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영

이진영 논설위원

논설위원실

구독 197

추천

안녕하세요. 이진영 논설위원입니다.

ecolee@donga.com

취재분야

2025-11-23~2025-12-23
칼럼100%
  • ‘액션서울’ 이장섭 대표 “지역브랜딩의 생명은 세련미 아닌 고유함”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 선유도코오롱디지털타워. 첨단 디자인이 돋보이는 406호 문을 열고 들어서면 살짝 놀라게 된다. 사과 상자가 높다랗게 쌓여 있고 쌀자루도 널브러져 있다. 논밭에 뒹굴어야 할 갈퀴도 한 자루 보여, 수건으로 땀을 닦는 ‘모형’을 진짜 농부로 착각할 지경이다. 도심 속 시골 분위기가 나는 이곳은 브랜드 컨설팅회사 ‘액션서울’이다. 요즘 디자인업계의 중요한 화두 중 하나가 지역 활성화를 위한 브랜딩인데 이장섭 대표(35)는 지역 브랜딩 작업의 대표 주자다. 21일 찾은 액션서울 사무실에서는 강원 철원군 양지리 철새마을 브랜딩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었다. 산과 철새가 나는 모양을 모티브로 로고를 만들고, 산과 물을 형상화해 ‘쌀’이라는 글자를 디자인했다. 4월 시중에 나오는 철새마을 쌀 상품에 이 로고와 글자 디자인이 붙는다. “지역 브랜딩에서 중요한 것은 세련된 디자인이 아니라 고유한 디자인입니다. 다른 마을과 차별화되는 고유의 특성을 담아낼 수 있어야 해요. 잘된 지역 브랜딩은 현지 주민들에게는 자부심을, 외부인들에게는 그 지역에 대한 매력을 느끼게 하죠.” 철원군과 건축 조경 생태 지역 브랜딩 전문가들이 참여한 철새마을 커뮤니티 디자인 작업은 주민들과 전문가들의 모범적인 협업 사례로 꼽힌다. 주민들은 철새를 소재로 한 캐릭터 개발 작업에 참여했다. “주민들에게서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와야 합니다. 디자이너는 시각적 전문가로서 도와줄 뿐이죠. 마을 주민들이 우리가 만든 것이라고 생각해야 외부 전문가들이 철수한 뒤에도 작업의 결과가 지속될 수 있거든요.” 이 대표는 2010년 8월 경북 봉화에서 사과를 재배하는 농부의 의뢰로 농산물 브랜드 ‘파머스 파티(Farmers Party)’를 만들면서 지역 브랜딩 작업을 처음 접했다. 농가는 파머스파티라는 상표를 붙인 뒤 이전보다 매출이 10배 늘었다고 한다. 9월 경남 산청에서 열리는 세계전통의약엑스포를 계기로 산청군 특산품의 브랜딩 작업도 하고 있다. 약초를 가미한 □ 인데, □는 아직 비밀이란다. “디자이너의 능력이 도심에만 집중돼 있습니다. 디자인의 힘이 필요한 곳으로 고루 퍼져나갔으면 합니다.”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 2013-01-23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속 보이는 집… 방 안에 방… 기존 건축문법 파괴한 日건축가 후지모토 소우

    《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통유리 집, 러시아 마트료시카 인형처럼 방 안에 방 안에 방이 들어앉은 집, 건물 전체가 책장만으로 이뤄진 도서관…. 일본 건축가 후지모토 소우(42·사진)의 작품은 놀란 눈으로 쳐다보는 이들에게 이렇게 되묻는 듯하다. 공간을 안팎으로 꼭 구분해야 해? 외벽은 한 겹이어야 한다는 법이라도 있나? 도서관에 책장만 있음 된 거 아냐? 안도 다다오나 이토 도요 같은 소수의 거장들이 주도하던 일본 건축계가 건축에 대한 고정관념을 걷어치우고 물음표 가득한 작품을 내놓는 이 젊은 건축가 때문에 들썩이고 있다. 일본건축가협회 신인상(2004년)과 대상(2008년), 제13회 베니스 건축비엔날레 황금사자상(2012년)을 휩쓴 그가 자신의 건축 과정을 소개한 건축 노트 ‘건축이 태어나는 순간’(디자인하우스) 한글 번역본을 냈다. 》 홋카이도에서 태어나 도쿄대에서 건축을 배우고 도쿄에서 작업해온 그는 책 출간을 계기로 본보와 가진 e메일 인터뷰에서 “홋카이도와 도쿄가 내 건축관을 만들었다”고 했다. “홋카이도의 산과 숲의 기억은 내 자연관의 근저(根底)가 됐다. 도쿄에 이사 온 다음 느낀 도쿄 거리의 복잡함, 그건 홋카이도 숲의 복잡함과 뭔가 닮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가 도쿄 도심에 지은 ‘도쿄 아파트먼트’(2006년)는 ‘홋카이도가 낳고 도쿄가 키웠다’는 그의 건축관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박공지붕 집을 쌓아 올린 집합 주택인데 각 가구는 집 모양의 2, 3개 ‘방’으로 구성돼 있다. 어떤 가구는 1층과 3층으로 ‘방’이 떨어져 있어 외부로 난 계단으로 이 방 저 방을 옮겨 다녀야 한다. “산기슭과 정상에 하나씩 집을 가지고 있는 것과 비슷한 체험을 할 수 있다. 산을 오르내리는 행위를 통해 산, 즉 도시 전체를 자신의 집이라고 느끼게 된다.” 후지모토는 자신의 건축 작업이 ‘자연의 다양성을 재구축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반듯하게 각이 잡혀있지 않고 주변의 지형지물에 따라 이리저리 구부러진다. 자연에 녹아들고 타협하는 ‘약한 건축’, 전체 질서가 아니라 부분과 부분 사이의 작은 질서를 쌓아가는 ‘부분 건축’이다. 그는 문화예술 평론가인 야스다 요주로가 일본의 길에 대해 언급한 말을 인용해 약한 건축, 부분 건축이라는 개념을 설명했다. “로마의 길은 자연과 인공물의 온갖 장애를 넘어 일직선으로 연결돼 있다. 이는 강하고 거대한 방식에 의해 생성된 것이다. 그에 비해 일본의 길은 산과 맞닥뜨릴 때마다 구부러지고 계곡과 만날 때마다 돌아간다. 구불구불 구부러지며 전진하는데 여기에는 로마의 길과 같은 강인함은 없지만 그렇다고 질서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오히려 자연의 탄생 과정과 닮은 완만한 질서가 있다.” 후지모토의 건축관은 ‘건축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져 얻은 답이다. 그가 인터뷰에서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는 ‘본질’이었다. 건축의 본질에 천착하게 된 계기는 불황이었다. 건설경기가 얼어붙어 번듯한 건축사사무소에서 실무를 배울 기회를 잃은 또래 건축가들은 홀로서기를 하며 건축 언어를 스스로 만들어내야 했다. “불경기니까 오히려 사회에 필요한 건축이란 무엇일까, 본질적인 질문을 스스로 던지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혁신적인 생각이 떠오른다.” 책장만으로 지어낸 무사시노 미술대 도서관(2009년)은 건물의 본질적 기능에 충실한 작품이다. 책장이 벽처럼 소용돌이 모양으로 휘감아 들어가는데 외부 벽면부터 내부 벽체까지 몽땅 책장이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은 건축의 본질을 무섭게 묻는 사건이었다. 후지모토는 당시 “건축가인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건축이 필요하기나 한 걸까. 건축이 가능하기나 한 걸까 한동안 멍했다”고 토로한 적이 있다. “건축이 사회에 본질적으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 걸까.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자연과 인공물의 관계에 대해, 미래의 도시와 건축에 대해서도 깊게 고찰하게 됐다.” 후지모토는 현재 중국 상하이 현대미술관, 300m짜리 대만 타워를 포함해 세계 곳곳에서 30개가 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홋카이도와 도쿄의 자연과 인공에 발을 딛고 ‘건축은 무엇인가’를 묻고 또 묻는 젊은 건축가가 어떤 답을 내놓을지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이진영·노지현 기자 ecolee@donga.com}

