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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발매 70년을 맞이하는 롯데칠성음료의 ‘칠성사이다’는 우리 민족의 입맛을 대변해 온 음료다. 하루에도 수많은 신제품이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70년간 줄곧 우리 곁에서 변함없는 맛과 즐거움을 선사하는 칠성사이다의 저력은 실로 대단하다. 국내 사이다시장은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전체 사이다시장의 성장에는 칠성사이다가 가장 큰 역할을 하고 있다. 2019년 국내 사이다시장에서 칠성사이다는 약 70%에 달하는 점유율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단일품목으로 약 4200억 원대(2019년 기준)의 매출을 기록했다. 출시부터 올해 4월 말까지 70년간 칠성사이다의 누적 판매량은 250mL 캔 제품 기준으로 약 295억 캔으로, 한 캔의 높이가 13.3cm인 제품을 일렬로 늘어놓으면 지구 둘레(약 4만 km)를 98바퀴 돌 수 있는 392만 km에 달한다. 칠성사이다는 1950년 5월 9일 처음 출시됐다. 1949년 12월 15일 최금덕, 박운석, 방계량, 주동익, 정선명, 김명근, 우상대 등 7명이 주주가 되어 세운 ‘동방청량음료합명회사’의 첫 작품이었다. 이들은 각자의 성이 모두 다르다는 점에 착안해 ‘칠성(七姓)’이라는 제품명을 쓰려 했다. 하지만 회사의 영원한 번영을 다짐하는 의미에서 별을 뜻하는 ‘성(星)’자를 넣어 ‘칠성(七星)’으로 결정했다. 회사 창립기념일도 1950년 5월 9일로 정했다. 이후 사명은 여러 번 바뀌었지만 칠성사이다의 정체성은 변함없이 이어져 오고 있다. 칠성사이다에 얽힌 이야기는 많다. 그중에서도 삶은 달걀과 김밥, 그리고 칠성사이다의 조합은 특별하다. 이 셋은 ‘소풍삼합’이라는 별명이 있을 만큼 우리나라 대부분의 중장년층에게 삶의 향수를 느끼게 하는 소중한 추억이다. 최근 젊은층 사이에서는 갑갑한 상황이 시원하고 통쾌하게 풀리는 것을 표현할 때 ‘사이다’라고 한다. 칠성사이다는 각자에게 다른 의미와 추억을 선사하며 그 역사를 이어나가고 있다. 장수 브랜드들의 공통적 특징은 소비자 기호에 적절하게 다가가는 우수한 제품력이다. 특히 칠성사이다만의 맛은 첫 번째 성공 요인이다. 또 ‘칠성사이다의 맛=사이다 본래의 맛’이라는 인식도 강하게 자리 잡았다. 올해 5월에는 70주년을 맞아 ‘칠성사이다 복숭아’ ‘칠성사이다 청귤’ 등 소비자 트렌드에 발맞춘 새로운 제품도 선보이고 있다. 롯데칠성음료는 70주년을 맞아 버스정류장 녹화사업 추진, 한정판 굿즈 판매, 방탄소년단 모델 발탁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칠성사이다가 오랜 시간 소비자들이 보내준 사랑으로 성장해온 만큼 앞으로도 다양한 사회공헌 캠페인을 펼칠 계획이다. 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경남 남해군 남면에 있는 다랭이마을은 ‘남해’ 하면 떠오르는 곳이다. 산골짜기의 비탈진 곳에 있는 계단식의 좁고 긴 논을 ‘다랑이’라 부르는데 마을 사람들이 ‘다랭이 마을’로 불러왔다. 척박한 땅을 개간해 농사를 지은 탓에 논은 자연에 가까운 곡선 모양이다. 계단식 논은 쪽빛 남해 바다를 향해 층층이 이어져 있다. 제 멋대로 들쭉날쭉 생긴 논들이지만 논 사이로 산책로도 있다. 길을 따라 걷기만 해도 마을 역사가 머릿속에 그려진다. 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영향으로 국내 최대 여행사인 하나투어가 임직원 대부분에 대해 무급 휴직을 시행한다. 하나투어는 13일 사내 통신망을 통해 임직원 무급휴직을 시행한다고 공지했다. 하나투어 관계자는 “회계 등 필수 인력을 제외한 전체 80%가량 임직원을 대상으로 이르면 다음 달부터 무급휴직을 진행한다”며 “최소한의 인력만 주 3일 근무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나투어는 지난해 1분기 132억 원 영업이익을 거뒀으나 올해 1분기에는 275억 원의 영업손실을 내며 적자 전환했다. 하나투어는 무급 휴직을 알리기 전까지 직원에게 임금의 70% 정도를 지급해 왔다. 하나투어는 대부분의 해외 법인도 청산하고 연락사무소 형태로 전환할 방침이다. 하나투어는 해외 30여 개 법인과 지사, 합자 법인을 운영 중이다. 이 중 15개 법인 이상을 청산하고 중국 베트남 영국 등 핵심 지사만 남길 계획이다. 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재인폭포는 경기 연천의 대표적인 명소 중 하나다. 높이 약 18m의 폭포수가 너비 30m, 길이 100m의 소(沼) 위로 떨어진다. 검은 현무암 주상절리 아래로 떨어지는 물줄기가 아름다워 제주도 천지연폭포와 비교되곤 한다. 폭포의 물살이 현무암으로 이루어진 주상절리를 조금씩 침식시켜 나가고 있다. 폭포도 조금씩 뒤로 물러나고 있다. 현재 위치는 강변에서 350m 정도 들어갔다고 한다. 세월 따라 자연도 변한다. 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충북 괴산은 산이 많다. 소백산맥이 괴산의 북동쪽에서 남서쪽으로 이어져 있다. 조령산(해발 1017m), 백화산(1064m), 덕가산(858m), 칠보산(770m), 보개산(780m), 군자산(948m) 등 준봉이 줄지어 있다. 괴산 중심에도 박달산(825m)을 비롯한 산들이 자리 잡고 있다. 괴산군에서 소개하는 산과 봉만 해도 45개나 된다. 산이 많으니 구곡(九曲·계곡)도 많다. 전국에 구곡이라 이름 붙은 곳이 60여 개인데, 그중 7개가 괴산에 있다. 덕분에 괴산에는 계곡 따라, 산줄기 따라 걸을 수 있는 길이 많다. 화창한 봄에 물소리, 새소리, 바람소리 들으며 걸을 수 있는 곳이 괴산이다. 산막이옛길은 2011년 조성된 둘레길이다. 산막이라는 지명은 산이 장막처럼 둘러싸고 있어 막혔다는 뜻. 옛날 산막이마을 사람들은 다른 마을로 가기 위해 달천에 놓인 섶다리를 건너다녔다. 한마디로 산막이마을은 오지 중의 오지였다. 1957년 칠성댐(괴산댐)이 만들어지면서 다리마저 물에 잠기고 말았다. 다른 마을로 오가던 유일한 길이 끊긴 것. 마을 사람들은 세상과의 단절을 피하기 위해, 그리고 삶을 이어가기 위해 호수와 맞닿은 산을 따라 산길을 만들었다. 이 길이 산막이옛길이다. 산막이옛길은 칠성면 사은리 산막이마을에서 칠성면 외사리 사오랑마을까지 연결하는 약 4.3km의 길이다. 절벽같이 경사가 심한 산자락에 만들어진 길을 자연 훼손은 최소화하면서 나무 덱으로 이어 걷기 좋은 길로 만들었다. 산막이옛길은 최근 많은 둘레길이 개발되는 가운데서도 독특함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일단 길을 따라 다양하게 자라난 나무 군락이다. 처음 길을 내디디면 소나무 군락이 펼쳐진다. 조금 걷다 보면 굴피나무들이 보인다. 이어 굴참나무, 느티나무, 참나무, 신갈나무, 진달래 같은 꽃들이 차례로 등장하면서 눈을 즐겁게 한다. 길에 재미와 이야기를 더한 점도 눈에 띈다. 옛길의 초입인 소나무 군락 지대에는 소나무 출렁다리가 놓여 있다. 약 80m 길이의 출렁다리가 작은 계곡 위로 여러 갈래로 가지처럼 이어져 있다. 보기에는 무섭지만 허리 높이 위에 설치된 줄을 잡고 나무 발판을 밟고 가면 된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걸을 때마다 흔들리는 다리에 올라가면 즐거움에 웃음보가 터진다. 