시 8분경 현장에 도착한 119구조대는 과학실 앞에 펜스를 세우고 우선 같은 층에 있던 학생과 교직원 60여 명을 옆 건물(서관)로 이동시켰다. 이어서 교내 방송을 통해 다른 층의 나머지 인원을 운동장으로 대피시켰다. 학생들은 교사의 인솔에 따라 줄을 서서 침착하고 질서 있게 대피한 것으로 전해졌다. 갑자기 대피하느라 가방을 챙기지 못하고 실내화 차림으로 나온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이 학교 3학년 박모 양(9)은 “갑자기 대피하는 게 무서워서 조금 울었다”고 말했다. 대피는 오전 11시 32분에 완료됐다. 오전 11시 48분경 특수구조대원 4명이 방독면과 방제복을 착용한 채 과학실로 들어갔다. 구조대원은 과학실 바닥에서 포르말린을 닦아낸 뒤 청소포 등을 기밀용기에 담아내 제거 작업을 완료했다. 학교 측은 구조대로부터 “더 이상 위험하지 않다”고 안내를 받았지만 혹시 모를 정신적 충격 등에 대비해 낮 12시경 학생 1277명을 전부 집으로 돌려보내거나 서관의 돌봄교실로 이동시켰다. 포르말린은 개구리 표본 등을 보존하기 위한 방부제나 소독제로 쓰인다. 쉽게 휘발되고 냄새가 독하다. 보존실이나 영안실의 시큼한 냄새가 바로 포르말린의 것이다. 안전보건공단의 물질안전보건자료에 따르면 포르말린을 흡입할 경우 호흡곤란에 빠질 수 있고 특히 눈에 닿으면 실명할 수도 있다. 다만 김수근 강북삼성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이번 사고에선 유출된 포르말린의 양이 적고 노출된 시간도 매우 짧아 (본관 건물 안에 있던 사람들의) 건강에 큰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은 매년 4월 물질안전보건자료가 담긴 50쪽 분량의 안내문과 과학실험실 점검리스트를 서울 시내 모든 초중고교에 보내고 있다. 이에 따르면 학교는 포르말린을 포함한 과학실험실 내 모든 화학물질을 취급주의 물질로 구분하고 매달 점검해야 한다. 교육지원청은 일선 학교에서 나온 폐수와 폐시약을 1년에 한 번 일괄 수거해 처리한다. 실험이 많아 폐수나 폐시약을 연말까지 쌓아둘 수 없는 학교는 이를 자비로 처리해야 한다. 교육당국은 구일초등학교가 해당 포르말린을 언제부터 보관했는지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교육부는 2007년 생명존중 교육에 반한다는 이유로 초등학교 정규과정에서 척추동물 등에 대한 생물 해부실험을 제외했다. 교육당국 관계자는 “일선 학교에 오래된 포르말린 등 화학물질이 얼마나 있는지는 자료가 없어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조건희 becom@donga.com·전주영 기자이소정 인턴기자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4학년}

올해 2월 설 명절 응급의료 공백을 막기 위해 퇴근도 미루고 일하다 과로로 숨진 윤한덕 중앙응급의료센터장(51·사진)이 국가유공자로 지정된다. 민간인이 국가유공자로 지정되는 건 1983년 미얀마 아웅산 테러 사건 당시 숨진 민병석 대통령 주치의와 이중현 동아일보 사진기자 이후 처음이다. 24일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이날 윤 센터장을 국가유공자로 지정하는 안이 국가보훈처 보훈심의위원회를 통과했다. 국가유공자법에 명시된 ‘국가사회발전 특별 공로 순직자’로 인정된 것이다. 윤 센터장에 대한 국가유공자 지정안은 이르면 다음 주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최종 확정될 것으로 보인다. 윤 센터장은 2002년부터 중앙응급의료센터를 이끌며 응급의료전용헬기(닥터헬기) 도입, 권역외상센터 출범, 국가응급의료진료망(NEDIS) 구축 등 국내 응급의료체계 개선에 기여했다. 윤 센터장이 숨진 뒤 그를 국가유공자로 지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지만 그동안 주무 부처인 국가보훈처는 신중한 입장을 유지했다. 일반적으로 국가유공자는 전몰군경이나 참전 유공자, 순직 공무원 등이 대상이다. 민간인은 ‘국가사회발전 특별 공로자’로 인정돼야 하는데, 그 기준이 모호했기 때문이다. 