    • 2013-01-23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300자 다이제스트]1990년대, 한국현대건축의 황금기였다

    임석재 이화여대 건축학과 교수는 한국 현대건축의 황금기를 1990년대로 본다. 1세대 건축가들이 져야 했던 거대 담론의 부담에서 벗어나 다양한 실험을 했기 때문. 저자는 차운기 김인철 임재용 변용의 작품을 통해 이 시기의 건축을 조명했다. 이 중 2004년 46세로 별세한 차운기 편이 눈길을 끈다. 중광 스님 주택, 예맥화랑 같은 곡선을 활용한 엥포르멜(informel) 작품을 남긴 이다. 저자는 ‘어머니가 아이 옷 짓듯, 암수가 살 냄새 섞어 새끼 만들듯 육적(肉積)인’ 건물을 만들어 내는 작가로 평가했다. 함께 출간된 2권은 이 시기에 지어진 건물 비평서다.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 2013-01-1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반갑습니다, 오랜만입니다] 이영혜 2013 광주디자인비엔날레 총감독

    ‘삶을 비추는 디자인’ ‘빛 L·I·G·H·T’ ‘The Clue-더할 나위 없는’ ‘圖可圖非常圖’(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道可道非常道를 패러디해 ‘디자인이 디자인이면 디자인이 아니다’란 뜻으로 쓴 표현). 올해로 5회째를 맞는 광주디자인비엔날레의 역대 전시 주제들이다. 최근 발표된 2013 광주디자인비엔날레의 주제는 이 중 가장 파격적이고 ‘광주’적인 화두로 기억될 듯하다. ‘거시기, 머시기’, 국제적인 행사임을 감안해 영어로 ‘anything. something’, 한자로는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번역했다. 역대 주제어 가운데 가장 ‘거시기’한 ‘머시기’는 총감독을 맡은 이영혜 ㈜디자인하우스 대표이사·발행인(60)의 머릿속에서 나왔다. 요즘 감각으로도 파격의 잡지 이름인 ‘행복이가득한집’을 26년 전에 지어냈던 이다. 1976년 ‘디자인’을 시작으로 ‘마이웨딩’ ‘럭셔리’ ‘멘즈 헬스’ 등 7개 월간지 20여만 부를 팔아 흑자를 내고 있는 잡지계의 거물이지만 요즘 그의 일정표에서 1순위를 차지하는 것은 디자인비엔날레다. “예술이 질문이라면 디자인은 답이죠. 디자인이란 시장을 전제로 하는 작업이라는 뜻이에요. 디자인이란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문화적 맥락을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일상적이거나 보편적인 것(anything)에서 부가가치를 높여 창의적인 무엇(something)을 만들어내는 작업입니다. 디자인의 힘으로 ‘광주’적인 콘텐츠를 개발해 아무것도 아닌 걸로 별걸 만들어내는 체험을 선사할 겁니다.” 9월 6일∼11월 3일 열리는 디자인비엔날레에서는 광주시의 핵심 전략산업인 발광다이오드(LED)를 사용한 디자인 제품, 광주시의 공공디자인, 광주의 패션산업체와 협업한 상품, 특산물을 브랜드화한 상품 등을 개발해 선보인다. 예산은 50억 원. 지식경제부와 광주시가 20억 원씩 40억 원을 내놓았고 25만 명으로 추산되는 관람객의 입장료 수입이 10억 원이다. 서울리빙디자인페어, 서울디자인페스티벌 등을 개최해온 이 감독은 “공공 예산을 집행하는 업무는 처음이어서 조심스럽다. 관람객 35만 명이 목표”라고 했다. 그는 돈 안들이고 많은 사람을 끌어들일 수 있는 이벤트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다. 이 중 화제가 될 만한 공공 프로젝트가 두 가지. 하나는 광주 택시운전사와 버스운전사의 유니폼 디자인을 공모한 뒤 관람객들의 ‘스티커 투표’를 거쳐 최종 작품을 선정해 광주시에 정식 유니폼으로 채택하도록 건의하는 작업이다. 다른 하나는 통일 후 사용할 국기 공모전이다. 흰 바탕에 푸른 한반도가 그려진 한반도기와 태극기를 놓고 진보와 보수 단체가 대한민국 정체성 논쟁을 벌이는 점을 감안하면 여러모로 화제가 될 듯하다. “요즘 디자인업계의 화두 중 하나가 소극적인(passive) 디자인이에요. 기술이나 재료를 최소화해 꼭 필요한 기능만 남겨놓은 디자인을 뜻하는데 노인이나 가난한 나라 국민을 위한 휴대전화, 자연재해를 당한 이들을 위해 싸고 쉽게 지을 수 있는 대피소 디자인이 이에 해당하죠. 이런 착한 디자인 작업도 이번 행사에서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지난해는 이 감독에게 뜻 깊은 해였다. 디자이너와 건축가가 맡아온 디자인비엔날레의 총감독으로 선임됐을 뿐만 아니라 ‘디자인’이라는 개념이 희미하던 시절 창간한 월간디자인이 창간 36년 만에 처음 흑자를 냈다. 인쇄 매체의 부진 속에서도 2000년 이후 월간지와 단행본 부문에서 모두 흑자를 내는 비결이 뭘까. “집은 없어도 자동차는 몰아야 하는, 방 한 칸 없어도 비싼 구두는 신어야 하는 마니아들이 있어요. 지식이 준 배짱을 지닌 괴짜라고나 할까. 이런 좁은 시장에서 1등을 하려고 해요. 아무리 어려워도 1등은 살아남거든요. 세상 모든 이를 위한 책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책을 내는 거죠. 새로운 길을 만드는 건 힘들지만 무지 재밌어요.”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 2013-01-14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300자 다이제스트]‘책의 고향’ 중국의 2000년 출판문화史

    유럽이 인쇄본의 요람기를 지나던 15세기 후반 명나라는 성인기에 도달해 있었다. 중국 명청시대 학술사와 사상사를 연구해온 저자가 춘추시대 책의 시작부터 송나라 인쇄 책의 등장을 거쳐 명나라 말기 대중적 보급에 이르기까지 2000년의 중국 책 문화사를 사본(寫本)의 시대와 인본(印本)의 시대로 나눠 살폈다. 학술서이면서도 ‘베스트셀러, 낙양의 지가를 높이다’ ‘시험의 천재 백거이’ ‘소동파와 무단 출판’ 같은 소제목이 보여주듯 흥미로운 일화가 많다. 일본에서 2002년 출판됐음을 감안해 ‘옮긴이의 말’에 이후 연구 성과를 친절하게 소개했다.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 2013-01-12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한옥-적산가옥 행복한 결합… 도시의 나이테 살렸어요”

