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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가 재창궐하는 요즘. 관공서나 은행은 물론 식당에 들어갈 때도 어김없이 체온계 앞에 서야 한다. 행여나 미열이 있어 37.5도 이상이 나오면 출입금지를 당하고, 확진자가 된다면 사회적 격리를 당해야 한다. 바야흐로 1~2도의 체온 상승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실감하는 시대다. “아이가 어렸을 때 열이 39도까지 오른 적이 있어요. 해열제로도 열이 내리지 않아서 한밤 중에 아이를 업고 병원 응급실로 달려갔죠. 사람은 체온이 조금만 올라도 위급상황이 닥치는데, 마찬가지로 거대한 생명체인 지구의 평균온도가 3도에서 6도 이상 오른다면 우리의 환경과 생태계는 과연 어떻게 될까요?” 9일 충남 공주시 연미산 자연미술공원 정상에 세워진 ‘노아의 방주’ 앞에 선 설치미술가 이경호 씨(53)는 “코로나 위기가 이렇게 갑작스럽게 닥치게 될지, 이렇게 길게 위력을 발휘할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며 “기후위기도 어느날 갑자기 우리에게 치명적으로 다가올 것”이라고 말했다. ‘노아의 방주-오래된 미래, 서기 2200년 연미산에서’라는 제목의 이 작품은 2150년 인류가 기후위기를 잘 못 대처해 남극, 북극의 만년설이 녹아내려 지구의 해수면이 70m 상승한 상황을 설정했다. 다시한번 지구에 ‘대홍수’가 발생해 노아의 방주가 지어지고, 이 방주는 그로부터 50년 후인 2200년 연미산자연미술공원 산꼭대기에서 거꾸로 처박힌채 발견된다는 상황을 묘사한 것이다. 코로나 사태 속에서 열린 ‘2020 금강자연미술비엔레(총감독 임수미)’ 참가작 중 관람객들의 눈길을 가장 많이 끌어 모은 작품이다. 이 작가는 지난 여름 목공 전문가인 장태산, 조상철 작가, 디자이너 엘라와 함께 프로젝트그룹 UStudio를 결성했다. 이들은 산 속에 71일간 방주를 만들기 위해 무더위와 장마와 태풍과 싸웠다. 장맛비로 질척이는 땅 때문에 트럭이 못 올라가 참가자들이 목재를 일일이 손으로 날랐다. 막판에는 태풍 마이삭이 불어닥쳐 지어놓은 방주가 한꺼번에 날아갈 위험에 마음을 졸이기도 했다. 결국 계획보다 한달 이상 늦어진 후 높이 11m, 길이 11m, 폭 16m의 방주가 완성됐다. 그는 “시간이 흐르면 나무가 썩어 사라질 수 있도록 만들었다. 모든 걸 손으로 직접 만들다보니 노아가 된 듯한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이 작가는 1987년 프랑스 디종미술학교에 입학한 후부터 2000년까지 프랑스에서 설치미술, 미디어아트, 조형예술 등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1989년에는 파리 퐁피두센터에서 파격적인 퍼포먼스 작품으로 주목을 받았고, 1999년에는 프랑스 살롱드존팽트르 50주년 기념전에서 'Espace Paul Ricard' 상을 받았다. 그는 “젊었을 때는 제 안의 에너지를 분출하기 위한 퍼포먼스를 했는데, 결혼 후 아이를 낳게 되면서 자녀가 살게 될 미래를 생각하는 작업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가 기후위기에 본격적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009년 생태 사상가 토머스 베리(1914~2009) 연구 모임인 ‘지구와 사람’의 회원으로 활동하면서부터. 학계, 법조계, 기업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 환경을 생각하고 공부하는 모임인데 그는 예술분야에서 기후변화 위기를 주제로 한 작품을 만드는 역할을 맡았다. 창원, 울산, 광주 등 각종 비엔날레와 전시회에서 녹아내리는 빙산을 형상화한 설치작품을 발표했고, 밀라노, 서울, 베이징, 파리 등 전세계를 여행하며 하늘에 떠다니는 검은색 석유덩어리인 플라스틱 봉지들을 드론으로 촬영해 환경오염을 경고하는 미디어아트 시리즈를 발표하기도 했다. “어느날 꿈에 베니스 산마르코 광장에 녹아내린 거대한 빙산이 거꾸로 서 있는 모습을 봤어요. 현재의 추세라면 2100년까지 지구 평균기온이 3.7도 상승할 것이라 합니다. 2℃이상 상승하면 지구가 생태복원력을 잃어버려요. 우선 바다에서 거대한 산소공급원인 산호, 플랑크톤이 모두 멸종됩니다. 지구 인구의 3분1이 몰려 사는 해안 도시들이 물에 잠기면 수십억명의 난민이 발생해 전쟁과 테러가 끊이지 않을 겁니다.” 공주 연미산에 설치된 노아의 방주 내부로 들어가면 ‘데드라인 1.5’라는 기후위기를 경고하는 동영상이 상영된다. 지구의 평균기온 변화를 1.5℃ 이내로 제한하지 못한다면 해수면 상승으로 서울 광화문, 파리 에펠탑, 인도 타지마할, 뉴욕 자유의여신상 등이 물에 잠기는 장면을 형상화한 미디어아트다. 또한 방주 내부에서 노아가 비둘기를 날렸던 창문에는 무지개빛 패널과 조명이 설치됐다. ‘희망’을 상징하는 무지개다. 지금이라도 인류가 노력한다면 기후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기적을 이룰 수 있다는 메시지다. 그는 이를 위해 우선 자기 자신부터 5년 전부터 디젤차를 버리고 전기차로 이동수단을 바꿨고, 사는 아파트에도 태양열 전기를 도입하며 탄소제로 활동을 동참해왔다. “학자나 교수들의 1,2시간 강의보다는 예술가의 작품이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세계에 어마어마한 팬클럽을 가진 BTS와 블랙핑크와 같은 K팝스타, 세계적인 자동차 제조회사인 현대자동차 정의선 회장, 이우환, 아이웨이웨이와 같은 유명 미술작가들에게 호소하고 싶습니다. 1%의 기업인과 예술인들이 먼저 탄소제로 활동을 실천하고, 대중들의 생각을 바꿀 수 있게 한다면 우리는 기적을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다음은 이경호 작가와의 일문일답. ―산 속에 방주를 만드는 데 어떤 어려움을 겪었나. “처음엔 바닷가에 난파된 배를 주워다가 사흘만에 연결시켜서 지으려했다. 그런데 목공전문가인 장태산, 조상철 작가의 도움으로 원래 계획대로 목재로 짓게 됐다. 4명의 프로젝트 참가자와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 관계자들까지 모두 도와 작업을 완성했다. 비가 와서 트럭이 산으로 올라갈 수가 없었다. 목재들을 참가자들이 손에 들고 개미처럼 일렬로 서서 20m씩 전달하면서 산으로 다 올렸다. 말 그대로 노아가 한 방식처럼 일했다. 비엔날레 측에서 4명의 팀원들에게 약속한 인건비는 총 260만원이었다. 일인당 65만원 씩 나눠가졌다. 작업기간이 71일 걸린 걸로 치면 하루 1만원도 안되는 일당이다. 전문 목수에게는 말도 안되는 돈이었지만, 의미있는 작품이라고 열정적으로 작업해주신 선생님들에게 감사드린다.” ―2150년에 왜 대홍수가 난다는 설정을 했는가. “2014년에 발표된 기후변화에관한정부간협의체(IPCC) 5차 기후변화 평가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추세대로라면 2100년까지 산업화 이전 대비해 지구평균 기온이 3.7℃ 상승할 것으로 예측됐다. 3.7℃ 상승은 엄청난 것이다. 지구 평균 기온변화는 2℃ 이상이 되면 자체 회복력이 불가능해 변화가 가속화한다고 한다. 그래서 ‘데드라인 1.5’라는 제목이 붙은 것이다. 평균온도가 2℃만 올라가도 해양이 산성화돼 플랭크톤이 다 죽는다. 그러면 조개는 물론이고 어류의 먹이사슬이 끊어져 바다생물이 멸종하게 된다. 아무 대책이 없다면 2150년에는 5~6℃까지 상승할 수 있다. 남극과 북극의 만년설과 빙하가 녹고, 바닷물의 온도가 뜨거워지면 부피가 늘어난다. 그래서 해수면이 최대 70m까지 상승한다. 2150년에 대홍수가 날 수 있다는 경고다.” ―기후위기가 발생할 시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인가. “난민문제다. 해수면이 높아지면 태평양과 인도양의 군소 섬나라들은 물에 잠긴다. 또한 식수가 염수로 변해 물을 마실 수 없게 된다. 섬나라 주민들은 대부분 육지로 탈출해야 한다. 이어 지구 인구의 3분의 1이 살고 있는 해안가 도시들도 물에 잠겨 대규모 난민이 발생한다. 시리아 전쟁도 가뭄으로 인한 식량난과 러시아의 밀수출 중단이라는 기후위기가 배경이다. 시리아라는 한 국가의 난민들이 유럽으로 탈출하면서 엄청난 문제를 야기했다. 이 와중에 영국이 유럽연합(EU)을 통해 들어오는 난민을 거부했고, 결국 브렉시트로 이어졌다. 우리나라도 제주도에 예멘 난민이 들어왔을 때 난리가 났다. 이에 비교도 할 수 없는 엄청난 기후위기 난민이 발생할 때 전쟁과 테러, 폭동의 소용돌이에 빠질 수 있다. 호주에서는 기후위기로 아시아의 35억 인구 중 약 10억 명의 난민이 발생할 것으로 예측하고, 이들이 호주로 몰려올 것에 대한 대책을 준비해야 한다는 보고서가 최근 나왔다.” ―코로나와 기후위기는 무슨 관계가 있나. “야생동물이 살아가는 열대우림이 파괴되면서, 야생동물이 서식해야 하는 장소에 인간이 침범하고 있다. 그래서 박쥐를 비롯한 수많은 야생동물을 숙주로 하는 새로운 바이러스가 인간의 몸으로 전해질 위기가 커진 것이다. 코로나바이러스 자체도 어떻게 보면 기후난민인 셈이다. 야생에서 살아야 하는 데 인간으로 옮겨왔기 때문이다. 올해 코로나 사태 때문에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에 관람객들이 더 많이 몰린 것은 아이러니다. 야외에서 하는 전시라 답답한 마음을 달래러 나온 사람도 있었지만, 기후변화에 대한 관심이 커진 탓일 것이다.” ―기후변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나. “유럽에서는 2030년 이후 내연기관 자동차 판매금지를 추진하고 있다. 파리의 이달고 시장은 2025년 도심 디젤차 운행금지를 선언했고, 시내 외곽에 주차장을 마련하고 대중교통을 늘리고 있다. 지하철에서 괴한을 만났을 때 ‘살려주세요!’하면 사람들이 눈치를 보면서 서로 피한다. 그런데 ‘거기 파란색 옷 입은 분 저 좀 살려주세요!’라고 꼭 찍어서 도움을 청하면 그 사람이 바로 달려오게 마련이다. 그래서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큰 1%의 셀럽들에게 먼저 부탁하고 싶다. BTS의 RM은 전세계 팬클럽 아미(ARMY)에게 전해달라. BTS가 먼저 내연기관차 대신 전기차를 타면서, 아미팬들에게 기후변화에 대해 행동에 나설 것을 촉구해주세요. 세계적인 자동차메이커인 현대자동차 정의선 회장님! 로봇회사인 보스턴다이나믹스 인수를 축하합니다. 불이익이 있겠지만 앞으로 내연기관차 생산보다는 세계적인 명품 전기차와 수소차 생산에 최선을 다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온실가스 배출의 주범인 석탄화력발전소를 늘려 짓는 것을 당장 멈춰주시고,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세계4대 ‘기후 깡패국가’(Climate Villain)로 불리는 현실에서 탈출하게 해주시길 바랍니다.”전승훈기자 raphy@donga.com}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재창궐하는 요즘. 관공서나 은행은 물론 식당에 들어갈 때도 어김없이 체온계 앞에 서야 한다. 행여나 미열이 있어 37.5도 이상이 나오면 출입금지를 당하고, 확진자가 된다면 사회적 격리까지 감수해야 한다. 바야흐로 1∼2도의 체온 상승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실감하는 시대다. “아이가 어렸을 때 열이 39도까지 오른 적이 있어요. 해열제로도 열이 내리지 않아서 한밤중에 아이를 업고 병원 응급실로 달려갔죠. 사람은 체온이 조금만 올라도 위급 상황이 닥치는데, 생명체인 지구의 평균 온도가 3도에서 6도 이상 오른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요?” 9일 충남 공주시 연미산 자연미술공원 정상에 세워진 ‘노아의 방주’ 앞에 선 설치미술가 이경호 씨(53·사진)는 “코로나19가 이렇게 갑작스럽게 닥치게 될지, 이렇게 길게 위력을 발휘할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며 “기후위기도 어느 날 갑자기 우리에게 치명적으로 다가올 것”이라고 말했다. ‘노아의 방주―오래된 미래, 서기 2200년 연미산에서’라는 제목의 이 작품은 2150년 인류가 기후위기에 잘못 대처해 빙하가 녹아내려 해수면이 70m 상승한 대홍수 상황을 설정했다. 좌초된 방주는 2200년 연미산에서 거꾸로 처박힌 채 발견된다. 코로나19 속에 열린 올해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 참가작 중 관람객에게 가장 많은 주목을 받은 작품이다. 그는 지난여름 71일간 산속에 방주를 만들기 위해 무더위, 장마, 태풍과 싸웠다. 장맛비로 질척이는 땅 때문에 트럭이 못 올라가 작품제작자들이 목재를 일일이 손으로 날랐다. 막판에는 태풍 마이삭이 불어닥쳐 지어놓은 방주가 한꺼번에 날아갈 위험에 마음을 졸이기도 했다. 그는 장태산, 조상철 목공예 작가, 디자이너 엘라와 함께 프로젝트 그룹 UStudio를 결성해 높이 11m, 길이 11m, 폭 16m의 방주를 완성했다. 그는 “구약시대에 모든 걸 손으로 직접 만들었던 노아가 된 듯한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이 작가는 1987년 프랑스 디종미술학교에서 유학한 이후로 2000년까지 프랑스에서 설치미술, 미디어아트, 조형예술 등 다양한 작업을 해왔다. 1989년에는 파리 퐁피두센터에서 파격적인 퍼포먼스 작품을 선보였고 프랑스 현대미술계에서 주는 여러 상을 받았다. 그는 “젊었을 때는 제 안의 에너지를 분출하기 위한 퍼포먼스를 했는데, 결혼 후 아이를 낳게 되면서 아이가 살게 될 미래를 생각하는 작업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가 기후위기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009년 생태 사상가 토머스 베리(1914∼2009) 연구 모임인 ‘지구와 사람’의 회원으로 활동하면서부터다. 창원, 울산, 광주 등 각종 비엔날레와 전시회에서 녹아내리는 빙산을 형상화한 작업을 선보였고, 밀라노, 서울, 베이징, 파리 등 전 세계 하늘에 떠다니는 검은색 석유 덩어리인 플라스틱 봉지들을 드론으로 촬영해 환경오염을 경고하는 미디어아트 시리즈를 발표하기도 했다. “어느 날 꿈에서 이탈리아 베네치아 산마르코 광장에 녹아내린 거대한 빙산이 가득 차 있는 모습을 봤어요. 현재의 추세라면 2100년까지 지구 평균 기온이 3.7도 상승할 것이라 합니다. 2도 이상 상승하면 지구가 생태복원력을 잃어버려요. 바다의 거대한 산소공급원인 산호, 플랑크톤이 제일 먼저 멸종돼 해양 생태계의 먹이사슬이 끊어집니다. 인구의 3분의 1이 몰려 사는 해안 도시들이 물에 잠기면 수십억 명의 난민이 발생해 전쟁과 테러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되죠.” 연미산에 설치된 방주 내부로 들어가면 ‘데드라인 1.5’라는 기후위기를 경고하는 동영상이 상영된다. 노아가 비둘기를 날렸던 창문에는 무지갯빛 조명이 설치됐다. 지금이라도 인류가 노력해 지구 기온 변화를 1.5도 이내로 막는다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상징하는 무지개다. 그는 5년 전부터 디젤차를 버리고 전기차로 바꿨고, 사는 아파트에도 태양열 전기를 도입하는 등 ‘탄소 제로’ 활동에 동참했다. “학자나 교수들의 1시간 강의보다는 예술가의 작품이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 세계에 어마어마한 팬클럽을 가진 BTS, 블랙핑크 같은 K팝 스타, 현대자동차 정의선 회장과 이우환, 아이웨이웨이 같은 유명 미술작가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1%의 기업인과 예술인들이 먼저 내연기관 차량과 플라스틱 소비 줄이기를 실천하고, 대중의 동참을 호소한다면 우리는 기적을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공주=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민병헌의 ‘새’ 사진전을 보고구름 한 점 없이 날씨가 맑은 날. 스마트폰 카메라로 하늘을 찍으면 새파랗게, 단풍을 찍으면 타오르는 듯 붉게 나온다. 명암의 대비가 뚜렷한 원색(原色)의 향연! 누구나 폰카만 있으면 웬만한 프로 사진작가 못지 않게 찍어낼 수 있는 시대다. 그런데 서울 강남구 언주로 갤러리나우에서 만난 사진작가 민병헌의 사진은 달랐다. 다음달 2일까지 전시되는 민병헌의 ‘새’ 연작은 온통 희뿌연 사진들이다. 짙은 안개가 낀 바다 위, 구름이 잔뜩 낀 하늘, 눈인지 비인지 알 수 없는 진눈깨비가 내리는 호수에 새들이 날거나 앉아 있다. “보통 사진을 찍는다고 하면 햇볕이 쨍한 날 오후 2시에 전봇대를 찍잖아요. 파란 하늘과 흰구름, 그림자의 밝고 어둠의 콘트라스트(대비)가 강렬하죠. 그런데 현실은 늘 그런가요?” 민 작가는 일상에서는 오히려 흐릿한 빛이 더 많다는 사실을 일깨웠다. 가령 침대에 누워서 밤에 불을 끄고 있으면 빛이 희미하게 비친다. 그는 70년대 말에 사진을 처음 찍기 시작할 때부터 ‘사진은 거짓말을 못한다’는 사실에 매력을 느꼈다고 했다. “빛이 강한 것만 리얼리티가 있는 것일까요. 사진이란 결국 광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빛이 강하냐, 약하냐의 차이일 뿐입니다. 새벽 안개가 꼈든, 눈과 비가 오는 날이든 어떤 날씨에서도 빛은 결국 사실입니다. 단지 광선이 굉장히 어두울 뿐이죠.” 그는 요즘도 철저히 필름카메라로 찍고 암실에서 인화하는 아날로그 작업만 한다. 디지털 기술로 새 한 마리쯤 넣고 빼는 것은 식은 죽 먹기인 시대. 그는 컴퓨터 대신에 구름과 안개와 같은 날씨가 자연적으로 연출해주는 것만 이용할 뿐이다. 그래서 민 작가는 주로 비와 눈이 내리는 날에 카메라를 들고 나선다. 