자칫 국가유공자 대상자가 크게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다. 하지만 국민 건강과 안전에 헌신한 윤 센터장의 공로가 국가유공자 추대 기준에 부합한다는 여론이 높았다. 또 전쟁 등 국가 위기 상황에 헌신하는 공직자 못지않게 민간인이 국가와 사회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도 인정받아야 한다는 의견도 많았다. 국가유공자로 지정되면 자녀의 중고교 및 대학 입학금·수업료가 면제되고, 유족들은 병원 진료비 감면 등의 혜택을 받는다. 윤 센터장의 부인 민영주 씨는 “남편은 자신이 가진 모든 재능과 가치를 응급의료 개선에 쏟아 부었는데, 국민께서 그 사랑을 돌려주신 것 같다”며 “아이들이 자부심을 갖고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박성민 min@donga.com·조건희 기자}

북한 정찰총국의 지령을 받은 간첩이 국내에서 스님 행세를 하며 활동하다가 검거됐다. 고정 간첩이 아닌 북한에서 직접 남파한 이른바 ‘직파 간첩’의 활동이 공안당국의 수사로 드러난 것은 9년 만이다. 공안당국에 따르면 국가정보원과 경찰청은 최근 북한이 직파한 간첩 용의자인 40대 남성 A 씨를 구속해 조사 중이다. A 씨는 북한에서 대남 공작업무를 총괄 지휘하는 인민무력부 산하 정찰총국에서 지령을 받아 지난해부터 올해 6월까지 국내에서 활동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공안당국은 A 씨가 수년 전에도 한국에 들어왔다가 출국한 뒤 지난해 서아시아의 한 국가에서 국적을 세탁하고 제주도를 통해 다시 입국한 것으로 파악했다. A 씨의 입국 경로를 수상하게 여긴 국정원은 감청 등을 통해 혐의점을 포착한 것으로 전해졌다. A 씨는 국내에서 스님으로 행세하며 불교계에 잠입해 활동하려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과 경찰은 A 씨를 합동 조사해 이런 활동 내용과 북측의 지령, 수집한 정보를 북측에 전달하기 위해 부여받은 암호 등을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안당국은 A 씨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할 방침이다. 고정 간첩이나 국내 인사가 전향해 이적행위를 하는 포섭 간첩이 아닌 직파 간첩의 검거 사실이 알려진 것은 2010년 1월 고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를 암살하기 위해 탈북자 행세를 하려다가 적발된 정찰총국 소속 공작원 동명관 씨(45)와 김명호 씨(45) 이후 처음이다. 이들은 같은 해 7월 법원에서 징역 10년의 확정 판결을 받았다. 2006년엔 정찰총국 전신인 노동당 35호실 소속 정경학 씨(61)가 태국인으로 위장해 국내에서 공군 레이더기지 등의 사진을 찍어 북측에 전달하는 활동을 벌이다 기소돼 징역 10년에 자격정지 10년을 선고받았다. 공안당국에 따르면 그동안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A 씨처럼 해외에서 신분을 세탁한 뒤 잠입했다가 검거된 간첩은 그동안 몇 차례 있었다고 한다. 중국에서 신분을 위장한 뒤 국내에 정착해 첩보 활동을 하려던 직파 간첩이 재판에 넘겨져 실형을 선고받은 적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조건희 becom@donga.com·김동혁·김정훈 기자}

24일 퇴임하는 문무일 검찰총장의 이색적인 작별 행보가 화제를 모으고 있다. 거창한 퇴임식도 생략하고 퇴임사도 검찰 게시판에 올리는 것으로 대신했다. 역대 총장 중 처음으로 퇴임 인사차 경찰청을 찾기도 했다. 문 총장은 퇴임을 하루 앞둔 23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을 찾아 민갑룡 경찰청장을 만났다.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 등 민감한 현안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고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25분가량 환담을 나눈 것으로 전해졌다. 