    《 대구 중구 삼덕동3가 골목에 한옥을 짓자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절을 짓는다더라.” “요정이 생긴다던데.” 하지만 완공된 한옥엔 뜻밖의 문패가 달렸다. ‘임재양 외과.’ 지난해 6월 문을 연 이 유방암 검진클리닉은 거듭 놀라움을 주는 건축물이다. 대로변 빌딩에 자리 잡는 일반 병원들과 달리 골목 안쪽에 숨어 있는데 문패마저 작다. 병원은 ‘ㄷ’자형 한옥이고, 맞은편 별관은 다다미를 깔아놓은 일본식 집이다. 열어놓은 문으로 골목길을 뛰어다니는 아이들 웃음소리가 들리고 마당이 보이고 하늘이 펼쳐진다. 그래서 병원이 아니라 집안에 있는 느낌이 든다. 》한옥 건축으로 유명한 조정구 구가도시건축 대표(47·사진)가 설계한 이 일식 별관이 딸린 한옥 병원은 지난해 말 대구시 건축상 일반분야 금상을 받았다.“1910년대 삼덕동1가를 중심으로 신작로가 생기면서 삼덕동엔 일본인들의 집단 주거지가 형성됐습니다. 지금도 한옥과 일제 강점기 행정기관의 사택으로 사용되던 집들이 남아있어요. 건축주가 사들인 터엔 한옥과 적산(敵産)가옥이 있었습니다. 켜켜이 쌓인 시간과 기억을 존중해 한옥이 있던 자리엔 한옥 병원을, 적산가옥 자리엔 일식 별관을 지었죠.”총면적 385.75m²인 임재양 외과는 1층짜리 한옥 병원과 2층 규모의 별관 건물이 마당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는 구조다. 병원에 들어서면 마당에 온실처럼 꾸며놓은 아트리움에서 접수하고→한옥에 올라서서 탈의실에서 진찰복으로 갈아입은 뒤→대청마루에서 순서를 기다리다→한옥 방에서 의사를 만난다.별관 1층엔 환자들이 묵어갈 수 있는 침실 2개와 거실 1개, 욕실이 있고 마당 쪽에 ‘엔가와’라는 일식 복도가 둘러져 있다. 2층엔 식이요법 강의와 요리 및 식사를 할 수 있는 주방이 있다.이곳에서는 병원에서 별관을, 별관에서 병원을 바라보는 풍경이 인상적이다. 기단이 낮은 별관 1층 다실에 앉아 엔가와 너머 마당과 한옥을 바라보면 나지막한 눈높이에 와닿는 소박한 한옥이 안정감을 준다. 병원 대청마루에 앉아 있으면 통유리 너머로 마당을 지나 별관의 엔가와-거실-방으로 켜를 이루며 깊어지는 공간으로 시선이 이동하는데 이 역시 마음의 평안을 준다. 임 원장은 “바람이 잘 통하고 가습기 없이 지낼 수 있을 정도로 쾌적해 나와 간호사들이 모두 느긋해졌다. 그래서 환자들에게도 너그러워지고, 환자들도 집 같은 대청마루에서 기다려서인지 대기시간이 길어져도 불평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적산가옥이라는 ‘네거티브’ 문화마저 그대로 살려낸 조 대표의 고집에 대해 일부에서는 “건축가는 고고학자가 아니다”라는 비판을 제기한다. 그는 “도시의 시간을 지우고 싶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이는 2000년 11월부터 발품을 팔아 서울의 구석구석을 실측해온 ‘수요답사’에서 얻은 건축철학이다. 그의 우직한 답사 일정은 12년 넘게 이어져 최근 601회를 마쳤다.“대부분의 건축가는 이 시대의 언어와 기술로 건축을 새롭게 해석하려고 하지만 저는 달의 뒷면을 보는 사람입니다. 12년간 도시를 세밀하게 살피고 다녔더니 도시의 나이테를 본 느낌이에요. 오래전부터 이어져온 것들을 촘촘한 체로 거르듯 가급적 많이 살려내고 싶어요.”스타 건축가들은 대개 건축을 통해 자신의 생각과 스타일을 드러내려고 한다. 하지만 조 대표는 건축의 주인공은 건축가가 아닌 건축주라고 했다. 2003년 서울 서대문구 한옥을 개조해 입주한 후부터 그렇게 생각이 바뀌었다. “제가 살 집을 고치고 나니 너무 기뻤어요. 건축주의 기쁨은 설계자의 그것보다 10배는 더 크다는 걸 깨달았죠. 건축주에게 건물을 짓는다는 건 인생에서 중요한 일이고, 이를 위해 오랜 시간 고민하고 계획합니다. 건축가는 건축주의 이런 작업에 개입해 건축주가 자신의 목표를 실현할 수 있도록 돕는 존재이지요.”대구=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 2013-01-0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조명,책걸상 디자인,벽 색깔 등 교실 설계 좋으면 성적 오른다

    책상이 마음에 안 든다고 공부하기 싫다는 아이는 “목수가 연장 탓을 하느냐”는 꾸중을 듣기 마련이다. 하지만 설계가 잘된 교실에서 공부하면 성적이 오른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영국 샐퍼드대 연구팀이 건축 전문 학술지 ‘건물과 환경’ 최근호에 발표한 논문 ‘교실 설계가 학생들의 학습에 미치는 영향’에 따르면 조명, 책걸상 디자인, 벽과 바닥 색깔 등 교실 환경이 초등학생의 성적 변화량에 평균 25%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적이 10점 올랐다면 이 중 2.5점은 교실 설계 덕분이라는 뜻이다. 연구팀은 잉글랜드 서북부 지역인 블랙풀 소재 7개 초등학교 34개 교실에서 공부하는 학생 751명을 대상으로 교실 설계 관련 변수 10가지와 학생들의 성적(읽기, 쓰기, 수학 등 3개 과목) 변화량의 관계를 분석했다. 연구 결과 학생들의 성적에 영향을 주는 교실 설계 요소는 10가지 중 조명, 색, 연결성, 유연성, 복잡성, 선택성 등 6가지였다. 이 6가지 변수는 모두 합쳐 성적 변화량에 25% 기여한 것으로 집계됐다. 연구 대상이 된 학생들은 2011년 6월에 받은 학년 말 성적이 1년 전의 학년 초 성적보다 평균 11점(―10∼34점) 올랐으므로 2.75점이 교실 설계 덕택에 오른 셈이다. 학생들의 성적 향상에 가장 중요한 설계 원칙은 ‘개성화’였다. 이에 해당하는 요소는 선택성(choice), 유연성(flexibility), 연결성(connection)이다. 선택성이 높은 교실이란 교실 가구와 설비가 용도에 맞게 설계돼 있고, 책상과 의자가 흥미를 유발할 뿐만 아니라 인체공학적으로 설계된 경우를 뜻한다. 유연성이 높은 교실은 교사들이 공간 배치를 통해 다양한 학습활동을 동시에 진행할 수 있을 만큼 공간이 넓은 교실이다. 연결성이란 복도가 넓어 이동이 쉬운지, 학교 복도에 큰 그림 같은 랜드마크가 있어 길 찾기가 쉬운지 여부를 뜻하는 요소다. 이 밖에 교실 인테리어는 정돈돼 있으면서도 학생들의 주의를 적당히 끌고(복잡성·complexity) 교실 벽과 바닥, 가구의 색깔은 밝되 고학년은 따뜻한 색, 저학년은 시원한 색이 성적 향상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색·colour). 또 한 방향 이상에서 자연광이 들어오고, 양질의 인공조명이 많이 설치돼 있으며, 창을 가리는 장애물이 없을 때 학생들의 공부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분석됐다(조명·light). 이 논문의 교신저자인 피터 배럿 교수는 “좋은 교실 디자인이 학생들의 성적 향상에 뚜렷한 기여를 한다는 사실이 입증됐다. 정책 입안자들과 교실 설계 및 이용자들에게 유용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 2013-01-0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300자 다이제스트]건축분야에 위대한 영향 끼친 100가지 영감

