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여우 굴에 귀여운 새끼여우가 태어났다. 하지만 새끼여우를 노리는 사나운 짐승들이 너무 많다. 새끼여우 탄생을 비밀로 하고 싶지만 뱀 때문에 온 숲에 소문이 나고 만다. 호랑이와 늑대가 새끼여우를 잡아가기 위해 여우 굴 앞에 나타나자 가족들은 큰 근심에 빠진다. 그러다 좋은 꾀를 낸다. 반대 소문을 퍼뜨리기로 한 것. 너구리를 이용해 여우 굴 앞에 괴물이 산다는 소문을 낸다. 소문은 퍼져나갈수록 점점 더 커진다. 소문 속 괴물의 모습은 갈수록 무시무시해져 호랑이도 꼼짝할 수 없어진다.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는 속담을 쉽고 흥미롭게 풀어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고정관념을 배제하고 순수하게 화가로 바라본 조선화는 예술성이 탁월하단 점에서 또 다른 충격을 줬습니다. 북한 미술이 사실주의 미술 분야에서 독특한 경지를 일궈온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미국에서 활동 중인 화가 문범강 조지타운대 교수(64·사진)는 2010년 우연히 워싱턴에서 접한 북한 미술 작품에서 받은 충격을 이렇게 설명했다. 체제 선전용일 뿐이라는 기존 북한 미술에 대한 고정관념과 달랐기 때문이다. 대구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대학을 다닌 그는 학창 시절 받은 반공교육의 영향으로 북한 그림을 봤을 때 두려움에 뒤로 물러서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조선화의 예술성은 이를 뛰어넘게 만들었다고 했다. 2011년부터 6년간 평양을 9차례 방문하며 본격적으로 북한 미술 연구에 뛰어들었고 이를 정리해 ‘평양미술, 조선화 너는 누구냐’(서울셀렉션)를 펴냈다. 이 책은 그간 베일에 가려 있던 북한 미술의 현장을 생생히 공개한다. 13일 만난 그는 “‘북한의 동양화’인 조선화는 사회주의 사실주의 미술 중에서도 독특한 표현 방법에 천착해 왔다”고 설명했다. 조선화는 외부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발전한 수묵 채색화로, 한국화는 물론이고 중국화와도 다르다. 사회주의 미술 특성상 예술적 평가 대상으로 고려되지 않았지만 문 교수는 그간의 통념에 반기를 들었다. “인간 내면의 미묘한 감정을 섬세하게 포착해 과감한 붓 터치로 표현한 인물화는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수준입니다. 이렇게 시적이고 낭만적일 수 있을까 싶어요. 조선시대 선비화 양식을 이어받은 화가 리석호(1904∼1971)의 작품은 중국 근대미술의 대가인 치바이스(齊白石·1864∼1957)에 견줘도 결코 뒤떨어지지 않습니다.” 문 교수는 평양미술을 연구하는 동안 안전하게 여정을 마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와 함께 경제적 타격 등 많은 것을 감수해야 했다. 하지만 화가의 감별력으로 북한 미술을 평가하는 데 사명을 느꼈다. 그는 “누가 좌냐 우냐 물으면 예술가라고 답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지난해 미국 워싱턴 아메리칸대에서 북한 미술 전시를 기획했던 그는 올해 9월 광주비엔날레에 북한 미술전 큐레이터로 참여한다. 집체화(여러 작가가 참여한 체제선전용 대형 작품) 4, 5점을 포함해 인물화 중심의 조선화 25점가량을 선보일 예정이다. 이번 전시가 성사되면 국내에서 처음으로 북한 집체화가 대중과 만나게 된다. 문 교수는 “냉정히 말해 한국이 이념에 대해 두려워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며 “정부 승인이 남아 있는데 북한 미술도 포괄적으로 감상할 수 있는 이념적 여건이 마련된 점을 감안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천경자 화백(1924∼2015)의 사위인 그는 북한 미술의 문제점, 모사와 복제 문제를 다룰 후속 책도 집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여기, 당신의 발을 호빗이 아닌 좀 더 사람 발처럼 보이게 할 몇 개의 실행 가능한 팁을 정리해봤다.”(‘여름철 발 관리법’ 중) 최근 출간된 ‘미스터 포터’(그책)라는 세 권짜리 책은 ‘가꾸는 남성’이 각광받는 요즘 추세를 그대로 보여준다. 해외 남성 전용 온라인 편집몰에 연재됐던 내용을 엮은 것으로 숄칼라 카디건 제대로 입는 법, 넥타이 딤플(매듭 아래 움푹 팬 주름) 만드는 법 같은 패션 팁만큼이나 장인어른과 잘 지내는 법, 프로처럼 칼질하는 법 같은 생활의 요령을 강조한다. 책의 부제는 ‘스타일과 품격 있는 삶을 위한 매뉴얼’. 그런 남성이 되는 데 이 모든 게 필요하단 뜻이다. 확실히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 특히 스타일과 품격을 동시에 갖추기란 쉽지 않다. 이미 세 권이나 되지만, 이 책이 그 매뉴얼을 ‘제대로’ 다루려면 내용은 훨씬 방대해져야 할 것이다. 완벽한 슈트를 고를 줄 아는 동시에 양고기 굽는 법도 알고 프로처럼 세차할 줄도 아는 남자는 하루아침에 탄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부단한 연구와 노력이 필요하다. 요컨대, 시간이 걸린다는 뜻이다. 그런 면에서 자기 스타일을 갈고닦을 시간이 많았던 중년 남성들은 유리한 조건을 갖췄다. 실제 요즘 대중문화에서는 꽃중년이 인기다. 시청자들은 ‘중년’ 감우성과 지진희에게 열광한다. 드라마 속 그들의 중년 캐릭터가 확고한 자기 스타일과 품격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고급 슈트패션의 끝판왕인 지진희에겐 신사도가, 절제된 캐주얼로 편안함을 강조한 감우성에겐 인간미가 있다. 잔주름과 희끗해진 머리조차 진중함과 여유를 돋보이게 한다. 안타깝게도 현실은 정반대다. 많은 중년이 꽃중년보다는 ‘개저씨’로 불린다. 스타일 문제는 부차적이다. 먹고살려다 보니 관리 못한 뱃살, 아재패션을 문제 삼지는 않는다. ‘진짜 개저씨’를 만드는 건 안하무인 격 자기중심주의, 지위를 앞세운 퇴행적 습성 같은 ‘품격의 결함’이기 때문이다. 지진희나 감우성처럼 그럴듯한 피코트(해군 선원용 코트를 본뜬 스타일)를 걸치고, 중저음에 고독한 미간을 흉내 낸다고 매력적인 꽃중년이 되는 게 절대 아니다. 어디서 베낀 듯한 어쭙잖은 스타일은 더 큰 냉소를 부른다. “괘념치 말아라. 다 잊어라. 아름다운 스위스와 러시아의 멋진 풍경만 기억해라.” 최근 인터넷 여성 커뮤니티에서는 성폭행 가해자가 된 한 유력 대선 주자의 발언에 실소와 조롱이 잇따르고 있다. 그가 피해자에게 남긴 말이 보통 특이한 게 아니어서이다. 그 와중에 그는 도대체 어떤 ‘스타일’을 흉내 내고 싶었던 것일까. 그는 실제로 ‘충남의 엑소’로 불리기도 했다.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한 대선 주자의 몰락은 스타일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초래한 또 다른 부작용을 보여준다. 드라마 속 꽃중년과 매일 뉴스를 채우는 개저씨의 간극이 이렇게 크다.박선희 문화부 기자 teller@donga.com}