민 청장은 떠나는 문 총장에게 ‘국민의 경종(警鐘)이 되소서’라는 백범 김구 선생의 휘호가 새겨진 종(鐘)을 선물했다. 문 총장은 면담을 마치고 나오며 기자들에게 “경찰이나 검찰이나 국민의 안전과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게 첫 번째 임무”라며 “힘을 합쳐 완수하길 바라고 그런 차원에서 두 기관이 서로 왕래를 좀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문 총장은 이날 김명수 대법원장, 유남석 헌법재판소장, 이찬희 대한변호사협회장 등 법조계 수장들도 만나 퇴임 인사를 했다. 문 총장은 24일 오전 퇴임식을 대검찰청 대강당이 아닌 8층 회의실에서 비공개로 하기로 했다. 후임인 윤석열 차기 검찰총장을 위해 전직 총장이 최대한 조용히 물러나야 한다는 문 총장의 뜻이 반영됐다. 퇴임식에서 퇴임사를 낭독하던 관행 대신 문 총장은 이날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에 퇴임사를 미리 올렸다. 그는 “우리가 ‘열심히’ 하는 데 너무 집중하느라 국민들께서 검찰에 기대하는 것만큼 검찰권능을 ‘바르게’ 행사하지 못한 것은 아닌지 살펴볼 필요도 있다”고 후배들에게 당부했다. 문 총장은 2017년 7월 26일 첫 출근길에 “오직 국민만 바라보고 바르게 잘하겠다”고 밝혔고, 이후 수차례 ‘바르게’라는 표현을 써 왔다. 마지막 순간까지 검찰의 중립성을 강조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문 총장은 또 “검찰의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검찰을 신뢰할 수 있는 때가 오기를 기다리는 국민의 바람이 여전하기만 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불신이 쌓여 온 과정을 되살펴봐 우리 스스로 자신부터 그러한 과오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경계해야겠다”고 강조했다.이호재 hoho@donga.com·조건희 기자}
검찰이 경찰의 ‘피의사실 공표 사건’을 계속 수사하게 되자 경찰은 검찰의 피의사실 공표 사례를 수집하며 맞대응을 고심하고 있다. 민갑룡 경찰청장은 “법무부에 피의사실 공표 기준에 대해 머리를 맞대고 논의하자고 다시 한번 요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23일 경찰청 내부에선 전날 대검찰청 산하 검찰수사심의위원회가 경찰관의 ‘피의사실 공표 사건’을 계속 수사해야 한다고 의결한 것을 두고 엇갈린 반응이 나왔다. 주된 견해는 ‘설마 울산지검이 해당 경찰관들을 기소하겠느냐’는 것이었다. 심의위원회의 결정은 수사를 계속하라는 것이지 기소 여부까지 결론을 내린 것은 아니고, 강경한 태도로 이번 사태를 주도해 온 송인택 전 울산지검장이 19일 퇴임했으니 새 지도부가 수사는 계속하되 불기소로 절충하지 않겠느냐는 전망이다. 일부에선 강한 불만의 목소리도 나왔다. 심의위원회의 결정이 수사 대상인 경찰관들에게 통보된 것은 22일 오후 6시 33분경인데 그로부터 불과 9분 만에 울산지검 관계자 등의 발언을 인용한 기사가 온라인에 게재됐으니 이 자체가 검찰의 피의사실 공표에 해당하지 않느냐는 지적이다. 경찰청 수사구조개혁단은 검찰이 과거에 배포한 보도자료나 수사 브리핑 내용을 수집하며 이 중 피의사실 공표죄에 해당될 수 있는 사례를 정리하고 있다. 민 청장은 23일 기자들과 만나 “피의사실을 국민에게 알리는 것과 관련된 여러 가치가 있다”며 “그런 점들과 함께 (울산지검의 수사가) 미칠 파장도 충분히 고려해줄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민 청장은 또 “국민이 공감하는 (피의사실 공표의) 기준과 절차 등에 대한 논의를 법무부에 다시 요청하겠다”고 말했다. 경찰청은 지난달 17일 ‘경찰과 검찰이 만나 공보 기준을 논의하자’고 제안하는 공문을 법무부에 보냈다.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이른바 ‘화학적 거세’로 불리는 성충동 약물치료를 받는 성범죄자 중 2명이 최근 자진해 치료를 연장해 달라고 법무부에 요청한 것으로 23일 확인됐다. 