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재

이호재 기자

동아일보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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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틈틈이 소설을 쓰며 스토리텔링에 천착한다. 숨소리까지 살아 숨쉬는 생생한 내러티브 기사가 넷플릭스 영상보다 가치 있는 컨텐츠라 믿는다.

hoho@donga.com

취재분야

2025-11-17~2025-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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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제 부흥 이끈 젊은 지도자? 무자비한 권력 실세?… ‘미스터 에브리싱’의 두 얼굴

    “당장 오십시오.”2017년 11월 4일.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족, 장관, 군부대 사령관 등 핵심 인물 200여 명은 왕실의 전화를 받았다. 국왕이 수도 리야드의 리츠칼튼호텔로 집합하라고 명령을 내린 것이다. 호텔에 모인 이들은 즉각 구금됐다. 이들은 거액을 헌납하고 충성 서약을 하고서야 풀려날 수 있었다. 고문, 구타, 협박을 당했다는 이도 있었다. 이 무시무시한 작업을 이끈 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이란 뜻의 ‘미스터 에브리싱’으로 불리는 사우디 왕세자 무함마드 빈 살만이다.신간 ‘빈 살만의 두 얼굴’은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 기자 2명이 빈 살만을 추적한 논픽션이다. 저자들은 해외에 잠시 나와 감시를 피한 사우디 관계자들을 2017년부터 극비리에 취재했다. 빈 살만은 지난해 11월 윤석열 대통령을 만나 한국과 26개 사업에 걸쳐 290억 달러(약 37조 원) 규모의 대형 프로젝트를 추진하기로 한 인물이다. 38세 젊은 왕세자의 진면목에 한국 독자도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1985년 태어난 빈 살만은 어린 시절 아버지의 걱정거리였다. 지금은 훤칠한 용모를 지녔지만 과거엔 맥도날드 햄버거를 너무 좋아해 살이 많이 쪘다. 게임에 빠져 공부도 등한시했다. 군복을 차려입고 슈퍼마켓에서 난리를 피우기도 했다. 주식투자를 하다 잔고가 0원이 된 적도 있다. 빈 살만이 본격적으로 사우디 정치에 등장한 건 불과 26세 때인 2011년이다. 아버지가 국방부 장관에 취임하면서 그는 특별보좌관이 된다. 아버지가 왕세자가 될 땐 궁정실장에 취임했다. 2015년 당시 국왕이던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아버지가 국왕이 되자 그는 실권을 차지한다. 사실 그는 아버지의 셋째 부인이 낳은 아들이다. 위로 배다른 형제가 여럿이다. 또 아버지 역시 첫째가 아니라서 할아버지는 원래 왕세자로 사촌 형 빈 나예프를 고른 상태였다. 하지만 그는 빈 나예프에게 부패 혐의를 뒤집어씌워 2017년 물러나게 했다. 이후 사우디에서 금지됐던 미혼 남녀의 교제, 영화관 출입을 허용하며 젊은 층의 인기를 얻었다.왕세자가 된 빈 살만은 거침이 없었다. 회의에서 반대 의견이 나오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하기 일쑤였다. 위협이 될만한 인물에겐 돈을 뿌리거나 협박해 아버지 편으로 포섭했다. 롤 모델이 이탈리아 사상가 니콜로 마키아벨리(1469∼1527)라고 말하곤 했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빈 살만을 총애했다. 서열이 중요한 왕국에서, 적자생존의 권력투쟁에서 빈 살만의 잔혹한 행동은 어쩌면 그 자신에게는 당연했던 건지도 모른다. 그가 권력을 쥐면서 사우디에 긍정적으로 작용한 점도 있다. 그는 ‘비전2030’이란 경제 정책을 발표해 오일 달러에 의존한 기존 사우디 경제를 탈바꿈시키려 한다. 하지만 그는 자신에게 반대하는 인권운동가를 탄압한다. 2018년 튀르키예 이스탄불의 사우디 영사관에서 숨진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의 암살을 사주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최근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군사협력합의서를 체결해 국제 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현 사우디 국왕이 88세인 만큼 빈 살만의 집권은 코앞으로 다가왔다. 과연 빈 살만은 사우디의 경제 부흥을 이끄는 젊은 지도자가 될까, 아니면 무자비한 독재자가 될까. 두 얼굴 속에 숨겨진 진실을 그가 언제 드러낼지 궁금하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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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들이 ‘나도 그림 그려보고 싶다’는 꿈 꿨으면 좋겠어요”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10시에 퇴근하고 있어요. 첫 개인전이니 이를 악물고 중노동을 버티고 있죠. 하하.” 7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의 한 작업실. 머리를 뒤로 질끈 묶고 헐렁한 셔츠와 바지를 작업복으로 걸쳐 입은 그림책 작가 백희나(51)는 이렇게 말했다. 주위엔 ‘구름빵’ ‘장수탕 선녀님’ ‘연이와 버들 도령’ 등 그의 대표작에 등장하는 입체 모형이 가득했다. 그는 “힘들다”며 한숨을 푹푹 쉬었지만 생애 첫 개인전을 앞둔 설렘 덕인지 표정은 어느 때보다 해맑았다. 한국인 최초로 세계적 권위의 스웨덴 아동문학상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을 수상한 백 작가가 첫 개인전 ‘백희나 그림책展’을 이달 22일부터 10월 8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연다. ‘왜 개인전을 결심했냐’고 물으니 그는 “이번에 안 하면 평생 못할 것 같았다”고 멋쩍어하며 답했다. “모형을 만들고 사진을 찍는 그림책 작업은 ‘노가다’입니다. 그래서 최대한 젊을 때 창작하고, 나이 들면 개인전을 열려고 했어요. 그런데 모형을 제가 나이 들 때까지 온전히 보관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예술의전당처럼 큰 공간에서 전시하는 기회도 흔치 않고요.” 개인전엔 백 작가의 11개 작품에 등장하는 약 140점의 모형이 전시된다. ‘알사탕’에서 친구들이 먼저 말 걸어 주기 바라며 구슬치기를 하는 소년의 모습은 종이인형으로 구현했다. ‘나는 개다’에서 강아지가 뛰어다니는 골목은 골판지에 색칠하고 자동차 같은 소품을 놓아 살려냈다. ‘꿈에서 맛본 똥파리’는 바닥에 조명을 설치하고, 투명한 아크릴판에 그린 그림을 올려 발밑에 올챙이와 개구리가 가득한 연못이 펼쳐진 듯한 기분을 선사한다. 실제 그림책 속에 들어와 있는 게 아닌가 착각할 정도다. “키가 작은 아이들에 맞춰서 전시의 높이를 정했습니다. 아이들이 그림책 전시를 보고 ‘나도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으면 좋겠어요.” 지난달 27일 백 작가의 ‘알사탕’이 이탈리아의 대표 아동문학상인 프레미오 안데르센 ‘올해의 책’으로 선정됐다. 그는 “‘알사탕’의 배경이 1970, 80년대 한국인데 서양 독자가 공감했다는 점이 신기하다. 확실히 한국 그림책이 해외에서 인정받고 있는 게 느껴진다”고 했다. 백 작가는 신인 시절인 2003년 그림책 ‘구름빵’을 출간했다. 출판사 한솔교육과 2차 콘텐츠까지 모든 저작권을 넘기는 조건으로 850만 원에 ‘매절(買切)계약’을 했다. 이 때문에 지원금을 포함한 백 작가의 총수입은 고작 1850만 원에 그쳤다. 같은 처지에 처한 이의 마음을 알아서일까. 1990년대 인기 만화 ‘검정고무신’을 그린 이우영 작가가 캐릭터 업체와의 저작권 분쟁 도중 올 3월 세상을 등진 일을 언급하자 백 작가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 작가가 세상을 떠났을 때 너무 가슴 아프고 힘들었어요. 이 작가는 떠나고, 나는 살아남았구나 싶었죠. 창작자를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고 생각하기보단 출판사와의 파트너로 인정했으면 좋겠습니다.” 개인전이 끝나면 그는 무슨 일을 벌일까. “서울 용산구의 뒷골목을 배경으로 바비인형이 등장하는 유튜브 드라마를 공개할 계획이에요. 시골에 살던 여성이 서울에 상경해서 순박한 남자를 사랑하지만, 현실적 여건 때문에 부잣집 아들과 결혼하는 ‘통속 드라마’죠. 앞으로도 그림‘책’에 갇히지 않고 다양한 시도를 계속할 겁니다.”이호재기자 hoho@donga.com}