길을 따라 가다 보면 괴산호를 향해 불쑥 튀어나온 전망대가 나온다. 바닥은 강화유리로 만들어져 있다. 오래된 탓인지 흠집이 많아 밑으로 호수가 흐릿하게 보이지만 무서운 것은 마찬가지다. 전망대 끝에 다다르면 시원하게 펼쳐진 괴산호와 주위 경치에 눈이 즐겁다. 옛길 곳곳을 걸을 때마다 이야기가 펼쳐진다는 점도 재미있다. 노루, 토끼, 꿩 등 야생동물들이 지나다니면서 목을 축였다는 ‘노루샘’,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해 1968년까지 호랑이가 실제로 드나들며 살았다는 ‘호랑이굴’, 여우비와 여름 한낮에 더위를 피하며 잠시 쉬어가던 ‘여우비 바위굴’, 여인이 무릎을 꼬고 앉아있는 듯한 형상을 하고 있는 ‘아름다운 미녀 참나무’. 하나하나 단편소설 같은 이야기가 길에 심어져 있다. 아이들에게 해줄 이야기가 샘처럼 솟는 곳이다. 1시간 반 정도 걷다 보면 산막이마을에 도착한다. 작은 마을이지만 음식점들이 있어 허기진 배를 채울 수도 있다. 힘이 조금 남았다면 연하협 구름다리까지 걸어가 보는 것이 좋다. 길에는 흙과 돌이 많아 정말로 옛길 같은 느낌을 준다. 괴산호와 달천을 끼고 약 20분이면 다리에 닿는다. 연하협 구름다리는 산막이옛길과 충청도양반길을 이어주는 현수교다. 예전에는 배를 타고 건넜다고 한다. 길이 167m, 폭 2.1m로 이곳에서 괴산호의 절경과 산막이옛길을 내려다볼 수 있다. 산막이마을 선착장에서는 유람선을 타고 되돌아 나갈 수 있다. 수시로 운항하며 10분 정도 걸린다. 괴산에는 구곡, 갈은구곡, 쌍곡구곡, 선유구곡, 고산구곡, 연하구곡, 풍계구곡 등 7개의 구곡이 있다. 이 중 연하구곡은 괴산호 아래에 잠겼고, 풍계구곡은 문헌상으로만 남아 있다. 가장 유명한 구곡은 화양구곡이다. 화양동 계곡을 따라 끊임없이 절경이 펼쳐지고 계곡의 폭이 넓어 여름철 물놀이에 좋다. 화양구곡은 조선시대 성리학자인 우암 송시열(1607∼1689)이 한때 머물렀던 곳이다. 원래 화양동 계곡은 황양나무(회양목)가 많아 황양동이라고 불렸다. 송시열이 이곳으로 거처를 옮긴 뒤 중국을 뜻하는 중화의 화(華)를 따 화양동이라 고쳤다. 깊은 산속 계곡이지만 조선시대 성리학의 중심지 중 한 곳이었다. 화양서원을 비롯해 임진왜란 때 원군을 보내준 중국 명나라 황제인 신종과 의종의 위패를 모신 사당인 만동묘가 있다. 일제강점기 때 파괴됐다가 2006년 복원됐다. 화양구곡은 보통 주차장 옆에 위치한 제1곡인 경천벽을 출발점으로 해서 제9곡인 파천까지가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길이다. 화양동 계곡 자체는 약 4.5km다. 파천까지는 약 3.1km 거리다. 보도블록 등으로 길이 잘 정비돼 있어 유모차를 밀고 가도 큰 부담이 없다. 구름이 맑게 비친다는 제2곡 운영담을 지나면 제3곡 읍궁암, 제4곡 금사담이 나타나는데 이 일대는 송시열 유적지다. 금사담 건너편에는 송시열이 후학을 길렀다는 암서재가 운치 있게 자리 잡고 있다. 큰 바위가 첩첩이 쌓여 천체를 관측했다는 제5곡 첨성대, 구름을 찌를 듯 높다는 제6곡 능운대, 용이 누워 꿈틀거리는 모습을 닮았다는 제7곡 와룡암까지는 길이 평탄해 부담 없이 걸을 수 있다. 너럭바위가 계곡 군데군데 깔려 있어 잠시 바위에 앉아 쉬어가기 좋다. 구곡 하나라도 놓칠까 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눈에 잘 띄기도 하고 이정표가 곳곳에 있다. 와룡암부터는 산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깊은 숲속을 걷다 보면 나무들 사이로 새어 나오는 계곡물 소리가 배경음악처럼 들린다. 청학이 바위 위에 둥지를 틀고 알을 낳았다는 제8곡 학소대를 지나면 최종 목적지인 파천이 나온다. 흰 바위들이 넓게 펼쳐져 있고 그 위로 흐르는 물결이 용의 비늘을 꿰 놓은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매끄러운 바위 위로 얇게 퍼지는 물에 햇살이 비치면 눈을 뜨기 힘들 정도다. 적당히 햇빛에 달궈진 바위는 앉아도, 누워도 좋을 정도로 따뜻하다. 조금 덥다 싶으면 신발과 양말을 벗고 물살에 발을 담가도 된다. 신선들이 술잔을 나눴다는 이야기가 진짜였을 것 같다. 그 정도로 예전부터 이곳은 핫플레이스였다. 파천 주위에는 몇백 년 전에 이곳을 찾았던 사람들이 “나 여기 왔다 간다”고 증명하듯 바위에 새긴 직책과 이름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조령산자연휴양림 근처에 있는 수옥폭포는 시원한 폭포가 그립다면 찾아볼 만하다. 조령산에서 흘러내리는 시냇물이 20m 아래로 떨어지는 장관이 막힌 속까지 뚫어주는 기분이다. 주변에는 큰 나무들이 늘어서 있어 그늘도 만들어준다. 폭포 앞 정자에 앉아 폭포 소리를 들으며 신선놀음을 하듯 느리게 시간을 보내고 싶을 정도다. 문광저수지는 가을에 노랗게 물드는 300여 그루의 은행나무로 유명하다. 하지만 봄, 여름, 겨울에도 아늑하고 평화스러운 분위기를 즐기려면 꼭 빼놓지 말아야 할 장소 중 하나다. 저수지 한 면을 따라 산책을 즐길 수 있는 나무 덱이 있다. 물 위를 걷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모든 저수지가 그러하듯 새벽에 물안개가 낄 때 찾으면 더욱 좋다.글·사진 괴산=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농림수산식품모태펀드 투자관리 전문기관인 농업정책보험금융원(원장 민연태)은 지난달 28과 29일 최종 심의를 거쳐 2020년도 정기 출자사업자 5개 운용사(1050억 원 규모)를 선정했다고 5일 밝혔다. 농림축산식품 전반에 투자하는 일반펀드는 NH농협은행과 나우아이비캐피탈이 공동 운용사(GP)로 선정됐다. 당초 결성 예상 규모인 300억 원보다 많은 400억 원 규모로 조성될 예정이다. 100억 원 이상 추가 민간 투자 레버리지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농식품벤처 분야 운용사로는 마그나인베스트먼트가 선정됐다. 해당 분야는 사업 개시 후 5년 미만으로 첨단 기술 연구개발(R&D)이나 새로운 사업 모델을 활용해 농업 분야의 가치창조를 모색하면서 일정 조건을 충족하는 농식품기업에 투자할 예정이다. 올해 처음으로 결성되는 ‘징검다리펀드’는 세종벤처파트너스와 대성창업투자가 GP로 선정됐다. 기존 농식품 투자기업의 스케일업(고속 성장)을 위해 후속투자를 도모하고 향후 일자리 창출이 기대되는 농식품기업에 투자할 예정이다. 수산 분야에서는 사업 개시 후 7년 이내에 벤처기업 등에 투자하기 위해 ‘수산벤처창업펀드’가 조성됐다. 가이아벤처파트너스와 BNK벤처투자가 선정돼 각각 150억 원 규모로 수산기업에 투자할 계획이다. 농금원은 향후 추가 출자사업으로 소규모 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해 건당 5억 원 미만으로 투자하는 ‘마이크로펀드’를 결성할 계획이다. 또 경북도와 협업해 경북 지역기업에 투자하기 위한 지역특성화펀드를 추가로 조성할 예정이다. 하반기에는 1차 산업 투자 활성화를 위해 만 49세 이하 농업인 또는 창업 5년 미만의 1차 산업 농식품경영체에 투자하는 ‘영파머스펀드’를 조성하기로 했다. 농수산 분야의 투자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2010년 출범한 농식품모태펀드는 매해 민간자금과 농림수산식품투자조합을 결성해 성장 잠재력을 가진 유망 기업에 투자해 왔다. 이번에 선정된 5개 투자조합을 포함해 총 77개 투자조합이 결성되었으며, 규모는 1조2780억 원에 달한다. 그간 농수산식품 분야를 비롯한 다양한 분야의 우수 기업에 604건의 투자를 완료했으며, 총 투자금액은 약 8273억 원이다. 