    건축 분야에 영향을 준 아이디어 100개를 연대순으로 정리했다. 거창한 철학보다는 소박한 것이 많다. 첫 번째는 ‘벽난로’다. 방마다 벽난로를 놓게 되면서 프라이버시라는 개념이 생겨났다. 이어 바닥, 벽, 기둥과 보, 문, 창문, 벽돌 순으로 설명이 이어진다. 미니멀리즘의 슬로건 ‘적을수록 많아진다(Less is more)’, 기능주의자들의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Form follows function)’ 같은 표어도 100개의 아이디어에 포함된다. 썩 괜찮은 건축 입문서이나 아이디어마다 설명이 2쪽 분량이어서 쉽게 읽히지는 않는다.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 2013-01-05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한국 현대건축의 산실 ‘공간’ 끝내 부도

    한국의 1세대 건축설계업체로 꼽히는 ‘공간종합건축사사무소’(공간건축)가 최근 기업회생절차(옛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부동산 장기불황의 여파가 설계업계 등 연관 분야로 급속히 번지고 있는 것. 특히 건축설계업계를 대표하는 원조 격인 공간건축의 추락은 건축업계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 4일 건축업계에 따르면 공간건축은 지난해 12월 11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한 데 이어 이달 2일 부도를 냈다. 법원은 다음 주 기업회생절차 개시 여부를 최종 결정할 예정이다. 한국 건축설계의 거장인 고 김수근(1931∼1986)이 1960년 설립한 공간건축은 6·25전쟁 직후 황무지에서 한국 현대 건축의 토대를 닦았다. 김원 승효상 등 60대 이상 주요 건축가들의 절반가량을 배출해낸 산실이기도 했다. 국내 건축설계업계를 상징하는 업체답게 공간건축은 50년 동안 서울 충무로 경동교회, 남산타워호텔을 비롯해 서울 잠실 올림픽주경기장, 부산 아시아드주경기장, 서울법원종합청사 등 주요 건축물을 다수 설계했다. 특히 담쟁이덩굴과 검은 벽돌, 투명한 유리가 어우러진 서울 종로구 원서동 공간건축 사옥은 현대건축물의 백미로 꼽힌다. 공간건축은 외환위기 이후 일반 건축물과 해외시장에 눈을 둘렸다. 특히 각종 기관의 청사, 문화회관 등 공공건물 수주에 치중하며 2000년 이후 서울 중앙우체국청사, 용산구청사, 마포구청사, 경기 고양아람누리, 제주 4·3평화기념관 등을 설계했다. 그러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부동산 시장 침체로 공공 건축물 수주가 어려워지면서 경영난에 시달렸다. 지난해 7월 자회사인 ‘공간사’에 매년 5억 원씩 지급하던 지원금을 끊어 1966년 창간한 국내 최고(最古) 종합예술전문지 ‘공간(SPACE)’이 폐간 위기를 겪기도 했다.특히 최근 무리하게 뛰어든 리비아 알제리 등 북아프리카·중동 시장에서 용역 대금을 회수하지 못했고, 서울 서초구 양재동 파이시티(옛 화물터미널) 복합물류단지 개발사업에 참여했다가 설계비용을 받지 못하자 자금 사정은 급속도로 악화됐다. 공간건축이 금융권에서 빌린 돈은 550억 원가량으로 금융계는 추산한다. 공간건축 관계자는 “건설경기 위축 등으로 직원 월급을 제때 못 주는 대형 설계회사가 많다”고 말했다. 대한건축사협회 관계자는 “지난해 상반기 건축사무소 1곳당 설계업무를 따낸 실적이 평균 3건이 안 된다”면서 “국내 건축사 1만여 명 중 60%가 한 해에 1건꼴로 설계를 맡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부동산 경기침체가 장기화할 조짐이 뚜렷해지면서 설계업계 등 연관업계의 밑바닥 경기가 더 얼어붙을 것이라는 전망도 높아지고 있다. 서현 한양대 건축학부 교수는 “공간건축의 부도는 김수근의 흔적이 완전히 사라진다는 의미”라고 평가했다.정임수·이진영 기자 imsoo@donga.com}

    • 2013-01-05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구세군 자선냄비 51억 모금 사상최고

    한국 구세군은 지난해 12월 31일까지 진행한 ‘2012년 자선냄비 모금 활동’을 통해 모두 51억2833만 원을 모금했다고 2일 밝혔다. 이는 당초 목표액인 50억 원을 초과한 액수이며, 1928년 시작된 자선냄비 모금 활동 역사상 최고 금액이다. 2011년에는 48억8712만 원을 모금했다. 이번 모금 활동 기간에는 익명의 후원자가 자선냄비 계좌로 1억 원을 보내오고, ‘신월동 주민’이라고 밝힌 익명의 후원자가 서울 명동의 구세군 냄비에 1억570만 원짜리 수표를 넣고 사라져 화제가 됐다. 국민은행은 4억3000만 원, 현대해상은 3억 원, 금융감독원과 26개 금융기관은 6억 원을 각각 기부했다. 또 신용카드를 활용한 디지털 자선냄비가 처음 도입돼 모금 활동을 도왔다.임희윤 기자 imi@donga.com}

    • 2013-01-03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2013 광주디자인비엔날레 주제는 ‘거시기, 머시기’

    재단법인 광주비엔날레는 2013광주디자인비엔날레의 주제를 ‘거시기, 머시기’로 확정해 28일 발표했다. 영문으로 ‘Anything, Something’, 한자로는 ‘以心傳心(이심전심)’이다. 2013광주디자인비엔날레 이영혜 총감독(59·디자인하우스 대표이사)은 “거시기, 머시기는 디자이너에게 ‘것이기, 멋이기’로 읽힐 수 있다. 일상적이거나 보편적인 것(Anything)도 디자이너의 몫이지만, 사용자의 취향과 특성을 감안해 창의적인 무언가(Something)를 만들어 가치를 높이는 작업도 디자이너의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거시기, 머시기는 모호한 듯하나 ‘서로 통한다’는 공감 정서를 자극해 상황에 대한 이해를 돕고 상대를 다가오게 한다”고 덧붙였다. 5회째를 맞는 이번 행사는 내년 9월 6일부터 11월 3일까지 광주비엔날레전시관과 광주시내 일원에서 펼쳐진다. 내년 1월 15일까지 이번 행사의 로고와 포스터를 공모한다. 1등 상금 1000만 원, 2등 500만 원, 3등 250만 원. campaign.naver.com/gwangjubiennale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 2012-12-3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자연과학]건축이 거는 최면, 느껴본 적 있나요?