치료 덕에 성욕을 억누를 수 있게 돼 일상생활에 크게 도움이 됐다는 것이다. 성범죄자가 스스로 치료 연장을 요청한 것은 2011년 7월 24일 제도 도입 이후 처음이다. 하지만 현행법상 성충동 약물치료를 연장할 근거가 없어 이 2명에 대한 치료는 올해 10월 종료될 것으로 보인다. 법무부에 따르면 50대 A 씨는 2015년 지하철에서 다른 승객의 몸을 더듬은 혐의로 기소돼 징역 1년 선고와 함께 3년간 성충동 약물치료 명령을 받았다. 성충동 약물치료는 성범죄 재범 위험이 높은 성도착증 환자에게 법원의 명령이나 법무부 치료감호심의위원회의 결정을 통해 성호르몬 억제제를 투약하는 것이다. A 씨는 버스나 지하철에서 마음에 드는 여성을 보면 자제력을 잃고 여성의 몸에 손을 대는 행동을 반복했다. 2015년 검거 당시엔 이미 4차례나 비슷한 범행을 한 상태였다. 법원은 A 씨가 성도착증의 일종인 접촉도착증(타인에게 비정상적으로 접촉해 성적 쾌감을 얻는 질환)이라는 감정 결과를 받아들여 치료를 명령했고, A 씨는 출소 후인 2016년 11월부터 보름마다 성호르몬제를 투약하기 시작했다. A 씨는 처음엔 투약을 탐탁지 않아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효과에 만족한 것으로 전해졌다. 담당 보호관찰관은 “A 씨가 ‘치료 덕에 대중교통에서 여성을 봐도 성욕이 일어나지 않게 됐다’며 놀라워했다”고 전했다. A 씨는 치료 종료일(10월 31일)이 다가오자 최근 보호관찰소를 통해 치료 연장을 요청했다. 준강제추행죄를 저질러 2016년 10월부터 약물치료를 받고 있는 30대 B 씨도 치료 종료일(10월 4일)을 앞두고 “치료 덕에 새 삶을 찾았다”라며 A 씨와 같은 요청을 했다. 하지만 법무부는 A 씨와 B 씨의 요청을 들어줄 수 없다고 잠정 결론을 내렸다. 현행법엔 약물치료를 연장할 수 있는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해당 약물의 투약 비용(연간 약 500만 원)엔 건강보험도 적용되지 않아 이들이 민간병원에서 치료를 이어갈 가능성은 낮다. 이장규 국립법무병원 정신건강임상심리사는 “현재까지 약물치료를 받은 41명 중 한 명도 재범을 저지르지 않았을 정도로 그 효과가 뛰어나지만 투약을 중단하면 6개월 안에 예전의 성욕을 회복하게 된다”고 말했다. 치료 연장의 법적 근거를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전문가들은 또 미국 등 선진국처럼 흉악한 성범죄자라면 성도착증 환자로 확진되지 않아도 약물치료를 명령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민갑룡 경찰청장(54·경찰대 4기)은 최근 ‘고유정의 전남편 살해사건’ 등에서 경찰의 초동 대처가 미흡했다는 지적에 대해 “모든 사건에 위기 대응 체계로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수사권 조정안에 대해선 “경찰이 권한만 갖겠다는 게 아니라 수사 결과에 책임질 각오를 하겠다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23일로 취임 1년을 맞는 민 청장은 18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가진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경찰 조직 안팎의 현안에 대해 신중하게 의견을 밝혔다. 민 청장은 지난 1년을 돌이키며 특히 안타까웠던 일로 ‘강남 클럽 버닝썬’ 사태와 ‘고유정 전남편 살해사건’을 꼽았다. 각각 경찰이 마약의 조직적 유통 가능성을 과소평가하고 사건 현장을 제대로 보존하지 않는 등 수사 초기 대응에서 문제를 드러냈다는 이유에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민 청장은 일선 경찰서에서 사건을 접수하면 즉시 ‘위기 대응 체계’를 가동하겠다고 밝혔다. 현재는 당직 경찰관이 사건을 접수만 한 뒤 퇴근하면 수사에 착수하기까지 최소 이틀이 더 걸리는데 초동 대처를 충분히 한 뒤 사건을 인계하도록 하겠다는 얘기다. 