민연태 농업정책보험금융원장은 “농금원은 농식품산업 경쟁력 제고를 위한 맞춤형 투자시스템을 확대하기 위해 중장기 발전 계획을 준비하고 있다”며 “농식품산업의 특수성을 고려한 투자기업 지원 프로그램을 강화하고, 혁신성장농업을 주도할 농식품 분야의 차세대 성공 모델이 마련될 수 있도록 농식품기업의 든든한 투자 지원군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전북 부안의 고사포해수욕장 주변에 작은 섬인 하섬이 보인다. 하섬은 매월 음력 보름과 그믐날에 3, 4일간 길이 열린다. ‘모세의 기적’처럼 바다가 갈라지면서 바닷길이 열릴 땐 걸어서 섬에 들어갈 수 있다. 바닷길을 걷는 체험은 색다르다. 특히 폭 10∼20m의 구간을 걸으면서 낙지, 게, 조개 등 해산물을 줍는 재미가 쏠쏠하다. 인적 드문 숲을 걷다 보면 산에 온 듯한 착각이 들다가 파도 소리에 바다 한가운데임을 실감한다. 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충남 서산은 풍경이 아름다운 곳이다. 특히 봄의 풍경이 그렇다. 넓은 들판과 야생화, 짙어만 가는 초록의 향기를 품은 산과 그 속에 담긴 사찰, 시원하게 펼쳐진 바다와 갯벌…. 신이 정성스레 빚은 자연이 눈앞에 펼쳐진다. 드러내놓고 화려하진 않다. 하지만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마음에까지 담고 싶은 그런 풍경이 서산에 있다. 서산 지방도 647호선은 자동차를 타고 달리기만 해도 눈과 마음이 행복해지는 길이다. 특히 서산 운산면 태봉리 서산목장에서부터 신창리 현대목장까지 이어지는 약 4.7km 구간은 이국적이고 이색적이다. 유럽의 전원 마을에 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길 양쪽 구릉에 초록빛 목초지가 펼쳐져 있다. 완만한 곡선의 구릉이 솟았다가 내려갔다 하면서 한참 이어진다. 드문드문 나무들이 구릉에 자란다. 마치 풀 뜯는 소들에게 그늘을 만들어 주려는 듯. 아름다운 문장 사이의 쉼표 같은 느낌이랄까. 지방도 647호선 주변 목장은 1960년대 후반 조성됐다. 당시 고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삼화축산주식회사를 설립해 수년에 걸쳐 개간해 만들었다. 주민들은 오랫동안 이곳을 ‘김종필 목장’으로 불러 왔다. 정식 명칭은 농협중앙회 가축개량사업소. 4.40km²로 여의도 면적(윤중로 제방과 한강시민공원 포함)과 비슷하다. 국내에서 5% 안에 드는 우수 종모우를 길러내는 곳이다. 1998년 고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이 방북하며 몰고 갔던 소들이 여기 출신이다. 소 방목이 시작되는 봄이면 벚꽃과 민들레 등 갖가지 들꽃이 목초지에 핀다. 초록색 도화지에 여러 색의 물감을 흩뿌린 그림을 연상케 한다. 길을 따라 가다 보면 수령 30년 이상의 벚나무 1000여 그루가 목초지를 배경으로 터널을 이루는 장관도 볼 수 있다. 지방도에서 목장 능선을 따라 전망대에 이르는 500m 길이의 길 양쪽에 벚꽃이 늘어서 있다. 바람에 꽃잎이 흩날리는 풍경은 사랑스럽다. 목장 주변에 커피를 마시며 쉴 카페나 휴게소는 없다. 외부인의 목장 출입도 금지하고 있다. 펜스 밖에서 사진을 찍거나 풍경을 보는 데 만족해야만 한다. 그래도 그것만으로도 마음의 평화와 봄의 기운을 얻기에는 충분하다. 봄 풍경을 놓쳤다고 해도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여름, 가을, 겨울에도 색다른 풍경이 연출되기에 언제든 방문해도 좋다. 지방도 647호선에서 멀지 않은 곳에 충남 4대 사찰 중 하나인 개심사가 있다. 654년 백제 의자왕 14년에 혜감국사가 창건했다. 이후 1350년 고려 충정왕 2년에 처능대사에 의해 중수됐다고 한다. 주차장에서 솔숲을 따라 올라가는 길에서는 수령이 60년 정도 된 어린 소나무들이 반긴다. 빽빽하게 늘어서 있으면서 다양하게 휘어진 모양을 감상하다 보면 10분 정도의 길이 전혀 지루하지 않다. 절은 아담하다. 조선 성종 15년(1484년)에 중창한 대웅전(보물 제143호)을 포함해 14점의 보물을 보유하고 있다. 고려 때 세운 5층 석탑도 보인다. 개심사 기둥들은 위아래 굵기가 다르다. 휘어진 기둥도 있다. 나무를 손질하지 않고 원래의 모습 그대로 갖다 사용했기 때문이다. 개심사의 매력으로 이 기둥들을 꼽는 사람들도 많다. 부처님오신날 전후로 벚꽃이 가득 피어 사찰을 감싼다. 벚꽃이 활짝 필 땐 사찰이 이렇게 화려해도 되는지 의아할 정도다. 대웅전 앞에는 진달래가 풍성하게 폈다. 심검당 앞에는 백매화와 홍매화가 만발했다. 명부전 앞에 서 있는 두 그루의 청벚꽃은 초록을 살짝 머금은 겹벚꽃인데, 다른 곳에서 쉽게 볼 수 없다. 개심사에서 자동차로 15분 거리에 있는 보원사지는 사람들이 많이 찾지는 않지만 운치 있기로 유명한 곳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다시피 보원사가 있었던 터다. 통일신라 시대 이전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는 보원사는 100개의 암자를 거느리고 1000여 명의 승려가 수행했을 정도로 큰 사찰이었다. 고려 시대에도 융성했던 절이었지만 조선 시대에 폐사됐다. 조선의 억불숭유(불교를 억제하고 유교를 숭상함) 정책 때문에 폐사됐다거나 불이 나서 사라졌을 거라는 이야기만 전한다. 절터의 넓이는 약 10만 m², 축구장 13개 정도 규모다. 현재는 입구에 우뚝 선 두 개의 돌기둥인 당간지주와 5층 석탑, 법인국사탑과 탑비만 있을 뿐이다. 절터에서 출토된 신라와 고려 시대의 유물은 국립부여박물관에 보관됐다. 높지 않은 산줄기 사이에 터를 잡은 덕분에 햇빛이 들면 아늑해지는 느낌이 든다. 이 때문에 텅 빈 절터인데도 황량한 느낌은 덜하다. 녹색으로 물든 주변 산을 바라보고 있으면 찬란했던 옛 시절의 풍경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간월도는 물이 빠져야만 걸어서 갈 수 있는 섬이다. 원래 태안군 안면읍에 속했지만 천수만 간척사업으로 부석면과 연결되면서 서산시에 편입됐다. 섬이라고는 하지만 간월암이란 암자가 이 섬의 전부인, 아주 작은 섬이다. 간월암은 물이 찰 때 물 위에 떠 있는 연꽃과 비슷하다고 해서 연화대라고도 불린다. 조선 태조 이성계의 스승인 무학대사가 이 암자에서 수도하던 중 달을 보며 깨달음을 얻었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조선 시대에 폐사되었다가 1941년 만공선사가 중창했다. 물때를 잘 맞춰야만 간월암에 닿을 수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밀물 때 배를 이용했지만 지금은 운항하지 않는다. 육지에서 간월암까지 10m 정도 떨어져 있는데 물이 차면 닿을 수 없다는 사실이 간월암을 더욱 신비롭게 만든다. 간월암을 둘러보는 데는 5분이면 충분하다. 하지만 간월암에서 보는 주변 바다와 섬 풍경이 빼어나 계속 머물고 싶어진다. 물이 빠질 때는 갯벌과 갯바위를 오가며 산책도 할 수 있다. 붉은 노을빛을 배경으로 한 해질 무렵의 섬 실루엣은 강렬한 인상을 준다. 바다 위로 떠오른 달을 보고 있노라면 문득 깨달음을 얻을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든다. 물이 빠질 때만 들어갈 수 있는 섬이 서산에 하나 더 있다. 곰이 웅크리고 있는 모습과 같다고 해 웅도란 이름이 붙은 섬이다. 섬과 육지를 잇는 다리가 하나 있는데 자주 바다에 잠기는 탓에 따개비 등이 다리에 붙어있다. 