    “우리는 건물을 만들고, 건물은 다시 우리를 만든다.” 건축하는 사람들이 즐겨 인용하는 문장이다.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가 1940년대 전후 의회 건물 재건축과 관련한 연설에서 한 말로 알려져 있는데, 사람들이 건축적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는 뜻을 담았다. 그런데 이상현 명지대 건축학부 교수(49)는 “처칠이 말한 ‘우리’는 ‘그들’과 ‘우리’로 구분할 필요가 있다”며 새 책 ‘길들이는 건축 길들여진 인간’(효형출판)에서 이렇게 고쳐 썼다. “‘그들’이 건물을 빚어내고, 건물은 ‘우리’를 빚어낸다.” “건축은 인간의 불평등을 구현하고, 유지하고, 강화하는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건축이 얼마나 폭력적일 수 있는지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이 교수는 신분제 사회였던 조선시대의 건축을 예로 들었다. 당시 건물을 만든 ‘그들’은 양반들이었다. 그들은 △행랑채 앞마당에 선 하인이 사랑채 주인의 눈도 마주치지 못하도록 사랑채 바닥을 돋우어 짓고 △제사 공간으로 오르는 계단의 디딤판 폭을 좁게 만들어 몸을 옆으로 돌려 조심조심 오르게 길들였으며 △경복궁에 금천을 흐르게 함으로써 왕과 신하의 공간을 구분했다. 건축을 통한 길들이기와 저항은 독일 건축가 알베르트 슈페어와 한스 샤룬의 작품을 비교하면 명확해진다. 히틀러의 제3제국에서 건설부 장관을 지낸 슈페어는 설계하는 건물마다 중앙에 주조를 배치하고 열주랑과 높은 기단을 썼다. 균형과 안정감을 갖춘 권위주의적 건축을 통해 히틀러의 제국이 영원하리라 착각하도록 독일인을 길들인 것이다. 반면 샤룬의 베를린 필하모닉 콘서트홀에는 나치의 선전도구로 쓰인 건축에 있던 주조도, 기단도, 열주랑도 없다. 야구장처럼 여러 개의 문을 통해 내부로 들어서게 되며 공연장 내부도 구역별로 잘게 나뉘어 있다. “다수가 한자리에 모여 질서정연하게 한곳을 바라보는 공간 구조는 나치에 대한 끔찍한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고 생각한 거죠. 나치 식 길들이기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의도를 담은 건축입니다.” 샤룬이 건축으로 나치즘을 반성했듯, 건축은 선한 의도를 가질 수 있다. 이 교수는 미국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설계한 월트디즈니 콘서트홀(2003년)을 대표적인 사례로 들었다. 이 작품은 부정형의 곡면 디자인이 특징이다. “인종 갈등이 치열한 사회에서 모든 이에게 환영받으려면 아무도 전에 본 적이 없는, 그래서 과거의 불편한 기억을 누구도 떠올릴 수 없는 형태를 찾아야 했고, 그러한 가치중립적 형태가 곡선이었습니다. 이 건축물에 상을 준다면 프리츠커 상이 아니라 노벨 평화상을 주는 게 맞을 겁니다.” 결국 건축가란 ‘길들여진 인간’들을 깨우고 새로운 가치를 선언하는 존재가 돼야 한다. 책에는 건축가 김인철의 ‘숲에 앉은 집’이 나온다. 이 집은 60m 길이의 직선 복도를 따라 방들이 늘어서 있다. 한쪽 끝에서 다른 끝쪽 방으로 가려면 60m를 걸어야 한다. 속도의 시대에 ‘느리게 살기’를 제안한 것이다. 이 교수는 최근 완공한 서울시 신청사에 아쉬움을 표시했다. 새 시대에 어울리는 서울의 새로운 가치를 선언할 수 있는 기회였는데 그게 없었고, 기능적인 부분을 포기하면서 심미성을 추구했는데 그것마저 실패했다는 평가다. 이 책은 전문적인 주제를 흥미롭게 풀어낸 수작이지만 여기 담긴 환경 결정론적인 시각은 불편하다. 같은 공간도 쓰는 사람에 따라 용도와 가치는 달라질 수 있는데 말이다.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 2012-12-2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세계적 웹진 ‘디자인붐’이 선정한 ‘올해의 컨테이너 빌딩 10선’

    항구나 공장 야적장에 쌓여 있는 컨테이너엔 눈길이 머물지 않는다. 하지만 원래의 용도에서 벗어나 도심에 건축물로 자리 잡은 컨테이너는 낯설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오브제가 된다. 컨테이너는 값이 싸고 구하기가 쉬우며 이동이 자유롭고 설치하기가 편해 실험적인 건축 작업을 하는 작가들이 즐겨 사용한다. 서울 강남구 논현동 복합문화공간 ‘플래툰 쿤스트할레’가 대표적인 사례다. 세계적인 디자인·건축 전문 웹진 ‘디자인붐’은 ‘2012 컨테이너 빌딩 10선’을 최근 발표했다. 컨테이너 1개를 이용한 길거리 스낵바에서 78개를 이리저리 쌓아 규모 있게 조성한 농장까지 크기와 용도가 다양하다. 미국 뉴욕 타임스스퀘어엔 컨테이너 박스 하나를 이용한 이동식 ‘스낵 박스’가 명물로 들어섰다. 전기 배터리와 발전기, 급수 탱크 시설까지 갖추고 있다. 이동식 피자집 브랜드인 ‘델 포폴로’는 차량용 컨테이너에 이탈리아 전통 화덕을 설치해 옮겨 다니며 즉석에서 피자를 구워낸다. 길이가 긴 컨테이너 박스 2개를 가로 세로로 차도 위에 쌓아 차에서 내리지 않고 주문할 수 있는 스타벅스 매장도 있다. 일본 다이켄엠이티가 설계한 ‘주사위 사무실’은 1, 2층에 컨테이너 3개, 3층엔 2개를 쌓아 만들었다. 사무실의 용도가 달라지면 컨테이너를 이리저리 옮겨 쌓으며 신축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컨테이너 집도 있다. 동일본 대지진 피해를 겪은 미야기(宮城) 현에는 컨테이너를 활용해 프라이버시가 보장되는 방 여럿과 공동 거실을 갖춘 임시 숙소가 있다. 프랑스 전원에 들어선 ‘컨테이너 집 릴’은 컨테이너 8개를 2층으로 쌓은 것이다. 컨테이너 앞쪽이 꽉 차도록 문 달린 창을 내 전원 풍경을 즐길 수 있다. 이 밖에 중국 산시(陝西) 성의 선박 컨테이너를 활용한 고급 호텔, 상하이(上海) 컨테이너 농장,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선박용 컨테이너를 쌓아 조성한 임시 도시가 올해의 컨테이너 빌딩 10선에 포함됐다.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 2012-12-27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북한의 건축이 궁금합니까” 영추포럼 1월 10일 강연회

    “북한처럼 건축이 국가의 사상에 연결된 곳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보기 드물다. 평양건축은 (최고지도자의) 신화를 만드는 매체로 나타나고, 그 신화는 국가의 잠재의식으로 숨 막히게 확고히 자리 잡고 있다.” 독일 건축가 필립 뭬제아가 올해 엮어 낸 ‘이제는 평양건축’(담디)에서 한 말이다. 이 같은 북한의 건축에 대해 집중적으로 알아볼 기회가 마련됐다. 2003년부터 황두진건축사사무소가 격월로 개최해온 ‘영추포럼’이 내년에 ‘북한의 도시와 건축’을 주제로 연중 강연회를 연다. 강사들은 모두 북한을 방문해 건축물을 설계 또는 연구했거나 사업 또는 관광을 통해 북한을 ‘경험’한 사람들이다. 내년 1월 10일 열리는 1회 강연은 근대건축사학자인 안창모 경기대 건축대학원 교수가 맡아 북한 건축의 역사와 실태를 개관한다. 2회(3월 14일) 강연엔 평양 과학기술대학을 설계한 이형재 정림건축 사장이 나와 북한 건축을 설계했던 경험담을 들려준다. 3회(5월 9일)는 미국에서 활동하는 건축가 임동우 PRAUD 대표가 ‘변화하는 평양과 한국 건축가의 역할’을 주제로 강연한다. 임 대표는 지난해 발간된 ‘평양 그리고 평양 이후’(효형출판) 저자다. 강연은 오후 7시, 연회비는 강사들의 저서를 포함해 20만 원, 1회 회비는 3만 원. www.djharch.com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 2012-12-26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박물관 가는 255m 지하도, 대한민국을 흠뻑 느끼세요”

