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지난 이야기소방관 남편 허승민이 태백 강풍 피해 현장을 수습하다 세상을 떠났다.그러나 박현숙은 울지 않았다.남편이 남기고 간 생후 110일 된 딸 소윤이 슬픈 기억을 갖고 살지 않았으면 했다.엄마와 씩씩하게 크길 바랐다.그래서 현숙은 가슴 속에서 올라오는 눈물을 참아내고, 눌러냈다.1년, 그리고 2년.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 잘 지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허승민 소방관이 강풍 피해를 수습하다 순직한 지 2년이 조금 지났을 때였다. 승민의 아내 박현숙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안녕하세요. 소방청에서 일하는 조인담 주임이라고 합니다. 서울에서 6월 말에 소방관 유가족 모임이 있는데요. 1박 2일입니다. 보호자도 1명 동반할 수 있고요. 안 오시면 양육비 지원이 어려울 수 있으니 꼭 오세요.”현숙이 답을 하기도 전에 전화가 뚝 끊겼다. 멍하니 스마트폰 화면을 바라봤다.‘뭐야. 신종 보이스피싱인가?’소방청으로부터 전화를 받아 본 일이 거의 없었던 탓에 현숙은 인담의 말을 믿지 못했다. 이런 행사를 들어 본 적도 없었다. 전화를 끊고 소방청 홈페이지를 뒤져 봤다.“조인담. 어, 진짜 있네? 흔한 이름은 아닌데….”044로 시작하는 전화번호도 스마트폰에 찍힌 것과 같았다. 다시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죄송한데요, 아직 아기가 어려서요. 서울까지 가는 건 어렵겠어요.”현숙도 할 말만 하고 재빨리 전화를 끊었다. 아이는 핑계였다. 다른 유가족을 만나고 싶지도 않았다. 상처받고 힘든 사람들끼리 모여 좋을 게 없을 것 같았다.●뜻밖의 통화인담이 중앙소방본부(현 소방청) 소방정책과로 발령 난 1년 반 전. 첫 출근을 하자마자 한가득 쌓여 있는 종이를 멍하니 바라봤다. 소방관 복지 민원부터 순직 유가족의 연금 및 보상금 서류와 공무상 재해 인정 소송 상황까지. 파악할 업무가 수두룩했다.“내가 있는 동안 다른 건 몰라도 순직 사건만은 일어나지 마라.”소방관이 순직하면 각종 행정 처리에 보상까지 신경 써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할 일이 산더미인데 새로운 일까지 맡고 싶진 않았다. 어느 날 서류를 살피던 인담의 시선이 한곳에 멈췄다. 고 김범석 소방교.익숙한 이름이었다. 남양주에서 일할 때 본부에 투병 중인 소방관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혈관육종암’이라 일컫는 희소암이었는데, 발병 원인을 알 수 없다는 이유로 공무상 재해를 인정받지 못했다. 범석은 몇 달 뒤 암을 이기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인담은 본부 동료들과 장례식장을 찾았다. 범석의 아내가 검은 상복을 입은 채 상주 자리에 서 있었다. 범석과 그녀 사이엔 돌을 갓 지난 아들이 있었다. 초점 없는 그녀의 눈에선 눈물이 뚝뚝 흘러내렸다.“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뭐라 덧붙일 말이 없었다. 눈을 맞출 자신도 없었다. 인담은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하곤 자리를 떴다.범석이 떠난 후 유가족들은 공무원연금공단을 상대로 행정 소송을 진행했다. 아들에게 자랑스러운 소방관 아빠로 기억되고 싶다는 범석의 유언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가족들은 국가가 그의 죽음을 순직으로 인정하길 바랐다.1심 선고일 인담은 법원을 찾았다. 범석의 가족이 승소해 순직 관련 새 판례가 생기면 인담도 바빠질 터였다. 새 기준으로 순직과 공상 인정 업무를 처리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었다. 지원해야 할 순직 소방관 유가족 수도 늘어날 가능성이 컸다.“혈관육종암은 매우 희소한 질환으로 그 발생 원인이 불명확하다.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인담에겐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는 결과였다. 하지만 인담의 머릿속엔 범석의 아이가 맴돌았다. 자신도 세 아들을 키우고 있었다. 아빠 없이 커가야 할 아이가 자꾸만 눈에 밟혔다. 아이가 적어도 성인이 될 때까지는 보살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범석의 아내에게 무작정 전화를 걸었다.“조인담인데요, 항소도 진행하시죠. 제가 도울 수 있는 건 최대한 돕겠습니다.”“주변에선 다 안 될 거라고 하는데, 방법이 있나요?”지친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범석의 아내는 “변호사들이 항소심에서도 승소 가능성은 1%라는 이야기만 했다”고 걱정했다. 그녀는 어떤 방법을 찾아야 할지 난감해했다.전화를 끊은 인담은 직접 2심을 맡을 변호사를 찾아가 항소심을 준비했다. 범석의 아내와 같이 변호사를 만나며 재판 대응 논리도 짰다. 그녀가 지친 기색을 보이면 인담은 그녀를 다그치며 더 강하게 설득했다.“어머니, 이건 범석 대원과 남은 아이를 위한 일이에요. 어머니께서 희망을 갖지 않으시면 저는 어떻게 할까요? 그냥 모른 척할까요?범석의 아내는 계속된 인담의 설득에 조금씩 희망을 갖기 시작했다.인담은 공무상 재해임을 입증할 전문가도 찾아나섰다. 화재 현장에서 발생한 유독 가스가 소방관의 암 발병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였다. 수소문 끝에 하버드대 의대 교수까지 연락이 닿아 자문서를 받았다.‘화재 현장의 유독 가스가 암 발병의 원인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2년 뒤 항소심 재판부는 인담이 전문가들에게서 받아온 자문서를 인용했다. 승소였다.●누가 시키지도 않은 일그때부터 인담은 누가 시키지도 않은 일을 시작했다. 유가족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고 걱정됐다. 처음에는 무작정 그들에게 전화를 걸었다.“조인담 주임이라고 합니다. 요새 힘든 건 없으시고요?”“네? 갑자기 무슨 일이세요?”반응은 생각보다 냉담했다. 유가족들은 낯설고 불편하다는 기색을 내비치기도 했다. 인담으로선 친절하게 말을 건넸다고 생각했지만 동정으로 느끼는 사람도 있었다.그래도 인담은 작은 구실이라도 만들어 계속 전화를 걸었다. 꾸준하게 안부를 묻는 인담에게 속내를 털어놓는 사람도 생겼다. 대부분 사는 게 힘들다는 이야기였다. 예전보다 많이 나아졌다고, 그래도 지금 삶에 만족한다고 말하는 이는 한 명도 없었다.‘우리 아이만 왜 아빠가 없을까.’ ‘왜 나만 가족을 잃고 이렇게 힘들게 사는 걸까.’남겨진 가족들은 평범한 가정과 비교하며 스스로 불행하다고 느꼈다. 인담이 유가족 수십 명과 주기적으로 통화를 하며 내린 결론이었다.그렇다고 가족들에게 도움이 될 뾰족한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다. 막연히 같은 지역에 있는 유가족들을 만나게 하는 프로그램을 생각하다 포기했다. 정해진 업무 절차나 예산이 없었다. 인담의 머릿속이 점점 복잡해졌다.온종일 전화를 돌리던 인담을 한 기업이 찾았다. 순직자 자녀에게 심리 상담 비용을 지원하고 싶다고 했다. 인담의 머릿속에 작은 생각 하나가 스쳤다. 순직 소방관 가족의 자녀와 아내, 남편을 대상으로 한 캠프를 열면 어떨지 역제안했다. 그들이 모이면 대화와 치유의 물꼬가 자연스레 트일 것 같았다.인담이 기획한 캠프는 미국의 순직 소방·경찰관 지원재단이 20년 전부터 하고 있는 사업과 비슷했다. 미국에선 남겨진 사람들을 위한 캠프를 1년에 10번 이상 연다. 순직자와의 관계, 자녀 여부, 자녀 연령대 등을 구분해 개최하는 행사도 있었다. 같은 유가족이어도 각자의 처지에 따라 상황이 다를 수 있어서다. 다만 인담은 이런 케이스까진 알지 못했다.가족들의 반응은 그가 예상했던 것보다 냉랭했다. “평일에 직장을 다니는데 어떻게 가겠어요.”“직장이 어딘데요? 제가 직접 전화하고 협조 요청 공문 보낼 테니 한번 와 보세요.”“애들을 집에서 돌보는 것만 해도 힘든데, 다 데리고 거길 무슨 수로 가요.”첫 시도는 실패였다. 그냥 그만둘까도 생각했다. 비슷한 사연을 가진 소방관 가족을 모이게 하면 변화가 생길 거라 믿었던 인담도 흔들렸다. 그러나 포기하기엔 너무 늦었다. 이미 상부에 보고를 올리고 후원 기업도 설득해 놨다. 인담은 2번, 3번씩 유가족에게 전화를 걸었다. 현숙도 그의 끈질긴 전화를 받은 사람 중 한 명이었다.●괜찮은 줄 알았다승민이 떠난 지 7개월이 지나고 1월에 태어난 소윤의 첫돌이 찾아왔다. 소윤의 백일 때 현숙과 승민은 따로 사진을 찍지 않았다. 그 대신 첫돌이 오면 사진관에서 예쁘게 차려입고 가족사진을 찍자고 약속했다.‘그때 좀 찍어 놓을걸. 가족사진 하나 없네.’밀려오는 후회에 현숙이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현숙은 아빠 없는 아이의 돌잔치를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했다. 돌잔치에서 웃을 자신도 없었다. 그렇다고 소윤을 돌잔치도 못 해본 아이로 키우긴 싫었다. 무작정 태백의 유명한 식당부터 예약했다. 친정 식구와 친한 친구들을 부르고 남편이 근무했던 소방서에도 연락했다.그녀의 예상보다 많은 이들이 돌잔치를 찾아 축하했다. 눈을 깜빡이던 소윤이 판사봉을 집어 들었다. 모녀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손뼉을 치며 웃었다. 승민과 약속했던 가족사진은 친정 가족들과 찍었다. 현숙의 오빠, 남동생의 아이들을 모두 불러 함께 사진을 찍었다. 현숙은 그렇게라도 아빠의 빈자리를 채우고 싶었다.곧이어 설 연휴가 다가왔다. 모든 식구가 모였는데 승민만 없었다. 침묵이 이어지던 중 시어머니가 입을 뗐다.“이제부터 명절 때 차례는 안 지낸다. 울상 하고 있지 말고 산 사람은 어디 여행이라도 다니면서 편히, 즐겁게 지내자.”그때부터 현숙은 연휴나 명절마다 식구들과 여행을 다녔다. 태백을 떠나 슬픈 생각은 잊고 맛있는 음식을 먹었다. 시댁 식구들과 함께 여행을 다니며 소윤에게 추억을 만들어주려는 마음도 컸다. 승민을 생각하면 여전히 마음이 아렸지만 현숙은 그 마음을 애써 외면했다. 그저 이만하면 소윤과 잘 살고 있는 거라고, 그렇게 자신을 다독였다.다시 겨울이 왔다. 현숙은 서울에 있는 병원으로 검진을 받으러 왔다가 남동생 부부와 가까운 대형 쇼핑몰을 찾았다. 기분 전환을 할 생각이었다. 쇼핑몰에 들어서던 현숙의 안색이 갑자기 새파래졌다. ‘어? 내 몸이 왜 이러지?’현숙은 몸이 자꾸만 뒤로 쏠리는 느낌이 들었다. 이러다 거꾸로 넘어질 것만 같았다. 현숙이 옆에서 걷고 있던 남동생의 팔을 꽉 붙잡았다.“허공에 떠 있는 기분이야. 나 못 걷겠어.”남동생이 119에 다급히 전화했다. 사이렌 소리를 울리며 구급대원들이 도착했다. 현숙은 그들의 부축을 받으며 근처 병원으로 갔다. 응급처치를 받고 집으로 돌아오니 깜깜한 새벽이었다. 소윤은 시어머니 집에서 잠들어 있었다.“많이 늦었죠? 죄송해요. 어지럼증 때문에 응급실 다녀오느라 시간이 이렇게 됐네요.”시어머니는 걱정 어린 눈빛으로 “꼭 큰 병원에 가보라”고 당부했다. 현숙은 동해에 있는 병원으로 출발했다. 태백에서 동해, 그녀가 수도 없이 다닌 길이었지만 이날만큼은 이상하리만치 낯설었다. 그래도 직접 운전대를 잡아야 했다. 뒷자리에는 친정 엄마와 소윤이 탔다. 태백 시내를 벗어나 국도 38호선에 들어서 터널로 진입했다.‘어…? 내가 왜 이러지.’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 터널 안으로 들어갈수록 숨이 막혀 왔다. 도로 끝에 빛이 보였지만 터널을 벗어나자마자 또 다른 터널이 나왔다. 끝도 없는 어둠 속으로 향해 달리는 기분이 들었다. 10개가 넘는 터널을 지나야 했다. 목 뒤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동해에 거의 다 와 갈 때였다. 마지막 터널인 것 같았다. ‘이것만 지나면 되는데… 이것만….’ 끼익―. 그녀가 브레이크를 세게 밟았다. 차가 덜컹하며 앞으로 쏠렸다.“엄마, 나 이 터널로 들어가면 죽을 것 같아. 더는 못 가겠어.”현숙은 양손으로 핸들을 꼭 쥔 채 떨고 있었다. 멀리서 119 구급차 소리가 들렸다. 구조대원들이 그녀를 구급차에 태웠다.“엄마아, 엄마아.”정신이 아득해지는 상황에서 소윤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현숙은 눈을 꼭 감았다. 진단서에 적힌 병명은 공황장애. 의사는 “극심한 스트레스가 원인으로 보인다”고 했다.●곪은 눈물이 덧났다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공황장애 치료를 위해 입원했던 현숙은 집으로 돌아왔다. 식탁 앞에 앉아 소윤에게 줄 꼬마김밥을 말았다. 노란색 계란 지단과 초록색 시금치, 주황색 볶음 당근이 놓였다. 여러 색의 재료가 현숙의 눈에는 모두 회색빛으로 보였다. 눈앞에서 놀고 있는 소윤마저 색이 없었다. 김밥을 자르던 현숙은 소윤이 밉다는 생각이 들었다.현숙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TV로 ‘뽀로로’를 틀어주고선 안방으로 들어갔다. 아이와 둘만 있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승민의 여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소식을 들은 시어머니가 달려왔다. 시어머니가 안방에서 떨고 있는 현숙의 손을 꼭 잡았다.“니는 아직 멀었다. 아직 멀었어. 한참 더 울어야 해.”중얼거리듯 외는 소리에 현숙은 눈물이 핑 돌았다. 현숙의 어깨가 크게 들썩였다. “더 울어라. 그렇게 해야 니가 산다. 그래야 니가 살아.”2년 가까이 곪았던 눈물이 한 번에 흘러내렸다. 현숙은 시어머니의 손을 잡고 울었다. 소윤은 거실에서 할머니의 손을 꼭 붙잡고 눈물 흘리는 엄마를 한참 동안 바라봤다.얼마 지나지 않아 현숙은 친구 오정미, 김진영과 동네 카페에서 만났다. 자식들 키우는 게 쉽지 않다는 이야기가 오갔다. 웃음 짓던 현숙이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선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나 사실 동해 가려고 운전하다 터널 앞에서 공황이 왔었어. 구급차에 처음 실려 가봤잖아. 병원에 일주일 정도 입원했다가 퇴원했어.”정미와 진영의 눈이 마주쳤다. 천천히 할 말을 정리한 정미가 입을 뗐다. “그래, 병원에 가 봐야지. 주기적으로 다녀 봐.”정미는 섣불리 현숙을 위로하지 못했다. 진영도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를 바라보는 진영은 심란해진 마음으로 생각했다.‘밝고 꿋꿋하게 지내서 다행이라 생각했는데, 그게 다 속에서 곪는 줄도 모르고… 왜 네 감정을 숨기고 산 거야….’●확신할 수 없는 모임“심리 상담 프로그램도 할 거고요. 다른 소방 가족들도 오기로 했습니다. 일단 한번 오세요.”인담이 또 현숙에게 전화를 걸었다. 현숙은 뭐라 대꾸를 하지 않았다. 답을 듣지 못한 인담과 대답을 보류한 현숙 모두 망설였다. 현숙은 캠프에 가서 다른 유가족을 만난다고 해서 자신의 아픈 마음이 치유될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했다.“아무튼 반강제적으로, 캠프에 필참입니다!”현숙이 마지막으로 답을 하기도 전에 인담은 전화를 또 한 번 뚝, 끊었다.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은 2020년 ‘히어로콘텐츠팀’을 런칭하며 저널리즘의 가치와 디지털 기술을 융합한 차별화된 보도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디 오리지널’은 디지털 공간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참신한 기사를 모은 사이트입니다. QR코드를 스캔하면 순직 소방관·경찰·군인들이 세상에 남기고 간 물건들을 모은 특별한 추모 공간, ‘그들은 가족이었습니다()’ 기사로 이동하실 수 있습니다.히어로콘텐츠팀▽팀장: 지민구 기자 warum@donga.com▽취재: 김예윤 이소정 이기욱 기자▽프로젝트 기획: 위은지 기자▽사진: 홍진환 기자▽편집: 이승건 기자▽그래픽: 김충민 기자▽사이트 개발: 임상아 뉴스룸 디벨로퍼 신성일 인턴▽사이트 디자인: 김소연 인턴히어로콘텐츠팀지민구 기자 warum@donga.com김예윤 기자 yeah@donga.com이소정 기자 sojee@donga.com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어린이날 하루 전 몸을 가누기도 힘든 강풍이 불었다.철제 구조물이 떨어져 도로에 나뒹구는 위험한 현장.인명 피해를 막으려고 출동한 소방관 남편이 바람에 날아온 구조물에 머리를 다쳐 세상을 떠났다.100일 된 딸과 아내 박현숙이 남겨졌다.그녀는 눈물을 참아냈다. 대신 발버둥 쳤다.그저 평범하게, 남들과 다르지 않게 딸을 키우고 싶다.사고가 발생한 지 정확히 6년이 되는 날이었다. 박현숙은 원주 시내의 한 플라워카페에 도착했다. 분홍색 스웨터에 하얀 운동화, 밝은 고동색의 단발머리. 밝고 환한 카페 분위기와 현숙의 모습은 묘하게 닮아 있었다. “코로나19 백신도 다 맞았는데, 마스크 벗어도 괜찮죠?” 현숙이 마스크를 내리며 물었다. 분홍빛의 입술 화장과 옅은 볼 터치가 눈에 들어왔다. “궁금한 거는 편하게 물어보세요. 다 물어보셔도 돼요.” 간단한 소개가 오가고 몇 개의 질문과 답이 이어졌다. 현숙은 기자가 질문을 빙빙 돌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챈 것 같았다. “제가…. 뭔가 이상해 보이죠?” 침묵이 이어졌다. 기자는 대답할 단어를 고르지 못했다. “보통 소방관의 유가족이면 눈물 흘리고, 좀 어두울 것 같은데…. 그렇죠?” 현숙이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건너편 공원에서 살랑살랑 부는 봄바람에 푸른 나뭇잎이 흔들렸다. 그녀가 유리잔을 들어 남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모두 비워냈다. 분홍 립스틱이 유리잔에 묻어났다. 분홍색이 희미해진 입술은 두어 번 달싹였다. 현숙이 나지막이 말을 이어갔다. “근데 그건 모르실 거예요. 이렇게 지낼 수 있기까지 진짜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울지 말자, 동정받기는 싫다2016년 어린이날 하루 앞두고, 출동 현장서 머리를 다친 남편살려 달라고 간절히 기원했지만… ‘1·19’가 출생 예정일이었던소윤인 백여일만에 아빠를 잃었다홀로 아들 키운 시어머니는 말했다“애비 연명치료 말자, 네 걱정해라”휘이이잉. 