    • 2023-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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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美작가 매카시 별세

    미국 현대문학의 대표 작가인 코맥 매카시(사진)가 미국 뉴멕시코주 샌타페이 자택에서 13일(현지 시간) 별세했다고 AFP가 보도했다. 향년 90세. 고인은 미국 테네시대에서 물리학과 공학을 전공하다 1953년 공군에 입대해 4년간 복무한 뒤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이후 학교를 그만뒀다. 고인은 인간의 삶과 죽음, 운명을 냉정하게 파고들며 ‘핏빛 자오선’을 비롯해 특유의 어둡고 묵시록적인 작품을 남겼다. 소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2005년)는 코언 형제가 동명 영화(2008년)로 만들어 널리 알려졌다. 미국 퓰리처상 수상작인 ‘로드’(2006년)는 대재앙이 벌어진 후 바다가 있는 남쪽을 향해 나아가는 아버지와 아들의 여정을 간결한 문체와 감성이 응축된 대화로 그린 작품이다. ‘국경 3부작’으로 불리는 ‘모두 다 예쁜 말들’, ‘국경을 넘어’, ‘평원의 도시들’은 서부 장르 소설을 수준 높은 문학으로 승격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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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위보도 척결 위해 글로벌 연대를”… 세계최대 팩트체크 행사 첫 국내개최

    세계 최대 팩트체크 행사인 ‘제10회 글로벌 팩트 체킹 서밋’이 28∼30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다. 각국 팩트체크 기관들이 모여 글로벌 기준을 논의하고 연대를 모색하는 이 행사가 아시아에서 열리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 행사는 2014년 시작됐다. 이번 행사에서는 러시아의 허위 정보 확산을 보도한 핀란드 기자 제시카 아로가 29일,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트위터 계정을 정지시켰던 요엘 로스 전 트위터 신뢰 및 안전 책임자가 30일 연설한다. 구글, 유튜브 등 플랫폼 기업 관계자 등 약 60개 국가에서 1500여 명이 참석한다. 정은령 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 SNU팩트체크센터장은 “최근 인공지능(AI) 기술을 이용한 허위 조작 정보에 대한 논란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AI 시대 팩트체크가 나아가야 할 방안도 논의한다”고 말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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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국제도서전 오늘 개막… 참가 출판사 3배로 늘어

    서울국제도서전이 14일부터 18일까지 닷새 동안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다. 주제는 ‘비인간, 인간을 넘어 인간으로’다. 인간중심주의에서 벗어나 기후 변화, 인공지능(AI) 등 인간이 당면한 여러 문제에 대해 논의하자는 취지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가 14일 재앙으로 인류가 사라진 뒤 지구의 모습에 대해 강연하며 도서전의 개막을 알린다. 주빈국은 아랍에미리트(UAE)의 토후국 샤르자다. 주목할 만한 국가를 뜻하는 ‘스포트라이트 컨트리’에는 한국과 수교 60주년을 맞은 캐나다가 선정됐다. 올해 도서전엔 한국을 비롯해 36개국 530개 출판사가 참가한다. 15개국 195개 출판사가 참여했던 지난해보다 출판사 수가 2.7배로 많아졌다. 주일우 서울국제도서전 대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완화되면서 국내외 여러 출판사가 참여 의사를 밝혔다”며 “한국 웹소설, 웹툰에 특히 관심을 보이는 해외 출판사도 많다”고 했다. 작가는 국내 190명, 해외 25명으로 총 215명이 참여한다. 15일 김연수 김애란 최은영 소설가, 16일 나태주 안도현 시인, 17일 장편소설 ‘고래’(2004년·문학동네)로 올해 영국 부커상 최종후보에 오른 천명관 소설가가 독자를 만난다. 18일엔 장편소설 ‘동조자’(2018년·민음사)를 쓴 베트남 출신 미국 작가 비엣 타인 응우옌이 강연한다. ‘동조자’는 박찬욱 감독이 연출을 맡아 내년에 공개되는 동명 드라마의 원작이다. 만 19세 이하 5000원, 성인 1만 원.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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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통령-기업 총수가 소설 읽어야 그들의 꿈이 악몽 안 돼”

    “아들과 함께 경기 파주시 비무장지대(DMZ) 투어를 다녀왔어요. 자본주의(관광상품)와 비극(전쟁)이 공존하는 공간을 여행하면서 국가가 어떻게 전쟁이란 상처를 안고 가는지 고민하게 됐습니다.” 캐나다 작가 얀 마텔(59)은 13일 서울 중구 주한 캐나다대사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처음 한국에 온 소감을 묻자 곰곰이 생각하다 이렇게 답했다. 그는 “7일 한국에 입국해 한옥에서 머물고, 강원 설악산 울산바위도 올라가며 한국을 두루 둘러봤다. 특히 DMZ에서 극명하게 다른 두 국가(남한 북한)가 국경을 맞댄 모습을 본 경험이 인상 깊었다. 전쟁과 비극에 대해 차분하게 생각해 보려 한다”고 조심스레 덧붙였다. 그는 장편소설 ‘파이 이야기’(2004년·작가정신)로 유명하다. 인도에서 동물원을 운영하던 인도 소년과 가족이 캐나다로 이민을 가던 중 배가 침몰하자 호랑이와 함께 227일 동안 표류하다가 구조된 소년의 이야기를 담았다. 50개 국가에서 출간돼 1200만 부가 팔린 이 소설로 그는 2002년 영국 부커상을 수상했다. 부커상은 노벨 문학상, 프랑스 공쿠르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힌다. 소설을 바탕으로 리안(李安) 감독이 연출한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2013년)는 미국 아카데미상 4개 부문을 휩쓸었다. ‘파이 이야기’의 집필 계기를 묻자 그는 추억에 잠겼다. “언젠가 인도를 여행하다가 한 노인을 만나 힌두교에 대해 듣게 됐어요. 왜 힌두교엔 하나의 신이 아닌 다양한 신이 존재하는지, 종교는 왜 다양한 것인지에 대한 것이었죠. ‘파이 이야기’에서 다양한 신적 존재(상상 속 동물)가 등장한 것도 그 때문입니다.” 그는 2006∼2015년 캐나다 총리를 지낸 스티븐 하퍼에게 문학 작품을 읽는 것이 지도자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이야기하며 2007∼2011년 서평을 쓴 편지와 함께 추천한 책을 격주로 꾸준히 보냈다. 그 편지를 모은 에세이 ‘각하, 문학을 읽으십시오’(2013년·작가정신)를 펴내는 등 현실 참여적인 발언도 적극적으로 해 왔다. 이 책이 국내 출간될 때 박근혜 당시 대통령을 향해 “소설이나 시집 혹은 희곡을 항상 침대 옆 작은 탁자에 놓아두는 걸 잊지 마시라”라고 쓴 편지를 함께 실어 화제가 됐다. 이 책은 ‘얀 마텔 101통의 문학 편지’라는 제목으로 지난해 국내에 재출간됐다. ‘독서가 왜 중요한지’ 묻자 그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막중한 책임이 따르는 자리에 있는 사람에게 책 읽는 행위는 매우 중요하다”며 “대통령, 총리 등 국가지도자나 기업 총수가 소설 같은 문학 작품을 읽지 않는다면 그들이 꾸는 꿈이 최악의 악몽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 “사람들이 항상 현명한 스승들에게 둘러싸여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손쉽게 현명해질 수 있는 길은 바로 책을 읽는 것이죠. 특히 소설을 읽으면 타인의 삶에 공감할 수 있어요.” 그는 트로이 전쟁을 다룬 장편소설 ‘선 오브 노바디(Son of Nobody·가제)’를 내년 영미권에서 출간할 예정이다. 그는 “호메로스의 트로이 전쟁 서사시 ‘일리아드’를 읽다가 영감을 얻어 소설을 쓰게 됐다. ‘일리아드’에서 발언하는 사람들은 왕이나 귀족이지만 내 소설은 평민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다룬다. 권력이나 돈이 많은 사람이 발언권을 독차지하는 사회에 대한 비유”라고 했다. 그는 14, 15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리는 서울국제도서전에서, 16일 종로구 광화문교보빌딩에서 강연을 통해 한국 독자를 만난다. 강연 주제를 묻자 그는 활짝 웃으며 답했다. “‘인생은 공동창작’이란 주제로 청중과 이야기를 나누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합니다. 그런데 사실 강연 10분 전쯤에야 강연 내용을 확정할 것 같아요. 하하.”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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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무더위 날려줄 ‘저주토끼’식 괴담

