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재

이호재 기자

동아일보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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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틈틈이 소설을 쓰며 스토리텔링에 천착한다. 숨소리까지 살아 숨쉬는 생생한 내러티브 기사가 넷플릭스 영상보다 가치 있는 컨텐츠라 믿는다.

hoho@donga.com

취재분야

2025-11-17~2025-12-17
문화 일반51%
인사일반20%
문학/출판10%
기획7%
무용3%
사고3%
칼럼3%
기타3%
  • [책의 향기]선로 위 출몰하는 실루엣의 정체

    1994년 늦가을, 30대 남성 열차 기관사 사와키 히데오는 열차를 운행하다 ‘실루엣’과 마주쳤다. 가로등 불빛에 비친 실루엣은 사람처럼 보였다. 당황한 사와키는 오른손으로 브레이크장치를 돌려 열차를 급정지시켰다. 선로를 확인했지만 사고 흔적은 없었다. 역무원도 “접촉 흔적은 없다. 신원 미상자도 발견 못 했다”고 했다. 실루엣은 바람에 날아간 듯 사라져버린 것 같았다. 실루엣은 사람이었던 걸까.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일본 ‘사회파’ 추리소설 작가로 꼽히는 다카노 가즈아키의 신작 장편소설이다. 가즈아키가 장편소설을 펴낸 건 일제의 제노사이드(대량 학살)를 비판적으로 다룬 장편소설 ‘제노사이드’(2012년·황금가지) 이후 11년 만이다. 이번 소설은 1962년 도쿄 열차 추돌사고 사망자 160명 중 한 명의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사건을 모티프로 했다. 소설은 월간지 기자 마쓰다 노리오가 심령 특집 기사를 취재하며 시작된다. 마쓰다는 선로에서 한 여성이 희미하게 찍힌 제보 사진을 받는다. 진위를 파악하기 위해 목격자와 경찰을 만나던 마쓰다는 여성의 실체가 과거 열차 사고로 사망했던 인물이라는 정황을 파악한다. 흥미를 끌 만한 기삿거리를 찾아다니던 마쓰다는 조금씩 ‘왜 여성의 혼이 지상을 떠나지 못하는지’ 궁금해한다. 마쓰다가 여성의 ‘유령’을 마주한 뒤 2년 전 세상을 떠난 자신의 아내의 혼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희망을 품다가 절망하는 심리를 애절하게 그렸다. 이 책은 올해 일본 대중문학상인 나오키상 후보에 올랐을 정도로 일본에서 화제를 끌었다. 군더더기 없이 사건 위주로 빠르게 진행되는 덕에 흡인력이 높다. 충실한 자료 조사와 인터뷰로 사각지대에서 벌어지는 사고를 걱정하며 매일 운행하는 철도 기관사들의 일상을 사실적으로 살려냈다. 거품경제 붕괴 이후 심령처럼 공포심을 자극하는 이야기에 휩쓸린 일본 사회상을 반영하기 위해 1990년대를 배경으로 삼았는데, 요즘 한국 현실과도 그리 동떨어지지 않은 것 같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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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남한 할머니 항상 귀향 원해… 가족 이야기에 상상 더했다”

    “북한에서 태어나 6·25전쟁 때 남한에 온 이모할머니는 항상 고향에 돌아가고 싶어 했습니다. 가족 이야기에 상상을 더해 썼어요.” 장편소설 ‘핵가족’(위즈덤하우스)을 펴낸 한국계 미국 작가 조셉 한(한국명 한요셉·32)은 20일 화상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실향민 외할아버지의 혼령이 미국인 손자의 몸에 들어가 월북을 시도하는 내용의 신간이 가족 이야기에서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는 “6·25전쟁을 겪은 실향민들이 다수 세상을 떠나면서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던 그들의 꿈도 같이 사라지고 있다”며 “가족의 역사를 이해하고 싶어 작품을 썼다”고 했다. 신간은 하와이에서 ‘조씨네 델리’라는 식당을 운영하는 부모 밑에서 자란 한국계 미국인 제이컵 조가 한국 여행 중 비무장지대(DMZ)에서 월북을 하며 시작된다.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고향을 그리워하던 실향민 외할아버지의 혼령이 제이컵 조의 몸에 들어가 월북하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해 미국에서 성공적인 정착을 꿈꾸던 부모의 삶은 혼란에 빠지지만, 제이컵 조는 할아버지와 대화하며 자신이 알지 못했던 조국의 슬픈 역사를 알게 된다. 그는 “한국에서 태어나 세 살 때 하와이로 이주했다”며 “한국어와 한국 역사에 대해 배울 기회가 없어 갈증을 느꼈던 내 마음이 소설에 담겼다”고 했다. 지난해 미국에서 ‘Nuclear Family(핵가족)’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신간은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의 ‘올해의 책’에 선정될 정도로 화제가 됐다. 현지에선 이민진 작가의 장편소설 ‘파친코’ 등 한국 이산문학(디아스포라 문학) 열풍이 영향을 끼쳤다고 평가한다. 그는 “새로 정착한 집(미국)에서 쌓은 경험과 고향(한국)을 어떻게 바라보는지가 다층적으로 담긴 선배 이산문학 작가들의 성공이 내게 용기를 줬다”며 “이산문학은 내게 제2의 고향”이라고 했다. 공교롭게도 최근 주한미군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견학하다 무단으로 북한으로 넘어가 논란이 되고 있다. 그는 “지인에게서 미군 병사의 월북 소식을 전해들었다”며 “내 작품 속 이야기와 너무나 흡사해서 깜짝 놀랐다”고 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그는 웃으며 답했다. “하와이 한인사회에 대한 소설을 구상 중입니다. 하와이를 벗어나 좀 더 넓은 시각에서 새 작품을 쓸 계획도 있어요.”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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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TS 첫 공식 인터뷰집… NYT 베스트셀러 비소설 1위

    9일 출간된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첫 공식 인터뷰집 ‘비욘드 더 스토리: 텐 이어 레코드 오브 BTS’(빅히트뮤직·사진)가 19일(현지 시간) 발표된 미국 뉴욕타임스(NYT) 베스트셀러 ‘비소설 하드커버’ ‘비소설 컴바인드 프린트 및 전자책’ 부문 1위를 각각 차지했다. NYT 베스트셀러에서 한국인 저자의 책이 1위에 오른 건 처음이다. ‘비욘드…’는 하이브의 팬 플랫폼 위버스 매거진 편집장 강명석 씨가 BTS 멤버들을 인터뷰해 쓴 책으로, 총 23개 언어로 출간됐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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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봉 118억 비결? 재테크 말고 일에 투자하라”

