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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 프랑스 서양화가 한홍수 화백(63)의 개인전 ‘결’이 서울 종로구 관훈동 토포하우스 제3전시실에서 31일부터 다음달 12일까지 열린다. 프랑스와 한국을 오가며 작업하는 한홍수는 은은한 빛을 발하는 추상적 풍경을 그린다. 풍경은 깊은 산으로 둘러싸인 계곡이나 파도가 치는 바다처럼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인체의 굴곡처럼 보이기도 한다. 결국 캔버스 위에 두께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 여러 겹이 겹쳐져 ‘결’을 이룬다. 그의 풍경화는 유화 물감 특유의 두터운 마티에르(질감)가 아니라 투명하고, 맨질맨질한 느낌이 마치 TV 평면 화면처럼 보인다. 부드러운 붓으로 수십 번의 붓질을 하며 화면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작가가 맑고 투명하고 깨끗한 화면을 만들고 싶어 오랫동안 작업한 결과물이다. ‘결’은 때로는 나뭇결처럼 시공간의 미세한 순서가 드러날 때도 있고, 물결처럼 파도가 높아질 때도 있지만 금세 다시 가라앉기를 무한히 반복한다. 유화인데도 동양화의 화선지처럼 결을 따라 번져 나간다. 한 작가는 캔버스 위에 유화물감으로 수회에 걸쳐 레이어(층)을 만들며 작업하지만, 그의 독특한 테크닉 덕분에 캔버스 위에 안료의 두께가 쌓여 ‘층’이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아래(처음)의 레이어도 보이는 ‘결’의 느낌을 가능하게 한다. 그의 풍경화에서는 근경에 있는 사람의 신체가 중경에서 산과 계곡으로 변형되어 가다가, 원경에서 사라지곤 한다. ‘몽유도원도’를 좋아한다는 그의 작업은 ‘원근법’적인 접근이라기 보다는 ‘산점투시법(散點透視法)’ 또는 ‘자연 투시법’으로 설명된다. 즉 인간에서 자연을 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나 사물에서 인간을 보려는 노력으로 해석된다. 심은록 미술평론가(동국대 겸임교수)는 “‘숯의 화가’ 이배가 흔하디 흔한 청도의 숯을 파리에서 재발견했듯이, ‘결’은 한홍수 작가가 오랫동안 고민하고 실험하여 재발견해낸 한국의 고유한 개념이자 실천양식”이라며 “미술사적, 문화적, 사상적으로 ‘층’과 비교할 수 있는 ‘결’의 재발견은 디지털 개념이나 물질과도 잘 어울려, 디지털 원주민들에게도 반가운 소재”라고 평했다. 한편 한홍수 화백은 이시형 사회정신전문의와 함께 강원 홍천 힐리언스 선마을 효천 갤러리(겨울동)에서도 2인전 ‘카오스의 세 딸과 썸타는 두뇌’를 개최한다. 4월1일부터 6월30일까지. 산으로 둘러 쌓인 힐리언스의 효천갤러리는 숲의 ‘자연치유력’을 느끼며 힐링아트 미래아트를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전시장이다. 전시장인 효천갤러리에 들어서면 이시형 박사가 그린 문인화가 가장 먼저 보인다. 한 줄로, 때로는 선 위에 굵은 선을 더하면서 일필휘지로 하려고 애쓰지도 않으며, 덤덤하고 간략하게 산의 윤곽이 이어지다가 사라진다. 그리고 이시형 박사의 힐링 철학을 요약하는 화제인 ‘나물먹고 물마시고/이보다 좋은 병원이 또 어디 있던가’가라는 말이 두 줄로 적혀 있다. 이어서 한홍수 작가의 ‘결’ 연작이 길고 긴 화랑을 따라 길게 이어진다. 이시형의 산의 윤곽은, 한홍수의 작업으로 이어지며 색을 입고 입체적인 형체를 띠게 된다. 공(空)에 색(色)이 입혀지고, 색이 다시 공으로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모습처럼. 이시형 박사가 던지는 화두에 한홍수 작가가 대답하고, 이번에는 관람객들에게 또다른 화두를 던지며 그렇게 산의 선 혹은 결이 이어진다. 이 전시는 ‘힐링아트, 미래아트’라는 주제로 이후 개최될 행사(국제포럼, 국제전 등)의 서막이다. 서로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힐링아트’와 ‘미래아트’를 함께 고민하며 대화하기를 청하는 것이다. 이 전시는, 그래서 두뇌(정신의학)과 카오스(예술)가 썸을 타며, 수많은 현대의 디지털 신화가 탄생될 것을 예고한다. 이 전시의 제목에 나오는 ‘카오스의 세 딸’은 들뢰즈의 개념에서 착안된 것으로 ‘예술, 과학, 철학’ 세분야의 대화를 추구한다는 의미이다. 정신과 의사이자 뇌과학자인 이시형 박사는 사단법인 세로토닌문화원장, 힐리언스 선마을 촌장, 한국자연의학종합연구원장으로서 뇌과학과 정신의학을 활용한 자연치유력 증강법을 전파해왔다. 실체가 없다고 여겨지던 화병을 세계적 정신의학용어로 만든 정신의학계의 권위자이다. ‘결’의 화가 한홍수는 1992년 파리로 유학을 떠난 이후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신표현주의 거장 A.R. 펭크를 사사했으며, 프랑스를 거점으로 유럽, 미국, 한국 등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이 전시를 기획한 아트플러스갤러리 에스더김 대표는 “코로나19를 겪으며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는 반성과 함께 자연의 ‘치유’와 ‘힐링’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게 됐다”며 “이시형 박사-한홍수 화백의 ‘힐링아트 미래아트’전을 계기로 매년 혹은 2년에 한번씩 다른 분야에서의 전문가들이 한 명씩 전시 참여해 힐링아트에 대해 지속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심포지엄과 전시 등의 행사를 펼쳐나갈 것”이라고 말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전국지역문화재단연합회(회장 구로문화재단 허정숙 대표)는 25일 서울 구로구 구로아트밸리예술극장에서 2021년 정기총회를 개최했다. 이번 총회는 지난해부터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으로 인해 각종 공연, 전시, 축제 등의 취소가 이어지는 가운데 열렸다. 공연이 어려움에 처하자 문화 예술인의 설 자리는 점점 없어지고 예술계의 생태계는 파괴됐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각 지역의 재단 임직원들은 예술 강사비 선지급 같은 실질적인 지원에서부터 철저한 공연장 방역으로 소규모의 공연을 유지하거나 비대면 콘텐츠를 개발하고 베란다 콘서트, 자동차 극장의 활용 등 기존의 시설과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여왔다. 이번 총회의 표창장 수여식은 이러한 노력에 대한 감사와 2021년 아직 끝나지 않은 재난 상황을 이겨내자는 각오를 다지고 서로를 응원을 하는 뜻 깊은 자리였다. 전국지역문화재단연합회 총회에서는 지난해의 지역문화재단 종사자들의 노고를 응원하는 취지에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 한국예술위원회 위원장상,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상임이사상, 전국지역문화재단연합회 회장상 등의 푸짐한 표창장 수여식이 열렸다.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 이승정 회장은 축사를 통해 지역문화재단의 자율성과 보장과 협력관계 증진을 위한 노력을 강조했으며 총회에서는 지역 문화예술생태계, 지역 예술인 일자리, 지역 생활예술 네크워크 구축이라는 키워드로 2021년 혁신 과제를 발표했다. 전국의 지역문화재단은 지역 문화예술 진흥이라는 목표를 위해 문화예술계의 현장에서 노력해 왔다. 현재는 생활문화의 진흥, 예술인 복지, 국가균형 발전이라는 과제를 가지고 2020년 한해에만 20여개의 지역문화재단이 탄생했고 전국 총 105개의 지역 문화재단이 설립돼 있다. 이러한 추세를 반영하듯 이날 총회는 비록 사회적 거리두리 방역방침에 의해 대표자 위주로 참석하는 등의 참석자의 제한이 있었지만 전국의 다양한 지역의 참석과 뜨거운 관심으로 이어졌다.다음은 수상자 명단. ◆문화체육부장관상=단체 김해문화재단. 춘천문화재단, 개인 박경현(담양군문화재단) ◆한국문화예술위원장상=윤영주(성남문화재단) 정기진(종로문화재단) 김안나(은평문화재단) 권종철(안양문화예술재단) 이주행(포항문화재단) ◆한국예술인 복지재단 상임이사상=단체 양천문화재단. 제천문화재단, 노원문화재단, 개인 이혜진(광명문화재단), 나유미(전주문화재단), 김인성(구로문화재단) ◆전국문화재단연합회 회장상 특별상=나기석(구로문화재단) 홍기선(안양문화예술재단) 손경은(전주문화재단) 이찬(은평문화재단) 민병일(종로문화재단) 서유선(광명문화재단) 정희숙(부천문화재단) 박태영(금정문화재단) 조준필(천안문화재단) 안윤진(강릉문화재단)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로마 교황청이 있는 바티칸은 스위스 근위대가 지킨다. 바티칸시국의 유일한 군사조직이다. 스위스 근위대의 공식 제복은 전형적인 르네상스풍의 파란색, 빨간색, 주황색, 노란색으로 구성되어 있다. 피에로 복장처럼 보이는 이 제복은 미켈란젤로가 디자인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푸른색과 노란색은 교황 율리우스 2세의 집안(델라 로베레 가문)을 나타내며, 붉은색은 교황 레오 10세의 집안(메디치 가문)을 상징하는 것이라 한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DMZ에도 봄이 왔다. 금강산으로 가는 길목인 강원도 양구 해안면 ‘DMZ 펀치볼 둘레길’에는 아직도 곳곳에 눈과 얼음이 쌓여 있다. 그러나 얼음장 밑으로 녹아서 졸졸졸 흐르는 시냇물이 봄을 깨우는 ASMR(뇌를 자극해 심리적인 안정을 유도하는 자연음향)처럼 경쾌하게 숲 속에 울려퍼진다. 양구에 오면 10년이 젊어진다고 한다. 이제 막 눈이 녹고, 야생화가 피어나는 청정자연을 느끼며 걸을 수 있기 때문이다. ●DMZ 펀치볼 둘레길 6.25전쟁 당시 최대 격전지였던 ‘펀치볼(Punch Bowl)’은 여의도 면적의 6배의 광활한 대지다.펀치볼 둘레길의 ‘부부 소나무’ 전망대에 오르면 어떤 광각 카메라로도 한 번에 담기 어려운 광경에 가슴이 시원해진다. 가칠봉, 대암산, 도솔산, 대우산 등 해발 1000m 이상의 높은 산봉우리들이 왕관처럼 둘러싸고 있는 분지다. 6.25당시 외국의 종군기자가 “핑크빛 칵테일 화채 그릇처럼 생겼다”고 해서 ‘펀치볼’이란 애칭이 생겼다고 한다. 펀치볼 둘레길은 총 72.2km. 오유밭길, 만대벌판길, 먼멧재길, 평화의숲길 등 4개의 구간으로 이어진다. 해발 1200m의 대암산에는 국내 1호 람사르 습지이자,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습지인 ‘용늪’이 있다. 본격적으로 둘레길을 걷기 전에 몸을 푸는 준비운동을 마친 후 숲길체험지도사가 DMZ로 들어가는 철조망 문을 열었다. 둘레길 탐방로 양쪽엔 빨간 바탕에 노란글씨로 ‘지뢰’라고 씌여진 경고판이 선명하다. 탐방로를 벗어난 숲 속에는 아직도 지뢰가 곳곳에 묻혀 있기 때문에 이 길은 방문자센터에서 사전예약 후 전문해설사와 함께 걸어야 한다. DMZ 생태탐방로는 동자꽃, 하늘말라리, 금강초롱, 앵초 등 희귀식물과 산양, 독수리, 하늘다람쥐 등 야생동물이 서식하고 있다. 해설사가 들려주는 야생화 설명과 6.25전쟁사 이야기에 빠져서 숲길을 걷다가 쪽동백나무와 단풍나무가 붙어서 자라는 ‘연리지(連理枝)’또는 ‘혼인목(婚姻木)’이라 부르는 나무를 만났다. 신기하게도 두 나무가 붙은 밑에서 어린 나무가 하나 자라고 있다. 박진용 숲길체험지도사는 “단풍나무와 쪽동백나무가 혼인했는데 전혀 다른 제3의 종의 나무가 태어났다”며 “이 나무 이름은 참회목”이라고 설명하자 한바탕 웃음이 터진다. 펀치볼 둘레길을 단체로 방문할 경우 계곡에서 먹는 ‘숲밥’이 인기다. 펀치볼 특산물인 시래기, 인삼뿐 아니라 곰취, 더덕, 두릅 등 10여개의 나물반찬이 나오는 뷔페다. 탐방 일주일 전 신청하면, 주민들이 시간을 맞춰 준비해준다. ●화가 박수근의 ‘나목(裸木)’ DMZ의 어느 소나무 밑에는 양구출신 국민화가 박수근(1914~1965)의 작품이 아직도 묻혀 있다는 이야기도 흥미를 끈다. 박수근은 아내의 친정인 북한 땅 금성에서 살다가 6.25전쟁이 발발하자마자 월남했다. 아내 김복순 씨는 월남 도중 남편의 작품 수십점을 갖고 올 수 없어 항아리에 담아 강원도 철원군 DMZ 한가운데 묻었다고 한다. 박수근의 ‘빨래터’는 2007년 당시 국내 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가인 45억2000만원에 낙찰됐다. 남북관계가 회복돼 언젠가 그림을 찾게 된다면 수백억원 대 이상의 가치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박수근이 태어나 스물한 살까지 살았던 양구에는 화가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박수근은 나목(裸木)을 즐겨 그렸다. 1932년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한 ‘봄이 오다’부터 1950~60년대 ‘나무와 여인’ 시리즈까지 박수근이 그린 나무는 이파리 하나 없이 가지만 앙상하다. 봄이 왔건만 최북단 접경지대인 양구는 아직도 벌거벗은 나목의 천국이다. 지금도 양구교육지원청 뒷동산엔 ‘박수근 나무’라고 이름 붙여진 수령 300년 된 느릅나무가 남아 있다. 박 화백은 양구보통학교에 다니던 시절, 이 나무 아래서 친구들과 놀며 그림을 그렸다. 이 나무를 찾았을 때 박수근의 그림에서 튀어나온 듯 양구의 초등학생 형제가 나무 밑에서 놀고 있는 모습이 애틋했다. 앙구읍에 있는 박수근미술관은 지난 2002년 박수근 생가터에 건립됐다. 건축가 고 이종호가 설계한 미술관은 화강암으로 지어졌다. 박수근의 그림에서 느껴지는 돌처럼 투박하고 까칠까칠한 질감(마티에르)을 건물로 형상화한 것이다. ‘나무와 여인’ ‘빈 수레’ ‘굴비’ ‘두 남자’ 등 박수근의 유화 5점이 소장돼 있고, 건물 뒷편에는 박수근 묘소와 빨래터, 자작나무 숲도 있다. 유명한 빨래터 그림 밑에는 박수근이 아내에게 보냈다는 연애편지가 적혀 있어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빨래터에 가서 당신을 자세히 보고 아내로 맞아들이기로 마음으로 결정했습니다. 나는 그림 그리는 사람입니다. 재산이라곤 붓과 파레트밖에 없습니다. 