‘나를 지켜라.’ ‘내 영역을 보호하라.’ 최근 출판계를 휩쓸고 있는 키워드다. 타인의 시선이나 평가 등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방어와 독립’의 기술을 강조하는 책들이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키며 강세를 보이는 경향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13일 예스24에 따르면 종합베스트셀러 1위는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방법’(정문정·가나출판사)이다. 이 책은 교보문고와 인터파크도서 등 다른 대형 서점에서도 4주 연속 베스트셀러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부당해도 참고 억눌렀던 문화 대신 단호하게 의사 표현을 하며 자신을 지키는 방법을 강조해 호응을 얻고 있다. 이외에도 ‘신경 끄기의 기술’(마크 맨슨·갤리온),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김수현·마음의숲)처럼 비슷한 주제의 책들이 일제히 대형 서점 종합베스트셀러 10위 안에 올라있다. 재작년까지만 해도 서점가에선 주로 멘토나 롤모델이 전해주는 보편적 위안과 치유의 메시지가 인기를 끌었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혜민 지음·수오서재), ‘아무것도 아닌 지금은 없다’(글배우·쌤앤파커스), ‘타샤의 정원’(타샤 튜더·윌북) 등이 대표적이다. 혜민 스님 책은 2016년까지 3년 연속 종합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인기였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막연한 위안보다는 초점을 자기 자신의 삶으로 좁힌 책들이 인기를 끄는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에세이 분야를 살펴보면 이런 변화는 더 뚜렷하게 읽힌다. 예스24에 따르면 올해 들어 판매량이 가장 많이 뛰고 있는 에세이는 ‘일단 오늘은 나에게 잘합시다’(도대체·예담), ‘무엇이 되지 않더라도’(김동영·아르테), ‘힘 빼기의 기술’(김하나·시공사) 등이다. 모두 인간관계에서 일어나는 갈등으로부터 자신을 지혜롭게 방어하거나 외부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법을 강조한 책들이란 공통점이 있다. 이 도서들은 올해 들어 매달 평균 45%씩 판매량이 늘고 있다. 전문가들은 집단주의나 권위주의 문화에서 파생된 스트레스가 많았던 한국 사회 특성이 이런 책들의 인기에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한다. 관계에 지친 독자들이 ‘나만의 것’에 집중하기 시작했다는 것. 기존의 ‘힐링’이 좀 더 구체화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경쟁과 관계에서 오는 중압감을 달래고 치유하려는 단계에서 구체적으로 ‘내 기준’을 세우고 대응하려는 단계로 진화했다는 설명이다. 특히 이런 경향은 자신의 일상에 집중함으로써 만족감을 얻는다는 최근의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 트렌드와도 맞물린다. 김도훈 예스24 문학MD는 “일상에서 닥치는 스트레스나 어려움에 압도되지 않는 구체적, 실용적 방법을 제시하는 책들이 각광받는 흐름은 당분간 계속될 것 같다”고 말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순수한 모교 사랑으로 학교 발전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차분히 고민해 보려고 합니다.” 신수정 서울대 음대 명예교수(76·사진)가 13일 제27대 서울대 총동창회장으로 추대됐다. 서울대 총동창회 설립 50년 만에 나온 첫 여성 회장이다. 신 교수는 이날 동아일보와의 전화인터뷰에서 “굉장히 사랑하는 모교이지만 서울대학교라는 상징성이 있기 때문에 기쁨보단 걱정과 버거움이 크다”며 이같이 소감을 밝혔다. 신 교수는 16일 정기총회에서 총동창회장에 공식 취임한다. 임기는 2년. 서울대 음대를 수석 졸업하고 서울대 역사상 최연소(26세) 교수로 임용됐던 신 교수는 유난히 ‘첫길’을 많이 열어 왔다. 1961년 제1회 동아음악콩쿠르 우승자였고 2005년부터 2년간 서울대 음대 첫 여성 학장도 지냈다. 이번 총동창회장에 오르며 또 한번 ‘첫길’을 연 셈이다. 신 교수는 “어쩌다 보니 ‘첫’자가 많이 들어가는 길을 걷게 됐다”며 “음대 동창회장을 6년 맡았다가 그 짐을 이제 벗었구나 생각했는데 총동창회장 추대 소식에 어깨가 무거워진다”며 웃음 지었다. 서울대 총동창회는 이날 만장일치로 신 교수를 회장으로 추대했다. 동창회 측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대학으로서 총동창회장 선임에도 시대정신과 국민의 시선을 염두에 뒀다”며 “부드럽게 교감하며 모교를 지원할 수 있는 리더십과 충만한 애교심을 갖췄다”고 추대 사유를 밝혔다. 신 교수는 “사실 음악이란 세계에서 평생을 살아와서 여성과 남성의 역할 차이를 크게 느끼지 못했다”며 “세계적으로 여성의 활약이 많아지는 시대에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된 만큼 해야 할 역할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외에서 명성이 높은 피아니스트인 신 교수는 다년간 동아음악콩쿠르 심사위원과 서울국제음악콩쿠르 운영위원, 동아음악콩쿠르 50주년기념음악회 추진위원장을 역임했다. 독일 뮌헨 ARD 국제음악콩쿠르, 영국 리즈 국제피아노콩쿠르 등에서도 심사위원으로 활약했다.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스승으로 유명하다. 현재 대한민국예술원 음악분과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항상 미소 짓는 얼굴을 갖고 있어 ‘스마일리’란 이름을 가진 사랑스러운 골든리트리버. 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얼굴에도 절로 따뜻한 미소가 번지게끔 하는 그 얼굴 뒤엔 아픈 과거가 숨겨져 있다. 