창문 너머로 바람 부는 소리가 들렸다. 침대에 누워 있던 현숙이 오른팔을 뻗어 옆자리를 쓸어보았다. 야간 근무를 나간 남편은 자리에 없었다. 아직 어두운 밤이었다. 별안간 휴대전화 벨 소리가 울렸다. 잠이 든 소윤이 그 소리에 깰까 놀란 현숙은 부리나케 전화를 받았다. 소윤 아빠였다. “형수님, 허승민 부장님이 크게 다치셨거든요. 지금 당장 병원에 와보셔야 할 것 같아요.” 분명 소윤 아빠 번호였는데 휴대전화에선 낯선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새벽 2시에 걸려온 전화에 다급한 말투. 현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현숙은 다시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머리가 멍한 상태였지만 분주히 손가락을 움직였다. 오빠에게 먼저 병원에 가달라고 부탁했다. 동서에겐 집으로 와서 소윤을 돌봐 달라고 했다. 시동생이 모는 차를 타고 현숙은 병원으로 향했다. 바깥은 여전히 강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빗방울도 떨어져 운전석 시야를 가렸다. 집에서 태백병원까지는 15분이 걸렸다. 현숙의 입이 바짝 타들어 갔다. 그때 전화 벨 소리가 또다시 울렸다. 먼저 병원에 가달라고 부탁했던 오빠였다. 전화를 받자마자 오빠는 울먹였다. 현숙은 상황을 물어볼 용기를 내지 못했다. 전화기 너머로 흐느끼는 소리만 들렸다. ‘아, 큰일 났구나. 끝이구나.’ 병원에 도착하기 전 현숙은 마음의 준비를 시작했다. 응급실에 누워 있는 남편. 눈은 감았지만 심장은 쿵쿵거리며 뛰고 있었다. 의사들에게 남편을 살려 달라고 애원했다. 남편을 구급차와 헬기에 태우고 서울에 있는 대형 병원으로 향했다. 그곳에서도 의사들은 모두 고개를 저었다. 뇌사였다. 현숙은 아무것도 해보지 못한 채 태백으로 돌아왔다. 정신없는 하루가 지났다. 다음 날은 5월 5일, 어린이날이었다. 현숙은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남편을 보며 빌었다. “소윤 아빠, 오늘 어린이날이야. 당신이 오늘 떠나면 우리 소윤이는 어린이날이 없는 거잖아. 오늘만큼은 버텨 줘요. 제발.” 이런 생각을 하는 자신이 이기적인가 싶었다. 그래도 이날만큼은 아니었으면 했다.○ 떠나보내야 했다“저기, 황지동에 사는 소방관 있잖아. 재작년에 결혼한…. 크게 다쳐서 입원했다던데.” 오정미는 동네 사람들이 떠드는 얘기를 헛소문으로 여겼다. 그런데 친구 현숙에게선 아무 연락이 없었다. 불안했다. 정미는 아침 일찍 승민이 입원해 있다는 태백병원으로 향했다. ‘진짜 소윤 아빠면 어떡하지. 현숙을 만나면 뭐라 하지.’ 신호 대기를 하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정미의 눈앞에 낯익은 차량이 보였다. 현숙의 차였다. 평소 같았으면 경적이라도 울렸을 텐데, 그럴 수가 없었다. 병원 주차장에 들어온 현숙이 정미를 발견했다. 곧이어 눈물이 터졌다. 눈가에 눈물을 가득 머금은 현숙이 먼저 입을 뗐다. “나 때문이야. 내 팔자가 세서 소윤 아빠한테 이런 일이 생긴 거 아닐까?” 현숙은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만 쏟아냈다. 정미는 올라오는 감정을 억누르며 그녀를 끌어안았다. 현숙이 정미 앞에서 흘린 처음이자 마지막 눈물이었다. 승민을 데려간 건 바람이었다. 그날 태백에선 몸을 가누기도 쉽지 않을 정도로 강한 바람이 불었다. 바람을 뚫고 승민과 동료 소방관들이 출동했다. 3층 연립주택을 덮고 있던 강판 지붕이 강풍 탓에 뜯겨 나갔다는 신고였다. 거대한 구조물이 연립주택 주변 도로를 나뒹굴었다. 나이가 지긋한 주민들이 불안해했다. 강판이 또 한 번 바람에 날려 주택을 덮치면 사람이 다칠 수도 있었지만 현장을 수습할 인원이 부족했다. 결국 구급차를 운전하던 승민까지 나섰다. 그때 연립주택 지붕에 남아 있던 구조물 일부가 갑자기 날아왔다. 하필이면 승민의 머리 위였다. 헬멧도 그를 지켜주진 못했다. 불과 10초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현숙은 사고 장면이 담긴 영상을 보지 않았다. 한 주민이 “그저 감사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어 가슴이 아프다”는 글을 소방서 홈페이지에 올렸지만, 현숙은 읽지 못했다. 며칠이 지나도 승민은 눈을 뜨지 못했다. 낮에 승민을 보러 병원에 갔다가, 밤에는 소윤을 재우러 집에 오는 생활이 이어졌다. 시어머니가 먼저 말을 꺼냈다. “이 아이의 생이 여기까지면, 연명치료고 뭐고 더 할 것 없이 여기서 끝내자. 긴 병에는 장사가 없다.” 현숙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시어머니의 말은 이상하리만치 차분했다. “어머니, 그래도…. 뭐라도 더 해야죠. 하는 데까지는 해봐야죠.” 현숙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지만 시어머니는 단호했다. “계속 이 아이가 누워 있으면… 네가 소윤이 데리고 어떻게 병원 왔다 갔다 하면서 살아갈 거냐. 결국 너희만 힘들어진다.” 젊은 시절 남편을 여의고 호떡 장사를 하며 삼남매를 홀로 키운 시어머니. 그렇게 그녀는 자신의 손으로 아들의 연명치료 중단을 제안했다. 남편에 이어 장남까지 먼저 떠나보내는 시어머니의 심정을 현숙은 감히 헤아릴 수 없었다.단단하게 살자, 발버둥쳤다아무것도 모른 채 칭얼거리더라도아빠의 마지막 길, 딸이 보게 했다… 기억못할 기억이나마 가질 수 있게 ‘딸에게 슬픈 모습 보일 수 없어’… 일부러 유모차 끌고 세상 밖으로동정의 눈빛 애써 모른 체 했지만… 남편 사후, 세상은 온통 회색이었다“떠날 운명이면, 그냥 떠나도록 해주는 게 맞다.” 감정을 꾹꾹 누른 시어머니에게 현숙은 더는 대꾸하지 못했다.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었는데, 마음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딸이 태어난 지 100일 만에 남편을 떠나보내야 하는 자신의 운명이 참으로 가혹하단 생각이 들었다. 현숙은 처음으로 아이를 안고 남편이 있는 중환자실에 들어갔다. 소윤에게 아픈 아빠의 모습은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딸아이가 이 순간을 기억하진 못하겠지만 그래도 슬픈 기억을 남겨주고 싶지는 않았다. 마흔이 넘은 나이에 아이를 얻은 승민은 누구보다도 소윤을 사랑했다. 소윤의 출생 예정일을 1월 19일로 통보받았을 때 “역시 소방관 딸”이라며 웃던 남편. 소윤이 침을 흘리면 웃으며 그것을 받아먹던 소윤 아빠. 딸아이의 첫 옹알이도, 첫 뒤집기도 모두 승민과 함께였다. 사고 전날에도 승민은 119센터로 출근하기 직전까지 소윤을 품에서 내려놓지 못했다. 현숙은 눈을 감고 있는 승민을 바라보았다. 소윤은 그녀의 품 안에서 입을 달싹거리며 옹알이를 했다. 현숙은 지그시 승민의 손을 잡았다. ‘소윤 아빠, 날씨가 참 좋다? 소윤이 유모차 태우고 당신이랑 공원 놀러 가고 싶은데. 이제는 진짜 같이할 수가 없네….’ 5월 12일 오전 8시 12분. 승민은 현숙과 소윤의 곁을 영원히 떠났다.○ 살기 위해 흘리지 않은 눈물 승민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뉴스에서 나왔다. 승민과 현숙 사이에 100일 된 딸이 있다는 사실도 알려졌다. 다른 이들이 소윤을 동정하는 게 현숙은 싫었다. 빈소를 꾸리기 전, 현숙은 어린이집 직장 동료이자 친구인 김진영에게 소윤을 부탁했다. “진영아, 장례식장에 소윤이 데리고 오지 말아 줘.” 현숙이 알리지 않았는데도 장례식장에는 많은 사람이 찾아왔다. 카메라를 든 기자들은 빈소에 머물렀다. 현숙과 다른 가족들이 울며 슬퍼하는 모습을 열심히 담았다. 승민의 영정 사진 앞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는 현숙의 귀에 기자들이 하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그들은 소윤을 찾고 있었다. “갓난아이가 있다고 들었는데, 왜 안 보이지?” 현숙은 진영에게 다시 전화해 재차 당부했다. “진영아, 소윤이 절대로 장례식장에 데리고 오지 말아 줘.” 별다른 설명이 없어도 진영은 느낄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아이를 동정하지 않았으면 하는 현숙의 마음을. 진영은 “알겠다”며 현숙을 안심시켰다. 검정 정복을 입은 승민의 동료들도 다녀갔다. 그들은 빈소에 들어서자마자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현숙이 먼저 그들을 달래기 시작했다. “울지 말자. 우리 울지 말아요. 나 너무 힘들다.” 다른 소방관들은 빈소 안에 삼삼오오 모여 이야길 나누고 있었다. 직원들이 상주 자리에 멍하니 앉아 있는 그녀를 불렀다. “제수씨, 이리 오세요.” “형수님, 한잔 드세요.” 현숙이 그들 옆으로 가 맥주 한 캔을 집었다. 맥주 한 모금을 들이켜는 순간 동료들 뒤로 같은 옷을 입고 환하게 웃고 있는 승민의 얼굴이 보였다. ‘소윤 아빠, 당신 왜 거기에 있어. 바보같이 왜 당신이 그 위험한 곳에 갔어.’ 다들 승민더러 영웅이라고 불렀다. 현숙은 그곳에 왜 승민이 있었는지 화가 날 뿐이었다. 허무했다. 맥주의 뒷맛은 시원하지 않고 씁쓸했다. 눈물이 치밀어 올랐지만, 꾹 눌러냈다. 그 누구도 자신을 동정하지 않았으면 했다. 승민의 발인 날. 진영은 소윤을 데리고 승민의 마지막 길을 따라갔다. 아빠가 떠나는 마지막 모습을 소윤이가 제 눈으로 봤으면 했다. 진영은 차에서 내리지 않고 창문을 통해 멀찌감치 운구 행렬을 지켜봤다. 소윤은 아무것도 모른 채 진영의 품에 안겨 칭얼거리기만 했다. 이날 승민은 121번째 순직 소방관으로 국립대전현충원 묘역에 안장됐다. 그 후로도 6년간 27명의 소방관이 세상을 떠나 이곳에 묻혔다.○ 괜찮은 척을 했다냉정하고 단단해 보였던 시어머니는, 정작 아들을 떠나보낸 뒤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수십 년 운영하던 호떡 가게도 문을 닫았다. 가끔 현숙을 대신해 소윤을 돌봐주는 것이 일상의 전부였다. 남편에 이어 아들을 보낸 시어머니의 가슴은 타다 못해 아예 문드러졌다. “어머님, 이제 밖에 좀 나가 보세요. 장사도 다시 시작하셔야죠.” 이번엔 현숙이 먼저 말을 꺼냈다. “바깥에서 다른 사람 마주치기 싫다. 장사도 이제 더는 안 하련다.” “어머님, 우리가 허승민 소방관 가족이라는 사실은 이 태백 사람들이 다 아는데요. 평생 피하고만 살 수는 없잖아요. 어차피 들을 이야기면 얼른 듣고 끝내도록 해요.” 생각보다 시어머니는 완강했다. 더는 말을 잇지 않고 품에 안은 소윤의 몸만 토닥였다. 그래도 현숙은 고집을 꺾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어두운 옷을 입고 다니면 동네 사람들이 아들 먼저 떠나보내서 그런 거라고 말할 거예요. 저희, 깔끔하고 밝게 하고 다녀요. 특히 전 소윤이한테 슬픈 모습 보이고 싶지 않아요.” 영결식이 끝나고 며칠 지나지 않아 현숙은 무작정 밖으로 나왔다. 유모차를 끌고 동네를 다녔다. 현숙을 알아본 이웃들이 말을 걸었다. “아휴, 소윤 엄마 괜찮아요?” “소윤 아빠는 잘 보내드렸어요?” 예상했던 질문이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 현숙은 답했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해요. 이제 소윤이 씩씩하게 잘 키우려고요.” 하루는 소윤을 안고 아파트 앞 놀이터에 앉아 있었다. 꼬마 아이들이 다가와 현숙에게 말을 걸었다. “아줌마, 여기 사는 소방관 아저씨가 죽었다는데 혹시 아줌마도 얘기 들으셨어요?” ‘아, 이건 예상하지 못했다.’ 잠시 머리가 멍해졌다. 현숙은 작게 숨을 들이쉰 뒤 말했다. “어어, 그래 알아. 나도 그 얘기 들은 것 같아.” 현숙이 씩씩하게 다니려 해도, 누군가는 뒤에서 쑥덕거렸다. “남편 보낸 지 얼마나 됐다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네.” “연금, 보상금 받았으니 이제 시댁이랑은 인연 끊는 거 아냐?” 시댁 식구들도 처음엔 그녀를 조심스러워했다. 그럴 때마다 현숙은 “소윤이 이 집 아이예요. 손주고 조카예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속으로는 ‘내 딸도 이 집 핏줄이야’라고 되뇌었다. 소윤에겐 아빠가 없다는 상처 외에 다른 큰 흠이나 구김이 없으면 했다. 그래서 현숙은 승민이 세상을 떠나기 전보다 더 자주 시댁에 들렀다. 가끔 우울한 감정이 치밀어 올라오면 술이 생각났다. 그렇다고 외식을 하거나 밖에서 술을 마실 수는 없었다. 누군가가 그 모습을 보고 “남편 떠나보내고도 잘 지낸다”고, “먹고살 만한가 보다”라고 손가락질을 할 것 같았다. 소윤과 둘이 있는 집에서 술을 마시는 건 더더욱 싫었다. 그래서 현숙은 술이 생각날 때마다 시어머니를 찾았다. “어머님, 막걸리 한 잔만 같이해 주시면 안 될까요?” 남편을 잃고 시어머니에게 술을 권하는 며느리라니. 현숙은 스스로 생각해도 철이 없다고 느꼈다. 그렇지만 그게 현숙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떠나간 남편이 떠오르고, 소윤을 키우며 아등바등 버텨내는 삶에서 잠시나마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구멍이었다. 복잡한 며느리의 마음을 알아챈 시어머니는 현숙의 부탁에 응했다. 둘은 그렇게 종종 막걸리를 마셨다. 평소 이런저런 생각으로 밤잠을 설쳤던 현숙도 술 몇 모금 마시다 보면 금세 잠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아침이 밝아오면, 현숙은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몸과 마음이 힘들어도, 소윤이 앞에선 절대 약한 모습이나 우는 얼굴은 보이지 않을 거야. 단단하게 살아갈 거야. 슬픔에 빠진 채로 지낼 수 없어. 보란 듯이 잘 살 거야.’○ 외면했던 회색빛 삶플라워카페에 앉아 있는 현숙의 뒤로는 색색의 꽃들이 놓여 있었다. 빨간 카네이션과 노란 튤립에 분홍 카네이션까지.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을 앞두고 있던 5월 4일이라 많은 손님이 꽃을 사러 왔다. 꽃이 심긴 곳을 등지고 앉은 현숙은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6년 전 이야기를 풀어내던 현숙은 잠시 슬픈 눈을 보이다가 금세 웃어 보이며 아무렇지 않은 듯이 대화를 이어갔다. “소윤 아빠가 떠나고… 한 2년간 그랬네요. 괜찮은 척, 발버둥을 쳤어요. 사실 우리 집 벽지, 그리고 내 방의 천장, 저를 둘러싼 모든 공간은 온통 회색빛으로만 보였거든요. 슬픔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 거죠.” 현숙이 텅 빈 유리잔을 조심스럽게 매만지며 회색빛 시절의 이야기를 꺼내놓기 시작했다. 히어로콘텐츠팀▽팀장: 지민구 기자 warum@donga.com▽취재: 김예윤 이소정 이기욱 기자▽프로젝트 기획: 위은지 기자 ▽사진: 홍진환 송은석 기자▽편집: 이승건 기자 ▽그래픽: 김충민 기자▽사이트 개발: 임상아 뉴스룸 디벨로퍼 신성일 인턴▽사이트 디자인: 김소연 인턴QR코드를 스캔하면 순직 제복 공무원과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디지털로 구현한 ‘그들은 가족이었습니다’(original.donga.com/2022/hero-memorial)로 연결됩니다. 히어로콘텐츠팀지민구 기자 warum@donga.com김예윤 기자 yeah@donga.com이소정 기자 sojee@donga.com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사랑하는 가족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마지막 말 한마디 남기지 못한 채.소방, 경찰, 군인…어렴풋이 위험한 순간도 있다는 건 알았다. 하지만 생사의 기로에서 정말 자신보다 타인을 선택할 줄은 몰랐다.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은 6월부터 2개월 간 전국의 순직 소방, 경찰, 군인의 유가족들을 만났다.어떤 사람들이었을까.남은 가족들은 말없이 고인의 일상이 담긴 유품을 꺼내놓았다.남은 물건들이 대신 답했다.세상이 영웅이라고 부르는 어떤 사람들도,실은 가족과 울고 웃던 평범한 자식과 부모 그리고 사랑하는 남편이자 아내였다고.집에서 웃음소리가 나는 건 단비 덕이 컸다. 단비는 집에 오면 윷놀이판을 펼치고, 여행 갈 땐 마이크를 챙기는 딸이었다. 늘 살가웠지만, 그해 어버이날에는 더욱 다정했다.“생전 그런 적은 없었는데, 절을 하면서 어버이은혜 노래까지 부르더라고. 지금 생각하면 떠날 걸 알고서 그랬나봐….”그리고 용돈과 함께 쥐어준 편지. 평소에 못한 말이 담겨 있었다.‘어디서도 아빠 사랑 많이 받고 컸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게 해준 100점짜리 아빠’‘내 성격 원래 이렇다는 핑계로 엄마 얘기 많이 들어주지 못해 미안해요’단비의 마지막 편지가 됐다.-어머니 이진숙“대신 받아오는데 아무 생각도 안 들었어. 주인 없는 상장이 무슨 의미가 있나.” 아들은 순직 두 달 전 다뉴브강을 누볐다. 2019년 5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침몰한 유람선 허블레아니호 실종자 수색에 투입되면서다. 헝가리 정부는 이듬해 5월 사고 1주기를 기려 아들에게 표창장을 수여했다. 이미 혁이가 세상을 떠난 후였다. “그래도 죽을 때까지 갖고 있어야지.”-아버지 배웅식2019년 10월 31일 박단비 소방교(순직 당시 29세)와 배혁 소방장(순직 당시 31세)은 소방헬기를 타고 독도를 향했다. 응급환자를 태우고 독도를 이륙한 헬기는 불과 2분 만에 바다로 추락했다. 박 소방교와 배 소방장을 비롯해 김종필 기장(순직 당시 46세), 서정용 검사관(순직 당시 45세), 이종후 부기장(순직 당시 39세)이 함께 순직했다“와, 남자친구가 다이어트 기념으로 꽃을 줬다고?”재국은 ‘꽃을 든 남자’였다.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꽃을 선물했다. 같이 있다가 화장실 다녀오겠다더니 꽃을 내밀고, 다이어트를 한다고 하면 다이어트 기념 꽃을 주는 남자친구 이야기에 친구들의 탄성이 쏟아지곤 했다. 