흐릿한 풍경을 찍느라 그의 카메라는 늘 습기에 젖어 있다. 그래서 몇 년 쓰지 못하고 고장이 난다. “제가 중형카메라로는 ‘롤라이플렉스(Rolleiflex) 6008’을 씁니다. 옛날엔 핫셀블라드를 썼는데 암실작업을 해보면 콘트라스트가 너무 강하게 나왔어요. 제가 추구하는 사진과 달라 바꿨어요. 롤라이플렉스가 단종되기 전에 미리 3대를 사놨어요. 그런데 이미 다 고장이 났어요. 카메라는 비맞고 눈맞으면 습기 때문에 고장이 잘 나기 때문이죠.” 그의 작업실은 17년간 경기 양평군 서종면 문호리에 있었다. 그는 양수리에서 새벽에 동트기 전에 안개가 진하게 꼈을 때 사진을 찍었다. 그는 5년 전부터는 전북 군산의 100년 된 고택으로 이사했다. 군산 인근의 서해 바다의 섬과 호수에서 새들을 찍는다. 그의 새가 있는 흐릿한 풍경 사진은 프랑스 출판사(Atelier EXB)에서 ‘DES OISEAUX’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간됐다. “저는 조류 연구가나 생태사진가가 아닙니다. 굳이 말하자면 어떤 대상을 보든지 화인 아트(Fine Art·순수 미술) 개념으로 보는 사람입니다. 하늘에서 새가 날아다니는 사진을 찍지만, 그것들이 이 화면 안에서 어떻게 아름답게 구성되는지에 관심이 있죠. 제 사진은 흐려서 가까이에서는 잘 안 보이지만, 오히려 조금만 떨어져서 보면 모든 것이 잘 보입니다.” 그래서일가. 어둑어둑하고 습기가 찬 듯한 그의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가라앉으면서 깊은 명상에 빠져든다. “갈매기 한 마리가 제게 상당히 가까이 날아왔을 때 찍은 사진입니다. 저녁이라 어두운 톤이어서 잘 안 보였는데 자세히 보니까 새의 가슴에 털도 보이고, 새의 눈을 보니까 생각이 느껴지더라고요. 그게 누구의 생각일까. 갈매기의 생각일까. 내 생각일까. 필름을 보면서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되면 암실에서 빛의 강약을 조절하면서, 어떤 부분은 더 흐리게, 더 어둡게 하고 싶을 때가 있어요. 그 감정을 극대화시키는 거죠.” 그는 암실에서 작업을 할 때면 웬만하면 밖에 나오지 않는다. 하루, 이틀 넘게 밤을 지새우는 날도 많다. 그럴 때면 밥도 암실에서 먹고, 심지어 용변도 암실에서 본다고 한다. 그는 암실 밖으로 나와버리면 광선이 바뀌고, 감정과 정서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사진 작품은 뒤늦게 똑같은 버전을 만들어 낼 수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인화지랑 각종 약품이 달라졌을 뿐 아니라, 암실에서 느꼈던 감정을 다시 찾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암실에서 작업할 땐 어떤 기분인가요. “암실에 들어가면 마음이 너무너무 편했습니다. 청소년기에 열등감이 반항심으로 이어졌고, 대학 때도 공부에는 관심이 없었어요. 그런데 사진에 빠지기 시작하니까 헤어나지 못하겠더군요. 열등감, 소외감 같은 것이 나를 암실이라는 공간으로 몰아넣었던 것 같아요. 암실은 내게 도피처였습니다. 어두운 그 공간이 너무 좋았어요. 물론 공부 열심히 한다고 1등하는 건 아닌데, 전세계 누구도 나만큼 암실에서 오래 있던 사람은 없을꺼예요. 정말 무식한 이야기죠. 그 정도로 암실 안에 있는 시간이 좋았습니다. 젊었을 때는 식음을 전폐하고 암실에 있었죠.” ―군산으로 이사하신 이유는. “원래 고향은 서울입니다. 5년 전에 촬영을 갔다가 마음에 드는 적산가옥을 발견했죠. 3년 동안 비어서 폐허처럼 돼 있던 집이었습니다. 군산의 구시가지가 너무 맘에 들었습니다. 제가 어릴적 종로5가 효제국민학교를 다녔는데, 서울이 대도시지만 당시만 해도 저녁 때가 되면 골목의 조용한 분위기가 있었어요. 낮은 건물 뒤로 해가 뉘엿뉘엿 질 때 아이들끼리 뛰어놀다보면 할머니가 욕을 하시면서 ‘밥차려 놨으니 빨리 들어와라’하고 소리치시죠. 군산의 도심지에 그런 분위기가 남아 있더군요. 시골에 전원주택 짓고 살 곳은 많아요. 그런데 도심인데도 그런 골목 분위기가 남아 있는 곳은 많지 않습니다. 더 늙기 전에 한번 살아보자는 생각이 들었죠. 앞으로 좀더 편안한 마음으로 다니면서 보는 풍경도 찍을 계획입니다.” ● 맺는 말민병헌 작가의 사진을 보면서 내가 그동안 스마트폰으로 찍은 인물 인터뷰 사진이나 풍경사진을 되돌아보았다. 신문에는 늘 명확한 초점과 밝은 조명 아래에서 선명하게 찍힌 사진만 실린다. 초점이 나가거나, 안개가 낀 흐릿한 사진은 실릴 수가 없다. 인터뷰 사진은 가급적 야외의 태양광 아래서 클로즈업 해야 하고, 풍경사진도 맑은 날 총천연색으로 찍힌 사진을 쓰게 마련이다. 그런데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어느날. 집으로 가는 아스팔트 길에 가로등 불빛이 비춰 반짝반짝 빛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마치 검은색 아스팔트에 작은 별들이 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순간적으로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다. 어둡고도 흐릿하게 번지는 빛이 때로는 사람의 마음을 위로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우리글진흥원(원장 손수호)은 24일 ‘2020년 공공문장 바로 쓰기 자치단체장’ 대상 수상자로 성장현 서울 용산구청장(소통 부분)과 이재준 고양시장(교육 부분)을 선정했다. 이 상은 바르고 쉬운 공공 문장을 일선 행정에 구현한 자치단체장에게 주는 상으로 2013년 제정됐다. 이들 자치단체장은 시민이 읽는 각종 안내문등을 알기 쉽고 정확한 글로 선보이고 공직자 국어 능력 향상에 애쓰는 등 공공문장 바로 쓰기에 모범을 보인 공적을 인정받았다. 우리글진흥원은 또 이날 ‘공공문장 바로 쓰기 시민운동상’ 수상자로 석준서 군(휘문고 2년)을 선정했다. 석 군은 올 한해 자치단체에서 잘못 쓴 공공문장을 33회에 걸쳐 바로잡아 우리글진흥원 홈페이지에 올렸다. 케첩통·러닝머신·헤어드라이어를 케찹통·런닝머신·헤어드라이기로 잘못 쓴 환경부의 재활용품 배출 안내문, 송림이 울창하게 ‘둘러싸여’를 ‘둘러 쌓여’로 적은 고성 화진포 안내문 등이다. 우리글진흥원 홈페이지에 올라온 공공기관의 잘못된 문장은 올 한해 830여 건에 달한다. 올해 시상식은 당초 26일 서울 관훈클럽 신영기금회관에서 열린 예정이었으나 코로나 상황을 고려해 해당 자치단체로 ‘찾아가는 시상식’으로 대체됐다. 이 상은 ‘공공문장 바로쓰기 운동’을 벌이고 있는 공익법인 (사)우리글진흥원에서 바르고 쉬운 공공언어 사용으로 소통을 촉진하고 국어 진흥에 애쓰고 있는 지방자치단체를 응원하기 위해 2013년 제정해 해마다 시상하는 상이다. ‘공공문장 바로쓰기 운동’은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영향으로 우리말글이 훼손되고 있는 가운데, 영향력이 큰 공공기관부터 우선적으로 공공언어 사용에서 전 국민의 모범이 되게 하자는 운동이다. 공공기관이 만드는 공문서 등을 사전 감수하고, 공직자 국어 능력 향상 교육을 실시하며, 잘못된 공공문장을 시민들이 바로잡고 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프랑스 파리에는 유서 깊은 누드 크로키 아카데미 ‘그랑 쇼미에르’가 있다. 모딜리아니, 샤갈, 자코메티, 호안 미로와 같은 유명 화가들도 다녔던 곳이다. 5년 전 파리특파원으로 근무하던 시절 친분이 있던 화가로부터 누드 크로키 강좌에 같이 가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학창 시절 이후로 한 번도 그림을 그려본 일이 없던 터라 자신이 없었고, 바쁜 업무에 치여 결국 포기했다. 올해 5월 초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갤러리 토포하우스에서 누드 크로키 아카데미 강좌가 열린다는 보도자료를 받았다. 파리에서 기회를 놓친 아쉬움이 남아 있던 것일까. 갤러리 측에 전화를 걸었다. “저 이거 배우고 싶은 데요!” ○ ‘선의 예술’ 누드 크로키 매주 목요일 퇴근 후 인사동을 찾았다. 수강생은 다양했다. 현직 화가도 있었지만 패션디자이너, 산업디자인과 교수, 사진작가, 필라테스 강사, 80대 제약회사 회장, 공무원…. 다양한 직종의 일반인이 인체 드로잉에 빠져 있었다. 모델의 동작을 그리는 데 주어진 시간은 3∼5분. 계속 포즈를 바꾸기에 눈과 손을 최대한 빨리 움직여야 했다. 첫 그림은 겨우 얼굴 부분에 동그라미 하나 그리는 수준에 머물렀다. 그리는 사람은 아마추어지만, 모델은 프로였다. 모델은 포즈를 취하기 전에 스마트폰에 준비해 온 다양한 음악을 틀었다. 한 무용수 출신 모델은 한 편의 현대무용 같은 작품을 보여주기도 했다. 2시간 동안 고난도의 애크러배틱한 동작을 이어가다 마지막엔 막대 소품을 들고 배를 찌르는 듯한 비극적 몸짓으로 마무리지었다. 퍼포먼스의 감동을 제대로 화폭에 담지 못하는 실력이 안타까웠다. 남성 모델은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탄탄한 근육으로 다져진 몸을 스케치할 때는 살아있는 다비드상을 보고 있다는 착각마저 들었다. 6개월의 연습을 통해 누드 크로키는 ‘선의 예술’이라는 걸 깨우쳤다. 인체에는 수많은 선(線)이 있었다. 마른 모델에게선 척추와 갈비뼈, 고관절 등 마치 해부학 교과서를 보는 듯 날카로운 뼈의 라인이 선명했다. 풍만한 체형의 모델은 부드러운 곡선의 향연이었다. 안타깝게도 3분 안에 모든 선을 다 그릴 수는 없었다. 선택해야만 했다. 살아 움직이는 모델의 퍼포먼스에서 감정을 뒤흔든 선을 탐구하고 기록해 나갔다. 어느덧 내 그림에서 역동적인 움직임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누드 크로키는 명상과 집중을 하는 ‘선(禪)’ 수련과도 비슷했다. 3분마다 한 장씩 정신없이 그리다 보면 2시간이 훌쩍 지났다. 수강생인 채승진 연세대 산업디자인과 교수는 “공부할 때 3분을 하더라도 몰입하는 경우와 2시간 공부해도 딴생각을 한 사람은 차이가 나게 마련”이라며 “크로키 때의 ‘몰입효과’가 머릿속 잡념을 없애줘 정신 건강에 좋다”고 말했다. 팔순의 나이에 누드 크로키를 시작했다는 동구바이오제약 이경옥 회장(82)은 “회사 일로 바쁘다가도 그림을 그리면 평안해지고 힐링이 된다”며 “나이 들어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경험은 내 삶을 더 도전적으로 만든다”고 말했다.○ “드로잉은 넓게 보고, 세밀하게 보는 훈련” 대부분 참가자는 연필이나 목탄으로 드로잉을 한다. 하지만 백범영 용인대 동양화과 교수는 먹물을 묻힌 붓으로 과감하게 인체의 곡선을 표현해내 보는 이들을 감탄하게 했다. “드로잉은 손으로 그리는 게 아니라 눈으로 그려야 합니다. 무엇보다 관찰력이 중요한데 ‘관(觀)’은 넓게 보는 것이고, ‘찰(察)’은 세세하게 보는 것이죠. 인체는 먼저 크게 골격을 보고, 세심하게 조목조목 그려야 합니다. 이것은 음식을 요리하는 법, 기업체 경영에도 다 적용돼요. 그림을 그려 보면 세상의 이치도 깨닫게 됩니다.” 패션브랜드 ‘데무(DEMOO)’를 이끌고 있는 디자이너 박춘무 씨는 “패션이란 결국 사람의 몸에 옷을 입히는 작업”이라며 “관찰과 표현의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10년 넘도록 꾸준히 크로키를 그려왔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서 필라테스 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샤샤 정은 6년 전부터 누드 크로키를 시작해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그는 “인체 드로잉은 몸을 연구하기에 좋은 도구”라고 말했다. 이달 초에는 수강생들의 그룹 전시회도 열렸다. 똑같은 모델을 그린 그림들인데도 각자의 직업과 성향에 따라 개성이 달랐다. 누드 크로키를 지도하는 이은규 화백은 “그림은 ‘그리움’에서 태어난 것”이라며 “동굴벽화에서 누군가 그리운 사람을 잊지 않기 위해 가장 간단한 도구로 이미지를 남긴 것이 크로키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프랑스 파리 몽파르나스 인근에는 유서깊은 누드크로키 아카데미 ‘그랑 쇼미에르’가 있다. 모딜리아니, 마르크 샤갈, 쟈코메티, 후안 미로와 같은 유명 화가도 다녔던 곳이다. 5년 전 쯤 파리특파원으로 근무하던 시절. 친분이 있던 화가로부터 자신이 다니는 누드크로키 강좌에 같이 가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참가비는 단돈 5유로(당시 약 7500원). 학창시절 미술시간 이후로 한번도 그림을 그려본 일이 없던 터라 자신이 없었고, 바쁜 업무에 치여 결국 가보지 못했다. 올해 5월초. 메일함을 열어보니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갤러리 토포하우스에서 누드크로키 아카데미 강좌가 열린다는 보도자료가 있었다. 파리에서 한차례 기회를 놓친 아쉬움이 가슴 속 한켠에 남아 있던 것일까. 메일을 받자마자 갤러리 측에 전화를 걸었다. “저 이거 배우고 싶은데요!” ●‘선을 탐구하는 예술’ 크로키 매주 목요일 퇴근 후 7시에 인사동을 찾았다. 수강생들의 직업과 연령대는 다양했다. 현직 화가와 미대 교수부터 패션디자이너, 산업디자인과 교수, 사진작가, 필라테스 강사, 80대 제약회사 회장, IT기업 회사원, 공무원….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이 인체드로잉에 심취해 있었다. 그들은 도대체 왜 크로키를 하는 것일까. 10여 명의 수강생들이 이젤을 놓고 둥그렇게 앉아 있다. 가운데 있는 모델의 동작을 그리는 데 주어진 시간은 3분. 곧바로 새로운 포즈로 바꾸기 때문에 눈과 손을 최대한 빨리 움직여야 했다. 3분에 그린 나의 첫 그림은 겨우 얼굴 부분에 동그라미 하나 정도 밖에 그리지 못했다. 그리는 사람은 아마추어지만, 모델은 프로였다. 모델은 본격적으로 자세를 잡기 전에 스마트폰으로 준비해온 음악을 틀었다. 클래식부터 가요, 팝송과 샹송까지…. 잔잔하고 아름답고, 때로는 슬픈 음악은 그리는 사람과 모델사이의 어색한 공간을 채워주었다. 모델협회에서 보내오는 모델은 매일 바뀌었다. 무용수 출신의 한 모델은 등을 활처럼 휘고, 온몸을 비트는 아크로바틱한 동작을 이어가다가, 마지막엔 기다란 막대 소품을 들고 자신의 배를 찌르는 듯한 비극적인 몸짓으로 마무리지었다. 비록 정지된 동작이었지만 마치 한 편의 현대무용을 본 듯한 퍼포먼스였다. 그 움직임을 제대로 화폭에 담지 못하는 내 실력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남성 모델은 또다른 매력이 있었다. 탄탄한 근육이 다져진 몸을 스케치할 때는 ‘내가 살아있는 다비드상을 그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6개월 정도 꾸준히 누드크로키를 연습하면서 크로키란 ‘선의 예술’이라는 걸 느꼈다. 인체에는 수많은 선(線)이 있다. 마른 모델에게는 마치 해부학 교과서를 보는 듯 울퉁불퉁한 뼈가 선명하게 보였다. 등뼈와 쇄골, 고관절, 갈비뼈, 치골…. 반면 풍만한 체형의 모델은 부드러운 곡선의 향연이다. 그러나 3분 안에 이 모든 선을 다 그릴 수는 없다. 화가는 그 중에서 선택해야 한다. 살아 움직이는 모델의 퍼포먼스에서 내 감정을 뒤흔든 선을 탐구하고 기록하다보면, 어느덧 그림에서도 역동적인 움직임이 느껴지게 마련이다. 또한 크로키는 명상을 하듯 고도의 집중을 하는 ‘선(禪)’ 수련과 비슷하다는 느낌도 들었다. 3분마다 바뀌는 자세를 정신없이 스케치하다보면 어느 샌가 2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린다. 수강생인 채승진 연세대 산업디자인과 교수는 “공부를 할 때 3분을 하더라도 몰입하는 경우와 2시간 공부해도 딴 생각을 한 사람은 차이가 많이 나게 마련”이라며 “크로키 할 때의 ‘몰입효과’가 머릿 속의 잡생각을 비워줘 정신건강에도 좋다”고 말했다. 채 교수는 “디자이너를 포함해 조형예술을 하는 사람은 관찰력과 정확한 표현력이 필요한데, 누드크로키 만큼 좋은 연습은 없다”고 말한다. 그의 인체 드로잉에서는 뼈대나 구조, 해부학에 기초한 탄탄한 조형물 같은 느낌이 든다. 채 교수는 “매주 모델이 바뀌는데다 동작도 시시각각 변화하기 때문에 누드 크로키는 디자이너로서 자기 매너리즘에 빠지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늘 새로운 도전”이라고 말했다. 동구바이오제약 이경옥 회장(82)은 수강생 중 최고령이다. 2년 전 팔순의 나이에 누드 크로키를 처음 시작했다.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인 이 회장은 요즘 누드크로키 외에도 도시풍경을 펜과 수채물감으로 묘사하는 어반스케치도 배우고 있다. “이 나이에 누드크로키를 배우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감사하고 행복한 일입니다. 나이 들어서 새로운 것을 해보는 것은 내 삶을 더 도전적으로 위를 바라보게 합니다. 취미활동은 한가하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느슨할 때보다 오히려 바빠야 내 시간을 더 효율적으로 체크하고, 빠르게 움직이게 됩니다.” ●나는 왜 크로키를 그리는가 백범영 용인대 동양화과 교수는 소나무 그림과 산수화로 유명한 화가. 대부분 수강생들이 연필과 목탄으로 누드 크로키를 그리는 반면, 먹물을 묻힌 붓으로 과감하게 인체를 표현하는 그의 모습을 볼 때마다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화가는 손으로 그리는 게 아니라 눈으로 그려야합니다. 관찰에서 ‘관(觀)’은 넓게 보는 것이고, ‘찰(察)’은 세세하게 보는 것입니다. 인체 드로잉은 먼저 크게 골격을 보고, 세심하게 조목조목 그려야 하죠. 이 방법은 음식을 요리하는 법, 기업체 경영에도 다 적용돼요. 그림을 그려보면 세상의 이치도 알게 되는 법이죠.” 