당신이 만일 승낙하셔서 나와 결혼해 주신다면 물질적으로는 고생이 되겠으나 정신적으로는 당신을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해 드릴 자신이 있습니다. 화가의 아내가 되어주시지 않겠습니까?” 미술관에서는 현재 박수근과 소설가 박완서(1931~2011)가 인연을 맺게 된 ‘나목’을 주제로 한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두 사람은 1952년 당시 동화백화점(현 신세계백화점) 내에 있던 미8군 기념품 판매점 내 초상화부에서 함께 일한 바 있다. 소설의 주인공은 화가의 작업실에서 우연히 본 그림을 ‘고목(枯木)’이라고 생각했으나 세월이 흘러서 황량해 보이기만 하던 그 그림이 시든 ‘고목’이 아니라 언젠가 싹을 틔울 봄날의 믿음 속에 의연하게 기다리는 ‘나목’이었음을 깨닫는다는 이야기다. ●양구백토의 600년 전통, 백자박물관첩첩산중 최북단 양구가 조선백자 600년의 고향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 곳에서 백자를 제작하는 질좋은 원료인 ‘양구 백토’가 생산됐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왕실 관요인 분원에 공급하는 양구 백토를 캐느라 백성들이 심한 노역에 시달려 상소를 올리는 일도 있을 정도였다. 금강산 월출봉 석함에서 발견된 이성계의 발원 사리구 백자발은 양구에서 생산된 대표적인 도자기로 유명하다. 방산에 있는 양구 백자박물관에 가면 양구 백자의 600년 역사를 감상할 수 있다. 조선백자의 마지막 꽃인 청화 백자는 물론 현대 백자도 전시하고 있다. 백자박물관 뒤편에 있는 수입천에는 높이 15m의 직연폭포의 물줄기가 떨어지는 직연폭포의 모습이 장관이다. 겨우내 얼었던 수입천이 녹아 파로호로 흘러드는 폭포 주위로 높이 약 20m 규모의 암벽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어 경관이 아름답다. 백자박물관에는 서울대 석박사출신 연구원이 양구백토를 연구하는 양구백자연구소도있다. 이 연구소 출신인 도예가 김덕호-이인화 부부는 아예 양구에 정착해서 백자를 만들고 있다. 그들의 작업실에 살고 있는 순백색의 고양이가 유리창 밑에 전시된 하얀 백자 사이를 어슬렁 거리면서도 작품을 하나도 건드리거나 깨뜨리지 않는 모습이 무척 신기했다. ●가볼만한 곳=양구 국토정중앙천문대 앞에 있는 ‘까미노 사이더리’는 모양이 예쁘지 않아서 버려지는 사과, 딸기 등 지역농산물을 이용해 주스, 식초 등의 가공식품을 만든다. 카페에서 친환경 농산물을 이용한 양구사과콤부차, 사과워터케피어 등의 음료와 애플케¤을 맛볼 수 있다. 철학자 김형석, 안병욱, 시인 이해인 수녀의 작품을 볼 수 있는 ‘양구 인문학박물관’, 파로호 호수 위에 조성된 한반도섬 둘레길도 찾아가볼 만하다. 두타연 계곡과 을지전망대, 대암산 ‘용늪’은 현재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영향으로 현재 공개를 하지 않는다. ●맛집=일교차가 심한 펀치볼에서는 고랭지 배추, 무 뿐 아니라 사과, 포도, 복숭아 등 당도가 높고 맛있는 과일이 생산된다. 양구의 특산물인 ‘시래기 정식’을 먹을 수 있는 식당은 ‘시래정’과 ‘시래원’이 있다. 토종닭, 고등어, 코다리에 시래기를 넣은 찜과 시래기 된장국이 입맛을 당긴다. ‘만대리 농가레스토랑’의 ‘두부 정식’에도 시래기 반찬이 일품이다.글 사진 양구=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비무장지대(DMZ)에도 봄이 왔다. 금강산으로 가는 길목인 강원 양구군 해안면 ‘DMZ 펀치볼 둘레길’에는 아직도 곳곳에 눈과 얼음이 쌓여 있다. 그러나 얼음장 밑으로 녹아 졸졸졸 흐르는 시냇물이 봄을 깨우는 ASMR(뇌를 자극해 심리적인 안정을 유도하는 자연음향)처럼 경쾌하게 숲속에 울려 퍼진다. 양구에 오면 10년이 젊어진다고 한다. 이제 막 눈이 녹고, 야생화가 피어나는 청정 자연을 느끼며 걸을 수 있기 때문이다.》 ○ DMZ 펀치볼 둘레길 6·25전쟁 당시 최대 격전지 중 하나였던 ‘펀치볼(Punch Bowl)’은 여의도 면적 6배의 광활한 대지다. 펀치볼 둘레길의 ‘부부 소나무’ 전망대에 오르면 어떤 광각 카메라로도 한 번에 담기 어려운 광경에 가슴이 시원해진다. 가칠봉 대암산 도솔산 대우산 등 해발 1000m 이상의 높은 산봉우리들이 왕관처럼 둘러싸고 있는 분지다. 6·25전쟁 당시 외국의 종군기자가 “핑크빛 칵테일 화채 그릇처럼 생겼다”고 해서 ‘펀치볼’이란 애칭이 생겼다고 한다. 펀치볼 둘레길은 총 72.2km. 오유밭길 만대벌판길 먼멧재길 평화의숲길 등 4개의 구간으로 이어진다. 해발 1200m의 대암산에는 국내 1호 람사르 습지이자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습지인 ‘용늪’이 있다. 본격적으로 둘레길을 걷기 전에 몸을 푸는 준비운동을 마친 후 숲길체험지도사가 DMZ로 들어가는 철조망 문을 열었다. 둘레길 탐방로 양쪽엔 빨간 바탕에 노란 글씨로 ‘지뢰’라고 쓰인 경고판이 선명하다. 탐방로를 벗어난 숲속에는 아직도 지뢰가 곳곳에 묻혀 있기 때문에 이 길은 방문자센터에서 사전 예약 후 해설사와 함께 걸어야 한다. DMZ 생태탐방로는 동자꽃 하늘말나리 금강초롱 앵초 등 희귀식물과 산양 독수리 하늘다람쥐 등 야생동물이 서식하고 있다. 해설사가 들려주는 야생화 설명과 6·25전쟁사 이야기에 빠져 숲길을 걷다가 쪽동백나무와 단풍나무가 붙어서 자라는 ‘연리지(連理枝)’ 또는 ‘혼인목(婚姻木)’이라 불리는 나무를 만났다. 신기하게도 두 나무가 붙은 밑에서 어린 나무가 하나 자라고 있다. 박진용 숲길체험지도사는 “단풍나무와 쪽동백나무가 혼인했는데 전혀 다른 제3종의 나무가 태어났다”며 “이 나무 이름은 참회목”이라고 설명하자 한바탕 웃음이 터진다. 펀치볼 둘레길을 단체로 방문할 경우 계곡에서 먹는 ‘숲밥’이 인기다. 펀치볼 특산물인 시래기 인삼뿐 아니라 곰취 더덕 두릅 등 10여 가지의 나물반찬이 나오는 뷔페다. 탐방 일주일 전 신청하면 주민들이 시간을 맞춰 준비해 준다. ○화가 박수근의 ‘나목’ DMZ의 어느 소나무 밑에는 양구 출신 국민화가 박수근(1914∼1965)의 작품이 아직도 묻혀 있다는 이야기도 흥미를 끈다. 박수근은 아내의 친정인 북한 땅 금성에서 살다가 6·25전쟁이 발발하자마자 월남했다. 아내 김복순 씨는 월남 도중 남편의 작품 수십 점을 항아리에 담아 강원 철원군 DMZ 한가운데 묻었다고 한다. 박수근의 ‘빨래터’는 2007년 당시 국내 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가인 45억2000만 원에 낙찰됐다. 남북관계가 회복돼 언젠가 그림을 찾게 된다면 수백억 원의 가치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박수근이 태어나 스물한 살까지 살았던 양구에는 화가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박수근은 나목(裸木)을 즐겨 그렸다. 1932년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한 ‘봄이 오다’부터 1950, 60년대 ‘나무와 여인’ 시리즈까지 박수근이 그린 나무는 이파리 하나 없이 가지만 앙상하다. 봄이 늦게 오는 양구는 아직도 벌거벗은 나목의 천국이다. 양구교육지원청 뒷동산엔 ‘박수근 나무’라고 이름 붙여진 수령 300년 된 느릅나무가 남아 있다. 박수근은 양구보통학교에 다니던 시절, 이 나무 아래서 친구들과 놀며 그림을 그렸다. 이 나무를 찾았을 때 박수근의 그림에서 튀어나온 듯한 아이들이 나무 밑에서 놀고 있는 모습이 애틋했다. 앙구읍에 있는 박수근미술관은 2002년 박수근 생가터에 건립됐다. 건축가 고 이종호가 설계한 미술관은 화강암으로 지어졌다. 박수근의 그림에서 느껴지는 돌처럼 투박하고 까칠까칠한 질감을 건물로 형상화한 것이다. 미술관에는 ‘나무와 여인’ ‘빈 수레’ ‘굴비’ 등 박수근의 유화 5점이 소장돼 있고 뒤편에는 박수근 묘소와 빨래터, 자작나무 숲도 있다. 빨래터 그림 밑에는 박수근이 아내에게 보낸 연애편지가 적혀 있어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빨래터에 가서 당신을 보고 아내로 맞아들이기로 마음으로 결정했습니다. 나는 그림 그리는 사람입니다. 재산이라곤 붓과 팔레트밖에 없습니다. 당신이 만일 승낙하셔서 나와 결혼해 주신다면 물질적으로는 고생이 되겠으나 정신적으로는 당신을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해 드릴 자신이 있습니다. 화가의 아내가 되어주시지 않겠습니까?” 미술관에서는 현재 박수근과 소설가 박완서(1931∼2011)가 인연을 맺게 된 ‘나목’을 주제로 한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두 사람은 1952년 당시 동화백화점(현 신세계백화점) 내에 있던 미8군 기념품 판매점 내 초상화부에서 함께 일한 바 있다. 소설의 주인공은 화가의 작업실에서 우연히 본 그림을 ‘고목(枯木)’이라고 생각했으나 세월이 흘러 황량해 보이기만 하던 그 그림이 시든 ‘고목’이 아니라 언젠가 싹을 틔울 봄날의 믿음 속에 의연하게 기다리는 ‘나목’이었음을 깨닫는다는 이야기다. ○양구 백토의 600년 전통, 백자박물관 첩첩산중 최북단 양구가 조선백자 600년의 고향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곳에서 백자를 제작하는 질 좋은 원료인 ‘양구 백토’가 생산됐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왕실 관요인 분원에 공급하는 양구 백토를 캐느라 백성들이 심한 노역에 시달려 상소를 올리는 일도 있을 정도였다. 금강산 월출봉 석함에서 발견된 이성계의 발원 사리구 백자발은 양구에서 생산된 대표적인 도자기로 유명하다. 방산면에 있는 양구 백자박물관에 가면 양구 백자의 600년 역사를 감상할 수 있다. 백자박물관 뒤편에 있는 수입천에는 높이 15m의 물줄기가 떨어지는 직연폭포의 모습이 장관이다. 백자박물관에는 서울대 석·박사 출신 연구원이 양구 백토를 연구하는 양구백자연구소도 있다. 이 연구소 출신인 도예가 김덕호 이인화 씨 부부는 아예 양구에 정착해 백자를 만들고 있다. 그들의 작업실에 살고 있는 순백색의 고양이가 하얀 백자 사이를 어슬렁거리면서도 작품을 하나도 건드리거나 깨뜨리지 않는 모습이 무척 신기했다. 글·사진 양구=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가볼 만한 곳 양구 국토정중앙천문대 앞에 있는 ‘까미노 사이더리’는 모양이 예쁘지 않아 버려지는 사과 딸기 등 지역 농산물을 이용해 주스 식초 등의 가공식품을 만든다. 카페에서 친환경 농산물을 이용한 음료와 애플케이크를 맛볼 수 있다. 철학자 김형석 안병욱, 시인 이해인 수녀의 작품을 볼 수 있는 ‘양구 인문학박물관’, 파로호 호수 위에 조성된 한반도섬 둘레길도 찾아가볼 만하다. 두타연 계곡과 을지전망대, 대암산 ‘용늪’은 현재 코로나19의 영향으로 공개하지 않는다. ○ 맛집 양구의 특산물인 ‘시래기 정식’을 먹을 수 있는 식당은 ‘시래정과 ‘시래원’이 있다. 토종닭 고등어 코다리에 시래기를 넣은 찜과 시래기 된장국이 입맛을 당긴다. ‘만대리 농가레스토랑’의 ‘두부 정식’에도 시래기 반찬이 일품이다.}

종합 홈 인테리어 전문기업 ㈜한샘(대표이사 강승수)이 2021년 봄 라이프스타일 트렌드를 23일 발표했다. 주제인 ‘올웨이즈 홈’은 변화하는 시대상을 반영한 중의적 표현이다. 첫 번째는 ‘항상 집’이라는 뜻으로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증가하는 추세를 반영했고, 합성어인 ‘All+ways Home’은 ‘모든 길은 집으로’라는 뜻으로 집이 생활의 중심이 되고 있는 현상을 담았다. 한샘은 코로나19 이후 달라진 일상 속에서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라이프스타일과 집의 새로운 가능성에 대해 모색했다.● 라이프스타일 핵심 키워드 5가지 선정 한샘의 라이프스타일 키워드 5가지는 집을 뜻하는 영어 ‘House’의 앞글자에서 따왔다. △홈루덴스(Home-Ludens) △오픈키친(Open Kitchen) △언택트 라이프(Untact Life) △스마트홈(Smart-Home) △맞춤수납(Efficient Storage)이다. 최근 유행하는 ‘홈루덴스족’이라는 신조어는 놀이하는 인간이라는 의미의 ‘호모루덴스’에서 파생된 신조어다. 밖에서 활동하지 않고 주로 집에서 놀고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한샘도 이러한 현상을 반영해 집을 홈시네마, 가족살롱, 홈트레이닝 등 다양한 취미활동을 지원하는 공간으로의 변화를 시도했다. 집에서 직접 요리하는 ‘홈쿡’ 트렌드가 떠오름에 따라 거실과 부엌의 경계를 허문 ‘오픈키친’ 인테리어도 주목받고 있다. 가족과 함께 요리하고 식사하는 넓은 부엌과 다이닝 공간을 구현한 것이 특징이다. 비대면으로 재택근무, 온라인 수업을 하는 ‘언택트 라이프’가 활성화되면서 홈오피스, 자녀 방 인테리어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사물인터넷(IoT) 기술과 가구, 가전이 조화를 이루는 ‘스마트 홈’도 선보였다. 다양한 가전제품들을 전체적인 디자인 조화와 사용자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효율적인 동선으로 배치했다. 또 음성 명령만으로 TV의 전원을 껐다 켜고, 조명을 자동으로 조절하는 편리한 공간을 구현했다. 쾌적한 주거환경을 위한 ‘맞춤 수납’ 솔루션도 제공한다. 자전거 등 부피가 큰 취미용품을 수납하는 ‘팬트리 공간’과 거실, 침실, 자녀 방, 드레스룸 등에는 빌트인 맞춤수납장을 설치했다.●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한 2가지 신규 모델하우스 한샘은 변화하는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심층적인 연구를 바탕으로 △초등 자녀가 있는 집 99m² △중등 자녀가 있는 집 120m² 등 2가지 모델하우스를 선보인다. ‘초등 자녀가 있는 집 99m²’는 부모의 재택근무와 아이의 온라인 수업을 위한 각각의 독립 공간과 가족이 함께 취미를 공유하는 거실이 공존한다. 스마트폰 GPS를 활용해 가족이 집에 도착하기 전에 환기 시스템을 작동하거나 침대 온열패드를 작동시키는 홈 IoT 기술도 돋보인다. 이 모델하우스는 한샘리하우스 스타일패키지 ‘모던베이지 내추럴’로 꾸몄다. ‘중등 자녀가 있는 집 120m²’는 가족이 함께 대화를 나누고 요리와 식사를 즐기는 공간으로 꾸몄다. 