섬에 들어가면 나무 덱으로 만든 바다 산책길을 만날 수 있다. 섬에서 육지로 탈바꿈한 곳도 있다. 서산의 북서쪽 끝에 있는 황금산이다. 예전에는 섬이었지만 1980년대 후반 주변에 화학공단이 들어서면서 육지와 이어졌다. 황금산은 원래 항금산이라 불렸다. 금이 발견되면서 황금산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한다. 서쪽 바위절벽에 금을 캤던 동굴들이 남아 있다. 하지만 사람의 발길이 닿긴 어렵다. 산 정상에는 예로부터 풍년과 안전을 기원했던 당집을 복원해 놓았다. 요즘도 이 당집에서 매년 봄 제향을 지낸다. 황금산은 해발 156m의 낮은 산이다. 30분 정도 걸어 산을 넘으면 코끼리바위와 몽돌해변이 있는 아름다운 해안절벽을 감상할 수 있다. 비슷한 크기의 돌들로 이뤄진 몽돌해변에 서 있으면 파도가 들어가고 나갈 때 돌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파도 소리와 어울리며 오케스트라 화음처럼 들린다. 이곳에 코끼리바위가 있다. 코끼리바위라 불리는 바위가 전국 여러 곳에 있는데 이 바위가 가장 코끼리를 닮았다고 한다. 코를 바다에 처박고 있는, 바닷물로 막 목욕을 시작하려는 모습이다. 나무 계단을 통해 코끼리바위 양쪽을 오갈 수 있다. 아름다운 서산의 풍경이 눈과 귀, 그리고 마음에 깊숙이 침잠할 뿐이다.글·사진 서산=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인천 영종도 신시모도는 당일치기로 떠나기 좋은 섬이다. 영종도에서 배를 타고 10분이면 닿는다. 신시모도는 인천 옹진군의 신도, 시도, 모도를 부르는 말이다. 14년 전 세 섬을 잇는 연도교가 생기면서 하나로 연결됐다. 드라이브를 즐겨도 좋지만 제대로 즐기려면 자전거와 전동 바이크가 좋다. 드넓은 갯벌과 초록으로 물든 산과 들판을 보며 달리다 보면 해방감과 자유로움이 몸과 마음에서 느껴진다. 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충북 옥천에는 금강이 굽이굽이 휘감아 돌면서 흐른다. 그 강줄기를 따라 부릉산, 오봉산, 마성산, 둔주봉 등이 솟아 있다. 물길 따라 산길 따라 마음 가는 대로 발걸음을 옮긴다. 옥천은 정지용(1902∼1950년)의 시 ‘향수’로도 유명하다. 시인의 고향이 옥천이다. 워낙 잘 알려진 시였지만 1989년 이 시에 김희갑이 곡을 붙이고 박인수, 이동원이 노래를 불러 더욱 친근해졌다. 그래서 옥천에는 이름에 ‘향수’가 붙은 길이 많다. 물길, 산길에 더해 향수길도 옥천만의 매력이다. ‘부소담악.’ 이름부터 신기하다. 부소무니 마을 앞 물 위에 떠있는 산이라 해 이런 이름이 붙었다. 부소무니란 마을 이름도 신기하다. 군북면 추소리의 부소무니는 풍수지리에서 연꽃이 물에 떠 있는 생김새를 말하는 연화부소형 명당이 있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금강의 상류 물줄기 중 하나인 서화천을 따라 기암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어 숨은 병풍이라 불렸다. 서화천이 유턴을 하듯 급격하게 휘어감아 나가는 끝에 암봉이 줄지어 서 있다. 부소담악은 2008년 당시 국토해양부가 선정한 한국을 대표하는 아름다운 하천 100곳에 포함된 곳이다. 그만큼 풍경이 아름답다. 물 위에 솟은 40∼90m 높이의 절벽이 강줄기를 따라 병풍처럼 이어져 있다. 그 길이만 700m에 이른다. 부소담악은 원래 산이었다. 하지만 대청댐이 세워지면서 산 일부가 물에 잠겼다. 이후 산봉우리들이 마치 물 위에 떠 있는 바위처럼 보이게 됐다.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풍경은 아니지만 부소담악의 분위기는 신비롭다. 부소담악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추소정까지는 나무 덱으로 산책길이 조성돼 있다. 추소정은 2008년 조성된 2층짜리 정자로 전망대를 겸하고 있다. 외관은 평범하지만 추소정에서 바라보는 풍경을 놓치면 아쉽다. 추소정에서 부소담악 능선을 따라 끝자락까지 갈 수 있다. 능선길은 좁고 험한 편이다. 날카롭게 솟은 바위들과 좌우 양쪽으로 절벽이 펼쳐져 있어 약간의 용기가 필요하다. 별다른 안전시설도 없어 발걸음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부소담악 끝자락에 다다르면 물에 둥둥 떠 있는 듯한 모습의 커다란 암석들이 나타난다. 암석 위에는 힘겹게 뿌리를 내려 자라고 있는 나무들이 암석과 묘한 조화를 이룬다. 그 뒤로 서화천과 산들이 배경처럼 펼쳐져 있다. 여러 번 봐도 질리지 않는 풍경이다. 부소담악과 그 주변 풍경을 한눈에 담으려면 멀리서 봐야 한다. 부소담악 뒤편에 솟아 있는 해발 581m의 환산(고리산)에 오르면 부소담악의 길게 뻗은 형상과 그 주위를 끼고 흐르는 서화천을 볼 수 있다. 왕복 4시간 정도가 걸린다. 옥천에는 부소담악 외에도 빼어난 절경이 많다. 그중 하나가 둔주봉 한반도 지형이다. 국내에는 한반도 지형을 쏙 빼닮은 명소들이 몇 군데 있다. 가장 유명한 곳이 강원 영월군 한반도면 옹정리다. 관광객이 늘자 원래 서면이었던 행정구역 이름을 2009년 한반도면으로 바꿨다. 이곳 외에도 충북 진천군의 초평호 한반도 지형, 전남 신안군 증도면 우전해수욕장의 한반도 해송숲 등이 한반도 지형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둔주봉 한반도 지형은 이들 지형과는 조금 다르다. 동쪽과 서쪽이 뒤바뀐 모양이 특징이다. 한반도 지형은 둔주봉 정상으로 가는 능선에서 마주할 수 있다. 둔주봉 오르는 길은 옥천군 안남면 행정복지센터에서 1.5km 정도 마을길을 따라 걸어가면 나타나는 계단부터 시작된다. 계단을 올라 오솔길에 접어들면 솔향기가 온몸을 감싼다. 소나무들이 대나무처럼 곧게 자라고 있다. 경사가 약간 가파른 편이지만 중간에 의자들이 있어 쉴 수 있다. 30분 정도 올라가면 한반도 지형을 볼 수 있는 전망대(해발 275m)가 나타난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한반도 지형은 좌우가 바뀌어 있지만 전망대 정자에 설치된 반사경을 통해 보면 제대로 된 모양을 볼 수 있다. 둔주봉 한반도 지형의 위에서 아래까지 길이는 1.45km로 실제 한반도를 980분의 1로 축소한 크기다. 날씨가 좋다면 전망대에서 인근의 산봉우리도 볼 수 있다. 맑은 날이면 남쪽으로 전북 무주군 덕유산 정상, 남서쪽으로 충남 금산군 서대산 정상, 북동쪽으로는 충북 보은군 속리산 정상 천왕봉이 보인다. 장령산 기슭에 위치한 용암사는 일출을 보기에 좋은 곳이다. 용암사는 신라 진흥왕 13년인 552년에 창건된 사찰이다. 용암사에서 180m 정도를 나무 덱을 따라 올라가면 전망대인 운무대가 나타난다. 용암사 운무대에서 바라보는 운해와 일출은 미국 CNN의 관광 정보 사이트가 선정한 한국의 아름다운 50곳에 포함됐다. 낮과 밤의 기온차가 심한 간절기나 이른 봄, 늦은 가을에 가장 일출을 보기 좋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옥천읍과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첩첩이 솟은 산과 봉을 볼 수 있다. 용암사에는 쌍삼층석탑(보물 제1338호)과 마애여래입상(충북도유형문화재 제17호)도 있다. 대웅전 뒤 붉은 암벽에 새겨진 마애여래입상은 신라 마지막 태자인 마의태자의 모습을 새긴 것이라거나, 마의태자가 만들었다거나 하는 전설이 있다. 옥천읍 교동저수지에서 시작되는 옛 국도 37호선에서는 신세계가 펼쳐진다. 이 길은 금강변을 따라 군북면 국원리를 지나 소정리까지 8km 정도 이어진다. 