강아지 번식장에서 수의간호사인 조앤에게 극적으로 구조된 스마일리는 원래 양쪽 눈이 없는 왜소증 장애를 갖고 태어난 강아지였다. 장애를 가진 개를 입양하려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함께 구출된 다른 강아지들이 모두 입양된 뒤에도 홀로 남겨진 스마일리. 조앤은 이 강아지가 자신과 함께 있어야 가장 행복하리란 사실을 깨닫고 직접 키우기로 결심한다. 눈구멍 사이에 난 염증 때문에 고통을 받던 스마일리는 눈의 조직을 모두 들어내고 영구적으로 봉합하는 수술부터 받는다. 이 수술 덕분에 스마일리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영원히 웃는 얼굴’이 만들어진다. 주눅 든 장애견이 놀라운 잠재력을 발휘하게 된 것은 이때부터다. 스마일리는 따뜻한 미소와 밝고 천진한 행동으로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나누어줬다. 병원, 보육원, 학교 등을 방문하면서 안정과 정서적 위안을 안겨주는 치유견의 역할을 담당했다. 여러 매체에 보도되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팔로어가 20만 명에 이르는 스타견도 됐다. 상대가 누구든 가리지 않고 모두를 특별하게 대해주는 스마일리에게서 사람들은 편안함을 느꼈다. 사람들은 이 강아지에게서 희망, 용기를 얻었다. 물론 스마일리가 장애를 극복하고 사랑받는 치유견이 된 데는 번식장에서 구출된 후 극도의 불안 증세를 보이던 어린 강아지를 인내심 있게 기다려준 조앤의 돌봄이 있었다. 무자비한 환경에서 방치돼온 어린 장애견이 사람을 신뢰하는 법을 배우기까지 묵묵히 기다려준 조앤의 연민과 사랑도 뭉클한 감동을 준다. 많은 이들에게 사랑과 감동을 전해준 스마일리는 암 투병 끝에 지난해 안락사로 세상을 떠났다. 웃는 얼굴로 잠든 이 강아지의 일생에 대한 간결하고 담담한 회상이 다양한 사진과 함께 수록됐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코끼리를 단짝 친구로 둔 수지. 혼자 학교에 가려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회오리바람을 만나면 어쩌지, 길이라도 잃어버리면 어떡하지…. 결국 한 시라도 떨어지고 싶지 않은 코끼리를 데리고 함께 학교에 간다. 선생님을 따라 순서대로 친구들과 함께 교실로 들어선다. 하지만 코끼리는 너무 커 문에 끼이고 만다. 친구들과 선생님까지 나서서 도운 끝에 겨우 교실로 들어오지만 또 다른 난관에 봉착한다. 코끼리 엉덩이가 너무 커서 의자에 앉을 수 없었다. 친구들은 당황한 수지와 함께 고민에 빠진다. 코끼리와 함께 수업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친구를 한마음으로 도와주는 동심이 담백한 그림 속에 녹아들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어린이 책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볼로냐 라가치상 올해 수상자 명단에 한국작가 3인이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 볼로냐 라가치상은 이탈리아에서 매년 3월 말에 열리는 어린이책 도서전인 볼로냐 도서전에서 시상된다. 혁신적인 작품에 수여하는 뉴호라이즌 부문에 ‘나무, 춤춘다’의 배유정 씨(38), 첫 책을 낸 작가에게 주는 오페라프리마 부문에서 ‘너는, 누굴까’를 쓴 안효림 씨(40), 아키텍처 앤드 디자인 부문에서 ‘벽’의 정진호 씨(31)가 주인공이다. 정 작가는 2015년에 이어 두 번째 수상이다. 한국 그림책은 판권 수출이 늘고 해외 수상 소식도 잦아지면서 주목받고 있다. 라가치상 수상자들이 서울 종로구 동아일보사에 모여 그림책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 그림책은 아동서적이 아니다! 배 씨는 2016년 출간한 ‘나무…’로 수상했다는 소식에 눈물부터 쏟았다고 했다. 이 책은 아래로 펼쳐서 봐야 하는데 길이가 15m에 달한다. 나무, 꽃, 물고기 등이 유려한 색감으로 흘러내려 예술 작품 같다. 반달 출판사에서는 적자를 볼 각오로 만들었는데 정작 서점에서는 어디에 진열해야 할지 난감해했다고 한다. 아동서도 예술서도 아닌 것 같다는 이유였다. 회의감에 빠진 그에게 수상은 큰 힘이 됐다. 다른 작가들도 공감했다. “작가의 자신감은 판매부수와 직결되거든요.(웃음) 책이 잘 안 팔리면 내가 잘하는 게 맞나 의기소침해지기 쉬운데 상을 받으니 격려와 확인을 받은 느낌이죠.”(정 씨) 책에 맞는 서가를 찾지 못해 좌절한 배 씨의 경험은 한국 그림책 작가들이 겪는 어려움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림책은 아동문학 하위 장르로 편입되고, 아동문학 내에서도 글을 읽기 전 유아가 보는 책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이들은 “아이들만 읽는 책과 아이들도 보는 책은 다르다”고 말한다. 안 씨는 “5세든, 할머니든 자기만의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게 그림책”이라며 “외국과 달리 한국에서는 그림책이 독립된 장르로서 위상이 부족해 아쉽다”고 말했다.○ 한 번 사면 평생 보는 책 그림책은 때때로 글도, 번역도 필요 없다. 무대디자인과 일러스트 작업 등을 해 온 배 씨, 아동문학을 공부하다 그림책 작가가 된 안 씨, 건축을 전공하고 ‘그림책으로 건축 중’인 정 씨 모두 그림책의 매력으로 “그림만으로 소통할 수 있다는 점”을 꼽았다. 의미를 찾기 위해 읽는 게 아니라 즐기면서 본 뒤 자신만의 메시지를 만들어내면 된다는 것. 정 씨는 “그림책은 한 번 사두면 10년, 20년을 더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 권에 10만 원에 달하는 일본 작가의 그림책을 애장품 1호로 꼽았다. 최근 그림책 전문서점이 늘고 관련 동호회 활동이 활성화되는 등 그림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들 역시 변화를 실감하고 있다. ‘그림책 100배 즐기는 법’에 대해 조언을 부탁했다. 정 씨는 “그림책은 스스로 해석할 기회가 많으니 제목에 얽매이지 말고 자기 나름대로 탐색을 해보면 더 재미있게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가령 ‘부모님’ ‘구름’이라는 주제를 던지면 그에 맞춰 골라올 수 있는 그림책이 무궁무진하단다. 안 씨는 “아이에게 그림책을 읽힐 때도 일단 부모 자신과 가장 소통이 잘된 책을 골라 주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열린 마음이다. “모두들 바쁘고 여유가 없지만 그림책을 볼 때만이라도 시간을 갖고 편견을 버리면 좋겠어요. 