백 교수는 “서양화든 동양화든 회화는 같은 것”이라며 “화가에게 드로잉은 ‘밥’과 같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약처럼 특별할 때 먹는 것이 아니라 밥먹는 것처럼 매일 훈련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불교미술과 서양화를 접목시키는 작업을 하는 장용주 화백도 “동양화를 하는 사람은 매일 사군자를 그리듯이, 서양화의 기본인 데생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크로키가 필수”라고 말했다. 필라테스 강사 샤샤정(오산대 건강재활 겸임교수)은 2000년도부터 헬스클럽 퍼스널트레이닝(PT)에 필라테스를 접목해 대중화시킨 주인공이다. 그가 운영하고 있는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샤샤필라테스는 아나운서 최은경, 이정민과 배우 남규리 안선영 등 수많은 유명 연예인들의 몸을 관리해주는 곳으로 유명하다. 대학원에서 스포츠의과학을 전공하면서 몸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 그는 6년 전부터 누드크로키를 시작해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그가 필라테스 운동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 아크릴화도 센터 곳곳에 걸려있기도 하다. “사람들의 몸에 관심이 생기면서 인체드로잉은 몸을 연구하는 데 좋은 도구이기도 합니다. 모델의 동작을 보면서 근육과 뼈의 움직임을 봅니다. 모델이 몸에 힘을 줘 근육을 수축시킨채 3분 동안 버티는 동작은 엄청나게 고난이도의 ‘등척성(等尺性) 운동’이예요. 2시간 동안 음악을 들으면서 그림을 그리는 것 자체가 제 삶의 힐링타임이기도 합니다.” 패션브랜드 ‘데무(DEMOO)’를 이끌고 있는 디자이너 박춘무 씨는 2018년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데뷔 30주년 기념전시회에서 자신이 그동안 만들어 온 의상을 전시하면서, 한쪽 벽에는 자신이 그려 온 누드크로키 100여 점을 빼곡히 전시했다. 특유의 무채색의 아름다움을 펼치는 그의 의상과 텍스타일 디자인도 인기가 높았지만, 아름다운 누드크로키 그림 앞에서 인증샷을 찍는 관람객들이 쇄도했다고 한다. 박 씨는 “패션디자인은 결국 사람의 몸에 옷을 입히는 일을 하는 것”이라며 “인체에 대한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누드 크로키를 10년이 넘도록 꾸준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달 초에는 인사동 갤러리 토포하우스에서 누드크로키 아카데미 수강생들의 그룹 전시회가 열렸다. 똑같은 모델을 보고 그렸는데도, 각자의 직업이나 성격에 따라 개성있는 선으로 표현해낸 인체 드로잉은 비교감상하는 즐거움이 있었다. 1주일에 한번 하는 누드 크로키 아카데미의 수강료는 4개월에 40만원. 한달에 10만원 꼴인셈. 평생 기자로서 다른 예술가를 취재하고, 비평하는 일만 해왔던 내가 그림을 그리고, 그 작품이 갤러리에 걸리게 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누드 크로키 강좌를 지도하는 이은규 화백은 “그림은 ‘그리움’에서 태어난 것”이라며 “동굴벽화에서 누군가 그리운 사람을 잊지 않기 위해 가장 간단한 도구로 이미지를 남긴 것이 크로키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이 화백은 자신의 크로키 화집인 ‘이은규 Nude Croquis’ 서문에 이런 글을 남겼다. “사람의 모습도 우주의 역사만큼이나 무궁무진하다. 숨이 차 오를 때 벌떡이는 뱃골은 살아있음을 생생하게 느끼게 하고 근육과 피부는 뼈의 움직임에 따라 파도처럼 튀어오르며 뭉치고 뒤틀리며 맺히고 풀어지고 흐르면서 사라진다. 지상에서 오직 사람만이 내딛는 발은 대지를 할퀴듯 발가락을 꼬부리고 꼬부린 발가락은 신경줄이 팽팽하다. 곧게 뻗은 허벅지는 세상을 헤쳐나갈 꿋꿋한 버팀목이요, 자유로운 팔과 손은 공간을 휘젓고 조그만 눈은 먼 곳을 응시힌다. 봉긋이 솟아오른 가슴은 풍요로운 사랑이며 자연스럽게 흐르는 유연한 선은 벌판을 휘감고 도는 강줄기 같고 부드러운 허리선과 골반을 싸안은 엉덩이는 생명 그 자체이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파리바게뜨가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앞두고 합격 기원 메시지를 담은 수능 선물세트 30여 종을 출시했다. 이번 선물세트는 밝고 경쾌한 디자인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위글위글(Wiggle Wiggle)’과 협업해 재미를 더했다. MZ세대(밀레니얼세대와 Z세대를 통칭하는 말)의 취향을 반영한 위글위글의 귀여운 아트워크가 적용된 가방, 파우치, 스팀안대 등으로 구성됐다. 대표 제품은 위글위글의 시그니처 캐릭터인 스마일 위 러브(웃는 데이지꽃 일러스트)를 적용한 미니가방 안에 수면안대, 누가(꿀과 견과류를 섞어 만든 프랑스 과자)를 담은 합격펜, 후르티아 쨍쨍젤리 등 인기 간식으로 꽉 채운 ‘너의 든든한 백’이 있다. 또 위글위글의 하트 캐릭터를 적용한 붉은색 파우치에 수면안대, 누가를 담은 합격펜, 초콜릿 등을 채운 ‘합격을 부탁해 레드파우치’와 스마일 위 러브를 그려 넣은 파란색 파우치에 합격 누가캔디와 후르티아 쨍쨍젤리 등을 담은 ‘합격을 부탁해 블루파우치’ 등도 주력 상품이다. 상징적인 캐릭터와 ‘행운(Lucky)’ ‘넌 최고야(You’re the best)’ 등의 응원 문구를 새긴 선물세트도 내놓았다. △호박떡, 자색고구마떡 등 찹쌀떡과 달콤한 초콜릿으로 구성한 ‘넌 최고야, 합격 응원 세트’ △찹쌀떡과 초콜릿, 레드퀴노아 참깨바를 담은 ‘합격 스마일꽃’ △상큼한 유자찰떡과 초콜릿, 레드퀴노아 참깨바 등으로 구성한 ‘미리 합격을 축하해’ 등이다. 이 밖에 ‘복(福) 찹쌀떡’ ‘통째로 월넛초코’ ‘합격누가캔디’ 등 부담 없는 선물도 선보였다. 파리바게뜨는 수험생들의 긴장을 풀어줄 ‘홀로그램 응원 영상’도 준비했다. 이번 수능 제품 12종에 동봉된 홀로그램 키트를 조립해 휴대전화 위에 올려두고, 상자 겉면에 인쇄된 QR코드를 인식해 영상을 재생하면 파리바게뜨만의 특별한 홀로그램 응원 영상을 볼 수 있다. 한편 수험생들에게 비대면으로 응원의 마음을 전할 수 있도록 배달 및 픽업 프로모션도 진행한다. 11월 20일부터 12월 3일까지 2주간 해피오더 앱을 통해 수능 선물 기획 제품을 배달 및 픽업 주문 시 10% 혜택(최대 3000원) 쿠폰과 해피포인트 5% 적립을 제공한다. 파리바게뜨 관계자는 “코로나19 장기화 상황에서도 중요한 시험을 앞둔 수험생들에게 응원과 위로를 전하기 위해 수능 선물을 준비했다”고 말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기승을 부리기 시작하던 지난봄. 회사원 김인수 씨(32)는 낡은 TV를 과감히 버렸다. 그가 TV 대신 택한 건 가정용 빔 프로젝터였다. 재택근무는 물론이고 휴일에도 집에 있는 날이 많아지면서 그는 안방극장을 꾸몄다. 흰 벽만 있으면 굳이 대형 TV 없이도 100인치 이상의 큰 화면으로 홈시네마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었다. 넷플릭스, 인터넷TV(IPTV)에 있는 영화와 콘서트 실황을 대형 화면과 스피커를 통해 가족들과 함께 즐기면서 새로운 즐거움을 발견했다.》 집 안에서 여가를 보내는 시간이 중요해지면서 ‘안방 1열’이 만석을 기록하는 홈시네마의 시대다. 이제 홈시네마는 극장을 못 가는 아쉬움을 달래기 위한 대안이 아니다. 영화관보다 더 몰입해 영화를 즐기기 위한 적극적인 선택이 됐다. 홈시네마를 꾸미기 위해 대형 디스플레이부터 오디오까지 각종 설비들을 검색하고 구입하던 부담도 사라졌다. 뛰어난 성능의 빔 프로젝터로 누구나 극장 같은 대화면과 풍성한 음향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3.3m 스크린으로 차원 다른 몰입감 선사 극장 같은 홈시네마의 필수 요소는 벽면을 가득 채우는 초대형 화면, 조명을 켜도 보이는 선명한 고화질, 풍성한 사운드다. 삼성전자 ‘더 프리미어(The Premiere)’는 최대 3.3m의 초대형 화면에 트리플 레이저로 완성한 4K 초고화질, 풍성한 서라운드 사운드까지 스케일이 다른 성능으로 가정용 프로젝터의 프리미엄 시대를 열었다. 더 프리미어는 최대 3.3m까지 화면을 확장할 수 있어 영화부터 게임, 스포츠 경기, 홈트레이닝 등 모든 종류의 콘텐츠를 차원이 다른 몰입감으로 즐길 수 있다. 설치하기도 간편해 집 안 어디에든 놓고 전원만 연결하면 순식간에 극장이 된다. 더 프리미어는 초단초점 방식을 적용해 벽과 반 뼘(11cm) 거리만 있으면 어디서든 대화면 홈시네마를 완성해준다. 화면의 크기는 벽과 떨어진 이격거리에 따라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고 손쉽게 이동이 가능해 공간 활용성이 뛰어나다. 시청이 끝난 후에는 전원만 끄면 초대형 스크린이 단번에 사라져 화면이 있던 공간을 기존대로 깔끔하게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인테리어에도 유용하다. 제품 자체도 가볍고 콤팩트해서 셋톱박스, 게임기 등 주변 기기와 함께 두고 쓰기 편하다.○ 4K 초고화질… 화면 커져도 화질 생생 기존에는 빔 프로젝터로 영상을 보면 화면이 큰 대신 화질이나 색감이 선명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더 프리미어는 화면이 커져도 4K 초고화질을 생생하게 즐길 수 있다. 여기에 적색, 녹색, 청색의 각각 다른 레이저를 광원으로 사용하는 트리플 레이저 기술을 적용해 차원이 다른 풍부한 색감을 선사한다. 빔 프로젝터로 투사한 화면은 주변 조도에 영향을 받기 쉬운 만큼 밝기도 중요하다. 더 프리미어는 최대 2800안시루멘의 밝기를 지원해 빛이 완전히 차단되지 않은 환경에서도 형체와 색감을 또렷하게 표현해낸다. 안시루멘은 프로젝터 투사 밝기 단위로, 통상 800안시루멘 이상이면 흐린 조명을 켜둔 채로 실내에서 영상을 볼 수 있고 2000안시루멘을 넘으면 어느 정도 밝은 환경에서도 영상을 문제없이 볼 수 있다. 더 프리미어는 2800개의 촛불을 동시에 켠 것과 같은 밝기로 일반적인 극장의 4배에 달하는 수치다. 이뿐만 아니라 더 프리미어는 프로젝터 제품 중 세계 최초로 HDR10+와 필름메이커 모드 인증을 공식 획득했다. 콘텐츠에 따라 최적화된 시청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는 뜻이다. HDR10+ 기능으로 장면마다 밝기와 명암비를 최적화해 고화질 콘텐츠를 실제 눈으로 보는 것처럼 현실감 있게 감상할 수 있고, 필름메이커 모드와 200만 대 1 명암비를 지원해 원작자가 의도한 그대로 영상을 감상할 수 있다.○ 4.2채널 40W의 풍성한 사운드 초대형·초고화질에 생생한 음향이 더해지면 콘텐츠의 감동은 배가된다. 더 프리미어는 강력한 내장 우퍼가 적용된 4.2채널의 올인원 스피커를 갖춰 40W에 달하는 사운드로 공간을 채운다. 더 프리미어에는 고음을 담당하는 2개의 트위터와 저음 담당의 2개의 우퍼가 모두 내장돼 있어 입체감 있는 음향을 구현한다. 또한 어쿠스틱 빔은 총 44개의 사운드 홀을 통해 소리를 증폭해주는 원리로 깊이 있는 서라운드 사운드를 완성해준다. 따라서 효과음이 중요한 액션 영화부터 콘서트 영상, 현장감 있는 스포츠 경기 등을 더욱 생동감 있게 즐길 수 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에 대한 올바른 위상 정립을 논의하는 자리가 마련된다. 사단법인 대한민국순국선열유족회는 12일 오전 10시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순국선열 위상정립을 위한 공청회’를 연다. 국회·국가보훈처·국방부·광복회 후원으로 열리는 이번 공청회에선 헌법 전문에 순국선열에 대한 명문 규정 반영과 순국선열추념관 건립, 순국선열유족회 공법단체 법제화 추진 등을 논의하고 결의한다. 최범산 순국선열역사교육원장이 ‘순국선열 위상 정립’을 주제로 강연한다. 이어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이 ‘죽은 친일파 살아있는 친일파’를, 김병기 광복회 학술원장이 ‘독립운동가와 가족수난사’를 주제로 각각 강의에 나선다. 마지막으로 이동일 순국선열유족회장이 결의문을 낭독할 예정이다. 이동일 회장은 “국가유공자 중 최상위 개념인 순국선열에 대한 국가적 예우가 날로 쇠퇴하고 있다”면서 “광복 75주년을 맞아 경각심을 일깨우는 동시에 순국선열 위상 제고로 국가 정체성을 확립하고 국민통합·남북통일에 이바지하고자 한다”고 개최 의의를 설명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아트벨트’로 탈바꿈한 옛 철도관사, 대전 소제동 몸이 불편해 밖에 나가지 못하는 할머니를 위해 할아버지가 마당에 하나 둘 심었던 대나무가 방치된지 수십년 만에 울창한 숲이 되었다. 대나무로 유명한 전남 담양이 아니라 대전 시내 중심가인 소제동 골목길에서 만나는 뜻밖의 풍경이었다. 시원스럽게 길쭉길쭉 뻗은 대나무 숲 사이에는 사진을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젊은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마당 끝에 있는 한옥 건물인 ‘풍뉴가’에서는 브랜딩 차를 판다. 오래된 집 마당에는 집과 함께 늙어가는 나무가 한 두그루씩 있게 마련. 소제동 골목길 의 집들에도 철도관사 마을의 역사를 보여주는 나무들이 있다. 그 중 한 곳이 ‘두충나무집’이다. 두충나무는 뼈와 혈관 건강에 좋다고 소문이 난 한약재. 주인장이 약으로 달여 먹기 위해 나무껍질을 벗겨낸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집 안에 들어가보니 흑백사진을 찍을 수 있는 사진관이 있고, 오후 햇살을 받으며 마루에 앉아 느긋하게 볼 수 있는 만화도 있다. 대전역 주변에 있는 한국철도공사(코레일) 본사인 최첨단 쌍둥이 빌딩 뒤편에 시간이 멈춘 듯한 동네. 대전에서 가장 오래된 동네인 소제동의 100년 골목길이 긴 잠에서 깨어나고 있다. 음식점과 카페, 문화예술이 접목되며 젊은층과 장년층 모두가 찾는 뉴트로(New+Retro) 공간으로 급부상 중이다. ● ‘대전 블루스’…근대 철도도시 대전 대전을 상징하는 노래는 ‘대전 블루스’다. 여수는 밤바다, 부산은 갈매기가 주인공이지만, 대전 사람들의 감정이 이입되는 대상은 열차다. “잘 있거라~나는 간다”고 외치며 이별의 말도 없이 떠나가는 ‘대전발 0시50분’ 밤 기차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경부선과 호남선이 교차하는 대전은 철도와 함께 성장한 근대도시다. 1895년(고종32) 지방관계 개혁 때 ‘회덕군 산내면 대전리’로 승격된 대전은 당시 ‘거주자가 수십 호에 지나지 않고, 갈대가 무성하고 황량한 한촌’이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그런데 1905년 경부선 철도가 개통되면서 대전이 도시로 새롭게 태어났다. 원래 경부선이 공주를 경유하려 했으나, 계룡산을 뚫어선 안된다는 유림들의 반대로 무산되면서 ‘한밭 마을’이었던 대전이 근대철도 도시로 급속히 성장하게 된 것이다. 1914년 호남선 대전역까지 개통되면서 대전은 사통팔달의 요지로 탈바꿈했다. 소제동은 약 100년 전 근대도시 대전이 태동할 당시 철도부설을 위한 일본인들이 짓고 살던 관사에서 시작됐다. 1910년 대전역 주변에 남관사촌과 북관사촌, 1920년대 소제동 동관사촌이 생성됐다. 남관사촌과 북관사촌은 한국전쟁으로 파괴돼 거의 흔적이 없다. 동관사촌은 해방이후 서민들의 삶의 터가 되었다. 철도 개통으로 대전 인구는 급속히 늘었고 공장, 시장, 금융, 행정, 교육기관이 몰려들었다. 해방 직후 12만명이던 대전 인구는 1950년 한국전쟁 당시 100만명 이상으로 10배가량 늘었다. 어릴 적 대전역하면 생각나는 게 있다. 경부선에서 호남선으로 분기하느라 정차하는 5분 동안 열차에 급하게 뛰어내려 승강장에서 선채로 가락국수 한 그릇을 후루룩 흡입하던 추억이다. 이 기억 때문인지 대전은 여행의 목적지라기 보다는, 중간에 잠깐 쉬어가는 기착지라는 이미지가 강하게 남아 있다. 실제로 대전은 1993년 대전엑스포가 열려 반짝 관광객이 몰려들었지만, 이후 신도시처럼 콘크리트 건물 일색으로 개발돼 ‘노잼’(No+재미)의 도시가 돼 버렸다. 대전하면 ‘성심당 빵집’ 외에는 별 다르게 생각나는 먹거리도, 가볼만한 명소도 없는 도시라는 인식이 널리 퍼졌다. ● No잼 도시 대전? 소제동! 지난달 방영된 tvN의 예능프로그램 ‘서울촌놈’에서는 대전 출신인 골프선수 박세리, 배우 한다감, 개그맨 김준호 등이 출연해 차태현, 이승기와 함께 대전 곳곳을 둘러봤다. 이 프로그램의 주제도 역시 ‘대전은 노잼 도시인가?’였다. 한다감은 이 말을 반박하며 유서깊은 소제동의 골목길과 새로 생겨난 카페들을 소개했다. 소제동은 낡은 슈퍼와 철물점, 쌀집, 세탁소가 있는 30여개의 골목길로 이어진다. 서울 종로구 익선동 한옥마을에서 도심재생 사업을 주도했던 ‘익선다다’ 팀이 소제동의 옛 관사를 개조한 카페와 음식점 10여 개를 열면서 골목길이 변하기 시작했다. 좁은 골목길을 걷다보면 볼리비아의 우유니 소금 사막처럼 소금을 주제로 한 인테리어와 음식을 파는 식당, 로봇이 직접 드립커피를 추출하는 커피숍, 일본 온천을 모티브로 한 샤브샤브집, 하늘 높이 곧게 뻗은 대나무 숲에 둘러싸인 찻집 등 숨어 있는 맛집을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 곳에서는 지역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을 이용한 ‘로컬리즘’을 내세운다. 팬케이크 전문점 ‘볕’에서는 충남에서 생산된 밀가루를 사용하고, 레스토랑 ‘파운드’는 충청도 지역 기반 식자재로 요리를 한다. 서천김 페스토파스타, 예산 표고 트러플크림파스타, 금산 깻잎 리조토, 예산 꽈리고추 닭구이 등 충청도 지역에서 나는 농수산물로 메뉴를 구성했다. 