    “정식이 나오기 전 애피타이저를 드시는 기분으로 걸으면 좋을 겁니다.” 국립중앙박물관과 서울 지하철 이촌역을 잇는 지하보도 ‘박물관 나들길’이 27일 개통된다. 매년 약 300만 명이 이 박물관을 찾으며 이 중 60%인 180만 명이 지하철을 이용한다. 지금까지 이촌역에 내린 사람들은 지상으로 나와 회색 담장에 철조망을 얹은 미군부대 담길을 따라 걸어야 했지만, 이제는 전문 디자이너가 꾸며놓은 255m 나들길을 걸으며 박물관으로 들어설 수 있게 됐다. 디자인을 총괄한 김영세 이노디자인그룹 대표는 “메인 박물관에서 정식 관람을 하기 전에 가볍게 전채요리를 먹는 느낌을 선사하고 싶었다”며 태극기를 소재로 한 디자인을 소개했다. 나들길로 접어들면 먼저 천장의 조명에 눈길이 간다. 검은 메탈 바탕에 설치된 흰색 조명들이 역동적으로 죽죽 뻗어 있다. 자세히 보면 조명은 태극기의 4괘인 건곤감리(乾坤坎離) 모양이다. 바닥엔 4괘 중 땅을 상징하는 ‘곤’이 반복되도록 화강석을 깔아 마무리했다. “디자인회의 때 바닥에 4괘를 깔겠다고 했더니 ‘태극기를 밟고 지나가란 말이냐’는 반론이 나왔습니다. 제가 1초도 망설임 없이 말했지요. ‘그럼 곤만 그립시다.’” 박물관을 향해 서서 볼 때 나들길의 오른쪽 벽은 태극, 맞은편 벽은 박물관의 대표 소장품을 형상화해 꾸몄다. 우선 알루미늄에 태극 선 모양을 따라 작은 구멍을 뚫고 뒤쪽에 조명을 설치해 구멍 밖으로 불빛이 태극 모양을 그리며 새어나오게 했다. 왼쪽엔 같은 원리로 박물관 소장품 모양의 불빛이 새어나온다. 나들길의 양쪽 벽면은 회색 톤이고, 천장과 바닥도 무채색이다. 이를 배경으로 양쪽 벽면에 뚫은 구멍으로 새나오는 불빛이 다양하게 변화하며 절제된 생기를 준다. 태극의 색깔을 배제하고 선만 살려놓으니 한국적이면서도 현대적인 느낌이 난다. 바탕 음악으로 깔리는 황병기 씨의 가야금 연주곡 ‘실크로드’가 ‘모던 코리안’ 스타일의 나들길 디자인을 살려준다. 박물관으로 걸어가는 8분간의 경험을 디자인하면서 김 대표가 고른 곡이다. “태극의 곡선은 한국인의 유연함을, 4괘의 직선은 강인함을 표현한다고 생각해요. 보면 볼수록 태극과 사괘가 절묘하게 어울려 한국인의 특성을 잘 나타내지요.” 김 대표는 한국과 미국 중국 일본에 사업체를 두고 삼성전자 휴대전화, LG냉장고, 아이리버 MP3플레이어 등을 디자인한 세계적인 산업 디자이너다. 상업 제품을 디자인하는 틈틈이 한식 세계화 인증마크, 문화예술위원회의 문화예술 후원운동인 ‘예술나무’ 로고, 음주운전의 위험을 알리는 스티커 등 공공 영역의 디자인도 해왔다. 하지만 공적인 공간을 디자인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나들길 프로젝트를 의뢰받고 “1km(255m×4)가 넘는 화폭에 대한민국을 담아보라는 주문을 받는 느낌이었다”며 아이폰을 꺼내 사진 한 장을 보여줬다. 메모지에 나들길을 스케치한 것을 찍은 화면이었다. 의뢰를 받은 뒤 첫 스케치가 5분 만에 떠올랐다고 했다. “그동안 생각하고 연구하고 고민해뒀던 것들이 잠재돼 있다가 필요할 때 터져 나온 것이죠. 제 작품으로 코리아라는 브랜드를 세계에 알리고 싶다는 생각을 늘 했었거든요. 아이디어는 뭘 뒤져서 나오는 게 아닙니다. 평소의 축적과 필요할 때의 몰입이 중요하죠.”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 2012-12-26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너무 낯설다고? 건축은 시간을 견디는 행위!” ‘삼청동길 전문 건축가’ 김헌 대표

    김헌 스튜디오 어싸일럼 대표(52)는 ‘삼청동길 전문 건축가’라는 별칭을 얻었다. 건축 심의가 까다로운 삼청동길에 그는 올해 하겐다즈 플래그십 스토어, 갤러리 겸 카페 ‘신태그마(Syntagma·통합체)’, 사진 갤러리 겸 카페 ‘보르텍스(Vortex·소용돌이)’를 잇달아 지어냈다. 이 밖에 정면을 한옥으로 설계한 건물과 갤러리도 짓고 있다. 그는 삼청동길 건축에 양적으로만 기여한 것이 아니다. 올 5월 삼청동 주민센터 옆에 들어선 신태그마는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으며 ‘삼청동길엔 어떤 건축을 해야 하는가’라는 의미 있는 문제를 제기했다. 신태그마는 폐가와 주차장 터에 2개의 건물을 지하 1층, 지상 3층, 총면적 913.64m² 규모로 이란성 쌍둥이처럼 세운 건축물. 삼청동길 신축 건물의 높이 상한선인 12m를 꽉 채우는 현대식 신태그마는 바로 옆의 나지막한 ‘삼청동식’ 전통 찻집과 규모나 디자인 면에서 선명한 대조를 이룬다. 건축가 임재용 OCA 대표는 건축월간 ‘공간’ 12월호에서 ‘삼청동의 무너지는 풍경을 가속화하는 건물’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17일 만난 김 대표는 “삼청동길에 새 건물을 짓는다는 건 죄인이 될 각오를 해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아기자기하고 소박한 삼청동을 보물처럼 여긴다. 이런 곳에 큰 규모의 신축을 의뢰받는다는 것은 질 것이 뻔한 게임을 시작하는 것과 같다. 하지만 건축이란 자본행위다. 건축가의 철학 말고도 건축주의 욕구와 법규, 경제성 등을 총체적으로 고려해 건물을 만들어야 한다.” 그는 주어진 조건 안에서 삼청동길의 맥락을 새 건물에 반영하기 위해 애썼다고 했다. 건물의 정면은 석회암의 일종인 라임스톤을 여러 개 덩어리로 잘라 종이 접듯 앞뒤로 꺾임을 주어 처리했다. 삼청동길의 소박한 크기에 익숙한 사람들을 고려해 하나의 돌덩어리로 처리하지 않고 잘게 나눈 것이다. 바랜 듯한 돌의 색깔, 구불구불한 돌의 선도 삼청동길을 감안한 디자인이다. 김 대표는 삼청동길에 대해 ‘지워지기를 기다리는 곳’이라고 해석했다. “지금 삼청동길은 욕망에 들떠 있다. 사람들이 찾는 보행 중심의 길엔 상업적인 이해가 덮치기 마련이다. 대박을 기다리는, 과도기에 있는 곳이다.” 그는 “건축은 시간을 견디는 행위”라며 “변화해 가는 삼청동길에서 세월이 흐른 뒤에도 살아남는 생명력을 가진 건물을 짓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공간’의 임 대표와의 논쟁에서는 ‘지금은 주변보다 스케일도 과도하게 크고 어울리지 않은 제스처일 수 있으나 시간이 흐르면 적절한 스케일과 제스처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외벽의 재료로 돌을 선택하고 컴퓨터를 이용해 도드라지는 디자인을 하기보다 배경이 되는 디자인을 택한 것도 시간성을 견디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구불구불한 정면에선 건축가의 에고가 느껴진다. “건물이 직선으로 올라갔으면 더욱 억압적이고 권위주의적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덩치가 큰데 외관이 덤덤하면 무표정한 보디가드 같아 보이지 않을까. 건축이란 사람들이 궁금하게 만들어야 한다. 단조롭기보다 다양한 표정을 가져야 한다.” 신태그마의 내부로 들어서면 건축가의 이런 의도가 명확해진다. 신태그마가 딛고 있는 땅은 부정형이어서 건물 어느 곳에도 직각이 없다. 오른쪽 건물은 층고가 아주 높고, 왼쪽 건물은 반대로 아주 낮아 익숙한 스케일감을 흩뜨려버린다. 왼쪽 건물은 스킵 플로어를 사용해 몇 층에 와 있는지조차 가늠하기 어렵게 만든다. 기와를 인 소박한 가게들이 모여 있던 삼청동길은 번쩍이는 대형 브랜드 숍들로 서서히 교체되고 있다. 사람들은 “자본의 파괴력이 놀랍다”며 아쉬워한다. 개발을 피할 수 없다면 어떻게 가꿔 나가야 할까. “삼청동길은 보행자들의 걸음을 멈추게 할 만한 곳이 없다. 사람들은 그저 지나갈 뿐이다. 세종문화회관의 계단이나 작은 공원처럼 보행자들이 잠시 머물다 갈 수 있는 ‘포켓 스페이스’가 있었으면 한다.”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 2012-12-1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이런 우산… 있다