그러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편안해지고 기분이 전환되는 걸 느낄 수 있을 거예요.”(배 씨)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집을 팔려고 내놨는데 처음부터 거절하기 힘든 좋은 제안이 들어왔다. 단, 예상 시기보다 일찍 집을 비워달라고 요구하는 게 문제다. 어떻게 해야 할까. 살면서 부딪히게 되는 여러 문제 앞에서 사람들은 혼란을 느낀다. 이 책은 선택을 할 때 참고할 수 있는 컴퓨터 과학의 알고리즘을 소개한다. 컴퓨터 과학의 알고리즘은 최적 멈춤, 탐색과 이용, 정렬하기, 일정 계획, 완화, 무작위성, 게임 이론 등 11가지로 구성돼 있다. 컴퓨터가 복잡한 문제를 가장 빠르게 해결하고 합리적 선택을 이끌어내는 데 쓰는 방법들이다. 이를 그대로 우리의 인생 문제에 적용시켜 본다면 어떨까. 최적의 멈춤 전략은 다양한 분야에 적용할 수 있다. 우리는 초조함으로 인해 ‘탐색’과 ‘살펴보기’만 계속하다 시간을 허비하기도 한다. 하지만 알고리즘은 이미 답을 갖고 있다. ‘37% 법칙’이다. 37% 지점에서 멈춰야 최선의 선택을 할 확률이 높아진다. 마감 시간에 여러 가지 일이 몰릴 때는 어떤 순서로 처리하는 게 좋을까. 컴퓨터의 최단 처리시간 알고리즘에 따르면 가장 빨리 끝낼 수 있는 일을 먼저 하는 게 좋다. 하지만 일에는 가중치가 있으므로, 단위시간당 중요도가 가장 큰 일의 순서대로 처리하는 것도 좋은 해결책이다. 세상 모든 문제를 알고리즘만으로 완벽하게 해결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컴퓨터가 문제를 푸는 명료한 법칙들을 기억한다면, 괜한 불안감과 초조함으로 인한 실수는 다소 피할 수 있을 것 같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고등학교 졸업 10주년 모임에 참석했다고 생각해보자. 누군가는 더 비싼 옷을 입었고, 더 좋은 직장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다. 하지만 적어도 신체적으로는 모두 공평하다. 동창생 모두는 눈부신 젊음의 전성기에 와 있다. 하지만 동창회가 20주년, 30주년에 이르면 갈수록 변화가 뚜렷해진다. 누구는 나이보다 훨씬 늙어 보이고 갖은 병에 시달리지만 누군가는 서서히 우아하게 나이 들어간다. 노화는 필연적이지만 노화의 과정은 사람마다 다르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엘리자베스 블랙번 미국 캘리포니아대 명예교수는 노화의 열쇠를 ‘텔로미어’가 쥐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해 2009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텔로미어는 우리 세포 속 염색체의 양 끝단에 있는 구조를 뜻한다. 쉽게 말하면 신발 끈 끝에 보호용으로 붙는 플라스틱이나 쇠붙이(애글릿·aglet)이라고 떠올리면 된다. 신발 끈 끝이 너무 닳으면 그 끈은 쓸 수 없게 된다. 세포도 그렇다. 염색체 손상을 막아주는 덮개 역할을 하는 텔로미어가 마모돼 짧아지면 세포는 지친 상태로 헤이플릭 한계(세포분열을 할 수 없는 자연적 한계)에 이른다. 아직 살아있지만 분열을 영구히 멈춘 이 세포가 많아질수록 노화가 진전된다. 실제로 텔로미어의 길이는 수명과도 연관이 있었다. 텔로미어가 긴 사람들의 암·심장병 사망을 포함한 총사망률이 가장 낮았다. 텔로미어가 짧아지는 걸 막아야 건강하게 나이들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블랙번은 여기서 한 가지 더 놀라운 발견을 한다. 짧아진 텔로미어가 도로 길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텔로미어를 만들고 보충하는 효소 ‘텔로머라아제’ 덕분이다. 텔로머라아제는 닳아 사라진 염색체 끝에 새로운 끝을 만들어 달아 세포분열이 계속 이뤄지게끔 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텔로미어를 회복할 수 있을까. 건강 및 수명 연장과 직결되는 이 비밀을 블랙번은 광범위한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밝혀낸다. 우선 텔로미어는 스트레스에 영향을 받는다. 일상의 사소한 스트레스가 아니라 오랜 간병생활처럼 지속적이며 위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스트레스는 텔로미어를 현격히 짧아지게 한다. 스트레스 가운데 가장 좋지 않은 유형은 ‘위협반응’과 연관이 있다. 스트레스 상황에서 두려움, 불안 등 전면적 위협을 느끼는 것이다. 혈관이 수축되고 심장박동이 빨라지며 혈압이 오른다. 손발이 차가워지고, 달아나거나 싸우기도 불가능해진다. 이럴 땐 “내 몸이 과제에 집중하게끔 나를 돕는 신호니 한번 도전해보자”고 스트레스를 재해석하는 것이 좋다. ‘위협반응’을 ‘도전반응’으로 전환하는 것만으로도 텔로미어를 보호할 수 있다. 사고방식뿐 아니라 음식, 운동, 수면 습관과도 텔로미어는 밀접한 연관성을 갖고 있다. 텔로미어에는 유산소 운동이 가장 효과적이다. 일주일에 세 번, 45분씩 유산소 운동을 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영국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수면시간을 매일 7시간 이상 확보하는 것이 긴 텔로미어를 유지하는 데 영향을 미친다고도 나타났다. 고령화 시대에 접어들며 건강하게 나이 드는 것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다. 이 책은 건강한 노후를 만드는 생활습관을 ‘텔로미어’라는 생물학적 비밀을 바탕으로 흥미롭게 도출해냈다. 건강한 음식과 충분한 수면, 긍정적 사고방식. 어쩌면 이 뻔한 정답들이 텔로미어를 이해하고 나면 훨씬 더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탕씨 부부는 긴 휴가를 쓰게 됐다. 들뜬 마음에 여행 계획을 짠다. 지도를 펼치고 가장 먼 섬을 고른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멋진 호텔로 숙소를 정한다. 하지만 숙소 후기에는 이 호텔에 가기 위해 30분 이상 짐을 지고 산길을 올라가야 한다는 불평의 글이 올라와 있다. 부부는 대신 산기슭의 다른 숙소를 살펴본다. 하지만 이곳은 으스스한 숲길을 지나야만 한다. 살펴보는 숙소마다 이런저런 단점이 계속해서 튀어나오면서 탕씨 부부는 계속해서 묵으려는 숙소와 여행지를 바꾼다. 탕씨 부부, 여행을 갈 수는 있을까. 인터넷의 너무 많은 정보에 휘둘리는 세태를 유머러스하게 그려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서울 종로구 경희궁1가길에 새로 생긴 작은 북카페 ‘에무’. 