    “지금도 가끔 모기 50마리가 날아다니는 것 같은 이명(耳鳴)이 들립니다.” 고동진 삼성전자 고문(62)은 19일 서울 강남구 민음사 사옥에서 보청기를 낀 오른쪽 귀와 전혀 들리지 않는 왼쪽 귀를 번갈아 보여주며 차분히 말했다. 그는 “2006년 8월 회의 직후 쓰러졌다. 뭉크(1863∼1944)의 그림 ‘절규’의 한 장면처럼 세상이 빙빙 돌았다”고 회상했다. 당시 무선사업부 해외상품기획그룹 상무였던 그는 휴대전화를 해외에 소개하는 일을 맡고 있었다. 자신을 극한까지 밀어붙여서였을까. 응급실에 실려 갔고, 돌발성난청 진단을 받았다. 아내는 “퇴사하라”고 했지만 그는 스스로에게 “후회 안 할 자신 있어?”라고 물었다. 업무에 복귀한 그는 2015년 자신의 꿈이던 삼성전자 사장이 됐다. ‘갤럭시 성공 신화’의 주역으로, 에세이 ‘일이란 무엇인가’(민음사)를 11일 펴낸 고 고문은 경청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잘 들리지 않는 청력을 만회하려는 듯 가까이 다가와 질문을 들었다. “일에 투자하라”고 강조하는 신간이 MZ세대(밀레니얼+Z세대)에게 ‘꼰대의 잔소리처럼 들리겠다’고 묻자 허허 웃으며 답했다. “좋은 약은 입에 쓰죠. 불평만 하는 사람은 어차피 이 책을 안 읽을 겁니다. 하지만 목표가 있는 청년에겐 필요한 조언이라 생각해요.” 성균관대 산업공학과를 졸업한 그는 “마흔 살엔 불고기백반을 매일 사 먹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로 가난했다. 성공할 방법은 일뿐이라 생각했다. 1984년 삼성전자에 입사하며 “사장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포부와 달리 신입사원으로 칠판을 지우고, 명절 선물을 나눠주는 잡다한 일을 했다. 먼지를 뒤집어쓰며 연구소 사무실 이삿짐을 날랐던 그는 일본어를 잘하는 동료가 번역을 한 뒤 칭찬받는 걸 보며 좌절했다. 이런 상황을 바꾸기 위해 ‘50초 브리핑’을 시작했다. 매일 출근하자마자 상사에게 그날 할 일을 짧게 보고한 것. 업무 효율성은 물론이고 이를 반기는 상사와의 관계도 좋아졌다. 신간에서 그는 “창의력은 현장을 뛰는 ‘발’에서 나온다”, “일하지 않을 때도 목표를 생각하고 추구하며 노력하는 것이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이라고 강조한다. 언뜻 ‘라떼는 말이야’로 시작되는 얘기 같지만, 출간 1주일 만에 1만 부가 팔렸다. 온라인 서점 알라딘 구매자의 38%가 20, 30대일 정도로 젊은 세대가 주목한 건 ‘무조건 열심히’가 아니라 구체적 계획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그는 “퇴근 전에 늘 다음 날 할 일을 시간 단위로 정리하는 ‘투 두 리스트(To do list)’를 만들었다”며 “퇴근 후엔 일본어, 주말엔 영어 공부를 하며 조금씩 목표를 향해 나아갔다”고 했다. “재테크 열풍은 우리 시대에도 있었습니다. 오전 9시만 되면 동료들이 전화로 주식 주문하려고 회의실로 들어가더군요. 하지만 일에 투자하는 게 제 길이라 생각했죠.” 그가 무선사업부장(사장)이던 2016년 갤럭시 노트7 배터리 발화 사건이 일어났다. 불안감이 치솟던 때 그는 과감하게 리콜이 아닌 단종을 결정했다. 당시 손해비용이 7조 원에 달했다. “회의에서 각 부서 담당자들이 ‘너희 책임이다’며 서로 삿대질하더라고요. ‘내 책임이다. 아무도 자르지 않겠다’고 하고 해결에만 집중했죠.” 그는 2022년 3월 대표이사에서 물러났다. 2021년 급여와 상여금, 퇴직금을 포함해 총 118억3800만 원을 받았다. 기록적인 액수다. 그는 “월급쟁이로 시작해도 열심히 살면 이 정도 받을 수 있다고 청년들이 생각하면 좋겠다”고 했다. 청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묻자 이렇게 답했다. “사회에서 만난 좋은 선배들이 저를 키웠어요. 그래서 저도 후배들을 돕고 싶습니다. 한 명이라도 제 조언이 필요하면 불러주세요.”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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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암투병 거장의 마지막 피아노 콘서트 영상 보러 오세요”

    어두컴컴한 전시장에 들어서자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이 들렸다. 커다란 화면 속에서 일본 음악가 사카모토 류이치(坂本龍一·1952∼2023)가 자신의 대표곡 ‘메리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을 연주하고 있었다. 조명이 비친 벽엔 사카모토가 2021년 1월, 20시간에 걸쳐 대장의 30cm를 잘라내는 대수술을 받은 뒤 남긴 말이 적혀 있었다. “저는 앞으로 암과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조금만 더 음악을 만들어볼 생각입니다.” 서울 중구 복합문화공간 피크닉에서 사카모토의 추모 전시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가 13일부터 열리고 있다. 올해 3월 28일, 71세로 세상을 떠난 사카모토를 위한 전시다. 12일 먼저 찾은 전시장엔 사카모토가 생애 마지막 순간 일기처럼 써 내려간 글이 벽 곳곳에 적혀 있었다. 지난달 28일 출간된 사카모토 유고집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위즈덤하우스)에 나오는 글귀다. 사카모토의 콘서트 영상은 물론이고 한국 미디어 아티스트 백남준(1932∼2006)과 함께 찍은 사진 등 생전 사카모토의 다양한 모습이 전시됐다. 김범상 피크닉 대표는 “2018년 피크닉 개관 당시 사카모토의 전시 ‘라이프, 라이프’를 개최한 인연으로 이번 전시를 기획했다. 추모의 마음을 담아 무료로 전시를 연다”고 했다. 30일까지.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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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TS 정국 솔로 데뷔곡 ‘세븐’… 106개국 아이튠스 차트 1위

    그룹 방탄소년단(BTS) 멤버 정국(사진)의 솔로 데뷔곡 ‘세븐’이 15일 미국, 영국, 캐나다, 독일, 프랑스 등 106개 국가에서 아이튠스 ‘톱 송’ 차트 정상에 올랐다. 정국이 14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 센트럴파크에서 열린 ‘2023 서머 콘서트 시리즈’에서 신곡을 공개한 지 하루 만이다. ‘세븐’은 16일 세계 최대 음원 플랫폼 스포티파이 ‘데일리 톱 송 글로벌’ 1위에도 올랐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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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큰물에서 뛰고 싶다… 중국서 활약하는 한국 여자 기사들