    디자인 전문 전시회 ‘2012 서울디자인페스티벌’이 12일 시작됐다. 디자인하우스 주최로 16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행사에서는 디자인 전문회사 100여 곳과 스타 디자이너, 신진 디자이너들이 참여해 다양한 주제로 작품을 전시한다. ‘농사와 디자인 특별전’은 고급 농산물 시장의 등장을 반영한 전시로 사과 배 감귤 멜론 곶감 5개 과일을 브랜드화한 디자인을 선보인다. ‘한국콘텐츠관’에서는 문화재청의 후원으로 무형문화재 이수자들과 디자이너들이 협업해 꾸며놓은 최고경영자의 집무실과 접견실, 다실을 볼 수 있다. 매년 하나의 주제로 실험적인 예술 작품을 선보이는 ‘디자이너스랩’에서는 30명의 디자이너가 ‘우산’을 소재로 만든 작품을 내놓았다. 13, 14일엔 코엑스 콘퍼런스룸에서 스타 디자이너 10명이 연사로 나와 디자인 경향과 노하우를 들려주는 세미나가 열린다. 윤선호 기아자동차 부사장, 김홍탁 제일기획 마스터, 박서원 빅앤트인터내셔널 대표, 임의균 슬로워크 대표, 이석우 송봉규 SWBK 공동대표,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대표, 천재용 쌈지농부 대표, 문지훈 인터브랜드 대표이사, 제임스 파우더리 삼성전자 미디어 아티스트가 실용적인 크리에이티비티, 소셜 디자인과 그린디자인의 가치, 문화트렌드 속 디자인코드, 전략적 브랜드 관리 등을 주제로 이야기한다. 입장료 7000원. www.designfestival.co.kr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 2012-12-13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아시아인테리어디자인賞 받은 카페 ‘시후담’

    경기 파주시 헤이리 예술마을. 갈대숲길을 따라 9번 게이트로 접어들어 100m 넘게 걷다 보면 왼쪽에 아담한 2층 갤러리 카페 하나가 나온다. 접이식 유리문 너머로 발길을 붙드는 것은 단정하게 뻗은 4층 나무탑과 지붕돌 위에 가지런히 놓인 도자기들. 문을 열고 들어가면 통유리 안으로 건물 맞은편의 아담한 산이 통째 들어와 마치 인적 없는 산속에 탑이 고즈넉이 솟아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아시아실내디자인학회연맹의 2012 아시아인테리어디자인어워드를 수상한 정기태 B613디자인팀 소장(38)의 수상작 ‘시후담’, 도자 갤러리 겸 카페다. “청담동이나 홍대 앞 카페와는 다른, 헤이리다운 공간으로 만들어 달라는 주문을 받았습니다. 도자를 올려놓는 전시대로 공간의 정체성을 표현하기로 했죠.” 아이디어는 엉뚱한 곳에서 떠올랐다. “퇴근 후 오전 2∼4시 TV 드라마를 봅니다. 당시 ‘공주의 남자’를 즐겨 봤는데 어느 날 여주인공 문채원이 사랑하는 남자 박시후를 그리며 돌탑에 가락지를 올려놓는 장면이 나왔어요. 아, 나도 탑을 만들어 지붕돌에 도자를 얹으면 되겠구나 생각했지요.” 시후담의 중심은 자작나무로 만든 탑이다. 탑신을 세우고 자작나무판을 겹겹이 쌓은 지붕돌로 4층탑을 올렸다. 1층에 1개, 2층에 4개가 놓여 있다. 전시 작품이 돋보이도록 존재감 없이 설계되기 마련인 여느 갤러리의 전시대와는 다른 전략이다. 속세와 멀리 떨어진 절집에 어울릴 법한 탑 주위를 돌며 도자를 감상하다 보면 과거도 현재도 아닌 모호한 시간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 든다. 시간의 누적과 몽환성은 정 소장 작품의 키워드다. 2009년 세계 도자 비엔날레에서 인기를 끌었던 곰방대 가마 조형물은 켜켜이 나무를 쌓은 오브제로 ‘여러 겹의 시간 속에 존재하는 나무’를 표현했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뷰티숍 ‘피움 끌레’는 팔만대장경을 보관해놓은 해인사 장경판전에서 느낀 누적의 미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경기 성남시 분당구의 카페 ‘페이지11’은 목성 주위를 도는 위성에 존재할 법한 생명체를 상상하다 만들어낸 하얀 선인장을 주요 오브제로 삼아 공간을 설계했다. “일본의 미야자키 하야오 애니메이션 감독을 좋아해요. 인류에 존재하지 않은 시간과 존재했던 시간을 공존시키는 그의 이야기가 좋아요. 시간성을 두지 않으면 유행을 타지 않아 질리지 않습니다.” 대학에서 실내디자인을 전공한 정 소장은 2004년 서울 종로구 평창동에 부식철판으로 마감한 주택 ‘에스 하우스’가 건축전문월간 ‘공간’에 소개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후 ‘어린왕자’가 사는 별 ‘B612’의 옆동네 별에서 이름을 따온 회사 ‘B613디자인팀’을 차려 갤러리와 카페를 중심으로 건축과 실내 디자인 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예전엔 제 디자인이 어떻게 보일지에 신경을 썼습니다. 요즘은 제가 설계한 공간이 주위와 어울려 어떤 분위기를 만들어내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 안에 있으면 행복해지는 그런 공간이어야죠.”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 2012-12-05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기자의 눈/이진영]中 문화유산의 보고 시안, 하이테크와 사랑에 빠지다