북 마스터가 상주하면서 책을 추천해 주고 간단한 다과도 함께 판매하는 이곳은 요즘 유행하는 작은 동네서점이나 북카페와 흡사해 보인다. 책을 보며 차 한잔하는 ‘작은 호사’가 가능한 곳이다. 하지만 판매 중인 책들이 모두 한 출판사에서 출간된 것들이란 점에서 일반적인 동네서점과는 다르다. 스티커가 붙어있는 반품 책 외에는 결제를 해야만 자리로 들고 와 읽을 수 있다. 사계절출판사가 온·오프라인 프로모션을 진행하고 출판사 자체의 홍보력을 갖추기 위해 문을 연 공간이기 때문이다. 아담한 공간이지만 출판사의 참신한 기획과 진열이 돋보인다. 서점으로 탈바꿈하기 전 식당이었던 원래 공간의 특성을 살린 ‘책으로 요리하는 주방’, 시크릿 북 코너인 ‘꿈꾸는 책들의 비밀’도 만들었다. 작가들의 낭독회와 강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상시적으로 운영해 동네 사랑방이자 인근 직장인들의 문화공간 역할도 함께 하도록 운영할 예정이다. 강맑실 사계절출판사 대표는 “출간되는 책의 종수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대형서점 등 기존 판매 공간에서는 우리 책을 충분히 알리기 어렵다고 생각했다”며 “홍보 루트를 개발하기 위해 독자들을 직접 만나 소통할 수 있는 공간에 대한 필요성이 내부적으로 꾸준히 제기돼 왔다”고 말했다. 그는 “출판사가 자체 브랜드의 힘을 키우고 충성 독자와 마니아를 늘리기 위한 공간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렇게 충성 독자들과 보다 적극적으로 소통하기 위한 출판사들의 다양한 시도는 최근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마음산책은 최근 ‘마음산책 북클럽’을 시작했다. 저자를 초대해 독자들과 만난다는 점에서는 기존의 저자 초청 행사와 다를 게 없다. 하지만 이곳은 출판사의 편집자, 마케팅 담당자나 디자이너 등 책을 만든 이들도 함께 참여해 출판사가 어떻게 책을 기획하고 출간하게 됐는지를 나눈다. 저자와 책뿐만 아니라, 출판사라는 브랜드로 독자들을 만나려는 시도의 일환인 셈이다. 민음사도 2011년부터 진행해온 ‘민음북클럽’을 다음 달경 새롭게 단장할 예정이다. 이 출판사는 지난해부터 회원용 여권을 나눠주고 낭독회, 출간행사 등에 참여할 때마다 스탬프를 찍어줘 호응을 얻었다. 스탬프 모으는 재미에 독자들이 행사 때마다 200∼300명이 순식간에 몰려들며 마감됐다. 이시윤 민음사 홍보팀장은 “브랜드 마케팅 차원에서 특정 출판사에 애착과 유대감을 느끼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독자들이 늘어나는 건 중요한 일”이라며 “책을 좋아하는 독자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보다 다양한 활동을 기획하려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운동이 문재인 정부 분열을 위한 공작에 이용될 수 있다는 방송인 김어준 씨의 발언을 놓고 정치권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김 씨는 24일 팟캐스트 ‘김어준의 다스 뵈이다’에서 “제가 예언을 할까 한다. 공작의 사고방식으로 보면 어떻게 보이느냐. ‘첫째 섹스, 좋은 소재고 주목도 높다. 둘째, 진보적 가치가 있다. 그러면 피해자들을 준비시켜 진보 매체를 통해 등장시켜야겠다. 문재인 정부의 진보적 지지자들을 분열시킬 기회다’ 이렇게 사고가 돌아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 나온 뉴스가 그렇다는 얘기가 아니다. 예언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에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김어준의 발언,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제목의 글을 통해 “진보적 인사는 성폭력 범죄를 저질러도 방어하거나 감춰줘야 한다는 말이냐”고 비판했다. 또 “피해자들이 겪어야 했던 일을 모를 수가 없을 텐데 어떻게 이런 말을 하나. 이런 사람이 지상파 시사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그러자 금 의원의 페이스북에는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참모 출신인 금 의원 전력을 거론하며 “난독증이냐. 다음 달부터 (민주당) 당비를 내지 않겠다”, “당신 혼자 잘났다고 내부 총질을 하느냐”는 비판 댓글이 이어졌다. 손혜원 민주당 의원은 “금태섭 의원님, 이거 댓글단의 악성 공작입니다. 전체 맥락과 달리 딱 오해할 만하게 잘라 편집, 집중적으로 공격하는 것”이라며 김 씨를 옹호했다. 다시 금 의원은 글을 올려 “‘미투는 옳지만, 이용당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는 말은 그럴듯하지만, 전혀 앞뒤가 안 맞는 말이다. 피해자들이 ‘내가 나서서 피해 사실을 밝히면, 어떤 사람들은 나로 인해 문재인 정부, 청와대, 진보적 지지층이 타깃이 된다고 보겠구나’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이는 피해자를 한 번 더 망설이게 하고 2차 피해를 입힐 수 있는 것”이라며 김 씨에게 사과를 촉구했다. 바른미래당은 김 씨의 발언에 대해 “성폭력 피해자를 ‘공작원’으로 모독했다. 김 씨는 즉각 대국민 사과를 하고 모든 방송에서 하차하라”고 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미투의 정치적 배후가 당초 보수진영을 겨냥해 시작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우리 당 국회의원을 음해하기 위해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 미투 운동이 좌파 문화 권력의 추악함만 폭로되는 부메랑으로 갈 줄 저들이 알았겠느냐”고 썼다. 김 씨는 팟캐스트 외에도 SBS 시사프로그램 ‘블랙하우스’와 교통방송(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을 진행하고 있다.박선희 teller@donga.com·장관석 기자}