자동차를 타고 가면 드문드문 고개를 내미는 금강을 볼 수 있다. 강 건너 수직으로 솟은 산과 그 아래 강물이 유유히 흐르는 풍경이 그림 같다. 봄에는 벚꽃이 길가에 흐드러지게 피어 터널을 이룬다. 길을 따라 달리기만 해도 마음이 치유되는 기분이다. 서화천 물길을 따라가다 보면 앞쪽에는 물, 뒤에는 구릉이 있는 이지당이 나온다. 조선 중기 문신이자 의병장이었던 조헌이 후학들을 가르쳤던 서당이다. 조헌은 임진왜란 때 옥천에서 의병을 일으켜 청주를 되찾고 금산전투에 나섰다가 의병 700명과 함께 전사했다. 처음에는 서당이 있던 지명을 따서 각신서당이라 불렀다. 하지만 우암 송시열이 조헌의 삶을 기려 이지당(二止堂)으로 이름을 바꿨다. ‘산이 높으면 우러러보지 않을 수 없고, 큰 행실은 그칠 수 없다(高山仰止 景行行止)’는 구절에서 지(止) 두 글자를 따왔다. 대청에 앉아 있으면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착각이 들 정도로 고요하고 평화롭다. 옥천의 구읍은 예전에는 옥천의 중심이었다. 경부선 철도가 놓이고 옥천역이 옥천읍 금구리에 들어서면서 쇠락했다. 구읍에는 번화했던 옛 모습을 반영하듯 100년도 넘은 오래된 한옥이 많다. 구읍을 가로지르는 실개천 옆에 정지용 생가와 문학관이 들어서면서 구읍에 다시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구읍에서 가장 큰 길은 정지용의 이름을 딴 지용로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얼룩빼기 황소가/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향수’가 자꾸만 입에서 맴돈다.글·사진 옥천=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국내 최대 치킨 프랜차이즈인 제너시스 비비큐가 올 상반기(1∼6월) 치킨 시장에 변화를 몰고 올 신제품 ‘핫황금올리브’ 시리즈를 출시했다. 핫황금올리브는 소비자들의 큰 사랑을 받고 있는 BBQ의 시그니처 메뉴 황금올리브 치킨에 젊은층의 선호도가 높은 매콤한 맛을 다양하게 살려냈다. 황금올리브 치킨 고유의 바삭한 식감을 유지하면서 기분 좋게 혀끝을 자극하는 매운맛이 특징이다. 우선 기존 프라이드치킨에서 맛볼 수 없었던 풍미를 더했다. ‘황금올리브의 핫(hot)끈한 변신’을 뜻하는 ‘핫황금올리브’ 시리즈는 핫착!레드착착, 핫싸!블랙페퍼, 핫빠!크리스피 그리고 핫찐!찐킹소스 등 네 가지 메뉴로 선보일 예정이다. ‘핫착!레드착착’은 아바네로 고추를 원료로 만든 레드 시즈닝을 뿌려 색감과 비주얼을 잘 살렸다. ‘핫싸!블랙페퍼’는 후추 특유의 개운하고 알싸한 풍미를 더해 이국적인 맛을 자랑한다. ‘핫빠!크리스피’는 아바네로와 바비큐맛 시즈닝에 인도의 향신료인 마살라 향을 첨가한 소스로 숙성시켜 바삭함과 매콤함을 모두 만족시킨다. ‘핫찐!찐킹소스’는 고추장을 베이스로 한 양념 소스에 버무려 한국 전통의 매운맛을 조화롭게 가미했다. 4종 모두 최고급 엑스트라버진 올리브유를 원료로 한 BBQ 올리브오일로 튀겨 황금올리브 치킨의 건강하고 풍부한 풍미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핫황금올리브는 모바일과 홈페이지, 배달앱 등을 통해 주문이 가능하다.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제주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는 봄이면 노란색으로 뒤덮인다. 약 10km에 이르는 녹산로와 축구장 면적의 10배가 넘는 광장에 유채꽃이 활짝 핀다. 수많은 사람들이 봄마다 가시리를 찾는다. 올해는 유채꽃도 사람도 가시리에 없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영향으로 유채꽃을 갈아엎었기 때문이다. 아쉬운 마음이 크다. 올핸 보지 못했지만 내년엔 더 노랗게 물든 유채꽃을 기대하게 된다. 서귀포=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경남 통영은 ‘동양의 나폴리’라 불린다. 통영의 쪽빛 바다와 수백 개의 섬은 그림 같은 풍경을 자랑한다. 해발 461m 미륵산에 오르면 미항으로 소문난 통영을 한눈에 볼 수 있다. 통영 8경 중 제1경인 한려수도의 멋진 풍광도 감상할 수 있다. 맑은 날에는 직선거리로 90km쯤 떨어진 일본 쓰시마섬을 비롯해 105km 떨어진 지리산 천왕봉도 보인다. 미륵산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적어도 네 번은 찾아야 한다. 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전북 부안은 한반도의 특징적인 요소를 한곳에 모아놓은 곳이다. 서해안을 향해 삐죽 나온 반도로 삼면이 바다에 접해 있고, 육지 대부분은 산악 지형이다. 부안 변산반도 국립공원 일대는 크게 내변산과 외변산으로 구분한다. 바다를 끼고 있는 변산면의 바다 쪽 일부가 외변산, 변산면 내륙을 포함해 상서면, 하서면, 진서면 등이 내변산에 속한다. 내변산은 수많은 봉우리가 있는 금강산을 떠올리게 한다. 외변산은 아담한 해수욕장과 오랜 시간이 빚어낸 해안 절경을 품고 있다. 자동차로 해안도로를 따라가며 바다 풍경을 감상하는 것도, 지방도 736호선을 따라 변산반도 내륙의 풍경을 감상하는 것도 모두 만족할 만한 선택이다. 중간에 자동차에서 내려 걸으면서 풍광을 즐기는 것도 좋다. 작은 금강산이라 불리는 내변산 지방도 736호선을 따라 직소폭포로 향하다 보면 강원도에 온 듯한 착각이 든다. 비록 가장 높은 봉우리인 의상봉이 해발 506m밖에 되지 않는다지만, 동서남북 여기저기로 얼굴을 내밀고 있는 산봉우리들이 저마다의 개성을 내뿜고 있다. 암봉과 암벽, 그리고 숲이 조화로이 어울리는 모습이 신비롭다. 내변산 안쪽에 동서로 길게 뻗은 부안호는 내변산의 신비로움에 더욱 깊이를 더한다. 직소폭포는 이런 내변산에 꽁꽁 숨겨놓은 보물 같은 곳이다. 아름다운 풍경 덕분에 내륙의 소금강으로도 불린다. 직소폭포로 가는 길은 여러 갈래가 있지만 가장 쉽고 볼 것이 많은 길은 내변산 탐방지원센터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크게 힘을 들이지 않고도 걸어 갈 수 있다. 길이는 약 2.3km. 계절마다 다양한 동식물을 만날 수 있다. 또 봉래구곡, 인장바위, 실상사 등 볼 것도 많다. 직소폭포로 가는 도중 커다란 저수지가 보인다. 1991년 부안댐이 건설되기 전 부안군민의 비상식수원으로 사용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직소보다. 직소폭포에서 떨어진 물이 직소보에 모인다. 계절에 따라 저마다 다른 풍광이 만들어진다. 비 내리는 날이나 아침나절에는 직소보 주위 산봉우리에 운무가 걸쳐 운치를 더한다. 봉우리와 나무들이 직소보에 비쳐 물그림자를 드리우고 윤슬이 이는 모습은 계속 봐도 질리지 않는다. 한쪽에는 물, 다른 한쪽에는 숲을 끼고 있는 길이 낭만적이다. 포르릉거리는 새가 있다면 더욱 정겹다. 숲과 저수지를 눈에 담고 걷다 보면 어느새 우렁찬 폭포 소리가 들린다. 직소폭포다. 꾸밈이 없이 30m 가까운 절벽에서 커다란 물줄기가 직각으로 쏟아진다.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쏟아지는 물줄기 밑에는 깊고 둥근 소가 있다. 물줄기는 제2, 제3의 폭포를 이루며 분옥담, 선녀탕으로 이어진다. 잔잔한 직소보 풍경과 역동적인 직소폭포의 아름다움이 묘하게 어울린다. 내변산은 두 개의 사찰을 품고 있다. 내소사와 개암사다. 