거실에는 라운지형 소파를 배치했고, 대형 아일랜드 부엌을 배치해 함께 마주 보고 요리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음악, 독서, 꽃꽂이 등 다양한 취미생활을 위한 공간도 돋보인다. 스타일패키지 ‘모던클래식 크림’으로 공간을 꾸몄는데 벽이나 방문에 프레임 형태의 장식패널을 덧댄 ‘웨인스코팅’을 활용했다. ‘2021년 봄 라이프스타일 트렌드’는 언택트 시대에 맞춰 온라인으로 볼 수 있다. ‘한샘 닷컴’에 접속하면 발표회 영상 콘텐츠 및 가상현실(VR) 모델하우스를 확인할 수 있고 개별 제품 정보도 찾아볼 수 있다. 리모델링을 위한 다양한 건자재 신제품도 선보였다. 벽장재로는 대리석, 타일 등 다양한 패턴을 프린팅해 시공하는 대형 벽패널 ‘와이드 월플러스’와 ‘한샘 M보드’를 출시했다. 욕실은 지난달 출시한 프리미엄 ‘바스바흐(BATHBACH)’를 모델하우스에 처음으로 적용해 더욱 고급스러운 공간으로 꾸몄다. 창호는 단열 성능이 우수하고 친환경 인증을 받은 신제품 ‘유로700NEW’를 출시했다. 한샘 디자인본부 김윤희 상무는 “맞벌이 부부의 증가, 스마트홈의 발전, 재택근무 확대 등 사회 변화에 맞춘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것이 인테리어의 역할”이라고 말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문화체육관광부가 코로나 종식 이후 관광객 유치와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추진하는 ‘2021 K-POP 슈퍼콘서트 in K-오리지널 전남’의 개최지로 순천시를 최종 선정했다. ‘K-POP 슈퍼콘서트’는 코로나19 집단면역이 형성되는 올 4분기에 메가 한류 이벤트를 개최해 전남형 신한류 콘텐츠를 개발하는 사업으로 19일 순천시가 최종 선정됐다. K-POP 콘서트는 10월 말 순천만국가정원 동문 잔디마당(사진)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시는 국도비 포함 총사업비 10억 원을 들여 K-POP 콘서트를 개최하며 원활한 사업 추진을 위해 한국관광공사, 전남관광재단 등과 업무협약을 체결할 계획이다. 순천시 관계자는 “K-POP 콘서트가 전통과 생태, 정원이 어우러진 순천에서 개최되는데 2023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사전홍보와 전남 외래 관광객 유치 기반 확립을 위해 성공적으로 치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쿠바 올드 아바나 시내의 골목에서는 평범한 카페나 바에서도 수준급 밴드의 연주가 끊이지 않는다. 봉고(작은 손북)와 마라카스(야자나무 열매로 만든 악기), 구이로(호리병박 모양의 악기)는 물론이고 기타, 색소폰, 바이올린, 플루트 등 악기 구성도 다양하다. 열대과즙처럼 쏟아져 나오는 흥겨운 댄스리듬에 한 여성이 한바탕 춤을 추면, 큰 박수가 뒤따라온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스위스 루체른 절벽 바위를 깎아 만든 ‘빈사의 사자상’. 죽어가는 사자의 등에는 부러진 창이 꽂혀 있다. 프랑스 혁명에서 루이 16세를 지키다 1792년 전멸한 스위스 용병 786명을 기리기 위한 작품이다. 그들은 빈국(貧國) 스위스의 생계수단인 용병 일자리를 후대에 물려주기 위해 목숨을 걸었다. 스위스 용병은 의리와 충성심의 상징이 됐다. 마크 트웨인은 사자상이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도 감동적인 바위’라고 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경남 통영의 미륵산 정상에 올라서면 한려수도에 점점이 떠 있는 섬들이 360도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햇살이 비쳐 반짝이는 잔물결. 윤슬! 에메랄드빛 바다에서 불어오는 포근한 바람에 봄이 왔음을 실감한다. ‘동양의 나폴리’로 불리는, 아니 나폴리보다 훨씬 멋진 강구항(통영항). 아침 해장국 손님들로 분주한 서호시장에는 식당마다 ‘도다리쑥국 개시’라는 글씨가 나붙었다. 해풍을 맞고 자란 어린 해쑥이 나올 즈음 도다리도 겨우내 영양분을 축적하고 포동포동 살이 올라 가장 맛이 좋다고 한다. 둘을 함께 넣고 끓인 도다리쑥국은 담백한 맛과 향이 입안 가득히 봄을 선사한다. 통영의 봄 미각(味覺) 여행엔 멍게비빔밥도 빼놓을 수 없다. 싱그럽게 톡톡 터지는 꽃멍게만큼 바다의 향을 감미롭게 표현하는 해산물은 세상에 없을 것 같다. ● 이중섭의 ‘흰소’와 청마의 ‘편지’ 통영항의 등대는 끝이 뾰족한 연필 모양이다. 수많은 문필가들이 활동한 도시를 상징하는 모양의 등대다. 대하소설 ‘토지’의 소설가 박경리를 비롯해 시인 유치환 김춘수 백석, 극작가 유치진, 화가 이중섭과 전혁림 등 수많은 소설가, 시인, 음악가, 화가들이 통영에서 태어나고 활동했다. 또한 나전칠기, 옻칠, 갓, 부채, 누비, 통영오광대놀이 등 가장 많은 무형문화재를 보유한 도시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통영 기행은 골목골목을 걸어야 제맛이다. 걷다 보면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니라’고 노래했던 시인 유치환이 편지를 5000여 통이나 보냈던 청마우체국이 나타나고, 박경리의 소설 ‘김약국의 딸들’에 나오는 서문고개를 넘기도 한다. 또한 윤이상 기념관에서는 평생 고향을 그리워하며 베를린에 살았던 작곡가가 타고 다녔던 벤츠 자동차도 만난다. 강구항의 쪽빛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동피랑 언덕에는 그리스 산토리니를 방불케 하는 감성적인 풍경이 펼쳐진다. 작가들이 2년마다 한 번씩 새롭게 그려 넣는 벽화는 바다의 풍경과 어우러져 여행객들의 카메라 셔터를 쉬지 않게 만든다. 바닷가 작은 도시인 통영에서 어떻게 이렇게 많은 예술가가 태어날 수 있었을까. 그 실마리는 통영의 가장 중심부에 있는 삼도수군통제영(三道水軍統制營) 12공방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경상, 전라, 충청의 해군을 총지휘하는 삼도수군통제영이 자리 잡았던 통영은 조선시대 500여 척의 전함과 수군 3만 명 이상이 주둔한 최고의 군사도시였다. 이순신 장군이 군수품을 조달하는 ‘12공방’을 만들면서 8도에서 가장 뛰어난 장인들이 모여들었다. 무기뿐 아니라 옷, 모자, 가구, 부채 등을 직접 생산했고, 화폐를 발행하는 주전소까지 있었다. 나전칠기와 통영갓 등의 공예품은 임금님께도 진상되면서 조선의 명품으로 등극했다. 통제영에 방문하면 ‘세병관’ ‘운주당’과 함께 ‘12공방’과 공예품을 전시하는 매장을 볼 수 있다. “이순신은 덕장이면서 예술가다. 임진왜란 당시 통영은 한촌(閑村)이었다. 해군본부(우수영)가 들어서면서 8도의 기술자(예술가)들이 모였다. 통영은 기후, 먹거리, 풍광이 아름다워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눌러앉아 소목장, 입자장, 선지장, 주석장이 되었다. 이들이 통영 예술의 토양이었다.”(박경리 ‘토지’ 완간 10주년 특별 대담) 통제영은 300년간 지속된 후 1895년 폐영됐지만, 많은 통영 사람들이 나전칠기, 소목, 화공 등 12공방의 일을 계속 가업으로 이어오면서 그들의 몸속에는 예술적 유전자가 형성됐다. 음악가 윤이상의 아버지도 유명한 소목장이었다. 화가 이중섭도 1952년 통영 나전칠기기술원양성소에서 학생들에게 데생을 가르치는 강사로 취직하면서 통영과 인연을 맺었다. 부산에서 부두노동자로 일하며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던 이중섭은 1952년 통영 나전칠기기술원양성소 주임강사로 있던 유강렬(훗날 홍익대 산업미술대학원장)의 도움으로 통영에 왔다. 이중섭은 이곳에서 약 2년간 머무르며 ‘흰소’ ‘황소’ 등 자신의 대표작을 그렸다. 통영 시절 이중섭은 전혁림, 유강렬 등과 함께 호심다방과 성림다방에서 단체전과 개인전을 3차례 열어 작품을 팔았다. 통영 시절에 그린 그의 소 그림은 가장 힘이 넘친다. 이중섭이 머물렀던 나전칠기기술원양성소 건물은 ‘시드니 카페’라는 간판이 걸린 채 현재는 비어 있는데, 통영시에서 매입해 기념관으로 조성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중도 시인(윤이상기념관 팀장)은 “통영에서 가장 행복했던 이중섭은 새벽 4시부터 밤 10시까지 작업에 열중해 그가 머물렀던 도시 중 가장 많은 작품을 남겼다”며 “통영은 바다만 보고 있어도 시가 써지고, 그림이 그려지는 마법적인 곳”이라고 말했다. ● 매화 동백 절정, 바다에도 붉은 꽃이 통영대교 너머에 있는 미륵도는 수려한 산세와 숲, 바다가 어우러진 비대면 여행지로 각광받는 곳이다. 산양일주도로를 드라이브하거나 삼칭이해안길과 미래사 편백숲길을 걷는 사람도 많다. 달아공원 전망대에서 보는, 섬 사이로 떨어지는 일몰도 장관이다. ‘삼칭이해안길’은 통영 마리나리조트에서 영운리까지 이어지는 4km의 해변길이다. 해안침식을 막기 위해 쌓은 제방에서 바라보는 푸른 청보석 바다의 경치가 그만이다. 자동차가 다니지 않는 길이라 자전거를 타거나 걷기에 좋다. 이곳을 걷다가 양식 꽃멍게를 수확하는 작업장을 만났다. 푸른 바닷물 속에서 줄줄이 매달려 올라오는 멍게는 그야말로 붉은 꽃이었다. 미래사 편백숲길은 100년 가까이 되는 편백나무 숲이 5만 평이나 펼쳐져 있다. 편백나무는 다른 침엽수보다 세 배 이상의 피톤치드를 뿜어내 암 환자에게도 좋다고 한다. 숲길을 걷다 보면 하늘을 찌를 듯이 빽빽한 편백나무가 뿜어내는 향기가 온몸을 감싼다. 미륵도의 가로수는 동백이다. 도로 양쪽에 동백과 흰매화, 홍매화가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가장 아름다운 동백은 이순신 장군을 모신 사당인 충렬사에서 만났다. 고즈넉한 사당 앞마당에 동백꽃은 나뭇가지에도, 나무 밑에도 뚝뚝 떨어져 붉게 피어 있었다. 충렬사 돌계단은 시인 백석이 사랑했던 통영의 한 소녀를 생각하며 울듯울듯한 마음으로 ‘¤ 장수 모신 낡은 사당의 돌층계에 주저 앉아서/나는 이 저녁 울 듯 울 듯…달을 업고 손방아만 찧는 내 사람을 생각한다’는 시를 썼던 곳이다. 통영은 ‘동피랑 벽화마을’이 조성된 후부터 젊은 예술가들이 몰리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로컬문화가 형성되고 있다. 통영의 바다 색채를 가장 잘 표현한 화가인 전혁림 화백의 그림을 볼 수 있는 봉수골 ‘전혁림 미술관’ 근처가 대표적이다. 미술관 바로 앞에 있는 ‘봄날의 책방’은 너무 예뻐 하루 종일 머무르고 싶은 서점이다. 2010년부터 통영에 내려가 로컬 콘텐츠를 책으로 만들어내는 ‘남해의 봄날’ 출판사 정은영 대표가 운영하고 있다. 골목길 옆에는 2016년부터 통영에 내려와 살고 있는 일러스트레이터 밥장이 운영하는 문화공간 카페 ‘내성적싸롱호심’도 있다. 통제영 근처의 ‘삼문당 커피컴퍼니’는 아버지가 50년 동안 운영하던 표구점을 아들이 새롭게 인테리어해서 만든 카페. 한 달에 한 번씩 지역 예술인들이 모여 인디밴드 공연과 인문학 강연, 남해안 별신굿 배우기 등이 펼쳐지는 이곳은 통영 로컬 힙스터들의 아지트다. 삼문당 윤덕현 대표(45)는 “박경리, 윤이상, 김춘수가 활동하던 시절처럼 젊은 예술가들이 다시 돌아오는 통영을 꿈꾼다”고 말했다. ●가볼 만한 곳=26일~다음 달 4일 열리는 통영국제음악제에서는 바이올린의 여제 정경화가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 전곡 연주에 나선다. 퓨전 국악팝 ‘범 내려온다’로 화제를 일으킨 이날치밴드도 무대에 선다. ●맛집=통영의 싱싱한 제철 해산물을 먹기 위해서는 ‘통영 다찌집’을 찾아야 한다. 술을 시키면 안주는 멍게, 해삼, 생선회, 생선구이, 굴전 등 주인이 주는 대로 먹는다. 그날그날 시장에 나온 식재료에 따라 메뉴가 바뀌고 계절마다 제철 음식이 나온다. 통영 다찌는 ‘대추나무’, 도다리 쑥국은 서호시장의 ‘분소식당’, 멍게비빔밥은 중앙시장 앞 ‘동광식당’. ●통영 시인 이중도 “통영은 시와 그림, 서정의 고향입니다.” 통영 출신인 이중도 시인(52)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1993년 계간 ‘시와 시학’을 통해 문단에 등단했다. 통영에 대한 지극한 사랑으로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내려와 시를 쓰고 있다. 시집으로 ‘통영’ ‘섬사람’ ‘사라졌던 길들이 붕장어 떼 되어 몰려온다’ 등 5권의 시집을 낸 그는 통영의 살아 숨쉬는 자연을 배경으로 한 토속적 언어로 시를 쓴다. 윤이상 기념관에서 근무하고 있기도 하다. ―통영의 바다는 왜 잔잔하고 아름다운가. “통영 앞 바다에는 570개의 크고 작은 섬이 있다. 그 중 유인도는 44개이고 나머지는 무인도다. 한산도 비진도 연화도 등이 파도를 막아주고 있는 내해는 정말 호수처럼 잔잔하다.” ―바닷가 항구도시 통영에서 근대 문화예술이 꽃피우게 된 원인은 무엇인가. “통영에는 세가지의 큰 뿌리가 있다. 가장 근원적인 것은 잔잔한 바다와 따뜻한 기후와 같은 자연 환경이다. 그것은 대체할 수 없는 부분이다. 두 번째는 300여년간의 통제영 전통에서 12공방이라는 장인들의 기술이 피어난 것이다. 통제사는 상당히 높은 계급이기 때문에 귀임할 때 상당히 많은 고급 진상품이 필요했다. 그런 목적으로 명품 나전칠기, 갓 등이 발전하게 됐다. 세 번째는 근현대의 문화예술 전통이다. 청마 유치환, 윤이상, 김춘수, 김상옥 같은 분들은 전부 일본 유학파다. 일본에서 근대의 신문물 세례를 받은 분들이다. 그리고 여기에 더불어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이 돈이다. 여수에서 돈자랑하지 말라는 말이 있었는데, 통영에 비교하면 게임이 안됐다. 바다에서 나오는 해산물이 엄청났기 때문에 금전적으로 풍족했다. 일제강점기 때 야마하 같은 악기점이 통영에 있었다. 야마하 피아노 악기점은 전국에서 서울하고 통영에만 있었다고 한다. 자연환경, 통제영 12공방 전통, 항구를 통한 근대 신문물의 세례, 재력이 합쳐진 결과라고 본다. 미술시장이 굉장히 어렵지만 통영에서는 요즘에도 그림이 팔린다. 통영에서는 새로 집을 이사갈 때는 그림을 사서 꾸미는 풍습이 있다. 전혁림 선생 그림이나 아는 화가의 그림 2000~3000만원 짜리 하나 사서 걸어두는 것이다.” ―화가 이중섭의 통영생활은 어떠했나. “이중섭 선생은 통영에서 굉장히 행복했다. 통영에서 ‘흰소’와 ‘달과 까마귀’와 같은 대표적인 중요한 작품을 그렸다. 통영의 다방에서 4인 단체전 한번, 개인전 한번 전시회를 했는데 그림이 다 팔리고, 수금도 다 됐다. 통영은 6.25전쟁 피해를 받지 않은 도시라 살림살이가 괜찮았다. 