이윤택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을 비롯한 연극계 ‘거장’들로부터 촉발된 ‘미투’ 운동이 뮤지컬 음악 미술 등 문화예술계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가해자인 교수의 권위나 배우의 명성 등 권력관계에서 을(乙)의 지위였던 피해자 대부분은 숨죽이며 지내다 미투 열풍을 계기로 용기를 내기 시작했다. 뮤지컬배우 지망생이라고 밝힌 한 여성은 23일 연극·뮤지컬 인터넷 커뮤니티에 ‘40대 후반의 유명 남성 뮤지컬배우 A 씨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하는 글을 올렸다. 이 여성은 2년 전 지인을 통해 알게 된 A 씨와 예술의전당에 함께 공연을 보러 갔다. 이후 A 씨가 ‘밥을 같이 먹자’며 차에 태우더니 천연덕스럽게 웃으며 가슴을 만졌다는 것이다. 여성은 “A 씨는 지금도 대형 뮤지컬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며 “유명한 사람을 보면 그저 신기하고 좋았을 때라 너무 순진했던 것 같다”고 적었다. 유명 피아니스트 B 씨에게 성추행 당했다는 폭로도 이어졌다. 문화공연 기획자인 이 여성은 최근 페이스북에 “2014년 3월 공연 뒤풀이에서 단둘이 남게 되자 B 씨가 강제로 소파에 눕히고 키스하며 몸을 만졌다”고 주장했다. 현재 성추행 혐의를 두고 항소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문화예술인의 산실인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미술대학 학생회가 8개월째 벌여온 교내 성폭력 강사 퇴진 운동도 미투 열풍을 계기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한예종 미대 학생회는 지난해 4월부터 미대 건물 앞에 강사들의 성폭력을 고발하는 대자보를 붙이며 성폭력 추방 운동을 벌여오고 있다. 학생회에 따르면 강사를 맡았던 유명 디자인업체 대표 C 씨는 지난해 수업 후 매번 술자리를 만들어 양 옆에 여학생들을 앉힌 뒤 허리와 다리 등을 만졌다. 2, 3차로 술자리가 이어지면서 성추행과 성희롱 발언 수위도 높아졌다. C 씨는 여학생들에게 “넌 못생겼으니 고개 숙이고 그림만 그려라” “넌 예쁘니 학점 잘 받을 것”이라는 등 노골적으로 외모 차별 발언을 했다는 게 학생회 주장이다. C 씨는 25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술자리 끝에 노래방에서 흥에 겨워 학생을 안아준 것을 불편해한 것”이라고 말했다. 학교 측은 학생들의 제보로 C 씨의 성 관련 비위를 확인하고 지난 학기 해임했다. 한예종 총학생회는 미투 열풍 이후 전교생에게 성폭력 피해에 대한 제보를 받고 있다. 가해자로 지목된 측은 미투 열풍이 거세지자 뒤늦게 사과했다. 배우 조재현 씨는 24일 “잘못을 인정하고 모든 걸 내려놓겠다”고 밝혔다. 현재 주인공으로 출연 중인 tvN 월화 드라마 ‘크로스’에서도 하차할 예정이다. 또 조 씨는 DMZ국제다큐영화제 집행위원장직에 대해 25일 사표를 제출했다. 서울예술대 교수 시절 학생들을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사진작가 배병우 씨(68)는 25일 “저의 잘못의 심각성을 통감했다. 상처받으신 분들께 깊이 사과드린다”며 공식 사과했다. 뮤지컬 ‘명성황후’, ‘영웅’ 등을 만든 윤호진 에이콤 대표(70)는 24일 “피해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사과드리겠다. 저의 거취를 포함하여 현재 상황을 엄중하게 생각하고 있으며 무겁게 고민하고 반성하겠다”고 밝혔다. 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윤 대표로 추정되는 사람이 상습적으로 성추행했다는 글이 올라왔다. 윤 대표는 28일로 예정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담은 창작뮤지컬 ‘웬즈데이’ 제작발표회를 무기한 연기했다. 신도를 성폭행하려던 한모 신부가 소속된 천주교 수원교구 교구장인 이용훈 주교는 25일 ‘수원 교구민에게 보내는 교구장 특별 사목 서한’을 홈페이지에 올려 “피해 자매님과 가족들 그리고 교구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죄한다. 그릇된 것들을 바로잡고 사제단의 쇄신을 위해 온 힘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청주대 교수였을 때 제자들을 상습 성추행했다는 논란에 휩싸인 배우 조민기 씨는 여전히 침묵하고 있다. 이에 청주대 연극학과 11학번 재학생과 졸업생 38명은 “2011년부터 수많은 성폭력 피해자들을 지켜봐왔다”며 조 씨에 대한 의혹이 모두 사실이라고 밝혔다.김동혁 hack@donga.com·박선희 / 청주=장기우 기자}

‘미투(#MeToo·나도 성폭력 당했다)’ 운동이 문재인 정부 분열을 위한 공작에 이용될 수 있다는 방송인 김어준 씨의 발언을 놓고 정치권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김 씨는 24일 팟캐스트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서 “제가 예언을 할까한다. 공작의 사고방식으로 보면 어떻게 보이느냐. ‘첫째 섹스, 좋은 소재고 주목도 높다. 둘째 진보적 가치가 있다. 그러면 피해자들을 준비시켜 진보 매체를 통해 등장시켜야겠다. 문재인 정부의 진보적 지지자들을 분열시킬 기회다’ 이렇게 사고가 돌아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 나온 뉴스가 그렇다는 얘기가 아니다. 예언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에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김어준의 발언,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제목의 글을 통해 “진보적 인사는 성폭력 범죄를 저질러도 방어하거나 감춰줘야 한다는 말이냐”고 비판했다. 또 “피해자들이 겪어야 했던 일을 모를 수가 없을 텐데 어떻게 이런 말을 하나. 이런 사람이 지상파 시사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그러자 금 의원의 페이스북에는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참모 출신인 금 의원 전력을 거론하며 “난독증이냐. 다음달부터 (민주당) 당비를 내지 않겠다”, “당신 혼자 잘났다고 내부총질을 하느냐”는 비판 댓글이 이어졌다. 손혜원 민주당 의원은 “금태섭 의원님, 이거 댓글단의 악성공작입니다. 전체 맥락과 달리 딱 오해할만하게 잘라 편집, 집중적으로 공격하는 것”이라고 김 씨를 옹호했다. 다시 금 의원은 글을 올려 “‘미투는 옳지만, 이용당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는 말은 그럴듯하지만, 전혀 앞뒤가 안 맞는 말이다. 피해자들이 ‘내가 나서서 피해 사실을 밝히면, 어떤 사람들은 나로 인해 문재인 정부, 청와대, 진보적 지지층이 타깃이 된다고 보겠구나’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이는 피해자를 한 번 더 망설이게 하고 2차 피해를 입힐 수 있는 것”이라며 김 씨에게 사과를 촉구했다. 