여기에 대전의 청년문화재단인 ‘CNCITY마음에너지재단’이 후원하는 복합예술 문화행사인 ‘소제동 아트벨트’ 프로젝트도 진행됐다. 이 재단은 관사16호를 시작으로 마당집, 핑크집, 두충나무집 등 1920~30년대 지어진 관사를 활용해 전시와 공연을 할 수 있는 복합문화예술공간으로 만들었다. ‘관사16호’에 들어가 보면 근대시기 한국의 주거양식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안으로 들어서면 높은 천장, 드러난 서까래가 시선을 끈다. 실내로 처음 들어온 화장실, 온돌과 다다미를 사용한 방바닥 등 근대시기 한국의 주택 변화를 볼수 있다. 뒤로 연결된 대문을 나서면 또 다른 골목길로 이어진다. 소제동은 조선시대 우암 송시열(1607~1689)이 학문을 연구하고 후학을 지도하던 소제호가 있던 곳이다. 우암은 별당인 기국정을 짓고 유림과 제자들에게 성리학을 강론했다. 소제호는 일제시대 매립되고, 일부 흔적이 대동천으로 남았다. 소제동 인근의 대동천변 산책길은 아늑하고 편안한 느낌을 준다. ● 근대문화의 거리 VS 아파트 재개발관사촌의 일부는 지난 8월 문화재청에 근대 문화재등록 신청을 마쳤다. 풍뉴가와 관사 16호, 마당집, 두충나무집 등 4채다. 그러나 관사촌 밀집 구역이 아파트 재개발 사업에 포함돼 철거될 예정이어서 논란이 일고 있다. 힙한 거리로 뜨고 있는 서울 을지로와 성수동, 익선동 뿐 아니라 목포, 군산, 통영 등의 지방도시에서도 낡은 근대역사문화의 유산이 남아 있는 공간을 특색있는 문화의 거리로 꾸며 전국의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이러한 사례는 천편일률적인 아파트로 재개발하는 것보다 지역에 훨씬 더 높은 부동산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일제 당시 적산가옥이 밀집돼 있는 군산에는 작년에 200만 명이 찾았다고 한다. 김경수 경남도지사는 통영시 도심 재개발의 벤치마킹을 위해 소제동 관사촌을 찾아와 견학하기도 했다. 건축가 유현준은 ‘로봇 커피숍’이 있는 소제동을 인근의 대덕연구단지와 연계된 IT, BT 기업타운으로 개발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대전역은 전국의 어디서든 1시간 이내에 찾아올 수 있다. 소제동은 그런 대전역에서 걸어서 5분이다. 게다가 대전에는 카이스트를 비롯한 많은 연구소의 우수한 두뇌들이 배후에 위치하고 있다. 소제동의 독특한 공간적 컨텍스트와 대전의 인재들이 합쳐진다면 차고 창업이 일어나는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스마트타운이 만들어질 수 있다.” ● ‘소제동 아트벨트 프로젝트’ 황인규 대표(CNCIY에너지 회장) “대전이 철도와 함께 성장한 도시라는 점을 감안하면, 관사촌은 일제 강점기 역사가 아닌 ‘대전의 역사’와 정체성을 보여주는 공간입니다. 해방 이후에도 수십년간 대전 사람들이 살아온 생활 속 문화가 녹아 있는 현장이기 때문이죠.” ‘익선다다’와 함께 소제동 골목길을 문화예술복합공간으로 꾸미는 데 힘을 쓰고 있는 사람은 CNCITY에너지(전 충남도시가스)의 황인규 대표다. 도시가스는 대전의 땅밑에 회사의 전 자산이 묻혀 있다. 그래서 그는 대전이란 도시의 정체성과 미래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해왔다고 한다. 회사에 합류한 후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대전만의 오리지널리티(originality) 찾기. 그는 “검사생활하면서 여러 도시를 가보았는데, 도시마다 특산물, 특성이 있더라. 대전은 무엇일까 싶어서 거의 3년 동안 여기저기를 다녔다”고 설명했다. 서울대 법대를 나온 그는 검사가 되어 24년을 보내고 집안의 ‘가스사업’을 물려받았다. 작고한 대한도시가스의 창업자 황순필 회장이 선친이다. ‘소나기’의 황순원이 그의 큰 아버지이고 ‘즐거운 편지’의 시인 황동규가 사촌형이다. 이런 피가 흐른 탓일까. 그는 검사생활을 하면서도 합창단으로 활동하고, 파견근무를 하면서 문화를 접하는 일을 즐겼다. 황 대표는 “검사 생활도 의미 있지만 지역을 위해 뭔가 해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에 사직서를 내고 합류했다”고 밝혔다. 그가 대전의 오리지널리티로 손꼽은 곳은 대전 역사의 시작점인 철도와 근대건축물. 그는 목원대 건축학과 교수들과 대전 여러 곳을 찾아다녔다. 그러던 중 소제동 관사촌을 우연히 알게 됐다. “100여채까지 있던 관사가 현재 30여채 조금 넘게 남았어요. 소제동 옛 철도관사는 도시형성과 근대 생활문화가 층층이 쌓여 있는 ‘대전’이라는 도시 역사에 ‘켜’를 이루는 장소입니다. 이 장소와 건축물은 분명히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가질 수 밖에 없고, 지역에 커다란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CNCITY마음에너지재단이 추진한 첫 프로젝트는 관사촌을 전시공간으로 한 ‘소제동 아트벨트’ 프로젝트. 관사촌 16호를 시작으로 마당집, 핑크집, 두충나무집 등 이름을 정하고 각각의 특성을 살린 전시공간으로 조성했다. 관사촌을 문화시설로 활용하면 30여개의 소제동 골목길 특색을 살리면서 사람들이 찾고 즐기는 명소가 될 수 있다는 계획에서다. 그는 옛 충남도청, 동양척식주식회사 건물, 한남대 선교사촌 등 근대역사문화 공간을 전시와 음악을 위한 예술공간으로 꾸미는 작업도 추진하고 있다. 그는 “우리는 도시재생보다 새롭게 창조적인 공간을 만드는 것”이라며 “크리에이티브나 창의성은 다양한 공간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스토리는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젊은이들에게 아파트만 남겨주는 것이 좋을까? 대전의 미래와 후세를 위해 어떤 일을 하는 것이 좋은지 늘 고민하며 살아가고 싶다”고 말했다.전승훈기자 raphy@donga.com}

1990년대 중반 지방의 여중학생들 사이에 자연적으로 발생했다고 추정되는 빼빼로데이가 어느덧 24년째를 맞고 있다. 최근에는 토종 빼빼로데이가 글로벌 축제로 확산되고 있다. 롯데제과는 올해의 빼빼로데이 콘셉트를 전 세계인의 관심사인 코로나19와 관련해 ‘세계인의 안부를 묻다’로 설정했다. 빼빼로데이는 사랑과 우정의 콘셉트로 시작됐으나 최근에는 나눔과 상생의 콘셉트가 더해지고 있다. 빼빼로는 1983년 4월에 탄생해 올해로 출시 37세를 맞았다. 빼빼로가 지난 37년간 거둔 누적 매출액을 추정하면 약 1조7000억 원에 달한다. 또한 전 세계 50여 개국에 수출되는 인기 상품이다. 이렇듯 세계인의 브랜드로 인지도가 높아지자 롯데제과는 올 빼빼로데이에 맞춰 콘셉트를 ‘Say Hello’로 정하고 글로벌 시장에서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특히 올해는 카자흐스탄, 러시아, 중국, 싱가포르 등에도 이 콘셉트의 광고를 방영할 예정이다. 빼빼로 명성에 맞춰 사회공헌활동도 더욱 속도를 내고 있다. 대표적인 활동이 빼빼로 수익금으로 지어지는 ‘롯데제과 스위트홈’ 건립 사업이다. 2013년 전북 완주 1호점을 시작으로 올해로 8년째 이어진 스위트홈 건립은 농어촌 지역의 아이들이 방과 후에도 안전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공부하며 놀 수 있도록 세이브더칠드런과 공동으로 추진하고 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 7대 이사장을 지낸 이광희 전 서울시립대학교 교수와 홍익 미술협회 사무총장을 맡고 있는 변재진 전 대전과학기술대학교 관광과 교수가 공동 저자로 ‘도시를 살리는 문화 관광’(박영사·사진)을 출간했다. 시민들이 더 쾌적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현재의 문화유산과 문화예술 환경, 문화관광을 통해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관광객 유치와 지역사회 발전을 위한 정책 등 문화관광과 지역발전의 융합에 대한 이론과 사례를 정립한 책이다. 제조업 중심의 산업화시대가 퇴보하면서 실업과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 유럽의 한 도시가 유럽에서 가장 잘사는 도시로 변화한 과정, 오염된 채 버려지고 방치됐던 탄광과 조선소가 문화의 중심지로 다시 살아난 성공사례, 여러모로 배울게 많은 유럽문화수도 지정과 유럽문화루트 이야기, 자연자원이 없는 캐나다와 호주의 소도시가 기발한 아이디어와 스토리텔링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문화도시로 변모한 이야기 등 약 50개의 성공사례를 심도 있게 분석하고 있다. 1부에서는 쇠락하는 도시를 살려내는 ‘문화관광, 스마트시티를 넘어서 플레이어블 시티로 가는 길’을 시작으로 현대인이 즐기는 음악관광, 축제, 도시를 명소로 만드는 미술관광, 스토리텔링과 문학관광을 다룬다. 2부에서는 눈부신 성공신화를 만들어낸 유럽의 60여개 문화수도, 절망을 극복한 유럽의 산업도시, 산촌 오지마을과 외딴섬을 명소로 변모시킨 예술축제 등 지역주민의 삶이 담긴 예술을 통한 지역재생과 공동체 회복을 이야기한다. 이를 통해 저자는 우리나라의 도시민들이 더욱 행복하고, 쾌적한 삶을 영위하고 지방의 도시와 농촌이 문화관광개발을 통해 새롭게 번영하는 미래 한국사회의 비전을 제시한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개성 있는 삶을 뽐내는 시대. 작가가 손으로 직접 만든 공예품에 대한 인기도 높아지고 있다. 공방이나 갤러리, 전시장을 직접 찾아가야만 구입할 수 있었던 수(手)공예품을 온라인을 통해 거래하는 시장이 확대되고 있다. 미술품 경매사 케이옥션은 20일 국내 최초로 무관객 비대면으로 진행되는 ‘프리미엄 온라인 경매’를 통해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이 주최한 ‘2020 올해의 공예상’ 수상자인 하지훈 작가를 소개한다. 온라인 경매에는 총 6000만 원 상당의 하 작가의 대표작 20점이 출품된다. 한국의 전통적인 형태와 현대적인 소재, 색상을 창의적으로 접목한 소반, 수납장, 의자, 조명 등 다양한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작품은 현재 케이옥션 홈페이지와 서울 강남구 신사동 전시장에서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온라인 핸드메이드 마켓 플랫폼 ‘아이디어스(IDUS)’도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최근 ‘아이디어스’의 애플리케이션 다운로드 수가 1000만을 돌파했다. 심사를 거쳐 플랫폼에 입점한 작가는 본인이 만든 수공예 작품을 아이디어스 앱에 등록해 판매할 수 있다. 현재 약 1만9000여 명의 작가가 아이디어스에 입점했다. 수제화, 도자기, 가죽공예, 가구, 패션 액세서리, 인테리어 소품, 화장품 외에도 수제 먹거리, 생산자가 직접 등록한 농축수산물 등 총 30개 분야 약 26만 점의 작품이 거래되고 있다. 아이디어스에 따르면 입점 작가 상위 10%의 월 매출은 1000만 원 정도이며, 월 매출이 억대 수준인 스타 작가도 등장했다. 주문 제작 수제 커스텀 케이크 판매로 월 4억 원의 매출을 올린 케익팩토리의 김경석 대표다. 아이디어스를 운영하는 김동환 백패커 대표는 도예작가인 동생을 돕던 중 창업 아이디어를 떠올렸다고 한다. 그는 “홍익대 앞 곳곳에서 동생이 만든 투박한 그릇 파는 걸 도왔다”며 “이런 걸 사는 사람이 있을까 생각했는데, 예상외로 정말 잘 팔렸다. 구매를 원하는 소비자가 분명 있는데도 작가가 굶는 이유는 바로 ‘시장이 없어서’라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2019 공예산업 실태조사’에서도 공예작가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판매 유통망 강화’(77.7%)로 나타났다. 옥션 온라인 경매와 핸드메이드 전자상거래 플랫폼이 고독한 작가와 소비자를 연결해 주는 새로운 활로인 셈이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전쟁에 쓰이는 총알을 만들던 탄약정비공장에서 예술가들이 미래 꿈나무들의 창의력과 상상력을 키워줄 ‘아트탄약’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한젬마 강원키즈트리엔날레 예술감독) 올해는 6·25전쟁이 발발한 지 70주년이 되는 해이다. 접경지역인 강원도에는 전쟁과 분단의 긴장감이 여전하다. 하지만 철책과 철조망이 뒤엉켜 있는 이곳에 곧 예술의 꽃이 활짝 피어날 전망이다. 22일 개막해 다음 달 8일까지 열리는 국내 최초의 어린이 시각예술축제 ‘강원키즈트리엔날레 2020’이다. 옛 군부대 탄약정비공장과 와동분교, 홍천미술관 일대에서 무료로 열리는 이번 행사의 주제는 ‘그린 커넥션’이다. 자연과 환경, 동심을 의미하는 ‘그린(Green)’과 경계를 넘는 평화를 의미하는 ‘연결’(Connection)의 합성어다. 총 11개국 110명의 국내외 작가(어린이 작가 포함)가 참여하고, 350여 작품이 전시된다. 대표적인 전시인 ‘아트탄약전’이 열리는 곳은 강원 홍천군 결운리에 있는 제11기계화보병사단의 옛 탄약정비공장. 1973년 준공 당시부터 놓여 있던 폭발 방호벽, 컨베이어벨트와 탄약도장용 회전기계 등의 시설물들을 그대로 전시장 인테리어 소품으로 재활용했다. 이곳에는 ‘행복을 그리는 화가’로 유명한 스페인 출신의 에바 알머슨을 비롯해 50여 명의 국내외 작가들의 작품과 온라인 영상콘텐츠를 볼 수 있다. 작가가 직접 작품을 설명하고 예술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한 ‘아티스트 박스’ 동영상은 인터넷으로도 공개돼 어린이 예술교육을 위한 ‘아트탄약’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외부 마당에는 임옥상 화백의 ‘평화의 나무’와 순례길이 설치되고, 최정화는 탱크에 현충원에 헌화됐던 조화(造花)를 입혀 화해와 평화의 메시지를 전한다. 또 다른 주목할 만한 전시장은 와동분교. 1954년 개교한 후 62년의 역사를 끝으로 2015년에 폐교돼 잡초가 무성했던 곳이다. 유관순, 이순신, 방정환 선생의 동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와동분교는 어린이들을 위한 ‘예술학교’로 다시 태어났다. 와동분교의 외부 벽과 벤치, 의자, 교실은 비주얼 아티스트 빠키(박희연) 작가의 알록달록한 문양의 작품으로 단장됐다. 운동장에는 이 학교 졸업생인 박대근 작가의 ‘해피 버블버블’이 설치됐다. 비눗방울이 퍼져나갈 때 행복과 안도감을 표현한 작품으로, 수많은 타일조각으로 색이 입혀졌다. 능평리 마을주민과 와동리 동네 아이들, 와동초교 동창생들까지 자유롭게 조각을 붙이며 참여했다. 독일과 영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설치미술가 한석현 작가의 작품 ‘다시, 나무’도 인상적이다. 과거 이 학교에 심어져 있던 아름드리나무를 되살려낸 이 작품은 아이들이 안에 들어가 노는 ‘예술 놀이터’가 되기도 한다. 교실 내부에는 자연, 환경, 평화, 동심을 주제로 한 작품들이 전시돼 축제가 끝난 후에도 ‘아트스쿨’로 활용될 예정이다. 세 번째 전시장인 홍천미술관은 1956년에 지어진 구 홍천군청 건물(등록문화재 108호)을 문화시설로 활용하는 것으로, 노후 공공시설의 모범적인 재활용 사례로 꼽힌다. 만 6∼13세 미술영재, 자폐 및 발달장애 미술영재, 국제미술공모전 당선 어린이 등 총 51명의 어린이 작가 작품이 전시된다. 강원키즈트리엔날레는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을 기념해 강원도 전역에 문화올림픽 유산을 확산시키기 위해 마련된 행사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도 축제가 차질 없이 열리도록 온·오프라인으로 동시에 진행된다. 매일 오전 11시와 오후 1시에 작가들이 직접 참여하는 어린이 예술체험 아트클래스가 인터넷을 통해 공개된다. 또 디자이너 이상봉, 배우 윤석화, 이광기, 아나운서 손미나, 보자기 예술가 이효재, 유튜버 대도서관 등 어린이 예술교육에 관한 명사들의 토크도 온·오프라인으로 펼쳐진다. 1호 미술전문 MC, 방송미술인으로 이름을 날렸던 한젬마 예술감독은 ‘그린 커넥션’이란 주제에 맞춰 초록빛으로 머리카락을 염색한 채 매일 MC로 나선다. 3곳의 전시장을 모두 체험하고 스탬프를 받은 어린이들에겐 ‘강원키즈트리엔날레 예술교육 수료증’을 줄 예정이어서 학부모들의 관심도 높다. 한 예술감독은 “축제의 개념이 바뀌고 있다. 예술놀이터란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주겠다”며 “일회성 축제에서 벗어나 어린이는 물론 연인, 친구, 가족들이 즐겁게 찾을 예술명소를 지역의 자산으로 남긴다는 생각으로 준비했다”고 말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2일 개막하는 강원키즈트리엔날레2020“전쟁에 쓰이는 총알을 만들던 탄약정비공장에서 예술가들이 미래 꿈나무들의 창의력과 상상력을 키워줄 ‘아트탄약’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한젬마 강원키즈트리엔날레 예술감독) 올해는 6·25전쟁이 발발한 지 70주년이 되는 해이다. 접경지역인 강원도에는 전쟁과 분단의 긴장감이 여전하다. 하지만 철책과 철조망이 뒤엉켜 있는 이 곳에 곧 예술의 꽃이 활짝 피어날 전망이다. 22일 개막해 다음달 8일까지 열리는 국내 최초의 어린이 시각예술축제 ‘강원키즈트리엔날레 2020’이다. 옛 군부대 탄약정비공장과 와동분교, 홍천미술관 일대에서 열리는 이번 행사의 주제는 ‘그린 커넥션’이다. 자연과 환경, 동심을 의미하는 ‘그린(Green)’과 경계를 넘는 평화를 의미하는 ‘연결’(Connection)의 합성어다. 