그림도 팔리고 돈이 생기니까 일본에 있는 부인과 아이들을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그가 부인에게 쓴 편지에 보면 ‘여보, 나는 새벽 4시에 일어나서, 밤 10시까지 그린다. 술도 마시지 않고 하루종일 그리다보니 그림이 산더미처럼 쌓여간다’는 구절이 있다. 가장 열정적으로 그린 시기였다. 2016년 덕수궁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이중섭 탄생 100주년 기념 전시를 갔더니 그림을 작가가 머물렀던 장소에 따라 분류해서 원산관, 부산관, 서귀포관, 통영관이란 이름으로 전시실을 꾸몄더라. 그런데 이중섭의 전체 작품 중 80%가 통영에서 그린 그림이었다. 특히 유화는 통영이 절대적이었다. 왜냐하면 서귀포나 부산에서는 너무 생활고를 겪었기 때문에 유화 물감이나 그림 도구를 구하지 못해 작은 종이에 스케치한 것들이 많다. 이중섭 선생은 통영에서 청마 선생과도 교류했고, 김춘수 선생도 이중섭에 대한 연작시가 있다. 통영의 문인들과 많은 교감이 있었던 것 같다.” ―통영 이후의 이중섭의 생활은 어땠나. “통영에서 2차례 전시회에서 그림을 다 팔고 돈까지 정산받았던 이중섭 선생은 자신감을 얻어 진주, 대구를 거쳐서 서울로 올라가면서 개인전을 했다. 런데 그림은 대부분 팔렸지만 실제로 수금이 안됐다. 서울에서는 일본 유학시절부터 절친했던 김환기 선생이 집도 없이 가난하게 살고 있는 이중섭 선생을 위해 발벗고 나서서 수금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그런데도 수금률이 5% 정도 밖에 안됐다고 한다. 그래서 절망했다. 통영에서 그린 소는 힘이 넘쳤다. 이중섭을 대표하는 소다. 그런데 서울에서 그린 소는 병색이 짙은 잿빛 소다. 소는 이중섭의 자화상이었다. 소를 따라가다 보면 이중섭 선생의 감정을 느낄 수 있다.” ―통영의 자연이 예술에 미치는 영향은. “통영은 시인과 화가의 도시다. 잔잔한 바다에 점점이 떠 있는 섬, 에머랄드빛 바다와 항구의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시가 써지고, 그림이 그려진다. 그런데 선이 굵은 대하소설이나 교향곡 같은 서사적 장르는 잘 나오지 않는다. 박경리 선생도 통영에만 계속 살았다면 ‘김약국의 딸들’ 같은 작품에 멈췄을 것이다. 그런데 박경리 선생은 쫓기듯 고향을 떠나 태백산맥 자락의 원주에 정착했다. 박 선생은 이후 수많은 작품에서 통영을 그렸지만, 50년간 한번도 통영을 찾지 않았다. 통영은 그에게 애증의 도시였다. 고향을 떠난 것은 가혹한 운명이었지만, 오히려 박 선생이 대하소설 ‘토지’를 쓸 수 있었던 배경이기도 하다. 이병주의 ‘지리산’, 조정래의 ‘태백산맥’, 박경리의 ‘토지’ 등 국내 대하소설이 대부분 태백산맥에서 살면서 쓴 소설이다. 통영에서는 중단편적인 소재만 있지, 대형서사가 나오기 힘들다. 대형 서사를 쓰려면 태백산맥으로 가야 한다. 윤이상 선생도 통영에서는 교가나 동요, 가곡 정도만 썼다. 독일 유학 후에 본격적인 대형서사를 갖춘 교향곡이 나온다. 통영은 서정의 고향이다. 시와 그림은 그냥 있어도 저절로 튀어나온다.”● 서울에서 즐기는 ‘통영의 맛’서울 서초구 방배동에 있는 ‘통영 바다풍경’은 서울에서 통영 음식의 진미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박병기(70)·이복자(69) 부부가 운영하는 이 식당에서는 요즘 봄내음 가득한 도다리쑥국이 제철이다. 매일 새벽 통영에서 직송돼 올라오는 싱싱한 해산물로 정통 통영식 밥상을 차려낸다. 이 가게에서는 물메기탕, 멍게비빔밥 같은 통영 계절음식과 나물비빔밥, 멸치쌈밥, 충무김밥, 방아전 같은 통영의 바다향 물씬나는 음식이 가득하다. KBS TV ‘김영철의 동네한바퀴’에서도 ‘서울 속의 통영’을 만날 수 있는 곳으로 소개되기도 했다.부부는 통영 중앙시장에 있는 작은 건물에서 식당을 하며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지난 2018년에 강석주 시장으로부터 ‘통영시 관광홍보 대사’ 위촉을 받기도 한 박병기 대표는 현재 재경통영시향우회 간사와 재경경남도민회 이사로 봉사하고 있다. 박 대표는 통영을 알리는 ‘홍보대사’로 평생을 살아왔다.“통영의 홍보대사가 되고 싶다는 마음을 갖고 ‘서울 속 통영’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진짜 통영의 맛 홍보대사가 되기 위해 매일 공부도 하고 있습니다. 해초가 사람의 몸에 좋다는 것은 이미 상식이 됐지만, 통영의 해초가 얼마나 특별한가도 과학적으로 공부하고 있어요.”그는 “통영의 해초는 씹을수록 단맛이 나는 특별한 풍미를 지녔다”며 “도서관에서 연구한 결과 적당한 염분의 바닷속에서 침잠을 반복하며 자라는 해초에 더 많은 영양과 맛이 있다는 결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경남 통영의 미륵산 정상에 올라서면 한려수도에 점점이 떠 있는 섬들이 360도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햇살이 비쳐 반짝이는 잔물결. 윤슬! 에메랄드빛 바다에서 불어오는 포근한 바람에 봄이 왔음을 실감한다. ‘동양의 나폴리’로 불리는, 아니 나폴리보다 훨씬 멋진 통영항. 아침 해장국 손님들로 분주한 서호시장에는 식당마다 ‘도다리쑥국 개시’라는 글씨가 나붙었다. 해풍을 맞고 자란 어린 해쑥이 나올 즈음 도다리도 겨우내 영양분을 축적하고 포동포동 살이 올라 가장 맛이 좋다고 한다. 둘을 함께 넣고 끓인 도다리쑥국은 담백한 맛과 향이 입안 가득히 봄을 선사한다. 통영의 봄 미각(味覺) 여행엔 멍게비빔밥도 빼놓을 수 없다. 싱그럽게 톡톡 터지는 꽃멍게만큼 바다의 향을 감미롭게 표현하는 해산물은 세상에 없을 것 같다.》 ○ 이중섭의 ‘흰소’와 청마의 ‘편지’ 통영항의 등대는 끝이 뾰족한 연필 모양이다. 수많은 문필가들이 활동한 도시를 상징하는 모양의 등대다. 대하소설 ‘토지’의 소설가 박경리를 비롯해 시인 유치환 김춘수 백석, 극작가 유치진, 화가 이중섭과 전혁림 등 수많은 소설가, 시인, 음악가, 화가들이 통영에서 태어나고 활동했다. 또한 나전칠기, 옻칠, 갓, 부채, 누비, 통영오광대놀이 등 가장 많은 무형문화재를 보유한 도시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통영 기행은 골목골목을 걸어야 제맛이다. 걷다 보면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니라’고 노래했던 시인 유치환이 편지를 5000여 통이나 보냈던 청마우체국이 나타나고, 박경리의 소설 ‘김약국의 딸들’에 나오는 서문고개를 넘기도 한다. 또한 윤이상기념관에서는 평생 고향을 그리워하며 베를린에 살았던 작곡가가 타고 다녔던 벤츠 자동차도 만난다. 강구항의 쪽빛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동피랑 언덕에는 그리스 산토리니를 방불케 하는 감성적인 풍경이 펼쳐진다. 작가들이 2년마다 한 번씩 새롭게 그려 넣는 벽화는 바다의 풍경과 어우러져 여행객들의 카메라 셔터를 쉬지 않게 만든다. 바닷가 작은 도시인 통영에서 어떻게 이렇게 많은 예술가가 태어날 수 있었을까. 그 실마리는 통영의 가장 중심부에 있는 삼도수군통제영(三道水軍統制營) 12공방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경상, 전라, 충청의 해군을 총지휘하는 삼도수군통제영이 자리 잡았던 통영은 조선시대 500여 척의 전함과 수군 3만 명 이상이 주둔한 최고의 군사도시였다. 이순신 장군이 군수품을 조달하는 ‘12공방’을 만들면서 8도에서 가장 뛰어난 장인들이 모여들었다. 무기뿐 아니라 옷, 모자, 가구, 부채 등을 직접 생산했고, 화폐를 발행하는 주전소까지 있었다. 나전칠기와 통영갓 등의 공예품은 임금님께도 진상되면서 조선의 명품으로 등극했다. 통제영을 방문하면 ‘세병관’ ‘운주당’과 함께 ‘12공방’과 공예품을 전시하는 매장을 볼 수 있다. “이순신은 덕장이면서 예술가다. 임진왜란 당시 통영은 한촌(閑村)이었다. 해군본부(우수영)가 들어서면서 8도의 기술자(예술가)들이 모였다. 통영은 기후, 먹거리, 풍광이 아름다워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눌러앉아 소목장, 입자장, 선지장, 주석장이 되었다. 이들이 통영 예술의 토양이었다.”(박경리 ‘토지’ 완간 10주년 특별 대담) 통제영은 300년간 지속된 후 1895년 폐영됐지만 많은 통영 사람들이 나전칠기, 소목, 화공 등 12공방의 일을 계속 가업으로 이어오면서 그들의 몸속에는 예술적 유전자가 형성됐다. 음악가 윤이상의 아버지도 유명한 소목장이었다. 화가 이중섭도 1952년 통영 나전칠기기술원양성소에서 학생들에게 데생을 가르치는 강사로 취직하면서 통영과 인연을 맺었다. 부산에서 부두노동자로 일하며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던 이중섭은 1952년 통영 나전칠기기술원양성소 주임강사로 있던 유강렬(훗날 홍익대 산업미술대학원장)의 도움으로 통영에 왔다. 이중섭은 이곳에서 약 2년간 머무르며 ‘흰소’ ‘황소’ 등 자신의 대표작을 그렸다. 통영 시절 이중섭은 전혁림 유강렬 등과 함께 호심다방과 성림다방에서 단체전과 개인전을 3차례 열어 작품을 팔았다. 통영 시절에 그린 그의 소 그림은 가장 힘이 넘친다. 현재 이중섭이 머물렀던 나전칠기기술원양성소 건물은 비어 있는데, 통영시에서 매입해 기념관으로 조성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중도 시인(윤이상기념관 팀장)은 “통영에서 가장 행복했던 이중섭은 새벽 4시부터 밤 10시까지 작업에 열중해 그가 머물렀던 도시 중 가장 많은 작품을 남겼다”며 “통영은 바다만 보고 있어도 시가 써지고, 그림이 그려지는 마법적인 곳”이라고 말했다.○ 매화 동백 절정, 바다에도 붉은 꽃이 통영대교 너머에 있는 미륵도는 수려한 산세와 숲, 바다가 어우러진 비대면 여행지로 각광받는 곳이다. 산양일주도로를 드라이브하거나 삼칭이해안길과 미래사 편백숲길을 걷는 사람도 많다. 달아공원 전망대에서 보는, 섬 사이로 떨어지는 일몰도 장관이다. ‘삼칭이해안길’은 통영 마리나리조트에서 영운리까지 이어지는 4km의 해변길이다. 해안침식을 막기 위해 쌓은 제방에서 바라보는 푸른 청보석 바다의 경치가 그만이다. 자동차가 다니지 않는 길이라 자전거를 타거나 걷기에 좋다. 이곳을 걷다가 양식 꽃멍게를 수확하는 작업장을 만났다. 푸른 바닷물 속에서 줄줄이 매달려 올라오는 멍게는 그야말로 붉은 꽃이었다. 미래사 편백숲길은 100년 가까이 되는 편백나무 숲이 5만 평이나 펼쳐져 있다. 편백나무는 다른 침엽수보다 세 배 이상의 피톤치드를 뿜어내 암 환자에게도 좋다고 한다. 숲길을 걷다 보면 하늘을 찌를 듯이 빽빽한 편백나무가 뿜어내는 향기가 온몸을 감싼다. 통영의 가로수는 동백이다. 도로 양쪽에 동백과 흰매화, 홍매화가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가장 아름다운 동백은 이순신 장군을 모신 사당인 충렬사에서 만났다. 고즈넉한 사당 앞마당에 동백꽃은 나뭇가지에도, 나무 밑에도 뚝뚝 떨어져 붉게 피어 있었다. 충렬사 돌계단은 시인 백석이 사랑했던 통영의 한 소녀를 생각하며 울듯울듯한 마음으로 ‘녯 장수 모신 낡은 사당의 돌층계에 주저앉아서’라는 시를 썼던 곳이다. 통영은 10여년 전 ‘동피랑 벽화마을’이 조성된 후부터 젊은 예술가들이 몰리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로컬문화가 형성되고 있다. 통영의 바다 색채를 가장 잘 표현한 화가인 전혁림 화백의 그림을 볼 수 있는 봉수골 ‘전혁림미술관’ 근처가 대표적이다. 미술관 바로 앞에 있는 ‘봄날의 책방’은 너무 예뻐 하루 종일 머무르고 싶은 서점이다. 2010년부터 통영에 내려가 로컬 콘텐츠를 책으로 만들어내는 ‘남해의 봄날’ 출판사 정은영 대표가 운영하고 있다. 골목길 옆에는 2016년부터 통영에 내려와 살고 있는 일러스트레이터 밥장이 운영하는 문화공간 카페 ‘내성적싸롱호심’도 있다. 통제영 근처의 ‘삼문당 커피컴퍼니’는 아버지가 50년 동안 운영하던 표구점을 아들이 새롭게 인테리어해서 만든 카페. 한 달에 한 번씩 지역 예술인들이 모여 인디밴드 공연과 인문학 강연, 남해안 별신굿 배우기 등이 펼쳐지는 이곳은 통영 로컬 힙스터들의 아지트다. 삼문당커피 윤덕현 대표(45)는 “박경리, 윤이상, 김춘수가 활동하던 시절처럼 젊은 예술가들이 다시 돌아오는 통영을 꿈꾼다”고 말했다.글·사진 통영=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가볼 만한 곳 26일∼다음 달 4일 열리는 통영국제음악제에서는 바이올린의 여제 정경화가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 전곡 연주에 나선다. 퓨전 국악팝 ‘범 내려온다’로 화제를 일으킨 이날치밴드도 무대에 선다. ●맛집 통영의 싱싱한 제철 해산물을 먹기 위해서는 ‘통영 다찌집’을 찾아야 한다. 술을 시키면 안주는 멍게, 해삼, 생선회, 생선구이, 굴전 등 주인이 주는 대로 먹는다. 그날그날 시장에 나온 식재료에 따라 메뉴가 바뀌고 계절마다 제철 음식이 나온다. 통영 다찌는 ‘대추나무’, 도다리 쑥국은 서호시장의 ‘분소식당’, 멍게비빔밥은 중앙시장 앞 ‘동광식당’.}