바른미래당은 김 씨의 발언에 대해 “성폭력 피해자를 ‘공작원’으로 모독했다. 김 씨는 즉각 대국민사과를 하고 모든 방송에서 하차하라”고 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미투의 정치적 배후가 당초 보수진영을 겨냥해 시작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우리당 국회의원을 음해하기 위해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 미투 운동이 좌파 문화 권력의 추악함만 폭로되는 부메랑으로 갈 줄 저들이 알았겠느냐”고 썼다. 그는 “내가 하지도 않았던 45년 전 하숙집에서 일어난 사건을 쓴 자서전을 두고 아직도 나를 성범죄자로 매도하는 저들이다. 우리 우파는 양심이라도 있어 덜 뻔뻔하다”고 했다. 김 씨는 팟캐스트 외에도 SBS 시사프로그램 ‘블랙하우스’와 교통방송(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을 진행하고 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장관석 기자 jks@donga.com}

당신이 만약 영국 프리미어리그 유명 구단들을 쓸어버린 ‘레스터시티’의 지난해 우승과 브렉시트 가결, 트럼프 대선 승리에 2만 원 남짓을 걸고 내기했다면 어떤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까. 베팅업체에서 낸 승산확률을 기반으로 돌려보면 총 220억 원을 벌어들일 수 있었다. 그만큼 많은 이들이 잘못된 예측을 했다는 뜻이다. 멀리 갈 것 없이 비트코인 열풍만 해도 그렇다. 비트코인 신화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에 많은 이들이 ‘그때 제대로 예측했더라면’ 하고 아쉬워했다. 예측은 원래 쉽지 않다. 멀쩡하던 은행과 유통업체들이 경제 격랑 속에 무너지고 정치적 이변이 속출하는 최근에는 전문가들이 내놓는 예측이 맞지 않을 때가 너무 많다. 수없이 쏟아지는 각기 다른 예측 가운데 옥석을 가릴 수 있는 기준은 없는 것일까. 예측에 대한 안내서를 자처한 이 책에 따르면, 우선 예측은 언제든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유념해두는 게 먼저다. 정확한 예측을 방해하는 가장 큰 요소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건 없다’는 태도다. 전문 정보와 지식, 데이터 분석 기술은 나날이 발전하는데도 예측은 자꾸 빗나간다. 속내를 숨겼던 트럼프 지지자들처럼 정보 자체가 잡히지 않는 경우도 있고, 데이터 해석에 편향된 관점이 개입됨으로써 엉터리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2004년 스리랑카 최고경영자들은 5년 내 관광산업에 일어날 일에 대한 예측을 의뢰해 상세한 보고서를 확보했지만, 석 달 뒤 닥쳐올 쓰나미는 예상하지 못했다. 예측의 불완전성을 이해했다면 그 다음은 뭘까. 분야별 전문가를 주목하는 건 권장할 만한 방법이다. 하지만 제대로 된 전문가를 식별할 수 있는 안목을 갖추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가장 쉬운 팁을 하나 소개하자면 극단적인 주장을 하는 이들은 일단 경계할 필요가 있다. 예측의 세계에서 단번에 주목받을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극단적 예측을 내놓는 것이다. 운 좋게 맞아떨어지면 단번에 스타가 된다. 설령 빗나가도 예측은 원래 잘 틀리므로 금방 잊혀진다. 명성을 굳힌 전문가들이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기 위해 더 대담한 예측 값을 내놓는 경우가 많다는 연구도 있다. 저자에 따르면 그런 예측을 ‘구매한’ 이들은 상당한 희생을 치렀다. 예측에는 이해관계에 따른 목적, 의도가 개입될 수 있음도 유념해야 한다. 경제성장률, 물가상승률 등을 예측하는 국제통화기금은 통계모형으로 결과를 산출한 뒤 이런저런 조정 작업을 거친다. 이 과정에서 이해관계 국가들의 정치적 상황에 따라 물가상승률을 낮게 잡아주는 등 의도적 조정이 있었음이 확인되기도 했다. 예측이 아니라 의견을 주장하는 집단의 목소리를 무시할 줄 아는 것, 예측 결과만이 아니라 그것이 도출되는 과정이 얼마나 타당한지를 따져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한국의 사회·경제 각 분야에서는 오늘도 수많은 전문가들이 상반된 예측을 내놓고 있다. 그때마다 귀가 팔랑거리고 혼란스럽다. 하지만 예측을 통해 미래를 완벽히 통제하는 것은 어차피 불가능하다. 중요한 건 주변에 넘쳐나는 예측의 효용가치와 한계를 명확히 인식하고 쓸만한 것들을 가려내는 능력이다. 올바른 예측을 분별하는 눈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되는 방대한 사례와 연구가 망라돼 있다. 원제는 ‘Forewarned: A sceptic‘s guide to prediction’.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책을 좋아하는 아기 돼지 루퍼스는 새로운 이야기를 찾아 우주에 가는 것이 꿈이다. 책가방에 도시락, 담요를 챙겨 우주센터로 찾아간다. 함장인 루나는 곤란해한다. “돼지는 우주에 갈 수 없어.” 루퍼스는 포기하지 않는다. 우주복까지 챙겨 입고 다시 우주선으로 간다. 루나는 또 고개를 가로젓는다. 루퍼스는 고심 끝에 “나는 책을 사랑해요”라고 쓴 현수막을 들고 우주선을 찾아간다. 마침 우주로 가 책을 읽어주기로 했던 과학자가 독감으로 불참하게 되자 고민하던 루나는 눈을 번쩍 뜬다.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는 꼬마 돼지가 마침내 꿈을 이루는 이야기.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한국 문화계를 뒤흔드는 미투 고백 속에서 계속 눈에 띄는 단어가 있다. ‘선생님’이다. 이윤택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에게 당한 성폭력을 털어놓으며 피해자들은 한결같이 상대를 향해 ‘선생님’이란 존칭을 붙였다. “선생님께선 전혀 변함이 없으셨다”거나 “선생님은 네가 뭔데 판단하느냐고 분노하셨다”라는 식으로 회고한다. 폭로된 내용은 선생님이란 단어와는 어떤 식으로도 어울리지 않는다. 그런데 위기에 몰린 이 전 감독이 기자회견 리허설까지 하며 은폐를 모의한 새로운 사실이 폭로될 때도 ‘선생님’이라는 단어는 어김없이 등장했다. “도저히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일들이었습니다. 선생님은… 괴물이었습니다.” 