그가 남편이 된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2018년부터 2020년까지 남편에게 받은 꽃들을 간직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가장 큰 꽃을 남긴 채 떠났다. 임신 4개월이었다.-아내 이꽃님2020년 2월 15일 유재국 경위(순직 당시 39세)는 한강 가양대교 북단에 출동했다. 투신 기도자를 수색하기 위해서였다. 수중 수색 중 교각 틈에 유 경위의 몸이 끼면서 물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가까스로 구조돼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치료 중 순직했다.“제일 예쁘고 화려한 꽃목걸이를 걸어주고 싶었어. 동네 꽃집에서 생화도 넣고 조화도 넣고 색색깔로 만들어서 청주까지 가져갔어.”파일럿 준비가 쉽지 않다고 토로하는 정민에게 “그래도 최선을 다해보라”고 말했었다. 아들은 좋은 성적으로 전투기 조종사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얻으며 학교를 졸업했다. 대구에서 공들여 주문한 꽃목걸이를 공사가 있는 청주까지 가져갔다.화환을 보면 여전히 아들이 자랑스럽다.-어머니 최원숙2022년 1월 11일 F-5E 전투기 한 대가 경기 수원시 공군 제10전투비행단 활주로를 이륙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기체 이상 신호가 나타나자 조종사였던 심정민 소령(순직 당시 29세)은 관제탑에 비상탈출을 선언했다. 그러나 민가 피해를 막기 위해 끝까지 조종간을 놓지 않았다. 결국 전투기는 인근 야산에 추락했다. “아버지는 젊으셨습니다. 불과 2년 전 제가 선물해드린 신발을 신고 체력장 시험에서 20대, 30대 후배들보다도 빠르게 뛰고 만점을 받았다고 자랑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이 신발을 보면 매일 운동을 하셔서 20대 후반인 저보다도 힘이 세고 건강하시던 아버지가 생각납니다.”-아들 이길현2020년 8월 6일 강원도 춘천 의암호. 댐을 방류할 정도의 폭우에 수질 정화를 위해 설치된 인공 수초섬이 급류에 떠내려갔다. 신고를 받고 악천후 속에서 수초섬 고정 작업에 나선 이종우 경감(순직 당시 53세)은 타고 있던 순찰정이 전복되면서 실종됐다. 이틀 후 북한강 근처에서 순직한 그가 발견됐다.“호종이 생각나는 물건은 집 안에 남겨두기 힘들어서 옷이나 신발, 모자, 아령같은 운동기구도 다 버렸어. 그런데 이 다이버 시계는 그냥 버리기가 싫었어요. 해경 시험 준비할 때부터 찬 거거든. 합격하고 훈련받거나 일하러 갈 때도 이게 갖고 있는 시계 중에 제일 크고 두껍다고 자주 찼어. 보면 바닷물 소금기가 아직도 남아있어. 여기 까만 고무에, 허옇게 희끗희끗한 것들이 다 소금이잖아.”-어머니 박상숙2020년 6월 6일 경남 통영시 홍도 인근에서 스킨스쿠버를 하던 다이버 2명이 기상악화로 인해 해상동굴에 고립됐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정호종 경장(순직 당시 34세)은 9시간 넘게 구조 작업을 이어가다 너울성 파도에 휩쓸려 실종됐다. 그는 이튿날 숨진 채 발견됐다. 다이버 2명은 무사히 구조됐다.우리 가족 네 사람을 15년 동안 태우고 다니던 자동차 키.남편은 언제나 우리 넷 다 가야지, 말했다. 아내와 둘만 가는 여행도 손사래쳤다. 꼭 아들 둘까지 다 끼고 가야 한다고 했다. 괜히 서운할 때도 있었지만 웃어 넘겼다. 그래 우리 넷이 가족이잖아.그래서 이 차를 여전히 처분하지 못하고 그대로 주차장에 뒀다. 남편이 운전하러 올 것만 같다.“파출소도 그랬나봐. 남편 생각난다고 차를 치워달라고 하더라고…”-아내 이성선2015년 2월 27일 경기 화성시 주택가에서 총기 인질극이 벌어졌다. 남양파출소장이던 이강석 경정(순직 당시 43세)은 직접 현장에 출동해 집안으로 들어갔다. 신속하게 범인을 설득하고 피해자를 구하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범인이 쏜 총탄에 맞아 순직했다.“커서는 등산도 하고 수영도 하고 아주 만능이었는데, 어릴 때는 그렇게 운동 좋아하는 애는 아니었거든. 그런데 그 때도 축구는 좋아했어.”국환이는 직장에서도 축구 소모임 장을 맡아 주말에 종종 경기를 나가곤 했다. 등번호는 주로 7번이나 10번. 팀에서 에이스나 최전방 공격수들이 다는 번호다. 그만큼 축구를 잘하고 또 좋아했다.소방서 축구 소모임 유니폼에는 이렇게 적혀있다.‘퍼스트 인, 라스트 아웃(First In, Last out)’-아버지 김도근2020년 7월 31일 전남 구례군 지리산 피아골에서 물놀이를 하던 피서객 한 명이 물에 빠졌다. 며칠간 이어진 비로 계곡은 물이 불어난 상태였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김국환 소방장(순직 당시 28세)은 피서객을 구하기 위해 계곡에 뛰어들었다가 급류에 휩쓸리며 순직했다. “이 시계가 남편 보물 1호였어. 다른 건 모르겠는데 이건 차마 못 버리겠더라고.”결혼 25주년 선물로 남편에게 시계를 선물했다. 아이처럼 좋아하면서 매일 찼다. 사고가 난 그날도 마지막까지 차고 있었다. 지금은 그녀의 남동생이 대신 시계를 차고 있다.“팔찌는 몇 년 전에 내 생일 선물로 해준 거야. 같이 TV 보고 있다가 팔찌 예쁘다니까 ‘그럼 팔찌 살까’ 해서 금은방 가서 산거거든. 그때 퇴직할 때는 순금 팔찌 해준다고 적금도 들었는데…”-아내 이연숙 취직한 아들이 첫 월급을 받아 사준 선물. 그전까지 아빠와 아들이 서로 선물 주고받은 적은 손에 꼽았다. “첫 월급 받았다면서 강릉 시내 끌고 가더라고. 나는 운동화나 사달라고 했는데 아니라고, 운동화는 평소에도 사지 않냐, 첫 월급인데 제일 좋은 거 사야 된다면서 구두를 사자하더라고. 올 가을이 간 지 5년인데 이제 잘 가라고, 호현이 물건들은 다 태우려고 하는데 이건 안 태우려고. 이건 유품이 아니라 나한테 준 선물이잖아.”-아버지 이광수2017년 9월 16일 밤 9시 43분경, 강원도 강릉의 오래된 목조정자 석란정에 불이 났다. 이영욱 소방경(순직 당시 59세)과 이호현 소방교(순직 당시 27세)는 불을 끈 후 복귀했지만 이튿날 새벽 4시경 불이 다시 붙었다는 신고에 두 번째로 출동했다. 화재 진압 중 석란정이 무너지면서 작업 중이던 두 사람을 덮쳤다. 18분 만에 구조됐지만 두 사람 모두 숨을 거뒀다.“이거는 푸켓으로 신혼여행 가서 같이 산 지갑이에요. 여기에 공무원증이랑 주민등록증 같은 것도 다 들어있어요. 원래는 사진 찍는 걸 막 좋아하지는 않는데, 신행 갔을 때 찍은 사진도 한 장 있고. 나중에 딸래미 크면 아빠 쓰던 거라고 보여주려고 그대로 두고 있어요.”-아내 박현숙2016년 5월 4일 강원도 태백의 연립주택 지붕이 강풍에 날아가 도로에 떨어졌다. 허승민 소방위(순직 당시 46세)는 위험하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해 도로변에 떨어진 지붕 구조물을 철거하고 있었다. 강풍이 이어지며 옥상에 남은 또 다른 지붕 구조물이 작업 중이던 허 소방위의 머리로 떨어지면서 순직했다.지갑의 주인이었던 승민이 세상을 떠난 지 6년이 흘렀다. 태어난 지 백일 만에 아빠를 잃었던 아기는 일곱 살이 됐다. 사랑하는 자식, 부모, 남편, 아내는 떠났지만 남겨진 이들의 가슴속에 살아있다. 남겨진 이들은 무너지고 또 무너지지만 살아있다. 살아가고 있다.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은 2020년 ‘히어로콘텐츠팀’을 런칭하며 저널리즘의 가치와 디지털 기술을 융합한 차별화된 보도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디 오리지널’은 디지털 공간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참신한 기사를 모은 사이트입니다. QR코드를 스캔하면 순직 소방관·경찰·군인들이 세상에 남기고 간 물건들을 모은 특별한 추모 공간, ‘그들은 가족이었습니다(l)’ 기사로 이동하실 수 있습니다.히어로콘텐츠팀 ▽기사 취재 : 지민구 김예윤 이소정 이기욱 기자 ▽프로젝트 기획 : 위은지 기자 ▽사진 취재 : 홍진환·송은석 기자 ▽그래픽 : 김충민 기자 ▽사이트 개발 : 임상아 뉴스룸 디벨로퍼 신성일 인턴 ▽사이트 디자인 : 김소연 인턴히어로콘텐츠팀지민구 기자 warum@donga.com김예윤 기자 yeah@donga.com이소정 기자 sojee@donga.com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어린이날 하루 전 몸을 가누기도 힘든 강풍이 불었다.철제 구조물이 떨어져 도로에 나뒹구는 위험한 현장.인명 피해를 막으려고 출동한 소방관 남편이 바람에 날아온 구조물에 머리를 다쳐 세상을 떠났다.100일 된 딸과 아내 박현숙이 남겨졌다.그녀는 눈물을 참아냈다. 대신 발버둥 쳤다.그저 평범하게, 남들과 다르지 않게 딸을 키우고 싶다.사고가 발생한 지 정확히 6년이 되는 날이었다. 박현숙은 원주 시내의 한 플라워카페에 도착했다. 분홍색 스웨터에 하얀 운동화, 밝은 고동색의 단발머리. 밝고 환한 카페 분위기와 현숙의 모습은 묘하게 닮아 있었다.“코로나19 백신도 다 맞았는데, 마스크 벗어도 괜찮죠?”현숙이 마스크를 내리며 물었다. 분홍빛의 입술 화장과 옅은 볼 터치가 눈에 들어왔다.“궁금한 거는 편하게 물어보세요. 다 물어보셔도 돼요.”간단한 소개가 오가고 몇 개의 질문과 답이 이어졌다. 현숙은 기자가 질문을 빙빙 돌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챈 것 같았다.“제가…. 뭔가 이상해 보이죠?”침묵이 이어졌다. 기자는 대답할 단어를 고르지 못했다.“보통 소방관의 유가족이면 눈물 흘리고, 좀 어두울 것 같은데…. 그렇죠?”현숙이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건너편 공원에서 살랑살랑 부는 봄바람에 푸른 나뭇잎이 흔들렸다. 그녀가 유리잔을 들어 남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모두 비워냈다. 분홍 립스틱이 유리잔에 묻어났다. 분홍색이 희미해진 입술은 두어 번 달싹였다. 현숙이 나지막이 말을 이어갔다.“근데 그건 모르실 거예요. 이렇게 지낼 수 있을 때까지 진짜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거센 바람이 불어닥쳤다휘이이잉.창문 너머로 바람 부는 소리가 들렸다. 침대에 누워 있던 현숙이 오른팔을 뻗어 옆자리를 쓸어보았다. 야간 근무를 나간 남편은 자리에 없었다.아직 어두운 밤이었다. 별안간 휴대전화 벨 소리가 울렸다. 잠이 든 소윤이 그 소리에 깰까 놀란 현숙은 부리나케 전화를 받았다. 소윤 아빠였다.“형수님, 허승민 부장님이 크게 다치셨거든요. 지금 당장 병원에 와보셔야 할 것 같아요.”분명 소윤 아빠 번호였는데 휴대전화에선 낯선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새벽 2시에 걸려온 전화에 다급한 말투. 현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현숙은 다시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머리가 멍한 상태였지만 분주히 손가락을 움직였다. 오빠에게 먼저 병원에 가달라고 부탁했다. 동서에겐 집으로 와서 소윤을 돌봐 달라고 했다.시동생이 모는 차를 타고 현숙은 병원으로 향했다. 바깥은 여전히 강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빗방울도 떨어져 운전석 시야를 가렸다. 집에서 태백병원까지는 15분이 걸렸다.현숙의 입이 바짝 타들어 갔다. 그때 전화 벨 소리가 또다시 울렸다. 먼저 병원에 가달라고 부탁했던 오빠였다. 전화를 받자마자 오빠는 울먹였다. 현숙은 상황을 물어볼 용기를 내지 못했다. 전화기 너머로 흐느끼는 소리만 들렸다.‘아, 큰일 났구나. 끝이구나.’병원에 도착하기 전 현숙은 마음의 준비를 시작했다. 응급실에 누워 있는 남편. 눈은 감았지만 심장은 쿵쿵거리며 뛰고 있었다. 의사들에게 남편을 살려 달라고 애원했다. 남편을 구급차와 헬기에 태우고 서울에 있는 대형 병원으로 향했다. 그곳에서도 의사들은 모두 고개를 저었다. 뇌사였다. 현숙은 아무것도 해보지 못한 채 태백으로 돌아왔다.정신없는 하루가 지났다. 다음 날은 5월 5일, 어린이날이었다. 현숙은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남편을 보며 빌었다.“소윤 아빠, 오늘 어린이날이야. 당신이 오늘 떠나면 우리 소윤이는 어린이날이 없는 거잖아. 오늘만큼은 버텨 줘요. 제발.”이런 생각을 하는 자신이 이기적인가 싶었다. 그래도 이날만큼은 아니었으면 했다.“저기, 황지동에 사는 소방관 있잖아. 재작년에 결혼한…. 크게 다쳐서 입원했다던데?”오정미는 동네 사람들이 떠드는 얘기를 헛소문으로 여겼다. 그런데 친구 현숙에게선 아무 연락이 없었다. 불안했다.정미는 아침 일찍 승민이 입원해 있다는 태백병원으로 향했다.‘진짜 소윤 아빠면 어떡하지. 현숙을 만나면 뭐라 하지.’신호 대기를 하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정미의 눈앞에 낯익은 차량이 보였다. 현숙의 차였다. 평소 같았으면 경적이라도 울렸을 텐데, 그럴 수가 없었다. 그녀의 뒤를 무심코 따랐다. 병원 주차장에 들어온 현숙이 정미를 발견했다. 곧이어 눈물이 터졌다. 둘은 아무 이야기도 할 수 없었다. 눈가에 눈물을 가득 머금은 현숙이 먼저 입을 뗐다.“나 때문이야. 내 팔자가 세서 소윤 아빠한테 이런 일이 생긴 거 아닐까?”현숙은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만 쏟아냈다. 정미는 올라오는 감정을 억누르며 그녀를 끌어안았다. 현숙이 정미 앞에서 흘린 처음이자 마지막 눈물이었다.승민을 데려간 건 바람이었다. 그날 태백에선 몸을 가누기도 쉽지 않을 정도로 강한 바람이 불었다. 바람을 뚫고 승민과 동료 소방관들이 출동했다. 3층 연립주택을 덮고 있던 강판 지붕이 강풍 탓에 뜯겨 나갔다는 신고였다.거대한 구조물이 연립주택 주변 도로를 나뒹굴었다. 나이가 지긋한 주민들이 불안해했다. 강판이 또 한 번 바람에 날려 주택을 덮치면 사람이 다칠 수도 있었지만 현장을 수습할 인원이 부족했다. 결국 구급차를 운전하던 승민까지 나섰다. 그때 연립주택 지붕에 남아 있던 구조물 일부가 갑자기 날아왔다. 하필이면 승민의 머리 위였다. 헬멧도 그를 지켜주진 못했다. 불과 10초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현숙은 사고 장면이 담긴 영상을 보지 않았다. 한 주민이 “그저 감사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어 가슴이 아프다”는 글을 소방서 홈페이지에 올렸지만, 현숙은 읽지 못했다.며칠이 지나도 승민은 눈을 뜨지 못했다. 낮에 승민을 보러 병원에 갔다가, 밤에는 소윤을 재우러 집에 오는 생활이 이어졌다. 시어머니가 먼저 말을 꺼냈다.“이 아이의 생이 여기까지면, 연명치료고 뭐고 더 할 것 없이 여기서 끝내자. 긴 병에는 장사가 없다.”현숙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시어머니의 말은 이상하리만치 차분했다.“어머니, 그래도…. 뭐라도 더 해야죠. 하는 데까지는 해봐야죠.”현숙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지만 시어머니는 단호했다.“계속 이 아이가 누워 있으면… 네가 소윤이 데리고 어떻게 병원 왔다 갔다 하면서 살아갈 거냐. 결국 너희만 힘들어진다.”젊은 시절 남편을 여의고 호떡 장사를 하며 삼남매를 홀로 키운 시어머니. 그렇게 그녀는 자신의 손으로 아들의 연명치료 중단을 제안했다. 남편에 이어 장남까지 먼저 떠나보내는 시어머니의 심정을 현숙은 감히 헤아릴 수 없었다.“떠날 운명이면, 그냥 떠나도록 해주는 게 맞다.”감정을 꾹꾹 누른 시어머니에게 현숙은 더는 대꾸하지 못했다.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었는데, 마음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딸이 태어난 지 100일 만에 남편을 떠나보내야 하는 자신의 운명이 참으로 가혹하단 생각이 들었다.현숙은 처음으로 아이를 안고 남편이 있는 중환자실에 들어갔다. 소윤에게 아픈 아빠의 모습은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딸아이가 이 순간을 기억하진 못하겠지만 그래도 슬픈 기억을 남겨주고 싶지는 않았다.마흔이 넘은 나이에 아이를 얻은 승민은 누구보다도 소윤을 사랑했다. 소윤의 출생 예정일을 1월 19일로 통보받았을 때 ”역시 소방관 딸“이라며 웃던 남편. 소윤이 침을 흘리면 웃으며 그것을 받아먹던 소윤 아빠. 딸아이의 첫 옹알이도, 첫 뒤집기도 모두 승민과 함께였다. 사고 전날에도 승민은 119센터로 출근하기 직전까지 소윤을 품에서 내려놓지 못했다. 현숙은 눈을 감고 있는 승민을 바라보았다. 소윤은 그녀의 품 안에서 입을 달싹거리며 옹알이를 했다. 현숙은 지그시 승민의 손을 잡았다.‘소윤 아빠, 날씨가 참 좋다? 소윤이 유모차 태우고 당신이랑 공원 놀러 가고 싶은데. 이제는 진짜 같이할 수가 없네….’5월 12일 오전 8시 12분. 승민은 현숙과 소윤의 곁을 영원히 떠났다.살기 위해 흘리지 않은 눈물승민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뉴스에서 나왔다. 승민과 현숙 사이에 100일 된 딸이 있다는 사실도 알려졌다. 다른 이들이 소윤을 동정하는 게 현숙은 싫었다. 빈소를 꾸리기 전, 현숙은 어린이집 직장 동료이자 친구인 김진영에게 소윤을 부탁했다.“진영아, 장례식장에 소윤이 데리고 오지 말아 줘.”현숙이 알리지 않았는데도 장례식장에는 많은 사람이 찾아왔다. 카메라를 든 기자들은 빈소에 머물렀다. 현숙과 다른 가족들이 울며 슬퍼하는 모습을 열심히 담았다.승민의 영정 사진 앞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는 현숙의 귀에 기자들이 하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그들은 소윤을 찾고 있었다.“갓난아이가 있다고 들었는데, 왜 안 보이지?”현숙은 진영에게 다시 전화해 재차 당부했다.“진영아, 소윤이 절대로 장례식장에 데리고 오지 말아 줘.”별다른 설명이 없어도 진영은 느낄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아이를 동정하지 않았으면 하는 현숙의 마음을. 진영은 ”알겠다“며 현숙을 안심시켰다.검정 정복을 입은 승민의 동료들도 다녀갔다. 그들은 빈소에 들어서자마자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현숙이 먼저 그들을 달래기 시작했다.“울지 말자. 우리 울지 말아요. 나 너무 힘들다.”