포르투갈 포르투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성당도, 미술관도, 광장도 아닌 서점이다. 1894년 유행하던 아르누보 양식으로 지어진 ‘렐루서점’이다. 작가 J K 롤링은 1991년 영어학원 교사로 포르투에 왔을 때 틈이 나면 들렀다고 한다. 서점의 붉은색 구불구불한 계단은 영화 해리포터에서 마법학교 호그와트의 ‘움직이는 계단’ 모티브가 돼 유명해졌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 중 하나로 꼽히면서 5유로의 입장료도 받는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전북 부안의 곰소만에 있는 곰소염전은 단맛이 나는 소금으로 유명하다. 5월에 청정 자연인 변산반도 국립공원에서 곰소 쪽으로 날아오는 송홧가루가 염전에 내려앉을 때 만들어지는 송화소금은 뛰어난 품질을 자랑한다. 곰소염전에 거울처럼 비친 노을의 고즈넉한 풍경을 바라볼 수 있는 ‘슬지제빵소’는 요즘 부안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많은 곳이다. 지역에서 나는 팥으로 만든 찐빵과 소금커피가 입소문이 났다. 부안읍내에서 20년 넘게 찐빵가게를 해온 아버지 김갑철 씨와 딸 슬지 씨가 함께 운영하는 제빵소다. 김슬지 대표(37)의 아버지가 부안읍내에 ‘슬지네찐빵’을 연 것은 2000년이었다. 공기업에서 일하다가 1990년대 말 외환위기 사태를 겪으며 회사를 퇴직한 김 씨는 퇴직금으로 대규모 양계장 사업을 하다가 망했다. 이후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부안읍내에서 5평짜리 찐빵가게를 열었다. 아버지는 딸의 이름을 간판에 내걸었다. ‘슬지’는 슬기롭고 지혜롭게 크라는 뜻에서 지어준 이름이다. 김 대표는 “자식의 이름을 걸고 정직하게 장사하겠다는 뜻에서 가게 이름을 정하신 것 같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처음엔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수입 밀과 수입 팥을 썼다. 그런데 점차 국산 밀과 팥 등 지역에서 나는 재료로 찐빵을 만들기 시작했다. “2004년쯤 부안에 핵폐기물 처리장이 들어온다는 소식을 듣고 지역 주민들이 일제히 반대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버지가 먹거리도 건강하고 안전한 것으로 만들 수 없을까 고민했다고 해요.” 국산 농산물은 수입에 비해 재료비가 2~3배 비쌌다. 또한 기술적인 문제도 안고 있었다. 국산 밀은 수입 밀보다 글루텐이 부족해 모양을 만들거나 부드러운 식감을 내기 어려웠던 것이다. 아버지는 화학첨가물 대신 2007년 발효종과 발효액, 누룩 등을 사용하는 제조 방법을 개발했다. 이듬해엔 또 다른 핵심 재료인 팥도 국산화했다. 팥 앙금을 만들 때 부안의 특산물인 뽕잎을 삶은 물로 잡내를 없앴다. 김 대표는 가난한 집안 형편에 고교 졸업 후 바로 서울로 올라가 주얼리숍 등 안 해 본 일이 없었다. 25세가 돼서야 금속공예 전공으로 대학에 진학했다. 2013년 무렵 가게를 함께 꾸리던 어머니가 갑상샘암에 걸려 큰 수술을 하자 김 대표는 부모님을 돕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왔다. 결국 눌러앉은 그는 2015년 농업기술원의 농식품 가공 아이디어 경연대회에서 ‘참뽕을 이용한 팥 가공 제품’으로 최우수상을 받았다. 이때 받은 상금 1억 원을 종잣돈으로 곰소염전 앞에 팥 가공을 위한 반자동화 기기 시설을 갖춘 슬지제빵소 공사를 시작했다. 돈이 마련되면 공사를 진행하고, 또 멈추기를 반복하면서 2017년에 제빵소 문을 열었다. 김 대표는 우선 20, 30대를 타깃으로 한 제품 개발에 집중했다. 아버지가 만들던 전통 찐빵만으로는 젊은 세대의 입맛을 맞출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새롭게 선보인 생크림 찐빵, 크림치즈 찐빵, 오색 찐빵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타고 입소문이 나면서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슬지제빵소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팥앙금은 전국의 호텔, 제과점을 비롯해 여름철 팥빙수를 파는 카페 등에 대량으로 납품된다. 2017년 오픈 당시 슬지제빵소의 매출액은 3억3000만 원. 지난해에는 15억 원으로 껑충 뛰었다. 김 대표는 바쁜 일과 속에서도 중앙대 산업창업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그가 지켜온 가장 큰 원칙은 ‘모든 재료를 지역에서 공수한다’는 로컬 푸드 전략이다. 지난해 슬지제빵소에서 사용한 국산 팥은 20t이 넘는다. 가격 변동이 심한 팥을 안정적으로 공급받기 위해 인근 농민들로 팥 생산자단체를 조직해 계약 재배를 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빵가게에서 곰소염전의 발효소금을 팔고, 곰소염전 창고에서 쓰던 나무를 가져와 카페 카운터 인테리어를 하기도 했다. 슬지제빵소의 명물인 ‘곰소 소금커피’는 아이스라테 커피에 흑당과 발효소금 시럽을 섞어 ‘단짠단짠’한 맛이 일품이다. 김 대표는 “우리가 형편이 어려울 때 지역 주민들이 아버지의 찐빵 집을 찾아주셔서 다시 일어났듯이 지역 주민이 생산한 농산물을 활용한 제품으로 상생의 길을 찾겠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지난해 농촌융복합산업인으로 선정됐다. 그는 “2대를 넘어 100년 가업(家業)을 이어갈 수 있도록 지역에 뿌리를 박고 조심스럽게, 천천히, 원칙을 지키며 키워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부안=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봄은/출발선이 없다는 것을/아는 꽃이 있다/발이 얼어붙어/떨어지지 않는다고/다들 호들갑 떨 때/봄내음보다 먼저/달려 나오는 꽃’(강민숙 ‘변산바람꽃’) 봄은 전북 부안 변산반도에서 시작됐다. 새해 첫 출항을 알리는 ‘위도 띠뱃놀이’의 띠배가 힘차게 돛을 올렸고, ‘변산바람꽃’은 한겨울 찬바람 속에서 꽃을 피워냈다. ●봄을 알리는 야생화, 변산바람꽃서해바다의 매서운 겨울바람이 불던 날이었다. 변산반도 내변산의 깊은 숲 속에 들어갔는데도 바람은 그치지 않았다. 문화관광해설사를 따라 걷다보니 나뭇가지와 낙엽만 앙상한 어두운 숲에서 갑자기 찬란한 조명을 밝힌 듯 야생화 몇 송이가 환하게 빛난다. 봄보다 먼저 피어난 작은 생명. 찬 바람에 흔들려서 금방이라도 꺾일 듯하다. 변산반도에서 처음 발견된 변산바람꽃은 엄동설한인 2월 초부터 피어나 복수초, 노루귀와 함께 봄을 부르는 야생화 3총사다. 특히 가장 먼저 피어나는 변산바람꽃은 한겨울 야생화를 찍은 사람들이 찾아 헤매는 꽃이다. 3~4cm의 키에 하얀색 꽃받침엔 은은한 핑크색이 감돌고, 노란색 암술을 둘러싸고 있는 수술 끝은 보라색으로 우물가의 새악시처럼 청초하다. 수줍게 고개 숙인 얼굴 한번 보고 싶어 축축히 젖은 땅에 배를 깔고 누웠다. 떨림을 최소화하려고 숨을 참고 있는데, 카메라 렌즈 안에서 확대된 꽃이 바람에 더욱 흔들린다. 아직 잔설이 남은 엄동설한인 2월 초부터 피어나는 이 꽃은 여수 돌산 향일암 부근, 무등산에서도 피어나지만 이름은 어디서나 변산바람꽃이다. 동백과 매화, 산수유 나무도 이른 봄에 꽃이 피지만, 엄동설한에 땅을 뚫고 나오는 키 작은 야생화는 더욱 애처롭다. 어둡고 힘겨운 시대, 어김없이 피어난 새하얀 꽃잎에서 희망을 얻는다. 대견하고 고맙다. ‘급하기도 하셔라/누가 그리 재촉했나요/반겨줄 임도 없고/차가운 눈, 비, 바람 저리 거세거늘/행여/그 고운 자태 상하시면 어쩌시려고요/살가운 봄바람은, 아직/저만큼 비켜서서 눈치만 보고 있는데/어쩌자고 이리 불쑥 오셨는지요’ (이승철 ‘변산바람꽃’) 변산바람꽃은 변산반도국립공원의 ‘깃대종’이다. 깃대종은 특정 지역의 생태, 지리, 문화적 특성을 반영하는 야생생물로 그 지역의 생태계를 회복하는 개척자라는 이미지를 깃발의 이미지로 형상화한 용어다. 현재 남아있는 변산바람꽃의 주요 서식지는 탐방로에서 멀리 떨어진 계곡 주변 구역이라 관찰하기가 쉽지 않다. 대신 변산국립공원사무소는 2011년부터 탐방객들이 쉽게 관찰할 수 있도록 내변산 탐방로 주변에 인공적으로 꽃씨를 뿌려 키운 변산바람꽃 대체서식지(약 300㎡ 크기)를 조성해 개방하고 있다. 2월5일부터 3월 15일까지 개방하며 탐방객은 변산반도국립공원 내변산 분소를 방문해 신청 후 출입이 가능하다. ●새 봄 첫 출항, 위도 띠뱃놀이전북 부안 격포항에서 14.5km 떨어져 있는 위도. 낚시꾼들에게는 소문난 낚시 포인트이고 8월에는 흰색 상사화가 피어나 ‘위도 상사화 달빛걷기 축제’가 펼쳐지는 아름다운 섬이다. 설연휴 마지막날인 지난 14일. 부안군 위도면 대리마을에서는 국가무형문화재 제82-3호 ‘위도 띠뱃놀이’ 행사가 열렸다. 해마다 정월 초사흗날에 열리는 우리나라에서 대표적인 풍어제 중 하나다. 새해 첫 출항, 새 봄을 준비하는 행사에 예년에는 수많은 외부 손님으로 떠들썩했을 풍어제는 ‘코로나19’로 인해 최소한의 지역민이 참여한 가운데 열렸다. 그러나 섬 주민들의 마음만은 어느 해보다도 간절했다. 위도는 칠산앞바다의 조기잡이 황금어장으로 손꼽히던 곳이다. 1963년까지 위도는 전남 영광군 소속이었다. 위도 앞바다에서 잡힌 조기가 영광 법성포에서 해풍에 말리면 임금님께 진상되던 영광굴비로 전국적인 명성을 날렸다. 조기잡이 철이 되면 전국에서 5000여 척의 어선과 1만 명 이상의 뱃사람들이 몰려드는 파시(波市)가 형성돼 섬 전체가 흥청거릴 정도로 잘 사는 섬이었다. 위도의 가장 큰 항구인 ‘파장금(波長金)항’은 ‘파도가 높아지면 금이 쏟아진다’는 뜻에서 유래된 말이라 한다. 항구의 뒷골목엔 아직도 쓰러져가는 건물 앞에는 화강암 돌에 ‘인천관’이라고 간판이 여전히 남아 있어 놓여져 있어 뱃사람들로 들썩였던 위도의 황금시대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격포항에서 위도로 가는 뱃길은 험하기로 소문난 바닷길이다. 위도 가까운 곳에 있는 임수도 부근 해상은 세가지 조류가 합쳐지는 곳. 심청전의 ‘인당수’가 이곳이라는 전설도 있고, 1993년 서해훼리호 사건 때는 292명의 승객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 그래서 위도 사람들은 매년 정월 초사흗날에 띠뱃놀이를 수백년간 한해도 빼먹지 않고 해왔다. 새 봄 첫 출항을 앞두고 허수아비 선원과 떡, 과일이 실린 띠배에 묵은 재액(災厄)을 띄워 멀리 보내고 만선을 기원하는 뜻이다. 이날 아침 위도 대리마을 주민들은 각자 배의 이름이 적힌 깃발을 들고 마을 뒷산 원당에 모였다. 산에 오르지 않은 남자들은 바닷가에서 ‘띠배’를 만들었다. ‘띠풀(茅草)’은 물기가 잘 스며들지 않아 옛 사람들의 비옷이었던 ‘도롱이’를 만들던 풀. 띠풀로 새끼를 꼬아 배를 만들면 먼 바다까지도 홀로 떠갈 수 있다고 믿었다. 아침부터 계속된 원당굿과 용왕제를 마친 후 항구에 밀물이 가득차자 농악대의 풍물소리에 맞춰 허수아비 선원과 과일, 떡이 실린 띠배를 띄우기 시작했다. “미끄런 조기야 코코에 걸려라/에이야 술배야~/껄끄런 박대야 코코에 걸려라/에이야 술배야~/나오신다 나오신다/에이야 술배야~ 술배로구나!” 주민들은 용왕밥(고수레용 허드레밥)을 선창가 바닷에 뿌리며 흥겹게 춤을 추며 올해도 고기를 많이 잡고, 마을사람 모두 안녕하기를 빌었다. 띠배가 오색기를 단 어선에 끌려 항구를 벗어나 한 20분 나아갔을까. 모선과 연결된 줄을 끊자, 작은 띠배는 썰물 조류를 타고 먼 바다로 떠내려갔다. 길이가 불과 1미터 남짓한 띠배는 파도가 잔잔하면 황해바다 한가운데까지 떠내려 간다고 한다. 마을주민들은 “지난해 온 세상을 괴롭혀 온 코로나 액운도 저 띠배에 실려 멀리멀리 떠내려가면 좋겠다”고 간절한 소망을 빌었다. ●영화와 문학, 그리고 소금커피부안은 천혜의 땅이다. 바다로 툭 튀어나간 해발 509m의 변산은 깊은 산세와 함께 바다를 품어 임산물, 수산물, 농산물이 모두 풍족하다. 변산반도는 또한 영화감독 이준익(62)이 사랑하는 무대다. 그는 ‘왕의 남자’(2005), ‘구름을 버서난 달처럼’(2010), ‘사도’(2014), ‘변산’(2018)까지 4편을 부안에서 찍었다. 영화 ‘변산’에서 주인공인 래퍼 심뻑(박정민)은 고교시절 변산 앞바다의 노을을 바라보며 이런 시를 쓴다. “내 고향은 폐항…. 내 고향은 가난해서 보여줄 건 노을 밖에 없네.” 그러나 부안은 원래 가난한 동네가 아니었다. 폐항된 줄포항은 일제강점기 목포나 군산보다 먼저 개항했고, 조기가 많이 잡히는 칠산어장을 끼고 있으니 번영했던 항구였다. 인근 김제, 만경평야의 쌀을 수탈해서 일본으로 가져가는 창구역할도 했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토사가 쌓이면서 차츰 항구의 기능을 잃었다. 항구는 인근 곰소항으로 옮겨가고 1990년대에 줄포는 완전히 폐항됐다. 북적대던 항구는 현재 줄포생태공원으로 변해 있다. 영화 ‘놈놈놈’,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 촬영지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곰소만에서 들어가는 변산 우반동 골짜기는 조선시대 인문학의 산실이다. 허균은 우반동 정사암에서 최초의 한글소설인 ‘홍길동전’을 썼다. 허균이 꿈꾸던 신분타파의 이상향 율도국의 모델은 바로 변산 앞바다에 있는 섬 ‘위도’였다. 실학자인 반계 유형원(1622~1673)도 이곳에서 ‘반계수록’을 완성했다. ‘이화우 흩날릴제’로 유명한 조선시대 여류시인 매창(1573~1610)과 일제강점기 때 ‘그 먼나라를 아십니까’하고 외쳤던 신석정 시인(1907-1974)의 문학의 고향이기도 하다. 반계서당과 우물, 묘터를 볼 수 있는 ‘반계 유형원 선생 유적지’, 매창의 무덤과 시비가 있는 ‘매창공원’, 신석정의 집필실이 보존돼 있는 ‘신석정 문학관’은 부안 인문학 여행 코스다. 부안은 고려시대 청자의 산지로 유명했다. 변산에서 자라는 질좋은 목재 소나무, 최고급 품질의 고령토, 숙련된 청자 도공과 줄포항에서 개경까지 청자를 해상으로 운송할 수 있는 천혜의 조건 때문이다. 전남 강진군, 해남군과 함께 부안군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고려청자 도요지’를 등재하기 위해 함께 노력 중이다. 상감청자를 최초로 대량생산했던 부안의 고려청자 기술은 2011년 개관한 부안군 보안면 ‘부안청자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 ‘상감(象嵌)’는 반 건조된 그릇 표면에 무늬를 음각한 후, 그 안을 백토나 흑토로 메우고 초벌구이로 구워 낸 다음, 청자 유약을 발라 재벌구이를 하는 제작기법이다. 중국에서는 도자기 표면에 붓으로 그림을 그리는 반면에 흙표면에 음각으로 그림을 그려넣는 고려만의 독창적인 청자제작 방식이었다. 부안에서는 ‘상감청자’를 최초이자 대량생산해 고려청자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가마터가 다수 출토됐다. 특히 사적 제69호로 지정된 부안군 보안면 유천리 고려청자 요지에서는 약 100㎝ 높이의 대형 상감파룡문초벌매병편이 출토됐다. 왕실에서만 사용되는 용문양이 상감기법으로 새겨진 매병의 조각으로, 이 곳이 일반수준의 평범한 자기생산지가 아님을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고려중기 부안의 상감청자는 줄포만을 출발해 바닷길을 통해(조운제도) 수도 개경과 강화도로 유통됐다. 고려 황궁인 개성 만월대, 강화도에 소재하고 있는 고려 왕과 왕비의 능에서 부안의 상감청자가 많이 출토되고 있다. ●가볼만한 곳=변산반도 채석강의 해식동굴은 인생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인스타그램 명소다. 