    최근 한국 여자바둑 선수들의 실력이 급상승하면서 중국 리그에서 활약하는 한국 선수가 늘어나고 있다. 올 5월 개막한 중국여자갑조리그에는 총 10개 팀 40명의 선수가 참가하는데 이 중 한국 선수가 3명이다. 한국 여자 기사 순위 2∼4위인 김채영 8단, 김은지 5단, 오유진 9단이 외국인 용병 기사로 참가했다. 한국 여자 기사 순위 1위인 ‘바둑여제’ 최정 9단만 빠지고 최정상 여자 기사가 모두 참가한 셈이다. 일본에서 나카무라 스미레 3단, 대만에서 헤이자자 7단이 출전했다. 특히 김채영은 우승 후보인 장쑤팀에서 뛰며 주목받고 있다. 한국 선수들이 중국 리그에 참가하는 건 높은 수입 때문이다. 중국 리그는 대국료나 승리 수당이 한국보다 높다. 계약 조건에 따라 다르지만 판당 받는 승리 수당이 10만 위안(약 1800만 원)으로 알려졌다. 지더라도 대국료 개념으로 판당 2만 위안(약 350만 원)을 받는 것으로 전해진다. 남성 기사의 사례지만 신진서 9단은 2022년 대국 수입으로 14억4495만 원을 벌어들였는데 이 중 2억400만 원을 중국갑조리그에서 받았다. 실력 상승에도 중국 리그는 도움이 된다. 중국바둑리그는 단단한 체계를 자랑한다. 2004년 출발한 한국바둑리그 역시 중국바둑리그 체계를 따와서 창설됐을 정도다. 또한 중국은 여자 세계 랭킹 1위인 최정을 뒤쫓고 있는 세계 랭킹 2, 3위 위즈잉과 저우훙위 등 선수층이 두껍다. 특히 김채영과 오유진은 올해 5번째로 중국여자갑조리그에 참가한다. 김채영이 이달 7일 NH농협은행 한국여자바둑리그에서 한국 여자 기사 중 6번째로 500승을 달성한 뒤 바로 중국여자갑조리그로 이동해 501승에 도전장을 던진 것처럼 한국에서 중국으로의 이동이 어렵지 않다는 점도 중국 리그에서의 활약에 영향을 미친다. 중국바둑리그 내 한국 여자 기사의 성과도 상승세다. 지난해 중국여자갑조리그엔 한국 기사 3명이 활약했는데 오유진이 8판을 둬 모두 이겼다. 조승아 6단은 6승 3패, 김혜민 9단은 3승 6패를 기록해 3명의 합산 전적은 17승 9패로 65.4%의 승률을 기록했다. 4명이 참가해 20승 16패로 승률 55.6%를 거뒀던 2020년에 비해 높아진 수치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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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우리를 닮은 너… 처음 만났을 땐 심장이 터질 것 같았지

    1960년 당시 26세였던 영국 동물학자 제인 구달은 아프리카 탄자니아 곰베 밀림에서 침팬지 ‘데이비드 그레이비어드’를 만났다. 이 침팬지는 나뭇가지를 낚싯대로 만들어 흰개미를 잡고 있었다. 흰개미 둥지에 나뭇가지를 쑤셔 넣으면 흰개미들이 나뭇가지를 따라 기어올랐고 이를 날름 핥아먹은 것이다. 구달은 이 관찰을 자신의 스승인 영국 인류학자 루이스 리키 박사(1903∼1972)에게 보고했다. 리키 박사는 “인간과 도구에 대한 정의를 다시 내려야 한다”며 환호했다. 미국 다큐멘터리 잡지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 촬영을 시작했고,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데이비드 그레이비어드를 ‘역대 가장 영향력 있는 동물’ 15마리 중 하나로 선정했다. 하지만 구달은 60여 년 전 이때를 명성을 얻게 된 순간이 아니라 침팬지와 처음 교감하기 시작한 순간이라고 회상한다. “나를 믿어 준 첫 번째 침팬지였어요. 녀석이 나를 받아들여 준 덕분에 다른 침팬지들도 내가 전혀 위험하지 않은 존재라는 걸 차츰 납득했어요.” 평생 침팬지를 연구한 세계적 동물학자 구달의 인터뷰집이다. 최근 방한한 구달은 이달 7일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와 만나 “개와 동물을 학대하는 식용 문화의 종식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구달이 89세까지 걸어온 삶을 솔직하게 풀어놓았다. 구달은 어린 시절 소설 ‘타잔’(1914년)을 읽고 야생 동물과 더불어 살고 싶다는 꿈을 꿨다. 학창 시절 성적이 좋았지만, 집안 형편 때문에 대학에 가지 못했다.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 돈을 모아 케냐로 여행을 갔고, 당시 케냐 나이로비 국립자연사박물관장이었던 리키 박사의 비서가 됐다. 구달을 눈여겨본 리키 박사가 “침팬지 연구를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한 덕에 연구자가 될 수 있었다. “매일 동이 트기 전에 깨어나 가파른 산길을 오르면서 침팬지를 찾았죠. 기어서 접근하다가 덤불에 팔다리와 얼굴이 긁히면서도 침팬지와 마주하면 심장이 터질 것처럼 설렜어요.” 구달은 침팬지 연구로 세계적 동물학자가 됐지만, 곧 아프리카 전역에서 침팬지가 사냥당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침팬지 새끼를 데려가 애완동물로 삼고, 서커스용으로 키우는 인간들을 보며 절망에 빠졌다. 굶주린 사람들이 작물을 재배하기 위해 나무를 베면서 침팬지 서식지가 사라지는 것을 목격했다. 그는 야생 동물과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1977년 ‘제인 구달 연구소’를 설립했다. 환경에 대한 자세의 변화를 촉구하기 위해 세계 각지로 강연을 다니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환경을 파괴하지 않고 삶을 영위하는 방법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침팬지를 구할 방법도 없었어요.”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발견한 구달이 자연을 살릴 유일한 주체로 제시하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이다. 여전히 가장 뛰어난 지능을 지닌 인간은 기후 변화와 동식물의 멸종을 늦출 방법을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자연을 파괴하는 동물 아니냐’는 질문에 구달은 이런 답변을 내놓는다. “여전히 우리 아이들과 손자들의 미래를 위한 희망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간 지구에 끼친 해악을 치유할 수 있는 시간의 창문이 아직 우리에게 열려 있다고 믿습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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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구를 치유할 수 있는 시간은 열려 있어”…제인 구달의 ‘희망의 책’