    정체불명의 물건을 관리하는 ‘수상한 연구소’에 근무하는 직원들에겐 특별한 규칙이 있다. 정해진 시간표에 따라 밤마다 연구소를 순찰해야 한다는 것이다. 순찰하다 모르는 사람을 만나도 아무것도 묻지 않아야 한다. 누군가 “여기 들어오시면 안 된다”고 하면 다른 길로 가야 한다. 또 순찰할 땐 휴대전화 전원을 꼭 꺼야 한다. ‘보안상 이유’냐고 묻는 신입 직원에게 선배 직원은 이렇게 답한다. “아뇨. 귀신이 통신기기를 좋아하거든요. 전원 꺼놔도 전화 오는 일이 가끔 있어요.”(단편소설 ‘여기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신간은 단편소설집 ‘저주토끼’(2017년·래빗홀)로 지난해 영국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른 정보라의 연작소설집이다. 공포 소설에 강점을 지닌 저자답게 여름밤 더위를 싹 가시게 하는 오싹한 괴담 7편을 담았다. 직원들은 연구소의 소장품을 훔쳤다 기괴한 일을 겪고(‘저주 양’), 왜 자신을 죽였냐고 묻는 고양이를 만난다(‘고양이는 왜’). 저주에 얽힌 운동화(‘양의 침묵’), 복수가 담긴 손수건(‘푸른 새’)처럼 물건에 공포를 심은 건 저주에 걸린 토끼 인형이 등장하는 단편소설 ‘저주토끼’를 생각나게 한다. 심지어 ‘작가의 말’도 무섭다. “글이 나오지 않을 때 최후의 방책으로 나는 귀신 얘기를 쓴다. 어디서 귀신이 나오면 제일 무서울지 궁리하다 보면 어떻게든 글이 풀린다. 쓰면서 정말 재밌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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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커의 수십억 요구… 전자책 보안의 민낯[이호재의 띠지 풀고 책 수다]

    “어린이 ‘유괴 사건’을 수사하는 것 같다.” 경찰 관계자가 최근 일어난 온라인 서점 알라딘 전자책(e북) 해킹 사건을 알라딘 측에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해커가 이민진의 장편소설 ‘파친코’(2022년·인플루엔셜), 정세랑의 장편소설 ‘보건교사 안은영’(2015년·민음사), 정유정의 장편소설 ‘내 심장을 쏴라’(2009년·은행나무) 등 5000여 권의 파일을 인질로 삼고 35억 원 상당의 비트코인을 요구하는 모습이 유괴 사건과 똑 닮았다는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범인 검거보다 인질(e북)이 중요하다”며 “인질의 목숨(불법 유포)이 걱정돼 범인 검거와 수사에 난항을 겪고 있다”고 했단다. ‘출판사를 위한 전자책 길잡이’는 대한출판문화협회와 함께 출판계 양대 단체로 불리는 한국출판인회의가 출판사와 작가를 위해 펴낸 책이다. 2018년 e북으로 출간된 책으로, 현 상황에서 눈여겨볼 점이 많다. ‘출판사를 위한…’은 e북의 핵심으로 보안 장치인 ‘디지털 저작권 관리(DRM)’ 기술을 꼽는다. 종이책과 달리 파일로 유통되기 때문에 보안이 뚫리면 걷잡을 수 없이 피해가 커진다는 점을 경고한 것이다. 서점마다 다른 DRM을 쓰고 있다는 점도 지적한다. 정부와 출판계가 2010, 2014년 두 차례 출판계 ‘표준 DRM’을 구축하려 했으나 서점들의 이해관계가 얽혀 성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알라딘 DRM 보안이 취약한 것이 이번 사건의 원인이라면 ‘표준 DRM’ 무산이 문제점으로 지목될 수 있다. ‘북토피아’의 실패도 언급하고 있다. 1999년 약 120개 출판사가 자본금을 모아 설립한 e북 유통업체인 북토피아는 2010년 파산했다. 파산 과정에서 수천 개의 e북 파일이 파일 공유(P2P) 프로그램을 통해 불법 유통됐다. 해킹이 아닌 파산으로 인한 것이지만 e북 불법 유통으로 이어졌다는 점에선 알라딘 e북 해킹 사건을 보는 듯하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지속 가능한 e북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하지만 이 책이 출간된 지 5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e북 생태계는 불안정하다. 지난해 8월 출판유통전문기업 웅진북센은 국립국어원의 ‘말뭉치’ 구축 사업에 참여하면서 약 1만6000종의 e북 저작권을 무단으로 사용했을 정도로 e북의 저작권은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2021년엔 ‘90년생이 온다’의 임홍택 작가가 e북 인세 누락 문제로 출판사와 소송을 벌였을 정도로 인세 정산 역시 불투명하다. 알라딘 e북 해킹 사건을 계기로 보안 문제가 불거지면서 e북에 대한 신뢰도는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물론 알라딘 e북 해킹 사건을 일으킨 건 해커다. 경찰 수사를 통해 조속히 불법 유통 파일이 회수되고, 해커가 검거돼 처벌받아야 한다. 다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지속가능한 e북 생태계를 구축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출판계도 피할 수 없을 것 같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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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성장에 좌절한 청년들, 홍범도 장군 보며 희망 얻기를”

    “일격! 필살!” 1920년 6월 7일 홍범도 장군(1868∼1943)의 선두 저격을 신호로 중국 만주 봉오동엔 독립군의 총소리가 울려 퍼졌다. 독립군을 추격하던 일본군은 매복 작전에 걸려들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이미 늦었다. 일본군은 잠시 응사하며 반격했지만 곧 날아드는 탄환에 맞아 주저앉고 도망치다 넘어졌다. 일본군 157명이 사살돼 일제에 치욕을, 독립군에 희망을 선사한 봉오동전투는 이렇게 독립군의 완승으로 끝났다. 기세등등할 만도 하지만 홍 장군은 오히려 슬퍼한다. 홍 장군은 죽은 동료들을 땅에 묻으며 조용히 읊조린다. “공격할 때 가장 앞에 서고 퇴각할 때 맨 마지막을 지키는 것이 야전 지휘관이다. 그들(죽은 동료) 덕분에 나는 죽지 않았고, 우리는 승리했다.” 7일 출간된 장편소설 ‘범도’(문학동네·전 2권)는 홍 장군을 영웅이 아닌 고뇌하는 한 인간으로 그린다.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5일 만난 방현석 작가(62)는 ‘왜 홍 장군을 위대하게 그리지 않았냐’고 묻자 신간을 손으로 매만지며 “홍 장군은 영웅이 되기를 거부함으로써 영웅이 된 사람”이라고 했다. “홍 장군은 전투 때마다 앞장서면서 동료들의 신뢰를 얻었어요. 혈육이나 재산도 남기지 않았죠. 권위를 버리면서 위대해진 영웅의 인간적 면모를 들여다보고 싶었습니다.” 방 작가는 2011년 신흥무관학교 설립 100주년 기념으로 독립군 유적지를 가는 단체여행을 한 후 지인들과 유적지 여행을 더 하며 홍 장군에게 관심을 갖게 됐다. 방 작가는 만주 신흥무관학교, 봉오동 전투지, 홍 장군이 야간 수위 생활을 하던 카자흐스탄 고려극장을 방문했다. ‘언젠가 꼭 써야 한다’고 마음을 먹었고, 2020년 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을 계기로 집필을 시작했다. “170여 권의 문헌을 읽고, 매주 50시간 이상 3년에 걸쳐 썼습니다. 밖에서 밥을 먹고 술을 마시다가도 홍 장군과 ‘놀고 싶어’ 빨리 집에 돌아와 책상 앞에 앉았죠.” 2권을 합쳐 1304쪽에 이르는 신작엔 홍 장군의 일생이 담겼다. 머슴의 아들로 태어난 홍 장군이 13세에 포수(砲手)가 돼 함경남도 개마고원을 누비고, 만주 벌판에서 무장 독립운동을 이끄는 서사에 곁들여진 웅대한 자연 풍경 묘사가 압권이다. “포수는 짐승의 질서 속에서 사는 거야” “가진 총알의 숫자만큼 적을 잡는 것이 바로 우리 포수들”이란 말은 실제 역사에 존재하지 않는 허구지만 홍 장군의 생애를 입체적으로 살려낸다. 지금 이 시대 홍 장군의 삶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봉건사회가 무너지고 나라가 없어 방황하던 홍 장군과 산업 성장이 끝나고 저성장 시대에 좌절한 요즘 청년들이 뭐가 다른가요. 낡은 것이 무너지고, 새로운 희망은 오지 않은 지금 청년들이 새 시대를 개척한 홍 장군을 보며 희망을 얻었으면 좋겠어요. 홍 장군이 억압과 차별을 향해 발사한 탄환은 아직 탄착점에 도착하지 않았을 뿐 빗나가진 않았으니까요.”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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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범도 장군, 지금의 청년들과 비슷해”…소설 ‘범도’ 펴낸 방현석 작가