퇴적암층이 수만권의 책을 쌓아놓은 듯한 절벽에 바닷물이 침식해 만든 동굴로, 안쪽에서 역광으로 촬영하면 각도에 따라 동굴이 유니콘 모양, 한반도 모양으로 찍힌다. 붉은 노을을 배경으로 커플이 찍으면 최고의 장면이 나온다. 주말에는 사람들이 많아 길게 줄을 선다. 밀물 때는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물때표를 잘 보고 찾아가야 한다. ●맛집=곰소염전 앞에 있는 ‘슬지 제빵소’는 소금커피로 유명하다. 부안에서 찐빵으로 유명했던 아버지 김갑철 씨와 함께 딸 슬지 씨가 운영하고 있는 카페. 젊은이들의 입맛에 맞춘 다양한 찐빵을 맛볼 수 있다. 또한 곰소염전의 특산품인 발효소금과 흑당이 어우러진 ‘단짠단짠’한 맛이 일품인 소금커피도 대표 메뉴다. 카페 2층에서 바라보는 곰소염전의 풍경이 고즈넉하다. QR코드를 스캔하면 부안 변산반도의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글·사진 부안=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종합 홈 인테리어 전문기업 ㈜한샘이 초고가 욕실 시장을 겨냥한 프리미엄 욕실 브랜드 ‘바스바흐(BATHBACH)’를 론칭했다. 한샘은 가장 개인적인 공간인 ‘욕실’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증가하면서 기능적인 역할을 넘어 부엌, 거실처럼 인테리어 스타일링을 하는 공간으로 위상이 높아짐에 따라 프리미엄 욕실 브랜드를 새롭게 선보였다. ‘바스바흐’는 한샘이 2006년 출시한 부엌가구 브랜드 ‘키친바흐(KITCHENBACH)’에 이은 두 번째 프리미엄 브랜드다. 프리미엄 부엌에 대한 노하우를 욕실 공간으로 확장해 나가는 것이다. 한샘은 국내외에서 엄선한 고급 자재와 한샘의 차별화된 3차원(3D) 상담설계 서비스를 바탕으로 고객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춘 욕실 공간을 제안한다는 전략이다. 먼저 ‘바스바흐’는 대형 이탈리아 수입 타일 등을 적용한 욕실 공간을 선보인다. 기존 한샘 욕실 대비 시공이 까다롭지만 더욱 다양한 디자인의 타일로 고급스러운 욕실을 구현하고 수전, 도기, 수납장도 프리미엄 제품을 적용했다. 수전과 도기는 미국 콜러사, 이탈리아 스카라베오사 등의 제품을, 수납장의 힌지 등 하드웨어는 오스트리아 블룸사 제품 등을 제안한다. 라이프스타일에 맞춘 다양한 욕실 공간도 구현한다. ‘샤워부스형’ ‘홈스파형’과 전실을 활용한 ‘파우더룸형’ 등 대형 주택과 아파트에 맞는 공간을 제안한다. 매장에서는 3D 설계 프로그램을 활용한 맞춤 상담을 받을 수 있다. ‘바스바흐’ 브랜드 론칭과 함께 첫 번째 신제품으로는 ‘바흐 5 프리모 화이트’를 출시했다. 신제품 ‘프리모 화이트’는 최근 부엌, 거실에서 최신 트렌드로 주목받고 있는 고전적 인테리어에 현대적 요소를 가미한 ‘뉴클래식’ 스타일의 인테리어를 적용했다. 리얼 마블 패턴 타일과 함께 도장 도어를 활용한 수납장, 골드로즈 컬러의 수전 등으로 밝고 세련된 공간을 연출한다. ‘바흐 5 프리모 화이트’는 한샘디자인파크 목동점을 시작으로 전국 한샘디자인파크, 한샘리하우스, 한샘키친&바스 등으로 전시를 확대할 계획이다. 평형과 옵션에 따라 1000만∼3000만 원대에 구매할 수 있다. 한샘 건재상품부 장우순 이사는 “욕실은 가정에서 가장 사적인 공간으로 최근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힐링의 공간으로 주목받고 있고 자신의 취향에 맞게 스타일링하는 공간으로 그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며 “한샘 ‘바스바흐’ 출시로 차별화된 욕실 공간뿐만 아니라 욕실 부엌 거실 침실 등을 합친 전체 공간에서 프리미엄 리하우스 스타일 패키지도 제안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농심 짜파게티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서 최고의 인기 라면으로 등극했다. 인스타그램에서 해시태그 게시물 수가 가장 많은 라면 브랜드는 짜파게티인 것으로 나타났다. 짜파게티의 해시태그 게시물 수는 22만1000개를 웃도는데 이는 불닭볶음면(19만6000개)과 신라면(14만7000개), 진라면(7만 개) 등 라면시장 대표 브랜드를 크게 뛰어넘는 수치다. 특히 지난해 새로 등록된 짜파게티 해시태그 게시물은 약 5만 개에 달한다. 전체 22만1000여 개 중 약 4분의 1이 지난해 새로 올라온 것이다. 2020년 유난히 뜨거웠던 짜파게티 인기의 시작점은 2월 영화 ‘기생충’의 아카데미상 수상이었다. 이에 연초부터 온라인에서는 ‘짜파구리’ 인증 열풍이 불었고, 일부 유통점에서는 짜파게티가 품절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여기에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집에서 요리해 먹는 ‘홈쿡’ 트렌드가 생겨나며, 어떤 재료와도 잘 어울리는 짜파게티의 인기가 연중 계속 이어지게 됐다.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짜파게티는 지난해에만 약 3억4000만 개가 판매됐다. 또한 짜파게티는 지난해 2190억 원의 최대 매출을 기록하며 라면 시장에서 세 번째로 2000억 원 브랜드에 이름을 올렸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영풍 석포제련소는 공장 내부의 오염된 지하수가 낙동강 수계로 침출되는 것을 근원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지하수차집시설 공사에 착수한다고 23일 밝혔다. 이 사업은 공장과 하천 사이에 지하 수십m 아래 암반층까지 땅을 판 뒤 차수벽과 차집시설을 설치하는 것이다. 공장 내 지하 차수막과 오염방지공으로 막지 못한 오염 지하수를 차단하는 ‘최후 저지선’ 역할이다. 우선 총사업비 430억 원을 투입해 올해 제1공장 외곽 하천변을 따라 1.1㎞ 구간에 설치한 뒤 제2공장 외곽 1㎞ 구간에도 순차적으로 시공할 계획이다. 공사는 하천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 하기 위해 각 구간을 세분해 지하설비가 완성되면 즉시 지상을 원래 상태로 복구한 뒤 다음 구간을 시공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 사업은 최근 완성된 ‘공정사용수 무방류설비’와 함께 석포제련소가 추진하고 있는 ‘낙동강 수질오염 제로(0)’를 달성하기 위한 핵심 사업이다. 환경부의 소규모 환경영향평가를 받았고, 현재 공사 착수를 위한 인허가 사안이 진행 중이다. 영풍 석포제련소는 지난 수년간 낙동강 수질오염을 막기 위한 환경개선 사업을 추진해 왔다. 2019년에는 69억 원을 들여 오염지하수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12공장 내부 바닥에 10m 깊이로 차수막(총연장 1.5㎞)과 오염방지공을 설치했다. 지난해는 빗물 등 비점오염원이 지하수에 유입되는 것을 막기 위해 234억 원을 투입해 습식조업공장 바닥(연면적 5만6000㎡)을 내산벽돌 등으로 전면 교체했다. 공정에 사용된 물을 증발농축 등의 과정을 거쳐 공정에 재사용하는 무방류설비‘는 320억 원을 들여 지난해 12월 완공했다. 시스템 점검 및 시험가동을 거쳐 오는 5월경 본격 가동할 예정이다. 박영민 영풍 석포제련소장은 “무방류설비가 본격 가동되고 지하수 차단시설의 1차 사업이 끝나는 올해 말이면 가시적인 성과가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며 “공사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해 ’낙동강 수질오염 제로 프로젝트‘가 주민들의 신뢰를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지난 15일 타계한 고(故)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과 2002년 대한민국을 한일월드컵 4강에 올려놓은 거스 히딩크 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히딩크 감독이 귀국할 때 인천공항에서 백 선생과 포옹하는 장면을 보고, 두 사람의 뜻 밖의 인연에 대해 사람들은 놀라워했다. 1980년대 민중운동가, 통일운동가로 알려졌던 백기완 선생이 2000년대 들어 문화운동, 축구, 월드컵으로도 젊은이들에게 다가왔던 과정을 백 선생과 동아일보, 개인적인 추억으로 회고해본다. 백기완 선생은 검은색 도포자락과 흰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연설솜씨를 뽐내시던 타고난 선동가였다. 대학시절 집회에서 먼 발치에서 봤을 뿐 개인적인 인연은 없었다. 그런데 1999년 1월 문화부 기자 시절 백 선생이 무슨 책을 쓰고 있다는 소식을 지인으로부터 들었다. 이후 우연히 대학로를 지나가다가 통일문제연구소가 눈에 띄었다. 허름한 단층집이었던 통일문제연구소 대문에는 ‘한 발자욱만 더’라는 시가 걸려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싸늘하게 추운 방 안에서 백 선생이 누비 옷을 입고 뭔가를 쓰고 계셨다. 방이 왜 이렇게 추운가 했더니 백 선생은 재정난으로 1년 전 통일문제연구소 문을 닫았다고 했다. 이름도 ‘통일마당집’으로 바꾼 상태였다. 그는 얼마 전 인천에서 문학강좌에 갔다가 온 이야기를 꺼냈다. 강좌를 마치고 사례금 20만원을 받고 돌아오는 길에 전철을 탔는데, 백 선생을 알아보고 자리를 양보하는 젊은이는 한 명도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혼잡한 지하철에서 호주머니에 있던 사례금까지 소매치기를 당하고 말았다. 그것도 모르고 지하철에서 우연히 만난 지인과 부천에서 술을 한잔 마시고, 계산을 하려고 했다가 주머니를 뒤져보니 돈이 없었다. 결국 술집 주인 아주머니에게 욕을 진탕 먹고 크게 낙심한채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당시 백 선생은 내게 “군부독재 보다 세상의 냉대가 더 무섭다”고 했다. 1992년 대선에서 김영삼(YS) 대통령이, 1997년 김대중(DJ) 대통령이 집권한 이후로 사람들은 민주화가 다 이뤄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1987년, 1992년 대선에서 민중후보로 출마했던 백기완의 존재를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았다. 백 선생은 “YS도, DJ도, 386세대 운동권 정치인들도 집권 후에 한번도 나를 찾아온 일이 없다”며 “박정희 때도 청와대로 초청된 적이 있었는데, 민주화 정권에서는 한번도 나를 청와대로 부르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백 선생은 주저 앉지 않았다. 통일문제연구소 문 밖에 ‘한 발자욱만 더’라는 벽시를 내걸고 마지막 희망으로 책을 썼다. 당장 책을 출판할 돈이 없으니, 선주문 형태로 책을 출판하겠다는 계획이었다. 먼저 책 값(5000원)을 송금해주면, 원고가 완성된 후 책으로 보내주는 방식이었다. 요즘 유행하는 ‘크라우드 펀딩’의 시초였던 셈이다. 이런 사연을 있는 그대로 동아일보 문화면에 박스 기사로 실었다. 다음날 기사에 함께 안내됐던 통일문제연구소 전화가 하루종일 울려댔다고 한다. 통일문제연구소 간사인 채원희 씨는 “거의 1분도 쉬지 않고 전화가 울려댔다”고 했다. 사람들은 “백 선생이 그렇게 어려운 줄 몰랐다” “그동안 연락 못해 죄송하다” “용기를 잃지 말라”는 말과 함께 책값을 보냈다. “고기값을 보내니까 고기 좀 드시라”는 할머니도 있었고 “내가 타고 다니던 그랜저를 보내 드리겠다”고 말한 중년 남자도 있었다. 며칠 만에 약 3000여 부의 책이 사전예매됐다. 백 선생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통일운동가 재야운동가 만으로 알고 있던 선입견이 깨졌다. 당시 백 선생이 그 때 펴낸 책 제목은 ‘벼랑을 거머쥔 솔뿌리여’였다. 그는 누구보다도 아름다운 우리 말과 우리 춤, 설화, 그림, 문학을 사랑해 온 문화운동가였다. ‘새내기’(신입생), ‘동아리’(써클), ‘모꼬지’(엠티), ‘달동네’(산동네)와 같은 지금은 널리 쓰는 우리말을 만들어낸 것이 백기완 선생이었다. 또한 ‘땅별’(지구), ‘한 살매’(인생), ‘덧이름’(별명), ‘새뜸’(뉴스), ‘몰개’(파도)와 같은 아름다운 말도 백 선생에게 배웠다. 책에는 백 선생이 어릴 적 황해도 해주에서 축구선수가 되고 싶어했던 꿈과 좌절했던 이야기, 한국인의 미(美) 의식과 대륙성에 관한 다양한 옛이야기도 담겼다.당시 문화면 편집의 책임자였던 한진수 문화부장은 사회부, 정치부에서도 오랜 경력을 가지신 분이었다. 한 부장은 백기완 선생과는 정치적 이념은 달랐지만, 한 시대를 풍미하신 분인데 그렇게 대접하면 안된다며 메이저 언론에서는 거의 다루지 않던 백 선생 인터뷰를 처음으로 실어주었다. 한 부장을 비롯한 문화부 데스크들과 나는 당시 동아일보 본사가 있던 충정로 사옥 뒷 골목에 있는 식당에서 여러차례 백기완 선생을 모셔서 민물매운탕에 소주잔을 기울이곤 했다. 이듬해 5월. 백 선생에게 전화가 왔다. 상기된 목소리였다. “전 기자, 내가 대학교수가 됐어!” 그는 “평생 공식 직함이나 월급 한번 받아본 일 없이 제도권 밖에서만 살아온 내게 교수 자리라니…”하고 말을 잇지 못했다. 한양대 안산캠퍼스 경제학부에서 백 선생을 1년 임기의 ‘겸임교수’로 초빙한 것이었다. 백 선생의 학력은 초등학교 4학년을 마친 것이 전부. 황해도에서 독립운동가 집안의 아들로 태어나 머슴보다도 가난하게 살았던 그는 독학으로 배움을 얻을 수 밖에 없었다. 한양대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일평생 그를 지켜온 사상은 무엇이냐고 물으니까 백 선생은 “나는 ‘노나메기’주의자”라고 대답했다.“마르크스와 레닌은 ‘사회주의 인간형’을 최고의 인간형으로 이야기했지만, 그 실험은 공산권 몰락으로 실패했지. 나는 우리의 전통적 공동체 사상인 ‘노나메기’야말로 인간 발전형태의 최고봉으로 꼽고 있지. ‘노나메기’는 ‘너와 내가 모두 다 잘 살되, 올바로 잘 사는 세상’이야. 미국이나 일본이 잘 산다고 하지만 올바로 잘 살지는 않지. 빈부격차와 환경오염없이 모두 함께 올바로 잘사는 세상이 ‘노나메기’의 세상이야.” 이듬해 동아일보 문화면에 ‘충돌! 두 文化’ 코너에 백기완 선생이 걸그룹 ‘핑클’의 공연을 보고 한국의 미(美)와 춤에 대해 평한 글이 실렸다. 