    1960년 당시 26세였던 영국 동물학자 제인 구달은 아프리카 탄자니아 곰베 밀림에서 침팬지 ‘데이비드 그레이비어드’를 만났다. 이 침팬지는 나뭇가지를 낚싯대로 만들어 흰개미를 잡고 있었다. 흰개미 둥지에 나뭇가지를 쑤셔 넣으면 흰개미들이 나뭇가지를 따라 기어올랐고 이를 날름 핥아먹은 것이다. 구달은 이 관찰을 자신의 스승인 영국 인류학자 루이스 리키 박사(1903~1972)에게 보고했다. 리키 박사는 “인간과 도구에 대한 정의를 다시 내려야 한다”고 환호했다. 미국 다큐멘터리 잡지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 촬영을 시작했고,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데이비드 그레이비어드를 ‘역대 가장 영향력 있는 동물’ 15마리 중 하나로 선정했다. 하지만 구달은 60여 년 전 이때를 명성을 얻게 된 순간이 아니라 침팬지와 처음 교감하기 시작한 순간이라고 회상한다. “나를 믿어 준 첫 번째 침팬지였어요. 녀석이 나를 받아들여 준 덕분에 다른 침팬지들도 내가 전혀 위험하지 않은 존재라는 걸 차츰 납득했어요.” 평생 침팬지를 연구한 세계적 동물학자 구달의 인터뷰집이다. 최근 방한한 구달은 이달 7일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와 만나 “개와 동물을 학대하는 식용 문화의 종식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구달이 89세까지 걸어온 삶을 솔직하게 풀어놓았다. 구달은 어린 시절 소설 ‘타잔’(1914년)을 읽고 야생 동물과 더불어 살고 싶다는 꿈을 꿨다. 학창시절 성적이 좋았지만, 집안 형편 때문에 대학에 가지 못했다.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 돈을 모아 케냐로 여행을 갔고, 당시 케냐 나이로비 국립자연사박물관장이었던 리키 박사의 비서가 됐다. 구달을 눈여겨본 리키 박사가 “침팬지 연구를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한 덕에 연구자가 될 수 있었다. “매일 동이 트기 전에 깨어나 가파른 산길을 오르면서 침팬지를 찾았죠. 기어서 접근하다가 덤불에 팔다리와 얼굴이 긁히면서도 침팬지와 마주하면 심장이 터질 것처럼 설렜어요.” 구달은 침팬지 연구로 세계적 동물학자가 됐지만, 곧 아프리카 전역에서 침팬지가 사냥당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침팬지 새끼를 데려가 애완동물로 삼고, 서커스용으로 키우는 인간들을 보며 절망에 빠졌다. 굶주린 사람들이 작물을 재배하기 위해 나무를 베면서 침팬지 서식지가 사라지는 것을 목격했다. 그는 야생 동물과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1977년 ‘제인 구달 연구소’를 설립했다. 환경에 대한 자세의 변화를 촉구하기 위해 세계 각지로 강연을 다니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환경을 파괴하지 않고 삶을 영위하는 방법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침팬지를 구할 방법도 없었어요.”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발견한 구달이 자연을 살릴 유일한 주체로 제시하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이다. 여전히 가장 뛰어난 지능을 지닌 인간은 기후 변화와 동식물의 멸종을 늦출 방법을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자연을 파괴하는 동물 아니냐’는 질문에 구달은 이런 답변을 내놓는다. “여전히 우리 아이들과 손자들의 미래를 위한 희망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간 지구에 끼친 해악을 치유할 수 있는 시간의 창문이 아직 우리에게 열려 있다고 믿습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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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 먹는 여우, 같이 왔냐고요? 이번엔 책도 함께 썼답니다”

    “‘책 먹는 여우’도 같이 왔나요?” 11일 오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인스타그램 생방송으로 진행된 독일 동화 작가 프란치스카 비어만(54)과 한국 독자의 만남 행사에서 한 아이는 이렇게 질문했다. 지난달 28일 출간된 ‘잭키 마론과 푸른 눈 다이아몬드’(주니어김영사·사진)의 저자 목록에 비어만과 함께 그의 대표작 ‘책 먹는 여우’(2001년·주니어김영사)의 주인공이 올라가 있자 엉뚱한 상상력을 발휘한 것이다. 비어만은 아이에게 “오늘은 같이 못 왔지만, 다음엔 꼭 함께 오겠다”고 화답했다. 이날 오후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난 비어만은 아이뿐 아니라 어른에게도 환한 웃음을 짓는 친절한 ‘독일 아줌마’였다. 그는 “신간은 ‘책 먹는 여우’의 주인공이 책 먹는 일을 넘어 책을 쓰는 일에도 함께 참여했다는 가정으로 썼다”며 “아이들에겐 동화 속 세상과 현실이 뒤섞여 있어 재밌는 도전을 해봤다”고 했다. 독일 함부르크 디자인전문예술대를 졸업한 비어만은 2000년 발표한 ‘책 먹는 여우’로 세계적 작가가 됐다. 이 작품은 독일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렸고, 14개 언어로 번역됐다. 특히 한국에서 2001년 출간된 뒤 22년 동안 90만 부가 팔리고 어린이 뮤지컬로 만들어질 정도로 인기를 누렸다. ‘책 먹는 여우와 이야기 도둑’(2015년·주니어김영사) 등 한국에 소개된 비어만 작품 15편은 총 150만 부가 팔렸다. ‘당신의 작품이 왜 한국에서 인기를 끄느냐’고 묻자 그는 곰곰이 생각한 뒤 답했다. “‘책 먹는 여우’는 주인공 여우가 책을 너무 좋아해 소금과 후추를 뿌려 닥치는 대로 먹어버리는 이야기예요. ‘책을 먹는다’는 신선한 접근법이 한국 아이들이 책에 대해 가지고 있는 문턱을 낮춘 것 아닐까요. 한국 특유의 교육열도 한몫했고요.” 2017년 이후 6년 만에 방한한 소감을 묻자 그는 “벌써 세 번째 한국에 와서 친숙하다. 경복궁과 광화문 인근 곳곳을 돌아다니며 한국 음식을 배부르게 먹었다”며 애정을 듬뿍 드러냈다. 신간은 2017년 시작한 ‘잭키 마론’ 시리즈 4편이다. 여우 탐정 잭키 마론이 다이아몬드 도난 사건의 범인을 추적하는 이야기다. 영국 군주가 대관식에서 드는 십자가 왕홀에 박힌, 세계에서 가장 큰 투명 다이아몬드 ‘컬리넌’에 얽힌 논란을 은유적으로 다뤘다. 그는 “컬리넌은 20세기 초 영국의 식민지였던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불법 반출된 것이라 반환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며 “동화에는 교육적 성격이 담겨 있는 만큼 사회적 문제를 쉬우면서도 조심스레 다루려고 했다”고 했다. 그는 15일까지 빽빽한 일정을 소화하며 한국 아이들을 만난다. 9일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열린 사인회엔 독자 300명이 찾았다. 2시간으로 예정된 행사가 4시간이나 진행될 정도로 비어만에 대한 한국 독자들의 사랑은 여전했다. “한국 아이들과 직접 만나 동화 이야기를 하면 행복해져요. 한국 아이들이 제 책을 사랑하는 게 느껴지거든요. 하하.”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그는 ‘책 먹는 여우’ 인형을 매만지며 답했다. “잭키 마론 시리즈로 어린이 연극을 준비하고 있어요. 잭키 마론도 ‘책 먹는 여우’처럼 동화책 밖으로 나와 아이들을 만나길 바라는 마음에서죠. 다음에 한국에 올 땐 아이들과 함께 연극을 보고 싶네요.”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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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아이들이 ‘책 먹는 여우’도 같이 왔냐고 묻더라”