    “일격! 필살!”1920년 6월 7일 홍범도 장군(1868∼1943)의 선두 저격을 신호로 중국 만주 봉오동엔 독립군의 총소리가 울려 퍼졌다. 독립군을 추격하던 일본군은 매복작전에 걸려들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이미 늦은 상태였다. 일본군은 잠시 응사하며 반격했지만, 곧 날아드는 탄환에 맞아 주저앉고 도망치다 넘어졌다.일본군 157명이 사살돼 일제에 치욕을, 독립군에게 희망을 선사한 봉오동전투는 이렇게 독립군의 완승으로 끝났다. 기세등등할 만도 하지만 홍 장군은 오히려 슬퍼한다. 홍 장군은 죽은 동료를 땅에 묻으며 조용히 읊조린다. “공격할 때 가장 앞에 서고 퇴각할 때 맨 마지막을 지키는 것이 야전 지휘관이다. 그들(죽은 동료) 덕분에 나는 죽지 않았고, 우리는 승리했다.”7일 출간된 장편소설 ‘범도’(전 2권·문학동네)는 홍 장군을 영웅이 아닌 고뇌하는 한 인간으로 그린다. 5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난 방현석 작가(62)는 ‘왜 홍 장군을 위대하게 그리지 않았냐’고 묻자 신간을 손으로 매만지며 “홍 장군은 영웅이 되기를 거부함으로써 영웅이 된 사람”이라고 했다.“홍 장군은 전투 때마다 앞장서면서 동료의 신뢰를 얻었어요. 혈육이나 재산도 남기지 않았죠. 권위를 버리면서 위대해진 영웅의 인간적 면모를 들여보고 싶었습니다.”방 작가가 홍 장군에 관심을 두게 된 건 2010년부터 독립군 유적지를 답사하면서다. 방 작가는 만주 신흥무관학교, 봉오동 전투지, 홍 장군이 야간 수위 생활하던 카자흐스탄 고려극장을 방문했다. ‘언젠가 꼭 써야한다’는 마음을 지니다가 2020년 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계기로 집필을 시작했다.“170여 권의 문헌을 읽고, 매주 50시간 이상 3년에 걸쳐서 썼습니다. 밖에서 밥을 먹고 술 마시다가도 홍 장군과 놀고 싶어 빨리 집에 돌아와 책상 앞에 앉았죠. ”2권을 합쳐 1304쪽에 이르는 신작엔 홍 장군의 일생이 담겼다. 머슴의 아들로 태어난 홍 장군이 13세에 포수(砲手)가 돼 함경남도 개마고원을 누비고, 만주 벌판에서 무장 독립운동을 이끄는 서사에 곁들여진 웅대한 자연 풍경 묘사가 압권이다. “포수는 짐승의 질서 속에서 사는 거야”, “가진 총알의 숫자만큼 적을 잡는 것이 바로 우리 포수들”이란 대사는 실제 역사에 존재하지 않는 ‘허구’지만 홍 장군의 생애를 입체적으로 살려낸다. 홍 장군이 한인 강제 이주정책에 따라 연해주를 떠나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으로 이주해 눈을 감는 장면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고민을 던진다. 독립운동가의 생애를 다뤘다는 점에서 안중근 의사(1879∼1910)가 주인공인 김훈 작가(75)의 장편소설 ‘하얼빈’(2022년·문학동네)도 생각 난다.“안 의사가 양반 출신이라면, 홍 장군은 평민이자 머슴의 아들이죠. 안 의사는 ‘동양평화론’을 주창한 사상가지만, 홍 장군은 ‘끝까지 싸운다’는 목표만 가졌어요. 두 사람은 이렇게 다르지만 일제에 대항했다는 점에서 같은 방향을 바라본 인물이죠.”왜 지금 홍 장군의 삶을 읽어야 하냐고 물었더니 ‘청년’이란 답이 돌아왔다.“봉건 사회가 무너지고 나라가 없어 방황하던 홍 장군과 산업 성장이 끝나고 저성장 시대에 좌절한 요즘 청년들이 뭐가 다른가요. 낡은 것이 무너지고, 새로운 희망은 오지 않은 지금 청년들이 새 시대를 개척한 홍 장군을 보며 희망을 얻었으면 좋겠어요. 홍 장군이 억압과 차별을 향해 발사한 탄환은 아직 탄착점에 도착하지 않았을 뿐 빗나가진 않았으니까요.”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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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렴한 책 사면 배송비 때문에 더 비싸져?… 출판계 ‘정가 1만6800원 경제학’ 딜레마

    “신간 정가를 1만6800원으로 올렸을 때 독자 반응을 예측하라.” 최근 한 대형 출판사 대표는 마케팅 담당 부서에 이런 지시를 내렸다. 올 2월 교보문고, 예스24, 알라딘 등 서점 3사가 무료배송 기준을 기존 1만 원(주문가)에서 1만5000원으로, 배송비는 2000원에서 2500원으로 올린 상황을 고려한 것이다. 이 출판사 대표는 “무료배송 기준과 배송비가 올라 독자가 온라인으로 저렴한 책 한 권을 샀을 때 돈을 더 내야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며 “독자 반응에 따라 신간 정가를 정할 계획”이라고 했다. 출판계에 이른바 ‘정가 1만6800원 경제학’이 떠오르고 있다. 책 정가가 1만6667원에 미치지 못하면 한 권만 산 독자는 배송비를 추가로 내야 하기 때문이다. 2014년 시행된 도서정가제에 따라 온라인에서 책값은 최대 10%까지 할인된다. 정가 1만6800원인 책은 1만5120원에 살 수 있다. 무료배송 기준(1만5000원) 이상이라 배송비를 내지 않는다. 반면 정가 1만6600원인 책은 10%를 할인하면 1만4940원에 사게 되므로 배송비(2500원)를 더해 총 1만7440원을 내야 한다. 정가 1만6700원인 책도 10% 할인하면 1만5030원이지만 출판계에는 ‘백 원 단위 가격을 짝수로 정해야 책이 더 잘 팔린다’는 통념이 있다고 한다. 신간 정가를 1만6800원으로 정하는 흐름은 이미 대세가 됐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지난달 신간 중 정가가 1만6800원인 책은 100종으로 지난해 5월(46종)에 비해 2배 이상으로 늘었다. 배송 기준 변경 직전과 직후인 올 1월과 3월을 비교해도 36종에서 99종으로 증가했다. 특히 문학, 에세이 분야 서적이 영향을 많이 받는다. 지난달 출간된 장편소설 ‘없는 층의 하이쎈스’(창비), 소설집 ‘이리하여 아무도 없었다’(현대문학), 에세이 ‘형사 박미옥’(이야기장수), ‘아니 에르노: 이브토로 돌아가다’(사람의집) 등이 정가 1만6800원으로 책정됐다. 한 출판사 대표는 “문학과 에세이는 ‘두껍지 않은 책’이 대세라 무료배송 기준 인상의 영향을 받는 1만 원 중반 가격대가 많다”고 했다. 스테디셀러의 가격 인상이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장편소설 ‘하얼빈’(문학동네·1만6000원), ‘파친코1’(인플루엔셜·1만5800원), ‘아버지의 해방일지’(창비·1만5000원)를 비롯해 한 권만 사면 배송비를 따로 내야 하는 책이 적지 않다. 반면 어린이책에 대해서는 굳이 책값 인상을 논의하지는 않는 분위기라고 한다. 유료 회원에게 책을 무료배송해 주는 ‘쿠팡’ 등에서 많이 팔리기 때문이다. 영화관이 티켓값을 올렸다가 관객들의 반발을 산 것처럼 책값 인상이 출판계 불황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표정훈 출판평론가는 “웹소설, 웹툰 등 무료나 저렴하게 접할 수 있는 콘텐츠가 늘어나면서 책값에 대한 저항감이 커졌다”며 “종이책은 고급 콘텐츠로 차별화해 소장욕을 자극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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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렴한 책을 사면 배송비 때문에 더 비싸진다?… 출판계 ‘1만6800원 경제학’