흰 머리가 성성한 백 선생과 이효리, 옥주현, 성유리, 이진으로 구성된 4인조 걸그룹 핑클의 만남은 파격이었다. “그들의 공연을 보고 나서 나 역시 고개를 끄떡였다. 그들의 미적 돌파력의 교묘성과 여성적 공격력의 대담성이다. 그러나 그러면서 긴 한숨을 거둘 수가 없었다. 우리의 전통적 미녀상이라고 하면 ‘나네’를 친다. 여기서 ‘나네’란 말 그대로 언 땅을 지고 일어서는 봄의 새싹, 그러니까 비록 가냘프지만 쌓인 가랑잎과 두엄더미까지 박차고 일어서는 거룩하고 엄숙한 생명력이다.” 이 기고에 대해 ‘핑클’ 멤버들은 “백기완 선생님이 우리 노래를 듣고 춤을 보셨다고 해서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선생님이 누구인지 몰라 주위에 물어봤더니 ‘외곬수 재야 운동가’라고 해서요”라는 소감문을 보내왔다. 재야운동가 백기완과 걸그룹 ‘핑클’이 주고 받았던 문화적 충돌은, 그야말로 예상을 깼던 충격이었다. 그런데 한번도 상상조차 못했던 더 한 충격이 왔다. 바로 2002년 한일월드컵을 앞두고 정몽준 대한축구협회장이 백기완 선생과 대담을 한다는 스포츠부의 발제였다. 재벌그룹 회장과 평생을 노동운동, 빈민운동을 해 온 백 선생이 만나 대화를 나눈다니…. 아마도 대선에 뜻이 있던 정 회장이 진보 진영을 포용하는 이미지를 위한 포석이었는지도 모른다. 어릴 적 축구선수를 꿈꿨던 백 선생은 “‘공차기’(축구)를 주제로 대화를 나눈다면 흔쾌히 하겠다”고 수락하면서도, “내가 하는 말은 토씨도 바꿔서 실으면 안된다”며 정 회장과의 대담 기사에 조건을 달았다. 그래서일까. 당시 신문에 실린 두 사람의 대담은 마치 오디오가 지원되는 듯 생생하면서도 아슬아슬했다. ▽정몽준〓(앞 부분 생략)그러려면 우선 각국이 긴밀히 협조해 안전한 월드컵을 치르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백기완〓좋은 말씀을 하셨는데 이번 공차기큰잔치(월드컵)를 평화스럽게 치르기 위해 우리 민족 내부에서 한번 평화를 가져오는 방법을 모색해보면 어떨까요. 예를 들어 휴전선에 있는 초소를 남쪽이건 북쪽이건 공차기큰잔치 동안만 없애자는 얘깁니다.▽정〓좋은 말씀 같은데요. 그런데 초소를 없애자…. 하여튼 그런 식으로 해서 우리끼리 군사적으로 대치되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바깥에 보여주자는 말씀 아니에요.“월드컵 기간 동안에 남북이 휴전선에 있는 초소를 없애자”는 백 선생의 파격적인 제안에 정 회장은 “그런데 초소를 없애자…”며 말끝을 흐렸다. 기사에 ‘점점점’으로 표시된 말줄임표에서 정 회장의 당혹스러움이 느껴진다. 월드컵 100일을 앞두고 실린 이 흥미로운 대담은 장안의 화제를 낳았다. 두달 뒤인 4월. 정몽준 회장은 다시 한번 백기완 소장을 경기 파주에 있는 축구국가대표훈련원(NFC)으로 초청했다. 월드컵을 앞둔 대표팀 선수들에게 강연을 부탁한 것이다. 당시 백 선생은 선수들에게 “구라파가 주도하는 세계 축구에 기죽지 마라! 피구, 지단의 몸 값이 500억, 700억? 말이 안 된다. 상업화에 물들지 않은 우리는 서양의 덩치 큰 애들과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 16강이 뭐냐, 할 거면 으뜸이 돼야지!”라고 쇳소리가 섞인 격정적인 목소리로 강연을 펼쳤다. 이 강연에 가장 크게 감동한 것은 거스 히딩크 국가대표팀 감독이었다. 히딩크는 “진정한 한국인을 만난 것 같다”며 백 소장을 붙잡고 저녁식사를 대접했다. 이후 히딩크 감독은 월드컵 4강 신화를 쓰고 난 후 인천공항을 떠나면서까지 가장 만나고 싶은 사람으로 백기완 소장을 꼽았다. 결국 두 사람은 공항에서 재회해 감격스러운 포옹을 나눴다. 당시 백 선생은 히딩크 감독에게 “사람은 만났다 헤어지지만 뜻과 뜻은 헤어지는 게 아니라 역사와 함께 나아가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백 선생과는 개인적인 인연도 있다. 새해를 맞아 아내와 함게 은평구 기자촌에 있는 선생 댁으로 가서 사모님이 부쳐주신 전에 막걸리를 마신 적도 있다. 또 백 선생은 경희궁에서 열린 대학 친구의 전통 결혼식 주례를 서주기도 하셨다. 결혼식에서 나는 축문을 읽었다. 백 선생에게 축문은 어떻게 쓰는 것이냐고 물었더니 닭의 옛 이름인 ‘질라라비’에 관한 설화를 말씀해주셨다. 수천년 동안 인류에 의해 가축으로 길들여져 살던 닭이 옛살라비(고향)으로 돌아가 ‘질라라비’의 본성(本性)을 되찾고 송아지 만한 크기로 커졌다는 것이다. 한반도에 매여 살던 우리 민족이 대륙인으로서의 본성을 되찾고 훨훨 날아보자는 뜻이 담긴 이야기라고 한다. 그래서 결혼식 축문의 마지막 구절에선 새 신랑과 신부가 세상에 나아가 잘 살라고 ‘질라라비, 훨훨~’하고 축원을 한다는 것이다. 내가 축문을 다 읽고 태우는 순간, 경북 예천에서 온 신랑 가족들은 준비해 온 살아있는 장닭을 높이 허공에 날렸다. 시골에서 살다가 고속버스를 타고 온 닭은 예상외로 잘 날았다. 경희궁 뒷쪽 산 속으로 날아간 닭은 결국 찾지 못했다. “질라라비, 훨훨~!”백기완 선생이 히딩크를 만나서 포옹하게 되는 인연을 맺게 되는 데에 반드시 나의 역할이 있었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수많은 우연들이 쌓이고 쌓여서 그렇게 된 것일 뿐이다. 내가 백 선생과 만나 나눴던 인연은 사회, 정치적 이슈는 아니었고, 문화면과 관련된 분야였다. 18일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에서 백 선생의 영정에 조문했다. 빈소에서 백 선생을 투병생활 끝까지 보좌했던 채원희 통일문제연구소 간사를 만났다. “왜 이제 오셨어요! 백 선생님이 얼마나 외로워하셨는데요.” 해외 특파원 근무를 하면서 최근 몇 년간 찾아뵙지 못했는데 이 말이 가슴에 콕 박혔다. “대학로 통일문제연구소는 앞으로 어떻게 되나요?” “늘 그랬듯이 어떻게든 헤쳐나가봐야죠. 백 선생님이 늘 하셨던 ‘아리아리~!’라는 응원의 말처럼 힘내서 넘어가야죠.” 전승훈기자 raphy@donga.com}

《아취(雅趣)는 ‘고아한 정취, 취미’라는 뜻이다. 100세까지 살아갈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세가지 꼽으라면 건강과 친구, 그리고 취미다. 사람은 빵 만으로는 살 수 없다. 딴 짓도 하면서 살아야 한다. 더구나 100세까지 살아야 하는 시대라면. 평생 즐길 수 있는 한가지 취미는 삶의 훌륭한 동반자다. 현재의 나이와 상관없이 평생 가져갈 ‘백년의 취미’를 키워가고 있는 사람들을 취재한다. 》 ‘지즐대는 파도 소리 파도로써 돌리운/먼 또는 가까운/알맞은 어디쯤의 시인들의 나라/공화국의 시민들은 시인들이다.(중략) 시인이자 원정, 시인이자 목축가, 시인이자 어부들이/고기 잡고 마소 치고, 꽃도 심고, 길도 닦고…’ (박두진의 ‘시인 공화국’) 신세계문학회 대표이자 문학 계간지 ‘운율마실’을 펴내고 있는 임인호 씨(51)는 재정전문컨설팅 회사인 아이앰플래닝 대표다. 월급쟁이 시절이나 자기 회사를 운영하면서도 꾸준히 시(詩)를 써온 그는 “박두진 시인의 ‘시인 공화국’이 우리 문학회가 꿈꾸는 정체성”이라고 말했다. 박두진의 ‘시인 공화국’에는 목수도, 운전사도, 주부도 모두가 시인이다. ‘크다란 걸 마음하여 적은 것에 주저하고/이글이글/분화처럼 끓으면서 호소처럼 잠잠한’ ‘비수처럼 차면서도 꽃잎처럼 보드라운’ ‘미(美)를 잡은 사제면서 미의 구도자’ ‘사랑과 아름다움 자유와 평화와의/영원한 성취에의 타오르는 갈모자’인 시인들이 사는 공화국이다. 임 대표는 “문학이 더이상 특수한 계층의 전유물이 아닌 이 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우리 이웃들의 진솔한 삶을 담아내야 한다”며 ‘운율마실’ 창간의 변을 밝혔다. 더 이상 어려운 암호해독과 같은 난해한 시가 아니라 ‘일상성’과 ‘생활 속의 문학, 문학의 생활화’를 지향한다는 뜻이다. 그의 말처럼 신세계문학회에는 기성 문단에서 활동하는 시인도 있지만 주부, 건축가, 논술학원 강사, 택배기사, 중소기업체 CEO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문학을 사랑하는 모임이다. 신세계문학회는 2018년 초 학연과 지연 등 온갖 연줄로 꽉 짜여진 기성 문단과 문학회에 염증을 느낀 3명의 시인들이 모여서 결성했다. 그리고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1년 뒤인 2019년 봄에 ‘운율마실’이라는 문학 계간지를 창간했다. ‘운율마실’ 최근호(2020년 12월)에서는 강릉에 사는 시인 박용녀의 시 15편을 특집으로 조명했다. 강릉에서 우리식당을 운영하며 다섯자녀를 키운 박 시인은 운율마실을 통해 등단했다. 그의 시 중 한 편인 ‘쌀을 씻다가’는 막걸리와 같은 쌀뜨물을 보면서 막걸리를 좋아하는 엄마를 생각한다. ‘막걸리를 좋아하는 엄마/수화기 너머로/혀 꼬부라진 발음에/반가움보다/앙칼진 말 한마디로/엄마의 가슴을/후벼 팠던 나//막걸리 때문이 아니었는데/엄마의 입 속엔/세 살짜리 아이가 있었는데//세월이 나를 철들게 해도/다시 오지 않는/시간들/엄마의 술빵이고 싶다.’ “박용녀 시인은 학력도 변변찮고 맞춤법이 틀릴 때도 있다. 물론 신춘문예와 같은 기성문단에서 심사한다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그는 누구보다 시인이다. 식당을 운영하면서도 매일 열정적으로 시를 쓰고, 시를 사랑한다. 누가 이 사람을 시인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가. 글만 잘 쓴다고 되는 게 아니다. 그가 통과했던 삶의 영역, 굴곡, 일상 속에서 증명된 시가 우리가 추구하는 정체성이다.” ―‘운율마실’이란 뜻은 무엇인가. “역사소설 ‘금강’(총 10권)의 저자인 김홍정 작가가 만들어 준 제호다. 운율은 말 그대로 음과 리듬이 있다는 뜻이고, 마실은 ‘이웃에 놀러 나간다’는 뜻이다. 부담없이 마실을 다니는 것처럼 편안하게 서로 운율을 나눈다는 뜻이다. 문학을 어떤 사조나 학문으로 할 생각은 없다. 그냥 살아가는 이야기를 적는 것이다. 읽어주는 사람이 우리끼리라도, 자화자찬하는 격이라도. 우리 삶이 즐겁고 행복할 수 있다면, 진솔하게 가공하지 않은 그대로 그들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싶다.” ―기성의 문학 출판사들도 어려운 형편에 새롭게 문학잡지를 창간한다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일텐데. “김홍정 작가도 ‘희안하다. 쉬운게 아닌데’라고 하셨다. 당분간은 저를 비롯해 운영위원들이 십시일반으로 펑크나는 예산을 충당하면서 발행하고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문학회 정회원을 늘려가는 대중화를 통해 해결할 생각이다. 지금 신세계문학의 전체회원이 427명이고, 이 중 회비(연 10만원)를 내는 정회원은 42명이다. 만약 정회원 100명이 돼서 최소 일인당 5권의 책을 서로 구입하는 구조가 된다면 500권은 소모가 되고, 정회원이 1000명이 되면 1권씩만 사도 1000권이 된다. 이는 시집 출판시 1쇄에서 2쇄로 넘어가는 분기점을 마련해 준다. 다양한 후원회원 덕분에 필력은 있지만 책을 못내던 작가들의 출판비용의 부담을 덜 수 있고, 마음 놓고 발표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는 데 큰 의의를 두고 있다.” ‘운율마실’은 지난 2년간 기아자동차 후원으로 ‘청소년 문학상’을 시상했다. 앞으로는 성인들을 대상으로 한 ‘운율마실 문학상’도 신설할 계획이다. “문학도들에게는 원고료든, 상금이든 돈을 지불해야 좋은 글이 나온다는게 내 평소 지론이다. 문학잡지에 글이 실리면 원고료를 준다니까 처음엔 다들 놀라는 모습이었다. 기성작가들이나 원고료를 받지, 대부분의 문학잡지들이 신인이나 아마추어들에겐 원고료를 안주는 게 관행이다. 신인들은 ‘실어만 줘도 영광입니다’하는 분위기다. 운율마실은 아마추어 작가의 시는 2편에 3만원(편당 1만5000원), 기성작가의 시는 2편에 10만원(편당 5만원), 소설은 30만원 정도 원고료를 드린다. 물론 현재는 보잘 것없는 액수이지만, 앞으로 더 늘려나갈 생각이다.” ―시인들도 글을 써서 먹고 살 수 있는 ‘시인 공화국’이 가능할까. “우리 문학회에 사무국장을 하고 계신 분이 이상주 시인이다. 사업을 하다가 망해서 현재는 택배기사를 하고 있다. 택배를 하는 와중에도 정말 열정적으로 시를 쓴다. 옆에서 보기에 참 짠하다. ‘당신 같은 사람은 그냥 글만 써야 하는데’하고 말해주고 싶다. 시인으로 등단하더라도 꾸준히 시를 써 자기 시집을 내는 사람은 거의 없어지고 있다. 이들이 왜 글을 지속적으로 쓰지 못할까? 원고료를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이 안되니까 결국은 시인으로서의 삶을 끝내게 되는 것이다. 문인들이 가난해야 한다는 등식은 더 이상 성립할 수 없다. 작가들이 맘놓고 글을 쓸 수 있는 공간, 글을 써서도 먹고 살 수 있는 플랫폼을 발전시키고 싶다. 이를 위해 수많은 아마추어들이 일상에서 시를 쓰는 문학회의 대중화가 필요하다. 문학상을 시상할 때 웹시, 웹소설 분야도 개방할 예정이다. 운율마실이 다양한 작가들의 문운(文運)을 열어주고, 프로모션과 매니지먼트를 해주는 기획사 역할을 담당하고 싶다.” 임 대표는 은행에 다니다 ING생명에서 신화적 인물로 불렸던 스타 재정전문상담사(FC)였다. 2004년에 그가 펴낸 ‘세계 최고의 보험 전문가를 꿈꾼다’(도서출판 삶과 꿈)는 8쇄까지 발행될 정도의 베스트셀러였다. 고교시절 문예반이었던 그는 영업으로 바쁜 가운데도 꾸준히 시를 써왔다. ―시인으로 등단하게 된 계기는. “고객관리를 위해 우연하게 문복희 시인(가천대 교수)을 만났는데, FC였던 내게 시집 한 권을 선물하셨다. 나도 시를 쓴다고 하니까, 문 교수님께서 운영하시는 시 창작 교실에 오라고 초청해주셨다. 직장생활로 바쁜 나를 위해 대학로에서 저녁시간에 강좌를 만들어주셨다. 45세의 나이에 문학잡지인 ‘화백문학’과 ‘서정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신입사원들에게 재무설계나 영업에 대한 교육을 할 때, 기업체에서 강연을 할 때 끝날 때 즈음에 ‘제가 사실 문학도였는데 지금도 가슴 속에서 꿈틀거립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쓴 시를 한 편 읽어드리겠습니다’고 말하면 반응이 너무 좋았다. 고객을 만날 때도 책을 한 권 선물하면 느낌이 달랐다. 특히 문학을 좋아하는 고객들은 더욱 감동했다.” ―45세면 늦은 나이는 아닌가. “45세에 등단한 이유는 개인적으로 준비한 연금이 개시되는 해였기 때문이다. 45세까지 은퇴 후 삶에 대한 준비를 끝내놓고, 이후부터는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을 해야겠다는 것이 내 인생의 플랜이었다. 