내소사는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곳에 있다. 내소사는 일주문을 지나 천왕문까지 약 600m 길이의 전나무 숲길이 유명하다. 가늘고 곧게 뻗은 전나무들의 시원스러운 모습에 눈이 즐겁다. 코를 통과해 폐에 들어오는 상쾌한 전나무 향기는 저절로 미소를 짓게 만든다. 이런 길이라면 몇 km라도 걸을 수 있을 것만 같다. 전나무 숲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약 100m 길이로 단풍나무와 벚나무가 터널을 이루고 있다. 내소사 대웅보전은 보물 제291호로 지정되어 있다. 단청이 없이 치장하지 않은 다소곳한 모습이다. 연꽃과 국화 문양으로 치장된 대웅보전의 꽃문살은 아름다움을 더한다. 꽃 한 잎, 한 잎이 살아 움직이는 듯하다. 꽃문살 고유의 나무 빛깔은 빛에 따라 제각각의 색깔을 뽐낸다. 봄이면 대웅보전 주위에 자란 산수유와 목련이 내소사의 향기를 더욱 깊게 우려낸다. 개암사는 커다란 울금바위 아래 자리 잡은 사찰이다. 개암사로 향하는 약 2km의 벚꽃길이 유명하다. 개암사는 내소사와 비슷한 시기(633년)인 634년에 창건됐다. 한때는 내소사보다 사세가 더 컸지만 쇠락과 중창을 거듭해 지금은 내소사보다는 작은 절이 됐다. 사람들로 붐비는 내소사에 비해 한적한 사찰이어서 조용한 분위기를 원한다면 개암사가 제격이다. 개암사 대웅전 뒤로 병풍처럼 펼쳐진 울금바위까지 가는 길은 약 700m로, 올라가면 시원한 풍광을 볼 수 있다. 개암사 오른쪽에는 사찰에서 직접 가꾸고 있는 차밭이 있다.세월이 빚은 절경 간직한 외변산 변산반도 해안도로를 따라가다 반도 끝 쪽에 다다르면 채석강과 적벽강을 만난다. 강(江)이란 이름이 붙었지만 강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채석강은 중국 당나라 이태백이 즐겨 찾은 채석강과 비슷하다고 해서, 적벽강은 중국 송나라 소동파가 글의 소재로 삼은 적벽강과 유사하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채석강은 썰물 때 드러나는 변산반도 서쪽 끝 격포항과 그 오른쪽 닭이봉(해발 200m) 일대의 층암절벽과 바다를 포함한 이름이다. 기암괴석들과 수만 권의 책을 차곡차곡 포개 놓은 듯한 퇴적암층 단애가 있다. 채석강은 아무 때나 갈 수 없다. 밀물과 썰물 시간대를 잘 맞춰야 한다. 밀물 때는 그냥 절벽만 볼 수 있고 가까이 다가가기도 힘들다. 물이 빠지는 썰물 때 채석강 바위 아래로 내려가 퇴적암을 볼 수 있다. 또 채석강이 있는 격포항에서 격포해수욕장까지 2km 정도 바닷가도 거닐 수 있다. 채석강은 하루 중 절반이 물에 잠기는 탓에 퇴적암으로 이뤄진 바닥이 무척 미끄럽다. 절벽 부분은 물에 잠기는 부분과 아닌 부분으로 확연히 색깔로 구분이 된다. 채석강은 따로 길이 나 있진 않다. 절벽 부근에 접근을 막는 기둥과 줄만 있을 뿐이다. 격포항 쪽으로 걷다 보면 절벽에 해식동굴 몇 개가 있다. 수만 년 세월에 걸친 파도의 침식 작용으로 생긴 동굴들이다. 채석강에서 보는 낙조도 좋지만 동굴 안에서 보는 낙조도 색다르다. 해가 수평선 아래로 잠길 때 그리고 하늘이 붉게 물들 때 동굴 안에서 수평선을 바라보면 낭만적이다. 풍경과 규모는 채석강이 뛰어나지만 적벽강은 한적함 속에서 주위 풍광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곳이다. 바위로 이뤄진 해변은 답답한 가슴을 탁 트이게 하는 매력이 있다. 서해안의 대표적인 풍경인 갯벌과는 달리 오랜 세월이 빚어낸 기암괴석과 지질에 해변을 덮고 있는 조약돌이 이색적이다. 적벽강 언덕 끝에는 당집이 있다. 사나운 서해 바다를 다스리는 개양할머니와 여덟 딸을 모신 수성대다. 매년 정월 어민들이 이곳에서 풍어와 안전을 기원하는 제를 올린다. 오래전부터 영험하기로 소문난 탓에 수성당 주변에는 선사시대 이래 바다에 제사를 지낸 유물이 계속 발견된다. 곰소항은 까나리액젓 등 젓갈이 유명하다. 곰소항 근처에만 가도 젓갈 냄새가 난다. 곰소항을 말할 때 곰소염전에서 생산되는 천일염을 빼놓기는 힘들다. 일제강점기 때 곰섬, 범섬, 까치섬을 연결해 곰소항이 들어서면서 천일염을 생산했다. 매년 2000t이 넘는 소금을 만든다. 바둑판 같은 염전 속 맑은 물에는 변산반도의 아름다운 산과 하늘이 거울처럼 비친다. 검은 판자로 지은 소금창고와 하얀 소금을 만들어내는 직원의 모습이 그림을 보는 듯하다. 주변 카페 등에서 염전에서 생산된 소금을 구매할 수 있다. 글·사진 부안=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태안반도 끝자락에 위치한 천리포수목원의 4월은 목련꽃 세상이다. 천리포수목원은 독일계 미국인인 고(故) 민병갈 설립자가 40여 년 동안 정성을 쏟아 일궈낸 우리나라 1세대 수목원이다. 수목원에는 840여 분류군의 목련이 살고 있다. 불칸목련, 별목련, 스토로베리크림목련 등 이름부터 범상치 않다. 이 외에도 1만5800여 종류의 다양한 식물이 살고 있다. 꽃에서 눈을 떼면 소나무 사이로 탁 트인 서해 바다도 볼 수 있다. 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부산 사하구 감천문화마을은 6·25전쟁 때 피란민들이 모여 살던 동네였다. 산등성이를 따라 집들이 촘촘하게 들어서 있다. 흔한 달동네 풍경이라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 문화와 예술을 더해 새로운 관광명소로 도약했다. 집들과 골목 곳곳에 예술작품과 갤러리, 작은 박물관, 문화창작공간 등이 어우러져 있다. 따스한 봄볕이 내리쬐는 요즘 ‘지붕 없는 미술관’으로 불리는 골목길을 거닐어 보고 싶어진다. 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봄이 찾아오고 있다. 제주 서귀포시 표선면에 위치한 제주민속촌은 봄꽃을 감상하면서 진짜 제주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곳 중 하나다. 제주에서 옛날 제주의 모습을 찾아볼 수도 있다. 19세기 제주도민이 실제 생활했던 100여 채의 전통가옥을 그대로 옮겨 놨다. 곳곳에 심긴 꽃들은 민속촌의 정취를 더한다. 유채꽃, 동백꽃, 매화 등 다양한 꽃들이 피어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봄의 기운과 봄꽃이 그립다. 그리고 필요할 때다. 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어디 한적한 곳이라도 떠나볼까?” 햇살이 점점 따사로워지기 시작한다. 어디로라도 발걸음을 옮기고 싶어진다. 그렇다. 봄이 오고 있다. 땅끝마을로 유명한 전남 해남군은 호젓하게 걷기 좋은 곳이 많다. 남쪽의 금강산이라 불리는 달마산에 자리 잡은 도솔암, 달마산 기암괴석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미황사도 그런 곳이다.하늘 위에 떠 있는 듯한 도솔암 전국에는 수많은 ‘도솔암’이 있다. 그중 해남 도솔암은 풍광이 빼어난 암자로 손꼽힌다. 실제 도솔암에 가면 사진을 합성해 놓은 듯한 풍경에 두 눈을 의심하게 된다. “어떻게 산 정상 절벽 위에 암자를 얹어 놓았지”라고 말이다. 도솔암은 그야말로 하늘 위에 떠 있는 암자다. 달마산(해발 489m)이 남쪽의 금강산이라 불리는 이유는 12km의 능선을 따라 기암괴석과 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기 때문이다. 도솔암은 달마산 아래에 있는 미황사에서 능선을 따라 2시간 남짓 걸으면 닿을 수 있다. 산행이 부담된다면 자동차로 갈 수 있다. 능선 부근까지 이동한 뒤 주차장에서 800m만 걸으면 된다. 길은 평탄한 편이다. 호사스러운 산책이다. 