총 11개국 110명의 국내외 작가(어린이 작가 포함)가 참여하고, 350여 작품이 전시된다.대표적인 전시인 ‘아트탄약전’이 열리는 곳은 강원 홍천군 결운리에 있는 제11기계화보병사단의 옛 탄약정비공장. 1973년 준공 당시부터 놓여 있던 폭발 방호벽, 컨베이어벨트와 탄약도장용 회전기계 등의 시설물들을 그대로 전시장 인테리어 소품으로 재활용했다. 이 곳에는 ‘행복을 그리는 화가’로 유명한 스페인 출신의 에바 알머슨을 비롯해 50여 명의 국내외 작가들의 작품과 온라인 영상콘텐츠를 볼 수 있다. 작가가 직접 작품을 설명하고 예술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한 ‘아티스트 박스’ 동영상은 인터넷으로도 공개돼 어린이 예술교육을 위한 ‘아트탄약’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외부 마당에는 임옥상 화백의 ‘평화의 나무’와 순례길이 설치되고, 최정화는 탱크에 현충원에 헌화됐던 조화(造花)를 입혀 화해와 평화의 메시지를 전한다. 또 다른 주목할만한 전시장은 와동분교. 1954년 개교한 후 62년의 역사를 끝으로 2015년에 폐교돼 잡초가 무성했던 곳이다. 유관순, 이순신, 방정환 선생의 동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와동분교는 어린이들을 위한 ‘예술학교’로 다시 태어났다. 와동분교의 외부 벽과 벤치, 의자, 교실은 비주얼 아티스트 빠키(박희연) 작가의 알록달록한 문양의 작품으로 단장됐다. 운동장에는 이 학교 졸업생인 박대근 작가의 ‘해피 버블버블’이 설치됐다. 비눗방울이 퍼져나갈 때 행복과 안도감을 표현한 작품으로, 수많은 타일조각으로 색이 입혀졌다. 능평리 마을주민과 와동리 동네 아이들, 화동초교 동창생들까지 자유롭게 조각을 붙이며 참여했다. 독일과 영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설치미술가 한석현 작가의 작품 ‘다시, 나무’ 도 인상적이다. 과거 이 학교에 심어져 있던 아름드리나무를 되살려낸 이 작품은 아이들이 안에 들어가 노는 ‘예술 놀이터’가 되기도 한다. 교실 내부에는 자연, 환경, 평화, 동심을 주제로 한 작품들이 전시돼 축제가 끝난 후에도 ‘아트스쿨’로 활용될 예정이다. 세 번째 전시장인 홍천미술관은 1956년에 지어진 구 홍천군청 건물(등록문화재 108호)을 문화시설로 활용하는 것으로, 노후 공공시설의 모범적인 재활용 사례로 꼽힌다. 만 6세~13세 미술영재, 자폐 및 발달장애 미술영재, 국제미술공모전 당선 어린이 등 총 51명의 어린이 작가 작품이 전시된다. 강원키즈트리엔날레는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기념해 강원도 전역에 문화올림픽 유산을 확산시키기 위해 마련된 행사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감염증에도 축제가 차질 없이 열리도록 온·오프라인으로 동시에 진행된다. 매일 오전 11시와 오후 1시에 작가들이 직접 참여하는 어린이 예술체험 아트클래스가 인터넷을 통해 공개된다. 또 가수 인순이, 디자이너 이상봉, 배우 윤석화, 이광기, 아나운서 손미나, 보자기 예술가 이효재, 유튜버 대도서관 등 어린이 예술교육에 관한 명사들의 토크도 온·오프라인으로 펼쳐진다. 1호 미술전문 MC, 방송미술인으로 이름을 날렸던 한젬마 예술감독은 ‘그린 커넥션’이란 주제에 맞춰 초록빛으로 머리카락을 염색한 채 매일 MC로 나선다. 3곳의 전시장을 모두 체험하고 스탬프를 받은 어린이들에겐 ‘강원키즈트리엔날레 예술교육 수료증’을 줄 예정이어서 학부모들의 관심도 높다. 한 예술감독은 “축제의 개념이 바뀌고 있다. 예술놀이터란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주겠다”며 “일회성 축제서 벗어나 어린이는 물론 연인, 친구, 가족들이 즐겁게 찾을 예술명소를 지역의 자산으로 남긴다는 생각으로 준비했다”고 말했다.● 한젬마 강원키즈트리엔날레2020 예술감독 인터뷰강원키즈트리엔날레2020의 한젬마 예술감독은 베스트셀러 ‘그림 읽어주는 여자’의 작가이자 미술전문 MC, 미술방송인, 아트콜라보 디렉터로 유명하다. 선화예고와 서울대 미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후 왕성한 창작활동을 펼치는 화가이기도 하다. 한 감독은 “화가로서 방송에 나와서 미술전문 MC로 활동할 때 화단에서 ‘딴따라’라고 욕을 많이 먹었는데, 강원키즈트리엔날레를 준비하면서 내가 방송일을 했던 경력에 새삼스럽게 감사하게 됐다”고 말했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사태로 현장을 찾는 관객이 줄어들 수 밖에 없는 상태에서 현장에서 라이브 방송을 하며 온라인 콘텐츠를 크게 늘렸기 때문이다. 한 감독은 ‘그린 커넥션’이라는 주제에 맞춰 머리카락을 초록색으로 염색하고, 그린색 재킷과 치마, 구두까지 온통 그린 패션으로 무장한채 전시장을 오간다. ―코로나가 바꾼 미술전시장 풍경은 어떤 것인가. “코로나 이전에는 좀더 작가, 생산자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소비자 중심으로 변해가고 있다. 예전에는 작가의 작품제작에 관객이 참여하는 것이 가장 큰 박수를 받았다. 그런데 그 조차도 어려운 상황이다. 임옥상, 최정화 작가도 아이들과 함께 작업을 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100명의 아이들이 한꺼번에 모여서 작업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신 15명씩 7,8회에 나눠서 작업을 해야 한다. 작가 입장에서 볼 때는 훨씬 힘들어진 상황이지만, 소비자나 관람객 입장에서는 더 좋은 기회다. 100명 중의 한명으로 참여하는 것과, 15명 중의 한명으로 작가와 만날 때 질적인 차이는 크다.” ―예술감독의 역할은 어떻게 변화했나. “예전에는 미술전시회가 개막을 하면 감독이 전시기간 내내 행사장을 지킬 필요는 없었다. 예술감독은 작가선정과 설치까지가 주 임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행사장으로 관람객이 오는 것으로 행사가 진행되지 않는다. 행사 내용을 촬영해서 인터넷으로 공개해 외부에서 소비되도록 해야 한다. 사람들은 비엔날레 감독이 직접 도슨트로 설명해주는 것을 기대하는데, 도슨트 정도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보다 적극적으로 다가서는 스킬이 필요하다. 3주간 매일 홍천으로 출퇴근하면서 MC를 보게 됐다. ‘미술 MC’라는 타이틀도 다시 쓰게 됐다.” ―코로나 속에서 전시는 어떻게 진행되나. “관람객은 1시간에 30명으로 제한된다. 하루에 8회 입장 가능하다. 전시장이 3군데니까 하루 관람객은 720명이 최대다. 매일 오전 11시와 오후 1시에 작가들의 아트클래스가 진행된다. 작가들의 작품 체험프로그램인데, 교육청을 통해 수업 대용으로 사용하라는 공지가 나갈 예정이다. 전세계의 50명의 작가들이 20개씩 리미티드 에디션으로 예술체험 도구인 ‘아티스트 박스’를 만들었다. 총 1000개다. 이 중 매일 5개씩 인터넷 이벤트를 통해 온라인 관람객에게 제공할 예정이다.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갖고 직접 만든 도구이기 때문에, 아이들이 작품감상과 놀이, 체험, 교육이 한꺼번에 이뤄질 수 있다.” ―행사가 펼쳐지는 와동분교는 어떤 곳인가. “62년간 운영되던 학교가 2015년 폐교돼 폐허가 될 위기였다. 여기에 ‘다시 나무로’라는 한석현 작가의 죽은 나무로 다시 나무를 세운 설치작품을 통해 학교의 부활을 선포하고 있다. 그외 여러 예술가들의 작품으로 운동장은 예술놀이터, 교실은 작품화된 아트클래스로 재탄생했다. 감상의 대상이었던 공공조형물은 관람에서 놀이기구로 그 몫을 확대한 예술가의 노력이 담겨 진정한 예술놀이터의 현장을 탄생시켰고, 신관 교실에서는 단지 예술 수업이 이루어지는 곳으로서의 공간개념을 넘어서 천장 벽 바닥이 작품으로 입혀지고 설치됨으로써 그 자체가 예술품이 된 교실로 재단장됐다. 운동장의 이순신, 거북선, 유관순, 이승복, 방정환 선생 등의 옛 교정의 동상들 사이로 현대 작가의 작품들을 함께 배치함으로써 과거 현재의 소통을 전시화하고, 구관의 교실은 옛 교실의 모습을 그대로 살려, 어린이 창조교육의 자료를 제공하는 아트키즈플랫폼과 아트키즈 오픈 스튜디오를 마련하여 한껏 창작을 할 수 있는 어린이 아틀리에로 재편했다.” ―군부대 탄약정비공장이 전시장으로 탈바꿈했는데…. “총알을 정비하던 공장을 교육컨텐츠 정비소로 개념을 바꿨다. 예술가의 작품을 탄약으로 비유하고, 예술가의 작품을 어린이들을 위한 교육콘텐츠로 정비시켜 미래의 꿈나무들의 창의성과 상상력을 키워줄 수 있는 교육의 무기로 전환해 선보이는 전시장인 셈이다. 일명 ‘아티스트박스’로 명명한 온오프 디지로그 비대면 자율 학습이 가능한 예술의 도구를 탄생시켰다. 이번 축제를 통해 진정 예술의 몫이 무엇인가. 예술가는 이 시대에 어떤 기여를 해야 하는가, 이 시대적 질문의 답처럼, 본 행사는 시대 맞춤형 교육 콘텐츠 탄생을 이끌어낸 것이다. 예술가 스스로 자신의 작품을 모티브로 참여형 프로그램을 개발했고, 영상화시키고 아티스트의 개성이 넘치는 도구 박스를 선보임으로서 단지 도구나 놀이를 넘어선 예술이 줄 수 있는 다양한 상상의 세계를 꺼내고 연결하는 징검다리와 같은 ‘아트탄약전’을 마련한 것이다. 고미술에서 현대미술까지.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에바 알머슨과 같은 스타작가에서 국내 최고 아티스트 최정화, 임옥상, 홍승혜, 빠키, 한석현, 이진경, 아트놈, 박대근 등을 비롯한 10개국 50명의 국내와 작가들로. 게다가 탄약정비공장 앞마당에 한국 대표 민중 설치예술가 임옥상의 ‘평화의 나무’설치작과 설치예술가 최정화의 현충원에 헌정되었던 꽃을 수거하여 재사용한‘플라워 파워’ 탱크 설치작품은 평화를 향한 염원과 발현의 정수라 할 수 있다.” ―이번 축제를 준비한 과정은. “예술감독으로 선정된 올해 3월 말은 참혹했다. 코로나 19로 학생들은 등교가 금지됐고, 온라인수업조차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그 시국에 어린이 미술축제 감독으로 선정됐고, 세상 밖에 그 소식을 알리기도 조심스러웠다. 시대는 바뀌는데 축제에 대한 관념은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언택트’라는 신종용어가 급습했고, 비대면, 온라인, 초연결, 안전과 방역이 강조됐다. ‘그린’은 환경을 넘어서 우리 미래꿈나무들을 위한 구원의 방향성이 돼야하고, ‘컨택트’(접촉)는 불가하지만 ‘커넥션’(접속)이 방향성이 된 것이다. 행사개최는 최악의 설정을 가상하고 준비했다. ‘전시장에 사람들을 모으기 힘들다. 아니 위험하다. 어쩌면 상황에 따라서는 전시장인 폐쇄될 수도 있다.’ 축제에 사람들이 못 오는데 개최한다는 것은 사실상 말이 안 되는 상상이지만, 그 어떤 시점일지라도 당분간은 코로나 19 대응 단계를 예측할 수 없으며, 최악을 설정하고 준비하는 게 안전한 상황이었다.” ―이번 전시회가 기존의 비엔날레와 다른 점은. “개막과 폐막의 개념이 파기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행사의 개막을 기대하며 준비하지 않았다. 5월 5일 어린이날은 ‘내가 그린 그린’이라는 챌린지로 온라인으로 어린이 참여의 숨통을 트이게 했고, 공모전, 자문단 모집등의 프로그램으로 행사준비자체의 여정을 축제의 컨텐츠로 오픈했다. 행사는 이미 시작했으며, 끝나도 끝나지 않는 전시로 주제와 행사 준비 방향을 설정하였다. 둘째, 온라인 활용을 통한 초연결 접속으로 더욱 폭넓은 관객확보로 계획했다. 행사장 콘텐츠를 외부로 내보낼 온라인 프로그램 편성을 통한 축제 기간 내내 방송을 활용한 교육프로그램 중심의 유용한 행사로 준비했다. 코로나 시국 전이었다면 물밀듯 밀려왔을 어린이들의 장소였겠지만, 장소성 대신 콘텐츠 중심의 실어나르기 전략을 모색한 것이다. 셋째, 행사의 콘텐츠는 폐막 후의 상용화 용도가 극대화되어서 의미와 가치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 행사가 끝나면 전시물이 철거되고 비게 되는 전시장의 모습이 되지 않도록 했다. 행사비용으로 제작된 예술가 상자와 같은 교육 영상 및 꾸러미 콘텐츠는 행사 이후 더욱 폭넓게 상용화할 기회를 열게 될 것이고, 행사장의 공공미술품은 놀이기구로서 영구히 자리매김 될 것이고, 특히 폐교였던 학교가 본 기회로 아트스쿨로 재탄생되고, 의미 있는 어린이들을 위한 관광지가 될 것이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독일 베를린 중심가에는 홀로코스트 기념관이 있다. 물결치는 파도처럼 2700여개의 콘크리트 비석이 2차대전 당시 나치 독일정권하에서 자행된 유태인 학살을 기억하고 반성하게 한다. 9.11테러가 발생한 미국 뉴욕의 세계무역센터가 무너진 곳인 그라운드제로(ground zero)에는 ‘9.11테러 희생자 기념비와 박물관’이 있다. 비극적인 사건으로 희생된 사람들을 추모함과 동시에 생명의 소중함, 종교간 갈등, 인류애와 평화에 대한 희망을 성찰하기 위한 공간이다. 전세계에서 106만 명이 넘게 사망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희생자를 기억하고 추모하기 위한 공간도 기획되고 있다. 남미의 우루과이의 건축 디자이너가 설계한 ‘세계 팬데믹 기념관’(World Memorial to the Pandemic)이다. 코로나19 희생자를 기억하는 세계 첫 대규모 기념건축이다. 지난해 말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코로나19’는 현재까지 218개국에서 3600만 명의 확진자를 발생시켰고, 휴교와 공공시설 폐쇄, 여행금지 등 지구촌 도시를 락다운(lockdown)으로 몰고갔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지정한 최고등급의 전세계적 유행병인 ‘팬데믹’의 무시무시함을 보여주고 있는 중이다. ‘세계 팬데믹 기념관’은 우루과이 수도 몬테비데오 인근 해변에 설치된다. 건축회사인 고메즈 플라테로가 공개한 디자인에 따르면 이 기념시설은 직경 40m 크기의 오목한 원형 접시 모양이다. 해안으로부터 이어진 기다란 보도는 기념물의 갈라진 틈으로 인도한다. 틈을 통해 오목한 원형 접시 모양의 플랫폼에 오르는 순간 도시의 소음과 풍경이 사라진다. 관람객들은 침묵 속에서 오로지 바람과 파도와 같은 자연에 둘러싸인다. 콘크리트와 코르텐강(내후성강판)으로 만들어지는 원형 플랫폼 위에서는 서로간의 안전한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300명의 사람들이 모일 수 있다. 설계를 맡은 건축 디자이너 마틴 고메즈 플라테로 씨는 “코로나19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공간이지만, 인류가 더 이상 지구 에코시스템(생태계)의 중심이 아니며, 자연에 종속된 존재라는 집단적인 자각을 일깨워주는 반성과 성찰의 기념물”이라고 설명했다. “팬데믹의 글로벌한 충격은 우리에게 새로운 세계지도를 탄생시켰다. 코로나19는 우리의 라이프스타일과 습관, 서로간에 연결되는 방식을 바꿨다. 둥근 원형은 전지구의 통합과 일치, 커뮤니티를 상징하며, 깨어진 틈은 ‘코로나19’로 인한 충격이자 단절을 상징한다.” 원형 플랫폼의 깨어진 틈은 ‘Before 코로나’(BC)와 ‘After 코로나’(AC)로 나뉘듯이 영원히 돌아갈 수 없는 시대의 흔적이다. 이 기념관에서 또 하나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오목한 원형 플랫폼의 가운데 부분에 뚫린 직경 10m 가량의 텅빈 허공이다. 빈 공간의 밑으로는 바닷물과 파도가 드나들고, 울퉁불퉁한 해변의 바위도 모습을 드러낸다. 이 때문에 관람객들은 중심부에 설 수 없으며, 둥근 원형의 주변에 서서 온통 자연에 둘러싸인 채 시간을 보내는 경험을 하게 된다. ‘지구 에코 시스템의 중심은 인간이 아니며, 인간은 자연에 종속된 주변적 존재’라는 코로나19의 교훈을 그대로 형상화해낸 건축물이다. 텅빈 공(空)의 상태에서 자연이 생겨났으며, 우리도 언제든 깨어져 공(空)으로 돌아갈 수 있는 연약한 존재라는 진실을 겸허하게 전달해주는 은유가 아닐까. 팬데믹 기념비가 세워지는 장소가 해변가 바다 한 가운데라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디자이너는 “기후변화로 이 기념물은 언젠가 수평선 밑으로 사라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인류가 지구의 중심이라는 오만함에서 비롯된 플라스틱 문명이 파괴해 온 자연의 모습을 가장 먼저 확인할 수 있는 곳이 바다다. 작은 환경적 충격만으로도, 우리의 삶이 언제든 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코로나19’는 확인해주었다. 디자이너 플라테로 씨는 “건축은 세상을 바꿀 강력한 도구”라며 “비극적인 사건에 대한 기억과 감각을 활성화시킴으로써, 시대를 뛰어넘는 집단적이고, 역사적인 진실을 담아내는 것이 기념비 건축의 의미”라고 말했다. 코로나19를 기리기 위한 건축가들의 또 다른 기념시설 아이디어도 이어지고 있다. 이탈리아 건축가인 안젤로 레나는 밀라노의 산시로 축구경기장에 3만5000그루의 나무를 심자고 제안했다. 1926년부터 AC밀란과 인터밀란의 홈구장으로 쓰이고 있는 유서깊은 산시로 스타디움은 현재 철거되고 새로운 경기장 신축이 예정돼 있다. 안젤로 레나는 1934년과 1990년 월드컵 경기가 펼쳐진 이탈리아 축구를 대표하는 역사적 명소인 산시로 경기장을 철거하는 대신, 이탈리아에서 코로나19로 희생된 3만5000명을 상징하는 사이프러스 나무를 그라운드 주변과 관중석 곳곳에 심어 새들과 자연이 살아 숨쉬는 친환경이고 영적인 공원으로 만들자고 제안했다.전승훈기자 raphy@donga.com}