29세부터 45세까지 약 15년간 연금을 계속 부었다. 내가 재무설계사로서 한창 잘 나갈 때, 영업을 잘해서 내 연봉이 2~3억 대였다. 그 돈을 함부로 쓰지 않고, 월 1200만원 씩 연금을 부었다. 45세부터는 죽을 때까지 연금이 월 평균 450만원씩 나오도록 준비했다. 지금도 회사는 운영하며 돈을 벌고 있으니, 인생 후반기에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제대로 해보고 싶은 마음에 본격적으로 시를 쓰고, 문학회 일을 맡게 됐다.” ―인공지능(AI)의 시대 21세기에도 시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 같은 것이다. 세상의 변화와는 반대로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인간의 본성과 정체성에 대한 회귀본능이 꿈틀거리고 있다. 인생의 어느 순간이든지, 자신을 되돌아보고 성찰해보는 시간이 온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더욱 그런 욕구들이 강렬하게 드러나는 것을 발견한다. 요즘에는 목욕을 하면서도, 칼국수를 먹으면서도, 커피를 마시면서도 머릿 속에서 떠오르는 시상을 재빨리 메모해 둔다. 퇴근 후 저녁에 천천히 살을 붙여가면서 시를 쓴다.” ―현대 시는 너무 어렵지 않은가. “요즘 문학잡지나 신춘문예에 당선된 시를 읽어보면 그런 것이 사실이다. 마치 암호해독 하는 것 같다. 우리나라의 성리학적 양반사상에 근간을 둔 관습이 문학판에도 만연됐다는 생각이 든다. 자기들만의 암호놀이에 빠지는 것이다. 그들에게 배운 사람이 그런 글을 쓰면 시인으로 뽑아준다. 신춘문예도 누가 심사하느냐에 따라서 풍이 달라진다. 그래서 사실 독학해서 맨땅에 헤딩하듯 글을 써서 당선되기란 쉽지 않다. 해체와 상징으로 가득한 난해한 암호가 학계에서 시를 가르치는 교수들의 사조가 되다보니, 두 번 세 번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는 시가 범람한다. 그들만의 잔치가 벌어진다. 자기들은 암호를 해독하면서 ‘신선하네’하면서 즐거워하지만, 대중성에서는 공감을 받을 수가 없다. 우리 문학회는 그 방향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시인들도 무시하지 않는다. 틀린 것이 아니고, 다른 것일 뿐이니까 인정한다.” ―문학회에는 어떤 시인들이 있나. “삶 속에서 생활시를 쓰는 분도 있고, 프로 시인에 도전하며 신춘문예를 준비하고 계신 분도 있다. 문예창작과 박사과정에서 공부하는 공부벌레도 있다. 그런가 하면 부산에서 사업을 하는 CEO인데, ‘와인’과 ‘사랑’이란 두 가지 주제로만 시집을 3권씩이나 낸 분도 있다. 누구는 너무 가벼운 시가 아니냐는 비판을 할 수 있지만, 나는 묻고 싶다. 당신은 언제 시집을 3권이나 내 보았느냐고. 그 분은 나름대로 기여한 것이다. 어느 출판사 대표는 그 분의 시집 때문에 먹고 살 수 있었을 것이다. 그 분이 시집 한 권을 거래처에 선물할 때 주고받은 기쁨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문학은 머리로 하는 학문이 아니다. 정말 이대로 가다가는 문학이 대중들의 외면을 받고 사라질지도 모른다. 삶에 체화된 문학만이 이 시대의 뜨거움과 차가움을 진솔하게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전승훈기자 raphy@donga.com}

《부산 해운대는 대표적인 여름휴양지다. 그러나 겨울에도 따뜻한 해변을 호젓하게 걷고, 해외여행이 어려운 시기에 이국적 야경을 감상하는 경험은 특별하다. 녹슨 폐선 철로와 원자력발전소가 보이는 풍경, 옛 공장을 재생한 카페와 현대 건축물 투어도 눈길을 끈다. 자연적으로 형성되고, 사람들이 걸어 온 길에는 예술이 쌓인다. 여행지에서 문화의 향기를 찾아가는 ‘아트로드’를 부산 해운대 해변 길에서 시작한다.》 바다열차는 늘 마음을 설레게 한다. 국내에서 해변과 가장 가까운 열차로는 강릉~정동진~삼척을 잇는 바다열차가 으뜸이었다. 그런데 지난해 말 동해와 남해의 해변풍광을 한꺼번에 즐길 수 있는 새로운 해변열차가 등장했다. 부산 해운대 미포와 청사포, 송정에 이르는 4.8km에 조성된 ‘블루라인 파크’. 동해남부선 옛 철로를 재생한 해변열차다. 바다가 보이는 통창을 향해 극장처럼 가로로 길게 2열로 만든 좌석에 앉으면 와이드스크린 영화를 보는 듯한 스펙터클이 쏟아진다. 해운대의 엘시티 고층빌딩부터 해송 숲, 청사포의 횟집과 송정해수욕장의 서핑족…. 날씨 좋은 날에는 멀리 쓰시마섬이 보이기도 한다. 전기 배터리 충전으로 시속 15km로 운행되는 이 열차(왕복 1시간)는 마치 유럽 도시에서 운행되는 트램 같은 분위기다. 1935년 일제강점기에 건설된 동해남부선(부산진~울산~경주)은 오랜 시간 동안 해운대, 경주 등의 관광지를 찾는 추억의 철길로 각광을 받았다. 이른 봄에 조선 쪽파(실파)로 향긋한 봄 향기를 전해주었던 ‘동래파전’이 유명해진 것도 동해남부선 덕택이다. 넓은 파밭으로 유명한 기장에서 난 쪽파를 상인들이 기차를 타고 동래역으로 실어 날랐고, 각종 해물과 쪽파가 어우러진 동래파전이 전국적인 명성을 얻게 됐다. 바닷가 절벽을 굽이굽이 달리던 동해남부선의 옛 철길은 2013년 장산 내 터널을 통과하는 복선전철이 뚫리면서 폐선됐다. 이후 영화 ‘건축학개론’처럼 철로 위를 걷는 연인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그로부터 7년 후. 이곳엔 다시 바다열차가 들어섰다. 강원도 탄광지역이나 북한강 지역에선 폐선 철도에 레일바이크를 주로 놓았지만, 이곳에는 해변열차, 스카이캡슐, 덱로드 산책로 등 3차원으로 해안절경을 즐길 수 있는 철길공원이 조성됐다. 이 길은 바다열차만 타고 감상하기엔 아쉽다. 이곳의 해안 숲길은 갈맷길, 해파랑길, 문탠로드라는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걷기 명소이기 때문이다. 바다열차와 산책로를 구간별로 오가며 다양하게 감상하는 것이 좋다. 영화 ‘해운대’에서 하지원이 횟집을 운영하던 미포는 ‘누워있는 소’ 형상인 와우산의 꼬리(尾)에 위치한 포구다. 이곳에서 달맞이고개 방향으로 언덕을 오른다. 해송이 울창한 숲길의 이름은 문탠로드다. ‘선탠’이 아니라 은은한 달빛에 젖는 길이라는 뜻이다. 이 길에 있는 해월정은 동해와 남해를 가르는 경계선이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니 바다와 해송 숲 사이로 달리는 해변열차와 4인승 캡슐이 마치 스위스의 산 속 풍경을 연상케 했다. 달맞이고개 터널에서 광안대교 방향의 풍경을 즐기고, 청사포에서 몽돌해변의 ‘와르르’하는 파도소리를 들으며 잠시 쉬어간다. 바다 위로 70m 정도 길게 나와 있는 청사포의 다릿돌 전망대는 바닥이 투명한 유리창으로 돼 있어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면 끝까지 가기 힘들다. ‘푸른 뱀(靑蛇)의 전설’이 이어져오는 청사포 다릿돌은 원래 용왕제를 지내던 곳. 산 위에서 내려다보면 다릿돌 전망대는 휘어진 뱀 모양으로 금방이라도 바다에 뛰어들 듯하다. 청사포의 감성 넘치는 버스정류장과 빨간색, 흰색 등대는 인스타그램의 사진 찍기 명소다. 해변열차의 종착역인 송정역은 동해남부선의 간이역이었다. 경쾌하고 소박한 모양의 송정역(1941년 건축)은 출입문을 박공지붕 중심선에 맞추지 않고 왼쪽으로 치우치게 배치했다. 세 쪽의 작은 창도 왼쪽으로 치우쳐 있다. 이를 보고 어느 건축가는 “사람으로 치면 입 한쪽을 씩 올리며 반갑게 웃는 형상”이라고 했다. 철길 옆에 있는 노천대합실(1967년 건축)도 눈길을 끈다. 천장의 삼각 트러스와 기둥 윗부분의 장식이 특히 매력적이다. 아르누보 스타일 철제 장식으로 고품격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송정역 이후로도 바닷길은 기장군 방향으로 계속 이어진다. ‘갈맷길 1코스’로 불리는 기장 해안 길은 요즘 가장 핫한 카페 명소로 뜨고 있다. 유현준, 곽희수 등 전국적인 인지도를 자랑하는 스타건축가들이 디자인한 ‘로쏘’ ‘웨이브온’ ‘메르데쿠르’ 등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카페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2018년 한국 건축대상 본상을 수상한 ‘웨이브온’은 두개의 박스형 공간이 엇갈리게 교차하면서, 임랑해수욕장의 해암(海巖)과 절벽, 소나무 숲이 어우러진 바다풍경을 360도로 조망할 수 있는 카페다. 옥상에 올라가보니 고리원자력 발전소가 보이는 뷰에도 젊은 연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커피를 마시고 있다. 세련된 건축물이 기피시설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지역의 분위기를 하루아침에 바꿔놓았다. 기장 해안 길을 걷다보면 힐튼호텔 아난티코브 리조트도 만난다. 회원제로 운영되는 콘도이지만 최근 문을 연 미디어아트 갤러리 ‘캐비네 드 쁘아쏭’(Cabinet de Poisson)은 예약을 통해 일반인도 관람할 수 있다(성인 1만5000원). 프랑스어로 ‘물고기 연구실’이란 뜻의 이 갤러리에 들어서면 꽃이 그려진 흰색 가운을 입은 두 명의 연구원이 안내를 해준다. 미디어 아트를 통해 관람객이 터치를 하면 빛과 물, 불, 바람이 번져나가고, 꽃과 폭포가 쏟아지는 환상의 세계를 걷다보면 마치 영화 ‘아바타’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 도시의 밤은 낮보다 아름답다부산 해운대는 산과 바다, 강이 어우러진 천혜의 절경이지만, 미래도시를 방불케 할 만큼 초고층 빌딩이 하늘을 찌르고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그중에서도 군용 비행장이 있었던 수영만 일대에 조성된 센텀시티는 그야말로 현대 건축의 경연장이다. 영화의전당, 신세계백화점, 벡스코, 부산시립미술관까지 건축물과 미술품을 감상하는 것도 해운대 여행의 묘미다. 정성식 해운대문화관광해설사와 정규섭 부산건축문화해설사와 함께 2시간 가량 센텀시티를 답사했다. 부산국제영화제의 개·폐막식이 열리는 영화의전당은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처럼 해운대 예술의 랜드마크적인 건물이다. 독일 뮌헨의 BMW센터를 지은 쿱 힘멜브라우가 설계한 해체주의 건축물인 영화의전당은 바닥부터 건물 전체가 현무암으로 장식돼 있다. ‘비프힐’ ‘시네 마운틴’이라는 이름에서 보듯이 건물 전체가 땅에서 솟아난 화산처럼 보인다.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캔틸레버(외팔보)’ 지붕을 버티고 서 있는 ‘더블콘’ 건물은 아이스크림 콘 2개를 엎어놓은 듯한 모양이다. 더블콘과 시네마운틴은 우아한 곡선의 통로로 공중에서 이어지는데, 원래는 유리로 만들어 부산영화제 참석배우들이 관객들 앞에서 걷는 용도로 설계했지만 건축법상 불가능해 알루미늄판을 씌워놓았다고 한다. 영화의전당 앞에 서 있는 커다란 조각품은 앞에서 보면 여인 형상인데, 옆에서 보면 부산을 상징하는 갈매기처럼 보인다. 그러나 시드니오페라 하우스처럼 해변에 홀로 서 있으면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을 이 건축물은 주변에 워낙 고층빌딩이 많이 들어서는 바람에 생각보다 잘 눈에 띄지 않아 아쉬웠다. 방추성 영화의전당 대표는 “영화의전당과 수영강변의 APEC나루공원 사이가 자동차 도로로 단절돼 있다”며 “도로를 지하화하고 연결시킨다면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관객들에게 영화의 감동을 더욱 느끼게 할 공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영화의전당을 나오면 세계 최대의 매장면적을 가진 백화점이라는 기네스북 인정을 받은 신세계백화점 건물이 나온다. 내외부가 소라의 형상처럼 부드럽게 말려올라가는 독특한 형태다. 특히 내부에도 1층부터 9층까지 비어있는 ‘보이드(Void) 공간’이 동그랗게 말아 올라가며 모습은 운율을 느끼게 한다. 신세계백화점을 개발하면서 온천수가 터져 조성한 스파랜드를 비롯해 내부에는 미술전시를 하는 갤러리와 극장, 영화관이 있는 복합문화공간이다. 이처럼 부산의 건축물에는 소라, 갈매기, 새, 파도, 산과 같은 부산의 자연환경에서 영감을 받은 디자인이 많다. 센텀시티의 대표적 건축물인 벡스코(BEXCO) 전시장은 날아가는 새의 날개를 형상화한 모양이다. 또한 벡스코 오디토리움 건물은 앞에서 보면 배에 물이 튀는 형상의 구멍이 숭숭 뚫려 있어 거대한 상선이 파도를 헤치고 운항하고 있는 모습처럼 보인다. 부산시립미술관과 벡스코 전시장으로 둘러싸인 아늑한 공간에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지어진 현대미술작가 이우환의 개인미술관이 있다. 이름은 ‘이우환의 공간’이다. 검은색 유리와 콘크리트로 지어진 건물 뿐 아니라 잔디밭에 지어진 야외 전시장까지 작가가 직접 디자인한 공간이다. 이 곳에는 ‘선으로부터’ ‘점으로부터’ 등 13점의 회화 작품과 돌과 금속으로 된 조각까지 현대미술 작가 이우환의 예술을 총체적으로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이다. 부산 해운대의 주요 건축물을 탐방할 때는 해운대구청이나 부산건축제사무국에 요청을 하면 전문적인 해설을 들을 수 있다. 밤이 되자 해운대에는 엘시티 건물 위로 보름달이 떠올랐다. 해변에서 바라보는 고층빌딩의 야경은 이방인에게 낯선 외로움을 더욱 부채질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핫한 야경명소는 동백섬 입구에 있는 ‘더베이101’이다. 광안대교의 보랏빛 조명과 마린시티의 형형색색 불빛이 바닷물에 거울처럼 비치는 모습은 휴대전화 카메라로도 충분히 멋지게 담긴다. ◆ 맛집 ◆◇ F1963=부산 수영구 망미동에 있는 옛 고려제강 수영공장을 재생한 복합 문화공간. 테라로싸 커피숍, YES24서점, 복순도가, 수제맥주 프라하 등 전시장과 공연장, 대나무숲길, 달빛정원 등이 옛 공장시설과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 에그라상=촉촉한 크로아상 빵에 부드러운 계란, 햄과 블루베리가 어우러진 샌드위치가 맛있는 집. 부산 동래구 충렬사로 68.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