다른 소방관들은 빈소 안에 삼삼오오 모여 이야길 나누고 있었다. 직원들이 상주 자리에 멍하니 앉아 있는 그녀를 불렀다.“제수씨, 이리 오세요.“ ”형수님, 한잔 드세요.”현숙이 그들 옆으로 가 맥주 한 캔을 집었다. 맥주 한 모금을 들이켜는 순간 동료들 뒤로 같은 옷을 입고 환하게 웃고 있는 승민의 얼굴이 보였다.‘소윤 아빠, 당신 왜 거기에 있어. 바보같이 왜 당신이 그 위험한 곳에 갔어.’다들 승민더러 영웅이라고 불렀다. 현숙은 그곳에 왜 승민이 있었는지 화가 날 뿐이었다. 허무했다. 맥주의 뒷맛은 시원하지 않고 씁쓸했다. 눈물이 치밀어 올랐지만, 꾹 눌러냈다. 그 누구도 자신을 동정하지 않았으면 했다.승민의 발인 날. 진영은 소윤을 데리고 승민의 마지막 길을 따라갔다. 아빠가 떠나는 마지막 모습을 소윤이가 제 눈으로 봤으면 했다. 진영은 차에서 내리지 않고 창문을 통해 멀찌감치 운구 행렬을 지켜봤다. 소윤은 아무것도 모른 채 진영의 품에 안겨 칭얼거리기만 했다.이날 승민은 121번째 순직 소방관으로 국립대전현충원 묘역에 안장됐다. 그 후로도 6년간 27명의 소방관이 세상을 떠나 이곳에 묻혔다.냉정하고 단단해 보였던 시어머니는, 정작 아들을 떠나보낸 뒤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수십 년 운영하던 호떡 가게도 문을 닫았다. 가끔 현숙을 대신해 소윤을 돌봐주는 것이 일상의 전부였다. 남편에 이어 아들을 보낸 시어머니의 가슴은 타다 못해 아예 문드러졌다.“어머님, 이제 밖에 좀 나가 보세요. 장사도 다시 시작하셔야죠.”이번엔 현숙이 먼저 말을 꺼냈다.“바깥에서 다른 사람 마주치기 싫다. 장사도 이제 더는 안 하련다.”“어머님, 우리가 허승민 소방관 가족이라는 사실은 이 태백 사람들이 다 아는데요. 평생 피하고만 살 수는 없잖아요. 어차피 들을 이야기면 얼른 듣고 끝내도록 해요.”생각보다 시어머니는 완강했다. 더는 말을 잇지 않고 품에 안은 소윤의 몸만 토닥였다. 그래도 현숙은 고집을 꺾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어두운 옷을 입고 다니면 동네 사람들이 아들 먼저 떠나보내서 그런 거라고 말할 거예요. 저희, 깔끔하고 밝게 하고 다녀요. 특히 전 소윤이한테 슬픈 모습 보이고 싶지 않아요.”영결식이 끝나고 며칠 지나지 않아 현숙은 무작정 밖으로 나왔다. 유모차를 끌고 동네를 다녔다. 현숙을 알아본 이웃들이 말을 걸었다.“아휴, 소윤 엄마 괜찮아요?“ ”소윤 아빠는 잘 보내드렸어요?”예상했던 질문이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 현숙은 답했다.“걱정해 주셔서 감사해요. 이제 소윤이 씩씩하게 잘 키우려고요.”하루는 소윤을 안고 아파트 앞 놀이터에 앉아 있었다. 꼬마 아이들이 다가와 현숙에게 말을 걸었다.“아줌마, 여기 사는 소방관 아저씨가 죽었다는데 혹시 아줌마도 얘기 들으셨어요?”‘아, 이건 예상하지 못했다.’잠시 머리가 멍해졌다. 현숙은 작게 숨을 들이쉰 뒤 말했다.“어어, 그래 알아. 나도 그 얘기 들은 것 같아.”현숙이 씩씩하게 다니려 해도, 누군가는 뒤에서 쑥덕거렸다.“남편 보낸 지 얼마나 됐다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네.” “연금, 보상금 받았으니 이제 시댁이랑은 인연 끊는 거 아냐?”시댁 식구들도 처음엔 그녀를 조심스러워했다. 그럴 때마다 현숙은 “소윤이 이 집 아이예요. 손주고 조카예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속으로는 ‘내 딸도 이 집 핏줄이야’라고 되뇌었다. 소윤에겐 아빠가 없다는 상처 외에 다른 큰 흠이나 구김이 없으면 했다. 그래서 현숙은 승민이 세상을 떠나기 전보다 더 자주 시댁에 들렀다.가끔 우울한 감정이 치밀어 올라오면 술이 생각났다. 그렇다고 외식을 하거나 밖에서 술을 마실 수는 없었다. 누군가가 그 모습을 보고 “남편 떠나보내고도 잘 지낸다”고, “먹고살 만한가 보다”라고 손가락질을 할 것 같았다. 소윤과 둘이 있는 집에서 술을 마시는 건 더더욱 싫었다. 그래서 현숙은 술이 생각날 때마다 시어머니를 찾았다.“어머님, 막걸리 한잔만 같이해 주시면 안 될까요?”남편을 잃고 시어머니에게 술을 권하는 며느리라니. 현숙은 스스로 생각해도 철이 없다고 느꼈다. 그렇지만 그게 현숙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떠나간 남편이 떠오르고, 소윤을 키우며 아등바등 버텨내는 삶에서 잠시나마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구멍이었다. 복잡한 며느리의 마음을 알아챈 시어머니는 현숙의 부탁에 응했다. 둘은 그렇게 종종 막걸리를 마셨다.평소 이런저런 생각으로 밤잠을 설쳤던 현숙도 술 몇 모금 마시다 보면 금세 잠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아침이 밝아오면, 현숙은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몸과 마음이 힘들어도, 소윤이 앞에선 절대 약한 모습이나 우는 얼굴은 보이지 않을 거야. 단단하게 살아갈 거야. 슬픔에 빠진 채로 지낼 수 없어. 보란 듯이 잘 살 거야.’외면했던 회색빛 삶플라워카페에 앉아 있는 현숙의 뒤로는 색색의 꽃들이 놓여 있었다. 빨간 카네이션과 노란 튤립에 분홍 카네이션까지.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을 앞두고 있던 5월 4일이라 많은 손님이 꽃을 사러 왔다. 꽃이 심긴 곳을 등지고 앉은 현숙은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6년 전 이야기를 풀어내던 현숙은 잠시 슬픈 눈을 보이다가 금세 웃어 보이며 아무렇지 않은 듯이 대화를 이어갔다.“소윤 아빠가 떠나고… 한 2년간 그랬네요. 괜찮은 척, 발버둥을 쳤어요. 사실 우리 집 벽지, 그리고 내 방의 천장. 저를 둘러싼 모든 공간은 온통 회색빛으로만 보였거든요. 슬픔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 거죠.”현숙이 텅 빈 유리잔을 조심스럽게 매만지며 회색빛 시절의 이야기를 꺼내놓기 시작했다.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은 2020년 ‘히어로콘텐츠팀’을 런칭하며 저널리즘의 가치와 디지털 기술을 융합한 차별화된 보도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디 오리지널’은 디지털 공간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참신한 기사를 모은 사이트입니다. QR코드를 스캔하면 순직 소방관·경찰·군인들이 세상에 남기고 간 물건들을 모은 특별한 추모 공간, ‘그들은 가족이었습니다(https://original.donga.com/2022/hero-memorial)’ 기사로 이동하실 수 있습니다.히어로콘텐츠팀▽팀장 : 지민구 기자 warum@donga.com▽기사 취재 : 김예윤 이소정 이기욱 기자▽프로젝트 기획 : 위은지 기자▽사진 취재 : 홍진환 송은석 기자▽편집 : 이승건 기자▽그래픽 : 김충민 기자▽사이트 개발 : 임상아 뉴스룸 디벨로퍼 신성일 인턴▽사이트 디자인 : 김소연 인턴히어로콘텐츠팀지민구 기자 warum@donga.com김예윤 기자 yeah@donga.com이소정 기자 sojee@donga.com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산화(散花). 어떤 대상이나 목적을 위하여 목숨을 바침.소방관 경찰관 군인 등 제복 공무원이 국가와 국민을 위해 몸을 던졌을 때 우리는 ‘산화했다’고 표현한다. 그리고 산화한 이들을 ‘영웅’으로 추앙한다.떠나간 영웅을 기리고 남겨진 가족을 보듬기 위해 우리는 어떤 노력을 했는가.순직 경찰관의 아내 알마 재닛 모야.순직 소방관의 아내 박현숙.이들의 시선을 따라 미국과 한국의 서로 다른 추모의 모습을 관찰했다.검은 민소매 원피스를 입은 알마 재닛 모야가 손에 쥔 종이와 눈앞의 벽을 번갈아 봤다. “여보, 어디 있어? 얼른 나와야지.” 바람이 가볍게 불었다. 벽에 새겨진 이름들 위로 나뭇잎 그림자가 일렁였다. 손가락으로 한 줄 한 줄 훑어 내려가던 알마의 눈이 한곳에 멈췄다. 가장 아랫줄에 새겨진 ‘헥터 모야’. 원피스 자락을 가다듬으며 쪼그려 앉은 그녀가 남편의 이름을 쓰다듬었다. 미국 순직 경찰 추모 행사 ‘폴리스위크’ 나흘째인 5월 15일. 많은 사람이 워싱턴 한가운데 추모의 벽(Memorial Wall)에서 가족의 이름을 찾고 있었다.○ 남겨진 사람들의 곁미 뉴저지주 뉴어크시 경찰관 헥터는 지난해 1월 알마 곁을 떠났다. 코로나19가 무섭게 퍼질 때였다. 지역을 순찰하며 많은 시민을 만나던 남편은 바이러스를 피하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이었던 두 딸과 아내를 두고 눈을 감았다. 56세가 되던 해였다. 남편의 이름을 한참 어루만지던 알마가 휴대전화를 꺼냈다. 사진 속 남편은 제복을 입은 채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한 살 아래 남편은 장난치는 것을 좋아했다. “여보, 여전히 너무 귀엽네.” 사진첩을 뒤적거리던 알마의 손가락이 한 사진에서 멈췄다. 헥터와 함께 사진에 담겨 있는 한 동료의 얼굴. 추모의 벽에서 그녀와 함께 헥터를 찾던 경찰관, 로버트 무어였다. 사진첩을 넘길 때마다 로버트와 헥터가 함께한 사진이 몇 장씩 이어졌다. “로버트, 당신은 늘 헥터와 함께 있었네요.” 그녀가 웃으며 로버트에게 말을 건넸다. 곁에 선 로버트가 말없이 미소 지었다. 알마는 사진 속 남편의 얼굴을 내려다봤다. 두 사람이 무척 닮았다고 알마는 생각했다. “남편과 친했던 동료랑 있으니 마음이 조금 놓여요. 당신이 아니었다면 폴리스위크에 올 용기도 내지 못했을 거예요.” 몸을 일으킨 알마가 찬찬히 걸음을 옮겼다. 곡선으로 이어진 회색 추모벽에는 순직 경찰관 2만3000여 명의 이름이 빼곡히 새겨져 있었다. 이름 위아래로는 언젠가 찍었을 가족사진과 손편지들이 코팅돼 붙어 있었다. 로버트는 그녀와 걸음을 맞추며 곁을 지켰다. 사흘 전 로널드 레이건 공항에 도착한 알마는 마중 나온 이를 보고 반가움을 감추지 않았다. 낯선 공항에 낯익은 얼굴. 알마 가족과 종종 저녁을 함께했던 남편의 동료 로버트였다. 남편을 잃고 워싱턴에 오게 된 자신의 마음을 가장 잘 이해할 사람이었다. 로버트는 순직 경찰 추모 행사 동안 알마를 에스코트하는 임무를 받았다. 뉴어크시 경찰은 헥터와 절친했던 동료 로버트가 6일 동안 알마 옆을 지켜주도록 했다. 경찰 바이크 60대 에스코트… 함께 모여 영웅 기억하는 美2022년 5월 워싱턴, ‘내셔널 폴리스 위크’폴리스 위크 행사를 주관하는 순직 경찰관 지원 단체 ‘COPS(Concerns of Police Survivors)’는 각 지역 경찰서와 협조해 유가족을 에스코트할 경찰관을 정한다.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것은 고인과의 인연이나 관계다. 유가족들이 같이 다닐 경찰관을 직접 고를 수도 있다. 알마는 자신의 캐리어를 대신 끌어주는 로버트를 따라 유가족 전용 게이트로 향했다. 공항 밖에는 대형 버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유가족들이 모두 올라타고 버스가 출발하자 앞뒤로 60여 대의 경찰 바이크가 호위하기 시작했다. 빨간빛과 파란빛에 둘러싸인 유가족 버스가 지나가자 길거리의 사람들은 발걸음을 멈추고 손을 흔들었다. 목적지는 워싱턴 외곽의 힐턴 호텔. 알마를 포함한 순직 경찰관의 가족들이 폴리스위크 기간 묵을 장소였다.○ 6년 만에 처음 참석한 추모식박현숙은 전화를 받고 망설였다. 태백소방서에서 연락이 온 건 추모식 열흘 전. 현숙은 6년 전 남편이 떠난 후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진행되는 순직 소방관 추모식에 한 번도 가지 않았다. 평일 낮에 열리는 추모식. 멀기도 했지만 어린 딸을 데리고 참석할 엄두가 안 났다. 추모식은 현충일을 사흘 앞둔 금요일 오전 11시였다. 올해는 유가족 오찬간담회도 있을 예정이라고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아 그녀도 추모식에 참석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현숙은 시어머니에게 딸아이를 맡기고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강원 원주에서 현충원까진 2시간 조금 넘게 걸렸다. 행사 30분 전 소방관 묘역에 도착하자 정복을 입은 소방관 20여 명이 추모 행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소방서별로 유가족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 3, 4명씩이 행사에 참석했다. 현숙과 친분이 있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현숙은 홀로 남편 묘비 앞에 섰다. ‘지방소방위 허승민.’ 현충원에 올 때까진 괜찮았다. 묘비에 새겨진 남편의 이름을 보자 눈시울이 금세 붉어졌다. 그녀는 가방에서 조용히 물티슈를 꺼내 묘비 겉면을 닦았다. 먼지와 꽃가루가 새까맣게 묻어 나왔다. 새 물티슈를 꺼내 닦은 곳을 또 닦았다. 정복을 입은 소방관 4명이 다가와 현숙과 눈을 마주쳤다. 태백소방서 직원들이었다. 이들은 2명씩 현숙의 왼쪽과 오른쪽에 섰다. 낯선 공기와 침묵이 이들을 감쌌다. 한 직원이 먼저 입을 뗐다. “제수씨, 이쪽으로 더 가까이….” “여기, 잠깐 와서 사진 좀 찍어줘.” 상급자가 지시하자 직원 한 명이 왼쪽 대각선에 섰다. 그가 휴대전화를 들어 올리고 몇 발자국 뒤로 움직였다. 묘비 앞에 선 현숙과 직원들이 한 프레임에 들어왔다. “일동 차렷, 묵념.” 찰칵, 찰칵, 찰칵. 현숙과 직원들이 고개를 숙이자 촬영음이 계속 이어졌다. 어색한 분위기를 견디다 못한 현숙이 먼저 말을 꺼냈다. “현충원에 올 때마다 소방관 묘역에 묘비가 늘어나는 것 같아요.” “참, 어떻게 드릴 말씀이….” 그때 묘역 뒤편에서 마이크를 든 강원소방본부 직원이 안내 방송을 시작했다. “이제 곧 순직 소방관 추모식을 진행할 예정이니 각 소방서 직원들은 분향단 앞으로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현숙과 나란히 서 있던 직원들이 한 명씩 흩어져 분향단 앞으로 향했다. 홀로 남겨진 현숙이 승민의 묘비를 응시하다 천천히 뒤편으로 걸음을 옮겼다.○ 떠나간 이의 이름을 부르다석양에 하늘이 분홍빛으로 물들었다. 유가족들이 경찰 추모 주간의 상징인 붉은 장미를 들고 워싱턴 국회의사당 앞 내셔널몰 안으로 들어왔다. 알마는 로버트와 팔짱을 끼고 입장했다. 제복 차림의 경찰들은 팔을 내밀고 길을 안내했다. 어느새 짙은 어둠이 찾아왔다. 단상 위에 파란 옷을 입은 여성이 올랐다. COPS의 회장이었다. “제 아들은 근무 중 총격을 당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의 이야기에 모두가 숨을 죽였다. “이곳에 처음 왔을 때가 생각나네요. 캄캄한 밤하늘은 제 안의 어둠 같았고, 밝은 촛불은 아들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각자의 아픔이 담긴 촛불이 함께 모여 어두운 밤을 밝혔죠.” 연설이 끝날 때쯤 한 직원이 회장에게 다가가 손을 잡았다. 연단 위 두 사람이 맞잡은 손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그녀가 말을 이어갔다. “왼손을 들어 옆 사람의 손을 잡아 보세요.” 그녀가 주변을 둘러봤다. 다들 눈치만 볼 뿐 선뜻 움직이지 않았다. “처음 보는 사람인 거 알아요. 괜찮아요. 당신한테 필요한 일이에요.” 희미한 웃음소리가 퍼졌다. 쭈뼛쭈뼛하던 사람들이 서로 손을 잡기 시작했다. 알마도 살며시 손을 내밀어 옆 사람의 손을 잡았다. “앨라배마주입니다. 제이슨 린 바이스, 리처드 웬들 험프리….” 지난해 순직한 경찰관 이름이 호명되기 시작했다. 뉴저지주에서 22년간 경찰로 근무했던 알마 남편의 이름은 한참 뒤에나 나올 듯했다. 그래도 그녀는 떠난 모든 이들의 이름을 귀 기울여 들었다. 30분쯤 지났을 무렵. 짧은 종이 울리더니 뉴저지주 차례임을 알렸다. 알마와 주변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뉴저지주입니다. 에드워드 C 재먼드론, 매슈 D 러주카스, 헥터 모야.” 알마가 그토록 기다리던 이름이 내셔널몰에 울려 퍼졌다. 그녀의 뺨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팸플릿에 적힌 명단을 짚어 내려가던 주변 사람들도 헥터의 이름을 바라보고 있었다. 드디어 619명의 경찰관 이름이 모두 호명됐다. 65분이 걸렸다. 부슬비는 잦아들었다. 그때 단상에서부터 촛불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앞에서 뒤로, 옆에서 옆으로, 사람을 타고 촛불이 이어졌다. 이렇게 이어진 노란 불빛이 어둠에 휩싸였던 내셔널몰을 밝혔다. 수천 개의 촛불이 떠오르자 사회자가 단상에 올라 마지막으로 외쳤다. “오늘 밤 우리가 함께 부른 이들의 이름과 이야기, 기억은 언제나 밝게 타오를 겁니다.” 다른 이의 어깨에 기대어 눈물 흘리는 사람. 처음 보는 사람을 끌어안고 다독이는 사람. 조용히 손을 맞잡은 사람. 알마는 더는 그들이 낯설지 않았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들이 지금 어떤 마음인지.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사람들로부터 받은 깊은 위로와 공감. 알마는 이 감정을 평생 잊을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사진 좀 찍어줘… 일동 묵념”, 또다시 홀로 남겨지는 한국2022년 6월 3일 대전현충원, 강원소방본부 추모식○ 놓쳐버린 영웅의 이름“추모 행사는 국민의례, 소방인에 대한 묵념, 헌화 및 분향, 참배 등의 순서로 진행하겠습니다.” 현숙을 포함한 순직 소방관 가족 9명은 안내 방송에 따라 현충원 소방관 묘역 분향단 앞에 모였다. 강한 햇볕에 현숙의 이마에는 땀이 맺혔다. 손등으로 땀을 닦아낸 현숙이 옆을 바라봤다. 같은 강원 지역에서 순직 사고를 경험해 추모 행사에서 종종 만나 낯이 익은 사람들. 5년 전 강릉 석란정 화재 당시 순직한 이영욱 소방경의 아내 이연숙, 이호현 소방교의 아버지 이광수였다. 유가족들은 사회자의 진행에 따라 하얀 국화를 올리고, 향을 피웠다. “2016년 5월 태백 강풍 현장 긴급 구조 활동 중 순직하신 고 허승민 대원의 유가족께서 헌화하시고 분향하시겠습니다.” 마지막 차례였던 현숙의 순서가 끝났다. 사회자는 다음 식순을 안내하려 했다. 그때 소방본부 직원이 사회자에게 다가가 급히 속삭였다. “한 분을 빼고 넘어가셨어요.” 대기 장소엔 광수가 홀로 서 있었다. 