달마산의 빼어난 절경을 한껏 즐길 수 있다. 발을 디딜 때마다 달마산의 기암괴석 사이로 푸른 서해 바다와 녹색의 논과 밭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풍경에 취해 있을 즈음 두 개의 커다란 바위 틈 사이로 암자 하나가 빼꼼히 얼굴을 내민다. 도솔암의 위치는 참 절묘하다. 그 위치에 있으면 완벽하겠다는 상상을 100% 현실로 만족시켜 준다. 두 개의 바위가 커다란 손처럼 암자를 떠받치고 있는 모양새다. 여기에 바다 쪽, 암자 정면으로 수많은 작은 돌이 쌓인 축대가 있다. 돌계단을 오르다 보면 천상으로 올라가는 길인가 하는 묘한 기분에 휩싸인다. 계단 끝에 올라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달마산의 기암괴석과 서해 바다가 풍경화처럼 걸려 있다. 사실 10명이 서면 가득 찰 만큼 자그마한 앞마당과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도솔암의 전부다. 하지만 그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환상적인 분위기에 계속 머물고만 싶어진다. 구름이라도 끼인 날이면 도솔암은 마치 구름 속에 떠 있는 듯 보인다. 도솔암의 역사는 10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신라시대 승려인 의조 화상이 미황사 창건 전 수행하던 암자가 도솔암이었다. 수행에 정진하면서 낙조를 즐겼다고 한다. 실제로 도솔암에서 보는 낙조는 해남에서도 으뜸으로 친다. 붉게 서쪽 하늘이 물들 때 도솔암과 그 주변은 황금빛으로 물든다. 지금의 도솔암은 최근 재건된 것이다. 정유재란(1597∼1598) 때 명량해전에서 패한 왜구들이 달마산으로 도망치다 도솔암을 불태웠다. 이후 400년 가까이 주춧돌과 기왓장만 남은 채 방치됐다. 많은 사람들이 도솔암을 복원하려 했지만 험한 지형 때문에 포기했다. 2002년 오대산 월정사의 법조 스님이 사흘 동안 한 번도 본 적 없는 도솔암의 꿈을 꿨다고 한다. 이후 도솔암을 찾아 32일 만에 단청까지 복원하는 데 성공했다. 1800장의 기와를 밑에서부터 옮겨온 끝에 이룬 결실이었다. 도솔암 50m 아래에는 용이 살았다는 용샘이 있다. 천년을 살던 용이 커다란 용틀임을 하면서 승천하자 용이 살았던 바위 속에 샘이 생겼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1년 내내 마르지 않는 샘물이라고 한다. 바위산 정상부에 샘이 있다는 것 자체가 신비하다.수수함 속에 화려함 감춘 미황사 미황사는 신라 경덕왕 8년(749년)에 창건됐다. 우리나라 육지의 절 가운데 가장 남쪽에 있는 절이다. 절로 들어가는 길이 숲 사이로 나 있을 뿐 절 아래쪽에는 그 흔한 편의시설도 없어 한적한 분위기이다. 한창 번성하던 때에는 스님들도 많았다. 주변에 열두 암자를 거느렸다. 하지만 정유재란 때 대부분의 전각이 불에 타 1598년 다시 지었다. 지금은 대웅보전(보물 제947호)과 응진당(보물 제1183호), 요사채 등 건물 몇 채만이 남아 조촐하다. 숲에 있는 넓은 부도밭과 사적비가 번성했던 옛날을 말해줄 뿐이다. 30년 전까지만 해도 미황사는 쇠락한 사찰이었다. 오랫동안 비어 있었다. 1989년 여러 스님들이 와 전각을 복원하고 증축하면서 현재와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됐다. 미황사로 올라가는 길은 동백꽃으로 가득하다. 푸르른 잎들과 발그레한 꽃들이 환영인사를 건네는 듯하다. 사천왕문을 지나 자하루 아래를 통과하면 대웅보전이 모습을 드러낸다. 대웅보전 뒤로 달마산의 기암괴석과 절벽이 호위하듯 서 있는 모습이 눈길을 끈다. 미황사 대웅보전은 우리가 알고 있는 대웅전과 모습이 다르다. 화려한 단청이 없다. 화장기 없이 수수한 모습이다. 가까이 다가가면 나뭇결이 그대로 다 보인다. 1754년 조선 영조 30년에 마지막으로 수리했다. 그때까진 단청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현재는 일부에 흔적만 남아 있다. 단청은 건물을 돋보이게 하는 장식적인 측면과 함께 나무를 벌레가 먹지 못하게 하고, 썩지 않게 하기 위한 실용적인 측면이 있다. 미황사 관계자들에 따르면 해남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인 미황사 대웅보전은 완도 보길도에서 자란 느티나무를 가져와 지었다. 단청을 따로 하지 않아도 나무 자체가 단단하고 뒤틀림도 적고 잘 썩지 않는다고 한다. 부석사 무량수전, 수덕사 대웅전, 해인사 장경판전, 진주향교 등이 느티나무 기둥을 사용한 대표적 건축물들이다. 조선시대에는 대부분 소나무를 기둥으로 사용했다. 단청은 없지만 대신 민낯 그대로 드러난 기둥의 나뭇결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약 400년 세월 동안 나뭇결이 빚어낸 추상화 같은 선들의 미학은 대웅보전의 특색이다. 그 결을 손으로 만져봤을 때 손끝을 부드럽게 잡아주는 느낌마저 든다.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은 기둥 아래의 주춧돌이다. 보통 사찰의 주춧돌에는 연꽃이 새겨져 있다. 하지만 미황사 대웅보전 주춧돌에는 거북, 게 등 바다 생물이 새겨져 있다. 이는 서역에서 경전과 불상을 가득 싣고 온 배에서 미황사가 시작된 것과 관련이 있다. 배를 상징하는 대웅보전 주춧돌에 바다 생물을 새겼다는 것이다. 대웅보전은 올해 해체·보수 작업이 예정돼 있다. 3, 4년이 걸리는 만큼 대웅보전의 아름다움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려면 발걸음을 서두르는 것이 좋다. 대웅보전을 뒤로하고 앞마당 쪽을 바라보면 서해 바다가 눈에 담긴다. 뒤로는 달마산, 앞으로는 바다, 어찌 보면 미황사가 이곳에 세워지게 된 것은 당연했던 것처럼 느껴진다. 미황사를 충분히 봤다면 부도전으로 발걸음을 향해도 좋다. 약 700m의 울창한 나무 사이로 난 산책길은 한적하면서도 평화로운 기운을 받기에 충분하다. 서해 바다를 옆에 끼고 한적함을 느끼고 싶다면 송지면 송호리에 있는 증도와 땅끝 기념탑까지 가는 산책로도 좋다. 썰물 때 송호리 해변에서 증도까지 가는 길이 열린다. 땅끝 기념탑은 노을이 질 때 길게 바다에 비친 석양과 어울려 인상적이다.글·사진 해남=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우리나라 최초의 기행 가사 ‘관서별곡’을 지은 백광홍(1522∼1556). 당대 문장가인 이청준(1939∼2008), 한승원(1939∼), 송기숙(1935∼). 이들의 공통점은 전남 장흥 출신이라는 것. 이곳에서 글자랑은 하기 힘들 듯하다. 장흥 문학여행의 출발점은 천관문학관이다. 문장가들이 장흥 어디서 나고 자랐고, 문학적 영감을 준 곳이 어디인지 알 수 있다. 문학관 주위에는 매화가 한창 피어 있다. 책을 펼치고 싶어진다. 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이집트 카이로는 4500년 전으로 시간여행을 떠날 수 있는 마법의 입구다.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앞에 서면 비현실적인 존재를 눈앞에서 맞닥뜨리는 상황에 경이롭고 신비로운 감정에 휩싸인다. 1000년 또는 2000년 전이 얼마 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는 곳이 카이로다.익숙하고 친숙한 피라미드 이집트를 대표하는 건축물 첫 번째가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다. 