    중국엔 이런 말이 있다. ‘1만 년의 역사를 보려면 시안(西安), 1000년의 역사는 베이징(北京), 100년의 역사는 상하이(上海), 10년의 역사를 보려면 선전(深(수,천))으로 가라.’ 시안은 좋게 말하면 13개 왕조가 수도로 삼았던 유구한 역사의 도시, 나쁘게 말하면 진시황의 병마용이나 당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 이야기로 먹고사는 도시로 알려져 있다. 이욱연 서강대 중국문화전공 교수는 “시안은 몰락한 귀족, 빛바랜 골동품 같다”고 혹평했다. 삼성이 한국 기업의 해외 투자 사상 최대 규모인 70억 달러(약 7조9100억 원)를 들여 내년 말까지 시안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다고 발표했을 때 기자는 의문이 들었다. 삼성은 왜 과거의 도시로 가려 하는가. 최근 한국언론진흥재단과 중국 신화통신사가 공동 주관한 한중 언론교류 프로그램에 참가해 7년 만에 시안을 다시 방문하고는 의문이 풀렸다. 시안은 2000년 시작된 중국의 서부대개발 정책에 따라 전통과 첨단이 공존하는 도시로 탈바꿈하고 있었다. 시안 하이테크기술산업개발구에는 중국 국내외 기업 1만6000여 개가 입주해 실크로드의 출발점이라는 역사성을 살려 ‘디지털 실크로드’를 개척하고 있다. 시안에는 금융, 항공기 제조, 인공위성, 물류, 문화 등 이런저런 개발구가 6개 더 있다. 지난해 시안의 지역내총생산(GRDP)은 3864억 위안(약 67조 원)으로 전년 대비 13.8% 증가했고, 소비시장 규모(1935억 위안)는 5년 전보다 2.4배 이상 성장했다. 시안의 성장 동력은 문화적 자부심과 중국의 3대 대학도시로서의 지적 인프라다. 도시가 활기를 띠자 인력들이 시안으로 몰려들고 있다. 시안자오퉁대를 나와 상하이의 정보기술(IT) 기업에 근무하던 류퉁하이(劉同海·31) 씨도 지난해 5월 시안으로 왔다. 그는 “엔지니어로서 시안은 기회의 땅이다. 게다가 시안은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 정도의 문화적 유산을 가진 곳이다”라고 말했다. 혁신으로 살아나는 시안을 보며 장안(長安·시안의 옛 지명)의 격자형 도시 구조를 본떠 만든 일본의 천년 고도 교토(京都)를 떠올렸다. 교토는 1869년 메이지 유신에 따른 도쿄(東京) 천도 이전까지 일본의 정치 사회 문화 중심지였지만 전통만 먹고사는 박제화된 도시가 아니다. 세계적인 게임회사 닌텐도, 평사원이 노벨상을 받은 시마즈제작소, 종합 전자부품 메이커 교세라 같은 세계적인 강소(强小)기업들이 모여 ‘교토식 경영’ 모델을 만들어 가고 있다. 양준호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저서 ‘교토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에서 교토 경영모델의 강점으로 혁신성을 꼽았다. 이는 ‘교토중화사상’이라 표현되는, 교토의 문화적 자부심과 연결돼 있다. 시안 사람들이 보수적이고, ‘베이징 촌놈’ ‘근본 없는 상하이’라고 하듯 교토진(人)들은 도쿄(東京)를 ‘촌놈들 집합체’라고 비웃는다. 그래서 교토는 도쿄를 모방하지 않는다. 결코 남을 따라 하지도, 남이 따라오지도 못할 교토만의 독창적인 기술을 고집하는 것이 요즘 화두인 혁신 경영의 모델이 된 비결이라는 것이다. 보수와 혁신, 가장 중국(일본)적인 것과 세계적인 것이 공존하는 도시 시안과 교토를 보며 문화유산과 혁신의 마인드가 합쳐질 때 생겨나는 시너지의 폭발력을 생각했다. 첨단의 아이디어는 문화적인 정체성에서 배태된다. 그리고 천년을 이어져 내려온 도시도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아 부단히 움직여야 활력을 가질 수 있다. 이제는 삼성이 시안으로 간 이유를 알 것 같다. -시안에서이진영 문화부 차장 ecolee@donga.com}

    • 2012-12-05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도시의 정답은 층층이 다양한 저층 주상복합… 건축가 황두진씨 작품 ‘무지개떡’ 3층 건물

    ‘내 집 짓기’ 경험담이 잘 팔리는 요즘에도 그는 ‘저층 주상복합 건물이 도시 주거의 정답’이라고 주장한다. 지상 4, 5층 높이의 건물을 지어 1층은 상가, 중간층은 사무실, 위층은 주거용으로 하고 옥상에 정원을 만들어 ‘마당 있는 집’에 대한 수요를 만족시키자는 제안이다. 일종의 상가주택 개념인데, ‘무지개떡 건축’과 ‘무지개떡 아파트’라는 이름으로 상표등록 출원도 했다. 황두진 황두진건축사사무소 소장(49)이 그다. “무지개떡 건물은 1층부터 꼭대기층까지 한 가지 용도로만 활용하는 ‘시루떡’ 건물에 상대되는 개념입니다. 주거와 상업, 업무 시설 등 다양한 용도의 시설을 층을 달리해가며 한 건물에 모아놓아 무지개떡이라고 이름 지은 것이지요.” 그가 서울 종로구 궁정동 길가에 지은 무지개떡 건물 1호 ‘더 웨스트 빌리지’(2011년)는 올해 서울시 건축상 우수상을 받았다.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로 지하엔 갤러리, 1층은 카페, 2, 3층은 복층 주거 공간으로 완성했다. 처음엔 지상 4층으로 설계했지만 길 건너 청와대가 있어 1층이 깎이고 옥상정원도 허가가 나지 않았다. “건물은 길과 상호작용을 해야 도시가 살아납니다. 고층 아파트는 주위와 단절돼 있어 문제이지요. 그렇다고 전원형 모델인 단독주택이 아파트의 대안이 될 수는 없습니다. 한국인의 약 83%가 도시에 삽니다. 도시를 제외한 대안, 도시에서 밀도를 무시한 대안은 솔루션이 될 수 없는 이유입니다.” 황 소장이 꼽는 상가주택, 아니 무지개떡 빌딩의 덕목은 다음과 같다. 우선 직주(職住)근접으로 출퇴근 시간을 줄여주고 단독주택보다 에너지를 덜 쓰니 환경친화적인 모델이다. 1층에 한 번쯤 들어가 보고 싶은 식당이나 상점이 있으면 길이 살아나고 해가 지면 우범지역이 되는 다세대주택과 달리 안전하다. 상주인구를 확보할 수 있어 도심 공동화도 막을 수 있다. 그가 제안하는 저층고밀도 복합건물은 김성홍 서울시립대 건축학부 교수가 저서 ‘길모퉁이 건축’(2011년)에서 제안한 ‘길모퉁이 중간건축’과 비슷하다. 김 교수의 중간건축도 도시의 길모퉁이 이면에 면해 있으면서, 엘리베이터 없이 오르내릴 수 있는 높이에, 주거와 상업과 업무 공간이 섞여 있는 건물을 말한다. 황 소장은 “단독주택 하나하나는 환경친화적일지 몰라도 전체를 모아놓고 보면 가구당 점유 면적이 넓고 에너지 소비량이 많아 도심의 아파트보다 결코 환경에 이롭지 않다”고 말했다. 에드워드 글레이저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가 베스트셀러 ‘도시의 승리’(2011년)에서 주장했던 “도시가 전원보다 환경친화적이다”라는 말을 떠올리게 하는 설명이다. 그는 서울 마포구 동교동에 7층, 경기 과천에 3층 규모로 무지개떡 빌딩 2호와 3호를 짓고 있다. 과천 빌딩은 고 이윤기 씨의 딸인 번역가 이다희 씨 부부가 살 집이다. 1층과 2층의 절반은 카페이고 나머지 절반과 3층이 주거용이다. 옥상엔 작은 정원도 만들 계획이다. 무지개떡 건물 실험은 내년 4월 완공 예정인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의 충남 현대캐피탈 천안연수원으로 이어지고 있다. 소속 배구팀을 위한 경기장을 지으면서 관중석 위쪽 빈 공간에 선수용 숙소를 지어 넣은 것이다. 새로운 ‘직주 근접’ 설계인 셈이다. 한옥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지으며 한옥의 진화 방안을 모색해온 황 소장은 한옥에도 무지개떡 개념을 도입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2009년 경기 이천시 휘닉스스프링스 골프클럽 게스트하우스를 지하 1층, 지상 2층(총면적 1868m²·약 565평) 규모의 한옥으로 완공한 바 있다. “도심에서 토지를 한 번 쓰고 마는(단층 건물을 짓는) 사치를 할 수는 없습니다. 그건 여흥을 위한 건축밖에 안 되지요. 한옥도 다층화할 필요가 있습니다.”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 2012-11-2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