    “신간 정가를 1만6800원으로 정했을 때 독자 반응을 분석하라.”최근 한 출판사 대표는 마케팅 담당 부서에 이런 지시를 내렸다. 올 2월 교보문고, 예스24, 알라딘 서점 3사가 온라인 무료배송 기준을 주문가 기존 1만 원에서 1만5000원, 배송비는 2000원에서 2500원으로 올린 상황을 고려한 것이다. 이 출판사 대표는 “배송기준과 배송비 인상으로 독자가 저렴한 책을 샀을 때 오히려 더 비싼 돈을 내고 있다”며 “독자 반응에 따라 신간 정가를 정할 계획”이라고 했다.출판계에 이른바 ‘1만6800원 경제학’이 떠오르고 있다. 서점이 배송기준을 올리면서 책을 단 한 권만 샀을 때 정가가 1만6800원에 미치지 못하면 독자가 배송비를 내야 하기 때문이다. 2014년 시행된 도서정가제에 따라 온라인에서 책값은 최대 10%까지 할인되는 상황도 영향을 미쳤다.예를 들어 정가 1만6800원 책은 온라인에서 10% 할인된 1만5120원에 살 수 있다. 무료배송 기준인 1만5000원 이상이라 배송비를 내지 않는다. 반면 정가 1만6600원 책은 10% 할인해 1만4940원에 산다. 무료배송 기준에 미달해 배송비 2500원을 더 내야 한다. 총 결제금액은 1만7440원으로 싼 책을 샀을 때 돈을 더 낸다. 정가 1만6700원 책도 10% 할인하면 1만5030원이지만 가격을 ‘짝수’로 정해야 책이 더 잘 팔린다는 출판계의 암묵적인 공식이 반영됐다.베스트셀러엔 무료배송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책이 많다. 실제로 지난달 마지막 주 알라딘 종합 10위에 든 도서 중 8개가 무료배송 기준에 못 미친다. 대표적으로 장편소설 ‘눈부신 안부’(문학동네·7위)는 1만6000원, 산문집 ‘이적의 단어들’(김영사·9위)은 1만4800원, 만화 ‘원피스 105’(대원씨아이·10위)는 5500원이다.신간 정가를 1만6800원으로 정하는 흐름은 이미 대세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지난달 출간된 신간 중 정가가 1만6800원인 책은 100종이다. 지난해 5월(46종)에 비해 2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배송기준이 바뀐 올 2월 기준으로도 상승세가 드러난다. 정가 1만6800원인 책은 올 1, 2월 각각 36, 44종이었다. 하지만 올 3, 4월엔 각각 99, 117종으로 늘어났다. 지난달 출간 책 중 정가 1만6800원인 건 장편소설 ‘없는 층의 하이쎈스’(창비), 소설집 ‘이리하여 아무도 없었다’(현대문학), 에세이 ‘형사 박미옥’(이야기장수), 에세이 ‘아니 에르노: 이브토로 돌아가다’(사람의집) 등 문학 에세이 분야가 눈에 띄었다. 다른 출판사 대표는 “문학과 에세이는 독자가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얇은 책’이 대세라 가격이 1만 원 중반을 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무료배송 기준 인상으로 문학 에세이 출판사 반응이 가장 크다”고 했다.책값 인상이 출판계 불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 이후 영화관이 티켓값을 올렸다가 관객 반발을 산 것처럼 소비자 반발이 예상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유료 회원에게 책 무료배송을 제공하는 ‘쿠팡’에서 많이 팔리는 ‘어린이책’은 책값 인상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 표정훈 출판평론가는 “웹소설, 웹툰 등 무료나 저렴하게 접할 수 있는 온라인 콘텐츠가 늘어나면서 책값에 대한 저항감이 늘어났다”며 “책에 차별화된 콘텐츠를 담거나 소장욕을 극대화해 고급 콘텐츠로서의 장점을 높여야 한다”고 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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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얼마나 높이 뛰어오를지 결정하는 건 오직 나예요”

    무용엔 ‘발레 블랑’(하얀 발레)으로 불리는 작품들이 있다. 무용수들이 흰옷을 입고 통일성 있는 군무를 펼치는 작품들이다. 백조들의 군무가 펼쳐지는 ‘백조의 호수’, 망령들의 군무가 펼쳐지는 ‘라 바야데르’, 처녀 귀신들이 시시각각 대열을 바꾸며 군무를 추는 ‘지젤’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하얀 발레’에 출연할 때마다 분가루를 뒤집어쓴 발레리나가 있다. 흑인인 그는 “피부색 때문에 하얀 발레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매번 흰 파운데이션을 얼굴과 팔에 덕지덕지 발랐다. 군무가 펼쳐지는 2막을 부르는 ‘하얀 막’에서 배제된 적도 있지만 이를 악물고 버텼다. 그리고 마침내 ‘백조의 호수’ 흑인 주연을 따냈다. 세계적 발레단인 미국 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에서 발레단 설립 75년 만인 2015년 처음으로 흑인 수석 무용수가 된 미스티 코플랜드(40)다. 그가 쓴 에세이에는 어린 시절부터 수석 무용수에 오르기까지의 삶이 담겼다. 처음 그가 발레를 시작한 건 13세 때다. 학교 댄스 동아리에서 취미로 춤을 추던 그는 발레 선생님으로부터 “완벽한 체격 조건을 타고났다. 발레를 배워 보라”는 제안을 받는다. 그는 당황했다. 발레를 본 적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는 토슈즈(발레 신발)를 살 돈이 없을 정도로 가난했다. 레오타드(발레복)가 없다는 그의 말에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 그냥 체육복 입어도 돼. 난 소외 계층 아이들에게 발레를 가르쳐주고 있단다.” 보통 발레리나는 유치원 무렵부터 발레를 배운다. 코플랜드는 뒤늦게 발레를 시작했지만 타고난 재능 덕에 빠르게 성장했다. 첫 수업 때 기본 동작을 대부분 습득했다. 보통 신입은 1년이 걸리는 ‘앙 푸앵트’(토슈즈를 신고 발끝으로 서는 동작)를 8주 만에 성공했다. 15세에 처음 참가한 발레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으며 그는 신동으로 떠올랐다. 18세 땐 ABT가 훈련 비용을 전액 지원하는 장학생으로 선발됐다. 그렇다고 저자의 삶이 마냥 승승장구했던 건 아니다. 어린 시절 그는 4번의 결혼과 4번의 이혼을 한 홀어머니 아래에서 자랐다. 넉넉지 않은 가정 형편 탓에 무료 급식소에서 밥을 먹었고, 모텔방을 전전하며 지냈다. 청소년기에 들어서선 흑인 특유의 굴곡진 몸 때문에 “발레에 어울리지 않는 체형”이란 비난을 받았다. 허리 부상으로 1년간 발레를 못 했고, 백인이 가득한 발레계에서 흑인이란 이유로 ‘보이지 않는 차별’을 당했다. 그는 그럴 때마다 흑인으로서 처음 대형 발레단에서 활동했으나 백인우월주의 단체 큐클럭스클랜(KKK)을 피해 해외로 이주했던 레이븐 윌킨슨(1935∼2018)을 생각하며 버텼다. 완벽한 발레 동작은 없다고 믿으며 연습 시간을 끝없이 늘렸다. 무대에선 오로지 발끝으로 서고, 쏜살같이 움직이며, 허공을 가르며 높이 뛰어오르는 것에만 집중했다. 2015년 미국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이 됐지만, 그는 요즘도 토슈즈를 고쳐 신으며 이렇게 다짐한다고 한다. “마침내 빛나는 순간이 왔다. 나를 증명할 순간, 가장 높은 위치에 오른 흑인 발레리나를 대표할 순간이. 이것은 갈색 피부의 작은 소녀들을 위한 것이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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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검은 백조가 된 흑인 발레리나…첫 ABT 흑인 수석 무용수 미스티 코플랜드