다른 가족들이 모두 헌화와 분향을 마친 상태에서 광수는 이름이 불리기만 기다렸다. 짧은 정적이 흘렀다.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사회자가 광수와 순직한 그의 아들을 호명했다. 광수가 분향단에 흰 국화 한 송이를 놓았다. 표정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그저 손을 쥐었다 펴길 반복했다. 한동안 아무 말 없이 광수는 먼 허공을 바라봤다. “이제부터 유가족과 참석하신 직원들께서 자율적으로 묘역을 참배하시면 되겠습니다.” 소방본부의 추모식이 모두 끝났다. 13분이 걸렸다. 한자리에 모였던 순직 소방관 가족들도 묘비 앞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현숙은 다시 남편의 묘비 앞에 섰다. 그녀의 곁으로 조금 전에 만났던 직원들이 주춤주춤 다가왔다. 날씨가 맑다는 얘기가 오고 간 뒤 더 이상 대화는 이어지지 않았다. 현숙이 먼저 입을 뗐다. “옛날에 사고 났을 때는… 남은 가족들만 힘든 줄 알았거든요. 이제는 아, 같이 일하셨던 분들도 참 힘드셨겠다… 그런 생각이 들어요.” 현숙의 이야기를 들은 직원 중 한 명이 눈을 꾹 감았다 떴다. “가족분들이 제일 힘드시죠. 저희야 직장이고, 직업이고 하니까….” 이 말을 끝으로 대화는 끊겼다. 현숙은 장갑을 낀 손을 만지작거렸다. 휴대전화 벨소리가 정적을 깼다.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던 직원은 전화기를 들고 멀찍이 걸어갔다. 하얀 면장갑을 낀 현숙은 묘비 앞 투명 아크릴 상자에 쌓인 먼지를 닦아냈다. 곧이어 소방서별로 모여 달라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추모식에 참석한 관용차의 주유비 처리 절차 등을 안내했다. 현숙은 연숙, 광수 등 다른 가족들과 묘역 한쪽에 있었다. 그 앞으로 복지 업무를 담당한다는 소방본부 직원이 다가왔다. 직원은 현숙에게 말을 건네려다가 묘역을 힐끗 쳐다봤다. 현숙에게 인사를 하려고 했는데, 뭔가 기억이 나지 않는 듯했다. “태백소방서 허….” 직원이 잠시 말을 더듬자 현숙이 나지막이 남편의 이름을 알려줬다. “허승민요.” “아, 네네. 허승민 소방위님.”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순직 소방관이 한두 명도 아닌데 어떻게 일일이 기억하겠나. 직원은 “언제든 불편한 것이 있으면 소방본부 측으로 연락을 달라”고 했다. 현숙은 재차 고개를 끄덕였다.○ 웃을 수 없는 가정의 달소방본부 직원들의 안내에 따라 현숙은 근처 쌈밥집으로 이동했다. 직원들이 앉는 테이블이 있었고, 안면이 있는 유가족들끼리 다른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조금 뒤 다른 단체 손님들이 몰려들자 식당은 금세 시끌벅적해졌다. 어색한 분위기도 소음에 묻혀졌다. 조용히 밥술을 뜨던 현숙이 식사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직원들도 옷매무시를 급히 정리하고는 밖으로 나왔다. “날씨도 더운데 고생 많으셨습니다.” 직원들이 조용히 허리를 굽혔다.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서로에게 건넬 수 있는 최선의 인사였다고, 현숙은 생각했다. 모두가 뿔뿔이 흩어지자 현숙과 연숙은 근처 카페로 이동했다. 현숙이 먼저 말을 뗐다. “소방본부에서 오찬간담회라고 하길래 이런저런 이야기라도 좀 나눌 줄 알았는데요.” “아니, 내 말이. 이렇게 따로 앉아서 밥만 먹는 자리였으면 가지도 않았을 거야.” 연숙이 수긍했다. “모여서 같이 한다는 게…” “과자랑 물 나눠 준다는 거였어.” 말을 주고받던 현숙과 연숙의 눈이 마주쳤다. 두 사람 입에서 픽,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현숙과 연숙은 이날 처음으로 소리 내 웃었다. 현숙은 고개를 돌려 카페 밖 풍경을 바라봤다. 구름 한 점 없이 푸르른 하늘이었다. 남편의 사고가 난 5월 4일. 그가 현숙과 딸의 곁을 영영 떠난 5월 12일. 그리고 6월 6일 현충일까지. 날이 화창해지는 이맘때가 되면 마음 한편에 자리를 잡은 그늘도 짙어졌다. 어린이날이면 아빠 엄마와 함께 놀러 다니는 아이들이 눈에 띄었고, 어버이날에는 딸아이가 유치원에서 만들어 온 카네이션이 신경 쓰였다. 매년 찾아오는 5월과 6월은 그녀의 마음을 복잡하게 했다. 이렇게 또 가정의 달이 지나갔다. 원주에서 대전현충원까지 왕복 4시간이 넘는 거리. 남편이 잠든 현충원 묘역에 머문 시간은 30분도 채 되지 않았지만, 더 이상 이곳에 머물 이유는 없었다. 잠시 상념에 빠져 있던 현숙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은 2020년 ‘히어로콘텐츠팀’을 런칭하며 저널리즘의 가치와 디지털 기술을 융합한 차별화된 보도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디 오리지널’은 디지털 공간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참신한 기사를 모은 사이트입니다. QR코드를 스캔하면 순직 소방관·경찰·군인들이 세상에 남기고 간 물건들을 모은 특별한 추모 공간, ‘그들은 가족이었습니다(’ 기사로 이동하실 수 있습니다.히어로콘텐츠팀▽팀장 : 지민구 기자 warum@donga.com▽기사 취재 : 김예윤 이소정 이기욱 기자▽프로젝트 기획 : 위은지 기자▽사진 취재 : 홍진환 기자▽편집 : 이승건 기자▽그래픽 : 김충민 기자▽사이트 개발 : 임상아 뉴스룸 디벨로퍼 신성일 인턴▽사이트 디자인 : 김소연 인턴히어로콘텐츠팀지민구 기자 warum@donga.com김예윤 기자 yeah@donga.com이소정 기자 sojee@donga.com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산화(散花). 어떤 대상이나 목적을 위하여 목숨을 바침.소방관 경찰관 군인 등 제복 공무원이 국가와 국민을 위해 몸을 던졌을 때 우리는 ‘산화했다’고 표현한다. 그리고 산화한 이들을 ‘영웅’으로 추앙한다.떠나간 영웅을 기리고 남겨진 가족을 보듬기 위해 우리는 어떤 노력을 했는가.순직 경찰관의 아내 알마 재닛 모야.순직 소방관의 아내 박현숙.이들의 시선을 따라 미국과 한국의 서로 다른 추모의 모습을 관찰했다.검은 민소매 원피스를 입은 알마 재닛 모야가 손에 쥔 종이와 눈앞의 벽을 번갈아 봤다. “여보, 어디 있어? 얼른 나와야지.”바람이 가볍게 불었다. 벽에 새겨진 이름들 위로 나뭇잎 그림자가 일렁였다. 손가락으로 한 줄 한 줄 훑어 내려가던 알마의 눈이 한곳에 멈췄다. 가장 아랫줄에 새겨진 ‘헥터 모야’. 원피스 자락을 가다듬으며 쪼그려 앉은 그녀가 남편의 이름을 쓰다듬었다.미국 순직 경찰 추모 행사 ‘폴리스위크’ 나흘째인 5월 15일. 많은 사람들이 워싱턴 한가운데 추모의 벽(Memorial Wall)에서 가족의 이름을 찾고 있었다.●남겨진 사람들의 곁미국 뉴저지주 뉴어크시 경찰관 헥터는 지난해 1월 알마 곁을 떠났다. 코로나19가 무섭게 퍼질 때였다. 지역을 순찰하며 사람들을 마주하던 남편은 바이러스를 피하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이었던 두 딸과 아내를 두고 눈을 감았다. 56세가 되던 해였다.남편의 이름을 한참 어루만지던 알마가 휴대전화를 꺼냈다. 사진 속 남편은 제복을 입은 채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한 살 아래 남편은 장난치는 것을 좋아했다.“여보, 여전히 너무 귀엽네.”사진첩을 뒤적거리던 알마의 손가락이 한 사진에서 멈췄다. 헥터와 함께 사진에 담겨있는 한 동료의 얼굴. 추모의 벽에서 그녀와 함께 헥터를 찾던 경찰관, 로버트 무어였다. 사진첩을 넘길 때마다 로버트와 헥터가 함께한 사진이 몇 장씩 이어졌다.“로버트, 당신은 늘 헥터와 함께 있었네요.”그녀가 웃으며 로버트에게 말을 건넸다. 곁에 선 로버트가 말없이 미소 지었다. 알마는 사진 속 남편의 얼굴을 내려다봤다. 두 사람이 무척 닮았다고 알마는 생각했다.“남편이 친했던 동료랑 있으니 마음이 조금 놓여요. 당신이 아니었다면 폴리스위크에 올 용기도 내지 못했을 거예요.”몸을 일으킨 알마가 찬찬히 걸음을 옮겼다. 곡선으로 이어진 회색 추모벽에는 순직 경찰관 2만3000여 명의 이름이 빼곡히 새겨져 있었다. 이름 위아래로는 언젠가 찍었을 가족사진과 손편지들이 코팅돼 붙어 있었다. 로버트는 그녀와 걸음을 맞추며 곁을 지켰다.사흘 전 로널드 레이건 공항에 도착한 알마는 마중 나온 이를 보고 반가움을 감추지 않았다. 낯선 공항에 낯익은 얼굴. 알마 가족과 종종 저녁을 함께했던 남편의 동료 로버트였다. 남편을 잃고 워싱턴에 오게 된 자신의 마음을 가장 잘 이해할 사람이었다.로버트는 순직 경찰 추모 행사 동안 알마를 에스코트하는 임무를 받았다. 뉴어크시 경찰은 헥터와 가장 절친했던 동료 로버트가 6일 동안 알마 옆을 지켜주도록 했다. 폴리스위크 행사를 주관하는 순직 경찰관 지원 단체 ‘COPS(Concerns of Police Survivors)’는 각 지역 경찰서와 협조해 유가족을 에스코트할 경찰관을 정한다.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것은 고인과의 인연이나 관계다. 유가족들이 같이 다닐 경찰관을 직접 고를 수도 있다.알마는 자신의 캐리어를 대신 끌어주는 로버트를 따라 유가족 전용 게이트로 향했다. 공항 밖에는 대형 버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유가족들이 모두 올라타고 버스가 출발하자 앞뒤로 60여 대의 경찰 바이크가 호위하기 시작했다. 빨간빛과 파란빛에 둘러싸인 유가족 버스가 지나가자 길거리의 사람들은 발걸음을 멈추고 손을 흔들었다. 목적지는 워싱턴 외곽의 힐턴호텔. 알마를 포함한 순직 경찰관의 가족들이 폴리스위크 기간 묵을 장소였다.박현숙은 전화를 받고 망설였다. 태백소방서에서 연락이 온 건 추모식 열흘 전. 현숙은 6년 전 남편이 떠난 후 대전현충원에서 진행되는 순직 소방관 추모식에 한 번도 가지 않았다. 평일 낮에 열리는 추모식. 멀기도 했지만 어린 딸을 데리고 참석할 엄두가 안 났다.추모식은 현충일을 사흘 앞둔 금요일 오전 11시였다. 올해는 유가족 오찬간담회도 있을 예정이라고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아 그녀도 추모식에 참석하기로 마음을 먹었다.현숙은 시어머니에게 딸아이를 맡기고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강원 원주에서 현충원까진 2시간 조금 넘게 걸렸다. 행사 30분 전 소방관 묘역에 도착하자 정복을 입은 소방관 20여 명이 추모 행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소방서별로 유가족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 3, 4명씩 행사에 참석했다. 현숙과 친분이 있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현숙은 홀로 남편 묘비 앞에 섰다.‘지방소방위 허승민.’현충원에 올 때까진 괜찮았다. 묘비에 새겨진 남편의 이름을 보자 눈시울이 금세 붉어졌다. 그녀는 가방에서 조용히 물티슈를 꺼내 묘비 겉면을 닦았다. 먼지와 꽃가루가 새까맣게 묻어 나왔다. 새 물티슈를 꺼내 닦은 곳을 또 닦았다.정복을 입은 소방관 4명이 다가와 현숙과 눈을 마주쳤다. 태백소방서 직원들이었다. 이들은 2명씩 현숙의 왼쪽과 오른쪽에 섰다. 낯선 공기와 침묵이 이들을 감쌌다. 한 직원이 먼저 입을 뗐다.“제수씨, 이쪽으로 더 가까이….”“여기, 잠깐 와서 사진 좀 찍어줘.”상급자가 지시하자 직원 한 명이 왼쪽 대각선에 섰다. 그가 휴대전화를 들어 올리고 몇 발자국 뒤로 움직였다. 묘비 앞에 선 현숙과 직원들이 한 프레임에 들어왔다.“일동 차렷, 묵념.”찰칵, 찰칵, 찰칵. 현숙과 직원들이 고개를 숙이자 촬영음이 계속 이어졌다. 어색한 분위기를 견디다 못한 현숙이 먼저 말을 꺼냈다.“현충원에 올 때마다 소방관 묘역에 묘비가 늘어나는 것 같아요.”“참, 어떻게 드릴 말씀이….”그때 묘역 뒤편에서 마이크를 든 소방본부 직원이 안내 방송을 시작했다.“이제 곧 순직 소방관 추모식을 진행할 예정이니 각 소방서 직원들은 분향단 앞으로 모여주시기 바랍니다.”현숙과 나란히 서 있던 직원들이 한 명씩 흩어져 분향단 앞으로 향했다. 홀로 남겨진 현숙이 승민의 묘비를 응시하다 천천히 뒤편으로 걸음을 옮겼다.●떠나간 이의 이름을 부르다석양에 하늘이 분홍빛으로 물들었다. 유가족들이 경찰 추모 주간의 상징인 붉은 장미를 들고 워싱턴 국회의사당 앞 내셔널몰 안으로 들어왔다. 알마는 로버트와 팔짱을 끼고 입장했다. 제복 차림의 경찰들은 팔을 내밀고 길을 안내했다.어느새 짙은 어둠이 찾아왔다. 단상 위에 파란 옷을 입은 여성이 올랐다. COPS의 회장이었다.“제 아들은 근무 중 총격을 당해 세상을 떠났습니다.”그녀의 이야기에 모두가 숨을 죽였다.“이곳에 처음 왔을 때가 생각나네요. 캄캄한 밤하늘은 제 안의 어둠 같았고, 밝은 촛불은 아들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각자의 아픔이 담긴 촛불이 함께 모여 어두운 밤을 밝혔죠.”연설이 끝날 때쯤 한 직원이 회장에게 다가가 손을 잡았다. 연단 위 두 사람이 맞잡은 손을 머리 위로 들어올렸다. 그녀가 말을 이어갔다.“왼손을 들어 옆 사람의 손을 잡아보세요.”그녀가 주변을 둘러봤다. 다들 눈치만 볼 뿐 선뜻 움직이지 않았다.“처음 보는 사람인 거 알아요. 괜찮아요. 당신한테 필요한 일이에요.”희미한 웃음소리가 퍼졌다. 쭈뼛쭈뼛하던 사람들이 서로 손을 잡기 시작했다. 알마도 살며시 손을 내밀어 옆 사람의 손을 잡았다.“앨라배마주입니다. 제이슨 린 바이스, 리처드 웬들 험프리….”지난해 순직한 경찰관 이름이 호명되기 시작했다. 뉴저지주에서 22년간 경찰로 근무했던 알마 남편의 이름은 한참 뒤에나 나올 듯했다. 그래도 그녀는 떠난 모든 이들의 이름을 귀 기울여 들었다. 30분쯤 지났을 무렵. 짧은 종이 울리더니 뉴저지주 차례임을 알렸다. 알마와 주변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섰다.“뉴저지주입니다. 에드워드 C 재먼드론, 매슈 D 러주카스, 헥터 모야.”알마가 그토록 기다리던 이름이 내셔널몰에 울려 퍼졌다. 그녀의 뺨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팸플릿에 적힌 명단을 짚어 내려가던 주변 사람들도 헥터의 이름을 바라보고 있었다.드디어 619명의 경찰관 이름이 모두 호명됐다. 65분이 걸렸다. 부슬비는 잦아들었다. 그때 단상에서부터 촛불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앞에서 뒤로, 옆에서 옆으로, 사람을 타고 촛불이 이어졌다. 이렇게 이어진 노란 불빛이 어둠에 휩싸였던 내셔널몰을 밝혔다. 수천 개의 촛불이 떠오르자 사회자가 단상에 올라 마지막으로 외쳤다.“오늘 밤 우리가 함께 부른 이들의 이름과 이야기, 기억은 언제나 밝게 타오를 겁니다.”다른 이의 어깨에 기대어 눈물 흘리는 사람. 처음 보는 사람을 끌어안고 다독이는 사람. 조용히 손을 맞잡은 사람. 알마는 더는 그들이 낯설지 않았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들이 지금 어떤 마음인지.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사람들로부터 받은 깊은 위로와 공감. 알마는 이 감정을 평생 잊을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추모 행사는 국민의례, 소방인에 대한 묵념, 헌화 및 분향, 참배 등의 순서로 진행하겠습니다.”현숙을 포함한 순직 소방관 가족 9명은 안내 방송에 따라 현충원 소방관 묘역 분향단 앞에 모였다. 강한 햇볕에 현숙의 이마에는 땀이 맺혔다. 손등으로 땀을 닦아낸 현숙이 옆을 바라봤다. 같은 강원 지역에서 순직 사고를 경험해 추모행사에서 종종 만나 낯이 익은 사람들. 5년 전 강릉 석란정 화재 당시 순직한 이영욱 소방경의 아내 이연숙, 이호현 소방교의 아버지 이광수였다.유가족들은 사회자의 진행에 따라 하얀 국화를 올리고, 향을 피웠다.“2016년 5월 태백 강풍 현장 긴급 구조 활동 중 순직하신 고 허승민 대원의 유가족께서 헌화하시고 분향하시겠습니다.”마지막 차례였던 현숙의 순서가 끝났다. 사회자는 다음 식순을 안내하려 했다. 그때 소방본부 직원이 사회자에게 다가가 급히 속삭였다.“한 분을 빼고 넘어가셨어요.”대기 장소엔 광수가 홀로 서 있었다. 다른 가족들이 모두 헌화와 분향을 마친 상태에서 광수는 이름이 불리기만 기다렸다. 짧은 정적이 흘렀다.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사회자가 광수와 순직한 그의 아들을 호명했다.광수가 분향단에 흰 국화 한 송이를 놓았다. 표정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그저 손을 쥐었다 펴길 반복했다. 한동안 아무 말 없이 광수는 먼 허공을 바라봤다.“이제부터 유가족과 참석하신 직원들께서 자율적으로 묘역을 참배하시면 되겠습니다.”소방본부의 추모식이 모두 끝났다. 13분이 걸렸다. 한자리에 모였던 순직 소방관 가족들도 묘비 앞으로 뿔뿔이 흩어졌다.현숙은 다시 남편의 묘비 앞에 섰다. 그녀의 곁으로 조금 전에 만났던 직원들이 주춤주춤 다가왔다. 날씨가 맑다는 얘기가 오고 간 뒤 더 이상 대화는 이어지지 않았다. 현숙이 먼저 입을 뗐다.“옛날에 사고 났을 때는… 남은 가족들만 힘든 줄 알았거든요. 이제는 아, 같이 일하셨던 분들도 참 힘드셨겠다… 그런 생각이 들어요.”현숙의 이야기를 들은 직원 중 한 명이 눈을 꾹 감았다 떴다.“가족분들이 제일 힘드시죠. 저희야 직장이고, 직업이고 하니까….”이 말을 끝으로 대화는 끊겼다. 현숙은 장갑을 낀 손을 만지작거렸다. 휴대전화 벨소리가 정적을 깼다.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던 직원은 전화기를 들고 멀찍이 걸어갔다. 하얀 면장갑을 낀 현숙은 묘비 앞 투명 아크릴 상자에 쌓인 먼지를 닦아냈다.곧이어 소방서별로 모여 달라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추모식에 참석한 관용차의 주유비 처리 절차 등을 안내했다.현숙은 연숙, 광수 등 다른 가족들과 묘역 한쪽에 있었다. 그 앞으로 복지 업무를 담당한다는 소방본부 직원이 다가왔다. 직원은 현숙에게 말을 건네려다가 묘역을 힐끗 쳐다봤다. 현숙에게 인사를 하려고 했는데, 뭔가 기억이 나지 않는 듯했다.“태백소방서 허….”직원이 잠시 말을 더듬자 현숙이 나지막이 남편의 이름을 알려줬다.“허승민요.”“아 네네. 허승민 소방위님.”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순직 소방관이 한두 명도 아닌데 어떻게 일일이 기억하겠나. 