    “초등학생 때 동화 ‘책 먹는 여우’(2001년·주니어김영사)를 읽고 독서에 빠졌습니다. 감사합니다!”9일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 독일 동화 작가 프란치스카 비어만(54)에게 사인을 받던 남자 고등학생이 수줍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놨다. 엄마와 함께 온 한 초등학생은 “한국에 온 걸 환영한다”며 윷놀이 세트를 선물했다. 한 중학생은 “‘책 먹는 여우’ 주인공 같아 준비했다”며 여우 모양의 초콜릿을 비어만에게 줬다. 비어만이 이날 연 사인회를 찾은 독자만 300명이다. 2시간으로 예정된 행사가 4시간이나 진행될 정도로 비어만에 대한 한국 독자들의 사랑은 여전했다. 12일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난 비어만은 어느 질문에나 환한 웃음을 지으며 답하는 친절한 ‘독일 아줌마’였다. 2017년 이후 6년 만에 방한한 소감을 묻자 그는 “벌써 3번째 한국에 와서 친숙하다. 경복궁과 광화문 인근 곳곳을 돌아다니며 한국 음식을 배부르게 먹었다”며 애정을 듬뿍 드러냈다. “한국 아이들과 직접 만나 동화 이야기를 하면 행복해져요. 한국 아이들이 제 책을 사랑하는 게 느껴지거든요. 하하.” 독일 함부르크 디자인전문예술대를 졸업한 비어만은 2000년 발표한 ‘책 먹는 여우’로 세계적 작가가 됐다. 이 작품은 독일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렸고, 14개 언어로 번역됐다. 특히 한국에서 2001년 출간된 뒤 22년 동안 국내에서 90만 부가 팔리고 어린이 뮤지컬로 만들어질 정도로 큰 인기를 누렸다. ‘책 먹는 여우와 이야기 도둑’(2015년·주니어김영사) 등 국내에 소개된 비어만 작품 15편은 총 150만 부 팔렸다. 당신 작품이 왜 한국에서 인기를 끄냐’고 묻자 그는 곰곰이 생각한 뒤 답했다. “‘책 읽는 여우’는 주인공 여우가 책을 너무 좋아해 소금과 후추를 뿌려 닥치는 대로 먹어버리는 이야기에요. ‘책을 먹는다’는 신선한 접근법이 한국 아이들이 책에 대해 가지고 있는 문턱을 낮춘 것 아닐까요. 한국 특유의 교육열도 한몫했고요.” 그는 지난달 28일 ‘잭키 마론과 푸른 눈 다이아몬드’(주니어김영사)를 펴냈다. 2017년 시작한 ‘잭키 마론’ 시리즈 4편으로 여우 탐정 잭키 마론이 다이아몬드 도난 사건의 범인을 추적하는 이야기다. 영국 군주가 대관식에서 드는 십자가 왕홀에 박힌, 세계에서 가장 큰 투명 다이아몬드 ‘컬리넌’에 얽힌 논란을 은유적으로 다뤘다. 그는 “컬리넌은 20세기 초 영국의 식민지였던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불법 반출된 것이라 반환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며 “동화에는 교육적 성격이 담겨있는 만큼 사회적 문제를 쉬우면서도 조심스레 다루려고 했다”고 했다. 신간에서 독특한 건 저자 목록에 비어만과 함께 ‘책 먹는 여우’가 올라가 있다는 것이다. ‘책 먹는 여우’의 주인공이 책 먹는 일을 넘어 책을 쓰는 일에도 공동 작업에 참여했다는 가정으로 쓴 것이다. 그는 “아이들에겐 동화 속 세상과 현실이 뒤섞여 있어 재밌는 도전을 해봤다”며 “최근 인스타그램 라이브 방송을 했는데 한 한국 아이가 ‘책 먹는 여우도 같이 왔냐’고 묻는 해프닝도 벌어졌다”고 웃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그는 잭키 마론 인형을 매만지며 답했다. “잭키 마론 시리즈로 어린이 연극을 준비하고 있어요. 잭키 마론도 ‘책 먹는 여우’처럼 동화책 밖으로 나와 아이들을 만나길 바라는 마음에서죠. 다음에 한국에 올 땐 아이들과 함께 연극을 보고 싶네요.”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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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유억압 ‘무거운 현실’서, 농담처럼 ‘가벼운 존재’를 그리다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농담’ 등으로 인간의 속물근성을 까발리며 역사 속 개인의 실존을 탐구한 작가, 진짜 세상을 드러내지 못하는 ‘평범한 소설가들은 경멸당해 마땅한 존재’로 몰아붙였던 천재, 누구보다 전위적이었지만 고전주의적 미학을 추구한 체코 출신 소설가 밀란 쿤데라가 11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세상을 떠났다. 향년 94세. 12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고인의 물품을 소장하고 있는 체코 모라비안 도서관(MZK)의 아나 므라조바 대변인은 “쿤데라가 오랜 투병 끝에 사망했다”고 밝혔다. 위대한 현대 소설가로 꼽히며 노벨 문학상 수상 후보로 자주 거론됐던 고인은 1929년 체코슬로바키아 브르노에서 야나체크 음악원 교수의 아들로 태어났다. 야나체크 음악원에서 작곡을 공부하고, 프라하 예술아카데미에서 시나리오 작가와 영화감독 수업을 받았다. 1963년부터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운동’에 참여했다. 공산당을 비판하다 당에서 추방되고, 입당과 추방을 반복한 그는 1968년 공직에서 해직되고 저서들을 압수당했다. 결국 1975년 프랑스로 망명했다. 1979년 체코 국적을 박탈당했다가 2019년 국적을 회복했다. 고인은 1967년 공산주의 정권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담은 첫 장편소설 ‘농담’으로 이름을 알렸다. 작품은 농담마저 할 수 없는 감시가 가득한 사회주의 국가에서 몰락하는 개인의 삶을 그렸다. 프랑스의 시인이자 소설가 루이 아라공은 ‘농담’의 프랑스어판 서문에서 “소설이 빵과 마찬가지로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것임을 증명한 작가”라고 평가했다. ‘프라하의 봄’을 배경으로 역사에 짓눌린 사람들의 비극적인 삶과 사랑을 다룬 장편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1984년)은 그를 세계에 알린 대표작이다. 체코에서 가장 유명한 외과의사 토마스를 통해 인간의 속물근성과 불확실한 삶에 대해 관찰한 소설로 국내에서도 100만 부 이상 팔리며 ‘쿤데라 신드롬’을 불러왔다. “역사란 개인의 삶만큼이나 가벼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가벼운, 깃털처럼 가벼운, 바람에 날리는 먼지처럼 가벼운, 내일이면 사라질 그 무엇처럼 가벼운 것이다.” ‘참을 수 없는…’은 1989년 필립 코프먼 감독이 동명의 영화로 만들었다. 대니얼 데이루이스(토머스 역)와 쥘리에트 비노슈(테레사 역)가 출연해 큰 사랑을 받았다. 국내에서는 ‘프라하의 봄’이라는 제목으로 개봉됐다. 그는 작품에서 기성의 가치관에 회의를 품으며 개인의 자유와 자유를 억압하는 정치를 비롯한 현실 구조에 대한 문제의식을 담았다. 문학은 물론이고 예술 전반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소설 속에 풀어냈다. 시인, 희곡 작가, 평론가, 번역가로 폭넓게 활동했다.이재룡 숭실대 불문과 명예교수는 “인간의 가장 보편적인 자유를 주장한 작가로, 소설에 인간의 감정, 사상, 철학을 포괄적으로 담을 수 있다고 여기며 소설이란 장르의 폭을 넓혔다”고 평가했다. 불멸을 향한 인간의 헛된 욕망과 고독을 다룬 장편소설 ‘불멸’, 의미와 무의미의 경계에서 삶과 인간의 본질을 바라본 장편소설 ‘무의미의 축제’도 유명하다. 장편소설 ‘향수’는 체코를 떠나 파리에 정착한 이레나와 덴마크로 망명한 조제프가 프라하에서 보낸 며칠을 변주곡처럼 그려낸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삶은 다른 곳에’, ‘배신당한 유언들’, ‘이별의 왈츠’, ‘느림’, ‘정체성’도 사랑받았다. 국내에선 민음사가 15권으로 이뤄진 고인의 전집을 출간한 바 있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출판사인 갈리마르는 생존 작가에게는 매우 드물게 할애하는 ‘플레이아드 총서’에 쿤데라 전집을 포함했다. 2020년 체코에서 작가에게 주는 최고 문학상인 카프카상을 수상했다. 프랑스 메디치상, 아카데미 프랑세즈상, 프랑스국립도서관상을 받았다. 고인은 인터뷰를 비롯해 외부 노출을 극도로 꺼리며 살아왔다. 끊임없이 정치적 색깔에 대한 질문을 받아 온 고인은 언제나 자신을 ‘소설가’라고 소개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 2023-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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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훈아, 새 앨범 ‘새벽’ 발표… “새벽 별 보며 시 써”