    무용엔 ‘발레 블랑’(하얀 발레)으로 불리는 작품들이 있다. 무용수들이 흰옷을 입고 통일성 있는 군무를 펼치는 작품들이다. 백조들의 군무가 펼쳐지는 ‘백조의 호수’, 망령들의 군무가 펼쳐지는 ‘라 바야데르’, 처녀 귀신들이 시시각각 대열을 바꾸며 군무를 추는 ‘지젤’이 대표적이다.그런데 ‘하얀 발레’에 출연할 때마다 분가루를 뒤집어쓴 발레리나가 있다. 흑인인 그는 “피부색 때문에 하얀 발레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매번 흰 파운데이션을 얼굴과 팔에 덕지덕지 발랐다. 군무가 펼쳐지는 2막을 부르는 ‘하얀 막’에서 배제된 적도 있지만 이를 악물고 버텼다. 그리고 마침내 ‘백조의 호수’ 흑인 주연을 따냈다. 세계적 발레단인 미국 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에서 발레단 설립 75년 만인 2015년 처음으로 흑인 수석 무용수가 된 미스티 코플랜드(40)다. 그가 쓴 에세이에는 어린 시절부터 수석 무용수에 오르기까지의 삶이 담겼다. 처음 그가 발레를 시작한 건 13세 때다. 학교 댄스 동아리에서 취미로 춤을 추던 그는 발레 선생님으로부터 “완벽한 체격 조건을 타고났다. 발레를 배워 보라”는 제안을 받는다. 그는 당황했다. 발레를 본 적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는 토슈즈(발레 신발)를 살 돈이 없을 정도로 가난했다. 레오타드(발레복)가 없다는 그의 말에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 그냥 체육복 입어도 돼. 난 소외 계층 아이들에게 발레를 가르쳐주고 있단다.”보통 발레리나는 유치원 무렵부터 발레를 배운다. 코플랜드는 뒤늦게 발레를 시작했지만 타고난 재능 덕에 빠르게 성장했다. 첫 수업 때 기본 동작을 대부분 습득했다. 보통 신입은 1년이 걸리는 ‘앙 뿌엥뜨’(토슈즈를 신고 발끝으로 서는 동작)를 8주 만에 성공했다. 15세에 처음 참가한 발레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으며 그는 신동으로 떠올랐다. 18세 땐 ABT가 훈련 비용을 전액 지원하는 장학생으로 선발됐다.그렇다고 저자의 삶이 마냥 승승장구했던 건 아니다. 어린 시절 그는 4번의 결혼과 4번의 이혼을 한 홀어머니 아래에서 자랐다. 넉넉지 않은 가정 형편 탓에 무료 급식소에서 밥을 먹었고, 모텔방을 전전하며 지냈다. 청소년기에 들어서선 흑인 특유의 굴곡진 몸 때문에 “발레에 어울리지 않는 체형”이란 비난을 받았다. 허리 부상으로 1년간 발레를 못 했고, 백인이 가득한 발레계에서 흑인이란 이유로 ‘보이지 않는 차별’을 당했다.그는 그럴 때마다 흑인으로서 처음 대형 발레단에서 활동했으나 백인우월주의 단체 큐클럭스클랜(KKK)을 피해 해외로 이주했던 레이븐 윌킨슨(1935~2018)을 생각하며 버텼다. 완벽한 발레 동작은 없다고 믿으며 연습 시간을 끝없이 늘렸다. 무대에선 오로지 발끝으로 서고, 쏜살같이 움직이며, 허공을 가르며 높이 뛰어오르는 것에만 집중했다. 2015년 미국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이 됐지만, 그는 요즘도 토슈즈를 고쳐 신으며 이렇게 다짐한다고 한다.“마침내 빛나는 순간이 왔다. 나를 증명할 순간, 가장 높은 위치에 오른 흑인 발레리나를 대표할 순간이. 이것은 갈색 피부의 작은 소녀들을 위한 것이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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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알라딘이 털렸다…해킹으로 e북 5000권 유출

    이민진의 장편소설 ‘파친코’(2022년·인플루엔셜·사진)와 정세랑의 장편소설 ‘보건교사 안은영’(2015년·민음사), 정유정의 장편소설 ‘내 심장을 쏴라’(2009년·은행나무)…. 출판계 베스트셀러가 최근 온라인 서점 알라딘 전자책(e북) 해킹으로 대거 유출된 사실이 31일 확인됐다. 본보가 해킹으로 유출된 알라딘 e북 5000여 권의 파일 가운데 ‘파친코’ 등 일부 파일을 입수해 분석한 결과 별다른 절차 없이 수백 쪽에 이르는 책 전문을 전자책 뷰어로 바로 읽을 수 있었다. 본보는 이번 사건을 조사하는 한국저작권보호원이 피해 출판사들에 보낸 파일을 전해 받았다. 유출된 책들은 보안 장치인 ‘디지털 저작권 관리(DRM)’ 기술이 적용되지 않았고, 보안이 취약하다는 평가가 있는 ‘개방형 자유 전자서적 표준(Epub)’ 형식으로 제작됐다. 유출이 확인된 5000여 권 전체 목록을 분석한 결과 문학동네와 민음사, 창비 등 국내 유명 출판사의 베스트셀러가 다수 포함돼 있었다. 피해 출판사는 500곳 이상으로 분석됐다. 앞서 지난달 19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텔레그램 채팅방에는 “알라딘에서 전자책 100만 권을 탈취했다”고 주장하며 알라딘 측에 35억 원 상당의 비트코인을 요구하는 글과 함께 5000여 권의 e북 파일이 올라왔다. 당시 채팅방엔 3200명이 들어와 있었기에 유출된 파일이 추가 확산 중일 것으로 추정된다. 경찰은 정확한 피해 규모 등을 수사 중이다. 알라딘은 “피해 규모가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무한 복제가 가능한 e북 특성상 이번 사건으로 출판 산업이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소송도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대한출판문화협회와 한국출판인회의는 피해 출판사로부터 법률 대응 위임장을 받고 있다. 이광호 한국출판인회의 회장은 “추후 알라딘을 상대로 보상 문제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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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첫 산문집 낸 이적 “독자들 상상력에 불붙이는 부싯돌 됐으면”

    “싫은 사람과 같이 일하지 않아도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는 상태”. 가수 이적(49)은 신간에서 성공을 이렇게 정의한다. 이적이 31일 서울 중구 이화여고 100주년기념관에서 첫 산문집 ‘이적의 단어들’(김영사) 출간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책은 101개의 낱말을 고른 뒤 이에 대한 짧은 글 101편을 엮었다. 한두 문장으로 이뤄진 산문부터 가상의 화자를 내세운 짧은 소설까지 다양한 글이 담겼다. 이날 ‘작가’로 간담회에 참석한 이적은 “부끄럽다”면서도 “노랫말을 짓든, 글을 쓰든 모두 다 연관된 일이다. 짧은 문장 안에 하고 싶은 말을 압축해 담는 건 작사와 글쓰기의 닮은꼴”이라며 수줍게 웃었다. 이적은 앞서 ‘당연한 것들’(2021년·웅진주니어)을 비롯해 그림책 3권과 단편소설집 ‘지문사냥꾼’(2005년·웅진지식하우스)을 펴냈다. 그는 “2019년 김영사 편집자가 ‘이적의 단어들’이란 가제로 책을 내자고 제안해왔는데, 확 끌렸다. 2020년부터 글을 쓰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렸다. 가제가 진짜 제목이 됐다”고 했다. “제가 게으르고 ‘관종’(관심종자)이라 동기 부여가 필요합니다. 혼자 방에서 글을 쓰려니 쉽지 않았어요. 그래서 글을 쓴 뒤 바로 SNS에 올리기로 했죠.” SNS에 미리 공개한 글은 참신한 시각으로 화제를 모았다. ‘성공’의 정의는 “촌철살인”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널리 퍼졌다. “오랜만에 만난 조카 앞에서 구차하게 1만 원짜리를 셀 수 없어 호기롭게 5만 원을 줬다가 후회하지 않도록 3만 원권 지폐를 만들자”(글 ‘지폐’ 중)는 제안은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이 “국회 결의안을 발의하겠다”고 호응하며 화제가 됐다. “글 ‘지폐’ 때문에 한국조폐공사에 ‘3만 원권을 발행하자’는 민원이 많이 들어왔다고 하더라고요.”(웃음) 그는 “‘이적의 단어들’이 독자들의 상상력에 불을 붙여주는 부싯돌 같은 책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신간에서 그는 “가수는 라이브 콘서트가 필수다. 펄떡펄떡 살아 있음을 느끼고 싶다”(글 ‘라이브’ 중)라며 음악에 대한 철학도 드러낸다. 이날 간담회에서도 자신의 노래 ‘빨래’(2010년)의 한 소절을 부르며 작사 동기를 설명하며 가수로서의 면모를 드러냈다. 다음 계획에 대한 물음에는 이렇게 답했다. “뮤지컬이라 부르기엔 거창하고, 소규모로 이야기와 음악이 함께 나오는 음악극을 준비하고 있어요. 젊은 시절부터 꼭 해보고 싶었는데 잘 이뤄졌으면 좋겠습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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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차를 즐기는 방식도 일종의 언어”… 책 ‘차의 언어’ 펴낸 정혜주 대표