직원은 “언제든 불편한 것이 있으면 소방본부 측으로 연락을 달라”고 했다. 현숙은 재차 고개를 끄덕였다.●웃을 수 없는 가정의 달소방본부 직원들의 안내에 따라 현숙은 근처 쌈밥집으로 이동했다. 직원들이 앉는 테이블이 있었고, 안면이 있는 유가족들끼리 다른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조금 뒤 다른 단체 손님들이 몰려들자 식당은 금세 시끌벅적해졌다. 어색한 분위기도 소음에 묻혀졌다.조용히 밥술을 뜨던 현숙이 식사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직원들도 옷매무새를 급히 정리하고는 밖으로 나왔다.“날씨도 더운데 고생 많으셨습니다.”직원들이 조용히 허리를 굽혔다.“정말 고생 많으셨어요.”서로에게 건넬 수 있는 최선의 인사였다고, 현숙은 생각했다. 모두가 뿔뿔이 흩어지자 현숙과 연숙은 근처 카페로 이동했다. 현숙이 먼저 말을 뗐다.“소방본부에서 오찬 간담회라고 하길래 이런저런 이야기라도 좀 나눌 줄 알았는데요.”“아니, 내 말이. 이렇게 따로 앉아서 밥만 먹는 자리였으면 가지도 않았을 거야.”연숙이 수긍했다.“모여서 같이 한다는 게…”“과자랑 물 나눠준다는 거였어.”말을 주고받던 현숙과 연숙의 눈이 마주쳤다. 두 사람 입에서 픽, 웃음이 새어 나왔다.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현숙과 연숙은 이날 처음으로 소리 내 웃었다. 현숙은 고개를 돌려 카페 밖 풍경을 바라봤다. 구름 한 점 없이 푸르른 하늘이었다. 남편의 사고가 난 5월 4일. 그가 현숙과 딸의 곁을 영영 떠난 5월 12일. 그리고 6월 6일 현충일까지. 날이 화창해지는 이맘때가 되면 마음 한편에 자리를 잡은 그늘도 짙어졌다. 어린이날이면 아빠 엄마와 함께 놀러 다니는 아이들이 눈에 띄었고, 어버이날에는 딸아이가 유치원에서 만들어온 카네이션이 신경 쓰였다. 매년 찾아오는 5월과 6월은 그녀의 마음을 복잡하게 했다.이렇게 또 가정의 달이 지나갔다. 원주에서 대전 현충원까지 왕복 4시간이 넘는 거리. 남편이 잠든 현충원 묘역에 머문 시간은 30분도 채 되지 않았지만, 더 이상 이곳에 머물 이유는 없었다. 잠시 상념에 빠져 있던 현숙이 자리에서 일어났다.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은 2020년 ‘히어로콘텐츠팀’을 런칭하며 저널리즘의 가치와 디지털 기술을 융합한 차별화된 보도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디 오리지널’은 디지털 공간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참신한 기사를 모은 사이트입니다. QR코드를 스캔하면 순직 소방관·경찰·군인들이 세상에 남기고 간 물건들을 모은 특별한 추모 공간, ‘그들은 가족이었습니다(’ 기사로 이동하실 수 있습니다.히어로콘텐츠팀▽기사 취재 : 지민구 김예윤 이소정 이기욱 기자▽프로젝트 기획 : 위은지 기자▽사진 취재 : 홍진환 기자▽그래픽 : 김충민 기자▽사이트 개발 : 임상아 뉴스룸 디벨로퍼 신성일 인턴▽사이트 디자인 : 김소연 인턴지민구 기자 warum@donga.com김예윤 기자 yeah@donga.com이소정 기자 sojee@donga.com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긴급헌혈요청 #혈액절대부족’ 16일 기자의 휴대전화로 도착한 대한적십자사 문자메시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 확산에 따라 혈액이 부족해 수혈이 필요한 환자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코로나19 확산이 장기화하면서 혈액 부족이 만성화되고 있다. 인구 대비 헌혈자 수인 헌혈률은 2017년 이후 최근 5년 동안 5.7%에서 5.0%로 꾸준히 줄고 있다. 특히 최근엔 코로나19로 인해 사람들이 외출을 자제하는 데다 단체 헌혈도 줄었다. 혈액 보유량이 3일치 미만일 때 발령되는 ‘혈액 보유 주의경보’는 코로나19 확산 전인 2019년 5회 발령됐지만, 2020년엔 13회로 크게 늘었다. 혈액 관련 종사자들은 코로나19 상황이 나아진 이후에도 혈액 수급 불균형 문제가 계속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만성화된 혈액 수급 불균형 혈액 부족 상황이 만성화되는 건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저출산 고령화 문제가 밑바탕에 깔려 있다. 혈액 수요자 대부분은 50대 이상 고령자다. 50대 이상 적혈구제제 수혈자 수는 2015년 31만9000명에서 2019년 36만 명으로 늘었다. 50대 이상의 적혈구제제 수혈 건수 역시 같은 기간 149만 건에서 165만 건으로 증가했다. 반면 저출산 기조가 이어지면서 헌혈에 나서는 주요 연령대인 10대와 20대 인구는 2015년 1240만 명에서 2019년 1180만 명으로 줄었다. 혈액 수급의 불균형이 심화되는 것이다. 정부는 혈액 부족 상황을 관리하기 위해 지난해 9월 범정부 헌혈 장려 협의체인 ‘국가헌혈추진협의회’를 신설했다. 헌혈 참여 안내 문자를 발송하거나 ‘찾아가는 헌혈의 날’을 운영해 헌혈 참여 환경을 만들고 있다. 또 각 의료기관에 혈액수급 위기 단계별로 우선순위에 따라 수혈에 나서거나, 적정 재고량을 준수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세계 각국서 연구하는 인공혈액 사람의 헌혈을 대신할 수 있는 게 인공혈액이다. 인공혈액은 혈액 부족에 대응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헌혈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안전사고를 막을 수 있다. 또 기존 혈액에 비해 보존 기간이 길고 희귀혈액도 공급할 수 있어 헌혈 부족에 대처하는 대안으로 꼽힌다. 지금도 인간의 제대혈에서 조혈모세포를 채취해 적혈구로 분화시켜 인공 적혈구를 생산하는 방식으로 인공혈액을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적혈구 수가 한정돼 생산량에 한계가 있다. 동물세포 기반의 산소운반체(HBOC)나 화합물 기반 산소운반체(PBOC) 등 ‘혈액 대체제’ 관련 연구가 진행되고 있으나, 최근 학계에서 새로 주목하는 것은 줄기세포를 이용해 혈액의 구성성분인 적혈구와 혈소판 등을 인공적으로 만드는 ‘세포기반 인공혈액’ 기술이다. 이 기술은 기존 혈액 대체용제의 부작용을 줄이면서 수혈할 수 있는 기술로 꼽힌다. 미국, 일본, 영국 등 해외 주요 선진국은 인공혈액 기술 개발에 과감한 투자를 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기술 확보에서 더 나아가 임상시험에 진입하는 단계다. 미국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은 지난해 5월 인공혈액의 임상 적용과 대량 생산을 목표로 관련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일본은 2018년 세계 최초로 역분화줄기세포 유래 인공혈소판 개발에 성공했고, 영국 역시 지난해 국립혈액장기원과 국립보건연구소의 지원으로 세계 최초 인공적혈구 임상시험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 인공혈액 기술 통합개발 필요 국내에서도 일부 연구진이 적혈구 생산의 기초 기술을 확보했다. 세포 기반 인공혈액 기술 역시 어느 정도 역량을 확보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주로 개별 연구자들의 단발성 과제 위주로 연구가 이뤄져 이를 묶어줄 ‘통합 개발’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건복지부는 수혈용 인공혈액 실용화를 목표로 2023년부터 15년 동안 인공혈액 생산 기술 개발과 제조, 평가 등을 지원하는 단계별 사업을 계획하고 있다. 먼저 ‘인공혈액 생산·제조를 위한 공동 협력 연구 컨소시엄’을 만들어 기술개발과 제조, 규제 등을 동시에 진행하기로 했다. 복지부는 그 일환으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업통상자원부, 식품의약품안전처, 질병관리청 등과 함께 보건의료 연구개발(R&D) 다부처 공동사업을 추진한다고 14일 밝혔다. 여기에 의료계에선 코로나19 이후 국내 바이오산업의 장기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미국 국립보건원(NIH) 안에 있는 ‘의료고등연구계획국(ARPA-H)’과 같은 기관을 만들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곳은 민간기관이 도전하기 어렵거나 공익적 가치가 있는 의료 과제를 장기 연구하는 기관이다.김예윤 기자 yeah@donga.com}

13일 삼성이 18개 관계사들의 상반기 공개채용(공채)을 발표하면서 대기업의 채용 움직임에 취업준비생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수시채용으로 전환한 일부 기업들도 이달 중 상반기 채용을 진행 중이다. 각 대기업의 3월 채용 일정과 수시채용 대비를 위한 전문가들의 조언을 정리했다. ○삼성 LG 등 대기업, 3월 채용 시작 삼성은 삼성전자, 삼성물산, 삼성생명, 삼성바이오로직스, 제일기획, 호텔신라 등 18개 관계사들이 올해 상반기 공채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삼성은 재계 5대 그룹(삼성, 현대자동차, SK, LG, 롯데) 중 유일하게 정기공채 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21일까지 지원서를 받고 이후 5월 온라인 직무적성검사(GSAT), 6월 비대면 면접 등을 이어갈 예정이다. 공채를 폐지하고 수시채용으로 전환한 기업들도 이달 채용을 진행 중이다. LG는 올해부터 약 1만 명씩 3년간 3만여 명을 고용하겠다는 계획으로 주요 계열사들이 상반기 대졸 신입사원 채용 과정을 시작했다. LG전자는 사업본부별로 채용 연계형 인턴사원을 모집 중이며 LG디스플레이, LG에너지솔루션, LG유플러스 등도 신입사원을 모집 중이다. 현대차그룹도 현대차와 기아 각 직무별로 신입사원을 모집하고 있다. 롯데그룹과 포스코그룹 계열사들도 올 상반기 신입사원 채용을 진행 중이다. 계열사별 또는 직무별 수시채용으로 전환한 기업들의 경우 비슷한 시기에 채용을 시작하더라도 계열사나 직무별로 지원서 접수 마감 날짜가 다른 경우가 많아 각 채용 일정을 정확히 확인해야 한다. ○수시채용에서 더 중요해진 직무 이해도 수시채용은 해당 부서나 직무에서 필요한 인력을 그때그때 뽑는 방식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직무를 잘 이해하고 수행할 수 있는지를 중점적으로 평가한다. 채용전문면접관 자격과정을 운영하는 한국바른채용인증원이 지난해 12월 채용전문면접관 2급 이상 자격을 취득한 375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올해 채용 트렌드 1순위로 꼽힌 것은 ‘직무 중심(73%) 채용 강화’였다. 취업플랫폼 진학사 캐치가 지난해 103개 주요기업 자기소개서 항목 567건을 분석한 결과 직무 관련 지식과 경험을 묻는 질문이 44.8%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기도 했다. 취업정보사이트 인크루트 서미영 대표이사는 “수시 공채를 채용 방식으로 채택한 대기업이 3년 새 3배 가까이 늘었다. 언제든 공고가 날 수 있기 때문에 관심 있는 기업을 수시로 모니터링하면서 동시에 내가 이 직무에 적합한 인재임을 보여줄 수 있는 자격증이나 인턴십, 아르바이트 등 관련 경험을 전략적으로 갖춰두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AI 활용한 채용에 대비해야 수시채용 대비와 함께 인공지능(AI) 채용심사 준비도 취업준비생들의 관심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비대면 면접이 늘어나고 AI가 자기소개서를 분석하거나 역량 면접을 진행하는 경우가 늘기 때문이다. 지난해 SK, 롯데, CJ 등에서 AI 자기소개서 분석 툴을 활용했으며 현대백화점그룹 등은 면접에 AI를 활용 중이다. AI 채용심사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최근 취업준비생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AI 면접 후기나 ‘계속 웃고 있어야 한다’ ‘AI가 잘 인식할 수 있도록 또박또박 말해야 한다’ 등의 팁을 공유하는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취업준비생 손모 씨는 “면접은 정량화가 아니라 나를 보여주는 데 의미가 있는데 AI가 나를 얼마나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AI 면접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모의 AI 면접을 볼 수 있는 웹사이트나 애플리케이션(앱)을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관련 웹사이트나 앱에 영상을 촬영해 업로드하면 AI가 채용 추천지수나 호감지수, 소통능력 등을 분석한 결과를 제시해 이를 참고해 연습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AI 면접에서 얼굴 표정 등 감정을 컨트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진학사 캐치 김정현 소장은 “AI 면접은 뇌과학을 바탕으로 면접자의 시선, 목소리, 표정, 눈길 등을 인지해 감정을 파악하도록 설계돼 있다”며 “보통 평소 자기 모습을 녹화할 기회가 잘 없다 보니 AI 면접 때 더 당황하기 쉽다. 자신의 표정이나 자세, 목소리를 찍어 자기소개서에 작성한 이미지와 일치하도록 연습해보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김예윤 기자 yeah@donga.com}

2일 전국적으로 맑은 날씨가 이어지지만 내륙지방을 중심으로 낮과 밤의 일교차가 16도 이상 벌어진다. 큰 일교차에 따라 감기에 걸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기상청은 북서쪽에서 찬 공기가 남하하면서 이날 아침 최저기온이 전날보다 5도 이상 떨어진 영하 8도∼영상 2도가 될 것으로 1일 예보했다. 지역별로는 서울 영하 2도, 대전 영하 3도, 광주 영하 1도, 부산 2도 등이다. 반면 낮 기온은 포근하다. 서울 8도, 대전 11도, 광주 10도, 부산 13도 등 전국이 영상 6∼13도가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파주(영하 8도∼영상 8도), 연천(영하 7도∼영상 9도), 남양주(영하 7도∼영상 9도) 등 경기 북부지역은 일교차가 16도 이상으로 크게 벌어진다. 2일도 건조특보가 발효된 강원 동해안과 충북 남부, 전남 동부, 경상권을 비롯한 전국의 대기가 건조할 것으로 보인다. 1일 기압골의 영향으로 경북과 경남 남해안 등 일부 지역에 빗방울이 떨어졌지만 강수량이 1∼5mm 미만이라 특보 해제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 기상청은 2일 낮부터 3일 오전 강원 영동과 경상권에 순간풍속이 초속 15m 이상인 강풍이 불 것으로 예상돼 산불 예방에 특히 유의해야 한다고 밝혔다.김예윤 기자 yeah@donga.com}

2일 전국적으로 맑은 날씨가 이어지지만 내륙지방을 중심으로 낮과 밤의 일교차가 16도 이상 벌어진다. 큰 일교차에 따라 감기에 걸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기상청은 북서쪽에서 찬 공기가 남하하면서 이날 아침 최저기온이 전날보다 5도 이상 떨어진 영하 8도~영상 2도가 될 것으로 1일 예보했다. 지역별로는 서울 영하 2도, 대전 영하 3도, 광주 영하 1도, 부산 2도 등이다. 반면 낮 기온은 포근하다. 서울 8도, 대전 11도, 광주 10도, 부산 13도 등 전국이 영상 6~13도 사이가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파주(영하 8도~영상 8도), 연천(영하 7도~영상 9도), 남양주(영하 7도~영상 9도) 등 경기 북부 지역은 일교차가 16도 이상으로 크게 벌어지겠다. 2일도 건조특보가 발효된 강원 동해안과 충북 남부, 전남 동부, 경상권을 비롯한 전국의 대기가 건조할 것으로 보인다. 1일 기압골의 영향으로 경북과 경남 남해안 등 일부 지역에 빗방울이 떨어졌지만 강수량이 1~5㎜ 미만이라 특보 해제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 기상청은 2일 낮부터 3일 오전 강원 영동과 경상권에 순간풍속이 초속 15m 이상인 강풍이 불 것으로 예상돼 산불 예방에 특히 유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예윤 기자 yeah@donga.com}