거장에서 괴물이 된 그 순간까지도, 어찌 됐든 그는 ‘선생님’이었다. 역설적으로 이 시점에 계속 등장하는 ‘선생님’이란 단어는 폐쇄된 문화계 내부에 그간 얼마나 많은 부조리가 있어왔을지를 짐작하게 해주는 단서가 된다. 여전히 ‘선생님’이라 불리는 그에게 맞서기 위해 피해자들은 얼마나 큰 용기를 내야 했을까. 문화계에서 쓰는 ‘선생님’이란 호칭은 조금 특수하다. 감독이나 연출가 같은 객관적 직함과는 달리 한국식 친밀감과 존경, 호의나 유대감까지 내포한다. 이 때문에 ‘선생님’은 거장을 예의 바르면서도 친근감 있게 대하는 마법의 호칭이기도 하다. 출판문학 담당 기자로 일하게 되면서 가장 먼저 배웠던 것도 이 호칭이었다. 문단에서는 정작 ‘작가님’이라는 말은 거의 쓰지 않는다. ‘선생님’이란 말이 입에 친근하게 붙어 있을수록 인사이더(insider)다. 같은 맥락에서 많은 사람들의 ‘선생님’일수록 거장이다. 노벨 문학상 후보에서 성추행 가해자가 돼 버린 고은 시인 역시 모두에게 ‘선생님’으로 불리던 이들 중 하나였다. 미투 운동의 진원지는 미국 할리우드다. 거물 제작자 하비 와인스틴에 의해 수십 년간 상습적으로 이뤄진 성폭력이 유명 여배우들의 증언으로 폭로되며 본격화됐다. 하지만 앤젤리나 졸리, 우마 서먼 같은 유명 배우조차 오랫동안 침묵해야 했을 만큼 그들의 권위는 막강했다. 주로 힘없고 백 없는 신인들이나 편집자들을 대상으로 저질러졌던 한국의 미투 사건이 공론화되기 어려웠던 이유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여기에 한국은 호칭까지 공범이 됐다. 피해자들은 ‘선생님’ 앞에서 무력했을 뿐 아니라 ‘같은 선생님’을 모시는 동료들 사이에서도 무력했다. 뻔히 보이지만 투명인간이 됐고 묵인과 방조가 이뤄졌다. 우리 문화계의 성폭력이 단지 거장 몇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내부의 권력구조와 깊숙이 연관돼 있는 이유다. 이토록 ‘일그러진 선생님들’은 어떤 비호 속에서 괴물처럼 커지고 있었던 것일까. 미투 폭로 후 주요 연극단체는 이 전 감독을 바로 제명시켰다. 고 시인과 관련된 전시공간이나 문학관 건립을 추진하던 지자체들도 흔적을 지우기 위해 고심 중이다. 피해자만 다시 상처받고 흐지부지됐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제대로 된 후속처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지금의 혼란이 문화계 판을 새로 짜는 자성과 혁신의 출발이 되려면 저 질문에 대한 답 역시 함께 찾아봐야 할 것이다. 박선희 문화부 기자 teller@donga.com}
가까운 곳에서 작은 행복을 찾는 소확행 트렌드가 확산되며 인기를 끄는 것 중 하나가 ‘작은 서점’이다. 동네 서점 지도 앱을 제작하는 퍼니플랜에 따르면 현재 전국 독립 서점은 277개에 이른다. 지난해 새로 문을 연 곳만 31개다. 동네 서점들은 대량으로 책을 다루지 않는 대신 관심사를 좁혀 분명한 취향과 공통점을 가진 컬렉션으로 독자들을 만난다. 여행 책만 파는 ‘사이에’나 고양이 서적만 모은 ‘슈뢰딩거’, 시집만 파는 ‘위트앤시니컬’ 등이 대표적이다. 독자별로 맞춤형 책을 추천해 주고 감상 평을 나누는 형태의 서점도 인기다. 서울 성북구 성북동의 ‘부쿠’는 공동대표 4인이 돌아가면서 상담을 통해 취향에 꼭 맞고 필요한 책을 선별해 주기도 한다. ‘책의 해’인 올해 모쪼록 책을 통해 행복을 재발견하는 이들이 많아졌으면 한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제게 정말 좋은 원두가 많은데 한 잔 드릴까요?” 서울 강남구 자택에서 13일 만난 김혜남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59)의 작업실 한편에는 10여 가지 원두가 산지별로 진열돼 있었다. 김 씨는 “볼리비아 게이샤가 좋겠다”고 했다.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 ‘오늘 내가 사는 게 재미있는 이유’ 등을 쓴 베스트셀러 작가인 그는 파킨슨병 투병 중 인간관계를 다룬 일곱 번째 책 ‘당신과 나 사이’(메이븐·사진)를 냈다. 1시간 글을 쓰면 2시간 동안 꼼짝 없이 누워 있어야 하는 상태로 3년간 쓴 책이다. 마흔 즈음 병을 앓아 벌써 17년째. 한 시간 반 간격으로 약을 먹어야만 움직일 수 있는데, 그것조차 뜻대로 되지 않는다. 원두를 꺼내고 생수통을 드는 게 모두 도전이다. 그래도 “전문가가 해야 맛이 난다”며 한사코 직접 커피를 내렸다. 그는 “아픈 뒤 커피를 즐기게 됐는데 뭐든 끝까지 하는 성격 탓에 커피도 그렇게 공부했다”고 했다. 그의 추천대로 벌꿀 같은 향긋한 신맛이 산뜻하게 감겼다. 그가 책을 쓴 건 병으로 인한 고통 때문이었다. 국립정신건강센터의 ‘잘나가는 전문의’였던 그는 아프기 전까지 “내가 잘나서 주변에 사람이 많다”고 생각했다. 낯을 가리는 편이라 차갑다는 오해도 받았다. 하지만 병을 앓은 후 손 하나 꼼짝할 수 없는 극심한 고통 속에서 인간은 혼자임을 깨달았다. 고통을 이기는 유일한 힘이 사람들의 온기, 관심이었단 것도. 그는 “뒤늦게 깨달은 소중한 관계를 지키는 방법에 대해 말하려다 보니 ‘거리 두기’가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물리적으로 가족, 연인은 사랑과 보호가 이뤄지는 0∼46cm를 유지하는 게 좋다. 친구와는 친밀함과 격식이 공존하는 46cm∼1.2m, 공적인 관계는 1.2∼3.6m가 이상적이라고 했다. 부모에게 받은 상처를 극복하는 건 부모를 한 인간으로 인정하고 거리를 두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직장동료도 친구나 가족이 아니라 ‘동료’일 뿐임을 기억해야 한다. 그는 “부부싸움을 하면 남편은 ‘당신 책처럼만 하라’고 한다. 왜 책과 실제가 다르냐고. 하지만 인간관계를 잘 맺어서가 아니라 이렇게 하고 싶기 때문에 쓴 것”이라며 웃었다. 병원장의 괴롭힘 등 직접 겪은 사례들이 설득력을 더한다. 그는 벌써 다음 책을 준비 중이다. 고통에 대한 이야기다. 지난해 병이 악화돼 6차례 입원했는데 “창문 밖으로 뛰어내리고 싶을 정도로 끔찍했다”고 했다. 타인과 절대 나눌 수 없는 것이 고통임을 절감했다는 것. 그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는 커피를 내려줄 때처럼 떨리는 손으로, 하지만 최선을 다해 기자가 가져간 새 책에 서명했다. 그는 “이제 누구도 판단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럴 자격도,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이런 노력에는 상대에 대한 존중과 편안한 거리감이 포함돼 있을 것이다. 편안하고 따뜻했던 그와의 시간을 떠올리자,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