    가수 나훈아(76)가 새 앨범 ‘새벽’(사진)을 10일 발표했다. 지난해 2월 55주년 기념 앨범 ‘일곱 빛 향기’를 발표하고 수록곡 ‘맞짱’ ‘Change(체인지)’의 뮤직비디오를 내놓은 지 1년 5개월 만이다. 새 앨범에는 ‘삶’ ‘사랑은 무슨 얼어 죽을 사랑이야’ ‘아름다운 이별’ ‘타투’ ‘가시버시’ ‘기장갈매기’ 등 총 6곡이 담겼다. 음원 플랫폼에 6곡의 음원, 유튜브에 뮤직비디오 6편이 공개됐다. 소속사 예아라는 “CD와 USB 음반은 추후 발매한다”고 밝혔다. 나훈아는 소속사를 통해 “새벽 별이 보이면 별을 헤며 시를 짓고, 새벽 비 내리면 빗소리 들으며 오선지에 멜로디를 담아 보기도 하고, 신곡 여섯 이야기는 모두 잠 못 드는 하얀 새벽에 지었다”고 밝혔다. 이어 “‘새벽’은 저에게 기타를 잡게 하고 피아노에 앉히기도 한다. 또는 눈 뜬 채 꿈을 꾸게도, 아픔을 추억하게 하여 술 한잔 하게도 만든다”고 했다. 또 “그렇게 오랜 세월을 ‘새벽’은 저를 잠 못 들게 했다”며 “늘 그랬듯이 설레고 긴장된 마음으로 신곡을 발표하면서 이 신곡들이 여러분께 작은 위로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고 덧붙였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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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정적 안무”… 화사, 공연음란 혐의 고발당해 [휴지통]

    걸그룹 마마무 멤버 화사(본명 안혜진·28·사진)가 대학 축제 공연 중 선정적인 안무를 했다는 이유로 고발당한 사실이 10일 알려졌다. 학부모 단체인 학생학부모인권보호연대는 지난달 22일 화사를 공연음란 혐의로 서울 광진경찰서에 고발했다. 화사가 올해 5월 12일 성균관대 축제 무대에서 곡 ‘주지마’를 부를 때 대학생들이 보기 부적절한 안무를 했다는 것이다. 화사는 tvN 프로그램 ‘댄스가수 유랑단’ 촬영 중이었고, 해당 장면은 방송에서 편집됐다. 신민향 학생학부모인권보호연대 대표는 “변태적 성관계를 생각나게 하는 화사의 안무가 대학생에게 수치심과 혐오감을 줬다”고 밝혔다. 광진경찰서는 화사의 거주지를 담당하는 성동경찰서로 사건을 넘겼다. 성동경찰서는 화사의 안무가 음란행위에 해당하는지 검토한 뒤 화사에 대한 출석 조사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화사 소속사인 피네이션 관계자는 “송구하다”고 밝혔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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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튀는 개성으로 SNS 맹활약… 출판계 ‘MZ세대 마케터’ 상한가

    “MZ세대(밀레니얼+Z세대) 마케터의 역량에 따라 책 판매량이 달라지고 있다.” 한 출판사 대표는 최근 출판계 상황을 이렇게 말했다. 책의 내용이나 만듦새만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홍보 방식이 중요해져 젊은 마케터의 역할이 커졌다는 것이다. 다른 출판사 대표는 “출판사 근무 경력은 짧아도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지닌 젊은 마케터를 구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고 했다. 최근 출판계에서 MZ세대 마케터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과거 마케터는 오프라인 서점에 가서 책을 소개하거나 행사를 기획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엔 참신함을 무기로 온라인에서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MZ세대 마케터의 강점은 특히 SNS에서 발휘된다. 출판사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 계정을 운영하며 신간 소개를 하는 건 기본이다. 자신이 책을 마케팅한 경험을 솔직하게 털어놓거나 회사와 관련된 일상을 소개하는 콘텐츠가 인기를 끈다. 구독자 14만 명인 민음사의 유튜브 채널 ‘민음사TV’에선 마케터들이 즐겨 먹는 도시락이나 비타민 등 직장 생활에 필요한 물건과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소개한다. 조회 수가 38만 회에 이르는 영상도 있다. 홍보 수단을 바꾸는 데도 거리낌이 없다. 문학동네 임프린트 출판사 이야기장수는 메타의 새로운 SNS 스레드가 출시된 다음 날인 6일 바로 스레드 계정을 만들었다. 김수인 문학동네 마케터(25)는 “인스타그램보다 스레드가 마케팅에 효과적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출판계에선 편집자에 비해 마케터 지망생이 적어 양질의 마케터 양성에 어려움이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국출판인회의가 운영하는 출판인 예비학교인 서울북인스티튜트(SBI)에서 24명을 선발하는 편집자 과정에 올해 170명이 지원했다. 반면 24명을 뽑는 마케터 과정엔 60명만 지원했다. 경쟁률이 편집자 7 대 1, 마케터 2.5 대 1로 상당히 차이가 난다. 이광호 한국출판인회의 회장은 “다른 콘텐츠 분야에서 활동하는 유능한 마케터를 스카우트하거나 신입 마케터를 키우는 것이 출판사의 성공 여부를 가를 것”이라고 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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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셰익스피어, 고흐… 예술가들이 사랑한 꽃