중대한 산업재해가 발생하면 사업장 경영책임자에게 형사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27일로 시행 한 달을 맞았다. 이날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달 27일부터 이달 26일까지 총 10건의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사고가 발생했다.● 시행 한 달에 적용 사고 10건고용부는 이 법의 적용을 받는 상시 근로자 50인 이상(건설업은 공사 규모 50억 이상) 규모 사업장에서 사망 사고가 9건 발생했다고 밝혔다. 숨진 근로자는 15명이었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1건(55%)과 5명(25%) 줄어든 것이다. 고용부는 이 가운데 4개 기업의 대표이사 등 경영책임자 5명을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입건해 수사하고 있다. 법 시행 이틀 만인 지난달 29일 양주 채석장 토사 붕괴 사고가 발생한 삼표산업을 시작으로 요진건설산업(판교 신축 공사장 추락 사고), 여천NCC(여수 화학공장 열교환기 폭발사고), 두성산업(창원 제조공장 집단 급성중독 사태) 등 4개 사업장은 경영책임자가 안전 책임 의무를 다했는지 정식 수사를 받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에서 사망자가 발생한 사업장의 사업주·경영책임자는 안전 책임 의무를 다하지 않았을 경우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고용부가 “법 적용 대상인 사고는 모두 수사에 착수한다”고 밝힌 만큼 경영책임자가 입건되는 경우는 더 늘어날 수 있다. 노동계는 좀 더 엄격한 수사와 적용 확대를 주문하고 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은 “올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의 85%가 법 시행 이전에 사고가 났거나 상시 근로자 50인 미만이라는 이유로 법망을 빠져나갔다”며 24일 여천NCC 폭발사고 조사에 노동조합 및 노조가 추천하는 전문가가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법 적용 뒤 줄어드는 산업재해한편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한 달 동안 국내 건설·제조업 현장 등에서 발생한 전체 산업재해는 총 35건으로 집계됐다. 이로 인해 42명이 숨졌다. 업종별로는 건설업 14건(15명), 제조업 13건(18명), 기타업종 8건(9명) 등이다. 법 시행 전인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사망사고는 17건, 사망자는 10명 줄었다. 고용부는 특히 건설업 사망 사고가 전년 대비 53.3%로 큰 폭으로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반면 제조업의 경우 사망 사고가 13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발생 건수와 같았지만, 사망자 수가 지난해(13명)보다 5명 많은 18명이었다. 고용부는 “경기 양주 래미콘 제조업체 매몰사고(3명 사망) 등 다수 사망 사고의 영향을 받아 소폭 증가했다. 이를 제외하고 모든 업종에서 감소 추세”라고 설명했다.김예윤 기자 yeah@donga.com}

《3월 새 학기를 앞둔 연초는 학부모들 사이에서 ‘이모님 모시기’가 더욱 치열해지는 시기다. 매년 초 맞벌이 부부의 회사 인사이동이나 자녀들의 입학, 학원 시간표 변동 등에 맞춰 등하원 도우미 등 아이들을 돌봐줄 사람을 찾는 가정이 늘어서다.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등교 일정이 불안정해지며 안정적으로 아이들을 돌봐줄 ‘이모님’을 찾는 수요는 더욱 늘었다. 여성가족부에서 운영하는 ‘아이돌봄 서비스’의 가구별 월평균 이용시간은 코로나19 발생 전인 2019년 85.2시간에서 2021년 96.7시간으로 늘어났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이돌봄 노동 시장에 또 하나의 변수가 등장했다. 지난해 5월 국회를 통과해 올 6월 시행을 앞둔 ‘가사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가사근로자법)’이다. 법에 따르면 6월부터 정부 인증을 받은 가사노동 제공기관에 고용된 가사도우미는 근로자 권리를 인정받아 최저임금과 4대 보험, 유급 휴일, 연차 유급휴가, 퇴직금 등을 보장받는다. 부모들은 이모님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인 현실에 이 법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취지는 좋지만…” 부모들은 비용 걱정 가사근로자법은 맞벌이가 보편화되고 돌봄 노동이 외주화된 현실을 반영해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가사도우미를 법의 테두리에서 보호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가사근로자법 통과 이후 인터넷 게시판에는 “새로 구하는 이모님께는 나중에 퇴직금도 드려야 할까요?”, “시터가 그동안 일한 기간만큼 퇴직금을 원하는데 어떻게 하나요?”, “이모님 보험료도 제가 부담해야 하나요?” 등의 질문이 이어졌다. 비용 문제에 대한 궁금증이 많이 나오는 배경에는 돌봄 인력의 수급 불균형이 있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아이들이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 돌봄 수요는 더욱 커졌다. 반면 가사근로 시장의 큰 축인 중국동포 근로자들의 입출국에 제약이 생기면서 일할 사람은 줄었다. 기존에도 최저임금 및 물가 상승을 반영해 이모님의 시급은 오르는 추세였다. 통상 이모님 비용은 근무 시간, 입주 여부, 자녀수와 연령 등 다양한 조건에 따라 각 가정과 이모님이 협의해 결정한다. 가사를 일부 해주는 경우는 물론이고 아이 보는 일만 담당하는 경우에도 일반적인 최저 시급보다 시세가 높게 형성돼 있다. 이런 가운데 코로나19로 인한 인력 부족은 이모님 인건비를 더 끌어올리고 있다. 딸 둘을 키우는 워킹맘 이모 씨(37)는 “이모님 월급으로 이미 월 270만 원을 지출하는데 이모님이 두 아이를 돌보느라 힘들어하시는 모습을 볼 때마다 혹시라도 그만두시는 건 아닌지 불안할 때가 많다. 주변에서 이모님 월급을 올려드린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솔직히 고민스럽다”고 말했다. 부모 입장에선 기존 비용도 버거운데 이제는 사회보험료나 퇴직금까지 부담해야 하는 건 아닌지 우려할 수도 있다. 인력 소개 업체들은 각 가정에서 정부 인증업체에 고용돼 근로자로 인정받는 가사도우미를 쓸 경우 비용이 20%가량 높아지리라 예상한다. 새 법이 시행돼도 일반 가정에서 직접 이모님의 보험료나 퇴직금을 줄 필요는 없다. 하지만 업체가 사실상 소비자가 부담하는 비용에 이런 제반 비용을 반영할 거라 전망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법안 초기 정착을 위해 (정부 인증 업체에) 사회보험료 지원과 부가세 면제 등 세제 혜택을 검토하고 있다. 비용 상승이 20%보다는 낮은 수준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 입법 취지 살릴 방안 찾아야 6월부터 새로운 법이 적용된다고 해도 당장 가정과 가사근로자 양쪽 모두에 본격적인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아직은 새 법이 적용될 대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가사도우미가 근로자로 인정받기 위한 전제 조건은 ‘정부 인증을 받은 가사노동자 제공 업체’에 고용되는 것이다. 업체가 정부 인증을 받기 위해서는 전용면적 10m²(약 3평) 이상 사무실, 5000만 원 이상 자본금 규모의 법인이 최소 5인 이상을 고용하는 등 일정 자격을 갖춰야 한다. 현재 대다수 업체는 가정과 가사도우미를 연결해주는 소개·알선 업체로, 이 같은 자격을 갖춘 곳은 많지 않다. 기존 직업소개소의 경우 수수료를 받고 회사에 프로필을 등록한 프리랜서 이모님들을 가정에 소개해준다. 최근에는 웹사이트나 애플리케이션으로 이들을 연결해주는 온라인 플랫폼도 많다. 이들이 정부 인증 업체로 등록할 의무는 없기 때문에 법 시행 이후에도 누구나 지금과 같은 방법으로 이모님을 구할 수 있다. 고용부 관계자는 “당장 법 적용을 받는 업체를 찾기 힘든 것은 사실”이라며 “기존 기업형 소개소들을 정부 인증업체로 끌어들이기 위해 각종 세제 혜택 등 지원과 홍보를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법 시행 후 5년간 가사근로자의 최대 30%가 정부 인증기관 소속 근로자로 편입될 것으로 내다본 바 있다. 현장 반응은 미지근하다. 인증 요건을 갖추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데다 비용 상승이 전망되는데 업체도, 소비자도 굳이 이를 감수하겠냐는 것이다. 직원 4, 5인 규모의 A가사도우미 소개업체는 “우리가 이모님들을 직접 고용해 보험, 연차 등을 보장해줄 여력은 없다”고 말했다. B업체 역시 “만약 인증 의무화라도 되면 사업을 접어야 할 것 같다”며 “이모님들의 근무 시간이 제각각인데 어떻게 정규직 고용을 하라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혼란스러워했다. 가사도우미 소개 온라인 플랫폼 ‘시터넷’의 황연주 대표는 “온라인을 통해 상대적으로 적은 소개비로 이모님을 잘 구하는 경우도 있고, 매월 수수료를 받는 업체를 통해 만난 가정과 이모님도 신뢰가 형성되면 나중엔 업체를 배제하고 직거래를 하는 경우도 많다”며 “소개 업체들이 정부 인증을 받도록 유도하는 게 쉽지만은 않을 것 같다”고 내다봤다. 가사근로자법 시행에 맞춰 정부 인증 사업을 준비 중인 가사도우미 소개 업체 ‘대리주부’는 이미 100여 명을 직접 고용해 4대 보험 등을 보장하고 있다. 이봉재 부대표는 “사회보험 혜택을 받아본 적 없던 분들은 마음이 편하고 건보료도 저렴해졌다고 만족한다”며 “가사근로자의 만족도가 고객들의 서비스 만족도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또 “문제가 생겼을 때 회사가 책임진다는 것도 장점이다. 소비자들이 선택할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부모들은 법이 미칠 영향을 주시하고 있다. 2세 남아를 키우는 정모 씨(39·여)는 “인증 업체를 통해 좀더 책임감 있는 사람을 소개받을 수 있다면 조금 비싸도 고려해보겠다”고 말했다. 여가부의 ‘아이돌봄 서비스’를 이용한 경험이 있는 박모 씨(35·여)는 “정부의 아이돌봄 서비스의 경우 도우미의 신원이 확실하고 정기적으로 안전 교육, 육아 교육을 한다는 점이 만족스러웠다. 향후 정부 인증 사설 업체도 이런 부분을 확실히 보장한다면 부모들이 가격이 높다는 이유로 외면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예윤 정책사회부 기자 yeah@donga.com}
고용노동부가 전남 여수시 여천NCC 사업장에서 난 폭발 사고와 관련해 18일 서울 종로구 여천NCC 본사를 압수수색했다. 여천NCC 공동대표 2명은 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입건됐다. 앞서 11일 여수국가산업단지 내 여천NCC 공장에서는 시험가동 중이던 열교환기가 폭발하며 근로자 4명이 숨지고 4명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14일 여천NCC 현장 사무실을 압수수색한 고용부는 본사 차원의 안전보건관리가 부실했다는 정황을 확인하고 증거 확보 차원에서 본사 압수수색에 나섰다. 수사팀은 사고 원인이었던 열교환기 폭발 예방을 위한 안전보건계획과 폭발 사고 시 긴급대응요령 매뉴얼 등을 확인하고 있다. 김예윤 기자 yeah@donga.com}

고용노동부가 전남 여수시 여천NCC 사업장에서 난 폭발 사고와 관련해 18일 서울 종로구 여천NCC 본사를 압수수색했다. 여천NCC 공동대표 2명은 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입건됐다. 앞서 11일 여수국가산업단지 내 여천NCC 공장에서는 시험 가동 중이던 열교환기가 폭발하며 근로자 4명이 숨지고 4명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14일 여천NCC 현장 사무실을 압수수색한 고용부는 본사 차원의 안전보건관리가 부실했다는 정황을 확인하고 증거 확보 차원에서 본사 압수수색에 나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압수수색에는 고용부 광주지방고용노동청 근로감독관 20명이 투입됐다. 수사팀은 사고 원인이었던 열교환기 폭발 예방을 위한 안전보건계획과 폭발 사고시 긴급대응요령 매뉴얼 등을 확인하고 있다고 전해졌다. 또 고용부는 여천NCC 공동 대표인 최금암 대표와 김재율 부사장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16일 입건했다. 본사 경영책임자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정식 수사를 받는 것은 삼표산업에 이어 두 번째다. 수사 결과 경영책임자가 안전 의무를 다하지 않은 사실이 확인되면 재판에 넘겨져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의 벌금을 받을 수 있다. 이와 함께 기업에는 50억 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될 수 있다. 한편 전남경찰청은 18일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여천NCC 직원 1명과 협력업체 영진기술 현장 직원 1명을 추가 입건했다. 경찰은 앞선 12일 여천NCC 현장 책임자를 같은 혐의로 입건하고 관계자들을 출금금지 조치했다. 폭발한 열교환기의 내부 덮개를 고정했던 잠금장치 2개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 보내져 정밀감식 중이다.김예윤 기자 yeah@donga.com광주=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설 연휴가 끝나고 첫 출근일인 3일부터 수도권 중부 내륙을 중심으로 강한 추위가 찾아온다. 이번 추위는 다음주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2일 기상청에 따르면 3일 전국이 중국 산둥반도 부근에 위치한 고기압 가장자리에 들면서 대체로 맑지만 추울 것으로 전망된다. 북쪽에서 내려온 찬 공기로 경기와 강원 내륙 산지, 충청, 경북 내륙에 한파특보가 발효된다. 바람도 강하게 불어 체감온도는 더욱 내려갈 것으로 보인다. 3일 전국 아침기온은 영하 12~0도로 예보됐다. 특히 경기북부와 강원 내륙·산지는 영하 15도 이하로 떨어진다. 아침 최저기온은 서울 ―7도, 대전 ―7도, 대구 ―3도, 광주 ―2도, 부산 ―1도 등이다. 낮 최고 기온은 서울 0도, 대전 3도, 광주 5도 등으로 전망된다. 대기가 건조한 지역도 많다. 강원 남부산지와 전남, 경상 지역 일부에는 건조 특보가 발효됐다. 기상청은 이들 지역에서 대기가 매우 건조하고 바람이 강하게 불어 산불 등 각종 화재에 유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3일 미세먼지 농도는 전국이 ‘좋음’에서 ‘보통’ 수준으로 쾌청한 하늘을 볼 수 있다. 4일에는 전국에 대체로 구름이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호남과 충남 서해안 지역에서는 오후 9시부터 눈발이 날리는 곳이 있겠다. 기온은 3일보다 더 떨어져, 아침 최저기온은 영하 13도~영하 2도, 낮 최고기온은 영하 2도~영상 7도를 나타낼 것으로 보인다. 특히 기상청은 주말인 5, 6일은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낮 동안에도 영하의 기온을 보이는 곳이 많을 것으로 내다봤다. 5일은 전국이 대체로 맑겠으나 호남과 제주 지방에서 눈 또는 비가 예상된다. 6일은 충남권과 남부 지방, 제주도는 구름이 있고, 그 밖의 지역은 대체로 맑겠다. 이번 추위는 당분간 이어져 다음주까지 추울 것으로 보인다. 기상청은 12일까지 찬 대륙고기압의 영향을 받아 평년 기온(최저기온 -9~0도, 최고기온 3~9도)보다 1~4도 가량 낮겠다고 밝혔다. 한편 2일 오후부터 3일까지 풍랑특보가 발효된 동해 중부 먼바다와 동해남부 먼 바다는 바람이 매우 강하게 불고(35~60km/h) 물결이 매우 높게 일어(2.0~4.0m) 항해나 조업을 하는 선박이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4일 오후에는 동해중부 먼바다에서 바람이 강해지면서 물결이 높아지겠다.김예윤 기자 yeah@donga.com}

한국보다 먼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 확산을 맞았던 미국과 영국 등은 최근 방역 조치를 완화하고 있다. 영국은 27일부터 실내 마스크 착용, 대형 행사장 백신패스 적용 등 각종 방역 의무를 해제했다. 미국 역시 코로나19 확진자 격리 기간을 10일에서 5일로 단축했다. 이들이 처음부터 방역 완화에 나선 건 아니다. 이 국가들은 크리스마스와 새해 등 연말연초 ‘명절’ 기간에 확진자 수가 급증했다가 최근에 줄어든 공통점이 있다. 설 연휴를 앞둔 한국에 참고가 될 수 있다. 미국과 유럽의 오미크론 변이 확산 정점에는 가족들이 모이는 크리스마스 연휴가 작용했다. 영국을 포함한 유럽 각국은 오미크론 변이 확산에 추가 방역조치를 새해 이후로 미뤘다. 뉴욕타임스(NYT)는 “작년 크리스마스에도 가족들을 보지 못했다. 이번 크리스마스까지 포기할 수 없었다”며 크리스마스를 맞아 딸의 집에 방문한 아버지 등 영국 런던의 모습을 조명했다. 이 때문에 코로나19 확진 증가 우려가 커졌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영국에서는 오미크론 변이 확진자가 폭증했다. 영국 가디언은 랭커셔주의 한 병원에서 크리스마스 직전 30명이 되지 않았던 코로나19 입원 환자가 일주일 만에 108명이 됐다고 전했다. 월드오미터에 따르면 크리스마스 전주 영국의 하루 신규 확진자는 10만 명 이하였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22일 10만8509명을 시작으로 24일 12만1730명, 31일 18만8508명으로 급격히 늘어났다. 올해 들어 이달 4일에는 21만8376명으로 처음으로 일일 확진자가 20만 명을 넘어서며 정점을 찍었다. 확진자 10명 중 9명이 오미크론 변이에 감염됐다. 미국, 프랑스, 독일 등도 지난해 12월 말∼올해 1월 초 비슷한 시기에 일일 신규 확진자가 역대 최다를 나타냈다. 전 세계의 일일 신규 확진자 수는 크리스마스 전주인 지난해 12월 17일만 해도 74만9084명이었지만 24일 101만2015명을 기록한 이후 올해 1월 7일 281만4839명까지 늘었다. 크리스마스 이후 2주 만에 약 2.8배 급증한 것이다. 이달 초 확진자 수가 각각 21만 명과 89만 명으로 정점을 찍은 영국과 미국은 중순 들어 코로나19 유행이 주춤하고 있다. 크리스마스 약 한 달 뒤인 26일 영국과 미국의 하루 신규 확진자는 각각 10만여 명, 51만여 명으로 정점 대비 절반 가까이로 줄었다. 25일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미국, 영국 등의 오미크론 변이가 확산 후 약 한 달 뒤에 정점에 도달했다”고 분석했다. 한국 역시 오미크론 변이가 우세종으로 전환한 시점에 설 연휴를 맞이해 확진자 폭증이 불가피하다. 김남중 서울대 의대 감염내과 교수는 “오미크론 확산은 기정사실이지만 설 연휴를 어떻게 보내는지에 따라 증가세가 달라질 것”이라며 “모임을 줄이고 마스크는 최대한 벗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했다.김예윤 기자 yeah@donga.com}