    “차(茶)를 즐기는 방식도 일종의 언어다.” 서울 용산구 산수화티하우스의 정혜주 대표는 최근 출간한 ‘차의 언어’(셀렉트핀·사진)에서 이렇게 강조한다. 특정 언어에 익숙해지면 읽고 볼 수 있는 것이 많아지듯 차를 알고 마시면 더 풍성하게 즐길 수 있다는 것. 이 책은 찻잎을 고르는 법과 물을 따르는 방식부터 차를 풍성하게 즐길 수 있는 기구까지 차의 다양한 방면을 두루 다룬다. 2014년 산수화티하우스를 연 정 대표의 자전적 이야기도 담겼다. “차를 접할 때 가장 우선 할 것은 차를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이라는 말에서 차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다. 4만 원.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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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국회의원 출신 장성원 작가, 항일운동사 다룬 소설 ‘풍상’ 출간

    기자, 국회의원을 지낸 장성원 작가(84)가 항일 독립운동사를 다룬 역사 장편소설 ‘풍상’(문예바다·사진)을 30일 펴냈다. 소설집 ‘영원한 약속’(2020년·문예바다)을 낸 후 두 번째 작품이다. 신간은 동학농민운동이 시작된 1894년부터 1945년 광복까지를 배경으로 역사의 굴곡 속에서 분투한 이들을 그렸다. 주인공 중 한 명은 전북 김제 출신으로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자 민심을 안정시키려 노력하고 일제에 항거하다 경술국치 후 순국한 장태수(1841∼1910)다. 다른 한 명은 장태수의 종증손으로 대동단에 자금을 제공하고 조선어사전 편찬을 지원했다가 옥고를 치렀으며 동아일보 감사로 일한 장현식(1896∼1950)이다. 격변의 세계정세에 휘말리는 오늘날 눈여겨볼 만한 책이다. 작가는 머리말에서 “풍상(風霜·모진 고생)의 역사를 체험한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제시했다”고 밝혔다. 1만2000원.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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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간 20년된 ‘고래’ 부커상 후보로 펄떡… K문학 세계로 이끈 번역의 힘[인사이드&인사이트]

    《“영국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 6편 중 장편소설 ‘고래’(2004년)가 유력한 수상 후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고래’가 가장 큰 라이벌이었다.”영국 런던 스카이가든에서 23일(현지 시간) 열린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시상식. 불가리아 작가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55)는 장편소설 ‘타임 셸터(Time Shelter)’로 상을 받은 뒤 천명관 작가(59)에게 다가와 이렇게 말했다. 천 작가는 29일 동아일보와의 전화 통화에서 “영국 현지에서 ‘고래’가 신선하다는 평가가 많아 고스포디노프가 긴장한 것 같았다”며 “수상하지 못한 건 아쉽지만 최종 후보에 오른 것만으로도 만족한다”고 했다.‘고래’가 노벨 문학상, 프랑스 공쿠르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히는 부커상의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수상은 하지 못했지만 한국 문학의 세계화 가능성이 확인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해 정보라 작가의 단편소설집 ‘저주토끼’(2017년)에 이어 한국 작가의 작품이 2년 연속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른 건 처음이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엔 한국 문학이 더 다양해진 데다 수준이 높아진 번역의 날개를 달고 세계에서 인정받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번역된 언어 수, 10년 전의 2배최근 한국 문학에서 번역의 힘을 보여주는 건 다양해진 언어다. 한국문학번역원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 문학 작품은 27개 언어로 번역됐다. 2012년 14개 언어로 번역된 데 비하면 10년 만에 2배 가까이로 늘어났다.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등 주요 국가의 언어뿐만이 아니다. 그리스어 루마니아어 보스니아어 우크라이나어 크로아티아어 같은 상대적으로 생소한 언어로도 번역 출간되고 있다. 출간 종수도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해외에 출간된 한국 문학 작품은 157건으로, 2012년 57건에 비해 3배 가까이로 늘었다. ‘고래’는 영어 일본어 러시아어 독일어 튀르키예어로 번역 출간됐고, 이탈리아어 번역이 진행 중이다. 천 작가의 다른 작품인 장편소설 ‘고령화 가족’(2010년·문학동네)은 영어 프랑스어 러시아어 중국어 루마니아어 몽골어로 출간됐다. 천 작가는 “‘고래’를 폴란드어와 아랍어로 번역 출간하는 것을 논의 중이다”라고 했다. 국제 문학상에서 한국 문학의 위상도 높아졌다. 올해 유력 국제상 후보에 오른 한국 작품은 8편이다. 지난해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1차 후보에 오른 박상영의 연작소설집 ‘대도시의 사랑법’(2019년·창비)은 올 1월 아일랜드 국제 더블린 문학상 1차 후보에 올랐다. 손원평의 장편소설 ‘프리즘’(2020년·은행나무)은 올 4월 일본 서점대상 번역소설 부문 2위를 수상했다. 영미권과 아시아권 외에서도 인정받는 추세다. 김애란의 단편소설집 ‘바깥은 여름’(2017년·문학동네)과 정이현의 단편소설집 ‘상냥한 폭력의 시대’(2016년·문학과지성사)는 올해 러시아 야스나야폴랴나 문학상 해외문학 부문 후보에 올랐다.●번역가, 작품 발굴에서 마케팅까지한국 문학의 위상이 높아진 데에는 번역가의 공로가 컸다. 번역가의 인지도가 국제상 입후보에 효과를 내기도 한다. 영국에서 ‘천명관’이라는 이름이 비교적 생소했던 상황에서 ‘고래’가 부커상 후보에 오른 데에는 김지영 번역가의 인지도가 도움이 됐다는 분석이다. ‘고래’의 김지영 번역가는 신경숙의 장편소설 ‘엄마를 부탁해’(2008년·창비)로 2012년 맨 아시아 문학상을 받았을 정도로 영미권에서 인정받는 번역가다. 김 번역가는 2007년부터 활동하며 정유정의 장편소설 ‘7년의 밤’(2011년·은행나무), ‘종의 기원’(2016년·은행나무), 김영하의 장편소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1996년·복복서가), ‘빛의 제국’(2006년·복복서가) 등 한국 작품을 다수 번역했다. 김 번역가가 영어로 옮겨 2022년 미국에서 출간된 구병모의 ‘파과’(2013년·위즈덤하우스)는 미국 뉴욕타임스(NYT)가 ‘주목할 만한 책 100선’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번역가가 한국 문학 작품을 발굴하고 해외 출판사를 연결하는 한편 마케팅까지 하기도 한다. 지난해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른 ‘저주토끼’를 발굴한 건 번역가 허정범(안톤 허)이다. ‘저주토끼’는 한국에선 비주류에 속하는 공포, 공상과학(SF) 장르다. 허 번역가는 2018년 서울와우북페스티벌에서 정보라 작가를 만난 뒤 번역 출간을 제안했다. 정 작가는 그때까지 국내에서 알 만한 문학상을 받은 적이 없었다. 허 번역가는 해외 출판사를 연결해 이 책이 출간되는 것까지 도왔다. ‘대도시의 사랑법’을 발굴해 해외 출판사를 연결한 이도 허 번역가다. 허 번역가는 최근 전화 통화에서 “한국 문학 번역가가 작품을 해외 에이전트에 소개하는 건 기본이다”며 “번역가가 직접 해외 언론을 만나고 서점 행사에 참여하는 등 마케팅까지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했다. 부커상은 이 같은 번역가의 기여를 인정해 작가와 번역가에게 상금을 절반씩 나눠 지급한다.●판타지 SF 등 장르문학 번역도 활발최근엔 번역 출간되는 장르가 판타지, SF 등으로 다양해지고 있다. 2020년 출간 후 한국 베스트셀러에 오른 판타지 장편소설 ‘달러구트 꿈 백화점’(이미예 지음·팩토리나인)은 2021년 러시아어, 2022년 독일어 튀르키예어 베트남어로 발 빠르게 번역 출간됐다. 김초엽의 장편소설 ‘지구 끝의 온실’(2021년·자이언트북스), 단편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2019년·허블)은 일본어로 번역됐다. 두 책을 번역한 강방화 번역가는 “일본 독자들이 한국 장르문학을 일본 작품보다 신선하고 재밌다고 생각한다”며 “기본적인 과학 지식만 있으면 읽기에 어렵지 않은 ‘소프트 SF’나 여성주의 시각이 묻어나는 작품을 특히 많이 찾고 있다”고 말했다. 스페인어로 우리 작품을 번역하는 윤선미 씨는 “해외 출판사에서 먼저 연락이 와 독특한 작품이 없냐고 문의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며 “독창적이고 기괴한 작품을 한국이 만든다는 시각이 넓게 퍼져 있는 게 장르문학 인기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책의 ‘몸값’도 올라가고 있다. 이영도 작가가 2003년 출간한 판타지 장편소설 ‘눈물을 마시는 새’(전 4권·황금가지)는 올 1월 선인세 약 3억 원을 받고 유럽의 한 출판사에 판매됐다. 이는 단일 국가에서 받은 한국 출판물 선인세 중 최고액이다. 앞서 김수현의 에세이 ‘애쓰지 않고 편안하게’(2020년·놀)가 일본 출판사로부터 받은 선인세 2억 원, 김언수의 장편소설 ‘설계자들’(2010년·문학동네)이 미국 출판사로부터 받은 1억 원을 넘어선 것이다. 지난해 10월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책의 영문 번역본이 소개된 것을 계기로 해외에서 러브콜이 쏟아진 것이 선인세 상승으로 이어졌다.●“번역에 적극 투자 필요”하지만 번역의 미래가 밝지만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리 문학이 가요나 드라마, 영화 등 다른 장르만큼 세계로 뻗어나가려면 번역의 다양성을 더욱 확대할 필요가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번역가는 “일부 나아지긴 했지만 부커상 외에 다른 국제상에서 한국 문학이 얼마나 인정받고 있는지 의문”이라며 “한국 문학이 번역 출간되는 나라가 여전히 영미권이나 아시아권에 편중된 상황을 바꾸지 않는다면 곧 한계에 이를 것”이라고 했다. 정부 차원의 지원이 확대되지 않는다면 번역의 품질이 유지되지 않을 수 있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허정범 번역가는 “번역에 대한 관심은 많아졌지만 여전히 노력한 만큼 대우를 못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수입이 10년 전에 비해 절반 수준이라 다른 일을 알아보고 있다”고 했다. 곽효환 한국문학번역원장은 “‘한국 문학의 세계화’를 넘어 ‘세계 문학으로서의 한국 문학’이 되려면 번역에 대한 적극적 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호재 문화부 기자 hoho@donga.com}