    영국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는 장미를 작품에 자주 활용했다.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주인공 줄리엣은 “우리가 장미를 어떻게 부르든, 이름이 무엇이든 그 향기는 달콤할 것”이라고 말하며 변함없는 사랑을 맹세한다. 소네트(짧은 정형시) 109번에선 “나의 장미여, 그대는 이 세상에서 나의 전부”라는 고백이 나온다. 보통 독자들은 셰익스피어의 문장을 읽으며 진한 자줏빛 꽃잎과 밝은 노란색 수술을 지닌 루고사 장미를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루고사는 18세기 후반에야 유럽에 전해졌다. 셰익스피어가 작품을 쓸 때 영국엔 여러 송이가 뭉쳐서 피는 아르테미스 장미나 꽃잎이 넓게 펼쳐지는 모스카타 장미가 많았다. 또 희곡 ‘한여름 밤의 꿈’엔 “향기 달콤한 머스크 장미”에 대한 예찬이 나오는데, 당시 영국 기후에서 머스크 장미는 늦여름에 개화했다. 식물학적으론 오류인 셈이다. 영국 출신 미술작가인 저자는 장미의 역사와 설화를 정리했다. 인류가 장미를 본격적으로 재배하기 시작한 건 기원전 2200년 메소포타미아에서다. 특유의 향기와 색으로 인간을 매료시킨 덕에 장미는 세계 곳곳에서 재배됐다. 영국 장미전쟁(1455∼1485년)에선 날카로운 가시로 인류를 위협했고, 밸런타인데이엔 달콤한 향기로 사랑을 전했다. 장미는 특히 예술가에게 사랑받았다. 고대 그리스 시인 호메로스는 서사시 ‘일리아스’에서 “장밋빛 손가락과 같은 새벽”이라는 문장으로 장밋빛을 자연에 비유했다. 이탈리아 화가 산드로 보티첼리(1445∼1510)는 그림 ‘잠자는 아기 예수를 경배하는 성모’에서 가시를 제거한 장미를 그려 성모 마리아의 따뜻함을 강조했다. 네덜란드 화가 빈센트 반 고흐(1853∼1890)는 화병에 담긴 장미를 담은 그림 ‘장미’를 통해 심신을 회복했다. 저자는 인류 역사와 예술 작품 곳곳에 자리 잡은 장미를 파고든다. 책장을 덮으니 장미 한 송이를 누군가에게 선물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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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자와의 만남이 내겐 바캉스예요”[이호재의 띠지 풀고 책 수다]