지난봄 아내가 갑자기 해녀학교에 다니겠다고 했다. 뭐라고? 해녀가 되겠다고? 귀를 의심했다. 영화 기획자이자, 배우 매니저, 드라마 홍보마케팅 관련 전문가로 평생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잔뼈가 굵어 왔던 아내가 갑자기 웬 해녀? 아내는 올 4월 제주 한림읍에 있는 한수풀 해녀학교에 지원해 합격했다. 전국에서 지원이 몰려 경쟁률이 수십 대 1에 이를 정도로 치열했다는데, 작년에 낙방의 고배를 마신 아내가 올해는 재수를 해서 기어코 들어간 것이다. 합격의 비밀은 자기소개서였다고 한다. “저를 붙여 주신다면 해녀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나 드라마를 기획해,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해녀를 전 세계에 널리 알리겠습니다. 블라블라~.” 아내는 5월 초부터 주말마다 제주행 비행기를 탔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비행기 요금은 평균 2만 원가량으로 쌌다. 아내는 처음에는 토요일 새벽에 가서 일요일 오후에 올라왔다. 그러더니 점점 금요일 오후에 퇴근하고 내려가서 토, 일요일을 꼬박 바다에서 살았다. 궁금증이 일기 시작했다. 자기 숨만으로 물속 깊이 잠수해서 소라, 전복 등을 따오는 해녀의 험난한 삶을 배우겠다는 21세기의 여성들은 대체 누구일까. 해녀학교는 왜 매년 입학경쟁률이 높아지는 것일까. 지난달 근속휴가를 맞아 일주일간 제주에서 해녀학교 생활을 직접 체험해 보았다. 잠수복을 입고, 오리발을 끼고 바닷속에 들어가 보니 또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 해녀학교의 ‘바당’ 교실제주 사람들은 거칠지만 아름다운 바다를 ‘바당’이라고 한다. 해녀학교 앞에는 방파제로 둘러싸여 있는 잔잔한 바당이 있었다. ‘교실’로 불리는 이 바다의 물속에는 미소를 짓고 있는 해녀상이 가라앉아 있었다. 안전요원이 지키는 방파제 인근에는 돌돔이 살고, 노란색과 검은색 줄무늬가 예쁜 범돔이 헤엄치고, 수천 마리의 에메랄드빛 멜떼(멸칫과 물고기)가 반짝거리며 몰려다녔다. 숨을 참고 4, 5m 물속에 잠수해 보면 갯민숭달팽이, 돌문어, 광어, 숭어들이 손에 잡힐 듯 오갔다. 토요일 오후. 해녀학교 학생들은 테왁 망사리를 들고 수업을 들으러 간다. 테왁은 해녀들이 물 위에 떠 있을 때 붙잡고 있는 부력장비로, 밑에 그물이 달려 있어 채취한 해산물을 넣을 수 있다. 물질을 가르쳐주는 강사는 귀덕2리 어촌계에 소속해 있는 31명의 60, 70대 해녀 삼촌들. 제주에서는 남녀를 불문하고 나이 많은 분에게 ‘삼촌’이라는 존칭을 쓴다고 한다. 수업이 시작되자 학생들은 조별로 나뉘어 바다로 나아갔다. 출발하자마자 10m쯤 나갔을까. 한 조에서 ‘와!’ 하는 탄성 소리가 들려왔다. 물속에서 나온 해녀 삼촌의 손에 커다란 돌문어가 감겨져 있었다. 해녀 삼촌들은 호맹이(호미)로 바위를 뒤집어 채취하는 법, 물속에 센 조류가 있을 때 바위를 잡고 버티는 법, 뾰족한 가시가 있는 성게를 손으로 잡는 법 등 바다에서 살아가는 노하우를 학생들에게 자세히 전수해 주었다. ● 해녀가 연봉이 억대라는 소문이? 현재 4000명가량 남아 있는 제주 해녀의 대부분은 60, 70대 고령층이다. 고된 작업 때문에 해녀의 맥이 끊길 것을 우려한 제주도는 2008년부터 한수풀해녀학교에 예산을 지원해 신입생을 모집했다. 2017년부터는 전문 직업해녀 양성반도 개설했다. 이 학교 졸업생 중에 정식 해녀로 활동하는 사람은 50여 명에 이른다. 12일 한수풀해녀학교에서는 13기 졸업식이 열렸다. 4개월간의 고된 수업을 마친 학생들이 직접 바느질을 해서 만들어 입은 전통 해녀복인 흰색 물적삼(상의)과 검은색 물소중이(하의)를 차려입고 졸업장을 받았다. 제주 한림읍 협재리에서 온 서지원 씨(26)는 해녀의 손녀다. 올해 77세인 할머니는 비양도까지 가서 물질을 했던 상군(上軍) 해녀였다고 한다. 비양도는 협재리에서 3km 해상에 있는 화산섬. 주위 바다에는 80여 어종이 서식하고 각종 해조류와 수산자원이 풍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쇼핑센터에서 일하고 있는 서 씨는 미용사인 이모와 함께 해녀의 대를 잇기 위해 해녀학교에 등록했다. “해녀의 매력은 ‘자유롭다’는 점인 것 같아요. 회사 생활과 달리 체력만 되면 나이 들어서도 제한 없이 할 수 있지요. 바닷속에 들어가면 더 자유롭죠. 협재해녀회에는 현재 해녀가 15명 정도 계신데, 대부분 연로하셔서 젊은 해녀학교 졸업생을 환영하는 분위기예요.” 서 씨처럼 직업반을 졸업하면 각 마을의 어촌계에서 1, 2년간 인턴 해녀로 일할 수 있다. 이후 어촌계원 80% 이상의 동의를 얻게 되면 수협에서 ‘해녀증(해녀 활동을 할 수 있는 자격증)’을 받는다. 연간 의무 조업일수를 채우는 해녀들은 제주도로부터 의료비 혜택, 잠수복 지원 등을 받는다. 제주 해녀는 고된 일을 하면서도 자식 대학 보내고, 결혼시키는 강인한 생활력을 자랑해왔다. 이 때문에 ‘감귤나무 가진 사람이 부럽지 않다’ ‘연봉이 억대다’라는 소문이 났다. 이동렬 해녀학교 사무국장은 “예전에는 바다에 씨알이 굵은 물건들이 많아서 10~15m 이상 깊은 바다에서 잠수하는 상군 해녀들은 연간 6000만~7000만 원 이상씩 벌었다고 한다”며 “요즘엔 바다에 백화현상 때문에 수확량이 줄어 다른 일도 함께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백화현상은 산호처럼 생긴 석회질 성분의 홍조류가 퍼져 바다 밑바닥을 하얗게 만드는 것을 말한다. 이 경우 해조류를 먹는 어패류도 사라지고 어장 황폐화 가능성이 커진다. ● 이직(移職)과 코로나… ‘한 달 살기’가 해녀학교 열풍으로 제주 사람들이 대부분인 전문해녀 양성 직업반과 달리 입문반의 풍경은 달랐다. 절반은 제주 이외 지역에서 지원한 사람들. 아내처럼 주말마다 비행기를 타고 오거나, 제주에서 집을 빌려 한 달 살기, 석 달 살기 등을 하면서 해녀학교를 다니는 사람들이다. 이들의 직업은 의사, 요리사, 마케팅 전문가, 심리상담가, 작곡가 등 다양했다. 소설가나 방송작가, 유튜버 등 해녀와 제주를 소재로 콘텐츠를 만들려는 이들도 적잖았다. 해녀는 물에 들어갈 때 혼자 들어갈 수 없고, 반드시 ‘물벗’이라고 부르는 파트너가 필요하다. 즉 2명이 한 조가 돼 서로의 안전을 챙겨줘야 한다. 아내의 물벗은 총각 의사 선생님 이하은 씨(31)였다. 전공의 수련을 마치고 서울의 한 종합병원에서 일하게 된 그는 제주도에 한 달 살기로 놀러 왔다가 우연히 ‘해녀학교 신입생 모집’이라는 플래카드를 보았다고 했다. 그는 “이직하는 과정에서 4.5개월간 시간이 비어 재충전과 휴식을 하고 싶었다”며 “원래 허리가 좀 아팠는데 여름 내내 바다에서 잠수하고, 채취하는 재미에 흠뻑 빠지다 보니 건강해졌다”고 말했다. 대학에서 금속공예디자인을 전공한 김연주 씨(36)는 화장품 회사 마케팅부에서 10년간 근무했다. 지난해 퇴직 후 태국 발리, 푸껫 등에서 한 달 살기를 하면서 스쿠버다이빙과 프리다이빙을 배웠는데, 올해는 코로나19 때문에 태국으로 갈 길이 막히자 제주해녀학교에 등록했다. 그는 “제주에 정착해서 언젠가 해녀를 하고 싶은 게 꿈”이라며 “그 전까지는 제주에서 다이빙 강사를 하거나 금속공예 전공을 살려 해녀를 소재로 한 콘텐츠 디자인 작업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인형 씨(38)는 바다가 좋아서 아예 직장을 제주도에서 구한 경우. 2015년 숙명여대에서 심리학 전공 박사과정을 수료한 그는 제주지방경찰청에서 범죄피해자 심리상담사로 근무하며 박사논문을 쓰고 있다. 그는 “피해자 상담을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경미한 우울증 같은 게 생기곤 하는데, 생명력 넘치는 해녀들의 삶에서 에너지를 받고 치유가 됐다”며 “수업 중에 해녀 삼촌이 직접 잡은 성게를 까서 입에 넣어주시던 따뜻함을 잊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제주도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는 조윤정 씨(36)도 2018년 퇴사 후 한 달 살이를 하러 왔다가 눌러앉은 케이스다. 서울에서 스포츠마케팅 관련 일을 했던 그는 바다수영과 마라톤, 사이클을 겨루는 ‘철인3종(트라이애슬론)’ 마니아다. 매일 바다수영을 할 수 있고, 총연장 223km인 제주 해안도로에서 사이클을 타고, 한라수목원과 올레길에서 마라톤을 즐길 수 있는 제주도는 그에게 환상 그 자체다. 그는 “해녀란 직업은 달리기나 자전거처럼 기계적 장치의 도움 없이 오롯이 자기 숨만으로 잠수하고 채취하는 일이어서 커다란 매력을 느낀다”고 말했다. ● 해녀를 꿈꾸는 해남(海男)들해녀학교에는 남학생 비율도 10%가량 된다. 하지만 해남이 되는 길은 더 어렵다. 마을의 해녀회에서 받아주는 절차가 여성보다 훨씬 까다롭기 때문이다. 다만 아내가 해녀인 경우에 남편이 함께 물질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은 커진다. 2014년 해녀학교를 졸업한 김은주 씨(53)와 남편 김형준 씨(53)는 서귀포시 공천포에서 부부 해녀로 활동하고 있다. ‘해남’을 꿈꾸는 황태원 씨(36)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 인터컨티넨탈호텔 메인주방 셰프 출신이다. 5년 전 제주에 온 그는 한경면 용수리에서 숙박업과 식당을 하고 있다. 지난 4개월간 해녀학교 수업이 있는 토요일엔 식당 문도 닫고 물질을 배웠다. “해산물을 이용한 요리를 좋아하는데 제가 직접 채취한 해산물로 하면 시너지 효과가 나지 않을까요. 내년에 직업반까지 마치고 해남이 돼서 아침엔 물질하고 저녁엔 식당을 하는 삶을 꿈꿉니다.” 또 다른 ‘해남’을 꿈꾸는 강혁주 씨(35)는 서울 강남구의 순대국밥집을 운영하며 프랜차이즈 본사를 꾸리고 있는 CEO다. 해녀 학교 생활의 전반에 대해 영상을 찍고 사진을 담아서 졸업영상을 만들었다. 그는 이번 해녀 학교 졸업과 동시에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고 한다. 직접 잡은 해산물로 샤브샤브 매장을 운영하는 꿈이 생겼다고 한다. 육지에서 온 이주민들의 경우는 카페나 식당, 게스트하우스를 5~10년씩 하더라도 배타적인 제주의 마을 공동체에 온전히 녹아들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해녀학교를 졸업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해녀가 갖는 상징성 때문에, 어촌계에 가입되는 순간 이른바 마을의 ‘인싸’(인사이더)가 될 수 있다. 이학출 한수풀해녀학교 교장(귀덕2리 어촌계장)은 “해녀학교 졸업생 중에 실제 해녀로 활동하고 있는 사람은 50여 명 정도”라며 “해녀가 되기 위해선 물질 실력보다 우선적으로 마을 공동체에서 인정을 받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아내는 졸업 후 서울로 돌아와서도 한동안 푸른 바닷물이 눈앞에 아른거린다고 했다. 해녀학교 학생들 사이에서 ‘물뽕 맞았다’라고 표현하는 증상이었다. 아내는 선언했다. “나 내년에도 직업반에 또 지원할 거야.”해녀학교 사람들 이야기●서지원(26·제주 해녀의 손녀) 제주 한림읍 협재의 쇼핑센터에서 근무하고 있다. 할머니(77)가 협재에서 해녀생활을 하셨다. 비양도까지 가서 물질을 하실 정도로 상군(上軍) 해녀였다. 비양도는 물건이 엄청 크고 좋다. 할머니는 딸만 여섯인데 엄마를 비롯해 딸 아무도 해녀를 하지 않았다. 미용실을 하는 이모랑 제가 해녀를 하기 위해 함께 해녀학교에 등록했다. 할머니가 계신 협재 어촌계의 추천서를 받아 해녀학교 직업반에 등록할 수 있었다. 협재 해녀회에는 15명의 해녀가 있는데 대부분 연로하신 분들이 많다. 그래서 젊은 사람들을 많이 찾고 있다. 70세 이상이 되신 해녀분들은 물질을 잘 못한다. 이모는 미용실을 하면서 해녀를 겸직하실 계획을 세우고 있다. 저는 직업반에서도 제일 나이가 어리다. 그래서 ‘애기’라고 불린다. 어릴 적부터 바다를 좋아했는데, 수영은 못한다. 그러나 수트를 입고, 테왁을 들고 있으면 물에 뜰 수 있다. 예전에는 바다 속에 물건이 많아 해녀도 돈을 잘 벌었다고 한다. 요즘인 바다가 오염돼 물건이 많이 사라지고 있다. 물질만으로는 생계가 힘들다고 한다. 그래도 해녀가 좋은 점은 자유롭다는 것이다. 회사 일은 시간이 제한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해녀는 체력만 되면 나이들어서도 할 수 있다. 바다에서도 자유롭고, 땅 위에서도 자유롭다. 해녀학교를 졸업하면 바로 어촌계에 가입할 자격이 주어진다. 마을마다 다르지만 그 마을에서 2,3년 이상 살아야 하는 경우도 있고, 가입비로 200~300만원을 내는 마을도 있다. 한달에 평균 16일 이상 조업하면 해녀 자격을 유지할 수 있다. 양식장에서 해물을 채취하기도 하고, 성게 톳 소라를 손질하는 작업을 돕기도 한다. 지난해 해녀학교 직업반을 졸업한 사람 중에 협재 분들 5명이 있었는데, 모두 협재에서 해녀생활을 하고 있다. ●강혁주 씨(35·프리다이빙 강사·평안도 식당 운영) 20대 청춘에 원양어선에 몸을 맡겨 벌어들인 수익으로 운 좋게 서울 강남역 부근 순대국밥집을 인수 했다. 29살에 순대국밥집 사장을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24시간 영업을 매장에서 먹고 자고 하면서 5년간 매달렸다. 직영 2호점을 내고 결국 프랜차이즈 본사를 설립해 10여개의 가맹점들과 함께하고 있다. 숨도 안쉬고 일했다. 유일하게 숨쉴 수 있는 시간은 수영장 가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살던 어느 날 제주도 친구에게 ‘한수풀 해녀학교’ 입학 공고 소식을 듣게 됐다. 순대국밥집을 인수할때와 같은 촉이 딱 왔다. ‘이것은 내 인생을 뒤바꿀 수 있는 일이구나!’ 주저 않고 자기소개서를 써 냈고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해녀학교 입문반에 입학했다. 4개월간 사업에, 코로나에, 등교에 정말 정신없이 시간이 흘러갔다. 그 와중에 영상과 사진은 내 역사에 길이길이 남기기 위해 손에서 카메라와 액션캠을 놓지 않았다. 수영을 하며 프리다이빙 강사 자격증을 취득했었는데 이곳 해녀학교에서 이렇게 요긴하게 쓰일줄 또 누가 알았겠는가? 교장선생님과 사무국장님의 지도 하에 제주도 5미터 다이빙 풀(자이언트다이브)에서 해녀학교 학생들을 트레이닝했고, 해양 실습까지 마치며 자격증 발급까지 완료했다. 지난 4개월 매주말 심호흡을 크게 할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제주도행 비행기에 몸을 맡기는 순간 우주로 가는 여행을 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인생에 다시 오기 힘든 날들을 뒤로 하고 다시 사업에 매진할 수 있는 힘이 생겨 오늘을 살아간다. ●조윤정 씨(36·게스트하우스 운영) 서울에서 스포츠마케팅 일을 했다. 마라톤대회, 사이클대회, 지역축제같은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하는 일이었다. 제 자신도 운동을 좋아해 철인3종(트라이애슬론) 경기대회에 참가해왔다. 2018년에 퇴사하고 제주도에 ‘한달살기’로 놀러왔다가 그냥 눌러 앉았다. 제주 바다에서 수영하고, 올레길에서 마라톤하고, 해변도로에서 사이클을 타다보니 올라가지 않아도 되겠다 싶어서 정착을 해버렸다. 서울에 살 때는 강원도까지 고속도로 타고 가려면 최소 2~3시간이 걸리는데, 제주도는 집에서 10분만 나오면 모든 게 가능했다. 바다수영은 이호테우, 삼양해수욕장, 함덕해수욕장에서 허리에 부이를 묶고 1~2km 정도 한다. 사이클은 제주 해안도로를 한 바퀴 크게 돌면 223km다. 제주시에서 서귀포로 넘어가는 1100도로에는 꼬박 20km를 오르막으로 오르는 최고의 업힐구간 훈련지다. 마라톤은 예전에 이봉주 선수가 훈련했다고 하는 한라수목원에서 한다. 올레길에서 뛰기도 한다. 제주가 좋아서 계속 살고 싶다. 현재 게스트하우스를 대리운영하고 있다. 제주에는 생각보다 혼자 여행오는 여성들이 많다. 혼자 오는 것도 큰 용기지만, 혼자서 오름을 등반하고 자전거를 타고, 스노쿨링을 하는 것을 무서워하시는 분들이 많다. 스포츠를 즐기는 분들에게 코스를 짜주고, 정보를 제공해주고 있다. 해녀는 가장 제주도를 상징하는 일이다. 지금 제 나이에는 좀 벅차지만, 나중에라도 해녀를 하고 싶다. 제가 자전거, 달리기를 좋아하는 이유가 오롯이 제 힘으로 하기 때문이다. 해녀도 마찬가지다. 오롯이 내 숨만으로 소라, 보말과 같은 물건을 잡는 것이다. 물론 바다가 허락을 해야지 들어갈 수 있다. 자연이랑 이렇게 함께 할 수 있는 직업이 없는 것 같다. 내 숨만큼 참고, 그만큼의 물건을 갖는 것. 욕심내지 않고, 최소한의 장비로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해녀의 삶이 너무나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김인형(38·제주 경찰청 심리상담사) 바다에 관심이 많아 제주도에 살고 싶었다. 2015년 숙명여대 심리학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일부러 제주도에 있는 직장을 찾았다. 마치 신의 계시처럼, 채용사이트 가장 위에 제주도 직장이 떠 있었다. 한국 법무보호복지공단에서 보호대상자 심리상담을 하는 일이었고, 이어서 제주경찰청에서 범죄피해자 상담을 하면서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일도 하고 논문쓰는 연구를 하러간다’는 명분이 있으니까 집에서도 제주도행을 허락했다. 제주 해녀는 제주를 대표하는 이미지가 아닌가. 올 때부터 관심있었다. 그러나 안전에도 직결되는 문제이고, 경외심만 갖고 섣불리 다가서지 못했다. 올해 코로나 때문에 국내외 여행도 자유롭지 않아, 제주에서 해녀학교에 도전했다. 해녀학교 입학해보니 지원자들의 열정에 다시한번 놀랐다. 육지에서 주말마다 내려오고, 공항에서 카풀을 해서 학교까지 오면서 진지하게 수업하는 걸보고 자극을 많이 받았다. 피해자 상담을 하다보면 경미한 수준의 우울증이 생길 수 있는데, 여기서 정말 열정적인 사람들을 보면서 삶의 에너지를 받고, 치유받는 느낌을 받았다. ●이하은 씨(31·의사) 전공의 수련기간이 끝나고 지난 3월말에 병원을 퇴사하고, 새로운 병원으로 가기로 돼 있었다. 