    • 2023-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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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공황때 공매도로 떼돈, 투자의 귀재일까 투기꾼일까

    미국의 투자가 앤드루 베벨은 20세기 초 미국 뉴욕 월스트리트를 호령했다. 베벨은 1929년 경제 대공황 시절, 주가가 떨어졌을 때 수익을 내는 공매도(주식을 빌려서 판 뒤 나중에 주식을 사서 갚는 것)를 해 큰 이익을 얻었다. 대공황 직후엔 망한 회사의 주식을 사들이고 경제가 회복된 뒤 이를 비싼 값에 팔았다. 공격적인 투자로 떼돈을 번 수완가인 셈이다. 한편으로 베벨은 주식 시장 붕괴를 주도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정확한 시점에 공매도를 해 투자에 성공한 데엔 주가 조작 세력과의 결탁이 있지 않았겠냐는 것. 베벨은 1933년 뉴딜 정책 때 공매도를 시도했다가 대중으로부터 비난도 받는다. 나라 경제가 완전히 망가진다고 보고 이에 투자한 것에 대한 반발 심리가 극에 달했기 때문이다. 베벨을 ‘투자의 귀재’와 ‘투기꾼’ 중 무엇으로 불러야 할까. 그 둘을 구분하는 게 가능은 할까. 아르헨티나 출신 미국 작가 에르난 디아스(50)는 올해 2월 국내 출간된 장편소설 ‘트러스트’(문학동네·사진)에서 가상의 인물 베벨을 통해 돈에 대한 민감한 문제를 다룬다. ‘트러스트’는 지난해 미 뉴욕타임스(NYT)와 워싱턴포스트(WP) 올해의 책에 선정됐고, 디아스는 이달 8일(현지 시간) 미국 퓰리처상 소설 부문을 수상했다. 미국에선 실리콘밸리은행(SVB)의 파산으로 금융권에 대한 신뢰가 떨어진 상황이 디아스의 퓰리처상 수상에 영향을 끼쳤다는 평가가 나오며 화제가 되고 있다. 디아스는 최근 동아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난 경제학자가 아니라 소설가라 SVB 파산이 수상에 영향을 미쳤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트러스트’를 읽으며 금융권의 신뢰에 대해 생각하게 된 사람이 많다. 소설의 힘을 절실히 깨달았다”고 했다. 미국 뉴욕대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은 디아스는 2017년 소설 ‘먼 곳에서’를 발표하며 작가로 데뷔했다. ‘먼 곳에서’는 퓰리처상과 펜포크너상 최종 후보에 오르며 주목받았다. 화려하게 데뷔한 그는 두 번째 작품 ‘트러스트’로 퓰리처상을 거머쥐었다. 디아스가 소설 제목을 ‘트러스트’로 정한 건 돈이 곧 신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금융 시스템은 신뢰에 기반을 두고 있다”며 “돈은 사람들 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허상”이라고 했다. 그는 또 “우리가 경험한 많은 금융위기를 생각해 보라. 신뢰가 무너진 뒤 우리는 얼마나 비참해졌나. 우리의 삶이 허상인 돈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라고 되물었다. 그는 소설에서 베벨을 다양한 시각으로 다룬다. 1부는 한 소설가의 시선에서 진행되는데, 소설가는 베벨의 공매도를 ‘장난질’로 규정한다. 반면 베벨이 쓴 자서전 버전인 2부에선 베벨이 자신은 투자에 최선을 다했을 뿐이라고 스스로 변호한다. 독특한 건 베벨의 비서가 집필한 3부와 베벨의 아내가 쓴 4부에서 숨겨진 비밀이 드러난다는 점이다. 소설의 끝에 이르렀을 때 독자는 베벨을 단순히 지지 혹은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디아스는 “세상의 진실은 복잡하지만 우리는 자신이 바라보는 세상만을 신뢰한다. 선입견이 무너진 뒤 독자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고 싶었다”며 “내가 사랑하는 일본 영화 감독 구로사와 아키라(1910∼1998)의 영화 ‘라쇼몽’(1950년)처럼 관점에 따라 진실이 달라질 수 있다는 문제의식을 담고 싶었다”고 했다. 퓰리처상을 받은 뒤 디아스는 일약 영미 문학의 스타가 됐다. 소감을 묻자 소박한 답변이 돌아왔다. “전 그동안 고독하게 혼자 일했어요. 그런데 갑자기 사람들에게 큰 관심을 받으니 감사할 뿐입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계속 작품을 쓰겠습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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