    “작가님 아니에요?” 지난달 30일 강원 원주시 ‘뮤지엄 산’에서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62)를 우연히 만난 관람객들은 이렇게 소리쳤다. 관람객들은 베르베르에게 사인을 요청하고, 함께 셀카를 찍었다. 이날 베르베르는 서울에서 ‘뮤지엄 산’까지 셔틀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에도 한국말로 ‘안녕하세요’라며 관람객들과 인사하곤 했다. 피곤하지 않냐고 물으니 베르베르는 능청스럽게 답했다. “문제없어요.” ‘베르베르의 조각들’은 장편소설 ‘개미’(1993년), ‘타나토노트’(1994년), ‘뇌’(2003년), ‘신’(2008년) 등으로 한국 독자에게 사랑받은 베르베르를 조명한 인터뷰집이다. 출판사 비미디어컴퍼니 직원들이 베르베르와 인연을 맺은 이들을 인터뷰해 다양한 이야기를 담았다. 가장 눈에 들어온 건 홍지웅 열린책들 대표의 인터뷰다. 홍 대표는 1993년 ‘개미’를 출간할 때 기존에 없던 방식으로 책을 알렸다. 신문 형태의 16쪽짜리 홍보용 잡지를 만든 것이다. 신문 광고로 ‘개미’와 작가에 대한 퀴즈를 내기도 했다. 일주일 동안 문의 전화가 쏟아져 업무를 못 볼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다. 홍 대표는 1994년 ‘타나토노트’를 출간했을 땐 베르베르를 한국으로 초청했다. 당시 중소 출판사였던 열린책들로선 큰 비용을 들인 홍보 방식이었다. 교보문고 사인회에 독자 800명이 모일 정도로 화제가 됐다. ‘베르베르 현상’이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졌을 정도였다. 홍 대표는 “마케팅이 없었으면 책이 5000부 정도 팔렸을까”라고 회고한다. 숭고한 영역일 것만 같은 문학 번역도 판매량 증가에 일조했다. 베르베르의 작품을 15년 동안 번역한 전미연 번역가는 책에 실린 인터뷰에서 “번역가는 마케팅팀의 일원”이라고 단언한다. 독자의 연령, 성별, 직업을 고려해 문체를 바꿔 번역한다는 것이다. 특히 베르베르처럼 어려운 과학 이론을 쉬운 언어로 풀어쓰는 작가의 작품은 ‘가독성’에 중점을 둬야 한다고 전 번역가는 강조한다. 베르베르 작품이 3500만 부가 팔렸는데 이 중 1300만 부를 한국 독자가 산 데엔 번역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작가의 스킨십이다. 책 인터뷰에서 베르베르는 “책 홍보를 위해 떠나는 여행이 내겐 바캉스”라며 독자를 만나는 일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다. 베르베르가 방한한 건 이번이 9번째다. 지난달 26일 한국에 온 베르베르는 이달 6일 출국할 때까지 여행, 사인회뿐 아니라 길거리에서도 수백 명의 독자를 만났다. 꿀벌 그림을 그리고, 이름을 써주는 베르베르의 사인을 받은 독자라면 지난달 20일 출간된 장편소설 ‘꿀벌의 예언’(전 2권·열린책들)을 사지 않을 수 있을까. 베르베르에 대해 “한물갔다”는 일각의 우려에도 ‘꿀벌의 예언’ 1권이 출간 직후 교보문고 종합 6위를 차지한 데엔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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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문대에 목매는 입시… 내가 기업인이면 한국 대학생 안뽑아”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수석 졸업하고 1998년 행정고시 재경직에 차석 합격했다. 기획재정부 사무관으로 근무하며 승승장구할 줄만 알았다. 하지만 한국에서 배운 ‘지식’은 세계무대에선 쓸모없었다. 공무원으로 세계무역기구(WTO) 회의에 참석했다가 의견을 제대로 말하지 못했다. 직장을 그만두고 미국 스탠퍼드대로 유학을 떠나 경제학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지만 다른 학생들과의 토론에 밀리기 일쑤였다. “한국에서 뭘 배웠냐”는 자괴감이 들었다. 미국 메릴랜드주립대 경제학과 교수로 일하다 2016년 한국으로 돌아왔다. 2020년부터 서울대 국제대학원 학생들의 진로를 상담하는 학생부원장으로 일하며 기업에서 채용할 만한 학생들을 추천해 달라는 제안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선뜻 추천할 수 없었다. ‘우리나라 최고의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도 이 상태니 한국의 미래가 어둡다’는 고민이 들었다. ‘대한민국의 학부모님께’(김영사·사진)를 지난달 25일 펴낸 이수형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47) 이야기다.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4일 만난 이 교수는 학부모를 대상으로 책을 쓴 이유를 묻자 “내가 기업인이면 한국 대학생들을 뽑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대학에서 졸업을 늦추며 시간을 허비하는 학생들을 많이 봤어요. 학생들에게 아무리 조언해도 안 바뀌기에 학부모를 상대로 책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죠.” 책에서 그는 한국 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인공지능(AI)의 발달로 취업시장은 급변하는데 아직도 소위 명문대 입시에 목매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과 한국에서 모두 공부하고, 학생들을 가르쳐보니 ‘학벌 지상주의’의 폐해를 여실히 깨달았다”며 “서울대를 나와도 하고 싶은 일이 없고, 전문성이 낮으니 해외 취업도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가 제시하는 건 ‘투자수익률’이다. 대학에 진학할 때 상위권 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아무 학과나 선택하는 게 아니라, 공학 등 취업률이 높은 과에 진학하라는 것이다. 화학공학, 컴퓨터공학 등 미국 취업시장에서 높은 임금을 받는 과에 진학하는 것도 해외 취업에 도움이 된다. 그는 2021년 구글이 주최하는 세계 최대 규모 AI 개발자 기술 경연대회 ‘캐글’에서 우승하며 이런 점을 깨달았다. “졸업 후 삼성에 취업하고 싶다고 막연히 말하는 학생이 많아요. 하지만 삼성에 가서 어떤 업무를 하고 싶은지 정한 학생들은 거의 없죠. 내가 잘할 수 있는 분야를 정하면 삼성이 아니라 애플에서도 일할 수 있어요.” 그는 영어 유치원 등 영어 사교육비가 늘어나는 상황에 대해 “가계 경제에 무리가 돼 부부싸움을 벌이지 않는 수준으로만 투자해야 한다”고 했다. 또 “스스로 자산을 투자하고 대출받는 성인에게 통계 지식이 필수인 시대라 ‘수포자’(수학포기자)가 되면 안 된다”고 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고교 교육과정을 벗어난 초고난도 ‘킬러 문항’을 내지 못하게 하는 정책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했다. “그보단 이상하게 꼬고 또 꼬아서 아이들이 못 풀도록 넘어뜨리려는 질 낮은 문항이 출제되는 상황을 바꿔야 합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학부모에게 당부했다. “학교 성적만큼 자녀의 정신적 건강도 생각해 주세요. 아이들이 좌절하지 않는다면 대학 진학에 어려움을 겪어도 대학원 진학, 취업, 사회생활에서 성공할 수 있습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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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녀 교육의 목적은 입시가 아니라 직업입니다”…‘대한민국의 학부모님께’ 펴낸 이수형 교수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수석 졸업하고 1998년 행정고시 재경직에 차석 합격했다. 기획재정부 사무관으로 근무하며 승승장구할 줄만 알았다. 하지만 한국에서 배운 ‘지식’은 세계무대에선 쓸모없었다. 공무원으로 세계무역기구(WTO) 회의에 참석했다가 의견을 제대로 말하지 못했다. 직장을 그만두고 미국 스탠퍼드대로 유학을 떠났지만, 다른 학생들과의 토론에 밀리기 일쑤였다. “한국에서 뭘 배웠냐”는 자괴감이 들었다.미국 메릴랜드주립대 경제학과 교수로 일하다 2016년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2020년부터 서울대 국제대학원 학생들의 진로를 상담하는 학생부원장으로 일하며 주위 기업에서 채용할만한 학생들을 추천해달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하지만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선뜻 추천할 수 없었다. 우리나라 최고의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도 이 상태니 “한국의 미래가 어둡다”는 고민이 들었다. 지난달 25일 대중교육서 ‘대한민국의 학부모님께’(김영사)를 펴낸 이수형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47) 이야기다.4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난 이 교수는 질문에 명확하게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는 ‘똑순이’ 자체였다. ‘왜 학부모를 대상으로 책을 썼냐’고 묻자 그는 “내가 기업인이면 한국 대학생들을 뽑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대학에서 졸업을 늦추면서 시간을 허비하는 학생들을 많이 봤어요. 학생들에게 아무리 조언해도 안 바뀌기에 학부모를 상대로 책을 쓰자고 생각했죠.”신간에서 그는 한국 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인공지능(AI)의 발달로 취업 시장은 급변하는데 소위 명문대 입시에 목매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과 한국에서 모두 공부하고, 학생들을 가르쳐보니 ‘학벌 지상주의’의 폐해를 여실히 깨달았다”며 “서울대에 나와도 하고 싶은 일이 없고, 전문성이 낮으니 해외 취업도 불가능하다”고 했다.그가 제시하는 건 ‘투자수익률’이다. 대학에 진학할 때 학교 순위를 높이기 위해 무분별하게 과를 선택하는 게 아니라, 공학 등 취업률이 높은 과에 진학하라는 것이다. 화학공학, 컴퓨터공학 등 미국 취업 시장에서 높은 임금을 받는 과에 진학하는 것도 해외 취업에 도움이 된다. 그는 2021년 구글이 운영하는 세계 최대 규모 AI 경진대회 ‘캐글’ 데이터 분석대회에서 우승하며 이런 점을 깨달았다.“졸업 후에 삼성에 취업하고 싶다고 막연히 말하는 학생들이 많아요. 하지만 삼성에 가서 어떤 업무를 하고 싶은지 정한 학생들은 거의 없죠. 내가 잘할 수 있는 분야를 정하면 삼성이 아니라 애플에서도 일할 수 있어요.”그는 영어 유치원 등 영어 사교육비가 늘어나는 상황에 대해 “가계 경제에 무리가 돼 부부싸움을 벌이지 않는 수준으로만 투자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또 “스스로 자산을 투자하고 대출받는 성인에게 통계 지식이 필수인 시대라 ‘수포자(수학포기자)’가 되면 안 된다”고 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서 고교 교육과정에서 벗어난 초고난도 ‘킬러 문항’을 배제하는 정책에 대해선 “질이 떨어지는 문항이 출제되는 상황을 바꿔야한다”고 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학부모에게 당부했다.“학교 성적만큼 정신적 건강을 생각해주세요. 아이들이 좌절하지 않는다면 대학 진학에 어려움을 겪어도 대학원 진학, 취업, 사회생활에서 성공할 수 있습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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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스본행 야간열차’ 쓴 작가 페터 비에리 별세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쓴 유명 소설가이자 독일 철학자인 페터 비에리(필명 파스칼 메르시어)가 최근 별세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향년 79세. 독일 방송사 NDR에 따르면 고인은 지난달 27일 독일 베를린에서 세상을 떠났다. 고인의 저작권을 관리하는 출판사가 고인의 타계 소식을 전하며 알려졌다. 1944년 스위스 베른 출생인 고인은 버클리대, 하버드대, 베를린자유대 등에서 연구 활동을 했고 베를린자유대 언어철학 교수를 역임했다. 1995년부터 파스칼 메르시어란 필명으로 소설을 발표해온 고인이 세계적 명성을 얻게된 계기는 2004년 출간된 소설 ‘리스본행 야간열차’가 베스트셀러에 오르면서다. ‘리스본행 야간열차’는 고전문학을 강의하던 교수 그레고리우스가 낯선 여인을 구한 뒤 그녀가 남긴 책에서 15분 후 출발하는 리스본행 열차 티켓을 발견하고, 그 열차에 몸을 실으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그의 작품은 세계 40여개 이상 언어로 번역 출간돼 수백만 부 판매됐다. 특히 ‘리스본행 야간열차’는 2013년 빌리 어거스트 감독이 동명의 영화로 만들어 흥행에 성공했다. 필명으로 발표한 소설 외에도, 철학자였던 그는 ‘페터 비에리의 교양 수업’ ‘자유의 기술’ ‘자기 결정’ ‘삶의 격’ 등을 출간했다. 특히 고인은 인간의 존엄성을 주목한 ‘삶의 격’으로 독일 최고의 철학 에세이에 주어지는 트락타투스상을 받았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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