이직기간 중 제주 한달살기를 하며 올레길을 걷다가 우연히 ‘해녀학교’ 간판을 봤다. 원래 바다에서 수영하고, 서핑하는 것을 좋아했다. 4월말에 해녀학교에 등록하면서 아예 몇 개월간 쉬며 재충전의 시간을 갖기로 했다. 잠수를 하다보니 몸도 건강해지고 폐활량이 늘어났다. 처음에는 숨참기가 1분 정도 밖에 되지 않았는데, 지금은 2분30초가량 숨을 참을 수 있다. 제주에 있으면서 올레길도 거의 다 걸었다. 순수하게 바다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 해녀학교 생활은 다시는 얻지 못할 소중한 추억으로 남았다. ● 김연주(36) 대학에서 금속공예디자인을 전공하고, 쥬얼리와 화장품 업계 마케팅 부서에서 10년 정도 근무했다. 25살부터 34살까지 10년간 트렌드를 쫓아다니는 마케팅 일을 했으니, 35살부터 10년간은 다른 일을 하고 싶었다. 퇴직 후 ‘제2의 삶’에 대한 고민을 하던 중 코로나가 유행하면서 해외도 못가는 상황에서 해녀학교에 도전해보기로 결심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해녀를 하면서 제주에서 사는 삶도 멋질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변에서 부모님과 친구, 직장동료들이 걱정하고 난리였다. 해녀학교에 입학해 오리엔테이션 시간에 자기소개를 듣는 순간 저랑 비슷한 고민을 하고, 찾아 온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눈물이 났다. 내가 백조의 세계에 살고 있는 외톨이, 보랏빛 미운 오리새끼인 줄 알았는데, 여기에 와보니 보라색 미운 오리들 천지였다. 굉장히 동질감을 느끼게 됐고, 빠르게 친해졌다. 능력치나 조건같은 껍데기보다, 내면적으로 있는 그대로 서로를 받아주고 인정해주는 해녀학교 생활이 좋았다. ●황태원(36·셰프) 5년 전 제주로 내려와 한경면 용수리 신창해안도로에서 식당과 숙박업을 하고 있다. 서울에서는 삼성동 인터콘티넨탈호텔 메인 주방에서 3년간 일했다. 제주도에 5개월간 여행하면서 스노클링하고, 문어도 잡으면서 제주 바다의 매력에 푹 빠졌다. 차츰차츰 프리다이빙, 스쿠버다이빙 자격증도 땄다. 허름한 바닷가 농가주택을 개조해 해산물을 컨셉으로 요리하는 식당과 숙박업소를 운영했다. 해녀학교는 3년간의 준비 끝에 입학했다. 첫해에는 접수 날짜를 놓쳐서 떨어졌고, 작년에는 지원했는데 불합격했다. 올해에는 삼수 끝에 입학했다. 현직 해녀로부터 물 속에서 현장실습을 하다보니까 해녀만의 노하우를 배울 수 있었다. 해남이 되어 식당을 하는 게 꿈이다. 제가 직접 채취한 물건으로 요리하는 것은 매우 좋은 시너지를 낳을 수 있다. 내년에 직업반 수업을 듣고, 어촌계에 가입하는 절차를 차근차근 밟으면 해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어촌계 해녀회에서 남자도 받아줄까 모르겠지만, 회원 80%의 동의를 받으면 된다고 한다. 답은 없다.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다. 제가 마을에서 5년간 살았지만, 주변 분들로부터 ‘저 사람이 해녀가 되면 마을발전에 도움을 줄 것 같다’는 평판을 들어야 한다. 제주에서 실제 활동하는 해남은 많진 않다. 현직 해녀에게 들었는데, 남녀는 인체의 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나이가 들어갈 수록 여자보다 남자가 조금 더 못 버틴다고 한다. 4개월간 해녀학교에 다닐 동안 수업이 있는 토요일엔 아예 식당 문을 닫고 손님을 받지 않았다. 수업에 오롯이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바닷 속을 배우는 것도 재밌었고 행복했다. 1주일 동안 토요일을 너무나 기다렸다. ●이동렬 해녀학교 사무국장(61) 2014년도에 29년간 일했던 공직에서 정년퇴직하고, 2016년에 해녀학교를 졸업했다. 당시에 남자 졸업생이 12명이었다. 남자들도 매년 5~10명씩 해녀학교에 다닌다. 지금까지 남자 졸업생만 100명 가까이 될 것이다. 남자들도 졸업 후 해남(海男)으로 활동하려고 노력을 하는데, 실제로 해녀회 가입에 성공하기란 극히 어렵다. 그러나 마을에 따라 아내가 해녀인 경우에는 해남으로 활동하는 경우도 있다. 나는 바다를 좋아해서 퇴직 후에는 제주도에 살고 있다. 해녀학교의 세 번째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해녀학교 입학기준은 자기소개서에 나타난 열정을 많이 본다. 입문반의 50%는 제주도 이외의 육지 지역에서 지원한 사람들을 뽑는다. 비싼 비행기값 주고 주말마다 오는 사람들의 열정은 대단하다. 외국인은 정원 외다. 지원하는 사람은 대부분 뽑는다. 필리핀에서 온 사람도 있고, 러시아에서 온 사람도 있다. 진짜 해녀로 활동하려면 직업해녀 양성반을 졸업해야 한다. 직업반 사람들은 어촌계의 추천을 받아서 입학한다. 해녀학교를 졸업하면 어촌계에 가입해서 인턴 해녀생활을 거친 후 받아들여지면, 해녀생활을 할 수 있게 된다. 인턴해녀 생활은 1년에 60일 이상 조업하고, 자신이 잡은 해산물을 수협에 180만원 어치 이상 납품해야 한다. 조업일수를 채우는 것이 중요하다. 제주시에서 해녀증을 받으면 의료혜택 등을 받을 수 있다. 해녀들은 예전에는 귤나무를 가진 사람이 부럽지 않을 정도로 돈을 벌어 애들 학교 보내고, 대학도 보내고, 결혼도 시키고 했다고 한다. 씨알이 굵은 물건도 많아서 상군 해녀들은 약 6000~7000만원 정도 벌었다고 하더라. 그런데 요즘에는 바다가 백화현상 때문에 물건이 많이 줄었다. 요즘도 성게철에는 1인당 600~700만원의 수입을 얻는다. 그러나 연간으로 치면 예전보다 수입이 크게 적은 게 현실이다. 해녀를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많다. 그러나 쉽지 않다. 해녀를 하고 싶으면 ‘곰처럼 굴지 말고, 여우처럼 굴어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가입비를 많이 내고, 물질을 잘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다. 마을에서 공동작업을 해야할 때 무뚝뚝하게 나오라고 해도 안나오고 하면 안된다. 적극적으로 마을일에 참여하는 사람을 우선적으로 뽑게 된다. 제주=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지난봄 아내가 갑자기 해녀학교에 다니겠다고 했다. 뭐라고? 해녀가 되겠다고? 귀를 의심했다. 영화 기획자이자, 배우 매니저, 드라마 홍보마케팅 관련 전문가로 평생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잔뼈가 굵어 왔던 아내가 갑자기 웬 해녀? 아내는 올 4월 제주 한림읍에 있는 한수풀 해녀학교에 지원해 합격했다. 전국에서 지원이 몰려 경쟁률이 수십 대 1에 이를 정도로 치열했다는데, 작년에 낙방의 고배를 마신 아내가 올해는 재수를 해서 기어코 들어간 것이다. 합격의 비밀은 자기소개서였다고 한다. “저를 붙여 주신다면 해녀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나 드라마를 기획해,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해녀를 전 세계에 널리 알리겠습니다. 블라블라∼.” 아내는 5월 초부터 주말마다 제주행 비행기를 탔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비행기 요금은 평균 2만 원가량으로 쌌다. 아내는 처음에는 토요일 새벽에 가서 일요일 오후에 올라왔다. 그러더니 점점 금요일 오후에 퇴근하고 내려가서 토, 일요일을 꼬박 바다에서 살았다. 궁금증이 일기 시작했다. 자기 숨만으로 물속 깊이 잠수해서 소라, 전복 등을 따오는 해녀의 험난한 삶을 배우겠다는 21세기의 여성들은 대체 누구일까. 해녀학교는 왜 매년 입학경쟁률이 높아지는 것일까. 지난달 근속휴가를 맞아 일주일간 제주에서 해녀학교 생활을 직접 체험해 보았다. 잠수복을 입고, 오리발을 끼고 바닷속에 들어가 보니 또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해녀학교의 ‘바당’ 교실 제주 사람들은 거칠지만 아름다운 바다를 ‘바당’이라고 한다. 해녀학교 앞에는 방파제로 둘러싸여 있는 잔잔한 바당이 있었다. ‘교실’로 불리는 이 바다의 물속에는 미소를 짓고 있는 해녀상이 가라앉아 있었다. 안전요원이 지키는 방파제 인근에는 돌돔이 살고, 노란색과 검은색 줄무늬가 예쁜 범돔이 헤엄치고, 수천 마리의 에메랄드빛 멜떼(멸칫과 물고기)가 반짝거리며 몰려다녔다. 숨을 참고 4, 5m 물속에 잠수해 보면 갯민숭달팽이, 돌문어, 광어, 숭어들이 손에 잡힐 듯 오갔다. 토요일 오후. 해녀학교 학생들은 테왁 망사리를 들고 수업을 들으러 간다. 테왁은 해녀들이 물 위에 떠 있을 때 붙잡고 있는 부력장비로, 밑에 그물이 달려 있어 채취한 해산물을 넣을 수 있다. 물질을 가르쳐주는 강사는 귀덕2리 어촌계에 소속해 있는 31명의 60, 70대 해녀 삼촌들. 제주에서는 남녀를 불문하고 나이 많은 분에게 ‘삼촌’이라는 존칭을 쓴다고 한다. 수업이 시작되자 학생들은 조별로 나뉘어 바다로 나아갔다. 출발하자마자 10m쯤 나갔을까. 한 조에서 ‘와!’ 하는 탄성 소리가 들려왔다. 물속에서 나온 해녀 삼촌의 손에 커다란 돌문어가 감겨져 있었다. 해녀 삼촌들은 호맹이(호미)로 바위를 뒤집어 채취하는 법, 물속에 센 조류가 있을 때 바위를 잡고 버티는 법, 뾰족한 가시가 있는 성게를 손으로 잡는 법 등 바다에서 살아가는 노하우를 학생들에게 자세히 전수해 주었다. ○ 해녀 연봉이 억대라는 소문이? 현재 4000명가량 남아 있는 제주 해녀의 대부분은 60, 70대 고령층이다. 고된 작업 때문에 해녀의 맥이 끊길 것을 우려한 제주도는 2008년부터 한수풀해녀학교에 예산을 지원해 신입생을 모집했다. 2017년부터는 전문 직업해녀 양성반도 개설했다. 이 학교 졸업생 중에 정식 해녀로 활동하는 사람은 50여 명에 이른다. 12일 한수풀해녀학교에서는 13기 졸업식이 열렸다. 4개월간의 고된 수업을 마친 학생들이 직접 바느질을 해서 만들어 입은 전통 해녀복인 흰색 물적삼(상의)과 검은색 물소중이(하의)를 차려입고 졸업장을 받았다. 제주 한림읍 협재리에서 온 서지원 씨(26)는 해녀의 손녀다. 올해 77세인 할머니는 비양도까지 가서 물질을 했던 상군(上軍) 해녀였다고 한다. 비양도는 협재리에서 3km 해상에 있는 화산섬. 해녀는 상·중·하군으로 계급이 나뉘는데, 상군은 수심 10∼15m까지 깊이 들어갈 수 있는 노련한 해녀다. 현재 쇼핑센터에서 일하고 있는 서 씨는 미용사인 이모와 함께 해녀의 대를 잇기 위해 해녀학교에 등록했다. “해녀의 매력은 ‘자유롭다’는 점인 것 같아요. 회사 생활과 달리 체력만 되면 나이 들어서도 제한 없이 할 수 있지요. 바닷속에 들어가면 더 자유롭죠. 협재해녀회에는 현재 해녀가 15명 정도 계신데, 대부분 연로하셔서 젊은 해녀학교 졸업생을 환영하는 분위기예요.” 서 씨처럼 직업반을 졸업하면 각 마을의 어촌계에서 1, 2년간 인턴 해녀로 일할 수 있다. 이후 어촌계원 80% 이상의 동의를 얻게 되면 수협에서 ‘해녀증(해녀 활동을 할 수 있는 자격증)’을 받는다. 연간 의무 조업일수를 채우는 해녀들은 제주도로부터 의료비 혜택, 잠수복 지원 등을 받는다. 제주 해녀는 고된 일을 하면서도 자식 대학 보내고, 결혼시키는 강인한 생활력을 자랑해왔다. 이 때문에 ‘감귤나무 가진 사람이 부럽지 않다’ ‘연봉이 억대다’라는 소문이 났다. 이동렬 해녀학교 사무국장은 “예전에는 바다에 씨알이 굵은 물건들이 많아서 10∼15m 이상 깊은 바다에서 잠수하는 상군 해녀들은 연간 6000만∼7000만 원 이상씩 벌었다고 한다”며 “요즘엔 바다에 백화현상 때문에 수확량이 줄어 다른 일도 함께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백화현상은 산호처럼 생긴 석회질 성분의 홍조류가 퍼져 바다 밑바닥을 하얗게 만드는 것을 말한다. 이 경우 해조류를 먹는 어패류도 사라지고 어장 황폐화 가능성이 커진다. ○ 이직(移職)과 코로나… ‘한 달 살기’가 해녀학교 열풍으로 제주 사람들이 대부분인 전문해녀 양성 직업반과 달리 입문반의 풍경은 달랐다. 절반은 제주 이외 지역에서 지원한 사람들. 아내처럼 주말마다 비행기를 타고 오거나, 제주에서 집을 빌려 한 달 살기, 석 달 살기 등을 하면서 해녀학교를 다니는 사람들이다. 이들의 직업은 의사, 요리사, 마케팅 전문가, 심리상담가, 작곡가 등 다양했다. 소설가나 방송작가, 유튜버 등 해녀와 제주를 소재로 콘텐츠를 만들려는 이들도 적잖았다. 해녀는 물에 들어갈 때 혼자 들어갈 수 없고, 반드시 ‘물벗’이라고 부르는 파트너가 필요하다. 즉 2명이 한 조가 돼 서로의 안전을 챙겨줘야 한다. 아내의 물벗은 총각 의사 선생님 이하은 씨(31)였다. 전공의 수련을 마치고 서울의 한 종합병원에서 일하게 된 그는 제주도에 한 달 살기로 놀러 왔다가 우연히 ‘해녀학교 신입생 모집’이라는 플래카드를 보았다고 했다. 그는 “이직하는 과정에서 4,5개월간 시간이 비어 재충전과 휴식을 하고 싶었다”며 “원래 허리가 좀 아팠는데 여름 내내 바다에서 잠수하고, 채취하는 재미에 흠뻑 빠지다 보니 건강해졌다”고 말했다. 대학에서 금속공예디자인을 전공한 김연주 씨(36)는 화장품 회사 마케팅부에서 10년간 근무했다. 지난해 퇴직 후 태국 발리, 푸껫 등에서 한 달 살기를 하면서 스쿠버다이빙과 프리다이빙을 배웠는데, 올해는 코로나19 때문에 태국으로 갈 길이 막히자 제주해녀학교에 등록했다. 그는 “제주에 정착해서 언젠가 해녀를 하고 싶은 게 꿈”이라며 “그전까지는 제주에서 다이빙 강사를 하거나 금속공예 전공을 살려 해녀를 소재로 한 콘텐츠 디자인 작업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인형 씨(38)는 바다가 좋아서 아예 직장을 제주도에서 구한 경우. 2015년 숙명여대에서 심리학 전공 박사과정을 수료한 그는 제주지방경찰청에서 범죄피해자 심리상담사로 근무하며 박사논문을 쓰고 있다. 그는 “피해자 상담을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경미한 우울증 같은 게 생기곤 하는데, 생명력 넘치는 해녀들의 삶에서 에너지를 받고 치유가 됐다”며 “수업 중에 해녀 삼촌이 직접 잡은 성게를 까서 입에 넣어주시던 따뜻함을 잊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제주도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는 조윤정 씨(36)도 2018년 퇴사 후 한 달 살이를 하러 왔다가 눌러앉은 케이스다. 서울에서 스포츠마케팅 관련 일을 했던 그는 바다수영과 마라톤, 사이클을 겨루는 ‘철인3종(트라이애슬론)’ 마니아다. 매일 바다수영을 할 수 있고, 총연장 223km인 제주 해안도로에서 사이클을 타고, 한라수목원과 올레길에서 마라톤을 즐길 수 있는 제주도는 그에게 환상 그 자체다. 그는 “해녀란 직업은 달리기나 자전거처럼 기계적 장치의 도움 없이 오롯이 자기 숨만으로 잠수하고 채취하는 일이어서 커다란 매력을 느낀다”고 말했다.○ 해녀를 꿈꾸는 해남(海男)들 해녀학교에는 남학생 비율도 10%가량 된다. 하지만 해남이 되는 길은 더 어렵다. 마을의 해녀회에서 받아주는 절차가 여성보다 훨씬 까다롭기 때문이다. 다만 아내가 해녀인 경우에 남편이 함께 물질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은 커진다. 2014년 해녀학교를 졸업한 김은주 씨(53)와 남편 김형준 씨(53)는 서귀포시 공천포에서 부부 해녀로 활동하고 있다. ‘해남’을 꿈꾸는 황태원 씨(36)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 인터컨티넨탈호텔 메인주방 셰프 출신이다. 5년 전 제주에 온 그는 한경면 용수리에서 숙박업과 식당을 하고 있다. 지난 4개월간 해녀학교 수업이 있는 토요일엔 식당 문도 닫고 물질을 배웠다. “해산물을 이용한 요리를 좋아하는데 제가 직접 채취한 해산물로 하면 시너지 효과가 나지 않을까요. 내년에 직업반까지 마치고 해남이 돼서 아침엔 물질하고 저녁엔 식당을 하는 삶을 꿈꿉니다.” 육지에서 온 이주민들의 경우는 카페나 식당, 게스트하우스를 5∼10년씩 하더라도 배타적인 제주의 마을 공동체에 온전히 녹아들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해녀학교를 졸업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해녀가 갖는 상징성 때문에, 어촌계에 가입되는 순간 이른바 마을의 ‘인싸’(인사이더)가 될 수 있다. 이학출 한수풀해녀학교 교장(귀덕2리 어촌계장)은 “해녀학교 졸업생 중에 실제 해녀로 활동하고 있는 사람은 50여 명 정도”라며 “해녀가 되기 위해선 물질 실력보다 우선적으로 마을 공동체에서 인정을 받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아내는 졸업 후 서울로 돌아와서도 한동안 푸른 바닷물이 눈앞에 아른거린다고 했다. 해녀학교 학생들 사이에서 ‘물뽕 맞았다’라고 표현하는 증상이었다. 아내는 선언했다. “나 내년에도 직업반에 또 지원할 거야.” 제주=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지난봄 아내가 갑자기 해녀학교에 다니겠다고 했다. 뭐라고? 해녀가 되겠다고? 귀를 의심했다. 영화 기획자이자, 배우 매니저, 드라마 홍보마케팅 관련 전문가로 평생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잔뼈가 굵어 왔던 아내가 갑자기 웬 해녀? 아내는 올 4월 제주 한림읍에 있는 한수풀 해녀학교에 지원해 합격했다. 전국에서 지원이 몰려 경쟁률이 수십 대 1에 이를 정도로 치열했다는데, 작년에 낙방의 고배를 마신 아내가 올해는 재수를 해서 기어코 들어간 것이다. 합격의 비밀은 자기소개서였다고 한다. “저를 붙여 주신다면 해녀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나 드라마를 기획해,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해녀를 전 세계에 널리 알리겠습니다. 블라블라~.” 