피라미드는 나일강 남서쪽, 카이로에서 자동차로 20분쯤 떨어진 옛 도시 기자에 있다. 현대적인 건물 사이로 멀리 피라미드가 보이면 이집트 방문이 실감난다. 도시와 피라미드가 바로 붙어 있다는 것도 놀랍다. 현대와 4500년 전 과거가 공존한다. 피라미드는 2000년 전 고대 로마인에게도 유물이었다. 지금의 우리가 콜로세움을 고대 유적 취급하듯. 기원전 100년에 태어난 율리우스 카이사르에게 피라미드보다 TV가 시기적으로 더 가깝다. 기자 피라미드는 크게 세 개의 대피라미드와 여섯 개의 소피라미드로 구성돼 있다. 대피라미드 중 가장 큰 피라미드는 북쪽에 있는 쿠푸 피라미드로 높이가 137m이다. 가운데 있는 피라미드는 카프라 피라미드(높이 136m), 남쪽 피라미드는 가장 작은 멘카우라 피라미드(높이 61m)다. 멀리서 보면 높은 지대에 건설된 카프라 피라미드가 가장 높게 보인다. 현재의 피라미드는 사각형 돌덩이가 계단식으로 쌓인 모습이다. 원래는 전체를 석회로 매끈하게 덮고 각양각색의 무늬와 색상을 입혔다고 한다. 7세기 이후 이슬람 시대에 모스크를 짓기 위해 피라미드의 돌들을 가져다 사용하면서 지금 같은 모양새가 됐다. 쿠푸 피라미드를 짓는 데 평균 무게 2.5t의 돌덩이 230만 개가 사용됐다. 가장 무거운 돌덩이는 20t 이상이다. 가까이서 피라미드를 보면 거대한 돌덩이를 어떻게 운반했는지 놀랍다. 돌덩이들이 거의 빈틈없이 들어맞는 것도 놀랍다. 돌덩이를 밑바닥에서부터 꼭대기까지 무려 200단 이상 쌓아올렸다. 대부분의 돌덩이는 가까운 채석장에서 가져왔지만 화강암은 800km 떨어진 아스완에서 운반했다고 한다. 피라미드 하나를 만들기 위해 10∼20년 걸린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피라미드 주위 환경은 조금 소란스러운 편이다.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수많은 버스와 자동차, 기념품을 파는 잡상인, 낙타와 마차 등이 피라미드 주위를 어지러이 오가기 때문이다. 피라미드 안은 어떻게 생겼을까. 미라가 좁고 어두운 통로를 헤매는 것은 아닐까. 쿠푸 피라미드의 돌덩이를 밟고 올라가면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나온다. 원래 입구는 현재 입구의 약 10m 위에 있다. 현재 입구는 피라미드 도굴꾼이 9세기경 뚫은 것이다. 피라미드 내부 통로는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다. 반대편에서 사람이 오면 최대한 벽에 몸을 붙여야 한다. 내부에 벽화나 돋새김은 없다. 미로 같은 통로가 약 100m 이어진다. 사실 내부는 크게 볼 것은 없다. 다만 피라미드 안이 어떻게 생겼는지 두 눈으로 봤다는 것에 만족해야 한다. 쿠푸와 카프라 피라미드 사이를 지나 동쪽으로 300m 지점에 스핑크스가 있다. 스핑크스는 사자의 몸에 사람 얼굴을 가졌다. 기자 스핑크스는 이집트를 비롯한 전 세계에 있는 스핑크스 중 가장 크다. 기원전 2500년경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발부터 꼬리까지 길이는 73m, 바닥에서부터 머리까지 높이는 20m 정도다. 오랫동안 모래 속에 파묻혀 있다가 19세기에 발견됐다. 원래 머리에는 두건이, 정면에는 코가, 턱에는 수염이 있었다. 두건은 오랜 침식과 풍화에 의해, 수염과 코는 인위적으로 없어졌다고 추측하고 있다. 스핑크스 등에 올라가 만져볼 수 있었던 시절도 있었지만 현재는 10m 정도 떨어진 펜스 뒤가 가장 가깝게 볼 수 있는 곳이다.고대 유물의 집합지 이집트 박물관 카이로 시내에 있는 이집트 박물관은 이집트 여행의 출발점 같은 곳이다. 고대 이집트 문명과 5000년 이집트 역사의 정수를 모아 놓았다. 16만 점이 넘는 유물이 있다. 현재 박물관은 1902년 만들어졌다. 기자 피라미드 인근에 새 박물관을 건설하고 있다. 올해 완공되면 현재 박물관에 있는 유물들이 옮겨져 전시될 예정이다. 지상 2층 건물 박물관에서 인기 있는 유물들은 주로 2층에 전시돼 있다. 관람객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투탕카멘(재위 기원전 1361년∼기원전 1352년) 전시실. 아홉 살에 파라오에 즉위해 18세에 죽었다. 대부분의 파라오 무덤이 도굴꾼에 의해 훼손된 것과 달리 투탕카멘 무덤은 1922년 왕가의 계곡에서 발견될 때까지 도굴꾼의 손을 피했다. 그런 이유로 투탕카멘 무덤에서는 진귀한 유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 유물들이 투탕카멘 전시실에서 3000년이 넘는 세월을 간직한 채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다. 전시실 가운데에는 투탕카멘 미라의 얼굴을 감쌌던 황금가면이 있다. 11kg의 금으로 만든 황금가면은 바로 얼마 전 만들어진 것처럼 완벽한 보존 상태를 자랑한다. 매우 섬세하고 화려하게 조각된 이 황금가면은 당시 이집트의 뛰어난 세공 기술을 한눈에 보여준다. 박물관을 돌아다니다 보면 미처 덮개를 제거하지 못했거나 아무렇게나 놓인 듯한 유물들도 눈에 많이 띈다. 얼마나 많은 유물이 있으면 이렇게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 채 있는지 의아하다. ‘멘카우라 왕과 여신들’ 조각 같은 국보급 유물도 유리관 밖에 전시돼 있다. 이집트 박물관은 제대로 보려면 하루라는 시간도 부족하다. 전시실은 이집트 왕조별로 나뉘어 있다. 조각상과 그림 등은 상징으로 가득하다. 이집트 신화와 역사를 충분히 알아야만 이해할 수 있다. 이집트 여행 전 고대 이집트 공부가 필요한 이유다. 없는 것 빼고 다 파는 칸 엘칼릴리 시장 카이로 칸 엘칼릴리 시장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시장 중 하나다. 터키 이스탄불의 그랜드 바자르보다 100여 년 앞선 14세기에 형성됐다. 당시 아시아와 중동, 아프리카를 오가는 대상들을 위해 숙박시설이 들어선 것을 계기로 각국 상인들이 모여들어 거대한 시장이 형성됐다. 전성기 땐 1만 개가 넘는 상점이 있었다. ‘칸 엘칼릴리에서 구할 수 없는 물건은 없다’라는 말이 유행했다. 현재는 1500여 개의 상점이 남아 있다. 시장에는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수백 년 된 건물도 많다. 몇 대를 거쳐 가업으로 운영되는 곳도 부지기수다. 향수, 카펫, 귀금속, 파피루스, 골동품, 가죽제품, 과일 등을 파는 상점뿐만 아니라 오랜 역사를 지닌 음식점과 카페도 있다. 1773년 설립된 카페 엘피샤위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으면 과거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든다. 상품에는 정가가 없다. 흥정을 통해 값이 정해진다. ‘자기가 산 가격을 동행자에게도 말하지 않는다’, ‘부르는 값의 3분의 1부터 흥정을 시작한다’ 등 나름대로 원칙이 있다고 한다. 칸 엘칼릴리 시장의 진면목은 해가 지면 나타난다. 날씨가 선선해지면서 시장에 사람들이 몰린다. 상인들 얼굴에도 활기가 돈다. 골목을 누비다 보면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마주친다. 카이로 시민 모두가 이곳으로 나왔나 싶을 정도다. 시장에서 만나는 이집트 사람들은 낯선 이방인에게도 미소와 친절을 베푼다. 이집트의 보물은 고대 이집트 유물이 아니라 이집트 사람 그 자체가 아닌가 싶다.글·사진 카이로=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