직장인 황현희 씨(29)의 외가 식구들은 지난 주말에 전화와 문자로 서로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3차 접종 여부를 확인했다. 황 씨의 첫째 이모가 “설에 3차 접종한 사람들만 모이자”고 제안하자 다른 가족들이 모두 받아들인 것이다. 지난해 10월 말 2차 접종을 한 뒤 아직 3차 접종을 하지 않은 황 씨는 이번 모임에 빠진다. 황 씨는 “서로 불안한 것보다는 상황이 안정된 뒤 만나는 게 낫다”며 “이번 연휴엔 ‘집콕’할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설 연휴는 ‘오미크론 변이’의 영향으로 코로나19 신규 확진자 수가 치솟는 와중에 맞게 된다. 설 연휴 이후 확진자가 더 많이 늘어나는 상황도 피하기 어렵다. 최대한 이동과 만남을 자제하는 것이 좋지만 꼭 고향을 찾아야 하는 경우에 대비해 안전한 설 연휴를 보내는 ‘신(新) 방역예법 3대 원칙’을 소개한다.① ‘3차 접종’ 여부부터 확인이번 설에는 가족 모임도 ‘사적 모임’으로 분류돼 6명까지 모일 수 있다. 황 씨 가족처럼 3차 접종자들끼리만 모인다면 보다 안전하다. 백신 2차 접종자와 3차 접종자의 ‘돌파 감염’ 위험도 차이는 크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16일 0시 기준 국내 2차 접종자 4230만여 명 중 돌파 감염자는 21만여 명(0.5%)이다. 반면 3차 접종자 1830만여 명 중 돌파 감염자는 1만1000여 명(0.06%)이다. 비율로 따지면 10분의 1 수준에 그친다. 특히 고령의 어르신들이 3차 접종을 하지 않았다면 아예 뵈러 가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김우주 고려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백신 효과는 시간이 지날수록 감소한다. 고령층은 1, 2차 접종을 일찍 했기 때문에 만약 아직 3차를 맞지 않았다면 오미크론 변이에 사실상 ‘무방비’인 상태”라고 말했다. ② ‘선(先)검사, 후(後)귀성’ 필수 귀성길에 오르기 전 코로나19 검사를 먼저 해본다면 감염 위험을 더 낮출 수 있다. 서울 서대문구에 사는 김지영 씨(32)는 전북 군산의 시댁으로 가기 전 남편과 함께 선별검사소에서 검사를 받을 계획이다. 김 씨는 “70대인 시부모님이 3차 접종까지 마쳤지만 최근 서울에 확진자가 많아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연휴가 끝나고 일상으로 복귀하기 전에 한 번 더 검사를 받는 것도 좋다. 직장인 최종수 씨(55)는 지난해 추석에 이어 올해 설에도 연휴 막바지에 코로나19 검사를 받아 볼 생각이다. 음성이 나와야 회사에 출근할 계획이다. 다만 이번 연휴 기간에는 검사 기준이 달라져 유의해야 한다. 26일부터 오미크론 변이 대응체계를 미리 가동한 광주, 전남, 경기 평택시, 안성시를 제외한 전국 나머지 지역을 기준으로 28일까지는 선별진료소를 방문하는 모든 사람이 유전자증폭(PCR) 검사를 받을 수 있다. 29일부터 다음 달 2일까지는 PCR 검사와 자가검사키트를 이용한 신속항원검사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다음 달 3일부터는 60세 이상 등 고위험군을 제외한 사람들은 모두 신속항원검사만 받을 수 있다. 설 연휴 기간에도 선별검사소는 운영된다. 다만 검사소별로 운영 기간과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방문 전에 정부가 운영하는 코로나19 홈페이지(ncov.mohw.go.kr)를 통해 미리 확인하는 것이 좋다. 코로나19 의심 증상이 있을 경우 질병관리청 콜센터(1339)나 시도 콜센터(지역번호+120)로 연락하면 상담을 받을 수 있다.③ 마스크는 KF80 이상만오미크론 변이의 전파력이 매우 강한 만큼 이번 설에는 침방울을 잘 차단하는 KF80, KF94 마스크가 필수다. 최원석 고려대안산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이번 설에는 확진자를 마주칠 위험이 어느 때보다 크기 때문에 보건용 마스크가 꼭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예법 전문가들은 친척 간 만남을 자제하는 설 연휴 분위기가 자칫 부모들의 서운함이나 자녀들의 죄책감으로 이어지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미영 한국국학진흥원 수석연구위원은 “조선시대에도 역병이 돌면 마을 전체가 차례를 지내지 않기로 합의했다는 기록이 있다”며 “코로나19와 같은 상황에선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본질(마음)을 우선시하는 것이 진정한 예(禮)”라고 말했다.김소영 기자 ksy@donga.com김예윤 기자 yeah@donga.com}

직장인 황현희 씨(29)의 외가 식구들은 지난 주말에 전화와 문자로 서로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3차 접종 여부를 확인했다. 황 씨의 첫째 이모가 “설에 3차 접종한 사람들만 모이자”고 제안하자 다른 가족들이 모두 받아들인 것이다. 지난해 10월 말 2차 접종을 한 뒤 아직 3차 접종을 하지 않은 황 씨는 이번 모임에 빠진다. 황 씨는 “서로 불안한 것보다는 상황이 안정된 뒤 만나는 게 낫다”며 “이번 연휴엔 ‘집콕’할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설 연휴는 ‘오미크론 변이’의 영향으로 코로나19 신규 확진자 수가 치솟는 와중에 맞게 된다. 설 연휴 이후 확진자가 더 많이 늘어나는 상황도 피하기 어렵다. 최대한 이동과 만남을 자제하는 것이 좋지만 꼭 고향을 찾아야 하는 경우에 대비해 안전한 설 연휴를 보내는 ‘신(新) 방역예법 3대 원칙’을 소개한다.① 어르신 ‘3차 접종’ 여부 확인이번 설에는 가족 모임도 ‘사적 모임’으로 분류돼 6명까지 모일 수 있다. 황 씨 가족처럼 3차 접종자들끼리만 모인다면 보다 안전하다. 백신 2차 접종자와 3차 접종자의 ‘돌파 감염’ 위험도 차이는 크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16일 0시 기준 국내 2차 접종자 4230만여 명 중 돌파 감염자는 21만여 명(0.5%)이다. 반면 3차 접종자 1830만여 명 중 돌파 감염자는 1만1000여 명(0.06%)이다. 비율로 따지면 10분의 1 수준에 그친다. 특히 고령의 어르신들이 3차 접종을 하지 않았다면 아예 뵈러 가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김우주 고려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백신 효과는 시간이 지날수록 감소한다. 고령층은 1, 2차 접종을 일찍 했기 때문에 만약 아직 3차를 맞지 않았다면 오미크론 변이에 사실상 무방비인 상태”라고 말했다. 고령의 기저질환자가 많은 요양병원에선 3차 접종을 모두 한 어르신들도 각별히 조심하고 있다. 노동훈 카네이션 요양병원 원장은 “명절 음식을 갖고 요양병원을 찾는 보호자들의 안전을 위해 ‘비접촉 면회’를 실시하고 있다”고 전했다.② ‘선(先)검사, 후(後)귀성’ 필수 귀성길에 오르기 전 코로나19 검사를 먼저 해본다면 감염 위험을 더 낮출 수 있다. 서울 서대문구에 사는 김지영 씨(32)는 전북 군산의 시댁으로 가기 전 남편과 함께 선별검사소에서 검사를 받을 계획이다. 김 씨는 “70대인 시부모님이 3차 접종까지 마쳤지만 최근 서울에 확진자가 많아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주부 유화경 씨(41)도 최근 비상용으로 자가검사키트를 구매했다. 연휴가 끝나고 일상으로 복귀하기 전에 한 번 더 검사를 받는 것도 좋다. 직장인 최종수 씨(55)는 지난해 추석에 이어 올해 설에도 연휴 막바지에 코로나19 검사를 받아 볼 생각이다. 음성이 나와야 회사에 출근할 계획이다. 다만 이번 연휴 기간에는 검사 기준이 달라져 유의해야 한다. 26일부터 오미크론 변이 대응체계를 미리 가동한 광주, 전남, 경기 평택시, 안성시를 제외한 전국 나머지 지역을 기준으로 28일까지는 선별진료소를 방문하는 모든 사람이 유전자증폭(PCR) 검사를 받을 수 있다. 29일부터 다음 달 2일까지는 PCR 검사와 자가검사키트를 이용한 신속항원검사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다음 달 3일부터는 60세 이상 등 고위험군을 제외한 사람들은 모두 신속항원검사만 받을 수 있다. 설 연휴 기간에도 선별검사소는 운영된다. 다만 검사소별로 운영 기간과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방문 전에 정부가 운영하는 코로나19 홈페이지(ncov.mohw.go.kr)를 통해 미리 확인하는 것이 좋다. 코로나19 의심 증상이 있을 경우 질병관리청 콜센터(1339)나 시도 콜센터(지역번호+120)로 연락하면 상담을 받을 수 있다.③ 마스크는 KF80, KF94 착용오미크론 변이의 전파력이 매우 강한 만큼 이번 설에는 침방울을 잘 차단하는 KF80, KF94 마스크가 필수다. 최원석 고려대안산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이번 설에는 확진자를 마주칠 위험이 어느 때보다 크기 때문에 보건용 마스크가 꼭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경기 구리시에 사는 홍예진 씨(29·여)도 평소에는 답답해 얇은 ‘덴탈 마스크’를 쓰지만 외할아버지를 뵈러 가는 설 연휴를 앞두고선 KF94 마스크를 준비했다. 홍 씨는 “외할아버지를 못 뵌지 오래돼 가긴 가야하는데 80세 고령인데다 몸도 편찮으셔서 가족들이 조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예법 전문가들은 친척 간 만남을 자제하는 설 연휴 분위기가 자칫 부모들의 서운함이나 자녀들의 죄책감으로 이어지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미영 한국국학진흥원 수석연구위원은 “조선시대에도 역병이 돌면 마을 전체가 차례를 지내지 않기로 합의했다는 기록이 있다”며 “코로나19와 같은 상황에선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본질(마음)을 우선시하는 것이 진정한 예(禮)”라고 말했다. 김 연구위원은 또 “오히려 코로나19 상황을 계기로 비대면 차례 등을 하나의 새로운 문화로 정착시킨다면 좋겠다”고 제안했다.김소영 기자 ksy@donga.com김예윤 기자 yeah@donga.com}

비트코인 같은 암호화폐부터 ‘대체불가토큰(NFT)’까지 블록체인 기술과 관련된 시장들이 주목 받으면서 블록체인 업계 채용이 활황이다. 해외에서는 2018년부터 관련 일자리가 증가하기 시작했으며 최근 국내에서도 관련 기술 스타트업이 늘어나고 있다. 정보통신산업진흥원에 따르면 블록체인 기술만을 전문으로 하는 기업 수는 2020년 83곳에서 지난해 95곳으로 늘어났다. 올해는 100곳을 넘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신생 업체뿐 아니라 카카오, 라인 등 기존 정보기술(IT) 대기업이나 게임 업체들도 블록체인 사업에 진출하며 관련 채용이 증가하고 있다. 구직자들을 모셔 가기 위한 업체들의 연봉·복지 경쟁도 뜨겁다.○개발자 등 블록체인 업계 채용 붐 22일 취업정보 사이트 ‘진학사 캐치’가 홈페이지에 등록된 블록체인 기술 관련 기업들의 채용공고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하반기 블록체인 관련 사업을 하는 기업의 채용공고는 총 745건으로 집계됐다. 2020년 상반기 99건에서 2년 만에 약 7.5배 늘어난 수치다. 블록체인 기술 관련 채용공고의 직무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개발자 △프로젝트 매니저(PM) △보안·준법 관련 업무 등이다. 수요가 가장 많은 직무는 개발자다. 블록체인이 작동하는 시스템을 설계·수정하거나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하는 데 필요한 개발·엔지니어링 업무다. ‘블록체인 개발자’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블록체인 기술이 아니더라도 다른 개발 경력이 있는 경우 유리하다. 블록체인 시스템 운영에는 기존의 운영체제나 네트워크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관련 사업에 대한 관심이 커지며 커뮤니케이션, 마케팅 등 다른 직무에 대한 수요도 늘어나고 있다. 블록체인 프로젝트 매니저(PM)는 다양한 비즈니스와 블록체인 개발을 연결해주는 ‘다리’와 같다.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하길 원하는 회사나 이용자의 요구사항을 개발자 그룹에 기술적인 언어로 설명하고, 반대로 개발자들의 언어를 일반인에게 쉽게 설명해주는 역할이다. 블록체인이 특히 금융 분야에서 많이 쓰이는 기술인 만큼 보안·준법 감시 직무도 늘어나고 있다. 특히 이상거래 징후를 포착하거나 금융·수사기관과 협조할 수 있는 자금세탁방지(AML) 등 금융권 경험도 좋은 경력이 될 수 있다. ○“이론-작은 경험도 포트폴리오로” 현직자들은 채용에서 블록체인에 대한 이론 이해나 작은 경험도 포트폴리오로 정리해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블록체인 개발자로 경력을 쌓은 이정주 한국그린데이터 최고기술경영자(CTO)는 “이제 막 발전을 시작하는 업계라 기술 발달 속도는 매우 빠른 반면 지원자의 이해도는 낮은 경우가 많다. 번역된 책을 기다리지 않고 해외 웹사이트나 논문을 읽고 공부한 것을 정리한 포트폴리오가 블록체인에 대한 이해도와 적극성을 보여줄 수 있다”고 말했다. 블록체인 기술회사 ‘람다256’의 개발자 조현기 씨(27)는 ‘신입직원보다 경력직을 우대한다’는 고민을 포트폴리오로 해결했다. 그는 “신기술이라 아직 기존 대기업 인턴 자리는 많지 않다. 혼자 프로그래밍에 성공해본 작은 경험도 포트폴리오로 쌓아 두면 충분히 매력 있는 스펙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경영학을 전공한 문과생으로 개발자가 된 조 씨는 “문과생을 뽑는 IT나 블록체인 업체의 마케팅팀에서 어깨너머로 지식을 쌓으며 공부를 시작했다”고 경험을 공유했다. 스스로 공부한 뒤 각종 해커톤 경진대회 등에서 또래 참가자들과 만나 스터디를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진학사 캐치는 25일부터 28일까지 현직 블록체인 업계 종사자들의 취업 노하우 등을 전하는 ‘커리어콘’을 온라인으로 개최한다. 김정현 진학사 캐치 소장은 “블록체인을 활용한 금융·게임 사업이 더욱 활발해지면서 블록체인 관련 수요는 당분간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며 “블록체인 업종에 관심은 있지만 어려워 망설였던 경우 현직자의 경험과 조언이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참가 신청은 캐치 홈페이지에서 무료로 가능하다.김예윤 기자 yeah@donga.com}

서울 중구에서 한정식 집을 운영하는 김모 씨(59)는 이달부터 직원 2명의 임금을 10만 원씩 올려주기로 했다. 올해 시간당 최저임금이 지난해(8720원)보다 5.1% 인상된 9160원이 된 여파다. 김 씨는 “직원 월급은 원래 최저임금보다 많지만 함께 일하는 아르바이트 시급이 오르는데 직원 월급만 그대로 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매출은 3분의 1로 줄고 식자재 값은 오르자 직원을 반으로 줄이며 버텨온 김 씨는 결국 최근 1인당 2만 원짜리 한정식 가격을 2만2000원으로 올렸다. 1일부터 최저임금이 인상되면서 높은 물가에 인건비 부담까지 떠안은 식당들이 음식 가격을 줄줄이 올리고 있다. 서울 구로구에서 직원 4명과 국수집을 운영하는 한길로 씨(40)도 며칠 전 국수, 보쌈 등 메뉴 전반을 500~1000원 가량 올렸다. 그는 “식자재 값은 올랐다가 떨어지기도 하지만 최저임금은 한 번 오르면 계속 부담”이라며 “주변 순댓국, 치킨집 모두 가격을 올리는 것을 보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서울 관악구에서 간판 제작업을 하는 유만호 씨(58)는 “이달 들어 식당 메뉴판 가격을 수정하는 일감을 7건이나 맡았다”면서 “원래 연말연초는 가격 인상이 있기는 했지만 올해는 유독 많다”고 말했다. 중소기업들도 임금 상승 압박에 직면했다. 지난해 취업포털 잡코리아에 따른 중소기업 신입연봉 평균은 2793만 원. 올해 인상된 최저임금으로 주40시간 근무하면 받을 수 있는 연봉은 2297만3280원이다. 지난해 중소기업 신입 평균 연봉과 불과 500만 원 차이다. 섬유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구홍림 씨(56)는 “상대적으로 오랫동안 기술을 쌓은 직원들의 박탈감이 심해진다”며 직원 월급을 최저임금 인상률과 비슷하게 5% 가량 올릴 계획이다. 주유소를 운영하는 김문식 씨(66)는 지난해 12월 사무직 직원이 “알바와 임금 차이가 거의 없다”며 그만둔 후 아직 사람을 구하지 못했다. 최저임금이 오르며 시간제 아르바이트와 정규 직원의 임금 격차가 좁혀지자 기존 월급으로는 사람을 구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충격을 보완하기 위해 2018년부터 사업주에게 최저임금 인상분 일부를 지원하는 ‘일자리안정자금’ 보조를 올해 상반기까지 6개월 연장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원금액은 직원 1인당 월 3만 원으로 줄어들어 고용 현장에서 체감 효과에 회의적이다. 지난해는 5인 미만 사업장은 1인당 7만 원, 5인 이상 사업장은 5만 원을 받았다. 임금 상승이 고용 시장의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지난해 7월 소공연이 소상공인 1026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2022년도 최저임금 관련 소상공인 긴급 실태조사’에서 이미 37.4%는 ‘최저임금에 부담을 느껴 1인이나 가족경영 형태로 사업체를 운영하는 중’이라고 답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높은 물가가 임금 상승을 부르고 고임금이 또다시 물가를 자극하는 악순환, 즉 임금 인플레 현상이 이어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김예윤 기자 yeah@donga.com}