민 청장은 “사건이 발생하면 그와 관계된 시민은 잠을 이루지 못하는데 경찰은 ‘담당자가 정해질 때까지 기다려 보라’고 하는 그런 시스템은 안 된다”고 말했다. 민 청장은 또 경찰이 ‘제복 입은 시민’으로서 정체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선진국에선 경찰의 역사가 시민에게서 치안에 대한 책임을 위임받는 방식으로 시작됐는데 우리 경찰은 일제 치하에서 태동한 탓에 시민과 대척점에 서는 듯한 일이 많았다는 뜻이다. 민 청장은 “곤궁에 처한 시민을 봤을 때 자연스럽게 (시민의 입장을) 공감할 수 있어야 경찰이 인정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국회에서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에 오른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에 대해 민 청장은 “수사권 조정은 현장 경찰이 사건을 1차적으로 판단하고 그 결과에 책임까지 지겠다는 뜻”이라고 역설했다. 특히 검찰 조사 때 작성한 피의자 신문조서가 법정에서 그대로 증거로 쓰이는 점에 대해선 “자백 강요 등 인권 침해 가능성이 높아 반드시 고쳐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25일 취임하는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를 언급하며 “(윤) 총장 후보자도 청문회에서 수사권 조정안의 방향에 공감한다고 했으니 관련 논의가 속도를 내기 바란다”고 기대를 비치기도 했다. 잇따른 검경 갈등에 대해선 서운함을 감추지 않았다. 최근 울산지검이 ‘약사 면허증 위조 사건’ 수사 결과를 보도자료로 만들어 언론에 배포한 경찰관 2명을 피의사실 공표죄로 수사 중인 것과 관련해 민 청장은 “피의사실을 알릴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다. 그게 (공표한) 사람을 처벌한다고 풀리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분명하게 밝혔다. 민 청장이 지난달 “함께 기준을 정하자”고 공개 제안했지만 대검찰청이 하루 만에 “공보규칙은 법무부 소관”이라며 내친 것을 염두에 둔 발언이다. 민 청장은 “검찰이 수사에 나선 덕에 (피의사실 공표 기준에 대한) 논의가 촉발되긴 했지만 방법이 너무 거칠다”며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민 청장은 일선 경찰관이 끔찍한 사건이나 사고를 겪은 뒤에도 사회적 낙인을 두려워해 트라우마 치료를 꺼리는 일이 없도록 솔선수범해 공개적으로 ‘마음동행센터(트라우마 치료 센터)’를 이용해 보겠다고 약속했다. 민 청장은 “이미 센터에선 상담 기록을 남기지 않고 무료로 경찰관의 트라우마를 살피고 있지만 그래도 일선 경찰관이 느낄 수 있는 망설임을 없애기 위해 저도 한 번 가야겠다”라고 말했다. 민 청장은 인터뷰 말미에 집무실 책상 위에 놓인 손바닥만 한 종(鐘)을 들어 보였다. 종에는 ‘국민의 경종(警鐘)이 되소서’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초대 경무국장(지금의 경찰청장)을 지낸 백범 김구 선생이 광복 후 1947년 경찰 기관지인 ‘민주경찰’ 특호에 쓴 휘호를 옮긴 것이라고 한다. 민 청장은 “심란할 때마다 종소리를 들으며 마음을 다잡는다”고 했다.이종석 wing@donga.com·조건희 기자}

일본의 수출 규제에 대한 맞대응으로 시작된 일본상품 불매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일부 제품의 매출 하락에 그쳤던 불매운동은 현재 산업계 전반으로 퍼지면서 매출에 직격타를 주고 있다. 21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대형마트, 편의점 등에서 판매하는 주류, 라면 등 일본 제품 매출이 급감했다. 이달 1~18일 이마트의 일본 맥주 판매량은 전월 동기 대비 30.1% 감소했다. 불매운동이 시작된 이달부터 매주 10% 이상씩 매출이 빠진 셈이다. 올해 상반기 수입맥주 매출 2위를 기록한 아사히맥주는 이달 판매순위가 6위로 떨어졌고 기린 등 다른 일본 브랜드도 하위권으로 순위가 하락했다. 