아내는 5월 초부터 주말마다 제주행 비행기를 탔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비행기 요금은 평균 2만 원가량으로 쌌다. 아내는 처음에는 토요일 새벽에 가서 일요일 오후에 올라왔다. 그러더니 점점 금요일 오후에 퇴근하고 내려가서 토, 일요일을 꼬박 바다에서 살았다. 궁금증이 일기 시작했다. 자기 숨만으로 물속 깊이 잠수해서 소라, 전복 등을 따오는 해녀의 험난한 삶을 배우겠다는 21세기의 여성들은 대체 누구일까. 해녀학교는 왜 매년 입학경쟁률이 높아지는 것일까. 지난달 근속휴가를 맞아 일주일간 제주에서 해녀학교 생활을 직접 체험해 보았다. 잠수복을 입고, 오리발을 끼고 바닷속에 들어가 보니 또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 해녀학교의 ‘바당’ 교실제주 사람들은 거칠지만 아름다운 바다를 ‘바당’이라고 한다. 해녀학교 앞에는 방파제로 둘러싸여 있는 잔잔한 바당이 있었다. ‘교실’로 불리는 이 바다의 물속에는 미소를 짓고 있는 해녀상이 가라앉아 있었다. 안전요원이 지키는 방파제 인근에는 돌돔이 살고, 노란색과 검은색 줄무늬가 예쁜 범돔이 헤엄치고, 수천 마리의 에메랄드빛 멜떼(멸칫과 물고기)가 반짝거리며 몰려다녔다. 숨을 참고 4, 5m 물속에 잠수해 보면 갯민숭달팽이, 돌문어, 광어, 숭어들이 손에 잡힐 듯 오갔다. 토요일 오후. 해녀학교 학생들은 테왁 망사리를 들고 수업을 들으러 간다. 테왁은 해녀들이 물 위에 떠 있을 때 붙잡고 있는 부력장비로, 밑에 그물이 달려 있어 채취한 해산물을 넣을 수 있다. 물질을 가르쳐주는 강사는 귀덕2리 어촌계에 소속해 있는 31명의 60, 70대 해녀 삼촌들. 제주에서는 남녀를 불문하고 나이 많은 분에게 ‘삼촌’이라는 존칭을 쓴다고 한다. 수업이 시작되자 학생들은 조별로 나뉘어 바다로 나아갔다. 출발하자마자 10m쯤 나갔을까. 한 조에서 ‘와!’ 하는 탄성 소리가 들려왔다. 물속에서 나온 해녀 삼촌의 손에 커다란 돌문어가 감겨져 있었다. 해녀 삼촌들은 호맹이(호미)로 바위를 뒤집어 채취하는 법, 물속에 센 조류가 있을 때 바위를 잡고 버티는 법, 뾰족한 가시가 있는 성게를 손으로 잡는 법 등 바다에서 살아가는 노하우를 학생들에게 자세히 전수해 주었다. ● 해녀가 연봉이 억대라는 소문이?현재 4000명가량 남아 있는 제주 해녀의 대부분은 60, 70대 고령층이다. 고된 작업 때문에 해녀의 맥이 끊길 것을 우려한 제주도는 2008년부터 한수풀해녀학교에 예산을 지원해 신입생을 모집했다. 2017년부터는 전문 직업해녀 양성반도 개설했다. 이 학교 졸업생 중에 정식 해녀로 활동하는 사람은 50여 명에 이른다. 12일 한수풀해녀학교에서는 13기 졸업식이 열렸다. 4개월간의 고된 수업을 마친 학생들이 직접 바느질을 해서 만들어 입은 전통 해녀복인 흰색 물적삼(상의)과 검은색 물소중이(하의)를 차려입고 졸업장을 받았다. 제주 한림읍 협재리에서 온 서지원 씨(26)는 해녀의 손녀다. 올해 77세인 할머니는 비양도까지 가서 물질을 했던 상군(上軍) 해녀였다고 한다. 비양도는 협재리에서 3km 해상에 있는 화산섬. 주위 바다에는 80여 어종이 서식하고 각종 해조류와 수산자원이 풍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쇼핑센터에서 일하고 있는 서 씨는 미용사인 이모와 함께 해녀의 대를 잇기 위해 해녀학교에 등록했다. “해녀의 매력은 ‘자유롭다’는 점인 것 같아요. 회사 생활과 달리 체력만 되면 나이 들어서도 제한 없이 할 수 있지요. 바닷속에 들어가면 더 자유롭죠. 협재해녀회에는 현재 해녀가 15명 정도 계신데, 대부분 연로하셔서 젊은 해녀학교 졸업생을 환영하는 분위기예요.” 서 씨처럼 직업반을 졸업하면 각 마을의 어촌계에서 1, 2년간 인턴 해녀로 일할 수 있다. 이후 어촌계원 80% 이상의 동의를 얻게 되면 수협에서 ‘해녀증(해녀 활동을 할 수 있는 자격증)’을 받는다. 연간 의무 조업일수를 채우는 해녀들은 제주도로부터 의료비 혜택, 잠수복 지원 등을 받는다. 제주 해녀는 고된 일을 하면서도 자식 대학 보내고, 결혼시키는 강인한 생활력을 자랑해왔다. 이 때문에 ‘감귤나무 가진 사람이 부럽지 않다’ ‘연봉이 억대다’라는 소문이 났다. 이동렬 해녀학교 사무국장은 “예전에는 바다에 씨알이 굵은 물건들이 많아서 10~15m 이상 깊은 바다에서 잠수하는 상군 해녀들은 연간 6000만~7000만 원 이상씩 벌었다고 한다”며 “요즘엔 바다에 백화현상 때문에 수확량이 줄어 다른 일도 함께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백화현상은 산호처럼 생긴 석회질 성분의 홍조류가 퍼져 바다 밑바닥을 하얗게 만드는 것을 말한다. 이 경우 해조류를 먹는 어패류도 사라지고 어장 황폐화 가능성이 커진다. ● 이직(移職)과 코로나… ‘한 달 살기’가 해녀학교 열풍으로제주 사람들이 대부분인 전문해녀 양성 직업반과 달리 입문반의 풍경은 달랐다. 절반은 제주 이외 지역에서 지원한 사람들. 아내처럼 주말마다 비행기를 타고 오거나, 제주에서 집을 빌려 한 달 살기, 석 달 살기 등을 하면서 해녀학교를 다니는 사람들이다. 이들의 직업은 의사, 요리사, 마케팅 전문가, 심리상담가, 작곡가 등 다양했다. 소설가나 방송작가, 유튜버 등 해녀와 제주를 소재로 콘텐츠를 만들려는 이들도 적잖았다. 해녀는 물에 들어갈 때 혼자 들어갈 수 없고, 반드시 ‘물벗’이라고 부르는 파트너가 필요하다. 즉 2명이 한 조가 돼 서로의 안전을 챙겨줘야 한다. 아내의 물벗은 총각 의사 선생님 이하은 씨(31)였다. 전공의 수련을 마치고 서울의 한 종합병원에서 일하게 된 그는 제주도에 한 달 살기로 놀러 왔다가 우연히 ‘해녀학교 신입생 모집’이라는 플래카드를 보았다고 했다. 그는 “이직하는 과정에서 4.5개월간 시간이 비어 재충전과 휴식을 하고 싶었다”며 “원래 허리가 좀 아팠는데 여름 내내 바다에서 잠수하고, 채취하는 재미에 흠뻑 빠지다 보니 건강해졌다”고 말했다. 대학에서 금속공예디자인을 전공한 김연주 씨(36)는 화장품 회사 마케팅부에서 10년간 근무했다. 지난해 퇴직 후 태국 발리, 푸껫 등에서 한 달 살기를 하면서 스쿠버다이빙과 프리다이빙을 배웠는데, 올해는 코로나19 때문에 태국으로 갈 길이 막히자 제주해녀학교에 등록했다. 그는 “제주에 정착해서 언젠가 해녀를 하고 싶은 게 꿈”이라며 “그 전까지는 제주에서 다이빙 강사를 하거나 금속공예 전공을 살려 해녀를 소재로 한 콘텐츠 디자인 작업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인형 씨(38)는 바다가 좋아서 아예 직장을 제주도에서 구한 경우. 2015년 숙명여대에서 심리학 전공 박사과정을 수료한 그는 제주지방경찰청에서 범죄피해자 심리상담사로 근무하며 박사논문을 쓰고 있다. 그는 “피해자 상담을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경미한 우울증 같은 게 생기곤 하는데, 생명력 넘치는 해녀들의 삶에서 에너지를 받고 치유가 됐다”며 “수업 중에 해녀 삼촌이 직접 잡은 성게를 까서 입에 넣어주시던 따뜻함을 잊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제주도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는 조윤정 씨(36)도 2018년 퇴사 후 한 달 살이를 하러 왔다가 눌러앉은 케이스다. 서울에서 스포츠마케팅 관련 일을 했던 그는 바다수영과 마라톤, 사이클을 겨루는 ‘철인3종(트라이애슬론)’ 마니아다. 매일 바다수영을 할 수 있고, 총연장 223km인 제주 해안도로에서 사이클을 타고, 한라수목원과 올레길에서 마라톤을 즐길 수 있는 제주도는 그에게 환상 그 자체다. 그는 “해녀란 직업은 달리기나 자전거처럼 기계적 장치의 도움 없이 오롯이 자기 숨만으로 잠수하고 채취하는 일이어서 커다란 매력을 느낀다”고 말했다.● 해녀를 꿈꾸는 해남(海男)들 해녀학교에는 남학생 비율도 10%가량 된다. 하지만 해남이 되는 길은 더 어렵다. 마을의 해녀회에서 받아주는 절차가 여성보다 훨씬 까다롭기 때문이다. 다만 아내가 해녀인 경우에 남편이 함께 물질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은 커진다. 2014년 해녀학교를 졸업한 김은주 씨(53)와 남편 김형준 씨(53)는 서귀포시 공천포에서 부부 해녀로 활동하고 있다. ‘해남’을 꿈꾸는 황태원 씨(36)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 인터컨티넨탈호텔 메인주방 셰프 출신이다. 5년 전 제주에 온 그는 한경면 용수리에서 숙박업과 식당을 하고 있다. 지난 4개월간 해녀학교 수업이 있는 토요일엔 식당 문도 닫고 물질을 배웠다. “해산물을 이용한 요리를 좋아하는데 제가 직접 채취한 해산물로 하면 시너지 효과가 나지 않을까요. 내년에 직업반까지 마치고 해남이 돼서 아침엔 물질하고 저녁엔 식당을 하는 삶을 꿈꿉니다.” 또 다른 ‘해남’을 꿈꾸는 강혁주 씨(35)는 서울 강남구의 순대국밥집을 운영하며 프랜차이즈 본사를 꾸리고 있는 CEO다. 해녀 학교 생활의 전반에 대해 영상을 찍고 사진을 담아서 졸업영상을 만들었다. 그는 이번 해녀 학교 졸업과 동시에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고 한다. 직접 잡은 해산물로 샤브샤브 매장을 운영하는 꿈이 생겼다고 한다. 육지에서 온 이주민들의 경우는 카페나 식당, 게스트하우스를 5~10년씩 하더라도 배타적인 제주의 마을 공동체에 온전히 녹아들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해녀학교를 졸업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해녀가 갖는 상징성 때문에, 어촌계에 가입되는 순간 이른바 마을의 ‘인싸’(인사이더)가 될 수 있다. 이학출 한수풀해녀학교 교장(귀덕2리 어촌계장)은 “해녀학교 졸업생 중에 실제 해녀로 활동하고 있는 사람은 50여 명 정도”라며 “해녀가 되기 위해선 물질 실력보다 우선적으로 마을 공동체에서 인정을 받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아내는 졸업 후 서울로 돌아와서도 한동안 푸른 바닷물이 눈앞에 아른거린다고 했다. 해녀학교 학생들 사이에서 ‘물뽕 맞았다’라고 표현하는 증상이었다. 아내는 선언했다. “나 내년에도 직업반에 또 지원할 거야.”제주=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그림책은 어린이만을 위한 책일까? ‘하루10분 그림책 질문의 기적’(마더북스)을 펴낸 최진희 작가는 “아이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다보면 엄마 아빠가 더 눈물을 흘리게 되는 때도 있다”고 말한다. 최 작가는 이 책의 서문에서 자신이 이 책을 쓰게 된 계기가 된 경험담을 소개한다. 어느날 작가는 남편과 심한 말다툼을 하고, 혼자 있고 싶은 마음에 아이의 방으로 갔다. 아이 침대 옆에 쭈그려 앉아 있다가 눈 앞에 있던 그림책이 눈에 들어왔다. 후세야스코가 지은 ‘달라서 좋아요!’(대교)란 책이었다. “너랑 나랑은 닮은 데라곤 요만큼도 없네!” 그림책에서 데굴데굴 잘 굴러다니는 동그라미는 세모를 번쩍 들고 신나게 빨리 달린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급경사를 만나 당황하고 만다. 그 때 세모가 폴짝 뛰어 내려와 동그라미를 막아서며 말한다. “뭘, 나는 멈춰 서는 건 아주 잘해.” 최 작가는 그림책을 펼치는 순간부터 ‘오늘 남편과 싸운 걸 어떻게 알았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 특히 ‘너랑 나랑 닮은 데라곤 요만큼도 없네!’라는 구절이 부부의 모습인 것 같아 가슴이 콕 박혔다. 동그라미와 세모, 둘은 확연히 다르게 생기지 않았는가. “저는 항상 기분따라 굴러가는 동그라미에 가까워요. 반면 남편은 계획대로 움직이고 때로 브레이크를 걸기도 하는 세모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세모는 내가 보지 못하는 위기를 살피고 조언을 해주는 조력자일 수도 있는 셈이죠. 우린 서로 다르지만 어쩌면 달라서 서로의 덕을 보며 살고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 작가가 ‘그림책을 아이에게 읽어주기 전에, 엄마가 먼저 제대로 읽어야 하는구나’하는 깨달음을 얻었던 순간이었다. 그림책에는 아이의 성장과정에서 느끼는 심리와 고민이 어떤 책보다도 잘 표현돼 있다. 그래서 아이를 어떻게 키울지 모르는 초보 엄마와 아빠들의 ‘부모 교육’을 위한 맞춤형 교재이기도 하다. 국문학을 전공하고 방송 구성작가로 10년을 일했던 최 작가는 결혼해서 아이가 태어난 후 동화구연을 배웠다고 한다. 2011년 색동회 대한민국 어머니동화구연대회에서 대상(여성가족부 장관상)을 받기도 했다. 처음에는 아이에게 재밌게 읽어줄 요량으로 동화구연을 배웠는데, 그만 자신이 그림책의 스토리텔링 매력에 흠뻑 빠지고 말았다. 이 책은 부모가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는 방법을 소개하는 책이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삶에 지친 워킹맘이었던 작가의 육아체험에 대한 진솔한 고백이기도 하다. 아이에게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지만 될 수 없어서 늘 헤메고, 울부짖고, 허무해했던 작가의 기록이다. 그는 ‘고함쟁이 엄마’(유타 바우어 지음)란 책에서 엄마 펭귄이 소리를 지를 때 아기 펭귄의 몸이 세상 곳곳으로 산산히 흩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을 돌아본다. 내가 왜 고함쟁이 엄마가 됐는지, 아이에게 시도때도 없이 버럭소리를 지르는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엄마들은 육아도 힘들지만, 상대적으로 초라해보이는 내 삶에 대한 창피함이 있어요. 독서는 말할 것도 없고, 문화예술과 담쌓고 산지 오래인 나의 일상…. 두툼한 교양서는 물론 소설을 읽거나, 극장에서 영화나 공연을 보는 것도 쉽지 않았죠. 그런데 어느날 엄마인 나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예술영역이 가까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지요. 바로 그림책이었습니다.” 최 작가는 “그림책을 통해 엄마인 나의 자존감을 바로 세우고, 아이를 키우는 일까지 위로와 지혜를 얻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는 이를 위해 그림책을 ‘읽기’ 대신에 ‘감상하기’를 해보자고 제안한다. 이렇게 표현을 바꿔보면 그림책을 바라보는 시각, 나의 태도가 달라진다. 그림책은 글 뿐 아니라 이미지로 전하는 감흥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그림책의 시각 자극은 매우 빠르게 정서적인 반응을 일으킨다. 그런 과정을 통해 어른들의 마음 속 깊이 덮어두거나 눌러두었던 무의식을 건드려 수많은 감정과 연상이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된다. “그림책을 깊이 들여다 볼 때 부모가 얻는 지혜와 감동이 아이보다 훨씬 클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부모가 가진 삶의 경험치가 훨씬 크기 때문입니다. 또한 살아오면서 갖게 된 편견, 선입견 또한 부모가 더 많기에 감흥도 더 크게 느낄 수 있어요. 철석같이 믿었던 생각이 바뀌고 가치관이 뒤바뀌는 경험을 그림책을 통해 하게 되는 것이죠.” 그는 그림책은 ‘느리게’ 읽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구석구석 숨은 그림의 의미 하나하나가지 찾아가며 아이와 대화를 하고, 나뭇잎 색깔의 변화를 통해 그림에 담긴 시간의 흐름을 느끼고, 등장인물들의 크기와 목소리 톤까지 생각하며 읽어보라고 조언한다. 그리고 책을 다 읽은 후에는 엄마가 아이와 함께 10분 동안 질문과 대답을 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무엇일까’, ‘주인공에게 물어보고 싶은 말’,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주인공과 나와 닮은 점, 다른 점’과 같은 질문을 주고받으며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엄마가 질문하면 아이만 답하는 일방통행이 아니라, 똑같은 질문은 아이가 던지고 엄마도 솔직하게 느낌을 이야기하는 쌍방향 대화여야 한다고 작가는 강조한다. “아기와 엄마가 질문에 대한 대답에 다시 되묻기를 하고 곰곰이 생각해 보게 하는 과정을 통해 그림책 읽기를 하다보면, 엄마인 나조차 모르고 있거나 나도 모르게 숨기려 들었던 문제를 마주하게 됩니다. 어른이나 아이나 내 속내를 확인하는 것이 마음 편하지만은 않은데 그림책을 통해서라면 다행히 비교적 안전하게 마주하게 되죠. 타인에 의해 들춰지거나 그로 인한 수치스러움을 겪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최 작가는 이러한 ‘그림책 질문 놀이’를 수없이 많은 국공립어린이집과 유치원, 도서관 문화센터 등에서 아이와 부모들에게 함께 체험하도록 했다. “그림책을 읽고 아이와 질문과 되묻기를 하다보면 부모인 내가 왜 유독 그 부분에 화가 났는지, 아이의 행동 중에 나는 왜 그 모습이 눈에 거슬리는지, 내가 생각하는 것이 정말 내 아이의 문제인지, 나의 문제인지 성찰하게 됩니다. 바로 나 자신에 집중하고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죠. 그림책을 통해 나와 내 아이에 대해 깨닫는 통찰은 곧 그 자체로 ‘부모교육’의 효과를 줍니다. 아이의 성장과 함께 부모의 성장도 얻는 기회죠. 그리고 무엇보다 힘겹고 외로운 육아 중에 엄마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위로와 환기의 방법이기도 합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