롯데마트에서도 일본 라면(-26.4%), 낫또(-11.4%) 일본 과자(-21.4%) 매출이 감소했다. 수입맥주 ‘4캔 1만 원’ 마케팅을 하는 편의점에서도 일본 제품의 매출이 감소했다. 편의점 GS25에 따르면 이달 1~17일 일본 맥주 매출은 지난달 같은 기간보다 24.4% 줄었다. 소비자 여론이 악화되면서 일본 상품을 판매대에서 치우는 곳들도 나타나고 있다. 편의점업계 관계자는 “제품이 안 팔리는 게 가장 큰 문제겠지만 소비자 항의가 많아서 판매대 한 쪽으로 일본 제품을 치우는 사례가 늘었다”고 말했다. 여행업계에서는 일본 여행 거부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회원 수 약 130만 명의 국내 최대 일본 여행 주제 인터넷 카페인 ‘네일동’(네이버 일본 여행 동호회)은 불매운동을 지지하며 17일 운영을 잠정 중단했다. 실제로 주요 여행사의 일본 여행 신규 예약자가 감소했다. 하나투어는 일본 여행 패키지 상품의 신규 예약자가 하루 평균 1100명 선에서 이달 중순 400~500명 선으로 하락했다고 밝혔다. 예정된 여행을 취소하는 사례도 일부 늘었다. 노랑풍선 여행사는 이달 들어 18일까지 예약 취소비율이 전년 동기보다 1.5배로 늘었다고 밝혔다. 아직 7, 8월 항공권 취소 비율은 크지 않은 것으로 보이지만 신규 예약 감소 추세가 지속된다면 9월부터 일본 방문객 수가 급감할 것으로 관광업계는 전망하고 있다. ‘일본 상품 불매 리스트’가 퍼지면서 부정확한 정보로 기업이 피해를 보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일본 제품 정보를 제공하는 ‘노노재팬’ 사이트엔 편의점 등에서 판매되는 삶은 계란 ‘감동란’이 불매 리스트에 올랐다. 그러나 제조 기술만 일본에서 빌렸을 뿐 일본에 보내는 비용이 전혀 없고 수익은 전부 한국에서 사용한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불매 목록에서 삭제됐다. 노노재팬은 속옷 브랜드 ‘와코루’와 보안 서비스 브랜드 ‘세콤’을 불매 리스트에 올렸다가 삭제했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대규모 투자를 한 쿠팡도 일본기업 논란에 휩싸이면서 최근 홈페이지에 ‘쿠팡에 대한 거짓 소문에 대해 알려드립니다’라는 제목의 설명문을 올리고 “쿠팡은 우리나라에서 설립해 성장했으며 99% 이상의 사업을 한국에서 운영한다”고 해명했다. ‘조지아 커피’와 ‘토레타’를 생산·판매하는 한국코카콜라도 일본 제품 논란이 일자 “조지아 커피와 토레타는 일본코카콜라가 아닌 코카콜라 본사에서 브랜드에 관한 모든 권리를 소유하고 있는 제품”이라며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다이소도 “일본 다이소가 2대주주지만 대주주는 한국기업이고 별도의 로열티도 없다”며 해명했다. 유니클로, 아사히, 무인양품 등 일본과 합작해 사업을 운영하고 있는 롯데도 난감한 상황이다. 주말 서울 시내 곳곳에선 일본 정부를 비판하는 시위가 개최됐다. 20일 서울 종로구 옛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선 일본의 경제 보복을 규탄하고 과거사 왜곡을 비판하는 ‘경제보복 아베 규탄 촛불집회’가 열렸다. 정의기억연대와 한국진보연대 등 100여 개 시민단체 회원 1500여 명(주최 측 추산)은 이날 오후 6시부터 약 1시간 동안 “강제 징용 사죄하라”, “경제 보복 중단하라”, “아베정권 규탄한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참가자들은 ‘노(No) 아베’, ‘일본정부 사죄하라’ 등의 피켓을 함께 들었다. 집회가 마무리될 무렵에는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인 대형 욱일기를 함께 찢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주최 측은 27일 오후 7시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제2차 경제보복 아베 규탄 촛불집회’를 열 계획이라고 밝혔다. 강승현 기자 byhuman@donga.com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